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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대 연출가 3인의 야심찬 무대

    ◎박상현 ‘사천일의 밤’·조광화 ‘미친 키스’·이성열 ‘파티’/예술의 전당 ‘우리시대 연극시리즈’/작품당 2,500만원씩 제작비 지원 시적 언어의 박상현,솔직함의 조광화,서정적인 이성열.독특한 개성으로 현실에 밀착된 어법을 사용,주목받아온 젊은 연출가 3명이 한무대에 선다. 이들은 11월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시작되는 ‘98 우리시대의 연극시리즈’를 이끌어갈 주인공들.릴레이식 시리즈 8,9,10을 꾸민다.‘우리시대∼’는 창작극 활성화를 위해 예술의전당이 지난 93년부터 해마다 한차례씩 마련해온 기획 공연.올해엔 이 무대를 21세기 우리 연극을 이끌어갈 30대 연출가 3명의 신선함으로 채운다.예술의전당은 자유소극장과 대여계약 즉시 3개 공연에 각 2,500만원씩의 제작비를 지원,극단이나 연출가가 제작에만 전념토록해 완성를 높이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이같은 시도의 작품들은 93년 ‘오구­죽음의 형식’(이윤택 연출)을 첫작품으로 94년작 ‘빈방 있습니까?’(최종률 연출),96년 ‘여우와 사랑을’(오태석 연출)등으로 작품성과 흥행에서 동시 성공을 얻어냈다. 이번 시리즈의 첫공연은 박상현(39)의 ‘사천일의 밤’.이성적이고 분석적이며 사회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을 주로 다뤄온 연출가로 80년대 연극의 문학적 감수성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뒤늦게 서른두살의 나이인 91년 ‘해질녘’(연우무대)으로 데뷔,‘마지막 손짓’ ‘까페 공화국’‘키스’ 등 문제작을 연출했다.희곡까지 직접 쓴 이번 작품은 12·12사태때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이 실명,스캔들,그리고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4,000일동안의 기구한 삶을 조명했다.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 작품을 통해 역사속에 감춰진 실존적 아픔을 채취해 극도의 관심과 방관이 어떤 결과를 빚어왔는지 경종을 울린다.11월22일까지 공연되며 ‘사천일의 밤’은 이영숙 유연수 김재건 이현순 박성준 등이 출연한다. 두번째 공연은 ‘남자충동’으로 96년 연극계에 돌풍을 일으킨 조광화(33)의 ‘미친 키스’.무거운 주제를 감각적인 그릇에 담아내는 재주가 탁월하다는 그가 채워지지않는 열정을 접촉으로해결하려는 현대인의 비뚤어진 정서의 한 단면을 그린다.구순기(口脣期)의 아이들처럼 입맞춤을 열망하는,접촉 중독자와 같은 등장인물을 통해 켜켜이 쌓여가는 도시인의 외로움을 코믹하고 감각적인 터치로 표현해낸다.11월27일∼12월13일.김수영 이남희 김기순 박선신 등 출연. 시리즈 마지막 작품은 이성열의 ‘파티’.한 가정이 외부의 힘에 의해 와해돼가는 과정을 코믹하고 신랄하게 그린 작품으로 현대인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세밀하게 묘사해낼 예정.첫공연을 12월31일 밤10시에 시작,99년 새해를 무대위에서 맞는다.내년 1월17일까지.출연자 아직 미정.(02)580­1234
  • 한가위 보름달을 그리며/임수경 통일운동가(굄돌)

    달이 하루하루 차오를수록 그리움과 외로움에 사무치던 때가 있었다. 창살에 가린 달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대롱대롱 매달리다가 뺨을 스쳐가는 찬바람이 슬퍼서 눈물을 떨구기도 하였다.수년 전,20대 초반의 나이에 세상의 모든 것과 처음으로 떨어져 감옥살이할 때의 일이다. 꿈 속에서만이라도 바깥세상에 있기를 소망한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니었다. 대낮엔 담장 안에,잠든 후엔 담장 밖에 있다면 감옥살이가 절반으로 줄어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은 부질없는 것이었지만, 매일 가져보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었다.하지만 그 희망은 차오르는 달 앞에서는 슬픔이었고 그리움이 되었다. 달이 주는 의미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이제 팔월 한가위를 며칠 앞두고 있다.꽉 찬 보름달을 보며 희망이 부스러져내린 조각을 허탈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겠다는 생각을 한다.고향을 두고도 갈 수 없는 이산가족,직업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가장·노숙자들,감옥에 있는 양심수,이들 모두가 견디기 힘든 현실을 꿈에서나마벗어나 보고파 하며 살아가리라.북녘 땅에서도 추석은 큰 명절이다.솔잎을 얹어 쪄낸 송편 한 접시도 제대로 먹기 힘든 식량위기의 북한 사람들도,달을 맞는 느낌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민족 고유의 명절을 보내며 민족 최대의 위기를 말하는 요즈음,이 절망의 시대에 귀가 번쩍 뜨이는 뉴스가 있으면 좋겠다.50년 넘게 고향가는 길을 잃고 살아온 이산가족에게 고향길 차편이 마련되는 일,남북간의 대치 상태가 사라져 평화구역이 선포되고 양쪽 군인이 모두 추석휴가를 가는 일,양심수가 전원석방된다는 정부 발표문에 박수를 보내는 일 등이 실현되기는 진정 어렵고 허황할까. 이번 한가위에는 달을 보며 슬픔이 아닌 희망이 담긴 소원을 꼭 빌어보고 싶다.
  • 親日의 군상:7­2/尹致暎家의 빛과 그림자(정직한 역사 되찾기)

    ◎독립협회 회장 尹致昊/현실 비관… ‘대세 순응주의’ 빠져 민족 외면/日·中·美 유학한 대표적 선각자의 한사람/105인사건 연루뒤 ‘친일전향’ 조건 출옥/日 귀족원 의원까지 역임… 끝내 반성 안해 좌옹(佐翁) 尹致昊(1865∼1945년·창씨명 伊東致昊)는 개화기의 대표적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그는 조선인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자 중국·미국에서 유학한,당시로선 드문 식견가였다.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그는 조선(한국)의 잠재역량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데다 식민지라는 ‘상황논리’에 빠진 나머지 결국 일제와 타협하고 말았다.그의 친일은 갑작스런 변신이 아니라 해외유학 경험을 통한 자기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그의 친일 행적보다도 친일 논리에 눈길이 쏠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尹致昊는 신식군대 별기군(別技軍) 창설의 주역 尹雄烈(1840∼1911년)의 장남으로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본관은 해평(海平).부친은 무관이었지만 일찍 개화에 눈뜬 사람으로 그의 진로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尹致昊의 첫 유학지는 일본.1881년 일본의 신문물 견학차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일원으로 파견된 것이 계기였다.그는 조사(朝士) 魚允中의 수행원으로 따라갔는데 당시 나이는 17세로 일행 62명 중 막내였다.3개월간의 시찰을 마친 후 그는 귀국치 않고 兪吉濬 등과 함께 일본에 남아 신학문을 공부하였는데 이들이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된다. ○신사유람단 따라 日 시찰 그는 일본 외무경 이노우에(井上馨)의 소개로 중등 과정의 사립학교인 동인사(同人社)에 입학하였다.그는 여기서 일본어와 영어를 공부하였다.이 시절 金玉均 등 국내 개화파 인사는 물론 일본인 개화파 인사,재일 외국인 외교관들과도 교류하며 국제 정세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2년간의 일본생활은 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아! 슬프다.조선의 현상이여,남의 노예보다 더 심한 처지에 있으면서 어찌 진작(振作)하려 하지 않는가” 당시 그의 눈에 비친 조국의 현실은 이러했다. 1883년 5월 그는 초대 주한 미국 공사(公使)로 부임하는 푸트의 통역관으로 귀국하였다.그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주사(主事)로 임용돼 통역과 공문서 번역 일을 보면서 개화파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갔다.하지만 개화파 인사들의 급진적 개혁론에는 찬동치 않는 입장이었다.그러나 이들과의 친분 때문에 갑신정변 실패 후 공모자로 몰려 상하이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1885년 상하이로 간 그는 현지 미국 총영사의 알선으로 중서서원(中西書院)에 입학하였다.이 학교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알렌이 설립한 미션 스쿨로 그는 여기서 3년반 동안 수학했다.그러나 원치 않았던 상하이생활 초창기 그는 한동안 술과 여자로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망명객의 울분과 20대 초반 객지생활의 외로움이 겹친 것이었으리라.그의 방탕한 생활은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막을 내렸다.상하이에서 3년반을 보낸 후 그는 청나라를 ‘더러운 물로 가득 채워진 연못’으로 비유했다.반면 일본은 그에게 ‘동양의 한 도원(桃 園)’이었다. 미국 유학은 그에게 또 하나의 자극이었다.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미국의 ‘위대함’을 목격하고는 미국은 일본보다도 한수 위의 나라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같은 생각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로 깨지고 말았다.그가 강대국 미국·러시아를 제치고 친일로 나선 데는 미국에서 경험한 인종적 편견이 작용한 면이 없지 않다.러일전쟁 무렵 그는 ‘황인종단합론’을 들고 나오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대륙침략자들이 주창한 ‘아시아주의’‘동양평화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민족패배주의에 빠져 尹致昊가 친일로 나선 것은 ‘105인사건’(소위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이 계기다.한일병합 2년 뒤인 1912년 일제는 식민통치의 걸림돌인 민족운동세력과 기독교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이 사건을 조작했었다.그는 이 사건에 연루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15년 2월13일 친일 전향을 조건으로 출감했다.출감 후 첫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선동화(日鮮同化)’를 부르짖었다.“…이후부터는 일본 여러 유지 신사와 교제하여서 일선(日鮮)민족의 행복되는 일이든지 일선 양민족의 동화(同化)에 대한 계획에는 참여하여 힘이 미치는 대로 몸을 아끼지 않고 힘써볼 생각이다”(‘매일신보’,1915년 3월14일) 그가 변절한 직접적 요인은 가혹한 고문과 일제의 강요였다.그러나 그 내면에는 오랜 사상적 기반이 모태가 됐다고 볼 수 있다.‘개화기의 尹致昊 연구’의 저자 柳永烈(숭실대 사학과) 교수는 “개화기 이후 그의 의식 속에 잠재돼 있던 ‘민족패배주의’와 현실적으로 일본의 조선 통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대세순응주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충량한’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변신한 尹致昊의 친일 행보를 따라가보자. 1919년 ‘3·1만세의거’ 직전 그는 민족대표로 참여할 것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다.그리고는 의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강자와 서로 화합하고 서로 아껴가는 데에는 약자가 항상 순종해야만 강자에게 애호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서 평화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입니다”(‘경성일보’,1919년 3월7일)라며 약자인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제에 순종하는 길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제가 선전하던 ‘조선독립불능론’‘투쟁무용론(無用論)’ 등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그의 친일논리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다. 1920년대 들어 그는 일제의 ‘문화정치’ 선전과 청년층의 반일 동향을 억제하는 데 이용된 교풍회(矯風會)의 회장을 맡는 등 각종 친일단체에서 일제의 식민정책 선전에 주력했다.당시 그는 민족개량·애국계몽운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는 일제 통치를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타협적 민족운동이었다. ○학병 참가 전국 순회 강연 그의 친일은 중일전쟁 발발(1937년 7월7일)을 계기로 강도를 더해갔다.총독부 주최 시국강연반의 연사로 전국을 돌며 순회강연을 하는가 하면 이듬해 1938년 육군특별지원병제가 실시되자 이는 ‘내선일체(內鮮一體)에 합당한 조치’라며 환영하였다.또 그해 7월 ‘황국신민화’의 실천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상무이사로 선정돼 창립총회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三唱)하기도 했다. 1941년 ‘대동아전쟁’ 때는 전시결전단체인 임전대책협의회에 참가하여 ‘우리는 황국신민으로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성(誠)을 맹서하여 협력할 것을 결의함’이라는 결의문을 낭독하였다.징병제에 이어 1943년 학병 동원이 시작되자 ‘조선 학도들에게도내지(內地·일본)동포들과 어깨를 겨누어 싸움터로 나설 수 있는 영광스런 길이 열렸다’(‘매일신보’,1943년 11월18일)며 학도들의 출진을 촉구하였다.이같은 공로로 45년 2월 그는 일본 귀족원의원에 선출돼 부친에 이어 2대에 걸쳐 ‘일본 귀족’ 반열에 올랐다. “…(일제하)조선인은 좋든지 싫든지 일본인이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일본 속국의 상태에서 그가 한 일로 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질 않습니다….”사망(1945년 12월16일) 2개월 전 그가 남긴 글의 한 구절이다.지식인으로서의 ‘반성’은 차치하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참회’ 한마디도 없다.독립협회 회장과 ‘독립신문’ 사장을 지낸 그가 해방 후 남긴 ‘자기 고백’은 겨우 이런 모습이다. ‘일본의 스코틀랜드화(化)’가 조선이 살 길이라며 일제의 ‘우호적인 식민통치’를 기대했던 그의 나약한 역사관이 결국 그를 친일의 길로 안내하고만 것이다. ◎尹致昊 일기/60년간 쓴 일기 시대상 상세히 담아/사생활도 솔직히 기록 ‘윤치호 일기(尹致昊 日記)’는 한말의 선각자 尹致昊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60여년간에 걸쳐 기록한 개인적 메모.초창기 일기는 한문·국문으로,1889년 12월 이후부터는 영문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청국·미국 등 해외유학 시기의 ‘일기’에는 당시 그 나라의 발전상과 시국 상황,그리고 그곳에 체류중이던 한국인들의 동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국내 체류기인 1883∼84년 당시의 ‘일기’에는 자신이 목격한 갑신정변과 개화당의 활동이 소상히 기록돼 있다.특히 일제 강점기 그가 국내에서 활동할 당시의 ‘일기’에는 자신의 입장과 국내 지식인들의 동향 등도 담고 있다. 이‘일기’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특히 尹致昊 인물연구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한 사람의 ‘일기’치고는 방대한 분량도 놀랍지만 자신의 행적도 비교적 솔직하게 기록했다. ◎‘尹致昊 일기’에 나타난 親日 어록 “만일 내가 살 곳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일본이 바로 그 나라일 것이다.…오,축복받은 일본이여!동양의 파라다이스여!세계의 정원이여!”(1893년 11월1일) “나는 국경일에 일장기의 게양을 반대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우리가 일본의 통치하에 있는 한 우리는 그 통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1919년 10월1일) “일본은 동양에 있어서 백인 지배의 마력(魔力)을 깬 데 대하여 모든 황인종의 영원한 감사를 받을 만하다” (1941년 12월26일) “우리는 조선의 청년을 영광스런 일본 해군의 자랑스런 대열에 받아들인데 대해 감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1943년 5월12일)
  • 충남대 이숙희 교수 ‘한시 바로보기 거꾸로 보기’

    ◎漢詩 새로운 해석 눈길/“최치원 작품 ‘추야우중’ 唐서 고국생각 아닌 신라서 唐 유학시절 그린 시”/정몽주·이색 등 詩도 재해석 “가을 바람은 괴로움을 읊어대는데/세상에는 음(音)을 이해해 주는 이 드물구나/창 밖엔 삼경인데 비가 나리고/등 앞에서 만리를 향하는 이 마음이여” 신라 때의 학자 최치원이 당나라 유학 시절 고국을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추야우중(秋夜雨中)’이란 시다.그러나 이 작품은 지금까지 해석돼온 것처럼 당나라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쓴 시가 아니라 신라에서 당나라를 생각하며 지은 시라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충남대 이숙희 교수(45·한문학과)는 최근 펴낸 연구서 ‘한시,바로 보기 거꾸로 보기’(이회)에서 그동안 널리 읽혀 온 대표적인 ‘한국 한시(漢詩)’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리고 있어 주목된다. 이교수는 먼저 최치원이 살았던 시대 배경과 그의 문집 ‘계원필경’을 근거로 ‘추야우중’을 새롭게 읽는다. 최치원은 10년이 넘는 당나라 생활 동안 1만여수의 시를 지으며 문명을 날렸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신라는 나말(羅末)의 혼란기로 6두품 출신인 최치원은 신분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처지에서 최치원은 지음(知音),즉 자기를 알아주는 벗이 드문 신라 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인정해주던 당나라를 못잊어했을 것이라는 것. 또 하나의 논거는 ‘계원필경’이다.최치원이 당에서 귀국한 뒤 그의 작품 가운데 훌륭한 것만을 스스로 뽑아 편집해 헌강왕에게 바친 책이 바로 ‘계원필경’ 20권이다. ‘추야우중’은 여기에 실리지 않았다. 최치원의 시를 혹평했던 성현이나 허균조차 ‘추야우중’을 높이 평가했음에도 ‘추야우중’이 ‘계원필경’에 실리지 않은 것은 이 시가 ‘계원필경’ 이후의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교수는 고려 전기의 시인 정지상의 시 ‘대동강’에 대해서도 색다르게 해석한다. 이 작품은 흔히 이별의 아픔을 시적으로 잘 갈무리한 감상적인 서정시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송군(送君)·비가(悲歌)·별루(別淚)라는 세개의 직설적인 시어만 빼면 어느 구석에서도 슬픔이나 외로움 혹은 아쉬움의 정서를 찾아볼 수 없다는게 이교수의 해석이다. 요컨대 “봄의 싱그러움 속에서 희망으로 여며보는 깊고 푸른 결심”의 세계를 그린 의지적인 분위기의 시라는 것이다. 시란 말 너머의 말이다. 그것은 일상의 언어로 표현될지라도 단순한 일상성을 넘어선다. 때문에 시는 해석에 따라 거듭 태어난다. 이교수는 이 책에서 널리 애송돼온 64수의 ‘국민적’ 한시에 대해 분갈이를 시도한다. 정몽주의 ‘춘흥(春興)’,허난설헌의 ‘소년행(少年行)’,이색의 ‘관물(觀物)’정도전의 ‘석탄(石灘)’,이제현의 ‘사귀(思歸)’,김부식의 ‘등석(燈夕)’,김시습의 ‘만의(晩意)’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 범죄자 된 노숙 탈북자의 눈물/趙炫奭 기자·사회팀(현장)

    “그동안의 남한 생활은 기억조차 하기 싫습니다” 13일 상오 서울 남대문경찰서 형사계. 지난 96년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 金正勇씨(28·경기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가 초췌한 모습으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서울역 앞에서 노숙 생활을 하던 金씨는 崔모씨(20·공무원)를 흉기로 찌른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날 새벽 육교에서 잠을 자다가 “날씨가 추우니 지하도에 가서 자라”고 권유하던 崔씨를 깡패로 오인해 순간적으로 저지른 범죄였다. 감시와 눈총속에서 살아왔지만 죄를 지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고개를 떨군 채 조사를 받는 金씨는 노숙자에서 범죄자로 전락한 것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겨우 얻은 자유를 스스로의 잘못으로 놓친 데 대한 자책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면서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는 힘들었던 지난 2년간의 남한 생활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金씨는 북한의 요양소 노동자였다. 자유가 그리워 탈출하기로 마음먹고 두차례의 탈출 시도 끝에 96년 1월 가까스로 자유의 땅을 밟았다. 1,700만원의 정착금과 철도청 정비직을 얻을 때만 해도 장밋빛 꿈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의 따돌림과 곱지않은 시선이 그를 괴롭혔다.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었고 외로움만 밀려왔다. 결국 무작정 직장을 뛰쳐나와 막노동판을 전전하기에 이르렀다. 신용카드빚은 늘어갔고 정착금조차도 술과 경마에 탕진했다. 마지막으로 탈북자 金모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오래 견디지 못했다. 지난달 그는 노숙자라는 최후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날 구속영장이 신청된 金씨는 “잘 살고 있는 탈북자들도 많은데 내가 못난 탓”이라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 천민광대 애달픈 삶 연극·영화화/김명곤씨 집필·연출 유랑의 노래

    ◎연극·영화 동시 활동하는 인물 캐스팅 연극계와 영화계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보여온 연출가겸 배우 김명곤씨가 이번엔 남사당패의 삶과 애환을 그린 작품을 연극과 영화로 동시에 제작한다.작품은 굶주림과 천대,좌절과 환멸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고집과 열정을 버리지않는 남사당패의 이야기를 담은 ‘유랑의 노래’. 영화 ‘서편제’와 연극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등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김씨가 오랜 준비끝에 직접 대본을 쓴 작품이다.대학시절,인간문화재의 무용공연을 보러갔다 우연히 남사당패의 처절한 고생담을 듣게됐고 벼르다 3년전부터 본격적으로 대본을 쓰기 시작해 최근 완성했다. “지금도 이름만 대면 누군지 금방 알만한 유명인사와 당시 술자리를 같이 하게됐고 이어지는 이야기로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됐어요.육순에 접어든 그가 밤새 성적요구를 해 거절하느라 애를 먹기도했지만 새벽녘 등을 긁어달라며 진한 외로움의 눈물과 함께 털어놓은 남사당패 이야기가 그렇게 감동적일 수 없었어요.” 영화제작을 위해 극단아리랑과 별도로 아리랑프로덕션까지 설립하고 의욕을 보이는 김씨는 감동적인 줄거리와 함께 전통기예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가미,해외공연도 계획중이라고 덧붙였다. 천민광대들의 인생역정을 밀도 있고 속도감 있는 서사가무극으로 풀어갈 ‘유랑의 노래’는 98서울연극제 공식공연작으로 선정돼,오는 9월26일부터 10월3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연극으로 먼저 소개된다.(하오 4시30분·7시30분) 영화제작을 고려,연극과 영화계에서 동시에 활동중인 인물들이 대거 참여한다. 김씨가 연출과 함께 주인공인 꼭두쇠 봉추산 역을 맡았고,영화 ‘301.302’와 연극 ‘격정만리’의 방은진,영화 ‘코르셋’과 연극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의 이혜은이 봉추산을 사랑하는 유란과 매령으로 각각 출연한다.세계무용제 기술총감독을 맡았던 구근회씨와 영화 ‘301.302’에서 분장을 담당했던 안희준씨 등이 스탭으로 힘을 보탰다.영화는 김씨의 감독 데뷔작으로 내년쯤 같은 제목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517­5332
  • 서울의 얼룩진 밤풍경 화면 가득/이애리 개인전

    서울은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살아가는 공간이지만 고독한 무수한 개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공간이기도 하다.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돌아가는 서울의 밤 풍경.너무도 익숙한 일상적인 삶의 풍경이지만 젊은 작가 이애리에게는 얼룩진 도시의 밤풍경이 상처처럼,때로는 그리움처럼 다가온다. 24일부터 9월1일까지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서호(02­723­1864)에서 개인전을 갖는 이애리는 그리움처럼 다가서는 서울의 밤 풍경과 그속에 담긴 외로움을 불러내 화면에 옮겨놓고 있다. 수묵을 위주로 구사하면서 채색과 아교와 석채의 발림에 따른 표면의 질감은 우수적이면서도 외롭고 아련한 느낌을 준다.따뜻하고 서정적인 그림이다.
  • 섬으로 남고싶은 시인의 노래/이생진씨 기행시집 ‘거문도’

    ◎때묻지 않는 자연·뼈아픈 역사 형상화 50여년간 섬에서 섬으로 떠돌며 섬을 노래해온 ‘섬시인’ 이생진(70).죽은 뒤에도 섬으로 남고 싶다는 그가 만재도를 노래한 시집 ‘하늘에 있는 섬’에 이어 기행 시집 ‘거문도’(작가정신)를 내놓았다. 고도·동도·서도와 백도 군도를 거느리고 있는 섬 거문도는 제주와 여수중간에 놓여 있다.빨간 동백꽃엔 나비 대신 흰눈이 내리고,동양 최대의 거문도 등대가 있으며,아름다운 이금포와 이해포 그리고 유림 백사장이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하는 곳이 바로 거문도다.그 순수의 땅에서는 사마귀가 메뚜기를 잡아먹는 광경도 잔인하게만 보인다.또 먹고사는 일은 솔바람 소리나 대나무 소리보다도 사소해 보인다.시인은 “거문도에 가면 처음엔 자연에 취하고 다음엔 인물에 감동하고 나중엔 역사에 눈을 돌리게 된다”고 말한다. 시인은 생명의 섬 거문도에서 물고기 대신 월척같은 시심(詩心)을 낚고,아무도 없는 백사장을 거닐며 견고한 고독을 발견한다.“가보면 알게 되지만/예나 지금이나/혹은 먼 미래나/거문도는조용한 장편소설/다 읽고 나면 그 외로움을 알게 된다”(‘조용한 장편소설 같은 곳’전문) 인간의 고독과 섬의 고독은 시인의 붓끝에 의해 비로소 하나로 손잡는다. 그러나 거문도의 빼어난 자연조건은 서구 열강들이 호시탐탐 침략의 손길을 뻗게 만든 불쏘시개가 됐다.세 개의 섬으로 둘러싸인 내해는 수심이 깊어 대형선박의 출입이 가능했다.특히 고도는 천혜의 양항(良港)으로 이용가치가 높았다.1885년 영국은 마침내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다는 명분아래 거문도를 무단 점거했다.그들은 23개월 동안이나 진을 쳤다. 시인의 작품 ‘어리석은 포대’는 거문도의 뼈아픈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한다. “보로봉 올라가면/어리석은 포대/어린애처럼 삼부도에 발포하고 싶어한다/삼부도는 전혀 전의(戰意)가 없는데도…(중략)…전쟁놀이는 어른으로 이어지고/일국의 총의라 우긴다/ 얘들아 너희들은 전쟁의 우(愚)는/범하지 말라/팽나무가 전쟁에 이를갈고 있다”(‘어리석은 포대’중에서) 시인은 무룡태 같았던 우리 조상들의 터무니없는 순진함과 제국주의자들의 낯두꺼움에 새삼 분노한다.그리고 당부한다.적어도 거문도에 오면 상백도니 하백도니하는 ‘관광을 위한 관광’을 하지말고 자연과 역사를 함께 보라고.
  • 귀순자 자립 지원/의무고용제로 직장 보장을(탈북 그 이후:4)

    ◎자격증 등 인정 못받아 단순 직종으로/절반이상이 월수입 100만원 못미쳐/적응교육 강화… 안정된 삶 부축 시급 지난 95년 북한을 탈출한 朴모씨(36)는 하루하루가 힘겹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았지만 낯선 남한 생활에 후두암까지 겹쳐 또다른 죽음의 고비를 맞고 있다. 朴씨는 “한달에 40만∼50만원에 달하는 항암치료비는 고사하고 30만원이 넘는 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조차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면서 “처음 귀순할 때의 환영 분위기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냉담해지는 주변의 시선에 야속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남한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러시아 벌목장을 탈출해 94년 귀순한 韓모씨(38)도 버거웠던 지난 4년간의 남한 생활을 털어놨다. 韓씨는 “한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개인 한방병원에 취직했지만 ‘북한자격증을 어디에 쓰느냐’고 면박을 주며 잔심부름만 시켜 그만 두었다”면서 “죄인이나 무능력자 취급받는게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韓씨는 “한의학 서적을 출간해주겠다고 찾아 온 남자에게 산삼 두 뿌리를 사기당한 적도 있고 한 독지가가 귀순자들에게 전달하라고 준 돈을 중간에서 가로 챈 사람도 보았다”면서 “남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상대하지도 않고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마구 이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이념과 체제가 다른 사회에서 꾸려가는 제2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다. 이들은 우리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직장 문제와 생활고를 꼽았다. 아무런 기술도 없고 북한에서의 경력마저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주변의 부정적인 시각과 지적 열등감,언어의 차이,외로움 등으로 수시로 좌절감을 느낀다. 이들은 97년 제정된 ‘북한 이탈주민 보호·정착지원법’에 따라 귀순 후 통상 6개월간의 관계기관 합동심문과 사회적응 교육절차 등을 거친 뒤 귀순전 북한에서의 지위 등에 따라 3등급으로 나뉘어 정착금 및 주택,보조금 등을 받는다. 가족이나 지위가 없는 경우 받는 지원금은 평균 1,400만원 정도. 하지만 주택 임대보증금과 가재도구 구입비로 거의 다 쓴다. 정부기관의 주선으로 공무원이나 회사원 등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지만 전문직 보다는 단순 노무직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올 초 통일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탈북자 700여명 가운데 매월 100만원 이상을 버는 사람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314명에 불과하다. 월 50만원 이하로 생계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도 86명이나 되며 병약자나 노약자 등 생계곤란자도 40여명이 넘는다. 또 절반이상이 정부에서 알선한 직장에서 나와 막노동을 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생활안정과 자립을 도와주기 위해 지난해 9월 설립된 북한이탈주민후원회 金熙辰 사무국장은 “탈북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계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보장받는 것”이라면서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가 요구하는 취업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적응교육과정 및 법정 의무고용제도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외로움에 시달리는 귀순자(탈북 그 이후:3)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어요/초등학생 자녀 따돌림 심해 기죽어/냉대·소외감 못견뎌 술로 허송세월/“결혼은 귀순보다 큰 모험” 하소연도 96년 중풍에 걸린 남편 金慶鎬씨(63)와 만삭인 막내딸 명순씨(28)등 일가족 16명을 이끌고 북한을 탈출,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崔현실씨(59·여). 일요일인 지난 9일 서울의 한 교회에 간증차 나온 崔씨에게서는 ‘북한 출신’의 티가 거의 나지 않았다. 약간 남아 있는 북쪽 특유의 억양만이 崔씨가 1년9개월전 사선을 넘어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가족이 다 와서 그런지 탈북자들이 흔히 느끼는 외로움이나 죄책감은 덜한 편입니다. 이웃 주민들과도 허물 없이 지내지요. 시장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야채를 더 얹어주거나 옷을 그냥 가져가라고 해 오히려 난처할 때가 많아요” 누구보다 빠르게 남한생활에 적응한 崔씨이지만 한동안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다. 평소에는 잘 어울려 놀던 같은 반 아이들이 싸움이 벌어지면 ‘북한에서 온 주제에…’라면서 따돌리는 바람에 손자들이기가 죽어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는 것. 崔씨는 “딸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뵙고,몇차례 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난 이후에는 그런 일이 많이 줄었다”면서 “철모르는 아이들끼리의 일이지만 섭섭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700여명이 넘는 탈북자 가운데 崔씨처럼 일가족이 함께 내려와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부모 형제를 등지고 혈혈단신 귀순한 탓에 극심한 죄책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지낸다. 탈북자 후원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의 尹玄 대표는 “가족을 버렸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결혼을 적극 권유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 출신이라는데 대한 거부감과 선입견이 심한데다 일부는 정착금을 노려 계획적으로 접근하기도 해 자칫 돈 잃고 마음만 상하기 쉽다는 것이다. 성공한 탈북자로 알려진 金勇씨(38·연예인)도 “열렬한 연애가 아닌 바에야 귀순자에게 결혼은 귀순보다 더 큰 모험”이라고 토로했다. 주변의 냉대와 소외감을 견디다 못해 술로 허송세월하거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탈북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지난해 5월 6개월된 딸과 함께 자살한 탈북자 아내 崔율리아씨(당시 26세)가 그런 예. 러시아교포 3세인 그녀는 러시아 벌목공으로 일하다 94년 5월 귀순한 남편 崔모씨(40)를 따라 이듬해 한국에 왔으나 주위와 어울리지 못한데 따른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러시아 벌목공 출신인 K씨는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에 대해 판에 박힌 시각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은 귀순자들을 저개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뿐 동족으로서의 애정은 없다”고 비판했다. 남한사회에 대한 좌절과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면서 찾아온 남한 땅에서 자신이 할 일이 막노동밖에 없다는 현실이 자포자기상태로 몰아가는 것이다. 탈북동기나 경로는 서로 다르지만 탈북자들의 목표는 똑같다.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제주섬 문화축제/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육지에서 손을 뻗치면 잡힐듯 가까운 섬­수많은 섬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그래서 영국 작가 체스터튼은 “세상에는 섬처럼 그렇게 완전히 시(詩)적인 것은 없다”고 했다. 우리 시인 이생진은 “산에 가거든 나무를 이해하려 하고 섬에 가거든 바람을 이해하려 하라.그 출발이 여행이다.여행은 너를 따라다니며 가르쳐 주는 평생의 스승이요 동반자다”라면서 “외로운 것들끼리 만나고 싶으면 섬으로 가라.혼자 서 있는 도요새가 기다리고 있다.바다직박구리새가 너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그는 섬에 가야 시가 써진다면서 섬을 떠돌며 시집과 산문집을 펴 내고 있다. ‘98 제주 세계섬문화축제’가 오는 18일 개막된다.8월13일까지 한달 가까이 계속될 이 축제는 세계 최초의 섬문화축제로 25개 나라 28개 섬이 참여한다.제주도·진도·거제도등 한국의 섬을 비롯,태평양의 오키나와·하롱베이·타이티·파푸아뉴기니,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모리셔스·카나리아군도,지중해와 대서양의 크레타·시칠리아,카리브해의 바베도스·자메이카등이다.5대양의 대표적 섬들이 망라된 셈이다. 제주도 오라 관광지구에서 열리는 이 섬문화 축제에서는 각 섬의 민속 기념품이 전시 판매되고 고유의 토속무용과 음악 및 제례의식등이 공연되며 전통음식과 패션이 소개된다.평생동안 세계의 섬들을 찾아 다녀도 모두 맛볼 수 없을 다양한 섬 문화를 한꺼번에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축제는 그동안 고립되고 단절되었던 섬들이 문화적 교류를 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축제 조직위원회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경이로운 만남과 우정이 창조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제주도는 이 축제를 통해 외국인 관광객 10만명을 포함해 8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시인·소설가의 감수성을 흔든 외로움과 그리움,바람과 순수의 섬을 현실적인 관광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제주도처럼 다른 지방자치 단체들도 관광수지 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산뜻한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추진한다면 오늘의 경제난국을 헤쳐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같다.외국인들이 한국 관광을 외면하는 이유는 “볼 것 없고,불친절하고,불편하고,값 비싸다”는 것이다.제주 섬문화축제는 가장 중요한 관광자원인 ‘볼 것’을 국제적 차원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올 여름 휴가는 제주도로 가서 섬의 진수를 맛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 ‘취업 외교’로 IMF 극복을/金弄柱 연세대 취업담당관(발언대)

    1963년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서독의 탄광회사 사장과 ‘광부파견에 관한 협약’을 맺었다.그것은 우리 정부의 일자리 확보를 위한 끈질긴 물밑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60년부터 조금씩 파견되던 한국의 간호사들이 65년 대규모로 서독에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파견된 한국의 광부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성실하게 일한 때문이기도 했다. ○희망자 등록제 실시 80년대 150억불 이상의 해외 건설공사 수주와 이에 따른 건설인력의 수출은 당시 국가외환사정을 건강하게 해주었다.해외건설 시장에서의 성실한 시공 덕분에 85년에는 간호보조원 500명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이 또한 취업 외교의 개가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일하기 보다는 쓰는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더니 수년전부터 3D업종 기피와 과소비,노동 자세 상실과 정책부재 등이 겹치면서 결국 지금의 경제위기를 불렀다.이대로 가다가는 IMF상황이 극복되더라도 일자리 부족 현상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벤처기업 창업과 해외일자리 확대 정책에 달려 있다. ○진지한 노동자세 지녀야 해외 취업외교의 성공을 위해서는 해외 노동시장 개척 기능을 확대 강화시킬 의지와 제도가 필요하다.먼저 ‘해외 취업 희망자 등록제도’를 범국가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노동부의 각 지방 사무소를 통해 희망직종,경력,능력,외국어 가능여부,진출희망 국가 등을 등록 받아서 집중 관리하고,이 자료를 각국의 공관에 보내 구인 희망자와 연결시켜 주는게 바람직하다.다음은 해외취업 희망자의 능력평가시스템을 직종별로 새로 만들어,이들에게 각 나라에서 필요한 기능훈련은 물론,현지 문화,직업여건,언어 등을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이에 앞서 힘든 일도 하겠다는 우리 구직자들의 노동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외국의 탄광에서,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외로움과 싸우던 그 기백과 용기 없이는 해외취업 외교는 성공하기 힘들다. 1903년 하와이에서,63년 독일에서,80년대 중동에서 성공한 우리 선배들의 직업의식 속에서 배울 점을 찾아보자.고대희랍 사람들이 ‘일은 고역(苦役)’이라고 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 정호승씨 신작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세상향한 한 남자의 ‘눈물노래’ 한 평생 울어도 눈물이 모자라는 시인. 정호승의 신작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 간)를 들여다 보면 눈물은 더 깊어졌고 위로하는 대상은 더 넓어졌다. 삶의 무게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시집에는 첫 마음을 현실에서 앗기지 않으려는 한 남자가 나온다. 가슴 속 풍경에는 ‘리기다소나무’같던 첫 사랑을 향한 가슴앓이,세상의 바닷가에 세운 ‘외로운 절벽 하나’와 눈물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흘린 기억들이 있다. 남자의 노래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여전히,눈사람이나 별에 대한 그리움도 보인다. 50대를 바라보건만 남자의 음조는 변하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지 않았는가, 사내가 제자리 걸음인가. 어쩌란 말이냐,내가 가진 재주라고는 노래 밖에 없는데라고 그는 대답한다.더 절박하고 단연한 톤,하지만 낮아진 목소리로 세상에 벅찬 시비를 건다. 세상과 맞선 남자는 ‘달팽이 집’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마음은 연약하나 껍질은 단단한,껍질은 연약하나 마음은 단단한”집을 짓고,우주와의교감을 시도한다. 그윽해진 사내의 시선은 빗물을 흠뻑 빨아들이는 사막,한라산을 오르는 맹인들의 발 아래 밟히는 눈에 빗대어 나타난다. 쓸쓸함과 새싹이 공존하는 ‘검은 민들레’같은 세상에서 남자의 운명은 태생적으로 비극이다. 세상과 남자는 정동진역의 철로처럼 평행선이다. 하지만 한 자락의 여유가 보인다. “굳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 평행을 이루어 기차를 달리게”한다. 대신 시인의 눈물과 바람은 절대적 세계로 기운다. 한 남자의 눈물은 다시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뿌리를 적시려는 성숙함과 연륜을 담아서. 노래가 끝나 갈 무렵 들려오는 시인의 육성.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순백의 외로움이 더 깊으지면 어찌될까,다음 시집이 기다려진다.
  • 오늘 스승의 날… 배명고 崔炳珠 교사의 제자돕기

    ◎사랑으로 자폐증 고쳤다/부모잃고 우울증 승용차 태워 등교/집안일 모두 챙겨 2년만에 웃음꽃 “엄청난 아픔을 딛고 웃음을 되찾은 우람위를 보면 25년 교사생활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낌니다” 서울 송파구 삼전동 배명고등학교 崔炳珠 교사(52)는 부모를 잃고 자폐증에 시달리다 휴학한 제자 朴우람위군(17)에게 2년째 헌신적인 사랑을 쏟고 있다. 두사람의 인연은 지난 해 3월 崔교사가 朴군의 담임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朴군은 언제나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없이 구석자리에 앉아 있었다.수업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울기도 했다. 朴군의 아버지는 뇌암으로 96년 9월 별세했고 어머니마저 5개월 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뒤부터 심한 자폐증과 우울증에 시달려왔다고 朴군은 崔교사에게 털어 놓았다.도와주는 친·인척도 없어 혼자 외롭게 살아간다는 설명이었다. 崔교사는 먼저 朴군의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예쁜 강아지 한마리를 선물했다.학교에 다니는 것을 꺼려하자 자신의 승용차로 등교시켰다. 전기요금 등 각종 공과금을 대신 내주었고입을 옷까지 일일이 챙겨주었다.아내 朴靜嬉씨(50)와 함께 일주일에 두 번씩 朴군의 아파트에 찾아가 집안청소를 해주었다. 아예 아파트 열쇠를 따로 만들어 수시로 들러 먹을 것을 살펴주었고 형편이 닿는대로 생활비를 보태주었다. 朴군에게는 늘상 “하늘에 계신 부모님들은 네가 밝고 건강하게 사는 것을 제일 바라실 것”이라고 격려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잠시 쉬는 것이 좋겠다”는 진단을 내리자 지난 해 9월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집에서 지내도록 했다. 이같은 ‘제자사랑’이 알려지자 마리아수녀회 등 종교단체와 독지가의 도움이 잇따랐다. 朴군은 차츰 충격에서 벗어나 웃음을 되찾았고 지금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2학기 복학을 준비 중이다. 崔교사는 “부모를 한꺼번에 잃은 고통을 극복한 우람위가 대견스럽다”면서 “우람위가 ‘우람하게 위로 자라라’는 부모의 바람처럼 당당하게 사회에 나섰으면 좋없다”고 말했다.
  • 발레리나 金純晶(이세기의 인물탐구:170)

    ◎‘동양적 발레’ 자신만의 이미지/타고난 연습벌레… 고난도 테크닉 모두 소화/안무하고 춤춘 ‘신화의 끝’ 발레팬 사로잡아 지난 해는 발레리나 金純晶에게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해였다. 87년 국립발레단 창단 25주년 기념으로 무대에 올렸던 ‘노틀담의 꼽추’를 10년만에 다시 춤춘 것과 그가 몸담고 있는 동덕여대에 무용과가 정식 출범한 것.거기다 제자들과 ‘공기의 정(精)’을 공연했고 그가 안무하고 춤춘 창작발레 ‘머물며’가 민속춤제전에서 안무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그중에서도 ‘노틀담의 꼽추’는 표현영역의 확장과 무용수로서의 도약(跳躍)을 보여준 결정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이 무대에서 그는 에스메랄다의 야성과 순결한 여심을 생기발랄과 스며드는 슬픔으로 표현하여 관객을 감동시켰다. 그의 요염함은 이미 86년 ‘튜닉 팬터지’에서 발휘되기 시작하여 그가 춤추었던 우아한 ‘백조의 호수’와는 달리 클래식의 베일을 활짝 벗고 ‘깨끗하고 담백한 느낌과 탄탄한 춤집’을 각인시켰다. ○‘머물며’로 안무상 수상 또한 쌍꺼풀이없는 고전적인 눈매와 긴 팔다리는 ‘동양적 발레’라는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무리가 없었다.이후 ‘돈키호테’를 마지막으로 프리마의 지위와 호칭,주어진 공간에서는 자신의 내부에 숨겨진 철학과 사색을 쏟아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87년 발레단을 떠나 그는 자신만의 창작발레에 몰두하게 되었다.만약 그가 지금까지 대극장무대에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의 변화된 김순정의 창작발레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타를 만들지 않는 국립발레단에서 명실공히 5년간의 프리마시대를 마감하고 이번엔 부군인 朴丙煥씨(외교통상부 근무)를 따라 발레의 본고장인 영국에 유학,런던 라반센터와 로열발레 아카데미에서 마치 춤추지못해 한이라도 된 듯이 밤낮없이 연습에 매달렸고 몸을 회전시키는 필루에트와 푸에테,아티튀드와 바느질 스텝인 부레에 이르기까지 난이도가 높은 갖가지 테크닉들을 몸의 일부처럼 익혀나갔다. ○발레 본고장 런던 유학 그리고 2년만에 영국에서 돌아와서 선보인첫작품 ‘빛깔’은 ‘그의 모든 것이 그속에 다 들어있다’는평을 받을 수있었다.그때도 여전히 무용수로서 특출했던 프리마의 매력을 상실하지 않았고 격조와 힘과 꿈틀대는 생의 갈망이 춤속에 건재하고 있었다.백색 의상에 꽃을 들고 유년기의 환상을 다스리는 그의 빛깔은 거의 발레작품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었으며 국립발레단의 클래식발레를 사랑하던 팬들은 더이상 김순정만의 순백의 감수성과 정결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안무하고 춤춘 작품중에서 ‘신화(神話)의 끝’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간주곡과 비제의 ‘카르멘’ 전주곡에 의존한 이 작품은 ‘강렬한 음악으로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 드라마틱한 분위기’로 젊은 발레팬들의 눈길을 일시에 사로잡았다. 맨발과 토슈의 대비,발끝에서 튕기는 힘의 배분은 ‘감정처리의 성숙함’과 ‘신성(神性)에서 벗어나려는 인간다운 갈망’을 보여주었고 결국은 신과의 대결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으로 겸허하게 마무리짓는 것이 특징이다.평론가 김경애는 ‘몸선의 지시언어(指示言語)’는 시종 아름다움을 동반하면서도 필요이상으로 덧칠하지 않고 사유와 성찰,자신의 기질탐구를 세세히 제시하기를 잊지않았다’고 평한다. ○신선한 현대적 무대 창출 과연 정열적이고도 순발력있는 싱그러움으로 그는 젊은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끊기듯 이어지는 감정의 전이는 불협화음적인 파괴미(破壞美)마저 창조하는 가하면 억압속에서 자유롭고 싶은 의지를 스타의 카리스마로 온몸에 담아낸다.이 역시 뛰어난 기교없이는 불가능한 표현이며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일상적인 모습은 어느때보다 신선한 현대적 무대를 창출해낸다.이른바 성격을 연출하는 춤에서 고난도의 기교를 무기로 하는 고전발레에 이르기까지 전천후로 춤추는 김순정의 기량은 나이에 비해 이미 모든 것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한 차원이라고 할수 있다. 그가 무용을 하게된 것은 어머니 김남숙씨가 딸의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여 10살되던 해 남산어린이회관에 있던 부설 무용반에 데려가면서 부터다. 그곳에서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배울수 있었고 고3때 이화여대가 주최하는 전국무용콩쿠르에서 최우수상,서울대 사대 체육과에 진학하면서 이대와 경희대로 이어지는 무용계의 인맥에서 다소 소외되는 감이었으나 피나는 연습으로 외로움을 달래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최고의 발레리나가 될 것을 굳게 다짐했다’고 말한다.대학 3학년때 무용협회가 주최하는 신인무용콩쿠르에서 글라즈노프 작곡의 ‘사계’로 문공부장관상,다음해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수상하면서 교사자격증을 반납한채 지체하지않고 그는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별로 커보이지 않는 체구에 작고 야무진 얼굴,억척스럽다고나 할만큼 노력에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그는 화려한 세트나 기괴한 몇개의 동작만으로 창작성을 부르짖는 주변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신에서 땀이 배어나는 춤’으로 삶의 절규를 간절하게 춤추어 낸다.‘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정의가 죽어버린 부당함으로부터,위선과 가증스러움이 포장된 이중인격이 판을 치는 속에서’ 오로지 탈출하기 위해 그의 온몸은 솟구쳐 오르는 열기로 무대에서 언제나 활활 타오르고 있다. ○자신의 단점 보완 극복 그런 중에도 끊임없이 자기를 지키고 남의 장점을 존중하며 자신의 단점을 보완,극복하기를 잊지 않는다.가족은 그의 예술을 이해하여 역사와 철학 등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부군과의 사이에 아들(재영·10) 하나.부친은 서울대 경영대 김원수 교수다. 긴 명상속에서 작품을 분석하고 기획하는 그는 디베르시티망과 트릭까지도 철저히 연구하는 학구파로서 내면에 깔린 심성을 건드려 김순정의 춤을 이룩하려는 야심에 차있다.그의 꿈은 러시아의 마야 풀리체스카야나 스승이던 이시다 다네오,불멸의 폰테인 마곳처럼 70세가 넘어서도,아니면 그 이상 무대에서 춤추는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은 것이다. □연보 ▲1960년 서울출생 ▲1978년 이대주최 전국학생무용콩쿠르 최우수특기상 ▲1979년 서울예고졸업 ▲1982년 신인무용콩쿠르 발레부문 특상 및 문공부장관상 ▲1983년 서울대사대 체육과졸업(임성남 박혜련 진수인 사사),동아무용콩쿠르 대상,국립발레단초청 ‘백조의 호수’및 ‘세헤라자데’출연 ▲1983­87년 국립발레단에서 ‘처용’‘배비장’‘춘향의사랑’‘고려 애가’외 ‘호두까기인형’‘카르멘 조곡’‘노틀담의 꼽추’등 주역 ▲1985­92년 충남대 한성대 숭의여전등 출강 ▲1987년 이대 교육대학원졸업 ▲1987­89년 영국 라반센터 및 R·A·D(로열 무용아카데미)연수 ▲1990­91년 국립발레단 주역 ▲1991­95년 청주대 동덕여대강사 1993­현재 한국발레연구회이사, 바탕 춤전 ‘빛깔’안무 출연 ▲1994년 개인발표회, 한일댄스 페스티벌 ‘일상의 꿈’안무·출연 ▲1995­현재 동덕여대무용과 교수 ▲1997년 국립발레단 ‘노틀담의 꼽추’,민족춤제전 ‘머물며’안무출연 올해의 안무가상(97년) ‘몽유(夢遊)’‘공주무덤’‘길위에서’‘풀피리의 춤’외 다수
  • 어버이날 아침에 생각한다(사설)

    다른 때와 달리 올해 어버이날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많은것을 생각하게 한다.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맞은 오늘의 가정은 자식의 실직을 비관한 아버지와 가정형편을 걱정한 어머니의 자살이 잇달아 우울하기만 하다.주부는 가출하고 남겨진 자녀는 거리를 방황한다.서울역 등 노숙자대열에서 우리의 고개숙인 아버지가 상심(傷心)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남의 일로 개탄할 것이 아니라 나의 일이자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이에 대처해야 할지를 가족이 진지하게 숙의해야 할 때다. 실직이 몰고온 어려움의 파장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언제 이 고통이 사라질지 한숨이 끊이지 않는 나날이다.그러나 지금의 사태는 누구 한사람의 불행이 아닌,거의 모두가 비슷하게 겪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가장의 실직이 가정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워서는 안된다.가정이 주는 화기(和氣)가 사라지면 가족모두가 흩어지게 마련이다.내 부모가 쓸쓸하고 외로운 모습을 보인다면 자녀가 이를 격려하고 보살펴 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자녀의 부모에 대한관심과 사랑만이 가정의 단란을 지킬수 있다. 옛말에 있듯이 부모가 살아계실 때 섬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다시 없을 것이다.부모는 자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식을 위해 일할 것을 원하고 자신이 죽은 뒤에도 자녀가 행복하기만을 빌어준다.부모만이 할 수있는 참다운 사랑이 아닐수 없다.아버지 혼자서 현대사회가 직면한 위기와 불행을 극복하던 시대는 지났다.또 왜 가장만이 이를 책임져야 하는가도 되돌아봐야 한다.가장이 실직을 했다고 해서 좌절하고 실망하기 전에 고통분담과 노동분담을 가족전체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진자리 마른자리 가려주며 우리를 길러준 부모의 은혜는 평생을 가도 다갚지 못한다. 사회안정의 기초는 한가정의 건강과 평화에서 비롯된다.부모는 자식을 지키고 자식은 부모를 지켜야한다.어려울 때 서로 돕고 결속하는 마음가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가족이 똘똘 뭉치고 서로가 편이 된다면 어떤 시련도 거뜬히 물리칠 수 있다.부모에 대한 사랑과 효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자식들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있음을 보여드려야 할 때다.또한 부모의 건재로 힘차게 일어서는 가정의 도도함을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붉은 카네이션 한송이로 부모의 얼어붙은 외로움을 씻어드리자.진정한 효도란 부모의 상심의 눈물을 사랑의 손길로 닦아드리는 일이다.
  • 明洞/李世基 社賓 논설위원(외언내언)

    강남의 압구정동과 함께 우리나라 패션의 양대 축(軸)을 형성하는 강북의 명동이 국제통화기금(IMF)한파에 또 한번 비틀거리는 형국이다.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를 맞을때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명동은 해방후 50년대엔 주로 문인들의 서식지로 가난과 슬픔, 외로움을 달래면서 ‘허무의 갈증’을 채우던 거리였다. 이후 근대화 물결속에 의류·제화 등의 패션 1번지로 변모하여 전국의 유행을 주도하는 온상이 되었다. 70년대에 이르러 도시팽창과 함께 다른 지역들이 상권(商圈)확산과 현대화에 주력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명동은 차츰 퇴조의 기미를 보였다. 여기에 80년대 초반의 사회혼란기를 틈타 각종 노점상들이 비집고 들어서자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어져 언제부턴가 초라한 보통거리로 퇴락해버렸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땅값과 건물 임대료도 명동의 발전을 억누른 주된 원인이된다. 3천700여 명동상인들은 ‘명동지역 시범상가 조성계획’을 수립하는 등 자구노력으로 다시금 약동하는 과거의 영화를 되찾는 듯했다. 그러다가 88년이후 최루탄과 돌팔매에 시달려 ‘시위 1번지’로 전락해버렸고 다시는 일어설수 없는듯 암울한 시련기를 보냈다. 3년여만에 위기를 딛고 다시 활기찬 모습을 보이면서 이번엔 중저가(中低價) 상권으로 급속변신을 시도했으나 IMF 이후 패션몰이나 브랜드숍들이 다시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하게 된것이다. 중저가 상품 취급만으로는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핵심상권지인 중앙로에 위치한 연건평 40평의 가게가 이전에는 권리금 6억원에 임대보증금 8억원, 월세 3천4백만원이던 것이 이제는 권리금 없이 보증금만 6억원에 월세 2천8백만원으로 내렸으나 현재 명동전체 1천여개(1층기준) 점포 가운데 약 15%인 150여개의 점포가 비어있는 실정이다. IMF 한파로 또한번 모진 시련을 겪고 있는 명동의 영욕은 마치 실업사태로 얼룩진 우리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화려한 것을 누렸고 가장 비참하게 전락하는 극(極)과 극을 겪으면서 약동하는 젊음으로 되살아났음을 기억한다. 되풀이되는 좌절에서도 밝고 화려한 이름처럼 다시한번 생기차게 재기하기를 기대해본다.
  • 대통령 이·취임식 앞으로 23일

    ◎김대중 당선자­노사정 합의도출·구조조정 등 숙제 산적/외환위기로 미뤘던 인사카드 점검 분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오는 25일 ‘당선자’라는 꼬리표를 떼지만 현재도 사실상의 대통령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동안은 외환위기의 해결이라는 ‘책임’만이 부여된 절반의 역할이었다.그런 만큼 취임식은 ‘권한’까지 넘겨받는 공식 의례다. 그런 김당선자에게 2월은 결코 청와대 입성이라는 기대에만 부풀어 있기에는 난제가 쌓여있다.그것도 노·사·정합의 도출과 정부조직개편안 처리,새 정부의 청와대 수석과 내각 인선,대기업 개혁,정치권 구조조정 등 하나같이 부담스럽다.그는 먼저 2월 임시국회에서 정부조직개편안과 정리해고를 법제화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특히 노동관계법의 개정을 위해서는 노·사·정합의가 필수적이다.김당선자가 공무원에 대한 정리해고에 해당하는 직권면직제를 도입,공무원수는 10% 줄이려는 것도 고통분담을 실천하여 노동계를 설득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외환위기의고비를 넘기기 위해 중순 이후로 미루어놓은 청와대 수석과 내각 인선을 위해 그는 일요일인 1일도 삼청동 임시공관에서 인사기록카드를 검색하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재벌개혁을 놓고 당사자인 대기업쪽에서 간간히 불멘소리가 들려온다.이래저래 취임에 앞선 2월은 김당선자에게 대통령으로서의 정치력을 검증하는 관문인 셈이다. ◎김영삼 대통령­마지막 국정 챙기기… 일정도 빡빡/상도동자택 수리 완료… 비서관도 확정 5년전 변화와 개혁을 외치며 ‘문민 대통령’ 으로 화려하게 출발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주변에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짙게 배어나고 있다.취임초 90%가 넘는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역사에 남는 대통령을 꿈꿨던 김대통령과 주변인사들이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강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대통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국정을 챙기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전한다.앞으로 얼마 남지않은 기간이지만 일정이 비교적 빽빽하다.3일에는 헌정회.광복회 회원들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 한다.이어 5일에는 주한외교단을 부부동반으로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다과회를 갖고 7일에는 같이 일했던 전직 국무위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격려할 생각이다. 제일 관심을 끄는 대목은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그리고 전두환.노태우두 전직대통령과 화해의 자리를 가질까이다.최근 이명예총재도 긍정적인 뜻을 전해온 것으로 알려져 조만간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다.그러나 전·노 두 전직대통령과의 회동은 아직은 부정적이어서 퇴임전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와함께 퇴임후 돌아갈 상도동 자택 수리는 이미 끝나 이삿짐도 대부분 정리됐으며,함께 갈 비서관들도 확정된 상태다.
  • 구미·김천 사업자진흥회(환경 파수꾼)

    ◎나무뿌리 흙덤어주기 구슬땀/주말마다 금오산·황악산 찾아 청소도 경북 구미·김천 사업자진흥회(회장 장원하)는 말 그대로 구미시와 ·김천시일대의 사업가 20명이 지역 발전에 앞장서기 위해 지난 3월에 만든 친목단체이다. 진흥회는 그러나 단순한 친목만이 아니라 환경오염감시와 환경보전운동에도 사업목표를 두고 갖가지 캠페인을 벌여왔다. 회원들은 주말마다 가까운 금오산이나 황악산을 찾아 등산로와 계곡에 쌓인 쓰레기를 치웠고 음식점을 운영하는 회원들은 이웃 음식점들과 함께 음식쓰레기 50%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진흥회는 한달에 한차례씩 구미시 원평동 천주교 보육원을 방문,선물을 나눠주고 다과회를 여는 등 원생 30명의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한다. 또 지난 피서철에는 구마 고속도로 주변에 나가 길위에 널린 쓰레기를 치웠다. 진흥회가 올해 벌인 가장 큰 행사는 ‘등산로 나무뿌리흙덮어주기 금오산 현장캠페인’ 지난 10월 19일 서울신문사 구미지국과 공동으로 펼친 이 행사에는 인동중 신평중 형남중 형곡중 구미중 경구고 구미전자고 금오공고 금오여고 구미여고 경북외고 등 13개 중·고교생 720명과 등산객 400명이 참가해 등산로에 쌓인 갖가지 오물을 치우고 앙상하게 드러난 나무뿌리위에 흙을 덮어주었다. 진흥회는 새해 회원수를 보다 늘려 좀더 활발하고 폭넓은 환경보전운동을 벌임으로써 지역주민들에게 자발적으로 환경운동에 참여하도록 힘쓸 방침이다. 장 회장은 “지난 4월 서울신문사 환경운동본부 환경감시단체로 가입한 뒤서 울신문사가 벌이고 있는 음식쓰레기 줄이기,등산로 흙덮어주기,깨끗한 낙동강 지키기 등 각종 캠페인을 벌여왔다”고 밝히고 “새해부터는 절전,절수등 아껴쓰기 캠페인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금세기 지휘계 개성파 2인 대작음반 둘 국내 상륙

    ◎‘첼리비다케 에디션’­유족 동의로 공개된 11장짜리 앨범/크나퍼츠부쉬의 ‘니벨룽의 반지’­방대한 바그너 작품 56년 실황 첫선 자신이 ‘아웃사이더’라고 느낀적 있는지.북적대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외로움을 양식삼아 몇날이고 ‘청산’에 살리라 했던 밤이 있었는지.육체는 온통 탈화되고 오롯이 혼만 남는 그런 정화된 밤의 비밀을 아는 이라면 당신은 분명 다음 두 이름에 매혹되리라. 세르지우 첼리비다케와 한스 크나퍼츠부쉬.모두 20세기 지휘계의 상봉들로 ‘김삿갓’이나 ‘달마’정도를 연상시키는 괴짜들.최근 이들의 대작 음반 두종이 나란히 국내 상륙,‘신도’들의 마음을 달뜨게 하고 있다.‘첼리비다케 에디션’(EMI·3449-9424)과 크나퍼츠부쉬 ‘니벨룽의 반지’ 전곡(뮤직 앤 아트·208-5333). 두 대가는 알게모르게 공통분모가 많다.누구보다 내면이 옹골찼지만 번쩍이는 가짜명성을 외면했던 이들.도통한 지휘봉을 신봉하는 골수 추종자들을 거느렸으면서도 ‘외통수’로 찍혀 음악계에서 신수편할 날 없었던 팔자도 유사하다. 음악적 개성도 닮음꼴.44회전을 33회전으로 잘못 놓은것 아닌가 싶게 느긋한 템포,그러면서도 구조를 장악해 이리저리 밀고당기며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게 음의 벽돌을 쌓아간다. 그런 공력이 빛을 발하는 둘의 주종목은 브루크너.세속의 황금을 외면하며 음의 진수를 만나기위해 칩거했던 이들은 정도차는 있지만 레코딩이 못마땅했던 ‘라이브’주의자라는 점에서도 통한다. 상업적 녹음을 혐오했던 첼리비다케의 드문드문한 녹음을 정리한 것이 ‘첼리비다케 에디션’.그가 분신으로 다듬고 깎아낸 뮌헨필과의 연주다.EMI 100주년에 맞춰 유족의 동의로 공개하는 11장짜리.당연히 세상 햇빛을 처음보는 녹음들로 신비의 첼리비다케 전모에 근접해볼 충분한 물량이다. ▲하이든 교향곡 103,104번 ▲모차르트 교향곡 40번,하이든 교향곡 92번 ▲드뷔시 ‘바다’,관현악을 위한 영상중 ‘이베리아’ ▲베토벤 교향곡 4,5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 〃 6번 ▲바그너 ‘탄호이저’서곡,‘뉘른베르크의 명가수’전주곡 ▲슈만 교향곡 3,4번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라벨‘볼레로’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등 10장에 ▲바르토크 ‘관현악을 위한협주곡’과 리허설 스케치를 담은 보너스 CD를 곁들였다.그의 ‘브루크너교향곡 에디션’도 발매 추진중. 한편 ‘니벨룽의 반지’는 크나퍼츠부쉬 최고의 음질이라는 56년 실황을 첫선 보이는게 포인트.권력과 부를 보장하는 라인의 황금을 둘러싸고 인간과 신들이 한데 엉켜 쫓고 쫓는 ‘반지’는 바그너의 세계관을 집약해 보여주는 방대한 작품으로 그 상징성은 통시적으로 유효하다.이번 음반은 ‘라인의 황금’‘발퀴레’‘지크프리트’‘신들의 황혼’4부작을 16장에 담았다. 일급 바그네리안들이 성대의 단단함과 탄력을 다투듯 ‘반지’를 입체화시키는 가운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관현악단과 합창단이 합류했다.그 음악세계는 격렬하고도 단단해 모노 사운드의 단조로움을 훌쩍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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