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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유명 관광지서 원숭이 얼굴에 펀치 날리는 남성

    인도 유명 관광지서 원숭이 얼굴에 펀치 날리는 남성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이토록 부끄러웠던 적이…’ 24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최근 인도 라자스탄주 조드푸르 만도르 정원에서 랑구르 원숭이를 구타하는 영상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친구들과 함께 만도르 정원을 방문한 빨간 모자에 청남방을 차려입은 남성. 그가 난간에 걸터앉은 원숭이에게 다가와 먹을 것을 주는 척한다. 원숭이가 남성의 손에 있던 먹이를 집어 먹는 순간 그가 주먹으로 원숭이의 얼굴을 가격한다. 얼굴에 충격을 받은 원숭이가 땅바닥으로 추락한다. 국제동물 캠페인 총재 키어런 하킨(Kieran Harkin)은 “이 영상은 슬프고 충격적인 동물학대의 사례”라며 “슬프게도 이 같은 잔인한 행위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지만 이런 종류의 행위가 용인될 수 없고 야만적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영상이 유튜브 코미디 채널에 업로드된 사실을 지적하며 “동물학대 영상이 재미있는 콘텐츠로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며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영상 플랫폼에서 동물학대가 오락 형태로 게시되지 않도록 콘텐츠에 대해 책임질 것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만도르 정원은 6세기 프라티하라 왕조에 의해 건설됐으며 이 지역에서 발견된 각종 유물과 동상이 보관되어 있는 정부 박물관 ‘영웅의 전당’과 ‘3억 신들의 힌두 사원’이 있는 관광 명소다. 사진·영상= Feel The Difference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1300년 보존’ 한지 산업 육성… 고문서 복원 ‘기록한류’ 꿈꾼다

    ‘1300년 보존’ 한지 산업 육성… 고문서 복원 ‘기록한류’ 꿈꾼다

    국가기록원은 과거의 기록으로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다. 요즘 기록원은 비상 상황이다. 원래 대통령 퇴임 6개월 전에 기록원 직원이 청와대와 함께 기록 이관작업을 준비한다. 하지만 만약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면 두 달 안에 1000만건에 가까운 기록물을 세종시 대통령 기록관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참여정부 때 대통령 기록물법이 제정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755만건, 이명박 전 대통령은 1088만건의 기록을 남겨 박근혜 정부의 기록물 양도 비슷한 수준이란 전망이다. 물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기록도 대통령 기록관으로 옮겨진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도 국가기록원은 수년간 전통 한지 제작과정을 복원해 국가의 품격을 높이 세우는 일을 열성적으로 해 왔다. “매일 풀을 쑤어서 6·25 한국전쟁 작전지도, 1949년 제1회 국무회의 회의록 등을 한지로 살려내는데 엄청난 수작업이라 한 해에 복원할 수 있는 서류가 2300장 정도에 불과해요.” 경기 성남시 국가기록원의 기록보존복원센터는 깃털 같은 한지로 생산된 지 불과 수십 년 만에 바스러진 국가 중요 문서를 살려내는 곳이다. 고도의 정밀한 손길로 인간 뇌의 혈관을 이어붙이는 것처럼 잘게 파편이 난 문서의 조각을 붙이고 사라진 부분은 한지로 메운다. ●500년 비단보다 2배 이상 오래 보존 닥나무로 만든 한지가 국가 중요기록 복원에 사용되는 것은 뛰어난 보존성과 내구성 때문이다. 고연석(46) 학예연구관은 “산업혁명 이후에 공장에서 나온 종이는 모두 운명이 같다. 첨가제와 화학약품을 범벅한 종이는 수명이 짧다”면서 “하지만 천연재료를 일일이 손으로 만든 한지는 보존이 잘된다. ‘견오백 지천년’이라고 비단은 500년, 종이는 1000년을 간다는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60여년 전에 만들어진 국가 중요 문서는 이미 누렇게 변하고 조각이 떨어져나가 복원이 필요하지만 전통 한지로 만든 조선왕조실록은 여전하다. 종이 강도는 A4용지보다 한지가 357배 크다. 대한민국의 요즘 성인들은 서예시간에 화선지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 사실 이 화선지는 일본의 화지와 중국의 선지를 결합한 국적불명의 종이로 오히려 한지의 뛰어난 점을 갉아먹은 측면이 있다. 한지는 ‘외발뜨기’란 독특한 방법으로 제작해서 월등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1300년 가까이 석가탑 속에서 살아남은 ‘무구정광다라니경’이 바로 한지의 탁월한 보존성을 증명하는 좋은 예다. ‘외발뜨기’란 한지 틀을 한 개의 줄에 매달아 장인이 앞뒤, 좌우로 흔들어 닥섬유가 엇갈리게 결합되도록 하는 제조방법이다. 장인의 노동력과 섬세한 손길로 만든 습지는 ‘도침’(搗砧)이란 후처리 과정을 거치면 컬러인쇄가 가능한 매끈매끈한 종이가 된다. 도침은 나무로 종이를 두드리는 것으로 한지의 장점인 매끈하고 윤기 나는 표면을 완성하는 후처리 공정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20년경 조선총독부는 도침과 같은 전통 한지 제작방식을 말살하고, 화학제품인 양잿물을 사용하도록 해 천연재료로만 만들던 한지의 질을 떨어뜨렸다. 한지의 뛰어난 보존성은 이탈리아 교황청에서도 고문서 복원에 한지를 사용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기록원은 수천억원대로 추산되는 유럽의 고문서 복원 시장에 한지의 가치를 알려 ‘기록한류’란 새로운 행정한류를 퍼뜨릴 계획이다. 이미 한지는 미국 국회도서관, 하버드대 박물관에서 복원처리에 사용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이탈리아 도서병리학연구소에서도 한지를 복원용 재료로 인증했다. 그동안은 일본산 선지가 복원용지 시장을 선점했지만 한지의 우수성이 인정받아 ‘기록한류’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셈이다. 전통 한지를 꾸준히 소비하는 곳은 문서 복원에 사용하는 국가기록원이 유일하다. 연간 5000만원어치의 한지를 기록원에서 사용하지만 복원용 한지만으로는 전국 20여곳에 불과한 한지 공방이 전통 방식으로 꾸준한 생산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기록원은 전통 한지 시장을 확대하고자 훈장용지 개선사업을 추진했다. 국가기록원 직원들은 한지 스터디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주말이면 직접 장인을 찾아다니며 전통 한지 제조법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조선시대 왕이 내리던 문서인 교지와 가장 근접한 전통 한지를 재현해 훈장과 포장의 증서로 사용하게 됐다. 연간 훈·포장 증서와 대통령, 국무총리 표창장은 3만여명 규모로 발행된다. 올해는 약 3000여명이 전통 한지로 만든 훈장 증서를 받을 예정이다. ●일제 판결문·토지조사부 등 복원 추진 인사혁신처에서는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필경사가 직접 붓글씨로 공무원 임명장을 쓴다. 임명장의 붓글씨뿐 아니라 종이도 한지로 제작해 전통 한지의 시장을 넓히는 것이 국가기록원의 목표다. 인쇄가 어렵다는 단점을 보완해 보통 사무실에서 쓰는 컬러프린터로 인쇄할 수 있는 한지도 개발했다. 기록원 직원들의 미세한 붓끝에서 한지가 연결한 닥섬유를 타고 새 생명을 얻은 국가문서들의 가치는 막대하다. 서른세 살의 나이에 3군 총사령관을 맡아 6·25 한국전쟁을 지휘했던 정일권 전 국무총리의 작전명령서 등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 정부의 설립 기록이 되살아났다. 일제강점기의 판결문은 독립유공자 추서의 유일한 증거물이며 토지조사부는 국민의 재산권을 회복하는 기록이기 때문에 문서 복원은 국민 개개인의 존재 의미를 살려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기록문화유산 등재 세계 4위·亞 1위 역시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조선말 큰사전과 3·1 독립선언서도 국가기록원이 복원한 중요 문서다. 고문서 복원작업에도 참여해 조선시대 가장 화려했던 혼례 기록인 명성왕후와 순종왕후의 ‘가례도감의궤’ 복원도 국가기록원이 맡게 된다. ‘기록한류’는 새마을운동, 전자정부에 이어 새로운 행정한류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의 기록문화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전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10개의 유산이 등재될 정도로 이미 인정받았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많은 세계기록문화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국가기록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인 1968년 세워져 현재 서울, 부산, 대전에 기록관이 있고 재작년 세종시에 대통령 기록관을 건립했다. 우리나라 기록문화유산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조선왕조실록을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에 나눠 보관했다가 정족산,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 등에도 사고를 지어 보관했던 것과 비슷한 체계다. 왕의 잠자리까지 따라다니며 철두철미하게 기록을 남겼던 조선시대 사관의 책임의식은 오늘의 국가기록원까지 이어졌다. 기록한류는 단순히 기록을 많이 남기고 보존하는 것만이 아니다. 가장 기록한류로 내세울 점은 디지털 기록의 생산과 이관, 보존을 통합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만든 문서는 공공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생산 10년이 지나면 국가기록원에서 보관한다. 매년 법에 따라 수백만건의 문서를 국가기록원은 정보자원으로 자료화한다. 기록을 융합해서 생산과 연계되도록 하여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바로 기록한류다. 세계 어느 국가도 우리나라만큼 디지털 기록을 생산하여 바로 이관하고, 보존하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 없기에 기록한류로 알리는 것이 국가기록원의 역할이기도 하다. 이상진(55) 국가기록원장은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아카이브’처럼 우리의 국가기록원도 수도 서울에서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이는 곳이자 국민과 친밀한 장소가 되길 희망했다. 현재 대통령 기록은 모두 세종시 대통령 기록관으로 이관됐지만 기록원 서울관에는 여러 흥미진진한 전시물이 많다. 이 원장은 “인공지능인 ‘알파고’도 결국 기록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국가기록원이 모든 기록을 관리하고 특히 전통 한지를 살려내어 훈장 증서와 기록 보존에 사용하는 것은 나라의 격을 높이는 일이자 국가 미래의 길을 밝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내진설계 안 된 체육관이 지진대피소… ‘건축 전 단층조사’ 조례 시급

    내진설계 안 된 체육관이 지진대피소… ‘건축 전 단층조사’ 조례 시급

    땅 33㎡(10평)당 약 6명이 몰려 사는 도시 서울. 상상하기도 싫지만 강진이 덮친다면 어떻게 될까. 국민안전처가 지난해 7월 남북단층이 있는 서울 중랑교를 진앙지 삼아 규모 6.0의 강진이 발생한다고 가정해 분석한 결과 모두 1433명이 숨지는 것으로 예측됐다. 진도 6.5 강진 때는 사망자가 1만 2778명으로 10배가량 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518년(중종 13년) 서울에서 규모 6.0으로 추정되는 강진이 발생한 기록이 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신문의 신년기획 ‘한반도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1000만 인구가 사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지진 대비 상황과 문제점 등을 살펴봤다. 서울은 지진 무풍지대이자 무방비지대였다. 기상청이 1978년 지진 계기 관측을 시작한 이후 서울에서 감지된 가장 큰 지진은 규모 3.3(1989년 3월 11, 13일)이었다. 집안 집기류가 흔들리는 수준이다.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지진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학교 등 공공시설과 철도 등 공중이용시설 중 다수가 강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설계됐다. 하지만 ‘9·12 경주 강진’ 이후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크게 증폭되면서 건축물 등의 내진 설계를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낡은 학교 시설물에 대한 우려가 크다. 초·중·고교 건물 3451동 가운데 규모 6.0의 지진에 견딜 수 있는 건물 비율은 26.6%(917동)에 불과하다. 학교 건물 10곳 중 7곳 이상은 강진 앞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전국 전체 학교의 평균 내진 비율(23.8%)보다 약간 높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안심할 수 없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체육관 등 학교 건물이 지진 대피소로 지정돼 있는데 정작 이 건물 대부분은 내진 설계가 안 돼 있다”면서 “‘대피소가 가장 위험하니 가면 안 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시민의 발인 지하철도 위태롭다. 열차가 다니는 교량과 터널, 역사 등 도시철도 시설물 604개 가운데 452개(74.8%)만 내진 성능을 갖췄다. 시 관계자는 “지어진 지 오래된 1~4호선 시설물이 특히 지진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1995년 일본 오사카·고베 일대를 덮친 한신 대지진 때 철로가 엿가락처럼 휘었던 장면을 떠올려 보면 대비가 필요하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와 교량 등 시설물의 내진율은 81.4%다. 강남·북을 오가며 출퇴근할 때 시민들이 이용하는 잠수교 북단 지하차도나 동작지하차도 등은 서울시 기준상 내진 설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 하수처리시설도 내진율은 21.5%에 불과해 강진 때 하수도 역류 등으로 물난리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6월 ‘지진에 강한 서울을 만들겠다’며 지진 방재 종합계획을 세웠고 경주 지진 이후 보완해 9월 발표했다. 핵심은 올해부터 4년간 5500억원을 투자해 주요 시설물의 내진 성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공공건축물 1334곳 중 내진 성능을 갖추지 못한 251곳을 대상으로 올해 ‘내진성능평가’를 완료해 결과에 따라 내진을 보강해 나간다. 내진율 100%에 미치지 못한 공공건축물, 도로시설물, 하수처리시설 등의 내진 성능도 최대한 빨리 확보한다. 특히 도시철도는 모든 노선이 규모 6.3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 보강 공사의 속도를 높이기로 하고 올해 지난해보다 200억원 더 많은 498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또 지진 발생 때 신속한 정보 전달을 위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인 ‘서울안전앱’을 내년 상반기까지 만들고 교통방송과 지하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정보 전달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지진에 대비하려면 한반도 땅 밑 구조, 즉 활성단층(진앙이 되는 살아 움직이는 단층)을 파악해야 한다. 손 교수는 “단층의 위치를 알아야 위험시설물 등을 건설할 때 피해 짓거나 내진 설계를 강화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활성단층 지도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에도 북한 원산에서 충남 보령까지 잇는 활성단층인 ‘추가령단층대’가 지난다. 추가령단층대는 지난해 경주 지진을 만든 양주단층대와 마찬가지로 규모가 크고 폭이 넓은 ‘1등급’이다. 문제는 돈이다. 땅을 깊게 파 주요 지점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다. 서울처럼 대도시는 땅이 아스팔트로 덮인 까닭에 더 어렵다. 손 교수는 “단층 조사는 수십년이 걸려도 꼭 해야 한다”면서 “예컨대 3층 이상 건축물을 지을 때 땅을 파면 지하 단층 조사를 반드시 하도록 조례를 만들어 이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쌓으면 비용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획일화된 기준으로 내진 설계를 강화하는 대신 여건에 따라 유연한 기준을 적용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부 교수는 “예컨대 한강변 건물은 무른 퇴적층에 세워진 탓에 지진파가 오면 더 위험하다”면서 “이런 터에 세우는 건물은 내진 기준을 높이고 대신 단단한 지반에 지은 건물은 내진 기준을 완화하는 등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주말 영화]

    ■캐스트 어웨이(EBS1 일요일 오후 2시 15분)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다. 택배회사 간부 척(톰 행크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사랑하는 연인 켈리(헬렌 헌트)를 뒤로한 채 심야 비행에 나섰다가 조난당한 뒤 외딴섬에서 홀로 겪게 되는 일을 그렸다. ‘포레스트 검프’(1994)를 합작하며 오스카와 골든글로브를 휩쓸었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과 톰 행크스가 다시 의기투합했다. 체중 30~40㎏을 찌우고 빼며 열연한 톰 행크스는 감동으로 중무장한 이 영화로 세 번째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노렸으나 아쉽게 불발됐다. 이후 아직까지 후보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사단 출신인 저메키스 감독은 ‘로맨싱 스톤’(1984)과 ‘백 투 더 퓨처’(1985)가 연이어 대성공을 거두며 흥행 감독 반열에 올랐다. 톰 행크스와는 ‘폴라 익스프레스’(2004)까지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 2000년 작. ■광해, 왕이 된 남자(OBS 일요일 밤 10시 10분) 1인 2역의 연기를 펼친 이병헌에게 천만 배우의 타이틀을 안겨 준 작품이다. 조선 15대 왕인 광해군에 대한 엇갈린 평가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지 않은 광해군 시절의 15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빼다박은 용모 때문에 광해군의 대역을 하게 된 저잣거리 만담꾼이 정사에 관여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허균을 연기한 류승룡과 이병헌의 호흡이 돋보인다. 3전 4기 만에 천만 감독 대열에 합류한 추창민 감독은 새해에는 정유정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7년의 밤’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2012년 작.
  •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근대문명의 이식과정이었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근대문명의 이식과정이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해 온 뉴라이트 계열 대표적인 경제학자 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최근 기원전 3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한국경제사’를 펴냈다. 이번 책에서도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의 근대화에 결과적으로 기여했다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치고 있다. 2권으로 구성된 이번 책의 1권 머릿말에서 이 교수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서유럽에서 발생한 근대문명이 이식되는 대전환의 과정이었다. 대한민국은 일본이 이식한 근대 문명을 계수해 건립된 국가”라고 명기했다. 친일사관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2권 머릿말에서는 “경박하게 제국주의의 시혜라고 해선 곤란하다”며 “일본이 그런 변화를 일으킨 것은 한반도를 그의 영토로 영구합병하기 위한 엄청나게 큰 도둑의 심보였다”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책의 전반에서 나타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탈색시키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조선, 대만, 관동주(뤼순, 다롄에 설정된 일제시대 조차지역), 만주를 동아시아 자본주의 권역으로 설명하고 있다. 동아시아자본주의가 자족적 경제권으로 통합되면서 급속하게 성장해 조선도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이 동화의 목적으로 실행한 제도의 변혁은 조선에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온전하게 이식했다”며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거대한 경제적 순환은 조선에서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을 견인했다”고 주장했다. 또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들은 노예상태였다’는 통설에 대해서도 한국인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법과 정책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한국인의 생활 수준이 개선됐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이번에 펴낸 책에서 그는 ‘일제’라는 단어 대신 제국주의적 성격이 탈색된 ‘일본’이라는 용어를 쓰고 1910~1945년 일제강점기도 단순히 ‘일본이 통치한 시기’라는 의미의 ‘일정기’로 표현하고 있다. 또 최근 정부의 역사 국정교과서 발간을 둘러싸고 논란이 됐던 건국절 논란에 대해서 이 교수는 “조선왕조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승만을 매개로 해 연속성을 가진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은 조선왕조 개창 이래 오랫동안 한국인을 포섭해 온 성리학을 대신해 자유민주주의라는 외래 이념이 한국인의 정치 사회생활을 통합하는 새로운 원리로 자리 잡는 문명사적 대전환이었다”며 뉴라이트에서 주장하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지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박차’ 강북구, 4·19혁명 토론회 개최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박차’ 강북구, 4·19혁명 토론회 개최

    지난해까지 한국은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등 모두 13건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미래세대에 전수해야 할 가치가 있어 이를 보존하고 보호하고자 한 것이다. 서울 강북구도 지난 5월 4·19혁명 유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선정 발표는 세계기록유산국제자문위원회(IAC)의 심사를 거쳐 내년 8월쯤 있을 예정이다. 4·19가 독재정권을 비폭력저항으로 붕괴시킨 학생혁명의 효시로서 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강북구가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4·19혁명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학술토론회’를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등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연구해 온 조지 카치아피카스 전 웬트워스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4·19혁명의 세계사적 의의’를 기조발표한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2006년부터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을 겸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과 동남아시아 사회운동의 상호영향을 연구하기도 했다. 토론자는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정해구 교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커뮤니케이션팀 김귀배 팀장이 나선다. 이외에도 이날 토론회에는 박겸수 강북구청장을 비롯해 시민 등 1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박 구청장은 “최근 광화문을 밝히는 촛불도 4·19혁명의 유산이다. 우리 후세들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을 이끈 4·19열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절대 잊어선 안 될 것”이라면서 “4·19혁명 기록물들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는 날까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열린세상] 아름다운 ‘행정혁명’을 준비하자/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름다운 ‘행정혁명’을 준비하자/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프레데리크 쇼팽의 피아노 연습곡 ‘혁명’은 1831년 고국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로 가는 길에 수도 바르샤바가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썼다는 유명한 곡이다. 그래서인지 3분 정도의 짧은 곡이지만 쇼팽이 품었던 당시의 격정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족과 조국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걱정의 마음도 절절히 느껴진다. 그 화려함과 독특한 선율을 듣다 보면 마치 아름다운 혁명의 시(詩)를 읽는 듯하다. 연인원 800만명을 넘어선 촛불 시민혁명이 전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아름다운 혁명의 시와 노래가 매주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촛불 시민들의 행동은 착하고 아름답지만 그들의 함성만큼은 강하고 분명하며 단호하다. 국정을 농락한 저질 스캔들, 권력과 부의 해괴한 결탁, 그리고 특권이 돼 버린 불의와 편법에 분노해 항거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적폐를 도려내는 진성 혁명을 명령하고 있다. 그동안 숨죽였던 공직사회도 국민의 준엄한 명령에 귀 기울여야 한다. 문화, 스포츠, 의료, 교육 등 각 분야의 붕괴된 공적 시스템을 회복하고, 아름다운 촛불 혁명을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행정혁명’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되짚어 보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행정혁명의 역사는 멀리 1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튜더 왕조의 재상 토머스 크롬웰은 당시 영국을 중세 정부에서 근대 정부로 변모시킨 혁명가였다. 절대왕정 시대였음에도 왕실과 국정을 분리해 가문과 혈통보다는 능력과 열정을 중시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역사학자 제프리 엘턴은 이를 ‘정부혁명’이라 일컫는다. 우연의 일치일까. 같은 시기에 정암 조광조는 조선 왕조의 행정혁명을 주도하고 있었다.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꿈꾸며 연산군 시대의 구습과 악폐를 혁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 했다. 모든 백성이 잘살고 도덕이 충만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역사와 시대를 앞서갔던 크롬웰이나 조광조처럼 우리 정부도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우선 주권자인 시민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하는 새로운 행정 패러다임을 구상해야 한다. 정부와 시민이 함께하는 동반자적 ‘공동정부’를 만들자. 예일대 교수 브라이언 포드가 주장한 소위 ‘액체 민주주의’ 방식은 어떨까. 시민들에게 공공 사안을 결정하는 투표권을 직접 부여하고, 이를 대의 기구에 위임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정부 구조와 사람, 문화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먼저 정부 구조의 혁명이 필요하다. 책임은 없고 권한만 누리는 권력기관들은 광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비리와 불법이 판치는 시국 상황에서도 감사원은 너무나 조용하다. 청와대 비서실을 비롯해 총리실과 국정원 등은 작동을 거의 멈췄다. 설립 목적이나 존재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행정 부처들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주무관-사무관-팀장·과장-국장-실장-차관-장관-청와대비서관-청와대 수석-비서실장-대통령이라는 12단계의 쇠사슬 계층 구조를 두고 정부의 변화나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람, 즉 인재혁명도 필요하다. 불과 한 달여 만에 조류인플루엔자로 가금류 200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또 하나의 실패한 정부의 상징이다. 복종에 길든 무능한 장관과 공직자들 때문에 국민은 피눈물을 흘리고 속마음은 타들어 간다. 국민의 소리에 둔감하면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적재적소와 신상필벌의 공정한 인사 시스템 없이는 행정혁명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행정문화의 혁명 또한 시급하다. 구조와 사람이 줄기와 잎사귀라면 문화는 밑동이자 뿌리다.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행정혁명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우선 공직사회에 만연한 형식주의와 정실주의 문화부터 끊어야 한다. 명령과 지시만 가득한 회의와 교육, 의전이 지배하는 업무 관행, 무난함만 강조하는 관료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직하고 튼튼한 정부를 위해 광장을 밝힌 촛불만큼 아름다운 ‘행정혁명’을 차분하게 준비해 보자.
  • [프로야구] 두산이 넘어야 할 ‘두 산’

    KIA 양현종·용병 영입 ‘대권’ 도전 LG ‘F4’ 못지않은 4선발진 꾸려 두산 에이스 니퍼트 도장만 남아 인기구단 KIA와 LG가 전력을 대폭 보강하면서 최강 두산의 ‘대항마’로 주목받고 있다. 프로야구 KIA는 지난 20일 자유계약선수(FA) 좌완 양현종과 1년 총액 22억 5000만원에 계약했다. KIA 잔류를 선언하고 ‘대박’ 꿈을 키웠던 양현종과 그의 해외 진출을 기정사실화하고 물량 공세를 사실상 끝낸 KIA는 계약에 진통을 겪었지만 1년이라는 파격적인 절충안 도출에 성공했다. KIA는 이번 ‘겨울야구’에서 승리하면서 내년 ‘대권’ 도전의 꿈을 부풀리게 됐다. 올해 ‘가을야구‘ 진출로 가능성을 확인한 KIA는 시즌 뒤 지갑을 활짝 열고 발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내부 FA 나지완(4년 60억원)을 끌어안았고 FA 최대어인 타격 3관왕 최형우까지 붙잡았다. 한국프로야구 첫 FA 100억원(4년) 시대까지 열었다. 이들에 앞서 용병 영입도 일찍 끝냈다. 검증된 헥터(15승)와 170만 달러에 재계약했고 양현종의 전력 이탈을 전제로 좌완 팻 딘(90만 달러), 수준급 타자 필을 대신해 로저 버나디나(85만 달러)를 낚았다. KIA는 헥터-딘-양현종으로 업그레이드된 3선발을 꾸렸고 김주찬-최형우-버나디나-이범호-나지완을 잇는 폭발적인 타선을 구축했다. 검증되지 않은 버나디나가 변수지만 최형우의 가세만으로도 파괴력은 물론 시너지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다. LG도 역대 투수 최고 대우로 좌완 차우찬(4년 95억원)을 영입하며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LG는 검증된 기량으로 서둘러 재계약한 허프-소사 ‘원투 펀치’에 우완 류제국, 좌완 차우찬으로 4선발진을 완성했다. 우규민(삼성)이 떠났지만 두산의 최강 선발진 ‘판타스틱4’에 못지않아 내년 ‘빅3’로 평가받고 있다. 아직 내부 FA 봉중근, 정성훈과 미계약 상태지만 보상 선수를 내줘야 하는 타 구단의 부담 탓에 둘은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다. 우규민의 보상선수 최재원도 공수에서 힘을 보탤 태세여서 LG의 전력은 정상을 노리기에 손색이 없다. 한국시리즈 2연패로 새 ‘왕조’ 기틀을 다진 두산은 KIA, LG의 거센 도전이 예상되나 내년에도 우승 1순위로 꼽힌다. 보우덴과 에반스를 잡는 등 전력 공백은 없지만 아직 에이스 니퍼트의 도장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내년에도 함께한다는 공감대가 충만해 조만간 합의점에 이를 분위기다. 넥센은 전력 누수 없이 한현희와 조상우의 복귀를 앞두고 있어 강팀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NC는 최고 용병 테임즈, 삼성은 투타의 핵 차우찬과 최형우, SK는 수술대에 오른 김광현이 빠져 큰 구멍이 생겼다. 또 한화, 롯데, kt는 전력 보강이 없어 내년에도 하위권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열린세상] 옛 시인들의 역사 읽기/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열린세상] 옛 시인들의 역사 읽기/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고려 말 삼은(三隱)이라는 세 현자(賢者)가 있었다.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를 뜻한다. 삼은의 공통점은 사회 개혁에는 찬성했지만 혁명은 반대했다는 점이다.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고려 왕실을 무너뜨린 새 왕조가 들어서는 것은 반대했다. 고려 왕조는 존속시키는 전제하에서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온건개혁파였다. 바로 이점이 새 왕조 개창을 주장한 정도전·조준 등의 역성혁명파와 갈라지는 부분이다. 그런데 목은 이색의 ‘독사’(讀史·역사를 읽고)를 읽으면 마치 고려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읊은 것처럼 생각될 정도이다. ‘간사한 계책을 하늘도 때론 돕는지/충성스러운 말이 때때로 용납되지 못하네’(奸計天或相/忠言時不容) 충언이 용납되지 못하는 것은 정권이나 왕조가 망할 징조이다. 이 정권 사전에 ‘충언’이란 단어는 없다는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라는 위태로운데 사당의 깃발만 나부끼고/임금은 허수아비와 같네’(國危私黨偏/君弱偶人同) 사당(私黨)은 공당(公黨)의 반대말로, 공익이나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위하는 무리를 뜻한다. ‘친박’이라는 용어 자체가 공당보다는 사당에 가까운데, 이런 용어로 규정되어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몰려다닌다. ‘북핵·안보·민생’을 전유물처럼 사용하더니 자신들에게 위기가 닥치자마자 ‘북핵·안보·민생’은 어디에 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다. ‘임금은 허수아비와 같네’라는 시구는 최순실이 권력서열 1위인 지금의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변옥과 연석이 뒤섞여 있고/산묘가 간송에 그늘을 드리웠네’(卞玉參燕石/山苗蔭澗松) 변옥은 초(楚)나라 변화(卞和)의 화씨벽(和氏璧)으로 천하의 보물이다. 반면 연석(燕石)은 하북성 연산(燕山)산맥의 돌로 검붉은색 때문에 옥처럼 보이지만 돌에 불과하다. 연산산맥은 바위로 된 양산(陽山)산맥인데, 그 끝자락에 한나라 낙랑군 수성현에 있다는 갈석산도 있다. 이색은 그나마 고려 조정에 변옥과 연석이 뒤섞여 있다고 한탄했지만 현재 이 정권에 변옥이 있다고 볼 사람이 있겠는가? 이색이 살아 있다면 ‘보이는 건 모두 다 연석뿐이네’(所見皆燕石)라고 읊었을 것이다. 간송은 골짜기 아래 큰 소나무를 뜻하고 산묘는 산꼭대기의 작은 묘목을 뜻한다. 서진(西晋) 때 좌사(左思:250~305)가 지은 ‘영사팔수’(詠史八首)라는 시가 있는데 그 둘째 수에, ‘골짜기 아래에는 울창한 소나무가 있고, 산 위에는 가지 더부룩한 묘목이 서 있는데, 지름 한 치짜리 저 묘목이, 백 척 소나무에 그늘을 드리우네’(鬱鬱澗底松 離離山上苗 以彼徑寸莖 蔭此百尺條)라는 시구를 응용한 말이다. 지름 한 치짜리 소인배들이 권력을 잡고 울창한 군자들을 억압하는 작금의 정국과 일치한다. ‘자연스레 흐르는 눈물을 닦아도 눈물이 나와/□를 막고 푸른 하늘 바라보네’(?然?淸淚/掩□向晴空·원문에 한 글자 누락) 목은 이색은 고려가 망할 것을 알았기에 눈물을 주체 못하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포은 정몽주가 뒤늦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라고 노래했어도 왕조의 멸망을 막을 길이 없었고, 야은 길재(吉再:1353~1419)는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라고 망한 왕조의 폐허를 슬퍼해야 했다. 당나라 시성 두보(杜甫)가 ‘춘망’(春望)에서 ‘나라는 무너졌어도 산하는 그대로이고, 성에 봄이 오니 초목은 우거졌네’(國破山河在/城春草木深)라고 노래한 것과 짝하는 시이다. 고려 왕조의 존속을 희구했던 삼은은 왕조에 가장 큰 위협은 역성혁명파가 아니라 망국의 목전에서도 자신들의 이익만 챙겼던 구가세족(舊家勢族)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나라를 뒷배로 정권을 잡은 구가세족들은 이성이 통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이 틈에 역성혁명파는 혁명적 토지개혁으로 민심을 잡아 고려를 멸망시키고 새 왕조를 개창했다. 세상 걱정, 나라 걱정은 늘 삼은의 몫이고, 세상 이익은 늘 구가세족들의 몫인 세상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제는 이런 세상을 접고, 새 세상을 열 때가 되었다는 것이 촛불민심의 의미일 것이다.
  • “태영호 국정원 산하기관서 부원장급 대우할 것”

    “태영호 국정원 산하기관서 부원장급 대우할 것”

    19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북한의 신변 위협에도 공개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그는 다른 고위급 탈북자들과는 달리 언론 인터뷰와 TV출연, 외부 강연 등 적극적 행보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입국 당시부터 내외신의 주목을 받았던 만큼 신분 노출을 꺼리는 여타 고위급과는 사정이 다르다. 최근 귀순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에 속하는 태 전 공사는 누구보다 북한 정권의 민낯을 잘 아는 사람이다. ‘김씨 왕조’ 우상화로 점철된 북한 사회에 대해 생생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단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 또는 전문위원 직책을 가지고 대외활동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외교가에서도 주요 공관으로 평가받는 주영대사관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경력으로 볼 때 권력층 내부와 관련한 민감한 정보를 알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국정원 산하 기관에서 활동하며 북한 정세에 대한 분석과 자문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는 탈북한 외교관, 당 간부, 무역일꾼 등이 주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원에는 고영환·현성일(외교관), 김광진(해외주재 무역일꾼), 설정식(양강도 청년동맹 책임자)씨 등 십수명의 탈북자들이 소속돼 있다. 때문에 태 전 공사에 대한 신변안전을 고려할 때 보안이 철저한 국정원 산하기관이 적격이란 분석이다. 한 정보 소식통은 “정부도 북한 외교나 정세에 정통한 태 전 공사에게 자문할 일이 많을 것”이라면서 “국가안보연구원에서도 최대 부원장급으로 대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소장도 “태 전 공사 정도의 탈북자는 근래에 없었다”면서 “가족과 동반 입국했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없다. 언론 인터뷰 등 다양한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한편 태 전 공사는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단과 만나 “북한에서 고위층일수록 정권 감시가 심해져서 자택 내 도청이 일상화됐다. 지난 5월 처형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도 집에서 이야기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정권의 고위층 감시 실태와 현 부장의 처형 이유가 북한 고위 관리 출신의 입으로 직접 거론된 것은 처음이다. 태 전 공사는 ‘자금횡령 범죄를 저지른 뒤 처벌이 두려워 도주했다는 북한 측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이에 대비해 귀순 전 대사관 내 자금 현황을 정산해 사진 촬영까지 해 놓았다’고 밝혔다고 이 위원장은 전했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태 전 공사는 “내가 기여하기 전에 통일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며 농담조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씨줄날줄] 롯데의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박홍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롯데의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박홍기 논설위원

    1434년 세종 16년 4월 26일 일이다. 세종이 형조에 명하길 “여자 종이 아기를 낳으면 그 남편도 30일 뒤에 구실을 하게 하라”라고 했다(조선왕조실록 64권). 남편에게 주는 출산휴가다. 앞서 만삭이거나 출산 뒤 100일이 지나지 않은 여종에게 일을 시키지 않도록 명령했지만 돌봐 줄 사람이 없어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나는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실록에 노비(婢子)나 천민의 처(役人之妻)로 기록된 점으로 미뤄 하층민들에게 국한된 듯싶지만 세종은 한참 시대를 앞서갔다. 노동법 제19조는 육아휴직 관련 조항이다. 남성도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1년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남성 육아휴직은 아직 낯선 편이다. 경제적 부담이라는 개인적인 사정이 없지 않지만 최대 걸림돌은 직장 분위기다. 업무 공백과 함께 남은 동료의 부담 등을 포함한 직장의 곱지 않은 ‘시선’ 탓이다.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이라는 삐딱한 사회적 통념도 한몫하고 있다. 까닭에 남성 육아휴직 자체가 종종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유명인일수록 화제를 낳았다. 영국 윌리엄 왕세손은 2013년 첫아들 조지 왕자가 태어났을 때 공군 복무 중이었으나 2주간 출산휴가를 냈다.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역시 2000년 총리 재직 때 부인 셰리가 출산을 앞둔 시점에서 2주간 휴가를 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2010년 둘째 딸이 태어나자 2주간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따져 보면 영국에선 더이상 남성 출산휴가든 육아휴직이든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셈이다.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해 11월 아내 프리실라 찬이 첫딸을 낳자 회사 사규대로 솔선해 두 달간 휴직했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이탈리아 등에서는 아예 ‘육아휴직 남성 할당제’를 마련해 선택이 아닌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남성 육아휴직은 유명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은 지난해 4872명으로 전년보다 무려 42.4%나 늘었다. 2012년 1790명, 2013년 2293명, 2014년 3421명이었다. 가파른 상승세다. 한국에서도 상징적인 남성이 나서서 육아휴직을 쓴다면 사회적 인식도 훨씬 빠르게 변할 것이다. 롯데그룹이 대기업 최초로 내년 1월 1일부터 최소 1개월 이상 아빠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급여도 평소처럼 지급할 예정이다. 신선하다. 롯데는 2012년 여직원의 의무육아휴직제를 실시해 사용률을 95%까지 끌어올린 터다. 다른 기업들도 가야 할 방향임에 틀림없다. 정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일과 가정의 조화를 여성에게만 적용하는 시대가 아니다. 가정의 행복이 일로 전이될 때 능률은 높아지고 사회는 한층 활력이 넘칠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금요 포커스] 국민안전,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정윤수 한국행정연구원장

    [금요 포커스] 국민안전,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정윤수 한국행정연구원장

    3개월 전 한국은 ‘남의 일’로만 여기던 지진을 경험했다. 사실 한반도는 통념과 달리 예부터 지진과 무관한 지역이 아니었다. 가장 오래된 지진 발생 기록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중종 때는 무려 400여건의 지진이 발생했다. 중종 재위 당시 거듭된 천재(天災)는 현 치세에 대한 하늘의 뜻이라 하여 왕권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에 재상이 사직을 청하며 책임을 지고자 했고 임금은 스스로 부덕을 탓하며 백성 구휼에 힘을 쏟았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큰 재난이 일어났을 때 그 책임과 대책 마련에 대한 기대의 화살은 위쪽으로, 즉 국가와 리더십을 향하곤 했다. 최근의 삼성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에 대한 한국과 미국 정부의 대처는 국민안전을 위한 국가적 대응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미국 연방교통부는 연이은 기기 폭발 사태에 즉각적으로 대응해 문제 기기의 항공기 반입을 금지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발표가 있은 뒤에야 한발 늦게 항공기 반입 금지 조치를 취했다. 국민 안전의 책임은 국가에 있다. 환경 변화와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불확실성은 증가하고 있다. 재난의 규모와 파급력도 과거보다 훨씬 더 커졌다. 작은 실수가 커다란 사고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전 사회에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국가는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녔지만, 100%의 예방과 완벽한 대처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안전사회를 만들려면 정부와 학계, 국민 등 전 사회, 각 분야의 노력과 협조가 필요하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수많은 징후와 작은 사고들이 일어난다. 이를 ‘하인리히 법칙’이라 부른다. 왜 여러 번의 경고신호가 여기저기서 울려도 사고를 막지 못할까. ‘여기’와 ‘저기’가 서로의 일을 알지 못하고 ‘한 번’이 ‘여러 번’이 되어 전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미 일어난 사고의 대응에 있어서도 손발이 맞지 않아 피해를 키운 경우가 숱하다. 위험을 감지,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려면 각 부문이 긴밀히 협조하는 총체적 안전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의 융합적인 접근과 협업이 중요하며 민·관·학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시스템의 구축과 통솔은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지난달 한국행정연구원은 여러 국책연구기관의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재난안전 관련 정책 연구에 대해 토의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각 분야의 연구기관들이 연구 결과를 공유하며 안전사회 구축을 위한 융합적 접근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모색하고 다각적인 안전정책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안전 문제의 적극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과 함께 다양한 주체들의 문제의식과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어린이 통학차량사고를 줄이고자 2015년 이른바 ‘세림이법’이 시행됐으나, 대폭 강화된 안전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고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제도적으로는 꾸준한 보완이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실천이 미진해 쉽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정책과 규제의 ‘안전 테두리’를 만들면 이 안에서 관리할 책임은 통학버스 운영 기관과 담당자들의 몫이며, 어린이에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안전에 대한 개념을 심어 주는 것은 교육자와 부모의 책임이다.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현실적인 지원과 점검, 관리자 및 실무자의 안전의식 제고 등 여러 방향에서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안전사회를 누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안전의식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이 받치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 안전을 확보하려면 각 주체가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안전사업이 제대로 수행되는지, 안전관리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는지에 대한 적절한 평가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능동적인 책임감이 자리잡을 때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의식이 높아질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안전사회가 확립될 수 있다.
  • [씨줄날줄] 풍문탄핵/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풍문탄핵/서동철 논설위원

    효종 2년(1651) 6월 6일 부사과(副司果) 민정중(1628~1692)이 상소한다. 한마디로 ‘백성은 임금이 즉위한 뒤 어진 정사를 고대했지만 시행하는 일이 수습할 수 없게 됐으니 나라를 다스릴 하나의 큰 형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민정중은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임금에 대한 직언(直言)으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인조 27년(1649) 문과에 급제했으니 벼슬길에 나서고 만 2년에 불과한 23세 젊은 관리의 당돌한 상소가 아닐 수 없다. 민정중은 효종에게 여덟 가지 개선안을 제시하는데, 특히 ‘인재를 헤아리는 것으로 책임을 맡기는 방도를 삼는 것’과 ‘신하들을 접견하여 아랫사람의 뜻을 소통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사가 만사’라는 것인데 ‘무턱대고 발탁하여 쓰는 것이 분수를 넘어 사람과 벼슬이 서로 걸맞지 않는다’고 했다. 임금의 소통 부족을 지적하면서는 ‘신하들을 드물게 접견하여 아랫사람의 뜻이 소통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폐단은 없다’고 했다. ‘삼가 원컨대 성상께서는 스스로 반성하여 노력하소서’로 끝나는 상소문을 보고 효종은 심기가 뒤틀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이 어린 하급 관리로 글을 올려 국사를 말하였는데 말이 시의에 절실한 것이 많았다. 그 충직함은 참으로 가상하니 특별히 호피(虎皮)를 내려 나의 가상히 여기고 권장하는 뜻을 보이도록 하라’고 하교(下敎)했다. 조선은 임금과 신하 사이 이 정도의 소통은 이루어질 수 있는 인식과 제도의 틀을 갖추고 있었다. 조선 왕조는 임금의 잘못을 논하는 간관(諫官)과 관료의 비리를 감찰하는 대관(臺官)을 제도화했다. 대간(臺諫)으로 통칭하는 사헌부와 사간원의 언관(言官)들은 양반 사회의 공론(公論)을 바탕으로 논의를 일으켜 절대권력을 견제하고 부정부패를 막았다. 조선 중기까지 이 시스템은 제법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대간은 임금이나 고관들의 도덕성을 신랄하게 파고들었다. 실정(失政)을 거듭한 왕을 물러나게 하는 방법은 반정(反正)밖에 없었지만, 고위 관리에 대한 탄핵은 다반사였다. 풍문탄핵(風聞彈劾)이라고도 하는 풍문공사(風聞公事)를 용인했던 것도 도덕성을 높이는 데 역할을 했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부정부패는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소문만으로도 탄핵을 가능케 했다. 탄핵을 받으면 억울해도 물러나는 것이 순리였다. 풍문탄핵은 사림정치의 기반이기도 했다. 탄핵 주체의 도덕성이 드높았을 때 효율 또한 높았던 풍문탄핵은 붕당정치에 세도정치까지 횡행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도 사실이다. 그럴수록 깨끗지 못한 소문만으로도 수신제가에 실패했음을 자성하며 구차하게 자리를 보전하는 데 급급하지 않았던 풍문탄핵의 전통은 오늘날 더욱 필요한 듯싶다. ‘최순실 청문회’에서 쏟아진 그 많은 말은 풍문도 아닌 진실이 아닌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우주를 보다] 백옥 같은 태양 표면… 지구엔 불길한 기운?

    [우주를 보다] 백옥 같은 태양 표면… 지구엔 불길한 기운?

    지옥 같은 모습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 그러나 태양의 표면은 마치 화장한 듯 깨끗한 모습으로만 보인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태양활동관측위성(SDO)에서 촬영한 태양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공개했다. 이 사진은 지난달 14~18일 SDO가 태양의 활동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보통 검게 나타나는 흑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태양 활동량 ‘흑점’ 11년 주기 극대·극소 교차 강력한 자기장이 만들어 내는 태양의 흑점은 주변 표면보다 1000도 정도 온도가 낮아 검게 보인다. 흑점의 중심부에서 용암이 흘러나오듯 플라스마가 분출된다. 특히 흑점 관측이 중요한 이유는 흑점이 많을수록 태양 활동이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흑점이 많아진다는 것은 태양 활동이 왕성하다는 신호로,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가 많아지고 적으면 그 반대가 된다. ●사라지는 흑점… 기온 떨어지고 대가뭄도 실제로 흑점이 보이지 않으면 지구의 기온이 약간 떨어져 지구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이는 역사적인 기록에도 남아 있다. 과거 1000년 동안 태양 흑점이 장기간 사라진 것은 최소 세 차례로, 이후 큰 가뭄이 들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흑점이 관측되지 않았던 15세기 10여년에 걸쳐 대가뭄이 이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태양 흑점이 사라지는 현상 역시 지구에 불길한 기운이 닥친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태양 흑점이 사라지는 것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태양은 11년을 주기(Solar Cycle)로 활동하는데, 흑점 수가 최대치에 이를 때를 ‘태양 극대기’(solar maximum), 그 반대일 때를 ‘태양 극소기’(solar minimum)라 부른다. 곧 2013~2014년 초 태양은 극대기에 해당됐으며 당시 지구는 흑점 폭발로 인한 단파통신 두절, 위성 장애, 위성항법장치 오류, 전력망 손상 등을 걱정해야 했다. 이와 반대로 지금은 태양 극소기로 접어들어 흑점 활동이 줄었을 뿐 또다시 흑점이 이글이글 타오를 것이라는 것이 NASA의 전망이다. ●일부 학계 “2030년 무렵 미니 빙하기 온다” 그러나 일부 학계에서는 지구에 미니 빙하기가 올 수 있다는 논문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영국 노섬브리아대학 태양과학자 발렌티나 자르코바 교수는 태양 활동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태양 활동이 2030년 무렵에 60% 감소해 10년 동안 미니 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구가 마지막으로 미니 빙하기를 겪은 것은 이른바 마운더 극소기(Maunder Minimum)로 불리던 시기로 1645년부터 1715년까지 지속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땅끝, 희망 시작… 언제나 36.5℃

    땅끝, 희망 시작… 언제나 36.5℃

    북위 34도 17분 38초. 섬을 제외하고 한반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곳.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 안내판에 적힌 글귀다. 뭍은 여기서 끝나지만 희망은 비로소 시작된다.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 남루했던 한 해를 남김없이 털어 내고 순백의 도화지 같은 새해를 맞으려는 이들이 땅끝마을을 찾는 건 바로 그 때문일 터다. ●모노레일 타고 사자봉에 올라 온몸으로 맞는 새로운 시작 땅끝마을을 찾는 이들은 대개 서정적인 해넘이 풍경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땅의 끝이라는 지리적 상징성 속에서 한 해의 모든 시름을 부여안고 가라앉는 해를 보는 느낌이 각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끝마을은 사실 해돋이 장면이 더 힘차고 아름답다. 겨울철엔 마을 왼쪽의 백일도와 흑일도 사이에서 해가 뜬다. 방울토마토를 닮은 해가 너른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을 붉게 물들이는 장면은 서정적이면서도 장쾌하다. 맴섬 일출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맴섬은 땅끝마을 표지석 바로 앞에 있는 갯바위다. 일 년에 단 두 차례, 2월과 10월 중순에 맴섬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이 장면을 담기 위해 전국의 사진가들이 몰린다. 새해엔 이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뭐, 꼭 맴섬 일출이라야 맛이랴. 바닷가에 서서 온몸으로 새 시작을 맞으시라. 외려 그게 낫다. 포구 뒤는 사자봉이다. 정상에 세워진 횃불 모양의 전망대가 이채롭다. 높이 400여m의 사자봉까지는 모노레일이 운행되고 있다. 바다를 굽어보며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전망대 주변에 땅끝탑과 희망의 샘,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따라 땅끝조각공원 등 명소 즐비 땅끝마을 주변의 적요한 해안가를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송지면 엄남리 해안에서 땅끝마을을 거쳐 사구리 해안까지 가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다. 드라이브 코스 주변에 송호해변, 땅끝관광지,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사구미해변, 땅끝조각공원 등 명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땅끝조각공원에 서면 땅끝마을과 주변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바다를 향해 돌출한 ‘땅의 끝’과 보길도 등 주변 섬들이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땅끝조각공원에는 26점의 조각 작품이 전시돼 있다. 해남의 산천과 남도의 풍광을 새긴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아울러 송호해변은 울창한 솔숲, 사구미해변은 1.5㎞에 이르는 모래사장이 아름답다. ●이순신 장군과 ‘女스파이’ 어란의 구구절절한 전설 깃들어 해남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어란 여인’ 이야기다. 명량해전의 틈바구니에서 이순신 장군과 ‘여성 스파이’ 어란, 그리고 그의 연인이었던 왜군 장수가 얽히고설켜 영화 같은 이야기를 펼쳐 낸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전설’ 수준의 이야기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어란 여인 이야기는 사실 정사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편에 관련 내용이 비치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보여지는 대목이 등장한다는 것이 전부다. 이순신 장군과 명량해전의 눈부신 전공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있는 이야기라며 불온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게다가 일본인 손에 의해 전해진 이야기란 점은 이 같은 부정적 인식에 불쏘시개로 작용하고 있다. 이야기의 얼개를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꼭 두 개의 시점으로 제작된 영화를 보는 듯하다. 첫 장면은 해남의 일본인 사와무라 하치만다로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순사였던 그의 귀에 어느 날 어란 여인 이야기가 흘러 들어간다. 평소 해남 땅에 뼈를 묻고 싶다고 말했던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 유고집이 나오는데, 바로 여기에 그동안 채집했던 어란 여인 이야기가 담긴다. 이게 2006년 해남의 박승룡옹에게 전해졌고,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두 번째 장면은 전쟁터에서 시작된다. 정유재란 때 어란진에 주둔하던 왜장 간 마사가게(菅正陰)는 어느 날 자신의 연인이었던 어란에게 출병 기일을 발설한다. 어란 여인은 이를 이순신 장군에게 전하고, 이는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끄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어란 여인은 ‘해남의 논개’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어란 여인은 명량해전 이튿날 여낭터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연인이 울돌목 해전에서 전사한 것을 비관해서다. 자신의 첩보 덕에 조선은 누란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정작 자신과 연인은 죽음으로 연을 끊어야 했다. 이러구러 여낭터에서 떠밀려 온 어란 여인의 시신은 한 어부가 거둬 어란마을 끝자락의 바닷가에 묻는다. 그 자리엔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석등롱(石燈籠)이 세워진다. 어란 여인과 관련해 찾아볼 만한 장소는 두 곳이다. 그가 몸을 던진 여낭터와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석등롱을 세운 어란마을이다. 여낭터는 어란마을 건너편의 바위벼랑 중턱에 있다. 어란항 초입에 ‘여낭터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국문 아래쪽엔 일본어도 병기돼 있다. 여낭터엔 ‘어란의 여인상’과 표지비가 조성돼 있다. 동굴 형태의 자연석 아래 세워진 어란상은 뜻밖에 작달막하다. 일부에서 ‘미녀 스파이’ 운운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다. 기념비 앞면엔 투신 날짜가 적혀 있다. 1597년 9월 17일. 명량대첩 하루 뒤다. 기념비 양옆엔 모두 네 명의 일본인 이름이 적혀 있다. 고니시 유이치로 형제는 어란상과 표지비 조성 비용을 댄 이들이다. 일제강점기에 해남에서 태어난 이들의 부친은 어란리 심상소학교 교장을 지냈고, 외조부는 어란리에 최초로 김 양식을 도입한 인물이라고 한다. 여낭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눈부시다. 청잣빛의 모티브가 됐다는 영롱한 바다, 어란 바다 위를 가득 메운 양식 어구들, 그 너머로 남도의 뭍과 섬들이 어우러져 있다.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어선이 아니었다면 그림으로 착각할 만한 풍경이다. ●거대한 인공 호수엔 30여종 겨울 철새의 ‘화려의 군무’ 해남에는 거대한 인공 호수가 세 곳 있다. 모두 겨울철 탐조 여행으로 이름난 호수다. 영암과 경계를 이룬 영암호는 세 호수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해마다 30여종의 겨울 철새가 찾는 철새 도래지이기도 하다. 특히 가창오리가 많이 찾는다. 11월부터 도래하기 시작해 12월쯤 최대 개체수를 이룬다. 올해도 30만여 마리가 찾아와 군무를 펼치고 있다. 이웃한 금호호엔 목재데크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탁 트인 호수 주변을 걷는 맛이 각별하다. 고천암호는 국내 최대 규모의 갈대밭이 있는 곳이다. 호수와 간척지 등을 합친 둘레가 14㎞에 달한다. 차를 타고 다니며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윤두서 고택도 둘러볼 만하다. 조선의 선비화가 공재 윤두서가 기거했던 고택이다.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이 살아 있는 건물로 1670년 지어져 1811년에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 당시엔 48칸 규모였으나 문간채와 사랑채는 사라지고 현재 안채와 곳간, 헛간, 사당 등이 남아 있다. 글 사진 해남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61) →가는 길 : 여낭터 찾기가 쉽지 않다. 땅끝마을에서 77번 국도를 타고 송지면사무소 앞 네거리까지 간 뒤 어란항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어란항 초입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마을로 들어간 뒤 두 번의 갈림길에서 모두 좌회전해 곧장 간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고 나면 제주~해남 간 전력변환소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30m 정도 걸으면 작은 묘가 나오고, 그 옆으로 난 소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여낭터다. 어란마을 석등롱은 어란항 뒤편의 골목길을 따라 끝까지 간 뒤 민가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나온다. 해남관광안내소 532-1330. →맛집 : 해남 읍내 천일식당(536-4001)은 떡갈비와 한정식으로 이름났다. 계절 별미로는 삼치회가 꼽힌다. 햇김에 흰 밥과 묵은 김치, 삼치 선어 등을 올려 먹는다. 이학식당(532-0203) 등이 알려졌다. 땅끝마을 쪽에서는 땅끝바다횟집(534-6422), 본동기사식당(535-2437) 등이 맛집으로 입소문 났다. →잘 곳 : 땅끝비치(534-1002)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굿스테이 업소다. 땅끝마을 언덕에 있다. 유선장여관(534-2959)은 각종 여행서와 언론 매체 등에 오르내리며 명소 반열에 오른 숙소다. 영화 ‘서편제’ 촬영지이기도 하다.
  •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역사기록의 활용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역사기록의 활용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은 정치, 사회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과 재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길어야 100년 남짓 사는 인간은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어나는 자연의 다양한 변화를 모두 경험할 수 없다. 이런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긴 기간의 관측 자료 분석이 필요하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가능한 최대 지진과 지진 발생 예상 지역과 피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수백년 이상의 지진 기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지진계가 도입된 시기가 1978년임을 감안해 보면 지진계에 기록된 자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방대한 역사기록물이 있다. 특히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는 1900여회가 넘는 지진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는 진도 8 이상으로 평가되는 지진 피해 기록도 여럿 있다. 서울에서 발생한 지진 기록도 꽤 있다. 중종 13년(1518년) 음력 5월 15일에는 “유시(오후 5~7시)에 세 차례 크게 지진이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우레 소리처럼 커서 사람과 말이 모두 피하고, 담장과 성첩이 무너지고 떨어져서, 도성 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밤새도록 노숙하며 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노인들이 모두 옛날에는 없던 일이라 하였다. 팔도가 다 마찬가지였다”라고 한양에서 발생한 지진을 기록하고 있다. 세 차례 큰 지진이 연쇄적으로 발생했을 뿐 아니라 지진동이 전국적으로 감지될 정도로 강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성첩의 무너짐은 지진동의 크기가 지금껏 우리가 겪은 수준 이상이었음을 시사한다. 또 성난 우레 소리는 단층 운동에 암반이 부서지는 소리로 이곳이 진앙지 인근임을 의미한다. 명종 1년(1546년) 음력 5월 23일 기록은 더 구체적이다.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갔으며 한참 뒤에 그쳤다. 처음에는 소리가 약한 천둥 같았고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집채가 모두 흔들리고 담과 벽이 흔들려 무너졌다. 신시에 또 지진이 일어났다.” 이 기록은 서울에 지진이 발생했을 뿐 아니라 단층 파열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행했음을 의미한다. 또 큰 단층을 따라 연쇄적으로 여진이 발생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단층 파열과 연쇄 지진은 미국 서부지역과 같이 활성 단층이 잘 발달한 지역에서 목격되는 현상으로 수도권과 같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오래된 암반을 가진 지역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또 강력한 지진동에 의한 피해 정도를 통해 지진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지난 9월 12일 규모 5.8의 경주지진에서도 담과 벽이 무너지는 피해가 없었음을 감안해 볼 때 당시 지진동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역사에 남은 지진 피해 기록은 최근 지진 발생 특징과는 차이를 보인다. 최근 지진 기록에 의하면 수도권에서는 지진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1978년 이후 지금까지의 짧은 지진 관측 기록이 특정 지역의 지진 특성을 잘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저평가돼 온 수도권 지역의 지진 재해 가능성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지역은 지질학적으로 안정되고 매우 단단한 암반으로 평가되는 경기육괴 위에 위치한다. 지진은 오랜 기간 응력 누적이 있어야 발생한다. 최근 수도권 지역에서의 지진이 관측되지 않음은 지각 내 응력이 누적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수도권에 지진을 유발한 단층을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경주 지진의 예에서 보듯이 지표에 단층면을 드러내지 않은 지표 하부 단층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역사기록이 과학의 영역으로 확장돼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록자의 주관에 따른 취사선택이나 자료 왜곡이 되지 않고 모든 사실이 빠짐없이 정확하게 기록될 때 의미가 있다. 기록이 나중에 어떻게 활용될지는 기록자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했던 사초 기록자들의 노고가 새삼스레 크게 느껴진다.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 태국 새국왕 와치랄롱꼰, 국왕추대 제의 수락

    태국 새국왕 와치랄롱꼰, 국왕추대 제의 수락

    지난 10월 서거한 푸미폰 아둔야뎃 전(前) 태국 국왕(라마 9세)의 왕좌를 물려받은 마하 와치랄롱꼰(64) 왕세자는 1일 밤(현지시간) 과도의회격인 국가입법회의(NLA)의 폰펫치 위칫촐라차이 의장을 만나 국왕추대 제의를 수락했다. 그는 수락 연설을 통해 “나는 모든 태국 국민을 위해 선왕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와치랄롱꼰은 1782년에 시작해 234년의 역사를 가진 짜크리 왕조의 10번째 왕(라마 10세)이 됐다. 그가 왕좌에 오른 것은 1972년 선왕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된 지 44년 만이며, 지난 10월 13일 푸미폰 전 국왕 서거 이후 50일 만이다. 태국 정부는 새 국왕을 ‘마하 와치랄롱꼰 버딘드라데바야와랑꾼 국황 폐하’로 칭했다. 즉위 의식은 폰펫치 NLA 의장이 차기 국왕 추대 사실을 알리고, 와치랄롱꼰 왕세자가 이를 수락하는 연설을 한 뒤 부친인 푸미폰 전 국왕 부부의 사진에 절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어 폰펫치 의장이 와치랄롱꼰 왕세자의 국왕 즉위를 선언하고,쁘라윳 찬-오차 총리가 대국민 연설 형식으로 국왕 추대 절차와 향후 대관식 일정 등을 설명했다. 쁘라윳 총리는 “이제 태국 국민은 새로운 국왕을 모시게 됐다 국왕 즉위 절차는 전통에 따라 진행됐다”며 “대관식은 내년 10월로 예정된 푸미폰 국왕의 장례식이 끝난 뒤에 치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은 입헌군주제 국가지만 왕실의 권위와 권한이 다른 입헌군주제 국가와 달리 막강하다. 특히 70년간 재위하며 세계 최장수 재위 기록을 세운 푸미폰 전 국왕은 국가의 중대사에 영향을 미쳤고,정치세력간에 다툼이 있을 때는 최종 심판자 역할도 했다. 와치랄롱꼰 국왕 즉위로 푸미폰 전 국왕 서거이후 불거졌던 왕위 승계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된 셈이다. 그러나 푸미폰 전 국왕이 ‘모든 국민의 아버지’로 불릴만큼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것과 달리, 새 국왕은 사생활 등 문제로 논란을 빚었던 만큼 아버지처럼 위기 상황에서 ‘나라의 구심� � 역할을 해낼지는 미지수다. 특히 현재 태국은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2년 넘게 집권하고 있는 가운데,축출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측 세력 등이 재기를 노리고 있어 언제든 정치적 혼란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70년 만에 즉위한 새 국왕이 향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 오늘 저녁 즉위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 오늘 저녁 즉위

    태국 차기 국왕으로 추대된 마하 와치랄롱꼰(64) 왕세자가 1일 저녁(현지시간)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왕실 사무국 등에 따르면 왕세자는 이날 저녁 과도의회인 국가입법회의(NLA)의 폰펫치 위칫촌차이 의장을 만나 추대 제의를 수락할 예정이다. 이후 공식 왕위승계 선포와 함께 그는 짜크리 왕조의 10번째 국왕(라마 10세)으로 정식 즉위한다. 이 자리에는 섭정자인 프렘 티술라논다 추밀원장과 쁘라윳 찬-오차 총리, 비라폰 퉁수완 대법원장이 함께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3일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 서거 후 근 50일 만이다. 다만, 그의 대관식은 내년 10월로 예정된 푸미폰 국왕의 장례식이 마무리된 이후에 치러질 예정이다. 이날 행사는 현지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국 왕세자 새 국왕 추대 승인

    태국 왕세자 새 국왕 추대 승인

    태국 정부가 29일 마하 와치랄롱꼰(64) 왕세자를 차기 국왕으로 승인했다. 70년간 태국을 이끌다 지난달 13일 서거한 아버지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 전 국왕에 비해 국민의 신망을 얻지 못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킨 조치다. 2014년 쿠데타 이후 태국의 실권을 쥐고 있는 군부 2인자 쁘라윗 웡수완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이날 각료회의를 마치고 나서 “의회에 각료회의의 승인 사실을 통보했다”고 말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이날 특별회의를 연 과도 의회 국가입법회의(NLA)의 폰펫치 위칫촌차이 의장도 생방송으로 진행된 회의에서 “왕세자를 초청해 국왕으로 추대할 것”이라고 말했고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국왕 만세”를 외치며 동의했다. 태국 헌법은 국왕이 이미 지명한 후계자가 있는 상태에서 서거하면 각의가 후계자 승인을 의회에 통보하고 의회가 후계자를 초청해 추대하도록 절차를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이날 승계 절차를 마무리한 셈이다. 현재 독일에 체류 중인 와치랄롱꼰 왕세자는 30일 귀국해 차기 국왕 자리를 수락하고 조만간 즉위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1972년 왕세자로 공식 지명된 그는 1782년 이래 태국을 통치해 온 짜끄리 왕조의 열 번째 왕 ‘라마 10세’가 된다. 태국 정부는 애초 푸미폰 전 국왕의 서거 직후 왕위 승계 절차를 시작하려 했지만 와치랄롱꼰 왕세자가 1년 이상 애도 기간을 갖고 싶다며 왕위 승계를 미뤄 왔다. 이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등 방탕한 사생활과 잦은 외유로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한 데 따른 부담감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군부가 함량 미달인 그를 앞세워 왕실과 국정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사라져버린 ‘태양 흑점’…지구 대재앙의 예고?

    사라져버린 ‘태양 흑점’…지구 대재앙의 예고?

    지옥같은 모습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 그러나 태양의 표면이 마치 화장한 듯 깨끗한 모습으로 관측됐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은 태양활동관측위성(SDO)이 촬영한 태양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공개했다. 이 사진은 지난 14~18일 사이 SDO가 태양의 활동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보통 검게 나타나는 흑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강력한 자기장이 만들어내는 태양의 흑점은 주변 표면보다 1000℃ 정도 온도가 낮아서 검게 보이는 것으로, 중심부에서 용암이 흘러나오듯 플라즈마가 분출된다. 특히 흑점 관측이 중요한 이유는 흑점이 많을수록 태양 활동이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곧 흑점이 많아지면(태양 활동이 왕성하면)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가 많아지고 적으면 그 반대가 된다. 실제로 흑점이 보이지 않으면 지구의 기온이 약간 떨어져 지구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이는 역사적인 기록에도 남아있다. 과거 1000년 동안 태양 흑점이 장기간 사라진 것은 최소 3차례로, 이후 큰 가뭄이 들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흑점이 관측되지 않았던 15세기 10여 년에 걸쳐 대가뭄이 이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태양 흑점이 사라지는 현상 역시 지구에 불길한 기운이 닥친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태양 흑점이 사라지는 것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태양은 11년을 주기(Solar Cycle)로 활동하는데 흑점수가 최대치에 이를 때를 ‘태양 극대기’(solar maximum) 그 반대일 때를 ‘태양 극소기’(solar minimum)라 부른다. 곧 지난 2013년~2014년 초 태양은 극대기에 해당됐으며 당시 지구는 흑점 폭발로 인한 단파통신 두절, 위성장애, 위성항법장치 오류, 전력망 손상 등을 걱정해야 했다. 이와 반대로 지금은 태양 극소기로 접어들어 흑점 활동이 줄어들었을 뿐 또다시 흑점이 이글이글 타오를 것이라는 것이 NASA의 전망이다. 그러나 일부 학계에서는 지구에 미니 빙하기가 올 수도 있다는 논문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영국 노섬브리어대학 태양과학자 발렌티나 자르코바 교수는 태양 활동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태양 활동이 2030년 무렵에 60% 감소해 10년 동안 미니 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구가 마지막으로 미니 빙하기를 겪은 것은 이른바 마운더 극소기(Maunder Minimum)로 불리던 시기로 지난 1645년부터 1715년까지 지속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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