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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克日의 元年 삼아야/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언론인

    사실 일본의 한낱 지방자치단체인 시마네현이 엉뚱하게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채택했다 해서 독도의 위상에는 티끌만한 변화도 오지 않는다. 한국의 ‘독도의 실효적 점유’라는 현실이나 국제법적 지위에도 아무런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이번 시마네현 사태를 전에 없이 끈질기고 음험한 일본 위정자들의 ‘독도 침탈’ 속셈 바로 뒤에 도사린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 조짐에 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만 한다. 아울러 독도문제다, 일본 교과서 왜곡이다, 하면 그때마다 요란스레 들끓다 마는 냄비처럼 철저하지 못한 우리의 ‘일본을 다루는’ 자세를 반성, 시정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는 과거처럼 감정에 호소하는 일과성 반일, 항일 시위의 되풀이로 끝내서는 안 된다.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는 수없이 되풀이되어온 것이지만 이처럼 일본의 보수화 경향 등 시대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에서 근본적으로 새 한·일 관계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을 속속들이 연구하고 장기적 시각에서 양국관계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아직까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양국간의 과거사를 바로잡는, 우리로서는 진정한 극일(克日)의 원년을 삼아야 한다. 이토록 한·일 국가간 공식 관계가 근래 들어 가장 심각한 올해가 한·일 우정의 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일본에 확산되고 있는 무슨 사마, 무슨 히메의 소위 한류 열풍에 취해 사실 우리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왔다. 삼성이 소니를 눌렀다느니, 현대가 도요타를 따라잡고 있다느니 하여 일본에 대해 은근히 자부심을 키워오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우리 수출품인 첨단 전자제품을 만드는 기계들의 상당부분이 일제이며 원천기술 보유를 비교한다면 한·일간에는 아직도 엄청난 수준 차이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듣는다. 드라마, 연예의 한류바람도 어찌 보면 왜색의 재가공 수출인 측면이 없지 않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우리는 아직 우쭐할 때가 아니다. 또한 한·일 우호를 운운할 자격도 없다. 올해로 광복 6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60년이 지나도록 식민지 청산작업조차 말끔하게 하지 못해 우리는 오늘날까지 식민지 역사관 바로잡기, 친일파 척결, 과거청산 문제를 현안으로 안고 살고 있다. 수교 40주년을 맞았다고 하지만 과거 정부가 식민지 시절 피해 국민의 배상문제를 멋대로 포기하는 수교협상을 벌인 것이 확인돼 생생한 쟁점으로 살아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일본을 제대로 철저하게 연구해 본 일이 없다. 일본은 과거 조선을, 지금의 한국을 철저하게 연구했다. 우리가 과거사 속의 일본을 극복하고 오늘의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일본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당연히 인간 생체 실험 등 과거 일본의 잔혹한 전쟁 죄악상에 대한 연구 실적이 미미하다. 우리 후세에 대한 과거사 교육이 형식에 그치고 있음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한·일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와 함께 일본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 조치로 국내의 민간외교 활동을 지원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민간단체들의 자발적 일본 과거사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이들이 일본의 피해를 입었던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과 유대해 일본의 과거를 추궁하는 조직적 민간외교를 전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어떤 통쾌한 조치로 매듭지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일본이 진심으로 과거사를 반성치 않을 수 없게 하는 효과적 조치, 한국의 극일의 방도를 찾아내는 깊이 있는 일본 연구, 처절한 우리의 과거사 반성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언론인
  • [서울광장] 새 韓日시대의 원년/이용원 논설위원

    [서울광장] 새 韓日시대의 원년/이용원 논설위원

    2005년에는 우리사회에 일본이 여느 해보다 뜨거운 이슈로 계속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달력을 한장씩 넘기다 보면 곳곳에서 일본이라는 존재와 마주친다.6월22일은, 광복후 20년만에 한·일 협정을 체결한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8월15일은 광복 60주년 기념일이요, 보름 뒤인 8월29일은 대한제국이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지 95년째 되는 날이다. 이는 11월18일 을사늑약(勒約) 100주년으로 이어진다. 그뿐이 아니다. 오는 17일이면 한·일협정 문건 5종이 공개되는 데다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이 조만간 가동해 대상자 개개인의 친일 행적을 파헤치게 된다. 일본 쪽에서도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 고위층의 망언 등 외풍은 계속 불어댈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일본이라는 늪에서 허우적대다 올 한해를 마감할지 모른다. 해마다 기념일은 돌아오지만 올해 유난히 일본과의 과거사가 두드러지는 까닭은 ‘광복 60년’‘국교재개 40년’‘을사늑약 100년’처럼 숫자가 부여하는 상징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사회는 이 숫자의 상징성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소화해 민족정신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광복이 되고 국교를 재개하고도 일본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기피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국민의 인기를 모은 가요라도 일단 ‘왜색’이라 낙인 찍히면 하루아침에 공개장소에서 사라졌다. 또 ‘일본은 없다’라고 깎아내리는가 하면 일본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 ‘극일(克日)’을 소리 높여 외쳤다. 이 모든 현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는 오랜 기간 ‘일본 콤플렉스’라는 망령에 시달려왔다고 할 수 있다. 글머리에 밝힌 것처럼 올해 광복 60주년을 맞는다. 인생으로 치자면 환갑을 치르는 것이다. 환갑의 의미를 국가관계에 견강부회할 생각은 없지만 그 세월의 무게를 한번쯤 저울질할 필요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의 해에 태어나 한글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가, 일본에서는 전후 1세대가 각각 60세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제강점기 양국간에 벌어진 가해와 피해의 행위를 여전히 반추하며 목청을 높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할까. 이제 광복이전의 한·일 관계는 역사의 영역으로 넘겨야 한다고 본다. 일방적으로 용서하고 잊어버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현실에서 이를 일상적인 이슈로 삼지는 말자는 뜻이다. 이는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제언이다. 언제까지나 일본과의 과거사 풀기에 집착하며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 현재 국내에서 이슈가 된 사안들을, 일본을 연계시키지 않은 채 우리 스스로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한·일협정 문서 공개에 따른 피해보상 문제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 자체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한·일협정을 체결한 박정희 정부가 비록 국민의 뜻에 반해 그릇되게 처리했더라도 이는 우리 내부의 문제일 뿐, 이를 빌미로 일본에 개정 요구를 하는 것은 국가간 신뢰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 여러해 지났지만 한·일관계는 아직도 ‘20세기적’이다. 우리는 여태 과거사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반면 일본은 사과·보상이 끝났다고 반박한다. 앞으로도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해소하려면 우리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제가 가한 패악을 잊지 말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되 이 시대에 더이상은 일본에 대해 목청을 높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를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바뀌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서울 하늘아래 異國지대 속으로

    서울 하늘아래 異國지대 속으로

    서울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외국인 마을’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동부이촌동,방배동 등 10여곳에 이른다.대외 접촉이나 거래가 늘어나는 등 서울의 국제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외국인 거리’에서 이국적 볼거리와 먹을거리 등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서울시민들의 ‘특권’이다.관광 목적이 아닌 취업 등을 이유로 서울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수는 작년 말 기준으로 모두 10만 2882명이다.서울시민 100명 가운데 1명이 외국인인 셈이며,10년전인 지난 1995년(4만 5072명)과 비교할 때 2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서울의 외국인촌은… 지역별 외국인 수는 주한 외국공관들을 비롯,이태원이라는 ‘국제관광특구’가 있는 용산구가 전체의 8.6%인 8852명으로 가장 많다.또 중소기업들이 몰려 있는 서울 서남권의 영등포구(7625명)와 구로구(6593명),금천구(6131명) 등에도 조선족 동포를 비롯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국적별로는 중국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 5만 2572명이다.이어 ▲미국 1만 1484명 ▲타이완 8908명 ▲일본 6139명 ▲필리핀 3894명 ▲베트남 2052명 ▲몽골 1936명 ▲캐나다 1723명 ▲프랑스 1076명 등의 순이다. 이처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서울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모두 10여곳에 이르는 ‘그들만의 동네’가 있다. ●70년대부터 외인촌 형성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인 마을로는 용산구 이촌1동과 한남동,이태원동 등 3곳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이촌1동은 70년대 한강외인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형성되기 시작,지금은 이 일대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일본인 1500여가구 5000여명이 모여 살고 있다.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 5명 중 4명은 이곳 주민인 셈이다. 60년대부터 주한 외국공관들이 속속 들어선 한남동은 400여명의 독일인을 포함,외교관 가족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용산 미8군기지에 근무하는 군인과 군속 등이 많은 이태원동에는 최근 주말이면 이곳 이슬람사원을 찾는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의 노동자들이 부쩍 몰리면서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또 프랑스어 간판과 표지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서초구 반포4동 프랑스 마을(서래마을)은 지난 1985년 당시 한남동에 있던 프랑스 학교가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지금은 상사 주재원과 외교관 가족 등 500여명의 프랑스인들이 둥지를 틀었다.‘맹모삼천지교’가 동양에서만 통용되는 이치는 아닌듯 싶다. ●90년대,‘코리안 드림’을 위한 보금자리 90년대 이후 ‘코리안 드림’을 품고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새롭게 만든 외국인 마을도 눈에 띈다. 구로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에서 공단 근로자들의 거주지였던 구로구 가리봉동과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의 쪽방 형태의 속칭 ‘벌집촌’은 조선족 등 한국계 중국인들로 채워졌다.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외국인들은 줄잡아 2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또 9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의 보따리상들이 동대문일대 의류시장을 찾기 시작하면서 중구 광희동 일대는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촌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까닭에 이곳 골목골목에서 러시아어인 키릴문자를 접하기는 어렵지 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몽골인들이 늘면서 ‘몽골 타워’라 불리는 몽골 식품과 신문 등을 구할 수 있는 건물도 들어섰다. 이밖에 종로구 동숭동 혜화동로터리 동성고교 주변은 일요일 오후가 되면 필리핀 장터가 열린다.2년전쯤부터 혜화동 성당에서 필리핀인들을 위한 미사가 마련되면서 주말 나들이를 나온 이들이 좌판을 형성했다. 장세훈·이유종기자 shjang@seoul.co.kr ■구로구 가리봉동 ‘옌볜거리’ 서울시민들에게 자장면과 짬뽕이 없는 중국집을 상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그러나 이같은 한국식 중국요리가 없어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중국음식점들이 서울 하늘 아래 존재한다.이른바 ‘옌볜 거리’로 불리는 구로구 가리봉동 가리봉시장 일대가 바로 그곳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조선족 등 중국인 노동자들이 타향살이의 설움을 달래기 위해 모여들면서 200m에 이르는 도로 양쪽은 중국식료품점과 중국노래방,환전소,국제전화방 등으로 가득 찼다.이곳에서 10년째 과일가게를 열고 있는 조한수(51)씨는 “최근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이곳을 찾는 중국동포 수는 절반 이상 줄었다.”면서 “대신 중국 정통요리를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주말에는 내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 위치한 10여곳의 중국음식점에는 자장면과 짬뽕이 없다.대신 중국 본토에서나 맛볼 수 있는 류산슬,라조육,자라탕,해삼탕,궁보기정,건두부볶음 등을 내놓는다.음식을 우리 입맛에 맞도록 했으며,가격도 1만∼2만원 수준으로 저렴하다. 이 중 ‘삼팔교자관’(三八餃子館,02-856-3868)은 큼지막한 돼지고기를 납작하게 튀겨낸 ‘꿔보루’(1만 2000원)라 불리는 중국식 탕수육,식사 대용으로도 그만인 물만두(4000원) 등으로 유명하다. 중국 헤이륭장성 출신의 강용근(47) 사장은 “내국인 손님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청량리·안양·일산 등지에서 오는 단골 손님도 상당수”라고 귀띔했다. 또 중국의 재래시장에 온 것같은 착각이 들 만큼 다양한 종류의 중국제품을 갖춘 가리봉시장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며,해가 질 무렵 등장하는 노점상에서는 양고기 꼬치구이라는 별미도 접할 수 있다. 옌볜 거리는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3번 출구로 나와 200m 가량 내려오면 닿을 수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중구 광희1동 러·중앙아시아촌 지하철 2호선 동대문운동장역 12번 출구에서 서쪽으로 20m쯤 지나면 남쪽으로 향한 거리를 좌우로 러시아·중앙아시아촌이 눈에 들어온다.이 일대 가게에는 러시어가 병기돼 있으며 행인들도 대다수 코가 높은 러시아·중앙아시아인들이다.이국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이 거리의 주소는 중구 광희1동. 여기에는 아예 10층짜리 건물 한 동을 몽골인들이 사용하는 ‘몽골타워’도 있다.광희1동 143의2에 위치한 ‘뉴금호타워’에는 술집과 노래방인 1·2층을 뺀 나머지 3∼10층에 몽골 식당을 비롯,몽골식 미장원,화장품점,식료품점,국제전화카드점,무역회사,화물운송업체 등이 들어있다.몽골 신문과 방송테이프는 각각 1000원,5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3층에는 한국에 체류하는 몽골인들끼리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 게시판까지 마련돼 있다. 5000원 정도이면 3층 몽골 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몽골인 보이보 이나(23)는 “한국에서 번 돈을 몽골에 송금하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면서 “주말에 주로 오며 몽골식 생필품을 사거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우리 입맛에는 다소 맞지 않으나 러시아·중앙아시아의 현지 음식을 그대로 파는 가게도 있다.‘우즈베키스탄’과 ‘사마리칸트(02-2277-4261)’에서 쯔예플랴토를 비롯,타바카,플로브,슈르파 등 러시아 요리를 즐길 수 있다.음식값은 4000∼5000원 정도로 비싸지 않은 편이다.술은 1500∼2000원선.사마리칸트의 샤리오(34)는 “평일에는 러시아 음식을 즐기려는 한국사람들도 상당수 몰린다.”고 말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서초구 반포4동 ‘프티 프랑스’ ‘프티 프랑스’(작은 프랑스)로 일컬어지는 서울 서초구 반포4동 서래마을은 이름에 걸맞게 와인 등으로 유명하다.이곳에서는 수백종의 와인을 백화점보다 10∼20% 저렴한 가격에 선보이고 있어 구입할 수 없는 와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와인을 살 수도 맛볼 수도 있는 ‘와인숍&바’로는 ‘뚜르드뱅’(Tour Du Vin,02-533-1846)과 ‘비니위니’(Viniwini,02-592-9035)를 꼽을 수 있다.국내 최대 규모인 뚜르드뱅에서는 500여종의 와인을 소믈리에(Sommelier·와인전문가)의 추천을 받아 구입한 뒤 바에 앉아 직접 시음할 수 있다.비니위니는 300여종의 와인과 함께 100가지가 넘는 크라상과 델리 등을 갖추고 있어 출출함을 달래는 데 그만이다. 전문판매장인 ‘텐투텐’(Ten to Ten,02-3477-0303)은 200여종의 와인과 40여종의 치즈,냉동야채 등을 골고루 진열하고 있다.이혜진(23·여) 매니저는 “몇 천원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다양한 와인이 갖춰져 있다.”면서 “와인숍마다 특색이 있어 이곳에서 구하지 못하는 와인은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들 와인숍에서는 주문배달도 가능하다. 또 여느 와인바의 경직된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맘마키키’(Mammakiki,02-537-7912)를 들러보라.이곳을 운영하는 연극인 부부 정원경(37)·신리(46·여)씨는 “가격과 격식에 대한 부담을 없애고,선술집처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고 말했다.1만 5000원∼3만원 선의 와인에 와사비 소스를 곁들인 삼겹살(1만 6000원),마늘 소스를 얹은 훈제연어(1만 9000원) 등을 안주로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이밖에 프랑스 제빵사가 직접 만드는 ‘파리크라상’(02-3478-9139)의 빵맛도 일품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용산구 이촌1동 ‘리틀 도쿄’ ‘리틀 도쿄’로 불리는 이촌1동 일대 아파트 단지는 외관상으로는 일본 냄새가 거의 풍기지 않는다.일본사람들이 5000여명이나 몰려 살지만 왜색(倭色)은 의외로 미미하다.그저 아파트 단지로만 보일 뿐이며 부동산에 내걸린 일어간판이 그나마 이 지역의 특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속살을 들여다 보면 사뭇 다르다.일본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음식점이 더러 있어 왜색 먹을거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상사 주재원으로 한국에 왔다가 16년째 체류중인 미타니 마사키(56)가 운영하는 우동집 ‘미타니(02-797-4060)’에서는 5000∼9500원에 정통 일본우동을 즐길 수 있다.시금치와 미역,대파에 튀김옷이 들어간 이 가게 특유의 미타니 우동을 비롯,유부우동,튀김우동,야마가케우동 등이 메뉴판에 올라있다.덮밥은 8000원∼1만 4000원.미타니는 “모든 일본사람들의 식성에 맞게끔 도쿄식과 오사카식의 중간형태로 우동을 내놓고 있다.”면서 “면과 주요 재료는 모두 수입해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식 라면과 돈가스,중화·일품요리를 즐기려면 ‘아지겐(02-790-8177)’을 찾으면 된다.사또 에이지가 운영하는 이 가게는 3년전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도쿄식이며 7000원∼1만 3000원선이면 일본 라면을 즐길 수 있다. 일본에서 직접 조리법을 배운 주방장이 음식을 만드는 ‘보천(02-795-8730)’도 우동전문점으로 인기가 높다.우동은 5000∼7000원선이며 초밥과 각종 덮밥도 있다.주인 용원중(45)씨는 “예전보다는 일본사람들이 크게 줄었다.”면서 “하지만 아직도 30%정도는 일본사람들이 고객”이라고 말했다.또 간장이나 소바소스 등 일본식 생활용품은 ‘모노마트(www.monomart.co.kr)’에 거의 모든 것이 구비돼 있다.종업원 김금옥(25·여)씨는 “고객 가운데 한국인과 일본인의 비율은 6대 4”라고 밝혔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종로구 혜화동 ‘필리핀장터’ ‘젊음의 거리’ 대학로와 지척에 위치한 서울 종로구 혜화동로터리는 일요일 오후가 되면 색다른 광경이 연출된다.동성중·고등학교 담장을 따라 100여m 남짓한 거리에는 생소한 물건을 사고파는 낯선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곳은 바로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거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일요 장터가 서는 곳이다. 필리핀 국민 절대 다수가 가톨릭을 신봉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들은 2년전쯤부터 혜화동 성당에 모여 일요 미사를 보고 있다.장터는 미사를 마친 필리핀인들이 이야기 꽃을 피우고,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인도 양쪽으로 늘어선 30∼40개의 좌판이 전부지만 없는 게 없다.화장품·샴푸·조미료·향료·소스 등 생활필수품부터 망고·코코넛·롱빈(콩류) 등 과일·야채류를 비롯,필리핀에서 건져올린 생선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이 부럽지 않다.또 필리핀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TV 드라마나 영화의 녹화테이프도 불티나듯 팔리고 있다.여기에 소형 트럭에 각종 조리기구와 음식을 싣고 나와 즉석에서 요리·판매하는 필리핀식 먹거리는 필리핀인 뿐만 아니라,이곳을 지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과 코를 자극하고 있다. 필리핀인 아내 알리스 큐(47)와 함께 이곳에서 노점을 열고 있는 박일선(55)씨는 “한때 장터를 찾는 필리핀인들이 2000∼3000명에 이르기도 했지만,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된 이후 지금은 500명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면서 “노점상에 대한 집중단속이 이뤄지고 있어 어려움이 많지만,필리핀인들에게는 유일한 나들이 공간이기에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당뇨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유자와 비슷한 ‘안빨라야’ 등 야채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주 찾는다고 덧붙였다. 우리민족 고유의 시골장터와 분위기를 견줄 수는 없지만,이색적인 볼거리와 먹거리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곳에 한번 들러봄 직하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동요 ‘우리의 소원’에 담긴 통일염원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불러 본 동요 ‘우리의 소원’.이 노래는 2000년 6월15일 평양에서 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남북 정상이 만난 역사적인 순간에 ‘통일의 노래’가 돼 한반도에 울려퍼졌다. EBS는 15일 오후 8시50분 ‘6·15 남북공동선언’ 4주년을 기념한 특집 프로그램 ‘통일의 노래,겨레의 노래’를 방송한다.제작진은 동요로 시작된 ‘우리의 소원’이 통일을 염원하는 겨레의 노래가 되기까지의 시대적·역사적 상황을 조명한다. 동요 ‘우리의 소원’은 지난 1947년 KBS 전신인 중앙방송국이 3ㆍ1절 특집 노래극의 삽입곡으로 만든 것.원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민심을 대변한 ‘우리의 소원은 독립’을 다룬 노래다.화가이자 문인,영화인,언론인으로 널리 알려진 석영 안석주 선생이 노래말을 쓰고,당시 서울대 음대에 재학중이던 아들 안병원씨가 곡을 붙였다. 하지만 이후 60년 동안 ‘우리의 소원’이 지나온 세월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1948년 정부 수립 후 이승만 정권에 의해 ‘우리의 소원은 독립’ 이란 대목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바뀌었다.이후 이 노래는 당시 사회에 팽배한 반공이데올로기에 따라 정부의 반공의지를 대변하는 노래로 탈바꿈한다.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멸공’이라는 미명하에 수차례 가사가 수정되고,의무적으로 학교내에서 불려졌다.1970년대 중반에는 민중가요로 다시 태어난다.정부의 ‘긴급조치9호’의 발동과 함께 ‘왜색’을 없앤다는 명분아래 금지곡이 늘자 대학가에서 ‘우리의 소원’을 개사해 운동권 가요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 중반에는 가수들의 음반에 의무적으로 삽입하는 단골 ‘건전가요’로도 쓰였다.그렇게 유포되던 ‘우리의 소원’은 1989년 당시 대학생이던 임수경이 북한을 방문해 목놓아 부르고,북측이 방송을 통해 이 노래를 부르도록 독려하면서 남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겨레의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최성민씨 ‘차茶 만드는 사람들’ 엮어

    최근들어 우리 전통차,특히 녹차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한층 높아졌지만,그 틈새를 들여다 보면 아직 정리되지 못한 곳이 많다.차가 우리의 고유한 문화라지만 논란만 무성할 뿐 아직 한 가지로 정리되지 못했고,여기에 일본과 중국의 차문화까지 겹쳐 어지간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되레 혼란만 겪기 십상이다. 이런 점에서,우리의 차문화,특히 차를 손수 만들어 내는 방법이라든가,다기(茶器)와 다구(茶具)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 등 실질적인 생활로서의 차문화를 잘 정리해 제시한 차 순례기 ‘차茶 만드는 사람들’(최성민 엮음.김영사)은 지금까지의 차 지침서와는 다른 매력을 담고 있다. 엮은이 최성민씨는 이 책을 두고 “신비화된 왜색 다도의 베일을 벗기고 밥처럼 친숙한 우리 차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전국의 차인(茶人)들을 찾아 떠돌았다.”고 말한다.그의 말마따나 책에는 그가 손수 발품을 팔아 거둬 올린 차이야기,이를테면 다기와 차시(찻수저),다포(茶布),찻상,다식과 차실(茶室) 등 차를 에워싼 문화 소도구들이 하나의 울타리를 이룬 채 가지런히 놓여 있다. 책은 차문화를 마치 밥을 먹는 일처럼 다반사(茶飯事)로 끌어들인다.남이 만들어주는 차를 마시면 된다는 일방통행식이 아니라 손수 차나무를 길러 딴 차를 덖고 말려 만들 수 있도록 안내하는가 하면 곁가지 정보도 충실하게 담아 읽는 이들을 거부감없이 차살이로 이끈다.농촌 주부의 차살이,도심에서 덖는 차,한 아름다운 다원 이야기,전통 절집차의 원형,찻사발과 다기의 장인,다포의 내력과 기능성,찻자리 영양식은 물론 우리 차문화의 산실이랄 수 있는 강릉 선교장,해남 대흥사 일로향실,다산초당 등 차 정보와 지식을 아름지게 묶어 놓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차 좋아라 들썩이면 다 되는 일일까.그는 차문화의 사대성을 신랄하게 꼬집는가 하면 때깔 좋으라고 우려마시는 찻잎에 농약을 치는 무모함을 나무라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그는 책에서 말한다.“차라는 게 자연의 진수를 전해주고 사람을 겸허,진솔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따라서 ‘차를 만든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의 흐름에 가담하는 일이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장편 ‘타투’·‘미불’ 나란히 펴낸 김이연·강석경

    중견 여성 작가 김이연과 강석경이 약속이나 한 듯 5년만에 나란히 장편 ‘타투’(답게 펴냄)와 ‘미불(米佛)’(민음사 펴냄)을 내놓았다. 오랜만에 장편으로 ‘문학적 기지개’를 켠 두 작가의 작품에는 소설 혹은 예술에 대한 ‘생래적 곡진함’이 묻어난다.“내게 소중한 것들 중에 제1호는 역시 문학이었습니다.”(김)“어떤 삶의 고난도 진정한 예술혼을 꺾을 수는 없다.이것이 나의 믿음이다.”(강) ●‘타투’=자유 찾아 방황하며 아프리카로… “같아진다는 게 얼마나 따분해지는 것인지 알아요?”라고 당차게 묻는 자유분방한 여인 이지.과외선생과의 첫사랑을 앓은 뒤 영혼의 정착을 찾아 방황하는 의대생 병희.‘타투’는 두 사람이 한달 동안 아프리카를 함께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과거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문신을 새기다.’란 뜻의 제목 ‘타투’처럼 두 사람이 각자 자신에게 새겨진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과거를 훌훌 털어버린 뒤 새로운 인연을 새겨가는 과정을 다룬다.대조적 성격의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대로 여행하면서 과거를 공유하는 동안 어느새 낯섦은 익숙함으로 다가온다. 아프리카를 무대로 펼쳐지는 작품은 작가 특유의 빠른 장면 전환과 대사 위주의 서술에 힘입어 속도감 있고 편안하게 읽힌다.작가는 “탁 트인 초원에서 아무 데도 얽매이지 않고 원시 상태로 사는 대륙의 모습에서 아늑함과 여유를 느꼈다.그 감정을 젊은이들에게 ‘새겨’넣어 매달리지 않고 편안하게 주고받는 새로운 사랑의 풍속도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너무 가파르게 살아왔다 싶어 좀 쉬었지만 아무래도 팔자인 것 같아 다시 나섰다.”는 그는 내친 김에 50번째 소설로 나아갈 의욕을 비쳤다. ●‘미불’=예술혼을 찾아 인도로…경주로… ‘타투’가 자유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라면 ‘미불’은 쉼없는 예술혼을 찾아가는 노(老)화가의 구도기를 담은 ‘예술가 소설’.법명이 미불인 노화가 이평조의 삶과 회상을 가로지르며 참된 예술혼을 찾아 방황하는 과정이 창작과정과 현실 속에서 펼쳐진다. 젊은 날 일본에 유학간 그의 그림세계가 국내에서 ‘왜색풍’이 짙다며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놓고 고민하던 그가 딸을 따라 인도에서 새로운 세계를 목도하면서 새로운 예술세계를 발견한 뒤 경주로 내려가 창작열에 불타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한다는 줄거리. 성(性)을 통해 고양되고 예술의 영감을 느끼는 미불의 예술관을 위해 작가는 자유분방한 젊은 연인 진이를 등장시킨다.‘색(色)’과 ‘색(性)’은 통한다는 미불의 자유로운 예술혼이 때론 속물스러운 진이나,현실의 논리에 배신당하기도 하지만 작가의 생각은 그에 대해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는다.그저 예술의 본질을 찾아가는 노화가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는데,이는 작가에게 삶의 본질이기도 하다.미술에 대한 해박함과,인도·경주의 체류 경험을 한껏 살린 작가는 삶의 본질을 예술혼에서 길어 올리고 있다. 작가는 얼마전 인터뷰에서 작품에 대해 “예술가란 무엇인가를 소재로 나 자신을 탐구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이라고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30일 개봉 ‘자토이치’/신들린 맹인 검객 안 보이는거 맞아?

    ‘소나티네’‘하나비’ 등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괴짜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만들면 사무라이 영화도 해학넘치는 오락물로 변주되는 것 같다.30일 개봉하는 ‘자토이치’는 기타노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꽤나 낯선 대목이 많은 무협액션물이다.총성 대신 칼날의 비정함이 화면에 번득이고,사방으로 튀는 선혈이 끔찍하다 싶으면 어느새 장난기 서린 유머로 긴장을 풀어놓는다.영화는 지난해 9월 일본에서 개봉돼 크게 흥행했고,이어 부산국제영화제에 선보여 국내 팬들을 또 한번 열광시켰다. 자토이치는 신들린 검술을 자랑하는 맹인 방랑자.역시 이번에도 감독이 직접 주인공을 맡았다.초라한 행색으로 이집저집 떠돌며 마사지나 해주고 그 돈으로 도박판을 기웃거리는 자토이치.하지만 칼놀림만은 신기(神技)에 가깝다.건달 협객들이 사방에서 칼을 날려도 육감으로 전광석화처럼 역공하는 주인공의 검술에 영화는 한동안 화면을 할애한다. 관객들을 가장 손쉽게 포섭해낼 수 있는 검술영화의 정서는 복수와 정의,의협심 등이 아닐까.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신분을 위장하고 사는 게이샤 자매를 만나고,자토이치는 묵묵히 그들의 복수를 도와준다. 고개를 모로 살짝 떨구고 눈살을 찡긋찡긋하는 기타노 특유의 표정은 맹인역할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때론 감상의 맥락이 뚝뚝 끊길 정도로 검술장면들은 비현실적이다.그럼에도 액션활극을 좋아하는 남성관객들은 시원시원한 검술 시퀀스에 아드레날린이 솟는 짜릿함을 느낄 듯하다.특히 마을사람들에게 전횡을 휘두르는 우두머리 칼잡이 긴조가 고용한 떠돌이 무사 하토리(아사노 타다노부)와의 막바지 대결장면들은 담백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로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만하다.마치 무언극처럼 대사를 절제한 왜색 짙은 탐미적 화면도 ‘기타노 팬’들에게 포만감을 줄 만하다.기교없는 대사나 담백한 인물동선들은 최근 사무라이를 소재로 할리우드가 만든 ‘라스트 사무라이’나 ‘킬빌’하고는 확실히 다른 맛을 낸다. 가장 오락적이라고 평가받는 이번 영화에서 감독은 결론부의 메시지까지도 단순명쾌하게 잡았다.자토이치가 긴조 일당을 처단하자 온마을 사람들은‘살맛나는 세상’이 왔다고 축제를 벌인다.탭댄스 뮤지컬로 채워지는 막판 10여분의 축제마당은 영화의 백미다. 황수정기자 sjh@
  • 설특집 We/연인과 영화 한편

    ‘샌드위치 데이’(24일)까지 합치면 이번 설연휴는 무려 닷새.황금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에 간판을 건 한국영화만도 3편이나 된다.연휴동안 가장 잘 나갈 영화 5편을 박스오피스에서 골랐다.뭘 볼까.‘영화자랑 가상인터뷰’에 주인공들을 불러냈다. ●‘말죽거리 잔혹사’ 권상우 “‘말죽거리 이소룡’이라고 들어보셨는지.TV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한 터프’하는 내가 이번 영화로 연기파 배우로 발딱 일어설 거란 칭찬들이 짜하더라고요.70년대말 서울의 한 남자고교를 무대로 사랑과 우정,학원문제 등을 담은 영화인데요.내 쌍절권 솜씨를 꼭 한번 보세요.패거리 싸움장면에서도 대역이나 와이어를 쓰지 않았답니다.아 참,극중 ‘연적’인 이정진도 장동건 뺨치는 카리스마를 보였다는 호평들이고요.” #(장르/감독/배우/관람등급) 액션/유하/권상우·이정진·한가인/15세 ●‘내사랑 싸가지’ 하지원 “인터넷 소설이 원작인데다 도발적인 제목 때문에 입소문을 많이 탄 작품인 거 아시죠? ‘다모폐인’을 낳은 내가 갈래머리 ‘고딩’이 되어 명품족 ‘대딩’과 엎치락뒤치락 사랑게임을 벌이죠.솔직히 기자시사회의 반응은 좀 썰렁했어요.하지만 10,20대 네티즌팬들만은 성원해주리라 믿습니다. 잊지마세요.‘살인미소’의 김재원이 상대역이란 사실!” #(장르/감독/배우/관람등급) 로맨틱코미디/신동엽/하지원·김재원/12세 ●‘빙우’ 김하늘 “이렇게 고생해서 찍은 영화는 처음이에요.캐나다 유콘주 빙하지대까지 가서 찍었거든요.오죽했으면 함께 출연한 송승헌씨는 ‘고생한 걸로 치면 관객 1000만명은 들어야 된다.’고 말한다니까요.이성재·송승헌씨가 설산(雪山)을 오르고 빙벽을 타는데,손에 땀을 쥘 만큼 아찔해요.산악영화의 대담한 스케일에 애잔한 멜로가 결합된,국내 최초의 ‘산악멜로’예요.전개가 너무 느린 게 흠이라지만,‘이런 멜로영화가 있구나’ 감탄할 걸요.” #(장르/감독/배우/관람등급) 멜로/김은숙/이성재·김하늘·송승헌/12세 ●‘실미도’ 정재영 “‘반지의 제왕’을 누른 화제작인데 아직도 못 보셨다고요? 북파공작원들의 실화,그러니까 ‘실미도 사건’을 다룬 영화라는 건 다 아실 테고.짐승처럼 펄밭을 기고 온종일 바닷물에 빠져 살다시피 하는 특수훈련 장면들이 극사실적으로 그려져 남성들이 특히 좋아하더군요.훈련장면이 장난 아니거든요.촬영때 감독이 입에 달고다닌 말이 “연기 잘하라.”가 아니라 “몸조심들 하라.”였다니까요.설경구씨야 워낙 스타였지만,이 영화에서 의외로 제가 좀 떴어요.의리와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연기가 완벽했다나 어쨌다나….” #(장르/감독/배우/관람등급) 액션드라마/강우석/설경구·정재영·안성기/15세 ●‘라스트 사무라이’ 톰 크루즈 “‘실미도’와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복병을 만나게 됐네요.그래도 자신 있습니다. 권상우가 이소룡 키드로 변신했다 한들 제가 말 달리는 사무라이가 된 충격만 할까요. 일본 메이지 유신시대에 벽안의 군 대위가 신식 전술을 가르치러 왔다가 사무라이 정신에 감화해 그만 목숨걸고 사무라이로 ‘전향’하는 줄거리죠.왜색에 할리우드 오락정신이 뒤섞인 퓨전시대극인데,오묘한 즐거움을 어찌 말로 다 하겠습니까.” #(장르/감독/배우/관람등급) 액션/에드워드 즈윅/톰 크루즈·와타나베 겐/15세 황수정기자 sjh@ ■또 볼만한 영화는 ●피터팬 (장르/감독/배우/관람등급)=팬터지드라마/P.J.호건/제이슨 이삭스·제러미 섬터/전체 (내용)=원작에 가장 충실하다고 평가받는 피터팬.피터팬이 사랑과 눈물의 비밀로 연인 웬디를 구한다. ●브라더 베어 (장르/감독/관람등급)=애니메이션/애론 블레이즈·로버트 월커/전체 (내용)=곰이 돼버린 인간과 아기곰이 나누는 우정과 사랑.유쾌한 웃음에 훈훈한 감동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장르/감독/배우/관람등급)=팬터지액션/피터 잭슨/일라이저 우드·비고 모텐슨/12세 (내용)=난쟁이 호빗족인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나선 마지막 모험길.컴퓨터그래픽이 동원된 전투장면 압권.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장르/감독/배우/관람등급)=코믹드라마/세드릭 클래피쉬/로맹 뒤리스·오드리 토투·주디스 고드레쉬/15세 (내용)=스페인의 한 기숙사 아파트가 배경.다양한 국적의 20대 유학생들이 엮는 유쾌한 해프닝과 우정.
  • [발언대] 게임시장 日공습 대비해야

    일본문화 4차 개방이 이뤄졌다.사실 1∼3차 일본문화 개방을 통해 보듯이 왜색문화 침식,국내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위기 등은 애초 우려한 수준을 크게 밑도는 정도였다. 충무로는 방화의 흥행성공으로 자신감에 차 있다.음반시장도 긴장하고 있으나 일본 음반자본이 국내에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반대 수위가 1차 개방 때에 비해 미미하다. 하지만 비디오게임 산업으로 눈을 돌리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2001년 일본 문화개방과 더불어 소니에서 플레이스테이션2와 소프트웨어를 국내에 정식 발매함으로써 음지에 있던 비디오게임이 양지로 나와 가정용 게임기라는 이름을 되찾았다.현재 플레이스테이션2 누적 판매량은 40만대를 향해 달려간다.이는 분명 정식발매가 되면서 비디오게임 시장이 대중화로 가는 중간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개방으로 이제 일본어 음성과 일본어 처리 자막의 한글화 없이도 게임 소프트웨어의 수입·판매가 가능하게 됐다. 시장논리로만 가정해 본다면 ‘규제가 완화됨으로써 자연히 수입업체가 많아질 것이며 지금보다 더 다양한 게임이 유통되고 비디오게임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다.’가 정답이 돼야 한다. 하지만 기우는 있다.소규모 업체의 무분별한 난입은 라이센스 비용 상승을 동반할 수 있다.국내업체 간의 과당경쟁으로 인해 PC 패키지게임 가격의 상승을 겪은 바 있는 우리에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다.또 일어판 수입으로 인해 언어적 장벽에 구애받지 않는 하드코어 마니아 대상의 시장이 형성돼 성장속도가 둔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같은 외국어라도 영어와 일본어는 우리에게 큰 차이가 있다.영어로 ‘안녕하세요’는 열에 열 말할 수 있지만 일어는 그렇지 않다.대중에게 일어판과 한글판이 공존하는 시장은 달갑지 않을 뿐 아니라 지금도 쉽지 않은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특히 그동안 한글화에 비협조적인 일본 개발사들과 악전고투하며,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시장형성을 해 온 업체들에 이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아직까지 일어판은 마니아가 찾는 밀수품이지만,4차 개방으로 일어판 라이센스를 획득한 회사가 유통을 하면 한글판과 같은 정품이 되는 것이다. 산업은 생산·소비·수입·수출이 함께 작용하는 것일 터이다.현재 비디오게임 시장이 작아 보인다고 파급효과가 적다고 하기는 어렵다.한국의 게임산업에서 비디오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향후 커지면 커지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자생력 있는 내수시장 형성과 비디오게임 대중화를 이루려는 노력이 중요하다.이는 한 업체만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라 업계·소비자·정부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무분별한 일어판 발매와 소비처럼 당장 눈앞의 이익의 추구는 비디오게임 시장 자체를 고사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신욱호 씨넷코리아 과장
  • 캐릭터 따라하기 ‘코스프레’ / 현실에서 맛보는 상상

    수은주가 30도를 웃도는 지난 주말.가만히 있어도 땀이 등줄기로 흘러내리는 더운 날씨에 서울 선유도 공원에는 길고 검은 가발,레이스가 달린 화려한 드레스,두꺼운 가죽 자켓,화려한 모자 등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가득했다.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면서도 사진 속에 자신의 모습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슷한 복장을 한 사람들의 입에서는 “오∼ 멋진걸.” “야,대단하다,어떻게 만든거야?” “이거 어떤 캐릭터냐?” 등등,서로에 대해 관심어린 말들이 나온다.몇몇 사람들은 예사롭지 않은 눈길로 쳐다본다.그 눈을 읽어보자면 ‘뭔 이상한 사람들 다 보겠네.’정도일까. “사람들의 시선은 별로 신경쓰이지 않아요.코스튬 플레이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찾는 나만의 취미생활이니까요.” 이날 반짝반짝한 중국풍 의상을 입은 박두름(15·중3)양의 깜찍한 말이다. ●1990년대 초반 국내 들어와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말 그대로 ‘의상(코스튬)’을 입고 ‘노는(플레이)’ 것이다.주로 만화·영화·게임 속의 캐릭터들로 분장하고 그들의 행동을 흉내내며 즐긴다.흔히들 일본식 조어로 ‘코스프레’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 코스튬 플레이가 들어온 것은 1990년대 중반 전국 아마추어만화동아리연합(ACA)이 개최한 만화축제 때 코스튬 플레이 공연을 한 것이 처음이라고 전해진다.벌써 10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코스튬 플레이를 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눈길은 어색하다. 이날은 3만 3300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코스프레 동호회’(cafe.daum.net/teencos)의 정기 촬영회날.각자 직접 만들거나 구매한 의상을 입고 자태를 뽐내고 있다.작은 무대에서는 갖가지 포즈를 취해 사진 촬영을 하면서 의상에 점수를 매기는 행사도 열렸다. ‘킹 오브 파이터’의 ‘쿄’ 의상을 입은 백종하(18·고3)군은 겹겹이 껴입은 의상때문에 온 얼굴이 땀 범벅이다. 그래도 사진을 찍을 때면 모델 버금가는 프로다운 포즈를 취한다. “저에겐 코스튬 플레이가 일종의 분출구에요.입시로 인한 스트레스를 떨쳐버릴 수 있는 계기죠.평소에 꿈꾸던 게임의 주인공이 되는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요.” ●일본 캐릭터 베끼는 ‘왜색일변도’ 지적도 고교 선후배에서 코스튬 플레이를 함께하는 연인 사이로 발전한 대학생 한가은(20)씨와 문진우(21)씨는 이날 만화 ‘엑스(X)’의 남녀 주인공으로 변신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코스튬 플레이를 한다면 ‘이상한 애’정도로만 봤는데 요즘은 친구들이 사진 좀 보여달라면서 부러워한다.”는 가은씨는 “의상도 어머니랑 같이 만들기도 한다.”며 자랑이다. 장래 희망이 의상디자이너라는 허다솜(15·중3)양은 “미술을 전공하신 어머니가 옷을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행사에 나간다고 하면 잘 하라고 격려해주신다.”며 “의상을 직접 만들면서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고 창의력도 기를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코스튬 플레이가 만화·영화 주인공들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아 흉내내거나 일본 만화·게임 캐릭터를 베끼는 ‘왜색일변도’의 문화라는 비판도 있다. ●‘내안의 나’ 찾는 창조적 과정 코스튬 플레이 6년차인 동호회장 이호욱(20·대학생)씨는 “코스튬 플레이는 단순히 대리만족의 수준을 벗어난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창조의 과정”이라며 비판의 눈길에 반박한다.“대부분의 회원들이 스스로 해야 할일을 하고 취미로 즐기고 있다.”며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어 걱정어린 시선은 기우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청강문화산업대 조영아 패션디자인과 교수는 “코스튬 플레이를 청소년 입장에서 이해한다면 문화활동을 통해 자신의 끼를 발산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 이해된다.”며 긍정적인 측면을 내세웠다. 조 교수는 “너무 빠져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눈길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과생활에 지장없이 코스튬 플레이를 즐기고 있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또 한국적인 캐릭터를 개발하는 경우도 많아 일본에서 코스튬 플레이가 유입되면서 제기됐던 문제들이 상당부분 해소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주 많고,끼 많고,꿈 많은 사람들의 취미,코스튬 플레이.나도 한번 도전해볼까. 글 최여경기자 kid@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코스프레의 모든것 특정 캐릭터로 변장하는 ‘코스튬 플레이’는 1980년대 초반 애니메이션 왕국일본에서 시작됐고,우리나라에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왔다. 더 멀리서 근간을 찾는다면 미국·유럽 등의 가장무도회나 핼러윈데이,한국의 가면극,중국의 경극 등이 될 수 있다.‘코스프레’라고도 한다.‘압축조어’의 대국 일본에서 만들어낸 말이다.우리나라 마니아 일부는 이를 대신해 ‘코스플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초기에는 자신이 분장하고 싶은 만화·영화·게임의 캐릭터 의상을 똑같이 제작해 입었다.그러나 최근에는 인형의 모습을 본뜨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는 코스튬 플레이도 많아졌다.또 개인이 직접 구상한 시나리오에 맞춰 의상을 제작하는 창작 코스튬 플레이도 늘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인터넷을 통해 코스튬 플레이 관련 사진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관심이 더욱 크게 늘었다.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에 등록된 코스튬 플레이 관련 동호회만도 1000개가 넘는다.가장 규모가 큰 ‘코스프레 동호회’의 경우 지난해 5000여명에서 올해 들어 6배 이상 늘어난 3만 3300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코스튬 플레이 인구가 늘어나면서 포털사이트격인 ‘코스프레닷컴’(www.cospre.com)을 비롯해, ‘코스나라’(www.cosnara.com),‘날으는 바늘’(www.f-needle.com),‘코스프레전문점’(www.cospreshop.net) 등 코스튬 플레이 전문 사이트들도 생겨났다. 코스튬 플레이와 관련된 행사도 많다.코믹월드,전국 아마추어만화동아리연합 등 만화와 관련된 단체들뿐 아니라 중·고교,청소년문화원 등에서도 행사를 마련한다. 청강문화산업대학은 지난 2001년부터 ‘청강 전국 코스튬 플레이 콘테스트’를 열고,일부 입상자에게는 독자전형을 통해 입학의 기회를 주기도 했다.이밖에도 최근 서울시가 ‘하이! 서울’ 행사에서 코스튬 플레이 코너를 마련한 것처럼 공공기관이 코스튬 플레이 행사를 기획하기도 한다. 동대문이나 홍익대,대학로 부근에는 각종 코스튬 플레이 의상을 제작해주거나 대여해주는 ‘의상실’도 생겼다.직접 의상을 만들 경우 천,장신구 등을 사고 재봉틀로 제작을 하는데 1만∼2만원 정도에서 10만원 이상으로 비용이 천차만별이다.의상실의 대여료는 보통 제작비의 10분의 1수준이라고. 주로 ‘파이널판타지’,‘봉신연의’,‘바람의 검심’,‘세일러 문’ 등 일본 캐릭터가 대상이지만 최근들어 ‘라그나로크’,‘우비소년’ 등 우리나라의 게임·만화 캐릭터도 인기를 모으고 있어 코스튬 플레이의 확산이 한국의 캐릭터 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는 이도 많다. 최여경기자
  • 국보1호 숭례문 언제쯤 제모습 드러낼까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은 언제쯤 제 모습을 드러낼까? 숭례문은 지난해 8월5일 북쪽 홍예석이 떨어져 나간 이후 지금까지 8개월째 공사용 천막에 가려져 있다(사진 점선안).이로 인해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내·외국인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시민들은 “돌덩이하나 떨어졌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공사를 하느냐?”며 서울시와 관할 중구청에 원망섞인 문의를 자주한다.하지만 숭례문의 온전한 모습은 일러야 내년 상반기쯤에나 볼 수 있을 것 같다.복구를 위해 숭례문은 그동안 내시경 조사,GPR(지하 레이더)탐사 등 각종 정밀 안전진단을 받았다.지난달 20일에야 향후 보존방안 등 복구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담은 보고서가 작성돼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에 통보된 상태다.문화재청과 연구소측은 복구방법을 면밀히 재검토한 후 관리를 맡고 있는 중구청에 공사를 승인하게 된다.중구청은 공사비를 산정하고 업체를 선정,발주한다.이런 행정절차가 끝나려면 올 연말쯤이나 복구공사 착공이 가능하다.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더 늦어질 수도 있다.이용관 중구청 문화예술팀장은 “떨어진 홍예석은 석재접착용수지로 붙이도록 설계됐지만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라 업체들이 공사참여를 꺼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떨어져 나간 홍예석의 무게는 160㎏이나 된다.다시 탈락되거나,변색,비나 눈으로 인한 마모 등이 우려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이와 함께 왜색으로 꾸며진 숭례문 양쪽의 성벽 교체 공사가 오는 6월 시작될 에정이어서 국보1호의 제모습 찾기는 이래저래 늦어질 전망이다.특히 이번 공사 때는 숭례문 둘레 전체를 공사용 펜스로 가릴 예정이라 숭례문은 시민과 관광객의 시야에서 한동안 사라져야 할 판이다. 이동구기자
  • 종교권력 이대로 좋은가/‘산업화된 종교’ 정체성 혼란 심각

    ◆기독자교수협 학술대회 ‘한국의 종교권력 이대로 좋은가’ 종교와 권력.얼핏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한국의 종교는 이미 권력화됐고,사회개혁의 역작용 세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비단 대사회적인 권력행사뿐만 아니라 종교 내부적으로도 권력화의 양상은 두드러져 흔히 ‘종교의 위기’로까지 지적된다.이같은 상황에서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가 15일 이화여대 컨벤션홀에서 ‘종교권력과 사회개혁’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마련해 눈길을 끈다.발제를 통해 한국종교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짚어본다. ●사회적 역사적 관점에서(이형모 시민의 신문 대표) 이제 종교조직들은 사회의 경제주체들과 다투는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종교활동의 공익성,성직자의 청빈성이 붕괴되고 있으며,종교의 산업화로 인해 종교조직 자체의 기본적 정체성이 심각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우리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정신적 가치의 문제는 본원적으로 종교의 영역이다.그러나 자본주의의 핵심가치들이 종교에 침투하고 수용되어 새로운 종교문화를 만들었다.노골적인 기복주의와물신주의,그리고 자본주의적 계급지배 방식이 종교조직의 새로운 풍속도가 되었다.인간구원을 추구하는 종교의 본질을 황금만능주의와 권력추구의 우상에게 팔아 넘긴 종교는 이미 썩어버린 샘물이다.썩은 샘물을 맑게 하는 개혁운동,지금은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이다. ●기독교 입장에서(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는 크게 보아 정치 종교적인 체제옹호와 정치 비판적인 반체제 운동으로 내적 갈등을 심각하게 겪어 왔다.여기에 반공주의가 가세되면서 보수·진보의 갈등이 이념의 차원으로까지 첨예화되어 왔고,기독교는 여기에 첨병역할을 해오기도 했었다.부정적 의미의 ‘정치종교’적 행태를 반복해서는 안된다.진보와 보수의 생산적 논쟁과 대결은 필요하며 보수와 진보의 협력적 대결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고 본다.‘열린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협력적 대결의 틀로 짜면 좋을 것이다.한국교회가 조세혜택의 수혜자는 아니다.하지만 자발적 결단에 따른 십일조나 감사헌금의 형태로 조세혜택에 버금가는 경제적 힘을 축적하고 있음은 부인할수 없다.교회 재정능력으로 보아 세계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한국기독교가 국내는 물론 세계의 빈곤한 형제자매들에게 베푸는 봉사의 폭과 깊이가 너무도 미약하다.일반 평신도의 헌금액수가 세금정산에 포함되고 교회의 각종 사업과 활동이 ‘비영리 사업체’의 범주에 들어 세제상 이득을 보지만 교역자 사례비만 세상 돈이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한 돈’이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현대판 바리새주의와 다름없다.분명히 개혁의 대상이다.경제계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의식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적 내실과 삶의 질 향상에 진력하고 있는데 비하여 한국교회의 신앙생활의 내실화와 건실한 생활신앙을 위한 노력은 너무도 미약하다. ●불교적 관점에서(진월 동국대 교수) 이승만 정권아래서 왜색불교 청산의 미명아래 진행된 이른바 ‘정화개혁’을 둘러싼 비구·대처승간 세력다툼,그리고 그치지 않는 종단내부의 갈등,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싼 잡음 등은 모두 한국불교의 권력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양상이다.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늘상 “나는하나의 출가한 독신 수행중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한다.우리 불교계가 귀담아들어야할 대목이다.태국과 미얀마 스리랑카 등 전통 불교국가에서 최고위 스님들은 국왕과 대통령,총리의 존경과 귀의를 받고 국정을 자문지도하고 있다.이들은 교단 내부의 추대로 최고지도자가 된 스님들로,국가권력과 대중들의 공경을 받는다.이들이 국가적 지도력을 발휘하고 사회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물론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책/ 근원 김용준 전집,열화당 펴냄 - 지적 향기 가득 近園의 삶 읽기

    근원(近園) 김용준(1904∼1967)은 우리 근현대사에 드문 전인적(全人的) 예술가였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시대를 아우르며 남과 북에서 일세를 풍미한 근원은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비평과 사학 그리고 문기(文氣)를 겸한 재사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한 전형적인 지식인이었다. 문(文)·사(史)·철(哲)을 두루 갖춘 지성으로 평가받는 근원의 삶과 예술,사상을 온전히 접할 수 있게 됐다. 도서출판 열화당은 수필과 회화론,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등 남한과 북한에 흩어져 있는 근원 관련 자료를 3년에 걸쳐 수집ㆍ정리해 1400쪽이 넘는 방대한 규모의 전집으로 완간해 냈다.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근원은 일본의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으며 귀국 후에는 서화협회 회원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서울대 미대 교수 등을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다. 서화 골동 취미를 지닌 그는 조선미술사와 수묵채색으로 전공을 바꾸며 신세대 화단을 주도했다.날카로운 비평은 한국미술에 방향타 구실을 했다. 근원에 관한 연구와 평가는 한국전쟁 때 월북한 인사라는 이유로 금기시돼왔다.그에 대한 검토가 다시 이뤄진 것은 1980년대 후반 월북 작가들이 해금되면서부터. 북한에서 그는 평양미술대 교수를 역임하고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장,과학원 고고학연구소 및 민속학연구소 연구원 등을 지내며 연구와 저술,교육에 매진했다. 전집은 ‘새 근원수필’‘조선미술대요’‘조선시대 회화와 화가들’‘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민족미술론’ 등 모두 5권으로 구성됐다.지난해 7월까지 네 권이 나온 데 이어 이번에 ‘민족미술론’이 출간됨으로써 근원 타계35년 만에 전집 작업이 마무리됐다. ‘새 근원수필’은 1948년에 출판된 ‘근원수필’에 23편을 더해 모두 53편으로 이뤄졌다.근원은 한국의 풍속과 취미,가까운 이웃의 모습 등을 특유의 정갈하고 담백한 문체로 담아 냈다.한국 수필 문학의 정수라는 평을 듣는 이 책에는 ‘검려지기(黔驢之技)’란 글이 들어 있다. 그가 어떻게 우산(牛山)이란 또 다른 호와 선부(善夫)라는 자를 갖게 됐는가를 밝힌 정감어린 에세이다. 미술사 지식의 원전으로 자리매김된 ‘조선미술대요’는 시대별·국가별 미술의 특색을 정연한 논리로 설명한 책.20세기 한국 미술사 대중화에 기여한 이 책은 범이(凡以) 윤희순의 ‘조선미술사 연구’와 더불어 민족미술사를 정립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두 사람의 글은 모두 조선 후기 조희룡의 ‘호산외기’와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에 근거를 두었지만,시각은 사뭇 다르다.범이가 다분히 정치사회적인 측면에서 전통미술을 조명한 데 비해 근원은 문헌에 기초한 고증학적 접근과 감상적인 분석을 아울러 시도한다. ‘조선시대 회화와 화가들’은,조선조 회화와 화가에 관해 월북 전에 발표한 두 편의 글과 월북 후에 낸 네 편의 글에 ‘조선화 기법’‘조선화의 채색법’을 발굴해 추가한 책.근원은 특히 일반적인 중국화 범주에 넣기 어려운 ‘조선화’의 양식과 기법을 선명하게 기술한다. 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는 “근원은 남쪽에 있을 때 미술에서의 왜색이나 서풍(西風)을 다같이 경계했듯이,북으로 가서도 북한 미술이 일방적으로 중국화하는 것에 반대한 것 같다.”고 풀이한다. 1958년 출간된 같은 이름의 연구서를 복간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는 고구려 고분벽화라는 특정한 역사유적과 미술 장르에 관한 최초의 연구서란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근원은 고분벽화를 통해 고구려 문화를 보되,인접 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고구려 문화가 어떻게 풍부해지고 더욱 고구려다워졌는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다. 북한의 고구려 관련 저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고구려 본위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는 의지도 곳곳에서 읽힌다. 마지막권 ‘민족미술론’은 근원이 도쿄미술학교에 유학한 1927년부터 타계 6년 전인 1961년까지 신문과 잡지·학술지 등에 기고한 미술론과 미술평론·산문 등 모두 40편의 글을 담았다.이 글들은 근원의 미술에 관한 입장이 ‘프로미술론’‘순수미술론’‘민족문화론’‘사회주의 민족문화론’의 네단계를 거쳐 변화했음을 보여줘 눈길을 끈다. 부록으로 근원의 그림과 도서장정을 수록해 화가·장정가로서의 면모를 살필 수 있게 했다.근원이 기거한 서울 성북동 ‘노시산방(老시山房)’ 사진 등 희귀 자료도 여러 점실었다.전5권 8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책/ 청담평전·성철법어집 출간 “스님,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빈 연못에 바람이 울고 있다 “설령 금생에 성불(成佛)을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사람을 다 건져놓고 부처가 되겠다.”.흔히 청담(1902∼1971)스님은 일제시대 대처승제 도입으로 왜색이 짙어진 경향에 맞서 본연의 한국불교로 돌아가자는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장으로 각인된다.참선과 수행,법문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정화불교’인식에 갇힌 채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던 것이다. ‘빈 연못에 바람이 울고 있다’(혜자·이상균 지음,생각의 나무 펴냄)는 이처럼 부분적으로 왜곡됐던 청담 스님의 행장을 더듬어 참모습을 전하려 애쓴 평전의 가치를 갖는다. 생애를 19개의 에피소드로 훑어간 책에서는 스님의 고뇌와 사람·불교계에 대한,알려지지 않았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출가에서부터 만공 스님등 은사들과의 만남,조계종 종풍 확립의 기반이 된 문경 봉암사 결사,정화논쟁,열반까지 일관된 사상과 자세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생생하다. 겨우 작은 어린아이가 들어갈 만한 토굴에 공양(음식) 드나들 자리만 남긴채 문에다 문을 박고 정진한 문수암 안거며,한국 불교의 분기점을 이룬 봉암사 결사때 가사·장삼을 회색으로 물들이고,발우는 철발우를 써야 한다는 등 17개 항의 규약을 고집해 이후 수행자들의 계명이 되게 한 상황도 상세하게 드러난다. 이승만 정권시절 비구·대처승의 알력에서 불거진 정화운동의 꽃 ‘6비구 할복사건’도 소설처럼 풀어진다.9800원. ■이 뭐꼬 철저한 수행과 거침없는 말투로 ‘가야산 호랑이’라 불린 성철(1912∼1993)스님.열반 때까지도 숱한 화제를 뿌린 스님이 남긴 것은 누더기 장삼 한 벌과 안경,서책뿐이었다. ‘이 뭐꼬’(성철 지음,원택 엮음,김영사 펴냄)는 성철스님의 상좌인 원택스님이 성철 스님의 대표적인 법문을 추린 책이다. ‘이 뭐꼬’는 스님이 대중들에게 자주 들었던 대표적인 화두.“‘이 뭐꼬’라는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깨치게 되고 마음의 본래모습을 알 수 있다.”는 스님의 설명마따나 책은 허상에만 얽매인 세인들이 자신을 한번 들여봄직한법문들로 가득하다. “원각이 보조하니 적과 멸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 사회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을 물이로다.”“나는 본래 푸른 산이나 바라보고 흰 구름이나 쳐다보며 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산(山) 사람이다.나의 말에 속지 말라.”“요즘 보면 밥을 먹는 사람보다 밥에 먹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이것은 인간 자신의 존엄성을 상실한데서 비롯되었다.” 스님은 지난 93년,출가했던 바로 그 자리인 해인사 퇴설당에서 “참선 잘하거라.”는 말을 남긴 채 열반했다. 장좌불와 8년,동구불출 10년에 대쪽같은 고집과 선풍으로 일관한 스님의 예사롭지 않은 삶의 편린들이 녹아있는 말들이다.8500원. 김성호기자 kimus@
  • [씨줄날줄] 민중가요 ‘상록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깨치고 나아가 끝내이기리라.’ 민중가요 ‘상록수’에 나오는 소나무는 ‘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의 상징이다. 조선시대 윤선도(尹善道)가 벗으로 친근하게 여긴 것이 소나무였다.사육신 가운데 한 명인 성삼문(成三問)은 단종을향한 충절을 ‘이 몸이 죽고 죽어…낙락장송(落落長松)되었다가’로 표현했다. 김민기가 지난 1977년 공단 근로자 부부들의 합동결혼식을 위해 만들었다는 노래 상록수는 당시 국내에서 본격 태동하던 민중가요 장르에 속했다.민중가요는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 특유의 분류일 것이다.치열한 반(反)독재투쟁과 항쟁의 문화적 소산이라고나 할까.나긋나긋한 포크송과 왜색 짙은 ‘뽕작’ 등의 대중가요를 부르면서도반정부 시위를 했던 지식인들의 행동과 의식간 틈을 민중가요가 들어가 기름칠하고 운동의지를 결집했다고 볼 수있다. 상록수를 비롯해 ‘아침이슬’‘임을 위한 행진곡’‘농민가’ 등의 노래는금기시돼 지상파 방송을 타지 못했지만 대중집회 등에서 애창되면서 끈질기게 살아 남았다.‘노래패’라는 종전에 없던 이름의 동아리들이 여기저기 생겨나 민중가요를 입에서 입으로 확산시켰다.반드시 이념적이 아닌 사람들도 퇴폐적인 사랑 타령 위주의 대중가요에식상한 나머지 민중가요의 신선한 리듬과 무게 있는 노랫말에 끌렸다. 민중가요는 ‘비(非)제도권 노래’‘데모가’ 등의 이름이 붙여졌으나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제도권으로 공식 입성하게 된다.김영삼 전 대통령이 마틴 루터 킹 인권평화상을 받은 1995년에는 운동권 가요 ‘아침이슬’이 청와대에서 불려졌다. 정부가 오는 3·1절 공식 기념식에서 ‘삼일절 노래’ 뒤에 가수 양희은을 초청,축가로 ‘상록수’를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그 노랫말이 표현하는 독립운동의 어려운 시기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 등이 행사취지에 맞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상록수는 수년 전 대한민국 건국 50주년 캠페인 노래로도 채택됐었다.공식 행사에서 성악가들이 가곡중심의 노래만 불렀던 점에서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하는 대목이다.신분사회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 장례식때 엘턴 존이 대중가요를 부른 것처럼 우리의 민중가수,민중가요도 드디어 ‘국민가수와 국민가요’ 수준의 대접을 받는가 보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남산, 낙엽길 사색… 떠오르는 ‘아픈 역사’

    서울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남산은 인구 1,000만이 넘는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허파로서 시민들을 위한 천혜의 휴식처이다.조선왕조의 정궁(正宮)인 경복궁과 도심을 기준으로 볼 때 남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간명하게 이름붙여진 남산.높이 해발 268m로 산이라기 보다는 그저 정겨운고향의 뒷동산같은 산.그 남산이 지금 늦가을 단풍으로 아름답게 단장하고 있다. 서울시민들에게 더없이 귀한 휴식공간인 남산은 한꺼풀만 벗겨보면 우리 근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남산위의 저 소나무’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으며,산중턱 곳곳도 이미 옛모습을 잃었다.구한말 이후50여년에 걸친 일제통치의 상채기 때문이다.서울 속의 ‘외딴섬’ 남산의 늦가을 낙엽길을 따라 남산의 아픈 역사를 더듬어보자. 남산 정상에 서면 서울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사람들이 남산을 찾는 이유는 대개 이 때문이다.80년대 후반에 나온 한 통계에 따르면,서울을 찾는 일본인들이 첫 방문지로 지금은 헐리고 없는 구 총독부 청사를,두번째로는 남산을 꼽았다.남산은 시내관광지로도 손색이 없지만 총독부 청사와 함께 일제통치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표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한때 ‘남산살리기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을만큼 남산은 지난 역사속에서 극도로 훼손돼 왔다.그 가운데서도 서북쪽 중턱이 가장 심하게 훼손됐다.1905년 을사조약 강제체결후 일제는 경복궁과 서울도심을 한 눈에내려다볼 수 있는 남산의 요소,현 리라초등학교 일대에 한국통감부 청사를 세웠으며,1910년 한일병합 후에는 이 건물을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했다.서울역 역사가 준공되던 1925년 현 남산식물원 일대의 소나무숲을 깔아뭉개고 일본신(神)을 모신 ‘조선신궁’을 세웠다.이때 남산 정상에 있던 조선혼의 상징인 국사당은 인왕산으로 내쫓겼다.지금 그 터에는 항일투쟁의 상징격인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과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남산 서북쪽이 일제의 통치·종교기관이 들어서면서 황폐해졌다면 반대편,즉 장충단 일대는 일제가 공원화작업을통해 민족정기를 훼손했다고 할 수 있다.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희생당한 한국인 관리들의 충혼을 기려 고종의 지시로 건립된 ‘장충단’ 일대에 일제는 벚꽃나무를 심어왜색화(倭色化)한데 이어 인근 현 신라호텔 자리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기리는 박문사(博文寺)를 지어 조선의 충혼을 짓밟았다. 개항기 이후 일본인들은 남산 북쪽 자락 예장동·필동 일대를 왜성대(倭城臺)로 부르며 연고권을 행사했다.이곳은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남산 성벽을 넘어와 진을 쳤던 곳이며,구한말에는 일본공사관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일제당시 종로거리를 기준으로 남쪽 일대에 일본인들이 대거 밀집해 살았는데 최근까지도 필동 일대에는 왜식 민가가 즐비했었다.필동의 남산골 한옥마을은 일본군 헌병사령부가 진주했던 곳이며,인근 ‘한국의 집’은 조선총독부의 2인자인 정무총감 관저 자리다.남쪽 기슭 정도를 제외하고는 3면이 일제의 ‘상흔’으로 얼룩져 있다.휴식공간으로만 찾아가기에는 너무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 남산.그러나 이곳에는 이같은 역사를 알려주는 표지판하나 제대로 서 있지않다. 정운현기자 jwh59@. ■남산 최적의 산책코스는. 남산의 여러 등산로는 그 자체가 훌륭한 산책로다.또 남산 남쪽 중턱을 가로지르는 순환도로도 그에 버금간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산책로라면 차량이나 인파의 혼잡함에서 벗어나 사색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과연 남산에 그런 산책로가 있을까? 장충체육관 사거리에서 국립극장쪽으로 올라오다 타워호텔 맞은편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남산을 넘는 길이 나온다.이 길을 곧장 가면 남산타워를 지나 남산도서관 앞에 닿는다.인도와 차도가 분리돼 있으며,마치 깊은 산속같은 분위기여서 산책로로도 손색없다.그러나 경사가 가파른데다 빈번한 차량행렬로 조깅은 어렵다. 이 길 입구에는 오른쪽으로 포장도로 하나가 나 있다.바로 이 길을 산책·조깅코스로 강력 추천할만 하다.남산의북쪽 중간허리를 안고도는 길은 3∼4km 정도.차량통행도없는 데다 경사진 곳도 거의 없어 조깅코스로도 훌륭하다. 인근 주민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 코스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호젓한 편이다. 이 코스는 무엇보다 걷는 이를 지루하지 않게 하는 마력같은 것이 있어서 좋다.한 100여 m를 가다보면 한 굽이가돌면서 또 새로운 길이 나타나 마치 사람과 길이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서울 북쪽 도심과 남산자락을 구경해가면서 입구에서 300m 정도를 가다보면 ‘석호정궁도장’이라는 활터가 나타난다.평일에도 궁사들이 활을 쏘는 이곳은 원래는 ‘딸각발이’ 남산골 선비들이 심신을 단련하던 곳이다.그즈음에서 왼쪽으로 굽은 길로 접어들면 도심을 완전히 떠난 듯한착각마저 들 정도로 깊은 산속 길이 시작된다.중간에 필동으로 내려오는 오솔길이 두어 군데 있다.
  • 신간 맛보기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대니얼 핑크 지음,석기용 옮김,에코리브르 펴냄). 프리 에이전트(Free Agent)란 거대 조직체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는 독립노동자를 일컫는말이다. 오늘날 미국 노동인구의 30%인 3,300만명이 프리 에이전트의 삶을 살고 있다.미국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노동형태도급변하고 있다.노동시장의 유연화는 평생직장 개념을 지워버렸다.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조직노동자에서 독립노동자의 형태로 의식이 변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뉴웨이브 경제지 ‘패스트 컴퍼니’의 편집위원인저자는 프리 에이전트가 몰고 온 새로운 노동윤리와 생활형태,사회변화 등을 구체적으로 살폈다.1만5,000원. ■지리산(이성부 지음,창작과비평사 펴냄). ‘전라도’‘백제’ 연작시로 잘 알려진 저자의 7번째 시집. 산 속에서 길을 잃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인간은성숙해지고 인생의 고단함을 배운다는 평범한 진리를 담았다.능선과 계곡에 서려 있는 역사의 상처들이 시를 통해 부활한다. 백두대간 종주를 계획하고토막토막 실행에 옮기고있는 시인은 먼저 지리산을 올랐다.지리산은 그에게 이념의투쟁장이 아니라 마음의 고향이다. 빨치산과 토벌군의 대립을 화해로 바꾸는가 하면(‘양수아가 토벌군을 사로잡다’),주검들을 쓰다듬으며 지리산이라는 화엄에 진혼한다(‘젊은그들’).이번 시들은 예전에 비해 한결 부드럽고 잔잔한 어법으로 전개된다.7,000원. ■조선시대 회화와 화가들(김용준 지음,열화당 펴냄). 화가이자 미술사학자, 교육자였던 근원 김용준(1904∼1967)이 월북하기 전에 발표한 ‘겸현(謙玄) 이재(二齋)와 삼재설(三齋說)에 대하여’와 월북 후 발표한 ‘18세기의 선진적 사실주의 화가 단원 김홍도’등 8편의 글을 묶었다. 일반적인 중국화의 범주 속에 넣기 어려운 ‘조선화’의 양식과 기법에 대해 선명하게 설명했다.근원은 동경미술학교 출신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호분을 많이 써 꼼꼼하게 여러번 덧칠하면서 그려가는 전통 일본화 방식을 수용한 흔적이 전혀없다. 미술에서의 왜색과 서풍(西風)을 경계한 그의 입장은 그림 뿐만 아니라 저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1만8,000원.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조직하라(마빈 토케이어 지음,고선윤 옮김,서울문화사 펴냄). 성서에 꿀을 떨어뜨려 세 살배기 아이에게 그 꿀을 빨아먹게 한다? ‘학문이 달다’는 교훈을 가르치는 유태인의 기발한 자녀교육법이다. 그 외에도 유태인의 삶의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쾌락을 찬미하고,일주일에 하루는 절대로 일을 안하고,실패를 기념하고,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고,논쟁을 좋아하고….이러한독특한 생활방식이 모두 가정공동체에서 형성된다. 전세계 약 5,000명의 유태인 랍비 가운데 최고의 일본통으로 통하는 저자는 단언한다. “가정은 성공의 씨앗이 가득 담긴 보물창고다”라고.유태인이 비즈니스에 실패하지 않는 이유를 10가지로 요약했다. 8,000원.
  • 서태지 컴백후 첫 공식 기자회견

    “오는 10월중순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리는 남북화해 및 세계평화 기원 세계평화음악제에 참여할 계획입니다.”‘소리혁명가’‘마케팅의 귀재’ 등 최근 뜨거운 논란의 한복판에서있는 가수 서태지(본명 정현철·28)씨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서씨는 14일 오후3시 서울 정동A&C홀에서 가진 컴백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 TV로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지켜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내 나름대로 할일을 찾게 됐다”고 말한 뒤 “남북한 및 해외유명 뮤지션들이 이 콘서트에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말했다. 이날 서씨는 래퍼와 갱스터를 그린 그래피티(낙서)를 배경으로 드라이아이스가 뿌려지는 가운데 빨간 레게파마 머리에 검은 베레모,쥐색털 스웨터, 카키색 힙합바지 차림으로 회견장에 입장했다.손을 깍지낀 채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회견에 응했다.이날 취재진은 모두 300여명. 그는 미국행 설에 대해 “사실”이라고 확인한 뒤 “음악작업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팬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100∼200명 정도 마니아가 드나드는 클럽과체육관 등을 돌며 전국순회콘서트를 갖고 일주일에 한번씩 방송에 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 ◆11월 귀국설이 돌고 있는데 두세달 활동한 뒤 미국에 돌아간다.은퇴하고 가는 건 아니고 볼일이 있으면 한국에 자주 올 것이다.‘7집’ 앨범작업이 주목적이다. ◆9일 공연때 립싱크한 것은 로커로 돌아온 당신에게 치명적 약점이될 수도 있는데 반주는 미리 녹음했고 노래는 70∼80%는 라이브,나머지는 립싱크였다.미국에서 한달 동안 연습했는데도 완벽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더 많이 연습해 전국순회 콘서트 등에선 100% 라이브로 들려줄 계획이다. ◆지금 이 시기에 왜 하드코어인가 하는 지적도 있다 선진국에서 유행하거나,유행하려는 장르를 제가 아끼는 분들께 앞당겨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렇다.핌프록은 지금 내가 가장 많이 듣고 가슴에와닿는 음악이다. ◆왜색이 짙다는 지적도 있다 ‘울트라 맨이야’는 앨범의 극히 일부분이다.어렸을 적 보았던 재미있는 캐릭터를 가사에 집어넣고 만화‘괴수대백과사전’을 기획사 이름으로 차용한 것일 뿐이다.전체로확대해석하지 말아달라. ◆힙합을 국내 시장에 도입했지만 아류만 양산했다는 분석도 있는데핌프록을 언더나 인디무대에서 꾸준히 해온 친구들이 있다.그들이 음악적 역량을 드러내는 10년후 정확한 음악적 평가를 내려달라. 임병선기자 bsnim@
  • [외언내언] 동백아가씨

    이미자(李美子·59)씨.우리네 산야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풀꽃처럼 흔한 이름이다.열아홉살 때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래 숱한 남녀의 심금을울리며 가요인생 40여년,그동안 발표한 노래만 1,000여곡이다. 이미자씨가 어쩌면 고별무대가 될지도 모르는 데뷔 40년 기념(99년) 앙코르공연을 가졌다.22,23일 이틀 동안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꽉 메운 그의 팬들은 ‘동백 아가씨’‘기러기 아빠’‘여자의 일생’ 등 가요 반세기를 장식했던 추억의 노래가 나올 때마다 함께 흥얼거리며 향수에 젖었다. 이미자씨의 노래는 한결같이 사랑 아니면 이별이다.흔하디 흔한,그러나 누구나 한번쯤은 절실했던 아픔-.그는 이 만인의 ‘아픔’을 100년에 한사람나올까 말까 하다는 빼어난 목소리로 풀어낸다.그가 40여년 동안 한결같이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도 바로 이 만인의 ‘애환’을 노래한 덕택이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이 가요의 여왕을 홀대한 일이 있다.엄밀히 말하면 대중과는 상관없는 문화정책 당국의 횡포지만 우리는 한때 그의 노래를 ‘왜색’이라고 해서금지곡으로 묶었고 그의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시비한 일이 있다.물론 뒤늦게 해금도 되고 그에게 문화훈장(화관)도 주었지만 일본의 미소라 히바리,프랑스의 이브 몽탕,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영국의 비틀즈가 자국에서 받은 대접에 비하면 푸대접이 너무 심했다. 말이 난 김에 ‘동백 아가씨’‘섬마을 선생님’ 등 한때 금지곡으로 묶였던 노래들의 왜색시비 근원을 규명해 보자. 일본 엔카(演歌)의 창시자 고가 마사오(古賀政男)는 일본 가요의 황제로 불린다.그런데 고가 마사오의 엔카가 한국의 육자배기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그 연유는 이렇다.고가 마사오는 1920년대 서울 선린상고를 다니면서 그 시절 풍미하던 임방울 이화중선의 민요,특히남도의 육자배기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민요가 모티브가 된 엔카가 일본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데있다.이는 한국과 일본인의 대중정서가 맥이 닿아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전문가들은 그 원류를 백제 유민의 한으로 추론한다. 우리는 우리 것,그래서흔한 것의 소중함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 金在晟논설위원 jskim@
  • CD로 만나는 ‘잊혀진 옛노래’

    “정말 돈 안되는 일을 하는 겁니다.” 웬만한 뚝심 없으면 꿈도 못 꿀 일을 신나라뮤직이 해냈다. 해방이전부터 유성기로 듣던 SP(Standard Playing)음반을 복각해 ‘유성기로듣던 가요사’1집(10CD)과 ‘불멸의 명가수’(32CD)를 내놓은 데 이어 해방후 60년대까지의 SP음반을 10장의 CD로 묶어 2집을 냈다.여기에 당시 유행한영화 주제가를 묶어 2장의 CD를 보탰다. 남인수의 ‘가거라 삼팔선’과 ‘다정도 병이런가’등이 실렸고 이미자의 ‘워싱턴 블루스’도 눈에 띤다.‘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이해연과 ‘사나이순정’의 박재홍을 만나는 것도 반갑기 그지 없다. 2집에 수록된 가수만 고대원 권정애 권혜경 김용만 김정애 나애심 남백송 도미 명국환 박경원 박재란 백설희 손인호 송민도 안다성 옥수동 원방련 윤일로 현인 등 58명.이들의 217곡을 담았다. 일제강점기∼해방∼한국전쟁을 거치며 소실된 자료를 복원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정신사를 정리하는 길이란 게 복원의 이유다.막연한 구전과 빈약한 자료를 가지고 ‘왜색가요’로 제쳐놓지 말고 ‘제대로 들어보고 평가하자’는논리다. 토렌스 521 턴테이블에 SP를 걸고 마크 레빈슨 앰프로 재생해 소니MDS-S39 MD녹음기와 마란츠620 CD녹음기로 녹음,프리마스터링과 잡음 제거작업을 거쳤다.신나라 관계자는 “복각하는 과정에서 잡음을 제거하느라 음이 깎이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정도면 안주할 만한데 “이제 시작”이란다.SP로 발매된 가요음반은 5,000여장으로 추산된다.신나라뮤직과 김점도·박찬호씨 등 애호가들이 소장한 SP음반이 4,000여장이니 이를 모두 복각,가요사를 다시 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임병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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