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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협정 후에도 개인청구권 유효”

    │도쿄 이종락특파원│일본이 지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하 한일협정) 체결 당시부터 ‘협정 체결 후에도 개인 청구권은 유효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일본 외무성의 내부 문서에서 14일 드러났다. 지난 2008년 일부 공개된 외무성의 ‘평화조약에서 국민의 재산 및 청구권 포기의 법률적 의미’(1965년 4월6일자)와 ‘일한 청구권조약과 재한(在韓) 사유재산 등에 관한 국내 보상 문제’(1965년 9월1일자) 등 내부문서 3건에 따르면 “한일청구권협정 2조의 의미는 국제법상 국가에 인정된 고유한 권리인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것이고, 국민의 재산(개인청구권)으로 국가의 채무를 충당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개인이 상대국 국내법상의 청구권을 갖는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일본 측이 협정체결 당시부터 위안부나 징용 피해자 등 개인의 배상청구를 위한 소송 권리마저 소멸된 것이 아니라고 본 셈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도 포기됐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개인 소송을 통해 승소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jrlee@seoul.co.kr
  • [사설] 日 한일협정 관련문서 전면 공개하라

    일본 정부가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한일협정) 이후에도 강제 징용자들의 개인 청구권은 유효하다는 입장을 협정 당시 정리했음을 보여주는 일본 외무성 내부자료가 확인됐다. 최근 일본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 제출된 ‘평화조약에서의 국민재산 및 청구권 포기의 법률적 의미(1965년 4월)’와 ‘일한 청구권조약과 재한 사유재산 등에 관한 국내 보상문제(1965년 9월)’ 등 3건을 통해서다. 이 문건들은 모두 한일청구권협정이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것이지, 개인청구권으로 국가의 채무를 충당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한일협정으로 위안부나 조선인 징용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이 모두 포기됐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일본 정부가 분명하게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이번 문건들은 일본이 한일협정 당시부터 나중에 불거질 강제징용자들의 소송과 배상문제에 미리 대비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법원은 소송이 불거질 때마다 ‘청구권 유효’와 ‘소멸시효 종결’의 모호한 입장과 판결을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2007년 최고재판소(대법원)의 ‘재판상 청구권소멸’ 판시 이후 희생자들이 자발적으로 알아서 보상받으라는 정부 입장과 법원 판결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내 진보적 정치인과 학자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왔던 한일협정의 효력과 배상문제에 일본 정부가 이제는 근본적인 입장을 정해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우리는 본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05년 한일협정에 관한 외교문서 전량을 공개했다. 협정을 둘러싸고 지속됐던 잡음과 의혹을 씻기 위한 차원에서다. 과거사 청산을 외쳐온 하토야마 정권이 진정한 의지를 보이려면 우선 음지에 묻히고 가렸던 진실부터 양지로 끌어내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번 자료도 사실상 우리 정부의 협정문서 공개 이후 일본 시민단체가 나선 소송으로 2008년 공개된 자료 중 하나라고 한다. 이것 말고도 진실을 보여주는 회담 문건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최근 과거정권의 ‘미·일 핵반입 허용’ 밀약까지 공개하고 나선 하토야마 정권이다. 형평성 차원에서도 한일협정 문서를 전면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
  • [사설] 일본 강제징용 한국인이 고작 245명?

    일본 정부가 1959년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재일(在日) 조선인 61만명 중 강제징용자는 단 245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단다. 외무성이 자민당 중의원에 제출한 자료를 인용한 산케이신문의 그제 보도 내용이다. 터무니없는 조선인 강제징용자 수도 그렇거니와 징용자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일본에 잔류했다는 억지가 황당하다. 태평양전쟁을 전후해 한반도에서 강제징집된 수만 조선인 희생자의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는 상황이다.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 앞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궁색한 변명에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 일본 외무성의 입장은 과거사 청산과 관련한 반작용이 잇따른 시점에서 나온 것이라 우려스럽다. 외무성 입장 보도가 있던 날 하토야마 총리는 고교 무상화 대상에 조총련계 조선학교를 포함시키지 않을 뜻을 비쳤다. 똑같은 강제징용의 희생자들인데 굳이 조총련계 학교를 뺀다는 건 납득할 수 없다. 재일동포가 대다수인 영주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는 하토야마 정부의 중점 추진 사안이었지만 무산됐다. 금주 초만 하더라도 하토야마 총리가 한·일 과거사와 관련해 배상 의사를 밝힌 즉시 일본 정부가 서둘러 부인하고 나섰던 터다. 강제징용의 배상은 청산차원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사안이다. 징용자들에게 99엔씩의 위로금을 슬그머니 지급하면서 공식적으론 징용·징집을 부인하는 이중성은 비난받기에 충분하다. 무고한 이들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도 모른 체하는 처사는 용인될 수 없는 반인륜의 극치이다. 과거사 청산에 전향적이던 하토야마 정권이 보수·수구의 목소리에 눌려 수세에 몰린 탓이 크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의 청산은 분명 정치적 잣대로 가릴 일이 아닌 것이다. 일본 내에서조차 진실을 바로 보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 않은가. 당장이라도 역사 왜곡을 중단하고 합리적 해결법을 찾기를 촉구한다.
  • 하토야마 “비핵 3원칙 견지”

    하토야마 “비핵 3원칙 견지”

    │도쿄 이종락특파원│하토야마 유키오(얼굴) 일본 총리가 과거 정부의 미국 핵 반입 허용 ‘밀약’에도 불구하고 비핵 3원칙을 계속 견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토야마 총리는 10일 외무성 전문가위원회가 과거 정권의 미·일 핵 밀약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한 이후 기자들에게 “비핵 3원칙은 계속 견지하겠다.”면서 “재검토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비핵 3원칙은 일본 정부가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보유하지 않으며, 반입하지도 않는다.’고 선언한 것으로 1968년 이후 사실상의 국시다. 하토야마 총리는 미·일 핵 밀약 확인이 미국과의 외교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결코 미국과의 외교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을 바꾼 민주당 정부가 과거의 밀약에 대해 자료까지 포함해 공개한 것은 매우 잘한 것”이라면서 “핵을 포함한 억지력이 미·일 안보를 포함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외무성 산하 전문가위원회는 9일 의혹이 제기된 네 가지 미·일 밀약설 가운데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당시 미국의 핵 반입을 사전협의 대상으로 하고도 비밀 의사록에서 핵 탑재 함정과 항공기의 기항·통과·비행 등을 허용한 것 등 3가지 밀약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미국 국무부의 필립 크롤리 수석대변인도 이날 “미·일 간 협력관계에 큰 영향을 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크롤리 대변인은 이어 “일본 국민들이 핵무기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미·일 안전보장조약상의 (일본방위)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일본의 밀약 공개가 미·일 안전보장조약 개정론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jrlee@seoul.co.kr
  • [모닝브리핑]美 “北 김계관 비자발급 타진”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3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외무성의 김계관 부상의 방미 문제와 관련, “민간 차원의 초청”이라면서 “그(김계관)에게 비자를 발급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들이 있었으나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크롤리 차관보는 김 부상이 다음주 워싱턴에 오느냐는 질문에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국무부 관계자는 “김계관이 공식적인 비자 신청을 하지는 않았다.”면서 “뉴욕으로 오라는 초청을 받은 것은 알고 있지만, 결정은 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kmkim@seoul.co.kr
  • [세계 정보기관들 첩보전쟁중]세계 정보기관들 첩보전쟁중

    [세계 정보기관들 첩보전쟁중]세계 정보기관들 첩보전쟁중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발생한 하마스 간부 암살을 계기로 세계의 정보기관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첩보영화를 방불케 한 이 사건의 용의자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가 지목 되면서 두바이 경찰은 1일(현지시간) 모든 이스라엘인의 두바이 입국 금지 조치를 통보했고 국제 여론도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안보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기 때문에 21세기에도 정보기관은 국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다. ■CIA 외국어 능통자 확보·NSA 요원 3만8000명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정보기관인 ‘중앙정보국(CIA)’은 지난해 말부터 한국어, 중국어, 아랍어 능통자 확보에 나섰다. 북한 핵 문제 해결과 중국과의 경제 및 군사 패권 다툼, 대 중동정책 수립 과정에서 첨단장비를 이용하는 ‘시진트’를 넘어 ‘휴민트(인적정보)’를 통한 최고급 정보를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CIA 요원 중 외국어 구사 능력자가 13%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어를 포함한 외국어를 ‘중요 임무 언어’로 분류하고 이들 언어 구사능력자 채용 시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는 등 해외 정보 수집에 유리한 인재 확보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미 정치첩보 기구의 대명사였던 CIA는 구 소련의 붕괴로 냉전시대가 저물자 주력 분야를 경제첩보 활동으로 전환하고 세계 각국의 경제 정책 수집 및 분석, 자국 기술의 해외 유출 방지 등에 힘쓰고 있다. CIA와 함께 미국 정보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안전보장국(NSA)’은 CIA보다 더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한다. NSA는 CIA 요원 2만여명보다 더 많은 3만 8000여명이 소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 정보기관 중에서도 가장 베일에 가려진 조직이다. NSA는 조직에 대한 정보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그런 기관 없음(No Such Agency)’ 혹은 ‘아무 말도 하지 말 것(Never Say Anything)’ 등의 별명이 붙어있다. NSA의 주력 분야는 전 세계 정보 통신망의 도청 및 감청이다. 통신위성이나 각종 전자장치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언제든지 도·감청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SA가 주도한 전 세계 통신감청 시스템인 ‘에셜론 프로젝트’를 통해 하루 30억 건의 통화를 도청할 수 있고 ‘테러’ ‘폭탄’ 등 특정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 즉각 추적 대상으로 올려 NSA의 본부로 전송해 수집·분석한다. 이처럼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과시하는 미국도 9·11 테러 이후 미 본토를 향한 테러 위협, 이라크 전쟁에 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등 국제 현안이 산적해 있어 지난해 12월 알카에다 스파이가 아프간 CIA에 잠입해 폭탄 테러를 가하는 등 막강 정보망에 허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국가안전부 저인망식 정보수집… 해킹중심지 의혹 중국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는 최근 세계 해킹 공격의 중심지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 언론에 따르면 중국은 국가안전부를 중심으로 매년 수천명의 중국 외교관과 유학생, 기업가들을 저인망식으로 활용해 해외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한 언론은 지난해 9월 독일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 국가안전부가 해외에 파견한 스파이가 60만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독일에서 열린 주요 기술보고회에서 중국인 방청객이 발표자의 노트북에 이동식 디스크(USB)를 연결하다 적발된 사건과 독일에 잠입한 중국 산업 스파이들의 사례 등을 꼽으며 “중국 정부가 독일 기업의 채용 동향 등을 확인해 중국인들에게 시험을 응시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3만 2000명의 중국 유학생과 중국인 학자들도 의심 대상으로 지적했다. 국가안전부는 이러한 의혹에 대해 “근거 없는 비방”이라며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중국 정부의 구글 해킹 사태 등 잇달아 발생한 대규모 해킹의 진원지가 중국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가안전부에 대한 의혹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1983년 공공안전부의 정보 담당국과 공산당의 내사 및 내부 안전을 담당한 중앙조사부의 일부 기능이 군 총참모부와 통합해 출범한 기관으로 중국의 개방정책 채택 이후 출입국 내·외국인 관리와 미국 등 선진국의 첨단산업 및 군수기술 정보 수집에 주력하고 있다. ■MI-6 해외정보·MI-5 대테러 등 국내보안 담당 첩보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소속된 기관으로 잘 알려진 MI-6는 최근 영국 언론을 통해 지난 1월 두바이에서 발생한 하마스 핵심 간부 마흐무드 알 마부 암살 사건의 계획을 모사드로부터 통보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휩싸였다. MI-6는 영국의 해외정보 수집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비밀정보국(SIS)’의 또 다른 이름으로 영국 국내 정보는 ‘국가보안국(SS·MI-5)’이 맡고 있다. 이들 기관이 MI-5, MI-6로 불리는 이유는 1909년 비밀첩보부(SSB)에 속했던 두 기관이 1916년 군사정보국으로 편입되면서 각각 군사정보(Military Intelligence) 5과와 6과로 편성됐기 때문으로 지금도 영국 언론은 SS, SIS보다 MI-5, MI-6를 주로 표기하고 있다. MI-5는 제1,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영국에 침투한 해외 간첩 색출을 주로 담당해 오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동 분야를 넓혀 대테러, 마약 및 조직범죄, 불법 이민 단속 등의 임무도 수행하고 있지만 경찰과 중첩되는 업무로 마찰을 빚는 등 논란의 중심에 오르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해외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MI-6의 황금기는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였다. 이 기간 동안 MI-6는 독일과 이탈리아군의 암호 해독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이며 연합군에 상당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냉전 종식 이후 이 기관의 중요성도 떨어지면서 조직은 대폭 축소됐다. ■모사드, 규모 작지만 최고 정보력 지닌 조직 평가 알 마부 암살의 용의자로 지목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는 ‘작지만 최고의 정보력을 지닌 조직’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사드의 공식 명칭은 중앙공안정보기관(Central Institute for Intelligence and Security)이지만 히브리어로 ‘기구’ ‘교육기관’ 등을 의미하는 ‘모사드’가 널리 쓰이고 있다. 알 마부 암살사건을 수사 중인 두바이 경찰은 사건 직후 모사드를 지목하며 11명의 용의자를 공개 수배한 데 이어 최근 15명의 용의자를 추가 발표했다. 알 마부 한 명을 살해하기 위해 26명의 모사드 요원이 동원된 것으로 외신들은 1997년 하마스 최고 지도자 칼리드 마샬 암살 실패를 경험한 모사드가 이번 암살 작전에 더욱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소련의 비밀경찰이었던 KGB의 역할은 현재 연방보안국(FSB)이 담당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간첩 탐지와 국경수비를 담당하던 FSB역시 최근에는 경제 및 정보산업 분야로 중심 업무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 국가안전부와 마찬가지로 2009년 12월 영국 대학의 기후 변화연구소 해킹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한 FSB는 해커 양성에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내각정보조사실 등 운영… 경제·안보분야 대폭 강화 │도쿄 이종락 특파원│일본도 부처내 정보 파트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독자적인 정보기관이 없지만 내각정보조사실, 경찰청, 공안조사청, 방위성이 별도의 정보부처를 운영하며 정보수집활동에 나선다. 일본은 첩보전을 방불케하는 정보대전을 대비해 한때 독립적인 정보기관 창설을 검토했었다. 2007년 아베 신조 전총리 재임시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창설을 추진했다. 당시 9·11 테러와 북한 핵미사일 시험 발사 등으로 인해 일본도 별도의 정보부대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 해 4월6일 NSC 창설 안건이 각료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쿠다 야스오 전총리가 취임하면서 이 방안에 대한 논란을 거듭했다. 외무성과 방위성이 “NSC는 옥상옥 기구가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결국 NSC 사무총장과 사무국장의 임명, 위원 구성 방식 등을 놓고 부처 간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같은 해 12월 24일 안전보장회의에서 NSC 창설안이 폐지됐다. NSC 창설이 무산됐지만 일본 부처내 정보기구의 역할은 오히려 더욱 강화됐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런 차원에서 외무성은 최근 각국 대사관별로 이뤄지는 일본 주재원들의 정보 수집 활동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보당국 관계자는 “NSC 창설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내각정보조사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경제와 안보에 대한 정보수집활동이 대폭 강화됐다.”고 말했다. jrlee@seoul.co.kr
  • 6자회담 재개 ‘긍정적 → 부정적’

    6자회담 재개 ‘긍정적 → 부정적’

    북핵 6자회담 재개에 관한 한국과 미국의 자세가 하루 만에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낙하했다.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인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들에게 “6자회담이 올해 상반기 중에 재개되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몇시간 뒤 서울에 돌아와서는 “북한의 입장이나 언행에서 약간의 진전된 흐름이 엿보인다.”고 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같은 날 베이징에서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 사무특별대표와 만난 뒤 “우리는 모두 6자회담의 빠른 재개를 기대하고 있으며 유용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한결 밝은 표현을 내놓았다. 두 사람의 언급은 북한이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쪽으로 중재가 이뤄지고 있으며 공은 이제 한·미로 넘어갔다는 관측으로 연결됐다. 하지만 25일 서울을 방문한 보즈워스 대표와 위 본부장의 면담 직후 나온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의 설명은 차가웠다. 이 당국자는 “어제 위 본부장과 보즈워스 대표의 언급은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게 없으며, 발언이 와전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한번 공언한 정책은 잘 바꾸지 않는다.”면서 “여전히 제재의 모자를 쓰고는 회담에 복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유엔 대북제재 해제 요구를 일단 접는 대신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개시하는 쪽으로 중국의 중재가 이뤄지고 있다는 관측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는 중국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방미를 통한 북·미 추가대화를 미국에 제의했는지에 대해 “중국 측에서는 그런 기류가 강한 것 같다.”면서 “그러나 미국은 6자회담의 가시적 진전이 전제돼야 방미가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이 당국자의 설명을 정리하면, 남·북·미의 연쇄 방중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전된 것은 없다는 얘기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한·미가 북측의 평화협정 체결 회담 제의를 시간끌기 전략으로 규정짓고 기존의 ‘숨통 조이기’ 전략을 당분간 더 진행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관측도 나왔다. 실제 당국자는 “비핵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6자회담이 재개돼야지 북한의 지연전술로 인해 재개되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6자대화 재개 급물살

    │워싱턴 김균미특파원│6자회담 재개를 향한 관련국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중국의 춘제 연휴가 끝나자마자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3~24일 베이징을 방문하는데 이어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23일(현지시간)부터 베이징, 서울, 도쿄를 잇따라 방문한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김영일 노동당 국제부장이 23일 오전 베이징에 도착, 관심을 모은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22일 정례브리핑에서 “보즈워스 대표가 성김 6자회담 수석대표와 함께 6자회담 관련국가들을 방문, 회담 재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23일 워싱턴을 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크롤리 차관보는 “보즈워스 대표는 이번 방문기간 중 북한이나 러시아에 갈 계획이 없다.”면서 “베이징 등에서 북한 관리를 별도로 만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크롤리 차관보는 ‘북한의 입장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6자회담 파트너들을 만나 협의하려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며 “최근 (중국과) 북한 당국자들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을 점검하고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크롤리 차관보는 “여전히 북한으로부터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한국과 미국 고위 관계자들은 베이징에서 최근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북한 외무성 김계관 부상의 교차 방문을 계기로 이뤄진 북·중 협의 내용에 대해 중국측으로부터 처음으로 직접 설명을 들은 뒤 일본과 함께 후속 대책을 협의할 예정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중 및 한국·일본과의 후속 대책 협의 결과를 오는 26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양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논의, 입장을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북·중 간 협의에서 북한이 진전된 내용을 제안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그보다 중국이 북한과의 협의 결과를 토대로 절충안을 제시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중국이 아무 진전이 없거나 새롭게 제안하거나 논의할 내용이 없는데 미국과 한국측에 베이징으로 와달라고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관건은 중국이 6자회담 복귀 후 평화협정 체결 등 논의가 가능하다는 한국과 미국,일본 등의 일관된 입장과 6자회담 재개전 대북 제재해제,평화협정 체결 논의라는 북한의 입장 사이에서 과연 어떤 절충안을 내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북·미 간 2차 대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미국은 다음 단계는 6자회담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6자회담 재개와 연계되지 않은 추가대화 전망은 낮다.따라서 2차 북·미대화가 열린다면 6자회담 재개가 임박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kmkim@seoul.co.kr
  • [모닝 브리핑] 위성락 23일 訪中… 우다웨이와 6자 협의

    북핵 6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3일 중국을 전격 방문해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와 6자회담 재개 방안 등을 협의한 뒤 24일 귀국한다. 위 본부장은 22일 기자들에게 “중국 측에서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면서 “근래 북·중 간 협의가 있었고, 미국도 움직임이 있는 등 양자 협의 기류들이 있는데, 그런 움직임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방중 등 북·중 간 협의내용을 파악하고 우리 입장을 전달하는 등 전반적인 협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日, 탈북자 난민대우… 北인권법 개정추진”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가 탈북자를 난민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 받아들이는 쪽으로 북한인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산케이신문이 17일 보도했다. 나카이 히로시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은 지난 4일 의회에서 탈북자 지원을 규정한 현행 법에 대해 “왜곡된 법안이 됐다.”며 개정 방침을 밝혔다. 탈북자의 일본행 조건을 완화, 북한 정보를 폭넓게 수집하려는 의도로 관측되고 있다. 북한인권법은 2006년 외환법, 특정선박입항금지 특별법과 함께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제정됐다. 한편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사면된 김현희(48)씨가 지난해 5월 일본 외무성과 경찰청 관계자들을 한국에서 면담했을 때 북한에 납치된 요코다 메구미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이날 전했다. 납치피해자의 상징적인 인물인 요코다는 중학교 1학년이던 1977년 11월15일 하교 도중 니가타시 집 부근에서 북한에 납치됐다. hkpark@seoul.co.kr
  • 北, 주중대사 10년만에 교체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북한의 최진수 주중대사가 10년 만에 교체된다. 이례적으로 김성기 공사도 함께 바뀐다. 일각에선 최 대사의 후임자 신원을 최병렬 외무성 영사국장으로 추정하지만 대북 전문가들조차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어서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후임자의 직급이 외무성 국장이 정확하다면 차관급 이상 고위직을 상대국 대사로 파견해 온 중국과 북한의 60년 관행이 깨지게 된다. 16일 베이징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이달 초 최 대사의 후임자에 대한 아그레망(주재국 동의)을 신청했으며 신임 대사는 이달 말 또는 3월쯤 부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류샤오밍(劉曉明) 현 평양주재 대사 후임으로 차관급인 류훙차이(劉洪才)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을 내정한 상태이다. 한편 최 대사와 함께 교체되는 김 공사는 부상으로 승진해 이미 귀국했으며 후임에는 ‘중국통’인 박명호 외무성 제2국(중국) 부국장이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stinger@seoul.co.kr
  • 北 김계관 이르면 새달 방미

    │베이징 박홍환·워싱턴 김균미특파원│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이르면 다음달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12일 “김 부상은 최근 방중 협의결과에 대해 중국측이 한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당사국과 조율을 마친 뒤인 다음달 중 미국 방문길에 오를 것”이라면서 “이미 방미 일정이 잡힌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6자회담 의장 겸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춘제(春節·설) 이후 당사국 간 입장 조율을 위해 한·미·일 3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김 부상과 차석대표인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은 방중 4일째인 이날도 중국 측과 베이징 시내 모처에서 6자회담 재개 관련 협의를 계속했다. 앞서 김 부상은 전날 베이징 시내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 우 특별대표와 만찬을 겸한 수석대표 회동을 가졌다. 미 국무부는 11일(현지시간) 김계관 부상의 중국 방문과 관련, 조만간 6자회담이 재개될 것이라는 징후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기자들과 가진 전화회견에서 김 부상이 중국을 방문 중인데 가까운 시일 내에 6자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분명 그런 신호를 볼 수 있길 바랬지만 현 시점에서는 그런 징후를 봤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크롤리 차관보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기 위해 북측과 추가 대화를 가질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른 만남을 배제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대표단이 북한과 가질 다음 만남은 공식적인 6자회담을 통한 것이어야 한다고 우리는 확고히 믿고 있다.”고 말해 가능성이 크지 않음을 시사했다. stinger@seoul.co.kr
  • [모닝 브리핑] 訪中 사흘째 김계관 “6자회담 재개 깊이 논의”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방중 사흘째인 11일 오후 베이징의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 중국의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 특별대표와 만찬회동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중국 측과 조선평화협정 체결, 6자회담 재개, 중·조 문제 등에 대해 깊이있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김 부상과 우 특별대표가 9일 영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 10일 중국 외교부 청사에 이어 이날까지 사흘 연속 회동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을 둘러싸고 양측이 치열한 논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stinger@seoul.co.kr
  • [박홍환 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북한정보 소외 자초하는 주중대사관

    중국 베이징 외교가에 전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뇌사 상태에 빠진 북핵 6자회담의 회생 기미가 엿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방북했던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9일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함께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연출을 맡은 새로운 드라마는 막이 올랐다. 주연인 김계관 부상의 동작 하나하나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6자회담 당사국을 비롯, 전 세계가 베이징을 주목하고 있는 이런 중요한 시기에 주중 한국대사관의 수장인 류우익 대사는 자리를 비웠다. 이번주 시작된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차 서울에 가 있다. 류 대사는 다음주까지 서울에 머물 계획이라고 한다. 급하게 부임하는 바람에 제대로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일주일 휴가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첨단 정보통신 시대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항변하면 할 말이 없다. 차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중요한 정보를 수시로 보고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답변도 예상된다. 류 대사는 부임 전부터 주목받은 이른바 ‘힘있는 대사’이다. 중국 측의 요청에 부합했다고 판단했는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도 이례적으로 신임장을 제정하는 자리에서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 힘써 달라.”고 특별히 주문했다. 류 대사 스스로도 “남북관계 등에서 할 일이 있다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부임 초기 왕 부장, 양제츠 외교부장, 리자오싱 전인대 외사위원회 주임 등 당·정·의회의 외교수장을 모두 만나는 등 의욕적으로 활동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왕 부장의 방북 전까지 류 대사는 이재오 국가권익위원회 위원장, 박영준 국무총리실 차장,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 등 국내 ‘손님’들을 만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북핵 등 대북정보는 우리에게는 직접적인 이해가 달려 있는 중요사안이다. 그런 점에서 재외공관은 관련 정보 수집의 최일선이라고 할 수 있다. 수장이 현지보다 국내 현안에 관심을 갖는다면 제대로 된 정보가 쌓일 리 없다. 현지의 외교당국은 그 점을 지켜보고 있다. stinger@seoul.co.kr
  • 우다웨이 6者의장직 계속 수행

    │베이징 박홍환·워싱턴 김균미특파원│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 일행은 방중 이틀째인 10일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전 부부장 등과 북핵 관련 협의를 계속했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김 부상이 이날 중국 외교부를 방문했다.”며 “이날 한반도사무 특별대표에 임명된 우 전 부부장 등과 전날에 이어 6자회담 재개 문제 등을 숙의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의 마차오쉬(馬朝旭) 대변인도 “김 부상이 우 특별대표의 요청으로 중국을 방문했다.”며 “양측은 북·중관계, 6자회담, 공동 관심사 등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이날 우 전 부부장을 한반도사무 특별대표에 임명하면서 관할 업무를 6자회담 및 관련 사안으로 지정함에 따라 그는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 겸 6자회담 의장직을 계속 수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차관보는 9일(현지시간) 기자들과의 콘퍼런스콜에서 “지난 24시간 북한에서 나온 공개적인 언급을 우리는 주목하고 있다.”면서 “북한은 6자회담이 재개돼야 하며,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는 올바른 말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stinger@seoul.co.kr
  • [뉴스&분석]北 새달 6자복귀 시그널?

    [뉴스&분석]北 새달 6자복귀 시그널?

    북핵 문제의 ‘시계’가 갑자기 빨리 돌아가는 분위기다. 중국 고위급 인사의 방북에 이어 북한 고위급의 방중이 전격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겉모양만 보면 북핵 6자회담 재개가 가시권 안에 접어드는 느낌이다. 일각에서는 잘하면 다음달 중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기 시작했다.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9일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김 부상은 전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귀국하는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상을 만나고 귀환하는 외국 사절과 동행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뿐만 아니라 6자회담 북측 차석대표 이근 외무성 북미국장도 김 부상과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전날 김 위원장은 왕 부장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북한의 의지는 분명하다. 6자회담을 재개하려는 관련 당사국들의 진정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 의 6자회담 언급→6자회담 북측 수·차석 대표 방중’으로 이어지는 상황전개에 공통적으로 6자회담이란 단어가 놓여있다. 이런 움직임을 6자회담과 무관하다고 보긴 힘들 것 같다. 여기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특사인 린 파스코 유엔 사무국 정무담당 사무차장의 9일 방북이 ‘한반도의 봄’을 앞당기는 또 하나의 기운으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북·중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은 “왕 부장은 김 위원장에게 중국의 대북 경제 지원을 약속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통큰 결정을 담은 친서를 전달했다.”면서 “이에 김 위원장은 왕 부장 귀국길에 김 부상을 동행시켰으며 김 부상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 구체적인 6자회담 복귀 희망 날짜 등이 제시된 김 위원장의 친서를 갖고 방중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친서에 명시된 6자회담 복귀 희망 날짜는 3월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향후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북한을 제외한 관련국들에게 북측이 제시한 날짜의 수용 여부 등을 묻기 위해 회람을 돌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왕 부장과의 면담에서 6자회담 재개와 관련, 당사국들의 진정성을 강조한 것은 6자회담 복귀에 앞선 명분축적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진정성을 강조한 것은 향후 재개될 6자회담에서 북한을 마치 법정에서의 피고인처럼 대한다면 회담에 참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사전에 우회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서로 평등·자주의 원칙속에서 회담을 진행해야 한다는 9·19 공동성명 정신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사설] 北, 중국에만 매달리려는 생각 버려라

    북한과 중국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8일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함흥에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찾아가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구두친서를 전한 데 이어 어제는 왕 부장의 귀국행 비행기에 김계관 북한 외교부 부상이 올라탔다. 리근 북 외무성 북미국장도 동석했다고 한다. 김 부상 일행은 중국에 이어 미국을 찾을 가능성도 점쳐진다는 점에서 북핵 6자회담 재개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 듯하다. 6자회담이 북핵 논의의 시종(始終)이라는 점에서 북·중 간 일련의 움직임은 환영할 일로 보인다. 그제 왕 부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6자회담 당사국들의 진정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도 6자회담에 대해 좀 더 전향적 자세를 내보인 것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 짚을 대목이 있다. 김 위원장이 강조했다는 ‘진정성’이다. 이는 북한이 아니라 6자회담의 나머지 참가국들이 물을 사항이며, 북한이 먼저 답해야 할 사항이다. 6자회담 재개가 중요하겠으나, 합의와 파기를 반복했던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6자회담을 통해 핵 문제를 풀겠다는 북측의 의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측의 최근 행보는 여전히 국제 사회에 믿음을 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와 화폐 개혁 및 식량 부족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동요 등 당면한 내우외환을 타개해 보려는 연명책으로 6자회담 복귀의 몸짓을 보이고 있을 뿐 진정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고자 하는 의지는 그 어디에서도 감지되지 않는다. 이번 북·중 대화 역시 지난해 11월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특사의 방북을 고리로 한 미국과의 직접 대화나 한국 정부와의 물밑 대화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다시 중국에 손을 내미는 성격을 지닌다고 할 것이다. 일각에서 북의 6자회담 복귀를 조건으로 중국이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과, 중국에 기대어 연명을 도모하는 북한의 이해타산이 동인이라면 6자회담의 향배는 과거처럼 순탄치 않을 것이다. 북으로서는 실익도 없이 국제사회의 불신만 키울 뿐이다. 핵을 버릴 때 평화체제와 국제적 지원을 얻을 수 있음을 북은 제발 깨닫기 바란다.
  • 김정일, 왕자루이와 면담

    │베이징 박홍환특파원│김정일 국방위원장이 8일 북한을 방문중인 왕자루이(王家瑞)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면담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9일 새벽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왕 부장으로부터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구두친서’와 대표단이 준비한 선물을 전달받은 뒤 “친선적인 담화”를 했다고 통신은 전했으나 회담 내용에 대해서는 소개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과 왕 부장의 면담은 6자회담 참가국들이 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는 시점에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된다. 김 위원장이 왕 부장에게 6자회담 복귀에 대한 언질을 줬을 경우 회담 재개 협상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안팎에서 북한 핵 문제는 물론 한반도 평화 체제, 대북 경제 지원 등이 포괄적으로 협의될 가능성이 크다. 왕 부장은 이에 앞서 최태복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회담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왕 부장과 최 의장이 지난해 양국 간 수교 60주년 각종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평가한 뒤 서로 자국내 정세에 대해 설명하면서 관련 분야의 협력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왕 부장은 “앞으로도 북·중 우호협력 관계는 새로운 역사적 출발점에 서 있다.”면서 “중국은 북한과 손을 맞잡고 함께 노력해 전통적인 우호협력 관계를 대대손손 발전시켜 가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담에는 중국 측에서 왕 부장을 비롯한 대외연락부 대표단과 류샤오밍(劉曉明) 북한주재 대사가 참석했다. 대외연락부의 아주국 심의관이 왕 부장의 방북 활동을 수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 말에는 도착 첫날 최 의장, 둘째날 김영일 내각 총리와 최 의장, 그리고 셋째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모두 왕 부장의 숙소인 백화원초대소로 찾아가 만난 바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을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김성남 조선노동당 국제부 부부장 등이 수행했었다. stinger@seoul.co.kr
  • 방북 왕자루이, 노동당 부장과 회담… 8일 김정일 만날듯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서울 김정은기자│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6일 평양에 도착, 방북 일정에 들어갔다. 왕 부장의 행보가 주목되는 것은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주변 정세의 변동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왕 부장은 방북 이틀째인 7일 김영일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과 회담했다. 8일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왕 부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대표단이 조선노동당 국제부 대표단과 회담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쌍방은 두 나라 사이의 전통적 친선협조 관계를 더욱 강화시키는 문제와 호상(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먼저 6자회담 재개 문제가 이번 방북에서 집중 논의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북핵과 대미외교를 총괄하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중국통’인 김양건 국방위원회 참사 겸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면담 여부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방북 때도 두 사람은 왕 부장이 머문 백화원초대소를 직접 방문했다. 특히 강 부상은 북핵 문제와 관련, 김 위원장에 대한 직접적인 보고라인에 있는 인사여서 논의의 주된 내용은 북핵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일단 북한과 미국이 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을 두고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당장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는 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김 위원장이 직접 왕 부장의 숙소를 찾아가 장시간 대화를 나눈다면 ‘통큰 결정’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방북했을 때에도 “북·미 양자회담 상황을 지켜본 뒤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할 것”이라며 당시 상황에서는 진일보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 계획 확정 여부도 관심사항이다. 왕 부장은 김 위원장 초청 주체인 중국 공산당의 대외교류를 전담하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방북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의 초청 친서를 직접 김 위원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당초 1월 하순~2월 초순으로 예상됐던 김 위원장의 방중은 일단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김 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을 여전히 높게 보고 있다. 2월 마지막주가 아니라면 올해 김 위원장의 방중은 상당기간 늦춰질 수밖에 없다. 3월로 넘어가면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인 량후이(兩會·전인대와 정협 회의)가 예정돼 있는 등 중국 국내사정상 손님맞이가 어렵다. 왕 부장이 김 위원장을 만난다면 당연히 후 주석의 친서를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친서의 성격상 구체적인 내용을 담을 순 없겠지만 왕 부장의 ‘입’을 빌린 구두친서에서 화폐개혁 이후 곤란에 처한 북한경제를 지원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칠 수도 있다. stinger@seoul.co.kr
  • 미쓰비시 징용 조선인 유골 65년만에 발견

    미쓰비시 징용 조선인 유골 65년만에 발견

    일본 히로시마의 미쓰비시중공·조선소에 강제 동원됐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하던 중 겐카이나다(현해탄)에서 조난당해 ‘불귀의 객’이 된 조선인들의 유골이 65년 만에 처음 확인됐다. 그동안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귀환동포 실종 사건이 정부 차원의 조사에서 밝혀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무총리실 소속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해방을 맞아 1945년 9월 귀국 도중 해난사고로 숨진 징용자를 비롯한 조선인 유골 131위가 일본 사이타마현에 있는 사찰 곤조인(承院)에 안치된 사실을 현지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1945년 9월17일 오전 10시쯤 후쿠오카 근처의 기타큐슈시 도바타항에서 조선인 246명이 일명 ‘똑딱선’으로 불리는 기범선(機帆船)을 타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9월15일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했지만 배를 1주일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에 도바타항으로 건너간 것으로 나타났다. 똑딱선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쓰시마와 이키섬 인근에서 초대형 태풍인 마쿠라자키를 만나 조선인이 모두 실종됐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자 140만명이 귀국길에 올랐는데 이 중 90만명이 1945년 8∼10월에 몰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둘러 귀국길에 오른 이들은 당시 일본이 수송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아 대부분 작고 낡은 배를 탔고, 기상 악화가 겹쳐 해난참사가 잇따랐다. 파도에 떠밀린 이들의 시체는 쓰시마와 이키섬 등 여러 곳에 매장됐다. 당시 미쓰비시공장에는 경기 평택·화성·안성·이천·여주·고양 등에서만 조선 청년 2000여명이 동원됐으며, 해방 당시 공장에는 조선인 2700여명이 남았다. 1976년 이키섬에서 일본 시민단체가 발굴한 유골과 1983년 외무성·후생성이 쓰시마에서 발굴한 유골이 조선인 유골로 파악되기는 했으나 신원미상으로 분류돼 30년 가까이 곤조인에 보관됐다. 정부 차원의 조사는 2005년부터 시작됐고 이번 조사결과 곤조인에 보관된 유골이 각종 해난사고로 숨진 조선인들의 것이며, 이 중에는 ‘미쓰비시 실종 사건’ 희생자들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를 담당한 정영애 조사관은 “해방 전후 귀국 혼란기에 발생한 해난사고 피해는 강제동원 주체인 일본정부와 기업이 안전수송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해당 유골을 강제동원됐다가 숨진 다른 조선인 유해와 함께 국내로 봉환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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