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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70년대 멜로여왕’ 이효춘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70년대 멜로여왕’ 이효춘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 표지모델편 ⑩] 이효춘 그녀가 선데이서울의 표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1978년 10월. 가을이 왔지만 여름에 시작된 안방극장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MBC 드라마 <청춘의 덫>(김수현 원작. 1978.6.22~11.3)이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주인공인 그녀 역시 ‘최고의 멜로여왕’이라는 찬사와 함께 인기의 정상을 달리고 있었다.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동거에 들어갔던 부부 아닌 부부. 그러나 돈에 눈이 어두워진 남자가 회사 오너의 딸과 결혼하여 배신하는 바람에 결국 미혼모가 되어야했던 비련의 여주인공 ‘윤희’. ‘사랑과 배신 그리고 복수’라는 통속적인 주제를 다룬 이 드라마는 여주인공에 대한 동정이 인기로 바뀌어 쏟아지는 가운데, ‘비윤리적인 드라마’라는 당국의 압박이 이어져 안방극장의 세계는 정치판만큼이나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그 해 9월 칼을 빼어든 언론윤리위원회는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채 동거, 5세 된 아이까지 두고 있는 등 무분별한 남녀관계를 다룸으로써 가정생활이나 혼인제도의 순결성을 해칠 우려가 많은 드라마”라고 단정 짓고 “남주인공이 가난하고 불쌍한 여주인공을 버리고 사장 딸에게 접근하는 등 배금사상을 자극하고 있다.”며 대본 수정을 요구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더라면 당국의 홈페이지가 불이 났겠지만, 29년 전이라는 시대적 환경은 결국 드라마에 재갈을 물렸다. 세 차례나 결방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예정된 24회를 채우지 못하고 2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이효춘은 스무살이던 1970년 김형자, 박혜숙, 김성환 등과 함께 TBC 공채 10기로 선발됐다. 74년 KBS 드라마 <파도>의 주인공으로 데뷔할 때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학사출신 신인 연기자, 주인공 파격 캐스팅’ 이라며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주인공으로 데뷔한 뒤에는 운명의 여신이 있었다. 녹화 전날 여주인공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조연출자가 학교 후배라고 데리고 온 이효춘이 발탁된 것이다. 결국 대타로 출연해 홈런을 날리긴 했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대감 집에 하녀로 들어가는 역할을 맡았던 때문인지 그 후로 줄곧 가난하고 청순가련한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만 하게 되었다. 이런 그녀의 이미지는 94년 방송됐던 SBS 드라마 <이 여자가 사는 법>을 계기로 180도 달라진다. 공주병에 걸린 애교만점 아내 역할이었는데, 그 이미지가 강했는지 한동안 비슷한 캐릭터의 역할만 들어왔다. 요즘은 MBC 일일드라마 <나쁜여자 착한여자>에서 남편을 일찍 여의고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로 등장하고 있다. 이혼 후 혼자 키운 딸이 하나 있는데 중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 갔다 지난해 말 귀국했다. 시카고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그녀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8년 만에 다시 진짜 엄마가 된 그녀. 드라마처럼 ‘외로움 끝 행복 가득’을 기대한다. 표지=통권 519호 (1978년 10월 29일) 박희석 전문위원 dr39306@seoul.co.kr
  • [열린세상] 우리 농업 외롭지 않다/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열린세상] 우리 농업 외롭지 않다/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6·25전쟁이 들어 있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57년 전 6월, 전방에 배치된 병력은 수적으로 열세였고 대규모 침공에 대비한 훈련도 미흡했다. 그 결과 서울을 3일만에 내주었다가 유엔군의 도움으로 석달만에 탈환했으나, 이후 약 3년 동안 온 국민과 국토는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올해 제네바의 여름은 총성 없는 전쟁인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 협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의장이 내놓은 제안서에는 가장 민감한 문제인 농산물 관세 감축에 대한 의견도 들어 있다. 여기에는 ‘높은 관세는 많이 인하한다.’는 원칙 아래 90%를 넘는 농산물 관세는 선진국의 경우 최고 85%까지 인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다자간 협상에서는 유사한 입장을 가진 회원국들이 그룹을 형성하여 활동한다. 우리 협상대표단은 ‘농산물 수입국 그룹’과 ‘개도국 그룹’에 참여하여, 관세 인하율은 가급적 낮추고 개도국에 대한 특별대우는 확대하려 노력하고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UR) 농업협상에서 인정받은 개도국 지위를 지킴으로써 관세 인하율과 이행 기간에서 조금이라도 충격을 줄이려는 것이다. ‘농산물 수입국 그룹’을 구성하고 있는 국가들은 대개 선진국인 데다가 높은 관세를 매기는 농산물이 상대적으로 적다. 우리와 여건이 비교적 유사한 일본의 농가는 겸업소득이 많아 문제가 덜 심각하다. 반면에 ‘개도국 그룹’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 1970년대 수준의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독특한 우리 입장 때문에 제네바에서 우리 농업 협상대표는 우군을 찾아 연합전선을 펼치기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농업의 외로운 입장은 칠레 및 미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자유무역협정은 국가 전체의 이득이 손실보다 크기 때문에 추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피해 분야로서 농업은 다른 산업 분야와는 물론이고, 혜택을 보는 소비자와도 반대편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농업은 결코 외롭지만은 않다. 품질 좋고 안전한 우리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들이 전국에 분포해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국내산 농·축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고 품질만 보장된다면 가격에 관계없이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또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농촌에 가서 살고 싶다는 도시민들의 비중도 매우 높다. 젊은 층들은 농촌의 주거 환경과 교육 여건이 개선된다면 귀농할 사람이 많고, 연세가 드신 분들은 ‘제2의 인생’의 터전으로 농촌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이웃하고 있는 경기도 안성시, 충남 천안시, 충북 진천군이 농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하였다는 멋진 뉴스가 최근에 전해졌다. 고품질 쌀을 생산하고, 가축질병을 방지하는 데 세 곳의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농촌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자체들이 공동으로 정책을 펴나가기로 한 것은 반가운 결단이다. 이러한 노력이 다른 지역뿐만 아니라, 중앙부처 간에도 확산되기를 바란다. 요즘 농촌 문제가 광역화되고 복잡해지면서 더욱 종합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독특한 여건 속에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한국 농업에 국산을 선호하는 농산물 소비자와 농촌이주 수요자들이 희망을 주고 있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농촌개발의 중요성과 농촌개발에서 차지하는 농업의 중요성은 농업 비중이 감소하더라도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농업이 고유의 다원적 기능을 발휘하고 농업인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모두 관심을 갖고 지원 방안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 육영수여사의 내조론(內助論) 사윗감론(論)

    육영수여사의 내조론(內助論) 사윗감론(論)

    가을이 익는 쾌청한 하오. 「퍼스트·레이디」 육영수여사가 대학가 나들이를 했다. 10월15일 하오 2시 중앙대학교 여학생회가 마련한 자리였다. 반가움과 친근감으로 충만한 1시간30분 동안 서로 주고받은 화제는 『여성과 내조』 그리고 사윗감… “딸이 미남을 좋아하는지 미처 알아보지 못했군요” 『딸이 미남을 좋아하는지 어떤지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왔군요. 사상이 건전하고 신체건강한 대한민국의 남성이면 누구든지 자격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남이 많은 중앙대학교 학생들 중에서 사윗감을 고를 생각이 없느냐는 남학생의 질문에 대한 대답. - 계신 곳이 너무 고고해서 때로는 외로움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으시는지? 학생대표들이 따로 마련한 다과회의 자리에서는 즉흥적인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누가 함께 있지 않대서가 아니라 때때로 문득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해요. 스스로를 객관할 때 같은 때…』 묻는 얼굴의 당돌함이 이내 풀려 버리는 여린 미소를 담고 있었다. 청와대란 유일한 집의 주인이 언젠가는 한번 되고 싶다는 총학생회장 이인영군(법4)의 말에는, 『좋은 생각이어요. 택하고 있는 전공과목과도 맞는군요』 여학생회장 조범제양이 대행한 여학생의 질문이 좌담회에서는 우선권을 가졌다. - 집무에 바쁜 아버지대통령과 자녀간의 간격, 그리고 특히 따님 교육에 대해서… 『보통의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와 하듯이 저녁식탁은 자녀와 대화하는 자리로 힘쓰고 있어요. 그분이 워낙 어렵고 중요한 일을 하시니까 짧지만 충실한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죠. 딸들에게는 언니도 되어주고 친구도 되어주죠. 아직도 고삐는 엄머가 쥐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자율적으로 잘들 해줘요』 -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해서… 『여성들이 남성보다 몇갑절 어렵다고 하지만 현재로는 만족할만한 상태라고 할 수 없겠어요. 좀더 여성능력이 개발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 지니신 인품과 명성을 존경합니다. 그런 인격을 갖추게 된 평소의 신조와 명언 같은 것은? 『…분에 안맞는 생활은 염두에 두지 않아 왔을 뿐이고…. 성실하기만 하면 된다는 신념은 옛날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예요』 “유행에 민감한건 좋지만 대학생 지성으로 분별을” - 외국에 나가셨을 때의 내조방법은? 『나가서는 그분이나 나나 서로 바빠서 시간과 마음이 여유가 없어요. 여성은 또 시간이 더 걸리죠. 준비를 먼저 끝내고 대통령께서 오히려 도와 주시기까지 해요. 이런 일은 있어요. 저녁의 공식만찬은 늦기도 하고 기호에도 안 맞으셔서 못드시는 때가 많아 미리 마련해간 라면을 삶아 드려 본 적이 있어요. 냄새도 안나고 그분 든든해 하시고 괜찮은 방법이었거든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밖에 소분내지는 말아요』 - 여대생이 유행에 민감한 것 어떻게 보시는지? 『민감한 것은 젊음을 말하는 것 아녜요?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도를 지나친 것은 참았으면 싶죠. 대학생의 지성으로 분별한 정도를 권하고 싶어요. 지난번의 「미니」단속 때는 좀 유감스러웠어요. 스스로 재고할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 의견을 나도 피력했었죠』 “내조라 자각해본적 없고 대화의 슬기찾으면 될듯” - 그토록 현명하신 내조자로서의 마음가짐은 어떤것인지? 『내 행동에서 이것이 내조라고 자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어요. 다만 생각만으로 해본 현대의 내조란 옛날부터 내려오는 아내의 본분에 더해서 창의적인 지혜를 발휘하고 민주방식의 교육을 알고 남편과 더불어 나눌 대화의 슬기를 찾는 여성이어야 할것 같아요. 대답이 이정도로 되겠어요?』 - 어머니로서 자녀에게 주시는 말은? 『이 학교 교훈이 꼭 좋겠어요. 의롭고 참되면 안될 것이 없거든요. 특별한 연구는 못했지만 민주주의의 바탕도 그런 것 아녜요?』 - 청와대의 안주인이 되신 이후 가장 흐뭇하고 가장 괴로왔던 일을- 『괴로왔던 일 너무너무 많아요. 흐뭇했던 일은 그분이 대통령에 당선되셨을 때였을 거라고 여러분은 당연히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고사리 손으로 전달해 온 낙도어린이들의 책을 고마와하는 편지, 스스로의 손으로 그려주는 아이들의 엄마 생일 「카드」, 그런 일들이 늘 흐뭇해요. 국가일이 잘되어서 대통령께서 기뻐하시는 것 물론 같이 기쁘고…. 어저께 같은 참사(14일 경서중학생 소풍사고),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요. 또 가장 안타까운 일의 하나는 학생들이 민주방식이 아닌 방법으로 거리로 뛰어나오는 일이죠. 내게 이야기해 주면 그 뜻을 충실하게 전해줄 약속은 지금도 할수 있어요』 - 대통령의 괴로움을 위로할 때는? 『모든 해결은 그분이 하시니까 마음을 상해 드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뿐이죠. 도움이 됐는지 모르지만 나쁜말 피하고 좋은 이야기 골라서 열심히 해보죠』 “견해차 생기면 양보해도 옳다고 믿으면 지구력을” - 사적인 생활에서 견해의 차이가 생기면 어느분이 먼저 양보하시는지?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체로 여성이 양보하는 미덕을 보여야 할 것 같아요. 나도 그래요. 하지만 부러지지 않는 정도의 지구력을 가지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뜻은 관철하는 것도 아내의 지혜예요. 남성은 보통 자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여성이 맞서는 것을 꺾기 위해 고집을 피우기도 하니까요』 하오 3시30분 좌담회를 끝내고 총장실에 마련한 다과회로 들어갔다. 관상을 할 줄 아노라고 자처하는 한 남학생이 『가까이서 뵈니까 무척 복스린 얼굴이십니다』하자 『그건 틀렸어요. 내가 어디가 그래요?』 『임영신 개인과 임영신 산하에 있는 2천2백만(교련 7백만, 한국부인회 1천5백만)을 다 기울여 찬양하는 대통령이지만 특혜는 한번도 받은 적 없다』면서 맞아준 노총장의 영접을 받으며 개교 축하의 「케이크」를 잘랐다. 여학생들이 마련한 선물은 24인용 「테이블·커버」. 청와대 살림에 꼭 필요하다는 정보를 알아내어 여학생들이 직접 수놓아 만든 것. <송정숙(宋貞淑)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0월 25일호 제3권 43호 통권 제 108호]
  • 발레리나 강수진 성공기 만화로 만난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세계 3대 발레단의 하나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20년 넘게 활약하며 수석 무용수로 도약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는 많은 시련이 있었고,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많았다. 그래도 강수진은 낯선 나라에서 겪는 외로움을 밤낮없는 연습으로 이겨냈다. 남들은 2∼3주일 쓰는 토슈즈를 하루 4켤레나 버린 적도 있을 만큼 엄청나게 연습한 것이다. SBS는 어린이를 위한 휴먼다큐애니메이션 ‘슈퍼코리안’의 첫번째 주인공으로 발레리나 강수진을 선정했다.18∼19일 오후 3시50분에 상·하편이 방송된다. 강수진의 발은 그녀의 성공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게 한다. 발톱이 뭉개지고 살이 찢겨진 발이 인터넷에 공개되며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또 한번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강수진은 “이 사진이 화제가 됐다는 소식에 내가 더 놀랐다.”면서 “요즘도 공연을 마치고 힘들 때면 인터넷에 올랐던 사진과 댓글을 읽으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모두 52부작으로 예정되어 있는 ‘슈퍼코리안’은 리서치기관과 ‘휴먼 브랜드 파워 100인’을 선정한 뒤 30명을 추려 만들었다.10분동안 한국이 낳은 세계적 인물들을 객관적 시각으로 표현하고, 생생한 현장감으로 어린이들에게 애니메이션의 재미와 교훈을 함께 전하게 된다. 내레이션은 박은경 아나운서가 맡았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문학동네 펴냄

    젊은 작가 12명의 육성을 읽는다.66년생부터 75년생까지, 지금보다 다음이 더 기대되는 출생연도다.‘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문학동네 펴냄)’은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마련한‘금요일의 문학이야기’현장을 그대로 옮겨 놨다. 소설가 박범신이 묻고 젊은 소설가가 답했다. 등단한 지 5년 안팎인 작가들은 유명 문예지들의 추천순으로 정했다. 작품은 박범신이 읽어 보고 작가와 함께 골랐다.‘(함께 웃음)’과 말줄임표 사이에서 젊은 소설가들의 각오·떨림·설렘이 읽힌다. “소설은 하찮은 것을 진지하게 보는 방식과 진지한 것을 하찮게 보는 방식이 있어요. 저는 진지한 것을 하찮은 것으로 끌어 내려서 이야기하고 싶어요.”‘최순덕 성령충만기’의 작가 이기호는 읽는 소설보다 들려 주는 소설이 옳다고 믿는다. ‘세이렌’을 쓴 오현종은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아’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작가들은 직무유기라고 잘라 말한다. 문학은 이제 내부 경쟁이 아니라 다른 장르와의 외부 경쟁임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사람의 신화’로 등단한 손홍규는 글을 쓰면 가난과 외로움에서 벗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글을 써보니 더 쓸쓸하고 외롭더란다. 신춘문예에 십년을 내리 낙방한 작가 김도연의 고백에서는 뭉클함과 실소가 뒤섞인다. 습작을 남에게 보여 주기가 창피해 가방에만 넣어 다니기 두세달째. 작가는 술을 들이부었다. 그리곤 아무도 반겨 주지 않는 자신을 반기는 개에게 감격해 끙끙대는 개를 끌어안고 그날밤 소설 한 편을 다 읽어줬다. 작가는 결국 그 소설로 데뷔했다. 젊은 작가들의 말에 조심스러운 진정성이 배어 있다면 박범신의 입담은 쫀득쫀득하다. 후배 작가들에게 농을 건네며 다독이는 솜씨나 의표를 찌르는 화법이 노련하다. 격식과 엄숙함을 벗은 대화는 독자를 주춤거리게 하지 않는다. 박범신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대부분 방백이거나 마스터베이션이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았다. 그래서 문학의 소외는 더 깊어지겠구나, 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그들의 고백과 발언이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어갈지 쫓아가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 소설 문학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수십년 뒤 문단의 지형을 가늠해볼 기록 하나를 얻은 셈이다.1만 3000원.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2) 강원도 춘천시 동면 품걸리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2) 강원도 춘천시 동면 품걸리

    소양호수변 가리산(해방 1050m) 자락에 위치한 산간 마을 품걸리(品傑里). 품걸리는 소양호가 생기면서 물길로 고립돼 첩첩 산중에 들어 앉은 춘천시의 ‘등잔 밑’ 마을이다. 소양강댐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50분 정도 들어가면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육로로 가려면 홍천 시내에서 야시대리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들어가, 다시 원시림 같은 울창한 숲을 따라 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산 고개를 오르내리며 15㎞를 더 가야 한다. 품걸리로 가는 육로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고요한 숲과 산새뿐. 터지지 않는 휴대전화는 이내 쓸모가 없어진다. 마을에 들어서자 짝짓기 철을 맞이한 고추개구리들이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며 이방인을 맞이한다. “길을 잘 찾아 오셨네요!” 이장 김성민(51)씨가 부슬비가 내리는 와중에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인심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외로움이 배어 있었던 것일까. 연신 웃는 얼굴로 반가워하더니 끼니를 거르며 산길을 짚어 온 손님에게 이내 점심부터 권한다. 더덕에, 취나물에, 자연산 푸성귀 반찬이다. “이기… 꿀로 만든 술이래요. 토종 꿀로 만든 술인데, 꿀 술 드셔봤어요?” 입에 넣기도 전에 침부터 넘어간다. 천천히 한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목으로 넘기자 숲 향기가 살짝 나는 것이 달달하면서도 찌릿하다. “여긴 학교가 없어요. 애들 공부 때문에 부인네들이 다 춘천에 나가 있지요.” 대부분의 가장들이 홀아비 아닌 홀아비 생활을 한다고 불평한다. 주민이 80가구 400여명에 이르던 예전에는 초등학교 분교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날이 쇠락해 지금은 토박이 30가구와 외지에서 들어온 5가구를 포함해 80여명만이 살고 있다. 논이 얼마 되지 않는 이곳에서 주민들은 주로 다락밭을 일궈 고추, 호박, 더덕 등을 심고 토종꿀을 치며 산다. 박광호(70)할아버지는 토종꿀을 특산물로 생산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벌 도사’로 통한다. 이곳에선 너나 없이 시각장애인인 박씨에게 봄철 분봉 날짜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기술을 지도받는다. 네 살 때 시력을 잃었다는 박씨. 그는 스물다섯 되던 해에 우연히 이웃집 벌통에 드나드는 벌들의 다양한 소리에 흥미를 갖게 됐고 그때부터 3년동안 벌의 날갯 짓 소리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 후 본격적인 토종꿀 농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40년 동안 토종꿀을 따오며 살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토종꿀 재배는 이제 마을의 큰 수입원이다. 비포장 임도인 늘목 고개에서 만난 품걸1리 김호성(52)씨.4대째 살고 있는 토박이다. 그는 더덕과 고추 농사를 하고 있지만, 매일 오후4시가 되면 계약직 집배원으로 변신한다. 소양댐 수몰 지구를 운행하는 배가 전해주는 주민들 우편물을 받아 오토바이를 타고 전달하는 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아진 게 있어야지. 생필품이나 구입할 수 있도록 하루에 한번만이라도 홍천읍내 행 버스가 다니면 좋겠네요.” 김씨의 투정은 마을 사람들 모두의 숙원으로 들렸다. 이튿날도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자 이장은 밭일을 못한다며 조촐한 마을 잔치를 마련했다.2년 전에 폐교된 분교를 공동임대해 운영하는 민박집 운동장으로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모였다. 각자 준비해 온 음식으로 시작된 점심은 시간에 겨 때우는 끼니가 아니라서 그런지 느긋하고 한가롭다. 술이 두어 순배 돌자 얼굴도 얼큰해지고 분위기도 푸근해진다. “품걸리 주민은 큰 욕심이 없어요. 지을 수 있을 만큼 농사를 지어 수확하는 것에 만족하지요.” 막걸리 한사발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주민들에게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삶의 철학이 느껴진다. 사진 글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세상에 이보다 더 치사한 사내를 보셨나요”

    “이 세상에서 이토록 치사한 사내가 있다니! 그것도 손녀 같이 어린 여학생들에게 돈 몇 푼 집어주고 유린하다니….” 중국 대륙에 어린 소녀들에게 고린전 몇 푼 집어주고 꼬셔서 성관계를 맺어온 치사하고 추저분한 60대 후반의 사내가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건의 장본인은 중국 동북부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 얼다오(二道)구에 살고 있는 둥(董·68)모씨.공장에서 퇴직한 둥은 일찍 아내를 여의고 지체장애자인 딸과 함께 어렵게 생활해오고 있다.종자는 홀로 늙어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어린 소녀들에게 샐닢 몇 푼을 찔러주고 데려와 몹쓸 짓을 저질렀다고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이 최근 보도했다. 지난 3월 초 여중생인 샤오훙(小紅·14)양은 꼬질꼬질하던 지난 학기와는 달리 옷차림이 눈에 띄게 화사하고 화려해졌다.평소보다 많은 용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녀의 몸가축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샤오훙양의 부모는 조금 이상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아버지는 “야 샤오훙,전에 보지 못했던 예쁜 옷을 입고 다니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이에 샤오훙양은 “친구로부터 잠시 빌려 입었다.”는 등의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로 얼버무렸다. 아무래도 의심쩍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샤오훙양의 뒤를 밟기로 작정했다.그녀의 학교 앞에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린 그녀의 아버지는 몰래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야할 샤오훙양은 집으로 가지 않고 100m쯤 떨어진 조그마한 아파트 앞에서 주위를 한번 둘러본 뒤 그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시간쯤 흘렀을까.샤오훙양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아파트를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이를 지켜본 그녀의 아버지는 “그 아파트에는 왜 갔느냐?”며 따졌으나 샤오훙양은 “친구 집에 놀러갔다오는 길”이라며 발뺌을 했다. 그녀가 뭔가를 숨긴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이튿날 아파트를 찾아 그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알아봤다.그 결과 그 아파트에는 60대 후반의 사내가 지체장애인 딸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뭔가 감을 잡은 샤오훙양의 아버지는 그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그녀에게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며 “사실대로 말해라.”고 욱대기자,그녀가 울면서 저간의 사정을 모두 털어놨다. 너무나 황당해 한동안 우두망찰하던 샤오훙의 아버지는 이튿날 공안(경찰)당국에 신고를 했다.그 바람에 별로 돈을 들이지 않은 둥의 ‘영계 엽색’행각은 끝내 막을 내렸다. 공안당국의 조사 결과 종자는 지난 3년동안 모두 3명의 여중생을 꼬셔 모두 수십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맺고 한번에 100∼200위안(약 1만 2000∼2만 4000원)의 해웃값을 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법원·검찰 갈등의 핵 ‘영장전담 판사’

    법원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계기로 영장전담판사의 역할이 또다시 세인의 관심이다. 영장전담판사는 1997년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라 영장실질심사가 도입되면서 생겼다. 올해 10년째다.1989년에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던 장윤기 현 법원행정처장이 ‘구속 영장실질심사제’라는 논문을 사법논집에 처음 발표한 게 효시다. 영장실질심사 도입 당시 산파역을 담당했던 황정근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이 김 회장의 실질심사 변호인으로 참여한 것은 아이러니다.이후 영장전담판사는 사회적 이슈 등에 따라 국민적 관심이 높고 여론의 추가 중심을 잡지 못할 때는 최종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 전국 법원과 지원에 한 명씩 있으며 서울중앙지법에는 부장판사 두 명이 있다. 남성들의 고유 영역이었다가 2005년 이은애 부장판사가 인천지법 영장전담을 맡으면서 ‘금녀의 벽’이 깨졌다.●권한만큼 고독한 자리 영장 전담 판사는 피의자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이 수사에 필요해 청구하는 압수수색영장, 통신 제한 조치 등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주어진 권한만큼 외롭고 애환도 적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두 명의 부장판사가 압수영장, 구속심사 말고도 한 명당 하루 평균 실질 심사만 10건가량 맡는다. 영장전담판사 출신인 임성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부장판사는 “한마디로 외롭다. 특히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을 맡으면 중압감도 심하다.”면서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혼자서 판단해야 하는 일이어서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말한다. 그래서 영장전담의 임기는 1년이다.●법·검 갈등의 역사 당시 형소법 개정 해석을 두고 법원과 검찰은 치열한 법논쟁을 벌였다. 법원은 “모든 구속 사건에 전부 실시한다.”고 한 반면 검찰은 “피의자가 신청하는 경우에만 할 수 있다.”로 풀이했다. 그해 10월 검찰이 판사들이 연루된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발표를 계기로 재개정돼 ‘피의자가 신청하는 사건’에만 적용하기로 했다. 갈등 속에 비화도 있었다. 당시 1기 영장전담을 맡았던 대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당시만 해도 경찰 수사사건의 영장청구서에는 영장발부서까지 미리 타이핑이 돼 있었다. 판사가 빈칸만 채워 넣으면 될 정도였다.”면서 “어느날 친절한(?) 서류가 없어져 알아봤더니 담당 검사가 미리 발부서만 찢어 버린 것이다. 친분이 있던 검사였는데 ‘실질심사 맡은 판사가 영장도 알아서 작성하라.’는 식의 심술이었다.”고 회고했다. 법·검 영장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론스타 영장기각 갈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6월 법조비리에 연루된 조관행 전 고법 부장판사의 5년치 계좌 추적 영장청구를 법원이 단기간으로 줄이고, 한·미 FTA 반대 불법 집회 사건 가담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무더기로 기각되기도 했다. 내년부터 지난 4월 개정된 형소법에 따라 실질심사 대상이 모든 구속 대상자로 확대될 것이어서 충돌 요소도 더 많아진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中경비정 11시간만에 첫 구조수색

    ‘구조선은 끝내 오지 않았다.’ 12일 새벽 4시가 막 지날 무렵. 중국 다롄 남동방 38마일 해상은 짙은 안개 때문에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날 따라 태양도 게으름을 피웠다. 오가는 선박들은 속도를 낮추고 어둠과 안개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콰당’ 거대한 화물선 두 대가 부딪쳤다. 한국 화물선 골든로즈호(3849t)와 중국 컨테이너선 진성호(4822t)였다. 한국 선박은 침몰하기 시작했다. 선박이 침몰하면 인근 선박이 알 수 있도록 자동발신장치(EPIRD)가 작동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작동되지 않았다. 그래도 일부 선원들이 선박에서 탈출, 구조보트 2대에 나눠 타고 구조를 기다렸다. 그러나 중국 진성호는 조난 선원을 내버려둔 채 제 갈길로 움직였다. 게다가 중국 해양수색구조본부에 충돌 사고도 무선으로 신고하지 않았다. 사고 발생 7시간 만인 오전 11시. 진성호는 다롄항에 입항해 중국 옌타이시 해사국에 ‘충돌사고가 있었는데 상대 선박이 침몰한 것 같다.’고 신고했다. 이때도 중국 구조본부에는 알리지 않았다. 해사국은 즉시 한국선급협회(KR) 칭다오 사무소에 골든로즈호의 침몰을 알렸고 KR는 골드로즈호의 관리회사인 부산 부광해운에 사고 발생을 전달했다. 우리 해경이 사건을 접수받은 시간은 사건 발생 10시간 만인 오후 1시58분이었다. 중국 해사국과 우리 해경 사이에 핫라인이 없었기 때문에 2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오후 2시10분 해경은 중국 구조본부에 사건을 확인하고 수색을 요청했다. 중국 해사국과 민간회사에서 접수받은 사건경위라 다시 확인 절차가 필요했다. 2시58분 중국 경비정 5척과 항공기 3대가 사고 발생 지역 수색에 나섰다. 사고 발생 11시간 만의 구조 수색이었다. 너무 늦었다. 사고 해역에는 구명보트 2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분명 골든로즈호 구명보트가 분명한데 선원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어둠과 추위, 외로움 속에서 구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충돌한 진성호가 유유히 떠날 때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던 구조선은 끝내 오지 않았다. 오후 5시30분 해경은 사고현장에 우리 경비함정을 투입하겠다고 중국에 알렸다. 중국은 “수색·구조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전해왔다.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중국 경비함정과 민간선박 19척이 뒤늦게 사고해역을 집중 수색했다. 물론 헛수고였다. 오후 8시11분, 골든로즈호의 침몰을 확인한 해경은 청와대, 외교통상부, 국가정보원 등 주요 국가기관 29곳에 이 사실을 팩스로 통보했다. 외교부 당직자가 그 팩스를 읽은 시간은 밤 11시30분이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마리’ 17일, ‘황진이’ 새달 6일 첫선

    ‘마리’ 17일, ‘황진이’ 새달 6일 첫선

    ‘끝나지 않은 그녀를 둘러싼 거짓과 진실’ ‘모두가 그녀의 이름을 알지만 그녀를 알지 못한다.’ 이달 17일과 새달 6일 잇따라 관객을 찾을 외화 ‘마리 앙투아네트’와 한국영화 ‘황진이’의 홍보문구다.16세기 조선과 18세기 프랑스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역사책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온갖 장르의 예술작품에 등장했던 그녀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귀가 닳도록 들어온 두 여성에 관한 영화는 그래서 ‘파격’을 시도했다. 정치적 역학관계에 휘말린 마리 앙투아네트는 현실도피를 위해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를 둘렀다. 현실에 저항하는 황진이는 질식할 것 같은 유교적 엄숙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블랙을 사용한 과감한 배색으로 저항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익숙한 인물을 낯설게 보게 만드는 영화예술의 효과를 만끽할 수 있다. ●18세기에 캔버스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올해 미국 아카데미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제치고 의상상을 수상했다. 의상감독을 맡은 밀레나 카노네로는 이로써 세번째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귀여운 소녀 같으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은 우아한 ‘베르사유의 장미’를 원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과자 ‘마카롱’의 색을 따 만든 마리 앙투아네트(커스트 던스트)의 드레스들은 깜찍, 발랄, 경쾌한 느낌이다. 구두는 ‘섹스 앤드 더 시티’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마놀로 블라닉이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요즘 신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캔버스화도 등장한다. 인터넷 강국답게 네티즌들 사이에서 ‘옥에 티가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벌써 캡처 사진이 떠돌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시대를 초월해 지금의 10대들과 소통하게 만들고 싶었던 코폴라 감독의 귀여운 장난이었다. 지난해 칸영화제에 선보인 영화는 극과 극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비판하는 쪽은 역사적 배경묘사에 소홀했다는 것. 영화는 “빵을 달라!”는 성난 군중들을 향해 “케이크나 먹지 그래.”라고 던진 한마디로 사치와 허영에 찌든 ‘골빈 여자’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앙투아네트를 위한 ‘변명´이다. 그녀는 14세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 프랑스로 시집을 왔다. 영화는 이국 땅에서 겪었을 법한 심적인 고통과 외로움 등을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남편의 무관심, 주변의 뒷담화에 시달리다 임신을 못하면 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는 친정어머니의 걱정 가득한 편지를 받아들고 오열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사랑에 굶주린 그녀가 현실도피의 방책으로 파티와 사치, 도박, 불륜에 빠져들 수밖에 더 있었을까. 전개는 다소 지루하다. 하지만 화려한 의상과 소품, 실제 베르사유궁을 들여다보노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하다. ●한복에도 블랙 &화이트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의 손자인 북한작가 홍석중의 원작을 토대로 한 영화 ‘황진이’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황진이와 사뭇 다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알던 황진이는 뛰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뭇 남성들을 치마폭 안에서 가지고 놀았다 하는 정도. 하지만 영화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소꿉친구인 ‘놈이(유지태)’에게만 순정을 바치는 지고지순한 여인으로 그려진다. 여기에다 그녀는 마치 여성·사회 운동가 같은 모습이다. 양반으로 태어났지만 계급사회의 모순에 대항해 스스로 천민인 기생의 길을 택한 주체적인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렇듯 자유롭고 당당한 황진이를 표현하는 데 의상과 메이크업, 장신구가 한몫 단단히 한다. 디자이너 정구호는 예상을 뛰어넘는 한복 스타일을 창조해 냈다. 분홍, 빨강 등 화사한 색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검은색을 주로 하고 여기에 초록과 보라, 청색 등 현재 유행하고 있는 색상을 과감하게 섞어 놓았다. 전에 볼 수 없었던 ‘모던한 황진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에 블랙 시스루 한복을 입은 황진이의 강렬한 자태에서 넘보기 힘든 위엄이 엿보인다. 특별한 감각을 입고 태어난 의상은 몸에 걸치는 순간 그 힘을 발휘하는가 보다. 송혜교는 거동과 표정에서 차갑고 도도한 16세기 여장부를 제대로 연기해 그녀를 다시 보게 만들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시론] 거인의 분노/김서정 아동문학가·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시론] 거인의 분노/김서정 아동문학가·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병속에 갇혔다가 수백 년 만에 어민에게 구조된 거인의 이야기를 아시는지. 거인은 자기를 구해 준 어민을 죽여 버리겠다고 을러댄다. 어민이 이유를 묻자 거인은 대답한다. 처음 백 년은 나를 구해 주는 사람을 세계 제일의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백 년은 최고 권력자. 그 세월이 헛되이 지나자 나는 화가 치밀어 결심했다. 이제야 나를 꺼내는 자는 죽음을 맞으리라. 겉보기에 너무나 배은망덕하고 위협적인지라 이 이야기는 아이들용 책으로 그리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분노에 관한 인간의 내면 심리를 이해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소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조승희를 들먹일 것도 없이, 어린이날 한 특집 TV프로그램이 소개하던 ‘문제아’들을 보면서 나는 그 거인을 떠올렸다. 피 터지는 컴퓨터 게임에 하루 종일 매달리고, 상담 의사와도 “싫어요, 말 안 해요.” 외의 대화는 없고, 집을 뛰쳐 나가고, 엄마에게 욕을 퍼부으며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어른을 죽이고 싶어 하는, 분노에 찬 거인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저런, 쯧쯧!” 하고 눈살을 찌푸릴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을, 거인의 분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거인이 처음부터 화를 낸 것은 아니다. 수백 년을 바다 밑 병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을 꺼내 주는 은인에게 어떻게 보답할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 절망감, 외로움, 슬픔, 간절함이 얼마나 컸을까.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고 모든 기대와 희망이 물거품이 됐을 때 거인에게 남은 것은 분노뿐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성도 감성도 제어할 수 없는 분노…. 아이들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따뜻한 보살핌과 이해, 격려와 사랑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혼자 버려졌다고 느꼈을 때, 처음에는 아마 필사적으로 도움을 원했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구해 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상상하면서 하루가 백 년 같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아무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마침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아이들에게 ‘말 잘 듣고 공부 잘 해라.’ ‘약속을 지켜라.’ ‘폭력을 쓰면 안 된다.’라는 설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른들은 아이들의 성적 이전에 그들의 감정, 특히 ‘부정적’ 감정에 더 민감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슬픔이나 공포 같은 감정을 마치 전염병처럼 여기면서 막아 세운 채 사랑이나 노력이나 친절 같은 긍정적인 가치만을 쏟아 붓는 자세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 아이들이 맞닥뜨린 부정적인 감정들을 우선 인정하고 표현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런 뒤 어른들이 그것을 겸손과 인내와 배려로 풀어 주는 모습을 실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으로 극복하는 표본이 되어야 한다. 분노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동화들은 많다.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엄마는 “엄마를 잡아 먹어 버릴 테야!”하고 소리치는 아이에게 따뜻한 저녁밥을 슬그머니 가져다 준다.‘아빠는 전업주부’의 아빠는 자기에게 침을 뱉고 발길질하는 아들을 끌어 안고 뱅뱅 돌려 결국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분노 이전의 감정, 외로움과 슬픔을 달래 주는 일도 중요하다. 그 모든 감정들이 결국에는 아이를 분노로 치닫게 만들기 때문이다.“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도 있지 않은가. 김서정 아동문학가·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세계효문화본부 홍일식 총재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세계효문화본부 홍일식 총재

    벌써 5월이라는 생각에 문득 피천득 선생께 안부 전화를 걸었다. 새달 29일이면 백수(百壽)라는 만 99세를 채우는데도 아직 듣고 말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고 하신다. 지금도 애지중지하는 인형과 함께 눈을 지그시 감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신다. 어두워 잠자리에 들 때면 늘 그러했듯 팔베개를 해주며 꿈속을 함께 걸으신다. 또 밝은 낮에는 집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감상하며 어린 아이처럼 히죽거리다가 감흥에 젖어 시구도 절로 읊으신다. 이래저래 5월은 많은 생각이 떠오르게 한다. 기념할 날도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새삼 가족과 우리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가정의 달’이라고 했던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가정의 달´ 맞아 되돌아본 효 ‘효행’이 새삼스레 생각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륜의 덕목 중 가장 으뜸으로 여긴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만한 스승 없고, 형만한 아우없다.’는 속담에 얼마나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일까. 지난주 홍일식(72) 전 고려대 총장을 만났다. 그는 1999년부터 지금까지 ‘세계효문화본부’ 총재를 맡아 ‘21세기의 효’는 어떠해야 하며, 또 ‘한국인에게는 무엇이 있는가.’에 목소리를 높인다. 서울 성북동 사무실에 들어서자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맞이한다. 젊어 보인다고 하자 “손님을 만나려면 최소한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어 자리에 앉더니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의 몫이다. 일찍이 역사의 신은 준비 없는 사람에게 미래의 영광을 준 적이 없다. 미래는 세계화이고 따라서 다음 세대는 세계 시민권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과거 농경사회 때는 어떠했습니까. 헐벗고 굶주려, 배고파서 못살겠다고 했지요. 그 다음에는 산업사회가 왔습니다. 배고픔은 없었지만 대신 힘들다고 했습니다. 노동시간의 단축을 요구했지요. 정보화시대인 지금은 바빠서 못살겠다고들 난리입니다. 다들 몸은 하나인데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허덕입니다. 각종 스트레스 속에,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떠밀려 가는 사회에 살고 있지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인류 문명의 큰 흐름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다가올 전문지식사회의 문제는 ‘고독´ 그러면서 다가올 미래는 ‘고도의 전문지식사회’이며 이때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외로움, 바로 ‘대중 속의 고독’이라고 강조했다. 지금만 하더라도 한 지붕 아래, 한 가족끼리도 벽을 쌓은 채 가식화된 인사를 나누며 지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개인적이고 이기적으로 치닫는 현대사회가 사람을 고독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으며, 때문에 미래 인간의 최대 과제는 ‘고독 탈출’이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미래사회의 주인공은 바로 이 고독으로부터 해방·탈출할 수 있는 사상과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캄캄한 밤에 지팡이도 없이 표류하는 인간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과 길잡이로서의 철학사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야 말로 ‘21세기 리더’라고 부연했다. “우리나라의 경제능력은 지금이 최상이며, 더 떨어지지 않게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단국가인 데다 지하자원도 없이 세계 10대 교역국이 된 것에 만족하고 더 이상 부의 축적에 욕심 부려선 안 됩니다. 미래의 국가는 민족주의도 사라지고, 세금 받는 영역에 불과합니다.” ●미래 문화시대 대비할 우리 유산 효 결국 미래는 문화의 시대, 즉 문화영토의 사회일 수밖에 없다고 예견한다.“천만 다행히도 우리는 지금 이 미래를 준비할 능력과 함께 사상·문화의 유산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면서 효문화·효사상이 바로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서구인들의 경우 스스로 고독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이미 동양의 철학·사상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 가족학(Family Science)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하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으며 “이것이 다름 아닌 동양의 혈연·가정학의 변형이요, 우리의 효문화·효사상에 대한 새로운 가치접근”이라고 설명했다. 또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스웨덴만 하더라도 최근 들어 노인들의 고독 탈출을 위한 데모가 잦다고 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생겨난 버지니아텍 사건만 하더라도 현대문명이 빚어낸 ‘고독의 늪’에 그 원인이 있다면서 누구나 다 정도의 차이일 뿐 ‘조승희적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효사상이 인류의 구원인 까닭도 여기에 있단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1950년대에 TV가 나와 1980년대까지 한 지붕 가족관계를 토막냈습니다. 그 이후에는 컴퓨터가 나와 인간관계를 100배나 더 미세하게 단절시켰지요.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선 부모·자식 간의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자기희생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미래지향적인 효사상을 정립해야지요. 예컨대 과거 집안의 효자라고 했을 때, 그 집 아들은 부모에 대한 효성은 지극한 반면, 자신의 갈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해 사실상 인생의 낙오자나 다름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럴 수는 없지요. 현대의 효는 부모를 즐겁게 해주는, 즉 자식이 출세하고 올바르게 잘 살아가면 그게 바로 진정한 효 아니겠습니까.” ●효사상도 혁명적으로 변해야 옛날에는 부모만 한 스승이 없다면서 무조건 따라오게 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자식한테 배워야 하는 문명시대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지금의 부모 세대는 도덕적으로 힘든 일을 했을 때 비로소 젊은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서 “어른들이 담배꽁초도 줍는, 그런 천지개벽하는 대변혁의 가치관이 필요한 때”라고 거듭 주문했다. “효사상은 오늘날 인류문명이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자 미래를 이끌어갈 유일한 철학이지요. 우리는 그 사상과 문화영토 개척의 향도로서 앞장서 나가야 합니다.” 고려대를 나와 이 학교 여자교우회장까지 지낸 홍 총재의 부인 역시 평소의 덕행을 인정받아 1996년 ‘신사임당’에 추대됐다. 슬하에 3남1녀를 두었다. 딸은 한서대 교수를 거쳐 지금은 성북보건소 의학과장이다. 장남은 국민대 교수, 차남은 사업가이며 삼남은 경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홍 총재는 가끔 가족들과 함께 여행한다. 최근에는 중국 ‘열하일기’의 무대를 다녀왔다. 여기에서 홍 총재는 “당시 70만 여진족이 1억이 넘는 한족을 무너뜨려 270년간 꼼짝 못하게 한 비결이 글로벌 리더십”이라고 얘기했더니 자식들이 다 감동했다고 귀띔했다. 이런 테마여행이 올해도 몇 차례 예정돼 있어 부푼 기대감이 어렸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6년 서울 출생 ▲55년 양정고 졸업 ▲59년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양정고 교사 ▲64년 동대학원 석사 ▲77∼2001년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80년 동대학원 문학박사 ▲90∼91년 베이징대 교수 ▲92∼94년 성곡학술문화재단 운영위원장 ▲94~98년 고려대총장 ▲97년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공동대표 ▲99년 세계효문화본부 총재 ▲2001년 한국향토사전국협의회 회장 ▲2002∼2004년 학교법인 동원육영회(한국외국어대) 이사장 #주요 저서 육당연구, 한국개화사상사, 문화영토시대의 민족문화, 중한대사전, 한국인에 무엇이 있는가,21세기와 한국문화 외 다수. ■ 세계효문화본부는 현대적 의미의 효개념 재정립과 효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9년 12월 사단법인으로 설립됐다(국가 청소년위원회 인가). 주요 사업으로는 효정신 함양을 위한 출판(계간지 ‘헬로 효’ 발행), 효문화 가치의 대중화·세계화를 위한 홍보 및 세미나 개최, 세계 각국과 효문화 사업 교류협력, 효박물관·효문화센터 건립 및 운영 추진 등이다. 그동안 ▲2000년 5월 ‘효의 세계화’ 세미나 개최 ▲2003년 9월 세계효문화축제 개최 ▲2004년 11월 한·중·일 국제청소년 효문화 포럼 등의 행사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정치권 등 각계 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조승희, 헐리우드 영화 2편도 쓰러뜨렸다

    조승희, 헐리우드 영화 2편도 쓰러뜨렸다

    버지니아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해 두 개의 헐리우드 영화가 위기에 처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타임즈’는 “다음 달 칸 영화제를 통해 홍보를 준비하던 2편의 영화가 버지니아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는 이유로 배급이 무기한 연기됐다.”고 26일 보도했다. 한 편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암흑물질(Dark Metter, 가제)’. 많은 제작비만큼 큰 피해가 예상되는 이 영화는 따돌림을 받던 아시아계 학생이 교수와 다른 학생들에게 총을 겨눈다는 내용이다. 아이오와 총기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범행을 저지르는 학생이 외로움에 괴로워한다는 내용으로 이번 버지니아 사건과 섬뜩하리만큼 닮았다. 영화의 기초가 된 아이오와 총기 사건은 1991년 아이오와 대학에서 한 중국 학생이 교내에서 6명을 쏴 죽인 사건이다. 배급이 연기된 또 다른 영화는 총기 난동을 일으킨 학생의 내면을 다룬 ‘킬러 본능 (The Killer Within)’. 1950년대 펜실베니아의 스왓모어 대학을 위협했던 ‘밥 벡터’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대학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라는 점이 걸림돌이 됐다. 신문은 “이 영화들은 (이번 참극과) 지나치게 닮았다.”는 영국의 한 배급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현재로서는 영화 배급이 매우 어렵다.”고 전했다.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승희야, 널 미워하지 않아…”

    |블랙스버그 이도운특파원·서울 안동환기자|“승희, 네가 그토록 필요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돼 슬프구나. 네게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해.”(바버라).“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자리잡은 분노가 이제 용서로 바뀌기를….”(데이비드). 20일(이하 현지시간)은 33명의 버지니아 공대 총기참사 사망자를 기리는 ‘애도의 날’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정오를 기해 조종이 울려 퍼졌고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했다. 비극의 현장인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서는 33차례에 걸쳐 종소리가 울렸다. 그때마다 사망자를 상징하는 풍선이 하나씩 하늘로 올려 보내졌다. 찰스 스티거 총장 등 학교 관계자는 공식 희생자는 범인 조승희씨를 포함해 33명이라고 강조했다. 탄식과 흐느낌. 가슴을 에는 고통과 슬픔. 지워지지 않는 참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블랙스버그 버지니아 공대에는 치유의 희망과 용서의 싹이 트고 있었다. 교내 광장인 드릴 필드에 안치된 32명의 피해자들과 조승희씨 추모석. 그의 자리에도 학교를 상징하는 ‘VT’ 카드와 ‘2007년 4월16일 조승희’라는 기록이 놓여 있다. 높이 20㎝의 화강암으로 된 추모석 위에는 평화와 안식을 기원하는 편지들이 놓여 있다. 장미와 카네이션, 성조기가 보였다. 오른쪽 옆에는 바버라가 쓴 ‘조승희의 가족에게 사랑을 담아.’라고 쓰인 종이가 있다. 로라는 “승희야, 난 널 미워하지 않아. 네가 어떤 도움과 안식도 찾지 못한 게 가슴이 미어진다. 평화와 사랑을 찾기 바랄게.”라고 썼다. 조씨의 총격으로 다친 가레트도 언론을 통해 “조승희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전에 조씨를 만났더라면….”이라며 진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추모석 앞에서 흐느끼는 한인들도 있었다. 23년이라는 짧은 삶을 외로움과 분노, 광기 어린 증오로 마감한 조씨는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조씨는 죽어서야 그의 아픔을 이해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홀로코스트’ 생존 교수 장례식 참사 당시 제자들을 구하려다 숨진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의 장례식도 20일 이스라엘 중부 란나나에서 치러졌다. 장례식장에는 가족, 동료와 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정부 대표 등 수백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아들 아리에는 “통계와 함수 강의는 끝나고 당신은 영웅적인 희생을 가르치는 새로운 강의를 시작했다.”고 애도했다. 리브레스쿠 교수는 2차대전 중 나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총기 참극 당일이 홀로코스트 기념일이었다. 대학 인근 장로교회에서도 기계공학과 캐빈 그라나타 교수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희생자 시신이 가족에게 인도된 뒤 블랙스버그에서 치러진 첫 장례식이다. 그라나타 교수의 장례식장에도 동료 교수·학생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희생자 시신이 본격적으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조씨 시신의 인계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 신문 “한국 사과 그만 하라” 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지는 ‘한국인에게’로 시작하는 ‘한국에 보내는 편지, 여러분의 사과에 담긴 교훈’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제 사과는 그만하라. 이것(총기 참사)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고 당부했다. 이 신문은 서울의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촛불 추모식, 세 차례에 걸친 대통령의 충격 표시 등은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지만 문제는 한국이 아니라 이민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국에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조씨가 미국에서 자랐으므로 ‘우리가 그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여러분에게 사과해야 할지 모른다.’면서 ‘우리는 (한국인) 여러분의 사과를 신의 은총과 인간애에 대한 교훈으로 받아들이며 여러분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다. 감사한다.’고 지적했다.●권총 탄창 이베이에서 구입 경찰 수사는 조씨와 처음 살해된 여학생 에밀리 힐스처(18)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되고 있다. 힐스처의 랩톱 컴퓨터와 휴대전화도 분석되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다. 경찰은 조씨와 힐스처간 평소 이메일 등의 교신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버지니아 공대의 컴퓨터 서버도 조사할 계획이다. 통상 살인사건에서 희생된 사람의 80∼85%가 범인에게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씨가 범행에 사용한 권총 탄창은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에서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베이는 조씨가 지난 3월22일 ‘Blazers5505’라는 회원명으로 22구경 발터 P22 권총의 탄창을 아이다호 주에 있는 한 총포상에서 구입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10발이 장전되는 탄창 2개를 구입했다. 그는 또 이베이에서 폭력적인 주제의 책 몇 권과 버지니아 공대 미식축구 티켓, 그래픽 계산기 등을 산 것으로 나타났다.dawn@seoul.co.kr
  • 외국인며느리 친정 만들기

    외국인 며느리들에게 친정 엄마의 사랑을 전한다. 구로구는 18일 “고국을 떠나 시집온 외국인 며느리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친정엄마 되어주기 사업’을 펼친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여성단체연합회 회원과 외국인 며느리들이 친정엄마와 딸의 관계를 맺는 식으로 진행된다. 친정엄마가 되는 여성단체 회원은 외국인 며느리들이 어려움이 없는지 보살펴 주고, 외국인 며느리들은 궁금한 것과 힘든 점들이 생기면 여성단체 회원인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구한다. 정성자 여성정책팀장은 “비록 시어머니가 계시지만 결혼한 여성들에게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느낌은 ‘어머니와 엄마’라는 단어 차이에서 보듯이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외국인 며느리들이 친정엄마로 맺어지는 여성단체 회원들로부터 진정한 한국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오는 23일 외국인 며느리 50명을 한국인 친정 엄마들과 연결시키고, 한국민속촌을 방문하는 행사가 열린다. 또 9월에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외국인 며느리들을 위해 합동 결혼식도 마련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길섶에서] 지독한 갈증/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소설가 이외수는 예술을 마시는 술에 비유했다. 술 가운데 가장 독한 술이 예술이라고…. 영혼까지 취하게 한다. 창작물은 술 주정의 흔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도 마시는 술을 예술만큼이나 즐긴다. 뒤라스는 세상의 공허함 때문에, 신이 떠난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했다. 어느 평론가는 그랬다. 술은 자신을 죽이면서라도 채워야 했던 갈증이라 했다.“보들레르가 말하는 ‘가슴 찢는 지독한 갈증’만큼 깊이가 아득할 것 같다.”고.‘알코올과 예술가’(라크루아 지음)를 번역한 백선희씨의 독백이다. 그러나 황순원은 “술이 외로움을 풀어 줄 수도, 받아들여 줄 수도 없다.”고 했다.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서였다. 시인 세 사람과 식사를 같이했다. 공교롭다고 할까. 셋 다 술을 거의 못했다. 혼자 소주 한 병을 홀짝거렸다. 함께했던 최창일 시인의 글이 생각난다.‘굵은 비가 창문을 두드립니다/…커피를 마시고 싶습니다/침묵을 마시고 싶습니다’ 술에 취하느니 잉크에 취하는 것이 낫겠다는 플로베르가 떠오른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김숙기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남편이 멀리하자 그만 외도를…

    Q9세,6세 자녀를 둔 가정주부로서 결혼 생활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남편이 저를 멀리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줄 알았습니다. 퇴근시간이 늦어지고 잠자리 요구를 하지 않고 매일 회사일로 피곤하다고만 하는데 주변에서는 딴 여자가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저도 너무 답답하고 외로운 나머지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남자와 몇 번 어울려 다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최민희 -가명·36세- A두 자녀를 둔 가정주부로서 혼란을 겪고 있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루 종일 집안일과 아이들에게 시달리다 보면 남편의 애정표현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아지기 마련인데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견뎌내기 힘든 고통의 과정이 느껴져 안타깝습니다. 부부간에 잠자리가 멀어지기 시작하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감에 문제가 생기고, 친밀했던 관계가 서먹서먹해지기 마련이지요. 성적 욕구불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고, 일상생활에 쉽게 짜증이 나고 외로움과 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또 부부사이에 속 깊은 대화가 단절되고 답답함이 커지면, 가정보다 외부상황에 더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빼앗기는 유혹을 받게 되지요. 그러나 하루빨리 부부관계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금까지의 패턴을 각자 중단하세요. 문제 상황을 직면하지 못하고 혼자만 참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가족관계와 부부역할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외부남자와의 관계를 깨끗이 단절하고 남편과의 문제에 직면하여 해결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외롭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배우자 이외 이성과의 만남을 지속한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후유증과 상처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만 믿고 남편을 ‘외도 한다.’ 단정 지어 생각하지 마세요. 직접대화를 통해 좀 더 정확한 현실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남편의 속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부가 함께 서로가 원하는 것을 용기 내어 터놓고 이야기해 보세요. 서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각자의 기대감에 따른 기본적이고 우선적인 욕구가 해결되어야 다시 친밀감을 회복하고 보다 만족스러운 부부관계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용한 때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말고 “요즘 대화도 잘 안되고 잠자리도 같이 안 하니 멀어진 느낌이 들고 외롭다. 속마음을 나누고 싶다.”며 답답한 마음을 표현해 보세요. 남편이 회사에서 업무 스트레스를 과중하게 받고 있을 수도 있고, 신체적인 고민이나 어려움을 경험하고 열등감에 빠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여자는 ‘애정이 식었나? 내가 성적 매력이 없나? 다른 여자가 있나?’라는 거부당했다는 생각과 비참함으로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러한 오해가 쌓이다 보면 마음의 문이 닫히고 자존감에 상처를 받아 부부관계가 싫어지고 상대에 대한 원망감과 분노감으로 악순환이 되풀이되지요. 부부간에 서로 다른 성적 욕구의 불일치로 어려움이 있을 때 무리한 관계를 시도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기보다는 두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깊이 있는 대화와 스킨십으로 사랑을 나누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성욕의 차이로 문제되는 갈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에도 만족감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의료기관이나 상담치료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부부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극복하여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여성&남성] 그와… 그녀와 …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왜?

    [여성&남성] 그와… 그녀와 …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왜?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수필가 피천득은 아사코라는 여성과의 오랜 ‘인연’에 대해 이렇게 읊었다. 피천득은 태평양전쟁이 일찍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했다면 아사코와 같은 집에서 살 수도 있었을 거란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여자와 남자의 인연이란 어떤 걸까. 내 가슴을 적셔오는 상대의 마음을 알면서도, 정작 그와 약지를 걸지는 못했던 그들의 사연을 들어본다. ■ 완소남(완전 소심한 남자) ●이런 완소남(완전 소심한 남자)을 봤나 회사원 김모(27)씨는 소심한 상대 남자의 1% 성격 결함에 질려 99% 장점을 포기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알게 된 그 남자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김씨를 착실하게 챙겨주는 편안함에다 진한 눈빛으로 나만 바라봐줄 것같은 마음을 표현해준 사람이었다. 호감을 갖고 만나기 시작했지만 그 남자는 정작 둘만 있는 자리에선 긴장 탓에 안절부절했다. 결국 그 남자는 꼭 자신의 친구를 데리고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둘만의 만남을 원하는 김씨를 살짝 실망시켰다. 이후에도 그는 “널 좋아해.”란 한마디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전화나 메신저로 ‘애매모호한 신호’만 보내왔다. “일종의 모멘텀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그 남자에게 끌렸지만 여자는 남자가 자신에게 확신을 주는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사실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굉장히 부담스럽기 때문에 결국 1년 정도 지나 관계가 흐지부지되고 말았어요.” 회사원 서모(26)씨는 부모의 황당한 개입 때문에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과의 관계가 이뤄지지 못했다. 서씨는 대학 1학년 첫 미팅에서 주선자로 나왔던 엄마 친구의 아들을 처음으로 만나 한눈에 쓰러졌다. 타이완 배우 금성무를 닮은 얼굴에 송승헌같이 짙은 ‘숯댕이’ 눈썹을 갖춘 완벽한 외모에다 밥집에 가면 쌀농사 지은 사람들 때문에 밥 한톨 남기길 꺼려하는 진중한 성격까지 갖췄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서씨와 첫눈에 반했고 둘은 호감이 99%까지 차 올랐다. 하지만 2개월 뒤 그가 갑자기 소식이 뜸해져 서씨는 ‘차였구나.’ 생각하며 한동안 눈물로 밤을 지샜다.“나중에 알고보니 우리 엄마가 그쪽 부모의 이혼 경력을 이유로 그 남자의 엄마에게 저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얘기했더군요. 몇년 뒤에야 알고 너무 속이 상했어요.” 취업준비생 김모(27)씨는 남자의 결혼 압박이 맘에 걸려 ‘괜찮았던’ 그에게 결국 손사래를 쳤다. 지난해 소개팅으로 만난 여섯살 위의 그 남자는 젠틀한 매너에 준수한 외모, 신중한 성격까지 갖췄다. 한번 꼬시긴 힘들어도 정작 꼬셔두면 계속 내 남자일 것만같아 마음이 점점 동하던 찰나, 문득 물어본 “올해 목표는 뭔가요.”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 신경을 건드렸다. 그는 “올해 안에는 무조건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마음을 다 잡고 한 번 더 목표를 물었지만 그는 똑같은 답을 ‘한 번 더’ 던져 김씨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만난 지 3∼4번밖에 되지 않았는데 늘 입에서 결혼이야기를 달고 살아 결국 그게 발목을 잡더군요. 머뭇거렸더니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끊었어요.” ●그가 옆에 없음이 두려워서 그만…. 회사원 정모(29)씨는 외로움이라는 장벽이 두려워 놓쳤던 그 사람에게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있다.2년 전 모임에서 알게된 그는 곧 연수를 떠날 계획이었다.“얘기를 하면 할수록 매력적이었고 매일 함께 있고 싶었지만, 한참 사랑해야 할 나이에 2년이나 그를 옆에 두지 못한 채 인내해야 한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죠.” 이후 2년이 지나 그는 돌아왔지만 예전같이 자신을 좋아할 것 같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는 정씨. 그는 “사랑은 타이밍이라는데 혼자일 게 두려워서 놓아버린 날 다시 찾을지 모르겠다.”면서 “2년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며 한숨지었다. 그는 또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으면 소중한 걸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회사원 양모(25)씨는 2년전 여름 한달동안 중국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가서 만난 미국 남자와의 인연을 아직 잊지 못한다. 그 남자는 특별한 외모나 매력이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았지만 함께 있으면 왠지 힘이 되고 마냥 행복하고 계속 같이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도 양씨에게 계속 호감을 표시했지만 둘은 한달 뒤 각자의 나라로 돌아오고 말았다.“만약 한국 사람이고 같은 나라에 계속 있었다면 두말할 것없이 사귀었을 거예요.” 회사원 이모(27)씨는 ‘신분의 장벽’에 막혀 남자와 등을 돌렸다. 몇년 전 만났던 그는 함께 미술관 등을 다니며 취미를 공유할 수 있었고 속상해 울면 득달같이 달려와 밥을 사주며 다독거려줄 줄도 아는 남자였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뭔가가 맞지 않았고 그 이유를 알아보니 그 남자는 법관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신분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그 남자가 자신과 비슷한 레벨의 여자를 찾길 원하는 것 같았고 결국 결혼도 그런 여자와 하더라고요.”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잘난걸(Girl)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져” 남성 대부분이 오래전 사랑했던 혹은 짝사랑했던 여성을 가슴에 담아둔다. 사귀고 싶었지만 인연이 너무 짧았고 고백하고 싶었지만 고백하지 못했기에 마음 아프다. 회사원 유모(40)씨는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인 28살 때 한 여성을 사귀게 됐다. 서로 결혼할 마음까지 있었지만 유씨의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 아가씨는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결혼을 하면 중풍으로 쓰러진 시어머니를 혼자서 병수발해야 한다는 게 엄청난 부담이었겠지요.”부담스럽기는 유씨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 다음 차례는 이별이었다. 벤처기업 사장 최모(33)씨는 첫사랑을 2년 전 서울 영등포역에서 다시 만났다.“한 손엔 애를 잡고 한 손에는 애를 업고 있었죠. 다른 손엔 가방을 들고요. 단발머리만 간직하고 싶었는데 세파에 찌든 모습을 보니 기분이 참 ‘거시기’합디다. 전화번호는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어떻게 지냈느냐는 말만 하고 헤어졌지요. 왜 그 때 잡지 않았느냐고 원망하는 눈빛이 느낌으로 왔는데 여운이 한 달 가더라고요.” 고3때 만났다는 게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재수를 하게 되면서 최씨는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상업고등학교에 다녔던 그 친구는 취업을 했지요.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지더라고요.” 최씨는 가끔 “그 친구가 취직했던 전주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생각해 본다.“그 친구가 데리고 있던 아기들이 내 새끼가 될 수도 있었겠지요.” 염모(30)씨도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 경우다. 군대 동기가 여동생을 소개해줘 1년 넘게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1년 가까이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면서 자연스레 소원해졌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여자친구는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었다. 서로 끌렸는데도 끝내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학생 운동과 시민 운동을 거쳐 지금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는 박모(38)씨는 학내커플을 터부시하는 청교도적 분위기가 연애 전선에 딴죽을 걸어 버렸다.“1학년 때부터 공부를 같이 했던 동기 유모씨와 서로 좋아하면서도 차마 말을 못한 채 3년이 흘러가 버렸어요. 그런데 우리 둘이 동거를 한다는 소문이 난거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그 사실을 부인하면서 화를 냈는데 그게 그 친구에게 상처가 돼 버렸어요.” 그 이후론 겉으로 친구처럼 지내던 것조차 서먹서먹해지고 말았다. 그 후 시간이 지났을 때 그 여학생은 박씨에게 “우린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때론 너무 바쁜 게 원수다. 유모(35)씨는 후배 소개로 어린이집 교사를 만났지만 어렵게 얻은 첫 직장은 일이 너무 많았다. 직장일에 의욕이 넘치던 유씨. 토요일 데이트 약속을 잡을 때마다 꼭 일이 생겼다. 그런 식으로 두 달 가량이 지나가 버리니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것도 까먹을 지경이 돼 버렸고 흐지부지 헤어지고 말았다. 나중에야 그 후배를 통해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그 아가씨는 결혼할 마음까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데이트 때마다 기대를 했는데 번번이 바람맞고, 자존심 때문에 먼저 말하지도 못하고. 결국 지쳐 버린거죠.” 우정이냐 사랑이냐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3때 독서실에 같이 다니던 친구 셋이 한 여자를 좋아해서 고민했던 걸 생각하면 한모(34)씨는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1학기쯤 아주 예쁜 여학생이 독서실에 왔는데 세 명이 동시에 그 여학생에 반했습니다. 모두들 ‘내가 저 여자애 찍었다.’며 경쟁이 붙었지요. 처음엔 넷이서 영화도 보고 재미있게 놀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여학생이 나를 뺀 두 친구를 저울질하는 걸 눈치챘어요.” 한씨는 좌절감에 혼자 술도 먹다가 결국 “나는 원래 걔한테 관심없었다.”며 마음에 없는 소릴 했다. 이제 두 친구가 경합을 벌였다. 물론 승자는 한 명.“선택을 못받은 친구는 많이 마음 아파했죠. 선택받은 친구도 의리 때문에 많이 미안해 하고요. 그래도 그 친구는 그 여학생과 결혼까지 했어요. 선택 못받은 친구만 노총각이죠.”그들은 지금도 친한 친구다. 네명이서 함께 온라인 게임을 하고 술도 마신다. 그래도 한씨 마음 속에선 지금도 그 친구에게 미묘하게 샘을 낸다고 한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김형기의 영화, 99가지 모놀로그] 혼자라고 느껴질 때

    [김형기의 영화, 99가지 모놀로그] 혼자라고 느껴질 때

    문득 외로움이 밀려 올 때가 있다. 세상에 혼자인 것 같고 아무에게도 말 못할 먹먹한 가슴으로 잦은 한숨을 쉬고 기운을 놓을 때가 있다. 얼마 전 이른 새벽. 담배만 푹푹 피워 물다 잠도 들지 못하고 뒤척이며 일어나 TV를 틀었는데, 부지불식간에 이런 제목의 단막극이 시작되고 있었다.‘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 그 순간 가까스로 참고 있던 외로움이 봇물 터지 듯 순식간에 밀려들어 왔다. 쪽팔린 얘기로 차마 ‘울음이 터졌드랬어요.’라고는 못하겠고,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세상의 모든 슬픈 노래가 내 얘기 같고, 나만 뚝 떨어져 이렇게 아파하고 슬퍼하고 있다는 느낌말이다. 갑자기 우울증의 심각함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 슬픔과 외로움을 홀로 견디고 있을 당신에게 이 영화를 선물한다. ‘타인의 삶(The Lives Of Others/Das Leben der Anderen,2006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의 동독에서 시작한다. 나라와 자신의 신념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던 차가운 인격의 소유자인 비밀경찰 비즐러는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드라이만을 체포할 만한 단서는 찾을 수 없고 오히려 그와 크리스타로 인해 감동받고 사랑을 느끼며 인간적으로 끌리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비즐러의 삶에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파문이 일어나고 통일된 독일에서의 비즐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한 남자가 감시하던 두 남녀를 통해 역으로 사랑과 인간애를 배우게 되면서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유럽 대륙을 넘어 세계적으로 그 감동을 나누고 뒤늦게 우리 곁에 찾아 왔다. 언제나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의 경계선이 주는 몽환적이면서도 강렬한 매력을 포착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영화 ‘씨 인사이드(The Sea Inside/ar Adentro,2004년)’ 역시 독특한 색깔을 불어넣어 감성을 뒤흔든다. 전신마비자의 억눌린 욕망을 마치 새가 훨훨 날아가는 것 같은 시점으로 보여주는 영화 도입부와 후반부, 꿈 장면과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은 딱딱해 보일 것만 같았던 안락사를 소재로 한 영화에 신비감과 독창성을 부여한다. 그저 논란이 되었던 실화를 재연하는 것에 그치지 않은,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영화로서 어둡고 고난한 환경 속에서도 항상 주위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던 라몬 삼페드로의 밝고 쾌활한 성격, 그가 던지는 유쾌한 유머들로 보는 이들의 마음에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삶은 자주 우리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곳으로 흐른다. 속도 또한 발맞추기 힘든 지경으로 쏜살같다. 좌절과 수시로 맞닥뜨리고, 불행은 결코 나만을 비켜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도는 더 간절해지고, 노력은 불가피하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고 있는 현자를 아니꼽게 본 장사치가 곤란에 빠뜨리기 위해 새 한 마리를 손에 쥐고 찾아갔다. 그리고 물었다.“이 새가 살겠습니까, 죽겠습니까.” 살겠다 하면 힘을 주어 죽일 참이었고, 죽겠다 하면 날려 보낼 참이었다. 현자는 이렇게 말했다.“그 새는 네 손에 달렸다.” 삶은 ‘내’손에 달려 있다. 시나리오 작가
  • [희망의 씨 뿌리기 귀농] (5) 실패에서 배운다

    [희망의 씨 뿌리기 귀농] (5) 실패에서 배운다

    성공한 귀농인도 많지만, 실패해서 탈농(脫農)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농림부 등에 따르면 귀농한 사람 3명 가운데 2명은 농촌 정착에 실패한다. 농촌에 정착하기는 그만큼 어렵다. 지금 귀농을 꿈꾸고 있다면 실패 사례를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앞서 귀농에 실패한 사람들이 겪은 경험은 새내기 귀농인들이 닥칠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데 훌륭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된다. 전문가들은 조급한 한탕주의와 무리한 투자, 지역사회 부적응 등이 귀농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생강·양배추만 짓다 2년만에 빚더미 A(43)씨는 지난 99년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서산으로 귀농했지만,2년 만에 1억원 가까운 빚만 지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그의 사례는 노력 없이 ‘대박’만을 좇는 ‘한탕주의’ 농사로 ‘쪽박’을 찬 귀농 실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A씨의 잘못은 귀농을 농사꾼이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닌 단순 ‘돈벌이’ 수단으로 봤다는 것.A씨는 귀농 당시 다른 귀농 준비자보다 무척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는 고려대 농과대 대학원을 졸업해 농업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춘 데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농지 5000평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A씨는 귀농 첫 해 농지 5000평에 모두 생강을 심었다. 당시 생강 가격이 큰 오름세를 보였기 때문에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귀농전 귀농교육단체 등에서 위험분산을 위해 소량다품종으로 재배할 것을 교육 받았지만, 돈 욕심에 무시했다. 그러나 그 해 생강 농사가 너무 잘되는 바람에 가격이 폭락,A씨는 귀농자금 5000만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그러나 A씨의 ‘도아니면 모’식의 투기농업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 양배추를 모두 심었고, 또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천만원을 잃었다.A씨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기보다 돈으로 밀어붙이면 농사도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했다.”고 후회했다. ●초기투자 2억… 주말 즐기다 ‘빈손´ B(55)씨는 6년 전 2억원의 여윳돈을 갖고 경기 이천 부근으로 귀농했다. 그는 한달에 최소 100여만원의 소득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3000여평의 땅을 구입하는 데 1억원 가까운 돈을 썼다. 게다가 전원 주택과 화훼용 비닐하우스를 짓는 데 또 1억원을 들였다. 그러나 B씨는 농사일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주말은 서울로 올라가 사람들을 만나거나, 집으로 손님을 불러 들여 즐겼다. 결국 비닐하우스 관리 소홀로 꽃들이 대부분 얼어 죽고 말았다. 이듬해 농협 등으로부터 5000여만원을 대출받아 다시 꽃을 키웠지만, 경험 부족으로 또 다시 실패했다. 결국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팔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B씨는 “땅과 집을 사는 데 너무 많은 돈을 들여 정작 농사지을 돈이 부족했고, 농사 경험을 쌓는 노력도 게을리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경기 분당에 사는 C(40)씨는 경기 용인 전원주택을 경매로 낙찰받고 귀농을 감행했다. 그러나 그 지역은 평소 귀농후 꿈꾸던 약초, 버섯, 삼 등은 재배가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그저 논·밭농사 정도만 가능했다. C씨는 가진 돈과 은행 대출금으로 만든 3억여원을 모두 1000여평의 논과 밭을 구입하는 데 썼다. 그러나 농사 경험이 없어 땅을 대부분 놀리기 일쑤였다. 겨우 앞 마당에 텃밭이나 가꾸는 정도였다. 소득이 거의 없자 서울로 올라갔고, 귀농전 하던 임시직 일을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기름값 부담에 몇달 만에 포기해야 했다. 그는 결국 용인의 집을 버리고 분당으로 돌아가 의료 기구 판매 일을 하고 있다.C씨는 “무계획·무대책 귀농으로 인한 무리한 초기 투자가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돌이켰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D씨는 지난 2001년 직장을 잃고 고향인 충북 청주로 귀농했다. 첫 해와 이듬해는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밭을 일구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다 욕심이 생기면서 단기간에 많은 양의 토마토를 수확할 수 있는 ‘양액재배’ 시설 등을 마련하기 위해 3000여만원을 대출했다. 그러나 토마토 가격이 하락하면서 대출금 갚기가 힘들어지자 결국 농사를 포기하고 말았다. ●도시서 출퇴근… 부인과 갈등 도시 U턴 지난 2002년 서울 직장을 그만두고 강원도로 내려간 30대 중반의 E씨. 그는 농촌관광 사업을 하겠다며 폐교를 임대해 숙박시설을 마련했다. 그러나 시설 관리를 몸소 하지 않고 서울서 온 또 다른 귀농자에게 관리를 맡겼다. 본인은 인근 도시에 집을 사서 출퇴근을 했다. 게다가 폐교를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한 채 술을 파는 유흥음식점으로 개조했다. 결국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폐교 임대가 취소돼 적자 상태에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30대 후반의 F씨는 2005년 4월 귀농을 결심, 아무 연고 없는 경북 영양에 둥지를 틀었다.2000평 고추농사로만 연간 2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렸고, 아내와 아이들 셋을 키우기에 크게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내와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아내는 농촌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외로움을 호소했다.30대 중반의 주부로서 대부분 60대 이상인 마을 여성 주민들과 쉽게 동화하기 힘들었다. 특히 농촌에서는 불가능한 아이들 학원 수강 문제를 놓고도 의견 대립이 심했다. 문화생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의료 시설 부족에 대한 아내의 불평도 나날이 높아갔다. 결국 F씨의 가족들은 지난 2월 짐을 싸야 했다.F씨는 “가족 동의 없이 제 의지만으로 귀농을 고집, 아내가 농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실패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귀농사모’가 말하는 성공 수칙 “조그만 차이가 성공과 실패라는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정성근(43)‘귀농사모(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표는 귀농의 성공과 실패에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고 말한다. 귀농사모는 3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의 자발적 온라인 귀농동호회이다. 정 대표는 “도시 직장에 첫 출근하는 신입사원의 각오를 농사일에서 가지면 귀농 실패는 없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그가 현장에서 느낀 귀농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조건들. ●실패하는 귀농의 5대 조건 1. 공부안하기 영농기술과 시골·농촌 문화를 습득하는 데 소홀하면 할수록 농사일은 힘들고 지겨워진다. 2. 게으름 피우기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먹는다. 늦잠 자고 일 안하는 만큼 소득은 줄고 지역 주민들은 떨어져 나간다. 3. 잘난 척 배운 척 있는 척하기 귀농후 3년 동안은 시집살이하는 셈 치고 겸손하라. 농사일 만큼은 시골 사람이 한수위다. 4. 은둔하기 유유자적 한답시고 주민과 담 쌓으면 농사일과도 담을 쌓게 된다. 5. 자만하기 귀농 첫 해 만족할 만한 소득을 올렸어도 배우는 자세로 더 열심히 일하라. 아직 고비가 더 남았다. ●성공하는 귀농의 10대 조건 1. 귀농생활을 널리 알려라 주변 친구·친지에게 귀농 결심을 알려라. 기대 이상의 도움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2. 버리지 마라 도시에서 필요 없던 헌 옷도 농촌에서는 훌륭한 지하수 동파 방지용 덮개가 된다. 3.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라 귀농 동호회 등에 가입해 선배 귀농인의 조언을 구해라. 농협 직원과 공무원도 알아두면 좋다. 4. 적을 만들지 마라 시골은 익명성과 거리가 멀다. 튀는 행동으로 반감을 사면 곧바로 낙인찍힌다. 5. 동네행사에 적극 참석하라 주민들과 접촉 빈도를 높여 호의를 이끌어내라. 성공의 지름길이다. 6. 동네 일을 맡아라 ‘이웃 사촌’이 되면 주민과의 동화는 자연스레 이뤄진다. 7. 인사 잘해서 남주나 인사만 잘 해도 주민과의 관계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8. 지역사회에 기여하라 농사로 벌어들인 이익 중 일부는 지역 주민을 위해 환원하라. 9. 당당하게 행동하라 한 없이 저자세로 나가지 마라. 일단 무시당하면 회복하기 힘들다. 10. 교류하라 농업 관련 단체 등 지역 사회와 연결고리를 맺어라.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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