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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6년 방북 대학생 2명/독일서 정치망명 허용

    【베를린 연합】 지난 96년 8·15행사 참여를 위해 방북했던 유세홍(27·조선대 치의학과 4년 제적)·도종화(24·연세대 기계공학과 4년 제적)씨는 19일 독일에서 정치망명을 허가받았다고 밝혔다. 유·도씨는 방북후 독일 베를린에서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공동사무국을 운영해 오다 통일운동의 방향을 둘러싼 한총련과의 의견대립으로 지난달 11일 한총련 대표직 사퇴와 사무국 폐쇄를 결정했다. 이들은 지난 96년 11월23일 독일에 정치망명을 신청했으며,외국인 난민청과 연방행정재판소는 지난 14일 이들의 망명을 최종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 ‘자본주의 바람’ 차단 사상교육 강화(오늘의 북한)

    ◎한국·외국인 왕래 잦아 폐쇄빗장에 틈새/장발·미니스커트 등 외래풍조 배격운동 요즘 북한 당국은 전 선전매체를 동원,전체 주민들에게 자본주의 풍조 유입에 대한 경감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사상교양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그동안 체제 붕괴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해 남한의 풍족한 생활상의 전파와 외래사조의 침투를 막아왔는데 최근 경수로 건설공사·대북 식량지원 감시활동·대북 투자·관광 등을 위해 한국인과 외국인들의 왕래가 잦아지고 마지 못한 항구개방이 늘어남에 따라 차단틈새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요즈음 북한 당국이 ‘황색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취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점차 ‘비사회주의적’인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는 청소년들의 옷차림·치장·행동에 대한 단속,외래풍조배격 토론회 개최,사회주의정신 고취 교육 강화,‘김정일 따라 배우기 운동’전개 등이다. 이 가운데서도 북한 당국이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청소년들의 옷차림·머리모양·치장·행동 등이다.청년동맹기관지인 청년전위 최근호는 청소년들이 “국적 모를 괴상한 머리를 하고 다닌다“며 군인처럼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닐 것을 촉구했다.이 신문은 청소년 머리형태 중에는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 머리형태를 딴 것도 있다면서 “이렇게 무턱대고 따른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르주아 생활양식에 오염돼 구렁텅이에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또 옷차림에 대해선 “일부 여성들이 우리식이 아닌 치마바지나 무릎 위에 올라가는 짧은 치마(미니 스커트)와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수치스러운 줄을 모르고 있다”고 개탄했다.최근 번지기 시작한 여성들의 짙은 화장과 관련해서는 “눈 둘레를 색소로 물들이는 것(눈화장)은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유행”이라고 질타하고 있다.그리고 문신에 대해선 “먹물로 살속에 글자나 그림을 새겨 넣는 것은 얼빠진 사고방식으로부터 하는 장난질”이라고 개탄했다.이밖에 ▲청춘남녀의 팔짱 끼기 ▲자전거 뒤에 여자 태우기 ▲여자의 바지치마,남자의 쫑대바지(몸에 꼭 달라붙는 바지) 입는 문제 등을 ‘부르주아적이며 퇴폐적인 생활풍조’라고 비판했다.그리고이같은 미국식 생활양식을 “청년들을 병들게 하는 위험한 독소”로 규정하고 전체 청년들에게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은 이같은 비사회주의적인 풍조의 만연을 막기 위해 청년동맹의 ‘청년규찰대’를 동원,장발을 자르는 등 두발과 옷차림 단속에 나서고 있다. 북한은 또 전체주민들에 대해 자본주의 사상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것을 계속 촉구하고 있다.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최근호 사설에서 “소련과 동구국가가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선택한 결과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실업·빈궁 등으로 파국적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면서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환상이나 기대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자본주의사상은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는 반동적인 독소”라고 경고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제때 사건화하고 강한 투쟁을 벌여 싹에서 부터 가차없이 짓뭉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평양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천리마’ 역시 “반동적 사상문호는 사회주의 진지를 무너뜨리고 혁명과 건설을 망치게 하는 무서운 사상독소의 매개물이며 전파자”라고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 군부위상 급부상…당·정은 약화/상반기 북 인명사전 증보자료 분석

    ◎군 10명·당 6명·정무원 3명 실세 형성/이을설·조명록·김영춘 “군부 3인방” 김정일 밑에서 북한을 움직이고 있는 실세들의 면면과 세력분포가 지난 6개월 동안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김정일이 공식적으로 권력승계를 하지 않은채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초래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사통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부의 대대적인 승진인사와 우대로 군부 실세들의 위상이 급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당정쪽엔 인사가 단행되지 않는 등 당과 정무원 인사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신문 국제전략연구소가 올 상반기중 북한인명사전 증보용 주요인물들의 활동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주석 이종옥을 비롯 당·정·군 주요인사 30명이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30명 가운데는 부주석들인 이종옥,박성철과 당 비서들인 전병호,한성용 등이 포함돼 있으나 이들은 원로 예우차원에서 서열만 높을뿐 핵심적인 일에서는 점차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이들중 김정일의 현지지도나 군부대시찰때수행하거나 국내행사 참석,외국인사들과의 회담등 기타행사에 참석한 것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볼때 ▲군부에서는 조명록 총정치국장 등 10명 ▲당에선 최태복 비서 등 6명 ▲정무원에서는 김영남 부총리 겸 외교부장 등 3명 ▲기타 최용해 청년동맹 제1비서 등 20명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던 것으로 조사됐다.특히 이들 20명은 김정일이 나들이를 할때 동행하는가 하면 영향력이 큰 핵심요직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정일의 최측근 심복이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이들중 상당수는 김일성의 3년상이 끝난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김정일의 공식승계 때 요직에 발탁되거나 신분이 격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북한 군부의 영향력은 막강하다.김정일이 믿을 곳은 군밖에 없다며 군 우선,군사 중시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북한 군부의 최상층권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은 원수인 이을설(호위사령관),차수로 총정치국장인 조명록,역시 차수로 총참모장인 김영춘 등 3인이다.이들은 지난 4월25일에 있었던 군창건 65돌 기념 열병식의 주석단 서열에서 5∼7위를차지,급부상하고 있다.북한의 특성상 권력서열이 높다고 해서 모두 실세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들은 군부의 실력자들이기 때문에 정치국원에 임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이들 3인 외에 지난 4월 승진과 함께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에 기용된 김일철을 비롯 1군단장 전재선,평양방어사령관 박기서,부총참모장 이종산 등 차수 4인,총정치국부국장인 현철해 및 박재경과 군 작전국장 김하규 등 3인의 대장이 군 실세들이다. 당에선 김정일을 수행하는 것 말고는 대외적인 활동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김정일의 매제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장성택이 최실권자라는게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장은 북한 인쇄매체에 일체 사진이 실리지 않고 있는데,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장말고도 당비서들인 최태복(교육담당),계응태(공안담당),김기남(선전담당),김용순(대남담당),김국태(간부담당),김중인(근로단체담당) 등이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정무원 쪽에선 부총리 겸 외교부장인 김영남과 총리대리로있는 홍성남부총리,사회안전부장인 백학림이 실세들이다.이밖에 김정일의 친위세력인 청년동맹 제1비서인 최용해가 김정일을 자주 수행하고 김정일보위에 앞장서고 있다.
  • 한적대표 2인이 말하는 북 체류 2박3일

    ◎북 환영 분위기속 한국신문 내용에 불만/단동­신의주 직통전화 개설엔 난색 표명/89년 학생축전 영화 보여준뒤 소감 물어 북한적십자사(북적)에 대한 식량지원을 위해 지난16일부터 신의주에 머물렀던 이용헌·최종채 대한적십자사(한적)두 대표는 이호림 북적부부장(과장급) 등 북적대표들의 환대속에서 2박3일을 보냈다고 말했다.다음은 18일 하오 늦게 신의주역에서 1천264.5t에 대한 인도·인수식을 마치고 단동으로 돌아온 두 대표 이야기의 요약. 숙소인 「압록강여관」은 압록강철교를 건너 북한측 「국경통행검사소」에서부터 2.7㎞지점에 있는 4층의 정갈한 호텔이었다.호텔은 화교와 중국의 조선족교포들로 붐볐고 1층 로비에는 30∼40명의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호텔측은 객실의 80∼90%가 차 있다고 말했다. 이호림부부장,한인덕·최수일씨 등 북적 구조대책위 위원들도 한 여관에 묵으며 우리를 상대했다.이들은 지난12일 1차 전달직후 『신의주가 썰렁했다』는 우리대표의 말을 인용한 「한국신문」을 문제삼으면서 지원업무와 남북관계와 관련,말과 행동에 주의해 줄것을 재삼 강조했다.식량지원과 관련,한꺼번에 많은 양을 전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옥수수 가루가 쉽게 부패하므로 여러 방도로 가공할 수 있는 통강냉이로 달라고 희망하기도 했다. 판문점을 통한 식량전달 방안에 대해선 북적대표들은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것 같다』고 말했으며 단동­신의주등 적십자대표간의 식량수송을 위한 직통전화 등 연락체계를 갖추자는 제의에는 『어렵다』고 대답했다.17일 상오엔 북적대표들은 지난89년 평양에서 열린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기록영화를 두시간동안 보여준뒤 소감이 어떠냐고 묻기도 했다.17일 단동과 3차례 국제전화를 했는데 원래 북측설명과는 달리 전화신청후 3시간가량 기다리지 않고 3∼5분정도 기다린뒤 평양을 거쳐 단동으로 통화할 수 있었다. 식사는 식당에 마련된 별실에서 한끼에 20달러하는 외국인용 식사로 대접받았다. 신의주거리는 비교적 깨끗했으며 여성들은 검은치마에 흰 블라우스차림이 대부분이었고 대체로 검소하고 수수했다.거리에는 「우리식대로 살아가자」는등의 대형 플래카드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정치적인 대화는 피하려 했으나 미전향장기수인 김인서의 딸이 북적 사무실에 와서 아버지를 석방시키는데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있다며 한적이 이에 앞장서 달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적십자사업에 수고가 많다.자랑스럽게 생각한다.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에 앞장서자』고 말하기도 했다.또 『좋은 일하러 오신 분들인데 불편이 있느냐』며 다정하게 묻기도 했다.
  • 정상회담장 주변/“사상최대 행사” 시전체가 들썩

    ◎현지방송,1주일째 매일 한국특집… 붐 조성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벳푸(별부)시를 비롯한 오이타(대분)현에 한국붐이 일고 있다.지난 90년 일촌일품운동으로 유명한 히라마쓰 모리히코 지사가 한국을 방문,92년 한국과의 정기항공편 개설이후 가장 큰 행사인 이번 행사를 맞아 시 전체에는 친선무드와 함께 강화된 경비로 인한 긴박감이 교차. 시민은 「한·일 정상벳푸회담을 환영하는 시민협의회」를 구성해 환영무드를 고양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 벳푸청년회의소등을 중심으로 하는 자원봉사자 60여명은 역과 공원주변에 「거시적으로 환영합니다.어서 오세요 벳푸」라는 내용의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노보리(のぼり:일종의 플래카드) 700여개를 부착. ○ 가장 큰 지방방송인 오이타방송이 회담 시작전 1주일동안 매일 아침 한국을 집중소개하는 특집을 방송해 한국붐조성에 이바지하는가 하면 거의 모든 매스컴이 정상회담관련 특집코너를 마련. ○…오이타현을 찾는 외국인관광객 9만1천명(95년) 가운데 한국인관광객은 4만7천여명으로 절반이상을 차지. ○…일본경찰은 전국에서 3천700명의 경찰관을 차출해 회담이 열리는 스기노이호텔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시내에 20여개의 검문소를 설치하는등 「전후최대」의 엄중한 경비태세를 구축. 오이타현경찰은 벳푸경찰서에 「경호경비본부」를 설치하고 정상회담이 열리는 호텔주변에 700명의 도쿄경시청 기동대원을 배치. 경찰의 경계속에서도 24일 벳푸시에 일본의 극우단체가 속속 집결,경호경비에 비상이 걸렸다. ○ 극우단체들은 회담이 열리는 오이타현뿐만 아니라 구마모토현·미야자키현등 규슈 각지에서 대형버스와 확성기를 단 차량등을 동원해 속속 집결,회담장부근을 돌며 반한연설과 구호등을 외쳤다. 세키주쿠(정기숙)·젠아아키이기·규슈교기카이 등 10여개 단체는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거나 야스쿠니신사참배에 대한 한국측의 경고를 내정간섭이라고 강변했다. ○…정상회담후 양국정상의 공동기자회견이 인터넷망을 통해 전세계로 전파된다.정상회담의 인터넷통신을 맡게 된 것은 오이타현 오이타시에 사무국을 두고 있는 프로바이더(접속업자) 「뉴 코아라」사. ○…벳푸시의 죽세공명인 시라이시 햐쿠운사이(백석백운제·78)씨는 23일 오이타지방 토산품인 대나무로 만든 꽃바구니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선물해달라며 이노우에 시장에게 전달.
  • 세뇌된 소년의 탈북고뇌(사설)

    어린 형제를 포함한 북한의 두 가족이 자유를 찾고 굶주림을 면하려 두만강과 서해 두 차례의 사선을 넘어 자유와 풍요의 땅에 안겼다. 북한주민의 여러가지 참혹한 사정을 우리는 김경호씨 일가 등 여러 귀순자와 외국인방북자의 증언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다.그러나 이번에 온 14세 소년 김해광군의 지난해 3월 탈북당시 일기는 보다 애처럽고 실감 있게 북의 상황을 전해준다.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6년생에 해당할 그의 일기는 아울러 그 또래 북한 청소년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어 우상숭배식 체제교육·세뇌교육의 무서움을 실감케 해준다. 북한의 중산층에 속하는 해광군 일가도 굶주림을 면할 길이 없었다.해광군은 42명인 한 학급 학생 절반이 배고픔 때문에 결석하는 참담한 현실을 겪고 또 열차간에서 굶주린 청년이 주위의 외면속에 아사하는 끔찍스론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운 지경임에도 해광군은 일기에서 「나라를 배반하고 친애하는 지도자(김정일)를 떠나자」는 아버지의 말에 본능적으로 반발하고 있다.친애하는 지도자의 품을 떠나 어찌 살겠는가고.인간의 가장 기초적 욕구인 먹는 문제조차 해결해주지 못하는 북한정권이 지금 어떤 힘으로 버텨나가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씨 일가처럼 공개처형의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러시아로 탈출,북한측 체포조와 중국 공안요원의 눈길을 피해가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탈북자가 2천명은 될 것이란 추계다.이중 700명가량은 남으로의 귀순을 원하나 외교적 마찰가능성 등으로 실현이 어려운 실정이다.중국·북한측 접경지대경비는 갈수록 삼엄해지고 있다. 자유의 땅을 밟고 안도하는 이들의 모습에 남아 있는 탈북자의 참상이 겹쳐 보인다.체제붕괴우려로 국경을 봉쇄,주민을 굶어 죽게 한다면 이는 범죄행위다.그런 정권이 존립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 동족사기에 조선족사회 “만신창이”/중국 조선족 울리는 사기 실태

    ◎초청장·산업연수 미끼 3만여명 3백억 피해/빚독촉에 시달려 가족 뿔뿔이… 충격에 자살도/한국정부 대책마련 소극적… 반한감정 폭발직전 『이젠 우리 어떻하나요.집도,소도 다 빼앗기고….돈벌어 아이 다리를 고쳐 걷게 해주고 싶었는데…』영하의 날씨속에 얇은 여름옷 차림의 권신애할머니(60·돈화시 대신진 대구촌)는 흘러내리는 눈물로 목매어 말을 잇지 못했다.지난94년10월 친척방문 초청으로 한국에 가게 해주겠다는 말에 빚낸돈 2만5천위안(1위안은 약 1백원) 등 3만위안을 한국인 김모씨에게 사기당한 권할머니와 남편 조용환씨(62)는 2년만에 불어난 이자로 집도 빚쟁이에게 빼앗기고 땅도 내놓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연명중이다. ○평생 일해도 못갚을 돈 불편한 다리의 손녀가 수술받으면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내외가 한국에 가서 돈벌어 손녀다리를 고쳐주겠다는 꿈은 산산조각났다.연5할대 고리채로 빚감당이 어렵자 두아들은 돈갚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빚쟁이에 쫓겨 도피중이다.「한국행초청장」에 속아 빚더미에 올라 집날리고 가족이 흩어져 사는 일은 이제 연길과 동북3성 조선족동포에겐 일상화된 삶의 형태가 됐다.그만큼 많이 발생하고 조선족사회를 뿌리째 뒤흔드는 사회문제가 된 것이다. 지난달 한국인 사기꾼들에게 당한 사람들로 조직된 「피해자협회」 이영숙 회장(연변제2중학교사)은 한국 초청으로 사기당한 길림·요령·흑룡강성 거주 동포들은 3만명에 달하며 피해액도 최소 3억위안가량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지난 92∼93년도엔 친척방문 초청으로 접근하더니 94년부터 각종 연수단 명목이나 위장결혼,산업연수생형식으로 동포 돈을 울거내고 있다는 설명이다.액수도 1만위안에서 시작돼 최근엔 5만∼6만위안대가 일반적이다. 사기당한 돈은 대부분 빚내 마련한 것이어서 생존자체를 위협당한다는데 심각성이 있다.한달 2백∼6백위안가량 버는 피해자들이 1년에 5천위안도 모을 수 없는 현실에서 5만∼6만위안의 빚은 중국에서 평생 일해도 갚을 길 없는 액수다.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은 이들의 숨통을 죄어 간다.가정불화와 이혼외에도 이로인해 충격받고 사망하는경우와 자살도 잇따른다.『집에 들어와 행패부리는 빚쟁이들이 세간살이 모두를 가져간 것은 물론 입고 있던 옷과 신발까지 빼앗긴 사람도 있다.농촌지역에선 가산날리고 토굴을 만들어 생활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는게 이회장의 설명이다. 빚쟁이들의 위협은 이들의 정상적 생활을 불가능하게 한다.연길 경제체제개혁위 상업과장이던 공상일씨(40·하남가 전진로)는 21일도 집으로 쳐들어온 빚쟁이들에게 심하게 얻어맞았다.95년에 한족(한족)빚쟁이에 의해 폭행당해 쇄골이 부러지고 다리 등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던 그는 22일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며 집을 등졌다.지난 94년2월 한국농업개발원 중국지사장을 자처하는 김종일씨(58·강릉시 송정동)에게 속아 유학생 40명 모집을 대행해줬다가 사기꾼 빚을 떠맞게 됐다고 부인 김해금씨(39)는 흐느낀다. ○범인 잡아도 보상 못받아 공씨 경우는 조선족지도층 인사를 한국행 인원모집에 앞장세워놓고 자신은 돈을 챙겨 도망가는 전형적 사기 수법의 예다.전 연변자치주 주장 김동기씨,전인대대표 조용호씨 등이 참여,설립된 연변서광경제무역공사도 가짜 서류와 도장에 현혹돼 500여명의 선원송출에 나섰다가 15만5천달러를 떼어먹혔다.서광이 이 빚을 떠맡자 김동현씨(61·전 오금공사 업무과장)는 서광에 일한 죄로 빚쟁이 아닌 빚쟁이에 시달리고 있다. 장기화되는 빚독촉에 시달려온 적잖은 가정에선 병자가 속출하고 연길·하얼빈 근교 일부 농촌 조선족 집단촌은 집단적인 피해로 분해되고 있는 실정이다.가족·친척 등이 한꺼번에 걸려든 예도 적잖다.하얼빈 조선족 성년직업학교 최영철 교장(45·하얼빈시 도리구)은 『아성시·상지시근교에서 만 400명의 농민들이 1인당 1만위안씩 400위안을 사기당했다』면서 『이들중 절반가량이 집과 땅을 버리고 북경등 대도시에 날품팔이와 막노동을 위해 흩어졌다』고 말했다. 최교장은 『한국에 범인 김영호(32·이태원동)를 고소했지만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는 회답만 받고 돈을 한푼도 돌려받지 못했다』며 한숨쉰다.피해자중 상지시 일만중 교사 서용주씨(49)부인은 충격으로 정신병에 걸렸다.범인은 잡아도 돈과 피해는 보상받을 수 없다는데 피해자의 절망감은 깊어간다.이같은 증오와 절망은 한국인과 정부에 대한 미움·반감으로 변해 폭발직전이다.연길시 모방직공장 직원 김길춘씨(54)는 『피해자대표들이 지난해 3월 북경 한국대사관을 직접 찾는등 계속적인 요구에도 한국정부는 「사적인 문제」라며 대책마련을 외면하고 있다』고 분개하고 있다.김씨는 올 8월 돈떼어먹은 김창록(41·대구 동양트레이드대표)에게 국제전화를 했더니 『나는 돈없다하며 6개월만(감옥에)살면 그만이다.너는 평생 빚쟁이에 시달릴 걸』이라며 욕을 해댔다고 분노했다. ○대사관 점거시위 계획도 연길주재 한 한국인은 식당에서 이 문제가 개인간 문제라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가 주위에서 『머리통을 부서놓겠다』는 욕설을 들었다.일부 연길 청년들은 『어떤 한국놈이든 혼내주겠다』고 벼르는등 사기꾼들에 대한 감정이 한국인전체에 대한 악감정으로 바뀌고 있다.한 피해자는 『한국에서 전쟁나면 아들들을 북한에 보내 한국놈들을 죽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들 피해자중에는 북한국적출신의 조교들도 포함돼 있다.피해자모임의 김동현씨는 『11월말까지 한국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북경대사관 점거나 무기한 시위를 계획중』이라며 더 극단적인 한국정부의 대책마련촉구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가짜 초청장을 받자마자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기 때문에 앞날이 더 막막하다.이들은 사기를 당하고도 빚갚을 돈 마련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국행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김길춘씨도 그러다 두번이나 사기를 당했다.연길시 유영공사에 근무하는 김선희씨(40).동료3명과 함께 기술경제대표단 한국연수단에 넣어주겠다는 말에 속아 지난 7월 1만5천위안을 주었다가 떼었다.김씨는 『한달 450위안의 월급으론 빚을 갚을 길이 없다』며 『서울행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피해자들은 92년 수교이후 불어닥친 한국바람으로 인한 사기와 빚사태가 이제 극한상황에 와 있다면서 자신들은 보상을 받거나 한국에 가는 방법이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흥분하고 있다. ◎피해자 한영수씨댁/식구들 빚 있는대로 끌어모아/노부는 중풍… 3남매는 이혼당해 연길시 조선족집단주거지역인 연서가 원결 호동(골목).21일 저녁무렵 「팔집」이란 표지가 붙어 있는 10여평 남짓한 허름한 주택에 들어서니 집주인 한영수씨(65)가 중풍에 몸을 떨며 구석에 누워 있고 부인 김채순씨(61)와 맏딸 정자씨(45),셋째아들 정선씨(35)는 울어 퉁퉁부어 오른 얼굴로 망연자실해 앉아 있다.조금전에도 빚쟁이들이 들이닥쳐 망치와 몽둥이를 휘두르며 집기를 부수고 김채순 할머니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 놓으며 행패를 부리다 돌아간 뒤였다. 『한국으로 초청해주겠다』는 한국인 이정석씨(34·서울 구치소 복역중)에 속아 정선씨 등 4형제가 빚을 끌어모아 수속비로 건네주기전까지 한씨네는 단란한 가정이었다.지난해 1월 한씨네는 몸이 아픈 이씨를 약값까지 대가며 치료해 주었고 건강을 회복한 이씨는 가짜초청장을 드리밀고 한씨네 가족의 9만위안 등 한씨가 소개한 사람들 돈 21만위안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간 뒤 소식을 끊었다. 빚더미에 오른 한씨네는 뿔뿔이 흩어졌다.큰아들 정철(39),둘째 정삼씨(38)는 집을 빚쟁이에게 빼앗기고 이혼까지 당한 뒤 빚쟁이의 협박에 못이겨 잠적했다.독집앨범까지 낸 작곡가인 딸 정자씨도 집을 날리고 의사 남편에게 이혼당했다.지난해 11월 사기범은 잡혔고 사기사실도 확인됐으나 돈을 변제할 방법이 없다는 한국경찰청의 회신을 받고 한씨는 충격으로 쓰러져 중풍환자가 됐다. 『식구와 극약을 먹고 죽을 방법밖에 없어요…』 경기도 양평군 서정면 문호리에서 10살때 부모손을 잡고 중국에 와 원적이 고스란히 양평에 남아 있다는 한씨.이제 한씨가족은 한국에 들어가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앉아서 죽을 수밖에 없다며 절망하고 있다. ◎전문가 2인 진단/중국교포 법적보호 서둘러야/출입국과정 투명하게 관리를 ▲이석연씨(변호사)=대법원이 최근 「조선족을 우리 국민으로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린 만큼 중국교포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 마련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법원이 이들의 지위를 나름대로 확인했음에도 행정기관이 이를 방치할 경우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특별법을 마련,우리국민과 똑같은 대우는 아니더라도 일반 외국인 노동자들과는 다른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출입국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사기피해를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강영식씨(재중국동포문제 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대 중국교포 사기의 85% 가량이 취업사기다.돈만 있으면 한국에 취업할 수 있다는 그릇된 관행 때문이다.이를 개선하려면 교포들의 출입국과정을 투명하고 엄정하게 관리하는 제도적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취업희망자가 많다면 자유경쟁을 토대로 한국을 잘 알고 실력이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입국시키는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중국 현지에 상담센터를 설치,조선족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일도 효과적일 것이다.
  • 금강산발전소,안변청년발전소로 개칭(북녘 뉴스라인)

    북한은 최근 금강산발전소를 안변청년발전소로 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북한의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4일 금강산발전소 건설에 참여했던 군인 건설자들의 혁명적 군인정신을 선전하는 가운데 『세계적인 대자연개조공사인 안변청년발전소 건설은 인간의 보통 상식이나 실무적 타산으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어려운 공사였다』고 보도,그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한편 이에 앞서 북한의 중앙방송은 3일 『우크라이나에서 최근 안변청년발전소 즉 금강발전소 건설에 대해 소개하는 뷸리찐(불루틴)을 발행했다』고 보도,개명 사실을 뒷받침했다. ○나진·선봉지구에 관광단지 조성 계획 북한은 나진·선봉지역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서 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대규모 관광지로도 조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진·선봉지대는 1백20㎞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8개의 만과 10개의 곶,21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해안의 풍치가 대단히 아름답기 때문에 북한은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백두산 칠보산·금강산과 온포·경성·판장 등인근 관광 및 온천지와 연결,개발할 계획이라고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 최신호가 보도했다. ○김일성의 대원수 칭호 75년에 결정 북한의 평양방송은 지난 2일 「대원수복」제하의 방송프로에서 김일성에게 대원수칭호를 부여하는 것이 전체 주민과 군장병들의 오랜 숙원이었다고 주장하고 『이 열망은 당창건 30돌(75.10)이 되던 무렵에 이르러 더는 막을 수 없게 분출하고 있었다』고 보도. 이 방송은 그러나 당시 김일성이 「대원수」칭호를 사양함으로써 이 칭호는 『그때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94.4)이 흐른 뒤에야 수여되게 됐다』면서 당시 김일성이 입을 대원수복도 만들었으나 『그대로 보관되게 됐다』고 소개. ○김정일,가계표식비 올들어 9개 건립 북한은 김정일부자에 대한 우상화사업의 일환으로 올들어 김일성의 「명제비」 「현지지도표식비」 김정일의 「현지지도표식비」,김정숙의 「혁명사적표식비」 등을 각지에 잇따라 건립하고 있다. 북한 중앙방송은 지난 7일 개성시 판문군 봉동협동농장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현지지도표식비를 건립했으며 이날 건립식에는 개성시 당책및 인민위원장 등이 참석했다』고 전했다.이에 앞서 북한은 올들어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표식비를 포함,8개의 김정일 가계 표식비를 세웠다.
  • 김현철씨 유엔청년협 회장에/오늘 피선… 공식직함 갖고 공개활동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38)가 24일 유엔청년협회(UNTA)회장에 피선,처음으로 공식직함을 갖게 된다.학업에만 열중하던 그가 공개석상으로 나온다는 의미여서 주목된다. UNYA는 51회 유엔의 날을 맞아 24일 하오7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재창립식을 갖고 회장및 이사진을 선임할 예정이다.이어 UNYA재창립 축하리셉션이 개최된다. UNYA는 유엔한국협회 산하단체로 대학생조직인 유엔학생협회(UNSA)출신들이 사회에 나와 만든 조직이다.10여년전 재정난으로 활동을 멈췄다가 이번에 재창립되는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UNSA는 전국 25개 대학에 2천500여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 UNSA의 한 관계자는 『재창립을 주도하고 있는 인사들은 대부분 기업체 이사나 차·과장급인사』라면서 『유엔에 대한 대국민홍보와 세미나 개최,그리고 주한외국인을 위한 민속의 밤 행사개최 등을 통해 유엔과의 유대관계 강화 활동을 펼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UNYA는 회원자격을 45세 이하로 규정하고 있는데 재창립식을 앞두고 일단 1천여명의 구회원과 UNSA출신 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발송했다.〈이목희 기자〉
  • 북 연루 드러나면 남북관계“최악”/영사 피살­정부의 분석과 대응

    ◎나훗카 등 인근에 북 공관원 50여명 상주/수차례 보복 다짐… 살인 전문가 소행 추정 정부는 1일 저녁 잇따라 발생한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최덕근 영사의 살해사건과 프놈펜의 호텔업자 김상렬씨 총격피습 사건에 대해 큰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이번 두사건에 북한이 개입했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에 따라 당혹감과 분노를 머금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18일 동해안에 잠수함을 통해 남파시킨 무장공비들이 사살되자 『백배,천배의 보복을 하겠다』고 거듭 공언한뒤 2일 판문점에서의 장교접촉에서도 보복을 재다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프놈펜 경찰당국의 수사결과 이번 사건이 북한의 범행으로 드러날 경우 남북간의 긴장관계는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심화될 전망이다.또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위치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외무부의 서대원 대변인은 2일 사건발생 사실을 전하면서 『이번 사건의 범인이 북한인이라는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했다.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두사건이 북한인의 소행이거나 북한의 사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일단 분석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경우 러시아 극동함대의 본거지로 90년에 들어서야 외국인에게 개방된 특수한 지역이다.이 때문에 북한도 블라디보스토크에 총영사관을 두지 못하고 자동차로 40분 거리인 나홋카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었다.그러나 92년 블라디보스토크에 한국의 총영사관이 들어선 뒤에는 이 지역에서 북한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위축됐다.최근 이같은 이유로 나홋카의 북한 총영사가 본국에 소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나홋카의 북한 총영사관에는 18명,블라디보스토크 농업대표부에는 8명,하바로프스크 경제·임업대표부에는 20명,아르촘 농업대표부에는 6명 등 모두 52명의 북한 공관원이 러시아 극동지역에 근무하고 있다.북한의 공관원들은 이 지역 고려인들의 각종 행사에 공동으로 초대되기 때문에 최영사가 주로 대 북한 정보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최영사가 1일 밤 자동차에서 내려 아파트로 들어가는 짧은 순간동안 잔인한범행을 저지르고 현장을 빠져나간 수법으로 미뤄볼 때 고도로 훈련된 전문살인범의 소행일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한 고위당국자는 『최영사를 살해한 범인이나 김씨에 대한 피습자가 누구냐보다는 그 배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북한의 사주로 러시아의 마피아가 범행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특히 피살된 최영사의 오른쪽 옆구리에 검은색 흔적이 발견돼 북한의 공작원이 주로 사용하는 독침 만년필에 찔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캄보디아도 지난 5월까지 북한과만 수교관계를 유지해온,동남아 지역의 북한 거점이기 때문에 북한 공작원의 활동이 어느 나라보다 활발한 곳이다. 정부는 러시아와 캄보디아 당국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관계기관으로 구성된 정부의 자체조사단도 파견했다.그 결과에 따라 남북관계는 또 한차례 거대한 소용돌이를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외교관 등 피습 일지 ▲78년 1,7월=최은희·신상옥부부 홍콩서 납치. ▲79년=전 수도여고 교사 고상문씨 유럽연수중 노르웨이서 북에 납치.▲82년 2월=최재근 주 우간다 대사관 서기관 무장괴한으로부터 총격받아 부상. ▲86년 1월=도재승 주 레바논대사관 서기관 무장괴한에게 피랍. ▲90년 8월=김영호씨 등 현대건설 근로자 3명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에 억류됐다 9일후 석방. ▲92년 9월=김의웅씨 등 (주)대우 근로자 4명 이란 마약 밀매단에 납치됐다 한달만에 풀려남. ▲94년 10월=(주)대우 강대현씨 알제리에서 회교원리주의자들에게 피살. ▲94년 10월=한국전자계산 강상보씨 홍콩에서 강도와 경찰의 총격전 도중 경찰의 총탄에 맞아 사망. ▲95년 3월=이수존 주 대만대표부 서기관 괴한으로부터 피습받아 목에 자상 입음. ▲95년 7월=순복음교회 목사 안승운씨 중국 연길서 북한요원으로 보이는 청년들에게 납북. ▲96년 8월=기아자동차 기술훈련원 원장 박병현씨 중국 연길서 괴한에게 테러당해 사망. ▲96년 10월=최덕근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영사 피살.
  • 외국남성들 인도처녀 “신부감 1위”

    ◎“순수하며 순종적” 배필 찾아 인도방문 줄이어/“지참금 부담 없다” 인도여성도 국제결혼 선호 인도여성들이 인생의 영원한 반려자를 찾는 극동,구미 등지의 외국남성들에게 최고의 신부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이들 신랑감이 자기 나라의 문화적·도덕적 타락현상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순수하면서도 순종적인 인도여성들에게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인도남성들의 경우 세습적 계급제도인 카스트를 비롯,피부색·종교·가족배경·궁합 등을 따지는데 반해 이들 외국남성들이 이런 것들을 전혀 문제삼지 않고 주로 상대의 심성을 보려하는 점도 인도여성들의 국제적 인기를 높이는 요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도 뉴델리에만 5백여개를 포함,전국적으로 수천개에 달하는 인도의 결혼상담소들은 이제 외국 남성과 인도 처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현상마저 생겨났다. 다케시 도시히코란 일본청년도 작년에 인도인 색시감을 찾기위해 뉴델리를 방문,인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결혼상담소로 직행했다. 도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올해 25세의 다케시는 뉴델리시 서부의 레가르푸라에 있는 이 결혼상담소의 소장 다람 찬드 아로라(65)씨와 면담한뒤 신랑감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렸고 한달만에 마음에 드는 인도여성을 찾아 일본으로 돌아갔다. 아로라씨는 인도 전역의 건물벽에 시커먼 페인트로 광고를 써놓아 가장 많이 알려진 자신의 사무실에만 지금까지 다케시와 같은 목적을 가진 외국인이 수백명이나 찾아들었다고 자랑했다. 벨기에의 이혼남인 비즈니스맨 조젭 귀스타프 다니엘(38)씨도 『서방에서 이혼율이 놀라울 정도로 치솟고 있지만 인도에서는 전통문화상 결혼이 평생의 약속으로 간주되고 있어 전반적으로 이혼율이 낮다』며 인도여성들이 썩 좋은 신부감임을 강조했다. 인도여성들의 입장에서는 많은 인도남성들이 요구하고 있는 엄청난 지참금 부담 없이 결혼할 수 있는데다 결국 가족들로 하여금 인도를 떠나게해줄 수도 있기 때문에 국제결혼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인도 여권신장운동가들은 외국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진부한 인도여성상에 대해 분노하면서 이런 국제중매의 배후에 모종의 동기가 깔려있지 않나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김규환 기자〉
  • 20∼30대·여성표 공략에 초점/국민회의 사회공약 내용

    ◎탁아소 확충·노령수당 인상 밝혀 국민회의는 2일 대학입시 지원자의 전면수용과 학교급식 전면실시,선거권 연령인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사회분야 28대 총선공약을 발표했다.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손세일정책위의장은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청년과 여성·노인 등 소외계층의 권익 및 복지증진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사회 공약은 ▲교육 ▲보건·복지 ▲노동·환경 ▲문화·체육 ▲청년·여성 등 크게 5개 분야로 나눠졌다.경제(50개),정치(22개)에 이어 이날 사회분야 공약발표로 1백대 공약이 모두 제시됐다. 사회분야 공약은 유권자의 60%에 육박하는 20∼30대와 절반이 넘는 여성표를 겨냥한 흔적이 역력했다.특히 직장여성들과 주부층을 주공략 목표로 삼았다는 분석이다.대입지원자의 전원수용과 탁아소시설 확대,초등학교 급식의 전면실시 및 2000년대초 중학교 급식실시 등이 그 것이다.이외에도 선거권을 현행 20세에서 18세로 낮춘 점과 여성들의 전국구 25% 배정 및 정부부처 고위 공직의 여성참여 확대도 눈에 띈다. 그러나 대입지원자의 전면수용의 경우 진급과 졸업을 엄격히 관리한다는 설명에도 불구,과거 졸업정원제 실패에 비춰 검증받아야 될 공약으로 지적된다.또 학교급식의 경우도 재원마련 등 현실성을 고려치 않은 구호성 공약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교육분야에선 ▲유아교육기관의 확충·지원 ▲학교폭력 추방 ▲사학의 지원·육성 등을 약속했다.보건·복지분야에서 ▲장애인의 취업확대 ▲통합의료보험의 실시 ▲노령수당제의 개선 등을 제시했다.노령수당제 개선과 관련,노령수당을 월 10만원으로 인상하고 지급대상도 65세 이상 생활보호대상 노인으로 확대할 것을 제시했다. 노동·환경분야에서 ▲산재보상의 확대 ▲외국인 연수근로자의 처우개선 ▲국제적 수준의 노동법 개정 등을 약속했다.이외에 대기환경기준의 강화와 공보처 및 한국방송광고공사의 폐지도 약속했다.
  • 「예수 사랑」 실천… 참인술 한평생/성탄절에 타계한 장기려 박사

    ◎차남과 맨손 월남… 옷두벌만 생겨도 남에게/내집 한칸없이 가난한 환자 치료에 온종성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인술을 펴며 살아온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성탄절인 25일 새벽 「사랑과 희생」이라는 값진 가르침을 성탄선물로 남기고 눈을 감아 세인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다. 고인은 80세가 넘어서도 하루 40여명에게 무료진료를 베푸는 등 「박애정신」을 몸소 실천했다.그에게 있어 「사랑」과 「봉사」는 이같은 삶을 걷게 한 밑거름이었다. 지난 1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장박사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영향으로청년시절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꿈꿨다. 장박사는 대학졸업후 평양 기독병원에서 일하다 51년 1.4후퇴 때 부인 김봉숙씨와 다섯남매를 고향에 둔 채 둘째 아들 가용씨와 단 둘이서 월남했다. 곧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성경과 찬송가책만을 달랑 들고 부산까지 내려온 그는 그해 7월 맨손으로 영도구에 「복음의원」이라는 「천막병원」을 차려 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무료 시술을 해주었다.후에 외국인 선교사 말스베리의 도움으로 부산복음병원으로 확장한 이 병원을 운영하면서 68년 이 지역의 교회집사들과 함께 한국 의료보험조합의 효시인 「부산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세워 가난한 사람을 치료하는 데 헌신했다. 장박사의 평양시절부터 교회에서 알고 지내다 부산 피난때 재회했다는 방귀자씨는 『피난 때 옷이 두벌만 생겨도 한벌은 남에게 줄 정도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또 동료 의사들은 『부산대 의대 교수시절 학비를 마련 못한 가난한 제자들에게 학비로 쓰라고 월급을 선뜻 내놓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추모했다. 그토록 남의 불행에만 민감하다 보니 월남후 한번도 자기집을 가져본 적이없었다. 평생 병원측이 마련해 준 사택에서 묵었으며 작고하기 전에도 부산복음병원의 후신인 고신의료원 건물 꼭대기층에 마련된 10여평 남짓한 허름한 곳에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76년 이 병원 원장직에서 정년퇴직 한 뒤에도 그는 『아직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며 거제도로 건너가 섬주민들을 위해 인술을 베풀기도했다. 장박사의 이같은 봉사정신은 해외에도 알려져 79년도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을 수상했다. 외롭게 사는 자신에게 주위에서 재혼을 권유할 때면 그는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못잊어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일과 재혼했다』고 재회의 날만을 손꼽아기다렸다. 아들 가용씨는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지난 10월 「주님을 섬기다간 사람」이라고 비문을 새겨달라고 유언을 남기셨다』고 전하고 『아버님의 비범한 삶이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 제11회 향토문화 대상/대상에 김정명 춘천문화원장

    ◎본상 개인 5명·단체 1곳 선정/새달 1일 시상식 서울신문사가 전통문화 계승과 지역문화의 창달에 힘써온 숨은 일꾼을 찾기 위해 제정한 제11회 향토문화대상 수상자가 22일 결정됐다. 전통문화부문과 현대문화부문으로 나누어 전국의 시·군 문화공보실과 문화원·예총·향토사학자들이 추천한 단체 및 개인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영예의 대상에는 김정명 춘천문화원장(75)이 선정됐다. 본상중 전통문화부문에는 ▲김상곤(남원애향운동 본부장·58·전북 남원) ▲대구향토문화연구소(대표 김택규·66) ▲최종덕(양양 오색국교교사·52·강원 양양)씨등 3명이,현대문화부문에는 ▲이윤수(시인·82·대구시) ▲이은구(이천문화원장·52·경기 이천) ▲심우성(극단 서낭당 대표·62·충남 공주)씨등 3명이 뽑혔다. 대상에는 상금 3백만원,본상에는 각각 2백만원씩의 상금이 주어진다. 올해 심사는 구상(시인)·차범석(극작가)·임동권(중앙대 명예교수·민속학)·정영호(한국교원대 교수·역사학)·이중한(서울신문 논설위원)씨등 5명이 맡았다. 서울신문사 주최,LG전자 협찬,문화체육부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향토문화대상 시상식은 오늘 12월 1일 하오 4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대상 수상자 김정명 춘천문화원장/「소양제」 부활·예술행사 활성화/민속자료실 만들고 삼악산성 복원 앞장 『큰 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지역에 묻혀버린 향토문화의 발굴,보존에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대상 수상자로 결정된 강원도 춘천문화원장 김정명씨(75)씨는 『선인들의 얼이 담긴 향토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작업이 너무 미흡해,후손으로서의 도리를 하려고 애썼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양구군수·강릉시장·도청 상공국장,중소기업 협동조합 도지부장 등을 거쳐 지난 87년 춘천문화원장으로 부임했다.그 때 문화원은 봉의동 도청 앞의 건물에 3평짜리 사무실를 임대해 쓰고 있었다.인원은 여직원 한명과 원장 뿐이었다. 문화재를 간수하는 유일한 기관인 문화원의 당시 역할과 위상을 말해주는 사례이다.『조상들의 발자취와 손때 묻은 유품들을 추스리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때마침 시립도서관이 새 건물을 짓자,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해 사무실을 도서관으로 옮기고 민속자료실과 영상오디오 자료실·미니 도서실 등을 만들고 지역의 예술·문화 행사를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흐지부지됐던 춘천의 향토문화 축제인 「소양제」를 77년부터 부활하고 정월 대보름 놀이와 청소년 유적답사 등도 알차게 추진했습니다』 향토문화를 지키고 가꾸려면 주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보고 솔선하기 시작했다.스스로 강원도 전역을 누비며 선조들의 생활도구와 유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은 베틀,소 구유,재래식 쥐틀 등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6백여점의 유물들을 의상,음식,생활,생활방식,습관 등으로 나뉘어 민속자료실에 전시했습니다』 대부분 지금은 볼 수 없는 물건들이다.학생들과 주민들이 문화원을 향토문화의 학습장으로 활용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요즈음은 스러져가는 산성 복원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춘천 덕두원리에 10여m 정도만 남아 있는 고대 맥국의 마지막 유적인 삼악산성의 복원 작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맥국은 삼국시대 이전의 고대 왕국으로 강원도의 뿌리입니다』 춘천,나아가 강원도의 뿌리인 맥국의 보존을 위해 3년 전 조사위원회를 만들었고,오는 연말까지는 신북읍 발산1리에 맥국터비를 세우기로 했다. 이에 앞서 몽고 침략에 맞서 결사적으로 싸웠던 항몽터전으로,허물어져 자취를 잃어가는 봉의산성을 2차례에 걸쳐 복원했다. 『국립 강원박물관을 세우고,지역 인사 17분이 모여 한일합방에 반대하는 시를 읊던 국사봉에 망배도 세워 선조들의 참된 얼을 배우고 잇는 곳으로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정선아리랑 등 전통문화를 12분야로 나눠 책으로 펴내기 위해 서두르는 등 제 2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원장은 『강원도에 제 2의 김유정과 이효석이 배출될 수 있는 문화의 터전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춘향제」를 전국규모의 축제로/김상곤 남원애향운동본부장 지난 85년 춘향문화선양회를 발족해 해마다 춘향제를 창의적으로 유치,전국적인 규모의 축제가 되도록 했다.91년 춘향제부터는 춘향문화대상(학술·예술·여성·언론분야)을 제정해 올해까지 상을 시상해오고 있다.92년 춘향제 때는 「춘향제 60년사」를 발간했으며 93년에는 「춘향전 관계사 학위논문선집」「춘향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발간했다. 투철한 향토애를 바탕으로 남원의 문화전통을 가꾸고 남원인의 품위향상을 위해 애쓰는 것은 물론 현재 춘향제를 세계적인 관광문화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사당 놀이」 등 문화재지정 공헌/심우성 극단 서낭당 대표 59년 사라져 가던 「남사당 놀이」의 연희를 수합해 재연한 이래 특히 전통 인형극과 탈놀이의 발굴조사를 통해 무형문화재의 지정에 공헌해 왔다. 저서로 「남사당패 연구」「무형문화재 총람」「한국의 민속극」「한국의 민속놀이」「민속문화와 민중의식」「탈」등이 있으며 「조선무속의 연구」「역과 점의 과학」「연극의 역사」등 20여권의 역저가 있다. 현재는 문화체육부 문화재 전문위원,극단 서낭당 대표,한국민속연구소 소장,공주민속극박물관 관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69년 창립… 「향토문화」 회지 발간/대구향토문화연구소 69년 6월 향토사 및 향토문화의 조사연구에 관심있는 교수와 향토사가들이 모여 창립됐다.같은해 12월 회지인 「향토문화」를 육필사본으로 간행하는등 연구회의 발전을 꾀했으며 85년 7월부터는 대우학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모임을 활성화 하고있다. 현재 회지는 제7집까지 간행됐으며 조사보고서로는 「경상감사 도임행차순력 복원」「화랑문화의 신연구」「낙동강 유역사」등을 출간할 예정이다.이밖에도 향토사 사료 윤독회,향토사적 답사 등으로 대구 경북지역의 향토문화연구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87년부터는 각 지역의 향토문화 연구단체를 결집해 우리 문화유산을 발굴·보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76년 청파요 개설… 도예발전 헌신/이은구 이천문화원장 우리 전통도예의 맥을 이은 분청사기의 장인으로 76년 이천읍 사음리에 청파요를 개설해 도예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왔다. 91년 1월 이천문화원장에 취임한 이래 각종 문화사업을 통해 지역문화 발전은 물론 지방문화원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공헌했다.특히 이천문화원이 해마다 10월에 개최하는 이천도자기축제를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문화관광축제로 적극 육성,올해 제9회 이천도자기축제의 경우 외국인 1만5천명을 포함한 25만명의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으며 4억3천만원의 도자기 판매실적과 함께 도예작품전·한국의 잔 특별전·도자기 제작실연등 각종 행사를 마련해 도예문화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농악대 구성… 전통민속 보존 힘써/최종덕 양양 오색국교 교사 63년 교육계에 투신한 이래 투철한 교육관으로 전통민속예술과 우리 뿌리찾기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해왔다. 전통민속예술의 창달 및 계승발전을 위해 사라져 가는 향토민속의 발굴에 힘써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최우수상 3회,종합우수상 2회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3차례 수상했다. 양양군 전통민속보존회와 어린이·청년·노인 농악대를 각각 구성해 농악보급 및 보존에 힘쓰고 있으며 청소년 어울마당 지도교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여름 피서철에는 해수욕장에서 고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통민속을 공연함으로써 볼거리를 제공하고 향토민속을 관광자원화해 주민소득 증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광복뒤 첫 월간시집 「죽순」 창간/이윤수 시인 지난 45년 「죽순시인구락부」창립 이래 현재까지 대표로 있으면서 46년 광복 최초로 월간 동인시집 「죽순」을 창간했다.48년 한국문단 최초로 「상화시비」를 대구달성공원에 건립했으며 50년에는 문총(현 예총)구국대 경북지부를 조직했다.79년 동인시집 「죽순」을 복간했으며 83년에는 「전선시첩」1·2·3 합본을 발했다. 85년 상화시인상을 제정,올해로 10회째를 맞고 있으며 90년부터는 상화시 전국백일장을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92년 2월부터 한동안 서울신문에 「향토시인 이윤수 특집」이라는 글을 게재해 필력을 과시했으며 지난해 5월에는 한·일 국교수립후 처음으로 한·일 친선합동시화전을 주일 한국총영사관 초청으로 열었다.
  • 서울신문에 미친 사회풍속도 세태 50년:Ⅱ(서울신문50돌 특집)

    ◎70년대/「보릿고개」 넘기자 미니스커트 상륙/비상계엄 후유증 「카더라 통신」 난무 70년대 70년대는 유신체제라는 스펙트럼이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잣대로 작용했다. 유신체제는 우선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로 국민들의 새벽단잠을 깨우며 다가왔다. 전국 농·어촌에 새마을기가 나부끼기 시작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등 해외에서도 새마을 붐을 불러 일으켰다. 서울신문도 71년부터 정부의 본격적인 사업전개에 앞서 새마을가꾸기 선두부락을 소개하는 기획물 「번영을 가꾸는 희망가족 시리즈­의욕의 현지,북돋는 자립,땀흘린 보람의 합창」이란 고정컷으로 본지 최초의 새마을운동 기획물을 72년초까지 50회에 걸쳐 연재함으로써 이 운동의 확산에 큰 몫을 담당했다. 72년 3월24일자 사설에선 이 운동을 「농민들이 스스로 잘살기 위해 자조·자립·협동하는 정신의 계발」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70년 7월7일 경부·호남고속도로 개통에다 71년 3월31일 서울·부산 자동전화 개통은 「일일생활권」이라는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정부의 이러한 불도저식 경제 최우선 정책으로 국민들의 배고픔도 어느 정도 해결되기 시작해 국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띠기 시작했다. 환해진 모습은 먼저 옷차림에서 띠였다.67년 가수 윤복희씨가 선보인 미니스커트는 73년에는 무릎위 17㎝위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그 길이가 짧아져 경찰이 경범죄처벌대상에 미니스커트 길이를 포함시켜 자를 들고 다니며 이를 단속하는 진풍경을 빚기도 했다.남자들의 긴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년들은 청바지를 즐겨 입고 통기타와 생맥주로 이어지는 이른바 「청통맥문화」를 만끽했다.「사랑해」「왜불러」등의 포크송이 거리를 메웠으며 「아침이슬」「고래사냥」등 금지곡도 양산됐다.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통일을 염원해 온 국민들에게 벅찬 감격과 흥분으로 소용돌이쳤다. 이날자 본지는 「피맺힌 4반세기…이제 전쟁은 사라지는가! 3천리에 벼락환성」「대화있는 남·북대결의 시대 열리다」라는 제목으로 당시 시민들의 반응을 실감있게 전하고 있다. 강하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근로조건개선을 요구하며 평화시장 교복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씨의 분신자살 사건은 이러한 고도성장 드라이브 정책이 필연적으로 맞을 수 밖에 없는 종착점을 예고한 사건과 다름 없었다. 72년 10월 17일에는 비상계엄선포로 국회가 해산되고 대학이 문을 닫고 신문·통신마저 사전검열을 받으면서 국민들은 「카더라 방송」「유비통신」으로 불리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한 유신국회의원들이 장충체육관에서 「체육관 대통령」을 뽑는 「거수기」로 변한 것이나 비상계엄 아래서도 반체제 인사들의 저항과 민주회복운동,양심선언 등이 계속된 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사건을 예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신정권은 「그때 그사람」이라는 노랫가락 속에 울린 몇발의 총성과 함께 79년 10월26일 막을 내렸다. 10·26사태 뒤엔 「한다면 합니다」란 말과 5·17후의 떡고물 얘기가 유행했다.부정축재자로 지목된 L씨가 자신은 떡(정치자금)은만졌으나 고물(부스러기돈)만 떨어졌다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70년대 종반은 79년 12월 12일 신군부의 군사반란에 이어 80년 5·17일 쿠데타로 또 다른 군사정권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80년대/“금융사기” 장영자에 “큰손” 조롱/테러범 김현희에 구혼 줄잇고/“탁치니 억하고 죽었다”엔 분노 79년 10월26일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을 뒤로 하고 80년대를 앞두고 있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비로소 「서울의 봄」을 맞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79년 12월12일 이른바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탈취를 노린 신군부는 압제와 서슬 퍼런 군사독재의 시대로 80년대를 열고 있었다. 80년 5월17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8일 군부독재 연장기도에 맞서 광주에서 발생한 항의시위를 공수부대 특전단을 동원해 총검으로 유혈진압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결국 신군부는 그해 9월1일 전두환 정권을 탄생시킨다.그리고 이날부터 TV에는 「땡전뉴스」가 등장하게 된다.9시 뉴스는 어김없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됐던것이다. 80년 11월12일에는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 등이 제정돼 기자들은 강제해직을 면치못했고 언론은 통폐합 됐다. 이같은 압제는 학생운동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학생운동은 광주항쟁에서의 좌절을 계기로 반미라는 새로운 흐름으로 표출됐고 급기야 82년3월1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했다.이는 85년 서울·광주 미문화원 점거로 이어졌다. 82년 5월에는 장영자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했다.6천억원대에 달하는 건국후 최대의 금융사기사건으로 이때부터 사람들은 씀씀이가 큰 사람을 「큰손」이라 일컫기도 했다. 분단의 아픔은 80년 대에도 지워지지 않았다.83년 9월1일에는 사할린 부근에서 항로를 이탈한 대한항공 보잉007기를 소련의 전투기가 공격,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고 그해 10월9일에는 서남아시아 순방에 나선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 등 고위관리 13명이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묘소에서 북한공작원이 설치한 폭탄에 절명,분노를 자아냈다. 그같은 분노는 87년 6월 테러범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기에 폭탄을 설치,1백51명의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로 절정에 달했다.그러나 압송돼온 김현희의 미모에 반해 결혼하고 싶다는 남성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 웃지 못할 뒷얘기도 남겼다. 87년 1월14일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도 시대의 아픔을 공유케 했다.「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발표는 폭력적인 공권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국민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켜 6·29선언을 낳게 했다.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굴복해 나온 이 선언은 후에 「죽이구」선언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두운 시대였지만 변화의 물결도 뚜렷했다.80년 컬러TV 시대가 개막됐고 82년에는 통행금지가 해제됐다.또 비디오문화가 새롭게 열리기 시작하면서 외설문화의 범람을 초래하기도 했다. 80년에는 또 대입본고사 폐지,대학정원의 졸업정원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교육개혁조치와 함께 과외 전면금지가 단행 됐다.이에 따라 숨어서하는 과외가 성행,수백만원대의 과외풍조가 생겨났으며 「쪽집게과외」 등 돈으로 교육을 사는 세태를 낳기도 했다. 82년 중·고생 두발자율화,83년 교복자유화 등의 조치는 청소년들의 유흥업소 출입 등 많은 문제를 양산하기도 했으며 유니섹스모드의 유행을 가져오기도 했다. ◎90년대/3D기피 현상속 세계화 바람타고 외국어 수강 “붑” 93년 2월25일 제 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문민정부」가 탄생했다.5·16 이후 30여년만에 민간대통령이 탄생한 만큼 90년대는 사회 모든 분야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안으로는 금융실명제 등을 통해 사회개혁의 기치를 높이 드는 사이 49년간 북한을 통치해온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체제가 들어서는 등 안팎으로 많은 소용돌이가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90년대를 특징짓는 함축적인 표현은 이른바 「X세대 문화」다. 뒤돌아볼 겨를 없이 성장가도를 달려온 부모·선배 세대가 만들어 놓은 과실을 향유하는 신세대들의 시대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개인주의적이고 향락주의적이라는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개성적인 새대라는 의식이 공존 한다.알아들을 수 없는 「랩」을 흥얼거리며 록카페를 드나드는 「오렌지족」인가 하면 마음만 먹으면 배낭하나 덜렁 메고 유럽이고 미국이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라도 찾아나서 모험을 즐기기도 하는 세대들인 것이다. 컴퓨터 없이는 아무 것도 할수 없지만 정보화시대를 앞당기며 국제화와 세계화를 이끌 첨병도 바로 그들이다. 젊은이들의 문화가 인간성 상실로 인한 황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적 대중문화의 병폐를 양산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컴퓨터나 외국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30∼50대 「컴맹세대」가 느끼는 세대간의 문화적 격차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수대교 붕괴사고,서울 아현동 가스폭발사고,삼풍백화점 붕괴 등 90년대 들어 빈발하고 있는 대형사고들은 선배세대들의 부정적 부산물일 뿐이며 그점에서 그들은 오히려 피해자인 것이다. 하지만 즐기는 신세대로서의 그들은 3D 기피현상이라는 어두운 한 단면을 90년대에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고학력 구직난,저학력 구인난」현상과 외국인근로자의 양산도 바로 그들의 시대를 특정짓는 모습들이다.
  • BAM 철도(시베리아 대탐방:33)

    ◎지도에 없던 「극비 철도」… 스탈린이 계획/타이셰트∼콤소몰스크나아무르 총 3,200㎞/일제위협 대비 41년 착공… 84년 전구간 개통 이르쿠츠크에서 북으로 우스치림스크댐까지 거대한 인공호수가 돼있다가 이후부터 실제로 강의 모습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앙가라는 북으로 주경계를 넘어 크라스노야르스크주로 들어가 서쪽으로 가서 에니에시강과 합쳐진 다음 북극해로 들어간다.크라스노야르스크주의 보쿠차느이시가 있는 지점의 앙가라강에는 지금 제4의 댐건설이 한창 진행중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시베리아여행중 제일 친절한 승무원을 만나서 비교적 유쾌한 여행을 즐겼다.모스크바교외에 산다는 이 젊은 여승무원은 한번 기차를 타면 2명이 1조가 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왕복 15일 밤낮을 쉬지 않고 교대로 일한다고 했다.그 다음 2주일을 쉬고 다시 2주일 동안 기차를 타는 것이다.보통 체력과 인내심이 없이는 지탱하기 힘든 직업임에 틀림없다.왜 많은 승무원들이 하나같이 불친절하고 신경질적이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했다. ○바이칼호 북단을 지나 이르쿠츠크주 초입에 있는 타이쉐트는 20세기 최대의 대공사로 러시아인들이 자랑하는 BAM(바이칼∼아무르철도)철도의 시발점이다.이곳에서 시작된 BAM철도는 동쪽으로 거의 직선거리로 진행해서 바이칼호수 북단 위쪽을 지나 종착역인 하바로프스크주의 콤소몰스크나아무르시까지 이어진다.총길이 3천2백㎞에 달하는 구간이다.이곳에서 지선으로 남쪽의 하바로프스크를 통해 다시 대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 철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건설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30년대 중반 스탈린이었다.가장 큰 이유는 바이칼호수 남단을 우회하는 대시베리아철도가 당시 일본의 점령하에 있던 만주국경과 너무 가까워 안보면에서 문제가 크다는 것이었다.이후 계획을 완성해 착공한 것은 41년이었다.바이칼호 북쪽은 바위·험로가 첩첩한 난공사구간이다.당초 대시베리아철도가 호수남단을 우회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첫번째 구간으로 아무르주의 스코보르디노∼튄다 사이의 공사가 시작됐다.일차적인 목적은 남쪽의 기존 시베리아횡단철도역인 스코보로딘을 통해 치타주로부터 공사장비·인력 등을 실어나르기 위해서였다. 이 구간은 2차대전 발발 직전인 41년 완성됐으나 이후 전쟁으로 모든 작업이 중단됐다.모든 물자·인원을 모두 서쪽 전선으로 보냈기 때문이다.종전 직전인 45년 공사가 재개돼 콤소몰스크나아무르에서 태평양연안의 군항인 소베츠카야 가반항까지 구간이 착공됐다.블라디보스토크가 일본군에 의해 점령될 경우에 대비해 태평양함대를 이곳으로 옮길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태평양함대 이동 목적 그 다음부터 본격적인 구간공사가 시작됐다.46년이전에 타이쉐트∼브라츠크구간은 완공돼있었다.브라츠크의 목재·메탈·철 등을 서쪽으로 실어나르기 위해서였다.따라서 BAM공사의 실제 시발점은 브라츠크인 셈이다.46년부터 이후 51년까지 브라츠크에서 동쪽으로 계속 공사가 진행됐다.브라츠크에서 강항인 우스트구트까지 구간이 완공됨으로써 BAM철도는 레나강과 연결되게 됐다.레나강을 통해 실어온 주변의 목재들은 우스트구트에서 철도로 실어 러시아 각지로 운반해 나갔다. 이후 브레즈네프시절인 77년 콤소몰스크나아무르에서 튄다까지 구간이 완공돼 BAM의 동쪽구간이 완성됐다.당시 중소관계가 악화돼자 중국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안전철도 건설의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판단,공사에 박차를 가한 때문이다.BAM은 일명 「젊은 영웅들의 철도」라고 불린다.기차에서 만난 튜멘주의 건설노동자같이 젊은 콤소몰 청년들이 대거 건설현장으로 동원됐기 때문이다. 지난 84년 처음으로 동서 전구간이 연결돼 기차가 운행했다.그러나 토넬느이에 있는 터널 1곳은 아직 미완성인 채 우회로를 통해 기차가 다니고 있다.현재 미완성 구간은 토넬느이∼탁시모간 15㎞이다. 스탈린시절 BAM철도 건설은 1급비밀로 속해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물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수용소 죄수들이 동원됐다.이 철도가 지도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55년이었다고 한다.브라츠크발전소 건설을 발표하면서 이곳에 철로가 있으며 이 철로를 이용해 발전소를 건설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복선·전철화작업 진행 현재 BAM은 전구간 복선·전철화 작업이 진행중이다.그러나 아직은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철도란 건설 뒤 10∼15년 지난 뒤부터 철도주변에 개발효과가 가시화되는 게 보통이기 때문에 조만간 이 지역에도 경제개발붐이 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덕분에 일찍이 외국인에 개방된 곳이다.바이칼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이미 1930년대부터 시작됐다.따라서 우리가 묵은 인투리스트호텔은 입구에서부터 서구화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새벽에 체크인하는데도 교대근무자들이 친절히 맞아주었고 엘리베이터는 금성사제품,객실 세면대에는 한국산 비누·치약·샴푸 등이 깨끗이 준비돼 있는 등 여행중 최고로 쾌적한 인상을 주었다.객실의 냉장고도 다른 지방의 호텔에서 같이 「탱크 굴러가는 듯한」요란한 소음을 내는 러시아제 대신 말끔한 한국산 냉장고가 갖추어져 있다.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많이 들르는듯 한식당·일식당도 있고 호텔 로비 곳곳에 한국어 안내판이 나붙어 있다. 현재 인구 60만명의 이르쿠츠크시는 1661년남쪽의 몽골·중국으로부터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출발했다. 이후 1686년 군사요새로서의 제한된 역할을 마감하고 정식도시로 재출발했으며 1698년 중국과의 교역이 시작되면서 이르쿠츠크는 매우 중요한 교역중심지로 부상했다.도시가 커지면서 17 64년에는 당시 이르쿠츠크 구베르니(주)의 수도가 됐고 총독의 집무처가 들어섰다.그래서 이곳에는 「벨르이 돔(백악관)」으로 불리는 순백의 당시 아름다운 총독관저가 지어져 지금 빼놓을 수없는 관광명소가 돼있다.가가린프로스펙트에 있는 이 건물은 현재 이르쿠츠크 시립도서관이 입주해 있는데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 크바렝키가 설계한 작품이다.
  • 분단이후 북한인맥 총정리/본사 통일안보연 발간 「북한인명사전」

    ◎전·현직요인 등 1만5천명/주요사건은 원색화보로 북한을 움직이는 주요 인물들의 인적사항을 망라한 「북한 인명사전」95년 개정·증보판이 최근 간행됐다.서울신문사 통일안보연구소가 펴낸 이 책은 북한 인사들을 다룬 유일한 인명사전인데다 인물 정보가 신속·정확해 권위를 높게 인정받고 있다. 올 개정판은 95년 4월말을 기준으로 전·현직 요인과 새롭게 부상한 엘리트,당성이 투철한 열혈학생·청년 등 무려 1만5천여명을 수록했다.사망했거나 생사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라도 역사성을 가진 인물은 함께 실어 분단이후 북한의 인맥을 총정리했다. 각 인물마다 생몰 연대,경력들을 가능한 한 모두 실었으며 이름을 한자로 기록하는 우리 사회 관행에 맞춰 중국·일본의 자료를 통해 한자이름을 확인해 넣었다.요인사진 4백장을 실은 점도 돋보인다. 특히 올 개정판에는 김일성 사망이후 노동당·행정부·군의 핵심인물들이 벌인 주요 활동사항을 자세히 분석함으로써 북한정세를 판단,전망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예컨대 인민군 대장 이봉원(70)의경우 그가 95년부터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에 여러차례 동행한 사실을 한쪽에 걸쳐 설명,새로운 김정일체제에서 중용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 김일성 장례식,단군릉 복원,평양축전 등 지난 1년동안 북한에서 있었던 주요 사건의 원색화보를 실어 뉴스성을 살렸다. 이밖에 ▲외국인투자법,자유경제무역지대 외국인체류 및 거주규정 등 개방관련 15개 법률 ▲노동당 22개 전문부서 및 정무원 산하 43개 부·위원회의 간부 명단 ▲노동당 외곽조직·사회단체의 기구표▲재일 조총련 중앙상임위원회와 지방본부·산하단체·산업체 임원 명단을 덧붙였다. 서울신문사는 지난 90년 「북한 인명사전」을 첫 출간한 이래 해마다 개정·증보판을 발간해 왔다. 올 개정판은 4×6배판 고급양장에 모두 1천1백82쪽 분량이며 값은 10만원이다.문의 (02)721­5641∼4.
  • 101세 독립투사 김경하옹의 광복 50돌 기원

    ◎광복조국 밝은 모습 뿌듯/민족통일이 마지막 소원/“서대문 형무소 붉은 담장 아직도 눈에 선해”/김좌진 장군 딸등도 함께 감회 젖어 늙은 독립투사가 15년만에 다시 들러 바라다본 광복 50주년의 조국땅은 밝고 힘에 가득차 있었다.살아있는 최고령 독립투사인 김경하옹. 평북 강계가 고향인 김옹의 올해 나이는 1백1세. 그의 정확한 생년월일은 금세기가 아닌 19세기말인 1895년 3월 24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열혈청년의 정열이 남아있는 듯 김옹은 광복 50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4일 상오 서울 독립공원에서 기자들에게 큰 소리로 소회를 피력했다.『70여년전 서대문형무소의 붉은 벽돌 담장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나라 잃은 청년의 비애같은 것이 느껴집니다.그러나 오늘 이 땅에 사는 청년학생들이 밝고 힘에 넘쳐 가슴 뿌듯합니다』 김옹은 조국이 자기를 잊지않고 광복 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해 준 게 무척 흡족한 모습이었다. 김옹이 독립투사로 형극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진 기미년 4월8일 강계 장날.당시강계 영실중 교사로 재직중이던 김옹은 동료 교사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 일본 기마헌병에 붙잡혀 징역 2년6월형을 받고 평양감옥에 수감된다.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병보석 되어 풀려나자 만주로 피신,선교활동을 통한 항일운동을 계속했다. 우연한 인연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40여년동안 목사로 활동을 해오고 있다.『조국사랑은 누구나 당연한 것이며 결코 자랑거리가 안되는데…』. 김옹의 곁에는 김옹처럼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조국 땅을 밟은 김좌진 장군의 외동딸 김순옥(68·중국 연변)씨와 전명운 의사의 둘째딸 전경영(72·미국 로스앤젤레스)씨,그리고 외국인이면서 우리의 독립을 위해 고종황제의 밀사로 외교활동을 했던 호머 헐버트의 손자 리처드 헐버트(67·뉴욕 캐미컬뱅크 직원)씨가 자리를 함께 했다.그들의 표정도 김옹과 같이 감회에 젖어 있었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이렇게 자랑스런 일을 한 줄은 몰랐어요.살면서 고생은 했지만 정말 자랑스러워요』 청산리전투의 영웅 김좌진장군의 딸 김순옥씨는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의얼굴조차 모른다.독립운동 뒷바라지에 고생만 하던 어머니는 그녀를 낳다 세상을 떠나 아버지의 부하였던 김기철에 의해 키워졌다고 했다. 『어떻게 소문을 듣고 일본경찰들이 찾아와 여러차례 매를 때리곤 했어요』.농사를 짓고 살면서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는 고생을 했다는 그녀는 이번에 장군의 외손녀인 위연홍(45)씨와 함께 처음으로 조국땅을 밟았다. 미국의 외교고문자격으로 친일 행각을 노골적으로 벌이던 스티븐스를 향해 총을 뽑았던 전명운의사의 딸 전경영씨는 『영원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어릴적 부터 미국에서 자란 탓에 우리말은 서툴지만 사회사업을 하는 애국지사의 후손답게 힘차고 또렷또렷하게 얘기했다. 묵묵히 듣고있던 최고령 독립투사 김옹은 『이제 바라는 게 있다면 남이든 북이든 한자리에 모여 오래오래 사이좋게 번영하는 민족의 통일,통일을 이룩하는 것입니다』.이 말을 뒤로 김옹의 눈에는 「간절한 소망」의 이슬이 맺혔다.
  • 일본에선…/민단과 조총련(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5)

    ◎“흔들리는 조총련”… 이탈자 해마다 급증/사회주의 붕괴·김정일 체제 불안감 큰 몫/이탈 「제3세력」 포용하는 민단노력 절실/남북화해 물결따라 두 단체 교류 조짐도 재일동포 2세 전월선(36·여)씨는 일본에서 화려한 각광을 받고 있는 오페라 가수다.그녀는 지난해 비제의 「카르멘」으로 한국무대에도 데뷰했다.그러나 전씨의 화려한 무대 뒤에는 둘로 갈라진 재일동포 사회가 안고 있는 분단의 아픔이 짙게 깔려 있다. 청중들의 열광적 박수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남·북으로 국적이 갈린 가족과 만나야 한다.그녀의 가족은 일본사회의 민족차별과 함께 또 하나의 비극인 민족분단의 비극 속에 살아가고 있다.전씨의 국적은 처음에는 조선(북한)이었다.그러나 지난 93년 한국으로 바꾸었다.그녀의 아버지도 한국 국적이다.그러나 어머니와 동생들의 국적은 조선이다.한 가정에서 조차 국적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재일동포 사회는 그녀의 가족과 같이 재일본 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나누어져 있다.민단자료에 따르면 현재 68여만명의 재일동포중 민단계는 49만여명,조총련계는 18만여명으로 나타나 있다.그러나 조총련계가 24만여명이라고 추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일동포사회는 당초 1945년10월 「조선인연맹」이라는 하나의 단체로 출발했다.그러나 1946년 「조선건국촉진 청년동맹」과 「신조선건설동맹」을 비롯 20여개의 산하단체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독점됐던 조선인연맹을 탈퇴,새로운 단체를 구성함으로써 둘로 나뉘었다.냉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재일동포 사회도 이처럼 둘로 갈라놓았으며 오늘도 그러한 대립과 갈등은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민단은 초창기 재일동포에 대한 세금투쟁,외국인등록령 반대투쟁 등을 시작으로 재일동포의 권익옹호와 민생안정를 위한 여러가지 민족차별 철폐 투쟁을 해왔다.83년에는 지문날인제도 철폐를 위해 1백80여만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64년 도쿄올림픽과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한국선수단을 지원했다. 민단은 75년7월 조총련계 동포들의 모국방문을 위한 성묘단 사업을 추진,많은 호응을 받았다.성묘단 사업을 계기로 조총련중 민단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당초 조총련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인구 비율이 역전됐다. 그러나 민단은 고질적 파벌싸움과 재일동포에 대한 권위주의적 태도 등으로 적지 않은 비난을 받고 있다.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한 재일동포는 민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주 싫어한다』고 잘라말했다.그는 『민단은 단비만 받고 재일동포를 위해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며 지나치게 권위주위적』이라고 혹평했다.민단 관계자들도 민단에 대한 무관심과 비난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신용상 단장은 『봉사하는 민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일동포사회의 또하나의 세력인 조총련은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냉전 종식과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북한에 대한 실상이 알려지며 이탈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 조총련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조선학교 교장과 조총련의 주요 직책을 맡았던 박로호 모국방문추진도쿄위원회 부위원장(70)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 사회주의의 모순을 깨달은 후 조총련에 대한 깊은 회의를 가졌었다』고 말한다.그후 조총련을 탈퇴한 박부위원장은 『조총련의 중요한 지지 기반인 지식인들의 갈등이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경제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조총련계 상공인들도 많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날로 악화되는데 실망,크게 흔들리고 있다.지난해에는 조선상공연합회 부회장을 비롯 조총련계 상공인 1백40여명이 집단 탈퇴하기도 했다. 조총련은 한덕수의장이 88세의 고령에다 병을 앓고 있어 허종만 책임부의장 체제로 전환하려 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도 외화공급원인 조총련을 끌어안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김정일에 대한 인식이 김일성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 외교관은 말한다. 조총련은 사실 당초 민단보다 지식인이 많았고 잘 조직됐었으며 지금도 경조사와 경제 문제 해결 등을 적극 지원하는 등 강한 조직관리를 하고 있다.그러나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시대의 큰 흐름과 북한의 모순과 어려운 실상을 깨달은 많은 사람들은 조총련을 떠나고 있다.최근에는 매년 5천∼6천여명이 탈퇴했으며 지난해 이탈자는 6천2백여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총련을 떠난다고 해서 그들이 민단에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대부분이 민단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조총련도 민단도 아닌 「제3의 세력」이 늘어나는 것이 오늘의 재일동포 사회 현실이다.그런 가운데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 움직임과 교류도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하지만 본격적인 화해는 아직은 미래의 일로 남아 있다.세계적 이념의 대결 시대가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 내의 이념적 대립은 한반도 뿐아니라 이국땅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인터뷰/민단 중앙본부 신용상 단장/재일동포 권익보호·생활안정에 최선/“참정권 획득,민족차별 철폐 앞장/권위주의 탈피 봉사단체로 일신” 재일본 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의 신용상단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단은 앞으로도 재일동포들의 권익보호와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지금의 최대 현안은 재일동포들의 지방참정권 획득』이라고 말했다. 세금은 같이 내면서도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에서조차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참정권문제 등 민족차별철폐와 함께 재일동포들의 인식도 이제는 일본 영주로 정착되고 있으며 민단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지난해 4월 당초 이름에서 임시로 머문다는 의미의 「거류」라는 말을 빼고 재일본 대한민국민단이라고 바꾸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민단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어 우려됩니다.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단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으나 민단에 신세질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신(판신) 대지진때의 위로금 분배를 민단에서 맡아 했듯이 재일동포를 위해서는 조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민단은 일본정부에 대해서도 중요한 압력단체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민단은 권위주의적이라는 비난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봉사하는 단체의 역할을 해야 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파벌의 알력과 후계자문제,계속 늘어나는 귀화현상 등 많은 어려운 점이 있지만 결코 비관하지는 않습니다.한국정부도 재일동포들이 한국에서도 사업을 하거나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일 국회의원/“정주외국인 참정권 부여”88%찬성

    ◎재일 한국청년 상공인연합 설문조사/실시시기 90%가 “5∼10 년뒤 예상”/자민·신진의원 상대적 반대 많아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국회의원들은 재일 한국민단(단장 신용상)이 추진하고 있는 정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에 긍정적인 것으로 재일 한국청년상공인연합회(회장 여건이)가 실시한 앙케트 조사결과 10일 밝혀졌다. 상공인련이 기명식으로 지난달 일본 중·참의원 7백59명을 대상으로 앙케트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이중 3백15명이 응답했으며 88%인 2백76명이 지방참정권부여에 찬성했고 3%(10명)가 반대했다. 또한 현재는 인정할 수 없으나 장래에는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5%(16명)로 나타났으며 실시시기에 대해서는 90%가 5∼10년뒤로 전망했다. 찬성하는 이유는 일본 민주주의 진전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반대하는 응답자들은 『귀화하면 참정권이 생기므로 귀화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여 회장은 『간사이(관서) 대지진 직후 조사라서 회답률이 50%에 이르지 않아 그대로 평가하기는 어려우나지방참정권 실현을 위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정당별로는 중·참의원 모두 모든 정당에서 찬성이 있었으나 반대하는 의원은 자민당과 통합야당 신진당에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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