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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플러스] ‘한유화’의 창시자…세계 미술계를 흔든다

    [인물 플러스] ‘한유화’의 창시자…세계 미술계를 흔든다

    예술은 국경이 없다. 각국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예술의 영역에서는 대륙이나 국가별로 다른 특색들이 그대로 인정받는다. 이제까지는 그랬다. 세계외교문화미술연구원 원장인 강신재 화백은 여기에 질문을 던졌다. 세계화가 진행되는 21세기에 국가와 대륙 문화권을 넘어서는 미술은 불가능할까. 35년 넘는 연구 끝에 강 화백은 동양화와 서양화 어느 쪽으로도 구분하기 어려운 새로운 미술을 정립해냈다. ‘한유화’라고 불리는 그림들이다. 오랜 세월 예술로 세계와 소통해 온 그의 ‘민간 예술 외교’는 이처럼 문화권을 초월하는 그의 예술세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유화의 창시자이자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알려진 작가인 강신재 화백을 만나 그의 성과들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편집자 주→‘한유화’란 어떤 것입니까.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미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창조한 미술의 한 종류이지요. 동양화나 유럽의 서양화를 중심으로 이제까지 그림이 발전해 왔는데, 동양화와 서양화 그리고 서예까지 포함해서 통합된 21세기 새로운 미술이 나온 겁니다. 단순히 화풍으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고 새로운 미술 종류라고 봐야 합니다. →오랫동안 그 연구를 하셔서 직접 정립하신 것이죠. -35년 넘게 연구를 해서 2014년에 이론을 정리하고 2018년에 학술적으로 작업으로 해서 ‘미학개론’이라는 612페이지짜리 책으로 냈습니다. 그것을 교육부와 각 대학의 미대, 도서관에 증정해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게 세계적인 학자들과 겨룰 만한 업적이라고도 해주시더군요. →한유화 작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서양화의 색채를 응용하고, 동양화의 수묵 기법을 적용해서 조화롭게 만든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 서양화를 응용한 기법과 동양 서예의 필력이 만나는 것이기도 하고. 유화가 화려하고 강렬하지만 딱딱한 느낌이 있었다면 한유화는 그 매력은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친근한 느낌이 들지요. 이렇게 장점들이 조화롭게 응용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연구해 오신 한유화가 국책사업으로 지정됐습니다. 이전에도 정부와 교감을 가져오셨었나요.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과 일을 해왔습니다. 7대째 일을 하고 있는데, 김영삼 대통령 때 우리 세계외교문화미술연구원을 만들어줬어요. 그때부터 우리 연구원이 민간 차원의 ‘예술외교’를 펼쳐왔지요. 세계 각국의 정상들에게 서류를 보내고 작품으로 소통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세계 미술의 변화를 이끌려면 정치적인 부분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이제 한유화의 이론적인 정립도 됐고, 국책사업도 됐으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미학개론의 영문판을 만들어서 각국 정부와 세계적인 대학들에 보낼 생각이에요. →그동안 작품으로 세계와 소통해 오셨으니 국제적인 인사들과도 자주 만나실 것 같습니다. -현재 110개국 정부와 연결이 되어 있는데, 그동안 대사들을 만나고 그쪽으로 초청을 받기도 하고 그랬죠. 오히려 스스로 자중하고 있습니다. 정상들과 만날 기회도 많고, 문서가 오가기도 하는데 이런 활동을 우리나라 최고위층에선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독창적인 작품세계와 이제까지 해온 일들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일반 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화랑이나 최고위층에서는 저를 다 알고 있죠. 다만 제가 이제까진 일반 대중 앞에 나서는 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작품도 전시를 하고 나면 팔지 않고 다 싸 들고 오니까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죠. 오히려 십수 년 전에는 방송이나 공개적인 자리에 많이 나갔어요. 그런데 제가 일하는 데 지장이 있더군요.→작품 자체는 대중적인 시장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겠지만 스스로 피하셨다는 거군요. -저는 세계 어느 작가에게도 지지 않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수준에 스스로를 올려놓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일반에게 정식으로 판매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화랑에 있는 분들이나 외국에서는 제 작품을 아주 좋아해요. 동서양의 취향이 다르고 유럽과 일본과 미국의 시장에서 팔리는 작품이 다 다른데 제 작품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좋다고 평가합니다. 지금도 화랑에서 제 작품을 고가품으로 공개하는 곳이 있어요. 10호짜리에 10억을 붙였더라고요. →중국과 러시아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과의 관계는 오래됐지요. 베이징대학교에서 초청 전시를 했는데, 거기서 한유화를 공개했습니다. 베이징대학에서는 전시가 끝나고 한유화를 자기들이 합작한 것이라고 홍보까지 했어요. 러시아의 경우 국립극동 종합대학 초청전을 가졌었고, 모스크바국립대학과도 전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가장 관심이 적죠. →K팝을 중심으로 한류가 세계적인 이슈인데, ‘예술 한류’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K팝은 일시적이지만 미술은 영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카소와 같은 유명한 화가의 브랜드가 가치로 따지면 얼마입니까. 제 작품에 대해서도 10개국 넘는 곳에서 초청이 오는데 제가 갖추질 못해서 못하고 있어요. 몇 년은 작품활동에 집중해서 작품을 늘려야겠는데 여건이 쉽지 않네요. →지금은 성과를 거두고 결실도 맺어가고 있지만 강 화백께서도 처음 시작이 있었을 텐데요. 미술의 길에 들어선 계기가 특별히 있었습니까. -처음부터 어려웠죠. 제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게 4살 때예요. 해방 직후였습니다. 초등학생들이 그림을 잘 그리는 걸 보고, 따라다니면서 흉내를 냈죠. 그렇게 시작했어요. 그런데도 제대로 배운 학생들보다 뛰어나서 초등학교 땐 전교생 중에서 그림으로는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재능이 있으셨군요. -그렇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요.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대학교 이후였습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3회 때 제가 입선을 했어요. 상만 탄 게 아니라 200점 중에 70점으로 지방 순회전을 하는 데에도 뽑혔습니다. 그러고도 활동을 제대로 하진 못했죠. 나중에 보니까 다 ‘돈 문제’더라고요. →이제까지 연구에 매진하셔서 결실을 맺었으니 앞으로는 작품활동을 기대하게 되는데요. -집중해서 연구한 이론을 기반으로 세계 어느 화가에 지지 않는 그림을 그려내고 싶습니다. 미술의 현대화를 이끄는, 글로벌시대에 맞는 세계 공통 취향의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2019년부터는 그런 작업에 힘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또 중국, 러시아와 협력해서 세계적으로 활동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해외 활동이 많으실 텐데, 전시는 어떻게 계획하고 계십니까. -제가 세종문화회관에선 여러 차례 전시를 했는데, 우선은 국립미술관에서 세계화에 초점을 맞춘 그림을 발표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작업에 집중해서 2년 후에 전시를 하고, 그 여세를 몰아서 중국 베이징대학 문화산업연구원과 협력해서 현지에서 대전시를 열려고 합니다. 이제는 제 그림들을 세상에 내보이는 데에 조금 더 힘을 쓰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공개적인 퍼포먼스도 해서 실력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 [포토]문 대통령과 있어도 자유롭게

    [포토]문 대통령과 있어도 자유롭게

    청와대가 미국 뉴욕에서 열린 73차 유엔총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수행원들의 3일간의 생활을 스마트폰으로 찍은 ‘B컷’을 공개했다. 사진은 유엔본부에서 행사를 기다리며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대화하는 문 대통령. 동석한 참모들도 자유롭게 문서를 읽거나 핸드폰을 보는 등 편안하게 앉아있다. 2018.9.28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 조현 외교부 1차관, 효율적 업무 스타일의 정통외교관

    조현 외교부 1차관, 효율적 업무 스타일의 정통외교관

    조현 신임 외교부 1차관은 지난해 6월 2차관을 맡은 지 1년 3개월 만에 수평 이동하게 됐다. 불필요한 문서작성이나 야근 관행을 없애고 1차관 취임식을 직원 이메일로 대신하는 등 효율적인 업무 스타일로 유명하다. ▲전북 익산 ▲전주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외무고시(13회) ▲주인도 대사 ▲주오스트리아 대사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 ▲2차관
  •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책’ 그 위대함과 위로 만나볼까

    돌아오지 못한 ‘비운의 책’ 그 위대함과 위로 만나볼까

    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는 지구촌에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찍은 인쇄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서양의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섰다. 활자 인쇄술의 발명은 정보의 빠른 전파를 통해 중세적 사고를 근대적 사고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으로 꼽힌다. 유네스코는 그 가치를 인정해 2001년 9월 4일 직지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다음달 1일부터 21일간 펼쳐지는 청주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은 직지의 위대함을 세계인과 공유하는 행사다. 글로벌 축제답게 수준 높은 전시, 학술, 강연, 체험, 공연 등이 풍성해 눈과 귀가 심심할 틈이 없다. 행사 기간 세계인쇄박물관협회 창립총회도 열린다. 직지는 100여년 전 헐값에 팔려 프랑스로 건너가 돌아오지 못하는 ‘비운의 책’이지만 청주의 직지 사랑은 뜨겁다.●책속에 담긴 자기 수양과 치유 속으로 26일 청주시에 따르면 이번 행사의 주제는 ‘직지, 숲으로의 산책’이다. 직지와 숲은 다소 생뚱맞은 조합 같아 보이지만 직지의 속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직지의 저자는 고려 말 승려 백운화상이다. 그는 공부하기 위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하면서 스님 석옥청공에게 ‘불조직지심체요절’이란 책을 받아 왔다. 이 책은 부처 등 이름난 승려들의 말씀이나 편지 등에서 마음을 수양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모아 석옥청공이 정리한 책이다. 우리가 아는 직지는 백운화상이 불조직지심체요절을 보완, 수정한 책이다. 그래서 직지의 풀네임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백운의 제자였던 석찬과 달잠은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펴기 위해 묘덕의 도움을 받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직지를 간행했다. 직지코리아 조직위원회는 직지의 내용을 주목했다. 현대인들이 자기 수양과 힐링을 위해 숲을 찾듯이 고려시대 사람들은 직지를 읽지 않았을까. ‘직지’와 ‘숲’은 이렇게 하나가 됐다. 조직위는 직지의 내면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메인 무대인 청주예술의전당 광장에 ‘직지숲’을 조성한다. 위로와 치유의 공간이다. 세계적 설치미술가인 한석현 작가가 버려진 목재를 활용해 18m 높이로 만든다. 숲 안에는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의 정원’이 꾸며진다. 직지가 간행된 해(1377년)를 기념해 시민들에게서 기증받은 1377권의 책으로 만든다. 행사 종료 후 이 책들은 작은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에 기부될 예정이다.●1377년 간행 기념한 1377권 ‘책의 정원’ 직지코리아의 한 축인 전시는 크게 주제전시와 기획전시로 나뉜다. 주제전시관은 수백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곳이다. 백운화상과 직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주자라는 큰 역할을 한 묘덕의 의복을 재현한다. 백운화상의 초상화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백운화상은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 잘 알려지지 못했으나, 최근 충남 청양군 장곡사에서 그의 친필이 발견되는 등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직지를 세상에 알린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직지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을 한국에 최초로 알린 박병선 박사, 직지 활자를 처음 복원한 오국진 금속활자장, 사이버외교사절단으로 불리며 직지세계화운동을 전개하는 반크 등이 소개된다. 또한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 대리공사로 부임해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직지 등 고서와 문화재를 수집해 프랑스로 건너간 콜랭 드 플랑시도 소개된다. 이후 직지는 1911년 경매를 통해 주인이 앙리 베베르로 바뀌었다가 195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안승현 직지코리아 홍보마케팅부장은 “직지와 관련된 인물들을 스토리텔링 전시로 풀어냈다”며 “이들을 통해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전시는 직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른 나라들의 세계기록유산을 모았다. 데스멋 컬렉션은 네덜란드 최초의 영화배급자인 장 데스멋이 1907년에서 1916년 사이 전 세계에서 제작된 900편 이상의 35㎜ 영화 필름과 원본 포스터, 홍보물 등을 수집한 것이다. 그림 형제가 만든 ‘그림 동화’는 종교 혁명의 시초가 된 루터의 성서에 버금갈 정도로 독일 문화사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고 배포된 책이다. 인류 최초로 유럽과 동양의 모든 전통 동화를 체계적으로 편집하고 과학적으로 기록했다. ‘솜 전투 필름’은 1916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프랑스 연합군과 독일군 간의 치열했던 솜 전투를 기록한 영상이다. 전쟁 준비와 전투 초기단계가 흑백의 35㎜ 무성필름에 담겼다. 약 70분 분량이다.‘직지로드’라는 전시공간도 꾸며진다. 이곳에는 1333년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전시된다. 이 편지는 고려와 서양 간의 교류 가능성을 높여 주는 자료다. 고려의 금속활자기술이 구텐베르크 인쇄술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직지코리아의 또 다른 축은 공연과 체험이다. 지난 행사보다 기간이 3배 가까이 길어진 만큼 주제에 걸맞은 공연과 프로그램이 넘친다. 청춘들의 고민을 나누는 토크 청춘콘서트, 음악과 차, 명상이 어우러진 다도가 있는 음악회, 고려의상 패션쇼, 젊은이들이 밴드와 함께 금요일 밤을 즐길 수 있는 Rock&Night, 고려 장터를 재현해 당시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고려 저잣거리 등이 마련된다. 색모래를 이용해 도로 위에 그림을 그려 보는 그라운드아트, 차 없는 거리에서 지역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는 아트나잇 청주, 고려시대 금속활자 조판임무를 담당하던 군자장의 역할을 놀이로 만든 직지조판놀이, 직지를 맛으로 표현하고 즐겨 보자는 의미로 문자와 먹거리를 결합한 직지콜라시옹도 즐길 수 있다.●전 세계 인쇄문화 전문가 참여 학술회의도 세계인쇄문화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들도 속속 열린다. 직지코리아 개막일에는 전 세계 인쇄문화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세계인쇄박물관협회(IAPM)를 창립하기 위해서다. 세계 50여국의 80여개 인쇄박물관, 인쇄 관련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은 2일과 3일 이틀간 학술회의를 갖고 기록유산과 인쇄문화의 보존, 지식정보발전을 위한 프로젝트 등을 논의한다. 김천식 직지코리아조직위 사무총장은 “세계 인쇄박물관 정보공동체인 IAPM 출범식 개최로 청주는 세계적인 기록문화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개막식 때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 열려 개막식에서는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이 거행된다. 올해 수상자는 아프리카 이슬람 문서보존을 위해 힘쓴 비정부기구(NGO) 단체인 아프리카 말리의 ‘사바마-디’(SAVAMA-DCI)로 결정됐다. 사바마-디는 아프리카 말리 북부지역이 알카에다 연관 무장단체에 장악돼 많은 유적과 문서가 손실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말리의 ‘알 왕가리 도서관’ 등에 소장된 600여건의 문서를 디지털화했다. 직지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해 2001년 제정된 이 상은 기록유산의 보전·연구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유네스코가 2년에 한 번씩 주는 상이다. 수상자에게는 3만 달러가 상금으로 전달된다. 역대 직지상 수상자들이 모여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기록문화 발전을 위해 국제적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인 ‘직지상2.0라운드테이블’도 열린다. 직지코리아 입장료는 성인기준 사전 예매 6000원, 현장 판매 8000원이다. 직지코리아는 정부 공인 국제행사로 2016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명이 트집잡던 ‘조·종’ 호칭 해결… 35세 명문장이 조선을 구했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명이 트집잡던 ‘조·종’ 호칭 해결… 35세 명문장이 조선을 구했다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1564∼1635)는 탁월한 문장가로, 중국어에도 능통한 최고의 외교관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중국 명·청 교체기를 거치는 동안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복잡다단한 외교 문제를 도맡아 해결하다시피 했다.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던 노인이란 사람이 바다에 표류해 중국 소주와 항주 지역에 이르렀다. 그 지역 선비들이 모두 이정귀의 ‘무술변무주’(戊戌辨誣奏)를 외면서 “조선사람 이정귀의 글”이라고 했다. 숭정 을해년(1635년)에 동지사로 홍명형이 중국에 갔더니 광녕 옥전의 선비가 역시 이 ‘무술변무주’ 베낀 것을 가지고 와 이정귀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무술변무주’는 당시 중국 사람들도 인정한 명문장이었던 셈이다.#중국서도 문명 떨친 외교관 “조(祖)·종(宗)이란 칭호를 사용하는 문제로 말하자면, 소방(小邦)은 해외의 먼 나라로서 삼국시대 이래 예의(禮義)의 명호는 중국의 것을 모방하여 서로 비슷한 것이 많았습니다. 우리 선신(先臣) 강헌왕(康獻王)에 이르러서는 무릇 분수에 넘치는 것들을 일절 고치고 바로잡아 미세한 절목에 이르기까지 모두 신중을 기함으로써 상하의 분한(分限)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자손에게 전하여 금석처럼 굳게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유독 칭호만은 신라·고려 때부터 이러한 잘못이 있어왔는데, 신민(新民)들이 잘못된 옛 습속을 그대로 이어받아 외람되이 존칭(尊稱)을 계속 사용하면서 고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이 글은 이정귀가 35세 때인 무술년(1598년) 선조 31년에 지은 ‘무술변무주’의 일부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사람 정응태가 찬획주사로 조선에 들어왔다가 터무니없는 사실을 날조해 조선을 무함했다. 그는 조선이 명나라를 치도록 일본과 내통해 일본 군대를 끌어들였으니, 조선이 참람되게 천자의 묘호(廟號)인 ‘조·종’을 사용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조선은 건국과 함께 천자의 칭호인 조·종을 사용해 원나라에 복속되면서 잃었던 천자국의 자존심을 다시 세웠던 것인데, 이 일로 명나라는 조선을 위협하면서 조·종의 호칭을 바로잡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당시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참혹한 전란의 와중이었고 명나라는 막대한 국력을 쏟아부어 조선을 구원했기 때문에 그만큼 입김이 셀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나라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건지고 나라의 자존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정귀의 ‘무술변무주’의 힘이 컸다. 이 일로 이정귀는 국내에서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문명(文名)을 떨쳤다. 그리고 1618년 명나라가 후금과 전쟁할 때 조선이 원군으로 파견했던 강홍립의 군대가 전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적군에 투항하자, 명나라는 조선이 후금과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해 심지어 ‘조선을 감호(監護)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감호란 나라를 감독해 속국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 이를 예전의 정응태 무고사건보다 더 큰 변고라 여긴 광해군은 1620년 다시 이정귀를 진주상사로 북경에 보냈고, 이정귀는 역시 탁월한 외교 수완을 발휘해 사태를 잘 무마했다. 이정귀가 북경에 있을 때 왕휘 등 많은 중국 선비들이 찾아와 지은 시문을 보여 달라고 간곡히 청하기에 사행 중에 지은 시들을 ‘조천기행록’(朝天紀行錄)이란 제목으로 묶어 주었다. 이에 왕휘가 서문을 붙여 한 권으로 간행하고 섭세현이란 사람이 운남 지방으로 가면서 그 판본을 가져갔다. 왕휘는 서문에서 중국 문장의 대가들인 후한의 조식과 유정, 당나라 이백, 두보보다 낫다고 극찬했다.#한문사대가 중 한 사람, 격동시대 살다 ‘월상계택’(月象谿澤)으로 일컬어지는 조선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한 사람으로 꼽히는 문호 이정귀는 세조 때 명신 이석형(李石亨·1415∼1477)의 현손으로, 1564년 10월 8일 서울 청파리에서 태어났다. 27세에 문과에 급제해 정9품인 승문원정자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외교문서를 담당하는 전문 관료로 출발한 것이다. 이정귀는 이로부터 46년 동안 청요직을 두루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특히 예조판서를 아홉 번 역임하고 대제학이 두 번 돼 문형(文衡)을 잡았다. 장유(張維)는 ‘월사집서’(月沙集序)에서 “고금의 문인을 통틀어서 공만큼 재능을 인정받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정귀는 선조, 광해군, 인조 세 임금의 조정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광해군 때에는 전란은 없었지만 1613년에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났다. 계축옥사는 역옥(逆獄)으로,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이 선왕인 선조의 유교(遺敎)를 받든 대신들과 함께 영창대군을 추대하기로 했다는 게 죄목이었다. 신문 과정에서 이정귀도 연루됐으나, 명·청 교체기에 유능한 외교관이 필요했던 광해군의 옹호를 받아 무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1617년에는 인목대비를 폐서인(廢庶人)하자는 소위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났다. 이정귀는 병을 칭탁해 조정회의에 불참하며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만난다. 백발의 몸으로 다시 만나니 여생은 모두 성은으로 얻은 것 우리들 앞엔 오직 죽음이 있을 뿐 세상사는 말하고 싶지 않구려 물이 드넓으니 교룡이 숨고 겨울이 따스해 기러기 놀란다 석양에 몇 줄기 눈물 흘리며 목릉촌에 말을 세우노라 이정귀가 술을 가지고 백사 이항복을 찾아가 작별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위태한 정황과 결연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석양에 몇 줄기 눈물 흘리며 목릉촌에 말을 세우노라”라는 두 구절은 널리 인구에 회자된다. 마지막 구절인 ‘목릉촌에 말을 세우노라’에서 ‘목릉’은 선조(宣祖)의 능이니, 목릉촌은 선조의 능이 보이는 마을이다.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교수 ■알림 고전의 향연과 번갈아 격주로 연재되던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필자들의 사정으로 4회에서 끝을 맺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항일 기사’ 베델 고소… 英 두 번째 재판 후 中 감옥 수감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항일 기사’ 베델 고소… 英 두 번째 재판 후 中 감옥 수감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이 만든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는 조선에서 신문 이상의 위상을 누렸다. 국채보상운동(1907~1908)을 주도했고 항일단체 신민회(1907~1911)의 산파도 맡는 등 독립운동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국제 여론에 민감했던 일본은 자신들이 벌이던 만행이 신보와 KDN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되는 사실이 매우 불편했다. 결국 베델을 조선에서 내쫓기로 하고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베델, 英·日 모두에 ‘눈엣가시’ 베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국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의 소설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에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전후해 일본이 그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잘 묘사돼 있다. 일본이 조선에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1904년)하고 화폐개혁을 강제(1905년)할 때 베델은 신보와 KDN을 통해 음모를 폭로한다. 이때마다 조선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1850~1924)나 탁지부(재정을 담당하는 중앙관청) 고문 메가타 다네타로(1853~1926)는 베델의 기사에 화를 내고 괴로워한다. 아래는 베델이 실제로 1907년 9~10월 신보와 KDN에 게재한 항일 관련 기사의 일부다. “서울 용산에서 한 조선인이 어린아이를 업은 부인을 데리고 일본군 병영을 지나갔다. 이때 한 일본 군인이 장난삼아 이들에게 총을 쐈다. 탄환이 여인의 옆구리를 관통해 아이 엄마가 즉사했다. 아이의 한쪽 손도 산산조각이 났다. 아이 아빠가 일본군군 병영에 뛰어 들어가 장교에게 항의했지만 되레 길거리로 쫒겨났다.”(KDN 9월 3일자) “수원에서 10여㎞ 떨어진 곳에서 일본군과 조선 의병 간 전투가 벌어졌다. 30명의 의병이 일본 군대에 포위돼 대부분 잔인하게 사살됐다. 일본군 장교는 분이 덜 풀린 듯 생포한 이들을 모두 끌어내 목을 베었다.”(KDN 9월 26일자) “한국 국민들이여! 독립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지 않은가? 미국과 그리스, 이탈리아 독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라. 지금 이들 세대가 누리는 행복은 바로 조상들의 피로 얻은 것이다.”(신보 10월 1일자)일본은 베델이 신보와 KDN을 창간할 때부터 진의를 의심했다. 그가 반일 논조를 고수하는 이유가 신문 창간 자금이 고종에게서 나왔기 때문일 것으로 봤다. 쉽게 말해서 그가 조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종과 러시아가 재정지원에 나서기 좋을 만한 신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학계에는 베델이 러시아 스파이였다고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베델 연구 1인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일본은 베델과 러시아 간 연관성을 찾고자 전방위적으로 나섰지만 어떤 증거도 잡아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日, 본격적인 베델 추방 공작 추진 1906년 12월 영국 ‘트리뷴’지에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는 고종의 칙서가 게재됐다. 영국기자 더글러스 스토리가 목숨을 걸고 문서를 공개한 것이다. 그러자 베델도 이듬해 1월 신보와 KDN에 이 기사를 전재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렸다. “조선이 일본에 자발적으로 외교권을 넘겼다”고 주장해 온 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베델은 일본뿐 아니라 고향인 영국에서도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다. 1902년에 맺은 영일동맹(영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이권을 함께 나눠 갖고자 체결한 조약)으로 두 나라가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때여서 그의 행보는 영국 입장에서도 ‘눈엣가시’였다. 일본은 이런 상황을 잘 활용하면 그를 조선에서 추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공작을 시작했다.일본은 1898년 태국에서 ‘태국자유신문’이라는 영자지를 발행하다가 추방된 J J 릴리라는 영국인 사례를 베델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 살폈다. 릴리가 영국 정부의 동의하에 추방됐기 때문에 베델도 같은 절차를 거치게 될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릴리 추방 당시 영국 하원이 이를 정쟁화했던 경험이 있어 영국 정부로서는 선뜻 베델의 추방을 묵인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영국 외무부는 베델을 굳이 추방까지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신보와 KDN이 재정난으로 휴간과 복간을 반복해 가만 내버려두면 곧 사라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영국의 불확실한 입장 등을 감안해 베델을 직접 추방하려던 계획을 접고 영국 사법당국에 그를 고소해 처벌받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영국 외무부는 “가능한 한 일본의 희망을 충족시켜 주겠지만 영국인이 조선에서 누리는 치외법권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뒤 재판에 나섰다.●첫 번째 재판 ‘치안 방해’ 혐의 6개월 근신형 베델에 대한 첫 번째 재판은 1907년 10월 14일 서울 정동 주한 영국총영사관에 설치된 법정에서 열렸다. 한국인과 영국인, 일본인이 참석한 동북아 최초의 국제재판이었다. 일본은 “베델이 신보를 통해 조선인들의 폭동을 선동한다”면서 “신보의 논설이 그대로 의병대의 창의문으로 쓰인다”고 주장했다. 주한 영국총영사 헨리 코번(1871~1938)이 판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베델에게 적용된 혐의는 ‘치안 방해’였다. 코번은 베델의 행동에 큰 문제가 없다고 봤지만 본국의 제국주의 논리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재판은 오전 11시에 시작돼 오후 4시 30분에 마무리됐다. 다음날 아침 코번은 베델에게 6개월 근신형을 명하고 보증금 300파운드를 납부하게 했다. 통감부 일간지 서울프레스는 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하고 어떤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베델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려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첫 재판 판결 뒤 베델은 항일 논조를 더욱 강경하게 이어 갔다. 1908년 3월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1851~1908) 암살 사건 등을 대서특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제는 영국에 “베델을 추방해 달라”고 대놓고 요구했다. 영국은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그를 다시 한 번 재판정에 세웠다. 이번에는 기존 ‘치안 방해’ 혐의에다가 ‘공금 횡령’을 추가했다. 그가 국채보상운동 과정에서 모은 의연금을 마음대로 썼다는 죄목이었다.●‘공금횡령’ 혐의 추가 두 번째 재판선 실형 두 번째 재판은 1908년 6월 15일부터 3일간 서울 주재 영국총영사관에서 열렸다. 이 재판은 미국 AP통신이 직접 참관하며 취재할 정도로 국제적 관심이 컸다. 이번에도 영국총영사 코번이 판사로 나섰다. 재판 마지막 날인 18일 코번은 베델에게 3주간 금고형(6개월 근신 포함)을 판결했다. 첫 실형이었다. 당시 조선에는 영국인을 구금할 시설이 없었다. 결국 영국은 베델을 중국 상하이에 있던 영사관에 마련된 감옥으로 보내기로 했다. 이틀 뒤인 20일 베델은 서울역에서 기차로 인천에 이송됐다. 판결 이후 장기간 서울에 있으면 군중이 몰려와 반대 시위에 나설 것을 우려해서였다. 당시 인천과 상하이 간 정기배편이 없었기 때문에 영국 군함 ‘클리오’호가 단 한 사람을 데리러 인천에 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첫 번째 재판 때만 해도 별 반응이 없던 서울프레스는 이번에는 부록까지 발행하며 판결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상징적이나마 베델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에 무척 신이 났던 것 같다. 서울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상하이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황제 납치 프로젝트3]러시아, 베델에 고종 납치 제안

    [황제 납치 프로젝트3]러시아, 베델에 고종 납치 제안

    서울신문은 대한제국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찾았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가 조선과 일본에 머물며 직접 취재해 쓴 이들 소설에는 고종의 해외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이 담겨 있어 관심을 모읍니다. 대한제국이 배경인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먼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 <3회> “저는 조선 황제를 납치해 상하이로 모셔 가려고 서울에 왔습니다.” 소녀가 웃음기없는 얼굴로 똑똑히 말했다. 나는 이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의 반응을 살피던 베델(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눈도 반짝거렸다. 그는 고개를 힘있게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말 그게 전부인가요?” 나는 짖궃게 악의없는 농담을 섞어 물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충격적인 제안이었으니까. “이게 다는 아니죠.” 그녀의 목소리에는 내 반응이 너무 경솔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듯 작은 꾸짖음이 담겨 있었다. “제가 좀 더 설명할게요. 베델씨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만, 방금 이름을 알려드린 그분(러시아 극동총독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로 추정됨)은 앞으로 3주쯤 뒤 일본이 조선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매우 확실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에서 황제에게 무력시위를 할 것이라는 것도. 대한제국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다는 내용의 보호령 문서에 서명을 받아내기 위해서죠. 일본은 이미 영국과 미국에 이 사실을 알렸고, 두 나라는 조선 황제가 자발적으로 보호령을 요청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일본과 말을 맞춰놓은 상태입니다.” 소녀는 크게 숨을 들이쉰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일본 입장에서는 영국과 미국이 아닌 다른 열강들이 마지막 걸림돌이예요. 독일과 러시아가 대표적이죠. 이들 역시 조선과 같은 약소국을 자신들의 통제권에 두고 싶어하니까요. 이 때문에 이들은 조선이 스스로 일본의 보호국이 되길 원한다고 명확히 밝히지 않는 이상 지금 상황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에요.” 모든 문이 잠겨있는 이 방 안에서 가장 빛나는 눈을 가진 여성이 러시아를 대신해 우리에게 비밀 임무를 전달하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러시아는 최근 일본과의 전쟁(러일전쟁)에서 패배해 사실상 한반도 지배권을 빼앗겼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어떻게든 일본에 예속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한다면 러시아로서는 적국인 일본의 대륙 침략 시도를 막아낼 수 있어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소녀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조선 황제는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외교권을 가지러 조선에 온다는 사실을 알고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이미 허버트(‘고종의 밀사’로 불리던 호머 허버트 1863~1949)를 미국 루즈벨트(시어도어 루즈벨트 1958~1919) 대통령에게 보내 이를 막아달라고 애원했지만 성과가 없었어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이거예요. 이토가 황제를 겁박해 서명을 얻어내려 해도 그 문서에 옥새가 찍혀있지 않으면 일본은 대한제국을 접수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죠. 조선이 진심으로 일본의 보호를 원해서 조약을 체결한 것이 아닐수도 있다는 의혹이 퍼지면 독일과 러시아가 반드시 이 부분을 걸고 넘어질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물었다. “하지만 왕이 옥새를 찍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요? 그랬다가는 이토가 자신을 죽이고 새 왕을 세울 수도 있다고 생각할텐데...” 소녀가 내 표정을 읽은 듯 힘있게 대답했다. “그래서 러시아가 조선 황제를 상하이로 망명시키려는 모험을 제안하는 겁니다. 황제가 조선을 빠져 나오면 일본은 조약 문서에 옥새를 찍을 수 없어요. 그가 외국에 나가 있으니 죽일 수도 없겠죠. 이쯤되면 독일과 러시아는 “도대체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따질 것이고, 일본은 전 세계 언론의 비난을 사겠죠. 두 분 다 아시겠지만 아직 일본은 다른 열강보다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해요. 국제여론을 악화시켜가면서 불 속에 뛰어드는 짓(을사늑약 체결)은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요.” 소녀는 멋진 머리를 뒤로 젖히며 조용하지만 진심을 담아 웃음지었다. 커다란 보라색 눈이 더욱 도드라졌다.“제 말이 꼭 숨은 역사를 설명하는 교수의 강의처럼 들리시나 보네요. 아무튼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조만간 보게 될 거예요. 상하이에 계신 그 분은 제가 두 분같은 ‘젠틀맨’(의로운 일에 자신의 목숨까지 거는 신사도 정신의 소유자)과 힘을 합쳐 이 일을 해낼 것으로 확신해 큰 게임을 시작했어요. 제가 상하이를 떠나기 전날 밤 그분의 마지막 이야기는 이것이었어요. ‘가서 베델을 만나라. 그가 반드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요.”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4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해묵은 낙태죄·현대車 노조·국보법… 헌재 ‘사이다 결정’ 내릴까

    해묵은 낙태죄·현대車 노조·국보법… 헌재 ‘사이다 결정’ 내릴까

    새 재판부로 공 넘어간 낙태죄 ‘핫 이슈’ 가장 오래된 현대차 노조 업무방해건 한정위헌 전망 속 사법농단 맞물려 주목 ‘軍 동성애 관련 형사처벌’ 위헌 가능성 국보법 8수째… 전향적 결정 나올 수도 전기료 누진제, 국민 눈높이 반영 관심헌법재판관 5명이 교체된 후 다음달 출범하는 6기 재판부가 심리할 주요 사건은 낙태죄를 포함해 각종 사회 이슈와 연관돼 있다. 30주년을 맞은 헌재가 앞으로 결정할 사건을 국민 관심사에 맞춰 선정했다.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헌법소원인 규범통제형, 공권력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여부를 따지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과 법원에서 직접 청구하는 위헌법률 심판으로 나눠 뽑았다. 29일 헌재에 따르면 당초 5기 재판부가 선고할 것으로 예상됐던 낙태죄는 새 재판부로 공이 넘어갔다. 부녀의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이다. 헌재는 지난 5월 공개변론을 열어 임부의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는 청구인의 주장과 태아의 생명권도 국가가 보호해야 할 기본권이라는 법무부의 입장을 들었다. 이진성 헌재 소장 등 재판관 6명이 인사청문회에서 낙태죄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어 위헌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가장 오래된 사건인 현대차 노동조합의 업무방해 사건은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불거지며 관심사로 떠올랐다. 헌재가 이 사건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법원행정처가 대응책을 마련한 사실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 결과 밝혀졌다. 노조가 특근 등 연장·휴일근로를 거부한 것에 대해서도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을지가 쟁점이다. 청와대 100m 이내 집회 금지에 대한 헌법소원은 앞서 결정된 유사한 사건과 마찬가지로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이 나올 수 있다. 헌재는 외교기관, 국회, 총리공관, 법원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서는 이미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위헌법률 심판사건에는 일명 ‘군 동성애 사건’으로 불리는 군대 내 성추행 형사처벌 사건이 눈에 띈다. 헌법 재판관으로 지명된 이석태 변호사가 대리인 단장을 맡았다. 군형법은 항문성교 등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군대 밖에서 동성과 합의하에 성관계를 한 육군 대위도 이 법 조항을 근거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1년 결정에서 근소한 차이(5대4)로 합헌 결정이 난 데다, 이 변호사가 재판관으로 합류하면 위헌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김해원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 조항이 명확하지 않아 이성 군인 간 항문성교까지 처벌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조항은 헌재의 8번째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메일 계정으로 4건의 이적표현물 문서파일을 전송받은 뒤 또 다른 사람에게 전송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이다. 이석태 변호사가 민변 회장 시절부터 국가보안법의 완전한 폐지를 주장해 왔고, 남북 간 화해 무드 등을 반영해 기존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의료인이 2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고 규정한 의료법 사건도 있다. 네트워크 병원들은 의료인의 직업수행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보건복지부 등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제한할 수 있다고 맞선다. 헌재는 2016년 공개 변론을 열었지만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생활과 밀착한 사건들도 있다. 한남연립 재건축조합이 제기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사건은 2014년부터 4년째 심리 중이다. 전기요금 누진제 사건에 대해 위헌법률제청한 법원은 “전기요금은 조세적 성격을 갖고 있는데, 현행 전기사업법은 전기요금의 실질적 내용에 대해 규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름마다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정부나 헌재 어느 곳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며 “헌재는 위헌 결정을 해야 하고, 정부도 생활 패턴에 맞게 누진제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사할린 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대일청구권협정 부작위 사건은 6년째 헌재에 계류돼 있다. 유사한 사건인 일본군 위안부 대일 배상청구권 관련 행정부작위 사건은 2011년 5년 심리 끝에 헌법에 반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반격 나선 트럼프… “中, 클린턴 ‘기밀 이메일’ 해킹”

    “FBI·법무부 정식수사를” 사법부 압박 정적 흠집내고 中 때려 국면전환 기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6년 미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을 중국이 해킹했다며 29일(현지시간) 이와 관련된 수사를 촉구했다. ‘러시아 스캔들’과 옛 측근들의 잇단 배신으로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정적’인 클린턴 전 장관의 약점을 활용해 러시아 대신 중국이 해킹 주체임을 암시함으로써 자신이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을 희석시키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0시쯤 트위터에 글을 올려 “클린턴의 이메일이 중국에 의해 해킹당했고 그중 다수는 기밀정보”라며 “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가 이와 관련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정식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 등 ‘러시아 스캔들’ 의혹을 놓고 자신과 맞섰던 사법당국 인사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수사를 하지 않으면 (사법당국의) 신뢰성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킹됐다’고 주장한 클린턴 전 장관의 이메일은 그가 국무장관 재직 시절(2009~2013년) 사용한 개인 이메일 서버를 가리킨 것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당시 개인 이메일 서버를 사용해 기밀문서를 주고받아 대선 때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밤 다른 트윗을 통해 “방금 ‘중국이 힐러리 클린턴의 개인 이메일 서버를 해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들은 그게 러시아가 아니라고 확신할까? (농담이다!)”라면서 해킹의 주체가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클린턴 전 장관의 재직 시절 워싱턴DC에 있는 한 중국 소유 기업이 클린턴 전 장관의 개인 서버를 해킹했다는 보수 인터넷 매체 ‘데일리 콜러’의 기사를 언급한 것이다. 데일리 콜러는 지난 27일 이 사안에 정통한 두 명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클린턴 전 장관과 관련한 이메일 해킹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대선 때 그의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와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주요 인사들의 이메일이 위키리크스에 폭로되자 미 정보당국은 이를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돕기 위한 러시아의 해킹이라고 결론 내렸다.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 중인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도 지난달 클린턴 캠프와 민주당에 대한 해킹 혐의로 러시아군 정보요원 12명을 무더기 기소했다. 한편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은 인터넷 안전을 지지하며 어떠한 인터넷 공격도 반대할 것”이라고 원론적 입장만 표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집현전 학사·中 사신 주고받은 시, 국보 된다

    집현전 학사·中 사신 주고받은 시, 국보 된다

    조선시대 집현전 학사로 활동한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이 1450년 중국 사신 예겸(1415∼1479)과 주고받은 시를 모은 문서가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1404호 ‘봉사조선창화시권’과 보물 제1405호 ‘비해당 소상팔경시첩’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23일 밝혔다. ‘봉사조선창화시권’은 1450년 즉위한 명나라 경제(景帝)가 내린 문서를 전달하러 조선에 온 예겸과 집현전 학사들이 문학 수준을 겨루며 쓴 시 37편이 수록돼 있다. 양국 간의 외교를 수행한 일면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한·중 외교사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은 친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이들이 다양한 서체로 쓴 글씨가 남은 ‘봉사조선창화시권’은 조선 전기 서예사 연구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비해당 소상팔경시첩’은 세종의 셋째 아들인 비해당 안평대군이 1442년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주제로 당대 문인 21명이 쓴 글을 모은 유물이다. 소상팔경은 중국 후난성 소상(瀟湘)의 여덟 가지 아름다운 풍경을 뜻한다. ‘봉사조선창화시권’에 글씨를 남긴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외에도 박팽년, 안숭선, 이보흠, 최항 등이 제작에 참여했다. 조선 전기 명사들의 필적이 남은 드문 자료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편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서적인 ‘이익태 지영록(知瀛錄)’과 조선시대 불상인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조살좌상’, ‘서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국립제주박물관 소장품인 ‘이익태 지영록’은 이익태(1633~1704)가 1694년 7월부터 1696년 9월까지 제주목사로 활동하면서 업무와 행정, 제주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이미 보물 제652호로 지정된 이형상(1653~1733)의 ‘남환박물지’보다 작성 시점이 8년 빠른 것으로, 제주도 최초 인문지리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보살좌상과 서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모두 17세기 불상이다. 불암사 불상은 조각승 무염을 포함해 5명이 1649년 완성했다. 높이 67㎝의 아담한 크기에 머리에 연꽃과 불꽃 모양으로 장식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칠보사 불상은 광해군 부인 문성군부인 유씨가 친정 부모를 위해 발원한 왕실 사찰인 자수사와 인수사에 1622년 봉안한 불상 11점 중 하나로 추정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판문점 선언 발맞춰… 국방백서 ‘북한군은 우리의 적’ 삭제 추진

    판문점 선언 발맞춰… 국방백서 ‘북한군은 우리의 적’ 삭제 추진

    참여정부때 삭제→연평 포격 후 敵 명시 軍 “긴장 완화 유지되면 敵 표현은 모순…12월 발간 때까지 상황 보며 신중 결정”정부가 2년마다 발간하는 국방백서에 표기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적대행위의 일절 금지를 명시한 판문점 선언의 정신을 바탕으로 향후 남북 관계 진전에 따른 군사적 상황을 반영하려는 취지다. 국방부 관계자는 22일 “북한에 대해 ‘적’이라는 표현을 유지할지 뺄지 검토 중”이라며 “국방백서를 발간할 올해 12월까지 남북 관계 및 안보 상황을 지켜본 뒤 충분한 검토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2016년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상시적인 군사적 위협과 도발은 우리가 직면한 일차적인 안보위협”이라며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명시했다.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은 북측이 연평도를 포격한 2010년 말에 발간된 2010 국방백서에 처음 등장했다. 이전에는 1994년 제8차 실무 남북 접촉에서 박영수 북측 대표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하자 1995년 국방백서에 ‘북한군은 주적’이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주적 표현이 쟁점화되자 2004년 국방백서부터 삭제됐고 ‘직접적 군사위협’, ‘심각한 위협’ 등으로 대체했다. 국방부는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는 조건인 ‘(군사적) 위협이 지속되는 한’이라는 문구를 들여다보고 있다. 즉 군사적 위협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적’이라는 표현을 ‘군사적 위협’ 등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국방백서에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대량살상무기, 군사력의 전방배치 등 직접적 군사위협”이라고 표기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종전선언 등이 빠르게 진행되고 남북이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시범철수 등을 시작으로 군사긴장완화 조치를 이어간다면 올해 말에도 북한을 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모순적일 수 있다”며 “상황을 봐가면서 표현을 결정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백서에서 북한에 대한 표현이 바뀔 때마다 거센 찬반 논란이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국방부도 북한을 적이라고 명시한 표현을 삭제하거나 대체하는 것을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군 소식통은 “군 장병 정신교육이나 내부 문서에서 북한을 적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국방백서까지 넣을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도 있지만 군의 존재 이유나 사기를 결정하는 문제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실장은 “대부분의 국가가 외교 문제를 감안해 상대를 적이라고 대외적으로 명시하지 않는다”며 “우리도 국방백서에 북한을 적으로 표기해 얻는 군사·외교·정치적인 이익보다 손실이 크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김기춘, 석방 8일 만에 다시 소환…‘재판거래’ 의혹

    김기춘, 석방 8일 만에 다시 소환…‘재판거래’ 의혹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지연하는 데 관여한 의혹을 받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4일 검찰에 소환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김 전 실장에게 이날 오전 9시 30분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김 전 실장은 검찰의 1차 소환 시점인 9일엔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검찰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 등을 상대로 낸 재판을 놓고 법원행정처와 청와대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 살펴볼 방침이다. 2013년 일본 전범 기업들의 재상고로 다시 시작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은 5년째 계류 중이다. 검찰은 지난 2일 외교부 청사 압수수색을 통해 김 전 실장이 2013년 10월 외교부 민원을 반영해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을 지연시키는 데 직접 개입한 문서를 확보했다. 김 전 실장이 청와대에 근무하던 2013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을 찾아가 강제징용 소송의 경과를 설명하고, 법관 해외파견 확대를 청탁한 정황이 드러났다. 김 전 실장은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출소한 지 8일 만에 다시 포토라인에 설 예정이다. 지난해 1월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수감된 김 전 실장은 대법원 재판을 받던 중 지난 6일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됐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이기적인 국민’의 탄핵소추를 허하라/이제훈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이기적인 국민’의 탄핵소추를 허하라/이제훈 정치부 차장

    2015년 무렵 여의도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가 여의도에 나타나 정치인과 만나거나 언론사 정치부 국회 담당 기자와 술을 먹고 상고법원 설치 당위성에 대한 논리를 설파한다는 것이었다. 국회 의원회관 복도에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는 소문도 들렸다.법무부와 함께 사법 정책을 담당하는 한 축인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은 늘 바쁘다. 그런 그들이 정치인을 만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다. 법조를 담당하는 사회부 기자도 아닌 정치부 기자를 만나는 일은 더더욱 흔치 않다. 당시에는 참 특이한 소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지난달 3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서가 추가로 공개된 뒤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법원의 사법행정사무 지원을 위해 존재하는 법원행정처에는 전체 2900여명에 달하는 판사 중에서 30여명 남짓만 근무한다.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도 능력이 뛰어난 엘리트 판사만 모여 근무한다는 외부의 평가와 행정처 근무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보증수표라 참고 견딘다는 말을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이 엘리트 판사들이 작성했다는 문건을 보면서 이들은 판사가 아니라 마치 정보기관의 정보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문건에서는 ‘법의 따뜻함’을 갖고 있어야 할 판사가 아니라 특권 의식에 물든 협잡꾼 같은 오만함까지도 엿보였다. 2014년 8월 31일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에는 국민을 “내 사건은 대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평가했다. 잘못 여부를 떠나 자신의 재판에 절박함을 갖고 있는 국민을 내려다보며 이기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묻어 있다. 2015년 7월 13일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법무부 설득방안’에는 “구체적으로 영장 없는 체포를 활성화해 수사기관에 재량권을 부여하겠다”는 생각도 담았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법원에서 국민기본권을 영장도 없이 제한하는 초법적인 생각을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황당함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가 판사 해외 파견과 징용 소송을 청와대에 함께 설명하며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에는 기가 막힌다. 사법고시 합격 한 번으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된 판사가 그것도 모자라 해외에서 면책특권이 적용되는 외교관 여권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특권 의식까지 드러낸 것이다. 이렇듯 괴물이 된 법원행정처의 전신을 보면 사실 일제 식민시대의 잔재가 묻어 있다. 법원과 판사를 지배하고 통제하고자 설치된 사법성(司法省)의 후신이 바로 일본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이다. 법원행정처는 사무총국의 기능을 본뜬 것이다. 5·16 쿠데타 당시 현역 육군 대령이나 검사 출신이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되면서 판사를 통제하는 기능을 한 곳도 바로 법원행정처였다. 이런 아픔의 역사를 가진 법원행정처가 판사 출신의 법원행정처장을 맞아서도 동료 판사의 재산 내역과 이메일을 사찰하거나 동향을 파악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만으로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신뢰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 시도는 국회가 개원한 후 1985년 유태흥 대법원장과 2009년 몰아주기 배당 의혹을 받은 신영철 대법관 등 모두 두 차례다. 둘 다 국회의 반대로 처리되진 않았다. 국민을 이기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기본권 보호 의무를 내팽개친 판사들에 대한 ‘이기적인 국민’의 준엄한 탄핵소추를 허(許)할 때가 됐다. parti98@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경세·문장 모두 탁월… 임진왜란 위기 헤쳐나간 명재상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경세·문장 모두 탁월… 임진왜란 위기 헤쳐나간 명재상

    낙동강 물줄기가 태극 모양으로 감싸고 돌며 수려한 긴 모래사장을 형성한 마을, 고색창연한 한옥과 전망 좋은 정자가 즐비한 마을, 산세가 험하지 않고 그늘이 없이 밝은 마을, 바로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이다. 조선 명재상으로 꼽히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을 배출한 곳이다.#이름을 짓기 어려운 큰 그릇 조선 중기 4대 문장가로 꼽히는 상촌 신흠은 서애를 수행했을 때 기억을 이렇게 술회했다. “공은 내가 글씨를 빨리 쓴다는 이유로 반드시 나에게 붓을 잡으라고 명하고 입으로 불러주어 문장을 이루게 하였다. 줄줄이 이어지는 문서나 편지를 비바람 몰아치듯 신속히 지었는데, 붓이 멈추지 않고 문장에 점 하나 더하지 않았어도 찬란하게 격을 이루었다.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까지도 또한 그렇게 하였다.” 우리가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을 선현 중에는 경세에 능했던 인물도 있었고, 문장에 능했던 인물도 있었고, 학문에 능했던 인물도 있었다. 그러나 한 인물이 두 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커다란 능력을 드러낸 경우는 많지 않았다. 문장이나 학문에 능한 사람은 경세나 행정에 어둡고, 경세에 밝은 사람은 문장이나 학문이 얕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애는 그런 상식에서 예외적인 인물이다. 영의정, 도체찰사(都體察使)로서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경세가이자 ‘맹자’의 문체를 체득한 이름난 문장가였다. 주자학에 깊은 조예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당시 학자들이 이단시하던 육상산과 왕양명의 학설에까지 관심의 범주를 넓혔던 학자이자 병법에 밝은 실무형 이론가이기도 했다.#퇴계 수제자… 병법에도 밝은 실무형 이론가 퇴계 이황의 수제자를 꼽을 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서애다. 21세 되던 해에 처음으로 퇴계의 문하에 들어 ‘근사록’(近思錄) 등 성리서를 배웠는데, 퇴계는 그를 만나 보고 나서 하늘이 낸 인재라고 찬탄했다 한다. 퇴계의 예언대로 서애는 임진왜란 당시 국가가 위난에 빠졌을 때 크게 공을 세웠다. “임금께서 한 발자국이라도 이 땅을 벗어나시면 조선은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두려움에 떨던 선조는 여차하면 중국으로 넘어갈 요량으로 국경과 가까운 곳으로 피란하려 했다. 조정의 일부 신하들도 이에 동조하였지만 서애는 극구 반대해 자칫 걷잡을 수 없이 번질 민심의 동요를 잠재웠다. 선조가 장수로 삼을 만한 인재를 천거하라고 했을 때는 지방 수령으로 있던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해 일방적으로 밀리던 전세를 역전시키게 만들었다. 소극적이던 명나라 원군을 설득해 끝까지 왜적을 몰아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명나라의 신병법인 기효신서법을 배워 군사들을 조련했고 훈련도감을 설치해 군사력 향상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파에 따라 서애의 활약상에 대해 다른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이 몇 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그의 탁월한 안목과 기여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사상의 정수가 담긴 잡저 서애의 문집은 가장 먼저 ‘잡저’(雜著) 부분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서애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글들을 모아 놓은 곳이기 때문이다. 잡저는 송(宋)나라 역사를 읽으면서 당대에 귀감이 될 만한 사건들에 대한 평설(評說)을 기록한 ‘독사여측’(讀史測) 등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정주학(程朱學) 계통의 이론을 담은 ‘주재설’(主宰說) 등과 양명학을 비판하는 ‘왕양명이양지위학’(王陽明以良知爲學) 등은 서애의 학문적 사상을 논할 때 필수적으로 인용되는 글들이다. 일견 여타의 정주학자들과 비슷한 견해를 보이지만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읽어 보면 양명의 주장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은연중 보여 주기도 한다. “왕씨의 의도를 잘 살펴보면, 대개 당시 세상의 학문이 외면적인 것으로만 치닫는 것을 경계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결같이 본심(本心)을 위주로 하여, 무릇 마음을 써서 강구하는 행위를 모두 행(行)이라고 여겼던 것이니, 이는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지나치게 곧게 된 경우이다.” #벼슬을 버리고 은거를 결심하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국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서애는 부단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했다. 그러나 선조는 계속해서 윤허하지 않았다. “의리상으로는 비록 임금과 신하였으나 정으로 볼 때에는 친구 사이와 같았다. 나만큼 경을 잘 아는 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 당인들은 집요하게 그를 공박했다. 마침내 그가 57세이던 1598년에 파직돼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때 관작을 삭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애초에 벼슬에 초연했던 서애로서는 이런 일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고 전란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유비무환의 교훈을 담은 ‘징비록’(懲毖錄)을 저술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다양한 사실을 담고 있어 숙종 연간에 이미 일본에서 입수해 출판하기도 했다. 이후로 다시는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지만, 나라를 향한 서애의 충정은 죽는 날까지 식지 않았다. “나라 위한 마음은 늙어서도 그대로라 세모(歲暮)에 빈산에서 비장하게 읊조리네 노년이라 매사에 감회가 일어나니 무단히 눈물이 홀연 옷깃을 적시네.” #사관(史官)도 놀란 조문 행렬 대신이 세상을 떠나면 사흘 동안 조정은 공무를 중지하고 시장은 문을 닫는 것이 전례였다. 서애가 고향 풍산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랬는데, 시장 상인들은 애도의 뜻으로 하루 더 문을 닫았다.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선조실록 사관의 평이 흥미롭다. 1000여명이나 되는 조문객이 한때 서애가 살았던 묵사동 빈집에 모여 조곡(弔哭)을 하였던 일을 전례가 드문 일이라고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 인물이 조정에서 발자취가 끊어졌고 상(喪)이 천리 밖에서 났는데도 온 성안 사람들이 빈집을 찾아 모여서 곡을 하였으니, 아마도 시사(時事)가 날로 잘못되어 가고 민생이 날로 피폐해지는데도 후임으로 수상(首相)이 된 자들이 모두 전 사람만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추억하기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의 백성 역시 불쌍하다.” 선조실록은 북인이 중심이 돼 기술했기 때문에 서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내용이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당시 사람들이 서애를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서애집’은 서애집(西厓集)은 조선 선조 조의 명재상이었던 류성룡의 시문집이다. 원집(原集) 20권 10책, 별집(別集) 4권 2책, 연보(年譜) 3권 2책 등 총 27권 14책으로 구성됐다. 인조 11년(1633년) 봄에 합천 해인사에서 원집과 별집을 합쳐 초간했다. 고종 31년(1894년) 가을에 하회의 옥연정사에서 연보를 추가 중간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에서 1982년에 번역, 출간했다. 류성룡의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북한산 석탄 위장 반입 업체, ‘기소의견’으로 송치

    북한산 석탄 위장 반입 업체, ‘기소의견’으로 송치

    정부가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 등으로 속여 위장 반입해온 수입업체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은 10일 오후 2시 정부대전청사에서 이런 내용을 포함한 ‘북한산 석탄 등 위장 반입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관세청이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석탄이 러시아 등을 거쳐 국내에 들어왔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한 지 10개월 만이다. 관세청은 수사 과정에서 북한산 석탄이 러시아산으로 위장돼 일부 국내로 반입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장 반입 배경과 관련해서는 북한산 석탄이 상대적으로 싸다는 점을 노린 개인 수입업자의 일탈 행위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조현 외교부 2차관은 전날 국회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만나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과 관련 “수입업자의 일탈 행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관세청은 관련 업체를 관세법 위반(부정수입)과 형법상 사문서위조 혐의로 이날 오전 대구지검에 송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로부터 북한산 석탄을 수입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남동발전은 사전에 북한산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 등을 근거로 불기소 의견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관세청의 조치 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수입업체를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에 통보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안보리 결의 상 수입이 금지된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이 사실상 최종 확인됨에 따라 이에 따른 외교적 파장도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산 석탄 밀반입에 연루된 한국 기업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정부 등에 대해서도 제재를 하는 것을 뜻한다. 다만 정부는 우리가 미국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컨더리 보이콧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조 차관은 전날 국회에서 “우리 정부 간 협의로는 이것은 그런(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같은날(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산 석탄 반입 문제에 관해 “우리는 한국 정부와 탄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신뢰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연임이냐 탄핵이냐… 트럼프 운명 쥔 ‘러시아 스캔들’

    [글로벌 인사이트] 연임이냐 탄핵이냐… 트럼프 운명 쥔 ‘러시아 스캔들’

    美 경제 성장 업고 트럼프 지지율 정점 ‘집사’ 코언 폭로로 장남 수사선상 올라 뮬러의 트럼프 대면조사 실현 미지수 수사결과·종결시점 따라 선거 판도 요동 세계 정치와 무역 질서를 흔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기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전통적인 우방인 유럽연합(EU)을 향해 관세폭탄의 집중포화를 쏟아붓기도 하고, ‘정적’인 러시아에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좌충우돌의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2분기(4~6월)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4.1%라는 기록적인 성장세를 발판으로 최고점인 45%를 찍었다. 이는 2020년 재선의 풍향계로 불리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리얼클리어 폴리틱스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리할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다. 하원 의석을 공화 202, 민주 199(경합 34곳)로, 상원 의석도 48대45(경합 7곳)로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인 여당(공화당)이 하원의 다수당을 야당(민주당)에 빼앗기는 선례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다. 바로 취임 초기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던 ‘러시아 스캔들’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크 코언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큰아들인 트럼프 주니어가 특검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 따라서 이번 중간선거의 승패는 ‘러시아 스캔들’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워싱턴 정가의 시선은 ‘북·미 관계’가 아니라 바로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고 있는 로버트 뮬러 특검의 ‘입’에 쏠려 있다. 언제쯤 수사 결과를 발표하느냐에 따라 중간선거의 판도가 뒤흔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최측근 코언의 변심… 특검 호재로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핫’한 인물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개인 변호사이자 ‘해결사’, ‘충견’으로 불리는 코언이다. 그는 2006년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잡일을 챙겨 온 ‘집사’다. 그런 코언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며 뮬러 특검에게 ‘협조’를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치명적인 개인사까지 아는 코언의 변심은 뮬러 특검에게 가장 큰 ‘호재’다. 코언은 지난 2일 A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아내와 딸, 아들이 내가 가장 충실해야 할 대상이다. 나는 가족과 국가를 최우선에 둔다”고 강조했다. 이는 코언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뮬러 특검에게 협조할 것이라는 항간의 소문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코언은 지난달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캠프 인사들과 러시아 관계자의 만남인 2016년 (트럼프타워) 회동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고 CNN 등 미 언론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가 당시 대선 캠프 측과 만나자는 러시아 측 인사들의 제안에 관해 아버지(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수락했으며 당시 자신(코언)은 이 대화가 오간 자리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코언의 주장을 뒷받침할 녹취록 등 구체적인 증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언의 주장에 따라 특검의 칼날이 트럼프 대통령과 큰아들인 트럼프 주니어 등 측근을 조여 오자 지난 5일 자신의 트위터에 2016년 트럼프타워 회동을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타워 회동에 대해 “이건 상대편(민주당 힐러리 진영)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한 회동이었다”며 “전적으로 합법적이었고 정치에서는 늘 행해졌던 일이다. 그리고 아무런 성과(진전)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것에 관해 몰랐다”고 결탁 의혹을 부인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는 뮬러 특검과 이를 보도하는 미국 언론을 싸잡아 공격했다.●선대위원장 매너포트 재판… 스캔들 분수령 또 하나의 러시아 스캔들 분수령은 ‘특검 기소 1호’인 폴 매너포트 전 트럼프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의 재판 결과다. 지난달 31일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연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날 선 공방을 벌였다. 두 번째 재판은 오는 9월 열린다. 매너포트의 재판 결과가 사실상 뮬러 특검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매너포트의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특검팀의 신뢰도 타격은 물론이고 공화당 내에서도 ‘특검수사를 걷어치우라’는 요구가 확산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 등은 전망했다. 반대로 매너포트가 유죄 선고를 받는다면 특검수사를 마녀사냥으로 공격해 트럼프 대통령이 코너로 몰리게 된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매너포트의 유죄가 인정된다면 뮬러 특검에 힘이 실리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 주니어,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등이 코너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선거 전 발표 땐 후폭풍 커… 내년 연기될 듯 로드 로젠스타인 미 법무차관은 지난해 5월 17일 전격적으로 뮬러 특검을 임명하면서 지난 대선 기간인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캠프와 러시아의 공모 관계 수사를 허용했다. 특히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경질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된 마이클 플린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혐의도 특검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방해를 하려는 의도였는지, 대선 과정에서 자신의 선거 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결정적이고 공개적인 증거가 아직 드러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초미의 관심사는 뮬러 특검의 마지막 관문인 트럼프 대통령 대면 조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든 뮬러 특검의 대면 조사에 응하겠다고 장담했지만, 백악관은 공공연하게 이를 거부해 왔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 조사가 이뤄질지 미지수다. 뮬러 특검은 로젠스타인 차관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기소 또는 불기소 내용을 포함한 기밀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수사를 종료한다. 그러면 로젠스타인 차관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한 모든 형사사건에 대해 서명하고 법무부가 뮬러 특검의 권고를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해 의회에 전달해야 한다. 따라서 뮬러 특검의 수사 결과와 종결 시점에 따라 중간선거의 판도가 요동칠 수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올 연말까지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마무리 짓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연방 검찰은 일반적으로 선거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정치인들에 대한 공개적인 수사 절차를 피하고, 기소장도 반려한다고 미 법무부는 규정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로젠스타인 차관이 2018 회계연도 마지막 날인 오는 9월 30일에 뮬러 특검팀 수사를 자연스럽게 끝내도록 하는 방법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절차와 상관없이 로젠스타인 차관이 뮬러 특검팀의 수사 중단을 요구하면 뮬러 특검은 바로 해임되고 수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연방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는 ‘규정에 따라 임명된 특별검사는 제한된 시간과 범위를 가질 것으로 예상하고, 조사는 분명한 종점이 있다. 조사 기간과 범위는 언제나 법무장관(대행)의 통제하에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공화당 의원 11명이 지난달 25일 로젠스타인 법무차관의 탄핵안을 발의하면 ‘특검의 수사 중단’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공화당 내부에서도 법무차관의 탄핵안 발의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등 사실상 의회 통과는 불가능하다. 위싱턴의 한 외교관은 “뮬러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가 오는 11월 중간선거 전에 발표된다면 미 정가에 강한 후폭풍이 예상된다”면서 “따라서 중간선거 이후인 내년 초쯤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北석탄 논란 선 긋는 정부 “반입 의혹 9건 조사중… 한·미 공조”

    외교부 “美 , 어떤 우려도 표명 안해” 강조 “석탄 가격 높게 신고해 의심 못했다” 해명 실질 조치로 국제적 불이익 크지 않을 듯 원산지를 러시아 등으로 속여 지난해 10월 북한산 석탄이 국내에 반입된 사안에 대해 외교부는 모두 9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6일 밝혔다. 또 한·미 간에 긴밀한 공조가 이뤄지고 있으며 미국은 한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있다는 등의 어떤 우려도 표명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은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을 조사하는 정부의 노력을 평가하고 있다”며 “한국에 대해 유엔 안보리 결의상 제재 이행에 충실하고 신뢰하는 협력국이라고 밝힌 바도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미국은 우리 측에 어떤 우려도 표명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북한산 석탄의 반입에 따른 국제사회 불이익 가능성에 대해 외교부는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조사에서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석탄이 특정 국가에 반입된 경우가 23건에 달하지만 조사 등 실질적 조치를 취하는 건 한국 정부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안보리 결의를 제대로 이행하는 나라에 불이익을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논리다. 외교부는 관심 있게 살펴보는 석탄 반입 사례는 모두 9건으로 관계기관으로부터 통보된 것도 있고 수사 중에 자체적으로 알게 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산에 비해 북한산 석탄이 40%나 저렴하게 수입됐음에도 정부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수입업자의 신고 가격은 유사한 사례의 석탄 신고 가격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며 “그래서 당연히 의심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석탄 성분검사로 러시아산과 북한산을 구별하지 못했느냐는 지적에 대해 외교부는 “성분을 분석해서 원산지가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한계가 있다”고 반박했다. 외교부는 성분조사보다 참고인 조사, 수입 관련 서류 조사를 통해 수입업자가 고의로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 등으로 속였는지를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석탄 수입업자는 관세법상 부정수입, 형법상 사문서 위조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한국은 2010년 5·24 대북 제재에서 북한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고 있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에도 해당된다. 다만 외교부는 지난해 10월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석탄을 수입한 혐의를 받는 남동발전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했다고 소개하면서도 “9건 중 일부는 무혐의가 될 수 있어 현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북한산 석탄을 싣고 인천, 포항, 평택 등의 국내 항구에 입항한 북한 선박은 총 8척, 국내 반입 석탄량은 2만 4000t으로 알려졌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CVID 빠진 ARF의장성명 “北 완전한 비핵화 이행하라”

    CVID 빠진 ARF의장성명 “北 완전한 비핵화 이행하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안정 노력 촉구 한·중 북핵 수석대표 ‘종전선언’ 논의싱가포르에서 6일 발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에 당초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문구 대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CD)라는 문구가 포함된 것은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 과정에서 CVID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보이는 북한의 입장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는 ARF 회의에서 27개 회원국 외교장관이 모두 연설에서 언급할 정도로 화제의 중심이었다. 당초 가장 큰 이슈로 생각됐던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문제보다도 더 의장성명 앞에 배치될 정도였다. 각국 외교장관의 연설을 종합한 의장성명은 지난 4~5월 남북 정상회담과 6월 북·미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한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판문점 선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서명한 공동성명을 환영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의장성명에는 모든 관련국이 판문점 선언 및 북·미 정상 공동성명의 완전하고 신속한 이행을 포함해 비핵화된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와 안정의 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이런 분위기는 판문점 선언 등 한반도 평화의 진전을 지지하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로 읽힌다. 사실 지난해 의장성명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도발로 인해 ‘심각한 우려’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또 한반도의 CVID를 평화적으로 달성하는 데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다는 표현이 포함됐다. 하지만 북한은 CVID에 대해 ‘패전국에나 쓰는 용어’라며 크게 반발해 왔다. 따라서 이번 ARF 의장성명에서 CVID 표현을 삭제한 것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으로 지난해와 다르게 국면이 전환되면서 국제사회가 북한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외교부는 “정부는 남북 정상 및 북·미 정상이 합의한 문서에 CD가 포함된 만큼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활용함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설명한 바 있다”며 “ARF 의장국 입장에서는 ARF가 북한이 참여하는 역내 유일한 다자협의체라는 점 등을 감안해 균형된 표현을 사용하려 노력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한편,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오전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부장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만나 종전선언의 진행 상황을 포함해 한반도 정세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은 종전선언 참여 여부에 대해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한국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서울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한국 정부, 종전선언 추진 총력… 해법은?

    한국 정부, 종전선언 추진 총력… 해법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5일 싱가포르 칼튼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연내 종전선언 추진과 관련해 “계속 협의를 하고 있다. 이번에도(아세안 회의에서도) 미국, 중국과 상당한 협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계기로 지난 1일부터 4일간 싱가포르를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왕이 중국 외교부장,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등과 총 12번의 양자 회담을 갖었다. 특히 지난 3일 환영 만찬에서는 리용호 북 외무상을 조우했다. 강 장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북·미 대화에 대한 짧지만 진솔한 의견을 나누었다”며 “종전선언에 대해 의견 교환이 있었고 (북측의) 공개 발언을 보시면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리 외무상은 전날 ARF 회의 연설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해 핵실험과 로켓 발사시험 중지, 핵실험장 폐기 등 주동적으로 먼저 취한 선의의 조치들에 대한 화답은 커녕 미국은 오히려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며 “조선반도 평화보장의 초보적 조치인 종전선언 문제까지 후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는 9월말에 열리는 유엔총회가 종전선언을 실행하는 좋은 무대라고도 했다. 다만 그는 “유엔총회를 중요한 계기로 보지만 총회를 넘어 다른 중요한 계기들도 있다”며 “종전선언을 연내에 이루겠다는 목표를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고, 주요 협의 대상국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목적(종전선언) 달성을 위해 협의를 긴밀히 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북·미간 친서 외교가 재개된 것도 종전선언을 위해 우호적인 여건으로 보인다. 지난 4일 미국 대표단의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ARF 회담장인 엑스포 컨벤션 센터에서 리 외무상에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내용을 전했다. 이는 지난 1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 대한 답신이다. 종전선언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은 없어도 조속한 시일 내에 만나자는 식의 내용은 포함됐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무엇보다 북측의 미군 유해송환에 이어 북·미 간에 소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정부는 연내 종전선언 추진을 위해 문안 작성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적 효과를 가급적 배제하는 ‘정치 문서’로 추진하고, 문안은 최대한 간소화하는 식이다. 종전선언에 적극성을 보이는 북한과 달리 핵시설의 완전한 신고를 포함한 가시적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며 ‘신중론’을 펴는 미국의 저항감을 낮추려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종전선언에 북한의 비핵화를 명시하거나 평화협정까지 정전체제를 유지한다는 식의 문구를 넣어 미국이 조기에 종전선언에 참여토록 하자는 의견이 나왔었다. 하지만 이 경우 북한이 반대할 수 있다. 따라서 외려 종전선언을 간결하게 만들고 정치적 선언임을 강조함으로써 북에게는 미국의 대북 조치에 대한 신뢰감을 주는 동시에, 미국 내 반대 여론도 완화시키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강경화 “완전한 비핵화 확신 때까지 대북제재 지속”

    강경화 “완전한 비핵화 확신 때까지 대북제재 지속”

    中 “남북 종전선언 제스처 긍정적” 美대사 “北 가시적 움직임 더 있어야”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일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까지 제재가 계속돼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대북 제재와 관련해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인근 국가의 선박을 통한 불법 환적 문제가 있는데 안보리(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확실히 이행하기 위해 한·미·일이 특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앞서 열린 한·러 외교장관회담에서도 러시아 측이 자국에서 환적된 북한산 석탄이 한국에 들어간 것에 대해 언급하기는 했지만 심도 깊은 논의는 없었다. 최근 북·미 비핵화 협상의 결정적 변수로 부상한 ‘종전선언’은 싱가포르에서도 화두였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언론브리핑에서 종전선언을 묻는 질문에 “종전선언 이슈는 우리 시대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한반도의 두 나라(남북)를 포함해 모든 국가 국민들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적 절차가 필요한 평화협정은)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모여 앉아 진중한 토론을 하고 관련 당사국들이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확인돼야 한다”며 “이 둘(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한반도 양측 또는 다른 당사국들의 선언으로 전쟁을 끝내려는 제스처는 분명 긍정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참여를 원하는 중국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는 대북 제재에 대해서도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서 당연히 새로 다시 고려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날 예정됐던 한·중 회담은 중국 측 일정이 지연되면서 3일로 연기됐다. 한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서울 정동 대사관저에서 부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종전선언을 하려면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더 많은 가시적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며,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 종전선언을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너무 빨리 가다가 (종전선언과 같은) 되돌릴 수 없는 조치를 취했는데 협상이 좌초하면 김정은이 득을 볼 수 있다”며 “한번 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비핵화) 프로세스의 초기 시점에, 종전선언 같은 것을 하는 데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폈다. 중국의 종전선언 참가에 대해서는 “북한 비핵화에 있어 중국은 파트너”라면서도 참가 지지 여부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싱가포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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