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성매매 단속보다 성폭력 예방 치중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입법 취지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성매매방지법, 세종시특별법, 미디어법 등 우리 사회의 매트릭스를 뒤흔들 수 있는 거대 담론체계들이 충분한 토론이나 구성원들의 합의 도출 없이 당파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처리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이 전 국민에게 전가되는 것은 국가적 낭비이기 때문이다.
최근 흉악무도한 아동 성폭행 사건의 잇따른 발생과 관련하여 현행 성매매방지법처럼 국가 공권력을 일반적인 성욕 제어장치로 운용하는 것보다는, 치명적이고 위해적인 성폭행 범죄를 보다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철저하게 색출할 수 있도록 규제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성적 욕망을 제어·차단하는 것과, 아동과 장애인 등 약자에 대한 성폭행범을 색출·처벌하는 것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국가법의 적용 대상은 후자에 한해야 하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두 여성장관이 주도해서 만든 성매매방지법은 성 범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에서 성 구매자에 대한 처벌규정을 둠으로써 성적 자기 결정성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성욕을 통제하는 모든 정책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성욕 규제장치는 공권력만을 소모하는 너무나 비효율적인 방식임에 틀림없으며, 성 범죄를 차단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변태적 확산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우리 사회는 해외 원정 성매매단 사건 등을 통하여 국제적 망신과 국가적 위상의 추락을 경험했다.
이와 함께 현행 성매매방지법은 공권력의 나태와 타락의 중요한 요인이 되어 왔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경찰이 굳이 위험을 무릅쓴 수사 활동을 할 필요가 없으며, 그물을 쳐놓고 기다리는 함정수사만으로도 엄청난 실적을 양산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국민들은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서, 흉악범들이 의도할 경우에는 언제 어디서나 희생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져 있다. 법조인들 역시 은근히 이같은 범죄 확산 사태를 즐기는 눈치이다.
출산 목적 이외의 모든 성 행위를 범죄시한 기독교는 16세기 무렵 가정의 침실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외도에 대해서는 관대한 지침을 제시함으로써 성적 욕망을 제어하고자 했다. 그러나 17세기 자본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교회는 가정의 침실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그 반대 영역인 외도와 불륜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했다. 성적 욕망 제어의 방향이 역전된 것이다.
성적 욕망은 가장 보편적인 현상이다. 매연가스를 내뿜는 자동차가 환경법에 위배된다고 해서, 그런 버스에 탑승한 사람들까지 처벌하는 것은 일반적인 법 제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인간 생활은 성적 욕망체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성적 매혹은 인류의 역사에서 특별한 상품 가치로 평가되어 왔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사회제도로 정착된 것이다. 결혼만큼 성적 매혹에 대하여 그토록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성적 매혹을 상품화한 여러 사회적 행위들 가운데서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성매매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것은 대다수의 국민을 현실적인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국민의 성생활을 국가가 전면적으로 감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단속에 의하여 적발된 사람들만이 시범적으로 처벌되는, 이른바 요행의 원리에 의한 법 적용은 인간 상식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자유의사에 의한 성매매를 규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성적 매혹과 관련하여 공권력이 가장 우선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는 경우는 성 정체성이 자기의사에 관계없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침해당했을 때이다. 국가 공권력은 특정된, 치명적 위해로부터 국민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한다는 목적 하에서만 행사될 수 있도록 법 규정을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