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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사벌’은 전북 전주일까 경남 창녕일까

    삼국사기에 기록된 옛 지명 ‘비사벌’은 전북 전주시일까 아니면 경남 창녕군일까. 전북 전주시가 2018년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신석정(1907~1974) 시인의 자택 ‘비사벌초사’ 명칭을 놓고 전북지역 문화계에서 뒤늦게 논란이 일고 있다. 전주시 남노송동 ‘비사벌초사’는 일제와 독재에 항거했던 촛불시인 신석정 선생이 1954년 전주고에서 교편을 잡게 되면서 정착했던 자택이다. 시인이 직접 전주의 옛 지명 ‘비사벌’과 볏짚 등으로 지붕을 인 집을 뜻하는 ‘초사’를 결합해 ‘비사벌초사’라 이름 붙였다. 비사벌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에서 비롯됐다. 삼국사기 제4권 신라본기 진흥왕조에는 ‘신라는 진흥왕 16년(555년) 비사벌(比斯伐)에 완산주(完山州)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와 함께 제36권 지리지에는 ‘전주는 본래 백제의 완산이었다. 진흥왕 16년에 주를 삼았다’고 기술했다. 이를 근거로 비사벌은 1950~1980년대 옛 전주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됐다. 전북 문학인들의 작품, 전주찬가, 전북대 교지 등에도 상징적으로 쓰였다. 그러나 경남 창녕지방의 호족이 완산에 진출한 것이 지명이동을 가져왔다는 학계 주장이 제기되면서 전북에선 서서히 사라진 명칭이 됐다. 반면 경남 창녕에서는 자치단체에서 도로와 축제 명칭 등에 널리 사용하고 있다. 학계는 그 당시 비사벌은 경남 창녕으로 본다. 정구복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를 비롯한 5명의 역사학자가 2012년 펴낸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 3’에서는 완산주를 경남 창녕에 설치한 비사벌주로 해석하고 있다. 이강래 전남대 사학과 교수는 ‘삼국사기 인식론’에서 “비사벌(창녕)에 있었던 가야 사람들을 백제의 완산(전주)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그곳(전주)을 비사벌로 부르는 전통이 생겼다. 이런 전통이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잘못 기술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이에대해 전주시는 “문헌사료에 나온 기록보다 신석정 선생님께서 직접 이름 짓고 실제로 사셨던 고택이었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역사문화적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며 명칭 유지 입장을 밝혔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내가 죽거든 차라리 짚으로 싸서 묻어라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내가 죽거든 차라리 짚으로 싸서 묻어라

    지난 15일은 세종대왕 탄신 624돌이다. 코로나의 기승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다양한 세종 탄신일 기념행사가 열렸다. 오늘은 세종과 관련해 영릉의 석곽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곽은 시신을 매장할 때 광중에 관을 넣는 일종의 외관으로, 나무로 짜 설치하면 목곽이고, 돌로 만들어 설치하면 석곽(석실)이다. 세종을 비롯해 태조, 정종, 태종, 문종 등 조선 초 왕들은 살아생전에 왕비가 죽어 자신의 능보다 왕비의 능을 먼저 조성했다. 자연히 왕의 입김이 왕릉 조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세종은 일찍이 부왕 태종의 헌릉 옆에 능지를 정했다. 수릉지가 풍수지리적으로 불길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세종은 아무리 좋은 땅이더라도 부모 곁에 장사하는 것보다는 못하다며 동분이실(同墳異室)로 자신의 능을 축조토록 했다. 즉 하나의 봉분 속에 합장할 수 있도록 석실을 둘로 나누어 오른쪽 서실(西室)에는 후일 세종 자신을, 왼쪽 동실(東室)에는 왕비를 안장하도록 했다.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1446년(세종 28년) 3월 24일 수양대군의 집에서 돌아가셨다. 열흘 뒤 4월 3일 세종은 영의정 하연, 이천 등과 왕비의 능실에 대해 논의했다. 이때 재궁(임금의 관)을 안치할 능실을 석곽으로 할 것인지, 목곽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신료들 간 의견이 팽팽했다. 유해가 ‘땅의 좋은 기’(地氣)를 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걸린 일이다. 왜냐하면 바닥이 있는 석곽을 쓸 경우에는 지기가 차단되고 나무로 목곽을 만들면 썩어 무너져 내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영의정 하연은 집을 지을 때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면 기둥이 썩지 않고, 흙바닥에 세우면 쉽게 썩는 것과 같은 이치와 같다며 능실을 견고하게 해 살갗에 흙이 닿지 않도록 하는 석곽을 주장했다. 반면 과학적 식견을 가지고 있던 이천은 흙이 살갗에 닿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관곽(棺槨)을 말한 것이지 굳이 석곽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라며 석곽 설치를 반대했다. 정인지도 만일 석곽을 썼다가 재궁이 썩어 없어지면 백골이 돌 위에 놓이게 돼 오히려 해가 될까 두렵다며 목곽을 주장했다. 이처럼 신료들 간에 의견이 분분해 결론이 나지 않자 세종은 길천군(태종의 셋째 딸 경안공주의 부군 권규)의 묘를 예로 들어 직접 자신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길천군의 묘는 장사 때 석곽으로 축조했는데, 이장하려고 파 보니 관이 물에 떠 있었다. “차라리 짚으로 싸서 묻으면 비록 석곽 안에 물이 차더라도 고이지 않고 빠져나가 시신을 안온하게 할 수 있다”며 석곽 무용론을 폈다. 그러나 군왕을 얇게 장사할 수 없어 굳이 석곽을 써야 한다면 돌 가운데를 파낸 석곽으로 관을 덮어씌우든지, 아니면 큰 돌 가운데를 통째로 파내고 밑바닥은 없앤 뒤 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위를 한 판으로 된 뚜껑을 덮어 물이 고이지 않고 빠져나가도록 하면 된다고 했다. 임금의 이 같은 의견에 이천은 석곽을 쓰면 목관이 썩어 유해가 그대로 차가운 돌 위에 놓일 수 있어 좋지 못하고, 그렇다고 석곽 없이 목곽만 쓰게 되면 나무가 썩어 재궁을 덮을 염려가 있으니 석곽을 쓰되 밑의 바닥 돌은 빼고, 그 안에 목관을 놓아 지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세종은 이천의 주장을 받아들여 영릉을 석실로 견고하게 하고 밑바닥은 돌을 놓지 않고 땅의 기를 받도록 했다. 세종 1446년(세종 28년) 7월 16일 새벽 2시 왕비 소헌왕후의 재궁을 실은 큰 상여가 경복궁을 출발했고, 나흘째인 7월 19일 영릉에 안장됐다. 4년 뒤인 1450년 2월 17일 세종이 보령 54세로 승하하자 그해 6월 15일 새벽 2시에 영릉 서실에 합장됐다. 조선 왕조 최초의 합장릉이다. 영릉은 세종이 죽은 지 19년 되던 해인 1469년(예종 원년) 3월 6일 지금의 여주로 천장됐다.
  • 라카이코리아 ‘역사왜곡’ 주제로 국제소송, 한국인의 이름을 뉴욕 타임스퀘어에 송출하다

    라카이코리아 ‘역사왜곡’ 주제로 국제소송, 한국인의 이름을 뉴욕 타임스퀘어에 송출하다

    국내 패션브랜드 라카이코리아에서 다시 한 번 뉴욕 타임스퀘어에 광고를 게시했다. 라카이코리아는 지난 27일 자사 홈페이지에 “2021년 5월 27일 송출된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라며 뉴욕 타임스퀘어에 광고 영상을 새롭게 송출한 것을 알렸다. 라카이코리아는 앞선 3.1절 102주년을 맞아서 뉴욕 타임스퀘어에 한복을 알리는 이미지 광고를 진행했으며, 4월 중순에도 규모를 키워 영상 광고를 진행한 바 있다. 이번 광고는 기존 활동의 연장선상으로, 기존 한복에 관해서만 광고를 진행했던 것에 더해서 현재 중국에서 동북공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한복과 김치, 비빔밥, 태극기 등을 모두 사용하였고, 국제소송에 참여한 한국인들의 이름을 담아 1분 가량의 영상 광고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라카이코리아는 지난 3.1절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 이후 “중국과 일본 네티즌들에 의해 역사 왜곡이 쇄도하고 있다”면서, 이처럼 끊임없이 벌어지는 해외의 역사 왜곡을 처벌하기 위해 악성 댓글을 작성한 해외 네티즌들에 대한 국제소송을 감행하겠다고 지난 3월 초 밝힌 바 있다. 라카이코리아는 이 국제소송에 대해 “당사의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처음엔 막막한 기분이 들었으나 감사하게도 이후 많은 분들의 후원 요청이 이어졌습니다”라며, “한복 광고가 송출되었던 미국 뉴욕 주에서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으며, 한국 법무법인 그리고 미국 대형 로펌과 함께 기나긴 싸움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광고는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는 것이 아닌 미국에서 진행될 본격적인 국제소송 전 다시 한 번 우리 것을 알리고자 하는 의미로 진행되었기에 자랑스러운 한국의 상징들을 담아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수호하는 데에 힘을 보태주신 수많은 후원자분들께 다시 한 번 보답하는 뜻에서 영상 중간,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후원 상품 구매로 국제 소송에 참여해 주신 국민 한분 한분의 이름을 삽입했습니다”라며 라카이코리아를 응원해 준 수많은 국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밝히는 의미에서 이 광고를 진행했음을 시사했다. 라카이코리아가 언급한 것처럼 이번 영상에는 한복, 김치, 비빔밥, 태극기가 연달아 등장하며 이것들이 우리의 전통 문화임을 알릴 수 있는 조선시대 풍속도, <주초침저방>등 고문서와 함께 라카이코리아 국제소송에 후원하겠다는 뜻으로 라카이코리아의 국제소송에 수익금 일부가 사용되는 ‘감사 후원박스’를 구매한 모든 후원자들의 리스트가 모두 송출되었다. 더불어 “역사는 단순히 지나가버린 숫자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것이다”라는 조선왕조실록의 한 구절과 고 권중희 선생의 명언이자 저서 제목인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라는 구절을 삽입하여 역사왜곡을 일삼고 있는 중국에게 강한 일침을 가했다. 라카이코리아는 이 한복 광고를 언급하면서 “이 노력을 계속해 앞으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올바른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며 의지를 다졌고, 현재 많은 국민들이 국제소송 후원 상품을 구매하며 “(라카이코리아의 행보가) 자랑스럽다”, “진정한 이시대의 영웅이다”, “우리나라를 빛내는 한 축들이다. 존경합니다”라며 끊임 없는 응원과 지지의 물결을 보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최초 여성 파라오 메르네이트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최초 여성 파라오 메르네이트

    고대 이집트의 역사 속에는 적잖은 여성 파라오가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였던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해 신왕국의 기틀을 닦은 하트셉수트, 중왕국 12왕조 시대의 소베크네페루, 고왕국 6왕조 시대의 니토크리스가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이집트 문명이 탄생한 직후인 초기 왕조 1왕조 시대(기원전 3000년경)에도 이미 여성 파라오는 있었다. 바로 ‘네이트 여신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메르네이트(Merneith)였다. 메르네이트의 역사적 실체는 아비도스의 움엘카브 유적에서 고고학적으로 분명하게 확인된다. 움엘카브 유적은 초기 왕조 시대의 왕묘군인데, 이곳에 있는 무덤 가운데 ‘Y무덤’이라고 이름 붙여진 무덤이 메르네이트의 무덤이다. 40개가 넘는 부속 무덤과 함께 만들어진 메르네이트의 거대한 무덤은 인근에 세워진 다른 남성 파라오들의 무덤과 규모에서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가장 큰 축에 속한다. 다만 무덤 내부에서 발견된 다양한 기록물과 석비에 쓰여진 그의 이름은 당시 왕명을 쓰는 데 사용되던 ‘세레크’와 함께 쓰여지지는 않았다. 이것은 여성이 파라오직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저항이 낳은 결과로 추정된다. 실제로 훨씬 더 후대인 신왕국 시대에 작성된 여러 왕명표에서도 메르네이트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는다.하지만 그녀의 무덤이 보여 주는 거대한 규모와 그 무덤이 다른 남성 파라오들의 무덤과 일련의 무덤군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메르네이트가 ‘사실상의 파라오’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메르네이트의 이름은 그의 아들인 파라오 덴(Den)의 무덤에서 발견된 인장에서 다른 1왕조 시대 파라오들의 이름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현대의 학자들은 이러한 정황들을 토대로 고왕국 5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팔레르모 비석 왕명표’의 훼손된 부분에는 메르네이트의 이름이 분명하게 쓰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메르네이트는 파라오 제르(Djer)의 딸이자 제르의 왕위를 계승한 제트(Djet)의 아내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트는 그의 아들인 덴이 성인이 되기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것이 메르네이트가 파라오직을 수행하게 된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섭정을 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파라오직을 수행하는 상황은 이후에도 이집트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신왕국 시대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도 그의 아들뻘 되는 투트모스 3세를 대신해 섭정을 시작했다가 직접 파라오가 됐다. 워낙 이른 시대의 상황이다 보니 메르네이트가 덴의 섭정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명시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정황들은 메르네이트가 파라오 혹은 파라오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을 강하게 시사해 주고 있다. 또 다른 정황들 가운데 하나는 후대의 왕명표에 기록된 42년에 이르는 덴의 상대적으로 긴 재위 기간이다. 덴의 재위 기간 가운데 일부는 메르네이트가 통치한 기간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어린 파라오의 어머니가 일시적으로 왕권에 대해 권리를 갖게 되는 상황은 신화적으로 정당성이 뒷받침되기도 한다. 널리 알려진 오시리스신화에서 이시스 여신은 오시리스의 갑작스러운 죽음 속에서 어린 아들 호루스를 훌륭한 왕위 계승자로 키워 내는데, 이와 같은 신화적 서사는 메르네이트나 하트셉수트가 보여 준 역사적 사례와 구조적으로는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성에게 ‘어머니의 역할’이나 ‘아내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여전히 성차별적인 습관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고대 이집트에서는 여성도 경우에 따라 파라오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성에 비해 특별히 낮지 않았다. 메르네이트의 시대보다는 훨씬 더 후대의 스타일이긴 하지만, 신왕국 시대에는 아내가 남편을 마치 남동생 돌보듯이 다정하게 감싸 주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부부상이 자주 만들어지기도 했다.
  • 忠을 이긴 孝

    忠을 이긴 孝

    불충한 어머니´ 그를 폐위하려는 불효한 아들인목대비 폐위 논쟁을 다시 소환하다군사부일체서 군이 빠진 유교 국가의 진화 담아조선은 유교의 나라다. 충과 효, 두 핵심 가치가 국가의 근간이었다. 그런데 두 가치가 충돌하면 어떻게 될까. 조선의 역사에서 충과 효가 정면충돌한 대표적 사건은 광해군 재위(1608~1623) 때 빚어진 인목대비 폐위 논쟁이다. ‘모후의 반역’은 당시 10년 가까이 이어졌던 폐위 논쟁을 오늘날 논쟁의 무대로 다시 소환했다. 폐위 논쟁을 일회성 패륜 소동이 아닌, 조선 왕조의 본질적 변화라는 통시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인목대비는 선조의 계비다. 유교적 관점에서 광해군의 모후(어머니)다. 한데 그 어머니가 군왕인 아들을 용상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의 핏줄인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다는 반역 의혹이 불거졌다. 불충한 어머니와 그를 폐위하려는 불효한 아들. 인목대비 폐비 논쟁의 시작이다. 광해군은 유교의 종법으로는 보위에 오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적자나 장자가 아니고, 아버지 선조마저 배척했다. 게다가 세자 지위를 ‘인증’해 줘야 할 명나라가 다섯 차례 책봉을 거부하는 등 유례없는 난관이 놓여 있었다. 여기에 겨우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에 이복형에게 목숨을 잃은 영창대군, 손녀뻘의 인목대비와 혼인한 선조 등 관련 인물 하나하나가 문학의 소재가 될 만큼 파란만장했다. 하지만 이 모든 서사조차 책에선 폐비 논쟁의 역사적 의미를 찾는 수단으로만 활용될 뿐이다. 책은 그만큼 총체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하다.폐비 논쟁에서 폐위반대론자들이 승기를 잡은 계기는 인조반정이다. 당시 반정의 주요 명분은 배명(背明)과 폐모(廢母)였다. 하지만 얼마 뒤 인조 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 정묘호란(1627)이 터지자 인조는 군부(君父)였던 명나라를 해치려는 강도(후금)와 맹약을 체결했다. 충과 효를 동시에 저버린 거다. 광해군에게 덧씌웠던 패륜을 인조 자신이 저지르는 역설이었다. 당시 조야에도 이런 인식이 팽배했는데, 이를 의식한 인조는 배명에 대해선 입을 닫고 폐모에 대해서만 목청을 높였다. 어떤 경우에도 효의 가치는 범할 수 없다는 명제는 이후 철옹성처럼 굳어졌다. 일련의 과정으로 탄생한 ‘효치국가’가 가져온 후폭풍은 매우 컸다. 이전까지는 충과 효의 가치가 충돌할 때, 주자학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든지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효치’가 정립되고 강화되면서 토론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동북아 어느 왕조에서든 사적 영역인 효는 공적 영역인 충의 실현을 위한 전제이거나 출발점이었지 종착점은 아니었다. 그런데 조선에서만큼은 저자의 표현처럼 “효가 충을 제압해 버렸다.” 이후 충은 “경전의 텍스트로만 존재”하게 됐고, 조선 역시 “군사부일체에서 ‘군’은 탈락하고 ‘사’와 ‘부’에 대해서만 의리를 실천하면 충분한, ‘이상한’ 유교국가로 진화”하게 된다. 충을 상대로 거둔 효의 승리는 근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19세기 중반, 조선이 제국주의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력한 국가 리더십 구축이 절실했지만, 당시 조선은 이론적 근거인 “충 이데올로기를 이미 꽤 상실한 상태”였다. 저자는 충과 효를 독점해 북한에 기형적 사회주의 가족국가를 구축한 김일성, 충을 강조하며 남한에 변형적인 국민국가를 성립한 박정희 등도 ‘효치’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저자는 “인목대비 폐비 논쟁이 한국 역사에서 갖는 위상과 중요성은 거시적 시각으로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 빼도빼도 잘 채운다, 두산 백업… 삐끗하면 날아간다, 주전 자리

    빼도빼도 잘 채운다, 두산 백업… 삐끗하면 날아간다, 주전 자리

    대체불가였던 포지션도 주전급 활약부진한 정수빈 대신해 김인태가 메워김태형 감독 “인태가 주전” 무한신뢰 백업 포수 장승현·최용제 번갈아 기용 ‘안와골절’ 박세혁 부상 공백 우려 씻어잘 키운 2군, 1군 몫 할 수 있게 동기부여두산 베어스가 올해도 주전 못지않은 새 얼굴의 맹활약으로 ‘화수분 야구’를 자랑하고 있다. 부상, 부진 등의 이유로 1군 주전 선수가 잠깐 나갔다 오면 자리가 없을 정도다. 두산의 화수분은 올해도 두산이 상위권 싸움을 펼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두산의 최근 경기를 보면 지난해에 자주 볼 수 없었던 선수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외야수 김인태(27), 포수 장승현(27)이 그 주인공이다. 웬만하면 쉽게 대체할 수 없는 포지션이지만 두 선수는 각각 정수빈(31)과 박세혁(31)을 대신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김태형 두산 감독은 18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전에 김인태를 6번 타자 좌익수로 내보냈다. 김 감독은 “어릴 때부터 타격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늘 대타 요원으로도 1순위였다”면서 “정수빈이 타격감이 조금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인태가 당분간 선발로 나가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인태는 이날까지 32경기에서 타율 0.293을 유지하며 부진한 정수빈(0.125)을 대신해 타선에 힘을 보탰다. 양의지(34·NC 다이노스) 이적 후 두산의 안방마님 자리를 꿰찬 박세혁은 지난달 공에 얼굴을 맞아 안와골절 수술을 받았다. 팀 전력에서 비중이 큰 포수였기에 두산이 받는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됐다.그러나 두산은 백업 포수였던 장승현이 좋은 모습을 보이며 박세혁의 부상 공백을 최소화했다. 여기에 또 다른 백업 포수 최용제(30)까지 있어 든든하다. 김 감독은 지난 15일 장승현 대신 최용제를 선발로 내세우면서 “장승현과 최용제 중 컨디션이 더 좋은 선수를 번갈아 기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 선수의 강점을 모두 활용해 부족한 점을 메우고 경쟁을 통한 시너지를 얻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두산은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최주환(33·SSG 랜더스), 오재일(35·삼성 라이온즈) 등 왕조의 주축 선수가 자유계약선수(FA)로 이적하며 주전 공백이 생겼다. 시즌을 치르면서 예상 못한 부상을 당한 선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산은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우며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철우 두산 퓨처스 감독은 “선수들이 스스로 목적의식이 강하고 코치진도 1군에 올라가서 자신감 갖고 할 수 있게 동기부여도 해주고 있다”면서 “1군에 가서 잘된 선배를 보고 배운 어린 선수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운동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1군에서 공백이 생기더라도 그 자리를 잘 커버할 수 있도록 선수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화수분의 현재 상태를 전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최용제 장승현
  • 나가도 또 누군가 채우는 두산, 오늘도 무럭무럭 화수분

    나가도 또 누군가 채우는 두산, 오늘도 무럭무럭 화수분

    두산 베어스가 올해도 주전 못지않은 새 얼굴의 맹활약으로 ‘화수분 야구’를 자랑하고 있다. 부상, 부진 등의 이유로 1군 주전 선수가 잠깐 나갔다 오면 자리가 없을 정도다. 두산의 화수분은 올해도 두산이 상위권 싸움을 펼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두산의 최근 경기를 보면 지난해에 자주 볼 수 없었던 선수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외야수 김인태(27), 포수 장승현(27)이 그 주인공이다. 웬만하면 쉽게 대체할 수 없는 포지션이지만 두 선수는 각각 정수빈(31)과 박세혁(31)을 대신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17일 정수빈이 선발에서 빠진 것에 대해 “김인태가 주전이다. 계속 선발로 나갈 것”이라며 “인태가 타격감이 좋으니 당분간은 인태가 나간다”고 설명했다. 김인태는 17일까지 31경기에서 타율 0.291을 유지하며 부진한 정수빈(0.138)을 대신해 타선에 힘을 보탰다. 김인태는 18일 kt 위즈전에도 6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양의지(34·NC 다이노스) 이적 후 두산의 안방마님 자리를 꿰찬 박세혁은 지난달 공에 얼굴을 맞아 안와골절 수술을 받았다. 팀 전력에서 비중이 큰 포수였기에 두산이 받는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됐다.그러나 두산은 백업 포수였던 장승현이 주전 포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박세혁의 부상 공백을 최소화했다. 여기에 또 다른 백업 포수 최용제(30)까지 있어 든든하다. 김 감독은 지난 15일 장승현 대신 최용제를 선발로 내세우면서 “장승현과 최용제 중 컨디션이 더 좋은 선수를 번갈아 기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 선수의 강점을 모두 활용해 부족한 점을 메우고 경쟁을 통한 시너지를 얻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두산은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중심에 있었다. 정수빈, 허경민(31), 최주환(33·SSG 랜더스), 오재일(35·삼성 라이온즈) 등 왕조의 주축 선수가 자유계약선수(FA)로 풀렸다. 그러나 두산은 몇몇 선수가 빠져나갔어도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우며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실제로 두산은 팀타율 0.289(2위), 팀평균자책점 3.94(3위)로 모두 고르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철우 두산 퓨처스 감독은 18일 “선수들이 스스로 목적의식이 강하고 코치진도 1군에 올라가서 자신감 갖고 할 수 있게 동기부여도 해주고 있다”면서 “1군에 가서 잘된 선배를 보고 배운 어린 선수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운동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1군에서 공백이 생기더라도 그 자리를 잘 커버할 수 있도록 선수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화수분의 현재 상태를 전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홀로서기’ 성공한 커리 이제 남은 것은 파이널 MVP뿐

    ‘홀로서기’ 성공한 커리 이제 남은 것은 파이널 MVP뿐

    스테픈 커리(33·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홀로서기 시험대에 오른 이번 시즌 당당히 미국프로농구(NBA) 득점왕에 오르며 화려하게 정규시즌을 마무리했다. 커리는 17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에서 열린 멤피스 그리즐리스와의 경기에서 3점슛 9개 포함 46점을 쓸어담으며 골든스테이트의 113-101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득점으로 커리는 경기당 평균 32점으로 득점왕 타이틀을 확정했다. 2015~16시즌 30.1점으로 득점왕을 올린 뒤 5년 만이자 득점 커리어 하이다. 놀라운 4월을 보내며 NBA에 또 하나의 역사를 쓴 커리는 만 33세 이상 득점왕에 오른 두 번째 선수가 됐다. 그의 앞에는 35세에 득점왕에 오른 NBA의 전설 마이클 조던밖에 없다. 아울러 우승 및 최우수선수(MVP), 2번의 득점왕을 차지한 역대 네 번째 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커리의 이번 시즌은 그의 커리어에 있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시즌이었다. 왕조 시절의 주축 멤버 없이 자신의 기량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지만 커리가 부상으로 아웃되며 입증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커리는 놀라운 득점력으로 왜 자신이 NBA 최고 스타로 꼽히는지를 보여줬다. 동시에 팀도 커리와 함께 진화했다. 커리만 막으면 됐던 골든스테이트는 커리가 부진해도 다른 선수가 해줄 수 있는 팀으로 변신했다. CBS스포츠도 “커리는 첫 득점왕에 오른 시즌보다 효율성 높은 슛을 더 많이 시도하며 약해진 팀 전력을 스스로 극복했다”고 평가했다. 골든스테이트는 최근 서부 콘퍼런스 1위 유타 재즈, 2위 피닉스 선즈를 연달아 격파하면서 플레이오프 대활약을 예고했다. 왕조 시절보다 더 농구에 눈뜬 모습을 보여준 커리인 만큼 만약 이번에 골든스테이트가 우승까지 차지한다면 꼬리표로 따라다니던 ‘파이널 MVP 0회’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커리에 대한 기대감은 높지만 첫 경기부터 난관이다. 골든스테이트의 플레이오프 첫 상대는 지난해 우승팀 LA 레이커스다. 20일 열리는 이 경기는 커리에 앞서 NBA 슈퍼스타의 길을 걷고 있는 르브론 제임스가 있어 두 슈퍼스타의 맞대결로도 관심이 뜨겁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무궁무진한 강유림 꼭 필요했다” 우승팀에 선택받은 신인왕

    “무궁무진한 강유림 꼭 필요했다” 우승팀에 선택받은 신인왕

    2020~21 여자프로농구 신인왕 강유림이 신인급 선수로는 드물게 대형 트레이드에 포함되며 팀을 옮기게 됐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17일 강유림, 김한별, 구슬이 포함된 삼각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강유림이 부천 하나원큐에서 용인 삼성생명으로, 김한별이 삼성생명에서 부산 BNK로, 구슬이 BNK에서 하나원큐로 간다. 2020~21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 김한별의 트레이드에 포함됐을 만큼 강유림의 시장 가치가 높았다. 강유림은 지난 시즌 30경기에 모두 출장해 25분9초를 뛰며 평균 7.3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3점슛을 110개 던져 35개를 넣어 31.8%의 성공률을 보이며 차세대 슈터 자리를 예약했다. 강유림은 “오늘 오전훈련 끝나고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다”면서 “이제 여기서 적응했는데 새로운 곳에 가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고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유림은 기자와의 통화 당시 “숙소에서 짐 싸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9 여자프로농구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하나원큐에 2라운드 전체 9순위로 지명받은 강유림은 지난 시즌 본격 출전 기회를 얻으며 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강이슬(청주 KB)과 함께 팀의 외곽을 책임졌고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득점력을 갖춘 선수인 만큼 내줘야 하는 하나원큐 입장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훈재 감독은 “구슬이가 높이가 조금 더 있어서 낫겠다고 판단했다”면서 “강이슬이 빠지면서 큰 변화가 생겼는데 팀에 아무 변화 없이 그대로 가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트레이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유림이는 앞으로도 훨씬 잘할 선수고 궂은 일도 많이 하고 득점 찬스 때 잘 넣어줬는데 유림이한테 너무 미안하다”면서 “유림이 정도를 내주지 않고는 카드를 맞출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반면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자원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 투혼을 불사르고 은퇴한 김보미의 자리를 채울 선수가 필요했고 구슬보다는 강유림이 팀 전력에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김한별과 구슬의 트레이드에 강유림까지 끼면서 판이 커졌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우리 팀 입장에선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강유림이 딱 맞겠다 싶었다”면서 “박하나도 재활을 해야 해서 그 포지션이 필요해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겨우 3년차 선수지만 대학 무대에서 실력을 키웠고 프로에서도 신인왕을 꿰차며 잠재력을 보여준 만큼 시장 가치가 높았다. 여자프로농구는 박지수와 강이슬이 버티는 KB가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다. 삼성생명은 당장 우승을 못하더라도 미래를 키우는 선택을 통해 여자농구의 새로운 왕조를 위한 기틀을 다지겠다는 의중을 보였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이 남자들이 바뀌자 삼성도 바뀌었다

    이 남자들이 바뀌자 삼성도 바뀌었다

    삼성 라이온즈가 왕조 시절 이후 처음으로 20승에 선착하며 가을 야구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다. 주축 선수가 시즌 초반부터 맹활약한 덕분에 1년 전 33경기에서 15승18패에 그쳤던 성적이 올해는 20승13패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삼성은 12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7-5로 승리하며 이번 시즌 가장 먼저 20승에 도달했다. 왕조 시절의 마지막 해였던 2015년 20승10패로 20승에 선착한 이후 6년 만이다. 역대 20승을 선점한 팀의 정규리그 1위 달성 확률은 65.6%(32번 중 21차례)나 된다는 점에서 삼성의 정규리그 우승에 대한 희망까지 커지고 있다. 불과 1년 사이에 성적이 달라진 데에는 역시 1년 사이에 달라진 선수들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은 젊은 선수는 물론 베테랑까지 1년 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33경기를 치를 때까지 삼성은 규정타석을 채운 3할 타자가 김상수(0.305)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강민호, 호세 피렐라, 구자욱이 3할 타율을 치고 있다. 특히 강민호는 지난해 33경기 타율 0.200 홈런 4개에 그쳤던 성적이 올해는 타율 0.368 홈런 5개로 상승했다. 타자들의 맹활약 속에 0.249(8위)에 그쳤던 팀타율도 올해는 0.275(4위)로 상승했다.투수진의 성적도 두드러진다. 1년 전 4.45(4위)였던 팀평균자책점(ERA)이 올해는 3.78(2위)로 뚝 떨어졌다. 리그 최고의 투수로 떠오르며 4월 월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원태인은 물론이거니와 지난해 초반 잘 던지면 다음 경기에 부진했던 데이비드 뷰캐넌은 올해 기복 없는 투구를 선보이고 있다. 우규민은 1년 전에도 ERA 3.18으로 선방했지만 올해는 ERA 0으로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13일 “삼성이 5선발 체제가 잘 돌아가고 있고 불펜도 안정적”이라면서 “타격에서도 피렐라가 잘해주고 있고 구자욱, 강민호도 잘 쳐주면서 분위기가 좋다”고 평가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이집트 남부 산악 지대서 4200년 전 매장 무덤 대거 발굴

    이집트 남부 산악 지대서 4200년 전 매장 무덤 대거 발굴

    이집트 남부 지역에서 4200여 년 전의 매장 무덤이 대거 발굴됐다.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11일(현지시간) 자국 고고학자들이 소하그주의 동쪽 산악 지대에서 매장 무덤 250기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무덤들은 이집트 고왕국 시대(BC 2700~BC 2200년) 말기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BC 300~30년) 말기에 걸친 연대의 것들로 전해졌다. 이 중에는 매장을 위해 수직으로 파내린 수직갱이 한 개이거나 여러 개인 것부터 묘실로 향하는 통로가 경사져 있는 것까지 포함돼 있다. 무스타파 와지리 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 사무총장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고왕국 시대의 무덤 중 한 곳에는 고대 이집트의 그림 문자인 히에로글리프를 새겨넣었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데 이는 죽은 사람들과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발굴 조사를 주도한 무함마드 압둘바디아 박사는“고대 이집트 신들에게 바쳐진 토기와 봉헌물도 발견됐다”면서 “제6왕조 시대의 매장용 그릇으로 보이는 석회암 조각들뿐만 아니라 설화 석고로 만든 작은 그릇들과 동물 및 사람 뼈들도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발견은 지금까지 소하그에서 무덤 300기를 발굴한 프로젝트의 일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집트 정부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내란으로 타격을 입은 관광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전국에 걸쳐 고고학적 발견을 장려하고 있어 최근 들어 유물이 대거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사진=이집트 관광유물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서울광장] 진보 정권의 위기/김상연 논설위원

    [서울광장] 진보 정권의 위기/김상연 논설위원

    1947년 7월 19일 낮 1시쯤 서울 혜화동 로터리. 검은색 승용차가 진입하는 순간 트럭 한 대가 갑자기 앞을 막아섰다. 급정거한 승용차의 트렁크 위로 괴한 한 명이 뛰어오르더니 뒷좌석의 남성에게 권총 두 발을 발사했다. 한 발은 어깨 뒤에서 심장을, 다른 한 발은 등에서 복부를 관통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남성은 급히 인근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금세 숨을 거뒀다. 이 비운의 남성은 해방 공간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만드는 등 주연으로 활동한 몽양 여운형이었다. 며칠 뒤 경찰은 극우단체 회원 한지근을 범인으로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많은 시민이 여운형의 죽음을 애도했으나,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사실상 대세가 기운 상황에서 온건좌파인 그의 운명은 어차피 풍전등화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2년 뒤 우파였지만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백범 김구도 암살된다. 그로부터 강산이 일곱 번이나 바뀌었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우파의 나라라고 봐야 한다. 남북 분단 등 기성 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기득권층’이 누적되면서 경제적 우파까지 가세했다. 정치적으로는 좌파(진보)이면서 경제적으로는 우파(보수)인 사람도 많다. 결국 진보 진영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불리한 구도, 즉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워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 셈이다. 그러니 진보가 권력을 잡기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진보 진영은 대선에서 불과 세 차례 이겼는데, 그나마도 하나같이 기적이라 할 만큼 드라마틱한 승리였다. 1997년 대선은 외환위기, 여당의 분열(이인제 탈당), 보수주의자(김종필)의 진보 후보 지지라는 미증유의 사건들이 겹친 덕에 겨우 이겼다. 2002년 대선은 하위권 후보의 돌풍(노풍), 보수파 후보(정몽준)와 진보 후보의 단일화라는 미증유의 이벤트들 끝에 겨우 이겼다. 2017년 대선은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사태 여파로 이겼다. 진보 진영은 2004년과 2020년 두 차례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는데, 역시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2004년은 국회의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 후폭풍에, 지난해에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 힘입어 이겼다. 너무 크게 승리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졌다고, 심지어는 반대로 기울어져 더 유리해졌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렇게 구도를 오판한 결과 진보 정권은 자만했고 두 번 모두 다음 선거에서 졌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보다 더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다. 더 도덕적이고 더 겸손해야 한다. ‘왜 우리만 더 애써야 하느냐’고 항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원래 운동장이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권력을 잡기도 힘든데 진보 정권은 개혁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해야 한다. 개혁은 기본적으로 적을 양산하는 일이다. 특히 이 정권은 검찰이라는 막강한 기득권 그룹에 ‘감히’ 개혁의 칼을 들이댔다. 기울어진 운동장도 모자라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격이니 숨이 벅찰 수밖에 없다. 여기에 부동산 폭등을 잡겠다며 세금을 올렸고, 결과는 4·7 재보선 참패로 나타났다. 한국의 부동산 관련 세금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한참 낮다. 하지만 문제는 안 내던 돈을 내는 걸 좋아하는 유권자는 없다는 것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패인으로 “세금의 정치를 몰랐다”고 했는데 타당한 진단이다. 세금은 전제군주 시절에도 왕조를 무너뜨릴 만큼 민감한 문제다. 식민지 미국이 독립전쟁을 일으킨 것도 영국의 과세 때문이었다. 평소 개혁을 주장하던 사람도 자신의 기득권이 침해받는다고 느끼면 반발하는 게 인간의 모순적 심리다. 이토록 어려운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자신의 팔을 잘라 낸다는 비상한 각오로 해야 한다. 예컨대 징벌적 과세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권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월급을 모두 반납하는 식의 극단적 방법으로라도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해도 될동말동한 게 개혁이다. 그런데 오히려 ‘내로남불’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진보 진영이 이번 선거 참패에도 정신 차리지 않고 민심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친문(친문재인)이니 비문이니 하며 싸운다면, 내년 대선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번에 정권을 놓친다면 한동안 재집권하긴 어려울 것이다. 드라마틱한 상황은 잘 생기기 힘들뿐더러 드라마를 자주 보다 보면 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carlos@seoul.co.kr
  • 얼굴 너머로 내면 파고든 시대의 초상

    얼굴 너머로 내면 파고든 시대의 초상

    초상화는 정지된 한순간을 포착해 인물의 내면까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꿰뚫는 통찰이 담겨 있다. 자기 과시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때론 감추고 싶은 속내가 은연중 표출되는 게 초상화의 묘미다.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 역사 속 인물을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초상화가 ‘셀피’(셀프 카메라) 홍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500년을 넘나드는 세기의 초상화가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해외 문화재 특별전시로 개최하는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에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 전문 미술관인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소장품 78점을 처음으로 국내에 들여왔다. 1856년 문을 연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은 영국뿐 아니라 세계 역사와 문화에 기여한 인물들의 초상화를 소장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그림을 넘어 사진까지 범위를 넓혔으며, 백인 상류층 위주에서 다양한 인종과 소수 계층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왕족을 제외하고 사후 10년이 지난 인물의 초상화’라는 원칙도 바꿔 생존 유명인의 초상화도 수집한다. 1991년생인 대중 뮤지션 에드 시런의 초상화가 소장 목록에 포함된 배경이다. 전시는 ‘명성’, ‘권력’, ‘사랑과 상실’, ‘혁신´, ‘정체성과 자화상’ 등 5개 주제별로 73명의 작가가 그린 76명의 인생 이야기를 펼친다. 양수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우리가 잘 모르는 인물이라도 초상화를 마주하면서 교감할 수 있도록 책과 음악 등 다양한 아카이브 공간을 함께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인물은 영국이 낳은 최고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다. 셰익스피어 생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일한 회화 형태의 초상화로, 동시대 배우 겸 화가 존 테일러가 그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예술성보다는 역사적 가치에 주목해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이 맨 처음 소장한 작품이다. 수백년 세월에도 여전히 빛나는 그의 명성을 이 한 장의 그림이 대변한다. 튜더왕조의 마지막 군주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권력과 권위의 표상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초상화를 남겼다. 1575년쯤 나무에 유화로 그린 초상화에서 그는 가문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들고, 순수를 의미하는 진주와 불사조 모양의 장신구로 치장했다.절대왕권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 권력은 정치 이외에 사회, 문화적인 영향력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인 패션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터, 월드와이드웹(WWW)을 발명한 팀 버너스 리의 초상은 일상적이고 소박하게 변화한 권력의 이미지를 흥미롭게 보여 준다.초상화 본질은 무엇보다 정체성의 투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화상은 더 주목할 만하다. 17세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초상화가 안토니 반다이크는 생전에 많은 자화상을 그렸는데, 한 인간이자 예술가로서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정신을 보여 준다. 데이비드 호크니, 루치안 프로이트의 자화상도 마찬가지로 인상적이다. 고전적인 유화에서 사진, 조각, 홀로그램, LCD스크린까지 초상화의 다채로운 변화상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크다. 그레이슨 페리의 ‘시간의 지도’(2013)는 작가가 인생에서 겪은 감정과 경험을 성곽 도시의 지도 형태로 그린 그림인데 이를 자화상으로 분류해 전시 마지막에 배치한 점도 이채롭다. 초상화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전시는 8월 15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얼굴 너머로 내면 파고든 시대의 초상

    얼굴 너머로 내면 파고든 시대의 초상

    초상화는 정지된 한순간을 포착해 인물의 내면까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꿰뚫는 통찰이 담겨 있다. 자기 과시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때론 감추고 싶은 속내가 은연중 표출되는 게 초상화의 묘미다.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 역사 속 인물을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초상화가 ‘셀피’(셀프 카메라) 홍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500년을 넘나드는 세기의 초상화가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해외 문화재 특별전시로 개최하는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에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 전문 미술관인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소장품 78점을 처음으로 국내에 들여왔다. 1856년 문을 연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은 영국뿐 아니라 세계 역사와 문화에 기여한 인물들의 초상화를 소장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그림을 넘어 사진까지 범위를 넓혔으며, 백인 상류층 위주에서 다양한 인종과 소수 계층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왕족을 제외하고 사후 10년이 지난 인물의 초상화’라는 원칙도 바꿔 생존 유명인의 초상화도 수집한다. 1991년생인 대중 뮤지션 에드 시런의 초상화가 소장 목록에 포함된 배경이다.전시는 ‘명성’, ‘권력’, ‘사랑과 상실’, ‘혁신‘, ‘정체성과 자화상’ 등 5개 주제별로 73명의 작가가 그린 76명의 인생 이야기를 펼친다. 양수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우리가 잘 모르는 인물이라도 초상화를 마주하면서 교감할 수 있도록 책과 음악 등 다양한 아카이브 공간을 함께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인물은 영국이 낳은 최고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다. 셰익스피어 생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일한 회화 형태의 초상화로, 동시대 배우 겸 화가 존 테일러가 그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예술성보다는 역사적 가치에 주목해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이 맨 처음 소장한 작품이다. 수백년 세월에도 여전히 빛나는 그의 명성을 이 한 장의 그림이 대변한다. 튜더왕조의 마지막 군주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권력과 권위의 표상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초상화를 남겼다. 1575년쯤 나무에 유화로 그린 초상화에서 그는 가문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들고, 순수를 의미하는 진주와 불사조 모양의 장신구로 치장했다.절대왕권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 권력은 정치 이외에 사회, 문화적인 영향력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인 패션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터, 월드와이드웹(WWW)을 발명한 팀 버너스 리의 초상은 일상적이고 소박하게 변화한 권력의 이미지를 흥미롭게 보여 준다. 초상화 본질은 무엇보다 정체성의 투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화상은 더 주목할 만하다. 17세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초상화가 안토니 반다이크는 생전에 많은 자화상을 그렸는데, 한 인간이자 예술가로서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정신을 보여 준다. 데이비드 호크니, 루치안 프로이트의 자화상도 마찬가지로 인상적이다.고전적인 유화에서 사진, 조각, 홀로그램, LCD스크린까지 초상화의 다채로운 변화상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크다. 그레이슨 페리의 ‘시간의 지도’(2013)는 작가가 인생에서 겪은 감정과 경험을 성곽 도시의 지도 형태로 그린 그림인데 이를 자화상으로 분류해 전시 마지막에 배치한 점도 이채롭다. 초상화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전시는 8월 15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뽑아라! 대륙 호령한 대조영의 기상

    뽑아라! 대륙 호령한 대조영의 기상

    경북 경산에 발해마을이 있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후손들이 사는 집성촌이다. 드넓은 만주 땅을 호령했던 발해의 후예들이 한반도의 남쪽에 터를 잡은 이유는 뭘까. 특성화 마을이라 할 만한 볼거리는 아직 없지만, 긍지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만으로도 발걸음할 이유는 충분하지 싶다. 중국이 요즘 ‘동북공정’을 통해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을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격하시키려는 터라 더욱 그렇다.●영순 태씨 후손 27가구 모여 사는 집성촌 남천면 송백2리. 발해마을이 있는 곳이다. ‘발해의 후예’라는 영순 태씨 후손 27가구가 이 마을에 모여 산다. 발해마을에서 가장 궁금한 건 두 가지다. 대씨와 태씨가 동일 성씨인 이유는 무엇이고, 만주 지역을 휩쓸던 대씨가 한반도의 남쪽 마을에 터를 잡게 된 이유는 또 뭐냐는 거다. 스스로를 대중상(대조영의 아버지)의 43세손이라고 밝힌 태재욱(79) 발해왕조제례보존회장은 영순 태씨가 어떻게 대(大)씨인 대조영의 후손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크다라는 의미인 대(大)를 강조하기 위해 획을 하나 추가해 태(太)로 썼을 뿐 태(太)와 대(大)는 서로 혼용됐던 글자”라며 “중국의 역사 기록서인 ‘동사통감’에 대조영을 태조영이라고 쓴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 역사서 ‘고려사’도 고려 후기의 무신 대집성을 태집성과 혼용해 썼다”고 설명했다. 두 글짜가 혼용되다 조선시대 때 족보가 만들어지면서 태씨로 굳어졌다는 것이다.만주를 호령하던 발해의 후손이 경산에 터를 잡게 된 경위는 이렇다.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한 뒤 8년이 지난 934년에 발해의 마지막 세자 태광현이 수만 명의 유민을 이끌고 고려로 망명해 왔다. 이처럼 발해 멸망 직전에, 혹은 멸망 뒤 발해 부흥운동이 좌절되면서 발해 왕실의 후예들이 망명지로 선택한 곳이 고려였다. 이후 대중상의 18세손인 태금취가 고려 고종 때 몽골군을 격퇴하는 공을 세워 영순현(지금의 문경 일대)을 하사받아 다스렸다. 이들이 성씨의 관향을 ‘영순’으로 쓰는 건 이 때문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진 뒤엔 대중상의 31세손 태순금이 경산에 자리를 잡았다. 북한 지역을 제외하면 현재 발해 후손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은 남한에서 발해마을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발해마을 진입로엔 태극기가 줄지어 서 있다. 발해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깃발도 함께 나부끼고 있다. 마을 안 담장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을 테마로 그린 벽화들이다. 전형적인 한국인상의 대조영 그림이 눈길을 끈다. 태재욱 회장에 따르면 전국 142명의 태씨 남자의 얼굴 사진을 찍어 특징을 분석한 뒤 그렸다. 이 그림은 현재 대조영에 대한 정부표준영정(86호)으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 반곡지 꼭 들러야 2015년 기준으로 국내에 태씨는 9000여명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40여명이 발해마을에 산다. 마을 주민 80%가 태씨 집안 사람이란다. 발해마을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당시 ‘전국 어르신마을가꾸기 경진대회’에서 태씨 집성촌이라는 역사 콘텐츠를 활용해 우수상을 탔다. 그해에 표지석, 발해고황 대조영장군상, 벽화, 기마상 조형물, 발해 상징 로고 깃발 등도 만들었다. 집집마다 내건 문패도 독특하다. 봉황이 그려진 문패 안에 발해 몇 대 손인지 적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43~44세 손이다.다만 내세울 만한 ‘킬러 콘텐츠’는 아직 없다. ‘발해문화 현창사업’이 제대로 진행돼야 역사 관광마을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발해문화 현창사업’은 발해 박물관과 역사관, 대조영 영정을 모실 고왕전 등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발해 역사의 실체를 보여 줬다고 평가받는 3대 문왕의 딸 정효공주묘도 마을 안에 재현할 예정이다. 이맘때 경산에선 남산면 반곡지를 찾아야 한다. 빼어난 봄 풍경으로 입소문 난 곳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이기도 하다. 발해마을에서 멀지 않다. 반곡지 주변으로 십여 그루의 아름드리 왕버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늙고 거무튀튀한 가지 끝엔 올봄 새로 나온 연둣빛 이파리들이 매달려 있다. 휴대전화를 들이대면 화면이 싱그러운 신록으로 가득 찬다. 반곡지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계정숲도 꼭 찾아야 할 곳이다. 해마다 단옷날 자인단오(무형문화재 44호) 행사가 이 숲에서 열린다. 이팝나무와 느티나무 등의 노거수들이 빼곡하다. 짙은 숲그늘에서 산책하기 맞춤하다. 계정숲 안에는 이 지역의 전설적 인물인 한 장군 묘와 사당, 자인현청 등이 보존돼 있다. 글 사진 경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황하의 물이 맑아지면 성인이 나타난다?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황하의 물이 맑아지면 성인이 나타난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폭포가 있다. 누런 강물이 도도히 흐르다가 강폭이 갑자기 좁아지면서 수십 미터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관을 보여 주는데, ‘후커우폭포’다. 황하는 티베트 고원지대에서 발원할 때에는 맑은 물이지만, 황토 고원지대를 흐르면서 침식작용으로 강물이 누렇게 변한다. 그런데 최근 후커우폭포의 물이 맑아졌다는 보도가 중국 뉴스에 자주 보인다. 후커우폭포의 물을 생수병에 담으니 가라앉은 흙이 절반이나 되는 것을 직접 보았던지라 맑은 물이 쏟아지는 후커우폭포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게다가 “황하의 물이 맑아지면 성인이 나타난다”(黃河淸 聖人生)는 말이 예부터 전해져 왔으니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일 만하다. 언론에서는 그것을 황토 고원지대의 녹화사업 덕분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역사를 통해 볼 때 황하의 물이 맑아지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상류에 가뭄이 들고 비가 내리지 않아 황토층이 깎여 내려오지 않을 때, 혹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얼었던 강물이 풀리면서 일시적으로 물이 맑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때론 지진 때문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황하청’은 일종의 자연현상인 셈인데, 통치자들은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맑아질 수 없는 누런 강물이 맑아지다니, 그것이야말로 상서로운 징조라고 하면서 통치자를 ‘성인’과 동일시했다. 중국 정부가 들어선 후 처음으로 추진된 거대 토목사업이 싼먼샤(三門峽)댐 건설이다. 싼먼샤는 황하가 북쪽에서 흘러 내려오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트는 곳에 자리한다. 1954년에 그곳에 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부총리는 “6년이면 댐이 완성될 것이며, 마침내 ‘황하청’의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저우언라이 총리가 주재한 회의에서 모두가 찬성 의사를 밝힐 때 유일하게 반대한 사람이 칭화대학의 황완리(黃萬里) 교수였다. 그는 “‘황하청’은 ‘공(功)’이 아니라 ‘죄’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황하의 침식작용을 무시한 댐 건설은 쌓인 황토를 가둘 것이고, 그것은 거대한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견해는 다수의 목소리에 묻혔고, 댐 건설은 진행됐다. 사실 싼먼샤는 흐르는 강 가운데 ‘세 개의 문’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신화 속의 치수 영웅 우(禹)가 강물을 다스릴 때 물길을 막는 방법이 아니라 트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곳에 와 보니 거대한 바위가 강 가운데 솟아 있어 물의 흐름을 막고 있었다. 그래서 우가 커다란 도끼를 휘둘러 그 바위를 쪼개 세 개의 문을 만들어 강물이 잘 흘러가도록 했다고 한다. 물길을 ‘터서’ 잘 흘러가도록 만든 우의 신화가 서려 있는 싼먼샤에 물을 ‘가두는’ 댐을 만들겠다고 한 것이니 결과는 뻔했다. 댐을 만든 지 1년 반 만에 15억톤의 진흙이 쌓이면서 물이 역류했다. 하지만 댐이 완공된 직후 언론은 댐 아래 맑은 물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여 주면서 ‘황하청’의 기억을 소환했다. 황하의 물이 맑아지면 출현한다는 ‘성인’이 과연 누구였을까. 이념의 시대에 그것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역대 왕조에서 그러했듯 20세기에도 황하의 맑은 물은 ‘성인’의 출현을 찬양하는 도구로 쓰였다. 황완리 교수는 계획안의 수정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고, 문화혁명 기간에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싼샤(三峽)댐 건설에도 반대했던 그는 200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2년 후 싼먼샤댐 인근에서는 5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재앙을 가져온 홍수가 일어났다. 대약진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댐의 완공은 새로운 중국의 위대함을 알리는 표지로 ‘황하청’은 ‘성인’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 싼먼샤댐의 건설은 정치적 의도가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하는지 잘 보여 준다. 최근 후커우폭포의 물이 맑아진 것은 보기 드문 현상이라 흥미롭고 놀랍다. 모처럼 나타난 ‘황하청’이 이제는 ‘성인’의 상징 따위가 아니라 그들 말대로 생태환경의 복원을 위해 노력해 온 결과물이기를 기대한다.
  • 돌아온 ‘최강 삼성’, 6년 만에 LG 3연전 싹쓸이

    돌아온 ‘최강 삼성’, 6년 만에 LG 3연전 싹쓸이

    거침없이 질주하는 사자 군단이 만원 관중 앞에서 3연전을 쓸어담으며 단독 선두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삼성은 2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서 8회말 이원석의 역전 2타점 2루타에 힘입어 LG를 6-4로 꺾었다. 삼성은 마지막 왕조 시절이던 2015년 7월 5일 이후 약 6년 만에 LG와의 3연전을 모두 승리했다. 삼성은 에이스 데이비드 뷰캐넌이 출격했지만 선취점을 허용했다. 전날 1군에 처음 데뷔한 문보경이 뷰캐넌의 초구를 자신의 통산 1호 홈런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LG의 리드는 오래가지 않았다. 4회말 삼성은 구자욱의 솔로포 포함 3점을 내며 경기를 뒤집었다. LG가 6회초 2점, 7회초 1점을 추가하며 재역전했지만 삼성은 7회말 발야구로 동점을 만들어냈다. 1사 3루에서 대타 김호재가 기습적인 스퀴즈번트를 시도했고 3루 주자 박해민이 간발의 차이로 홈을 밟았다. 삼성은 8회말 호세 피렐라의 안타, 오재일의 볼넷 출루로 만든 1사 1, 2루에서 이원석이 LG 마무리 고우석을 상대로 큼지막한 2루타를 뽑아내며 역전에 성공했다. 오승환은 9회초 통산 500번째 경기에 출전해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302번째 세이브를 수확했다. 부산에서는 한화 이글스가 롯데 자이언츠에 5-4로 역전승을 거두고 2008년 5월 8일 이후 약 13년(4741일) 만에 사직구장 싹쓸이 3연승을 달렸다. 이 승리로 한화는 8위로 올랐고 롯데는 최하위로 떨어졌다. kt 위즈는 KIA 타이거즈를 꺾고 2위 자리를 지켰고 NC 다이노스는 홈런 네 방으로 키움 히어로즈를, 두산 베어스도 홈런 세 방으로 SSG 랜더스를 제압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질병·별자리로 풀어 본 조선 왕들 일상과 운명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질병·별자리로 풀어 본 조선 왕들 일상과 운명

    역사서 가운데 상당수가 조선시대를 다룹니다. 특히 조선의 왕은 많은 역사가들이 좋아하는 주제입니다. 조선의 왕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의 관리를 받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명의인 어의와 대소신료들은 왕의 몸을 항상 치밀하게 살펴 병을 진단하고 처방했습니다. ‘조선의 왕은 어떻게 죽었을까’(인물과 사상사)는 태조에서 순종까지 27명 왕이 어떤 병을 앓고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추적합니다. 조선 왕들의 평균수명은 47세인데, 11명이 40세 이전에 사망했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며 값비싼 음식을 먹고 희귀한 보약을 몸에 달고 살았지만, 수명은 그다지 길지 않았습니다. 책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기록으로 왕의 생활을 추리합니다. 왕의 일상과 그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 식습관은 물론 가족사와 개인적인 성품까지 살폈습니다. 왕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종기였다는 사실이 재밌습니다. 당시에는 항생제가 없었기 때문에 작은 종기는 죽음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또 과식하고 과음하고, 지나치게 색을 즐기다 보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각종 병을 얻었다고 책은 설명합니다.‘별자리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시대의 창)은 조선의 왕 12명을 별자리로 풀어냅니다. 예컨대 1397년 5월 7일 태어난 세종은 태양 별자리가 황소자리이고 달 별자리는 처녀자리입니다. 황소자리 특성상 오감이 발달해 식욕이 왕성하지만, 맛없는 음식은 거부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주상은 고기가 아니면 진지를 들지 못하니’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도 별자리로 풀어냅니다. 글자를 알지 못해 억울함을 당하는 백성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인데, 저울과 칼을 들고 서 있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를 표상하는 처녀자리의 특성이라고 설명합니다. 그저 미신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오래된 관찰과 탐구에서 시작한 별자리로 풀어낸 설명은 이색적입니다. 역사의 주요 장면과 함께 내 별자리를 찾아 왕의 운명과 비교해 보는 일도 재밌을 듯합니다. gjkim@seoul.co.kr
  • 커리, 아직 3점슛 10개가 남았어!

    커리, 아직 3점슛 10개가 남았어!

    역사적인 4월을 만든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4월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을까. 미국프로농구(NBA) 월간 3점슛 기록을 새로 쓴 커리가 30일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의 원정 경기로 4월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팀의 5할 승률 사수와 3점슛 월간 100개의 대기록이 함께 걸려 있다. 이번 시즌 4월의 커리는 왜 자신이 NBA 최고 슈퍼스타로 꼽히는지를 보여줬다. 4월 14경기에서 평균 37.3점을 넣었다. 12경기에서 30점 이상 득점을 했다. 지난 22일 워싱턴 위저즈전에서 18점에 그치며 30득점 연속 기록이 11경기에서 멈췄지만 이미 33세 이상 선수 최고 기록을 썼다. 장기인 3점슛은 경기당 평균 6.4개를 넣었다. 4경기에서 3점슛을 10개 이상 넣었다. 지난 26일 새크라멘토 킹스전에서 7개의 3점슛을 넣어 4월 3점슛이 85개가 됐다. 이는 제임스 하든(브루클린 네츠)이 2019년 11월 기록한 3점슛 82개를 넘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후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경기에서 5개의 3점슛을 추가해 월간 3점슛이 90개에 이르렀다. 이미 탁월한 3점슛 능력으로 전 세계 농구 트렌드를 바꿨고, 3점슛 관련 기록과 관련해서는 빠지지 않는 커리가 월간 3점슛 100개를 채운다면 또 하나의 굵직한 이력을 남기게 된다. 아무리 커리라고 해도 3점슛을 원하는 대로 다 꽂아넣을 수는 없다. 그러나 미네소타가 서부 콘퍼런스 14위의 약체라는 점, 커리가 4월에 4차례 3점슛 10개 이상을 성공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이번 시즌은 커리가 진정한 역대급 슈퍼스타의 가치를 보여줘야 하는 시즌이다. 왕조 시절의 주축이 떠난 후 지난 시즌은 부상으로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커리가 자신의 농구 커리어를 한 차원 높여가는 시기에 또 하나의 역사를 써낼지 주목된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양동근 있어야 모비스? 양동근 없어도 모비스!

    양동근 있어야 모비스? 양동근 없어도 모비스!

    통합 우승 4회 이끈 ‘레전드’ 공백 우려장재석·기승호 등 ‘알짜 영입’으로 선전유재학 감독 “이우석·서명진 경험 수확”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가 제러드 설린저(안양 KGC)의 벽에 가로막혀 2020~21시즌을 정규 2위, 플레이오프(PO) 4강으로 마무리했다. 그렇지만 ‘포스트 양동근 시대’를 성공적으로 열어젖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현대모비스의 경기력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양동근 은퇴 뒤 첫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양동근과 현대모비스, 그리고 유재학 감독은 양동근이 입대한 2시즌을 제외하고 2004~05시즌부터 14시즌을 함께하며 정규 1위 5회, PO 우승 6회, 통합 우승 4회를 일궈내며 왕조 시대를 열었다. 양동근을 빼놓고 현대모비스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가 팀에 끼치는 영향이 컸다. 때문에 추락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현대모비스는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내부 FA 7명과 모두 재계약하지 않고 대신 장재석, 기승호, 김민구, 이현민 등 알짜 전력을 거푸 영입한 데 이어 시즌 중 트레이드를 통해 최진수까지 데려오며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갖췄다. 선수 구성이 대대적으로 바뀌다 보니 시행착오도 겪었다. 1라운드 중반까지 1승4패 9위로 바닥을 치기도 했다. 이후 유 감독의 조련 속에 조금씩 조직력을 갖춰 2라운드부터 중위권을 오르내렸고 4라운드 중반에는 2위에 뛰어올랐다. 유 감독은 26일 “당초 6강이 목표였는데 여러 팀에서 선수들이 모인 후 치른 첫 시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시즌을 총평했다. 자신도 헷갈릴 정도로 벤치 멤버가 많아져 시즌 초반에는 베스트5를 정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돌이키기도 했다. 유 감독은 “1라운드 뒤부터 베스트5가 자리 잡았고 선수들이 보답해줘서 좋은 성적이 나왔다”면서 “선수들에게 수고했다고 전하고 싶다.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는 전력”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팀의 미래를 이끌 영건들이 PO를 경험한 게 큰 수확이라고 언급했다. 유 감독은 “큰 무대를 경험한 (이)우석이, (서)명진이는 더 자신감이 생겨 다음 시즌에 훨씬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며 “시즌이 끝난 건 아쉽지만 다음 시즌을 기약하겠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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