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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이즈미 총리, 朴대표에 ‘덕담’

    고이즈미 총리, 朴대표에 ‘덕담’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것이 일본에서 여성 총리가 나오는 것보다 빠를 것 같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8일 방일 중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이같은 덕담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 관저에서 가진 면담에서 한국 여성 정치인의 활동에 관심을 보이며 이같이 말했다고 배석자들이 전해 미묘한 여운을 남겼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지난 5일 한국이 일본에 3대2 역전승을 거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을 몸 동작을 써가면서 “역전해서 기분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박 대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및 독도, 교과서 왜곡 문제 등을 언급하며 “정치 지도자들의 신중한 언행과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이재춘 국제위원장이 전했다. 박 대표는 고이즈미 총리의 좌우명인 ‘무신불립’(無信不立·신뢰가 없으면 설 수가 없다.)을 소개하면서 “한국과 중국을 배려, 양국간 껄끄러운 문제가 총리의 지도력을 통해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지연기자·연합뉴스 anne02@seoul.co.kr
  • 독도 그모습 그대로 서울에 왔다

    독도 그모습 그대로 서울에 왔다

    우리나라 동쪽 끝에 위치한 독도의 모습이 고스란히 서울로 옮겨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7일부터 다음달 16일까지 갖는 올해 첫 기획특별전 ‘가고싶은 우리 땅, 독도’를 통해서다. 지난해 용산으로 옮긴 뒤 이렇다 할 기획전이 없었던 중앙박물관이 독도를 첫번째 기획전 주제로 삼은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올해가 독도라는 지명을 공식적으로 사용한지 100년이 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국내외 18개 박물관서 협조 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 마련된 독도전은 전시물이나 구성 등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독도를 주제로 한 전시는 판화전이나 사진전, 고지도전 등 특정주제로 이뤄졌던 반면 이번 기획전은 독도의 자연과 서적, 고지도, 관련 인물 등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를 위해 국내외 18개 박물관·도서관 등으로부터 2개월여에 걸쳐 전시물을 대여해왔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독도 관련 옛 서적과 지도 등을 한눈에 확인하면서 독도가 우리 땅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준다. 특히 ‘독도의 자연’ 코너에 자리잡은 독도 모형은 5000여만원을 들여 오랜 기간 정교하게 제작한 만큼 독도에 직접 가보는 듯한 느낌마저 전해준다. ●순회전으로 독도사랑 고취 독도 모형은 울릉도에 있는 독도박물관에도 있지만 이보다 규모가 작다. 이번 중앙박물관 기획전이 독도박물관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는 독도 모형뿐 아니라 여러가지로 관련이 됐기 때문이다. 독도박물관은 이번 기획전에 소장품 50여점을 빌려줬다. 상당수 서적과 지도가 울릉도에서 옮겨온 것이다. 개막식에 참석한 이승진 독도박물관장은 “중앙박물관의 독도 특별전이 독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강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개막식에서 만난 이 관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1997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2개층 규모로 개관한 독도박물관은 우리나라 유일한 독도 관련 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관람객 수가 지난해 11만명을 넘어섰지만 아직도 울릉도 입도 인원의 60% 수준이다. 무료 관람이다 보니 여행가이드가 관광객들을 데리고 오지 않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그러나 서기 512년부터 1900년대까지 우리나라와 일본, 러시아 자료까지 소장하고 있고 독도전망로비와 자연생태영상실, 야외독도박물원까지 갖춰 독도 지킴이로서 손색이 없다. 이 관장은 “중앙박물관 기획전이 끝난 뒤 독도 모형 등 자체 제작물을 기증받기로 했다.”면서 “독도전은 중앙박물관에 이어 진주·전주박물관에서도 열리는 만큼 순회전을 계기로 독도박물관도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자체 특별전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과의 마찰 우려 40여점 누락 중앙박물관 기획전과 독도박물관을 비교하면서 아쉬운 점도 있다. 기획전에는 당초 15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공간문제뿐 아니라 미묘한 기준에 의해 독도박물관 등에서 빌려온 40여점이 누락됐다. 일본·유럽 등 외국에서 만든 독도 관련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논란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왜곡된 역사도 역사인 만큼 당당하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또 기획전에 전시된 경희대·영남대박물관 등의 소장품들을 보면서 독도박물관이 대표적인 영토박물관이 되기 위해 전시물 수집에 더욱 노력을 기울이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설] ‘정보공개법’ 위에 군림하는 국회

    국회 사무처가 지난해 국회의원 정책개발비 집행현황과 영수증 사본을 공개해달라는 서울신문의 청구를 거부했다고 한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공개 거부 요건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선거에 악용될 수 있다.’거나 ‘기자가 사실을 왜곡 보도할 것이다.’라는 등 상식 이하의 이유를 들어 세부내역 공개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겨우 공개한 내용도 가관이다. 국회의원 이름과 영수증 내용은 뺀 채 “1번 4632만원…295번 348만 860원”하는 식이었다니 국회가 앞장서 법을 희화화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국회가 지난해 여야 국회의원 295명에게 정책개발비라는 명목으로 94억여원을 나눠줄 때도 지정된 용도로 집행될 것인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청문회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만큼 국회의 예산집행 행태가 후진적이라는 뜻이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예산 및 결산을 심의하는 국회로서는 먼저 투명성 확보와 더불어 엄격한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하지만 남에게는 촘촘한 눈금을 들이대면서 자신은 적당히 덮고 넘어가는 것이 국민에게 각인된 우리 국회의 현주소다. 공공기관 정보공개법 1조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국정운영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공공기관의 정보를 공개토록 규정하고 있다. 공개된 정보를 통해 국민의 혈세를 엉뚱한 용도로 집행한 국회의원이 드러난다면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회 사무처는 뒷전에서 수군거리면서도 정작 국회의원들의 치부가 공개되는 것에는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다.‘감세냐, 증세냐’하는 논쟁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정치권이 먼저 자신들의 씀씀이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 종합일간지 미묘한 시각차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를 극명히 보여준 사건이다. 또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문도 국민 정서상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고, 사의표명에도 불구하고 그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지만 두 사건이 옳고 그름의 판단이 비교적 쉬운 이슈임에도 언론 매체들은 기사를 다루는 방식이나 태도에 적잖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문제는 특정 정당에 대해 편향적 태도를 보이거나, 언론이 사건과 관련된 스스로의 문제점에는 눈감으려는 관행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종합일간지들을 중심으로 두 사건을 둘러싼 언론 보도 문제들을 짚어본다.●특정정당 편향보도… 선거 앞두고 논란 사건 경위가 비교적 소상히 전해져서인지 대부분의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최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촉구했다. 피해 여기자의 소속사인 동아일보가 지난달 28일자 사설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성추행’‘의원직 사퇴로 책임을 분명히 하라’고 촉구한 것을 비롯,‘나사 풀린 한나라당 이젠 성추행까지’(조선),‘왜곡된 성의식 바로잡는 계기돼야’(중앙),‘용인될 수 없는 의원의 성추행’(한겨레),‘한나라, 성범죄 엄단 말할 자격 있나’(서울) 등 최 의원과 한나라당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성추행이 벌어진 술자리의 부적절성에 대해선 몇몇 신문만이 문제점을 지적했다.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신문사 고위간부들과 기자들이 꼭 정당의 고위 당직자들과 술판을 벌여야 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다.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겨레, 국민일보 등은 사설에서 이같은 부적절한 만남의 불건전성을 지적하고, 진정한 비판언론이라면 권언간에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건의 본질은 분명 국회의원의 여기자 성추행이지만, 이같은 일이 어떤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자리가 과연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도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짚어줘야 했다는 게 언론계 주변의 시각이다. 사설 중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일부 신문이 이번 사건을 정치집단의 ‘집권’적 측면에서 접근하려고 한 점이다.‘한나라당, 만년 야당으로 가는가’(문화),‘만년 야당 증후군’(조선)이란 사설은 일견 한나라당을 강력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이들이 집권하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듯한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총리 골프물의, 한쪽은도배 한쪽은백지 이 총리 골프 사건을 둘러싸고 지난 3,4일자 보도는 신문간 극심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먼저 국민일보는 3일 ‘징발 개각에 총리는 골프나 치고’란 사설을 비롯,7건의 관련 기사를 내보내고,4일자엔 10여건의 기사로 주요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한국일보도 3일 사설 등 3건의 기사를 내보냈고,4일자엔 4건의 기사를 싣는 등 비교적 사건 전말과 파장을 소상히 보도했다. 한겨레를 제외한 나머지 신문들은 3일자에서 1∼2건의 가십기사로 처리했으나, 파장이 커지자 4일자부터 기사의 비중을 크게 높였다.하지만 한겨레는 3일자엔 아예 보도하지 않았고,4일자에서야 박스성 기사로 처리하는 등 유독 이번 사건 보도에 인색함을 보였다. 이에 대해 한겨레의 일부 기자들도 “현 정권에 우호적인 것은 알지만 너무 지나치다.”며 따가운 시선을 보낼 정도다. 이번 사건은 결국 총리가 5일 사의를 표명하는 등 정국의 핵으로 등장한 상태. 정치권 일각에선 이를 최연희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국면전환의 기회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와 맞물려 보도의 편향성 시비도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씨줄날줄] 한·일전/오풍연 논설위원

    “일본은 한국에 있어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과거 식민지 역사에서 비롯된 앙금이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일간 문제는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이성적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부와 권력의 대이동’을 펴낸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미 전략경제연구소장은 몇해 전 두나라 관계를 이처럼 진단했다. 감정적 대응은 한국에 불리하다는 점을 시사한 대목이다. 극일(克日)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은 정치·경제·외교·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국민의 감정 역시 그렇다. 한국에 반일(反日)이 있다면, 일본에는 혐한(嫌韓)의 뿌리가 깊다. 지난해 7월 발간된 ‘만화 혐한류’(야마노 샤링)가 베스트 셀러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만화는 “일본이 오늘의 한국을 건설했다.”는 식의 왜곡과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 일본 우익세력의 대대적인 판매공작 등 지원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스(NYT)가 이를 ‘비이성적’이라고 꼬집었을까. 여기에 보수·우익신문인 산케이는 NYT의 ‘반일’적인 논조를 공격하기도 했다. 5일 오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최종 3차전이 치러진 일본 도쿄돔. 우리 선수들은 3대2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일본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한국 선수단의 이성이 그들의 감정을 압도한 경기였다. 이번에도 일본측이 먼저 우리의 심기를 건드렸다. 오 사다하루(王貞治) 감독과 이치로, 마쓰자카는 ‘30년 망언’ 등으로 기선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달랐다.9회말 박찬호가 이치로를 뜬공으로 잡을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이진영의 호수비도, 이승엽의 2점 홈런도 이성적 판단과 다부진 각오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특히 오 감독의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55개)을 1개차로 갱신한 기록도 가지고 있는 이승엽이 단연 돋보였다. 그의 오기가 일본 야구 영웅들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순간이었다. 한·일전의 승리는 국민에게도 쾌감을 더해준다.13일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WBC 2라운드도 주목된다. 일본과 다시 맞붙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대∼한민국”을 듣고 싶다. 우리 선수단 파이팅!.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국회 공개 거부 어떻게 썼기에…

    “A의원은 정책개발비를 받자마자 유명 정치 컨설턴트 B한테 통째로 보냈다는군. 알아서 ‘정책’을 ‘개발’해 달라는 거지.”,“C의원은 특급 호텔에서 세미나를 열었는데 밥값으로만 1000만원이 넘게 들었다지?” 국회가 지난해 여야 국회의원 295명에게 지원한 정책개발비 94억 2756만 4000원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의원 1인당 평균 3217만원씩 배정된 돈으로 착실하게 정책을 만든 경우도 있지만 형식적인 토론회를 열거나 흥청망청 써버린 의원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검증절차는 아예 없다. 국회 스스로 ‘떡값 논란’을 부른다는 지적이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국회측에 정보공개 청구권을 행사해 6월16일자로 의원들의 ‘외유성 의원외교’ 실태를 낱낱이 파헤친 바 있다. 당시 이 보도는 정치권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면서 정보공개 청구권 제도를 안착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서울신문은 이에 따라 지난 1월9일 국회에 ‘2005년 국회의원 정책개발비에도 집행현황과 영수증 사본’을 공개해 달라고 청구했다.“모든 국민은 공공기관에 행정정보를 공개하도록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사안은 ‘국가 이익을 해치거나,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 등에 제한된다. 따라서 본지의 정보공개 청구는 이런 사유에 해당되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국회측은 부당하게 거부했다. 국회는 일단 “1번 4632만원,2…3…295번 348만 860원’ 하는 식으로 의원 이름도 적히지 않은 정책개발비 총액 리스트만 공개했다. 누가 얼마나 어떻게 어떤 정책을 만드는 데 썼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이의신청을 했더니 이번에는 “선거에 악용될 소지가 많다.”며 공개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국회 이재록 회계과장은 다음처럼 말했다. “실제로는 정책개발 차원으로 밥집에서 100만원어치 밥을 먹었는데 술집에서 여자를 끼고 100만원어치 술을 먹었다고 보도되면 큰일 아니냐.(기자가)제대로 보도하면 되는데 왜곡할 것이다. 국회의원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어 공개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공개하지 않겠다면 그만이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이 정책개발비를 사용한 영수증은 열람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덧붙였다. 국회의 이상한 ‘비밀주의’에 대해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의 이경미 간사는 “공공기관 가운에 국회가 정보공개에 있어 가장 후진적”이라면서 “제도의 맹점을 자의적으로 악용해 혈세를 펑펑 쓰고도 검증조차 받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정책개발 지원 인력을 확충해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꿈을 주는 신문을 위해/양승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 교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면 ‘희소식은 소식이 아니다.’미국의 언론학자 다이애너 머츠가 뉴스 보도의 부정적 편향성의 문제를 다루면서 인용하는 속담과 이에 대한 논리적 등가 명제이다. 사실 어떤 것이 문젯거리가 아니라면 뉴스의 주목을 받기 어려운 것이 저널리즘의 현실이다. 일반적인 뉴스선택의 관행을 볼 때도 뉴스 가치를 결정하는데 부정적 왜곡 요인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환경감시의 기능을 수행하는 신문이 비판적인 시각으로 사회현상을 다루는 가운데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출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지난주 서울신문의 1면에서도 ‘인터넷뱅킹 판교 대란 경보’ ‘오늘 출근 대란 우려’ ‘정부·지자체 또 떠넘기기’ ‘철도노조 파업 강행’ 등의 기사가 톱으로 뽑혀진 것은 환경감시의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측면이 강조된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서구 사회의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실제 자신이 처한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사회의 집합적 현실을 상대적으로 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편향은 주로 사회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부정적 보도에 기인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언론이 이를 감시하여 보도할 의무가 있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지만, 언론이 보여주는 사회가 우리의 인식의 틀을 형성하고 이러한 틀에 기초하여 사회현상을 평가한다는 측면도 이제는 차분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에게는 서울신문이 28면 또는 32면 속에 담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에는 권력과 사회 문제에 대한 감시자의 책무뿐만 아니라 사회 통합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책무도 있음을 상기했으면 좋겠다.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발굴해내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가치와 경험을 독자들이 공유함으로써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게 했으면 한다. 지난 2월27일자 ‘빵으로 빚는 아름다운 세상’,‘힘들 땐 등대에서 삶의 희망 얻으세요’,‘마약은 못 끊는다고? 아냐! 우리가 기적을’,3월1일자 ‘기형얼굴 저소득층 어린이 웃음 찾아주기 인술 12년째’,3월2일자 ‘마음 나누면 그늘이 더 따뜻해요’ 등은 일상생활에 기초하여 사회의 긍정적인 측면을 드러낸 따뜻하고 희망적인 기사였다. 이와 같은 기사들이 지면에서 조금 더 많이 발견되었으면 좋겠다. 사회면을 차별화한 서울신문의 ‘사람과 사회’,‘사람 일 사람’은 희망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이 특화된 공간이 사건과 사고 기사로 단순하게 메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젯거리를 다룬 기사는 언제든지 시민들이 접할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이다. 독자들이 지면에서 원하는 것은 서울신문의 의견과 탐사보도, 기획 그리고 ‘나눔 세상’과 ‘세상 속으로’ 같은 코너에서 다룰 수 있는 서울신문만의 특별한 이야기들이라는 것을 늘 생각했으면 한다. 이 특별한 이야기를 위해 조금 더 발품을 팔며 많은 기자들이 그야말로 세상 속으로 뛰어 나가면 좋을 것 같다. 문젯거리를 캐내고 이를 비판적으로 다루는데도 시간이 부족할 수 있는 기자들에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뉴스를 찾아보자는 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이야기하기에 미안한 감이 있다. 하지만 세상 속으로 들어간 기자의 기사에서 서울신문을 읽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으니 조금은 무리인 부탁이라도 해 보고 싶다. 서울신문을 다른 신문과 차별화하는데 있어 ‘희소식을 소식으로 만들기’를 조금 더 중요한 목표로 삼으면 어떨까? 제호 밑에 강조되어 있는 ‘꿈을 주는 신문’이라는 신문사의 비전과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양승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 교수
  • 한나라 ‘빅3’ 해외 얼굴알리기

    한나라당의 이른바 대권주자 3룡인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가 이달 초부터 새달 초까지 차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외 방문길에 올라 눈길을 끈다. 이들 ‘빅3’의 해외 나들이는 행선지는 각기 다르지만 대권주자로서의 얼굴 알리기와 정치적 영향력 확대 행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첫 시동은 오는 7일부터 닷새간 일본을 방문하는 박 대표가 건다. 이번 방일은 주변 4강국 방문계획에 따라 작년 3월 미국과 같은해 5월 중국 방문의 연장선에 있다. 박 대표는 방일 기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만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교과서 왜곡 등으로 냉각된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임기 종료를 3개월여 앞두고 11일부터 8박9일간 방미길에 오르는 이명박 시장은 서울시와 자매결연을 한 워싱턴을 찾는다. 이 시장은 리처드 루가 미 상원 외교위원장과 로버트 졸릭 국무부 부장관 등 워싱턴 정가의 실력자들을 만나는데 이어 공화당과 민주당 계열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과 브루킹스연구소를 잇따라 방문, 미국 정계내 인맥 쌓기에 나선댜.손학규 지사는 최대 치적이랄 수 있는 첨단기업 유치에 박차를 가한다.23∼24일 투자유치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한 뒤 27일부터 닷새간은 중국 베이징과 랴오닝성 등을 방문, 자매결연을 체결한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시론] 주택문제와 시장원리/김홍배 대한주택건설협회 상근 부회장

    [시론] 주택문제와 시장원리/김홍배 대한주택건설협회 상근 부회장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부 대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아파트값 폭등 현상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대책이 홍수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잡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여정부 들어 금리, 자금 흐름까지 동원해 집값 잡기에 모두걸기를 할 정도이니 집값 폭등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집값 대책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실수요자 위주의 주택 소유, 분양가 인하 정책 등을 내놓았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시장경제 원리를 벗어난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집값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경기가 좋아지면 집값은 늘 들썩거리게 마련이다. 수요가 늘면 가격이 뛰고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진다. 소득이 증가하면 더 넓고 좋은 집에 살고자 하는 수요가 증가해 중대형 고급 아파트값이 뛰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 주택의 공급은 상대적으로 탄력성이 떨어져 수요에 민감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강남지역은 상류층이 모여 있는 곳이다. 사회·교육 인프라 등도 잘 갖춰져 돈만 있으면 이사를 선호하는 곳이다. 만약 강남 수요에 발맞춰 대형 고급 주택의 공급이 원활했다면 가격 상승폭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강남 주택 공급 정책은 소형주택 쪽으로 방향이 맞춰졌다. 돈을 버는 과정에서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있고, 개인 소득도 늘어난다. 소득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 당연히 그런 주택이 모여 있는 강남집값이 먼저 뛰는 것이다. 정도(正道)는 시장원리에 따라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우선이다. 중대형 고급 주택의 수요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억제할 수는 없는 만큼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최선의 길일 것이다. 임대아파트사업은 복지차원에서 접근하고, 일반 시장에서는 소형 주택정책에 집착하지 말고 평형 배분 등은 시장의 움직임에 맡겨두는 것이 가격 왜곡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새 아파트 공급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기존 주택의 원활한 거래다. 매물이 쏟아지면 공급 확대와 같은 효과를 가져오고 집값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정부는 각종 대책을 내놓으면서 여러 채의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잇따라 팔자 물건을 내놓고 집값은 금방 안정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크게 빗나갔다. 집주인들이 양도세 ‘폭탄’을 맞느니 차라리 보유세를 내겠다는 심산이다. 기존 주택거래 시장을 활성화시켰다면 당초 기대했던 집값 안정효과를 앞당길 수 있었는데 이를 너무 가볍게 보았던 것이다. 서울 시내 주택시장이 원활하게 움직이면 2만가구 이상의 새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민간 자율성 확대도 시급하다. 민간 택지공급 절차를 간소화해 주택을 쉽게 지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난개발을 방치하라는 것이 아니다. 체계적인 개발을 유도할 수 있도록 큰 틀을 마련해주고 택지 개발은 민간이 적극 뛰어들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는 얘기다. 이미 보존가치가 떨어지는 농지·임야를 체계적인 택지로 조성하면 녹지의 절대면적은 줄어들지 몰라도 도시 땅값이 떨어지고 공원도 더 조성할 수 있다. 녹지의 절대 면적은 줄어도 도시내 녹지는 늘어날 것이다. 주택사업 목적의 토지 보유에 대한 합리적인 세제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놀리는 땅을 많이 보유한 개인이나 기업에 세금을 높게 매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업 목적의 택지 보유에 무거운 세금을 물리면 부담이 모두 분양가에 전가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나친 기부채납 강요와 복잡한 행정절차 등도 사업 기간을 늘려 금융비용을 증가시키고 이것이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홍배 대한주택건설협회 상근 부회장
  • 여성과 미술/주디 시카고 등 지음

    여성과 미술/주디 시카고 등 지음

    미국의 페미니스트 작가 그룹 ‘게릴라 걸스’에 의하면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현대미술실에 전시된 작가 중 여성은 5%도 안 되지만, 걸려 있는 누드 작품의 85%는 여자라고 한다. 이렇듯 오늘날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남성 화가들의 단골 소재는 단연 여성, 그 중에서도 벌거벗은 여성이다. 그러나 정작 여성을 다룬 여성 화가들의 작품은 제대로 볼 수가 없으니, 우리는 남성의 그림에 의존해 여성을 읽고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진정 없는 것일까. ‘여성과 미술’(박상미 옮김, 아트북스 펴냄)은 이같은 미술계의 남성패권주의에 단호히 반기를 든다. 저자는 여성미술교육 분야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미술가 주디 시카고와 ‘남자를 보는 시선의 역사’ 등의 저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자메이카 태생 미술사가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이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은 많다. 아무도 그들을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불후의 고전으로 읽히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도 여성 미술가의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미술사 책들은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미술을 다뤄왔다. 이 책은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주변부로 밀려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의 성취를 재조명함으로써 미술사의 온전한 복원을 꾀한다. 구석기 시대의 빌렌도르프 비너스부터 신디 셔먼의 분장 사진에 이르기까지 3000년 서양미술 속에 감춰진 여성의 실체를 밝힌다. 먼저 남성 미술가들이 여성을 어떻게 왜곡해왔는가를 짚어보고 그들이 갖는 위상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를 따진다.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조숙한 소녀, 지나치게 이상화한 미의 상징, 무시무시한 노파…. 이처럼 남성의 시선에 잡힌 여성상만 난무할 뿐, 여성화가의 눈으로 그린 참다운 여성의 삶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미술작품 속 여성을 분석하기 위해 여신, 여성 영웅, 누드 등 다양한 코드를 동원한다. 여성운동이 거둔 가장 큰 결실 가운데 하나는 여성의 신성과 여신숭배 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여신은 저자인 주디 시카고의 말대로 “여성의 힘과 강인함을 증명하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역사 그 자체”다. 이 책에서는 고대 미노스의 뱀 여신과 빌렌도르프 비너스, 그리고 퍼포먼스 예술가 캐롤리 쉬니만 같은 현대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여신이 갖는 다양한 의미와 상징을 살펴본다. 미술 작품 속 여성 영웅의 이미지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서양미술에서 여성은 은유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처리될 뿐, 강한 개성을 지닌 영웅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성녀 테레사, 잔 다르크, 유디트 등 뛰어난 여성 영웅들도 남성 화가들의 작품에선 진정한 인간성을 상실한 채 단순한 사물로 전락하고 만다. 성녀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황홀경’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책에는 로마의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에 있는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 ‘성녀 테레사의 황홀경’ 이야기가 나온다. 천사가 성녀의 심장에 성령의 사랑의 화살을 꽂는 장면을 묘사한 이 조각상은 사뭇 충격적이다. 조각 자체가 강한 성적 뉘앙스를 풍길 뿐 아니라 작품 속 성녀는 마치 오르가슴에 빠진 듯한 모습의 성적 존재로 묘사된다. 교회 개혁자로서의 성 테레사의 면모나 금욕적인 삶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다. 서양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용사 잔 다르크 또한 그리 이상화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앵그르의 작품 ‘잔 다르크’(1854)를 보면 주인공은 어쩐지 수동적인 모습이다. 어떤 행동을 보여주기 보다는 상징적인 역할을 드러내는 데 그친다. 책은 거울 속 여성 이미지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다룬다. 거울은 흔히 여성의 자기애(自己愛)를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남성 화가들은 왜 그토록 ‘거울 보는 여자’ 이미지에 집착할까. 여자는 누구를 위해 거울을 보고 있는 것일까. 거울이 등장하는 루벤스의 ‘화장하는 비너스’와 쇠라의 ‘화장하는 젊은 여인’ 같은 작품은 여성이 수동적인 소유의 대상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남성미술가들의 작품과 달리 여성작가들의 작품에서 거울은 능동적인 의미를 띤다. 연극적인 포즈의 자화상을 담은 신디 셔먼의 ‘무제’(1997)가 그 생생한 예다. 책은 유색인종과 레즈비언 미술가들의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마지막 장에서는 재미 한인 작가 민용순의 사진 작업 ‘나를 만들어봐’도 소개돼 눈길을 끈다. 잃어버린 미술사의 반쪽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복원해놓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3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클릭 이슈] 송파신도시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찬반 논란

    이해찬 국무총리가 최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송파신도시에 토지임대부 분양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전세값 수준으로 내집마련 토지임대부 분양방식이란 토지 소유권은 정부가 갖고 건물만 파는 방식이다. 전·월세 형태로 토지임대료를 국가에 따로 내면서 일반 분양주택처럼 건물 소유권은 거래할 수 있다. 이 방식이 도입되면 분양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땅값을 제외시킬 수 있어 아파트 값이 평당 500만∼600만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판교 중소형 분양가가 평당 1100만원선인 점을 감안하면 아파트 반값 공급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송파신도시에 이 방식이 도입되면 30평형대 아파트를 1억 5000만원(평당 500만원 가정)선에 구입할 수 있다. 지난달 서대문구 천연동에 입주를 시작한 주공 뜨란채 아파트 22평형 전셋값이 1억 40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전세 수준 이하의 돈으로 내집 마련이 가능한 셈이다. 정부는 송파신도시에 한정적으로 토지임대부 분양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송파신도시는 국공유지가 80%선이어서 조성원가가 적게 든다는 게 이유다. 주공 부설 주택도시연구원은 지난해 8월 ‘보증금 제도를 결합한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방식’을 제안하면서 절반 가격으로 내집 마련이 가능한데다 토지소유권의 공공 보유로 개발이익 사유화를 막고 재건축 통제도 가능한 점을 장점으로 지적한 바 있다. ●반값 아파트?… 반쪽 재원 마련이 문제 토지임대부 분양은 초기 사업비가 많이 들어간다. 업계는 송파신도시의 경우 분양가에 전가시키는 부지 조성비만 해도 최소 1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파트가 반값으로 분양된다면 나머지 반은 국가·지자체·사업시행자가 내야 한다. 건교부와 토지공사는 재정 문제를 걸림돌로 지적하고 있다. 토공 기획조정실 전략기획단 유영일 단장은 “국유지라 하더라도 건축부지로 활용되는 토지는 토공이 돈을 주고 정부로부터 사온다.”면서 “토지 매입비 이외에 기반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부지 조성비는 어디서 보전받느냐.”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회수가 가능하지만 당장 무슨 돈으로 다른 사업을 하느냐는 것이다. 건교부도 부대 이전비 등 토지 조성비에서 나올 자금을 어디서 구할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토지임대부 아파트가 땅에 대한 소유권이 없는 ‘반쪽짜리’ 아파트여서 수요자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신한은행 고준석 부동산팀장은 “강남 수요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다면서 토지에 대한 권리를 임대 형식으로 분양할 경우 부자들이 과연 구입할지 의문스럽다.”면서 “중소형과 임대가 많아 부자들이 판교를 외면하고 강남과 분당에 더욱 집착해 집값을 올려놓았듯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한적인 도입은 필요 전문가들은 송파신도시 일부에 대해 토지임대부 분양을 시범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현대건설 김경호 건축사업본부 상무는 “송파신도시는 국공유지가 많은 만큼 기반시설을 마련할 부지 조성비 문제만 해결된다면 일부에 한해 적용할 만하다.”고 말했다. 대통령비서실 참여혁신수석비서관을 지낸 박주현 변호사는 “비싼 땅값이 고분양가의 원인인 만큼 부분적으로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토지임대부 방식을 적용했을 때 집을 자산으로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선호도는 어떨 것인지, 거래 시장에서 사기 등 왜곡될 우려는 없는지 송파신도시에 일부 적용해 결과를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지은용 하나은행 부동산팀장은 “임대 형식이어서 중소형으로만 지을 경우 슬럼화 우려등 사회적 저항이 크겠지만 중대형으로 지을 경우 충분히 수요가 있다.”면서 “살 만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장기적으로 인식 전환을 이끌어 집값을 끌어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사설] 성추행 관용론이 더 문제다

    성추행 파문을 낳은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을 두둔하는 발언이 여야 일각에서 잇따랐다. 술에 취해 저지른 실수라거나, 본인이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군중심리에 휩싸여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등의 옹호론이 일부 동료의원들에게서 제기된 것이다. 심지어 ‘아름다운 이성에게 자연스레 시선이 가는 기본적 본능 자체를 무력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한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 저변의 이같은 관대함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발언은 술에 취해 저지른 실수로 국회의원직까지 내놓아서야 되겠느냐는 신분차별적, 남성우월적 몰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최 의원의 추태보다 더 심각한 것이 우리 사회 저변의 이런 후진적 성 도덕이라고 본다. 서울지검 부장검사, 청와대 사정비서관 등을 거친 3선 국회의원으로서의 명예를 이번 일로 모두 잃게 된 것이 본인은 억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의원직보다 더 중요한 것이 피해자의 성 주권이며, 정신적 고통임을 최 의원과 우리 사회는 알아야 한다. 가장 기본적 인권을 침탈 당한 피해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감히 성추행과 의원직을 저울에 달려는 시도는 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 파문은 결코 최 의원의 진퇴로 갈무리될 일이 아니다. 그 어떤 형태의 성범죄에 대해서도 사회 전체가 단호히 대응하고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제도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여야에 당부한다. 이번 파문을 호재니 악재니 하며 선거정국에 활용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6개월째 방치돼 온 성폭력 관련법안 처리에 즉각 머리를 맞대야 한다. 파문의 유·불리를 따지는 저급한 자세야말로 왜곡된 성 문화를 바로잡는 데 최대의 적임을 명심해야 한다.
  • [사설] 노 대통령의 변함 없는 對日 비판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책임있고 합당한 실천을 거듭 촉구했다. 이것만이 냉랭한 한·일관계를 풀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일본이 지향하는 ‘보통국가’에 대해서도 “법을 바꾸고 군비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먼저 인류의 양심과 도리에 맞게 행동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또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마음의 문제라서 타국이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발언을 직접 거론하며 “국가 지도자가 하는 말과 행동의 의미는 당사자 스스로의 해명이 아니라 그 행위가 갖는 객관적 성격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노 대통령의 대일 강경 비판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고이즈미 총리가 또다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이후 이같은 기조를 유지해 온 노 대통령이다.‘각박한 외교전쟁’‘대한민국의 광복을 부인하는 행위’와 같은 격한 표현까지 썼었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대일 강경 기조는 올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정한 외교행위는 있겠지만 한·일 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다만 이번 기념사에서 일본 지도층과 국민을 분리한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우리는 냉랭한 한·일관계의 원인은 일본측에 있다고 판단한다. 노 대통령도 밝혔지만, 지난 1년간 신사참배는 물론, 역사교과서 왜곡에다 독도문제까지 일본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미국 일변도의 아시아 경시 외교가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일본 지도층의 거침없는 망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양안 갈등과 북핵 문제 등 파고가 높아가는 동북아 정세에서 한·일간 유대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일본 지도자들의 각성을 거듭 촉구한다.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9) 가치와 사실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9) 가치와 사실

    누구나 인생을 가치있게 보내려 한다. 그 가치가 무엇인가? 가치는 경제적 가격과 대단히 유사해 보인다. 쉽게 말해 시장에서 인기가 있으면 가격은 올라간다. 사람도 만인의 인기에 의하여 그 가격이 결정된다. 가격이 비싼 사람은 그만큼 가치도 많아 보인다. 현대의 정치와 문화가 모두 상업화되어 가는 마당에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하여 모두 총력을 기울인다. 가치가 꼭 가격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 가치는 슬픔의 상처를 안고 밀려난다. 역사에 이런 슬픈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격과 가치가 불일치한 경우다. 좌우간 가치나 가격은 세상사가 다 상호주관적(intersubjective)이기에 생긴다. 이 말은 사회생활에서 상대방의 인정과 승인을 얻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 소유욕을 말한다. 소유욕은 단적으로 인간사이에 먹으려는 욕망이 원초적이라는 것과 통한다. 불교에서는 이 먹고 싶은 욕망을 사식론(四食論)이라 부른다. 음식을 쓸어 요리해서 맛있게 먹고싶은 단식(段食), 남녀간에 피부로 접촉해서 먹고싶은 촉식(觸食), 상호간 의사소통에서 상대방을 설득 동화시키고 싶은 의사식(意思食), 자기의 지식으로 대상을 정복해서 자기 것으로 삼고 싶은 식식(識食) 등을 사식이라 한다. 헤겔과 마르크스가 잘 통찰한 바와 같이, 사회생활에서 타자로부터 인정과 승인을 얻고 싶은 욕망은 불교적으로 보면 다 타자를 먹고 싶은 소유욕과 같다. 음식 먹기도 문화여서 타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맛있고 우아하게 먹으려 하고, 성욕도 사회적인 승인을 통해 배출하려 한다. 원초적으로 인간의 사회생활은 먹고 먹히며 서로 인정받고 승인받기 위한 투쟁과 갈등의 연속이다. 가격과 가치가 그런 상호주관적인 욕망관계에서 생긴다. 그런데 가치는 가격보다 훨씬 복잡하다. 가격은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도태되면 그것으로 수명이 끝이지만, 가치는 인간의 마음이 개입된 복잡한 욕망의 주장이다. 가격경쟁에서 실패했지만, 마음이 겨냥한 가치가 무의미하게 사라졌다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인간의 상호주관적 욕망이다. 비록 시장에서 탈락되었으나, 언젠가 나의 가치를 인정승인할 날이 올 것이라고 앙앙불락 기대한다. 그것이 신념일 수 있고, 나쁘게 보면 고집일 수 있다. 인류사의 가치론을 볼 때 한때 가격에서 탈락되었으나, 세월이 지난 다음에 엄청난 경쟁력을 새롭게 지니게 된 가치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가격과 가치가 불가분이지만 꼭 일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면 그 가치가 무엇인가?‘내가 가치있게 살고 싶다.’할 때의 그 가치가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정치적, 도덕적, 예술적, 학술적 생각을 사회적으로 타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다른 것이 아니다. 앞의 사식(四食) 가운데 의사식(意思識)이나 식식(識食)이 주로 여기에 해당하겠다. 가치는 상호주관적 사회생활에서 소유론적 욕망과 직결된다. 사회생활이 없다면 가치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가치는 ‘내가 생각하는 것(cogito)’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의사식이나 식식에서 타인을 설득시키고 지식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논리를 정리하고 이념을 창출한다. 이것이 시장에서의 광고처럼 이념에서의 선전이다. 이념의 선전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cogitamus)’으로 만들기 위한 소유욕의 책략이다. 특히 소유욕의 책략에서 정치적 가치가 예술적 가치보다 훨씬 강하다. 왜냐하면 정치적 가치는 세속적 지배를 원하는 종교적 가치처럼 지배의지를 진리의지와 동격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20세기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인 구조주의 철학자 라캉이 그의 저서인 ‘기록’에서 한 말이다.“내가 존재하는 곳에 나는 생각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곳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뜻 무슨 말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상호주관적 사회생활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내가 소유하기 위함이지, 내가 존재하는 사실을 언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하는 것은 나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고, 생각이 일어나서 분별하는 경우는 모두 소유를 위한 동기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 일어나는 경우는 모두 호오와 시비와 선악을 내가 취사선택한 한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가치는 나의 생각의 산물이고, 이것은 또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의사식과 식식의 경우에만 ‘나는 생각한다.’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단식과 촉식의 경우에도 내가 먹는 음식이나 나의 몸매가 만인이 부러워하는 선망의 표적이 되게끔 만인을 홀리려 한다. 라캉의 생각처럼 사회생활에서 모든 것이 소유와 피소유의 관계로 환원된다고 보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사회생활이 그래왔었기 때문이다. 라캉은 프로이트 계통의 학자인데, 결국 성욕이 인류사회의 가장 원초적 언어활동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겠다. 성욕과 소유는 같은 말이다. 그래서 우리도 무의식중에 가치있는 인생을 향유하기를 기원해 왔다. 가치없는 인생은 타자들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가치는 결국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만인에 의하여 평가받고 싶은 소유욕에 다름 아니다. 가치는 나의 기호를 만인의 기호로 변경시키려는 확장욕에 불과하다. 이 확장욕은 우리가 앞 글(1·2·3·6·7·8회)에서 여러 번 지적한 본능의 소유욕에 해당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어떤 충격을 받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가치는 무조건 좋은 것으로 알았는데, 여기서 가치가 결국 무의식적 본능의 소유욕을 의식의 명분으로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가치는 각자의 심층적 소유욕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이 가치가 정치적 사회적 이념과 각별하게 연관된 것일수록 더 사회지향적 선전이 심하다. 그런 가치는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그것이 우리의 가치가 되도록 각색한다. 대개의 역사는 정치적 사회적 이념을 정당화시킬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세계사를 통하여 널리 확산되어 왔었다. 그래서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초기 실존주의에서 후기 사회혁명주의로 기운 철학자 사르트르와의 역사논쟁에서 사르트르적인 공산주의 지향의 역사의식을 비판하면서, 역사는 늘 어떤 이념적 경향성을 잠복시킨 내용적 편파성과 외연적 부분성을 띠고 있으므로 역사를 과학으로 인정하기를 그의 저서인 ‘야생적 사유’에서 거부했다. 그는 이념적 가치의 편향성에 의한 사실왜곡이 거의 없는 인류학과 민족학을 역사에 대체할 것을 주장했다. 이 말은 많은 경우에 정치적 사회적 이념의 가치는 사실을 왜곡한다는 것을 언명함이다. 왜냐하면 그 가치는 세상을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세가지의 한계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 그 하나는 그것이 가장 자기에게 좋은 것만을 선택했다는 한계고, 다른 하나는 자기선택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하여 사실을 왜곡한다는 한계고, 마지막으로 그것은 가치의 선동선전에 미쳐서 모든 가치가 필연적으로 반가치(4회 참조)를 품고 있는 측면을 전혀 도외시한다는 한계다. 그러면 모든 가치는 다 문제적인가? 세상을 소유하고 지배하겠다는 경향성이 희소한 순수 종교적, 예술 미학적 가치가 가장 사실성에 부합되는 것이 아닌지? 그러면 무엇이 진짜로 사실인가? 객관적으로 증명가능한 것만을 사실성으로 인정하는 실증주의적 시각이 옳은가? 실증주의는 사실성을 밝히는 데 너무 좁고 미흡하다.10여년 전 뒷길 교통신호대도 없는 네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내가 냈는지 당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볼 때에 그 사고의 원인은 길 건너 앞차가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의 진로를 알려주지 않아서 내가 거기에 신경이 빼앗겼기에 다른 차와 접촉하는 사고가 생겼다. 이것은 나의 심증이지 물증이 없다. 이처럼 실증주의는 사실을 인식하는 방식이 너무 좁다. 소유론적 무의식을 지닌 가치가 다 편파적이고 부분적인 사실의 왜곡에 기인한다면, 지공(至公)한 사실의 인식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앞으로 21세기적 모든 학문의 의미는 가치론보다 사실론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모든 가치는 결국 자아중심적 소산이다. 자아가 어떤 색깔로 물들어 있어서 그 색깔로만 세상을 바라보므로 사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는 자는 두가지 부류겠다. 하나는 이념적 가치를 위하여 일부러 사실을 거짓말로 속이는 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기가 어떤 특정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모르고 그 색깔로 세상을 늘 보는 자이다. 무의식의 소유욕이 그런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다. 전자는 진짜로 언급할 만한 거리도 못되는 정신적 사이비다. 그러나 후자는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무의식의 업장에 갇힌 자이고,20세기 프랑스의 현상학적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용어로는 잠재적인 ‘암묵적 전(前)의식’의 집단무의식에 갇혀 사는 자이다. 다 같은 생각을 개진한 것이겠다. 업이나 집단적 무의식에 걸리면, 그 업과 무의식이 통과시키지 않는 것은 생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의식이 모른다. 이것이 문제다. 우리는 미래의 교육에서 가치관 형성에 열을 올리지 말고, 인간이 자아를 가진 한에서 얼마나 편견과 아집의 노예가 되기 쉬우며, 가치의 이름으로 세상을 헛보게 만드는가를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모든 가치가 반가치를 필연적으로 띤다는 것(4회), 가치는 자기 기호의 선택이므로 전체를 보는 눈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아를 무아로 점진적으로 바꾸는 교육이 실제로 자아의 가치관교육보다 더 미래의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을 말해주어야겠다. 역사와 세상과 자연의 전체 사실을 여여하게 보는 눈을 키우는 공부가 미래의 철학교육이리라. 미래의 철학은 어떤 특정가치를 세상에 뒤집어 씌워 편견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아의 탐욕이 없는 마음에 비쳐지는, 존재하는 필연성을 아는 데 있겠다. 신경병도 과거 억눌렸던 상처를 알아차리는 데서 치유된다. 가치의 주입이 아니라 무명(無明)의 알아차림이 더 중요하다. 눈 뜬 장님들이 세상의 사실을 왜곡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구청장 현장인터뷰] 추재엽 양천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추재엽 양천구청장

    “독도는 우리땅.‘으뜸’ 양천구민 파이팅.” 제 87주년 3·1절인 1일 오전 11시. 추재엽(51) 양천구청장은 ‘제2회 독도사랑 양천마라톤 대회’가 열린 목동교 밑 안양천 변의 출발대에 올라 힘찬 목소리로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아침부터 봄을 재촉하는 꽃샘 추위가 몰아쳤지만 추 구청장은 7000여명의 참가자 모두가 출발할 때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양천구와 독도를 사랑하는 구청장 ‘독도사랑’이라고 쓴 머리띠를 두른 그는 “마라톤은 암울했던 일제시대 손기정옹이 국민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준 스포츠”라면서 “3·1절을 맞아 구민들이 독도사랑과 양천 사랑을 다시한번 되새기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라톤 대회는 지난해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등 일본의 역사왜곡이 한창이던 때 이를 규탄하고, 구민들에게 자주 독립정신과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시작됐다. 양천구를 시작으로 독도사랑 열기가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는 취지도 담고 있다. 올해는 3·1절 기념식을 겸해서 열렸다. 추 구청장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애국가 제창, 만세삼창, 규탄사 낭독 등을 참가자들과 함께 했다. 스포츠맨인 추 구청장은 이날 5㎞에 참가해 주민들과 함께 뛰려 했으나 대회 직전에 참가를 포기했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생길지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참가자들의 안전을 직접 챙기기 위해서다. 그는 “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주민의 안전을 챙기는 게 우선이어서 포기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아줌마 부대에 인기 ‘짱’ 추 구청장은 이날 아줌마(?) 참가자들이 몰려들어 악수를 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임기동안 여성과 청소년을 위해 양천구를 교육·문화·예술·환경도시로 가꾸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안양천 변을 생태공원과 청소년을 위한 자연학습장으로 가꿨고, 목동과 신월동에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했다. 관내 58개 초·중·고등학교와 45개 유치원에 97억원의 예산을 지원해 보도정비와 체육시설을 신설했다. 최근 3년동안 서울지역 특목고 입학생 숫자에서 양천구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 전국자치단체 중 최초로 장수문화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며, 테마가 있는 실버공원도 조성했다. 그러나 열악한 재정에 비해 주민들의 민원이 많아 애로사항이 적지않다고 전했다. 그는 “재정은 지난해 25개 구청중 18위에 불과하지만 전문직 종사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강남구보다 살기좋은 동네로 알려져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유달리 많다.”면서 “그러나 주민들의 민원은 결국 구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된다.”고 강조했다. ●추진력 겸비한 젊은 구청장 젊은 구청장인 만큼 감각도 젊다. 구청장으로서는 드물게 개인 홈페이지(www.powerchoo.com)를 직접 운영한다. 네티즌들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다. 그는 “올해는 컴퓨터를 완벽하게 배워 예쁘고 다양하게 홈페이지를 꾸며보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마련한 20대 대표사업도 젊은 감각이 빛난다. 낙후된 신월동 지역의 발전을 위해 신월·신정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고, 교육도시답게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유치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대중교통 수단이 없는 남부순환도로 주민들의 교통불편 해소를 위해 신월∼신정∼목동∼당산간 경전철 사업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는 “구청장은 구민을 편안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도록 열심히 일하는 공복(公僕)”이라면서 “공복답게 올해도 구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55년 충남 보령 ▲학력 서울공고, 홍익대 전기공학과, 한양대 행정대학원(박사과정) ▲약력 서울시의회 사무처 전문의원(4급), 국회 정책연구위원(2급), 한나라당 부대변인, 홍익대 총동문회 부회장, 한나라당 양천을지구당 상임부위원장, 가톨릭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제7회 지방자치대상 복지대상, 대한민국 고객만족경영대상 최우수상(CS부문), 자랑스런 향토인상 ▲가족 한정순씨와 1남 2녀 ▲기호음식 김치찌개 ▲주량 마시지 않음 ▲좌우명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 ▲애창곡 유행가
  • 日새역모 회장·부회장 해임

    |도쿄 이춘규특파원|역사왜곡으로 비판받은 후소샤판 교과서를 간행하는 일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지난해 저조한 채택률 여파로 갈등을 겪던 끝에 지도부가 대부분 교체되는 등 심각한 내분사태를 겪고 있다. 1일 새역모와 후소샤교과서 채택 저지운동을 벌인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새역모는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 야기 슈지(43) 회장과 후지오카 노부카스(62) 부회장, 미야자키(56) 사무국장의 해임안을 가결했다. 새역모는 당초 이들이 사임했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이날 회장 해임안에 대해선 찬성 6, 반대 5, 기권 3명 등 박빙의 표결전이 전개됐다. 이에 앞서 1월17일 이사회에서는 명예회장(니시오 초대회장)이 사임했었다. 야기 회장이 미야자키 사무국장과 함께 지난해 12월 중국을 방문, 현지 지식인 그룹과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토론을 벌였다가 뒤늦게 이러한 사실이 월간지에 보도된 사건이 해임 사태의 빌미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지난해 후소샤판의 채택률이 저조했던 것을 놓고 회장과 일부 부회장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결국 지도부의 해임을 가져왔다는 평이다. 후소샤판 교과서 채택저지 운동의 핵심 다와라 요시후미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21’ 사무국장은 “새역모가 대혼란을 통해 활동이 크게 후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와해될 가능성까지 있다.”고 주장했다. 새역모가 내분을 겪는 것에 대해 다와라 국장은 “지난해 중학교 역사교과서 채택 때 ‘10% 이상은 확실하다.’고 새역모는 주장했었다.”면서 “그러나 참패(실제 채택률 0.39%)한 것에 대해 책임 소재가 추궁되면서 내분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후임 회장에는 가와사키중공업에서 20년간을 근무한 뒤 BMW 도쿄지사장 등을 지낸 다네가지마 오사무(71)씨가 선출됐다. 그는 역사·교육전문가는 아니고, 초대 니시오 전 회장과 가까운 사이다. 따라서 그의 회장 선출에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부회장, 사무국장은 공석이다.taein@seoul.co.kr
  • 盧대통령 “日, 1년간 달라진게 없다”

    盧대통령 “日, 1년간 달라진게 없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서울 박홍기기자|노무현 대통령은 1일 제87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일본은) 먼저 인류의 양심과 도리에 맞게 행동해 국제 사회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일본은 지난 1년 동안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지난해 3·1절에 이어 일본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 아직도 일본이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또다시 패권의 길로 나아갈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차대전 후 60년 동안 일본이 걸어온 길을 잘 보고 앞으로도 한·일 우호를 위해 노력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헌법개정 움직임을 비판한 노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일·한 우호론자”라며 이렇게 반박했다. 일본정부 대변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도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에게도 일본이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지켜 세계에 평화를 확립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일본은 이미 사과했다. 우리는 거듭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사과에 대한 합당한 실천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에 사과에 따른 책임있는 실천만이 꼬인 한·일관계를 푸는 열쇠임을 역설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주변국이 갖고 있는 의혹은 근거가 없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의심을 살 우려가 있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며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등 ‘일련의 망동 및 망언’을 비판했다. 또 “일본이 ‘보통국가’, 나아가 ‘세계의 지도적 국가’가 되려면 법을 바꾸고 군비를 강화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웃 나라에 대해 잘못 쓰인 역사를 바로잡자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도 잘못 쓰인 곳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진행중인 과거사 정리과정은 이러한 관점을 고려해 진행돼야 한다.”며 과거사 정리 작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한편 시민·학생을 비롯, 각계 인사 3000여명이 참석한 기념식에서는 이화여고 합창단이 80년대 운동권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행사곡으로 불렀다. hkpark@seoul.co.kr
  • 북관대첩비 100년만의 귀향

    북관대첩비 100년만의 귀향

    1905년 러·일 전쟁 때 일본에 반출됐다가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임진왜란 승전기념비인 북관대첩비가 3·1절을 맞아 원소재지인 북한으로 인도됐다. 북관대첩비환수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유홍준 문화재청장)는 북한 북관대첩비되찾기대책위원회(위원장 김석환)와 함께 1일 오전 11시 개성 성균관 명륜당 앞에서 ‘북관대첩비 인도·인수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양측 위원회 및 관련 문중회원, 한·일불교복지협회, 조선불교도연맹 등 남북한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남북 공동사회로 북관대첩비 환수추진 관련 경과보고, 북측 대표 김석환 위원장의 환영사, 김원웅 의원의 인사말, 유홍준 청장의 환송사, 한·일불교복지협회장 초산 스님의 축사에 이어 인수·인도에 대한 서명식 순으로 진행됐다. 김석환 위원장은 “북관대첩비 반환이 우리 민족의 우수한 역사문화 전통과 애국정신을 되살리고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면서 “앞으로 남북이 함께 문화유산을 보존·계승하고 일본에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되찾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김원웅 의원은 “북관대첩비의 환수는 민족사의 수모를 씻는 상징”이라면서 “일본이 약탈한 문화재들을 돌려받기 위해 북·일 수교협상 과정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홍준 청장은 “이번 일은 남북 민간이 주축이 된 ‘문화의병운동’의 의미가 있다.”면서 “남북한 문화재 교류ㆍ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문화재 당국 최고책임자 회담을 제의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측 대표자들은 일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및 역사왜곡, 문화재 약탈 등을 비판하는 ‘반일성명’을 발표, 눈길을 끌었다. 식이 끝난 뒤 북관대첩비는 참석자들의 배웅 속에 원소재지인 함경북도 김책(옛 이름 길주)으로 떠났다. 남북 관계자들은 함께 기념촬영을 한 뒤 성균관과 선죽교, 표충비 등 개성 시내 주요 역사 유적지를 함께 둘러봤다. 북관대첩비는 이날 오전 7시쯤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을 떠나 오전 10시 개성에 도착했다. 앞서 지난달 28일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파해 북관대첩비에 기록된 정문부 장군 묘소앞 경기도 의정부 충덕사에서 ‘북관대첩비 충의공 제향의식’이 열렸다. 일본군에 의해 강탈돼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됐다가 지난해 10월20일 고국으로 돌아온 북관대첩비는 보존처리를 거쳐 일반에 공개된 뒤 고궁박물관 앞뜰에 전시돼 왔다. 앞으로 북측은 북관대첩비를 원위치인 함경북도 김책시 임명리 언덕에 복원하게 되며, 남북은 복원 이후 남측 관계자들이 참관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개성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구속기준 엄격·구체화 해야”

    구속기준을 놓고 법원과 검찰의 논쟁이 ‘2라운드’를 맞았다.27일 검찰정책자문위원회가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서 마련한 ‘바람직한 구속기준 모색을 위한 공청회’에서 검찰은 지난달 3일 서울중앙지법이 발표한 ‘구속기준’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검찰은 이날 공청회 등을 거쳐 5월 이전에 검찰 자체 구속기준을 내놓을 방침이다. 지난달 3일 서울중앙지법은 실형선고가 예상되는 경우에만 구속하고, 형사정책적 고려에 의한 구속을 줄이고, 방어권 보장을 위한 불구속 확대 등의 구속기준을 발표했었다. 이날 검찰측 주제발표자로 나선 석동현 천안지청장은 법원 기준에 대해 ‘유전 불구속, 무전 구속’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최근 불구속 수사 원칙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구속은 인권침해, 공권력 남용인 것처럼 오해하는 생각이 확산됐다.”면서 “하지만 동시에 구속되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감정도 존재하고 있어 이런 모순되는 감정 속에서 구속제도가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도 구속기준 구체화를 요구했다. 주제발표자로 나온 서울대 한인섭 교수는 조직폭력사건처럼 피해자 등을 협박·보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도 구속기준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다. 한국피해자학회 회장인 한양대 오영근 교수도 구속기준을 좀 더 구체화할 것을 주문했다. 최근 사회문제가 된 성폭력 범죄의 구속문제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불구속 확대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복·협박·역고소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신중히 재고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피의자들은 성폭력 범죄가 친고죄라는 점을 악용, 피해자들에게 협박 수준의 합의와 고소취하를 강요한다.”고 밝혔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만화에 빠진 박경리

    만화에 빠진 박경리

    소설가 박경리씨는 만화라는 장르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게다가 ‘토지’가 만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더욱 그랬을 법하다. 처음에는 시험 제본된 만화 ‘토지’의 첫 권도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책장을 조금씩 뒤적이다가 “만화를 이렇게 잘 만들 줄 몰랐다. 아주 잘 만들었다.”고 만족해하며 “언제 나오냐.”고 채근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박씨의 머리말은 그렇게 해서 7개월 전에 받을 수 있었다. 한 컷 한 컷에 스며든 오세영(52) 화백의 땀방울을 느꼈다는 이야기일 터이다. 오는 4월 만화 ‘토지’ 1부(전 7권·마로니에북스 펴냄)가 나온다. 어린 시절 만화보다는 소설책과 뒹굴었던 오 화백에게 2년이 넘는 산고를 거친 이번 작업은 운명일 수밖에 없다. 버터 냄새도 없고 일본색도 풍기지 않는, 뚝배기에 담긴 구수한 된장찌개 같은 작품을 선보이던 그가 ‘토지’를 만화로 옮기는 작업을 떠안은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부자의 그림일기’,‘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 등이 지난해 미국에 이어 올해에는 프랑스에서도 출간될 예정으로 그의 붓 터치는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만화 ‘토지’ 또한 유럽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경기도 안성 시내에서 차로 20분가량 걸리는 양성면 미산2리 쌍령산 기슭 아래 작업실에서 만난 오 화백은 “그동안 ‘토지’가 다른 영상 매체를 통해 다뤄지며 예쁘게 포장되고 왜곡됐던 우리 조상의 모습을 바로잡는 데 작업의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해방 전후 시대의 옷이나 건물, 풍광 등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제대로 전하고자 한다.”는 그는 원작의 맛을 그림으로 살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도 철저한 고증 작업을 통해서야 뒷받침될 수 있다는 지론의 소유자이다. 그의 목표는 일제강점기나 산업 근대화를 이루기 전 우리 민중들의 모습과 사회상을 후대들에게 남겨주는 것이다. 열여덟에 만화가 오명천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갔으나 배우는 그림체에 얽매이지 않고 크로키와 데생 공부에 열중했다. 당시로서는 거들떠보지 않던 미술 해부학을 홀로 공부하며 자신만의 ‘한국적인’ 그림체를 만들어 갔다. 우리나라의 옛 건물 공부에도 열중해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 됐다.‘토지’를 시대에 걸맞게 제대로 그리겠다는 자신감은 여기서 나온다. 모두 16권으로 이뤄질 만화 ‘토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 붓을 놓으려면 2년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오 화백은 “진화하는 예술 장르인 만화를 아직도 오락물로만 생각하는 시선들이 많다.”면서 “힘든 작업이지만 만화의 예술성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자신했다. “한번 만나 보자.”는 박경리씨의 연락이 있었으나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 오 화백은 1부를 끝낸 뒤 책을 들고 박씨가 있는 원주를 찾을 생각이다. 안성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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