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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은경 외교부 사무관에게 듣는 외교관후보자 2차 시험 공부법

    손은경 외교부 사무관에게 듣는 외교관후보자 2차 시험 공부법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24일 2015년 외교관후보자 1차 시험 합격자 309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1차 시험에는 모두 806명이 지원했다. 올해 최종 선발예정 인원은 지난해보다 2명 줄어든 37명이다. 1차 시험 합격자의 평균 점수는 73.50점으로 지난해(72.01점)보다 1.49점 올랐으며, 여성 합격자 비율은 63.4%(196명)로 지난해 63.9%(211명)에 비해 다소 낮아졌다. 합격자 평균 연령은 26.5세로 지난해(26.7세)와 비슷했다. 2차 시험은 5월 14일부터 이틀간 치러지고, 3차시험(면접)은 9월 18일과 19일로 예정돼 있다. 서울신문은 2차 시험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은 물론 외교관 꿈을 키우는 수험생을 위해 현재 외교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손은경 사무관의 공부법을 들어 봤다. 손 사무관은 남미국가에서 보내온 각종 문서와 전자우편을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해 12월부터 외교부 중남미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손 사무관은 남미와 관련한 크고 작은 행사와 회의 준비만으로도 하루가 짧다. 아직 업무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다 보면 밤늦게 퇴근하는 일도 잦다. 손 사무관은 초등학교 때부터 외교관을 꿈꿨다.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을 위해 수험생활을 시작하면서 손 사무관은 규칙적인 생활과 현실감각 유지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30분까지 공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날마다 실제 공부한 시간을 초시계로 측정했다. 꼼꼼한 성격 덕분에 효율적인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셈이다. 밥을 먹거나 집중력이 떨어질 때는 신문과 논문을 읽으며 현실감각을 유지했다. 특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주요 현안을 꼼꼼히 챙긴 것이 시험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됐다. 손 사무관은 매일 오전 9시 전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독서실에 자리를 잡았다. 독서실로 가는 버스에서 조문이나 판례, 신문을 챙기고 그날 해야 하는 과목 및 분량 등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틈새 시간을 활용해 공부 일정 등을 정리하거나 계획을 세운 것이다. 오전에는 주로 답안지 작성 스터디를 했고, 오후에는 동영상 강의와 학원 수업을 듣거나 자습을 이어 갔다. 손 사무관은 “2차시험 직전에는 최대한 혼자 생각해 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스터디 모임은 토론보다는 답안지 작성 연습을 통해 실전 감각을 높이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은 1차와 2차 시험 간격이 2~3개월로 짧은 편이다.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가운데 일반외교분야는 2차 시험이 전공평가시험과 학제통합논술시험 I, II로 구성된다.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2차 시험 중 전공평가시험은 국제정치학, 국제법, 경제학 세 과목이다. 손 사무관은 ‘기본서 정독→과목별 핵심개념 정리→기본서에 있는 문제 풀이→스터디 모임을 통한 정보 공유 및 답안지 연습→기출문제에 대한 답안지 작성’ 순으로 공부를 이어 갔다. 과목별 공부법을 들여다보면, 국제정치학은 평소에 보던 기본서를 속독하고 노트에 따로 정리해 놓았던 핵심 개념과 주요 사건, 중요 논문 요약내용을 반복해서 읽었다. 손 사무관은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서 동영상 강의를 보면서 최종 정리를 했다. 국제법의 경우 기본서와 판례 요약 노트를 반복해서 보면서 조문을 꾸준히 암기했다. 공부모임을 통해 모의고사 답안지 작성을 연습하고 기출 문제를 풀면서 실전 감각을 유지했다. 경제학은 동영상 강의로 중요 개념을 암기한 뒤, 시사 이슈에 경제 이론을 적용해 그래프를 그리는 식으로 학습을 이어 갔다. 손 사무관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외무고시에서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으로 바뀌면서 신설된 학제통합 논술시험이었다. 손 사무관은 “신설된 시험이라 기출자료가 없어 준비하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학원에서 만든 모의고사 문제를 구해서 풀고, 추가로 3과목 모두 적용 가능한 주제를 계속 생각하고 적용하며 전공평가시험을 공부했다. 3차 면접은 집단 토론, 개인 발표, 인성평가 3가지로 나뉜다. 손 사무관은 다른 수험생과 마찬가지로 2차 합격자들과의 면접 스터디와 외부 면접 스터디를 병행했다. 손 사무관은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말하기, 상대방과의 의견 차이를 좁혀 나가기, 발표문을 이해하기 쉽게 작성하기 등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집중적으로 준비했다”고 조언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정신적인 고충이었다고 손 사무관은 전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곤 하지만 공부 기간이 길어질수록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손 사무관은 “친구들 가운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나만 인생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많았다”고 전했다. 2차 시험에서 두 번 연속으로 낙방했을 때는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손 사무관은 “5월에 있는 2차 시험을 앞둔 지금이 참 힘든 시기였다”면서 “시험을 이틀간 치르고 과목당 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길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체력관리와 학습 효율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불안감을 떨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사무관은 힘들 때마다 외교관이 된 모습을 상상하며 힘을 냈다. 손 사무관은 외교관후보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2차 시험이 끝날 때까지 일희일비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서 꼭 외교부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손 사무관은 “힘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외교관 꿈을 놓지 않았던 건 국가를 대표하고 국민을 위해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국립외교원에서 1년간 정규과정을 끝내고 처음 외교부에 입부했을 때는 외교원에서 함께 고생했던 1기 동기 모두가 외교부에 입부한 게 아니었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업무가 힘들기도 하지만 신기하고 가슴 벅찬 순간도 많다는 손 사무관은 “시험을 준비할 때 가졌던 간절함과 의지력을 잊지 않고 초심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효성그룹] 전직 대통령 3명과 연결…정·관·재계 혼맥 화려한 ‘권문세가’

    [재계 인맥 대해부 (4부)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효성그룹] 전직 대통령 3명과 연결…정·관·재계 혼맥 화려한 ‘권문세가’

    효성가문의 혼맥은 재벌가에서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전직 대통령들을 비롯해 주요 정·관·재계 인사의 집안들과 연결돼 있다. 상류층 사람들을 일컫는 ‘권문세가’라는 말이 자연스레 연상될 정도다. 경남 함안의 대지주 아들로 태어난 만우 조홍제 회장은 부친 조용돈과 모친 안부봉의 2남 4녀 중 장남이다. 15세에 진주의 대부호인 하세진 가문의 차녀 하정옥(작고)씨와 결혼했다. 만우 회장은 하 여사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뒀는데 효성가의 혼맥은 이들 2세부터 본격적으로 확장돼 3세 때 절정에 이르게 된다. 만우 회장의 장녀 명숙(작고)씨와 차녀 명률(88)씨는 각각 경남 진양 대지주 허정호(96) 전 서울신한병원 원장과 경남 산청 대지주 권동혁의 장남 권병규(작고) 전 효성건설 회장과 혼사를 맺었다. 장남인 조석래(80) 효성그룹 회장은 지난 22일 작고한 재정경제부 장관 출신 송인상 한국능률협회 명예회장의 삼녀 송광자(71) 여사와 32세 때 결혼했다. 경기여고,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송 여사는 공예작가로 2년 전에도 전시회를 열었으며 경운박물관장을 맡고 있다. 조 회장은 처가로 인해 이회창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총재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사돈의 사돈으로 발전했다. 송 명예회장의 장녀 원자(76)씨는 단암산업 회장인 이봉서(79) 전 상공부 장관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 전 장관의 삼녀인 혜영(43)씨는 이 전 총재의 장남 정연(52)씨와 부부가 됐다. 송 명예회장의 차녀 길자(73)씨는 고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과 결혼했는데 그의 장녀 정화(46)씨는 노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50)씨와 결혼했다가 2013년 이혼했다. 조 회장과 송 여사는 아들 셋을 낳았다. 장남 조현준(47) 효성 사장은 2001년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의 삼녀 미경(40)씨와 화촉을 밝혔다. 미국 뉴잉글랜드 음대를 졸업한 미경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삼남 재만씨의 부인 이윤혜씨의 동생이다. 조 사장과 재만씨는 동서 간이 되는 셈이다. 이로써 효성가는 전 전 대통령과도 사돈의 사돈이 됐다. 차남 조현문(46) 법무법인 현 고문 변호사는 2003년 이부식 전 과학기술처 차관의 장녀 여진(42)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1997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맡았다가 조 회장 부부의 눈에 들어 현문씨와 인연이 맺어졌다. 현문씨는 지난해 형인 현준씨를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가족 관계가 서먹서먹해졌다. 삼남 조현상(44) 효성 부사장은 2009년 김여송 광주일보 사장의 딸 유영(35)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사장은 특장차 제조업체 광림의 대표이사로, 김용주 행남자기 회장과 사촌 간이다. 비올리스트인 유영씨는 서울대 음대 수석 입학 이후 줄리아드 음대와 예일대 음대에서 학·석사를 받았다. 26세에 뉴욕대 조교수에 임용됐고 2004년부터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의 실크로드 앙상블 단원에 발탁돼 협연을 벌여 온 실력파다. 만우 회장의 차남 조양래(78) 한국타이어 회장은 지인의 소개로 홍긍식 전 변호사협회장의 딸인 홍문자(74) 여사와 혼인했다. 둘은 2남 2녀를 뒀다. 장남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은 차동완 카이스트 교수의 딸 진영(38)씨와 결혼했다. 차 교수는 고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의 둘째 사위다. 차남 조현범(43) 한국타이어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삼녀 수연(40)씨를 배필로 맞았다. 이렇게 조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사돈이 됐다. 수연씨의 큰아버지인 이상득 전 국회의원은 구자두 LG인베스트먼트 회장과 사돈이다. 조 회장의 장녀 조희경(49) 미국 뉴욕 FDU 수학과 교수는 노정호(53) 연세대 법대 교수와 결혼했으며, 차녀 조희원(48)씨는 재미교포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으나 최근 별거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만우 회장의 막내아들 조욱래(66) DSDL(옛 동성개발) 회장은 김종대 전 농림부 장관의 딸 김은주(60) 여사와 결혼했다. 2남 1녀 중 맏이인 조현강(40) DSDL 사장은 교육자 집안의 딸 한유리씨와 혼사를 맺었고 1남 1녀를 두고 있다. 조 회장의 장녀 윤경(37) DSIV 이사는 홍준기 삼공개발 회장의 아들 홍석융 신라저축은행 전무와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윤경씨의 시아버지는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과 사돈 관계다. 3명의 전직 대통령과 사돈을 맺은 효성가는 경영 면에서는 장자 중심의 보수적인 원칙을 중시한다. 하지만 집안 내에서는 만우 회장부터 며느리의 사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등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부구욱 대교협 회장, 대학가 현안 ‘해법’을 말하다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부구욱 대교협 회장, 대학가 현안 ‘해법’을 말하다

    자원빈곤국은 성장동력을 인적 자원에 둔다. 교육부가 학령인구 감소와 정보통신 기술변화 등 교육환경 변화로 대학 구조조정에 나선 이유다. 하지만 대학가는 정부 구조조정에 반발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부구욱(63) 회장으로부터 대학 구조조정 등 대학가 현안에 대한 해법을 들어봤다. 대교협은 대입전형 관리에서부터 인재양성 방향에 이르기까지 대학교육의 전반적 문제를 대학사회를 대표해 정부에 건의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대학총장 협의기구다. 영산대 총장인 부 회장은 지난 1월 16일 21대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내년 4월 7일까지 대교협을 이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광화문 달개비에서 했다.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학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2022년까지 전문대 입학정원을 포함한 4년제 대학 입학정원 16만명을 줄이지 않으면 상당한 혼란이 온다. 전문대 입학정원을 포함한 대학 신입생 정원이 현재 56만명이다. 대학 진학률을 감안하면 2022년이면 40만명 수준으로 줄게 된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교육대란이 올 것이다. 하지만 대학의 자율합의로 구조조정을 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정부가 행정력으로 강제하는 게 불가피하다. 이러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양적인 구조조정 이후의 모습이다. 대학은 국가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대교협이 이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향후 10년 내 세계 200위권 대학에 20개 대학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는 4~5개 대학에 불과한 수준이다. 20개 대학은 국·공립에서 10개, 사립대에서 10여개 대학이 대상이다. 우리 대학들이 일본을 추월 못하는데, 중국에 추월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 자원은 중국에 있는데 대부분 미국과 유럽으로 간다. 세계 200위권에 들어갈 국내 대학이 많아지면 이런 외국인 유학생 자원들이 국내로 몰려올 것이다. 단계적 목표관리 방안으로는 40억 달러 적자인 교육부문 수지의 적자도 반으로 줄여야 한다. 이 목표를 위해 대학 교육부와 정치권에서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 오는 6월 대교협 정기총회까지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대교협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다. →대학별 세부방안이 있나. -각 대학 처지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전체 이익을 추구하는 게 필요하다. 국립대는 각 권역별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거점 국립대가 중심의 통합 역할을 할 것이다. 기초역량은 국립대에서 가르치고 사립대와 중복되는 부분은 통합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교수 1인당 학생수가 줄게 되고 1인당 학생 투자비를 높일 수 있다. 신규 교수 충원도 가능하다. 이렇게 해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대학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세계 200위권에 들어갈 사립대 10여곳에 대해서는 등록금 상한제 폐지 등 각종 규제를 예외적으로 풀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인천경제자유구역에 있는 외국 대학에 대해서는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국내 대학들 입장에서 보면 역차별을 당하는 것이다. 국내 대학의 등록금이 1년에 1만 달러가 안 된다. 해외 유학가면 4만~5만 달러 학비에 생활비를 포함하면 연간 7만~8만 달러가 소요된다. 최소한의 예외를 인정해 두자는 것이다. →10여개 사립대학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하면 나머지 사립대학들이 불평하지 않나. -나머지 대학 수준도 같이 올라갈 것이다. 국립대와 유명 사립대가 학부 정원은 줄이고 대학원 정원을 늘리는 등 연구중심 대학으로 가면 중소형 대학들에 대한 정원 축소 압력이 완화된다. 중소형 대학들로서는 지역 특성에 따른 구조개혁을 통해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학과제 폐지 등을 놓고 중앙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학과제 폐지는 경영 결단의 문제이다. 해당 교수들의 반발은 이해된다. 가족이 헤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비슷하다. 그러나 대학 당국 입장에서 보면 국가 사회에서 인문 정원이 얼마나 필요한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필요한 정원이 많으면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학문 후속세대 양성이 필요하나 우리나라 규모에서 학문영역에 대한 규모가 있지 않느냐. 물론 인문학 경시 풍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인문학은 기초가 돼야 한다. 학과와 무관하게 공학 등 다른 전공 학생들에게 인문정신은 전파하고 확대보급해야 한다. →대입전형의 방향은. -향후 3년간 대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지금 진행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지금으로서는 2020년 이후 수능을 포함한 대입제도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 논의하려고 한다. 각 유관기관 대표 및 원로들과 간담회 형식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결론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나 국가와 민족이 굴기하는 중국, 러시아,일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육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지혜를 모아야 한다. 새로운 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본이념은 창조경제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창조경제는 (박근혜 정부가 아닌) 다른 정부가 들어왔어도 이 시점에서는 주창해야 할 것이다. 창조경제에 맞는 교육체계를 갖춰야 한다. 교육체계가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서트 무버’로 가야 한다. 전문가 그룹에 의뢰해서 2~3년간 연구해서 윤곽이 나올 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바람직한 인재육성 방안이라면. -상징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부형들이 학교를 갔다 온 자녀들에게 “오늘 뭘 배웠느냐”고 묻는다. 반면 이스라엘에서는 “오늘은 뭘 질문했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학습은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우리는 주입식, 암기식에 친숙하다. 의문을 가질 때 호기심이 생기고 알고자 하는 욕구가 일어난다. 뭔가를 알고 싶어하는 인재들이 나와야 한다. 이런 방향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아닌가 싶다. →대학가 학점 인플레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곳에서 학생 60% 정도가 A+학점을 받는다고 한다. 대학의 자율 판단에 따라 하겠지만 잘못된 것이다. 합리적 수준의 평가는 상대평가다. 상대평가의 수준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할 것인지, 하위 수준의 대학을 놓고 할 것인지는 개별 대학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공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의 하버드나 예일대 학생들은 하루 2~3시간만 자고 공부한다. 우리 학생들에게 좋은 학점을 주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대학사회 성폭력 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다. -성폭펵은 상당한 형사범죄다.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재 각 대학들이 필요한 조치를 하는 상황이다. 각 대학의 도덕적 기준은 대학 이미지에 직결된다.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할 일이다. →이른바 김영란법에 교직원도 포함돼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바람직하지 않다. 사립학교 교직원은 물론 국립학교 교직원도 포함해서는 안된다. 공무원은 뇌물죄로 처벌 가능하다. 대학 교직원에게 무슨 인·허가권이 있느냐. 직무와 관련해서는 뇌물죄로 처벌하면 된다. 대학을 잠재적 범죄집단화하는 것으로 잘못된 과잉 입법이다. 대학의 권위가 파괴되면 누구에게도 득이 안 된다. 자율과 자정에 맡겨야 한다. 과거 대교협 윤리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 감사원에서 사립대학을 감사했다. 양건 감사원장 시절이다. 국고지원 범위 내 감사라고 하지만 사실상 일반감사였다. 대학 사회가 큰 자괴감에 빠졌었다. 감사원에 감사결과 자료 요청을 했으나 주지 않더라. 결국 정보공개 청구해서 몇 달 지나서야 받았다. 하지만 황당한 비리를 저지른 대학은 없었다. 징계할 수준이 아니었다. 경고 서한으로 끝내고 마무리한 적이 있다. 당시 감사원의 감사는 참으로 부적절했다. 대학은 우리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 대학이 잘나서가 아니다. 후세대를 위해서다. →대교협 내 8개 총장특별위원회 중 하나가 법학전문대학원 특위로 알고 있다. 로스쿨의 성공적 정착을 추진하려는 조직으로 알고 있는데 대한변협은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한다. -우리는 공감하기 어렵다. 사시 존치 주장은 정부 방침과 반대되는 것이어서 큰 문제다. 사시로는 변화된 사회에 적합한 인재 양성이 불가능하다.사시 나오면 일반 송무전문 변호사만 양성한다. 그동안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법 실력을 테스트해 해마다 1000명씩 선발해 왔다. 과거 사시제도 아래서는 합격생들이 연수원 졸업까지 평균 8~10년 공부했다. 젊은 시절에 10년 공부하는데 이렇게 하고 나면 다른 전문영역을 이해하기 어렵다. 일반 송무변호사는 지금도 너무 많다. 앞으로는 특허, 금융, 지적재산권, 마케팅 전문 등 전문변호사가 필요하다. 법률에 융합 인재가 필요하다. 공직도 마찬가지다. 외무고시 출신 인재들이 우수하지만 한·미FTA 번역 오류를 지적한 사람은 검사출신 변호사였다. 외무부 안에도 변호사들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 전문 변호사들이 사회 곳곳에 퍼져야 한다. →전문대와 종합대 간 영역 구분이 파괴되고 있는데. -구분이 안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 동일기술 기반의 학과라 하더라도 목표 자체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용은 기술이다. 하지만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헤어 디자이너는 전문대 과정으로는 기를 수 없다. 유명 헤어디자이너를 양성하려면 인문학적 소양에 기술을 접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은 종합대학에서 해야 하지 않나. →법조인 출신 총장이다. 사법부에 있을 때와 학교경영을 하는 현재를 비교해 달라. -총장으로 일하게 된 것은 제 인생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20년간 법원에서 일했다. 각종 민·형사 사건 등 사회문제에 대한 결단을 해야 한다. 무엇이 올바른지 처벌이 합당한지 등 늘 갈등을 겪는다. 잘못하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게 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면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더 잘 성장시킬 수 있는 지 생각하게 된다. 좋은 일만 생각하게 돼 좋다.  박현갑 편집부국장 eagleduo@seoul.co.kr ■ 부구욱 회장은 누구 부 회장은 법조인 출신 대학총장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2001년 한양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1년 부산지방법원 판사에서부터 2001년 서울지법 부장판사직까지 20년간 법조인으로 생활했다. 이후 2001년부터 영산대 총장으로 있다. 영산대 재단인 성심학원을 꾸려 온 어머니인 박용숙 이사장으로부터 학교경영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갑자기 법조계를 떠났다. 황우여 교육부총리와는 같은 법조계 출신이라는 인연이 있어 업무 협조가 원활한 편이다. 황 부총리가 서울가사법원 가사부 부장판사 시절, 부 총장은 단독판사였다. 법조계 출신답게 인터뷰 내내 논리적 설명을 잊지 않았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교직원을 포함시킨 것의 법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사시 존치 여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는 등 사안별로 열린 시각을 보였다.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자문위원, 부산국제영화제 후원회장, 대교협 대학윤리위원회 위원장, 한국조정학회 회장, 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대교협 부회장을 지냈다.
  • [청와대 개편] 朴대통령 위기마다 ‘구원투수’로 등판

    이병기(69)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 때마다 꺼내 든 ‘구원투수’로 평가된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주일본 대사를 맡았던 이 실장은 지난해 6월 국가정보원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전임 남재준 국정원장 재임 당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논란 등에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상처를 입었고, 박 대통령은 ‘신뢰의 위기’를 수습할 인물로 이 실장을 낙점했다. 이어 최근에는 김기춘 비서실장으로 상징되는 청와대 인적 쇄신에 대한 요구가 쏟아졌고, 박 대통령은 ‘여론의 위기’를 극복할 카드로 또다시 이 실장을 선택했다. 그만큼 이 실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가 두텁다는 방증이다. 경복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이 실장은 외무고시를 거친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1985년 민정당 총재보좌역으로 정치에 뛰어든 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의전수석비서관, 외교부 본부대사 등을 지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제2차장을 역임하며 1997년 고(故) 황장엽씨 망명사건의 막후작전을 총괄했다.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의 정치특보를 지낸 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특히 이 실장은 2004년 박 대통령이 ‘차떼기당’ 오명을 쓴 한나라당 대표를 맡아 17대 총선을 치를 당시 ‘천막 당사’ 아이디어를 냈으며, 2005년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고문으로 여의도 정치에 컴백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캠프의 선거대책부위원장을, 2013년 대선 때는 여연 고문을 각각 맡아 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 역할을 한 친박(친박근혜)계 원로 그룹 중 한 명으로 꼽혔다. 언행이나 처신이 신중하고, 전략통으로 불릴 만큼 정무적 감각도 뛰어나다는 평이다. 이 실장은 “여러 번 사양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어려운 상황에서 자리를 맡아 책임이 막중하다”면서 “임명장 수여 등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순서대로 업무를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靑 외교비서관 문승현 정책조정비서관 이정규

    靑 외교비서관 문승현 정책조정비서관 이정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외교비서관에 문승현(51) 외교부 북미국장이, 국가안보실 정책조정비서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에는 이정규(54) 국방부 국방정책관이 내정된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문 내정자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22회)에 합격해 외교부 의전총괄 담당관, 북미1과장, 주미 공사참사관, 북미국 심의관을 거쳐 2013년 4월부터 북미국장으로 근무했다. 이 내정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외무고시(21회)를 합격한 뒤 외교부 한·미안보협력과장, 조정기획관, 인사기획관 등을 거쳐 2013년 5월부터 국방부 국방정책실 국제정책관으로 활동해왔다. 김형진 현 청와대 외교비서관은 외교부 기획조정실장으로, 김홍균 정책조정비서관은 외교부 차관보로 각각 이동할 것으로 전해졌다.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

    “한·일 양국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일원이 된 데다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종종 선출되는 덕분에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의 한·일 양국과 지금의 두 나라 국제적 위상은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벳쇼 고로(62) 주한 일본대사는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지난 6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두 나라가 이 정도의 대접을 받는 것은 북한 핵개발 등 안보 문제와 공통의 이해가 걸린 인도양의 항로를 해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국제활동 분야에서 공동 대응하는 등 양국이 긴밀하게 협력한 덕분”이라고 지난 50년간 발전한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벳쇼 대사는 “한·일은 서로 이웃하고 있는 데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까닭에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 그동안 발전한 양국 관계를 바탕으로 더욱 중요한 파트너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벳쇼 대사는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1시간여에 걸쳐 인터뷰를 하는 동안 시종 꼿꼿하면서도 엷은 미소를 띤 모습으로 질문에 답했다. →최근 발생한 이슬람국가(IS) 인질 사태와 관련, 유카와 하루나와 고토 겐지가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해 조의를 표한다. 이를 빌미로 아베 신조 정부의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돼 우려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보내준 위로와 격려에 감사한다. 용납하기 어려운 비인간적 테러 행위를 단호히 비난하며, 테러 근절을 위해 한국 등 국제사회와 공조를 해 나가고자 한다. ‘적극적 평화주의’는 국제협조주의에 입각해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국가 존립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한편 세계 평화와 안정에 적극 공헌을 하겠다는 뜻이다. 일본 헌법의 기본 이념인 평화주의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올해는 한·일 수교 50주년이자 종전 7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주한 일본대사로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올해는 양국이 50년간 정치·경제 등 각 분야에서 함께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50년, 100년의 관계에 대해 건설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국가 간 관계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상호 이해이다. 이를 위해 인적교류, 문화교류가 중요하다. 특히 청소년 교류가 중요한데, 일본은 2013년부터 아시아·대양주지역 청년 3만명이 교류하는 ‘JENESYS 2.0’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1400명의 일본인이 방한해 교류회를 갖는다. 지난달 말에는 연합오케스트라의 ‘하모니 콘서트’가 열렸는데, 80여명의 한·일 연주자가 화음을 이루는 하모니의 진수를 보여 줬다. 올해 11회째를 맞는 ‘한·일축제한마당’ 준비도 시작됐다. 대사관은 이 같은 민간단체들과 협력하면서 50주년 행사를 치러 나가겠다. 50주년이라는 의미가 큰 만큼 그에 걸맞은 행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한·일 정상이 한번도 회담을 갖지 않는 등 양국관계가 좋지 않다. 어떤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아베 총리는 늘 양국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인 만큼 대화가 중요하고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며, 특히 올해를 관계 개선의 해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도 신년 회견에서 일본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이후 두 나라 차관회의와 국장 협의가 이뤄지는 등 정부 간에는 다양한 레벨의 대화가 추진되고 있다. 대사관은 한국 정부와 긴밀하게 공조하는 한편 경제·문화교류를 위한 다양한 행사 개최와 측면 지원을 하고 있다. →관계개선을 위해 한·일이 각각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한국이 먼저 해결해야 할 현안은 무엇이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양국 국민은 한·일 관계를 ‘현재 좋지 않은 상태’로 인식하고 있고, ‘관계 개선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양국 국민은 먼저 상대가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이를 바꿔야 한다. 양국이 모두 상대는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한·일 관계가 두 나라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관계라는 점을 이해하면 ‘상대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가 아니라 ‘관계가 좋도록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는 입장으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하면 상호 신뢰가 쌓이게 마련이다. →지난달 일본에서 한·일의원연맹 회장들이 만나 수교 50주년인 6월 22일 이전에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노력하기로 하는 등 양국 관계 개선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서청원 한·일의원연맹 회장의 방일은 50주년 시작이라는 좋은 타이밍에 실현됐다. 아베 총리와의 면담도 이뤄져 큰 역할을 했다. 언제 정상회담이 가능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의원들이나 민간 교류의 뒷받침을 바탕으로 정상회담이 조기에 실현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양국이 노력하면 극복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한국에서는 양국관계의 최대 현안으로 위안부 문제를 꼽는 반면, 일본에서는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다. 한·일 간의 인식 차를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나. -아베 총리는 취임 이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필설(筆舌)로 다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은 분들을 생각하면 매우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고노 담화’에 대해서도 계승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이 점을 한국인들은 인식해 주었으면 한다. 현재 국장 협의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을 통한 대화 등에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각종 현안에 대해 진지한 협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협의를 통해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에서는 아베 총리가 오는 8월에 발표될 ‘아베 담화’의 내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아베 정부는 ‘무라야마 담화’를 비롯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종전 70주년 담화에 대해 아베 총리는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과 전후 평화국가로서의 행보, 향후 일본이 아·태지역과 세계 평화를 위해 어떻게 공헌해 나갈 것인지, 다음 80년이나 90년, 100년을 향해 일본은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 하는 점을 홍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본 역사 교과서와 독도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있나. -역사인식과 관련해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교과서 문제는 그 국가의 국민, 특히 젊은 세대에게 어떤 지침하에서 교육을 시행할 것인지는 그 국가가 판단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를 훼손할 의도는 추호도 없고, 양국 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영토 문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은 크게 달라 어려운 문제다. 이 문제가 양국 관계 전체를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함께 노력해 나갔으면 한다. →한·일 관계가 경색되면서 한국과 일본 간 경제협력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문에서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한·일 간에는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 경제 관계나 인적 교류는 계속 이뤄져야 한다. 한·일은 서로에게 세 번째 교역국이다. 무역·투자뿐 아니라 최근에는 자원·인프라 분야를 중심으로 한·일 기업이 각기 자신 있는 분야를 들고 나와 제3국에 공동 진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일 인적 왕래도 3년 연속 500만명을 넘었다. 1968년 하기시와 울산시의 첫 체결 이후 자매도시 교류도 154건으로 확대됐다. 한·일 시너지 효과라는 점에서는 환경 협력, 해난 구조·수사 등 실무적으로 공조를 추진할 분야가 많다. →민간 차원의 문화교류 역시 뜸해지고 있다. -한류 붐은 부침이 있지만 팬들은 쉽사리 떠나지 않는다. 대사관저 바로 앞에 배용준의 집이 있는데, 일본 팬들이 많이 구경 온다. 최근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는 25개 팀의 일본 중고생이 참가해 열띤 경연을 펼쳤다. 한국 내 일본문화 팬층도 두텁다.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 수가 2만 5000명을 넘었다. 일본 재외공관 페이스북 페이지 중 톱클래스다. 문화행사로는 오는 3월 3일까지 열리는 ‘히나마쓰리전’이 있다. 모쪼록 많은 한국인들이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임한 지 2년 6개월 가까이 지났다. 가장 힘들었던 일과 보람된 일은. -한국은 중요한 이웃나라인 만큼 일본대사로 일한다는 것은 매우 영예로운 동시에 중책이다. 임기가 더 남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이제부터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정말로 용기를 북돋워 준 것은 청소년 교류에 참여한 한 한국 여학생이 한 말인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어요. 한국·일본 양쪽의 어른들 모두 그렇습니다. 하지만 교류하는 한·일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제 나름의 결론이 나와요.”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 눈으로 보고 스스로 생각하려는 젊은이들을 보면 한·일 관계에 밝은 내일이 있을 것이다.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지금은 돌아가신 남덕우 전 총리께서 서도에 관한 책을 준 계기로 한글 서예를 시작했다. 일본 서도와는 다른 면도 있어 매우 흥미롭다. 아내는 일본에서 패치워크를 배운 일이 있는데, 한국에 와서 조각보·매듭·자수 등에 관심을 갖고 전시회를 함께 간 적이 있다. →좋아하는 한국 요리나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는 아내의 담당 분야라 잘 모르지만,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많다. 한정식을 먹을 기회가 많지만, 업무상 약속이 없을 때는 칼국수, 설렁탕을 주로 먹는 편이다. 감자탕도 좋아한다. →재임기간 중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하나만 예를 들겠다. 대학 강연이나 광주비엔날레 등의 행사로 한국 곳곳을 방문하고 있다. 지방 방문을 통해 배우는 것이 많다. 자매 결연을 맺은 한국의 모든 곳을 돌아다니지는 못하겠지만, 한 곳이라도 더 많이 방문해 지방 교류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는 1953년 2월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뉴질랜드에서 보냈다. 도쿄대 법학부 재학 중 외무공무원 상급시험(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1975년 졸업과 함께 일본 외무성에서 공직의 첫발을 내디뎠다. 1990~1992년 미국 워싱턴 주재 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과 참사관을 거쳐 외무성 경제국 국제기관 제1과장을 지냈다. 특히 1995~1997년 아주국 북동아시아과장 시절에 북·일 교섭을 위한 실무를 담당해 외무성 내 한반도통으로 불린다. 영국 런던 주재 일본대사관 참사관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재 공사를 거쳐 2001~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 시절에는 총리비서관을 지내는 등 요직을 역임했다. ‘외무성의 꽃’ 총괄 외교정책국장을 지낸 뒤 2012년 9월 주한 일본대사에 임명됐다. 한국을 보다 많이 이해하고 한·일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지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일본의 전통 무대예능 노(能)를 익혀 1년에 몇 차례 무대에도 오른다. 평소 야구경기 관람을 즐기며, 미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추신수 선수의 팬이기도 하다.
  • 駐삿포로 총영사에 한혜진 외교부 부대변인

    정부는 12일 주삿포로 총영사에 한혜진 외교부 부대변인을 내정했다. 한 부대변인은 언론인 출신으로 외국계 홍보회사를 거쳐 외교부와 청와대에서 일했으며 2011년 개방형 직위인 외교부 부대변인으로 임명됐다. 외교부에서 개방형 직위로 들어와 공관장에 임명된 것은 한 부대변인이 처음이다. 정부는 또 주센다이 총영사에 양계화 주센다이 부총영사를 임명했다. 한 부대변인과 양 부총영사는 박근혜 정부 들어 임명되는 첫 여성 공관장이다. 정부는 주뉴욕 총영사에 김기환 현 주미대사관 공사를 내정하고 주몬트리올 총영사에 허진 외교부 조정기획관, 주휴스턴 총영사에 백주현 주카자흐스탄 대사를 각각 내정했다. 외무고시 17회인 김 공사는 외교통상부 신흥시장과장, 통상법무관, 자유무역협정정책국 심의관, 다자통상국장 등을 역임하고 주미 대사관 경제공사로 근무했다. 정부는 이 밖에 주오사카 총영사에는 하태윤 국립외교원 경력교수를, 주요코하마 총영사에는 주중철 전 주이라크 공사참사관을 내정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사설]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저소득층이 가난에서 벗어나 중산층 이상으로 신분 상승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어제 발표한 ‘2014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이었던 사람이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계층 이동을 한 비중(빈곤탈출률)은 22.6%에 불과했다. 저소득층 4.5명 중 1명꼴로 ‘신분이동’을 한 것으로 8년 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고소득층 4명 중 3명은 여전히 고소득층에 남았다. 특히 고소득층이었다가 저소득층이 된 사람은 0.4%에 그쳐 역대 조사 중 가장 낮았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부자인 사람은 계속 부자로 남고 있다는 뜻이다. 부(富)를 기반으로 한 신분이 계층을 넘어서서 계급이 되고 있다. 부의 양극화와 소득불평등 문제가 세계적인 고민거리로 등장한 지는 오래됐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는 내년부터 상위 1%가 전 세계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나머지 99%의 재산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 정도도 주요 선진국 못지않게 심각하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중하위층 40%는 전체 소득의 불과 2%를 점유하는 데 그치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유력 집안 자제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만들고, 사법시험은 2017년 폐지할 예정으로 있는 게 대표적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막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무고시를 폐지하고 외교 아카데미로 바꾼 것을 놓고도 말들이 많다. 저성장이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부의 쏠림 현상을 막고 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조세제도를 대폭 손질해야 한다. 물론 지금도 고소득자가 세금을 많이 내고는 있지만, 더 내는 쪽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세습형 부자가 넘쳐나는데도 기업을 공개했다고 가만히 앉아서 수조원, 수천억원을 챙기는 재벌 자제가 속속 생겨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연말정산을 놓고 봉급생활자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도 결국은 소득불균형과 이를 둘러싼 공정하지 못한 세제라는 판단 때문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도 더 많이 창출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차이를 줄이는 대책도 나와야 한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PSAT 전격 해부] 출제경향 분석

    [PSAT 전격 해부] 출제경향 분석

    국가직 5급 공무원과 외교관 후보자가 되기 위한 1차 관문인 공직적격성평가(PSAT)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신문은 다음달 7일로 예정된 시험에 대비해 PSAT 전문학원인 ‘합격의 법학원’ 강사들의 도움으로 시험의 특징과 대비법을 전격 분석했다. 시험의 특징과 전반적인 대비법, 남은 기간 마무리 전략 및 시험 당일 유의 사항 등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PSAT는 공무 수행에 필요한 기본적 지식과 소양, 공직자 자질 등을 갖추고 있는 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시험이다. 단순 암기와 단편적 지식 측정 위주의 시험으로 진행되던 기존 공직자 채용 과정을 바꾸면서 2004년 외무고시에 처음 도입됐다. 현재 5급 국가직 공무원(행정직 및 기술직)과 외교관 후보자 선발 과정에서 1차 시험으로 시행되고 있다. 언어논리·자료해석·상황판단 등 3개 영역으로 나뉘며 배점은 각 100점으로 총점 300점 만점이다. 각 영역별로 40문항으로 구성돼 있고 시험 시간은 90분이다. 수험가에서는 ‘PSAT형 인재가 따로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타고난 지능이나 성향에 따라 성적이 좌우되는 시험으로 평가된다. 영역별로 90분으로 제한된 시간에 40문항을 풀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아이큐 테스트와 같은 시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PSAT를 처음 접한 수험생은 적잖게 당황한다. 그러나 합격의 법학원에서 PSAT 언어논리 영역을 가르치고 있는 김우진 강사는 “PSAT형 인간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다”며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나 아이큐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후천적으로 교육 과정이나 본인의 노력을 통해 오랜 기간 축적된 지식이 발현되는 시험”이라고 말했다. 다른 공무원 시험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PSAT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시험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지식을 테스트하는 시험이 아니라 공직에 적합한 인재인지를 평가하는 ‘적성 시험’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고 시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반복적 학습을 통해 감이 형성되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라고 입을 모았다. 영역별 특징을 살펴보면 언어논리 영역에서는 문장 구성과 이해력, 표현력, 논리적 사고력, 추론력을 평가한다. 합격의 법학원 김우진 강사는 “단순히 지문을 독해하기보다는 지문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며 “필자나 화자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내용과 사실관계에 대한 현상 및 원인을 파악하고 그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언어논리 영역은 지문의 성격을 묻는 이해영역, 빈칸 추론 및 문장의 수정과 보완을 묻는 표현 영역, 제시된 지문의 주장 및 근거를 분석하고 추론 규칙이나 진리값을 활용한 문제 해결 등이 포함된 추론 영역, 반론이나 반박, 논증의 결론을 확인하도록 하는 비판 영역 등 4개로 다시 분류된다. ‘이해→표현→추론→비판’ 순으로 20문항씩 2세트로 출제된다. 언어논리 영역의 이해 및 표현에서는 상대적으로 쉬운 문항이 출제되기 때문에 시험의 당락은 ‘논리와 비판’ 위주인 논리 영역에서 결정된다. 김우진 강사는 “비지문 분석을 통해 논리적 개념을 적용하는 비판적 사고 영역이 다수 출제되고 순수 논리학도 5문항 정도씩 출제된다”고 분석했다. 자료해석 영역에서는 수치 자료 처리와 분석, 기초적 통계 처리 및 해석, 정보화 능력을 평가한다. 예컨대 실업률이나 수출 증가율 등 각종 수치를 제시한 뒤 내년도 특정 지역의 실업률 예측 등을 묻는 형태다. 합격의 법학원에서 PSAT 자료해석 영역을 전담하는 김용훈 강사는 “판단과 비교가 자료해석 영역에서 필요한 기본 사고”라며 “단순히 계산을 빨리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대상을 선별하고 가장 간결한 계산을 하는 등 그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고 전했다. 전체 40문항 가운데 절반 이상은 곱셈 형태의 비교, 분수 형태의 비교, 증가율의 비교 등 수치 간 비교를 묻는 문제다. 김용훈 강사는 “가장 빠르게 계산을 할 수 있는 ‘기준 설정을 통한 비교’를 통해 수치를 도출하고 비교 결과를 내놔야 한다”며 “실제 구체적인 값을 계산하지 않아도 비교 가능한 문항들이 많기 때문에 유효 수치 설정과 어림 계산에 숙달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획·분석·추론·판단 및 의사 결정과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상황판단 영역은 3개 영역 가운데 수험생이 가장 어려워하는 영역으로 꼽힌다. 합격의 법학원에서 PSAT 상황판단 영역을 전담하는 김재형 강사는 “특히 상황판단 영역은 극소수의 수험생을 제외하고 모두 어려워하는 과목”이라면서 “90분 내에 40문항을 모두 푸는 수험생도 극히 드물다”고 분석했다. 법조문, 규칙, 일반적인 지문, 퍼즐을 소재로 추론, 규칙 적용, 경우의 수, 부합, 논리 등의 유형이 출제된다. 김재형 강사는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난이도가 높은 유형이 규칙 제시형”이라면서 “다양한 문제 유형을 접하고, 반복적인 기출문제 풀이로 다양한 유형의 문제에 익숙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곽태헌 칼럼]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없애는 대통령

    [곽태헌 칼럼]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없애는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기업인들은 땀 흘려 일하는데 외교관들은 에어컨 아래서 맥주나 마시고 있다”고 외교관들을 혼쭐냈다. 이 전 대통령은 “외무고시 순혈주의를 없애야 한다”고도 말했다. 외교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이 전 대통령은 외시를 없앴다. 외시를 대체한 게 외교관 후보자 시험이다. 시험과목도 큰 차이가 없다 보니 외시에서 외교관 후보자 시험으로 이름만 바꿨다는 말도 나온다. 외시 폐지보다 심각한 것은 5급 공채(옛 행정고시) 축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5급 공채를 축소하는 내용을 대국민 담화에 담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9일 “민간 전문가 진입이 용이하도록 5급 공채와 민간 경력자 채용을 5대5 수준으로 맞춰 가겠다”면서 “궁극적으로는 과거 고시와 같이 한꺼번에 획일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는 체제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매년 10% 포인트씩 5급 공채 비중을 줄여 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에는 5대5로 할 방침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무원들이 뭇매를 맞고 있다. 과문(寡聞)한 탓인지 ‘세월호 참사’와 관(官)피아가 그렇게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행시 출신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비고시 출신이나 민간 전문가 출신들은 관피아와 관련이 없는가. 백 보 양보해서 행시 출신들만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1년에 10% 포인트씩 줄이겠다는 것은 군사정부 시절에나 가능한 발상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피아를 이유로 행시를 축소하고 장기적으로는 없애겠다는 것은 잘못된 접근법이다. 대학 입시든, 채용 시험이든 그마나 객관적인 게 필기시험이다. 민간 전문가 채용을 늘리겠다는 것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민간 채용을 늘릴수록 공직은 재력을 바탕으로 한 박사들의 등용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훌륭한 민간 전문가들도 적지는 않겠지만, 민간 전문가를 채용하려면 면접과 스펙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민간 전문가 채용이 많은 나라도 있지만, 나라마다 공직 취업 역사와 상황은 다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만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 2007년 7월 3일 로스쿨법이 통과됐다. 노 전 대통령은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다른데도 미국식의 로스쿨을 도입했다. 3년간 로스쿨을 다닐 때의 학비와 생활비만 1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보니 웬만한 집에서는 자녀를 로스쿨에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렵게 로스쿨을 다니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해도 소위 ‘빽’이 없는 보통 집안의 자녀는 괜찮다는 로펌에 취직하기가 어렵다. 좋은 로펌에서 경력을 쌓지 못하니 판사·검사가 되는 것은 더 어렵다. 사시나 행시에 합격하면 성적순대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지만, 부동산중개사시험처럼 자격시험인 변호사시험에는 순위가 없다. 유명 로펌 입장에서 보면 장·차관이나 국회의원, 법조인, 재력가 등 가진 자의 자녀를 채용하는 게 영업상으로도 좋고 방패막이로도 좋다. 또 유명 로펌은 학벌이 좋은 변호사를 선호한다. 합법적으로 권력의 대(代)물림, 부의 대물림이 이뤄질 수 있는 게 로스쿨 제도다. 노 전 대통령은 상고 출신으로 사시에 합격해 변호사, 국회의원, 장관을 거쳐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층에 타격을 주기 위해 로스쿨 제도를 찬성했겠지만, 오히려 기득권층은 웃고 있다. 로스쿨 도입과 사시 폐지로 ‘제2의 노무현’은 나올 수 없게 됐다. 사시는 2017년이면 없어질 예정이다. 과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요즘에도 고시는 보통 사람들이 출세의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특히 사시는 더 그렇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할 대통령들이 ‘경쟁적’으로 출세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사시도 존속해야 하고, 행시도 축소돼선 안 된다. 을미(乙未)년 새해 첫날이 밝았으나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할 수 없는 사회, ‘개천에서 용 나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사회에서 무슨 희망을 볼 수 있을까. tiger@seoul.co.kr
  • “친척 유관순 얘기 듣고 자라… 외교관 꿈 품었어요”

    “친척 유관순 얘기 듣고 자라… 외교관 꿈 품었어요”

    ‘외교관 후보자 환영식’에 참석하기 위해 17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를 찾은 유미진(26·여)씨의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교관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외교관 후보자 과정은 대학원 2년 수업을 1년에 압축해 놓았다고 할 정도로 빡빡한 커리큘럼으로 구성돼 있다. 유씨가 외교관을 선택한 것은 집안의 영향이 컸다. 유씨의 할아버지는 유관순 열사의 사촌동생이었다.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을 펼쳤던 충남 천안 병천면 아우내 장터 근처에는 아직도 유씨의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다. 유씨는 “어릴 적엔 신기해서 친구들에게 ‘나 유관순 열사 친척이다’라고 자랑했지만 철이 들면서는 ‘그럴수록 내가 조심히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면서 “친척 어르신들로부터 유관순 열사 이야기를 많이 들어 어려서부터 나라와 국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던 것도 외교관의 꿈을 품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이날부터 외교관 후보자가 아닌 ‘유미진 외무사무관’으로 양자경제진흥과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평소 관심이 있었던 중국과 동남아 분야에서 외교관으로서의 역량을 쏟고자 한다. 유씨는 “외무고시가 폐지되고 처음으로 생긴 외교관 후보자 1기에 대해 우려와 걱정의 시선도 많지만 지켜보는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외교관으로 임용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1년 동안 휴가 2주를 제외한 나머지 날은 무조건 오전 7시에 일어나 밤 11~12시까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국립외교원에서 과제와 수업에 몰두해야 했다. 성적에 따라 43명의 동기 중 10%가량인 4명이 외교관 임용에 탈락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유씨는 “10여개의 정규과목과 영어·제2외국어 시험이 연달아 이어져 1년 내내 시험기간 체제로 살아야만 했다”면서 “특히 교수님들께서 ‘진짜 외교관이 되면 이것보다 힘들다’고 겁을 주셔서 과연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동기들 덕분이었다. 동기들은 서로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자료를 수시로 공유하거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함께 시험준비에 몰두했다. 동기들과 끈끈하게 지냈던 유씨는 지난달 있었던 수료식에서 동기들이 뽑은 ‘베스트 동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씨는 “힘든 시기에 있는 동기들의 마음을 잘 공감해 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 “경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경쟁 안에 격려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이제 밥값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성철 스님이 살아계시면 뭐라 말씀하실지….” 성철(1912~1993) 스님을 평생 시봉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70) 스님은 어쩔 수 없는 ‘가야산 호랑이’의 상좌(제자)였다. 바람이 코끝을 에는 듯한 찬 날씨에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는 스님. 신도들이 연신 합장하며 인사를 건네자 일일이 맞인사를 한다. 이른 아침 ‘한국 불교 1번지’ 조계사 대웅전 앞 만남에선 좀 생뚱맞은 질문일까. 더군다나 총무원이 들어 있는 조계사는 성철 스님과는 인연이 없는 곳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최근 나온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 개정증보판 소감을 물었더니 망설임 없는 답이 돌아온다. “돌이켜 보면 감회가 새롭지요. 큰스님이 설법한 지 반세기인 47년 만에 이렇게 대중에게 온전한 법 보시를 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성철 스님이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方丈)에 추대된 뒤 첫 동안거를 맞아 대중에게 백일간 불교 전반에 대해 강설한 법문이 백일법문이다. 불교의 핵심 내용을 경론과 조사어록 등을 인용해 알기 쉽게 풀어낸, 한국 불교의 퇴색하지 않는 대중 교과서다. 선(禪)과 교(敎)를 불교의 핵심인 중도사상으로 회통해 일갈한, 성철 스님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법문이다. 그 법문을 일반 대중에게 처음 소개한 책이 성철 스님 열반 한 해 전인 1992년 세상에 나온 ‘백일법문’(장경각)이다. 이번 개정 증보판은 첫 판에서 빠진 법문 내용 중 테이프 14개 분량을 보완한 것이다. 처음 나온 초판 ‘백일법문’ 책을 보곤 시큰둥했다는 성철 스님이 살아 있다면 이번 백일법문에는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그때의 백일법문은 말할 것도 없고 22년 만의 개정 증보판 출간은 전적으로 상좌 원택 스님의 공이다. 억센 사투리 억양에 말까지 빨라 알아들을 수조차 없고, 녹음 상태도 썩 좋지 않은 그 법문을 일일이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이었을까. 2004년 원택 스님이 이끄는 성철선사상연구원에서 낸 CD가 첫 판 백일법문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증보판을 내기로 작심했단다. 스님의 백일법문 내용을 전한 책이 빈약했다는 자책과 스승에 대한 죄송함 때문이었다. 2007년부터 다시 시작해 탄신 100주년인 재작년, 그리고 열반 20주기인 지난해에 개정판 출간을 맞추려 했지만 작업이 너무 어려워 늦어졌다. 찬바람을 피해 총총걸음으로 인근 백련불교문화재단 사무실로 옮겨 ‘개정판에 만족하느냐’고 묻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불쑥 법정 스님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저를 법정 스님에게 보낸 게 필생의 길이 되었군요.” 바로 성철 스님 법문집 ‘선문정로’(1981년)와 ‘본지풍광’(1982년)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이야기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은 묘한 관계였어요. 경쟁자이면서 서로가 가장 인정하는 도반이랄까. 원고 뭉치를 꺼내더니 법정 스님에게 가져가라고 했지요. 그래도 글은 법정이 최고라면서….” 자신의 글에 대한 윤문을 부탁했으니 성철이 법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법정 스님도 글자 하나, 토 하나, 받침 하나도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면서 최소한의 교정으로 성철 스님 글의 윤문을 마쳤어요. 그 스님에 그 스님이지요. 더군다나 법정 스님은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에 대해 비판을 가장 많이 했던 스님이었는데….” 원고 뭉치가 든 걸망을 메고 법정 스님을 찾아가 불일암과 유스호스텔을 돌며 윤문 작업을 한 끝에 ‘선문정로’ ‘본지풍광’을 냈고, ‘백일법문’도 그 바탕에서 시작해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선종 소의어록 ‘고경’ 시리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한다. 원택 스님이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 공부를 하던 무렵 고향 친구와 함께 경남 합천 해인사를 찾은 건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71년의 일이다. ‘성철 스님이라는 큰스님이 있으니 한번 만나 보자’는 친구의 권유에 그저 평생의 지남이라도 받아 볼 요량으로 방문했는데 그게 평생의 인연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쏙이지 말그래이.” 기대 속 첫 대면에 받은 지남치곤 허접했을까. 대실망이었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속이지 말라’는 그 말이 가슴에 켕겼고 결국 자신의 몸이 화장당하는 꿈을 꾼 뒤 해인사를 찾아 ‘삼서근’(麻三斤) 화두를 받아 ‘가야산 호랑이’의 상좌가 됐다. ‘살아서 20년, 죽어서 20년.’ 스승 성철 스님을 시봉한 햇수를 담아 영원한 시자 원택 스님이 즐겨 하고 즐겨 듣는 말이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괴팍한(?) 스승을 모시느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변함없이 성철 스님을 모셨고, ‘가야산 호랑이’의 마지막 임종을 지킨 것도 원택이었음을 알 만한 이는 다 안다. 성철 스님 입적 후 경남 산청 출생지에 겁외사를 세었고, 그곳에 다시 기념관을 지어 얼마 전 회향식을 했다. 힘겹게 지은 사리탑이며 연꽃 봉오리 모양의 연화대에 법구를 모신 관을 넣고 불을 넣은 파격적인 다비식을 치른 일 말고도 스승을 향한 그의 정성과 시봉 일화는 숱하다. ‘성철 스님 상좌.’ 자신에게 언제나 따라붙는 이 말이 질리지 않을까. 그래도 큰 소식 한번 하겠다며 출가한 납자인데 성철 스님을 뺀 ‘스님 원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야산 호랑이’ 스님에게 받은 화두 풀이는 잘됐을까.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었나 보다. 무거운 침묵 끝에 돌아온 말은 역시 스승을 향한 자책이었다. “속이지 말라 하셨는데 여전히 속이고 살지요. 죽을 때까지의 숙제겠지요. 법정 스님과 함께하라며 보냈던 그 일은 일찌감치 성철 스님이 제게 내준 길이었어요. 그 길 뜻을 더 일찍 알고 풀었어야 하는데….” 그래서 원택 스님의 ‘백일법문’을 향한 집념은 그렇게 질겼나 보다. “큰스님은 제게 첫 대면에서부터 글을 보지 말라 하셨어요. 글 모르는 무식쟁이인 육조 스님(혜능)도 진리를 깨우쳤는데 대학까지 나온 녀석이 뭐하러 글을 보느냐며 글을 보는 저를 항상 나무라셨지요.” 크게 맘을 먹고 ‘스님 법문을 책으로 내야 스님 뜻이 온 세상에 퍼질 것 아니냐’는 직언을 드렸는데 그게 받아들여졌단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글 보지 말라’던 성철 스님의 지론과는 딴판이었다. “백일법문은 불교의 핵심이 잘 설명된 책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진리를 알려주는,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삼척동자에게도 친숙할 법한 이 말처럼 성철 스님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거인이다. ‘왜 달을 안 보고 달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느냐’고 세상을 혼내던 쩌렁쩌렁한 목소리, 절집을 찾는 이에게 어김없이 삼천 배를 시키던 그 무서운 호령은 여전히 ‘먼저 나를 낮춰 내려놓으라’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다른 매다. 그 거인의 외침은 왜 열반한 지 21년이 지난 지금도 울림이 여전할까. 기다렸다는 듯이 상좌가 돌려주는 한마디. “세상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고집이지요. 스님이라고 왜 유혹과 회유가 없었겠습니까. 흔들리지 않고 본분을 지킨 것이 그 답이 아닐까 합니다.” 그 ‘가야산 호랑이’는 ‘세상의 고통을 외면한 스님’이라는 세상 한편의 비판도 받았었다. 군사독재 시절 ‘보편의 정의’를 몸으로 보여줬던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과 왜 다르냐는 물음이기도 했다. “스님은 항상 자기를 바로 보라고 하셨지요. 남을 위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중은 논두렁 베고 잠들다 죽어야 한다’는 성철 스님은 출가자의 속가 출입을 절대 용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집을 찾지 않아 상좌가 문상을 대신 했다. 원택 스님도 그 스승을 따랐다. “출가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성철 스님이 시좌를 시켜 ‘느그 아부지 돌아갔다’는 말만 전해준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국 장례를 잘 못 치렀어요.(웃음)” ‘내 상좌는 죽어도 해인사 본말사 주지가 될 수 없다’는 성철 스님 유지도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절집 표현대로라면 ‘친인척 간 다툼과 알력’을 미리 막았다고나 할까. 상좌 36명 가운데 해인사 본말사 주지는 단 1명도 없다. 상좌들은 주로 선방을 지켰고 열 군데 사암 주지를 맡고 있을 뿐이다. 원택 스님도 해인사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 고심정사의 주지다. 성철 스님이 주석하던 해인사 백련암은 스승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자주 찾아 머무는 편이다. “형제간 다툼이나 알력도 피하고 폭넓게 퍼져 산 셈이니 일석이조 아닌가요.” ‘도망가지 말고 중노릇 잘해라.’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상좌가 안쓰러웠던지 성철 스님이 툭 던졌다는 말씀이다. ‘희한한 놈’ ‘곰새끼’라 부르면서도 ‘아무한테나 중 되란 소리 안 한다’던 스승의 말 한마디가 요즘 부쩍 가슴에 박힌단다. ‘참선 잘하그래이.’ 성철 스님이 임종 때 곁을 지킨 원택 상좌에게 남긴 유언이다. 그 유언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이제 자신만의 만행을 떠나고 싶은 건 아닐까. 세상 사람들은 흔히 ‘원택이 없었으면 성철이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상좌 원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찰나의 틈도 없이 손사래가 허공을 휘젓는다. “스님 뜻을 제대로 전하기나 한 건지 걱정인데….” 한국 불교계에 이름난 ‘절집 효자’, 원택이다. 옷깃을 여민 ‘절집 효자’가 인터뷰 말미에 얹은 마지막 말은 역시나 ‘스님 뜻을 완전하게 전하고 죽고 싶다’였다. 백련암 이름을 딴 백련불교문화재단은 그 희망의 텃밭이다. 30년쯤 전 ‘한국엔 왜 남방불교를 잘 아는 범어 전문가가 없느냐’는 스님의 질타에 ‘그럼 우리가 백련암에서 범어학자들을 키우자’고 원택 스님이 제안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그 재단을 토대로 스님의 정신을 올곧게 세우겠단다. 지난 11일부터 석달 일정으로 백일법문 강좌를 진행 중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열어 왔지만 47년 만의 개정판 출간으로 올해엔 더 신경이 쓰일까. “백일법문 개정판이 나왔다고 스님 뜻이 바뀌는 건 아니지요. 항상 해 온 대로 하고 있습니다.” 타협 모르는 ‘괴각쟁이’ 수행자 성철 스님,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크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선불교 거두 성철의 그림자 원택 원택 스님은 근현대 한국 선불교의 거두인 성철 스님의 상좌(제자). 경남 해인사에 주석하던 성철 스님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챙긴 성철 스님 삶의 산증인이다.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중 고향 친구와 함께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을 만났고 이듬해 출가했다. 일만 배를 올려 첫 대면한 성철 스님에게 들은 ‘쏙이지 말그래이’ 한마디가 가슴에 박혀 떠나왔던 백련암을 다시 찾아 제자가 된 인연담이 유명하다. 당초 ‘성철 스님 뺨이라도 한 대 올리겠다’며 호기 있게 찾았지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니 고마 중 되라’는 한마디에 머리를 깎았다. 성철 스님 생전 20년간 꼬박 시봉한 유일한 상좌다. 입적 후에도 ‘큰스님’ 뜻을 따라 20여년간 온몸을 바쳐 살고 있다. 성철 스님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챙겼고 입적 후에는 유지 받들기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사리탑과 새 형식의 다비장으로 스승을 기려 불교계를 놀라게 한 ‘소문난 효자’다. 늘 “마음을 다해 시봉한다 했건만 돌아보니 큰스님을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고, 만나도 만나지 못한 것 같다”며 존경과 그리움을 감추지 않는다. 성철 스님 생가터에 성철 스님 친딸이자 출가자인 불필 스님과 뜻을 모아 겁외사를 세웠고, 그곳에 기념관을 다시 지어 최근 개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고 성철 스님의 뜻에 따라 1987년 설립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해인사 백련암 감원, 부산 고심정사 주지를 겸한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성철 스님 입적 전해인 1992년 출간한 성철 스님 법문집 ‘백일법문’이 대업으로 평가되며 22년 만인 최근 그 개정증보판을 내 화제가 되고 있다.
  • 산업부 통상라인 내년 초 대규모 인사

    정권 출범과 함께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로 넘어온 외교부 출신 국·과장들이 대거 친정으로 복귀한다. 이에 따라 내년 초 산업부 통상라인은 최경림 통상차관보를 필두로 대대적인 인사가 단행될 전망이다. 15일 복수의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조직법에 따라 한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주도했던 김영무 FTA교섭국장을 포함해 외교부 출신 간부급 7명이 외교부로 일괄 복귀한다”면서 “내년 1~2월 대규모 인사가 있을 것이며 이에 대비해 부처 최고 에이스들을 통상 인력 쪽에 배치해 업무 연속성과 전문성에 문제가 없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출신인 최 차관보와 김 국장 이외에 외교부에 복귀하는 이들은 김민철(FTA상품과), 최진원(FTA서비스투자과), 이호열(FTA무역규범과), 홍영기(통상법무과), 유호근(청와대 파견) 과장 등 5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외무고시 출신이거나 외교 업무 희망자들이다. 산업부는 한·중 FTA 등 굵직굵직한 업무가 마무리됐고 외교부 직원들과 2년을 함께하면서 산업부 자체적으로 통상인력의 경쟁력과 전문성을 키워 빈자리를 메울 준비가 됐다고 보고 있다. 정부조직법은 조직이관에 따른 외무직 복귀 시점을 내년 3월로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부 통상라인은 큰 폭의 승진 및 인사 이동이 진행될 예정이다. FTA 업무도 산업부로 단일화된다. 일각에서는 통상라인들이 한꺼번에 빠지면 업무에 지장이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부는 행정고시 국제통상직 출신들과 해외 대사관에 상무관으로 근무 중인 과장들을 중심으로 지난 6월부터 외교부 직원 복귀 대비를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 내 ‘최고통상맨’으로 불리는 이경식 가나 상무관,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의 안세진 오스트리아 상무관 등이 부처에 컴백할 예정이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과 우태희 통상교섭실장은 업무능력이 탁월한 서기관의 경우 곧바로 과장으로 앉히는 인센티브까지 마련하는 것은 물론 통상라인 사무관 인사까지 꼼꼼히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키 180cm+빼어난 미모’ 1997년 슈퍼모델 1위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키 180cm+빼어난 미모’ 1997년 슈퍼모델 1위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모델 출신 이진영(38) 씨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화제다. 법무부는 지난 13일 제56회 사법시험 합격자 204명을 발표했다. 이날 사법시험 합격자 명단에는 1997년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도 포함됐다. 1976년생인 이진영은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해 21살이던 1997년 180cm의 큰 키와 빼어난 외모를 앞세워 제6회 슈퍼모델 선발대회 1위를 거머쥔 바 있다. 당시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인재로 소개됐던 이진영은 이후 모델 활동을 하지 않고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슈퍼모델 이진영 씨가 이번 사법시험을 치르면서는 딱히 슈퍼모델 출신이라는 점을 부각시키지는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면접관들조차 슈퍼모델 출신 사실을 전혀 모르다 3차 면접에 이르러서야 이진영 씨의 자기소개서를 보고 모델 경력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사법시험 합격자 가운데 여성은 68명으로 전체의 33.3%를 차지했다.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대단하다”,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의지의 한국인이네”,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결국 해냈구나”,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멋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방송 캡처(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법시험 합격한 이진영, 알고보니 1997년 슈퍼모델 1위

    사법시험 합격한 이진영, 알고보니 1997년 슈퍼모델 1위

    슈퍼모델 출신의 이진영(38) 씨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화제다. 법무부는 지난 13일 제56회 사법시험 합격자 204명을 발표했다. 이날 합격자 명단에는 1997년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도 포함됐다. 1976년생인 이진영은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해 21살이던 1997년 180cm의 큰 키와 빼어난 외모를 앞세워 제6회 슈퍼모델 선발대회 1위를 거머쥔 바 있다. 당시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인재로 소개됐던 이진영은 이후 모델 활동을 하지 않고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신호 경위 사법시험 수석하고도 법조인 결정 못했다?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범시험 아닌 사법시험 합격도 ‘화제’

    김신호 경위 사법시험 수석하고도 법조인 결정 못했다?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범시험 아닌 사법시험 합격도 ‘화제’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범시험 아닌 사법시험 합격’ ‘사법고시 수석’ 1997년 슈퍼모델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이진영(38)이 올해 사법고시에 합격해 눈길을 끈다. 이진영은 13일 법무부가 발표한 제56회 사법시험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는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180cm의 큰 키에 뛰어난 미모로 제6회 슈퍼모델 대회에서 1위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당시 “외무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이진영은 모델로 활동하지 않고 2000년대 초반부터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사법 시험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하면 올해 합격자 중에는 현직 경찰관도 있어 눈길을 끈다. 부산 부산진경찰서 수사과 경제 2팀 김신호 경위(35)는 이번 사법시험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김 경위는 경찰대학교 18기로 2002년 경찰에 임용된 이후 근무와 시험준비를 병행했다. 그는 근무시간 앞뒤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휴일에는 인근 대학 도서관에서 5년간 공부했다.  김신호 경위는 “경찰에 남을지 법조인의 길을 갈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어디에서 일하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범시험 아닌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범시험 아닌 사법시험 합격, 진짜?”,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범시험 아닌 사법시험 합격, 축하드려요”,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범시험 아닌 사법시험 합격, 부러워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10년 공부한 미모가 ‘대박’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10년 공부한 미모가 ‘대박’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1997년 슈퍼모델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이진영(38)이 올해 사법고시에 합격해 눈길을 끈다. 이진영은 13일 법무부가 발표한 제56회 사법시험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는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180cm의 큰 키에 뛰어난 미모로 제6회 슈퍼모델 대회에서 1위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당시 “외무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이진영은 모델로 활동하지 않고 2000년대 초반부터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사법 시험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하면 올해 합격자 중에는 현직 경찰관도 있어 눈길을 끈다. 부산 부산진경찰서 수사과 경제 2팀 김신호 경위(35)는 이번 사법시험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김 경위는 경찰대학교 18기로 2002년 경찰에 임용된 이후 근무와 시험준비를 병행했다. 그는 근무시간 앞뒤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휴일에는 인근 대학 도서관에서 5년간 공부했다.  김신호 경위는 “경찰에 남을지 법조인의 길을 갈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어디에서 일하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축하합니다”,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기분이 어떨까”,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법시험 수석 김신호 경위, 법조인 꿈 결정 못했다?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범시험 아닌 사법시험 합격도 ‘화제’

    사법시험 수석 김신호 경위, 법조인 꿈 결정 못했다?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범시험 아닌 사법시험 합격도 ‘화제’

    ‘모델 출신 이진영 사범시험 아닌 사법시험 합격’ ‘사법고시 수석’ 1997년 슈퍼모델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이진영(38)이 올해 사법고시에 합격해 눈길을 끈다. 이진영은 13일 법무부가 발표한 제56회 사법시험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는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180cm의 큰 키에 뛰어난 미모로 제6회 슈퍼모델 대회에서 1위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당시 “외무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이진영은 모델로 활동하지 않고 2000년대 초반부터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사법 시험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하면 올해 합격자 중에는 현직 경찰관도 있어 눈길을 끈다. 부산 부산진경찰서 수사과 경제 2팀 김신호 경위(35)는 이번 사법시험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김 경위는 경찰대학교 18기로 2002년 경찰에 임용된 이후 근무와 시험준비를 병행했다. 그는 근무시간 앞뒤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휴일에는 인근 대학 도서관에서 5년간 공부했다.  김신호 경위는 “경찰에 남을지 법조인의 길을 갈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어디에서 일하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10년 고시공부한 미모가 ‘역대급’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10년 고시공부한 미모가 ‘역대급’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1997년 슈퍼모델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이진영(38)이 올해 사법고시에 합격해 눈길을 끈다. 이진영은 13일 법무부가 발표한 제56회 사법시험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는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180cm의 큰 키에 뛰어난 미모로 제6회 슈퍼모델 대회에서 1위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당시 “외무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이진영은 모델로 활동하지 않고 2000년대 초반부터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사법 시험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하면 올해 합격자 중에는 현직 경찰관도 있어 눈길을 끈다. 부산 부산진경찰서 수사과 경제 2팀 김신호 경위(35)는 이번 사법시험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김 경위는 경찰대학교 18기로 2002년 경찰에 임용된 이후 근무와 시험준비를 병행했다. 그는 근무시간 앞뒤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휴일에는 인근 대학 도서관에서 5년간 공부했다.  김신호 경위는 “경찰에 남을지 법조인의 길을 갈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어디에서 일하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축하합니다”,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기분이 어떨까”,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 사법시험 합격,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런웨이 대신 법정 걷는 여자

    런웨이 대신 법정 걷는 여자

    슈퍼모델 출신 여성이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 예비 법조인이 돼 화제다. 14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전날 발표된 제56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204명 명단에 슈퍼모델 출신 이진영(38)씨가 이름을 올렸다. 이씨는 1997년 열린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180㎝의 키에 이국적 느낌의 외모로 1위를 차지했던 재원이다. 당시 동국대 영어영문학과에 다니던 이씨는 외무고시 준비생으로 소개돼 지성파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후 모델로 활동하지 않고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해 오다가 이번에 최종 합격의 영광을 안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공인회계사 시험에 최연소 합격한 대학생이 이번엔 누나의 뒤를 이어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국내 대표적인 회계·재무 전문가로 꼽히며 1980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던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의 아들인 보령(27)씨가 그 주인공이다. 보령씨는 연세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7년 만 스무살의 나이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최연소 합격했다. 이번 사법시험 합격에는 검사인 누나 혜령씨(32·사법연수원 40기)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신호(34) 경위는 현직 경찰로는 처음으로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하는 역사를 쓰기도 했다. 경찰대 18기 졸업생으로 현재 부산진경찰서 수사과 지능범죄수사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오전 5시에 일어나 책을 보다 출근하고, 퇴근 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등 3년 4개월간 일과 시험 준비를 병행한 끝에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이 밖에 한성과학고를 졸업해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재학 중인 조연수(21·여)씨가 최연소 합격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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