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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벌이 경제’ 인간관과 단절하라

    ‘경제학’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 효용성을 극대화할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통한다. 주류 경제학은 최소의 비용과 최대의 이윤 창출을 겨냥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른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시화되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해 주류 경제학은 또렷한 대책을 내지 못한 채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 원인과 대안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많은 학자들은 주류 경제학의 모순과 폐해를 무한경쟁과 그로 인한 왜곡된 삶의 구조로 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위기 상황에서 세상을 지배해온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논리에서 외면당해온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과 가치에 눈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그 흐름 중 하나. 인간 삶과 사회구조를 지배하는 경제의 근저인 상품화와 화폐 지상주의에서 눈길을 돌려보자는 ‘근본으로의 회귀’이다.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지식의날개 펴냄)는 그런 ‘근본으로의 회귀’에 줄곧 목소리를 높여 온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이 낸 책이다. 상품화와 화폐경제에 매몰된 경제활동을 ‘돈벌이 경제’라고 부르는 홍 소장의 지론이 잘 드러나는 경제학 이론서다. 책 제목이 보여 주는 대로 이제 경제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경제의 본질과 방향을 제시해 온 선각자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소신이 또렷하다.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마련인 ‘돈이면 다 된다.’는 인식의 한계와 그 한계를 극복하자는 새 경제 논리가 비교적 쉬운 이야기들로 풀어진다. 저자는 ‘살림/살이’야말로 원래의 경제를 가장 잘 정의한 말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한자어 ‘경제’가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고난에서 구제한다는 ‘경세제민’에서 유래했고 영어 ‘이코노미’(economy)가 가정 관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비롯됐다고 할 때 결국 경제는 남을 살리고 나도 살아야 하는 ‘살림/살이’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우리 ‘홍익인간’도 같은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원래의 경제 개념을 살리고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인간 존재의 전면적 발전’에서 찾자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것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좋은 삶인가? 나는 정말 ‘자산’으로 태어났고 그것으로서의 가치를 불리고 또 불리는 것이 정말로 내가 이 녹색별 지구에서 태어난 이유와 목적인 것일까?” 저자는 그 대안에의 눈뜸을 현실에 대한 케케묵은 비판이나 욕망에 대한 부정으로 보지 말라고 한다. 대신 이렇게 주장한다. “사람을 쾌락과 고통의 계산기이자 선택자로 상정하는 돈벌이 경제의 인간관과 단절하고 진정 개인적·집단적 차원에서 인간다운 삶을 가능케 하도록 산업사회를 재조직하게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각성이다.” 1만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고객은 봉” 골드만삭스 임원의 고백

    “골드만삭스가 고객을 봉으로 보고 있다.” 한 임원이 내던진 격정적 공개 사직서 때문에 세계적 투자회사 골드만삭스가 또다시 홍역을 치르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월가 반대 시위 때 비판 세력에게서 “고객 돈을 빨아먹는 흡혈귀”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다. 임원의 내부 비판 이후 당장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후폭풍이 일고 있다. 소강 상태인 반(反)월가 시위가 재점화될지 주목된다. ●“고객 도울 고민 대신 돈 빼앗을 궁리만” 영국 런던에서 근무하는 골드만삭스의 그레그 스미스 전무는 지난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기명 기고문을 통해 “이 기업의 조직문화는 너무 독성이 강하고 파괴적”이라며 12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식 파생상품 사업부의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 책임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회사 내에서는 고객을 ‘꼭두각시 인형’(muppet)으로 부른다며 경영진의 고객 기만 행위들을 폭로했다. 또 “파생상품 판매회의에서 고객을 도울 방법에 대해서는 단 1분도 논의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돈을 빼앗아 올지에만 관심을 뒀다.”고 쏘아붙였다. 스미스는 골드만삭스가 원래 타락한 회사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팀워크와 성실성, 겸손을 중시하고 항상 고객 편에서 옳은 일을 하는 것이 기업 문화의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회사 내 부도덕한 문화를 만든 장본인으로 로이드 블랭크페인 최고경영자(CEO)와 게리 콘 사장을 지목했다. “이들은 골드만삭스의 역사에서 조직문화를 왜곡시킨 주역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악평했다. ●폭로 후 주가 3.35% 큰 폭 하락 골드만삭스 측은 임원의 내부 비판에 발끈하며 반박하고 나섰다. 대변인은 “스미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고객이 성공해야만 회사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블룸버그도 논평을 통해 “인류애를 위해 헌신하는 인생을 살려면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면 안 된다. 이 회사는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라면서 “골드만삭스와 다른 투자회사들은 우리 경제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감쌌다.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이날 3.35% 떨어진 채 마감됐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남양유업·동서식품 ‘이전투구’

    커피믹스를 두고 사사건건 충돌해 온 동서식품과 남양유업이 또다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남양유업은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동서식품이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식품 첨가물인 카제인나트륨을 무지방 우유로 대체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카제인 성분이 함유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남양유업에 따르면 동서식품이 지난달 출시한 맥심 화이트 골드의 ‘식품(식품 첨가물) 품목제조보고서’상에 기재된 제품 정보에는 카제인 성분이 1.39% 함유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화이트 골드의 제품 포장에는 이러한 성분이 표시돼 있지 않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동서식품이 식품위생법 표시 기준상 크리머와 같은 복합 원재료의 경우 사용 원료 중 상위 다섯 가지만을 표기하면 되는 점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소비자를 기만한 행위”라면서 “관계 당국에 이러한 사실을 신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품목제조보고서를 동서식품의 내부 직원을 통해 입수했다고 덧붙였다. 동서식품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카제인을 소량 넣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카제인을 대체해 무지방 우유만을 넣었다고 말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했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커피의 풍미를 향상시키고 용해성을 높이기 위해 천연 카제인을 사용했다.”면서 “무지방 우유와 카제인을 적절히 배합하는 것도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동서식품은 오히려 남양유업이 지난 1년간 소비자를 기만해 왔다고 주장했다. 동서식품에 따르면 남양유업이 선전한 무지방 우유 커피믹스는 커피 크리머 전체가 무지방 우유로 대체된 것이 아니고 약 1.5% 미만으로 극히 미량의 무지방 우유가 크리머에 함유된 것이란 설명이다. 또한 남양유업의 부도덕성을 강하게 비난했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품목제조보고서는 기업의 기밀로, 이를 입수해 공개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자 불법”이라며 “사실을 왜곡하는 등의 행위를 지속하면 법적 조처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기업의 다툼은 2010년 12월 남양유업이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를 출시하고 커피믹스 시장에 뛰어들면서 시작됐다. 남양유업은 카제인나트륨을 뺀 크리머가 들어간 커피믹스로 돌풍을 일으켰다. 업계 1위 동서식품은 급기야 지난달 무지방 우유가 들어간 맥심 화이트 골드를 출시하고 맞대응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맥심 화이트 골드의 반응이 좋아 남양유업이 위기를 느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 대형마트에 따르면 동서식품이 신제품을 내놓은 이후 남양유업의 커피믹스 판매량이 4%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윤용로 외환은행장 첫 간담회 “빼앗긴 고객 되찾아 글로벌뱅크 육성”

    윤용로 외환은행장 첫 간담회 “빼앗긴 고객 되찾아 글로벌뱅크 육성”

    윤용로 외환은행장은 15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론스타 시절) 빼앗긴 고객을 되찾아 글로벌 뱅크로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외국환과 기업금융에 강한 외환은행의 특성을 살려 영업 기반을 회복하고 중국과 동남아, 미국과 남아메리카 등으로 진출을 확대해 앞으로 해외 지점의 순이익을 은행 전체 이익의 15%(현재 1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직전 대주주인 론스타가 왜곡시킨 성과 보상 체계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윤 행장은 “론스타가 사모펀드이다 보니 고배당으로 국부 유출 비판을 받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비정기적으로 보너스를 지급했다.”면서 “이런 관행과 임직원에게 주는 스톡옵션은 이미 없앴다.”고 설명했다. 인수·합병(M&A)의 대가로 직원들에게 고액의 보너스를 줬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합병 성과급은 기본급의 200%만 지급하기로 노동조합과 합의했다.”고 해명했다. 윤 행장은 “M&A 이후 직원들에게 위로금 차원의 성과급을 주는 것은 국내외 시장의 룰(규칙)”이라면서 “그 외 보너스 규모는 앞으로 성과를 얼마큼 내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사설] 역사 왜곡한 새누리 후보 공천취소는 당연

    새누리당의 공천작업이 ‘역사 왜곡’의 덫에 걸렸다. 새누리당은 어제 서울 강남을과 강남갑의 이영조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와 박상일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의 후보 공천을 전격 취소했다. 두 후보의 역사관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다. 우리는 새누리당의 조치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본다. 이 후보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시절인 201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민중반란으로, 제주 4·3항쟁을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한 폭동이라고 언급해 물의를 빚었다. 또 박 후보는 최근 펴낸 책에서 독립군을 “소규모 테러단체 수준”이라고 적는가 하면, 한·일병탄조약에 대해 “한국이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고 써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역사를 보는 개인의 입장을 어찌할 도리는 없지만 이처럼 자의적 역사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들을 공직 후보로 내세운 것은 애초 국민의 정서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5·18은 1988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다. 이어 국가기념일로 제정돼 범국가적으로 기념하고 있다. 4·3항쟁 또한 1999년 특별법이 제정된 뒤 진상조사를 통해 당시 사망자들이 희생자로 자리매김됐다. ‘민중반란’ ‘폭동’으로 매도할 일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강조하며 당명을 바꾸고 정강정책도 뜯어 고쳤다. 새 인물이 필요하다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했다. 그 결과가 고작 이 정도인가. 이 후보의 문제가 불거지자 정홍원 공천위원장은 “지금껏 나온 사안에 대해서는 검토했다.”고 말했다. 너무 안이한 현실인식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미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후보 공천 과정에서 역사 인식이라는 중대 사안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않고 당장 선거에 미칠 영향만 따진 것 자체가 국민을 너무 가볍게 본 것이다. 아직도 ‘강남 프리미엄’을 기대하며 누구를 공천하든 당선될 것이라는 오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정당에 미래는 없다. 새누리당은 쇄신과 개혁의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 경연희 “노정연씨 100만달러 받은적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딸 정연(37)씨에게서 지난 2009년 1월 아파트 구입 잔금 명목으로 100만 달러(약 13억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 시민권자 경연희(43)씨는 “정연씨에게 돈을 요구하지도 받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일 미국 뉴저지의 한 사무실에서 경씨가 대리인격으로 내세운 친구 A씨, B씨와의 인터뷰에서 경씨 측이 이같이 주장했다고 13일 보도했다. 정연씨의 ‘주택 구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경씨가 간접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A, B씨는 “경씨가 2007년 박연차씨 등으로부터 45만 달러를 받은 이후 그 빌라와 관련해 정연씨와 어떤 금전 거래도 없었다.”면서 “경씨는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2008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정연씨와 전화통화는 물론 어떤 연락도 주고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제보자인 전직 카지노 매니저 이달호(45)씨는 “폭스우즈 카지노 호텔 특실에서 경씨가 정연씨에게 몇 차례 전화를 걸어 (아파트 잔금) 100만 달러를 보내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해 왔다. A, B씨는 “이씨 주장은 개인적인 원한과 감정에 의한 폭로성이고 사실 관계가 많이 왜곡됐다.”고 반박했다. 오마이뉴스는 검찰이 최근 경씨에게 전화해 “13일까지 출석하지 않으면 미국에 수사 공조를 요청하겠다.”고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특정 날짜를 구체적으로 정해 소환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미국과의 수사 공조 등 다양한 압박 수단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백암은 동양평화와 공존의 세상 꿈꿔 ‘국가’·‘민족’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것”

    “백암은 동양평화와 공존의 세상 꿈꿔 ‘국가’·‘민족’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것”

    “지구촌에 여전히 나라 간 분쟁과 종교·인종·자원 전쟁이 끊이지 않은 상황에서 강자의 수탈과 침략에 맞서 약자의 평화를 향한 저항을 밝히고, 공생의 의미를 되새긴 한국통사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한국의 고전일 수밖에 없다.” “백암 박은식을 민족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여론이 최근 형성되고 있는데, 1915년 쓴 ‘한국통사’(韓國痛史)를 제대로 읽어 보면 양명학자인 박은식은 동양평화, 약자나 강자가 공존하는 세상을 꿈꿔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총서’ 시리즈로 나온 ‘한국통사-국망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거울’(아카넷 펴냄)을 번역하고 해제를 붙인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12일 이렇게 논평했다. 서울대 사범대 연구실에 만난 김 교수는 “냉전의 시대가 끝난 지구촌에 여전히 나라 간 분쟁과 종교·인종·자원 전쟁이 끊이지 않은 상황에서 강자의 수탈과 침략에 맞서 약자의 평화를 향한 저항을 밝히고, 공생의 의미를 되새긴 한국통사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한국의 고전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국가’가 살아있는 현실 인식을 최근 일본의 진보학자들 사이에서 민족주의가 사실상 국가 간 분쟁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따라서 이를 해체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적지 않지만, 21세기에 ‘국민국가’라는 단위가 엄존하고 해체되지 않는 현실도 인식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그는 “유럽은 절대왕정이나 근대국가 형성기에 ‘국민’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발명해 나갔지만 통일신라, 고려, 조선 등 중앙집권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했던 한반도에서 ‘국민’이나 ‘민족’은 만들어진 전통이 아니었다.”면서 “박은식이나 신채호는 근대적 방식으로 역사 서술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반도에 이미 존재하는 민족이나 국민을 발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족이라 칭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민의, 민인, 인민 등 다양한 명칭과 민족의 실체가 있었다.”면서 “고려 태종의 유훈인 훈요십조에서도 우리는 중국과 다르다고 했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도 우리는 중국과 다르다고 했던 것에서 우리의 실체를 찾아 나갈 수 있다.”고 했다. 한국통사의 중요성을 김 교수는 몇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1910년대의 아픈 현실 속에서 당대사를 어떻게 쓸까를 고민한 최초의 역사 개설서라는 점이다. ●‘생존’을 고민한 최초의 근대적 역사서 지금의 시선으론 근대사지만, 당시에는 현대사였을 그 역사를 편년체(일기체)나 왕과 영웅을 다룬 기전체가 아닌 인과관계를 가진 근대적 역사 서술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후 한국사 서술의 틀은 박은식류를 따르게 됐다고 했다. 둘째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파리 평화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 독립을 위해 외교 활동을 시도하는데, 이때 주요하게 인용된 자료가 한국통사다. 1905년 을사늑약 등 일제가 대한제국을 얼마나 부당하게 강점했는지를 알리는 사료였던 것이다. 현재는 황현의 ‘매천야록’이나 정교의 ‘대한계년사’ 등이 구한말을 증언하는 자료로 많이 인용되지만, 당시 각 가문에만 존재했을 뿐 공개된 자료가 아니었다. 셋째, 한국통사가 1915년 상하이에서 출판되자 일제는 1910년대까지의 역사 무시라는 소극적 전략에서 역사 왜곡이란 적극적 전략으로 전환했다. 일제는 한국인이 한국통사의 영향을 받아 항일투쟁에 참여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고,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중국과 러시아, 미국 등에서 한국인이 이 책을 탐독하거나 전해 들었다. 1917년에 이 책은 한글로 번역 간행돼 재미 한인 학생들의 교재로 사용됐다. 결국 일제는 1916년 1월 조선사편수회라는 어용학회를 만들어 식민사관 형성에 열을 올렸다. 조선반도사 편찬 취지문에서 일제는 “재외 조선인의 저서 같은 것이 지상을 규명하지 않고, 함부로 망설을 드러내…(중략)…인심을 현혹시키는 해독 또한 참으로 크다.”이라며 한국통사를 비난했다. 조선사편수회는 1922년 12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찬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고, 식민사관에 바탕한 ‘조선사’와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조선사료집진’(朝鮮史料集眞)을 간행했다. ●정신이 멸하지 않으면 형체는 부활 김 교수는 국혼이 살아 있으면 된다는 박은식의 한국통사 서문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박은식은 서문에서 “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라를 멸할 수는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나라의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이것이 통사(痛史)를 짓는 까닭이다. 정신이 보존되어 멸하지 아니하면 형체는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사설] 금통위원 ‘무더기 교체’ 후유증 우려된다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7명 가운데 무려 4명이 한꺼번에 바뀌고, 1명이 새로 임명되는 사태가 예견되면서 통화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교체는 한국은행 사상 처음일 뿐 아니라 주요국 중앙은행에서도 유례를 찾아 보기 어렵다. 이는 당연직 위원인 이주열 한은 부총재와 또 다른 3명의 위원이 각각 다음 달 7일과 20일에 임기가 끝나는 데다 2008년 4월 물러난 박봉흠 위원의 후임자를 2년 가까이 뽑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법적 구성인원 7명인 금통위가 6명으로 운영되면서 통화정책 결정과정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경기 위축과 물가불안이 점점 커져 가는 올해는 금리 등 통화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공석인 금통위원 자리를 서둘러 메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체대상 위원 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방향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하면서도 당연한 것은 통화정책에 관한 전문성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물경제와 금융을 잘 이해하는 인사를 고루 기용하면 무더기 교체 후유증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이른바 ‘권력 실세’를 업은, 정치편향적 인사들의 각축이 치열하다는 말이 무성한 것을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나라의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금통위원 자리를 정치권이 좌지우지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통화정책에 끼어들면 나라 경제가 왜곡될 뿐 아니라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될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 탓에 전문성 위주의 선임이 쉽지 않다면, 기존 위원을 순차적으로 바꾸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금통위원 임기는 미국이 14년, 독일은 7년, 일본은 5년이며, 교차 선임으로 연속성과 안정성을 도모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안철수 “정권따라 보도방침 바뀌어선 안돼”

    안철수 “정권따라 보도방침 바뀌어선 안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문화방송(MBC)·한국방송(KBS)·와이티엔(YTN) 등 방송 3사 노동조합의 동시 파업에 지지 의사를 보내고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 문제를 비판했다고 문화방송 노조가 12일 밝혔다. MBC 노조에 따르면 안 원장은 지난 9일 노조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은 본질적으로 진실을 얘기해야 하는 숭고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며 “진실을 억압하려는 외부의 시도는 있어서도 안 되고 차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바뀌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방법, 모두의 미래를 위해 계속 사명감을 갖고 진실을 보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우리 모두의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안 원장은 또 “이젠 왜곡된 보도를 하면 스스로 추락하는 것밖에 안 된다.”며 “시민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자기 의사를 개진하는 게 우리 모두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며 시민의 역할에 기대를 걸었다. 안 원장은 특히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과 관련해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김 사장처럼 2년에 7억원 정도 쓰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나는) 마사지 자체를 싫어한다.”며 일본의 마사지업소에서 법인카드를 썼던 김 사장을 직접 비꼬았다. 안 원장의 인터뷰 동영상은 1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리는 방송 3사의 파업 콘서트 ‘방송 낙하산 공동 퇴진 축하쇼’에서 공개된다. 한편 MBC ‘PD수첩’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편 방송 보류를 둘러싸고 노조와 사측의 갈등이 불거졌다. 제작진은 캐나다, 멕시코 등을 사례로 한·미 FTA의 영향을 진단하는 내용으로 지난달 28일 방송을 준비했으나 정치 쟁점화할 수 있다는 사측의 판단에 따라 불방됐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 파업 때도 ‘PD수첩’은 일부 방송된 사례가 있고, 파업 중이라도 비노조원의 프로그램 제작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불합리한 조치”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이진숙 홍보국장은 “정치적 논란만 생산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총선 후 방송하는 게 어떻겠냐는 뜻을 제작진에게 알렸던 것”이라면서 “‘PD수첩’이 정상 방송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미 FTA편만 방송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사설] 특전사령관이 여군과 부적절한 관계라니…

    특전사령관이 사단장 시절 예하부대 여군 부사관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보직 해임됐다. 그는 여성 부사관이 자신과의 성관계 사실을 여군 고충상담을 통해 털어놓자 전역을 자원했다고 한다. 특전사는 특수전을 담당하는 육군의 최정예 부대로, 이달 26~27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경호·경비업무를 맡고 있다. 50여개국의 정상과 국제기구 대표의 신변 안전을 책임져야 할 지휘관이 성(性) 군기 위반이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옷을 벗게 됐다는 사실도 부끄럽지만 무엇보다도 군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국방을 책임진 핵심 군 지휘관의 의식이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는 자괴감에 국민들이 도리어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다. 군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온정주의와 솜방망이 처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지난해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성범죄로 입건된 장병 380여명 중 기소된 사람은 96명에 불과했다. 최근 5년간 군에서 발생한 여군 대상 성범죄 37건 가운데 18건이 불기소처분됐고, 6건이 공소기각됐다는 사실은 군대가 성범죄의 사각지대임을 방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특히 군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는 민간 영역의 성범죄와는 성격부터가 다르다. 상명하복이라는 엄격한 규율과 보안이라는 이유를 앞세워 사건 자체가 은폐되거나 왜곡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여성의 군 진출 증가와 더불어 군이 성폭력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누차 제기돼 왔다. 군이 여군을 상대로 고충상담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게다. 그러나 형식적인 상담에 그치거나 덮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 군 기강 확립에는 상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특전사령관의 성 추문을 계기로 제도상 미비점은 없는지 다시 점검하기 바란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 연개소문과 김춘추

    [선택! 역사를 갈랐다] (3) 연개소문과 김춘추

    642년 초겨울 신라의 김춘추가 살을 에는 삭풍을 뚫고 고구려 평양성을 방문하여 막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을 만났다. 김춘추는 ‘양국의 오랜 다툼을 중단하자.’고 제안하면서 백제 공격을 위한 군사 지원을 요청한다. 이에 연개소문은 ‘한강유역을 돌려주면 구원병을 보내주겠다.’며 매몰차게 대답했다. 김춘추가 ‘신하의 몸이라 영토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결정할 수 없다.’며 사실상 거부의사를 밝히자, 연개소문은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이 엇갈린 선택으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그 뒤 두 사람은 끊임없이 엇갈린 선택을 하면서 고구려와 신라의 운명마저 엇갈리게 만들었다. 양자에 대한 후세의 평가도 극명하게 대조되었다. 유교 명분론이 지배하던 고려와 조선시대, 연개소문이 임금을 죽이고 대국의 명을 거역해 나라를 망친 악인으로 지목된 반면, 김춘추는 사대의 예를 다하고 대국의 위엄을 빌려 삼국을 통일한 성군으로 칭송받았다. 이에 비해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해야 했던 20세기 전반, 연개소문은 자주적 대외투쟁가로, 김춘추는 외세의존적 음모가로 뒤바뀐 평가를 받았다. 그럼 유교명분론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고, 근대 민족국가의 국경선마저 낮아지고 있는 오늘, 두 사람의 선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과연 그들의 삶과 선택으로부터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할 지혜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신흥귀족의 후예 vs 방계 왕손 김춘추는 602년에 태어났다. 정복군주 진흥왕을 증조부로 두었지만, 할아버지인 진지왕이 폐위된 다음 그의 집안은 진골귀족들의 배척을 받았다. 다만 김춘추가 정치활동을 개시할 무렵에는 그의 집안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50여년간 재위하면서 왕권을 다진 진평왕이 진골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같은 혈족인 그의 집안을 중용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 용춘이 진평왕의 둘째 딸과 결혼하고, 왕실업무를 총괄하며 왕족의 위상을 조금씩 회복했다. 이와 더불어 금관가야의 후예인 김유신 집안과도 각별한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진평왕을 이어 선덕여왕이 즉위함에 따라 왕권에 제동을 걸려는 진골귀족의 움직임이 재연되었다. 이런 가운데 642년 여름 김춘추는 일생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사위의 잘못으로 인해 서방의 요충지인 대야성(경남 합천)이 백제에 함락당한 것이다. 김춘추는 패전의 책임을 떠안아야 할 위기에 몰렸다. 신라로서도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춘추의 평양행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결행되었다. 한편, 연개소문 집안은 대대로 병권을 장악하고 국권을 좌우하던 유력한 귀족세력이었다. 다만 조상의 연원을 시조 주몽과의 관계가 아니라 물에서 탄생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신흥귀족으로 파악된다. 이 무렵, 고구려 정치체제를 보면, 왕권은 약화되고 최고위 귀족인 대대로(大對盧)가 실권을 행사하는 귀족연립체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唐)이 강온 양면전략을 구사함에 따라 귀족세력은 강온 양파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특히 640년 고창국을 멸망시킨 당이 압박을 가해오면서 귀족세력의 갈등은 더욱 고조되었다. 이때 영류왕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 귀족들이 연개소문을 장성 축조 책임자로 임명하여 중앙정계에서 축출하려고 모의했다. 642년 늦가을, 대동강 변에서 벌인 피의 만찬은 극단적 위기상황에 몰린 연개소문의 자구책이었다. 정치상황이 복잡했기 때문에 그의 쿠데타는 쉽게 성공할 수 있었지만, 쿠데타의 명분이나 권력기반은 미약했다. 연개소문으로서는 무언가 전리품이 필요한 시기에 김춘추가 평양성을 방문한 것이다. ●국가권력의 사유화 vs 정치제도의 개혁 642년 두 사람의 엇갈린 선택에는 개인의 정치적 이해가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김춘추가 방계 왕손으로서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사선을 넘었다면, 연개소문은 명분 없는 쿠데타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던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위기와 한계의 연원을 찾다 보면 양국의 유동적인 정치상황과 만나게 된다. 당시 양국의 귀족세력은 분열되어 있었고, 왕권도 약화되거나 많은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양국의 정치상황은 겉으로는 유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이한 역사시간 속을 걷고 있었다. 고구려가 중앙집권체제에서 귀족연립체제로 전환한 상황이라면, 신라는 중앙집권체제를 향해 도약하는 중이었다. 또한 두 사람의 정치적 입지에도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양자 모두 다수 귀족으로부터 배척받고 있었지만, 연개소문이 일반 귀족에 불과했던 반면 김춘추는 방계 왕손이지만 잠재적인 왕위 계승권자였다. 실제 연개소문은 왕족이 아닌 한계로 인해 왕위에 오를 수 없었다. 이에 연개소문은 보장왕을 옹립한 다음, 반대파 귀족세력을 제압하려다 여의치 않자 주로 사적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데 치중했다. 어린 자식에게 높은 관등을 수여하고 군사권을 부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로써 국가권력을 사유화하여 종신집권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귀족연립체제의 모순을 개혁하고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귀족연립체제의 모순은 오랫동안 잠복했다가 665년 그의 죽음과 함께 폭발했다. 한편, 김춘추는 647년 비담의 난을 평정하고 김유신과 함께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다. 그리고는 국정을 총괄하다가 진덕여왕 사후 귀족회의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연개소문과 달리 합법적 절차를 거쳐 최고 권력을 획득한 것이다. 또한 중앙집권체제를 향해 도약하던 역사적 상황을 활용해 당의 육전조직에 준하는 정치제도를 갖추고, 유교사상을 받아들여 새로운 시대정신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이처럼 양자는 동시대 인물이었지만 상이한 역사시간 속에서 살았고, 정치적 입지도 달랐다. 김춘추가 유리한 역사시간과 정치적 상황을 활용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획득하고 제도개혁에 주력한 반면, 연개소문은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국가권력의 사유화라는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러한 차이는 궁극적으로 대외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독자세력권 유지 vs 당(唐) 중심 국제질서의 활용 양국은 국제관계에서도 상이한 역사시간을 걷고 있었다. 5세기만 하더라도 고구려가 동북아 일대에 독자세력권을 구축한 반면, 신라는 고구려에 예속된 상태였다. 그런데 6세기 중반 신라의 한강유역 장악으로 양국 관계는 점차 대등한 양상으로 변모했다. 더욱이 중국대륙을 통일한 수와 당이 ‘일원적 국제질서’를 추구함에 따라 고구려는 이들과 맞서야 했던 반면, 신라는 고구려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수나 당이 추구하던 신국제질서가 양국에 정반대의 역사시간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물론 고구려가 당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고구려와 신라가 영원히 적으로 남아 있으란 법도 없었다. 가령 630년대 당이 대수(對隋) 전승기념비인 경관을 파괴하자, 고구려는 천리장성 축조로 맞서면서 세자를 파견하는 강온 양면책을 구사했다. 그리고 김춘추가 평양성을 방문했듯이 고구려의 대외전략에 따라 얼마든지 신라와 손을 맞잡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연개소문은 당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시도하면서도 신라에 대해서는 강경 자세를 취했다. 이는 하루빨리 전과를 올리려는 성급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선택의 화살은 이미 날아간 뒤였다. 당은 그의 불법적 쿠데타를 명분 삼아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 연개소문으로서도 대당(對唐) 강경책으로 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개소문은 입체적 군사방어체계 덕분에 당의 침공을 물리칠 수 있었지만,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648년 김춘추가 당으로 건너가 군사동맹을 체결한 것이다. 이로써 고구려는 남북에서 협공을 받는 상황으로 몰렸다. 연개소문이 다양한 방안을 강구했지만, 대세를 뒤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지만 신라라고 ‘중국만이 태양이다.’는 당의 대외정책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실제 당은 660년 백제 멸망 직후부터 신라를 병탄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이를 간파한 신라는 왜와의 적대관계를 개선하고 군사역량을 강화하는 등의 대비책을 세워 고구려 멸망 이후 전개된 나당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경쟁 vs 연대 이렇게 본다면 고구려 연개소문이 독자세력권을 고집하며 당에 맞서다가 멸망한 반면, 신라 김춘추는 당 중심 국제질서를 활용해 삼국통일을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신라가 고구려 영역의 일부만 관할한 데서 보듯이 삼국통일은 명확한 한계를 띠었다. 김춘추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지 모르지만, 긴 역사적 흐름에서는 역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동족의식이 희박했고 또 정치적 이해관계도 달랐던 연개소문과 김춘추가 상대방을 생존경쟁의 대상으로만 인식한 결과이다. 바로 이 점이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국제정세에 대처할 지혜를 얻기 위해 곱씹어 보아야 할 대목이다. 남북한이 불필요한 경쟁을 자제하고 진정한 연대의 대상으로 인식할 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남북한에 의해 형성된 구심력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나갈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진정한 대응책도 바로 이 속에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642년 초겨울 연개소문이 김춘추의 손을 맞잡는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이 그렇게 헛된 망상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호규(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 “국악은 한민족 묶는 원형질, 기틀 다지며 활로 모색할 것”

    “국악은 한민족 묶는 원형질, 기틀 다지며 활로 모색할 것”

    “한심하게도 요즘 우리는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일제강점기 사상이 녹아들어 우리 음악의 뿌리를 뒤흔들고, 이제는 학교 교육에서도 국악을 홀대하고 있지요. 임기 2년 동안 국립국악원에서 우리 음악이 무엇인지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취임 100일을 맞아 8일 기자들과 만난 이동복(63) 국립국악원장은 국악이 처한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 사람들도 위대한 수령 어쩌고 하면서도 노래는 우리처럼 아리랑을 부른다. 사상과 이념이 달라도 한민족을 묶어 주는 원형질이 음악”이라고 강조한 이 원장은 “그 정체성을 확보하는 근원을 살려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국악의 활로를 모색하겠다.”고 역설했다. ●“빚을 갚는 심정으로 30년 만에 돌아와” 1970년대 말 국악원에서 대금 연주자로 활동한 이 원장은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국악원에 다시 오게 됐다.”고 말했다. 1962년부터 대금을 배웠다는 그는 가난 때문에 진학이 어려웠지만 국립국악사양성소(현 국악중·고등학교)에서 국비 장학금을 받아 배움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뒤 국악원에 들어갔다가 대학으로 적을 옮겼고, 30년 만에 돌아왔다. 이 원장은 “국립국악원은 그 사이 거대한 조직이 됐는데, 정작 국가 대표 브랜드가 돼야 할 국악은 정체돼 있는 듯하다.”면서 국악을 견고하게 다지기 위한 구상을 하나하나 털어놓았다.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역시 공연이다. “국립국악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문묘제례악’은 중국에서도 배워 갈 정도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면서 “수준 높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당장 오는 27~28일 정악단 공연을 연다. 풍류음악의 대표작인 ‘영산회상’을 악곡 구성과 악기 편성을 달리해 ‘가즌회상’, ‘평조회상’, ‘관악영산회상’ 등으로 들려주는 기회를 마련한다. 이어 4월 12~13일에는 민속악단의 역량을 모아 대풍류, 굿, 시나위 등 민속기악곡을 연주한다. 5월에는 창작 소리극 ‘언문외전 한글을 만나다’, 11월에는 정가극 ‘이생규장전 영원한 사랑’을 공연한다. “최고 실력을 갖춘 연주단원들은 국악원의 꽃”이라는 그는 “연주단원들의 기량을 더욱 향상시켜 격조 높은 예술을 보여 주고 국제적인 활동도 늘리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을 비롯해 남원·부산·진도 등의 국악원 소속 국악인 480여명에게 특별교육과 다양한 전통예술 체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어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들이 더욱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면서 “국악 동아리의 연주 장소를 제공하고 국립국악원 단원이나 원로 연주자들의 강습 기회도 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악 교육에도 새로운 전기 마련해야” “우리 아이들이 국악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는 이 원장은 “국악 교육 자료를 더욱 체계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교육용 국악 웹사전에 국악 표제어를 충실히 담고, 동영상·음향·이미지 등 기록물을 차근차근 공개할 예정이다. ‘표준 국악실기교재’를 개발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문화원이 운영하는 세종학당이나 국악문화학교에도 보급하는 것을 준비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국악능력시험 개설도 고려하고 있다. 전문 자격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교육을 하면서 국악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판단에서다. “자격 시험을 국악원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공인시험위원회 등과 연계해 추진하는 것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줄소송’ 민주통합 6일부터 국민경선

    민주통합당이 과열된 국민경선으로 불법·부정 행위에 대한 줄소송이 잇따르는 가운데 예정대로 6일부터 103만명의 시민 선거인단을 상대로 국민경선을 실시한다. 대리투표 등 왜곡된 형태의 모바일 투표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법적·기술적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많은 비리들이 경선 과정에서 터져 나올지 당 지도부는 바짝 긴장한 상태다. 지역별로 진행되는 경선은 오는 18일 마무리된다.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는 5일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1차 경선 후보자가 결정된 전국 26개 지역, 58명의 후보에 대한 모바일 투표 및 현장 투표를 진행하겠다고 4일 밝혔다. 지난달 20~29일 인터넷, 스마트폰, 콜센터 등을 통해 신청받은 국민경선 선거인 수는 103만 1398명으로 이 가운데 스마트폰 등 인터넷 접수자는 55만 2307명(53.5%), 콜센터 접수자가 47만 9091명(46.5%)이다. 전체 접수자 가운데 모바일 투표를 선택한 선거인은 71만 8194명으로 70%에 달했다. 현장 투표 선거인 수는 31만 3204명이다. 모바일 투표는 6~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진행되며 현장 투표는 8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진행된다. 당선 여부는 현장 투표가 끝난 당일 모바일 투표와 현장 투표 결과를 합산해 발표된다. 경선이 진행되는 지역은 ▲서울 강동갑 ▲대구 동을 ▲대전 중구, 동구 ▲울산 중구, 울주군 ▲경기 수원병, 안양 만안, 안양 동안을, 안산 단원을, 안산 상록갑, 상록을, 안성 광주, 평택갑 ▲강원 속초·고성·양양 ▲충북 청주 흥덕갑 ▲충남 보령·서천, 아산 ▲경남 진해, 김해갑, 김해을, 창원을, 진주갑, 밀양·창녕, 거제 등이다. 서울 강동갑은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나는 꼼수다’의 변호인 황희석 변호사, 송기정 지역위원장이 맞붙어 주목을 받고 있다. 김영환(15·16·18대)·임종인(17대) 등 전·현직 의원 대결이 펼쳐지는 경기 안산 상록을과 현역인 이종걸(경기 안양 만안)·송훈석(강원 속초·고성·양양) 의원과 각 지역 정치 신인들 간의 경선 결과도 눈길을 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프로야구 승부조작 ‘발칵’ 채선당·된장국물녀 ‘발끈’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프로야구 승부조작 ‘발칵’ 채선당·된장국물녀 ‘발끈’

    한 주간 누리꾼의 클릭을 가장 많이 유도한 검색어는 프로야구 승부조작이다. 지난달 28일 대구지검은 경기조작 의혹을 사고 있던 LG의 투수 김성현을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검찰에 따르면 브로커 김모씨는 지난해 김성현과 박현준에게 5~6차례 금품 제공을 대가로 승부조작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2위 채선당 수사 결과와 3위 된장국물녀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마녀사냥’이 벌어졌지만, 사실관계가 왜곡된 것으로 결론이 난 사건들이다. 지난달 27일 충남 천안 서북경찰서는 “채선당의 종업원이 임신부의 배를 발로 찬 사실은 없다.”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한 소년(8)의 어머니가 서울 광화문의 식당에서 뜨거운 된장국물을 아이에게 쏟은 후 사과를 하지 않고 가버린 여성을 성토하는 글을 올려 촉발된 ‘된장국물녀’ 역시 진실이 뒤틀렸다. ‘된장국물녀’로 비난받은 B(52)씨는 지난달 28일 경찰에서 “국물을 들고 서 있던 내게 A군이 부딪혀 국물이 쏟아졌고, A군은 가버리고 나는 응급처치를 받았다. 아이가 낸 사고에 부모가 사과도 하지 않고 간 것으로 알고 괘씸해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어린이집 휴원 철회도 맞벌이 부모를 비롯한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28일 박천영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민간분과위원장이 “전국 민간 어린이집의 전면 휴원 결정을 철회하겠다.”는 견해를 밝혀 29일로 예고된 전면 휴원 결정이 일단락됐다. 나경원 남편 기소 청탁은 5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28일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봉주 7회’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김 판사의 기소청탁 의혹을 제기한 주진우 시사인 기자에 대해 지난주 서울중앙지검 공안 2부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하기로 했는데, 이를 부당하다고 생각한 박은정 검사가 자신이 청탁을 받았다고 말을 해버렸다.”고 주장했다. 6위는 한국 월드컵 최종예선행. 축구대표팀이 지난달 29일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 쿠웨이트를 2-0으로 꺾고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삼성전자가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2에서 초슬림 프로젝터 스마트폰 갤럭시빔을 최초 공개했다는 소식이 7위에 올랐다. 8위는 전지현 결혼이다. 전지현은 오는 6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의 외손자이자 이정우 디자이너의 둘째 아들인 최준혁씨와 결혼한다고 밝혔다. 9위는 프랑스 명품브랜드 샤넬의 기내면세점 철수, 10위는 이상형을 밝힌 ‘해를 품은 달’의 주인공 김수현 미니홈피 글이 차지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등록금 올리려 이월금 ‘꼼수’ 부린 대학들

    서울시내 주요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을 위해 이월금을 과소 추계하는 등 ‘꼼수’를 부린 것으로 확인됐다. 엊그제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수도권 20개 대학의 2012년 등록금 산정 근거를 분석한 결과 14개 대학이 미사용 전기이월금을 축소해 예산을 편성했다. 전년도에 쓰고 남은 이월금이 과소 계상되면 대학 수입이 적어져 등록금 인상의 자료로 활용된다. 수입은 줄이고 비용은 늘리는 대학의 수법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학들은 대학등록금 산정 시기와 회계연도가 차이가 나는 점을 이용해 이월금 꼼수를 부렸다. 일선 학교는 등록금 산정 시기에 아직 회계가 종료되지 않은 만큼 전기이월금을 적게 잡아 일단 등록금을 인상한다. 하지만 몇 개월 뒤 나오는 최종 추경 이월금은 훨씬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꼼수를 부린 14개 대학 가운데 100억원 이상 차이 나는 대학만 해도 한양대 434억원을 비롯, 이화여대·성균관대·고려대 등 7곳이나 된다. 대학들은 예산편성의 한계라며 변명하지만 회계전문가들은 10~20%를 넘어 30~40% 차이가 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월금 꼼수를 부리지 않았다면 지난해 대학교 등록금 인상률은 2% 밑으로 내려갔을 것이다. 정부는 올해 등록금을 5%가량 내리도록 했으나 서울시내 주요 대학들은 2% 찔금 내리는 데 그쳤다. 그마저 수업일수나 시간강사, 성적장학금을 줄이는 등 교육 서비스를 축소하여 감소한 등록금 수입을 메우려 해 빈축을 샀다. 8000억원가량 쌓아둔 적립금에는 손도 대지 않고 최고 직장으로 평가받는 교직원들의 급여를 조정하는 등 자구책도 강구하지 않았다. 등록금 산정자료를 왜곡해 등록금을 인상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의 회계업무 처리 등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감사원도 지난해 대학 등록금 감사를 실시한 뒤 예산 편성과 회계 운용의 투명성을 높이라고 교과부에 주문하지 않았던가. 등록금 산정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월금 산출 근거 등 관련자료를 꼼꼼히 제시하는 풍토가 대학가에 조성되도록 해야 한다. 대학도 왜곡된 자료를 제공해 어물쩍 넘어가는 구태를 버려야 한다.
  • 내 등록금, 왜 대학 평균보다 비싸지?

    강남대 건축공학과 3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둔 주부 이모씨는 지난달 29일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2012년 전국 4년제 대학등록금’ 공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1학기 고지서에 찍힌 등록금은 456만 3000원이었다. 연간으로 따지면 912만 6000원이다. 그러나 강남대가 공시한 평균 등록금은 741만 8900원으로 실제 등록금과 170만 7100원의 차이를 보인 까닭에서다. 학교에 문의한 이씨는 “연간 등록금이 680만원인 인문사회계열 학생들과 합쳐 평균을 낸 결과”라는 말을 들었다. 대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등록금 통계를 놓고 뒷말이 많다. 학과나 계열 구분 없이 등록금 총액을 학생 1인당으로 환산해 현실이 왜곡되고 있다는 목소리다. 특히 이공계와 예체능계 학생들의 박탈감이 크다. 이 때문에 같은 과나 계열의 특성을 고려한 보다 정확한 등록금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문사회대 구성비율 클수록 낮아보여 186개 전국 4년제 대학 가운데 평균 등록금이 가장 높은 곳은 858만 8900원인 한국항공대다. 74.2%가 공과대인 탓이다. 올해 기준으로 서울 시내 주요 사립대의 공과대는 인문사회대에 비해 등록금이 30%가량 비싸다. 인문사회대 구성 비율이 클수록 평균 등록금이 낮아 보이는 착시 효과가 나타나기 쉬운 것이다. 공학계열만 별도로 분리해 볼 경우 항공대 공학계열의 연간 등록금은 895만 4000원으로 전체 2위인 연세대의 940만 2900원에 비해 낮다. 나아가 전체 평균 30위권인 국민대 891만원과 비슷하다. 반면 인문사회계열이 이공계열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여자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적지만 체감 등록금은 높은 편이다. 공학계열이 아예 없는 평균 20위권 성신여대의 인문사회계열 평균 등록금은 716만 3500원으로 최상위권인 고려대 인문사회계열 723만 4500원과 거의 차이가 없다. 의학계열이나 산학협력학과가 있는 대학들의 등록금도 높아 보이긴 마찬가지다. 의학계열 등록금이 대부분 1000만원대를 훌쩍 넘기 때문이다. 올해 등록금이 가장 비싼 의대는 1254만원인 고려대다. 연세대 의대는 1222만 6000원, 성균관대 의대는 1133만 8000원이다. 의대는 대학 전체 등록금의 평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기업에서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학과들의 등록금은 대학의 장학금 실적을 감안한 탓에 엄청나다. 예컨대 삼성그룹 취업이 보장되는 연세대 IT융합학과의 등록금은 1521만 1400원으로 전국 대학 학과 중 최고다. 실기 비중이 높은 예체능계열은 의학계열과 함께 가장 등록금이 비싼 쪽에 속한다. ●예체능 중심 대학 타 계열없어 높아보여 추계예대는 7위, 홍익대세종캠퍼스는 9위·본교는 15위, 상명대 천안캠퍼스는 11위 등으로 대부분 상위권에 올라 있다. 평균적으로 상쇄할 다른 계열이 부족하기 때문에 높아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추계예대의 예체능계열 등록금은 890만 5500원으로 연세대 예체능계열 961만 6700원, 국민대 예체능계열 927만 3400원보다 낮다. 통계가 현실을 왜곡한 사례는 또 있다. 교과부는 울산과학기술대와 한국교원대를 올해 등록금을 인상한 이례적인 사례로 거론했다. 하지만 울산과기대와 교원대의 등록금은 동결됐다. 이공계와 경영대 간 정원 조정이나 결원 보충 등으로 평균 등록금이 올라가면서 빚어진 결과다. 박건형·윤샘이나기자 kitsch@seoul.co.kr
  • 집권 5년차 MB ‘인권’에 소리 높인다

    집권 5년차 MB ‘인권’에 소리 높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1일 3·1절 기념사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직접적으로 꺼내 든 것은 최근 탈북자 문제에 대해 발언 수위를 높여 온 것과 함께 다목적 포석이 담긴 것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에서는 “탈북자가 범죄자가 아닌 이상 중국 정부가 국제규범에 의해서 처리하는 것이 옳다.”며 중국 정부를 향해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이어 지난달 29일에는 탈북자 북송 중단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간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모두가 해야 할 일을 혼자 하고 있어서 미안하고,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지금껏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이날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일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 모두의 일이자, 양심을 가진 세계 모든 사람의 일”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는 ‘군위안부’라는 표현을 쓰면서 일본 정부에 강도 높게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지난해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를 언급한 뒤 두달여 만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3·1절과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위안부 문제를 직설적으로 거론한 적이 없었다. 2009년과 2010년엔 대일 메시지가 아예 빠졌고, 지난해 3·1절에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일본이 진정성 있는 행동과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는 선에서 그쳤다. ●위안부 할머니에 편지·화장품 이 대통령은 그러나 이번 기념사에서 위안부 문제를 비중 있게 지적했다. 대신 교과서 왜곡이나 독도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 문제를 외면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들이 대부분 고령으로 여생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급한 상황임을 감안, 양국 현안의 초점을 위안부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한·일 관계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촉구한 것”이라면서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태세를 이달 안에라도 보이면 사전조율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8·15 광복절은 너무 늦고, 지금이 지적할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영토문제는 우리가 굳이 먼저 꺼낼 필요가 없고, 교과서 문제 역시 일본 쪽의 결과가 안 나온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거론할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영토·교과서 문제 먼저 거론안해 이 대통령이 이처럼 탈북자, 위안부 문제 등 인권문제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올해가 임기 마지막 해라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글로벌 국격 외교와 경제·자원외교에서는 지난 4년 동안 성과를 거둔 만큼 임기 마지막인 올해에는 인권외교에서 보다 진일보한 성과를 거두겠다는 방침인 것이다. 이에 더해 인권 문제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국민 다수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자칫 선거의 해를 맞아 우려되는 국론 분열을 최소화할 카드로 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주요大 14곳, 이월금 낮춰 등록금 인상 ‘꼼수’

    주요大 14곳, 이월금 낮춰 등록금 인상 ‘꼼수’

    대학들이 등록금을 인상하기 위해 전년도에 쓰고 남은 돈을 실제보다 훨씬 적게 잡아 예산을 편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신문이 1일 수도권 주요 사립대 20곳의 ‘2012년 등록금 산정 근거’를 분석한 결과 14개 교가 미사용전기이월자금을 축소해 예산을 편성한 사실이 확인됐다. 미사용전기이월자금은 전년도에 쓰고 남은 돈으로 다음 해 예산으로 넘겨지는데 금액을 감액해 보고하면 대학의 전체 수입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여윳돈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학의 주요 수입원인 등록금을 올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미사용전기이월자금이 30% 이상 차이가 나는 곳은 60%인 12곳에 달했다. 한양대는 전년도 남은 돈이 56억 8300만원이라고 밝힌 뒤 예산을 짰지만 실제 미사용전기이월자금은 434억여원 늘어난 490억 2300만원으로 밝혀졌다. 즉 2011년 등록금을 산정할 때 대학 수입을 434억원이나 덜 잡은 뒤 예산을 편성한 셈이다. 결국 대학 재정상황이 나쁜 것처럼 회계처리된 만큼 등록금 인하 요구를 막아 내는 방패로 작용했다. 이화여대는 49억 3000만원이라고 밝혔던 이월자금이 최종 추경에선 230억 2000만원으로 불어났다. 몇 개월 사이 남는 예산이 180억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고려대의 최초 이월자금은 205억 7000만원이었지만 최종 추경에선 305억 3000여만원으로 99억 7000만원이나 증가했다. 성균관대도 본예산에서 전년도 미사용전기이월자금이 130억원이라고 밝혔지만 최종 추경에선 234억 4000여만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이 일부러 이월자금을 적게 잡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은희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학교사정이 이만큼 어려우니 등록금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근거를 마련하려고 예산편성 때 고의로 이월자금을 적게 잡는 것”이라면서 “올해는 이런 회계장부가 등록금 인하율을 낮추는 방어 논리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또 “10~20%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몰라도 처음보다 2~3배씩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대학 측은 “예산 편성 과정의 한계일 뿐 의도된 왜곡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3월이 지나야 정확한 결산이 나오는 상황에서 그 전에 이월금이 얼마가 될 것인지는 소극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면서 “고의적인 왜곡은 없다.”고 주장했다. 김동현·신진호기자 moses@seoul.co.kr
  • 국내외 언론이 보도한 3·1운동 조명

    국내외 언론이 보도한 3·1운동 조명

    EBS는 1일 오후 1시 40분부터 기획특강 ‘세계언론이 주목한 3·1운동’을 방영한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떨친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국내외 언론들이 어떻게 다뤘는지를 집중조명한다. EBS가 고등학교 국사 과목의 대표강사로 내세우는 최경석(배문고)·류성완(동화고) 교사가 연합으로 강의한다. 특강 요청이 있으면 해당 학교에 가서 강의를 진행한다. 우선 분석 대상에 오르는 것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보도 내용이다. 이 신문은 1919년 3월 1일 당시에는 사건을 다루지 않다가 며칠 뒤부터 일종의 소요사태로 규정한 뒤 일본 본토처럼 조선에서도 재산보호와 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 교사는 “처음에는 외면했다가 운동이 크게 확산되자 총독부가 기관지를 동원해 왜곡보도에 나선 것”이라 설명한다. 그렇다고 매일신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도 광범위한 ‘지하신문’이 활동했다. ‘조선독립신문’, 진민보’, ‘국민회보’, ‘경고문’ 등 국내에서 발간된 지하신문만도 29종이 넘는다. 이들은 독립선언서 내용을 소개하고 비폭력 운동의 원칙, 당일 상황 등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된 이들 지하신문의 면면을 직접 확인한다. 해외언론들의 보도 태도도 들여다본다. 뉴욕타임스는 1919년 3월 13일자에서 “알려진 것 이상으로 3·1운동이 널리 퍼져나갔고, 수천명의 시위자가 체포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AP통신도 “독립선언문에 ‘정의와 인류애의 이름으로 2000만 동포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보도한다. 이외에도 이그재미너(미국 샌프란시스코), 앙탕트(프랑스 파리), 모닝포스트(영국 런던), 민국일보(중국 상하이) 등에서도 보도가 잇따랐다. 해외언론의 이런 보도는 3·1운동이 해외 민족운동에 영향력을 끼치게 된 계기로 작용한다. 중국 5·4운동의 사상적 지주였던 천두슈는 주간지 ‘매주평론’(每周評論)에서 “3·1운동은 세계 혁명 사상 신기원(新紀元)”이라면서 “이에 비해 중국 국민이 위축되고 있고 부진해 부끄럽다.”고 개탄했다. 5·4운동 학생대표로 활약하게 될 푸쓰넨 역시 잡지 ‘신조’ 1919년 4월 1일자에서 3·1운동을 격찬하면서 “중국 국민과 학생들은 3·1운동에서 새 교훈을 얻어 총궐기하자.”고 외쳤다. 인도의 간디 역시 3·1운동 보도를 읽고 인도로 급히 돌아가 영국에 대한 비폭력독립운동을 시작한 사례, 필리핀 마닐라대 학생들이 1919년 6월 독립운동을 일으킨 사례, 이집트 카이로대 학생들이 1919년 6월 독립운동을 일으킨 사례 등을 소개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곤혹스러운 민주… 광주 동구 선거인단 모집 중단

    곤혹스러운 민주… 광주 동구 선거인단 모집 중단

    민주통합당이 4·11총선 경선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 발생한 투신 자살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당 지도부 경선 때의 흥행 성적에 한껏 고무됐던 민주당 지도부는 전남 장성에 이어 잇따라 선거인단 동원 파문이 불거지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은 27일 사건이 발생한 광주시 동구의 선거인단 모집을 중단하고 진상조사단을 현지에 보내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또 광주 동구를 포함한 광주전남 선거구 3곳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정하기로 했다. 과열된 선거구를 아예 경선에서 제외해 불법 선거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혼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에 반대해 왔던 호남 중진 의원들은 국민경선 무용론을 주장하며 지도부 압박에 나섰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 민주당 세력과 당 주류로 부상한 친노(친노무현) 진영 간 갈등이 재현되는 양상이다. 한명숙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서 송구하다.”면서 “국민 참여를 왜곡하는 불법선거가 적발되면 경선을 중단하고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며 진화에 부심했다. 그러나 박지원 최고위원은 “호남 지역 과열 우려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당이 예방하지 못했다.”고 날을 세웠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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