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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파리 크루아상 & 이슬람 초승달/구본영 논설고문

    초승달(新月)은 무슬림의 상징이다. 한때 중동의 패권국이었던 페르시아 사산왕조의 문양이었지만, 그 유래는 더 길고 모호하다. 예언자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성스러운 피신’(헤지라)을 할 때 밤하늘에 떠 있던 초승달을 가리킨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이슬람권 국기엔 대개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 초승달이 이슬람권 전사들의 신월도(新月刀), 즉 시미타르에서 유래했다는 오해도 있긴 했다. 이는 13세기 십자군 전쟁 이래 기독교를 표상하는 십자가에 비해 시미타르가 풍기는 호전성을 억지로 부각시키려는 억측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슬람권에서 초승달이 깜깜한 밤이 지난 뒤 떠오르는 것처럼 ‘진리의 시작’이라는 신성한 함의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적십자사인 적신월사의 상징 마크도 ‘붉은 초승달’이다. 초승달과 프랑스인들이 먹는 빵 ‘크루아상’이 닮은꼴임은 우연이 아니다. 이 빵의 기원이 17세기 말 이슬람제국 오스만튀르크의 유럽 침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니 말이다. 당시 초승달 깃발 부대가 오스트리아까지 쳐들어오자 폴란드 왕이 이들을 물리치고 만든 빵이 나중에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와 결혼하면서 파리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이 유래가 맞다면 크루아상에는 문명 갈등의 상흔이 배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크루아상은 오늘의 프랑스인들에게는 그저 맛있는 빵일 뿐이다. 지난 주말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저지른 잔혹한 테러가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다. 크루아상을 즐겨 먹던, 무고한 보통의 파리 시민 수백 명이 희생되면서다. 프랑스는 물론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전역과 신대륙인 미국까지 초비상이다. 특히 IS와의 전쟁을 선포한 프랑스는 연일 IS의 본거지인 락까를 공습했다. 그런 가운데 그제 한 파리지앵이 페이스북에 올린 편지가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대학살의 현장이었던 바타클랑 극장에서 아내를 잃은 남편의 애절한 사부곡(思婦曲)이다. 프랑스 지역방송국에서 일하는 언론인 앙투안 레리가 테러범들에게 쓴 메시지였다. 그는 17개월 된 아들의 엄마였던 아내 엘렌의 차가운 주검 앞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다”면서도 단 한마디도 증오의 언사는 담지 않았다. 외려 “내 이웃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내 안위를 위해 자유를 포기하길 바랐다면, 당신들은 틀렸다”는 의연함과 함께. 파리 테러를 사주했던 이들이 간과했던 또 다른 비극이 싹트고 있다.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마저 무슬림 이주자들에 대해 배타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니…. 전 세계 무슬림의 1%도 안 되는 극단주의 세력이 평화와 다른 종교와의 공존을 지향하는 이슬람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있다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중국의 비뚤어진 역사관/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의 비뚤어진 역사관/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11월 9일은 중국에 ‘매우 뜻깊은 날’이다. 2000년 사마천의 역사기원을 단숨에 1229년이나 앞당긴 ‘하상주연표’를 공식 확정한 날이다. 고고학 등 전문가 170여명이 5년간 천착해 만든 이 연표는 사마천이 엄두도 못 낸 하(夏·기원전 2070~1600년)·상(商·기원전 1600~1046년)·서주(西周·기원전 1046~771년)의 세 왕조 연표를 확정해 신화를 역사로 복원해 냈다. 지금까지 중국사 연대기의 가장 이른 시기는 서주 말의 기원전 841년. 이전의 일은 신화이다. 연표 확정이 핵심인 ‘하상주 단대공정’(斷代工程)이 전설 속의 하·상·주 왕조를 역사로 끌어들인 것이다. 역사시대가 기원전 20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요·순임금도 역사 속 인물로 변신했다. 하지만 15주년을 맞은 올해까지 관련 유물·유적이 대량 출토됐다는 소식이 없는 데다 중국 내에서도 진위 논란이 식지 않는 걸 보면 사실(史實)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문제는 중국의 ‘단대공정’이 단순히 ‘뿌리 찾기 작업’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웃 나라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해 버린 까닭이다. 중국의 ‘역사굴기’는 ‘단대공정’과 ‘동북(東北)공정’, 중화문명의 기원을 무려 1만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탐원(探源)공정’ 등 3대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이들 공정은 ‘과장과 왜곡’이라는 뒤틀린 모습으로 나타난다. 역사기원을 앞당긴 일은 전자,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동북공정은 후자에 속한다. 중국은 단대공정에서 ‘고구려 민족은 기원전 1600~1300년에 은상(殷商)씨족에서 분리됐다’고 강변한다. 고구려가 상나라에서 갈라졌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랴오허(遼河) 유역에서 한국 고대사를 대변하는 기원전 8000~1500년의 빗살무늬토기·비파형동검 등 유물·유적이 대거 발굴됐다. 고조선의 랴오허문명이 중국사의 출발점인 황허(黃河)문명(기원전 4000~2000년)보다 앞섰다는 얘기다. 때문에 중국은 3대 역사 공정을 통해 한국 고대사의 뿌리인 랴오허문명을 중국사에 편입해 고조선과 고구려사, 발해사 등 한민족 문명의 기원을 깡그리 부정해 버린 것이다. 어느 나라든 역사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같이 맹목적이지는 않다. 중국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공자의 춘추필법’, ‘동호(董狐)의 직필’, ‘병필직서’(秉筆直書·직언을 꺼리지 않음) 고사에서 보듯 목숨을 내놓고 팩트(사실) 이상을 추구했다. 그러나 1900년 서양 제국주의에 베이징이 함락당하자 청나라 광서제가 시안(西安)으로 도망간 것을 ‘서쪽으로 사냥갔다’, 신화를 근거로 이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근현대 들어 이 같은 경향이 본격화됐다. 사마천은 기원전 3076~2029년을 다룬 ‘오제본기’(五帝本紀) 후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학자들이 오제(五帝)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만 아득히 먼 일이다. 상서(尙書)도 요임금 이후만 기록하고 있고, 백가(百家)들이 황제(黃帝)를 많이 얘기하지만 문장이 우아하지도 온당하지도 않아 학자들은 말하기를 꺼린다.” 조상의 역사라 기록은 하지만 믿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2100여년이 지난 오늘도 사마천을 ‘최고의 역사가’로 추앙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khkim@seoul.co.kr
  • [서울광장] 골목길에 묻힌 신화와 전설을 찾아내자/이동구 논설위원

    [서울광장] 골목길에 묻힌 신화와 전설을 찾아내자/이동구 논설위원

    골목길에 묻혀 있는 역사와 민초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찾는 데 관심을 쏟는 자치단체들이 늘고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로 보이나 잘 다듬으면 새로운 수입원이자 지역을 세계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관광 아이템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인천 남구가 지역의 전설과 구전돼 온 이야기들을 담은 8종의 이야기책을 발간한 것은 이런 연유로 눈길이 간다. 지역에 있는 문학산의 전설, 숭의동 우각로 주민들의 사연, 동네 바위에 얽힌 설화 등을 주민들이 직접 찾아내고 책으로 이야기를 완성해 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 기공식을 이곳에서 개최한 사연을 비롯해 향락의 거리로 유명했던 옐로하우스와 독갑다리 이야기 등도 수록했다. 2018년까지 지역의 역사 등을 담은 책 4권을 더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 중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유성룡 선생의 생가터를 활용해 ‘서애길’과 ‘충무공 생가 복원’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시대 활자를 주조해 서적을 발간하던 ‘주자소 터’의 복원도 꿈꾸고 있다. 특히 한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간직한 서소문공원 일대를 순례길 등 역사 유적지로 조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도심 속 골목길에 묻혀 있는 역사를 바탕으로 이야기보따리를 찾아내려는 것이다. 지방의 도시들은 한 발 더 앞서 있다. 지역과 관련된 신화와 전설들을 바탕으로 축제를 만들어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을 뿐 아니라 연고권 찾기에 행정기관 간의 마찰도 불사하고 있다. 전남 곡성군이 심청의 이야기를 토대로 축제를 만들었고, 전북 완주군과 김제시는 콩쥐팥쥐 이야기에 대한 연고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남원시는 흥부와 놀부의 고향임을, 전남 장성군은 홍길동의 연고권을 주장하며 생가복원, 축제 등으로 관광자원을 만들어 내고 있다. 냉철하게 보면 우리의 자연경관과 역사, 문화유적은 관광 대국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랜드캐니언이나 나이아가라폭포와 같은 거대하고 신비로운 자연경관을 갖지는 못했다. 중국의 자금성이나 만리장성, 인도의 타지마할과 같은 유적지와 비교하면 우리의 역사, 문화 유적들은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세계경제포럼(WEF)은 2015년 관광경쟁력 보고서를 통해 우리의 자연자원 경쟁력에 세계 107위라는 순위를 매겼을까 싶다. 이런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세계인이 찾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되려면 좀 더 흥미로운 소재 거리가 필요하다. 케이팝과 드라마 등 문화 한류가 그동안 그 역할을 해 왔다. 단시간 내에 외국인들을 끌어들이는 데 한류가 가장 큰 영향을 발휘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남이섬이 드라마 ‘겨울연가’로 알려지면서 한 해 수만 명의 내외국인이 찾는 명소가 됐고,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서울을 찾거나 찾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서울시가 시민들의 불편을 감수하고 할리우드 대작 영화(어벤져스2, 미션임파서블 등)의 도심 촬영을 유치했던 것도 이 같은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권에서조차 8위에 머물고 있는 관광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한류를 한 단계 더 성숙시켜야만 한다. 케이팝과 드라마 위주의 한류에 안주해 있을 수는 없다. 팔만대장경, 조선왕조실록 등 유네스코가 인정한 지적 유산들을 활용하든, 도심의 골목마다 숨어 있을 아름다운 신화와 전설들을 찾아내든 한층 더 풍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찾아내야 한다. 중국, 일본 관광객 위주의 쏠림 현상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서양의 신데렐라 못지않은 재미있고 교훈이 담긴 이야기들이 많은데 잘 알려지지 않아 책을 만들게 됐다”는 지방 공무원의 설명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랑겔리니 해안바위에 설치된 1.25m짜리 작은 인어상이 세계인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된 데는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가 있었다. 뉴욕 5번가를 세계인들이 찾고 싶어 하는 거리로 만든 것은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영화 한 편이었다. 이보다 더 멋진 이야기보따리가 우리의 골목길에 묻혀 있을지 모를 일이다. yidonggu@seoul.co.kr
  • [씨줄날줄] ‘톨레랑스 제로!’와 ‘솔리다리테’/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톨레랑스’와 ‘솔리다리테’다. ‘톨레랑스’란 타인을 포용하고 배려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종교와 사상, 정치적 신념을 존중해 주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다른 생각까지도 너그럽게 용인하는 것이다. ‘솔리다리테’를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대(連帶) 의식, 혹은 동지애라고 할 수 있다. 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던 그들에게 톨레랑스와 솔리다리테는 불안한 세상을 온전하게 지탱해 주는 소중한 가치로 존재해 왔다. 관용의 역사는 부르봉 왕조의 초대 왕인 앙리 4세가 1598년 내린 ‘낭트칙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교도였던 앙리 4세는 스스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각 개인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칙령을 통해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다. 이후 18세기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등과 같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자유주의, 평등주의로 확산돼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다. 자유·평등·박애의 나라 프랑스는 진정한 자유를 갈구하는 모든 이들의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유럽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범죄와 테러가 기승을 부리면서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는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내무장관 시절 모든 범죄를 예외 없이 다스리겠다면서 ‘톨레랑스 제로!’를 선언했다. 사르코지가 너무 강경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이에 동조했다. 지난 13일 밤과 14일 새벽까지 파리의 공연장과 축구장, 레스토랑 등 6곳에서 총기 난사와 자살 폭탄공격 등 최악의 동시 다발 테러가 발생했다. 프랑스 내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이번 테러의 배후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지목되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프랑스인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평소에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프라이버시를 중시하지만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함께 뭉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도움을 주는 행동은 바로 ‘솔리다리테’의 정신에서 비롯된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톨레랑스’는 사라지고 있지만 ‘솔리다리테’가 프랑스인들에게 유전자처럼 남아 있음을 이번 테러 사태가 입증했다. 충격 속에서도 국가를 부르며 차분하게 축구장을 빠져 나가는가 하면 테러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 주기 위해 3시간 이상씩 줄을 서고 있다. 대피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을 내주는 시민들도 많다. 지나온 역사에서 그랬듯이 위기의 순간이 닥칠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솔리다리테’에 있음을 이들은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컬러’로 최초 복원된 투탕카멘 묘 발굴 직후 사진 공개

    ‘컬러’로 최초 복원된 투탕카멘 묘 발굴 직후 사진 공개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 왕이자 ‘소년왕’으로도 유명한 고대 이집트의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굴됐을 당시 찍은 사진의 컬러가 최초로 복원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개된 사진들은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인 하워드 카터가 왕들의 계곡에서 투탕카멘 왕의 무덤을 발견한 직후 당시 발굴에 동행했던 사진작가 해리 버튼이 기록한 것으로,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해 모두 흑백사진으로 보관돼 있었다. 때문에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가면’ 등의 금빛 유물이 발굴 당시 실제로 어떤 빛을 내고 있었는지, 또는 발굴현장의 색채는 어땠는지 등은 대체로 역사학자들의 글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300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유물들의 생생한 당시 모습은 투탕카멘 무덤 발굴 93주년을 기념해 최초로 컬러 복원이 시도됐다. 황금가면 뿐만 아니라 무덤에서 함께 발견된 사산된 아기의 미라, 투탕카멘의 황금관을 바라보고 있는 하워드 카터와 그 주변의 모습, 수 천 년전 왕과 함께 묻힌 다양한 예술품, 자칼의 머리가 달린 죽음의 신 아누비스 등이 기존의 흑백 이미지에서 컬러 이미지로 다시 태어난 것. 이번 복원 작업은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용했으며, 유물이 3000년 이후 후손의 ‘손을 타기’ 전,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컬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고학계에서도 매우 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투탕카멘 무덤이 발굴된 지 93년이 지난 올해, 최근 전문가들은 무덤 벽 안쪽에 숨겨진 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이집트 유물부와 해외 고고학자들이 모인 연구팀은 투탕카멘의 무덤 안에서 온도차이가 나는 벽을 확인했으며, 이 공간은 네페르티티의 무덤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상황이다. 실제로 투탕카멘의 무덤은 하나의 방이 아닌 여러 개의 방이 이어진 복잡한 형태이며, 무덤 벽에 그려진 그림이 투탕카멘이 아닌 네페르티티를 형상화 한 것이라는 점도 위의 추측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대 이집트 왕족은 투탕카멘이 19살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해 무덤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투탕카멘이 사망하기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네페르티티 왕비의 묘에 투탕카멘의 묘를 이은 형태라고 추정하고 있다. 네페르티티는 투탕카멘의 아버지인 이집트 제18왕조 제11대왕인 아크나톤의 첫 번째 부인이며,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미녀로도 유명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야기로 배우는 한국사

    이야기로 배우는 한국사

    제대로 한국사(전 10권)/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휴먼어린이/각 권 150쪽 안팎/각 권 9800원 역사 공부는 지루하다. 무슨 무슨 사건, 전쟁이 터진 수많은 연도와 숫자가 즐비하고, 어려운 한자어로 된 제도와 정책이 늘어져 있고, 왕과 위인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늘 헷갈리고 알쏭달쏭하다. 처음부터 잘못 배운 탓이다. 역사는 머리 아픈 시험 공부 과목이 아니라 숱한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이뤄 놓은 성공 혹은 실패의 과정과 결과를 담은 흥미진진한 이야기임을 알지 못했기에 역사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현직에 있는 역사 교사 2000여명의 모임인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만든 이 시리즈는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해 한국전쟁, 외환위기 등 현대사까지 모두 아우르는 통사 형식을 취했다. 각종 숫자와 표, 왕조 등으로 박제화한 역사에 살아 있는 이야기를 불어넣었다.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이 어떻게 변화 발전했고, 국가와 사회의 형태 변화와 그 속에서 개인 삶의 관계는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 옛 이야기 풀어 가듯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냈다. 내년부터 5학년 초등학생이 배울 국정 역사 교과서에 일제강점기 쌀 수탈을 ‘수출’로 쓰거나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등 식민사관이 의심되는 표현들이 수록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개정 교과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정치사, 생활사, 문화사까지 꼼꼼히 담았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다시, 쑨원

    다시, 쑨원

    중국과 대만 정부가 분단 66년 만에 정상회담을 한 직후 대대적인 쑨원(孫文·호 중산·1866~1925) 띄우기에 나섰다. 양안(兩岸)에서 모두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쑨원을 구심점 삼아 중화민족의 대통합 분위기를 이어 가는 동시에 대만 독립파인 민진당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정상회담 하루 뒤 전격 결정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는 정상회담 하루 뒤인 지난 8일 회의를 열어 내년 11월 12일 쑨원 탄생 150주년 기념 활동을 국가적 행사로 치르기로 했다. 과거 중화민국의 수도로 쑨원의 묘가 있는 장쑤성 난징시는 탄생 149주년인 12일에 맞춰 ‘중산릉’ 참배와 함께 다양한 추모 행사를 벌인다. 쑨원의 아호를 딴 중국 내 70개 ‘중산공원’에서도 추모 행사가 열린다. 대만은 탄생 150주년 기념 화폐를 발행하기로 했다. 대만은 쑨원을 공식적인 국부로 삼고 있으며 그가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립한 것을 기념해 민국력(民國曆)을 사용하기도 한다. ●대만 민진당 “또 다른 선거 개입” 반발 하지만 내년 1월 총통 선거에서 집권이 유력시되는 민진당은 중국과 국민당 정권의 ‘쑨원 띄우기’를 또 다른 선거 개입으로 보고 있다. 민진당은 본토 시절의 중화민국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민진당 집권 시기인 2000~2008년에는 추모식이 생략된 적도 있다. ●마잉주 잘했다 37% 못했다 34% 팽팽 한편 양안 정상회담에 대한 대만 여론은 팽팽하게 갈린 것으로 드러났다. 대만 연합보의 여론조사 결과 정상회담에서의 마잉주(馬英九)언행에 대해 응답자의 37.1%가 만족을 표시한 반면 33.8%는 불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44.8%는 양안 관계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고 더 좋아질 것이라는 답변은 28%,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7.7%로 나타났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700년간 귀족 증세 반대한 상원… 왜 저소득층 증세 막았나

    [글로벌 인사이트] 700년간 귀족 증세 반대한 상원… 왜 저소득층 증세 막았나

    ‘307대277.’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영국 상원이 부결시킨 보수당 정부의 저소득층 증세안은 끝없는 파문을 몰고 왔다. ‘하원 우위의 원칙’이 확고한 영국에서 상원은 법안을 수정하거나 입법을 지연하는 권한만 갖고 있어 관습법(헌법)에 대한 ‘이례적’ 도전이자 용기로 받아들여졌다. 증세안 부결로 굴욕을 당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튿날 상원에 대대적인 ‘칼 대기’를 단행하겠다며 정략적 선언을 했다.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도 “선거를 통해 선출된 하원이 입법한 세금 관련 재정 조치를 임명직에 불과한 상원의 야당(노동당·자유민주당) 의원들이 부결시켰다”면서 불만을 표출했다. 캐머런 내각은 주요 결정과 관련해 보수당이 장악한 하원의 영향력을 상원보다 앞세우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8일(현지시간) 전했다. 이는 장기적 청사진을 갖고 꾸준히 추진해온 기존 ‘상원 개혁’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파성을 앞세운 캐머런 총리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국민적 동의를 끌어낼지도 알 수 없다. 보수당 지도부가 공공연히 상원 개혁을 외치는 배경에는 과거 노동당 정권이 주도한 개혁으로 수백년간 기득권을 유지해온 상원을 송두리째 빼앗긴 쓰라린 경험이 자리한다. 상원은 이제 귀족들의 사교장이라기보다 국가의 중심을 잡는 비정파적 성격의 원로원 성격이 더 강하다. 내각 책임제인 영국에서 실질적 통치자인 총리와 총리를 배출한 집권당이 하원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보루이기도 하다. 앞서 1911년과 1949년 잇따라 개정된 의회법은 모든 법률안이 원칙적으로 상하 양원을 거치도록 했다. 다만 조세와 재정 지출 관계 법안(Money Bill)은 예외가 인정된다. 상원의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왕의 재가를 받아 곧바로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상원은 정부의 세금 감면 철회안을 일반 법안이 아닌 위임안으로 해석해 부결시켰다. 상원의 정식 명칭은 ‘귀족원’이다. 이런 측면에서 세습 귀족들의 모임에서 유래한 상원이 저소득층의 세금 감면 혜택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과거 의회가 왕과 갈등을 빚을 때 쟁점 역시 세금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특권층에 대한 ‘부자 증세’가 문제였다. 이번 세금 감면 철회안을 놓고 상원은 4시간 넘는 토론을 벌였다. 복지를 둘러싼 기득권층과 젊은층의 세대 간 전쟁으로 비화된 정부안을 놓고 원칙을 강조하며 약자의 편을 들었다. 보수당 내부에서조차 이견이 분분한 세제 개편안을 밀어붙인 캐머런 총리의 폭주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이는 앞선 노동당 정부(1997~2010년)의 상원에 대한 체질 개선 덕분이다. ‘영악한’ 토니 블레어 총리는 1330명에 이르던 세습 귀족 의원들을 단 92명만 남겨 놓고 퇴출시켰다. 이들은 대부분 보수당 지지자들이었다. 세습 귀족을 몰아낸 빈자리는 총리의 제청을 받아 여왕이 임명한 종신직 의원들로 야금야금 채워졌다. 이는 상원이 보수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보수당이 (정당한) 상원 개혁을 미뤄왔던 점에서 자업자득”이라고 평가했다. 미리 상원 개혁의 고삐를 잡았더라면 뒤통수를 맞는 일이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증세 문제 때마다 갈등 빚어 영국 정치권에서 상원 개혁이 화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세기 들어 국민 여론은 세습과 특권을 인정받는 상원에 부정적으로 기울었다. 미국처럼 선거를 통해 상원을 구성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9일 현재 상원에 등록된 정식 의원은 819명에 이른다. 이 중 의원직이 세습되는 귀족이 88명, 성직자가 25명이며 나머지는 종신직(706명)이다. 성직자인 대주교·주교 등은 자리에서 물러날 때 의원직을 상실한다. 정치 성향별로는 여당인 보수당 당적을 지닌 의원은 249명에 불과하다. 오히려 야당인 노동당(212명)과 자유민주당(112명)이 우위를 점한다. 이 때문에 상원은 하원에 비해 정파성이 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세습 귀족이 대거 퇴장하면서 중도세력이 늘어난 덕분이다. 당적도 고정적이지 않다. 보수당에서 자유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개혁을 추진한 처칠 전 수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게다가 1910년대까지도 영국 유권자들은 ‘비국교도=자유민주당’, ‘국교도=보수당’이란 등식 아래 종교적 성향에 따라 투표했다. 영국 의회 홈페이지(www.parliament.uk)는 상원이 의학, 법률, 예술, 경영, 과학, 스포츠, 교육 등 각 분야의 대표성을 갖는 존경받는 직업인들로 구성됐다고 기술했다. 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영국 연합왕국에 속한 성인이면 누구가 상원 의원이 될 자격을 갖는다고 명기했다. 1295년 완전한 모습을 갖춘 과거의 상원은 귀족과 성직자, 법률가 등이 주축이었다. 17세기 청교도혁명을 이끈 크롬웰이 공화정을 선포해 잠시 폐지되기도 했으나 20세기 초까지 수백년간 예산 결정과 법률 제정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백발의 가발을 뒤집어쓴 채 망토를 착용한 예전 의원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의회법 개정 뒤 실질적 권한 빼앗겨 1900년대 초반부터 잇따라 이뤄진 의회법 개정은 실질적 권한을 대부분 하원에 넘겼다. 의원들의 구성도 귀족보다 전문 직업인에 초점을 맞춰 점차 바뀌었다. 현재 상원은 주요 법안에 대한 토의와 국가 중대사에 대한 위원회 구성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드레스코드’도 변화했다. 의원들은 특별한 행사 때가 아니면 일반적인 정장 차림으로 등원한다. 홈페이지의 갤러리에는 평상복 차림으로 토론에 나선 의원들의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방청객들이 모습이 담겨 있다. 이곳에는 또 신규 의원, 자격 정지 의원, 사망한 의원 등으로 세분화된 신상 정보가 매일 업데이트된다. 지난달에만 41명의 신규 의원들이 임명됐고, 각기 2명의 의원이 사망하거나 은퇴했다. 신규 의원의 당적을 살펴보면 과반이 넘는 21명이 보수당 소속이다. 야당인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은 각각 7명, 11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중립이거나 전문직 할당자다. 보수당 정권이 노골적으로 상원에서 세 불리기에 나섰다는 뜻이다. 과거 영국 언론은 노동당 정부의 상원 개혁도 정파적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당시 개혁은 장기적 로드맵을 갖고 이뤄졌다. 어느 정도 보수당과 정치적 합의도 이뤄냈다는 점에서 지금과 달랐다. 영국은 2007년 집대성한 ‘상원 개혁에 관한 백서’에 근거해 꾸준히 개혁을 이어오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2010년 합의안에 따라 상원의 의석 수를 300석까지 줄이고 80% 이상을 선출직으로 바꾸는 일이다. ●상원의 뿌리 깊은 반정부 정서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로드맵에는 세습 귀족 의원뿐 아니라 종신 의원 폐지까지 담겨 있다. 매번 선출되는 의원의 임기는 10~15년으로 5년마다 3분의1을 선거로 물갈이한다. 임명직도 총리의 제청이 아닌 상원 임명 위원회의 제청을 따르도록 했다. 또 무보수 명예직이었던 의원에게는 연간 약 6만 4000파운드(약 1억 1245만원)에 이르는 세비도 지급될 예정이다. 이를 추인할 마지막 선택은 국민 여론에 달렸다. 700년 전통의 귀족원이 ‘원로원’으로 개칭되는 순간이다. 일각에선 이 같은 변화가 자칫 총리·상원·하원을 단일 정당이 독식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걱정한다. 견제와 상생이란 영국 정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앵글로·색슨족의 왕국이던 영국은 8세기 말부터 노르만인에게 정복당하면서 차츰 서유럽화했다. 노르만왕조의 혈통이 섞인 프랑스 귀족이 왕위를 이어받았고 존 왕에 이르러선 과도한 세금 부과로 귀족 계층과 대립했다. 이때 존 왕은 귀족들이 강요한 ‘대헌장’(마그나카르타)에 서명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는 의회 정치의 효시이기도 하다. 최근 수년간 상원은 정부 정책을 견제하며 존재감을 과시해 왔다. 정부 정책의 균형을 잡아줬다는 평가도 듣는다. 2002년 정부의 인간배아 복제 법안, 2006년 안락사 허용 법안, 2008년 테러용의자 구금연장 법안에 각각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6월 하원이 압도적 표 차이로 승인한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시행안도 상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컬러’로 최초 복원된 투탕카멘 묘 발굴 직후 사진

    ‘컬러’로 최초 복원된 투탕카멘 묘 발굴 직후 사진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 왕이자 ‘소년왕’으로도 유명한 고대 이집트의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굴됐을 당시 찍은 사진의 컬러가 최초로 복원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개된 사진들은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인 하워드 카터가 왕들의 계곡에서 투탕카멘 왕의 무덤을 발견한 직후 당시 발굴에 동행했던 사진작가 해리 버튼이 기록한 것으로,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해 모두 흑백사진으로 보관돼 있었다. 때문에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가면’ 등의 금빛 유물이 발굴 당시 실제로 어떤 빛을 내고 있었는지, 또는 발굴현장의 색채는 어땠는지 등은 대체로 역사학자들의 글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300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유물들의 생생한 당시 모습은 투탕카멘 무덤 발굴 93주년을 기념해 최초로 컬러 복원이 시도됐다. 황금가면 뿐만 아니라 무덤에서 함께 발견된 사산된 아기의 미라, 투탕카멘의 황금관을 바라보고 있는 하워드 카터와 그 주변의 모습, 수 천 년전 왕과 함께 묻힌 다양한 예술품, 자칼의 머리가 달린 죽음의 신 아누비스 등이 기존의 흑백 이미지에서 컬러 이미지로 다시 태어난 것. 이번 복원 작업은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용했으며, 유물이 3000년 이후 후손의 ‘손을 타기’ 전,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컬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고학계에서도 매우 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투탕카멘 무덤이 발굴된 지 93년이 지난 올해, 최근 전문가들은 무덤 벽 안쪽에 숨겨진 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이집트 유물부와 해외 고고학자들이 모인 연구팀은 투탕카멘의 무덤 안에서 온도차이가 나는 벽을 확인했으며, 이 공간은 네페르티티의 무덤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상황이다. 실제로 투탕카멘의 무덤은 하나의 방이 아닌 여러 개의 방이 이어진 복잡한 형태이며, 무덤 벽에 그려진 그림이 투탕카멘이 아닌 네페르티티를 형상화 한 것이라는 점도 위의 추측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대 이집트 왕족은 투탕카멘이 19살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해 무덤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투탕카멘이 사망하기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네페르티티 왕비의 묘에 투탕카멘의 묘를 이은 형태라고 추정하고 있다. 네페르티티는 투탕카멘의 아버지인 이집트 제18왕조 제11대왕인 아크나톤의 첫 번째 부인이며,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미녀로도 유명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37] 해자(垓子)로 기능한 중학천과 백운동천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37] 해자(垓子)로 기능한 중학천과 백운동천

     조선은 왕조를 열면서 지금의 충남 계룡시 3군사령부 터를 도읍으로 점찍고 궁궐공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곧 한양의 북악산 아래로 수도의 위치를 바꾸게 된다. 풍수지리를 공부했다는 사람 가운데 몇몇은 이 과정에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계룡산을 버리고 한양을 택한 것이 잘못이고, 인왕산을 버리고 북악산을 택한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선의 서울이 계룡산 어귀였다면 지금쯤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선은 임진강쯤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수도의 위치 문제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양을 설계한 사람들이 궁궐 자리를 북악산 아래로 점찍은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흔히 경복궁은 해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해자란 외적의 방어를 위해 성의 둘레를 파놓은 시설이다. 중국 베이징의 쯔진청(紫禁城)과 일본 도쿄의 왕궁에는 모두 해자가 있다. 반면 경복궁 주변은 아무리 둘러봐도 해자는 찾을 수 없다. 경복궁 금천을 일종의 해자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담장 안에 있는 것을 해자라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경복궁에는 자연의 조화를 거스르지 않고 실용성이 뛰어난 자연 해자가 있었다. 궁궐 동쪽의 중학천과 서쪽의 백운동천이 그것이다. 중학천은 삼청동에서 발원해 경복궁 담장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뒷길을 따라 흐르다 청계천과 합류한다. 백운동천은 자하문터널 쪽에서 시작해 자하문로와 세종문화회관 뒷길을 지나 역시 청계천과 합쳐진다. 이것을 20세기 후반 우리 손으로 복개했다. 삼청동길과 자하문로 아래로는 지금도 중학천과 백운동천이 흐른다.  도성을 설계한 사람들은 궁궐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그 결과 북쪽은 북악산이 가로막고, 동쪽과 서쪽의 하천은 남쪽에서 합류하며 세 방향에서 자연 해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에 경복궁을 앉힌 것이다. 궁궐 아래로는 정부기관을 한데 모은 육조 거리도 조성했다. 자연 해자의 보호를 받는 곳에 국가의 중추기관을 집중시킨 것이다. 복개가 이루어지기 전 중학천 사진을 보면 바닥은 깊고, 호안은 적이 오르기 어렵도록 돌로 쌓은 수직 벽이다. 궁궐을 감싸는 해자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분명했음을 알 수 있다.  중학천과 백운동천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는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의 연장선 상에서 두 하천을 되살리고자 했지만, 길이 사라진다는 현실적 어려움에 부닥쳐 광화문 교보문고 뒤편의 중학천 일부만 상징적으로 복원했다. 물론 앞으로도 복원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복궁 복원 작업은 해자까지 살아나야 완성일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해외여행 | [Surprising China] 저장성-강남 문화예술의 메카 저장성浙江省

    해외여행 | [Surprising China] 저장성-강남 문화예술의 메카 저장성浙江省

    중국 최고의 낭만적인 여행지를 꼽으라면 단연 저장성절강성, 浙江省이다. 누구나 시인이 되는 항저우항주, 抗州의 서호西湖와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용정차龍井茶밭 그리고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쑤이창수창, 遂昌의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저장성의 성도인 항저우는 귀족문화로 대표되는 강남 문화예술의 메카. 중국 7대 고도 중 하나이자 중국국가여유국과 세계관광기구UNWTO가 선정한 ‘중국 최우수 관광 도시’ 중 하나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미인을 닮은 서호 항저우가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서호와 용정차밭이 있기 때문이다. 항저우 지도를 살펴보면 번화가 서쪽에 서호가 자리하고 있다. 용정차밭은 서호의 서쪽에 펼쳐져 있어 서호를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 도심과 전원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서호는 항저우 서쪽을 말하는 지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대표적인 미인으로 꼽히는 서시西施처럼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호수다. 서호의 북쪽 보석산에는 보숙탑이, 남동쪽 오산에는 성황각이, 남쪽에는 뇌봉탑이 랜드마크처럼 펼쳐져 있다. 서호 동편은 중심가와 맞닿아 있으며 음악분수와 저장성박물관, 서호천지, 나루터가 이곳에 몰려 있다. 소동파蘇東坡와 백거이白居易같이 문장력이 뛰어났던 문인들이 아니더라도 서호를 거닐면 저절로 시인이 된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제방과 단교를 찬찬히 거닐면 색다른 운치를 느낄 수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낭만적인 기분이 샘솟는 곳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런 서호의 인상을 종합공연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 <인상서호印象西湖>다. 이 작품은 장예모張藝謨, 왕조가王潮歌, 번약樊躍 3인의 공동 연출 작품. 장예모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연인>, <영웅>, <붉은수수밭> 등의 영화와 오페라 <투란도트> 등 야외공연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감독이다. 음악에는 다큐멘터리 <실크로드>의 거장 기타로가 참여해 더욱 큰 감동을 선사한다. <인상서호> 공연은 극장에서 상연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서호의 수면 위가 무대고 서호의 풍경이 그대로 극의 배경이 된다. 무대는 밤에만 나타난다. 환경보호를 위해 수축계단형 관중석을 설치해 낮에는 공연장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공연은 중국 전통 설화인 ‘백사전’을 뼈대로 서호 문화를 응축하고 있다. ‘백사전’은 인간이 되고픈 백사 ‘백소정’과 서생 허선이 서호 단교잔설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세속적인 벽에 부딪혀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백사전’은 왕조현과 장만옥이 주연한 영화 <청사>로도 제작돼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다. 황제의 차, 서호용정西湖龍井 중국차의 대명사이기도 한 용정차는 항저우 용정마을에서 생산된다. 용정차가 유명해진 이유는 차의 품질도 우수하지만 무엇보다 황제에게 진상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특히 베이징에서 항저우까지 내려와 용정차를 즐겼던 청나라 건륭황제는 차를 구별해내고 물을 구별해내는 전문적 식견을 자랑했으며 용정차가 유명해지는 데 일조했다. 도시 사람들은 휴일이면 용정마을을 찾아 가정식 요리를 즐긴다. 전원을 벗 삼아 차를 마시고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여유로운 휴식을 만끽한다. 농가에서는 일반 방문객을 대상으로 차와 식사를 판매한다. 따로 주방장이 있는 것은 아니고 평소에 먹던 요리나 별미를 만들어서 내놓는다. 서구화된 도시 음식과 다른 담백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용정마을에는 찻잎박물관이 있어 중국 전 지역의 찻잎을 관찰할 수 있다. 모두 ‘차’라고 부르지만 토질에 따라, 기후에 따라 찻잎 모양이 다르다. 차의 역사나 문화를 알게 되는 것도 즐겁지만, 여러 지역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모양의 차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용정차를 맛있게 해주는 호포천 용정마을 옆에 위치한 매가오梅家塢 마을은 외지인들의 방문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매가오 마을은 검정 지붕과 하얀 벽의 집들이 이어져 유럽의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떠오른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고급 승용차와 대형 관광버스 등을 볼 수 있는데, 외지인들이 찾아와 농가 요리를 즐기거나 차를 대량으로 구입하기 때문이다. 차 맛을 이야기할 때 물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항저우에서는 서호용정차를 가장 맛있게 해주는 물로 ‘호포천虎砲泉’을 꼽는다. 한 승려가 절을 세우려고 했으나 물이 없어 걱정하던 차에 꿈 속에 두 마리 호랑이가 나타나 땅을 파니 샘이 솟았다는 전설이 있어 유래된 이름이다. 호포천으로 향하다 보면 ‘천하제삼천天下第三泉’이라고 쓰여진 벽을 보게 되는데, 호포천에 천하제삼천의 등급을 부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청나라 건륭황제이다. 그는 일찍이 중국의 많고 많은 물들을 평가했는데 천하제일천으로 베이징 옥천玉泉, 지난의 박돌천?突泉, 천하제이천으로 전장 중랭천中冷泉, 천하제삼천으로 항저우 호포천, 우시의 혜산천惠山泉을 꼽았다. 물의 밀도가 높아서 동전도 뜰 정도다. 건륭 황제가 차를 마시는 모습을 그린 그림 앞에는 호포천 물에 직접 동전을 띄워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태극다관에서 주전자 묘기도 중국에서 차 음용은 일찍이 전설 속 신농씨가 등장하는 고대 삼황오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과 같이 차 문화가 급격히 발달하게 된 것은 청나라 시대에 이르러서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상업이 발달하고 차와 다과를 즐길 수 있는 다관이 발달한 것.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강남의 부가 집중되는 항저우는 다관 문화가 매우 번창했다. 오산광장 앞 하방가河坊街는 청나라 때 상점들이 번성했던 곳으로 오늘날도 청나라 시절의 전통 가옥이나 근대시기에 세워진 유럽풍 건물들이 이색적이고 멋스럽다. 골동품이나 치파오 등을 취급하는 상점뿐 아니라, 수백 년 이상 된 전통 상점에서는 여전히 옛 방식을 고수하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7대째 운영되고 있는 하방가 ‘태극다관’은 현재 정씨 집안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과거의 물건들을 잘 보존해 소규모 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다. 차를 마시는 방문객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또 하나 태극다관의 재미는 사람 팔 길이보다 긴 주둥이가 달린 찻물 주전자 묘기. 청나라 복장을 한 점원이 기술을 선보이는데 멀리서 따르는데도 물 한 방울 안 흘릴 뿐 아니라 다양한 포즈까지 취해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여유 있는 물의 도시, 시탕서당, 西塘 저장성에는 항저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강남 6대 물의 도시 중 하나인 시탕이 있다. 상하이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거리로 대도시의 현란함과 번잡함 대신 여유와 푸근함이 천년 수로를 따라 흐른다. 시탕의 물길은 춘추전국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접경지역이었던 탓에 양국이 시탕을 두고 서로 견제하면서 교역한 역사가 있다. 이후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사람들이 늘고 수로를 중심으로 거리 곳곳에 건물들이 들어섰다. 당시의 수로마을 구획이나 건축양식이 양호하게 보존돼 있어 건축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탕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속도감과 박진감 때문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3>의 마지막 장면 촬영장소로 유명세를 타고부터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던 시탕은 일약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탕은 느린 매력이 있다. 여행객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 뱃사공은 빠른 손놀림으로 종착지까지 서둘러 가려 하기보다는 기꺼이 젓던 노를 여행객에게 내어주는 여유를 지녔다. 외지인들의 호들갑에는 무신경한 듯 수로 양옆 보도에는 옷가지가 햇볕을 쬔다. 후덕하고 수수하니 이맛살 찌푸릴 일 없고 경계할 필요도 없다. 시탕의 3대 명물은 농당弄堂과 랑붕廊棚 그리고 다리다. 농당은 마을 깊숙이 들어간 좁다랗고 아늑한 민가의 골목길로 시탕 곳곳에서 길고 짧은 여러 종류의 골목을 만날 수 있다. 랑붕은 지붕이 있는 복도를 말하는 것으로 수로 양옆으로 길게 조성되어 있다. 비가 많은 강남 지역 특성상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수로의 굴곡을 따라 굽이굽이, 혹은 일직선으로 조성돼 있어 호젓함을 만끽할 수 있다. <미션 임파서블 3>에서 톰 크루즈가 쏜살같이 내달렸던 길이 바로 랑붕이다. 마지막으로 다리. 시탕에는 가로, 세로로 흐르는 하천을 따라 100여 개의 다리가 있다. 역사가 오래된 석교의 경우 송·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탕 수로변에서 랑붕을 걷고 다리를 건너고 골목길을 누비는 것만으로도 시탕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꾸밈없이 고운 얼굴, 쑤이창 저장성의 아름다운 곳으로 쑤이창을 빼놓을 수 없다. 항저우가 화려한 여인이라면 쑤이창은 수줍은 여인이다.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쑤이창현은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703개나 솟아 있어,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꼿꼿한 대나무 무성한 산자락과 그 사이로 떨어지는 아찔한 폭포 줄기, 그 아래로 계단식 논밭이 그림처럼 포개진다. 쑤이창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남첨암풍경구南尖岩風景區. 저장성 최초의 생태여행시범구이자 문명풍경여행구역, 유네스코와 중국 민속촬영협회가 공동으로 지정한 국제민속촬영창작기지, 저장성 5A급 삼림여행지이자 국가 4A급 풍경구 등, 남첨암풍경구는 수많은 훈장을 달고 있다. 남쪽에 있는 산봉우리가 뾰족해서 ‘남첨암’이라 했다. 수직절리가 갈라져 형성된 거대한 천주봉과 그 맞은편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천장암은 올려다보기에도 고개가 아플 정도로 가파르고 아찔하다. 1,000m가 넘는 고지대에 많은 비가 내리고 마르지 않는 폭포가 있으니 안개가 자욱한 날이 많다. 기이한 형태의 운해와 계단식 논밭 위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안개는 남첨암풍경구 특유의 경관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저장성. 낭만의 도시 항저우를 출발해 물의 도시 시탕, 아련한 동양화 한 폭이 펼쳐진 쑤이창까지 여행길을 돌아보면, 긴 꿈을 꾼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본문에 나오는 중국의 지명은 중국어 발음으로 적고 한자 음과 한자를 동시에 표시했다. 관광지, 사람이름, 산 등 지명 이외의 것은 한자 음을 적고 한문을 병행 표기했다. 글의 제목은 중국에서 사용하는 간체자, 이외의 모든 한자는 번체자를 사용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el info Airline인천-항저우, 부산-항저우 등 직항이 운항되고 있다. 인천-항저우 노선은 중국국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매일 1회씩 왕복한다. 항저우는 상하이에서 버스나 일반 기차로 2시간 거리로 고속열차를 타면 1시간 20여 분이면 도착한다. TIP음식 | 항저우는 동파육의 본고장이다. 이곳의 관리로 근무했던 소동파가 즐겨 먹던 음식으로 간장을 이용한 달콤한 소스가 발달한 강남 지역 요리의 특색을 잘 살렸다. 항저우의 용정차와 새우를 함께 볶은 용정하인龍井蝦仁과 서호의 이름을 붙인 서호초어西湖醋魚도 추천한다. 날씨 | 여름에는 매우 무더운 반면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편이다. 비 내리는 날도, 강우량도 많은 편이니 저장성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날씨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인상서호 www.hzyxxh.com, 항저우여유국 www.gotohz.gov.cn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채지형 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트래비CB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www.visitchina.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불의에 항거하고 시비 밝힐 기개 갖춰야 선비”

    “불의에 항거하고 시비 밝힐 기개 갖춰야 선비”

    “16세기 봉건적 가부장시대를 살았던 퇴계 선생이 20세기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저보다 훨씬 더 남녀귀천(男女貴賤)을 떠나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자신을 낮추려 노력하셨어요. 처음에는 감동했고, 나중에는 제 모습이 정말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김병일(70)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은 8년 전인 2007년 도산서원 원장 및 수련원 이사장을 맡았다. 어렴풋이만 알고 있던 퇴계 이황(1501~1570)의 삶을 더욱 꼼꼼히 접하게 됐고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됐다. 퇴계에 대한 흠모이자 부끄러움을 회개하는 내적 고해의 시간이었고, 새로운 삶의 전기가 됐다. 당시 김 이사장은 통계청장, 조달청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기획예산처 장관 등 32년의 화려한 공직 생활을 마친 뒤 뒤늦게 시작한 마라톤에 흠뻑 빠져 풀코스, 울트라마라톤 등을 수차례 완주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여유가 생긴 것을 계기로 자신의 고향도 아닌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 아예 머물면서 선비정신의 요체를 찾고 그것을 현재적 의미로 접목하는 과제에 몰두했다. 최근 저서 ‘선비처럼’(나남 펴냄)을 내놓은 김 이사장을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선비정신이라고 하면 흔히들 양반을 떠올리곤 하는데, 단순히 신분 계층의 모습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다”라면서 “올바른 마음과 몸가짐으로 의롭지 못한 부귀는 탐하지 않고 불의에는 항거하며 옳고 그름을 분명히 밝히려는 기개를 갖춘 모습이야말로 진짜 선비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비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면 모범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예컨대 조선왕조가 600년 지속된 것은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임금이 끊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작은 마을공동체 등에서 자기 아닌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전시 같은 위기 상황에선 의병 활동을 펼치는 등 모범이 되는 리더십을 실천한 선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비정신의 강조는 자칫 개인의 삶과는 별 연관 없는, 따분한 얘기로 들릴 수 있다. 또한 체제에 순응하는 예절 바른 인간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현재적 의미 또한 적지 않다고 강조한다. 김 이사장은 “온순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따지며 옳은 길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갑질’도 선비정신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면서 “부모가 자식에게, 회사의 상사가 후배에게, 군대의 선임이 후임에게 등 모든 사람 관계에서 남을 배려하고 아끼면 고스란히 협조와 존경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각 생활 단위 안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지적했다. 2002년 문을 연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은 첫해 200명 남짓만 찾던 곳이었지만 지난해 5만 5000명이 다녀갔고 올해는 방문객이 7만명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그가 자부심을 느끼는 대목이다. 교사, 학생들은 무료지만 직장 단위 수련원 교육생에게는 실비 정도를 받는다. “아마 이사회에서는 전직 기획예산처 장관을 수련원 이사장으로 앉히면 예산을 따내는 데 좀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겠죠. 제가 선비답지 않게 제 자랑을 한 꼴이네요. 하하.”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게시판] 전주역사박물관, 부산시, KAIST, 서울중구, 현대차그룹

    ■전주역사박물관은 오는 21일부터 이틀간 조선왕조의 왕릉을 답사할 지원자를 모집한다. 숙부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능은 강원도 영월의 낮은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비극적인 죽음 만큼이나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산줄기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고, 또 도성 100리(약 40㎞) 밖에 있는 유일한 왕릉이기도 하다. ‘성왕’이라고 칭송받는 세종의 영릉은 조선시대 최초의 합장릉으로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가 함께 묻혀 있다. 역사책과 사극에서 만나던 조선시대 왕들의 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면 전주역사박물관 1박 2일 답사 프로그램 ‘조선왕조 왕릉답사-영릉과 장릉’에 참가하면 된다. ■국내 하나뿐인 신발, 섬유, 패션 복합 전시회인 ‘2015 부산 국제 신발섬유패션 전시회’가 오는 5일 막을 올린다. 부산시가 주최하고 부산경제진흥원이 총괄 주관하는 이번 전시회는 오는 7일까지 해운대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펼쳐진다. 전시회 주제는 ‘패션의 물결, 기술의 진보(Wave of Fashion, Move of Technology). 올해도 국제 신발 전시회, 패션위크(기성복 전시회), 국제 산업용 섬유·소재 전시회 등 3개 전시회가 동시에 열려 신발, 섬유, 패션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한다. 역대 최대 규모인 국내외 300개사(713개 부스)가 참가하며, 특히 전시회 개최 이래 최초로 지역 4개 패션 대기업인 그린조이, 세정, 콜핑, 파크랜드가 모두 참여한다.■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과학연구센터(센터장 김정훈)는 오는 12일부터 ’사회문제와 전략적 해결‘을 주제로 인문사회과학부동 국제세미나실에서 ’KAIST 시민 인문강좌‘를 4회 개최한다. 강좌에서는 여성학, 범죄심리, 바둑과 철학, 한국학 분야 전문가들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각적인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첫 번째로 김주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원이 ’여성전용 대출상품의 문제와 해결방안 모색‘ 주제로 강연한다. 이어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안승택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가 강연한다. 참가신청은 오는 9일까지 홈페이지(http://hss.kaist.ac.kr)에서 할 수 있고 수강료는 무료다. ■서울 중구(구청장 최창식)는 수학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 중학생을 대상으로 내년 2월 말까지 ’수학 학습 성장클리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중구가 고려대 교과교육연구소와 협력해 중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흥미를 높여 학습 태도를 개선하고 학업 성취도를 조사해 효과적인 수학 교수법을 개발하고자 마련됐다. 프로그램에는 중학교 2학년생 5명과 고려대 수학교육과 교수 2명, 교과교육연구소 연구원 13명이 참여하며 고려대 교육관에서 무료로 수업한다. 참여 학생들은 올 1학기 기준 국어와 영어 과목의 학업성취도 석차 비율이 상위 50%인 학생 중 수학 과목 성취도가 하위 30%에 속하는 학생들이다. 가정형편상 사교육을 받기 어렵거나 수학 성적 개선 의지가 강한 학생들이 우선 선발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공헌사업 ’기프트카‘의 6번째 시즌을 맞아 3일부터 ’기프트카 셰어링 캠페인‘을 벌인다. 이 캠페인은 기존 창업지원용 기프트카와 별도로 누구나 기프트카를 신청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년 2월 중순까지 기프트카 사이트(www.gift-car.kr)에서 대여 희망기간 및 사연을 작성해 신청하면 된다. 현대차그룹은 사연을 선정해 스타렉스, 카니발, 쏠라티 등 기프트카 차량을 최대 300회 빌려주고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한다. TV 광고 외에 페이스북, 유튜브 등 다양한 온라인 채널을 통해 ’기프트카 셰어링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관련 콘텐츠 및 동영상을 제작할 예정이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절친 앞에서… 작아지는 김세진

    절친 앞에서… 작아지는 김세진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김세진(오른쪽) OK저축은행 감독은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사령탑 세대교체의 선봉이다. 2014~15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배구의 신’ 신치용 전 삼성화재 감독을 꺾고 우승했고, 지난 4월 한·일 V리그 톱매치에서는 일본 V리그 우승팀인 JT선더스를 무너뜨렸다. 이제 감독으로서 세 시즌째이니만큼 아직 명장이라는 칭호는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차세대 명장에 가장 근접한 감독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유독 김상우(왼쪽) 우리카드 감독만 만나면 맥을 못 춘다. 정식 경기에서 두 번 겨뤄 모두 졌다. 지난 7월 KOVO컵 결승에서 처음 맞붙었다. 우리카드는 열세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세트스코어 3-1로 승리했다. 둘은 지난달 24일 또 한 차례 격돌했다. 이번에도 김상우 감독이 웃었다. 우리카드가 3-2로 이겼다. 3일 OK저축은행의 안방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통산 세 번째 결투가 벌어진다. 이번에도 김세진 감독이 지면 3전 전패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두 감독은 중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낸 ‘절친’이다. 프로에 입문해서는 ‘삼성 왕조’의 일원으로 뛰었다. 중요한 일전을 앞둔 김세진 감독은 외국인 선수 시몬과 토종 에이스 송명근의 컨디션이 상승세인 점이 반갑다. 김상우 감독은 토종 선수들과 점점 손발이 맞아 들어가는 용병 군다스와 대형 신인 나경복의 활약에 기대를 건다. 한편 2일 남자부 대한항공은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KB손해보험을 3-1(18-25 25-21 25-21 25-21)로 꺾고 2위(승점14·4승2패)로 뛰어올랐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현대사회 갑질은 선비 정신의 부재에서 비롯”

    “현대사회 갑질은 선비 정신의 부재에서 비롯”

     “16세기 봉건적 가부장시대를 살았던 퇴계 선생이 20세기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저보다 훨씬 더 남녀귀천(男女貴賤)을 떠나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자신을 낮추려 노력하셨어요. 처음에는 감동했고, 나중에는 제 모습이 정말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김병일(70)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은 8년 전인 2007년 도산서원 원장 및 수련원 이사장을 맡았다. 어렴풋이만 알고 있던 퇴계 이황(1501~1570)의 삶을 더욱 꼼꼼히 접하게 됐고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됐다. 퇴계에 대한 흠모이자 부끄러움을 회개하는 내적 고해의 시간이었고, 새로운 삶의 전기가 됐다. 당시 김 이사장은 통계청장, 조달청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기획예산처 장관 등 32년의 화려한 공직 생활을 마친 뒤 뒤늦게 시작한 마라톤에 흠뻑 빠져 풀코스, 울트라마라톤 등을 수차례 완주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여유가 생긴 것을 계기로 자신의 고향도 아닌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 아예 머물면서 선비정신의 요체를 찾고 그것을 현재적 의미로 접목하는 과제에 몰두했다.  최근 저서 ‘선비처럼’(나남 펴냄)을 내놓은 김 이사장을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선비정신이라고 하면 흔히들 양반을 떠올리곤 하는데, 단순히 신분 계층의 모습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다”라면서 “올바른 마음과 몸가짐으로 의롭지 못한 부귀는 탐하지 않고 불의에는 항거하며 옳고 그름을 분명히 밝히려는 기개를 갖춘 모습이야말로 진짜 선비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비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면 모범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예컨대 조선왕조가 600년 지속된 것은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임금이 끊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작은 마을공동체 등에서 자기 아닌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전시 같은 위기 상황에선 의병 활동을 펼치는 등 모범이 되는 리더십을 실천한 선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비정신의 강조는 자칫 개인의 삶과는 별 연관 없는,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얘기로 들릴 수 있다. 또한 체제에 순응하는 예절 바른 인간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현재적 의미 또한 적지 않다고 강조한다.  김 이사장은 “온순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따지며 옳은 길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갑질’도 선비정신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면서 “부모가 자식에게, 회사의 상사가 후배에게, 군대의 선임이 후임에게 등 모든 사람 관계에서 남을 배려하고 아끼면 고스란히 협조와 존경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각 생활 단위 안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지적했다.  2002년 문을 연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은 첫해 200명 남짓만 찾던 곳이었지만 지난해 5만 5000명이 다녀갔고 올해는 방문객이 7만명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그가 자부심을 느끼는 대목이다. 교사, 학생들은 무료지만 직장 단위 수련원 교육생에게는 실비 정도를 받는다.  “아마 이사회에서는 전직 기획예산처 장관을 수련원 이사장으로 앉히면 예산을 따내는 데 좀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겠죠. 제가 선비답지 않게 제 자랑을 한 꼴이네요. 하하.”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광장] 역사 쓰기 과거사 알기/주병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역사 쓰기 과거사 알기/주병철 논설위원

    유명한 역사학자 한 분이 어느 모임에서 참석자들에게 대뜸 6·25 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반반이 나왔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북침은 남한이 북한을 쳐들어갔다는 뜻은 아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쳐들어온 걸 남침이라고 표현했고, 북쪽이 남쪽을 침략한 것을 북침이라고 했을 뿐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사례다. 정치권의 이념 논쟁에 역사학계의 이해관계에 따른 셈법, 학교 현장의 주입식 교육의 문제 등이 얽힌 한국사 교과서 논쟁은 이렇게 복잡하다. 하지만 현행 교과서가 편향성을 배제한 것이라고 보지도 않지만 국정화가 최선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데 상당수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는 편이다. 적어도 미래 세대를 위해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 당위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다. 그 대안이 국정화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국정화를 액면 그대로 생각해 보자. 우리의 역사를 왜곡되지 않고 알차고 바르게 기술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국정화만 한 수단도 없다. 방대한 자료 수집과 연구에 드는 엄청난 비용을 감당하고, 훌륭한 집필진을 확보하는 일은 정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데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만든 교과서와 출판사 중심의 검인정 교과서가 경쟁하면 결과는 뻔하다. 문제는 국정화 추진 의도에 대한 강한 불신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공식 발표한 정부는 다음달 5일 고시를 한 뒤 본격적으로 추진할 태세다. 지금으로선 신뢰와 리더십이 생명인 정부가 쉽게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방향을 정한 뒤 추진하겠다고 하면 하는 게 정부다. 일관성 없는 정책이 더 불신을 초래한다는 걸 정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정화 추진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국정화는 곳곳에서 걸림돌을 만날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적어도 두어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 번째는 한국사 교과서 가운데 근현대사 부분을 빼는 것이다. 정말 불가피하다면 극히 일부분에 한해 넣어야 한다. 역사와 과거사는 분명히 구분돼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평가와 판단이 정리된 부분이다. 과거사는 평가와 판단의 대상이다. 그 대상이 되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당사자들이 멀쩡히 살아 있는 한 하지 않는 게 순리다. 그렇지 않고서는 누군가가 또 고치려 들 게 뻔하다. 근현대사는 아직 역사로서 영글지 않은 과거사이기 때문에 한국사 교과서에 포함하지 말고 사회과목 등에 넣어 학생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 토론하고 배우도록 하면 된다. 논란이 되는 대목은 수능시험에 내지 않으면 될 일이다. 예전에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에는 역대 왕조의 정사(正史·정통 사서)로 인정되는 24사서(史書)가 있다. 청(淸)의 건륭제(1735~1795) 때 만든 것으로 명나라가 멸망한 1644년까지 기록하고 있다. 청나라가 망하고 새로 수립된 중화민국 정부 역시 원사(元史)와 청사고(淸史稿)를 갖고 있지만 정통 사서로 넣지는 않고 있다. 적어도 왕조가 끝나고 200년 가까이 지나지 않으면 정사로 기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로 치면 조선시대까지가 진짜 역사인 셈이다. 두 번째는 새 교과서 제작 기간이다. 정부는 2017년 3월 새 학기 시작 전까지 새 교과서를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 나라 중 하나인 터키만 보더라도 방대한 자료 등을 촘촘히 수집·연구·정리하는 데만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터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궤적을 오롯이 담은 국정 교과서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이 정부 임기 내에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내놓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역사는 좌우가 없다. 이를 둘러싸고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로 달려드는 건 우리밖에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정부가 아무리 잘 만들겠다고 약속해도 역사와 과거사를 구분 짓지 않는 한 국정화는 또 다른 편향성을 놓고 의심과 불신만 증폭시키게 될 거다. 정부가 국정화 추진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을 때 국정화는 추동력을 얻고 역사에 남을 교과서를 만들 수 있다. 누구든 어떤 이유로든 역사를 모독한다는 소릴 들어서는 곤란하다. bcjoo@seoul.co.kr
  • 220년 전 그날처럼… 창경궁에 울리는 정조의 효심

    220년 전 그날처럼… 창경궁에 울리는 정조의 효심

    영화 ‘사도’에서 정조(소지섭)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문근영)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성대하게 베풀었던 연회가 창경궁에서 재현된다. 이 연회는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아들의 깊은 효심이 담겨 있다. 국립국악원은 30일과 31일 창경궁 명정전에서 180여명 규모의 화려한 궁중 예술 ‘왕조의 꿈, 태평서곡’을 선보인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은 220년 전(1795년) 수원 화성에서 연행되었으며, 회갑연이 공연 예술 형태로 창경궁에서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무대는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바탕으로 수제천과 여민락 등 대표적인 궁중 음악과 함께 무고와 선유락 등 화려한 궁중 무용을 선보인다. 특히 뱃놀이를 기원으로 한 선유락은 이번 공연에서 가장 큰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궁중 무용으로 우렁찬 대취타와 함께 무용수들이 대거 등장해 최고의 볼거리를 선사한다. 음악과 무용 외에도 진연에 올랐던 궁중 음식과 평소 접하기 어려운 궁중 복식, 의물 역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무대 좌우에 전광판을 세워 자막으로 공연 내용을 안내한다. 공연 초반 정조와 혜경궁 홍씨의 대사와 연기를 추가해 공연의 배경과 내용 및 의미 등을 극적인 요소로 표현한다. 정조 역은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조선시대 왕을 연기한 탤런트 이민우가 맡았고, 혜경궁 홍씨 역은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 박정자가 맡아 관객들의 재미와 이해를 높일 예정이다. 국립국악원 측은 “이번 무대는 궁중 예술을 직접 고궁에서 가까이 즐길 수 있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중국 자금성의 ‘투란도트’, 일본 궁내청의 ‘가가쿠’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 예술 발굴과 고궁 자원 활성화를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30일 오후 3시, 31일 오전 11시·오후 3시에 진행되며 티켓은 국립국악원 홈페이지(www.gugak.go.kr)를 통해 회당 400명을 대상으로 1인 2매까지 신청할 수 있다. 관람은 무료. (02) 580-3300.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김성호 기자의 종교만화경 19] 어느 납자의 환속

    [김성호 기자의 종교만화경 19] 어느 납자의 환속

     세간에 한 스님의 환속이 화제다. 웬만한 일반인도 이름만 들으면 ‘아 그 스님’하고 금세 알아차릴 조계종 스님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이 주인공이다. 이런 저런 문화재 환수 운동에 앞장 서며 승속 모두에 이름을 꽤 알렸던 납자(衲子)가 돌연 환속을 했다니 놀라움의 탄성이 요란한 게 당연해 보인다. ‘애를 낳았고 더 이상 스님 신분을 유지할 수 없다’는 환속의 선언에 네티즌들의 ‘놀라움 반, 질타 반’의 댓글이 연신 쏟아지고 있다.  불교계에 그 파격의 환속 소문이 돌았던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모 스님이 결혼해 애를 낳았고 조만간 환속 선언을 한다더라’던 그 소문 말이다. ‘설마 그 스님이’라는 의심이 현실로 드러난 건 얼마 전 당사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두 차례에 걸쳐 “최근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고 충격적인 글을 남기면서였다. “나는 더 이상 스님이 아니다”라며 스님 호칭 빼줄 것을 거듭 요구하기도 했다. ‘세상 잘못 50가지를 바로 잡겠다는 부처님과 약속을 지켰으니 승복 벗고 자유롭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꽤 명분있는 환속의 이유로 들린다. ● 혜문 “세상 잘못 50가지 바로 잡았으니...” 불교계 “절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  조계종 종단 관계자들은 일반의 들썩임과는 다르게 시큰둥하다. ‘비구도 아닌 스님이 환속한다는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는 투의 싸늘한 반응 일색이다. 실제로 혜문은 사미계를 받았지만 비구계를 받지 않은 사미승의 신분이다. 조계종 승적을 갖고 있긴 하지만 비구 종단에서 정식 비구계를 수지하지 않은 스님인 터라 그닥 좋은 대우를 받진 못했다는 게 종단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절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라는 승단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실망감’‘배신감’운운의 반응을 이어감은 그간 혜문의 종적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혜문은 꽤 많은 일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승단의 스님들이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던 해외의 우리 문화재 환수 운동에 주도적으로 나선 건 그 대표적인 업적이다.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원래의 자리에 돌려놓자’는 그의 환수 운동은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2006년 도쿄대학으로부터 돌려받은 ‘조선왕조실록’ 47책과 2011년 일본 궁내청으로부터 환수한 ‘조선왕실의궤’ 등 1205책은 일반인도 잘 아는 대표적 환수 문화재로 통한다. 그 뿐인가 한국전쟁 와중에 사라졌던 대한제국 국새(國璽)며 조선왕실어보를 미국에서 찾아내 반환결정을 이끌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문화재 환수의 상징, 거침없는 개혁행보... 대처-은처승 비난하던 그가... ‘문화재 환수의 상징’격 스님이란 점 말고도 혜문이 종단에서 보인 개혁의 거침없는 행보는 일반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환속 소문이 퍼지면서 혜문은 이런 저런 변명 아닌 변명에 나서고 있는 눈치다. 애를 낳은 시점이며 환속의 명분 밝히기에 바쁘다. 오래 전 애를 낳았다는 소문과는 달리 최근 애를 낳았고, 자신이 출가해 몸담았던 봉선사의 주지 인선이 환속의 주 이유란 해명에도 나서는 입장이다. 지금 봐선 그런 변명과 해명이 소문과 화를 더 키우는 듯 하다.  전북 군산에는 독특한 일본식 사찰이 하나 있다. 고은 시인이 출가했다는 동국사이다. 고은 시인은 출가해 동국사에서 살면서 법당 앞 만리향의 향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 속엔 당시의 만리향 소회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많은 이들에게 그 만리향의 향기는 향기에 머물지 않은, 초심의 회상 쯤으로 읽히곤 한다. 고은 시인은 환속 한 뒤에도 가끔씩 동국사를 찾았다고 한다. 환속 시인의 옛 초심 추스리기가 아닐까 한다. ● 일반인들의 엄격한 출가승에 대한 기대가 컷던 탓인가  흔히 출가한 스님들은 납자라 불려진다. 사람들이 쓰레기로 버린 낡은 헝겊을 이것저것 모아 빨아서 기워 꿰매거나 누벼 회색물을 들인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들. 비구나 비구니들이 스스로를 낮춰 부르기도 하는 이 말은 청정한 출가자의 상징이다. 혜문 납자의 환속을 향한 일반의 심중은 바로 그 엄격한 출가승에의 기대가 무너진 탓이 아닐까. ‘불교계의 좋은 인재를 잃었다’는 네티즌들의 토로가 그래서 더 안타깝다. 김성호 선임기자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알고 싶은 문화유산 뉴스들/전범수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옴부즈맨 칼럼] 알고 싶은 문화유산 뉴스들/전범수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근 지나간 과거, 다시 말해 역사에 대한 논쟁들이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다. 역사를 어떻게 접근하고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접근 방식은 현재와 미래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로 인해 국가 간, 세대 간, 정치 집단들 간에 같은 역사적 결과를 놓고 다른 역사적 이해가 스며들어 있는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과거를 놓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다. 역사적 해석에 대한 논의는 보다 다양하고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공개적인 평가를 통해 보완되고 발전돼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전문적인 작업과는 별개로 일반 시민들이 역사에 대한 이론이나 맥락들을 잘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적 흐름을 관통하면서 그 맥락을 모두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친숙한 방식으로 과거가 우리에게 남겨 준 문화유산들을 사례별로 하나하나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보통 문화유산에는 기념물에서부터 건조물, 유적지 등이 포함된다. 무형문화유산 및 기록유산 등도 중요한 우리의 역사적 유산이다. 이들에 포함된 과거는 지금의 우리를 반추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자양분이다. 역설적인 것은 우리가 가까이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화유산들이 많이 있음에도 유네스코라는 국제기구에 의해 발표되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목록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의 보편적 가치가 내재된 문화유산들을 등재시키는 방식으로 국가별 문화의 다양성을 소개하고 알린다. 다만, 아쉬운 점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규모에 따라 국가의 문화적 우수성이 비교되고 우열을 평가하는 일이 종종 연계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물론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역사적 결과물들이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접할 수 있고 접해야 하는 문화유산들은 더욱 많이 있다. 게다가 우리가 알아야 할 과거의 모습은 보기에 아름다운 유산만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다양한 모습들이 균형 있게 포함돼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고 알고 싶고 알아야 할 문화유산들에 대해 언론의 더 깊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국내 언론들은 문화 소재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공간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가령 어느 곳에 맛집이나 구경거리가 있고 어느 곳을 여행하는 것이 즐겁다는 방식으로 문화 뉴스의 공간화가 이루어진다. 반면 문화 소재 뉴스를 시간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흔하지 않아 보인다. 예컨대 공간적으로 산재해 있는 문화유산에 내재된 시간적 숨결을 짚어 나간다거나 또는 우리의 문화적 가치나 정신을 구성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좀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언론의 문화 소재 뉴스는 역사적 결과물들이 갖고 있는 시간적, 공간적 층위를 결합할 필요가 있다. 서울신문의 경우 그동안 소개한 문화유산이나 문화 소재 뉴스 보도를 살펴볼 때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는 문화 소재 소개를 비롯해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연, 문화축제, 장소 탐방, 신간 소개 등이 많은 편이었다. 서울신문이 문화유산 이야기라는 시리즈 기획특집을 온라인 서울신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공해 왔지만, 그럼에도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시공간적 심층적 접근은 부족해 보인다. 다양한 기획을 통해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같은 역사서 소개나 동의보감과 같은 의학서들을 재미있으면서도 깊이 있게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기회도 만들었으면 한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 세밀화 추상화…간송미술문화재단 ‘화훼영모… ’展

    세밀화 추상화…간송미술문화재단 ‘화훼영모… ’展

    ‘내 지금 생물을 바라보며 하늘의 마음을 보았노라.’(我今觀物見天心) 조선 전기의 뛰어난 문장가인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 선조들은 꽃과 새, 곤충과 물고기들을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우주 만물의 섭리가 함축된 존재로 인식했다. 보고, 기르고, 나아가 글과 그림으로 옮겨 내면서 자연과 생명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고 자신의 성정을 함양하고자 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수장 작품 중에서 동식물을 소재로 한 전통 회화작품들을 시기별로 선별해 ‘화훼영모-자연을 품다’전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고 있다. 화훼영모(花卉翎毛)란 꽃과 풀, 날짐승과 길짐승을 가리킨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1년에 두번씩 열던 소장품전을 DDP 개관과 함께 대중 속으로 들여온 뒤 여는 다섯 번째 기획전으로, 그림을 통해 시대 정신과 기법의 차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오세창 선생이 화첩으로 만들어 소장하던 고려 공민왕(1330~1374)의 ‘이양도’(二羊圖)부터 조선왕조 말기의 이도영(1884~1933)이 그린 ‘백령식록’(百齡食祿)까지 550년의 기간 동안 각 시기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 90여점이 출품됐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백인산 연구실장은 “선조들은 동식물들을 통해 도덕적 이상과 더불어 무병장수나 입신출세, 부귀영화 등과 같은 현세적 욕망을 담아내곤 했다”며 “시대별 화법의 변화와 각 소재들이 담고 있는 상징, 문화적 코드를 맞춰 가며 읽으면 더욱 재미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 말 조선 초 주자성리학의 도입과 정착 시기에는 중국 남방 화풍의 강한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출품작 중 김안로의 막내아들 김시(1524~1593)가 그린 ‘야우한와’(野牛閒臥)에서 보듯이 배경은 우리 산수지만 소는 남중국의 물소다. 주자와 송설이 남중국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16세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조선성리학을 이뤄내면서 그림에도 진경산수화가 출현하고 화훼영모화의 소재로 우리 주변의 동식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화훼영모화는 진경시대에 이르러 겸재 정선(1676~1759)에 의해 독자적 사생 기법이 완성되고 현재 심사정(1707~1769)이 시도한 조선남종화풍으로의 반전을 거쳐 조선 고유색이 다양한 형태로 극대화된다. 패랭이꽃이 피어 있고 참개구리와 나비가 모여든 한여름의 오이밭 풍경을 담은 ‘과전전계’(瓜田田鷄·오이밭의 참개구리)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70대 후반에 그린 그림이다. 겸재풍의 사생 기법을 계승한 변상벽(1730~1775), 김홍도(1745~1806), 김득신(1754~1822)에 의해 절정에 이른다. 표암 강세황(1713~1791),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청조문인화풍의 함축된 생략 기법을 화훼영모에 도입했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 문화 노쇠 현상과 맞물려 사생력이 후퇴하고, 화려하고 장식적인 측면이 부각된다. 옛사람들은 진흙 속에서도 화사한 꽃을 피우는 연을 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고고한 군자를 떠올렸다. 시서화 삼절로 명성이 높았던 강세황의 ‘향원익청’(香遠益淸·향기는 멀수록 맑다)은 두 포기의 연으로 청정한 자태를 담아냈다. 화훼영모화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사물들이 지닌 의미에 빗대 많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잉어는 등용문을 뜻하니 과거에 급제해 출사하라는 뜻을, 모란은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등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김홍도의 ‘황묘농접’(黃猫蝶·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은 화창한 봄날 뜰에 있던 주황빛 고양이가 패랭이꽃을 보고 날아든 검푸른 제비나비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평화로운 전원 풍경을 담은 이 그림에는 ‘일흔, 여든이 되도록 청춘을 누리며 뜻하는 대로 이뤄지소서’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02)2153-0608.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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