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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바논 억류 미 인질/시시피오씨 풀려나/미 대사관에 인도

    【다마스쿠스 로이터 연합】 친소이란계 회교 과격파들에 의해 레바논에 인질로 억류되었다 2일 석방된 미국인 조셉 시시피오씨가 다마스쿠스에 도착,시리아 외무부에서 시리아주재 미국대사에게 인도되었다고 서방 외교관들이 전했다.
  • 소 주재 외교관/북한,대폭 교체

    【모스크바연합】북한은 최근 모스크바주재 대사관의 간부급 외교관 거의 모두를 교체,모스크바 외교가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사정에 정통한 한 서방 외교소식통은 30일 손성필 대사를 제외한 2명의 공사를 비롯해 참사관급 등 거의 모든 간부급 북한 외교관들이 최근 한달여 사이에 갑자기 교체됐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북한의 이번 조치가 정기인사와는 무관한 것이며 간부급의 전면교체라는 점에서도 국제 외교관례상 이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 캄보디아 평화계획에 “암운”

    ◎귀국 키우 삼판 군중공격에 방콕 피신/민족평의회 첫회담 불투명 【프놈펜 AFP 로이터 연합】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지도자인 키우 삼판이 27일 프놈펜에 귀환했으나 성난 군중들의 공격을 받고 간신히 프놈펜을 탈출,방콕으로 피신했다. 캄보디아 4개 정파중의 하나인 크메르 루주 지도자 키우 삼판의 귀국이 거부당함에 따라 유엔 중재하의 캄보디아 평화계획은 암운을 드리우게 됐다. 방콕주재 외교관들은 12월초에 열릴 캄보디아 최고민족평의회(SNC)의 첫번째 공식회담이 이날 사태로 인해 예정대로 열릴지 불투명하게됐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국가원수로 추대된 노로돔 시아누크공은 이날 사태가 발생한후 4개 정파지도자들이 참석하는 긴급회담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방콕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했다고 방콕의 정통한 소식통들이 말했다. 시아누크공은 롤랑 뒤마 프랑스외무장관과 알리 알라타스 인도네시아 외무장관,라프딘 아흐메드 유엔대표에게도 회담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보낸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5∼78년 캄보디아를 온통 「킬링필드」(학살의 장)로 몰아넣은 악명높은 크메르 루주 지도자인 키우 삼판은 이날상오 방콕으로 부터 프놈펜에 도착했으나 크메르 루주의 학살로 가족과 친척을 잃은 수천명의 프놈펜시민들은 그가 묵고있는 별장을 포위,『그를 죽여라』라고 외쳤으며 성난 일부 시민은 집안으로 난입,돌과 몽둥이 주먹등으로 집단 폭행을 가했다. 머리에 유혈이 낭자한채 키우 삼판은 하오2시경 현장에 도착한 훈센총리등 캄보디아정부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아 장갑차편으로 손센 국방장관등 3명의 크메르 루주지도자들과 함께 공항으로 피신,방콕으로 돌아갔다. 캄보디아정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국민들의 감정을 이해하지만 그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설득한 노력이 실패한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성명은 이어 지난달 파리에서 크메르 루주와 함께 서명한 평화협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APEC 유감(이정연칼럼)

    서울에서 이번에 모처럼 외교관들간에 귀엣말이 오가는 외교드라마를 본듯싶다.지금껏 많은 국제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그 대부분은 예정된 스케줄,준비된 성명서,한국의 경제발전 예찬,그리고 화려한 만찬과 푸짐한 선물로 이어졌다.이같은 패턴은 88올림픽에서 절정을 이뤘다. 하기는 1945년8월14일 밤,찰스 본스틸대령(전 주한유엔군사령관)과 딘 러스크대령(전 미국무장관)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지도를 보면서 「서울은 수도이니 미국진영에 넣고 자연적 지리학상의 경계선이 없으니 38선」으로 하는 식으로 역사적인 남북분단안을 참모부에 올렸다.러스크는 그후 회고록에서 「우리는 그날 이 모든것에 대해 너무 무지했었고 결국 밤늦게 일하느라 지친 우리 두 대령이 건의한 38선을 참모부가 택한 것은 숙명」이라 했다.물론 마셜육참총장,국무부,백악관,그리고 그후 소련도 이에 대해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한국」「서울」의 1945년은 세계에서 이렇게 무시당하고,잊혀지기는 커녕 아예 알고 관심을 갖는 사람조차 없는 버려진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1991년11월,서울에서 열린 APEC의 주제는 「개방적 지역주의」이나 실상 초미의 관심사는 그 한반도의 북의 핵개발 저지와 남의 쌀개방 문제였고 이 회의를 조직하고 주재해 나간것 또한 우리 외무장관이요 상공장관이었다. 열전없이 냉전은 끝났고 세계는 바야흐로 새로운 국제질서를 서두르며 경제전쟁과 기술전쟁이라는 경제논리에 따라 미소가 서둘러 핵을 폐기하고 평화와 번영,통상과 기술,인류복지가 화제가 되고 있는 터에 느닷없이 세계의 빈국대열에 서있는 모험국인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뉴스에 동서,미중까지도 그저 놀라 평양을 처다보며 「그 예측불가능한 사람이 위험천만한 그런 무기를 갖는다는 것은」하며 그 대책 마련에 APEC 참석자들은 동분서주했다. 또하나의 주제는 이 회의에 걸맞게 농업시장개방이 주관심사가 되어 「시장개방에 예외없다」는 초강대국 미국의 칼라 힐스 대표의 쌀쌀맞은 말을 선두로 호주·캐나다등 의젓한 대국 대표들이 한국에 쌀을 좀 사달라고 아우성치는 상황이 됐다. 하기는 벌써 우리는 절대 「불가」라며 버티다 쇠고기·담배·포도주 수입을 「어느관광호텔로 제한」「소비량의 몇%」 운운하다 결국은 국민의 선택에 맡기고 만게 어제의 일이다.우리가 또한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 경제발전 전략의 기조가 「수출입국」이고 보면 「우리 시장은 마음대로 유린하고 너희 문턱엔 담을 쌓고」라는 그들의 논리에 무턱대고 「노」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국회의 쌀 수입 결사반대 만장일치 결의,농민의 거센 항의 데모,농림수산부장관의 FAO(세계식량농업기구)에서의 쌀개방 불가 연설등 모두 백번 타당하고 우리가 관철해야만 할 국가적 과제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경쟁사회에서,국제경쟁논리와 합리·이성·과학적 분석,주고 받는 교섭과 설득,상황변화에 적극적이고 기민한 대응없이 「결사반대」「절대불가」로 국회는 농민을 대변,「애국」을 다했고 정부는 정직하게 책임을 완수,「우국」을 했다고 한다면 그또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앞으로 세계대세에 맞서 논리와 이성과 합리로 대응하고 설득하며 최선을 다하다 결과가 바람직하지 못할때 그유능한 협상자를 「매국노」로 만드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애국과 우국은 「결사」와 「고성」으로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줄도 알아야 한다. 북의 핵문제를 둘러싸고는 베이커(미국무)의 6자회담론,정치외교의 모든 수단동원등 북의 핵개발저지에 힘을 모으자는 데 모두들 뜻을 모았으며 그중 전기침중국외교부장이 지난 6월 평양에 갔었고 최근에도 방문,북의 핵사찰수락을 설득했다는 보도에 주목케 된다. 지난 90년 9월2일 셰바르드나제 소련외상은 평양을 방문,북의 핵협정가입을 촉구하고 개방을 설득한후 한소수교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었다.그리고 그들은 서로 등을 돌렸다.물론 당시 소련은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깃발을 들고 가히 혁명적인 변혁을 진행하던 때이다.중국은 비록 개방을 추진하되 당의 틀이 살아있고 사회주의노선 고수속의 개방을 주장하는 김일성세대의 등소평이 영향력을 아직 행사하고 있어 「윽박지르고」「돌아설 수 있는」그런 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명분 못지않게 「실리」에 결코 어둡지 않으며 우리처럼 「빨리 빨리」는 아니되 「만만디」로 「너도 있고 나도 있다」는 자세로 챙길것은 챙기는 그들 중국사람들이 전외교부장을 헛걸음치고 빈손으로 돌아오도록 그냥 보냈을리는 없으리라 여겨진다. 북은 아마도 경제력 부족으로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군사력의 극적인 증강과 국제적인 흥정 카드로 이용키 위해 핵무기를 생각한 듯싶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어리석지도 아둔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달았으리라 믿는다. 우리 쌀도 넘쳐 야단인데 우리더러 쌀 시장을 열라고 떼쓰는 대국들을 보며 「위협」을 느끼기보다는 「안됐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1991년 11월,서울 APEC총회를 보며 느끼는 한 한국인의 감회다.
  •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얼굴)

    ◎개혁파의 핵심… 소·동구문제 전문가 전기침 외교부장은 30여년만의 중소관계정상화와 13년만의 중·베트남 관계정상화를 실현시킨 현중국외교의 주인공.멀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중국 외교관계 수립에서도 중국측 주역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88년 외교부장 취임이래 동구를 휩쓴 민주화물결,천안문사태로 인한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고립,냉전체제의 종식과 걸프전쟁및 소련공산주의의 붕괴등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경제블록화 추세등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속에서 중국의 외교방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치를 정립시킨 제1의 공로자라 할 수 있다. 1928년1월 상해에서 출생한 전부장은 중국공산주의 청년당원에서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전임외교부장이었던 오학겸부총리와 인연을 맺은뒤 이를 바탕으로 외교무대에서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려온 외교관료출신이며 등소평의 개혁노선을 열렬히 지지하는 개혁파의 핵심이다.그는 소련대사관에서의 오랜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소련및 동구문제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러시아어 외에도 영어와 불어등 외국어에 능통한데다 항상 뛰어난 화술과 유연하고 침착한 행동을 유지,동료외교관들은 물론 국내외 기자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 유엔 평화군 「캄」 배치 시작

    【프놈펜 AP 로이터 연합】 유엔은 10일 호주및 뉴질랜드 군부대의 프놈펜 도착으로 13년동안 내전이 지속돼온 캄보디아에 유엔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배치하기 시작했으며 이와 때를 같이해 미외교관들은 16년전에 단절된 캄보디아와의 공식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11일 프놈펜에 도착한다. 【프놈펜 AP 연합】 미국은 11일 지난 16년동안 단절됐던 캄보디아에 고위 외교관을 파견함으로써 프놈펜에서 공식외교활동에 들어갔다.
  • 유고 연방­크로아군 치열한 전투/두브로브니크시 공습 계속

    ◎다뉴브강∼아드리아해로 전선 확대 【두브로브니크·베오그라드(유고) 로이터 AP 연합 특약】 유고연방군의 포격 및 공습등 강력한 포탄세례가 3일에도 아드리아해의 항구도시인 두브로브니크시에 퍼부었으며 크로아티아 동부의 부코바르시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다고 서방외교관들이 밝혔다. 이들 외교관들은 연방군의 전면 공격이 재개된 이틀째인 이날 연방군과 크로아티아군간 다뉴브강으로부터 아드리아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전선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앞서 크로아티아 라디오방송은 지난 2주동안 크로아티아공화국내 10개 도시에서 벌어진 연방군과의 충돌중 가장 치열한 양상을 보인 2일 전투에서만 최소한 25명의 크로아티아인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 라디오는 또 모든 전선에서 유고 연방군이 입은 물적·인적 피해도 크다고 전하고 특히 빈코브치와 부코바르지역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두브로브니크시에서는 대규모 빵공장이 심하게 파괴돼 3일 시민들에 대한 빵 공급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고 현지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 중동평화회담 마드리드 표정

    ◎경찰 1만2천명 동원 삼엄한 경계/샤미르총리,애·레바논대표 사이에 자리 ○…중동평화회담 개막을 하루 앞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에 이어 부시 미국대통령이(29일이하 현지시간)도착하고 각국 대표단과 업저버,외교관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어 역사적 국제회의개최지로서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자신보다 하루 늦게 이날 도착한 부시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장 옆 크리스탈 왕궁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는 이른 아침부터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수백명의 보도진들이 취재에 돌입,회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역사적인 마드리드 평화회담이 열리는 팔라시오 데 오리엔테궁의 살라스 데콜룸나스는 세상에서 가장 추운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유명. 이 방이 어찌나 춥던지 후안 카를로스 왕은 아예 입주를 사양했고 그의 조부 알폰소 13세 왕은 주방에서 침실까지 아침식사가 배달되는 사이 식어버리곤해 투덜거리곤 했다고 전해진다. 회담 준비자들은 이 회담장이야말로 열띤 설전을 벌일 대표들의 뜨거운 머리를 식히기에는 안성 맞춤이라고 한마디. ○…스페인의 회담준비 상태는 14일간의 벼락치기 준비 치고는 수준급이라는 평. 스페인인들이 1년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는 전화를 언론용으로 2천5백회선이나 새로 설치했고 수백대의 타이프라이터와 팩스,텔렉스등도 갖춰놨다. 그러나 회담 취재차 온 각국 언론인 수천명이 일시에 몰릴 경우 대혼잡이 일 듯. 스페인 당국은 이와함께 보안에도 만전을 기해 1만2천 경찰병력을 동원,회담장 주변에 물샐틈 없는 경비망을 펼쳐놓고 있다. ○…스페인이 회담 주최국으로 최종 낙점된 것은 아랍및 유대인들과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다는 후문. 스페인은 한때 회교도와 유대인들의 지배를 받다가 5백년전 이들을 몰아냈었다. 이곳 유대인 교민회장은 스페인보다 더 관대한 나라를 찾기 힘들 것이라며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다시 마드리드의 하늘아래 모인다는 것은 스페인의 각별한 배려임을 강조. 어떤 아랍인들은 수백년전 그들이 이나라에서 물러갔듯이 이스라엘도 점령지에서 철수하기를 내심 기원하면서스페인을 회담 개최장소로 승락했다는 추측을 하기도. ○…회담은 주최국인 스페인의 펠리페 곤살레스 총리의 짤막한 연설에 이어 부시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20분간 연설하는 것으로 개막될 예정. 이들 세지도자들은 회의장을 굽어보는 단상에 앉고 연사들은 그아래 강단에 서게 될 것이라고.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 보리스 판킨 소외무장관등 대표단장들은 장방형 탁자에 앉고 그 뒤쪽으로 13개 대표단의 다른 단원들이 자리잡게 돼 있으며 샤미르 총리는 이집트와 레바논 대표단장 사이에 앉게 될 것이라고. ○…30일 개막회동은 점심 휴식시간에 이어 이집트및 유럽공동체(EC)대표단장들이 각기 45분간 연설하는 순서를 갖는다. 이어 31일 회담에서는 이스라엘과 요르단·팔레스타인,시리아,레바논 대표단이 연설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11월 1일엔 아랍과 이스라엘 대표들이 전날 연설에 대한 대응연설을 15­20분간씩하고 베이커와 판킨이 각기 20분 범위내에서 절차를 요약하는 것으로 회의를 끝맺게 된다.
  • 남북 외무 연쇄접촉 가능성

    ◎새달 77그룹(이란) 4월 아태이사회(북경) 총회 동시 참가/2월 콜롬비아 유엔개발위서도 만나 남북한의 외무장관을 포함한 고위외교관들의 접촉이 11월 중순 이란에서 열리는 제7차 77그룹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보다 활발히 전개될 전망이다. 특히 북한측은 내년 4월14일부터 23일까지 북경에서 열리는 제48차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에 앞서 ESCAP의 정회원 가입이 확실시되고 있어 한중 뿐아니라 남북한외무장관의 북경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27일 『북한은 11월 중순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3차 아태각료회의(APEC)기간중 한중외무장관이 개별회담을 갖는데 이어 내년 4월의 북경 ESCAP총회에서 다시 한중외무장관이 접촉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ESCAP총회전에 정식회원가입 신청서를 제출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제,『북한측은 북경총회에 김영남외교부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대표단을 보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이같은 고위관리들간의 접촉은 12월 서울에서의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등과 맞물려있어남북한간의 화해와 협력분위기 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남북한 외무장관은 이에앞서 내년 2월10일부터 16일까지 콜롬비아에서 열리는 제8차 유엔무역개발위원회(UNCTAD)총회에도 함께 참석,회동을 가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중동평화회담 지역문제 협상/시리아서 불참 선언

    【뉴욕 연합】 시리아는 미국이 고안한 세 단계의 중동평화회담중 한 단계인 지역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협상에는 참여할 의도가 없음을 미국에 통보했다고 뉴욕타임스가 1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워싱턴의 중동외교관들과 미국관리들의 말을 인용,시리아는 용수권,경제발전 그리고 군축같은 지역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포함된 협상에는 참여하지 않을 계획임을 미국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관리들은 시리아의 이같은 움직임이 다른 아랍국가들을 방관자로 만들고 중동평화를 위한 협상에 대해 이스라엘이 보다 매력을 끌지 못하게 할 수도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같은 문제들을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직접협상을 위해 수반되어야 하는 중요한 사항으로 간주해왔다.
  • 남북협력에의 기대(사설)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과 미국·소련대통령의 잇따른 핵감축선언등으로 국내외 정세가 크게 변하자 남북대화와 교류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새삼 높아가고 있다.유엔가입직후 남북의 고위외교관들이 유엔무대의 막전막후에서 남북대화에 대한 상호의 입장을 천명하고 보다 본격적인 대화를 위한 조율작업을 시도했음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부시미대통령의 전술핵등 감축선언과 이에 부응하는 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의 한걸음 더나선 화답은 한반도의 핵문제와도 직결됨으로써 북한의 핵무기개발에 결정적 제동을 걸 수 있고 나아가 핵을 포함한 군축문제를 남북대화의 중요 의제로 부각시킬 수도 있게 되었다. 노태우대통령은 새해 예산안의 국회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을 통해 「남북한간의 과제를 포함하여 통일을 이루기 위한 모든 문제에 대해 논의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적극적 자세를 보이고 남북한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거듭 표명했다.물론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나 최근의 정세변화는 이 말의 의미를 무게있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마침 오는 22일부터 평양에서 남북총리가 참석하는 고위급회담이 열려 여기에서 남북한간에 교류와 불가침문제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이의 합의여부가 남북관계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북한의 강석주외교부부부장이 이미 유엔방문시 기자회견을 통해 「고위급회담에서 기본문제가 합의되면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며 김일성도 바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이 더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그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경제란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특히 유류와 식량의 부족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이다.이는 북한의 대외교역량중 50%정도를 차지하는 소련과의 교역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지난해 15억달러 규모에서 올해에는 2억달러를 약간 상회할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승리정유소가 가동중지되고 내년 봄의 절양위기설까지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북한주석 김일성이 다급해서 중국을 방문,경제원조를 요청했으나 완곡히 거부당했음은 이미 외신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다.아울러 한반도문제는 남북한간의 협의가 가장 중요하다는 중국고위층의 종용을 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다.또 북한이 두만강유역의 경제특구설치에 힘을 쓰고 있지만 한국의 적극적 참여없이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게 되어있음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노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우리는 북한의 협조가 필요하면 이를 요청할 것이며 북한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 기꺼이 도울 것」이라고 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유의할만한 부분이다. 남북대화의 획기적 진전을 기대하며 우리 스스로도 통일에 앞선 충분한 연구와 준비에 온 국민의 뜻과 힘을 모아 나가야 할 것이다.
  • 전 김일성 통역관겸 고위외교관/고영환은 말한다:6

    ◎“원자탄 만든다” 70년대초 소문 파다/핵개발과 군수산업/박천에 지하 핵연구소… 불서 기술 도입/“핵정보 극비”… 김 부자등 5명밖엔 몰라/개천군 지하군수공장 “하루종일 걸려도 다 못봐”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렵다고 군수산업 역시 별것 아니겠구나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이와 관련,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지난 87년 4월15일 조총련의 한덕수회장이 김일성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사절단을 이끌고 입북했었다.당시 북한 고위층을 만난 한회장은 『현재 북한주민들의 생활이 형편없다는데 회의를 느끼고 조총련을 이탈하려는 동포가 많아 고민이다.무슨 좋은 방도가 없겠느냐』며 고층을 털어놓은 일이 있다.이에 대해 북한 고위층은 『공장 한곳 안내할테니 보고나서 얘기합시다』라며 긴말을 하지 않았다. 이때 한회장이 안내된 곳은 평남 개천군 각암리에 있는 「1월18일 기계공장」(일명 각암공장)이었다.이곳은 모든 생산시설이 지하에 설치된 군수품제조창인데 미사일·탱크·발동기가 주종제품이다. 아파트단지 지하에 공장이 세워졌기때문에 개천에 사는 주민들 가운데서도 이 공장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가 않다.현재 만경대 약전기계공장(지대함미사일 생산)설계기사로 한때 각암공장에 근무한 바 있는 친형 고방남(47)에 따르면 지하 땅굴은 하루 종일 걸어도 다 못돌아볼 정도로 넓다는 것이다.한덕수회장은 이 공장을 돌아본 뒤 『북조선이 이렇게 힘있는 줄 몰랐다.이제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의 핵무기개발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으나 북한 내부에서도 이 문제는 극비사항이어서 자세한 내막을 알고있는 사람은 김일성부자를 포함,5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개발했는지 또는 어느 정도의 개발단계에 와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북한의 핵무기문제가 북한사회,특히 북한외교부 관리들 사이에서 이슈화된 것은 이미 85년경부터다. 『곧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이심전심으로 외교관들사이에 전해진 것도 그 무렵이다. 또 이때부터 『스탈린이 잘한 것은 원자탄을 제때 개발해가진 것』이라는 말들이 나돌았다. 북한 외교관들은 80년초까지만 해도 남북의 경제력이 엇비슷하다고 생각했으나 85∼86년을 고비로 남한 우위가 확실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고 그때부터 패배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이때 외교관들 사이에 『「상용」(CLASSIC)무기같은 것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울 텐데….그렇다면 핵무기가 이미 개발된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떠돌았으며 이것으로 상당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결국 핵무기개발을 「체제보존의 마지막 수단」으로 생각하는 심정은 통치자나 관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북한에서는 원자로 설계팀등 각종 기술대표단이 프랑스에 와서 원자로에 관한 기술을 「뽑아갔다」.이와관련,북한외교관들은 북한당국이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의 규제가 비교적 「무른」 프랑스및 오스트리아를 대상으로 핵무기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판단했었다. 특히 지난해 오스트리아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이사회가 열릴 무렵엔 핵사찰문제와 관련한 긴급 전문이 해외공관에 빈번히 내려왔다. 전문내용은 핵의 강대국 독점및 핵사찰반대에 대한 주재국의 지지획득을 독려하는 것이었다. 외교관들 사이에서 핵무기개발문제가 이슈화된 시점은 80년대 중반부터지만 일부 사람들이 핵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앞선 60년대초부터이다. 북한은 59년도에 김일성종합대학에 핵물리학과를 설치한 것을 필두로 김책공업대에도 핵물리학과를 신설했으며 60년대 중반 평북 박천에 지하핵연구시설을 설치했다. 당시 김일성은 『왜 간부 자식들이 핵물리학과에 가지 않고 정치경제학부만을 지원하느냐.간부자제들 가운데 똑똑한 아이들은 핵물리학과에 넣어라』라고 직접 지시,많은 학생들이 「기대에 부풀어서」 지원했다.이들은 졸업후 모두 박천의 핵연구시설에서 근무했는데 부모친척도 못만나고 평양출입도 자유롭지 못하다 하여 대단한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들었다. 『핵물리학과에 가면 박천땅 귀신이 된다.이미 원자탄을 만들었다』하는 소문은 65∼72년 사이 평양외국어학원 다닐때와 72∼77년 평양외국어대학 재학시 들었는데 학생들의 대부분이 북한 고위층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나도는 이야기들은 80∼90%가 맞을 정도로 정확하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볼때 북한은 이미 60년대 중반부터 핵무기개발에 착수했으며 80년대들어 남북간 경제력의 차가 현격히 벌어지면서 더욱 박차를 가한 것으로 판단된다.
  • 아이티 대통령 복귀/쿠데타 군부서 시사

    ◎미주 기구서도 압력 【포르토프랭스 AP 연합】 아이티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 지도자 라울 세드라 장군은 5일 군부가 「모종의 보장」을 받는다면 축출된 장 베르트란드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복권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드라 장군은 지난달 30일 아이티에서 발생한 쿠데타로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축출된 뒤 일주일째 계속돼온 국내 위기사태가 조만간 해결될 수있을 것이며 이를 위해 미국 대사도 돕고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세드라 장군의 이같은 발언과는 상치되는 성명이 군최고사령부 명의로 발표돼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포르토프랭스 AP 연합】 미주기구(OAS)외교관들은 5일 아이티의 군사쿠테타를 주도한 지도자들과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에서 2일째 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만일 군부지도자들이 장­베르트란드 아리스티드를 대통령직에 복귀시키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대아이티 보이콧사태에 직면하게 될것이며 쿠대타는 결과적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압력을 가했다.
  • 전 김일성 통역관겸 고위외교관 고영환은 말한다:5

    ◎평양추파의 겉과 속/형식적 대미 접근… 「한·미 유대 끊기」 치중/“미국은 악”… 체제지탱 위한 세뇌교육 여전/핵사찰 압력도 “대일 수교 훼방놓기” 간주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계기로 미·일·중·소 등 주변 4대 강국의 남북한교차승인문제가 최근 한반도의 평화보장장치의 하나로서 활발히 검토되고 있는 듯하나 그 실현가능성은 북측의 소극적인 자세로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요즘 대미접촉 움직임을 부쩍 강화하고 있긴 하지만 북한외교가에서 추구하는 중단기적 전략목표는 북한과 미국간 대사급외교관계의 수립이라는 질적인 관계변화가 아니다. 북한은 다만 일정한 수준의 대미 관계개선을 통해 남한에 대한 미국측의 일방적인 지지를 흐트러뜨리는 한편 미국의 방해로 늦춰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일·북한 수교교섭을 조기에 매듭짓기를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남한과 미국의 긴밀도가 마치 「태아와 산모」의 관계와 같으며 서로가 「짝짜꿍」이돼 자신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또 일·북한 수교교섭시 핵사찰문제를 제기,일본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사에 「코코히」 맞서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싫든 좋든 미국을 「얼르지」(달래지) 않고서는 북한주도의 통일은 물론 일·북한 수교든 뭐든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는 현실인식을 하게됐다. 이 결과 북한의 대미접근은 그 자체가 목표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주체사상과 반미주의는 정권수립후 지금까지 북한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두가지 사상적 버팀목이다. 북한의 통치자들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미군은 6.25때 1백만명이상의 인민을 학살한 원수이며 주한미군은 또 분단전 조국의 통일을 가로막는 방해세력이자 남조선에는 에이즈(AIDS)등을 유포시키는 등 모든 화의 근원이라고 선전해왔다. 주한미군만 나가면 통일에 유리한,결정적인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는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같은 세뇌교육으로 북한주민은 미국과 악을 하나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과 7∼8세의 어린이들도 소꿉놀이장난을 하면서 「강도」나 「나쁜놈」을 말할때 「저놈은 미국놈과 같다」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쓰고 있다. 이처럼 북한주민의 반미주의는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정권 창립일인 9·9절과 같은날 김일성광장에 모인 1백만명이상의 주민들이 절규하듯 외치는 반미구호를 생각해 보라. 머리칼이 곤두서는 듯한 그 전율은 마치 1933년 독일의 뮌헨 라이프치히에서 갈색제복을 입고 횃불행진을 벌였던 나치병정들의 광기를 떠올리게 한다. 북한외교부에서조차 나치의 파시즘이 세웠던 독일 제3제국이 오늘에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말이 나돌 정도이다. 따라서 반미주의가 무너지면 북한정권의 절반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다. 같은 적대국가로 상정해온 일본과 미국이 북한주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강도는 전혀 다르다. 때문에 북한은 미·북한간 북경접촉이 이뤄지는 요즈음도 대내적으로는 반미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접촉은 오직 종교·외교 등 특정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그 접촉내용도 일반 주민이 들을 수 없는 대남전용방송인 평양방송에만 보도된다. 종종 일본언론이 인용보도하는 북한방송은 평양방송의 내용을 청취한 것이다. 북한은 「일본이 무릎을 꿇고 들어왔기 때문에」라는 식으로 대일수교 교섭과정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으나 미국과의 접촉사실은 외교관 및 당중앙위 해당일꾼 등 극히 소수에게만 설명하고 있다. 그것도 『미국내에도 우리의 평화애호적인 노력을 지지하고 우리의 자주적 입장을 이해하는 세력이 있어 이들의 요청으로 한시해 외교부 부부장 등이 서너차례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는 식이다. 북한은 외교관들에게 서로 상반된 두개의 제스처를 미국측에 취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그 하나는 『우리는 절대 호전적이 아니며 당신네(미국)를 칠 힘도 없다. 우리를 의심하지 마라. 세상에 영원한 벗도,영원한 적도 없지 않느냐』며 미국의 호감을 사도록 노력,『북조선도 이제 참해졌구나. 관계개선을 해야지 않겠느냐』는 식의 여론을 미국내에서 불러일으키도록 하라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핵사찰문제 등에 관해서는 미국의 입장을 단호히 비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가령 북한외교부가 지난해초 해외의 각 공관에 내려보낸 핵사찰관련 활동지침에 따르면 『핵은 어느 한 열강의 독점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이는 자주권을 짓밟는 행위다. 어느 한 나라가 받아들이면 모두가 받아들여야 되고 결국 온천지는 모두 미국놈의 세상이 된다』는 논리를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인도 등 핵무기를 개발했거나 개발중인 제3세계국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설득하라는 것. 이렇듯 북한 외교의 현 당면과제는 대미 관계개선을 통해 핵사찰압력등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해오는 직접적인 압력을 떨쳐 내는 한편 앞길을 곳곳에서 막아서는 미국의 방해를 제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간에 앞으로 5년이내에 대사급외교관계의 수립이라는 질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북한과 미국의 접촉은 이미 80년대초부터 뉴욕 모스크바 북경등지에서 여러차례 비밀리에 있어 왔다. 그러나 이는 대미 수교가 목적이 아니라 지난 80년 6차 노동당대회때 이미 세워진 『조선문제의 책임당사자인 미국과 직접협상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는 방안을 논의,통일문제를 푼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측의 이러한 직접 협상요구에 대해 『당신들이 남한을 괴뢰라 하는데 남한도 하나의 정치적 실체가 아니냐. 거기에도 대통령과 헌법,군대가 있는데 남한을 제외하고서는 회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해 왔다. 이에 따라 북측이 미국측의 요구를 수용해 나온 것이 3자회담(남·북한과 미국) 개최 주장이다. 이후 이 문제는 4자회담(남·북한·미국·중국) 6자회담(남·북한·미·중·일·소)등으로 발전돼 왔다.
  • 케야르 후임 30여명 각축/차기 유엔사무총장 누가 될까

    ◎“이번엔 우리 차례” 아주서 6명 출마/영선 짐바브웨 재무,미선 애 부총리 밀듯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오는 연말에 두번째 임기가 끝나는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사무총장의 후임자및 후임선출절차 문제들에 관해 7일 비공개 협의를 가지며 후임 사무총장 후보를 10월말 이전에 총회에 천거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소련·중국등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어떤 후보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수 있으며 안보리가 천거한 후보는 1백66개국 총회의 표결에서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후임총장으로 확정된다. 후임 사무총장직을 둘러싼 로비활동이 최종단계에 들어선 4일 이브라힘 바반기다 나이지리아대통령은 아프리카 출신자가 차기 유엔사무총장에 선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총회연설을 통해 그같이 말하고 현재 15개국으로 구성되어 있는 유엔안보리 이사국의 수가 적절치 않다면서 안보리 이사국의 수를 늘리라고 촉구했다. 현재 후임 사무총장의 물망에 올라 있는 인사는 입후보를 선언했거나 안한 사람을 합쳐 30명이넘지만 이중에서 부트로스 갈리 이집트부총리,걸프만지구에서 유엔의 인도주의 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사드루딘 아가 칸공,그로 하를렘 부른트란드 노르웨이총리,알리 알라타스 인도네시아 외무장관,버나드 치드제로 짐바브웨 재무장관등 5,6명이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후임 사무총장 후보의 선두주자가 아직 떠오르지 않고 있으나 런던의 인디펜던스지는 영국이 치드제로 짐바브웨 재무장관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4일 보도했다.이 신문은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하여 영국이 안보리의 제1차 투표때 치드제로를 후임 사무총장으로 지지하지만 그가 1차투표에서 천거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지지를 고집하지 않을것 같다고 전했으나 영국 유엔대표부의 한 고위외교관은 영국이 치드제로에 반대하지 않으나 영국이 지지할 사무총장 후보자를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는 4일 후임 유엔사무총장 후보로 77년부터 금년초까지 이집트 외무차관을 지낸 갈리 부총리(68)에게 비중을 두었다. 이 신문은 『유엔의 옳은 선택』이라는 제목의사설에서 갈리 부총리가 연령을 초월하여 활력이 있다면서 유엔총장은 프랑스어가 유창해야 한다는 프랑스측 주장을 겨냥하여 갈리 부총리는 파리에서 수학했으며 그의 영어에는 프랑스어 억양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후임 사무총장의 물망에 올라 있는 그밖의 인사로는 라울 망글라푸스 필리핀외무장관,브라이언 멀로니 캐나다총리,크르지스토프 스쿠비세프스키 폴란드외무장관등이 있다. 다른 유엔 고위직과는 달리 유엔사무총장직에는 지역윤번제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사무총장을 배출하지 못한 지역인 아프리카에서 6명이 후임 사무총장에 출마했는데 이들은 갈리 부총리와 치드제로 재무장관 외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사무총장인 가나의 케네스 다드지에,특별정치문제 담당 유엔사무차장인 시에라레온의 제임스 조나,올루세굼 오바산조 전나이지리아 대통령,프랑수아 오워노 전가봉 문화장관등이다.
  • 유엔서도 「변화」 거부하는 북한/연형묵총리 총회연설의 의미

    ◎핵·통일문제 기존입장만 되풀이/한글·영문표현 달라 “이중자세” 북한의 연형묵총리의 유엔연설은 기대와는 달리 새로운 것이 없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한데 그쳤다. 그의 유엔연설에 기대를 했던것은 유엔이 북한에게는 새로운 무대이고 동구의 와해에 따른 국제정세의 전면적 변화라는 새로운 국면이 북한에 조금은 다른 발상을 유도할수도 있을것이란 점 때문이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대목은 『우리는 며칠전 미국대통령 부시가 지상및 해상에서 단거리 핵무기들을 제거하기로 한 제안을 발표한 것을 환영한다』는 부분이다. 이부분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연총리의 미국 도착이 부시대통령의 핵제거 제안 전이라는 점때문이다.연총리가 평양을 떠난 것은 지난 27일로 부시대통령의 발표 하루 전이다.북한의 권력구조로 보아 대표단이 평양을 떠나온 이후 발생한 사태에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실제로 남조선에서 핵무기를 철수하게 되면 우리의 핵담보협정체결의 길도 열리게 될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는데,남한에 미국의 핵무기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가상하더라도 부시의 이번 조치로 남한의 미국핵은 제거될것이 확실하므로 북한도 핵안전협정에 자동적으로 서명하게될 것인지가 궁금한 일이다. 연총리의 이날 연설은 이부문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는데,그는 연설 앞부분에서 『공화국정부는 지난 7월 조선에 북과 남이 조선반도에 비핵지대를 창설하는데 합의하고 이를 공동으로 선언하며 미국과 조선반도 주변의 핵무기 소유국들인 소련과 중국이 조선반도가 비핵지대로 합의 선포되는 전제로 이를 법적으로 담보할것』을 제안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미국관리들은 한국에서 전술핵을 철수한다 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보호공약까지 철회하는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 어떤 관리는 필요하다면 한국에 핵무기를 언제든 재투입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라고 이곳 외교관들은 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반도의 핵지대화」란 개념 자체에 혼란이 있을수 밖에 없으므로 남북양쪽의 핵문제는 기본적으로 원점에 서있는 셈이다.이와 관련,유엔 외교관들중엔 북한이 핵문제에관해 다소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것 같다는 분석을 하는 사람도 있다.연총리가 이날 연설에서 북한이 핵문제에서 형평에 어긋나는 부당한 국제적 압력을 받고 있다는 주장은 어떻든 북한이 핵안전 협정을 계속해서 거부할 경우 이라크와 같이 강제적 핵사찰을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내년 2월까지 내기로 돼있는 국제원자력기구의 대북한조사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한핵사찰 결의안을 낼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결의안을 낸다고 해서 다 통과가 되는것은 아니지만 소련과 중국이 다같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를 바라지 않고있는 입장이고 미국이 남한에서 핵철수를 완료한 상황이라면 결의안 통과도 상황에 따라서는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시사는 전제조건이 달려있고 지난 9월 뉴욕에 왔던 강석주 북한외교부부부장의 유엔연설이나 강부부장의 컬럼비아대 연설과 다를게 없다. 30분동안 계속된 연총리의 연설은 맨앞부분의 의례적인 언급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남북한 문제에 치중돼 있는데 이는 노태우대통령의 지난달 25일 연설과 퍽 대조적이다.노대통령 연설은 남북한문제보다 앞으로 한국의 국제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북한대표부는 이날 연총리가 연설을 시작하기 5분전에야 영문 연설문을 배포했으며 연설이 끝나서야 한글연설문을 흘렸는데 영문과 한글에 표현상 다소 차이가 있는점도 눈에 띄었다.문맥에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뉴앙스에서 한글 표현은 한결거친 반면 영어 표현은 정중했다.국내용과 대외용을 의식한듯 하다.
  • 미·소 대표 빠져 “썰렁한 리셉션”/연 총리 주최 환영연 주변

    ◎고위관리 안보이자 낙담/“판에 박은 주장”… 참석자들 “씁쓸”/친북한 교민·학자들 일부 참석 눈길 ○…북한의 유엔가입을 자축하기 위해 연형묵총리가 주최한 유엔대표단 초청 리셉션이 2일 저녁 6시(한국시각 3일 상오 7시)부터 8시까지 2시간동안 미국 뉴욕 맨해턴에 있는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 힐튼홀에서 열렸으나 미국·소련·영국·프랑스등 주요국 대표들이 불참,맥빠진 분위기. 연총리와 김영남외교부장이 나란히 서서 손님들을 접대한 이날 리셉션에는 친북한 뉴욕교민,유엔주재 각국 외교사절,북한에 관심있는 미국인사들등 약 2백명이 참석했으나 주최측이 참석을 희망한 유엔주재 미국외교관들및 고위관리들을 포함한 서방외교관들 그리고 심지어 유엔주재 소련대사도 리셉션에 불참,주최측은 낙담한 표정이더라고 한 교민 참석자는 전언.유엔주재 중국대사,하타노 요시오(파다야양웅)유엔주재 일본대사를 비롯 이란,알바니아대사와 몽고 외무장관등이 참석했을뿐 미국 영국 프랑스,심지어 소련대표부대사도 이날 리셉션에 참석치 않아 주최측이크게 실망했다는 것인데 주최측은 특히 미국대표부 간부들및 미국관리들이 불참한데 크게 신경을 쓰더라고. ○…이날 하오 7시부터 그랜드 하이야트호텔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외무장관 리셉션에 과연 이상옥외무장관과 김영남 북한외교부장이 함께 참석,남북한외무장관 회동이 이뤄질 것인가에 관심이 쏠려 있었으나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 북한 리셉션장에서 북한의 김부장이 계속 떠나지 않아 결국 이날 남북한외무장관 회담은 무산.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있은 연총리주최 리셉션에는 뉴욕총영사를 지낸 윤호근씨,남북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던 주동진씨와 남북기독학자세미나를 주선한 윤중식목사들과 친북한 교민들,그리고 게리 레드야드(컬럼비아대학·한국학),초이 김교수(드렉셀대학·정치학)등 북한에 관심있는 미국학자들이 일부 참석. ○…연형묵 북한 총리의 2일 유엔 연설에 『세계가 급격히 변하니 북한쪽도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에 무언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고 지레 짐작,기대를 걸었던 유엔내 각국 외교관들,특히 남한 대표부의 외교관들은 그의 판에 박은 북한의 종래 주장 되풀이에 깊은 실망을 표시. 김영남외교부장,박길연유엔대표부대사등 북한관계자들 20여명이 3층 방청석에 앉아 열심히 연총리 연설에 박수를 보냈는데 이들이 박수를 칠 때면 연총리도 북한식으로 연설을 중단,맞 박수를 쳐 주목을 끌기도. 연설이 끝나자 연총리는 이들 일행과 함께 유엔본부를 빠져나가 어디론가 급히 떠났다.
  • 중국,「미 핵감축」 환영 표명/외교부 대변인

    ◎“소에도 폐기의무 있다”/자국 핵무기 관련 언급 안해 【북경 로이터 AP 연합 특약】 중국은 29일 미소양국의 다탄두 핵미사일을 궁극적으로 완전 제거하자는 조지 부시 미대통령의 제안을 환영했으나 중국의 핵무기감축 여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미소는 핵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관계로 핵무기의 철폐에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 뒤 『이들 양국은 핵무기의 실험및 생산,배치를 중단하고 또 현재 보유중인 각종의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감축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관영 신화사통신이 보도했다. 이 성명은 이어 『중국은 이제까지 핵무기의 완전한 금지및 철저한 파괴를 주창해오는등 핵무기의 철폐를 찬성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중국은 이라크,파키스탄,인도의 핵무기개발 계획입안에 일조해 온 것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또 시리아,파키스탄,사우디아라비아에 탄도 미사일을 팔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방 외교관들은 부시대통령의 핵감축제안에 대한 중국의 공식반응이 아주 뒤늦게 나오고 또 자체핵감축계획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 “방미 연 총리 행동반경 확대”/미,북한 요청 거부

    ◎“핵 사찰 불응” 들어 뉴욕서 40㎞로/“핵 사찰 미와 논의 희망”/연 총리 밝혀 【도쿄 AFP 연합】 미국은 유엔총회에 참석,연설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하는 북한의 연형묵총리와 외교관들이 뉴욕시 중심가에서 반경 40㎞를 넘어 행동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북한측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일본의 교도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뉴욕의 한 한국문제전문가의 말을 인용,미행정부는 북한이 핵시설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수락을 거부했기 때문에 북한측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북한과 외교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 미국은 북한 외교관들의 행동반경을 뉴욕중심에 위치한 유엔본부로부터 반경 40㎞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도쿄 연합】 뉴욕으로 향하던중 27일 하오 일 나리타(성전)공항에 잠시 체류했던 연형묵 북한총리는 공항내에서 이시이 하지메(석정일)일조의원련맹회장과 회담하고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핵사찰문제에 대해 미정부및 의회 관계자들과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일본이 제의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으로 하여금 신속히 핵사찰협정을 조인하도록 촉구한 결의안을 채택한데 대해 『일본의 대응은 약간 거북했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이에대해 이시이 회장은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일본측에서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많다』고 반박했다.
  • 전 김일성 통역관겸 고위외교관/고영환은 말한다:2

    ◎김영남·강석주·고성순/북한외교의 「트로이카」/외교정책 결정의 메카니즘/외교부,84년에 당 국제부 누르고 실권 장악/“주석이 머리쓰셔야 하나” 김정일,전권 행사 솜털을 뽑아 그 자리에 다시 박을 만큼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김영남외교부장,능통한 영어구사력과 함께 세련된 제스처를 갖춘 강석주 제1부부장,중앙통신사 편집국장 출신으로 뛰어난 문장력을 자랑하는 고성순책임참사,바로 이들이 북한외교를 이끌고 있는 트로이카다. 북한의 외교정책은 김영남과 강석주가 분석한 내용을 고성순이 유려한 필체로 정리,김정일에 올리면 외교실무능력이 없는 김이 거의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곧장 국가정책으로 결정돼 시행된다. 김정일은 84년 이후 『외교부는 나의 외교부며 당의 외교부』라고 말하며 외교업무를 장악하고 있지만 외교부에서 올리는 제의서에 그대로 따를 뿐 정책방향을 지시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그는 정책적인 지시를 내리기 보다는 『외교부에 규율이 없다』『외교부를 군사화해야 겠다』『외교부에 부는 날나리 바람을 잠재워라』『왜 외교부가 돈벌이에만 열중,나의 외교에 먹칠 하느냐』는 식의 질타나 엉뚱한 주문을 자주한다. 최근 대일수교추진과 관련,당 국제담당비서겸 국제부장 김용순의 활동이 눈에 띄지만 어디까지나 외교부와의 사전합의 아래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그는 당차원의 대외연락을 맡아 일본의 정당들과 『너도 좋고 나도 좋다』는 식의 정당외교를 통해 수교회담을 측면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그는 「술고래」이며 「매사에 허허실실하는」성격의 소유자로 치밀하고 꼼꼼한 판단과 분석력을 요구하는 외교관으로서는 적당치 않은 인물이다. 더욱이 지난 84년 『당 국제부는 상대국의 집권당및 제정당들과의 연락업무만 맡되 집권당과의 교류시는 외교부와 사전 협의를 하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은 후 외교부는 당시까지 받아온 당 국제부의 통제를 벗어나 외교정책의 실세로 부상했다. 당 국제부는 60년 김일성으로부터 『당국제부 외교부 3호청사(대남담당총본부)는 삼위일체가 돼 통일문제를 보라』는 지시를 받을 정도로 신임을받아왔다.이같은 당국제부에 대한 신임을 입증하듯 84년초 김정일도 『당국제부원들도 외교관인 만큼 폴카등 외국 춤을 배워둬야 한다』고 하명,이에따라 국제부원들과 그 부인들이 사교춤을 배우겠다며 예술인들을 데려다 국제부마당에서 춤판을 벌인 일이 있었다. 너무 뜻밖의 이같은 해프닝에 국제부를 제외한 모든 당중앙위 부서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당국제부에 날라리 풍이 들어왔다』며 성토하고 덤비자 김정일이 이 책임을 당시 국제부 제1부부장이던 김용순에게 전가,그를 탄광으로 1년간 「혁명」보냈다.이때 김용순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데…』라며 반발,김정일의 분노를 샀으며 이를 계기로 당조직지도부가 당 국제부에 대한 일대 검열을 실시했고 이 결과 예술인과의 「부화」사건(연애)등이 드러나는 바람에 70여명이 숙청되기도 했다.이 숫자는 당시 1백50여명이던 국제부원의 절반에 가까운 것이었다.그러나 외교부는 조직지도부의 검열결과 「건전」판정을 받았으며 이로써 당국제부를 제치고 외교의 실권을 장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뿐만 아니라 77년부터 83년까지 외교부장을 지냈으며 지난 5월 사망당시까지 북한외교를 대표해온 허담은 『외교업무는 신속·신축성을 요구한다』며 양대 기관중 하나를 정리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은연중 「고리타분한 이론」만 내세우는 당국제부의 권한 축소를 시사하기도 했다. 여하튼 85년부터 외교부는 김정일의 직속 부서로 바뀌어 형식상으로는 정소 축소를 시사하기도 했다. 여하튼 85년부터 외교부는 김정일의 직속 부서로 바뀌어 형식상으로는 정는데 김은 『백두밀령에서 풍산과 고초를 겪으신 김일성주석께서 아직도 머리를 쓰셔야 하는가』하는 말로 자신의 외교전권행사를 미화하고 있다. 북한 외교가의 또 다른 숨은 실력자는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부부장겸2과장인 이화선.그녀는 김정일의 직속기구인 조직지도부에서 북한의 대외사업전반을 관리·지도하며 김정일의 외교담당 개인비서역을 담당하고 있다.다른 모든 부서가 그러하듯 외교부도 김정일의 친위부서인 조직지도부의 담당자들의 입김을 무시할수 없는 실정이다.또 현 제네바대사인이철(이수용과 동일인물)도 조직지도부 서기실출신인데 김정일에게 외교업무에 관해 많은 자문을 하고 있다. 북한의 외교관들은 『적을 알아야 적을 탈승한다』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비록 4∼5일정도의 시차는 있으나 남한의 신문·잡지들을 그때그때 까다롭지않게 보고있다.외교부는 남한의 일간지5개및 시사월간지 2종을 구독한다.특히 외교부 지역국과 국제기구국 요원의 경우 KBS와 MBC­TV및 라디오방송을 24시간 모니터해서 만든 「참고통신」을 하루 두차례씩 읽으며 남한정세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얻는다.이 통신은 북한 중앙통신사에서 정치문제를 중심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상오에 나오는 것은 「1보」,하오에 나오는 것은 「2보」라하며 분량은 매회 40∼50페이지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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