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반기문의 고민/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1999년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스위스의 산간마을 다보스를 찾았다. 세계경제포럼 참가자들과 함께 21세기를 꿈이 있는 미래로 만들기 위한 방문이었다.
그해,1000여명의 세계경제포럼 회원과 합의한 것이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지구서약)’이다. 범지구적 서약이 세계 최대 국제기구인 유엔의 최고 지도자인 코피 아난 사무총장과 세계 최대 경제인 모임인 세계경제포럼이 협의해 탄생시켰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다.
이 지구서약에 2000년 이후 수많은 모범 기업이 참여, 서명하기 시작해 그 숫자가 지난해 말까지 3000여개나 되고, 단체까지 합하면 4000여개에 이른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정례적으로 참여하는 기업의 4배나 되는 기업이 이 지구서약에 이미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구서약은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무시되거나 은폐돼 왔다. 유엔 사무총장에 우리나라 출신의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선출되고 나서야, 뜻있는 기업과 단체들이 이 지구서약에 가입했다. 그러나 아직 40개,1%에 미달한다.
왜 그럴까? 왜 우리 경제인들은, 우리 기업들은 이 글로벌 콤팩트에 무관심할까? 아니면 기피하는 것일까?
이 지구서약의 내용을 보면 조금 감이 잡힌다. 그 안에는 4개 분야에 10대 원칙이 있다. 기업이 인권보호, 노동권보호, 환경보전 및 반부패 등 4가지 사회적 책임을 주도하고 윤리경영에 앞장서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지구적 보편원칙과 가치체계를 자발적으로 합의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기업으로선 근로자의 실질적인 결사의 자유와 집단 교섭권 인정, 부패 추방이 크게 부담스러웠던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가 주춤거리는 사이 우리의 경쟁국인 중국과 인도의 기업들은, 흔히 말하는 개발도상국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3배,4배나 많이 서명해 우리를 훨씬 앞서가고 있다.
급기야 지난 3월에는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조사기관 보고서에서 중국의 반부패지수가 우리나라보다 앞선 아시아 7위로 발표돼 우리 경제인들이 국제사회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기 어렵게 만들었다. 아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더 겸연쩍고, 창피하기도 하고 난처해졌는지도 모른다.
국민과 국가가 힘을 합해 우리 한국인을 유엔의 사무총장직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정작 그 자리에서 수행해야 할 세계적 비전과 사명에는 모국의 기업과 경제인들의 관심이 없으니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물론 지구서약 못지않게 엄격한 윤리경영을 꿈꾸거나 실천하는 기업인들의 모임인 ‘윤경포럼’에 70여개 기업회원이 있어, 조금 위안은 된다. 하지만 지구촌 리더들의 모임인 다보스와 유엔 등 세계적 기구에서 한국과 한국기업, 그리고 한국 지도자의 위상이 점점 왜소해지는 것이 불안하고 두렵다.
현재 세계 정치·경제·사회 지도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기후방지협약에도 가입은 했지만, 우리나라는 국가적·범국민적 에너지 감축방안을 오늘 이 순간까지도 국내외에 천명하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세계적 모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합의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자는 지구촌 서약에서도 우리는 크게 뒤처져 가고 있다.
우린 지금 어디로 가려 하는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고민을 덜어줄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지도자는 어디 없을까?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