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외교무대
    2026-03-22
    검색기록 지우기
  • 어린이날
    2026-03-22
    검색기록 지우기
  • 전기버스
    2026-03-22
    검색기록 지우기
  • 뱀파이어
    2026-03-22
    검색기록 지우기
  • 중국 수출
    2026-03-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20
  • 셰바르드나제 그루지야 원수에/“고립벗고 서방경원 유치”기대반영

    구소련의 외무장관으로 냉전시대 세계외교무대에서 화려한 활동을 보였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가 조국 그루지야로 돌아와 국가원수인 국가평의회의장에 선출됨으로써 오랫동안 계속돼온 이 나라의 정치·사회적 혼란이 수습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셰바르드나제의 등장은 그루지야인들의 마지막 희망으로 여겨져 왔다.그의 선택은 구소련외무장관 재직시절 서방에서 누린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구소련공화국들중 유일하게 독립국가연합(CIS)에 참여치 못해 자초한 그루지야의 정치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서방으로부터의 경제지원도 활발히 유치하는데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라는 그루지야인들의 기대를 반영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대가 큰만큼 그가 떠맡을 부담 또한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세력이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지난 1월 축출된 감사후르디아 전대통령의 지지세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을 비롯 감사후르디아의 축출을 가져온 내전은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그루지야에 남겨놓았다.또 그가 서방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서방측이 유독 그루지야에만 획기적인 경제지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는 외무장관이 되기전 13년간 그루지야 공산당제1서기로 있었는데 일부에선 그당시를 『단지 독재의 시절이었을뿐』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셰바르드나제는 국가평의회의장에 선출된뒤 『트빌리시로 돌아온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앞으로 자신이 맡아야할 과제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셰바르드나제 역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ILO가입과 노사관계(사설)

    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정식회원국이 되었다.우리는 이번 ILO가입을 계기로 국제노동외교의 본 무대에 진출하게 된 셈이다.노동분야의 국제교류와 협력확대를 강화하는 한편 국제적으로 잘못 알려진 국내 노동의 실상을 제대로 인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는 지금까지 ILO의 준회원국에 불과해 국제노동무대에서 독자적인 발언권을 갖지 못했다.그로인해 우리 노동환경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전달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한예로 한국은 「저임금국가」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한국의 지난해 시간당 평균임금(달러기준)이 신흥공업국(NICS)가운데 가장 높다.싱가포르의 전국노동조합 기관지 NTUC 뉴스가 미국 노동통계국자료를 인용,발표한 자료를 보면 90년 시간당 평균임금은 한국이 4.16달러,홍콩 3.9달러이다.싱가포르가 3.78달러이고 대만이 3.2달러이다.한국은 지난 87년까지 NICS 가운데 평균임금이 최저였다.그러나 88년이후 높은 임금인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다.그런데도한국이 최저임국가로 알려져 있다. 임금실상의 한가지 예에서 보듯이 현재까지 우리의 노동외교는 보잘것이 없었다.이번 ILO 가입은 우리의 노동외교무대를 넓히는 계기가 되는 반면에 이 기구나 회원국으로부터 노동환경의 개선 권고 내지는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정부는 ILO의 협약가운데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부터 비준해 나가는 단계적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 정부 역시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는 협약,국내법의 일부 개정으로 비준이 가능한 협약부터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국제기구의 가입은 정부권한에 속한다.정부가 국내 경제사정,성장단계,노동관습,기업가와 근로자간의 관계,국민이 보는 노동운동등 여러가지 관점을 고려하여 협약의 비준여부를 결정하는게 타당하다.노동단체의 의견만을 수렴할 수만은 없다는게 우리의 생각이다. 협약비준과 관련하여 국내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공무원노조의 경우 서구의 공무원과 유교문화권의 공무원과는 다르다.유교권의 관주도내지는 관우위의 풍토나 관념이 잔재해 있는한 공무원노조의 결성은 문제가 있다. 또 한가지는 복수노조문제이다.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국내 노조단체간의 대립 가능성이 매우 높다.노로간의 대립이 개별기업은 물론 국내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88년 이후 노동운동에서 실증된 바 있다.노로대립은 근로자의 권익옹호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우리나라 노동운동이 한단계 성숙된 단계로 이행된 다음에 복수노조가 허용되어도 늦지 않다.제3자 개입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ILO가입으로 근로자의 권익이 종전보다 옹호되리라는데 의견을 달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더구나 그 외교가 근로자들의 권익을 위한 것이라면 해당 단체는 정부와 서로 협력하여 노동외교를 강화해 나가는게 올바른 수순이다.성급하게 ILO의 특정협약을 비준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기 보다 국익우선의 외교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얼굴)

    ◎개혁파의 핵심… 소·동구문제 전문가 전기침 외교부장은 30여년만의 중소관계정상화와 13년만의 중·베트남 관계정상화를 실현시킨 현중국외교의 주인공.멀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중국 외교관계 수립에서도 중국측 주역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88년 외교부장 취임이래 동구를 휩쓴 민주화물결,천안문사태로 인한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고립,냉전체제의 종식과 걸프전쟁및 소련공산주의의 붕괴등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경제블록화 추세등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속에서 중국의 외교방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치를 정립시킨 제1의 공로자라 할 수 있다. 1928년1월 상해에서 출생한 전부장은 중국공산주의 청년당원에서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전임외교부장이었던 오학겸부총리와 인연을 맺은뒤 이를 바탕으로 외교무대에서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려온 외교관료출신이며 등소평의 개혁노선을 열렬히 지지하는 개혁파의 핵심이다.그는 소련대사관에서의 오랜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소련및 동구문제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러시아어 외에도 영어와 불어등 외국어에 능통한데다 항상 뛰어난 화술과 유연하고 침착한 행동을 유지,동료외교관들은 물론 국내외 기자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 APEC 서울총회(사설)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각료회의(APEC)의 제3차회의가 되는 「서울총회」가 12일 개막된다.탈냉전의 새로운 세계 질서가 태동하고 있는 시기다.남·북미와 유럽등지의 배타적 경제블록화가 심화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아시아·태평양지역의 새로운 경제협력질서가 요구되는 시기의 아·태경협각료회의인 것이다.그만큼 중요한 국제회의다. APEC는 89년 우리와 호주가 주도해서 창설한 국제협력회의다.그리고 이번 총회는 우리가 의장국으로 주최하는 서울총회인 것이다.그래서 우리에겐 더 중요하고 관심이 가는 국제회의다.그뿐이 아니다.당초의 12개 회원국에서 중국·대만·홍콩이 신규가입하는 국제회의인 것이다.호칭문제로 미묘한 갈등의 중국과 대만을 중재해 나란히 가입하고 참석하게 만드는 외교역량을 과시한 것이 우리 정부다. 이번 총회의 성공은 물론 APEC의 발전엔 우리에게 중요한 책임이 있다.그만큼 신경을 쓰고 노력해야 할 회의라고 생각한다.이번 총회에는 미·중·일등 15개 회원국들이 외무·경제장관들을 단장으로하는 대표단을 대거참석시킨다.회의를 중요시 한다는 뜻이다.특히 미국에선 베이커국무가,중국에선 이람청대외경제무역부장과 함께 전기침외교부장이,그리고 일본에서는 신임 와타나베외무장관이 직접 대표단을 이끌게 된다.베이커도 서울이 처음이지만 미수교국인 중국의 외교·무역장관이 직접 10여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총회를 계기로 APEC는 그동안의 비공식 의견교환의 완만한 협의체에서 상설자유무역촉진기관으로 발전하며 아시아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를 목표로 새 출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역내의 지속적 성장을 통해 세계경제발전에 기여하며 역내의 다양성과 참가각국의 입장을 동등하게 존중하면서 상호이익을 추구하고 GATT체제하의 다자교역을 강화하는데 기여한다는 내용을 담은 「서울선언」도 채택될 예정이다.APEC의 최대 장점인 폐쇄적 경제블록화 지양의 개방적 지역주의정신을 기초로하는 것이다.APEC의 이 정신이 폐쇄적 성격의 강화로 우려되는 경제블록들의 개방성을 유도하는 자극제가 되기를 우리는 바란다. 이번 총회에선 기구본래의 회의말고도 참가 각국 장관들의 다자 혹은 다각적인 쌍무회담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미국과 중국,중국과 대만등의 접촉이 주목거리다.제3국에서의 만남이지만 중국과 대만의 공식접촉은 특히 큰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역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우리를 중심으로 하는 미·일·중과의 접촉및 기타 회원국들과의 경협외교일 것이다.특히 우리대통령과 중국외교부장의 개별면담도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한중외무·상공장관회담도 개최되며 조기수교및 경협체결 문제가 논의될 전망이다.한중조기수교의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아무튼 이번 총회를 계기로 서울은 다시 한번 아·태경제협력외교의 주무대로 부상하게 되었다.실속도 차리면서 아시아경제외교의 주역으로서의 역량도 충분히 발휘하길 기대한다.이 외교무대에 꼭 있어야 할 북한이 보이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쉽다.북한과 소련까지도 참가하는 다음총회가 되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 옐친 취임 1백일/소련의 운명을 바꿨다

    ◎발트3국 독립·공산당활동 금지 업적/치솟는 인기… 지지율 고르비2배 79%/독재성향으로 측근과 불화… 식량난 해결 과제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17일로 취임 1백일을 맞았다.역대 지구상의 어떤 지도자도 취임 1백일 동안 옐친 만큼 자신의 위상은 물론 한 국가의 운명을 이렇게까지 바꾸어놓은 인물은 없을 것이다. 지난 7월10일 소련역사상 최초의 민선대통령으로 러시아공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만해도 그는 거대한 소련방을 구성하는 한 공화국의 지도자일 뿐이었다.그러나 지금 그는 고르바초프대통령에 뒤지지 않는 실권을 행사하며 외교무대에서는 「국가원수」대접을 받고있다.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관계도 크게 뒤바뀌었다.지난달 6일 미ABC­TV에 고르비와 함께 참석한 자리에서 옐친은 『고르비가 한때 나를 정치적 사망자로 취급한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하지만 8월 쿠데타때는 그가 「정치적 사망자」가 될뻔한 고르비를 구해주었다. 7월말 크렘린궁에서 화려한 미소정상회담이 벌어질 때 옐친은 「구색갖추기」로 테이블 한귀퉁이에 자리를 얻어앉았었다.그러나 고르비 불재중인 쿠데타기간 동안 부시미대통령은 옐친과 거의 매일 통화하며 대책을 상의,그를 사실상 소련의 지도자로 대우해 주었다. 지금 소련에서 이루어진 많은 긍정적인 변화 대부분이 그의 주도와 구상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르바초프가 끝까지 독립을 허용하지 않겠다던 리투아니아와 독자적으로 국가조약을 맺은 것이 지난 7월29일이다.그로부터 1개월 반만에 소련정부는 리투아니아는 물론 발트3국과 모두 국교를 수립했다. 취임직후 포고령을 발표,러시아공내 공장,학교등 모든 공공조직에서 공산당세포의 활동을 금지시켰을 때 소련정부는 이를 위헌이라며 그를 헌법위원회에 제소했다.그런데 한 달여 뒤,그러니까 쿠데타실패후인 8월29일 소련전역에서 공산당활동이 공식중지됐다. 강화된 그의 위상에 대해 우려의 소리도 적지 않다.일부에서는 그가 러시아민족주의를등에 업고 너무 초법적인 권한을 휘두른다고 비난한다.이반 실라예프총리를 비롯 연방각료 대부분을 러시아정부출신들로 메웠고 핵무기사용권도 러시아가 갖겠다고 요구하기도 했다.쿠데타 직후 한때 프라우다를 비롯한 공산당 기관지들을 모조리 폐간,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기본소양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9월에는 그의 독재적인 통치스타일에 불만을 품고 러시아공에서 알렉산더 루츠코이,이고르 가브릴로프등 2명의 부총리가 사임하는등 내분이 발생했다.크렘린내 보수세력들과 싸우기 위해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던 민주인사들이 소련이 정치적으로 확실하게 진보·개혁의 길로 들어선 지금 그의 개인적 성향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공산주의에 물들지 않은 진짜 「민주적인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 쐐기를 박으려는듯 15일 옐친은 조만간 대폭개각을 단행하고 가격자유화등 폴란드식「쇼크요법」경제개혁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고르바초프를 대신해 명실상부한 소련 지도자로 등장할 것이냐에 관심을 갖고 있다.갖가지 추측들이 있으나 옐친은 내년 실시예정인 연방대통령 직선에 아직 출마할뜻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이완된 소련방체제에서 실질적인 주인노릇을 할 러시아공 대통령이 실속이 더 낮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9월말 소련과학아카데미의 한 여론조사는 지지도에서 옐친이 79.5%로 31.9%의 고르비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취임 1백일이 됐는데도 경제적으로 소련국민들의 생활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금년 겨울 월동용 연료와 식료품난이 현실화될 경우 그가 지금 소국민들로부터 누리는 인기는 언제 불만으로 바뀔지 모른다. 옐친의 대통령취임 1백일이 소련국민들에게 「공산독재의 청산」이라는 정치적 갈증을 풀어준 시기였다면 앞으로 그가 해결해야 할 경제적 문제들은 이보다 훨씬 더 힘든 과제라는 어두운 전망들이 많다.
  • 전 김일성 통역관겸 고위외교관/고영환은 말한다:3

    ◎세습 절차만 남긴 평양 권부/개혁파,있지도 않고 설땅도 없다/오진우등 혁명1세대 이미 노망기 보여/서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외면 당해 얼마전 남한언론들이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의 사진이 로동신문에 게재됐다는 외신보도에 관심을 표명한 것을 보았다.김성애의 사진공개는 한마디로 김정일의 지휘가 확고부동함을 시사해주는 것이며 동시에 김정일이 서모 김성애와 그 이복동생들을 괄시한다는 서방언론들의 비판을 의식,김정일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깔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김의 권력승계와 관련,김성애와 김평이등 이복형제,그리고 혁명1세대들의 반발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과정에 불과하다. 김정일의 이복형제들에 대한 견제와 관련해선 이런 일화가 있다. 지난 82년 당시 당정치보위부장이던 김병하가 하루 아침에 「부화」(연애)및 사치등의 죄목으로 목이 뎅강 날아갔다.그는 당시 김정일로부터 그의 이복형제들인 김평일 김영일등에 대한 사찰명령을 받고 『수령님이 살아계시는데 차마 그럴 수 있느냐』고반발했다 숙청을 당한 것이다. 불가리아대사인 김평일은 외교관회의 참석때마다 꼿꼿한 자세를 보여 눈초리가 살아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으나 역시 권력의 주변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올해 37살인 그는 김일성을 쏙 빼닮은 정치가적 풍모와 명석한 두뇌회전으로 북한주민들로부터는 인정을 받고있다.그러나 적출이 아니란 이유로 김정일의 박대가 심하다보니 『불쌍하게 됐다』는 식의 동정외엔 아무런 도움을 받지못하고 있다. 그는 불가리아주재대사로서 『나도 지도자동지의 명을 받고 근무하는데 왜 나만 빼고 일을 처리하느냐』고 부하직원들을 호통치지만 어느 누구도 그와 접촉하거나 업무보고를 하려들지 않는다.김평일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당조직지도부 10호실에 접촉보고서를 상세히 제출해야하는등 철저한 감시를 받기 때문이다. 이복여동생 김경일의 남편 김광섭 체코주재대사는 「눈동자가 초첨을 잃고 머리는 땅만 쳐다보고」있을 정도로 외교무대에서의 역할을 아예 포기한채 체념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김성애를 비롯,그 이복형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심한 견제를 받아 대항력을 잃고 있으며 지지세력도,욕망도 갖고있지 않다. 이들외에 친인척들로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 김달현(김일성과 5촌간),김창주(농업담당부총리 김일성의 작은 아버지 김형록의 일남),김봉주(직총중앙위 위원장〃 이남),김선주(만경대혁명학원 정치부장 〃 삼남)등이 있으나 권력핵심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김부자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을 뿐이다.당국제부장 김용순이 친인척이라는 설은 근거가 없다. 북한에도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갈등이 있으며 혁명1세대,특히 군부원로들이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 또한 서구적 발상에서 나온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 혁명1세대의 대부격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의 경우 73년 김정일이 당조직·선전선동담당비서로 임명됐을때 터져나온 최용건 당시국가부주석등의 불만을 임춘추·허담등과 함께 잠재운 공로로 줄곧 권력서열 3위의 자리를 지켜왔으나 최근 「노망기」가 심해 『저 오진우가 빨리 죽어야지.인민군대 망하갔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지휘능력을 잃고 있다.그는 지난해 김정일의 지시로 군이 동계훈련을 준비하자 『이 따위는 와해.내가 처리하갔어』라고 장담했다가 김으로부터 『왜 안하느냐』는 추궁을 받자 『이놈들아 왜 준비를 안하느냐』고 부하들을 다그쳤다.이에 부하들이 『부장동무가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반발하자 『내가 언제 그랬느냐.이놈들이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놀리는구나』고 짜증을 내는등 망령기를 보였다고 외교부대표단과 함께 지난해 자이르에 왔던 군관계자가 전했다. 호위총사령관 이을설도 김일성이 주최한 한 만찬에서 김의 질문에 엉뚱하게 답변,좌중이 웃음을 참느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이처럼 70대를 넘어선 거의 모든 혁명1세대들은 이제 김일성의 옛 동지로서 김의 배려아래 이름뿐인 직위를 유지하며 노후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북한사회에는 또 엄밀한 의미의 개혁파도 존재하지 않는다.지난 87년 인민경제대학 공업경영학 강좌교원들이 중국식 「가족책임제」농업방법(일종의 토지임대제도)의 도입을 건의,테크노크래트의 한사람인 김환 화학및 경공업위원장이 이를 김정일에게 올렸다가 김의 분노를 사 서열 10위에서 50위로 내려앉은 적이 있다. 이후 경제부처의 테크노크래트들이나 고급당학교 이론가들,그리고 모든 관료들이 『현재도 나는 승용차도 타고 잘먹고 잘사는데 화를 자초할 필요가 있느냐』며 조용히 시키는 일만 하고 있다. 한편 김정일의 권력승계와 관련,소련은 물론 여러모로 못마땅하다는 내색을 숨기지 않고 있지만 중국은 이미 그가 북한의 실세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중국은 이 바탕위에서 중국·베트남·북한을 잇는 아시아사회주의 동맹권을 형성,소련식 개혁과 개방의 거센 파고에 맞서려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권력기반이 확고한 만큼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불변의 사실이다.다만 그 시기는 93년 가을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92년중 80회를 맞는 김일성의 생일을 건국이후 최대의 행사로 치르려는데 모든 힘을 쏟을 것이다.또 「고추장에 쌀밥」이라는 기본적 욕구를 채울 수 없는 경제적 사정도 무리지만우방국의 축하사절단을 한해에 두차례나 부를 수도 없다. 따라서 7차 당대회는 제3차 7개년 경제계획이 완료되고 일·북한 수교협상이 마무리돼 50억달러로 기대되는 배상금이 지급될 내년 하반기중에 열릴 가능성이 높다. 이때쯤 북한은 일본측의 배상금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경제에 긴급수혈을 실시,어느정도 숨을 돌릴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7차 당대회를 통해 당총비서직을 승계하는 한편 새로운 경제계획및 주요 정책노선도 발표할 것으로 짐작된다.
  • 분단된 땅으로 남을 수는 없다/노 대통령의 유엔 평화메시지(사설)

    노태우대통령의 24일 유엔총회 연설은 남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던 타율의 역사가 끝났음을 전세계에 알리면서 한국이 비록 가입은 늦었으나 당당한 경제력을 갖춘 중진회원국으로서 미래가 있는 나라임을 선언한 뜻깊은 기회였다. 노대통령은 「남북한이 각각 다른 의석으로 유엔에 가입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나 그것은 통일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중간단계」란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의 연설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공존시대를 맞으며 남북이 해야할 일과 세계 신질서를 주도하는 유엔의 역할속에서 한국은 우리 국력에 걸맞게 동북아 질서재편과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적절한 기여를 해나갈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이번 총회 등단은 유엔이라는 범세계적인 외교무대에서 비록 회원국 가입은 냉전구조의 여파로 늦었으나 교역량면에서 세계 13위,GNP 세계 15위의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중간국가로서 남북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인 역할을 다짐하고 있는 점등은 유엔에서 우리의 위상과 좌표를 당당하게 밝힌 것으로 평가된다.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을 앞당기는 실천 사항으로 그는 첫째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둘째 군사적 신뢰구축을 바탕으로한 군비감축,셋째 사람과 물자정보의 자유로운 교류등 통일방안을 제시했다. 이들 제안들이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그러나 이같은 과정을 통해 서로를 가르는 장벽을 헐어야 한다는 것은 전세계가 공감하고 있는 터로 그 실천방안을 구체화하여 북이 핵무기의 개발을 포기하고 남북간에 신뢰구축 노력이 진전될 경우 재래식 전력의 감축뿐 아니라 한반도의 핵 문제에 대해서도 협의를 추진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있는 점에 우리는 주목코자 한다.전쟁위험의 제거없이는 상호신뢰구축이 불가능함은 자명한 일로 북한은 우선 모든 핵물질과 그 시설에 대한 국제기구의 사찰에 조건없이 응한 연후라야 상호 협의·화해·협력이 가능할 수 밖에 없다.이점에 대해서는 지금 전세계가 북의 태도를 주시하고 있으며 미국을 비롯,국제원자력기구의 모든 회원국이 공동대처방안을 모색하고 있어 북이 결국은 승복하게 될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대통령은 변혁의 물결이 이 세계의 지축을 흔들기 전부터 냉전의 벽을 뛰어넘어 소련·중동부유럽의 모든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중국과도 교류협력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그실 중부유럽의 변혁에 서울에서 열린 88올림픽이 상당한 충격과 영향을 줬음이 사실임을 감안하면 우리도 냉전종식의 여파 아닌 냉전해체를 주도해온 한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지나치지 않은 중진국가임을 과시할만도 하다. 우리는 이제 한반도 문제의 건설적인 해결을 강구하는 평화조성의 노력을 계속하면서 성숙한 남북시대를 열고 탈냉전 주체외교의 시발을 알리는 계기가 곧 노대통령의 총회 연설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한반도만이 냉전으로 갈라진 땅으로 남아 있을 수 만은 없을 것이며 우리는 이 역사적인 소임을 주도해 나가야 함을 그는 총회 연설에서 강조하고 있다.
  • 노 대통령 기조연설을 듣고(유엔코리아)

    ◎“국제무대에 당당히 선 한국 보았다”/“탈냉전 조류에 맞춰 세계평화 기여 기대/한반도 긴장완화·통일의 강한 의지 담겨” 노태우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행한 기조연설은 한반도의 냉전종식과 세계평화 구현을 위한 적극적인 의지의 표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현지 경축사절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남·녀대학생과 공관직원및 외국 외교관들을 통해 연설의 의의와 소감을 들어본다. ▷서가람 ◁ 노태우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들으면서 그동안 제한적으로 세계평화에 기여해온 우리나라가 이제야말로 세계평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노대통령이 지난 88년 유엔총회에서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연설을 했지만,지금은 그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다.정정당당한 유엔의 회원국대통령 자격으로 연설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노대통령의 연설은 국제사회에 기여와 남북한 문제등 2가지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첫째는 탈냉전체제라는 조류에 맞게 국제평화에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두번째는 남북 평화정착을 위해 제시한 3가지 제안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분위기를 확산시키겠다는 강한 뜻을 나타낸것이라고 생각된다. ▷고희경 ◁ 경축사절단의 일원으로 뉴욕에 와서 노태우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직접 듣고보니 우리의 높아진 국력과 위상을 실감했다.우리가 국제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한 유엔헌장을 수락하고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된것이 국제외교무대의 진입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노대통령의 연설은 국제사회에 본격적 발을 내딛는 선언이라고 여겨진다. 특히 노대통령이 남북한 당사자 원칙에 따라 한반도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통일의지를 국제무대에서 천명한 것은 남북한의 평화통일이 곧 세계평화와 냉전체제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느껴진다.그동안 냉전체제의 피해당사자였던 우리가 유엔에 가입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화해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홍명란 ◁ 노태우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유엔 정식 회원국 대통령으로서 유엔 총회에서 1백66개회원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설을 하는 것을 듣고 유엔산하 기관에 근무하는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긍지를 느꼈다.그동안 유엔의 미회원국이라는 이유로 국제사회에서 국적없는 고아처럼 생활해온 우리 입장에서 볼때 이번 유엔가입과 노대통령의 연설은 한국이 이제 당당한 선진국으로 진입했구나 하는 실감을 갖게 한다. 아마 이런 감정은 유엔산하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1백50여명의 한국인 모두가 함께 느꼈을 것이다.근무시간인데도 『우리나라 대통령이 총회에서 연설을 한다』고 밝히고 총회 기조연설을 들었다. 남북한이 함께 유엔에 가입한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동서독이나 남북예멘처럼 멀지 않아 통일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카스트로 ◁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인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의 총회기조연설을 듣고 한국의 강력한 통일의지와 세계평화기여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지난 80년대 2번이나 한국을 방문했고 10년 가까이 유엔에서 근무하고 있는 입장에서 누구보다도 한국과 유엔을 모두 잘 안다고 할수 있다.노대통령의 연설은 남북한간 긴장완화와 궁극적으로 통일을 성취하려는 가장 현실적이고 획기적인 제안이라고 생각된다. 동서독이 통일을 이뤄냈듯이 한국도 유엔가입을 계기로 통일을 보다 쉽게 이뤄낼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한의 통일은 과거 냉정체제의 유산이 완전히 청산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탈냉전의 새로운 국제 조류는 분명히 남북통일의 분위기를 조성해줄 것이다.
  • 공화국 입지 강화… 고르비 견제/소 최고회의,연정구성 촉구 의미

    ◎연방정부의 와해 막고 위상은 격하/러시아 독주… 타공화국 조연 양상 각공화국정부가 참여하는 소연방 연립정부를 1개월내에 구성하도록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지시」한 소연방최고회의의 30일 결정은 공화국의 입지강화와 연방정부의 위상격하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이는 1차적으로 쿠데타 이후 실추된 권위회복을 노리며 서서히 반격을 개시한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결정적인 타격이다.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독주에 대한 여타공화국들의 견제효과도 아울러 노린 조치로 풀이된다. 연방정부는 공화국들이 필요에 의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징적인 기구에 불과할 뿐 이제 더이상 공화국위에 군림하는 막강한 존재로 간주하지 않으며 실권은 모두 공화국들이 차지하고 연방정부는 껍데기뿐인 조정자로서의 역할만 남겨두겠다는 의지표명이라는 점에서 고르바초프에 대한 직격탄이라고 할 수 있다. 옐친이 이미 연방정부의 각료임면권을 사실상 주도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려진 이 조치는 군소공화국들이 이 권한을 나눠갖자는 것이어서 대러시아주의에 대한 제동의 의미도 강하다. 연방최고회의의 결정이 없더라도 고르바초프는 연방정부 구성과정에서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를 비롯한 각공화국들의 협조와 참여를 구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KGB의장과 내무·국방장관의 지명권을 옐친에게 넘겨줬던 불가피한 양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자발적인 협조와 강요된 협조와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앞으로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과 공화국지도자들의 입김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사이의 분기점을 이루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쿠데타 당시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요청,최고회의의 압도적인 가결을 얻어내고 KGB의 개편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정국주도권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그러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통령포고령을 발할 수 있는 비상대권을 박탈당한데 이어 자신이 국가안보위원회에의 참여를 권유했던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과 야코블레프 전대통령보좌관 포포프 모스크바시장 등 개혁파 인사들로부터도 거절당하는 등 침체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또다시 결정적인 쐐기를 맞은 것이다. 이제 새로운 연방체로의 변모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 소련내에서 고르바초프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조연에 그칠 수 밖에 없게 됐다.명실상부한 주연으로 등장한 옐친을 위시한 공화국 지도자들의 뜻에 따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내정을 그들의 손에 맡겨야 할 궁색한 처지에 몰린 것이다.외교를 전담한다고는 하지만 실세를 우대하는 국제정치의 생리상 외교무대의 주연자리도 안정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반면 옐친은 견제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구성될 새로운 연방체제에서 러시아공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밝히고 여타 공화국의 핵무기 공유와 반러시아 소요를 절대로 허용치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등 상승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발트3국을 방문,독립협상을 주도하는가 하면 루츠코이부통령을 보내 우크라이나공과 군사·경제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카자흐공과도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발트3국을 포함한 15개 공화국의 경제장관들은 30일 모스크바에서 만나 최소한 경제공동체만이라도 구성하는 문제를 논의,소연방의 급격한 와해는 일단 비켜갈 전망이다.그러나 러시아에 이어 2·3번째 영향력을 갖고있는 우크라이나와 카자흐공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공화국들은 종전의 연방정부보다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하려드는 러시아공에 대해 우려의 눈길을 감추지 않고 있다.국경재검토권이 러시아공에 있다는 오만불손한 태도 뿐 아니라 연방정부의 경제각료를 러시아공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대한 불안때문이다.이 불안은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천연자원의 공급방식을 어떤 방식으로 뒤바꿔 놓을지 모르는 데서 연유한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보수강경파를 의식하는 가운데 협조속의 경쟁을 벌였던 소련정국은 옐친과 고르바초프의 독무대식 권력쟁탈전 국면을 어느덧 지나 이제 러시아와 여타공화국들간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진전돼가고 있다.
  • 유엔 「다자외교시대」 본격화/노 대통령 유엔·멕시코 방문 의의

    ◎남북화해 재천명… 통일 환경을 조성/중남미 교두보 마련·북미공동시장 형성 대처/국제무대서 한국의 새로운 위상 과시 노태우대통령의 유엔총회에서의 기조연설은 한국외교의 「유엔시대」진입을 선언하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이것은 우리 외교무대를 한차원 높이는 것이며 국제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한국을 재인식시키는 계기이기도 하다. 남북분단 46년만에 유엔가입을 실현시킨 노대통령은 유엔의 정식회원국 국가원수로서 총회기조연설을 통해 남북한관계는 물론 우리의 대외정책 전반에 걸쳐 비전과 포부를 밝히게 된다. 노대통령의 유엔참석및 기조연설은 우선 2가지면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평화적 통일을 앞당기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북한이 유엔회원국이 된다는 것은 남북이 국제사회의 틀과 그 규율위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나간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 회원국은 유엔헌장상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무력불사용의 의무를 지게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대통령이 우리의 대북한관계개선의지를 재천명,남북간에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갈 것을 다짐하는 것은 바로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국제적 환경조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다. 노대통령은 남북이 한나라가 아닌 두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것은 남북한이 통일로 가기위해 불가피하게 거쳐야하는 중간단계라는 점을 지적,분명한 통일의지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우리 외교에 있어 본격적인 다자간 외교시대의 개막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정부수립후 한국외교는 유엔에 가입하지 못함으로써 한미,한일 등 양자관계에 치우쳐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유엔 정식회원국 국가원수로서 노대통령이 유엔에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우리의 대유엔활동은 새롭게 시작된다.이것은 세계13위 무역규모와 15위의 GNP규모등 우리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는 총체적 외교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새롭게 구축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노대통령의 유엔참석이 의미하는 상징적 의의말고도 실질적 외교성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노대통령은 유엔연설을 전후로 유엔 사무총장은 물론 부시미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국가수뇌들과 연쇄회동을 가질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관계자,각국수뇌와의 일련의 회동을 유엔을 무대로 갖는것은 우리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새삼 과시하는 계기가 될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국가원수가 기조연설을 하는데 비해 북한은 총리급이나 그 이하의 인사가 연설을 할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유엔가입에 대한 남북간의 입장이나 수용태도에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유엔참석에 이은 노대통령의 멕시코방문은 무엇보다 우리나라 국가원수로서는 최초의 중남미방문을 실현하는 것이다. 특히 21세기 태평양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태평양연안국간의 상호협력증대가 필수적이고 이번에 한·멕시코가 실질협력관계의 확대를 도모함으로써 우리로서는 대중남미진출 교두보를 확보한다는 의미가 있다.또 멕시코는 미국·캐나다와 함께 이미 금년 6월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체결을 서둘면서 북미공동시장형성을 꾀하고 있기때문에 이같은 움직임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노대통령은 지난 88년10월18일 유엔연설을 했지만 당시는 유엔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대화촉진」이라는 의제를 채택한데따라 회원국원수가 아닌 옵서버국가원수로서 연설을 했다. 따라서 이번 연설은 우리가 유엔의 국외자가 아니라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국제사회의 본류에 참여,정통적인 국제평화기구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동서냉전·남북문제·평화유지·환경등 국제문제 전반에 관해 입장과 의지를 밝힌다는데 큰뜻이 있는 것이다. ▷멕시코 개관◁ △국체=연방공화국 △면적=1백95만8천㎦ △인구=8천1백만명(수도 멕시코시 2천만) △언어=스페인어 △종족=혼혈55% 원주민(인디안)29% 백인15% △종교=가톨릭(92.6%) △국내총생산=2천3백36억달러(90년추정) △1인당국민소득=2천8백79달러
  • 대미접근 위한 「유화제스처」/북한 미군유해 인도의 배경

    ◎유엔가입 앞두고 선전효과 노린듯/미군 포함,아직도 1만여구 잔존 추정 북한 쪽에서 24일 「미군유해」 11구를 미국 쪽에 인도한 것은 극히 폐쇄적인 그들의 일상관행에 비추어볼 때 대단한 선심행사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군사·외교관측통들은 일반적으로 미국 등 자유세계국가들에 대한 일종의 유화제스처로 보고 있다. 우리의 유엔 외교정책에 밀려 오는 가을 남북한 동시가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수세적 입장에 놓인 북한으로서는 유엔 회원국들에게 호감을 사둘 필요가 무엇보다 절실했을 것이라는 게 그 논거이다. 유엔 동시가입이라는 절차가 우리 쪽의 주도 아래 이뤄지는만큼 자칫하다가는 앞으로의 유엔 외교무대에서 상당한 열세를 모면하기 어려워지리라는 판단 아래 미리부터 손을 쓰고 있다는 풀이인 것이다. 다시 말해 유엔 참전국들에게는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전 시실종자문제에 대해 그들이 아직까지 성의를 가지고 대처하고 있으며 이는 곧 참전국에 대한 우호정신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참전국은 물론그 주변 유엔 회원국들에게 「평화애호국」의 이미지를 심으려 하는 셈이다. 그것도 6·25발발 41주년에 즈음한 타이밍을 맞춤으로써 선전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북한 쪽에서는 이에 앞서 우리 쪽이 유엔가입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타진하고 있던 지난해 5월에도 미국 쪽에 은근히 유화제스처를 쓰면서 5구의 「미군유해」를 넘겨주었었다. 이들 유해는 정밀진단 결과 대부분이 미군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긴 했지만 그런대로 미국 쪽에 호의적인 인상을 준 것 만은 사실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인도된 11구 가운데 미군이 과연 몇 명이나 포함돼 있을지는 의문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북괴군의 때아닌 남침으로 전쟁이 일어난 50년 6월25일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된 53년 7월27일까지 37개월 동안 국군 14만9천5명을 비롯,유엔군 3만6천8백37명,경찰 3천5백여 명,민간인 37만3천여 명 등 모두 56만1천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 국군 71만7천여 명,유엔군 11만5천여 명,경찰 7천여 명,민간인 23만여 명 등 1백6만9천여 명이 부상했다. 국군9천6백34명과 유엔군 6천2백67명 등 1만5천여 명은 포로가 됐으며 국군 4만3천여 명,유엔군 2천2백32명,경찰 7천여 명,민간인 30만여 명 등 35만여 명이 실종됐으며 민간인 8천4백여 명은 납북됐다. 전쟁기간 동안 북한은 평북 강계 등에 모두 29곳의 국군과 유엔군 포로수용소를 운영했고 만주지역에도 18개의 포로수용소를 따로 두었었다. 북한과 만주지역에 수용되어 있던 국군과 유엔군 포로들은 휴전 직전 포로교환 때 대부분 송환됐으나 수용소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부상병들이나 영양실조,과로로 숨진 희생자들은 휴전 뒤 1년이 지난 54년 8월17일 유엔군 쪽에 유해로 인도됐다. 당시 유엔군 쪽에 인도된 유해는 모두 4천23구로 미군의 유해가 1천8백69구였다. 유엔군 쪽에서는 아직도 북한에 8천5백6구의 미군유해와 함께 2천2백32구의 영국·캐나다·터키 등 참전국 장병유해가 더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엔군 쪽에서 전투 중 실종자(MIA)로 추산하고 있는 장병의 수도 2천여 명이나 된다. 유엔군 사령부는 이에 따라 휴전 이래 줄곧 이를 전사자와 실종자 1만여 명의 유해를 넘겨줄 것을 공산군 쪽에 요청해오고 있다. 나아가 유해를 찾아내는 작업을 위해 중립국감시위원단을 포함한 전쟁당사국의 다국적 조사반을 구성하자고 제의해왔다. 그러나 북한 쪽에서는 실종 미군이나 유엔군 유해의 발굴작업은 군사정전위원회의 소관사항이 아니라고 이같은 제의를 일축했다.
  • 유엔 재가입 권고안 승인/대만 입법원

    【대북 AFP 연합】 대만 입법원은 18일 대만정부가 20년 전 축출된 유엔에 재가입하기 위한 『적절한 시기』를 모색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승인했다. 입법원은 이날 의원 86명이 앞서 대만의 유엔 「즉시」 가입을 촉구한 강경한 내용의 동의안을 대체하기 위해 제출한 이 권고안을 표결에 부쳐 집권 국민당과 야당인 민진당 소속 의원들을 포함,재석의원 74명의 3분의2가 넘는 51명의 찬성으로 승인했다. 행정원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는 이 권고안은 당국에 대만의 외교무대를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적절한 시기에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로 유엔에 재가입신청을 내도록 촉구하고 있다. 앞서 국민당 소속의 황추웬 의원이 작성한 동의안은 대만이 유엔에 「즉시」가입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으나 지난 1주일 동안 국민당 당국 및 동의안 서명자들간의 열띤 논쟁을 거쳐 이날 승인된 권고안으로 대체됐다. 학백촌 행정원장은 지난주 유엔에 즉시 재가입하려 하는 것은 대륙과 대만간의 관계에 불안정을 초래하고 통일 및 독립문제에 관한대중의 논쟁을 더욱 확산시킬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황추웬 의원의 동의안 내용에 반대했다.
  • 「권력세습」 기정사실화 속셈/김정일,왜 비밀리에 중국 가나

    ◎국제고립 탈피 노린 외교조정 행보/대일 수교회담·유엔정책 협조 모색 북한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인 김정일 노동당비서의 돌연한 중국방문은 내정면에서 뿐만 아니라 외교면에서도 김정일의 세습체제를 굳히기 위한 것이라고 일본의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그가 특히 이 시기에 국제외교무대에 데뷔하는 이유를 이렇게 진단한다. 첫째,3일은 소련의 베스메르트니흐 외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직후가 된다. 따라서 한국의 유엔단독가입에 이해를 보이고 있는 소련의 뱃심과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을 살펴 북한의 외교전략을 재정비할 수 있다. 둘째,난항인 일본·북한간의 국교정상화 교섭과 관련,5일부터 중국을 방문할 예정인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랑) 일본 외상에 대해 중국측에서 「압력」을 넣도록 작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북한이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유엔가입문제에 대한 소련과 중국의 자세이다. 올 가을 유엔총회에서 한국이 단독가입을 신청할 경우,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의 여부가 초점이되고 있으며 이때 소련이 중국에 대해 거부권행사가 아닌 기권을 종용하는 것이 아닌가를 경계하고 있다. 유엔가입문제는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외교적 난관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북한은 김정일 당비서를 외교면의 뉴 리더로 내세워 국제적 고립탈피를 위한 「신외교」를 모색하려는 것으로 도쿄의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더욱이 오는 29일부터는 평양에서 국제의회연맹(IPU) 총회가 개최되기 때문에 김 당비서의 중국방문은 이와 관련해 국제사회에의 복귀를 위한 「지침」을 받으려는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일·북한 국교정상화 교섭에서도 그의 의향이 보다 강력히 반영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그것은 교섭의 실질적 책임자인 조선노동당 국제부장 김용순 비서가 김정일의 직계라는 점에서 이다. 김정일은 이 교섭을 개시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 당비서의 외교적 데뷔는 북한의 내부정세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국제적 고립과 석유 등 에너지자원의 결핍으로 경제위기가 심각화하고 있다. 게다가 3년 연속 흉년으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생활사정은 일반 민중뿐만 아니라 권력층 일부에 있어서조차 김정일 당비서의 지도력을 의문시하게 하는 요인으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북한내부에서는 느닷없는 김정일 예찬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군사의 영재」 「인민의 생활향상에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친애하는 지도자」 등의 찬사를 구사한다. 최근의 평양방송은 수도권 건설계획에 따른 주택관련공장 조업식 뉴스를 이렇게 전달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김정일)는 「당과 국가의 사업전반」에 신경을 쓰는 분주한 가운데도 몸소 공장건설문제에 무엇보다도 이해를 보여 제기된 설비·자재문제를 모두 해결했다』는 보도이다. 78세라는 고령의 김일성 주석을 대신하여 김정일 당비서가 실무면에서의 최고 책임자로서 이미 수년 전부터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공식적으로 전해지고 있었으나 권력의 장악상황을 이처럼 솔직히 표현한 것은 이례적인일로 일본에서는 보고 있다. 한편 조선 중앙방송은 지난달 20일 『노동자계급의 당이 자신의 계급적 성격을 고수하지 못한다면 당내에 반당분자가 끼어들어 결국 당은 그들의 농락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 조선인민군 525부대의 충성을 서약하는 글 가운데서는 『오늘날 현대수정주의자들이 「영수」(김일성 주석)의 지위와 당의 지도적 역할을 부인,책동하고 있는 현 정세하에서 우리는 오로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김정일)만을 믿고 있다』는 구절이 있다. 이 같은 표현은 북한내부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반대세력이 대두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김정일 예찬운동의 전개를 이러한 반김 부자세력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 아닌가고 분석한다. 그러나 관계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로 예측되는 국가권력 이양을 앞두고 국내적으로는 권력기반을 굳혀 세습반대세력의 대두를 미연에 방지하고 대외적으로는 활동무대를 넓힘으로써 세습체제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속셈인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당기관지 등에서 언급하고 있는 「반당운운」은 과거의 일,또는 국외의 움직임에 관해서 일 것이다. 그것을 강조함에 의해 국내적으로 사상적 단속을 강화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풀이다. 그 이유로서 전문가들은 『반당조직이 적발되었다면 어떤 반응이 있을 법한데 그런 움직임은 없다. 적어도 권력층안의 좌천 등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뤄지는 김정일의 중국방문은 내부단속을 끝낸 상태에서의 「국제무대진출」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김은 80년대초 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국내지도를 담당했으며 83년 그 인사를 위해 중국을 방문,등소평 중앙군사위 주석 등과 회담한 바 있다.
  • 한국 유엔가입 길목 닦는다/ESCAP 서울총회 의미와 전망

    ◎주춤거리는 중국설득에 총력외교/미·소 등서 1천여명 참석… 「서울선언」 채택 확실 1일 개막되는 제47차 유엔 ESCAP(아태 경제사회위원회) 총회는 유엔 비회원국인 한국에서 유엔 직속기구 회원국들이 만난다는데서 우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유엔 직속기구는 전문기구 등과는 달리 「유엔 그 자체」라는 점에서 이번 행사를 계기로 우리의 올해 최대외교목표인 유엔가입 실현을 위한 분위기마련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총회에 참석하는 미·영·불·중·소 등 안보리상임이 사국을 비롯,회원국 대표들과 공식·비공식 접촉을 갖고 우리의 연내 유엔가입 방침을 설명하고 이에 최대한 지지해줄 것을 요청하는 등 이번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방침이다. 특히 남북합의를 강조하고 있는 중국측이 유엔 등 국제기구를 담당하고 있는 유화추 외교부 부부장(차관)을 파견하는 만큼 대중국 설득외교에 총력을 집중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또 인도네시아·아프가니스탄·몽골·방글라데시 등 북한을 의식,우리 유엔가입에 비교적 중도적 입장을취하고 있는 나라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설득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이번 ESCAP총회는 1천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국제행사일뿐 아니라 각국 대표들도 부총리 1명,장관 9명,차관 11명이나 참석,과거 어느때보다 비중있는 인사들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이 가운데 중국이 유외교부 부부장,소련이 로가초프 외무차관,일본이 이시이 외무부 정무차관을 각각 수석대표로 파견하며 미국의 경우 도널드 그레그 주한미대사가 참석한다. 또 영국은 데이비드 라이트 주한대사,프량스는 에드위지 아태 담당국무장관,인도네시아는 차기 유엔사무총장 물망에 오르고 있는 알라타스 외무장관,인도는 스와미 상무장관,파키스탄은 아지즈 재무장관,스리랑카는 헤라트 외무장관을 각각 파견한다. 이밖에 몽골은 푸에르도리 공업담당부총리를 파견하며 특히 미수교국인 베트남·라오스의 외무차관도 각각 참석한다. 중국을 비롯한 이들 미수교국 정부의 고위인사 방한은 양국간 관계개선 및 수교를 앞당기는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같이 고위급인사들이 파견되는 이번 총회에서 각국은 치열한 외교전을 펼칠 전망이다. 총회준비를 맡고 있는 외무부는 각국의 리셉션 주최신청이 쇄도해 이를 조정하느라 애를 먹었으며 많은 신청국 가운데 결국 미국·일본·중국·프랑스·인도·아세안(동남아 국가연합) 등만이 리셉션 및 오찬행사 티켓을 따냈다. ESCAP 회원국들이 이같이 이번 총회에 높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사무국 소재지인 방콕이 아닌 서울에서 열리는데다 최근 걸프전 이후 급변하는 국제질서 변화에 적극 대처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차대전 이후 아태지역 경제부흥을 위해 유엔 경제사회위원회 산하 지역기구로 설립된 ESCAP은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저개발국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어 아세안이나 아태각료회의(APEC)처럼 실질적 합의를 도출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약점도 있다. 그러나 이번 서울총회는 이러한 이질성을 어느정도 극복,가시적 성과를 도출해낼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다는게 외무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ESCAP 서울총회에서 다뤄질 주요의제로는아태지역내 산업구조 재조정 및 지역협력강화 문제가 첫번째로 꼽히고 있다. 즉 아태지역 개발도상국들의 제조업 제품이 국제시장에 진출할 때 직면할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 및 상호보완적 협력기반을 다지는 방안이 본격 협의된다. 이는 그동안 어느정도 의견일치를 봤기 때문에 「서울실천강령」으로 채택될 것이 확실시된다. 또 서울총회는 폐막시 「서울선언」을 채택,급변하는 국제정세에서 이 지역국가간 원활한 경제협력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이어 최근 걸프사태가 아태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고 이에대한 다각적인 공동대응 방안을 협의하며 오는 92년 유렵공동체(EC) 시장단일화 및 북미지역 자유무역협정(FTA) 등 지역경제 블록화를 비롯한 보호주의무역체제 강화경향에 대한 대처방안 등을 심도있게 논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날로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세계환경보호 문제가 새로운 의제로 채택될 것이라는 점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회의는 오는 92년 브라질에서 개최될 유엔환경개발회의에 임할 아태지역 회원국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서울총회는 북한의 ESCAP 가입문제를 조심스럽게 논의하는 한편 48차 총회 개최지를 결정짓게 된다. 중국은 이미 차기총회의 북경유치 희망의사를 밝혀왔는데 우리 정부는 이를 우리의 유엔가입과 연계시켜 중국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ESCAP 서울총회는 오는 10월 서울에서 개최될 제3차 아태각료회의와 더불어 한국이 국제외교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의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위상에 걸맞는 국제회의장 마련이 절실하다는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회의시설을 제외한 숙박 등 체재비용 등은 참가국 부담원칙으로 되어있어 일부 국가들은 경비절약을 위해 회의장인 롯데호텔 투숙을 꺼리고 비교적 값싼 호텔을 이용해 회의진행 및 외빈들에 대한 경호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 「후세인악령」에 시달리는 글래스피

    ◎바그다드주재 전 미 여성대사의 불운/침공 예견못해 외교무대서 밀려/면담내용 입다문채 한직서 소일 에이프릴 글래스피 전 이라크주재 미국대사(48)는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직전 사담 후세인과의 짧은 만남으로 인해 외교무대의 불운한 주인공으로 전락한 인물이다. 여성으로 중동에 파견된 최초의 미국대사였던 글래스피대사는 현재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침공을 예견하지 못하고 미국의 강력한 대응경고를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낙인이 찍힌채 국무부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일을 하며 일과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당분간 다시 대사직에 복귀하게 될 것이란 보장도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 하원외무위 유럽·중동소위원장인 리 해밀턴의원이 그녀의 증언을 공식적으로 요청했지만 국무부는 이를 거절한 상태이고 소환장을 발부해서라도 그녀가 『누구로부터 훈령을 받아 이라크에 영토분쟁에 관한 미국의 입장을 전달했느냐』를 따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그녀 자신도 국무부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입을 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으며 언론들이 그녀의 집근처에 잠복했다가 마이크를 갖다대도 지금까지는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1주일전 글래스피 대사는 부임 2년만에 처음으로 사담 후세인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국무부가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문명사회에서 강압이나 협박은 있을 수 없다』고 이라크가 쿠웨이트와의 국경에 병력을 증강시키고 있는데 대해 미국이 경고한 직후였다. 2시간의 면담후 글래스피대사는 그 결과를 본국에 타전했다. 그 결과는 비밀문건으로 분류됐고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는 그해 9월11일 면담결과를 공개했다. 이 속에는 『우리는 당신들과 쿠웨이트간의 국경 이견과 같은 아랍국가들 사이의 분쟁에 관해서는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는 대목이 있다. 글래스피 대사의 이 발언이 사담 후세인을 부추겼다는 주장이 있으나 미국무부는 이라크가 공개한 면담내용 녹음이 많이 첨삭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글래스피 대사가 침공을 강력히 경고한 대목은 지워졌다고 주장했다. 글래스피 대사는 90년 7월30일 일단 위기가 가라앉았다고 보고 워싱턴을 1주일 방문,본국 정부에 보고를 하기 위해 바그다드를 떠났다가 런던에서 침공소식을 들었다. 아랍어·불어에 능통하고 독신으로 25년간 직업외교관의 길만을 걸어온 그녀의 미래가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녀를 동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이 아랍국가간의 분쟁에 관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불개입한다는 입장을 취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쟁이 끝났으므로 글래스피 대사는 진상을 공개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의견도 있고 국무부는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자유』라고 말하고 있지만 소식통들은 그녀의 입을 열게 할 사람은 부시대통령 한사람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언젠가 바그다드에 미국대사가 다시 부임할 경우 그사람이 글래스피가 아닌 것은 확실하며 그녀는 앞으로 대사직보다는 국무부의 「조용한」 일자리에 임명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 총리직 전격 사임의 배경(막내린 「대처 영국」:상)

    ◎경제 실정·대 EC 외교마찰로 입지 약화/인플레 가속·주민세파동 겹쳐 여론 악화/유럽통화통합 반대로 국제무대서 소외 「철의 여인」으로 80년대를 풍미해온 거목 대처도 거세게 흐르는 시대변화의 조류를 한몸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었다. 지난 20일 실시된 보수당수선출 1차투표에서 불과 4표의 차이로 당수재지명 획득에 실패한 대처가 『2차투표에서 결판을 내겠다』던 입장을 하룻만에 번복,『당내 단합과 다음 총선거에서 보수당승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당수후보를 사퇴하고 새 당수가 선출되는대로 총리직에서도 물러나겠다』고 밝힘으로써 오는 27일의 2차투표는 헤슬타인 전 국방장관과 더글러스 허드 외무장관 그리고 존 메이저 재무장관간의 3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지난 79년 치유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던 영국경제를 기적적으로 회생시키는 수완을 발휘,83년과 87년 3기 연속집권이란 신화를 세우면서 현 유럽 지도자들중 최장수 정권을 이끌었던 대처가 이처럼 자신의 임기마저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물러날 수 밖에 없게 된 것은올해초 도입된 주민세 문제로 지난해부터 「반대처」 감정이 영국민들 사이에 확산됨으로써 다음 총선거에서 「대처의 보수당」으로는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짐에 따른 당내 사퇴압력을 이겨낼 수 없었던 데다 지난해 동구를 휩쓴 대변혁으로 올해 급진전을 보인 유럽통합문제에 대한 대처의 경직된 자세에 불만을 품은 각료들이 지난 13개월 사이에만 5명이나 내각을 떠나는 등 당내분이 심화된데 따른 것이다. 대처의 강력한 통치스타일이 그녀의 집권초기 영국병을 잡는등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상황은 계속 변하는데도 대처는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함으로써 결국 시대변화의 조류에 뒤떨어지는 결과를 부르고 만 것이다. 대처를 가장 궁지에 몰아넣은 것은 역시 10년만에 경기침체로 돌아선 국내경제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계속되는 소비감퇴와 실업률 증가에도 불구,인플레는 10.9%까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지속은 영국민들로 하여금 대처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같은 「반대처」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 것이 잘 사는 사람은 더욱 잘살게,못사는 사람만 더욱 못살게 만든다고 보수당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심했던 주민세도입을 강행한 대처의 독선이다. 영국의 인플레는 지난 87년부터 치솟기 시작했지만 그 시발은 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부분의 EC국들이 EMS(유럽통화제도)내에서 환율의 안정을 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대처만은 파운드화 가치를 EMS에 연계시키기를 거부,국내인플레를 진정시킬 토대를 만들지 못함으로써 인플레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또 노조에 대한 대처의 강경대응도 85년 광부들의 파업을 진정시키는 등 일면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결국 노동자들로 하여금 두자리수 이상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게 함으로써 임금인상이 안정된 다른 유럽국들과는 달리 경제에 부담을 안기고 경기침체를 자초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에선 경제침체와 관련,자신에 대한 불만이 폭발 일보 직전으로까지 팽배해 있는데도 그동안 자신의 강점으로 지적되던 외교무대에서조차 대처는 독일 통일문제와 유럽통합과 관련,실수를 거듭함으로써 대처의 경직된 사고로는 더이상 급박하게 변화하는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적응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국민들과 당내 지지자들에게 심어주게 됐다. 우선 독일통일에 있어선 영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2+4」회담에 찬성하는데도 대처 혼자만 이를 반대하다 결국 다른 나라들에 끌려가고 만 꼴이 됐으며 유럽통합에 있어서도 EC 12개국 전체가 단일통화 도입을 적극 추진하는데도 국가의 주권과 국익을 내세워 다른 나라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됐다. 이와 함께 과거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미소 화합의 새 시대를 맞아 힘의 외교를 펼치는 대처 대신 보다 온건한 독일이나 프랑스를 유럽의 새 파트너로 맞으려는 부시 미 대통령의 정책노선 변경도 국제무대에서 대처의 위상을 급격히 떨어뜨렸다. 결국 대처리즘은 80년대에는 효능을 발휘했지만 새로운 90년대까지도 적용될 수는 없으며 새 시대에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11년이 넘게 지속된 대처의 권좌를 무너뜨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막올리는 「평성시대」…술렁이는 도쿄/내일 일왕 즉위식…외교가 부산

    ◎불 총리등 수뇌급 사절 150국서 50명 방일/각국,초호화 외교무대서 “국익찾기” 분주 일본에 있어서 「천황」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전후 일본의 신헌법에 의해 그 지위는 비록 「국가원수」로부터 「상징천황」으로 바뀌었으나 일본 국민을 결집시키는 구심점으로서의 그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일본 외무성 관리들을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은 한국의 매스컴이 언제부터,무슨 이유로 「천황」을 「일왕」으로 표기해 왔는지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언론계 인사들도 오는 12일의 일왕 즉위식에 본국에서 몇명의 기자가 지원취재를 오느냐고 묻는다. 일본 신문들은 연일 「평성류­새 스타일의 천황폐하」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특집을 내고 있으며 즉위식에 참석하는 각국 요인들의 명단을 상ㆍ하로 나누어 연재하기도 한다. 지난해 1월7일 사망한 「소화천황」의 뒤를 이은 아키히토(명인) 일왕은 즉위 1년 10개월만인 오는 12일 즉위식을 갖는다. 국가행사로 치러지는 이번 「소쿠이노 레」(즉위□예)는 일본에서 62년만에 거행되는 즉위식이며 신헌법상의 「상징천황」으로서는 처음 갖는 행사이다. 탈상을 기다려 시작되는 일련의 즉위관련 의식 가운데 중심행사는 즉위식 자체인 「정전의 의」,의식을 마친 뒤 왕궁으로부터 아카사카고쇼(적판어소)에 이르는 4.7㎞의 카 퍼레이드인 「축하어열의 의」,12일 밤부터 15일까지 7차례에 걸쳐 거행되는 즉위피로연인 「향연의 의」 등 3가지이다. 즉위식이 거행되는 12일은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소쿠이노 레,세이덴노 기」(랑위예정전□의)는 12일 하오 5시 왕궁의 정전 「마쓰노마」(송□간)에서 일왕이 모습을 나타내면서 시작된다. 넓이 3백70여㎡인 이 방은 신년축하행사ㆍ총리임명식 등 중요의식을 거행하는 곳이다. 중앙에는 일왕이 앉을 높이 5.9mㆍ무게 약 80t의 「다카미구라」(고어좌)가 설치되고 앞뜰에는 「반자이반」(만세번),「다이깅반」(대금번) 등 색색의 기치 26본이 세워진다. 또 칼 창 활을 비롯한 각종 위의물을 든 궁내청직원 74명이 옛날복장으로 늘어선다. 이 행사에 참석하는 2천5백명의 좌석은중정을 중심으로 마련되며 외국사절들은 정전을 향한 특설석에 앉는다. 이 자리에서 일왕은 「황위」의 상징적인 검과 어새ㆍ국새를 받으며 즉위를 선언하는 「말씀」을 한다. 이에 답해 가이후(해부)총리가 축하인사를 드리고 「즉위를 축하하여 천황폐하 만세」를 3번 선창한다. 이에 맞춰 왕궁에 인접한 「기타노마루」(북□환) 공원에서는 자위대가 21발의 예포를 쏜다. 이 의식은 약 30분만에 끝나며 하오 3시30분부터는 연미복으로 갈아입은 일왕이 왕후ㆍ왕세자와 함께 30여분간 오픈카 퍼레이드를 벌인다. 이때 연도 4.7㎞에는 1만여명의 경찰관이 배치돼 행인을 검문검색하는등 테러경계에 나선다. 이번 국가행사인 즉위식과는 별도로 22일 저녁부터 23일 새벽 사이 왕실행사로 「다이조사이」(대상제)가 거행된다. 이것은 일왕이 즉위 후 처음으로 햇곡식을 천조대신을 비롯한 신들에게 공양하고 자신도 먹음으로써 국가안녕과 오곡풍성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왕실에서느나매년 「니이나메사이」(신상제)가 거행되는데 「다이조사이」는 이것과 취지는 같으나 즉위에 수반하여 1세에 한번만 거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즉위행사와 관련하여 일본정부가 관심을 갖는 것은 도쿄(동경)가 또다시 세계최고의 중심지로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즉위행사에는 세계 1백60여개국에서 축하사절이 참석한다. 이 가운데는 50여명의 수뇌급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축하행사를 계기로 도쿄에서 대 일본 또는 제3국 외교를 활발하게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가이후 총리와 나카야마 타로(중산태랑) 외상은 각각 40∼50건의 회담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가이후 총리는 일요일인 11일 18건을 비롯,15일까지 50명의 외국요인들과 회담할 계획이다. 그는 퀘일 미국 부통령,루키아노프 소련 최고회의의장,로카르 프랑스 총리 등과 만나 중동위기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며 한국의 강영훈 총리와는 교섭이 시작된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문제 등에 관해 일본의 입장을 설명하고 한국측의 이해를 구할 방침이다. 그러나 회담시간은 일부인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0분 정도여서 『실질적으로 내용있는 회담은 어려울 것』이라고 외무성 간부들은 말하고 있다. 한편 나카야마 외상도 11일부터 15일까지 40명의 인사들과 만날 계획이다. 특히 나카야마 외상은 14일 아프리카 제국의 대표들을 초청,오찬을 베푼다. 이번 즉위식에 참석하는 주요인사에는 바이츠 제커 독일 대통령,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오학겸 중국 부총리,아키노 필리핀 대통령,데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핫산 요르단 황태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즉위행사를 더욱 뜻깊게 하기 위해 9일 2백50여만명에 대한 복권도 실시했다. 이 가운데 80%는 교통사고를 일으켜 벌금을 납부했던 사람들이지만 선거법 위반자 4천3백명도 은사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현재 일본의 「천황제」를 단순한 군주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의회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데모크라시와 군주제의 혼합체로 보아야 하다는 것이 오늘날 많은 일본인들의 인식이다.
  • 한·유고 투자협정 곧 체결/정상회담/비동맹외교 협력강화 합의

    노태우 대통령은 8일 상오 청와대에서 유럽사회주의국가 원수로는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유고슬라비아의 보리사브 요비치 대통령과 한·유고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협력관계 발전과 비동맹권에서의 외교협력 등 국제 외교무대에서의 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합의했다. 이날 회담에서 양국 대통령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세계정세 속에서 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두 나라간의 경제·통상·과학기술분야에서의 실질적 협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투자보장협정 등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하기로 합의했다고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이 발표했다. 요비치 대통령은 특히 양국의 교역이 지난 연말 국교수립 후 급신장되고 있는 데 대해 만족을 표명하면서도 한국이 지난 8월까지 1억2천만달러를 수출한 데 비해 수입은 1천7백만달러에 불과하는 등 심한 무역역조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국이 유고에 전기·전자제품의 현지 생산합작투자를 통해 유럽 제3국에의 진출 등 실질협력관계를 증대시켜 나가자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동감을 표시하면서 유고에 활발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업계에 적극 권장하겠다고 말하고 가까운 시일내에 한국의 구매사절단을 유고에 파견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요비치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유고방문을 초청했으며 노 대통령은 적당한 시기에 유고를 방문하도록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 유엔의 새 위상과 남북한(사설)

    국제연합(UN) 제45차 총회가 18일 뉴욕에서 개막됐다. 지난해 베를린장벽 해체로 상징되는 전후체제의 재편과 미소 화해의 새 국제질서는 한동안 그 빛이 퇴색해가던 유엔의 존재와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해주고 있다. 역사의 평가는 어떻든 유엔이야말로 전후 냉전체제의 산파역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전후 오랫동안 국제외교무대의 중심지로서 그때마다 화려한 각광을 받았던 유엔이었다. 그 유엔이 이제 다시 국제여론의 수렴과 국제분쟁의 조정,그리고 외교무대로서의 국제기구 고유기능과 위상을 회복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유엔총회는 동서 냉전체제의 종식 이후 평화체제의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강점 등 지역분쟁과 미소 화해체제의 보완 등 국제적 현안들을 중점 논의한다는 측면에서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엔은 우리에게도 새로운 측면에서 그 위치가 부각되고 있다. 전후체제와 관련해서 유엔은 역시 한반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지만 지금 남북한이 유엔가입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공식적인실무접촉을 벌이게 된 것이다. 18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한 실무접촉은 지난 9월초 서울의 남북총리회담에서 이산가족 재회를 위한 적십자접촉 재개와 함께 많지 않은 합의사항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대화이다. 현실적으로 남북한 모두 유엔 비회원국인 입장에서 민족문제 해결의 당사자들이 새삼 유엔가입문제를 논의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북의 단일의석가입안과 남의 단독 또는 개별 동시가입안이 맞서 있는 상태에서 이번 접촉이 어떤 결과에 이르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양측의 방안을 공론화하여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절충안을 모색하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는 있다.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유엔의 위치가 새삼 부각되고 있듯이 남북한의 유엔문제 접근은 군축협상과 함께 민족문제 해결의 두 주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유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객관적인 시각을 가져야 할 때라고 보는 것이다. 즉 유엔이란 자격을 갖춘 모든 나라에 가입의 문호를 열어놓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유엔가입의 조건은 국제적인 평화의지와 유엔의 권능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또한 북한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북한의 유엔 동시 또는 개별가입은 두개의 한국을 영구화하는 것도,분단을 고착화하는 것도 아니다. 각각 개별의석으로 유엔에 가입했던 동서독과 남북예멘이 오늘날 세계의 경이속에 아무런 장애없이 통일을 실현해나가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남북한은 또한 유엔의 정식회원국만 아닐 뿐 몇개의 유엔 산하기구에는 동시에 가입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당사국의 한쪽으로서 유엔의 새로운 위상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국제사회의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 아울러 유엔을 체제경쟁이나 통일논리의 연장선으로 이용하려는 발상도 버려야 할 것이다. 유엔은 남북한이 함께 국제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외교무대일 뿐이다.
  • 통일문제 기적 바라선 안된다/정종욱 서울대 교수(서울시론)

    ◎북한변화 너무 낙관하면 오류 범할지도 지난 10일 노태우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내놓은 대북제의는 전향적 자세를 취하면서도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방통행식의 내용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주장한 남북한 자유왕래와 전면개장이 현실성이 없는 것이지만 그 기본취지를 수용하는 진취적 입장을 보였으며 특히 팀스피리트훈련의 규모를 감축시켜 북한의 주장을 수용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성취에 기여하는 중대한 발전으로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전향적 통일정책 현황 인적교류와 군사적 신뢰구축 이외에도 금강산개발과 체육분야의 협력등 남북이 합의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 제안들이 제시되고 있어 6공화국이 지난 2년 동안 통일문제에 대해 과시해온 현실감각과 적극적 자세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사실 6공화국이 내세울 수 있는 치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북방정책과 통일정책이라는 점에 대해 크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다소의비난과 볼멘 소리가 있긴 했지만 북방정책은 냉전의 벽을 뚫고 동구공산국가들을 우리의 외교무대 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공산권 내부의 개혁과 개방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았지만 동시에 동구의 급격한 변혁을 앞질러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외교적 개척정신이 한층 돋보이는 참신한 변화였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당시만 해도 과감한 발상과 결연한 실천을 요구하는 벅찬 도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북방의 개척은 통일정책에서 유연성과 자신감을 갖게 했고 북의 입장을 보다 진보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낳았다. 자신감이 지나쳐서 오만과 과신으로 보이기도 하고 유연성이 도를 넘어 일방적 양보처럼 비추어지기도 했지만 6공의 대북정책이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왔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어지러운 국내정치에 비교하면 북방정책과 통일정책은 구름사이로 비쳐나오는 한 줄기 햇살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제 80년대를 역사속에 묻고 새로운 90년대를 맞아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통일문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비극과 고통의 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연대를 맞아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된 민족공동체를 완성하려는 실천적 의지를 다짐하려는 것이 국민 모두의 한결같은 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염원이 이루어지려면 몇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북이 문열어야 가능 무엇보다도 우선 공산권 내부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성취는 북한이 얼마나 변화하느냐에 달려있다. 북한이 그 닫힌 문과 마음을 열고 세계와 남한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리 관계개선을 추구하고 통일을 염원한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동구를 휩쓸고 있는 변혁의 물결이 언젠가는 북한에도 밀어닥칠 것으로 보려는 희망과 기대가 우리들 사이에서 커가고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오류를 범할 위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북한이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스스로 바뀌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리 변화를 희망하고 추구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망각해서도 안될 것이다. 동구의 변화는 서구가 동구의 변화를 유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구가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유지했기 때문이다. 서구의 성공이 동구의 변화를 가져온 가장 위력적인 촉매제였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내부변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남한 스스로의 성공에 있다.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완성하고 경제적으로 성장과 복지가 조화를 이루어 낼 때 북은 지금의 상태로 외부와 단절된 채 주체의 왕국으로 계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쪽에서 달동네가 없어지고 재야가 제도권내의 목소리로 흡인될 수만 있다면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휴전선 이남에 콩크리트 장벽이 있다는 억지 주장을 해도 이를 믿을 사람이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다. ○기적은 내부서 찾아야 특히 위험스런 일은 남쪽의 부족한 성공을 보충하거나 호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일정책이 오용되는 것이다. 남북이 서로 개방하고 교류하며 그러는 사이에 통일을 앞당기는 일은 80년대나 90년대나 변함없이 인내와 자제가 요구되는 장기적 과제이지 연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그 가능성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통일정책이 구름사이로 비춰지는 한 가닥 햇살이라 해도 구름 자체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빛과 그림자는 엄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통일문제에 관해 당연히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뭔가 기적이라도 생겨날 것 같은 인상을 주어서도 안될 것이다. 기적은 우리 내부의 정치ㆍ경제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서 통일문제 못지않게 정치ㆍ경제분야에서도 많은 구체적 청사진이 나오기를 기대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연설과 질문이 보여준 차이를 결코 가볍게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통일문제를 다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정말 변화하지 않으면 안될 역사적 시점이 다가왔을 때를 대비하여 북한에 대한 연구와 지식을 축적시켜 나가는 일이다. 훌륭한 통일정책이 있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정지원과 뜨거운 성원이 뒷받침된 성숙한 통일연구가 있어야 한다. 연구없는 정책은 단견과 졸속을 면할 수 없다. 그동안 북한연구가 적지않게 진행되어 왔고 많은 연구소와 전문가가 존재하고 있지만 서로 연계되지 않은 가운데 간헐적인 활동만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게 우리의 솔직한 실정이다. 정부가 통일문제를 90년대의 최우선정책으로 삼고 있다면 이에 상응하는 북한연구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서독의 전독문제연구소에는 수백명의 전문가들이 동독연구에 전념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베를린의 기적을 가져온 비결이었음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