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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힝야 학살‘ 취재기자 징역 7년 항소 기각…“언론자유 역행”

    ‘로힝야 학살‘ 취재기자 징역 7년 항소 기각…“언론자유 역행”

    미얀마에서 ‘로힝야족 학살’ 사건을 취재하다가 구속돼 징역 7년을 선고받은 로이터 통신 소속 기자들의 항소가 기각됐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언론의 자유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12일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미얀마 양곤고등법원은 전날 로이터 통신 소속인 와 론(32), 초 소에 우(28) 기자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7년을 선고한 1심을 유지했다. 이들은 미얀마 라카인주(州)에서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게 자행된 한 미얀마군의 학살 사건을 취재하다가 지난 2017년 12월 ‘공직 비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은 정보원으로 관리하던 경찰관의 제안으로 저녁 식사 자리에 나갔다가 비밀문서를 건네받은 뒤 곧바로 체포됐다. 재판 과정에 윗선의 함정수사 지시가 있었다는 해당 경찰관의 폭로가 있었지만, 법원은 이를 외면했다. 두 기자가 취재하던 사안은 미얀마군이 유일하게 인정한 로힝야족 집단 학살 암매장 사건이다. 두 기자는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등과 함께 ‘진실의 수호자들’ 이란 이름으로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에 의해 ‘2018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로이터 편집국장 스티븐 애들러는 성명서에서 “오늘 판결은 또다른 불의”라며 “보도는 범죄가 아니며, 미얀마에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가 돌아올지는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성명에서 “이번 판결은 미얀마의 법치와 국민의 알 권리, 언론의 자유에 대한 역행”이라며 윈 민트 미얀마 대통령에게 불의를 바로잡아달라고 요구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도 미얀마의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에게 이번 사건이 적법하게 처리됐는지 확인하고 두 기자의 미래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조성길, 스위스·프랑스 등 이탈리아 북부로 갔을 가능성 커”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 조성길(44) 전 대사대리가 잠적한 가운데 안토니오 라치 이탈리아 전 상원의원은 “스위스나 프랑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등 이탈리아 북부와 국경을 접한 나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 등에 따르면 조 전 대사대리와 친분이 있던 친북 성향의 라치 전 의원은 “지난해 10월 29일 로마에서 조 대사대리와 식사를 했는데 임기가 곧 끝난다는 소식을 전하며 귀임 전에 가족과 함께 밀라노, 베네치아 등 북부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면서 이 같이 전했다. 라치 전 의원은 “11월 22일에 다시 만나 식사를 하기로 했지만 다음 식사 자리에는 그의 후임인 김천 대사대리와 다른 공관원만 나왔으며, 그들은 조 전 대사대리가 여행 중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라치 전 의원은 북한대사관에서 조 전 대사대리의 14살쯤 된 아들과 아내를 함께 만난 적이 있으며, 다른 자녀 1∼2명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 전 대사대리는 지난해 11월 잠적했다. 한편 미국 워싱턴에서 지난 4일 열린 엔초 모아베로 밀라네시 이탈리아 외무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조 전 대사대리 신병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이탈리아 정치전문잡지 스트라데가 전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에 맞짱 뜨는 베트남의 결기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에 맞짱 뜨는 베트남의 결기

    베트남이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빚어온 중국에 대해 맞짱을 뜰 기세다. 중국 측의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기지 폐쇄와 미사일 등 전략자산 배치의 즉각 철회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남중국해 ‘우발 충돌방지를 위한 행동준칙’(COC) 협상 초안을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베트남이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 폐쇄와 미사일 등 전략무기 배치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고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그러면서 “베트남은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과 해상 봉쇄, 미사일 발사대 등 공격형 무기 배치 등 분쟁 수역에서 지난 몇 년간 중국이 취한 조치들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협정(남중국해 COC 협정)을 원한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이어 “베트남은 중국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남중국해 방공식별구역(ADIZ)도 폐지해야 한다고 내용도 초안에 담았다”고 덧붙였다. COC(Code of Conduct)는 중국과 아세안이 2002년 채택한 ‘남중국해 분쟁당사국 행동선언’(DOC)의 후속 조치에 해당한다. 분쟁 당사국 간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 지침을 담을 예정이다. 중국과 아세안은 2017년 8월 외무장관회의에서 COC 협상 초안을 채택하고 지난해 3월부터 협상에 착수했다. 차기 아세안 의장국인 태국은 올해 안에 COC 타결을 주요 추진 목표로 제시했다.베트남은 모든 분쟁 당사국이 핵심 무역항로에서 국제법에 따라 영유권 주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중국해 90%의 영유권을 주장해온 중국이 근거로 제시해온 이른바 ‘남해 9단선’을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관측이다. 베트남이 대중 강경노선을 표방하면서 올해 타결을 목표로 추진 중인 아세안과 중국의 남중국해 COC 협상은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싱가포르 ISEAS 유소프 이샥 연구소의 남중국해 전문가 이언 스토리 시니어 펠로는 “베트남은 중국이 지난 10년간 (남중국해에서) 해온 일들을 금지하는 내용을 COC 협정에 담으려 한다”며 “따라서 이를 둘러싸고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 매우 짜증스러운 언쟁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남중국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가 맞닿아 있는 해역이다. 서태평양과 인도양, 중동을 연결하는 해상 물류 중심지이자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세계 해양 물류의 25%, 원유 수송량의 70%가 이곳을 통과한다. 금액으로는 한 해 5조 3000억달러(약 5974조원)에 이른다. 석유 매장량은 최소 110억 배럴, 천연가스는 190조 ft3로 추정된다. 중국은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U자 형태로 9개 선(구단선)을 그어 90%를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며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과 첨예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스프래틀리제도(중국명 南沙群島, 베트남명 쯔엉사군도, 필리핀명 칼라얀군도)와 파라셀군도(중국명 西沙群島, 베트남명 호앙사군도) 등에 인공섬을 잇따라 건설해 활주로와 항공기 격납고 등을 구축하고 지대공미사일과 발사 차량, 레이더 등을 배치하는 등 군사기지화해 역내에 긴장을 고조시켰다. 베트남은 특히 과거 자국이 관할하던 스프래틀리제도와 파라셀군도가 1974년과 1988년에 중국에 각각 강제로 점령당한 ‘아픔’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2016년 7월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필리핀 정부가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지만, 중국은 이를 무시한 채 일방적인 영유권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한 발 더 나가 2013년 일방적으로 남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하고 이곳을 지나는 모든 항공기는 자국에 식별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주변국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베트남의 도발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힘 자랑을 하려던 중국이 베트남 공격에 나섰으나 번번이 패퇴하는 바람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1979년 미국과 중국이 정식 수교한 이후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그해 1월 29~2월 5일 워싱턴을 방문한 덩샤오핑(鄧小平)이 지미 카터 미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송이가 말을 안 듣는다. 엉덩이를 때려줘야겠다(小朋友不聽話 該打打屁股了).” 불과 한달여 전인 1978년 12월 25일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한 사실을 두고 한 말이었다. 베트남군은 당시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 1979년 1월 7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을 함락시키고 중국이 지원하는 크메르루주 지도부는 국외로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군 6만여 명이 1979년 2월17일 전격적으로 베트남을 침공했다. 베트남이 국민 총동원령으로 맞섰다. 주력군이 캄보디아 쪽에 배치돼 있어 민병대와 여성들이 전투에 앞장섰다. 중국군은 20만 명까지 병력을 늘렸지만 졸전 끝에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한 달 만에 퇴각했다. ‘말 안 듣는 애송이’를 손봐 주겠다던 덩샤오핑은 머쓱해졌다. 190년 전 청(淸)나라 때도 마찬가지다. 건륭제(乾隆帝)는 베트남 왕이 황제를 칭하자 20만 대군을 보내 베트남을 침공했다. 베트남군은 수륙 양면작전으로 맞섰다. 10만 군사와 전투용 코끼리 100마리를 앞세워 기습작전을 펼쳤다. 청군은 궤멸하고 건륭제는 망신만 톡톡히 당했다. 송(宋)나라와 원(元)나라도 베트남을 침략했다가 쓴맛을 보고 돌아서야 했다. 베트남은 939년 중국 대륙이 5대10국의 혼란기에 접어든 틈을 타 독립한 이후 명(明)나라 때 일시적으로 식민지가 됐던 20년간을 빼고는 1884년 프랑스 식민지가 될 때까지 줄곧 독립을 지켰다. 독립 이후 중국 역대 왕조와 여러 번 전쟁을 치렀지만 그때마다 승리했다. 민족적 자부심이 유난히 강한 이유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제외하고 남의 지배를 거의 받지 않았다는 것이 베트남의 힘의 원천인 셈이다. 이 때문에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제도와 파라셀군도를 놓고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일 때마다 전 국민이 똘똘 뭉친다. 2011년 5월 중국 해군이 베트남 석유·가스 탐사선의 해저 케이블을 끊었을 때 베트남 전역이 반중(反中)시위로 들끓었다. 군부는 “중국이 파라셀 제도를 점령하면 우리는 육로로 공격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분위기를 격앙시켰다. 2014년 5월 중국의 석유시추 장비 설치에 항의하던 베트남군이 다치고 어선이 파손됐을 때도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중국인 소유 공장들이 잿더미로 변하고 화교들은 탈출했고 결국 중국 해군은 철수해야 했다. 지난해 6월에도 베트남 정부가 추진한 경제특구 조성 관련 법안에 외국인 투자자에게 최장 99년간 토지임대를 허용하는 조항이 들어간데 대한 항의로 반중시위가 벌어졌다. 일부 시민들은 이 같은 조항이 중국에 특혜를 제공해 자국의 땅을 팔아넘기고 결과적으로 국가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반발한 것이다. 현행법상 다른 지역의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최장 70년간 토지를 임대할 수 있다. 베트남 정부의 강경진압에도 고속도로 점거 및 차량 방화로 비화됐다. 시위대는 해산을 시도하는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반중시위는 수도 하노이시, 남부 경제중심지 호찌민시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반중 정서에 밀린 베트남 정부는 급기야 경제특구 관련 법안 처리를 연기하고 토지임대 조항을 빼기로 했다. 지난해 사태의 기저에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치열하게 벌이는 영유권 분쟁 등의 이유로 베트남 사회 저변에 짙은 반중감정이 깔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당당히 맞짱 뜨는 베트남을 절대로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아베 개헌·푸틴 경제 맞물린 ‘쿠릴’ 반환… 양국 새달 담판 짓나

    [글로벌 인사이트] 아베 개헌·푸틴 경제 맞물린 ‘쿠릴’ 반환… 양국 새달 담판 짓나

    일본은 대부분의 주변국들과 영토 갈등을 빚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 대해서는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북쪽 홋카이도 바로 위 ‘쿠릴열도 4개 섬’을 놓고도 러시아와 70년 이상 분쟁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 쿠릴 4개 섬을 둘러싼 양국 간 대화가 급진전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4개 섬 영유권 협상 타결과 이를 통한 평화조약 체결에 어느 때보다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쿠릴 4개 섬을 둘러싼 양국 갈등의 역사와 협상 전망, 과제 등을 문답으로 알아본다.→일본과 러시아 간 쿠릴열도 4개 섬 분쟁은 언제 시작됐나.-쿠릴열도는 홋카이도~캄차카반도 사이 1300㎞ 바다 위에 줄줄이 이어진 56개의 섬과 바위섬들을 말한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은 에토로후, 구나시리, 하보마이, 시코탄 등 열도 최남단의 4개 섬이다. 이곳을 실효지배하고 있는 러시아는 ‘남쿠릴열도’(사할린주)라고 부르고, 일본은 ‘북방영토’라고 부른다. 2016년 기준 4개 섬에 1만 6700명의 러시아인이 살고 있다. 일본이 러시아에 섬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데는 나름의 역사적 근거가 있다. 4개 섬은 메이지유신 이전인 1855년 일본 막부와 러시아 사이에 맺어진 통상조약에 의해 일본에 편입됐다. 일본의 영유권과 실효지배는 1905년 러·일 전쟁 승리로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진영은 1943년 카이로선언과 1945년 얄타협정을 통해 쿠릴열도 전체에 대해 소련(현재의 러시아)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소련은 일본 패망 직후인 1945년 8월 28일~9월 5일 4개 섬을 점령하고 일본인 주민 1만 7300명을 추방했다.→4개 섬은 홋카이도에 바짝 붙어 있는데, 러시아에 중요한 이유는. -러시아는 4개 섬 면적 합계의 93%를 차지하는 에토로후(63%)·구나시리(30%)에 군인 3500명을 주둔시켰다. 2016년에는 미국·중국을 의식해 지대함 미사일을 배치했다. 이 지역이 동부 최대 항구도시이자 군항인 블라디보스토크와 북극해 항로를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러시아 정부는 에토로후·구나시리를 중심으로 도로,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을 대폭 확충했다. →지금까지 양국 간에 4개 섬 반환협상은 꾸준히 이어져 왔는데. -일본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과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주권국가로서 지위를 회복했다. 그러나 당시 소련은 일본의 재무장 가능성 등을 이유로 조약 서명에 불참했다. 이 때문에 두 나라는 법적으로는 계속 전쟁 상태에 있게 됐는데, 1953년 소련의 철권통치자 스탈린이 사망하고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국교 정상화 협상이 시작됐다. 협상에서 소련은 “쿠릴 4개 섬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정당하게 얻은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최종 단계에서는 ‘하보마이, 시코탄 등 2개 섬은 돌려줄 수 있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당장 전쟁 상태를 종식하는 게 급했던 일본은 소련의 제시안을 토대로 1956년 10월 일·소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러시아가 2개 섬을 일본에 넘겨주는 것을 전제로 평화조약 협상을 계속하되 2개 섬의 인도는 조약 체결 후에 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그런데도 2개 섬의 반환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일·소 공동선언이 1956년 12월 발효됐지만, 공교롭게도 그 이후 동서 냉전이 심해졌다. 소련은 1960년 미·일 안전보장조약이 새롭게 체결되자 “주일미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하보마이·시코탄의 인도는 불가능하다”며 반발했다. 이에 일본도 ‘4개 섬 전체 일괄반환’을 주장하며 강경 모드로 돌아섰다. 이후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소련의 붕괴 등 거대한 세계사적 변화를 거치며 협상은 진전의 기회를 맞기도 했으나 최종 타결은 번번이 무산됐다. →앞으로 양국 협상은 어떻게 전개되나.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1956년 일·소 공동선언을 바탕으로 한 협상 추진에 합의했다. 일본으로서는 강하게 주장해 온 ‘4개 섬 일괄반환’에서 후퇴해 ‘2개 섬 반환’으로 요구 수위를 낮춘 셈이다. 협상은 각각 고노 다로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책임자로 하는 양국 실무협상단이 담당한다. 여기에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내년 1월 아베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해 대강의 합의를 도출하고 이후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뭔가를 결정짓는다는 게 양국의 구상이다. →일본이 ‘4개 섬 일괄반환’에서 ‘2개 섬 반환’으로 입장을 완화한 이유는. -러시아가 구나시리와 에토로후를 돌려줄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결정적이다. 그러나 2개 섬 반환으로 수위를 낮춘 데 대해 벌써부터 일본 내부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를 의식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우선 2개 섬 반환+알파(α)’를 표방하고 있다. 여기에서 α는 돌려받지 못하는 구나시리·에토로후에 대해 특별한 권리를 확보한다는 것인데 현실성은 없다는 관측이 많다.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왜 협상을 서두르나. -역대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북한과 국교 정상화’와 ‘러시아와 평화조약 체결’을 가장 중대한 외교적 과제로 인식해 왔다. 내년 11월이면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우는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 말까지인 자신의 임기 내에 적어도 일·러 평화조약만큼은 이뤄낸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스스로 쿠릴 반환을 ‘일본 전후(戰後) 외교의 총결산’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외교적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최근 도쿄신문은 아베 총리가 대러시아 외교를 자신의 숙원인 개헌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이 노리는 것은 일본의 돈이다. 자국 내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협력과 직접투자를 갈망하고 있다. 러시아는 틈만 나면 일본 측에 “일본 기업인들에게 대러시아 투자 확대를 독려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협상을 서두르기에는 러시아의 부담이 클 것 같은데. -아무리 경제적 이득을 위한 것이라지만, 당장 갖고 있는 영토를 포기하는 방향의 협상이 되다 보니 러시아는 대외적으로 지극히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1956년 공동선언에는 단순히 소련이 2개 섬을 양도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돼 있을 뿐 어떤 근거로 누구의 영유권하로 들어갈지는 언급돼 있지 않다”고 말해 기대에 부풀어 있는 일본 측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영토를 돌려받으려는 입장이다 보니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노 외상은 지난 11일 쿠릴 반환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대놓고 무시해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일본에 돌려준 섬들이 자국을 겨냥한 미군의 기지로 활용될 가능성도 러시아로서는 우려하는 부분이다. 아베 총리가 직접 푸틴 대통령에게 미군이 들어오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기본적인 미·일 관계를 감안할 때 100% 장담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최종 협상타결 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 -양국 정상이 저마다 노리는 목표가 분명해 협상타결 가능성을 높게 보는 전문가도 있지만, 그동안에도 잘나가다 무산된 적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에 예단하기는 어렵다. 특히 러시아는 자국민의 반발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아져 있는 상태라는 점도 과감한 협상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15일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는 2개 섬 반환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주민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친미·좌파 선그은 브라질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이 새해 1월 1일 열리는 자신의 취임식에 베네수엘라와 쿠바 정상을 초청하지 않겠다고 16일(현지시간) 밝혔다. 같은 우파 정권인 아르헨티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과는 1월 16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확정한 지 이틀 만에 중남미 대표 좌파 정권인 두 나라를 저격한 것이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취재진에게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취임식에 초청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베네수엘라와 쿠바 국민은 자유가 없으며, 우리는 독재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네스투 아라우주 브라질 외무장관 내정자도 트위터에 “민주주의를 기념하는 행사에 마두로를 위한 자리는 없다”면서 “세계 모든 나라가 마두로 정부로부터 베네수엘라 국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단결할 것”이라고 올려 보우소나루 당선인을 거들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외무부는 이미 브라질 외무부가 보우소나루 당선인 취임식에 참석해 달라며 마두로 대통령 앞으로 보낸 2장짜리 서한이 있다며 트위터에 이 서한을 찍은 사진을 올렸다. 호르헤 아레아사 베네수엘라 외무장관은 그러면서 “베네수엘라 정부는 편협성, 파시즘, 중남미 통합에 반하는 이해관계에 굴복하는 보우소나루 당선인 취임식에 절대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그동안 취임 후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우파 정권들과 연대해 ‘자유주의 동맹’을 결성하겠다고 밝혀 왔다. 그는 그러나 베네수엘라 등 ‘친미 좌파’ 성향 정부가 집권 중인 나라들에 대해서는 적나라하게 반감을 드러내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고노 일본 외무상 “한국의 징용 판결 대응 어려운 점 이해”…달라진 분위기 왜?

    고노 일본 외무상 “한국의 징용 판결 대응 어려운 점 이해”…달라진 분위기 왜?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연일 강경 발언을 해 온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한국 정부가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이해한다”고 유화적인 입장을 보여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6일 NHK에 따르면 중동 지역 카타르를 방문 중인 고노 외무상은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 “한국 측의 대응이 어렵다는 점은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재촉할 생각은 없지만, 일본 기업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한국 측이 제대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노 외무상이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에 대해 한국 측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는 식으로 언급하며 한국의 대책을 재촉할 의향이 없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노 외무상은 지난 10월 30일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이후 강경 발언을 주도하면서 한국 측이 즉각적인 조처를 하지 않으면 대응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말해 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는 특히 “어떤 나라도 한국 정부와 일하기 어려울 것”, “폭거이자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 등 격한 표현도 구사했다. 고노 외무상의 이번 유화적 발언과 관련해 지난 12일 강경화 외무장관과 가졌던 전화통화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두 장관은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과 관련해 각자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긴밀한 소통’의 원칙에 공감, 향후 분위기 전환의 기대감을 자아냈다. 일본 정부의 반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서울에서 일한의원연맹 대표단을 접견하고 “한국 정부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부 부처와 민간, 전문가들이 모여 해법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사면초가’ 메이… 브렉시트 운명은?

    메이 “협상재개 시간없어 내가 맡아야” 메르켈 “재협상은 없다”… EU도 강경 영국 집권 보수당이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합의에 대한 당내 강경파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를 결국 강행하게 됐다. 당내 반발을 의식한 메이 총리는 EU를 대상으로 브렉시트 합의안을 수정하려 했지만 “재협상은 없다”는 EU의 입장만 재확인해 ‘사면초가’ 위기에 몰렸다. 영국 집권 보수당 대표 경선을 관할하는 ‘1922 위원회’ 그레이엄 브래디 의장은 1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당 대표인 메이 총리에 대해 신임투표를 요구하는 의원이 당규상의 기준점인 하원의석(315석)의 15%(의원 48명)를 넘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6∼8시(한국시간 13일 오전 3~5시) 하원에서 메이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가 열리게 됐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메이 총리가 신임 투표에서 패배하면 총리직과 당 대표에서 물러나야 한다.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사지드 자비드 내무장관, 마이클 고브 환경장관 등이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관련 협상을 재개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만큼 새 대표가 선출되면 브렉시트를 연기하거나 브렉시트 결정을 취소해야 할 수도 있다”고 자신이 총리 및 당 대표를 계속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메이 총리는 11일 독일 베를린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브렉시트 합의안 재협상을 거론했지만 메르켈 총리는 “재협상은 없다”면서 “도와 달라는 호소는 각국 수도에서 하기보다 (13~14일 EU 정상회의가 열리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메이 총리는 이날 오전에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를 만났고, 오후에는 브뤼셀에서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의장을 만났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과 EU는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 ‘하드 보더’(국경 통과 시 엄격한 통행·통관 절차)를 피하고자 영국이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도록 하는 ‘안전장치’ 가동에 합의했다. 하지만 영국 보수당 내에서 EU가 합의하지 않으면 영국이 EU 관세동맹을 자발적으로 탈퇴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이에 반발하고 있다. 메이 총리는 하원 비준 표결이 부결될 위기에 처하자 안전장치가 가동되더라도 영국이 영구적으로 관세동맹에 잔류하지 않도록 EU 측에 추가 수정을 요구했지만 EU가 이를 거부한 것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글로벌 In&Out] 73년 전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과 분단/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73년 전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과 분단/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1945년 12월 16일 미·소·영 외무장관들이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했다. 한국 문제는 회의 첫날에 제기됐다. 미 국무장관이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가 이미 합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얄타회담에서 합의했기 때문에 소련도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를 수립하기 전에 통일 군정을 과도기관으로 설치할 것을 제안하는 미국안은 17일에 제출됐다. 한국인들의 역할은 고문과 관료에 한정됐다. 미국은 그 기한을 5년으로 하고 필요에 따라 5년 이하로 연장 가능하다고 했다.소련의 안은 20일 제출됐다. 한국인들로 구성된 임시정부 수립 후 최고 5년 기한으로 ‘신탁통치’를 하자는 제안이다. 소련은 ‘신탁통치’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진보를 위한 지원 및 방조의 조치”로 규정하고 5년으로 설정했다. 정부의 구성 등은 공동위원회가 한다. 미국이 요구한 사소한 수정에 소련이 동의했고, 그 소련 안이 받아들여졌다. 모스크바 3상회의가 끝나기도 전인 12월 25일 동아일보가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는 제목으로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한 보도를 남한에서 발표하자 우파는 ‘즉시 독립’을 주장하면서 ‘반탁운동’의 선봉에 나섰다. 이 소식은 북한에도 전해졌으며 북한 사람들도 반탁시위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12월 29일 철원군 인민위원회 대표들과 공산당원 등이 남한 라디오 방송을 듣고 소련군 위수사령부에 가서 설명을 요구했다. 위기에 직면한 소련군은 당황했지만, 모스크바 결정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소련군은 정치장교를 북한의 각 지역에 파견해 설명을 시작했고, “신탁통치”가 오역됐다는 것을 발견하고 “후견”으로 바꾸었다. 1946년 1월 3일 소군정의 이그나티에프 대좌가 북한 신문 편집부장 회의에서 모스크바 결정의 의미를 설명하고 모스크바 회의록의 번역문을 전달했다. 이와 동시에 소련은 북한 주요 정치 지도자들 설득에 다소 성공했다. 1946년 1월 2일 공산당과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단체들이 모스크바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힘으로써 북한의 정치적 위기가 모면됐다. 그러나 일부 북한 정치 지도자들이 소련군 설명에 설득되지 않았고, 그중에 소련이 통일 한국의 지도자로 생각했던 조만식이 있었다. 소련 대표들이 그를 설득하려고 몇 번 방문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1946년 1월 5일 조만식을 비롯한 일부 정치가들을 해임했다. 소련군과 달리 미군은 모스크바 결정을 설명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불만을 느낀 소련군은 스탈린에게 미군의 행위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보냈다. 스탈린은 1월 23일 미국 대사를 만나 이 보고서를 낭독하면서 미군 합의 불이행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스탈린은 미국이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소련이 밝히겠다고 했으며, 소련 국가 매체인 타스사에 관련 보도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타스의 보도는 1월 25일 나왔으며 한국까지 전해졌다. 이번에는 미군이 당황할 차례였다. 미군정 사령관 하지는 서울신문을 통해 “타스 보도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26일 국무장관이 미군정 정치고문에게 보낸 전보에서 타스 보도의 내용이 ‘정확하다’고 인정하고, 하지가 이를 “이 문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맥아더 장군은 2월 2일 합동참모본부에 보낸 서한에서 국무부를 비판함으로써 미 군부와 국무부 간의 모순을 드러냈다. 이처럼 3월 20일 미소공동위원회가 불신과 모순이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작업을 개시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한반도의 분단은 고착화됐다. 물론 미소공동위원회 실패의 원인은 많고 책임은 양측에 있지만, 그 뿌리는 1946년 초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글로벌 On&Out] 73년 전의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과 분단

    [글로벌 On&Out] 73년 전의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과 분단

    한국의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국내외 연구자들은 수많은 사실(史實)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다양하지만 의견이 다소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이 것은 분단이 없었다면 한민족 역사상 가장 큰 비극 중에 하나인 한국전쟁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분단은 언제부터, 무엇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을까? 분단 고착화의 원인은 많고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73년전인 1945년12월 미·소·영 3개국의 외무장관이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합의한 “모스크바 결정”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번에는 그 채택과정과 발표 직후 한반도를 점령한 미·소 양군의 반응을 살펴보고자 한다.미·소·영 3개 승전국의 외무장관들의 모스크바 회의는 1945년 12월 16일에서 12월 26일까지 진행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같은 해 9월 런던에서 진행되었던 외상 회의에서 해결하지 못한 나치독일 위성국가 평화조약 채결, 일본 점령 등을 비롯한 많은 문제를 위주로 논의하였는데 그 주변 문제 중에 한국 문제도 있었다. 한국 문제는 회의 첫날에 제기되었다. 미국무장관 번스가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실시할 것에 대해서 이미 합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국측 제안을 다음날 제출하겠다고 하였다.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던 소련측은 이에 대하여 반대하지 않았다. 미국안은 역시 12월 17일에 제출되었다. 미국측은 한국 정부를 수립하기 전에 미·소 양군의 사령관들을 수반으로 하는 통일군정을 과도기관으로 설치하고 이를 통해 미·소·영·중 등 4개국가가 “유엔과 조선인민을 대표하여” 한국에 대한 집행, 입법 및 사법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한국인들의 역할은 고문과 관료에 한정되었다. 미국측은 그 기한을 5년으로 설정하였고 필요에 따라 5년 이하로 연장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미국측의 제안은 “先 5~10년간 신탁통치 後 정부수립”이었다. 소련측은 이 제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고 다음 의제로 넘어갔다.소련측의 대안(對案)은 12월 20일에 제출되었다. 소련은 한국인들로 구성된 ‘임시한국민주정부’를 수립한 후 최고 5년 기한으로4개국 ‘신탁통치’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였다. 소련안과 미국안의 가장 기본적인 차이점은 신탁통치의 메카니즘과 기간이었다. 소련은 ‘신탁통치’가 직접 통치보다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진보를 위한 지원 및 방조의 조치”라고 규정하였다. 그 기간은 최고 5년으로 설정되었으며 그 조치와 ‘임시민주정부’의 구성 제안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미·소 양군 대표들로 구성된 공동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미국측은 소련안을 검토한 후12월 21일 회의에서 사소한 표현 수정의 요청을 소련 외무인민위원장 몰로토프에게 서면으로 제출하였다. 몰로토프는 그 수정안을 검토하고 다음날인 12월 22일에 미국 요청에 동의하였다. 한국문제에 대한 토론이 따로 없었으며 미국측의 사소한 수정이 들어간 소련안은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삼상 회의가 끝나기도 전인 12월 25일, 동아일보가 “소련은 신탁통치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는 제목으로 회의 의사결정과정을 왜곡한 보도를 발표하였다. 한국에 전해진 이 소식은 하늘땅을 뒤흔들었다. 이 보도가 발표되자 친미적인 우파는 ‘즉시독립’을 주장하면서 ‘반탁운동’의 선봉에 나섰다.이 소식은 북한에도 전해졌으며 북한 사람들이 반탁시위를 시도하기 시작하였으며 12월 29일 철원군 인민위원회 대표들과 공산당원들을 비롯한 한국인들이 남한 라디오 방송을 듣고 그 지역 소련군 위수사령부에 가서 설명을 요구하였다. 예견치 못한 위기에 직면한 소련군은 당황했지만 모스크바 결정을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반탁운동이 북한에서 터진 직후 소련군은 정치장교를 북한의 각지역에 파견해서 강의, 설명회 등을 통해 모스크바 결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고 “신탁통치”가 “위임통치(mandate)”로 오역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이를 소련측 제안 의미에 가까운 “후견”으로 바꾸었다. 1946년 1월 3일, 소군정의 실무 담당자 이그나티에프 대좌가 평양에서 북한 신문의 편집부장 회의를 열어 모스크바 결정의 의미를 설명하고 모스크바 회의록의 한국어 번역문을 전달하였다.이와 동시, 소련군은 북한 주요 정치지도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하였으며 다소 성공하였다. 1946년 1월 2일, 북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주요 노동조합 등 사회단체들이 모스크바 결정을 지지한다는 태도를 밝힘으로써 고조화되어 가던 북한 정치적 위기가 모면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일부의 북한 정치 지도자들이 소련군 설명에 설득되지 못했으며 그 중에 소련측이 통일한국의 지도자로 생각했던 조만식이었다. 소련 대표들이 그를 설득하려고 몇 번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1946년 1월 5일 조만식을 비롯한 일부의 평남도인민정치위원회의 위원들을 해임시키고 그 자리에 모스크바 결정을 지지하는 정치가들을 임명하였다. 김일성이 북한 최고지도자가 되는 길이 이 때부터 열렸다는 평가도 있다.소련군과 달리, 미군은 모스크바 결정의 목적과 신탁통치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철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불만을 느낀 소련군 사령부는 스탈린에게 미군 행위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보냈다. 스탈린은 1946년 1월 23일 주소(駐蘇) 미국 대사 해리만을 만나서 이 보고서를 낭독하면서 러치 군정장관을 비롯한 미군이 왜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을 요구하였다. 해리만이 그 보고서에 등장한 사람들은 미국 정부의 대표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스탈린은 미국측이 미국도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소련이 이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다고 하였으며 소련 국가 매체인 타스社에 한국 문제에 대한 보도를 준비할 지시를 내렸다. 타스의 보도는 1946년 1월 25일 소련의 정부와 당의 주요 매체에 실렸으며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도 한국까지 전해졌다. 이 번에는 미군이 당황할 차례였다. 미군정 사령관 하지는 서울신문을 통해 “타스 보도는 근거없다”고 주장하였지만 1월 26일 번즈 국무장관이 미군정 정치고문 베닝호프에게 보낸 전보에서 타스 보도의 내용이 ‘기본적으로 정확하다’고 인정하고 하지장군이 첨부한 타스 보도의 영문 번역본을 “대중이나 관심을 가진 인사들에게 이 문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번스의 전보는 2월 9일까지 서울에서 받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은 다른 채널을 통해서 미군정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1946년 2월 2일 맥아더 장군이 합동참모본부에 보낸 서한에서 국무부를 비판하면서 “타스 성명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한 후, 한국인들은 미국이 또다시 ‘배신하여’ 팔아넘겼다고 느끼고 있는데, 이번에는 일본인들이 아닌 러시아인들에게 팔았다고 느끼고 있다면서 ”여기서 우리가 다루는 상대가 부유한 미국의 교육받은 한국인들이 아닌, … 교육받지 못한 동양인으로써 … 그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완강하고 광신적으로 집착하며 … 합리적으로 판단을 할 수 없는 이들이라는 점을 국무부“가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함으로써 미군부와 국무부 간의 모순을 들어냈다. 이처럼, 3월 20일에 미소공동위원회가 불신과 모순이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작업을 개시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고 한반도의 분단이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고착화되고 한민족 현대사상 최고 비극인 한국전쟁으로 이어졌다. 물론, 미소공동위원회 실패의 원인은 많고 책임은 합의를 이루지 못한 양측에 있지만, 그 모든 뿌리는 1946년초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글 사진: 바실리 V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 푸틴과 ‘브로맨스’ 깨지나 …트럼프 “G20서 정상회담 취소할 수도”

    푸틴과 ‘브로맨스’ 깨지나 …트럼프 “G20서 정상회담 취소할 수도”

    푸틴 “우크라이나의 명백한 정치적 도발 내년 3월 대선 앞두고 대통령이 기획한 것” 러, 연내 S400 포대 크림반도에 추가 배치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을 취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5일 러시아 해군이 크림반도 인근 케르치 해협에서 우크라이나 함정을 나포한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 만에 강경한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아마 나는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예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식의 공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공격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며 미·러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러시아의 도발에 대해 “잘 수습되기를 바란다”는 원론적 입장을 표명했다가 미온적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매우 강력히 지지하는 입장”이라면서 “다른 국가들도 더 많은 조치를 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인 오스트리아의 카린 크나이슬 외무장관은 “EU가 사실관계에 대한 설명과 양측의 추가 행동에 따라 제재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2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경제 포럼에 참석해 “이는 명백한 도발이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의) 현 정부와 대통령이 기획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5위”라면서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정권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야권을 비롯한 경쟁자들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방해물을 만들고자 뭔가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같은 날 러시아군은 올해 연말까지 최신 방공미사일 시스템 S400 1개 포대를 추가로 크림반도에 실전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혀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일부 승조원의 인터뷰 영상을 공개했다. 한 승조원은 “러시아 국경수비대는 우리가 러시아의 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러시아 해역에서 나가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해군은 러시아의 협박에 (인터뷰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터키 매체 “카슈끄지 살해 지시 ‘결정적 증거’ CIA가 갖고 있다”

    터키 매체 “카슈끄지 살해 지시 ‘결정적 증거’ CIA가 갖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를 지시한 배후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를 미국 정보당국이 갖고 있다고 터키 매체가 보도했다. 터키 최대 일간지 ‘휘리예트’의 친정부 필진 압둘 카디르 셀위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카슈그지 제거 지시’를 내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통화 녹음을 갖고 있다고 22일(현지시간) 주장했다. 셀위는 이 정보의 출처를 ‘복수의 익명 소식통’으로만 제시했다. 휘리예트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터키에 급파된 지나 해스펠 CIA 국장이 CIA가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 무함마드 왕세자와 동생 칼리드 빈 살만 주미 사우디 대사 간 전화 통화 등 왕세자의 통화를 감청한 내용을 갖고 있다고 터키 측에 암시했다는 것이다. CIA가 통화 감청으로 “카슈끄지를 빨리 침묵시키라”는 지시를 내리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목소리를 포착했다는 것이다. 셀위는 “CIA가 일반에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통신감청 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증거들이 더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국제 수사를 촉구했다. 한편 이날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요하네스 한 EU 확대담당 집행위원과 공동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사우디의 조처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비판하면서, 카슈끄지 살인 용의자들이 터키로 송환돼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차우쇼을루 장관은 “살인 현장인 사우디 총영사관은 빈 협약에 따른 외교 공간이지만, 동시에 터키 땅에 있으므로 용의자들은 터키에서도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모게리니 고위 대표는 “철저히 투명하고 신뢰할 만한 수사로 완결됐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 사우디의 수사로 진상이 완전히 규명되지는 않았다는 입장을 표했다. 그는 “살인의 책임자들, 진정한 책임자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진짜 책임자들은…여기까지만 얘기하겠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UAE, 아랍어 모르는 英대학원생에 간첩이라며 종신형 선고

    UAE, 아랍어 모르는 英대학원생에 간첩이라며 종신형 선고

    영국인 대학원생이 연구차 방문한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간첩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으면서 영국이 발칵 뒤집혔다. UAE 법원은 21일(현지시간) 매튜 헤지스(31)에 대해 종신형을 선고했다고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헤지스는 영국 더럼대학교에서 중동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헤지스의 가족은 이날 그가 변호사도 대동하지 못한 채 재판에 출정했으며, 심리에 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부당함을 호소했다. 헤지스는 지난 5월 연구차 UAE를 방문한 후 두바이 공항에서 출국하려다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6개월간 독방에 수감됐다가 지난달 보석으로 석방됐지만 이날 판결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UAE 정부는 헤지스가 UAE 사람들에게 민감한 사안에 대해 질문하고 민감한 정보를 수집했다는 이유로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달 하마드 알샴시 UAE 법무장관은 “헤지스는 해외국의 스파이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됐다”면서 “그가 UAE의 군대와 경제, 그리고 정치 안보를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헤지스가 연구를 위장해 자국에 들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헤지스의 부인은 그가 박사 학위 논문 주제로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시민과 군대의 관계에 대해 연구해 왔으며, 이번에도 관련 인터뷰를 위해 UAE를 방문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헤지스가 UAE 왕정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관련 자료를 수집했고, 정부 관계자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을 해 본때를 보여려 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헤지스의 부인은 “그가 감금됐을 때 UAE 당국이 아랍어로 된 서류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는데, 알고보니 죄를 자백하는 내용이었다”면서 “헤지스는 아랍어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헤지스의 더럼대 지도 교수인 존 윌리웜스도 BBC 인터뷰를 통해 “헤지스는 스파이가 아닌 무고한 학생이며 이번 재판은 어떤 적법성도 없다”면서 석방을 촉구했다. 영국 정부는 UAE의 판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깊은 충격과 실망을 받았다”며 “UAE가 이번 판결에 대해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헤지스의 판결에 대해 “깊은 실망과 우려”를 나타내며 “UAE 최고위 당국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라고 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남중국해 원유 공동탐사 합의한 중국과 필리핀

    남중국해 원유 공동탐사 합의한 중국과 필리핀

    중국과 필리핀 양국이 영유권 갈등을 벌여온 남중국해에서 에너지 공동 개발에 전격 합의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수행하고 필리핀을 방문중인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0일(현지시간) 테오도로 록신 필리핀 외무장관과 필리핀 대통령궁에서 남중국해 원유 및 가스 개발 협력을 내용으로 하는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고 신화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이와 관련, 중국해 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겪어온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협력 관계로 격상하기로 하는 등 밀착 행보를 보였다. 또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국가주석의 필리핀 방문은 13년 만이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필리핀이 남중국해에서 공통의 이해를 많이 갖고 있다”면서 “인프라 건설과 농업 분야 등에서 협력을 강화해야 하고 해양 협력을 계속 증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 주석은 남중국해 영유권에 관해선 “우호적인 대화를 통해 상호 입장 차이를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영유권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어온 필리핀과 관계를 강화한 것은 시진핑 지도부로서는 상당한 외교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는 평가이다. 다만 필리핀 내에서는 대중 경계감으로 대중 합의에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높다. 중국과 공동 개발에 나서려면 의회 승인이 필요한데 성사 여부에는 불투명한 부문이 많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유엔 해양법조약에 따른 상설중재재판소가 중국의 남중국해 주권 주장을 전면 부정하는 판정을 내렸지만 이를 보류하고 그 대신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등 대중 융화자세를 보여왔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필리핀은 일대일로의 중요한 파트너로 일대일로가 필리핀의 발전 전략과 맞물리도록 인프라, 전자통신, 농업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고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이 21일 보도했다. 시 주석은 “양국은 남중국해에서 광범위한 공동 이익이 있어 우호적인 협상을 통해 갈등을 관리하고 해상 실무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면서 “중국은 필리핀과 함께 중국·아세안 관계를 증진하길 원한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두테르테 대통령도 “필리핀은 상호 존중의 기초 아래 중국과 포괄적 전략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무역, 투자, 농업, 마약, 민생 개선, 인프라,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길 원한다”며 대규모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필리핀은 지역 국가들과 함께 남중국해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것에 동의하며 아세안과 중국의 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면서 “필리핀은 중국과 유엔 등 다자 틀 내에서 소통과 조율을 긴밀히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시진핑 “중국은 아무리 발전해도 개발도상국의 일원”

    시진핑 “중국은 아무리 발전해도 개발도상국의 일원”

    지난 15일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 해외순방에 나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은 개발도상국’임을 강조하며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달 30일로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무역전쟁 담판을 앞두고 최대한 우군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시 주석은 지난 16일 중국과 수교한 8개 태평양 섬나라 지도자들과 면담하면서 “중국과 태평양 섬나라는 모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고 모두 개발도상국”이라며 “중국은 아무리 발전해도 영원히 개도국의 일원이며 영원히 개도국과 함께 할 것”이라고 친밀감을 과시했다. 이어 ‘중국·프랑스 환경의 해’를 맞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도 축전을 교환하는 등 서방세계와의 접점도 확대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19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프랑스 환경의 해’ 행사를 기념해 서로 축전을 주고받았다. 시 주석은 축전에서 “중국은 프랑스와 공동 노력하고, 국제사회와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지구촌을 보호하겠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기후변화와 환경, 생태 다양성 보호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자 프랑스와 중국의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핵심 내용”이라고 화답했다. 미국은 지난해 자국에 불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이유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했다. 시 주석은 브루나이의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에서 열린 볼키아 국왕과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모욕적이라고 비판한 일대일로 사업 협력에 합의했다. 시 주석은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은 중국과 브루나이의 이익과 관련될 뿐만 아니라 양 국민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이에 볼키아 국왕은 “브루나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며 중국과 무역, 투자, 농업, 관광, 교육 등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18일 막 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1989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못했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 초안에 담긴 ‘불공정한 무역 관행’이란 문구를 중국이 반대해 공동성명이 불발됐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점잖고 세련되게 행동하는 중국 외교관들이 파푸아뉴기니 외무장관을 압박했다는 기사를 믿느냐?”고 반문하면서 “중국은 APEC 개최국인 파푸아뉴기니와 효율적으로 소통했으며 중국 외교관이 파푸아뉴기니 외무장관 사무실에 가서 문구 수정을 요구했다는 기사는 숨은 의도를 가진 자가 퍼뜨린 헛소문일 뿐”이라며 미국을 겨냥했다. 중국 외교부의 공식적인 반박에도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중국 지도부가 겪는 압박은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관영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측은 APEC 공동성명 불발 사실을 애써 신경쓰지 않은 채 G20 정상회의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미국과의 담판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미·러·北 빠진 채… 세계 51개국 ‘디지털 제네바협약’ 합의

    페북·구글·MS 등 PC기업 218곳 참여 공격용 프로그램 개발한 주요국은 외면 디지털 공간에서의 ‘헤이트스피치’(증오발언)와 해커 공격 등 이른바 ‘사이버 전쟁’에 따른 피해와 희생을 최소화하거나 차단하기 위한 국제적 이니셔티브가 등장할 전망이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악시오스 등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평화포럼에서 헤이트스피치와 해커 공격을 규제하기 위한 이니셔티브인 ‘사이버 공간의 신뢰와 안보를 위한 파리의 요구’(약칭 ‘파리 콜’·Paris Call)에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 51개국이 참여하기로 했다. 이는 전쟁 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인도적 국제조약인 ‘제네바협약’을 디지털 공간에 적용하는 것과 유사해 일종의 ‘디지털 제네바협약’으로 이해된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우리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전체와 주요국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218개 컴퓨터 관련 기업과 93개 시민단체도 참여한다. 하지만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 이스라엘 등 이미 공격용 사이버 프로그램을 개발·보유했거나 공격 배후로 의심받는 국가들이 불참해 ‘시작부터 김이 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악시오스는 “50개국 이상이 참여한 이 체제에 ‘파이브 아이즈’ 소속인 미국과 호주와 이란 등 이미 사이버 전쟁 프로그램을 개발한 나라들도 다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파이브 아이즈는 중국,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호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5개국의 정보당국이 결성한 통신정보공유 연합체이다. ‘파리 콜’ 참여국과 기업·시민단체들은 앞으로 국가가 배후에 있는 사이버 공격의 형태와 범위를 규정하고 공격을 가한 상대국에 대한 반격 범위, 다수의 국가 간 사이버 전쟁으로 확산될 경우 민간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할지 등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이란 제재 피할 유럽 결제기구, 佛이나 獨에 설립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를 회피할 유럽의 특수목적법인(SPV)이 프랑스나 독일에 설립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은 6일(현지시간) 복수의 유럽 소식통을 인용해 SPV 이사회와 주주 구성 등 설립 세부사항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공동서명한 유럽 3개국인 프랑스, 독일, 영국 가운데 영국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법률적 문제와 유로화 결제 거래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SPV 후보국에서 제외됐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과 관련해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럽 기업들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국 제재) 대상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이날 파이내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로화를 달러화와 동등한 강력한 통화로 만들고자 경제 주권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벌일 것”이라면서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도 불구하고 SPV 개설을 추진해 이란과의 교역을 유지하는 것도 그 일환”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브라이언 후크 미 국무부 대이란 특별대사는 “우리는 SPV 설립 요구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SPV를 이용할 대형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SPV는 일종의 물물교환 방식의 결제체계로 이란 기업이 유럽에 수출한 상품 대금을 화폐로 받는 대신 크레디트를 받고 유럽 기업으로부터 상품을 구매할 때 이 크레디트로 대금을 지급하는 개념이다. 한편 러시아와 터키는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을 성토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이란 제재 복원은 불법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라면서 “러시아는 핵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같은 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란 제재의 의도는 세계의 균형을 깨는 것으로 우리는 제국주의 세계에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美 원유제재 후폭풍… 이란, 실업·물가 폭등에 反美감정 증폭

    美 원유제재 후폭풍… 이란, 실업·물가 폭등에 反美감정 증폭

    리알화 가치 1년 만에 3분의1 수준 폭락 약값 80%↑… 기업 이탈로 실업자 급증 “트럼프, 가면 벗어라” 이란 국민들 분노 외무장관 “美, 제재 명단 부풀려 심리전” 볼턴 “추가 제재”… 재무부 “어기면 응징” 스위프트 “이란 일부 은행 서비스 중단” 미국이 5일(현지시간) 전면 복원한 대이란 제재 후폭풍이 이란 민중의 삶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는 이번 제재가 “이란 국민이 아니라 이란 정권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물가 폭등과 실업에 직면한 이란인들은 분노와 절망에 빠졌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이란 리알화 가치는 1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리알화 가치는 지난해 달러당 4만 500리알(약 1082원)이었지만, 현재 15만 리알이다. 물가는 급등했다. 특히 시민들에게 필요한 약값이 80%까지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테헤란대 대학원생 마흐디 아타르는 6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국민에게 잔인한 짓을 했다. 이란 국민의 편에 선 척하지 말라. 그 가면을 벗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앞서 미 재무부는 “이번 제재는 이란 정권을 겨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근무하던 유럽계 석유·가스 기업이 대이란 제재를 우려해 6개월 전 철수하면서 실업자가 된 악바르 삼소디니는 “우리와 같은 소시민에게 제재는 실업, 빈곤, 의약품 부족, 달러 가격 상승 등을 의미한다”면서 “지금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내 조국을 떠나 유럽으로 갈 것인가 뿐”이라고 털어놨다. 바히드 하타미는 은행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일하며 한 달에 130달러(약 14만 6200원)를 번다. 그는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라면서 “사람들은 절망하고 있다. 지하철 안에서 마주한 사람의 얼굴을 보면 내 기분까지 우울해진다”면서 “우리는 조국을 좋아하지만 분노를 표출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스카프 판매상인 모하마드 가세미는 “정부는 부자이고 해외에 석유를 팔지만 일반 시민에게는 신경을 안 쓴다”면서 “우리 마음의 상처를 조금도 치유하지 못하는 곳에 돈을 낭비한다”며 이란 정부가 큰 돈을 들여 시리아와 이라크 등 역내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불만을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트워터를 통해 “미국이 제재 명단을 최대한 부풀리는 방법으로 심리전을 전개하고 있다”면서 “심지어 6년 전 문을 닫은 은행과 올해 초 바다에 침몰한 유조선까지 제재 명단에 올렸다”고 절박한 심정을 드러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는 더욱 강화될 조짐이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5일 폭스비즈니스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에 대한 추가적인 미국의 제재가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현존하는 제재 또한 매우 엄격하게 시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등 8개국에 ‘한시적 예외’를 인정한 데 대해서는 “결코 영구적 면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란을 강하게 쥐어짜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재무부도 이날 “제재를 어기는 사례가 나오면 가혹한 벌칙을 부과해 가차 없이 응징하겠다”고 경고했다. 세계 각 나라 금융기관들의 데이터와 메시지를 전송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국제 은행 간 통신협회인 스위프트(SWIFT)는 이날 일부 이란은행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포토] ‘머리채 잡힌’ 메이 영국 총리

    [포토] ‘머리채 잡힌’ 메이 영국 총리

    5일(현지시간) 영국 남부 이스트 서식스 루이스의 ‘본파이어 나이트’ 행사에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머리를 들고 있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모형과 함께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수천 명의 사람이 저녁때까지 좁은 거리를 행진하는 이 연례행사는 1605년 영국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다 실패한 뒤 처형된 가이 포크스를 상징하는 인형이나 다른 모형을 태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국 루이스 AFP 연합뉴스
  • 우윤근 주러대사 “이달 김정은 러시아 방문 유력”

    우윤근 주러대사 “이달 김정은 러시아 방문 유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 중 러시아를 방문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고 우윤근(61) 러시아 주재 대사가 5일 밝혔다. 우 대사는 이날 모스크바 주재 한국 특파원단과 가진 취임 1주년(8일)을 앞둔 간담회에서 최근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주목받는 김 위원장의 방러 시기를 이같이 추정했다고 타스통신 등이 전했다. 우 대사는 “아직 북·러 양측이 김 위원장의 방러 시기와 장소 등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11월 방러가 가장 유력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러시아 측은 북한에 김 위원장이 올해 안에 러시아를 방문하기를 요청했지만, 북한 측은 러시아와 어떤 의제로 어떤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시기와 장소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 입장에선 김 위원장의 연내 한국 방문 일정도 예정돼 있어 러시아 방문과의 시기 조절 문제도 고민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5월 말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러시아 방문을 요청한 바 있다. 한편 우 대사는 6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인 푸틴 대통령의 방한을 내년 상반기 중 성사시키기 위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크렘린궁과 본격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년 봄부터 서비스·투자 분야를 중심으로 한 한·러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개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우윤근 주러 대사 “김정은 위원장 러시아 방문, 11월 유력”

    우윤근 주러 대사 “김정은 위원장 러시아 방문, 11월 유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월 중 러시아를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윤근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가 5일 밝혔다. 우윤근 대사는 취임 1주년(8일)을 앞두고 모스크바 주재 한국 특파원단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 시기와 관련해 이처럼 추정했다. 우 대사는 “아직 러-북 양측이 김 위원장의 방러 시기와 장소 등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다만 여러 가지 정황상 11월 방러가 가장 유력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측은 북한에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방러를 요청했고, 그렇게 성사되길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북한 측은 러시아와 어떤 의제로 어떤 합의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시기와 장소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 입장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한국 방문 일정도 예정돼 있어 러시아 방문 시기 조절 문제가 고민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앞서 지난 5월 말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9월 열렸던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하든지 아니면 별도로 러시아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김정은 위원장은 동방경제포럼은 물론 이후에도 러시아를 방문하지 않았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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