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왕조
    2026-06-27
    검색기록 지우기
  • 소품
    2026-06-27
    검색기록 지우기
  • 매장
    2026-06-27
    검색기록 지우기
  • 임차
    2026-06-27
    검색기록 지우기
  • 2030 세대
    2026-06-2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483
  • 반김일성 투쟁 표면화… 조총련 “술렁”

    ◎「독재타도 대회」 준비위 구성 안팎/세습ㆍ공포정치에 첫 조직적 반기/자금지원등 끊겨 북한에 큰 타격 줄듯 북한의 권력구조에 새로운 변화가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김일성독재를 타도하고 북한및 이에 맹종하는 조총련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재일 조총련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어 일본 각계의 비상한 주목을 끌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소련ㆍ동구사회주의 국가의 민주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과 때를 맞춰 재일동포 사이에서 처음으로 표면화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집중시킨다. 주축인사들은 도쿄(동경)도 주우(중앙)구에 사무소를 둔 조선통일연구사의 대표이며 전조총련중앙조직부부부장을 역임한 하수도씨 등 30여명이다. 이들은 오는 5월중 「김일성독재체제타도ㆍ조국통일촉진 재일 조선인궐기대회」를 개최키로 결정하고 이 대회 성공을 위해 구체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11일에는 도쿄 스이도바시(수도교)에서 제1회 준비위원회를 개최,하수도 성진영 백찬옥 최장환 최용연씨 등 5명을 의장으로 선출한 뒤 최장환씨의 사회로 준비위원회를 진행했다. 보고에 나선 하수도씨는 소련ㆍ동구사회주의제국의 민주화의 본질,스탈린주의와 스탈린형 사회주의에 대해 언급,그 관련하에 김일성정권이 실시해온 정책을 스탈린형 사회주의의 「기계적 흉내」에 지나지 않는다고 통렬히 비난했다. 하씨는 6ㆍ25동란에 대해서도 「김일성이 일으킨 것」이라고 단정하고 『해방후 40년간 김일성이 추구해온 것은 민족의 통일도,북한인민의 행복도 아니었다. 김일성은 일관해서 전조선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는 것을 추구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그 종말은 세습체제옹립에 의한 「김일성왕조」의 확립이며 세계에 유례가 없는 공포정치,비밀경찰지배의 실시라고 규탄했다. 그는 『재일동포는 지금이야말로 김일성독재공포정치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궐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제1차 준비위원회 참석자들은 하씨의 보고에 이어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도쿄 뿐만 아니라 오사카(대판) 나고야(명고옥) 시즈오카(정강)등 일본 전국 각지에서 참석한 대표들은 소련ㆍ동구에서의 민주화 진전후각지의 조총련조직은 이같은 민주화열기에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상세히 보고했다. 이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북한과 조총련민주화투쟁에 앞장설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준비위원회 제1차회의에서는 궐기대회 준비를 위한 간사12명을 선임했다. 간사는 대회성공을 위한 실무를 담당하게 되며 이들을 중심으로 곧 대중을 동원키로 확인했다. 이번 궐기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인사들은 모두 과거 조총련의 간부급이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독재집단 북한에 맹종해 온 조총련조직에서 민주화요구란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들의 궐기대회 명칭자체를 「김일성독재체제타도」라고 못박은 것부터가 처음있는 일이며,그 결의를 엿보게하는 것이다. 민단 중앙본부 정달현선전국장도 14일 『조총련의 성격상 기대하지 못했던 큰 사건이며,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같은 조총련 지도급인사들에 의한 민주화투쟁은 조총련내부를 크게 동요시킬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큰 충격을 줄 것임에 틀림없다. 재일동포 67만 가운데 한때 45만명을 차지했던조총련계 한인숫자는 최근 급격히 감소,지금은 20만∼25만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이같은 숫자는 이번 민주화요구 궐기대회 이후 더욱 감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민단측이나 관계당국이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성원하거나 간섭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민단으로 전향하는 조총련계 인사가 늘어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들 조총련계 사업가들은 지금까지 북한에 막대한 금액의 자금을 지원,경제난 타개에 도움을 주어왔다. 매년 김일성생일때는 50억∼1백억엔,김정일생일에도 30억엔 안팎의 자금을 지원해 왔다. 북한측에서 요청하는 공개되지 않은 자금지원도 상당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조총련 내부에서의 민주화 움직임은 이같은 북한에 대한 자금지원면에서도 큰 타격을 주게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연쇄적으로 북한재정에 더욱 악영향을 미쳐 북한주민의 생활을 궁핍하게 하고 김일성정권에 대한 불만요인으로 누적되어 「폭발원인」의 하나가 될 것으로 도쿄의 관계자들은 보고있다.
  • “김일성왕조 멸망은 시간문제”/영 카터교수,파이낸셜타임스 기고

    ◎루마니아사태는 평양정권에 대한 경종/붕괴는 필연적… 「언제 어떻게」가 주목거리 영국 리즈대학의 국제정치학교수인 아이단 포스터 카터씨는 29일 동독과 루마니아에서의 혁명적 변화가 북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북한 공산정권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김일성에 대한 동구의 경고」라는 제목으로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같이 내다보았다. 포스터 카터교수는 리즈대학에서 한국문제 주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중국내에서도 국제정치와 한국관계에 정통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포스터 카터 교수의 기고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동구에서의 공산주의 붕괴는 여타 지역에서도 이것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김일성이 45년간이나 통치해 온 북한만큼 공산주의를 고집하고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지난해에 일어난 여러가지 결정적인 사건중에서도 특히 동독과 루마니아에서 일어난 일들은 북한에도 큰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베를린장벽이 철거됨에따라 양독간의 통일은 소원의 차원에서 정치의제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그들의 상황과 독일을 비교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남북의 분할이 1945년 연합군에 의해 잠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독일이 패전국이었던 반면에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얻은 입장이었다. 차이는 있지만 독일에서의 변화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국 교포 2천명 가운데 일부는 지난번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에서 「한국은 하나」라고 쓴 깃발을 치켜 올렸으며 북한 학생 2명은 서울로 탈출하기 위해 동베를린에서 서쪽으로 넘어오기도 했었다. 남한이 북한에 대해 동독처럼 개방할 것을 요구하자 북한의 김일성은 완전한 자유왕래와 교류 제의로 응수하여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가지 조건을 붙였다. 하나는 남측이 먼저 휴전선에 있는 콘크리트 장벽을 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남측은 그런 것은 없다고 부인했다. 또 하나는 남한의 정치단체들과 이런 문제들을 토의하자고 고집하고 있는데 이는 암암리에 남한정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하나 한국과 독일과의 큰 차이점은 바로 이러한 수사들이다. 베를린 공수작전과 베를린장벽 등 분단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동서독은 일종의 공존공생 방식을 누려왔다. 양독 정부는 대화의 채널을 유지해 왔으며 일반 시민들은 편지ㆍ전화ㆍ상호방문을 통하여 또는 단순히 서로의 TV를 시청함으로써 접촉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상황은 악화될대로 악화되었다. 동서냉전이 열전으로 돌변한 곳은 베를린이 아니라 바로 한국이었다. 지금에 와서 역사학자들은 한국 전쟁을 김일성의 도박이라고 보고있지만 당시에는 국제공산주의의 진군으로 여겨졌다. 수백만의 한국인이 죽었고 한반도는 잿더미가 되었으며 적대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곳에는 아직 평화조약은 없고 서로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하거나 찾아갈 수도 없다. 한국인들은 한세대가 넘도록 상대편에 있는 친족이나 친척과의 접촉마저 거부당하고 있다. 남한은 월등한 경제력과외교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벌수 있는 여유가 있으나 문제투성이인 북한은 그렇치가 못하다. 북의 경제는 아주 오랫동안 활력을 잃어버렸으며 20여년간이나 침체 상태를 계속해 왔기 때문에 언필칭 「위대한 영도자」도 시인하고 있는 소비재의 부족을 비롯하여 통제 경제가 빚어내기 마련인 여러가지 문제들을 안게 되었다. 김일성은 이제 그가 딛고 서 있던 외교적 기반도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목격하게 되었다. 헝가리 폴란드 유고 등 동구 3개국이 현재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체코도 그 뒤를 따를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소련까지도 남한과의 경제적 유대를 확대해 가고 있다. 여기에 대해 북한의 대응은 복합적이다.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 문제에 대한 불간섭주의를 표방하면서 루마니아를 비롯한 동구에서의 새 정권 탄생을 보도하고 축하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서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할 때마다 사회주의 배신자라는 등 갖은 비난과 험구를 퍼붓고 있다(특히 체코의 하벨대통령은 김일성의 축하편지를 받고 분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북한이 과연 루마니아가 간 길을 갈 것인가.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구조적으로도 두 나라는 비슷하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차우셰스쿠나 김일성이나 모두 무자비한 공업화로 밀어붙였다. 그들은 또 경제통계를 조작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두사람 모두 공산당원을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살아가기 위해서 당원증을 갖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그 결과로 최상층에서는 족벌주의가 횡행하고 사회 모든 계층이 부패했다. 북한도 루마니아와 똑같은 비밀경찰제도를 갖고 있다. 즉 김일성에게는 무한히 충성하는 대신 다른것은 증오하도록 길러진 전쟁 고아들로서 특별부대를 만든것이다. 루마니아사태는 김일성에게 경종을 울렸음이 분명하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유혈 참극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의 구정권은 결국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따라서 지금은 북한 정권이 멸망할 것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망하느냐가 문제라고 하겠다.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서서히 사라지는 공화국」이라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망하는 김일성정권」이라고나 할까.〈런던 연합〉
  • 외언내언

    러시아인 아크사코프는 「가족의 기록」을 쓴 사람. 그의 집안에서는 고골리를 숭배했다. 어느날 저녁초대를 받은 고골리는 식사가 끝나자 앉은 자리서 졸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족들은 소리가 안나게 발을 벗고 숨을 죽인 채 옆방으로 가서 그가 깨기를 기다렸다. 그걸 기록 속에 남겨 고골리의 진솔한 면모가 전해지게 되었다. 범상한 사람이라도 기록만 충실히 해서 남기면 대문호를 연구할 자료의 보고를 남기게 된다. ◆1450년부터 1516년까지의 연대기를 남긴 피렌체의 루카 랜드위치는 상인으로 산 시정인이다. 어설픈 지식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일어난 일을 간결하게 객관적으로 기록해두었다. 자기 시각으로 투과시켜 편향될 위험이 없는 기록이어서 후대의 연구가들은 그 연대기를 환영한다. 당시의 피렌체에서 일어났던 종교적 사건들에 대해 기록한 그의 연대기는 지금에 이르러 어떤 사료보다도 긴요하게 취급되는 것이다. ◆왕조 중심의 비교적 수준이 높고 탄탄한 지식층을 지녀온 것이 우리나라지만 사사로운 기록은 빈곤한 편이다.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별로 하지 않는 품성을 우리는 지닌 것같아 보인다. 그 때문에 백성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알아볼 만한 자료가 매우 귀한 편이다. ◆서울신문이 새해 들어 연재를 시작하는 「저상일월」은 드물게 전해오는 「보통사람의 기록」을 대표하는 귀중한 자료다. 1834년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7대 1백50년을 이어온 가족기록이다. 아마도 이렇게 이어진 가족사는 세계에서도 드물 것이다. 이 한 작품으로 빈곤한 기록의 허를 보충한 셈이다. ◆집안일 나랏일,사회사의 명료한 단면이 새겨진 이런 소중한 기록은 진정한 뜻에서 가문을 빛나게 한다. 문맹률이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낮으면서 기록에는 유난히 게으른 우리 후세들을 위해서도 좋은 교훈이 된다. 누구든지 자기 기록을 오래오래 지속해서 남기면 재물보다 소중한 유산이 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