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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금창리 지하시설 核관련 증거 있다”

    ◎카트먼 美 특사 회견… 地名 첫 공식 공개 북한의 지하 핵의혹시설이 평북 대관군 금창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한·미 양국은 이 시설이 핵과 관련돼 있다는‘강력한 증거’를 이미 확보해놓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찰스 카트먼 미 국무부 한반도평화담당특사가 19일 오전 정부 세종로청사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카트먼 특사는 지난 16∼18일 방북(訪北),金桂寬 북한 외무성 부상(副相)과 ‘제1차 지하 핵의혹시설의 성격규명 회담’을 벌이고 18일 서울로 돌아왔으며 19일 오전 崔成泓 외교통상부 차관보와 1시간 동안 회담을 가졌다. 한·미 양국 정부는 지금까지 북한이 증거를 인멸할 것을 우려,북한 지하핵의혹시설의 소재지를 밝히기를 꺼려왔으나 카트먼 특사가 방북,정확한 위치를 지목한 만큼 이번에 이를 처음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지하 핵의혹시설 소재지로는 한나라당 金德龍 의원이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밝힌 금창리와 태천(영변 북서쪽),그리고 미국 언론이 보도한 하갑(영변 북동쪽)등 세 지역이 주목을 받아왔다.
  • 카트먼 “北 지하시설 사찰 진전없다”

    【워싱턴 교도 연합】 핵시설 의혹을 받고 있는 북한 영변 부근의 지하시설 사찰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평양에서 이틀동안 계속됐으나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17일(현지시간) 밝혔다. 찰스 카트먼 한반도 평화담당 특사가 이끄는 미국 대표단은 이날 북한의 金桂寬 외무성 부상(副相) 등과 문제의 지하시설 조사방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북한의 사찰 ‘대가’ 주장에 따라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미국측은 사찰요구를 거부했다고 이 관계자들은 말했다. 한편 카트먼특사는 18일 저녁 회담 직후 특별 군용기편으로 서울을 방문, 崔成泓 외교통상부 차관보에게 회담결과를 설명했다.
  • 북,지하시설 투명해야(사설)

    핵시설로 의심받고 있는 북한 영변 인근 지하시설의 사찰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입장이 점점 경직되고 있어 자칫 제네바 핵합의가 깨질까 우려된다. 북한은 지난 9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지하시설에 대한 미국측의 사찰은 중상모략이며 난폭한 내정간섭이라면서 이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강변까지 했다. 북한의 이같은 입장은 지난 8월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미국측의 지하시설 사찰요구에 대해 ‘민수용 시설이며 보여줄 수 있으나 핵시설이 아닐경우 북의 권위를 실추시킨 데 대한 보상을 요구’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지하시설 사찰에 대한 북한의 강경입장 표명은 16일부터 예정된 찰스 카트먼 미 핵대사의 방북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다. 북한의 사찰거부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11일 북한 지하시설에 대한 사찰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제네바 핵협정’을 파기할 수도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하고 나섰다. 영변 지하시설이 핵시설이라는 상당한 증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북한은 ‘제네바 핵협정’에 따라 당연히 사찰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불응할 경우 미국도 핵협정 준수의무를 포기할 권리가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핵파기는 물론 대북경제제재 완화,그리고 식량원조등도 무산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미국의 대북 강경 메시지의 의미도 카트먼특사의 방북협상에서 북한측의 사찰수용을 유도하는 가시적 성과를 얻기 위한 사전포석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북한 지하핵시설 의혹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공화당의 거센 반발로 대북정책의 수정이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 의회는 내년도 대북 중유지원예산 3,500만달러를 승인하면서 지하핵시설 의혹 해소및 미사일 수출금지 약속과 연계시켜두고 있다. 분명한 것은 북한 지하시설의 핵 관련여부는 반드시 확인돼야 한다는 점이다. 설령 북한의 주장대로 지하시설이 군사시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북·미 핵합의 정신에 따라 사찰은 수용해야 한다. 제네바 핵 합의는 북한 핵활동즉각 동결,관련시설 해체,일정시점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안전조치의무 전면이행 조건으로 북한에 경수로 2기와 중유를 공급하기로 한만큼 북한 지하시설의 사찰은 당연한 조치다. 북한은 북·미 핵합의 이후에도 IAEA의 정규 및 특별사찰을 8차례나 기피한 사실이 있는만큼 이번에는 사찰에 응해서 지하시설의 투명성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 사장 裵說의 재판:2(대한매일 秘史:2)

    ◎日측 “대한매일이 의병봉기 선동” 주장/張仁煥 의사 의거 찬양 등 항일사설 3건 증거로 내놓아/“한국사태 왜 日서 문제삼나”/英 변호인 추궁에 원고 우물쭈물/초만원 방청객들 야유 폭소 재판은 3일 동안 진행되었다. 이 재판에 한국인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민족지를 영국의 법정은 어떻게 판결할 것인가. 피고는 대한매일의 사장 배설이라는 영국인이지만 진정한 피고는 배설이 아니라 민족언론 대한매일신보였다. 배설이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대한매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법정은 만원을 이루었다. 방청석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복도와 재판정 바깥까지 모여서 재판을 지켜보았다. ○법정 복도·바깥서도 지켜봐 재판이 시작되자 일본 통감부와 변호인 사이에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근본 원인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다. 검사 윌킨슨이 고소인 미우라를 먼저 신문하기 시작했다. 통감부의 제2인자로 이등박문을 대리하여 법정에 나온 미우라(三浦彌五郞)는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게 된 원인은 대한매일의 선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매일이 소요와 무질서를 조장하고 한국 정부와 국민 사이에 적대감을 조장시키는 기사를 게재하였기 때문에 의병들이 궐기하여 전국의 치안이 불안하고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변호인 크로스는 의병의 봉기는 대한매일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는 점을 들어 재판의 성격을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부각시키려 했다. 변호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국은 독립국가다. 의병의 궐기는 대한제국 정부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려는 것이다. 미우라,당신은 일본 관리인가? 한국 관리인가? 일본 관리라면서 왜 한국에서 일어나는 소요를 문제삼아 일본 통감부의 대표로 나서서 영국인 배설을 고소하는가.” 미우라가 궁색한 논리로 대답을 얼버무리자 방성석에서는 야유하는 폭소가 터졌다. ○英·日 외교협상끝에 재판 열려 재판장은 변호사에게 정치상의 의견은 묻지 말고 사실에 관해서만 국한해서 물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영국과 일본 사이에밀고 당기는 길고도 끈질긴 외교협상 끝에 이루어진 재판이었으므로 재판장은 변호사가 재판을 정치적으로 끌고가는 것을 막으려했던 것이다. 통감부가 배설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증거물로 제시한 대한매일의 논설은 3건이었다. 미국인 외교고문 스티븐스 암살을 찬양한 1908년 4월17일자 기사를 비롯하여 「일백 매특날(메테르니히)이가 능히 이태리를 압제치 못함」(1908.4.29)과 「학계의 꽃」(5.16)이라는 논설이었다. 통감부의 입장에서는 대한매일의 모든 지면이 항일적인 내용으로 가득 찼지만 구체적인 증거물로 3건을 제시한 것이다. ○美 교포신문에 처음 실려 문제가 된 4월17일자 대한매일의 기사는 친일외교 고문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張仁煥)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을 다룬 내용이었다.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는 1904년 12월27일 한제국의 외교고문으로 임명되었던 미국인이다. 그는 1882년부터 일본 정부를 위해 일했고 일본 정부의 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을 정도로 친일적인 인물이었다. 일본은 그를 내세워 한국의 외교권을 장악하고 외교상의 중요 사항을 일본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스티븐스는 한국의 외교고문이라는 직책으로 한국 정부가 주는 고액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스티븐스의 암살 기사는 원래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발행인 鄭在寬) 3월25일자에 실린 것이었다. 공립신보는 교포들의 조직인 한인공동회(共同會)에서 발행하는 신문이었다. 공립신보는 ‘한국의 공적(公敵)’인 스티븐스를 쏘아 죽인 두 애국지사 장인환과 전명운을 찬양하면서 체포된 두 사람의 변호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매일이 장,전 양 의사의 의거를 찬양하는 기사를 싣자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고 사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주한 영국 공사 헨리 코번(Henry Cockburn)은 이때의 상황을 영국 외무성에 보고하면서 “한국인들은 집권세력도 그들에게 불명예스러운 발행물을 금지시키거나 저지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 기사를 읽고 통쾌감을 느끼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코번이 지적한 ‘집권세력’은 통감부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장인환과 전명운의 스티븐스 암살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끌 수 있는 사건이며,그들의 재판을 기회로 일본 침략하의 한국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가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는 것이다. 대한매일은 두 애국지사의 재판을 기회로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세계만국에 널리 알리자고 역설했다. “오호라 한국 독립은 곧 오늘이요,한국의 자유는 오늘이니 우리의 큰 뜻을 이룰 날이라”면서 “이 재판은 우리의 독립재판이니 우리가 이 재판에 이겨야 우리 2천만의 독립이 될 것”이라고 외쳤다.
  • 지하시설물 美 사찰 거부/北 “내정간섭” 주장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9일 미국이 북한내 지하시설물을 사찰하겠다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관영 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우리의 지하시설물들을 사찰하겠다는 것은 우리의 내부를 다 뒤져보겠다는 것으로 우리에 대한 중상모독이고 난폭한 내정간섭”이라면서 “우리는 우리의 자주권을 심히 침해하는 그 어떤 간섭행위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가택수색과 같은 강도적 요구는 단호히 척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 美,밀가루 30만t 對北 제공

    ◎카트먼 새달 訪北… 寧邊지하시설 의혹 규명 핵 관련 시설로 의심받는 북한 영변의 지하구조물의 성격규명을 위한 미·북 회담이 다음달 10∼15일 처음 열린다. 찰스 카트먼 미국 한반도평화담당특사는 이 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뒤 곧바로 서울에 들러 미·북 회담 내용을 설명한 뒤 대북정책에 관한 양국간 입장을 조율할 예정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26일 “카트먼 특사가 지하핵시설 성격규명 회담장소를 굳이 평양으로 택한 것은 이 사안을 바라보는 미국의 심각한 시각을 북한 고위층에 직접 전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그런 만큼 카트먼 특사가 金桂寬 외무성 부상보다 고위 인사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또 미·북 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밀가루 30만t의 대북(對北) 지원시기도 카트먼 특사의 방북 직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 韓國 “2개 분과위 만들자”/4자회담서 제의

    ◎북 “선의제 후분과위” 주장 【제네바 연합】 한국과 미국,중국 3국은 21일 제네바에서 개막된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4자회담 3차 본회담에서 회담의 실질적 진척을 위해 실무 분과위원회 구성을 제의했으나 북한측은 ‘선 의제확정 후 분과위구성’이라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한국 朴健雨 4자회담 전담대사,북한 金桂寬 외무성 부상,미국 찰스 카트먼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중국 첸융녠(錢永年) 전 인도네시아 대사가 각각 수석대표로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담 기조연설에서 한국측 朴대사는 그간 부정기적으로 열려왔던 4자회담 개최의 정례화,긴장완화·신뢰구축을 위한 2개 분과위 구성 등을 제안하고 북한이 주장해온 주한미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신축적 입장을 표명했다.
  • “韓·日 교류 촉진 환영”/日,한국의 문화개방 반응

    【도쿄 연합】 일본은 한국 정부가 일본 영화와 만화 등을 즉각 개방키로 한 것에 대해 金大中 대통령이 방일시 표명한 문화개방 약속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라며 환영했다. 일본 외무성의 누마다 사다아키(沼田貞昭)보도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金 대통령이 국빈방문시 표명한 문화개방 방침을 구체화하는 제1보로서 환영하며,앞으로의 시책에 관심갖고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본 언론들도 한국 정부가 발표한 일본 문화의 단계적 개방방침을 중요 뉴스로 전하며 양국 국민간의 상호이해를 촉진,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도했다.
  • 金 대통령 訪日­이모저모

    ◎“한·일 기업 제휴” 세일즈외교/국회연설 25분동안 12차례 박수 받아/고교은사 59년만에 만나 감회 젖기도/“나는 鬼首佛心 친한파의 소(牛)” 오부치 발언에 만찬장 웃음바다 【도쿄=梁承賢 黃性淇 특파원】 국빈 방일 이틀째인 金大中 대통령은 8일 오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와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가졌다.金대통령은 이어 일본 경제단체 주최 오찬,국회 연설,NHK방송 좌담,총리 주최만찬 참석 등 숨돌릴 틈 없을 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정상회담◁ ○…정장차림의 金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숙소인 영빈관으로 찾아온 오부치총리를 현관에서 반갑게 맞은 뒤 전날 저녁의 아키히토 일본 천황 주최 만찬 등 가벼운 주제로 환담.이어 배석자인 林東源 외교안보수석, 文俸柱 외교통상부 아·태국장 및 일본 외무성의 노보루 세이치로(登誠一郞) 외정심의실장,아나미 고레시게(阿南惟茂) 아주국장과 통역만 배석시킨 가운데 곧바로 단독회담에 들어갔다. 단독회담을 끝낸 두 지도자는 한국의 공식수행원 10명과 일본측 대표 10명이 대기중인 옆 회담장으로 자리를 옮겨 확대회담을 진행했다.1시간동안 계속된 확대회담을 마친 양국 정상은 서명식장으로 자리를 옮겨 한국어와 일어로 작성된 공동선언문에 공식 서명. ▷경제단체 연설◁ ○…金대통령은 이날 경제단체연합회 등 일본 주요 6개 경제단체가 공동주최한 오찬에 참석,‘세일즈 외교’에 나섰다.金대통령은 오찬연설에서 한국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일본정부와 재계가 보여준 ‘성의있는 협력’과 단기외채 연장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이와 함께 “지금이야 말로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해야 할 최적기”라며 대한(對韓) 투자를 권고했다. ▷국회 연설◁ ○…金대통령은 오후 일본 참의원 본회의장에서 참의원과 중의원 의원 6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설,25분동안 12차례의 박수를 받았다. 金대통령은 연설에서 “25년전 도쿄납치사건 등으로 생명을 잃을 뻔했던 내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여러분 앞에 서서 연설을 하게 됐다”고 감회를 피력,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연설은 일본 공영 TV방송인 NHK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오부치 총리 주최 만찬◁ ○…金대통령은 이날 저녁 부인 李姬鎬 여사와 함께 일본 총리관저 연회장에서 열린 오부치총리 주최 만찬에 참석했다. 오부치 총리는 金대통령이 써준 ‘敬天愛人’ 휘호를 액자에 담아 주빈석 뒤편에 놓아뒀다가 金대통령이 입장하자 이를 소개.그는 만찬사에서 “한국의 한 신문이 본인을 ‘시골 교장선생님 같은 인물’이라고 평했다”고 전제,“일본 언론에선 본인을 소(牛)로 비유한 적이 있으나 이 소는 귀수불심(鬼首佛心)을 가진 소이자 친한파의 소”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일었다.오부치 총리는 또 ‘행동하는 양심’‘각하가 걸어온 길은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역사 그 자체’‘국민의 정부 지도자로 오른 것은 역사적 필연’ 등의 표현을 써가며 金대통령을 극찬했다. 오부치 총리는 특히 장래의 한·일관계를 李여사의 애창곡인 ‘사랑으로’의 마지막 가사,즉 “‘영원히 변치 않는 우리들의 사랑으로’와 같다”고 말하는 등 각별한 친근감을 표시. ▷목포상고 은사 만남◁ ○…金대통령은 이날 오후 영빈관 아사히노마에서 과거 목포상고 재학시절 은사였던 무쿠모토 이사부로(량본이삼랑)옹을 59년만에 재회했다.金대통령은 접견실 입구에 서서 옛 은사를 맞았는데,백발이 성성한 80세 노인이 된 은사의 모습을 보고 잠시 감회에 젖기도. 무쿠모토옹은 “건강이 나빠 실수를 할지 몰라 편지를 써왔다“며 품에서 편지를 꺼내 “예의바르고 최고 성적을 보인 옛 제자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돼 국빈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해 생애의 영광이자 기쁨”이라고 일본어로 읽어 내려갔다.그는 또 “지난 선거때 한국 국민들이 난국을 돌파할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金대통령이 한국의 난국을 돌파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NHK 좌담◁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 일본 NHK방송 좌담회에 참석한 金대통령은 오후 9시30분부터 30분간 전국에 녹화중계된 방송에서 일본이 한국을 명시,과거를 사죄한데 대해 높이 평가했다. 金대통령은 한·일관계를 “두 나라는 워낙 가까운 나라여서 어디로 이사를 갈 처지도 아니다”고 조크를 섞어 표현하는 등 담담하고도 자신감있게 대응.특히 일황 방한문제에 대해서도 “국교정상화 30년이 넘었지만 국가원수가 방한하지 못한 것은 부자연스럽다”면서 2002년 이전 조기방한이 실현됐으면 한다는 전향적인 뜻을 피력. ▷영부인 일정◁ ○…대통령부인 李姬鎬 여사도 별도의 바쁜 일정으로 金대통령의 정상외교를 측면 지원했다. 李여사는 오전 뉴오타니호텔에서 열린 일본기독교단체 주최 기도회에 참석,‘평화와 정의의 메시지’라는 주제로 연설.이 자리에서 李여사는 “한·일 두 나라 사이에 평화와 정의의 다리를 건설하는 데 기독교인들이 앞장서 달라”고 호소했다. 李여사는 이어 영빈관 일본식 별관에서 오부치 일본 총리 부인 지즈코(小淵千鶴子) 여사가 주최한 오찬에 참석,일본측의 환대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양국 국민이 각계 교류를 통해 상호이해와 신뢰를 쌓아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 金 대통령 訪日­이모저모

    ◎DJ “월드컵 우호증진 계기”/일황 “한국인 일 문화에 큰 공헌”/동포 100여명 공식환영식 참석 【도쿄=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은 7일 낮 부인 李姬鎬 여사 및 공식수행원들과 함께 전용기편으로 하네다 국제공항에 도착,3박4일간의 일본 국빈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국빈만찬◁ ○…金대통령은 일본 국빈방문 첫날인 7일 저녁 아키히토(明仁) 일황 내외가 주최한 국빈만찬에 참석,양국의 동반자관계 형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일본 궁성 호메이덴(豊明殿)에서 열린 만찬에서 “이웃나라를 대하는 데는 예가 기본이며,그런 다음에 그 마음을 다해야 한다”며 15세기 중엽 조신통신사 일원으로 일본을 찾았던 申叔舟의 ‘해동제국기’의 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金대통령은 “2002년 월드컵대회의 한·일 공동주최가 양국의 동반자관계를 세계에 과시하고 이러한 양국의 우의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축하해 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키히토 일황도 ‘日本書紀’에 기록된 백제의 대일 문화전수 사례를 여러가지로 들면서 “귀국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문화 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화답했다. 프랑스 요리를 주메뉴로 한 만찬행사는 예정시간을 35분 넘겨 3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궁성 방문◁ ○…이에 앞서 金대통령 내외는 아키히토 일황의 궁성을 방문, 20여분간 건강,취미 등 비정치적인 화제로 환담.金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옥컵과 옥목걸이를 일황에게 선물.이에 아키히토 일황 내외는 金대통령 내외에게 아리타(有田燒)도자기와 향로 도자기로 답례. ▷환영식◁ ○…金대통령 일행은 간단한 공항 도착행사에 이어 숙소인 도쿄시내 영빈관 앞뜰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했다. 金대통령 내외가 일본 외무성 의전장인 가와무라 다케가즈(河村武和) 수석영접위원의 안내로 영빈관 거실에서 현관 홀에 입장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아키히토 일황 내외도 현관에 도착,첫 상면인사를 하고 기념촬영을 했다.이어 대기중인 나루히토 황태자 내외를 비롯,황족 대표 및 오부치 총리 내외와 인사를 나눴다.환영식에는 도쿄 한국학교 학생과 교포 등도 100여명참석, 대통령 내외를 환영했다. ▷특파원간담회◁ ○…金대통령은 하오 주일 한국특파원단과 간담회에서 전후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측 기여도를 평가한뒤 “가깝고도 먼 나라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방일 성과에 기대감을 표시.
  • 日帝 만행 조사 의원聯 창립/日 여야 96명 가입

    【도쿄=黃性淇 특파원】 태평양 전쟁중 일제가 자행한 만행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한 일본 초당파 모임인 ‘항구 평화를 위한 진상규명법 제정을 목적으로 하는 의원연맹’의 설립 총회가 30일 국회에서 열렸다. 초당파 의원연맹이 추진중인 ‘진상규명법’은 ▲국회도서관에 ‘항구 평화조사국’을 신설하고 ▲구 내무성과 외무성,지방자치단체 등에 묻혀 있는 전시 자료를 발굴,조사하며 ▲조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연맹에는 여야에서 96명이 가입했는데,총회에는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사장 대리,사민당의 도이 다카코 당수,사키가케의 다케무라 마사요시(武村正義) 대표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 건군 50년을 기린다(사설)

    오늘은 국군의 날이다. 예년처럼 단순한 국군의 날이 아니라 건군 50주년과 함께하는 날이라는 점에서 감회가 남다르다. 우리 군은 지금까지 대남 적화야욕의 기본노선에 변함이 없는 북한집단을 상대로 일초 일각을 다투며 국가안보의 최일선에서,그리고 국익수호의 최후 보루로서 사명과 역할을 다해왔다. 건군 50주년의 슬로건대로 ‘조국과 함께,국민과 함께’해온 우리 군에 대해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건군 50년을 돌아볼 때 우리 군은 무엇보다 이 나라 민주화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큰 지렛대 역할을 했다. 군이 튼튼하게 나라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다원화사회라는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냈으며,5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민주주의의 역사적 정치이벤트를 창출하면서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우리 군에게는 영광의 길이 있었던 반면 오욕의 역사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부끄러운 역사를 들추기에는 갈 길이 멀다. 우리 군의 가장 큰 현안인 21세기를 지향하는 개혁과 장비 현대화,조직의 효율적 운영,정신전력(精神戰力) 강화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98국방백서’를 통해서도 드러났지만 북한은 가공할만한 무기와 병력을 보유하고,이들의 대부분을 전방기지에 전진 배치하고 있다. 지난 28일에는 북한 외무성 부상 최수헌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2의 한국전쟁 발발 위험이 임박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북한의 무력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때, 우리는 하루속히 첨단 과학장비를 갖추어 철저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를 지향하는 미래 강군으로서의 선결요건이다. 햇볕정책이나 금강산 관광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강군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추진하고 있는 개혁에 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군의 특성상 보수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동안 개선하지 못한 낡은 제도와 관행을 과감히 뜯어고치고,장병의 정신전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야 할 것이다. 군대는 조국의 방패로서만이 아니라 그동안 사회나 학교가 젊은이들에게 미치지 못했던 교육을 맡는 또 다른 교육기관 몫까지 담당하고 있다는 것도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방과 경제는 나라의 두 축이다. 경제가 살얼음판을 딛고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어렵사리 넘어가고 있는 이때,군 역시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경제군대로서의 몫을 다해야 한다. 마른 걸레를 또 쥐어짜듯 주변에 절약요인이 없나를 살펴보면서 창군 이래 처음으로 국방예산 삭감이라는 나라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아울러 시대도 바뀐만큼 국민의 정부와 함께 민주군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군 내부에 권위적이며 비효율적인 행정체계나 제도가 있다면 과감히 고쳐나가기를 거듭 바란다.
  • 4자회담 20일 제네바서/오늘 실무회담서 확정

    ◎전담대사 朴健雨씨 내정 4자회담 제3차 본회담이 오는 10월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릴 것이 확실시된다. 정부는 22일 지금까지 차관보가 맡았던 4자회담 대표를 차관급으로 격상, 주미대사와 외무차관을 지낸 朴健雨 본부대사를 4자회담 전담대사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朴대사 내정으로 당사국들이 모두 4자회담 대표를 전담대사 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앞으로 회담 진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는 남북한과 미국,중국은 4자회담 제3차 본회담을 위한 ‘참사관급 실무회담’을 빠르면 23일 뉴욕에서 열어 제3차 본회담의 시기와 의제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4자회담 개최 장소인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회의장(CICG) 유럽자유무역지대(EFTA)사무국의 일정상 다음달 20일 개최가 유력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중국은 차관보급이었던 4자회담 대표를 차관급인 치엔 용 니엔(錢永年)으로 교체,전담대사로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도 이에 앞서 지난 7월 카트먼 국무부 차관보를전담대사로 임명했고 북한도 金桂寬 외무성 부부장에게 사실상 전담대사 임무를 부여한 상태다.
  • 외교통상부 공식 약칭/외교부로 확정

    ‘외통부’가 아니라 ‘외교부’로 불러 주세요. 외교통상부가 21일 부(部)의 공식 약칭을 ‘외교부’로 확정했다. 외교통상부는 최근 북한이 외교부의 명칭을 외무성으로 바꾼 것을 확인한 뒤 외교통상부의 약칭을 ‘외교부’로 결정했다. 외교통상부는 지난 2월 출범직후 고민을 거듭한 끝에 아예 약칭을 쓰지 않기로 했었다. ‘외통부’는 외통수의 어감을 갖고 있고,‘외교부’는 북한 외교부와 혼동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통상부라는 이름을 그대로 써달라는 요청을 해왔었다.
  • 亞 경제위기·위안貨 관련/中·日 오늘 첫 고위급 회담

    【베이징 AFP AP 연합】 중국과 일본이 아시아 경제위기와 중국 위안(元)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14일 사상 처음으로 고위급 회담을 갖는다. 하라구치 고이치 일본 외무성 차관과 쑨전위(孫振宇) 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부 부부장은 이날 베이징(北京)에서 일본의 경제정책과 위안화 약세 문제를 논의한다.
  • 親日의 군상:6/‘친일파 1호’ 金麟昇(정직한 역사 되찾기)

    ◎日帝 침략선 타고와 모국 침탈 앞장/1875년 ‘운양호사건’ 전후 日에 침략정보 제공/日 통역으로 강화도조약 체결에 결정적 역할/日本식 두발·복장에 ‘皇國 절대 충성” 다짐/한때는 선비정신 소유자/日 속셈 모르고 매국 행위/背族 대가는 日의 멸시뿐 1876년 2월4일 강화도 초지진(草芝鎭) 앞바다에 일본 군함 한 척이 출현했다.1월6일 일본 시나가와만(品川灣)을 출발,부산을 거쳐 온 이 배에는 일본 정부의 특명전권변리공사(特命全權辨理公使)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일행이 타고 있었다.구로다 일행은 6개월 전에 발생한 ‘운양호(雲揚號)사건’을 빌미로 조선과 강제로 수교조약을 맺으러 오는 길이었다. 구로다를 포함해 무려 800여 명에 달하는 일행 가운데 일본인 복장을 한 조선인 한 명이 끼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金麟昇(생몰연대 미상). 그는‘운양호사건’ 이전부터 일본측과 내통하면서 일본을 도와오다가 이제 그 마무리 작업인 조약(강화도조약)체결을 돕기 위해 동행한 통역이었다. 임진왜란 때도 일본에 협력한 ‘친일파’는 있었지만근대적 의미에서 金麟昇보다 앞서는 친일파는 없다.친일파 연구가 고(故) 林鍾國씨 역시 그를 ‘친일파 1호’로 꼽았다.조선조 말기 양반계층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친일의 길을 걷게되는 과정은 이후에 등장하는 친일파들의 행태와 유사한 점이 없지 않다.그의 친일행적 연구는 일제하 친일파 연구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金麟昇의 친일행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그는 해외에서 일제의 외국인 고문(顧問)으로 고용돼 비밀리에 활동한 까닭에 국내에는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林鍾國씨 조차도 그의 글에서 ‘김인승’이라는 이름 석자만을 기록했을 뿐이다.몇몇 역사학자 역시 논문에서 그를 언급한 바는 있으나 친일활동의 전모를 밝히지는 못했다. 金麟昇의 친일행적은 지난 96년 2월 성신여대 具良根 교수(당시 도쿄대 외국인 연구원)가 발표한 한 논문을 통해서 그 전모가 드러났다.具교수는 일본 외무성 사료관에서 입수한 3건의 자료를 토대로 ‘일본외무성 7등출사(七等出仕·일본의 구식 관직명) 세와키 히사토(瀨脇壽人)와 외국인고문(顧問)金麟昇’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친일파의 ‘선구자’격인 金麟昇의 친일행적을 추적해 보자. 金麟昇은 함경북도 경흥(慶興)태생으로 본관은 김해(金海).7대조 때 경흥으로 이사한 뒤로 그의 집안은 토반(土班,지방의 양반)으로 전락하였다.그는 16세 때부터 경흥부(慶興府)에 근무하면서 상당한 직책을 맡기도 했다.그러나 이 지역에 대홍수와 기근이 몰아치던 1869년 그는 모종의 일로 이 지역 수령과의 의견충돌 끝에 관직을 그만두고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땅 니콜리스크(당시 한국명 吹風,블라디보스토크 북방 50리)로 탈주하였다. 이곳에는 그 뒤 식량을 찾아 월경(越境)한 조선인 유랑민이 대거 몰려들었는데 한학실력이 출중했던 그는 여기서 학교를 열고 생도들을 가르쳤다.그러던중 여기서 다케후지 헤이가쿠(武藤平學)라는 한 일본인과 사귀게 된다.다케후지는 원래 양학(洋學,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하려고 집을 나왔다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흘러오게 된 사람이었다.바로 이 다케후지가 나중에 그를 친일의 길로 이끈 첫 안내자가 된다.한편 이무렵 러시아가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남진(南進)정책을 강행하자 1875년(明治 8년) 4월 일본정부는 외무성 7등출사 세와키 히사토(1822∼78)를 블라디보스토크와 포셋 지방에 파견,러시아와 교섭을 갖게 하였다. 세와키는 공식적으로는 일본 외무성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키 위해 파견한 외교관이었지만 사실상 정탐꾼이었다. 일본 외무성이 그에게 준 ‘출장명령서’(1875년 4월4일)의 임무 부분은 ‘탐색’,‘정탐’인데 이 중의 절반은 의외로 조선에 대한 것이었다.명령서에는 구체적으로 ‘조선인을 고용하여 조선땅으로 들어가서 토지·풍속 등을 탐색하고 올 것’ 등이 명기돼 있다.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세와키는 조선에 들어가지 못했다.대안을 모색하고 있던 세와키는 여기서 일본인 다케후지를 만나 문제의 金麟昇을 소개받는다.金麟昇의 학식과 경험을 높이 산 세와키는 귀국길에 그를 일본으로 데리고 갔다. 이무렵 일제는 다수의 외국인 고문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1874∼75년에는 그수가 약 2,000명에 달했다.운양호사건(1875년 9월20일),강화도조약(1876년)이 체결되기 바로 직전의 일이다.당시 일제는 조선에 ‘황국(皇國)의 군현(郡縣)’을 설치하여 이를 근거로 대륙을 침공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외국인 고문 채용은 이를 대비하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그리고 그 첫 군사행동이 바로 ‘운양호사건’이었다. 1875년 7월 세와키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金麟昇은 운양호사건 발생직전 1차로 3개월간(8월1일∼10월30일) 일본정부와 외국인 고문 고용계약(日給 1원)을 맺었다.당시 일본 외무성이 그를 고용한 목적은 ▲만주지방 지도작성 ▲북방사정 탐색 ▲조선 침략용 지도작성 ▲기타 필요한 사항에 대한 자문 등.이중에서 金麟昇이 일본측에 크게 도움을 준 부분은 조선에 관한 사항이었다. 1875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조선 침략용으로 작성한 ‘조선전도(朝鮮全圖)’는 金麟昇의 자문을 받아 작성된 것이다.지도 하단부에 적힌 ‘조선 함경도인 모(某)씨에게 친히 그 지리를 자문받고…’의 모씨는 바로 金麟昇을 지칭한 것이다.지도 외에도 당시 조선사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계림사략(鷄林事略)’ 역시 그의 자문을 받아 출간됐다. 한편 1차 계약기간중인 10월부터 金麟昇의 급료가 월급제로 바뀌면서 금액수 두 배로 늘어났다.당시 일본 외무경(현 외상) 데라시마(寺島宗則)는 태정 대신(太政大臣,총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어는 물론 한학,시문(詩文)이 능통하여 아주 유용한 인물로…한지(韓地,조선)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라고 그를 평가하였다.일제는 강화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그를 적절히 활용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실지로 그는 강화도조약 체결(1876년 2월27일) 이후까지 거의 1년동안 도쿄에 머물면서 조선침략을 위한 갖가지 정보와 조언을 일본측에 제공했는데 결정적인 공헌은 역시 강화도조약 체결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1876년초 강화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일본정부의 대표 구로다 특명전권공사가 그에게 동행을 요구하자 그는 ‘이번 수행에서도 만약 머리를 깎지않고 의복을 바꾸지 않으면 이는 제가 조선인을 자처하는 일이며 일본인의 입장에 처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황국(皇國,일본)의 신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황송해 했다.심지어 ‘끓는 물,타는 불 속이라도 어찌 고사하겠는가’라며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였다. 1876년 2월4일 강화도에 도착한 구로다 일행은 1주일만인 2월10일 강화부(江華府)에 상륙하여 다음날 11일부터 담판에 들어갔다.조약이 체결되기까지는 보름 이상이 걸렸다.이 기간동안 그는 강화도 앞바다에 정박한 일본군함에 머무르면서 공문의 한문번역과 수정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그는 조약체결 과정에서 수시로 일본측에 조언을 해주었는데 구로다에게는 조선관리설득방책 18개항을 서면으로 제출하기도 했다.여기에는 전신기(電信機)사용을 권장하는 내용에서부터 ‘여러 말 할 필요없다.청국(淸國,청나라)은 그처럼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데도 먼저 일본에 강화조약을 청하여 맺었다.두루살펴 깊이 생각하라’(18항)는 등 공갈·협박성 문귀도 들어 있다. ‘직량(直亮)’한 성격에 동포애도 강한,조선의 전통적 선비정신의 소유자였던 金麟昇.당시 그는 일본의 속셈을 헤아리지 못한 채 ‘일본과 조선은상맹상통(相盟相通)의 나라’로 보고 일본의 강화도조약 체결 추진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조약 체결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얼마후 러시아로 되돌아갔는데 도쿄에서 남긴 한 편지에서 ‘거리에서 듣기 불편한 말들이 들리고 길을 걸으면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적었다.‘친일파 1호’가 배족(背族)의 대가로 일본인들로부터 받은 보상은 멸시와 증오였다.그 이후 대개의 친일파들이 그러했듯이. ◎강화도 조약/日,운양호사건 고의 유발뒤 강제 체결/총 12조… 韓日간 맺어진 첫 불평등조약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은 병자년에 체결됐다고 해서 일명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으로도 불리는데 정식명칭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조선과의 국교를 줄기차게 추진해온 일본은 조선정부의 쇄국정책으로 교섭이 난항에 빠지자 1875년 9월 20일 해안측량을 빙자하여 ‘운양호사건’을 고의로 유발했다.이를 빌미로 일본은 군함과 함께 구로다를 전권대사로 파견,1876년 2월 27일 조선측 대표 판중추부사 申櫶을 상대로 수교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총 12조로 구성된 이 조약은 ▲부산 이외에 원산·인천 추가 개항 ▲조선연해 측량권 허용 ▲개항장 내 조계(租界)설정·일본인의 치외법권 인정 등 일본측에 유리한 내용들 뿐이다.이 조약은 국제법적 토대 위에서 양국간에 이뤄진 최초의 외교행위이자 최초의 불평등 조약이기도 하다.
  • 영변 비밀 지하시설물 北,美 협상카드로 낼듯/외무성“해결 용의”

    북한 당국이 영변 인근에 새로 건설중인 지하 시설에 대해 본격적으로 입을 열었다.미국측이 핵시설로 의심하는 문제의 비밀 지하구조물에 대해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0일 이 시설이 ‘민수용(民需用)’이라고 주장했다. 조선 중앙통신과의 회견 형식을 통해서였다. 북측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미국측과 협상을 통한 해결 용의도 내비쳤다. 특히 북측 주장이 사실로 나타날 경우 명예훼손에 대한 미국측의 보상까지 요구했다. 우리측 당국자들은 북측이 문제의 지하 시설을 ‘카드’로 삼기 시작했다고 본다.영변의 기존 핵시설 동결과 경수로발전소 지원을 맞바꾸는 ‘개가’를 올린 데 이은 또 하나의 카드라는 것이다. 북측이 대규모 노동력을 투입해 건설중인 이 시설은 완공시까지 6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아직 건설 초기 단계인 만큼 최종 ‘그림’이 무엇인지는 북한만이 알고 있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북측이 새 지하 시설을 ‘꽃놀이패’로 여기고 있다고 본다.초기에 외부 지원을 얻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하면서 다른 목적으로 전용할 여지도 남겨둔다는 점에서다.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미국측에 사찰수용을 시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 北 “4자회담 재개” 공식 발표

    북한은 지난 5일까지 개최됐던 美·北고위급회담에서 4자회담 3차 본회담과 3차 미사일협상 재개에 합의했다고 10일 발표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쌍방은 4자회담과 미사일 협상 재개 등 쌍무 현안문제들에 대해 일괄타결 형식으로 합의를 보았다”고 밝힌 것으로 북한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日,외환법 개정 추진/對北 송금 못하도록

    【도쿄=黃性淇 특파원】 일본 집권 자민당의 외교조사회와 금융문제조사회는 7일 합동회의를 열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제재조치로 대(對)북한 송금 중지가 가능하도록 외환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일본 현행법에서는 해외송금(자금동결) 관련 제재조치의 전제로서 국제적인 협조를 필요로 하고 있어 북한에 대한 일본 독자의 제재발동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라고 회의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합동회의는 “일본의 안전보장을 위협받을 경우 발동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합동회의는 이밖에 외무성,대장성,방위청 등 담당 국장으로부터 미사일 문제에 대한 보고를 듣고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인공위성에 대해 “현시점에서 증명되지 않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어디까지나 미사일이 일본의 상공을 날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인식을 확인했다.
  • “로켓추진체 궤도로 보면 위성 아닐것”/日 반응

    【도쿄=黃性淇 특파원】 일본은 4일 북한이 지난 31일 발사한 것이 미사일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고 발표한 데 대해 허를 찔린 듯한 당혹감과 함께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이날 “위성이 발사됐다면 일본의 기술력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했다.외무성의 고위 관계자도 “이는 예상했던 바와 다르며 정말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방위청 소식통은 “지난번 탄도 미사일 발사가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이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다”면서 “만일 위성 발사였다면 미국이 몰랐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공안 관계 소식통은 “일본 전문가들의 의견은 나뉘고 있다”면서 “회의적인 입장의 전문가들은 로켓 추진체의 궤도로 미루어 볼 때 위성이 아닐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학기술청은 북한의 기술 수준으로 볼 때 위성 발사는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북한이 주장하는 시간대에 새 위성이 궤도에 진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 정부는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외무성과 방위청을 중심으로 미국과 긴밀히 연락을 취하면서 위성 발사 주장의 사실 여부 확인을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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