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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이란과 ‘억류 학자 맞교환‘ 뒤 “오바마는 못한 일, 난 해냈다”

    트럼프 이란과 ‘억류 학자 맞교환‘ 뒤 “오바마는 못한 일, 난 해냈다”

    으르렁대기만 하던 미국과 이란이 억류하고 있던 상대 나라 학자 한 명씩을 맞교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1500억 달러의 선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행정부 때 잡혔다가 트럼프 행정부 때 돌아왔다”고 특유의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뒤 “매우 공정한 협상에 대해 이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란과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체결했는데도 미국인 억류자가 나오게 만들었지만, 자신은 이 합의에서 탈퇴하고도 억류자가 돌아오게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미국은 이란과 전 세계에서 부당하게 억류된 모든 미국인을 집으로 데려올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번에 교환된 학자는 이란인 생명과학자 마수드 솔레이마니와 중국계 미국인 왕시웨인데 두 사람은 스위스에서 맞교환됐다. 솔레이마니는 방문교수 자격으로 미국에 갔다가 지난해 10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당국의 허가없이 줄기세포와 관련한 물질을 이란으로 수출하려 한 혐의로 기소했다.프린스턴 대학원생인 왕시웨는 이란의 19세기 카자르 왕조와 관련한 연구 논문을 쓰려고 이란에 갔다가 외국 정보기관에 기밀문서 4500건을 빼내려 했다는 간첩 혐의로 2016년 8월 출국 도중 체포됐고, 이란 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행정부 고위직도 이날 기자들과의 전화 콘퍼런스를 통해 이란의 미국인 석방이 현재 억류된 다른 미국인 석방을 이끌 것으로 기대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왕시웨를 제외하고 현재 이란에 감금된 것으로 확인된 미국 국적자는 이중국적을 포함해 넷이나 된다. 앞의 고위직은 이번 맞교환이 지난 3~4주 집중적 협상을 벌인 성과라며 몸값이 지불되거나 다른 어떤 종류의 양보도 이뤄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왕시웨의 건강 상태는 양호하며, 독일로 이동해 건강 검진 등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술레이마니 역시 건강해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이란 핵합의 탈퇴 후 이란을 제재하고 이란은 핵합의 이행사항을 하나둘씩 지키지 않아 긴장이 고조됐지만, 미국은 이번 억류자 맞교환을 계기로 대화 분위기 조성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앞의 고위직은 이란이 다른 문제에서도 협상 테이블에 나올 의향이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하면서 “우리는 이번 일이 우리를 이란과 더 많은 성공으로 이끌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에 “이란 정부가 이 문제에 건설적으로 임한 점이 기쁘다”며 이례적으로 이란 정부를 긍정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라, 우리는 함께 합의할 수 있다”고 적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천년을 품은 돌다리, 그 시간을 건너다

    천년을 품은 돌다리, 그 시간을 건너다

    우리나라 한가운데 자리한 충청북도로 떠난 건, 남쪽 끝으로 가지 않아도 따뜻한 풍경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충주와 청주의 앞글자를 딴 충북엔 크고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초겨울 여행지로 좋은 진천, 증평, 청주 등 곳곳을 다녔습니다. 한 도시를 깊게 들여다봐도 좋지만 취향에 맞게 다양한 여행지를 찾아다니는 맛, 좋은 사람과 또다시 오고 싶은 여행지를 골라 보는 것도 재미입니다. 진천은 오래된 온기를 품은 곳입니다. 1000년 동안 굳건하게 이어 온 신비로운 돌다리를 건너 봅니다. 가을엔 단풍대로, 겨울엔 눈이 덮이는 풍경대로 포근합니다. 생거진천(生居鎭川), 살아서는 진천에 사는 게 좋다는 말을 알게 된 건, 해 질 녘 끝도 없이 펼쳐진 산자락에서의 일몰 덕분이었습니다. 그저 찬바람을 이기고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증평에서는 종합테마파크가 올여름 문을 열었습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좋은 드넓은 휴식지가 있다는 것으로도 증평에 가볼 만합니다. 맑은 고을의 청주(淸州)엔 몸이 반기는 약수가 있고, 고즈넉하게 산책할 수 있는 운치 좋은 정원이 있습니다. 세 도시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을 가졌습니다. 위로를 하다 보면 오히려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처럼, 여행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현지인이 된 것처럼 따뜻한 풍경에 자연스레 기대게 됩니다. ●진천 농다리…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 진천의 오래된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농다리로 향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가 있는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이다. 경상도 상주읍지인 ‘상산지’(常山誌)에 “고려 초기 임 장군이 만든 돌다리”라고 전하는데, 그는 고려 고종 때 무신이었던 임연 장군으로 추정된다. 굴티마을은 성산 임씨의 세거지이기도 하다. 그의 생을 따지면 800여년 된 다리다. 세금천에 놓인 농다리는 투박하면서도 강직해 보인다. 돌들이 대바구니(籠)처럼 얽히고설켜 ‘농다리’라 불리는데 멀리서 보면 돌을 툭툭 무심히 놓아둔, 하나의 돌무더기처럼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네가 구불구불 강을 건너는 것 같다. 총 길이 93.6m의 교각에 놓인 28개 돌은 하늘의 기본 별자리인 28수와 같다. 무엇인가 이음새 없이 자연석을 그대로 쌓았는데도 장마에도 굳건하게 지켜온 다리는 볼수록 신비롭다. 농다리를 건너면 초평호를 끼고 걸을 수 있는 초롱길이 이어져 있다. 농다리에서 농암정, 하늘다리를 건너 농다리로 돌아오는 약 3.2㎞의 길은 가뿐하게 걷기 좋다. 충북에서 가장 큰 저수지가 진천에 있다. 초평저수지는 충주호와 함께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다. 잉어, 붕어, 가물치, 뱀장어 등이 풍성하게 잡히는 호수는 그 풍경도 고즈넉하다. 저수지 근처에 붕어마을이 있는데, 이곳엔 붕어찜 맛집들이 모여 있다.붕어마을 뒤편으로 올라가면 환상적인 일몰 포인트가 자리한다. 두타산 삼형제봉 한반도지형전망공원은 한반도 지형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강원도 영월의 한반도 지형과는 사뭇 다른 망망한 풍경을 자아낸다. 울릉도와 독도, 평양, 제주도까지 우리나라를 꼭 닮은 지형과 겹겹이 이어지는 산세 뒤로 잔잔한 일몰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증평에듀팜관광단지… 자연 속에 오롯이 올여름에 개장한 증평에듀팜관광단지는 뉴질랜드의 평화로운 자연 속에 있는 것 같다. 중부권 최대 관광단지를 자랑하는 곳으로, 약 300만㎡(약 91만평) 규모에 이른다. 현재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마리나 클럽과 루지 코스, 리조트, 골프장, 산책로 등이 자리한다. 루지는 경사와 중력을 이용해 달리는 무동력 카트로 방향 조정과 제동이 어렵지 않아 아이도 쉽게 탈 수 있는 액티비티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만들어진 루지는 경남 통영과 양산, 인천 강화 등에서 즐길 수 있다.증평에듀팜관광단지는 숨겨진 루지 명소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다른 곳보다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루지 출발선으로 올라갈 때 리프트 아래 촘촘한 자작나무숲, 코스를 따라 심겨 있는 울창한 나무들 덕에 자연 속에 온전히 머무는 느낌이다. 2가지 코스 중에 선택할 수 있는데 속도감을 느끼며 짜릿하게 내려가는 약 1.4㎞ 코스와 경치를 즐기며 주행하는 약 1.5㎞ 코스가 있다.증평에듀팜관광단지가 품고 있는 원남저수지를 오롯이 느끼는 방법은 마리나클럽에서 레포츠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다. 360도 회전으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제트 보트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면서도 짜릿하게 즐길 수 있다. 여름엔 허리케인, 플라이피시, 바나나 보트 등 조금 더 다채로운 수상 놀이도 가능하다. 목장에선 양에게 먹이를 주는 프로그램은 물론 양몰이 공연도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개라고 알려진 보더콜리가 조련사의 지시를 따라 다양한 방법의 양몰이를 보여 준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신기해 절로 환호가 터져 나온다.증평에듀팜관광단지는 2021년까지 영화관, 수변무대, 워터파크, 복합 연수시설, 숲체험장, 식물원 등을 개장할 계획이다. 옥종기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장은 “수도권에서 접근하기 편리한 곳에 자리한 이곳이 중부지역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청주서 사격하고 초정약수 마시고겨울엔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체험을 추천한다. 청주에 공기총과 클레이사격을 할 수 있는 종합사격장이 자리한다. 실내에 50m, 25m, 10m 공기총 및 화약총 사격장을 갖추고 있다. 이동표적을 사격하는 10m 러닝보어도 갖추고 있다. 공기총 사격은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총 20발을 사격하는데, 집중력에 따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몰입하는 순간의 짜릿함과 성취감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다. 긴 산탄총으로 시속 60~120㎞로 날아가는 접시 모양의 표적물을 쏘는 클레이사격은 내년 봄까지 공사 중으로 2020년 5월 이후 이용할 수 있다. 다른 사격장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 하면 ‘천연탄산수’가 바로 이어진다. 어릴 때 미간을 찡그리며 맛봤던 초정약수의 짜릿함이 떠오른다. ‘초정’(椒井)은 톡 쏘는 물이 나오는 우물이란 뜻으로 세계광천학회가 선정한 세계 3대 광천수로 꼽히는 약수다. 지하 100m 석회암층에서 솟아오르는 천연탄산수로 효험도 뛰어나다. 생체 생리기능에 필요한 광물성 영양소인 미네랄이 적정량이 있어야 하는데, 이 초정약수는 미네랄이 풍부해 동양의 신비한 물로 주목받고 있다. 고혈압과 당뇨병, 위장병, 피부병 등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에 세종대왕이 눈병을 고쳤고, 세조의 피부병이 나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건강도 좋지만 물을 사 먹는 시대, 약수터가 반갑기만 하다. 약수 근처에는 놀이마당, 세족장 등을 갖춘 초정문화공원과 조형물이 자리한다. ‘운보’ 거닐던 정원, 그 공간에 스며들다●한옥과 정원으로 꾸민 운보 김기창 화백의 집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다운 100대 정원으로 꼽히는 ‘운보의 집’은 황량한 겨울에도 곳곳에 따스함이 스며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왼편에 행랑채가 다소곳이 자리한다. 그 앞 작은 뜰엔 장미밭이었던 듯, 한두 송이 장미가 아침에 내린 서리를 맞고도 꼿꼿하게 피어 있다. 한 걸음 더 들어서면 비단잉어연못과 정자, 그리고 풍채 좋게 자리한 안채가 있다. ‘운보의 집’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으로 와 7년에 걸쳐 천천히 지은 한옥이다. 운보는 이 집에 기거하며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운보의 작품 중엔 우리가 품고 다니는 것이 있다. 1만원권 지폐로, 세종대왕 얼굴을 그린 이가 운보다. 1975년 비단에 수묵으로 그린 세종대왕은 우리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운보의 집은 약 10만㎡(약 3만 평)에 이르는데 한옥과 미술관, 조각공원을 천천히 둘러보기 좋다. 운보는 옛 도자기를 좋아하는 소재로 꼽았는데, 마음이 무심하면서도 자연에 가까운 물성이라 생각했다. 미술관에서 그의 취향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작품 활동에 몰두했던 그.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고, 담담하게 여겼단다. 소음 공해에서 벗어나 조용함 속에서 예술에 정진할 수 있었다는 그의 긍정적인 힘이 느껴지는 곳이다.글 사진 박산하 여행작가 ■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진천 농다리에서 시작하는 초롱길 코스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걷기길 코스 소개인 두루누비(www.durunubi.kr) 검색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청주종합사격장은 청주시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www.cjsisul.or.kr)를 통해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 공기총 사격은 20발에 4000원. →진천은 초평저수지 근처 붕어마을에 붕어찜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모여 있다. 송애집(532-6228)은 3대 째 붕어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시래기와 각종 채소를 넣고 끓인 붕어찜이 대표 메뉴다.→증평에서는 삼순이(836-8020) 식당의 짜글이를 맛봐야 한다. 돼지고기 사태와 채소를 듬뿍 넣어 매콤하게 끓여 낸 것으로 상추쌈에 갓김치를 얹어 먹으면 감칠맛이 그만이다. →청주에는 2대째 운영 중인 ‘원조’ 고추만두국집(253-4260)에서 속을 따끈하게 하기 좋다. 30여년 된 식당은 충청도 만두 스타일을 고집한다. 김치와 두부, 당면 그리고 직접 삭힌 고추를 넣은 만두는 매우면서도 중독성이 강하다. 여기에 사골국물을 베이스로 양념을 풀어 칼칼하게 끓이면 이 집 고유의 고추만둣국이 완성된다.
  • [길섶에서] 1937년 중국 겨울/박록삼 논설위원

    중국 난징(南京)은 육조고도(六朝古都)다. 즉, 역사 속 여섯 왕조의 도읍이었다. 뭍에서, 바다에서 물산 풍부한 강남 지역은 정도(定都)에 꽤 좋은 조건을 갖췄다. 다만 국민당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점이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꽤 긴 역사를 품고 있음에도 1949년 건국 이후 중국에서 난징이 대도시로 발전하지 않게 된 이유다. 현대사 속 태평천국, 중화민국까지 난징을 수도로 한 나라가 모두 단명(短命)했다는 점은 마오쩌둥으로서 찜찜했을 테다. 어떤 인연이 있는지 이제껏 난징만 7~8차례 찾았다. 몇 년 전에는 아예 1년 동안 지내기도 했다. 난징을 가면 늘 난징대학살기념관을 들른다.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이 난징에 침략해 35만명이 넘는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총으로 쏴 죽였고, 칼로 베어 죽였고, 그 추웠을 겨울 호수에 밀어 넣어 얼려 죽였다. 갈 때마다 80년 전 한파 속 비명이 귓전을 맴도는 듯해 옷깃을 여미게 된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질척거리는 흙길을 지나야 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주변이 우리네 뉴타운처럼 개발돼 아파트가 빼곡하다. 기념관 시설과 주변 환경은 날로 좋아지지만 역사 속 기억은 형해화하지 않을까 슬몃 걱정이 든다.
  • 이란 시위 유혈 진압에 팔레비 왕조 전철 밟나… 야당 “최고 지도자, 쫓겨난 팔레비 국왕 같아”

    이란 시위 유혈 진압에 팔레비 왕조 전철 밟나… 야당 “최고 지도자, 쫓겨난 팔레비 국왕 같아”

    인권단체 “유혈진압에 최소 161명 사망”야당 지도자 무사비, 가택연금 중 성명“살인자는 절대권력 가진 최고 지도자”이란에서 장기 가택연금 중인 야당 지도자가 최근 시위 유혈 진압과 관련해 최고 지도자인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를 쫓겨난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국왕에 비유했다. 유가 기습 인상과 관련해 전국에서 발생한 시위를 이란 당국이 강경하게 진압하는 바람에 보름 새 최소 161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야당 지도자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77)는 웹사이트 칼레메를 통해 “조국의 상황에 국민이 좌절감을 표출하고 있다. 1978년 9월 국민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과 똑같다”는 성명을 냈다고 AP·로이터통신 등이 1일 보도했다. 그는 또 “1978년 살인자는 비종교적 정권 대표들이었지만 2019년 11월 살인자는 종교적 정부의 대표들”이라며 “당시 최고지휘관은 국왕이었고, 지금 여기는 절대 권력을 가진 최고지도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이에 대해 이란 정부나 국영 미디어에서의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무사비는 수년 동안 미디어 노출이 가로막혀 있다. 무사비는 최근 소요 사태를 1978년 9월 수도 테헤란 잘레흐 광장에서 이란 군인이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대규모 사상자를 냈던 ‘검은 금요일’에 비유했다. 당시 유혈 진압으로 최소 89명에서 최대 4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분노한 이란 국민이 이듬해 1월 들고 일어나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국왕 모함마드 레자 샤가 축출됐으며, 추방됐던 종교지도자 호메이니가 귀국해 정부를 장악, 혁명에 성공하면서 이란은 신정 국가로 탈바꿈됐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합의 탈퇴 이후 미국의 제재로 경제난을 겪는 이란이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유가 50% 인상을 단행하자 지난달 15일부터 전국 100여개 도시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민생고 해결을 주장하던 시위는 곧바로 최고 지도부 퇴진을 요구하면서 정치적으로 변했다. 이에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는 시위를 “매우 위험한 음모”로 규정했다. 이란 당국은 이번 시위가 망명 중인 지도자 및 이란의 적인 미국과 이스라엘, 사우디 아라비아와 연계돼 있다고 비난했다.이란 당국은 체포되거나 부상 또는 사망한 시위자의 수치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유혈 진압 과정에서 최소 161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신한다. 이란 내무부는 그러나 사망자 수치가 과장됐다면서도 정확한 통계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란 의원들은 70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주장한다. 무사비와 부인 자흐라 라흐나바르드는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가택 연금을 당하고 있다. 그의 테헤란 거처는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공식 거처와 가깝다. 이란 총리를 지냈던 무사비는 2009년 대선에 나섰지만, 강경파 마무드 아흐마디네자드에 패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타키투스 책 옮겨 적은 문서 400년 동안 몰랐다니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타키투스 책 옮겨 적은 문서 400년 동안 몰랐다니

    대영제국의 상징과도 같았던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년) 영국 여왕이 로마제국의 역사학자 타키투스의 저작을 번역해 적은 문서가 4세기 넘게 방치돼 있다가 확인됐다.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의 사서학자 존마크 필로 박사는 런던 람베스 궁전 도서관에서 타키투스의 번역에 관한 자료를 뒤적이다 42쪽의 문서를 여왕이 직접 쓴 것임을 밝혀냈다고 학술지 ‘영문학 리뷰’에 29일 발표했다고 BBC가 전했다. 여왕은 스스로 이 문서를 작성했음을 드러내는 표식을 몰래 숨겼는데 필로 박사는 이를 짜맞춰 여왕이 쓴 것임을 파악해냈다. 이 문서는 람베스 궁전 도서관에 17세기부터 보관돼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쓴 사람의 정체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우선 이 문서의 종이 재질이 특별한 데 주목했다. 1590년대 튜더 왕조의 “특별한 지위를 가진” 인물만이 구할 수 있었던 종이였다. “그런데 같은 시대 튜더 왕실 가운데 타키투스를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고 같은 종이를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명 여왕 자신 뿐이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여왕은 열 살이 되기 전 일곱 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 세 군데 워터마크가 추가 단서로 제시됐다. 여왕은 개인 편지를 쓸 때 늘 종이 위에 뒷발로 일어선 사자와 석궁 표식을 넣고 그 사이에 이니셜 G.B(대영제국)를 적었는데 이 문서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필적은 조금 이상했다. 이 번역본은 비서 중 한 명이 옮겨 적은 사본이며 그 위에 여왕이 바로잡거나 가필한 것으로 보인다. 여왕의 필체는 즉위 초기에 알아보기 편했던 것에서 뒤로 갈수록 흘려 쓰곤 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튜더 왕실의 권력자들에 공통된 경향이었다. 글씨를 모호하게 쓰는 것이 일종의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던 셈이다. 필로 박사는 이 문서가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를 왕실 사람들이 공부하게 하려고 작성된 것으로 봤다. 타키투스가 군주제의 장점을 기록한 이 문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죽음을 추적하고 티베리우스 황제의 성장, 한 개인에 권력을 집중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필로 박사는 타키투스는 “늘 순종적인 역사학자로 여겨지다 나중에 찰스 1세 국왕 시절 반(反) 군주주의자로 낙인찍혔다”며 왜 엘리자베스 1세가 그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해서 잘못된 통치를 피하기 위한 예를 통해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를 왕실 사람들에게 가르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유추했다. 아니면 그저 여왕 자신이 역사 고전을 취미로 즐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우산과 촛불… 비폭력은 폭력보다 강하다

    우산과 촛불… 비폭력은 폭력보다 강하다

    지난 24일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 투표율이 역대 최고인 71.2%를 기록했다. 인두세를 내야 유권자 자격을 주는 데다 복잡한 등록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홍콩 투표율은 한국보다 다소 낮은 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홍콩 구의원 선거 가운데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때가 2015년 47.0%였다. 이번 선거에 관한 관심은 올 3월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시작했다. 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정부와 그 뒤에 버티고 선 중국에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시민에게 실탄을 발사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끝까지 ‘비폭력’을 고수했다. 홍콩 시민은 이번 선거로 친중 구의원들을 몰아내고, 시위를 주도한 젊은층의 정치 진입을 이끌 수 있었다. 이들이 만약 정부 당국과 경찰에 ‘폭력’으로 맞섰다면 어땠을까. 역사 속 폭력·비폭력 시민운동을 조사한 뒤 성공 여부와 그 이유를 분석한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겠다. 저자들은 1900년부터 2006년까지 폭력·비폭력 운동 323건을 분석했다. 우리의 1960년 4·19혁명을 비롯한 비폭력 운동이 106건, 폭력 운동이 216건이었다. 비교 결과 비폭력 운동이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둔 비율은 55%에 이르지만, 폭력 운동은 25% 정도에 그쳤다.‘왜?’라는 의문이 떠오를 법하다. 성공한 비폭력 운동들을 분석한 저자는 공통점으로 ‘시민의 참여’를 찾아냈다. 폭력 운동에 참여하려면 목숨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하지만 비폭력 운동은 장벽이 낮아 더 많은 사람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게다가 다양한 형태로 참여할 수 있어 효과도 더 좋았다. 비폭력 운동은 일상생활을 하며 참여할 수 있고 운동에 참여하고 나서 언제라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꼭 집회가 아니더라도 불매 운동과 같은 방식으로 반대편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저자는 이와 관련, “한국,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레바논, 이집트 등에서 일어난 최근 비폭력 운동은 시민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시민이 참여한 대형 운동에서 비폭력 운동 성공률은 70%까지 올라갔다. 시민 참여 규모가 가장 컸던 25건 가운데 20건이 비폭력 운동이었고 성공률도 두드러지게 높았다. 1978~1979년 팔라비 왕조 체제에 반대해 200만명이 참여한 이란혁명과 같은 비폭력 운동 14건(70%)이 명백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폭력 운동의 경우 1937~1945년 450만명이 참여한 중국의 일본 점령 반대 운동을 비롯한 5건 중 2건(40%)만 성공했다. 책은 1부에서 전체 사례에 관한 통계를 분석하고 2부에서는 실제 사례 4건을 들어 좀더 자세히 분석한다. 이란의 국왕을 몰아낸 이란혁명,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맞서 유례없는 진전을 이뤄 냈지만 결국 실패한 1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1987~1992),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필리핀 피플파워(1983~1986), 폭력·비폭력 운동 모두 실패한 미얀마혁명(1988)을 살핀다. 저자는 시민운동을 ‘비제도적인 행동 방식을 사용하는 정치 행위’라 규정하고, 여기에 사용한 여러 전술을 다양하게 풀어낸다. 시민운동을 고려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읽어 봐야 할 듯하다. 그러나 폭력·비폭력 운동의 지난 100년 흥망성쇠를 그저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공부가 될 수 있다. 폭력이 적은 노력으로 파괴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는 판단에 저자는 “승리와 혼란은 구별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폭력의 결과가 자극적이어서 주목을 많이 끌고, 따라서 효과도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착시효과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얼마 전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바꿨던 우리로선 이미 방향을 알고 있지 않은가. ‘비폭력이 정답’이라고.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알프스 관광 거점 체르마트가 이랬다고? 빙하가 사라지기 전과 후

    알프스 관광 거점 체르마트가 이랬다고? 빙하가 사라지기 전과 후

    흑백 사진은 1863년에 촬영한 스위스 알프스 유명 관광지 체르마트 마을 위의 고르너르 빙하 모습이다. 컬러 사진은 지난 8월 25일 거의 같은 위치에서 촬영한 것이다. 로이터 통신이 알프스 빙하가 기후 변화 탓에 150여년 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며 여러 빙하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한 사진들을 27일(현지시간) 소개해 눈길을 끈다. 오래 전 사진이 어느 계절에 촬영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계절에 관계 없는 빙하였다. 스위스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500개 정도의 스위스 빙하가 사라졌고, 남은 1500개 가운데 90% 정도는 배기가스를 줄이는 특단의 노력이 없다면 이번 세기 말에 사라질 것이라고 스위스 정부는 경고하고 있다.론 빙하에는 영국 빅토리아 왕조 때인 1880년대 관광객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자 벨베데레 호텔이 들어섰다. 007 영화 ‘골드핑거’에서 설원을 내달리는 화려한 자동차 추격 장면이 촬영된 곳이었다. 하지만 130년이 흐른 지금 관광객들이 더 이상 찾지 않아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이제 빙하를 밟아보려면 산 위쪽으로 2㎞나 걸어 올라가야 한다. 빙하가 녹은 물이 모여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졌다. 19세기 중반 사진을 보면 계곡 아래 쪽 얼음 두께는 100m가 넘었는데 이제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알프스에서 가장 큰 알레취 빙하 앞에서 19세기 찍은 사진과 오늘날 찍은 사진을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스위스 빙하 모니터링 기관인 글라모스(GLAMOS)의 책임자 마티아스 휴스는 이 나라의 온난화 속도가 지구촌 평균의 곱절에 이르며 지난해에만 빙하 총량의 2%를 잃었다고 말했다. 이 기관은 150년의 빙하 관련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그는 “측량이 시작된 이후 이토록 급격하게 빙하가 줄어드는 일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일부는 지난달 총선 결과 녹색당이 득세하는 등 정치 지형의 변화가 지구 온난화를 막는 실제적 행동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를 촉구하는 글레이시어 이니셔티브는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이번주 베른 연방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빙하는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휴스는 “내 개인적 견해로는 알프스는 계속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글로벌 In&Out] 한국 독립운동과 러시아혁명/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한국 독립운동과 러시아혁명/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올해는 러시아혁명 102주년이 되는 해다. 1917년 일어난 러시아혁명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대전에 휘말린 제국주의적 세계질서에 대항하고 평등,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사상 최초의 노농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가 탄생했다. 러시아혁명과 소비에트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반제국주의ㆍ반식민지운동은 그 투쟁을 힘있게 전개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러시아혁명이 1910년대 후반의 한국 독립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1917년 러시아 10월 사회주의혁명의 시작은 같은 해 초에 발생한 2월 혁명이었다. 니콜라이 2세를 퇴위시키고 제정을 무너뜨린 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혁명은 러시아 각 민족에게 정치 활동을 위한 길을 열어 주었다. 극동을 비롯해 많은 러시아 지역에 거주하던 한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2월 혁명 발발 직후 노령(露領) 한인들은 ‘전로한족회중앙총회’라는 조직을 설립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주로 귀화한 한인들로 구성된 임시정부 지지파와 미귀화의 한인들로 구성된 소비에트 지지파로 분열됐다. 소비에트 정권에 호의적인 한인들은 이 조직에서 탈퇴하고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한인신보’를 발간하게 됐다. 창간호 발간사는 러시아혁명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하나임의 깁흐신 뜻과 슬라브 민족의 뜨거운 피로 수삼백년 동안 졀대한 구속과 무한한 압박으로 무지막심하든 젼졔졍치를 일죠에 젼복하고 붉은 긔를 놉히 들어 국민으로 하야곰 쟈연한 리치?에셔 능히 하날에 대한 인섕의 턴직과 국가에 대한 의무를 행함에 사소한 불편이 없을 만한 팔대쟈유(八大自由)를 선언하니 우리난 로마스브황실(로마노프 왕조: 필자)을 조샹을 하난 동시에 광영이 찬 새 공하국의 쟝래를 ?복하노라.” 그러나 2월 혁명 과정에서 탄생한 러시아 임시정부가 토지 문제, 민족 문제, 제1차 세계대전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혁명의 소용돌이가 다시 거세어져 갔다. 결국 1917년 11월 7일(러시아 구력 10월 25일) 레닌의 지도하에 발생한 봉기로 임시정부는 해산되고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 넘어갔다. 1917년 11월 15일 레닌과 민족문제담당 인민위원 스탈린은 ‘러시아 제 민족의 권리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모든 민족의 주권, 분리와 독립국가의 형성에 이르기까지의 자결권을 사상 최초로 실현했다. 이것은 윌슨 미국 대통령의 유명한 ‘14개조 평화 원칙’ 발표 약 2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 결과로 핀란드를 비롯한 많은 민족들이 완전한 독립을 얻을 수 있었다. 소비에트 권력을 선포한 민족들은 1922년 12월 30일 소련 건국 후 그와 동등한 구성원으로 가입하게 됐다. 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나 러시아에서 귀국한 한국인 노동자들을 통해서 전달된 러시아혁명에 대한 소식은 한국인들에게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었다. 예를 들어 도쿄 유학생들이 3ㆍ1운동 발생 약 1개월 전인 1919년 2월 8일에 발표한 독립선언서에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마지막에 동양 평화의 견지로 보건대 그 위협자이던 러시아는 이의 군국주의적 야심을 포기하고 정의와 자유와 박애를 기초로 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고 하는 중이며, 중화민국도 또한 그러하며 더불어 이번 국제연맹이 실현되면 다시 군국주의적 침략을 감행할 강국이 없을 것이라. 그러할진대 한국을 합병한 가장 큰 이유가 이미 소멸되었을뿐더러 이로 조선민족이 무수한 혁명 전쟁을 일으킨다 하면 일본에게 합병된 한국은 거슬러 동양 평화를 교란할 화근이 될지라. (중략) 그러나 일본이 만일 우리 겨레의 정당한 요구에 불응한다면 우리 겨레는 일본에 대하여 영원한 혈전을 선언하리라.”
  • 이집트서 ‘새끼 사자’ 미라 첫 발견…“생후 6~8개월쯤 죽은 듯”

    이집트서 ‘새끼 사자’ 미라 첫 발견…“생후 6~8개월쯤 죽은 듯”

    이집트에서 새끼 사자로 추정되는 큰고양잇과 동물 미라가 남은 고대 무덤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23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집트 고대유물부는 이날 수도 카이로 인근 사카라 유적지에서 약 2600년 전에 만들어진 무덤 1곳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무덤 발굴팀을 이끈 무스타파 와지리 최고유물위원회 사무총장은 “이집트에서 사자나 사자 새끼가 온전한 미라 형태로 발견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이번에 나온 새끼 사자 미라는 총 2구로 아직 분석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중 1구의 몸길이는 약 1m로 생후 6~8개월쯤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 사자 미라 근처에는 또다른 큰고양잇과 동물 미라 3구가 발견됐는데 이들 미라는 표범이나 치타 또는 다른 종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무덤에서는 또 더 작은 몸집의 고양이 미라 20여구도 발견됐다. 그리고 근처에서는 약 100점의 조각상이나 조각품이 함께 발견됐는데 대부분이 고양이의 형상을 묘사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밝혔다. 고양이 조각상은 돌이나 나무 또는 금속으로 제작됐으며 대부분 칠이 돼 있고 일부는 금으로 장식됐다.이와 함께 무덤에서는 이집트 여신 네이트(니트)의 형상을 한 작은 조각상도 발견됐다. 네이트는 제26왕조 때 이집트 수도였던 사이스의 수호신이라고 칼레드 엘아니니 이집트 고대유물부 장관은 설명했다.이뿐만 아니라 이 무덤에서는 지름이 30㎝가 넘는 거대한 스카라브(왕쇠똥구리) 모양의 공예품도 발견됐다.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종종 인장이나 부적 또는 보석으로 쓰였다. 이에 대해 고고학자들은 이 특별한 스카라브 공예품은 지금까지 이집트에서 발굴된 것 중 가장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무덤이 발굴된 지역은 고양이 미라가 많이 발굴됐던 곳으로 전해졌다. 이전 이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에서도 고양이 미라와 조각상이 발견됐으며, 2004년에는 프랑스 발굴팀이 사자의 뼈 일부를 찾아내기도 했었다.이에 대해 엘아니니 장관은 약 2600년 전 이 지역은 이집트 고양이 여신 바스테트와 그녀의 아들이자 사자 남신 마헤스를 기념하는 장소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을 고양이들 만이 지배하고 있던 것은 아니라고 와지리 사무총장은 지적했다. 그는 이전 이 지역에서는 새와 같은 다른 동물 미라들도 발굴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사카라 유적지는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로 4600년 전 파라오 죠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포함해 다른 많은 종류의 고고학적 유적이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1억 번째 승객’ 돌파 앞두고 혜자된 비엣젯 연말 캠페인을 잡아라“

    “‘1억 번째 승객’ 돌파 앞두고 혜자된 비엣젯 연말 캠페인을 잡아라“

    베트남 차세대 항공사 비엣젯항공이 19~21일 3일 간 국제선 국내선을 모두 포함해 항공권 특가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놓치면 후회할 만한 풍성한 혜자 캠페인도 함께 열린다. 이번 캠페인은 12월에 돌파하게 될 1억 번째 승객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다. 1억 명 이상의 여행객이 이용할 정도로 아시아의 많은 취항지에서 인기 있는 항공사지만 특히 한국에서 베트남 각 지역의 여행 인기가 높다. 온라인을 통해 많은 여행 후기와 팁이 공유되고 있다.베트남의 이미 잘 알진 도시와 휴양지의 인기도 좋지만 생소할 수 있는 여행지도 점점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육로보다 비엣젯 국내선을 이용하면 당일치기나 하루 정도만 포함해도 더 많은 지역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고 특히 프로모션 기간에 국내선은 더욱 더 저렴하게 항공권을 겟할 수 있어 ‘가성비’ 여행객들에겐 최고의 선택이 되고 있다.퀴논(Qui Nhon)은 다낭과 나트랑 사이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한적한 시골마을로 하노이 또는 호치민에서 비행기로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도시에서 쇼핑과 필수 먹거리들을 다 즐겼다면 퀴논에서의 힐링을 추천한다. 압도적인 풍경의 리조트는 국내 호캉스 수준의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2018년 세계 10대 휴양지 중 한곳으로 선정돼 외국인들에게는 벌써 잘 알려진 해변도시에서 비수기 시즌을 노린다면 가격과 여유로움을 모두 만끽할 수 있다. 후에(Hue)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베트남의 문화수도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을 호령하던 응우옌 왕조의 성도이기도 한 이곳은 영국 여행 전문지 러프가이드에서 선정한 덜 알려진 아시아의 보석같은 여행지 6곳 중 4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웅장한 규모의 궁궐과 왕릉을 만나볼 수 있는 후에는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베트남 전통 관광지이다.비엣젯항공은 베트남 내 최다 국내선 노선을 보유하고 있다. 12시간씩 자동차로 소요되는 거리라 한번에 여러 도시를 즐길 수 없었다면 프로모션 때 더욱 저렴한 국내선 이용을 추천한다. 가본 도시에 또 가고 싶지는 않아도 베트남은 너무 좋았던 베트남여행 경험자들도 베트남 전국을 더 속속들이 즐길 수 있다. 비엣젯항공의 이번 캠페인은 역대 최대 규모로11월 8일부터 시작해 내년 1월 16일까지 계속된다. 캠페인 기간 동안 비엣젯항공의 항공권을 구매한 고객이면 누구나 응모가 가능하며 해당 기간 내에 항공권을 여러 차례 구매해 응모할수록 당첨확률 또한 높아진다. 모든 응모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캠페인의 하이라이트인 1kg의 황금비행기(한화로 5천만원 상당) 외에도 6개월 무료항공권, 국제선 무료항공권, 기내 기념품 등 다양한 경품을 제공한다. 자세한 내용은 캠페인 웹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퓨전 사극·한국형 스릴러+미학적 작가주의… 흥행·작품성 인정받다

    퓨전 사극·한국형 스릴러+미학적 작가주의… 흥행·작품성 인정받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에 불었던 산업의 활기는 2006년 그 정점을 찍었다. 2003년부터 80편대를 기록하던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2006년을 기점으로 100편을 넘어섰다. 2001년 50%를 넘어 2004년부터 60%대에 육박하던 한국영화 점유율도 급기야 2006년 63.8%를 기록했다. 현재까지도 가장 높은 수치로 기록되는 비율이다. 2006년이 한국영화산업에서 가능한 최대치를 보여준 해였다면, 2007년 이후는 위기 혹은 조정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2006년 7월, 긴 논란 끝에 결국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 상영제도)가 73일로 축소되었고, 때마침 버팀목이라도 무너진 듯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거세졌다. 한국영화 관객은 감소했고 수익률과 수출 실적 또한 하락했다. 2007년 50%로 내려선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8년 42.1%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2년 만에 침체기를 극복하고 2009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만들어낸다. 시장 규모에 맞는 한국형 장르가 다듬어졌고,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감독들이 작품을 이어갔다. 이번 연재는 2000년대 중후반의 한국영화가 어떻게 도약해 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한국형 장르의 역동성 200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에서 주목할 장르 키워드는 바로 사극과 스릴러다. 퓨전의 길을 택한 사극·시대극 그리고 범죄·액션과 결합한 스릴러 장르는 다양한 장르적 요소와 이합집산하며 더욱더 진화해갔다. 이러한 장르 다변화와 ‘복합장르화’ 경향은 2010년대로 이어지며 ‘한국형 장르’가 구축되는 방법론이 됐다. 물론 한국영화의 전통적인 장르인 멜로·로맨스와 1990년대의 인기 장르였던 로맨틱 코미디도 관객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1960년대 한국 관객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사극 장르는 2000년대 들어 현대적인 감각의 퓨전 사극으로 부활했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2003)를 시작으로 2005년 ‘혈의 누’(김대승)·‘형사 Duelist’(이명세)가 이어졌고, 2005년 12월에 개봉한 ‘왕의 남자’(이준익)는 1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사극 흥행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시나리오를 쓴 김대우 감독은 대담한 상상력과 세련된 유머가 돋보인 ‘음란서생’(2006)과 ‘춘향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방자전’(2010)을 내놓으며 퓨전 사극의 유행을 이끌었다. 2000년대 후반에도 사극의 인기는 계속되었는데, 고려 왕조를 배경으로 에로티시즘과 결합한 ‘쌍화점’(유하, 2008), 한국형 히어로물을 표방하며 판타지 장르에 도전한 ‘전우치’(최동훈, 2009)가 대표적이다. 근현대사의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다룬 시대극 장르도 주목할 경향이다. 2004년에는 ‘효자동 이발사’(임찬상)·‘하류인생’(임권택) 등 근현대사를 가공하거나 ‘슈퍼스타 감사용’(김종현)·‘역도산’(송해성) 등 실존인물을 소재로 과거를 되돌아보는 노스탤지어 영화들이 수확됐다. 2005년에는 대통령 시해 사건을 블랙코미디 감각으로 풍자한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일제강점기 여류 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그린 ‘청연’(윤종찬)이 이어졌다. 2007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화려한 휴가’(김지훈)가 전국 730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이 선취한 스릴러 장르는 2008년 ‘추격자’(나홍진)에서 완성됐다. 실제 연쇄살인마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추격자’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관객 500만 이상을 동원해 화제가 됐다. 이 영화의 성공은 범죄·액션 등의 요소와 결합한 스릴러 장르의 유행을 촉발, 스릴러가 현대 한국영화의 대표 장르로 등극하는 계기가 됐다. 2010년에는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끼’(강우석), 잔혹한 이미지를 전시한 ‘하드보일드’ 스릴러 ‘악마를 보았다’(김지운)가 흥행 배턴을 이었다. 액션과 스릴러는 장르 특성상 결합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전통적인 강세 장르인 액션이 더 전면으로 나서는 영화들도 있었다. 2010년에는 남북 분단 상황을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의형제’(장훈)가 540만 관객을, 2011년에는 ‘감성 액션’을 표방한 ‘아저씨’(이정범)가 6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과 비평 모두 주목을 받았다.범죄스릴러의 인척 장르라 할 누아르, 갱스터 영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윤종빈, 2011)는 1980년대 시대상을 풍자와 해학 그리고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그리며 갱스터 장르의 신기원을 보여주었다. 한편 최동훈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으로 한국형 ‘케이퍼 무비’(범죄 전문가들의 정교한 범죄 과정을 보여주는 장르)를 성공시켰다. 이후 허영만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2006), ‘멀티캐스팅’의 묘를 살린 범죄영화 ‘도둑들’(2012) 등을 내놓으며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등극했다. 큰 예산이 들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 법칙을 새롭게 재해석한 ‘달콤한 거짓말’(정정화, 2008), 박중훈의 귀환과 ‘88만원 세대’의 묘사가 인상적인 ‘내 깡패 같은 애인’(김광식, 2010), 장르 화법에 더없이 충실했던 ‘시라노: 연애조작단’(김현석, 2010), 기획 코미디의 힘을 보여준 ‘댄싱퀸’(이석훈, 2011), 46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은 성공작 ‘내 아내의 모든 것’(민규동, 2012), 키치적인 B급 정서가 매력적인 ‘남자사용설명서’(이원석, 2012) 등이 이어졌다. 멜로를 코믹호러에 접붙인 ‘달콤, 살벌한 연인’(손제곤, 2006), 로맨틱 코미디의 뼈대에 호러를 녹여낸 ‘오싹한 연애’(황인호, 2011)도 주목받았다. ●예술영화·상업영화 아우르는 작가주의 1996~1997년 데뷔해, 2000년대 초중반 주요 해외영화제를 통해 인정받은 작가주의 감독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은 미학적 성숙을 거듭하며 그들의 영화세계를 완성시켜갔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치면 단연 홍상수다. 그는 매년 1~2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새로운 미학적 실험과 변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04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5년 ‘극장전’, 2006년 ‘해변의 여인’, 2008년 ‘밤과 낮’·‘첩첩산중’(단편), 2009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10년 ‘하하하’·‘옥희의 영화’, 2011년 ‘북촌방향’ 등 언뜻 앞의 영화와 겹치는 듯하면서도 매번 기존의 틀을 바꿔가는 방식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마치 거울처럼 마주 보는 그의 연작들은, 각 영화의 제목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차라리 ‘홍상수 영화’로 호명하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비평적 해석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국내외 비평계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예술영화 관객들의 지지도 굳건하다. 김기덕은 ‘활’(2005), ‘숨’(2007), ‘비몽’(2008) 등 본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는 영화다’(장훈, 2008)·‘풍산개’(전재홍, 2011) 등 조감독 출신 감독의 영화 제작까지 겸했다. 그는 ‘아리랑’(2011)으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피에타’(2012)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안았다. 이창동 역시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구원에 관한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미학적 성취를 이어갔다. ‘밀양’(2007)은 제60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에 진출, 주연 배우 전도연이 한국영화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시’(2010)는 제63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각본상을 받았다. 한편 이창동은 2009년 제62회 칸영화제에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2011년 제64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2000년대 들어 새롭게 발견된 시네아스트(cineaste·영화예술가)로는 재중동포 출신인 장률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두 번째 장편영화인 ‘망종’(2005)이 제58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고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널리 알려졌다. ‘경계’(2007), ‘중경’(2007), ‘두만강’(2009), ‘풍경’(2013)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조선족, 탈북 여성과 소년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등 경계인들의 이야기를 건조한 풍경 속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그는 ‘경주’(2013) 이후 새로운 화법으로 전환해 더 넓은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 외에도 ‘천년학’(2007)으로 100번째 영화를 연출한 거장 임권택, 현대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을 로맨스 장르에 녹인 ‘멋진 하루’(2008)의 이윤기, 리얼리즘과 신비함이 뒤섞인 ‘파주’(2009)의 박찬옥, 제주도 4·3 사건을 독특한 미학으로 승화시킨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의 오멸 등이 작가주의 영화의 계보를 이었다. 또한 제28회 밴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한 ‘회오리바람’(2009)의 장건재,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을 예리하게 포착한 ‘무산일기’(2010)의 박정범,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창조한 ‘파수꾼’(2010)의 윤성현 등 인상적인 독립장편영화로 데뷔한 감독들도 특기할 필요가 있다.대중영화와 작가영화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 독창적인 장르 해석과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유지하는 감독군으로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그리고 나홍진이 있다. 봉준호는 국내를 넘어선 흥행과 비평적 지지를 받은 ‘괴물’(2006), 뛰어난 미학적 완성도로 국내외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마더’(2009) 그리고 글로벌 영화 프로젝트의 성공작 ‘설국열차’(2013)를 이어가며 그만의 영화세계를 진보시켜갔다. 박찬욱은 ‘복수 3부작’의 완결편 ‘친절한 금자씨’(2005), 디지털 영화 미학을 개척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쥐’(2008), 그리고 첫 번째 할리우드 영화 ‘스토커’(2013)까지, 영화적 야심과 예술가적 자의식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다. 김지운은 만주웨스턴 ‘쇠사슬을 끊어라’(이만희, 1971)를 오마주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고어 영화(선혈이 낭자하는 잔인한 묘사가 특징)에 가까운 하드보일드 ‘악마를 보았다’(2010) 등을 통해 특유의 장르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2008년 범죄스릴러 ‘추격자’로 데뷔한 나홍진은 광기 어린 액션스릴러 ‘황해’(2010), 초자연적 미스터리스릴러 ‘곡성’(2016)을 내놓으며, 스릴러 장르를 그만의 스타일과 해석으로 새롭게 구축해가고 있다. 그의 세 작품은 모두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추격자’는 제61회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황해’는 제64회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곡성’은 제69회 비경쟁부문에서 세계 영화인들을 만났다. 그는 가장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임에 틀림없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퓨전 사극·한국형 스릴러+미학적 작가주의… 흥행·작품성 인정받다

    퓨전 사극·한국형 스릴러+미학적 작가주의… 흥행·작품성 인정받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에 불었던 산업의 활기는 2006년 그 정점을 찍었다. 2003년부터 80편대를 기록하던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2006년을 기점으로 100편을 넘어섰다. 2001년 50%를 넘어 2004년부터 60%대에 육박하던 한국영화 점유율도 급기야 2006년 63.8%를 기록했다. 현재까지도 가장 높은 수치로 기록되는 비율이다. 2006년이 한국영화산업에서 가능한 최대치를 보여준 해였다면, 2007년 이후는 위기 혹은 조정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2006년 7월, 긴 논란 끝에 결국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 상영제도)가 73일로 축소되었고, 때마침 버팀목이라도 무너진 듯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거세졌다. 한국영화 관객은 감소했고 수익률과 수출 실적 또한 하락했다. 2007년 50%로 내려선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8년 42.1%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2년 만에 침체기를 극복하고 2009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만들어낸다. 시장 규모에 맞는 한국형 장르가 다듬어졌고,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감독들이 작품을 이어갔다. 이번 연재는 2000년대 중후반의 한국영화가 어떻게 도약해 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형 장르의 역동성 200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에서 주목할 장르 키워드는 바로 사극과 스릴러다. 퓨전의 길을 택한 사극·시대극 그리고 범죄·액션과 결합한 스릴러 장르는 다양한 장르적 요소와 이합집산하며 더욱더 진화해갔다. 이러한 장르 다변화와 ‘복합장르화’ 경향은 2010년대로 이어지며 ‘한국형 장르’가 구축되는 방법론이 됐다. 물론 한국영화의 전통적인 장르인 멜로·로맨스와 1990년대의 인기 장르였던 로맨틱 코미디도 관객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1960년대 한국 관객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사극 장르는 2000년대 들어 현대적인 감각의 퓨전 사극으로 부활했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2003)를 시작으로 2005년 ‘혈의 누’(김대승)·‘형사 Duelist’(이명세)가 이어졌고, 2005년 12월에 개봉한 ‘왕의 남자’(이준익)는 1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사극 흥행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시나리오를 쓴 김대우 감독은 대담한 상상력과 세련된 유머가 돋보인 ‘음란서생’(2006)과 ‘춘향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방자전’(2010)을 내놓으며 퓨전 사극의 유행을 이끌었다. 2000년대 후반에도 사극의 인기는 계속되었는데, 고려 왕조를 배경으로 에로티시즘과 결합한 ‘쌍화점’(유하, 2008), 한국형 히어로물을 표방하며 판타지 장르에 도전한 ‘전우치’(최동훈, 2009)가 대표적이다. 근현대사의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다룬 시대극 장르도 주목할 경향이다. 2004년에는 ‘효자동 이발사’(임찬상)·‘하류인생’(임권택) 등 근현대사를 가공하거나 ‘슈퍼스타 감사용’(김종현)·‘역도산’(송해성) 등 실존인물을 소재로 과거를 되돌아보는 노스탤지어 영화들이 수확됐다. 2005년에는 대통령 시해 사건을 블랙코미디 감각으로 풍자한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일제강점기 여류 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그린 ‘청연’(윤종찬)이 이어졌다. 2007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화려한 휴가’(김지훈)가 전국 730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이 선취한 스릴러 장르는 2008년 ‘추격자’(나홍진)에서 완성됐다. 실제 연쇄살인마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추격자’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관객 500만 이상을 동원해 화제가 됐다. 이 영화의 성공은 범죄·액션 등의 요소와 결합한 스릴러 장르의 유행을 촉발, 스릴러가 현대 한국영화의 대표 장르로 등극하는 계기가 됐다. 2010년에는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끼’(강우석), 잔혹한 이미지를 전시한 ‘하드보일드’ 스릴러 ‘악마를 보았다’(김지운)가 흥행 배턴을 이었다. 액션과 스릴러는 장르 특성상 결합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전통적인 강세 장르인 액션이 더 전면으로 나서는 영화들도 있었다. 2010년에는 남북 분단 상황을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의형제’(장훈)가 540만 관객을, 2011년에는 ‘감성 액션’을 표방한 ‘아저씨’(이정범)가 6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과 비평 모두 주목을 받았다.범죄스릴러의 인척 장르라 할 누아르, 갱스터 영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윤종빈, 2011)는 1980년대 시대상을 풍자와 해학 그리고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그리며 갱스터 장르의 신기원을 보여주었다. 한편 최동훈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으로 한국형 ‘케이퍼 무비’(범죄 전문가들의 정교한 범죄 과정을 보여주는 장르)를 성공시켰다. 이후 허영만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2006), ‘멀티캐스팅’의 묘를 살린 범죄영화 ‘도둑들’(2012) 등을 내놓으며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등극했다. 큰 예산이 들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 법칙을 새롭게 재해석한 ‘달콤한 거짓말’(정정화, 2008), 박중훈의 귀환과 ‘88만원 세대’의 묘사가 인상적인 ‘내 깡패 같은 애인’(김광식, 2010), 장르 화법에 더없이 충실했던 ‘시라노: 연애조작단’(김현석, 2010), 기획 코미디의 힘을 보여준 ‘댄싱퀸’(이석훈, 2011), 46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은 성공작 ‘내 아내의 모든 것’(민규동, 2012), 키치적인 B급 정서가 매력적인 ‘남자사용설명서’(이원석, 2012) 등이 이어졌다. 멜로를 코믹호러에 접붙인 ‘달콤, 살벌한 연인’(손제곤, 2006), 로맨틱 코미디의 뼈대에 호러를 녹여낸 ‘오싹한 연애’(황인호, 2011)도 주목받았다. ●예술영화·상업영화 아우르는 작가주의 1996~1997년 데뷔해, 2000년대 초중반 주요 해외영화제를 통해 인정받은 작가주의 감독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은 미학적 성숙을 거듭하며 그들의 영화세계를 완성시켜갔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치면 단연 홍상수다. 그는 매년 1~2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새로운 미학적 실험과 변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04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5년 ‘극장전’, 2006년 ‘해변의 여인’, 2008년 ‘밤과 낮’·‘첩첩산중’(단편), 2009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10년 ‘하하하’·‘옥희의 영화’, 2011년 ‘북촌방향’ 등 언뜻 앞의 영화와 겹치는 듯하면서도 매번 기존의 틀을 바꿔가는 방식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마치 거울처럼 마주 보는 그의 연작들은, 각 영화의 제목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차라리 ‘홍상수 영화’로 호명하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비평적 해석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국내외 비평계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예술영화 관객들의 지지도 굳건하다. 김기덕은 ‘활’(2005), ‘숨’(2007), ‘비몽’(2008) 등 본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는 영화다’(장훈, 2008)·‘풍산개’(전재홍, 2011) 등 조감독 출신 감독의 영화 제작까지 겸했다. 그는 ‘아리랑’(2011)으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피에타’(2012)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안았다. 이창동 역시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구원에 관한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미학적 성취를 이어갔다. ‘밀양’(2007)은 제60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에 진출, 주연 배우 전도연이 한국영화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시’(2010)는 제63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각본상을 받았다. 한편 이창동은 2009년 제62회 칸영화제에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2011년 제64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2000년대 들어 새롭게 발견된 시네아스트(cin?ste·영화예술가)로는 재중동포 출신인 장률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두 번째 장편영화인 ‘망종’(2005)이 제58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고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널리 알려졌다. ‘경계’(2007), ‘중경’(2007), ‘두만강’(2009), ‘풍경’(2013)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조선족, 탈북 여성과 소년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등 경계인들의 이야기를 건조한 풍경 속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그는 ‘경주’(2013) 이후 새로운 화법으로 전환해 더 넓은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 외에도 ‘천년학’(2007)으로 100번째 영화를 연출한 거장 임권택, 현대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을 로맨스 장르에 녹인 ‘멋진 하루’(2008)의 이윤기, 리얼리즘과 신비함이 뒤섞인 ‘파주’(2009)의 박찬옥, 제주도 4·3 사건을 독특한 미학으로 승화시킨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의 오멸 등이 작가주의 영화의 계보를 이었다. 또한 제28회 밴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한 ‘회오리바람’(2009)의 장건재,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을 예리하게 포착한 ‘무산일기’(2010)의 박정범,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창조한 ‘파수꾼’(2010)의 윤성현 등 인상적인 독립장편영화로 데뷔한 감독들도 특기할 필요가 있다.대중영화와 작가영화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 독창적인 장르 해석과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유지하는 감독군으로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그리고 나홍진이 있다. 봉준호는 국내를 넘어선 흥행과 비평적 지지를 받은 ‘괴물’(2006), 뛰어난 미학적 완성도로 국내외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마더’(2009) 그리고 글로벌 영화 프로젝트의 성공작 ‘설국열차’(2013)를 이어가며 그만의 영화세계를 진보시켜갔다. 박찬욱은 ‘복수 3부작’의 완결편 ‘친절한 금자씨’(2005), 디지털 영화 미학을 개척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쥐’(2008), 그리고 첫 번째 할리우드 영화 ‘스토커’(2013)까지, 영화적 야심과 예술가적 자의식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다. 김지운은 만주웨스턴 ‘쇠사슬을 끊어라’(이만희, 1971)를 오마주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고어 영화(선혈이 낭자하는 잔인한 묘사가 특징)에 가까운 하드보일드 ‘악마를 보았다’(2010) 등을 통해 특유의 장르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2008년 범죄스릴러 ‘추격자’로 데뷔한 나홍진은 광기 어린 액션스릴러 ‘황해’(2010), 초자연적 미스터리스릴러 ‘곡성’(2016)을 내놓으며, 스릴러 장르를 그만의 스타일과 해석으로 새롭게 구축해가고 있다. 그의 세 작품은 모두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추격자’는 제61회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황해’는 제64회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곡성’은 제69회 비경쟁부문에서 세계 영화인들을 만났다. 그는 가장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임에 틀림없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조의문 뒤 北발사에 한국 “반인륜·패륜에 경악”, 민주 “美 압박용”

    조의문 뒤 北발사에 한국 “반인륜·패륜에 경악”, 민주 “美 압박용”

    민주 “문 대통령 모친상 중에 발사 유감”한국 “공산독재왕조 두 얼굴…희대사건 기억”한국 “北, 대북문제 올인한 文에 대한 도리냐”바른미래 “뒤통수치는 北도발 상응 조치해야”정의 “남북관계 청신호에 찬물 뿌리는 행위”민주평화 “이젠 놀랍지도 않다…北 자중하라”대안신당 “북미 대화에 무슨 득 될까 의아”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상 중에 북한이 조의문을 보낸 다음날인 31일 동해로 미상의 발사체 2발을 발사하자 여야는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그러나 북한의 발사 의도를 둘러싼 해석에는 입장차가 뚜렷했다. 여당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로 봤지만 자유한국당은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행태”라고 맹비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이번 북한의 발사와 관련한 논평을 내고 “북미 대화의 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북한의 정치·군사적 조치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떠한 이유이건 군사 행동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긴장을 조성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모친상 중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의문을 보내온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북한 군부가 발사체를 발사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북한은 자신의 입장을 군사적인 수단을 통해 나타내기보다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관철하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대북문제 해결에 힘써 온 문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이중성을 성토했다.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서면 논평에서 “앞에서는 조의문을 보내고, 뒤에서는 발사체를 쏘는 ‘공산독재왕조’의 철저한 두 얼굴과 반인륜성을 보여주는 희대의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라면서 “북한의 패륜적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 대변인은 “정치적인 것을 떠나, 이것이 대북문제에 올인하다시피 한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인가”라고 반문한 뒤 “문재인 정권은 지금이라도 오늘 북한의 본 모습을 똑바로 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앞에서는 손을 내밀고 뒤로는 뒤통수를 치는 것이 진짜 북한의 모습”이라면서 “청와대는 짝사랑을 멈추고 도발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끌려다녀서는 정상적인 남북 관계를 만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전 세계에서 김 위원장을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은 문 대통령 단 한 사람뿐”이라면서 “미사일 발사라는 적대 행동을 하는 북한 모습이 이성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반복되는 위협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면서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 모친 고(故) 강한옥 여사 별세와 관련해 조의문을 보낸 상황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남북관계의 청신호에 찬물을 뿌리는 행위이자 인간적 도리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승한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이제 놀랍지도 않다. 북한은 자중하기 바란다. 안타깝고 걱정스럽다”면서 “다소 답답하고 북미 실무협상이 불확실하더라도 남북 모두 민족의 미래를 위해 서로 지혜를 모을 때”라고 말했다. 김정현 대안신당 대변인은 “이런 발사체 발사가 북미 대화에 무슨 득이 될까에 대해 의문이다”라면서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 모친상에 조의문을 보내온 직후여서 의아한 느낌”이라고 논평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북한 발사체에 한국당 “패륜적…문 대통령에 대한 도리 맞나”

    북한 발사체에 한국당 “패륜적…문 대통령에 대한 도리 맞나”

    북한이 31일 미상의 발사체를 발사한 것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북한의 패륜적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북한이 또다시 발사체 두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상중에 북한이 발사체 도발을 했다. 이것이 북한의 야만성”이라고 밝혔다. 전 대변인은 “북한의 도발 위협 수위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과 이를 초래한 김정은에 대해 규탄한다”며 “지금은 문 대통령이 상중에 있는 시점이다. 정치적인 것을 떠나서 대북 문제에 올인하다시피한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의 패륜적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앞에서는 조의문을 보내고, 뒤에서는 발사체를 쏘는 공산독재 왕조의 철저한 두 얼굴, 반인륜성을 보여주는 희대의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는 “문재인 정권은 지금이라도 오늘 북한의 본 모습을 똑바로 보기 바란다”고 했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이 오늘 오후 평안남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상 발사체 2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日국보이자 세계유산 오키나와 슈리성 본건물 등 화재로 전소

    日국보이자 세계유산 오키나와 슈리성 본건물 등 화재로 전소

    일본 남부 오키나와현 나하의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슈리성에 화재가 일어나 정전과 남쪽 건물, 북쪽 건물 다수가 전소됐다. 약 500년 전 류큐 왕조 때 묵재로만 축조된 이 성은 류큐 왕조 때 세 차례나 화재로 파괴됐다. 1933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으며, 2차 세계대전 때도 섬을 공격한 미군에 의해 거의 완파됐다가 재건돼 1992년 다시 일반에 공개됐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됐고, 같은 해 정상회담 장소로 쓰였다. 2000엔권 지폐에 그려진 나라의 자랑이기도 했다. 31일 새벽 일찍 불이 시작됐으며 오전 9시가 될때까지 계속 불길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아직 다친 사람이 있다는 보고는 없다. 료 고치 오키나와현 경찰 대변인은 AFP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화재 원인은 아직 특정되지 않았으며 보안회사의 경보장치가 새벽 2시 30분쯤 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슈리 성은 나하 시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들어서 있으며 1970년대까지 오키나와현에서 가장 큰 공립대학의 캠퍼스로 활용됐으며 그때부터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다. 미키코 쉬로마 나하 시장은 NHK 인터뷰를 통해 화재가 주변의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두렵다며 시는 모든 권한을 이용해 화재와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을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은 내년 도쿄올림픽 성화 봉송 루트에도 포함돼 있었다. BBC는 2차 세계대전 때 이 성이 불타는 모습을 지켜본 오키나와인들은 생애 두 번째로 이 성이 불타는 가슴 아픈 경험을 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조선의 심장서 만난 고려 영웅·미당의 삶… 가슴 시린 ‘천년 역사’

    조선의 심장서 만난 고려 영웅·미당의 삶… 가슴 시린 ‘천년 역사’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7차 관악산 아랫마을’ 편이 지난 26일 관악구 남현동과 인헌동, 봉천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사당역 6번 출구 앞 관악 예술인마을에서 집결했다. 남현동이라는 지명에서 남태령을 떠올리긴 쉽지 않지만 이곳은 서울에서 과천으로 넘어가는 해발고도 183m, 길이 6㎞에 이르는 남태령고개의 시발점이다. 일행은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으로 변신한 옛 벨기에영사관~서울 유일의 백제 도자기 가마터~효민공 이경직 묘역을 둘러봤다. 미당 서정주의 삶이 오롯이 담긴 봉산산방과 서울에 남아 있는 고려의 영웅 강감찬(948~1031) 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터, 사당(안국사)이 있는 낙성대공원을 탐방한 뒤 일정을 마무리했다. 관악산 아랫마을은 2시간의 짧은 여정 동안 백제~고려~조선~근대~현대의 흔적을 두루 느낄 수 있는 함축적 역사공간이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미당 서정주의 집 봉산산방이 유일했다. 해설을 맡은 황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깊어 가는 가을의 정취와 역사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도록 푸짐한 코스와 꼼꼼한 해설을 참가자들에게 선물했다.서울을 세계의 여느 다른 도시와 차별화하는 자연환경적 특징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서울은 인문지리학적으로 4개의 내사산(백악산-낙산-남산-인왕산)과 4개의 외사산(삼각산-용마산-관악산-덕양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유일의 역사도시다. 이는 정치지리학적 관점에서 서울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남산(262m)이 옛 서울(한양)의 남쪽 경계라면 한강 너머 관악산(629m)은 강남을 품은 현대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다. 관악산이야말로 서울의 진정한 앞산(남산)이라고 할 수 있다. 관악산은 서울 관악구 및 금천구와 경기 과천시 및 안양시에 걸쳐 검붉은 바위기둥이 타오르는 불길을 닮은 형상으로 우뚝 솟아 있다. 옛 선비들이 갖춘 의관의 관처럼 생겼다고 해서 말할 때는 ‘갓뫼’(갓산)라고 하고, 글로 쓸 때는 관악이라고 썼다. 산세가 험하고 경관이 뛰어나 개성의 송악, 가평의 화악, 파주의 감악, 포천의 운악과 함께 ‘경기 5악’에 꼽혔다.관악산 주봉 ‘연주대’라는 지명은 망한 고려왕조에 지조를 지킨 ‘두문동 72현’ 가운데 태조비 신덕왕후 강씨의 오라비 강득용이 은거, 개경을 바라보며 왕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동생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준 효령대군이 기거하면서 연주대라는 글씨를 새겼다. 그 덕분에 연주암 효령각에 효령대군의 영정이 모셔졌다. 강득용의 묘역은 정부과천청사 뒤, 양녕대군의 사당 지덕사와 묘역은 동작구 상도동 사자산 아래, 효령대군의 사당 청권사와 묘역 또한 서초구 우면산 북서쪽 기슭에 각각 자리를 잡아 죽어서도 관악산과의 연을 놓지 않았다. 관악산 주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사당역~관음사, 낙성대길, 서울대입구~도림천길, 삼성산길, 시흥동 호압산길, 과천 자하동길, 안양 석수역 유원지길 등 여러 갈래다. 관악산 자락 삼성산은 신라 때 고승 원효·의상·윤필이, 고려 때 지공·나옹·무학이 각각 수도했고, 삼막사는 조선 때 무학·서산·사명대사가 도를 닦은 유서 깊은 도량이다. 전국 어디에 가도 이만한 내력을 품은 산이나 사찰은 보기 드물다. 삼각산이 서울의 조상산이라면 관악산은 아침마다 알현하는 신하산이다.고려의 명신 강감찬 장군의 탄생지는 봉천동 218-14에 있다. 북두칠성 중 네 번째 별이자 문운을 관장하는 문곡성이 떨어진 곳, 낙성대다. 빌라와 단독주택이 빽빽하게 둘러싼 주택가 한가운데에 손바닥만 한 소나무공원이 남아 있다. 유허비와 향나무 한 그루가 땅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장군과 함께 자랐고 이후 1000년 동안 집을 지킨 ‘강감찬 향나무’는 1969년 고사했다. 높이 17m에 둘레 4.2m의 향나무는 살아생전 서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 중 하나였다. 생가터의 주인이 바뀌면서 잘려 나갔으나 2004년 수소문 끝에 두 갈래 밑동 중 하나를 찾아 낙성대공원 안 강감찬전시관에 전시 중이다. 현재의 향나무는 170년 묵은 후계목이다. ‘진짜 낙성대’는 서울시기념물 제3호로 지정돼 있다. 서울시기념물 제4호 ‘낙성대 삼층석탑’이 있던 자리에는 ‘강감찬장군낙성대유허비’ 한 점이 달랑 놓여 있다. 생가터인 낙성대와 안국사 사당이 있는 낙성대공원을 헛갈리면 안 된다. 인위적으로 성역화한 낙성대공원은 생가터에서 약 400m 떨어진 봉천동 228에 있다. 1974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영정을 모신 사당을 현재의 낙성대공원에 지었다. 이때 낙성대공원으로 옮겨진 삼층석탑은 절이 아닌 사람의 집에 세워진 탑이라는 점에서 매우 희귀하다. 불탑을 닮은 이 석탑 때문에 더러 안국사를 사찰로 착각하곤 한다. 13세기에 높이 4.5m의 화강암으로 지어진 삼층석탑은 임진왜란 때 탑 꼭대기 장식이 훼손됐다.왜 비석이 아닌 탑을 세웠을까.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 현재의 봉천동과 금천구 시흥동 일대는 고려시대 금주(금천)지역에 뿌리내린 금천 강씨의 지배지역이었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었던 부친(강궁진)에 이어 나라를 구한 안국공신을 기리는 가문의 기념물로 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둘째는 불교 왕국답게 비석이 아닌 석탑을 세웠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강감찬은 신라의 김유신, 고려의 윤관·최영, 조선의 남이·임경업 장군과 함께 탄생설화와 전설, 전기소설 등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대첩 중 하나인 귀주대첩의 주인공이다. 35세 늦깎이로 과거에 장원급제, 최고관직 문하시중에 오른 고려의 명재상이었다. 또 금천 호족 출신답게 남경(고려시대의 서울)을 다스리면서 호환을 일으키는 호랑이를 쫓아내는 등 전국에 걸쳐 화려한 설화를 남기고 있다. 올해는 귀주대첩 10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현재 낙성대공원 안국사에 모셔진 공의 영정은 모사화다. 1974년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표준영정은 1998년 1월 10일 도난당한 뒤 행방이 묘연하다. 문화재청은 도난당한 가로 110㎝, 세로 200㎝ 규격의 영정을 도난문화재로 공시 중이다. 낙성대는 인헌초등학교 후문 쪽에 있고, 낙성대공원은 인헌초등학교 정문 쪽에 있다. 관악구에서는 인헌초·중·고교를 비롯해 인헌동, 인헌시장 등 공의 호를 딴 지명과 은천동, 은천로 등 공의 아명을 딴 지명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빌라 이름 등 상호에도 ‘강감찬 마케팅’이 활용되고 있다. 조선의 심장 서울에서 만나는 고려의 전설, 강감찬 장군의 유적은 감흥을 준다. 낙성대 생가터가 서울시기념물 3호이고, 낙성대공원 안 삼층석탑이 서울시기념물 4호인 것만 봐도 그 존재감을 알 만하다. 강감찬 장군 탄생지인 ‘낙성대’는 볼품이 없지만 서울 2000년사의 절반인 서울 1000년을 증언하는 대단한 역사 현장이다. 으리으리하지만 혼이 없는 ‘낙성대공원’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8차 서울의 대중가요3(단장의 미아리고개) ■집결 장소 : 11월 2일(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솔샘역 1번 출구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몸값 높은 명장도 가을엔 약했네

    몸값 높은 명장도 가을엔 약했네

    SK 염경엽, 88승 하고도 정규 1위 놓쳐 LG 류중일, 준PO 갔지만 투수 운용 패착지난 29일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이 역대 감독 계약 최고액(3년 28억원·계약금 7억원+연봉 7억원) 기록을 갈아치우기 전까지 최고 금액 감독은 염경엽 SK 와이번스 감독(3년 25억원·계약금 4억원+연봉 7억원)이었다.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3년 21억원·계약금 6억원+연봉 5억원)이 그 뒤를 이었다. 최고액 듀오였던 두 감독은 SK와 LG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지만 거기까지였다. 가을야구에서 조기 탈락하며 내년 시즌 단기전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2018시즌 챔피언이었던 SK는 올해 가장 화려하고도 가장 비극적인 시즌을 보냈다. 시즌 초반 두산과 선두 다툼을 벌이던 SK는 5월부터는 4개월 동안 1위를 독주하며 기분을 냈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격언처럼 3.48로 전체 1위인 팀 평균자책점이 무기였다. 그러나 정규시즌 팀타율이 0.262(7위)에 그치는 부진한 타선에 발목이 잡혔다. 플레이오프에서 키움 히어로즈에 무기력하게 3연패를 당한 것도 결국 부실한 공격력 때문이었다. 염 감독은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전 “87승을 하고도 1위를 확정 못할 줄 누가 상상했겠느냐”는 말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염 감독으로선 넥센 시절 우승을 못 이룬 경력까지 더해 ‘가을에 약하다’는 꼬리표가 붙게 됐다. LG는 올 시즌 따라잡지도, 따라잡히지도 않는 무난한 전력으로 4위를 확정했다. 선두 싸움과 5위 싸움이 막판까지 치열했지만 LG는 경쟁에서 벗어나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왕조를 일궜던 류 감독은 부임 2년 만에 짜임새 있는 팀을 만들며 LG를 가을야구에 진출시켰고 명장 타이틀을 되찾았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투수 운용이 아쉬웠다. 정규시즌 35세이브를 거둔 마무리 고우석(21)이 불안함을 노출했음에도 계속 기용한 부분이 패착이 되며 결국 키움에 1승 3패로 졌다. 류 감독은 “선수들이 많이 성장하고 배웠을 것이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것으로 생각한다”며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김태형 감독 “자꾸 훔쳐쓴다… 선수들 샴푸 사줄 것”

    김태형 감독 “자꾸 훔쳐쓴다… 선수들 샴푸 사줄 것”

    최고 연봉 감독이 공언한 ‘10만원 안쪽 선물’은 샴푸와 컨디셔너였다.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은 3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재계약과 관련한 공식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했다. 통합우승을 달성한 김 감독은 지난 29일 3년 총액 28억원(계약금 7억원+연봉 7억원)의 역대 최고 대우를 받으며 재계약에 성공했다. 김 감독은 이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가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우승하면 연봉이 달라질 것 같다. 우승하면 선수들에게 어떤 선물을 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좋은 선물을 해주겠다. 10만원 안쪽으로 해서…”라며 센스 있게 답했다. 우승을 달성한 김 감독은 선물과 관련한 질문에 “샴푸와 컨디셔너 세트를 주려고 한다”는 엉뚱한 대답을 건넸다. 김 감독은 “애들이 하도 내 샴푸를 훔쳐 써서 그렇다”는 이유를 밝히더니 “얘네는 여섯 명씩 막 쓰니까 금방 떨어지는데 다른 사람 거 쓴다고 핑계댄다”는 말로 좌중을 폭소케 했다. 김 감독의 샴푸가 좋은 브랜드인 영향도 있었다. 김 감독은 2015년과 2016년 연속으로 우승하며 왕조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이후 2017년 KIA 타이거즈에, 2018년 SK 와이번스에게 한국시리즈에서 패했다. 두산 팬들이 자랑스러워했던 ‘어우두’(어차피 우승은 두산)란 말은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올시즌 역대급 경쟁으로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위를 확정한 데 이어 한국시리즈마저 4승으로 가볍게 키움 히어로즈를 제압하며 왕조 논란을 종식했다. 최고 감독에게 어울리는 최고 연봉이지만 김 감독은 “그 부분은 내가 신경을 쓰고 안 쓰고 할 문제가 아니다. 감독이란 자리가 그렇다“면서 “사장님께서 그동안 느끼신 점과 방향을 얘기하셨고, 금액을 말씀하셔서 그냥 ‘예’ 하고 말았다”며 덤덤히 말했다. 김 감독은 “와이프가 당연히 좋아했다”는 솔직한 대답도 내놨다. 김 감독은 선수들을 챙기는 자상함도 잊지 않았다. 특히 미디어데이 때 “차를 좋아한다”고 밝힌 이영하를 언급하며 “영하에게 맛있는 차를 한 잔 사줘야겠다”고 말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태영호 “밀레니얼 세대는 미국 꺼려하지 않아, 완전히 달라질 것”

    태영호 “밀레니얼 세대는 미국 꺼려하지 않아, 완전히 달라질 것”

    “현재 북한 인구의 다수, 특히 밀레니얼 세대는 미국을 꺼려하지 않습니다.” 지난 2016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로 일하다 남한에 망명해 북한의 관료 출신으로는 가장 높은 직위를 경험한 태영호 전 공사가 노르웨이 ‘오슬로 프리덤 포럼’에 참석 중 야후! 파이낸스와 인터뷰를 갖고 밝힌 내용이다. 망명 후 지난해 5월까지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자문 연구위원으로 일하다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의 증언’이란 책을 낸 뒤 국내외 북한 관련 강연 활동에 열심인 그는 “지배계급이야 미국에 대한 증오를 여전히 강하게 갖고 있고 인민들은 그에 세뇌돼 있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윈도우 시스템과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자라났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우리의 적이란 말을 듣고 자라긴 했지만 모두 컴퓨터를 할 줄 알고 예를 들어 빌 게이츠도 안다. 그들은 정말로 정보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그것이 전 세대와 그들이 다른 이유”라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지금 북한 주민의 삶은 거주·직업·교육 등 모두 계급체계에 따라 결정된다. 북한의 엄격한 계급체계는 중세 봉건왕조와도 같다”면서 “북한에는 세 가지 계급이 있는데 핵심과 부유, 적대 계급이다. 난 지배 계급인 ‘핵심’층에서 태어나 운 좋게도 엘리트 교육을 받고 좋은 일자리를 얻어 평양에서도 좋은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북한에서의 삶을 결코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씨 일가는 개개인의 인권 같은 것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자기 잇속만 챙긴다”고 이유를 강조했다. 싱가포르에 본부를 두고 북한 기업과 기업인을 교육하는 비영리 시민단체 조선 익스체인지를 창립한 조프리 시도 태 전 공사의 견해에 공감하며 북한 젊은이들에게 모험심을 키워주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말했다. 그는 3000명의 북한 젊은이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심어주고 경제정책을 훈련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는 “젊은이들을 만나보면 대형 국영기업들에 갑갑함을 느낀다. 치약 공장이나 트럭 용품을 만들더라도 본인이 직접 자기 손으로 하고 싶어한다. 이런 식으로 기업가 정신을 키우는 트렌드가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연합뉴스는 30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을 인용해 태영호 전 공사가 최근 뉴욕과 워싱턴DC에서 연달아 비공개 강연회를 열어 ‘남북한시민연대’의 설립 취지와 활동 계획 등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국내외 탈북민 청년들과 함께하는 단체는 북한 내 휴대전화 사용자들과 해외 파견자들에게 외부 정보를 보내는 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태 전 공사는 밝혔다. 그는 ‘정권교체’와 같은 외세의 직접 개입을 통한 변화가 아닌 북한 주민들 스스로 정권을 바꿀 수 있는 역량 강화를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피라미드를 거부한 파라오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피라미드를 거부한 파라오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의 대표적인 왕묘 형식이다. 특히 고왕국 4왕조 시대(기원전 2613~2494년)는 ‘피라미드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스네페루(Sneferu)가 ‘붕괴 피라미드’, ‘굴절 피라미드’, ‘붉은 피라미드’ 등 3기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했고, 그의 아들 쿠푸(Khufu)가 역사상 지어진 피라미드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높이 146미터의 ‘대피라미드’를 지었다. 그다음으로 왕위에 오른 제데프라(Djedefra)의 피라미드는 보존 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뒤이어 왕위를 계승한 카프라(Kafra)와 멘카우라(Menkaura)의 피라미드들도 최고 수준의 피라미드들이다. 그런데 이 피라미드의 전성기 직후에 왕위에 오른 솁세스카프(Shepseskaf)는 갑자기 피라미드가 아니라 ‘마스타바’(Mastaba) 형식으로 자신의 무덤을 만든다.마스타바는 아랍어로 ‘벤치’를 뜻하는데, 단층으로 돼 있는 직사각형 형태의 상부구조를 갖고 있는 무덤을 지칭하기도 한다. 마스타바 무덤은 왕묘로는 피라미드가 최초로 만들어지는 3왕조 시대 이전까지만 사용됐고, 그 이후에는 귀족들의 무덤으로만 만들어졌다. 당연히 솁세스카프 당대의 기준으로는 왕묘로서는 격이 떨어지고, 고리타분한 형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솁세스카프의 선택은 꽤나 이례적인 것이었다. 이 이례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설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권력, 즉 태양신을 섬기는 신관들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피라미드가 거부됐다는 설명이다. 이런 식으로 파라오가 특정 신관단의 비대해진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그동안의 전통을 깨뜨리려 드는 것은 이집트 역사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인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신왕국 18왕조 시대 아케나텐(재위 기원전 1352~1336년)이 시도한 종교 개혁이다. 4왕조 시대 말기 태양신 라(Ra)를 섬기는 헬리오폴리스 신관 집단의 영향력은 극에 달했다. 파라오로서는 헬리오폴리스의 사제 집단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태양을 상징하는 피라미드를 최고 권력자가 거부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꽤 효과적인 견제 방법이었을 수 있다. 솁세스카프는 단순히 피라미드를 거부한 것뿐만이 아니라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등 선대 3대가 계속해서 왕실 네크로폴리스로 사용했던 기자(Giza)가 아닌, 그 이전 시대의 왕묘들이 만들어지던 사카라(Saqqara)를 자신의 매장지로 선택했다. 이 역시도 태양 신앙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과거의 전통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의지는 솁세스카프의 이름에서도 확인된다. 쿠푸 이후 솁세스카프의 선왕들 이름에는 다음과 같이 모두 태양신 ‘라’의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 제데프라(djed=f Ra ‘그는 라처럼 굳건하다’) 카프라(kha=f Ra ‘그는 라처럼 나타난다’) 멘카우라(men kaw Ra ‘라의 카들은 영속된다’) 반면 솁세스카프는 ‘shepses ka=f ’, ‘그의 영혼은 고결하다’와 같이 ‘라’와는 무관한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러나 태양 신앙을 견제하기 위한 솁세스카프의 노력은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라와 무관한 이름을 쓰는 흐름은 솁세스카프 직후의 우세르카프(user ka=f, ‘그의 영혼은 강하다’)까지는 이어지지만, 그다음 파라오인 사후라(sahw Ra, ‘라와 가까운 자’) 때부터는 다시 라와 관련이 있는 이름이 사용된다. 이와 더불어 5왕조 시대가 되면 태양 신앙의 영향력은 더 높아져 이 시기의 파라오들은 이제 피라미드만이 아니라 ‘태양 신전’을 짓는 데도 열을 올리게 된다. 아부구로브(Abu Gurob)에서 확인되는 태양 신전 유적들은 모두 이 시대의 흔적들이다. 태양 신앙은 이후 고대 이집트 문명의 주요한 정체성으로 자리잡았고, 이 정체성은 문명의 마지막 장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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