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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濠, 北과 외교관계 회복 고려중

    [시드니 AFP 연합] 호주 정부는 15일 북한과의 외교관계 회복을 고려중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이와 관련한 어떠한 성명을 내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호주 외무부 장관 대변인은 호주와 북한이 내달 외교 관계를 회복할 것이란위크엔드 오스트레일리안 신문 보도에 언급,이같이 말했다. 대변인은 “북한은 우리와 외교관계 재개를 분명 바라고 있으며 이 문제는고려중”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어떤 성명을 발표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말했다.
  • 남북 정상회담/ 4강의 반응

    *미국의 반응. 미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을 ‘해빙의 시작’ ‘남북관계의 전환점’이라며 환영과 지지를 나타냈다. 뉴욕타임스는 11일자 사설에서 “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늦기는 했지만 남북관계에서 희망적 해빙의 시작이 될 수 있다.이는 또 냉전의 마지막 군사적대치의 장에서 긴장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그러나 북한은 아직 위험하고 예측불가능한 만큼 한국은 정상회담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은 11일 “남북한간의 첫 정상회담은 분단 한반도의 관계를 개선하는 긴 과정의 중요한 한 조치로만 끝날 수도 있지만 동북아의 군사적 위협을 줄이고 남북한 모두의 경제적 이득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고보도했다. 한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11일자 사설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지구상의 한 위험지역에서 미해결 상태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역사적 돌파구가 될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 정상회담 성사는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이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햇볕정책이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그러나 정상회담에 너무큰 기대를 갖는 것은 아직 무리이며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통일이 금방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통일이 된다면 6월 정상회담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아시아문제연구소장 정상회담 후 남북관계는 완만하기는 하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전이 이뤄질 것이다.남북한이서로 신뢰를 구축해나각 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한국으로선 남북관계의 급격한 발전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여유를 가지고서서히 추진하다 보면 이산가족 상봉,편지 교환 등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일본의 반응. 일본 언론도 12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면서 현재 진행중인 북·일 수교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아사히(朝日)는 사설을 통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은 북한의대남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포용정책’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요미우리(讀賣)도 “남북회담의 합의는 한·미·일의 3개국이 협조를 강화하고 북한에게 대화를 촉구해온 결과”라면서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종결시키고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했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교수 북한은 외교적으로 큰 전기를맞고 있다.북한측에서 보면 우선 대미관계를 개선한 뒤 일본,마지막으로 한국이라는 종래의 외교방침을 역전시켜 남북을 기점으로 대일,대미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 한다는 점에서 남북회담은 전략적인 전환이다. 그 배경에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냉전구조를 재편하고 나아가 경제를재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 북한이 경제재건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인프라 정비,특히 에너지 지원을 한국측에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북한은 결단을 내리기 앞서 ‘한국은 북한을 흡수통일하지 않는다’는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켜봤을 것이다. ●요시다 야스히코(吉田康彦) 사이타마대 교수 정상회담 후속으로 총리급의실무적인 회담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정상회담이 1회에 그칠지 계속 이어질지 현재로선 불투명하지만 그 회담이 ‘결렬’이라든지 ‘실패’라든지 하는평가는 이를 것이며 북한과의 채널 구축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황성기기자 marry01@. *중국의 반응. 중국의 언론과 한국문제 전문가들은 12일 남북한 정상회담 합의가 한반도분단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역사적 사건이라고 지적하고 남북한이 평화·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데 대해 환영과 지지를 보낸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人民日報)와 신화(新華)통신은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가오랫동안 남북한이 공동 노력,신뢰를 구축해온 결과로 긴장 완화라는 국제환경 및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추이잉주(崔應九)교수(베이징대학 조선문화연구소 명예소장)정상회담은 민족사와 동북아 국제관계사에서 크게 평가돼도 지나침이 없다.대결과 분단의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1961∼64년 북한 유학시절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다녔다. 김 위원장은 민족의 장래와 운명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안다. ●쉬바오캉(徐寶康) 인민일보 논설위원 남북한이 외부의 개입없이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것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실현,자주 평화통일에 큰 도움을줄 것으로 본다. ●장스화(張世和)교수(지린대학 조선·한국연구소) 정상회담은 시대조류에부합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과 안정이 확보돼 외국자본이 북한에 투자될 것이다.남북 양측에 말은 적게 하고 일은 많이 한다(少說多作)는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을 전하고 싶다. ●브라이언 브리지박사(홍콩 한국문제 전문가) 정상회담이 김 대통령 정부의일관된 화해정책의 결실이라고 평가하고 남북관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정상회담까지는 2개월여의 시간이 남아 있고 남북관계의 여러 변수도고려해야 하는 만큼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린추산(林秋山) 박사(타이완 한국문제 전문가) 정상회담이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양측 지도자가 만나 화해를 도모하는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둬야하며 회담 성과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게 바람직하다. 김규환기자 khkim@. *러시아. 러시아 언론과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 및 이에 따른 대외개방 움직임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고 평가하며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와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는 11일 정상회담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바탕으로 하며,자체 미사일 개발을 자국에 대한경제지원을 위한 무기로 활용하는 북한의 대외개방 움직임이 베를린 선언을촉매로 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 외무부국장(한반도 담당) 북한이 전례없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채택,결단력과 선견지명을 보여줬으며 1년전부터 추진해온 자체 대외정책에 부합하는 조치를 취했다.북한은 한국 총선에서 김 대통령의입지가 강화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한국 대통령이계속 도와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게오르기 쿠나제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대학 부총장(초대 주한 러시아 대사) 정상회담 합의는 한국 정부가 그동안 추구해온 대북(對北) 정책에 부합한다.김 대통령은 남북 정상간 나이차를 감안하지 않고 평양방문 의사를 피력함으로써 용기와 정치적 성숙도를 보여 줬다. ●아나톨리 토르쿠노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총장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두나라 국민들의 운명에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하지만 너무 큰 기대를 걸면실망도 클 수 밖에 없다.남북한은 오랫동안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국가이며이념적으로 다른 체제를 보유하고 있고 전쟁을 치른 적도 있는 등 모든 점등이 갑작스런 접근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유리 바닌 러시아 학술원 산하 동방학연구소 한국·몽골과장 남북 정상은회담을 통해 군사분야에서 38선내 군사긴장 해소와 안정,상호신뢰를 위한 방안 수립 문제를,경제적으로는 햇볕정책의 기조가 되는 경제협력관계의 실현방안을,인도적으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거론할 수 있다. 김규환기자
  • 푸틴, 江澤民과 새달말 회담

    푸틴 대통령 당선자는 오는 5월말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서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첫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러시아 외무부 고위관리가 12일 밝혔다. 이 관리는 양국 정상이 5월말 두샨베에서 열리는 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등 5개국의 이른바 ‘상하이(上海) 5’ 연례 정상회의에 참석,회담을 갖기로 했다고 전했다. 푸틴 당선자와 장 주석은 첫번째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 증진방안과 긴급한 국제현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며 금년말로 예상되는 푸틴의 중국 공식방문일정도 논의할 계획이다. 모스크바 연합
  • 남북 정상회담/ 각국 반응

    [워싱턴 최철호특파원·손정숙기자] 남북정상회담 합의 소식을 접한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주요국들은 한반도 긴장완화의 전기가마련됐다며 일제히 환영과 기대감을 나타냈다. [미국] 미국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대해 즉각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국무부 관계자는 9일 밤(현지시간) 긴급 논평을 통해 “미국은 사태의진전을 환영한다”고 말했다.국무부 북한 담당관이며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보좌관인 웬디 셔먼은 이날짜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우리는정상회담 발표를 환영하고 지지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정상회담 합의를 받아들인 것은 “북한에 현실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증거”라고 풀이했다.이 관계자는 북한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농업·건설·에너지 분야에서 도움을 받으려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CNN,뉴욕타임스,워싱턴 포스트,AP통신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 소식을 일제히주요기사로 긴급보도했다. [일본] 일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대해 일·북 국교정상화 협상에도좋은 영향이 기대된다며 환영을 표시했다.고노 요헤이(河野洋平)외상은 담화에서 “사상 처음 있는 일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이를 계기로 남북대화가 진전돼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기를 강력히 기대한다”고 밝혔다.교도 통신은 서울과 베이징(北京)발로 정상회담 합의소식을 긴급 보도했으며 NHK방송도 매시간 톱 뉴스로 보도했다. [중국] 중국 외교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이날 공식적으로밝혔다. 외교부 주 방짜오(朱邦造) 대변인은 “중국측은 정상회담이 긍정적인 결과들을 가져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신화통신 등 관영언론들은 전례없이 주요뉴스로 긴급보도했다.신화통신은오전 8시38분(한국시간 9시48분) 한국 TV 보도를 인용해 서울발로 첫소식을영문으로 전한 후 곧이어 북한 TV 발표를 인용해 평양발로 보도했다. [러시아] 러시아 외무부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고위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이 소식통은 정상회담이 건설적인 분위기에서 열릴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이번 회담이 아시아 지역의안정을 강화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 日자민당 ‘포스트 오부치’ 다툼 치열

    일본 정국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2일 새벽 뇌경색으로 입원한 오부치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총리직을 그만 둘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오부치입원 37시간만에 총리대행에 취임한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관방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오부치 총리가 총리직을 그만두어야 할 것같다고 밝혔다. 자민당은 즉각 후계 선정을 위한 비공식 논의에 착수했다.이날 각 파벌은수시로 모임을 갖고 후계 구도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파벌 대표끼리도만나 조정을 벌이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국내외의 산적한 사정 때문에 자민당 지도부는 빠르면 4일중으로 차기총리지명과 관련해 ‘결단’을 내릴 수도 있으며,늦어도 이번주 안에는 이 문제를 매듭지을 것으로 보인다. 이달 22일 미야자키(宮崎)에서 열리는 남태평양 16개국 정상회의(SPF)는 물론 7월로 예정된 서방 선진8개국(G8) 정상회담에도 오부치 대신 새 총리가참석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오부치 부재(不在)’의 정국을 상정한다면 최대 초점은 차기 총리다.자민당 지도부가 교체를 결정하면 중참 양원의 소속의원 총회를 열어 약식으로자민당 총재를 새로 뽑게 된다. ‘포스트 오부치’로는 당초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상이 떠올랐다.오는7월 오키나와(沖繩) 선진8개국(G8) 정상회의의 성공을 위해서는 미국과 유럽에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영어 구사도 가능하며 자민당 총재를 지낸바 있는 고노 외상이 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오후 늦게부터는 모리 요시로(森喜郞) 자민당 간사장이 유력하게 부상했다.일본 정치분석가 오카자키 시게노리도 모리 간사장을 가장 유력한 후임자로 꼽고 있다.오카자키가 모리를 가장 유력한 후임자로 꼽는 것은 오부치파가 모리를 다루기 쉬운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리 역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정치공백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공통인식 때문에 새총리에 선임된다 해도 7월 서방선진8개국(G8) 정상회담 개최를 포함해 중의원 해산과 총선 실시 등 중요한 정치일정을 앞두고 있는 일본 정국에 치열한 내부다툼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총리문제에 이은 관심사는 연정 유지이지만 오히려 새 연정구성은 더욱 가속화될 것 같다.3일 저녁 자유당의 노다 다케시(野田毅)의원이 신당을결성하면서 빠르면 4일쯤 자민·공명당과 3당연정을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공산 등 야당측은 이날 각당별로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오부치 유고가기화할 것으로 판단되면 조속히 자민당이 차기 총리를 지명해 책임있는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야당측이 요구해온 중의원 조기해산은 사실상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황성기기자 marry01@. *오부치 정치역정. 자민당 최대파벌인 오부치파 회장으로 94명의 의원을 이끌고 있다.98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압도적 다수로 선출돼 같은해 7월30일 총리에 취임했다. 정권 출범 당시 지지율이 20%대로 역대 총리중 바닥에 가까웠으나 이후 자유당과의 연립정권 수립(99년 1월)을 통해 지지율을 50%대까지 끌어올리면서 인기를 누려왔다. 취임초기 경제에 대한 식견이 모자란 점을 빗대어 미국으로부터 ‘식은 피자’라는 별명도 얻었던 그는 10년불황의 일본 경제회복에 전력을 기울여 1999 회계년도의 경제성장률을 2년만에 플러스로 돌리는데 성공하는 등 나름대로 ‘성공한 총리’로 인정받았다. 친한파인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총리로부터 파벌을 물려받은 그는 일한의원연맹 창립회원이자 현재 이 연맹의 부회장을 지낼 만큼 친한파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는 서로 한차례씩 양국을 공식방문했으며 그의 총리 취임이후 한·일 관계는 어느 때보다 탄탄대로를 걸어왔었다. 그러나 공명당과의 3당연정 이후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야당으로부터는 중의원 조기해산을 요구받고 3일 자유당이 연정에서 떨어져 나가는 등 최근 ‘시련’이 겹쳤다. 26세에 중의원 선거에 나서 첫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당시 하시모토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와 함께 당선된 그는 선거구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등 정계의 거물들과 겹쳐 언제나 3위로 당선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김균미기자. *오부치 왼팔… 관방장관으로 입각. 오부치 총리가 혼수상태에 빠지기 직전 병실에서단독면회하고 총리대행을맡으라는 구두지시를 받을 만큼 최측근으로 꼽힌다.전임이었던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자민당 간사장대리가 오부치의 오른팔이라면 그는 왼팔격이다. 지난해 10월5일 2차 연정내각이 출범하면서 관방장관으로 첫 입각했다.1934년 시마네(島根)현 출신.참의원 3선으로 선수(選數)는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총리 측근이라는 점에서 기용됐다.와세다(早稻田)대학을 중퇴한 그는 오부치 총리의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 다케시다 노보루(竹下登) 총리의 비서를 거쳐 시마네 현의회 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86년 참의원에 당선됐으며 국회에서는 참의원 농수산위원장을 지냈다. 오부치 총리가 교체될 경우 차기총리가 취임하기 전까지 내각법에 따라 총리대행으로서 전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자민당이 곧 차기 총리를 지명할 것으로 보여 대행체제는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부치총리 입원사실 22시간이나 숨겨.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국세가 예상보다 중태로 알려지면서 일본열도는 상당한 충격에 휩싸인 표정이다.그러나 총리유고에 해당되는 사태에대해 일본 정부가 뒤늦게 발표함으로써 일본에서 비난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병세 오부치 총리는 2일 오전 1시쯤 신체이상을 호소,도쿄 쥰텐도(順天堂)병원에 입원했다.검사결과 뇌경색으로 밝혀졌다.다소 비만형인 그는 평소 혈압이 높았던 상태에서 입원 하루전 자유당의 연정탈퇴로 무척 고심하다 뇌경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1일 밤 자유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당수와만나 연정탈퇴에 대해 격론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심장에도 지병이 있어 87년 자민당 총재 선거때도 입원한 적이 있었던 그는 한달 1차례 정기검사를받아오며 건강에 신경을 각별히 써오다 끝내 쓰러졌다. 게다가 최근 경찰 및 자위대의 비리가 잇따라 터진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지지율마저 하락해 심적 피로가 극도에 달했다는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총리대행에 따르면 그가 오부치 총리를 단독면회한 2일 오후 7시에는 의식이 있었다.이 자리에서 오부치 총리는 “병세가 중할 경우 대행을 맡으라”고 지시했다.그러나 갑자기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로실려갔으며 9시30분쯤 혼수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현재 오부치 총리의 중환자실에는 부인이 간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또 차녀인 유코씨도 영국에서 급거 귀국중이라고 측근들은 밝혔다. ◆과거의 예 80년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총리와 94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공무수행중 긴급입원했다. 오히라 총리는 중참 양원의 선거전 심근경색으로 5월31일 입원,12일만인 6월12일 타계했으며 스즈키 젠코(鈴木善幸)가 총리직을 이어받았다.당시 일본정부는 12일간 총리 대행을 임명하지 않다가 오히라 사망직후 관방장관에게대행을 맡겼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선진7개국 정상회의의 만찬중쓰러져 잠시 입원했으나 곧 업무에 복귀했다. ◆주변국 반응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민주당 기금마련 행사참석을 위해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도착한 직후 “나와 미국 국민들은 오부치 총리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서 “아울러 미국은 아오키 총리대행과 협력하고 확고한 미·일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주룽지(朱鎔基) 총리도 3일 오부치 총리가 조기에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서한을 주일 중국대사관을 통해 일본 정부에전달했으며 러시아 외무부도 오부치 총리의 쾌유를 빌었다. ◆뒤늦은 발표 오부치 총리의 입원사실은 무려 22시간30분 뒤에나 발표됐다. 2일 밤 11시 NHK 방송이 첫 보도하면서 알려지자 아오키 관방장관은 30분뒤에서야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갖고 입원을 공식확인했다.더욱이 총리 동정에대해 “2일 오전 6시 일어난 뒤 종일 내방객이 없어 집에서 정책연구 등으로시간을 보냈다”는 허위 발표까지 했다. 정부가 총리의 입원을 즉각 사실대로 발표하지 않은 것은 총리 유고에 따른위기의식과 함께 자민당내에서 오부치 총리의 후계문제 등에 관한 입장이정리될 때까지 시간을 벌려고 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황성기기자. *당내 3번째 파벌 주도 現간사장. 모리 간사장은 지난해 가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오부치 총재의 재선을 적극 도운모리파 회장.자민당내 오부치,에도·가메이파에 이어 의원 62명을 확보하고 있는 당내 3번째 파벌을 이끌고 있다. 중의원 10선으로 건설·문부·통산 장관을 지냈으며 당 정책조정회장,총무회장을 거쳐 현재 간사장을 지내며 차기나 차차기 총리를 노려왔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선거에서는 입후보하지 않고 에도·가메이파와 함께 오부치를 밀어 그의 재선을 도와 오부치파로서는 그를 ‘우군’으로 여기고 있다.와세다(早稻田)대 출신으로 보수우익지인 산케이(産經)신문 기자를 거쳐 1969년 첫 중의원에 당선됐다.
  • 안중근의사 순국 90주기/ 安의사 의거와 ‘대한매일신보’

    구한말 구국항일지 ‘대한매일신보’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 다음날부터 관련기사를 대서특필,민족지로서의 면모를 한껏 과시했다.특히 안 의사의 사형언도일인 1910년 2월 14일을 전후해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공판내용을 보도했다.또 안 의사의 옥중소식이나 가족근황 등에 대해서도 대대적으로보도한 것으로 나와 있다. 안 의사 의거 다음날인 10월 27일자 대한매일신보(한글판)는 하얼빈발 26일자 전보를 인용,이토가 하얼빈역에서 ‘한국사람’에게 총을 맞은 사실을 보도하였다.같은 날짜 ‘잡보’에서는 ‘조선일일신문’의 호외보도를 인용,이등박문이 26일 아침 암살당하였다고 보도하였다.11월 21일자에서는 일본 ‘대판조일(大阪朝日)신문’의 보도를 인용,안 의사가 예심에서 밝힌 이토를처단한 이유 15항을 실었는데 그 내용은 1.명성황후 살해 2.을사조약 체결,… 5.군대해산 등이다.이 해 12월 5일부터는 뤼순감옥에 수감중이던 안 의사의 동정을 변호인 등 면회자들의 입을 통해 ‘뤼순통신’이란 제목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1월 29일자 ‘시모시자(是母是子)’라는 기사에서는 안 의사의 어머니 조(趙)마리아 여사가 “중근은 러일전쟁 이후로 줄곧 위국헌신 사상을 가지고있었으며 국채보상금 모집때도 아내의 패물을 기꺼이 내놓았다”며 아들을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두고 조 여사의 인간됨이 한국에서 드문 인물이라고보도하였다. 한편 안의사에 대한 재판이 본격 시작된 이듬해 2월부터는 공판내용을 연일지면의 절반 가량을 할애해 보도하기 시작했다.안 의사에게 ‘살인죄’로 사형이 언도된 14일을 전후해 12일자부터 대한매일신보는 10회에 걸쳐 이를 보도하였다.15일자에서는 안 의사가 최후변론에서 “나는 일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의군(義軍)의 참모중장으로 이 거사를 한 즉 의전(義戰)의 포로이니 보통 형사피고인으로 처리함은 불가하다”고 진술한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순국 하루전인 3월 25일자에는 안의사가 변호인을 통해 한국동포에게 보내는 유언을 실었다. “한국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3년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그 목적을달성치 못하고 여기서 죽노니 2천만 형제자매들은 분발하여 학문을 면려하고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유지를 이어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나는 아무런유감이 없다” 이밖에도 대한매일신보는 안 의사가 옥중에서 작성한 편지 6통을 남긴 사실도 보도하였다.이 편지들은 안 의사가 사형언도 당일 어머니와 부인 앞으로쓴 2통과,홍(洪)신부,아우 명근(明根),민(閔)주교,숙부 등 4명 앞으로 쓴 4통 등 모두 6통이다.천주교 신자인 안 의사의 편지 첫머리는 모두 ‘야소(耶蘇,예수)를 찬미합니다’,‘아멘’ 등으로 시작하고 있다.특히 부인 앞으로보낸 편지에서 안 의사는 “이슬과도 같은 허망한 세상에서 천주의 안배로배필이 되고 다시 주(主)의 명(命)으로 이에 헤어지게 되었으나 또 멀지 않아 주의 은혜로 천당영복의 땅에서 영원(靈源)에 모이려 하오…장남 분도는신부가 되게 하려고 마음에 결정하였으니 잊지말고 천주께 바쳐 신부가 되게하시오”라고 부탁하였다. 한편 대한매일신보는 안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당일 이를호외로 보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실물은 전하지 않고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安의사 유해발굴 70년대부터 추진. 우리 정부는 지난 77년부터 안의사의 유해 발굴작업을 추진해 왔으나 아직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중국과 수교 이전에는 현장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데다 그 이후도 중국이 북한을 의식,적극적인 협조를 보이지 않고있기 때문이다. 안 의사 유해발굴작업은 80년대 중반부터 정부차원에서 본격 추진됐다.86년12월 정부는 외무부(현 외교통상부)·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중국 당국에 협조요청을 한 바 있으며,88년에는 중국을 방문한 학자들을 통해 조사를 의뢰했으나 별 성과는 없었다.89년 안의사 의거 80주년 기념 학술회의 참가차 당시보훈처 관계관이 뤼순감옥을 처음 답사했으나 묘소위치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2년 뒤인 91년 중국지역 독립운동관련 사적지 답사차 방중한 학자 및 관계공무원 일행은 뤼순감옥 뒷편의 공동묘지가 모두 발굴된 후 일반건물이 들어섰으며,안 의사 묘소의 이장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특히 이들은 북한측에서도 수 차례 안 의사 묘소를 방문,조사를 벌였으나 묘소위치 확인에 실패하였다는 사실을 들었다. 92년 안 의사 유가족과 안의사숭모회 관계자 등이 현지 방문조사를 벌였으나 특별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93년 8월 한중외무차관 회의시 우리정부는다시 협조요청을 하였으나 중국측은 묘소확인의 어려움과 안 의사가 북한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명했다. 이 해 11월 정부는 광복50주년행사의 일환으로 범국민적 차원에서 일본내자료수집과 관련자 면담 등 다각적인 노력을 벌였으나 이 역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94년 방한한 중국 문화부 장관은 조사결과 근거자료가 없어 묘소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우리정부에 공식 전달한 바 있다. 한편 북한은 지난 70년대 중반 김일성 주석의 특별지시와 중국당국의 특별협조를 얻어 뤼순감옥 기록 등을 검토하고 감옥 주변을 조사했으나 유해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의사 90주기 행사 참석을 위해 최근 방한한 안 의사의 유일한 직계손자인 안웅호(安雄浩·67·재미)씨는 방한기간중 안 의사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굴될 경우 안 의사 유해 진위확인에 필요한 DNA검사 등을 위한 혈액·머리카락 등의 채취에 참여할 계획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최근 도쿄에서 공개된 자료를 입수,검토하여 유익한 자료로 판단될 경우 정부차원에서도 묘소발굴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특별제언/ 安의사 유해 찾아 판문점에 모시자. 그날 중국 뤼순(旅順)은 흐린 날씨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찌 하늘인들천하 대장부, 만대 의사가 가는 길에 무심하겠는가. 안중근의사는 모친이 새로 지어 보낸 한복(상의는 백무지, 하의는 흑색)으로 갈아입고 얼굴에 희색을 띠며 형장으로 향했다.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달리 유언할 아무것도 없지만 원래 나의 거사는 오로지 동양평화를 위한성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바라건데 오늘 임검한 일본관헌도 행여 나의뜻을 양지한다면 피아의 구별없이 합심협력하여 동양평화를 기도하기를 절망(切望)할 뿐이다. 덧붙여 내 요망은 죽음을 앞두고 동양평화만세를 삼창하고싶다”고 유언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그의 마지막 소원도 거부하고 형을 집행했다. 교수형이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15분, 당시 안의사는 32세, 국적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지 5개월 되는 날로서 생을 접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였다. 집행전날 면회온 두 동생이 슬퍼하자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꼭 죽는 법, 죽음을두려워할 내가 아니다. 삶은 꿈과 같고 죽음은 영면하는 것, 조금도 어려운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동생들을 달랬다. 사마천은 일찍이 사람은 한번 죽지만 그 의의는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있고기러기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다고 했다. 정의를 위한 죽음은 태산보다 중하지만 불의한 장수는 기러기털보다 가벼운 것, 안의사의 속령 32세를 어찌 짧다고 하겠는가. 안의사의 순국을 청국의 원세개(袁世凱)는 이렇게 찬양했다. 平生營事只今畢 死地圖生非丈夫 身在三韓名萬國 生無百歲死千秋 평생 벼르던 일 이제야 끝냈구나 죽을 땅에서 살려는 건 장부아니고 몸은 한국출신이지만 이름 만방떨치니 백년못사는 인생 죽어 천년을 가리. 순국 5분후 안의사의 관은 백포(白布)에 쌓여 뤼순감옥 성당에 안치되어 우덕순·정도광·유동하 3동지에게만 마지막 예배를 시키고 오후1시 감옥묘지에 매장되었다. 안의사는 동생들에게 “유골은 하르빈공원묘지에 묻었다가국권회복 후 고국으로 반장하라”고 일렀다. 기록마다 ‘고국’또는 ‘고향’으로 표기가 다르다. 백암 박은식은 거사 후에 쓴 ‘안중근전’에서 ‘국권회복이 반장고토(國權回復而返葬故土)’라 하여 ‘고토’라고 표시했다. 안의사의 고향이 황해도신천인 관계로 북한이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어 유언의 내용은 중요한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로’모시느냐가 아니라 유해를 찾는 작업이 급선무다. 유해를 찾게되면 판문점이나 휴전선에 남북함께 안의사기념관을 짓고 그곳에 봉안했다가 통일후 고향에 안장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건국이래 처음으로 안의사의 유해발굴문제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한 일이다. 때마침 안의사 유골발굴위원회 도교(東京)사무국에서유해 매장장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되어유해발굴 가능성을 높이고있다. 안의사 순국 90주년, ‘국권회복’55년만에 이제야 의사의 유해발굴에 나선것은 남북한 7천만 동포의 부끄러운 일이지만, 새천년 벽두에 남북이 함께참여하여 유해발굴이 성사된 다면 민족적 경사가 될것이다. 안의사는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형집행으로 완성하지 못하고 서론 부분만 집필했지만 그의 사상과 활동의 연관성을 어느정도 보여준다. 그는 동양평화를 실현하고 일본이 자존(自存)하는 길은 한국의 국권을 되돌려 주고 만주와 청나라에 대한 야욕을 버린 뒤 서로 독립한 3국이 동맹하여서양 세력의 침략을 막고 나아가 개화의 역(域)으로 진보하여 구주와 세계각국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진력해야 한다고 했다. 90년전 안의사의 주장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동양 3국은 ‘구주와 세계각국’과 더불어 세계평화를 위해 진력해야 할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이 통일되어 한·중·일의 ‘독립한 3국’이 정립하여 아시아 평화와공존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안의사 순국 90주년의 의미이며 그의 유지(遺志)이기도 하겠다. 김삼웅 주필 kimsu@
  • 마이클 더글러스, 英의회 연설서 ‘핵 무정부상태’ 경고

    [런던 연합] 미국의 인기배우 마이클 더글러스는 20일 영국의회 연설을 통해 ‘핵 무정부상태’를 경고하고 영국이 미국과 러시아에 핵무기를 감축하도록 압력을 가해줄 것을 촉구했다. BBC 방송에 따르면 더글러스는 “양국의 전통적 우호관계로 영국의 미국에대한 영향력은 특별히 강하기 때문에 영국은 지도적 역할을 맡을 수 있는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미국과 러시아간의 교착상태를감안할 때 또다른 핵 강대국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98년 유엔 핵무장해제 특별대사로 임명된 더글러스는 이날 영국 의회에서세계적인 정치 지도자들 못지않은 환영을 받았으며 이날 이례적으로 많은 의원들과 총리실 및 외무부 관리들이 의사당을 메운 가운데 연설했다. 그는 미국의 ‘스타 워즈’ 계획으로 핵확산 금지를 위한 3개의 조약이 위협을 받고 있다며 어느 때 보다도 대량파괴무기의 생산을 위한 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더글러스는 국가간의 불화로 지구 전체를 죽음으로 몰고갈 수 있는핵 무정부상태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 외교전문가가 쓴 ‘에센스 삼국지’

    동양 최고의 고전 가운데 하나인 삼국지를 외교 전문가가 한권의 책으로 압축했다.‘에센스 삼국지’(해누리 펴냄)가 그것. 시인이기도 한 저자인 이동진씨는 현재 외무부 본부대사로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과 국방대학원을 거쳤다.그는 이런 전문성을 살려 삼국지의기본 테마인 외교·국방의 진수를 전해준다. 삼국지는 중국 후한의 역사가 진수의 정사(正史)를 나관중이 소설화한 것. 시대 배경은 중국의 후한 영제때부터 진무제가 천하를 통일할 때까지 97년간이다.정치 군사 외교 전략은 물론 삶의 지혜와 비전을 담고 있어 미국 육사인 웨스트포인트에서도 군사전략 교과서로 삼은 적이 있다. 저자는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있는 것이 삼국지이지만 문체가 너무고답적이면서 이야기가 장황한데다 뒤로 갈수록 전개가 지루하고 긴장감이떨어지는 결점 때문에 아직도 완독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면서 “이런 문제점을 감안해 삼국지를 나름대로 새롭게 꾸몄다”고 말한다.따라서 한문투의문체를 한글체로 바꾸고 사소한 등장인물이나 장면을 과감히 잘라내 첫장부터 끝장까지 긴장감을 살리고 있다.값 1만5,000원. 정기홍기자
  • [공무원 교육기관 탐방](5)외교안보연구원

    해방 직후 우리나라가 외교권을 회복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외무부(현외교통상부)에는 때아닌 ‘댄스 교습령’이 내려졌다.장택상(張澤相)외무장관이 유엔한국위원회 대표,주한 미군장교,국내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창덕궁인정전에서 첫 외교파티를 열었다. 취흥이 어느 정도 돌자 댄스파티가 열렸는데 춤을 출 줄 아는 우리 외교관은 단 한명.장 장관은 파티가 끝난 뒤 “외교관들이 춤을 출 줄 몰라서 되겠느냐”며 서기관 이상 간부들에게 댄스를 배우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당시 사교춤이 성행했던 시대상황이 반영된 에피소드이기도 하지만 외교관들은 필요하면 춤도 출 수 있을 정도로 폭넓은 지식과 교양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서울 서초동의 외교안보연구원은 외교정책연구를 하는 한편 그런 외교관을 길러내는 산실이기도 하다. 외무고시에 합격한 새내기 외교관에서부터 중견 간부,해외 공관장도 여기서 교육을 받는다.해외에 파견되는 정부부처의 주재관들도 연구원을 거쳐야 한다.부인도 외교관 역할을 하는 탓에 교육은 부부동반으로 진행되기도한다. 이승곤(李承坤)원장은 “외교관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전문가)이기도하지만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일 수밖에 없다”며 외교관의 폭넓은 교양을 강조한다.상대국 외교관에게 우리나라 문화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국의 음악과 미술품을 놓고 대화하는 수준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까닭에 연구원에서는 우리의 음악·미술·문학을 가르치고 의전과 예절이몸에 익어 나도록 한다.물론 국제정세·외국어·한국외교의 주요이슈·북한정치·동북아정세·통상·협상과 교섭기법 같은 과목은 기본이다. 20∼30년 이상의 오랜 경력을 갖춘 연구원의 본부대사·연구위원들이 노련한 외교관 생활을 바탕으로 강의를 맡고 있다.연구원의 교육과정에서 최고의 인기는 의전실무 교육과정.용어는 거창하지만 에티켓과 테이블 매너 교육이다. 예를 들면 상대국 대통령에게 인사할 때는 목례를 한 다음 악수를 나눠야한다거나 초대받은 식사자리에서 식사하다 담배를 피면 여주인에 대한 일종의 모욕이 된다는 것이다.35년의 외교관생활 끝에 정년퇴직하고교육원의 명예교수로 근무하는 김창훈(金昌勳) 전필리핀대사는 “외교관으로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자질은 에티켓”이라고 말한다. 의전실무 교육과정에는 신라호텔 직원들이 초빙돼 칵테일 파티를 여는 법,테이블 매너 등을 가르친다.신선로와 빈대떡의 유래에서부터 한국요리에 대한 ‘이론무장’도 시켜주고 있다. 의전실무 과정은 외교관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인기이다.외국을 방문하거나 외국손님을 맞는 일이 잦아진 지방 공무원들이 에티켓을 배우러 몰려들고 있다.연구원은 한국 이해 프로그램도 개발해 지난해에는 주한 외교사절을 초청,교육하기도 했다.주한 외교관이나 가족들이 신문이나 주변 사람을 통해 우리나라를 단편적으로 알던 데서 벗어나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박정현기자 jhpark@
  • 南北 당국간 경협 제의

    [베를린 양승현특파원] 독일을 국빈 방문중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9일 하오(현지시간)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다”며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인 평화 및남북간 화해·협력을 위한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독일 통일의 교훈과 한반도 문제’라는 주제의 연설을 하는 자리에서 “지금까지 남북간에는 정경분리 원칙에의한 민간경협이 이뤄졌으나 이제는 정부 당국간 협력이 필요한 때”라면서▲정부 당국간 협력 ▲화해와 협력제안 적극 호응 ▲이산가족문제 해결 ▲특사교환 제의 수락 등 4개항을 북한에 촉구했다. 김 대통령의 이번 베를린 선언은 독일 통일의 상징 도시인 베를린에서 우리의 대북정책 기조와 방향을 천명함으로써 북한의 호응을 유도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통령은 정부 차원의 협력사업으로 ▲본격적인 경협을 위한 도로,항만,철도,전력,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 방지협정 등 민간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조성 ▲식량난 해결을 위한비료확보,농기구 개량,관개시설 개선 등 농업개혁 등을 적시했다.이어 “이러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국간 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북한은 2년전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해 우리측이 제안한 특사교환을 수락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또 “현 단계에서 우리의 당면 목표는 통일보다는 냉전종식과평화정착”이라면서 “우리 정부는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정신으로 힘이 닿는 대로 북한을 도와주려 하는 만큼 북한은 우리의 참뜻을 의심하지 말고 적극 호응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은 무엇보다도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적극 응해야 한다”고 이산가족 상봉을 거듭 촉구했다. 김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한반도 문제는 궁극적으로 남북한 당국자만이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앞으로도 이같은 정책을 성의와 인내심을 가지고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며 “독일등 국제사회도 조속한 시일내에 결실을이룰 수 있도록 성원과 지지를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국내 TV방송 4사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으며,독일의 일부 TV도 녹화 방영했다. 한편 정부는 김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에 앞서 9일 오후 박재규(朴在圭)통일부 장관 명의로 된 서한형식의 제안요지를 판문점 적십자연락관 접촉을 통해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 김용순(金容淳)위원장 앞으로 보냈다. 이와함께 미·중·일·러 4개국 대사에게도 외무부를 통해 관련 내용을 통보했다. yangbak@
  • 中·印 첫 안보회의 6일 개최

    ㅣ뉴델리 AFP 연합ㅣ인도와 중국은 내주 양국 역사상 최초의 안보회의를 베이징(北京)에서 갖게 된다고 인도 외무부 대변인이 2일 밝혔다. R.S.자살 대변인은 양국 안보회의가 두 나라의 외무부 관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는 6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열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회의에서는 주로 국제안보문제가 논의대상이 될 것이며 그외 핵확산문제에 대해서도 의견교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과 인도는 지난해 6월 자스완트 싱 인도 외무장관이 베이징을 방문했을때 양국 안보회의 개최에 합의했었다. 인도는 중국의 파키스탄에 대한 미사일 제공을 강력히 비난해 왔었다.그는그러나 중국·인도간 국경분쟁이 의제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 [이란 총선 개혁파 압승] ‘제2의 無血혁명’ 거셀듯

    이란에 ‘제2의 혁명’이 시작됐다.이란 국민은 개방과 자유화를 내건 개혁파에 압도적 지지를 보냄으로써 ‘현실노선’의 혁명을 선택했다.피를 흘리지 않는,민주적 선거 혁명을 통해 이란 국민들은 자유롭고 열린 사회로 변화하려는 열망을 전세계에 보여줬다.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이끄는 개혁파의 의석 86% 확보는 개혁파가 국회 다수파가 됐다는 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979년 이란혁명에 대한 반성,회교원리주의에 입각한 21년간 철권통치를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민의(民意)의 표현이다.이란 성직사회의 보수성으로 정치와 사회가 극도로 경직되고 국민생활을 향상시키는데도 도움이 되지못한 현실에 유권자들은 매서운 심판을 내렸다. 이같은 심판에는 혁명후 태어났거나 학생시절을 지낸 젊은층이 큰 역할을했다.유권자의 3분의 1이 25세이하이고 83%에 이르는 높은 투표율도 젊은층의 참정(參政)욕구와 높아진 정치의식의 산물이다. 97년 5월 취임한 하타미 대통령은 새 세대의 변화욕구를 누구보다 잘 정치에 반영하고 있다.복장,언론의 규제완화로 상징되는 그의 개방정책은 국민들의 뜻과는 달리 강경보수파로부터는 이슬람 지배체제 파괴라는 이유로 거센저항을 받아왔다. 사법,입법부를 손에 쥐고 번번이 하타미 정권의 개혁정책을 견제해온 보수파는 이번 선거를 통해 국회 소수파로 전락,권력기반 하나를 잃게 됐다.하타미는 국회를 손에 넣음으로써 개혁정책에 보다 탄력을 얻게 됐으며 민의를등에 업은 개방바람,풍요한 삶과 자유를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군부와 사법부,기득권층에는 보수파의 영향력이 남아있어 개혁·보수 대결은 불가피할 전망이다.하타미 정권의 개혁과 개혁파의 앞길은이같은 보수파의 도전과 견제를 어떻게 수용하고 무력화하는데 달려있다. 혁명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 사후 11년을 맞은 지금 이란에서 시작된 ‘새로운 혁명’은 이슬람 체제를 유지하는 개혁이라는 점에서 서방의 시각에서 한계를 지닐 수 있으나 변화를 바라는 이란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였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는 듯 하다. 황성기기자 marry01@. *세계 각국 반응. [워싱턴·런던·베를린·파리·앙카라·유엔본부 AFP 연합] ■미국 개혁파의 압승에 환영을 표시하면서도 이란의 실제적 정책 변화는 두고보아야 한다는 유보적 입장.제임스 폴리 미 국무부대변인은 “이란 국민의 분명한 열망이 차기 의회 의원들을 통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국 이란 총선 결과를 환영하면서 영국과 이란간 대화정책이 계속 추진되기를 희망.로빈 쿡 외무장관은 개혁파의 압승은 “현대화에 대한 이란 국민의 관심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면서 “영국 정부의 대(對)이란 대화정책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환영.외무부는 또 쿡 장관이 지난 1월카말 하라지 이란 외무장관의 영국 방문에 대한 답례로 5월경 이란을 방문할것이라고 공식 발표. ■독일 개혁파의 압승은 “고무적 사건”이라고 환영.안드레아스 미켈리스외무부 대변인은 “이란의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매우 중요한 신호이자 고무적 사건”이라고 환영하고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의 테헤란 방문을 위한 “구체적 준비”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언론은 그의 방문이 3월 5∼6일경이 될것이라고 보도.정부는 또 슈뢰더 총리가 곧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을 독일에 초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개혁파의 승리는 이란 국민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확인시켜 주었다면서 환영.외무부 대변인은 “유권자 대다수가 하타미 대통령의 지도력을 지지했으며,특히 투표율이 높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터키 환영과 함께 이란이 더이상 다른 나라의 강경 이슬람세력을 도와주지 말 것을 당부.뷜렌트 에제비트 총리는 “이란이 이슬람혁명을 수출하는 노력을 포기하길 바란다”며 이번 승리가 이란뿐 아니라 전세계 이슬람 사회와터키에도 도움이 되기를 희망. ■걸프지역 인접국들 대체로 총선 결과에 침묵,환영 일색인 서방진영과는 대조적인 모습.다만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선거 결과가 중동의 역내 및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걸프 국가들은 이란의 정치체제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 *총선 특징. 이란 총선후의 가장 큰특징은 여성 후보들의 약진과 개혁파 지도자들의 잇따른 석방이다.18일 치러진 총선에서 여성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고, 반혁명등의 혐의로 복역중이던 개혁파 지도자들이 잇따라 가석방되면서 개혁의 물결을 실감케 하고 있다. 총 입후보자 6,000여명 가운데 513명의 여성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진 이번 총선에서 30여명의 여성이 의회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성의 정치적 참여도가 높은 유럽 선진국들에 비하면 낮지만,이전의 15명에 비하면 무려 2배 이상 늘어나는 등 이슬람권에서는 괄목할만한 수준이다. 이같은 여성 후보들의 약진은 강제 결혼 및 남녀 임금차별의 철폐,남녀 법적 평등권 보장 등을 공약을 내놓은 여성 후보들에게 몰표를 몰아준 여성들과 변화와 개혁을 지지하는 젊은층이 정치에 큰 관심을 보인 덕분이다. 반혁명 혐의 등으로 복역중이던 개혁파 지도자들이 잇따라 석방되는 점도개혁의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개혁파 지도자로 부통령과 내무장관을 지낸 압둘라 누리가 이미석방된데 이어,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측근인 모흐센 카디바르도 풀려났다.누리씨는 “총선 결과는 미래를 확실히 보장해줄 뿐 아니라,앞으로 정부정책도 국민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규환기자 khkim@. *개혁파 승리 원동력은.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던 20세기 지구촌에 이란은 외세를 배격한 정치혁명을일궈냈던 국가로 꼽힌다.그 정신은 테러 등으로 퇴색해왔으나 이를 가능케했던 비타협적 국민성은 오랜 잠복기를 뚫고 21년만에 선거혁명으로 회생한셈이다. 개혁파의 압승을 몰고온 18일 이란 선거혁명은 학생,여성,신문매체 등 3주체의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가운데 점화력에서 단연 폭발적인 것은 역시 학생들을 포함한 젊은층. 전인구의 3분의2가 30세이하인 이란에서 젊은층은 개혁의 지렛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97년 대선을 통해 하타미 정권을 창출,‘킹메이커’로 부상한이들은 개방·개혁정책이 수구파 제동으로 비틀거릴 때마다 시위를 통해 보수세력을 견제하며 개혁 정권을 지켰다.테헤란 대학은 특히 급진적 개혁파의사상적 아지트로 꼽히고있다. 여성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대거 유권자에서 출마자로 탈바꿈했다.전체 후보자 가운데 7%인 513명이 여성이었다.이는 총선 사상 유례없는 비율로 꼽힌다.수도권에서 그 비율은 15%에 달했다.79년 이슬람혁명으로 사법부에서 여성이 축출되는 등 지위가 급추락했던 여성들은 임금,상속권,결혼 등 모든 면에서 양성평등을 주장하며 개혁파 지지,또는 직접출마를 통해 바람을 일으켰다. 신문매체의 활성화는 하타미정부의 대표적 승부수로 꼽힌다.신문발행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보수파가 쥐고있는 폐간,검열권을 무력화했다. 보수파가 신문을 하나 없애면 다음날 진보지 두개가 새로 솟아나는 양상이이어졌다.방송이 수구파의 엄격한 통제속에 맥을 못출수록 가판대 앞에는 개혁파의 주장을 담은 신문 한장을 구하려 인파가 꼬리를 무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슬람혁명이 회교국가들에 회교혁명을 수출했듯 선거혁명 또한 아랍권에막대한 파급효과를 미칠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서방우호적인 하타미 정부가의회를 장악,과거 알제리,이집트 등지에서의 피바람나는 보복테러에 대한 지원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아프가니스탄,수단,알제리 등 각국 회교근본주의자들의 반미성향도 크게 누그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英, 기독교 색채 배제 추진

    [브뤼셀 연합] 영국 정부가 서력기원 표시의 기독교적 성격을 배제시키기위해 현재 통용되고 있는 A.D.(라틴어 Anno Domini의 약자) 대신 C.E.(Common Era)를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23일 ‘우리 주 구세주의 시대’라는 기독교 표현 A. D.가 여러 종교간 공존과 화합이 중요시되는 현대사회의 성격에 맞지 않아연도는 같지만 기독교적 의미가 없는 C.E.표시로 바꾸는 것을 영국 내무부가 추진중이라고 보도했다. 내무부 소식통들은 외무부와 통상산업부도 이 표시법에 호감을 보이고 있다면서 우선 비기독교 국가나 외국기업과의 공식 합의문서에 사용하는 방안이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 표기법에 따르면 기원전 표시는 B.C.(Before Christ)에서 B.C.E.(BeforeCommon Era)로 바뀌게 된다. 신문은 그러나 영국 국교회 관계자들이 이같은 표시법 채택 움직임에 분노를 표시하면서 저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 佛외무부 새달초 訪北

    프랑스 외무부대표단이 2월 초 평양을 방문,북한 관리들과 관계개선 문제를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관리들은 방북기간 북한 내각 관계자를 만나 관계개선 문제와 대북 지원 등 현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오일만기자
  • 보스니아·코소보 사태 戰犯 아르칸 피살

    [베오그라드 런던 외신종합]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사태 당시 인종청소로악명을 떨친 세르비아계 전범 아르칸(47)이 15일 베오그라드의 인터콘티넨털호텔 로비에서 무장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유고연방 국영 탄유그통신은 본명이 젤리코 라즈나토비치이나 ‘살인기계’ ‘도살자’ 등의 별명으로 더잘 알려진 아르칸이 경호원 1명 등 2명과 함께총격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총격후 현장을 봉쇄한 채 용의자 체포에 나섰으나 검거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일부 목격자들은 괴한들의 수가 1∼2명이라고 말했다. 영국 외무부도 즉각 성명을 발표,아르칸의 사망을 확인하고 “보스니아와코소보에서 인종청소를 주도해온 그와 추종자들을 헤이그 전범재판소에 세워정의를 실현할 기회를 놓친 게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아르칸이 숨졌다는 뉴스에 대해 코소보주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한편 유고의 야당들은 아르칸이 그동안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공모해 너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거됐을 것이라며 총격 배후에 의혹을 제기했다.
  • 英, 칠레 前독재자 피노체트 석방 결정

    [산티아고·런던 AFP AP 연합] 영국 내무부는 11일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4)의 건강진단 결과 재판을 받기 어려울 만큼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 그를 풀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또 피노체트를 스페인에인도하는 절차를 중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영국 주재 칠레 대사관은 지난해 10월14일 피노체트가 뇌졸중을 일으키는등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며 영국정부에 건강진단을 요구했었다. 피노체트 석방조치에 대해 스페인 외무부는 “신병의 스페인 인도를 명령한 지난해 영국 법원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있으며 이런 방침은 영국 정부의 피노체트 석방결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다.스페인은 피노체트가 칠레 통치시절 인권유린을 자행했다는 혐의와 관련,그를 재판에 회부하겠다면서 영국에 신병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후안 가브리엘 발데스 칠레 외무장관은 “영국 정부가 미묘한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한데 대해 감사한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칠레의 정치 사망자 유가족협회와 인권단체들은 영국의 조치에 대해충격을 받았다며 “우리는 피노체트가 칠레로 돌아온 뒤 ‘인도주의적 이유’로 재판을 받지 않게 될 가능성에 분노와 무력감을 느낀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한편 영국이 피노체트에 대한 인도절차를 중단한다 해도 그를 칠레로 돌려보낼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피노체트의 신병처리에 관한 최종 결정은 칠레당국과 함께 그의 인도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스페인,벨기에,프랑스,스위스는 물론 국제사면위원회(AI)등 여러 인권단체의 주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려질 전망이다.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마음부자가 되자

    우리는 가끔 “저 사람은 입지전적 인물이다.이건 인간 승리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어려운 여건이나 도전을 이겨내고 큰 성취를 이룬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뜻으로 ‘역사는 상황의 객관성과 행위자의 주관이 결합할 때현실로 구현된다’는 말이 있다.주어진 객관적 여건도 중요하지만 당사자가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실제의 결과가 좌우된다는것이다.좋은 예가 있다.지금은 사정이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에 대관령 고갯길은 꼬불꼬불하고 도로폭이 좁아 사고 위험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오히려 도로여건이 좋은 고속도로 같은 곳에서 사고가 훨씬 많았던것으로 기억된다.그것은 바로 그 길을 달리는 운전자의 마음가짐이 달랐기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당시 외교안보연구원은 한남동에 있었는데,변변한 회의실이 없어 국제회의를 해야 할 때면 호텔을 이용해야 하는 등 불합리한 요소가 많았다.나는 새로 청사를 짓는 것이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물론 예산 확보 등 어려움이많았다.나는 직접 관계부처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고,또 설득했고 그 결과 지금의 서초동 청사를 지을 수 있었다. 지난 91년 제5차 남북고위급 회담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당시 몇가지 핵심쟁점을 놓고 남북간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이번에는 어렵겠다.다음 회담으로 미루자”는 의견도 있었다.그러나 우리는 된다는 믿음으로 협상을 계속했고 밤을 꼬박 새운 끝에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를 탄생시킬 수있었다. 세상사를 자조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특히 대북 정책과 관련하여 “우리가 한반도 냉전종식을 주도할 힘이 있느냐”,“북한은 절대 안 변한다”는 등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나는 묻고 싶다.“그러면 그냥 주저앉아 하늘만 바라보고 있자는 말인가?” 금세기 우리는 많은 것을 겪었다.식민의 좌절과 가난의 고통,분단의 아픔과 동족상잔의 쓰라림까지,그리고 최근에는 외환위기로 국제기구에 국가 경제운용을 맡겨야 하는 치욕까지 겪었다.이제 곧 새 천년이 시작된다.지난 시대의어두웠던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다. 대관령 고갯길을 넘는 운전자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우리 모두 해낼수 있다는 마음 부자가 될 때 통일과 21세기는 활짝 열릴 것이다. 林東源 통일부장관
  • 日초당파의원 北도착…국교정상화 교섭재개 논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를 단장으로 한 일본 초당파의원 방북단이 1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북한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일본의 자민·민주·공명·자유·공산·사민당 등 여러 당 의원들로 구성돼 있는 ‘정당대표단’이 외무부 관리,기자 등과 함께 평양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공항에는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과 송호경 부부장 등 관계부문 간부들이 대표단을 맞이했다. 이 방북단은 중단된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를 위한 환경 정비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무라야마 단장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 명의로 김정일(金正日) 당 총비서에게 전하는 친서를 휴대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방북단 의원들은 2일 김용순(金容淳) 당중앙위 비서 등 북한측 관계자들과회의를 갖고 양국 정부간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합의문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또 3일에는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예방한 뒤 같은날 오후 귀국할 예정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김종필 후임총리 누가될까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의 후임에는 ‘행정총리’가 임명될 가능성이 큰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김총리의 후임으로 거론됐던 박태준(朴泰俊) 자민련 총재는 30일 “총리직을 맡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또 여권에서 꾸준히 접촉해온 한나라당 이한동(李漢東)의원도 영입이 이뤄지더라도 총리실로는 오지 않을 것같다.두 사람 모두 내년 총선에서 의원직을 확보한 뒤에나 총리 자리를 바라볼 태세다. 박총재가 아니더라도 자민련측에서 총리를 맡을 개연성은 남아있다.그것이지난 대선 당시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합의이며,공동정권을 유지하는 상징적인 조치이기 때문이다.그런 이유로 자민련의 김종호(金宗鎬)의원 등이 자천타천으로 거명된다.의원이 아닌 제3의 인물을 자민련이 추천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당의 색깔을 부각하기 위해 공노명(孔魯明) 전 외무부장관처럼 보수적인 인물을 영입해 내세울 것이라고 자민련 관계자는 전망했다. 그러나 김총리는 최근 사석에서 “대통령에게 후임을 천거하지 않겠다”고밝힌 것으로 알려진다.김총리는 특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최근 옷 로비 사건 등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할 수 있도록 총리와 각료 선택의 폭을넓혀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나온다.어차피 자민련도 총선을 앞두고총동원령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내각을 기웃거릴 여력도 없다.따라서 후임총리와 내각은 정치색을 배제한 행정내각,실무내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총리실 관계자들은 분석한다.다만,김대통령이 지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경북 출신인 이수성(李壽成) 전 총리를 재등용하거나 부산 출신인 한완상(韓完相)전 통일부총리 등을 발탁할 가능성도 총리실에서는 거론된다. 이도운기자
  • 英-리비아 16년만에 復交

    [런던 AFP AP 연합] 영국과 리비아가 단교 16년만에 외교관계를 정상화시킨다. 로빈 쿡 영국 외무장관은 22일 하원에 출석,다음달 리비아에 대사를 파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쿡 장관은 84년 영국주재 리비아대사관 앞에서 살해당한 여경찰 유족들에대한 리비아의 보상이 이미 끝난 상태라면서 이로써 리비아와의 외교관계 복원의 걸림돌이 모두 제거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양국 외교관계 단절의 원인이 된 84년의 여경찰 살해사건은 리비아 반정부시위대에 둘러싸여 있던 런던주재 리비아 대사관내에서 날아온 총탄에 당시25세이던 여경찰 이본 플레처가 사망한 사건이다. 쿡 장관은 보상시기와 액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영국 외무부의대변인은 지난 여름 리비아가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리비아는 이에 앞서 지난 4월 88년 스코틀랜드에서 발생한 팬암기 공중폭파 사건 용의자의 신병을 인도,영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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