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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관계/“감정대립 지양,이해폭 넓혀야”

    ◎「분노의 왕국」파문 계기,바람직한 발전방향을 찾는다/일왕저격장면은 픽션… 흥분은 과민반응/과거앙금 씻고 아태시대 협력길 모색을 한일관계가 불편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연초 일본총리의 방한에 때맞춰 본격적으로 제기된 정신대문제와 최근 MBC에서 제작·방영중인 미니시리즈 「분노의 왕국」에 의해 표출된 한일양국의 반일·혐한감정이 외교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민족감정의 대결은 한일 두 나라의 국가이익을 위해 어느쪽에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과거청산을 위한 관점에서도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감정대립을 지양하고 문제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좌담을 마련해 보았다. ▷좌담◁ 신희석·외교안보연 교수 이병훈·M­TV 제작부국장 이시즈카·신지 동경신문 서울지국장 ▲신희석=요즘 한일관계가 국교정상화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있다고 합니다.미야자와 일본수상 방한후 긴장되기 시작한 양국간 관계가 최근엔 MBC미니시리즈 「분노의 왕국」에 대한 일본측 반응으로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듯합니다.우선 최근 문제가 된 「분노의 왕국」제작동기와 배경 그리고 MBC의 입장에 대해 이국장께서 말씀해 주시지요. ○역사성 높아 드라마화 ▲이병훈=「분노의 왕국」은 지난해 MBC문학상 당선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입니다.구한말 조선왕조 마지막 황제 순종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가설을 설정한 이 작품은 당시 일본의 침략분위기가 무르익고 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하던 때 우리역사가 자주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었음을 감안해 역사의 굴절되고 탈락된 부분이 있었음직하다고 보고있지요.거기서 순종의 아들 이하연이란 가상 인물이 왕족의 후손임에도 겪은 비참한 생활끝에 모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일왕 즉위식때 저격을 기도하게 됩니다.MBC측으로선 이 작품의 역사성이 높다고 판단,드라마로 제작키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시즈카신지=「분노의 왕국」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개인적으로 일본 천황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걱정이 됐지요.앞으로 정상적인 한일관계를 위해선 서로가 양국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이번 MBC드라마는 일본사람들에게 있어서 천황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일에도 「국왕암살 영화」 ▲이=천황을 한 나라의 원수요 상징이라고 볼 때 당연히 존중해야지요.문제는 픽션드라마는 별개라는 인식입니다.실제로 영국 저격수의 드골대통령 암살기도를 다룬 영국작가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더 데이 애프터 자칼」도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됐고 일본의 경우에도 천황암살을 다룬 「벌거벗은 군대」라는 영화가 지난 87년 제작된 사례가 있습니다.국왕을 존중하는 심정이 없는 게 아니라 있음직한 가상의 세계를 다룬 픽션에 불과하다는 얘기죠. ▲신=MBC드라마 자체가 문제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저변엔 지배와 피지배로 구별된 과거역사가 깔려 있다고 보는데요.특히 정신대문제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저질러진 한 수단이란 견해가 이 땅에선 지배적인데 일본 지식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시즈카=정신대문제는 한일협정체결로 일단락됐다고 보는 게 일본의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제개인적으론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또는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한일관계를 다루는 양국의 언론이 조심스런 자세를 가져야 할 것만은 틀림없다고 봅니다.한국에선 정신대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을 때 한국의 신문들이 정신대=종군위안부라는 인식으로 몰아갔던 사실을 기억합니다. ▲이=정신대문제는 일본의 물질적 보상보다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했다」는 역사에 대한 일본인의 반성이 전달되고 받아들여지면 된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정신대=종군위안부라는 표현방식이 아니라 그것에 담긴 역사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시즈카=현재 한일관계는 「싸움」의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그 싸움의 관계는 나쁘다고만 볼 수 없습니다.유럽에서 프랑스­독일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지는데요.논쟁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신=한국측의 언론책임을 지적하셨는데일본측 매스컴에도 문제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일본 언론의 한국관계 교양프로속에서 한국인들이 상당히 왜소하고 부정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상한 경험이 있습니다.이런 점에서 양쪽이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시즈카=맞습니다.일본매스컴도 사실상 같은 문제점을 충분히 갖고 있지요.정도의 문제지만 무언가 반성할 게 있다면 양쪽 모두가 반성해야겠지요. ○양국언론도 신중해야 ▲신=우리 사극에선 역사속의 일본인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습니까? ▲이=과거 한일관계에서 우리쪽은 문화전수,일본쪽에선 침공의 주체로 인식되는 게 보편적이지요.그런 점에선 미래거향적이어야 한다는 견해에 긍정합니다.다만 이번 프로그램과 관련해선 젊은 사람들이 과거 한일역사를 잘 몰라 어느면에선 이 드라마가 과거 한일역사를 통해 미래지향적 시각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유쾌하지 않더라도 이해하고 느끼는 자세가 선진 민주주의 국민의 자세가 아닐까요.예를 들어 일본 문예춘추에서 한국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다루지만 한국에서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우스꽝스런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신=상호간에 인식의 갭이 크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군요. ▲이시즈카=현재 한국인에게서 보여지는 일본에 대한 인식의 갭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고 봅니다.첫째는 역사적인 배경에서 잉태된 「미움」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으로 발전된 현재 일본의 모습에 대한 「동경」이지요. ▲신=「분노의 왕국」방영과 관련해 발생한 일본 극우파의 요코하마 총영사관 차량진입사건은 정신대·무역불균형·문화갈등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양국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봅니다.곧 닥쳐올 21세기는 흔히 아시아태평양시대라고 합니다.아·태국가중 지정학·역사적으로 가장 인접한 한·일 양국이 앞으로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고 바람직한 존재양식을 찾는다면 무엇이 될까요. ○일 근대사교육에 소홀 ▲이=서로가 과거를 잘 알고 화합한다면 바람직한 미래를 맞을 수 있다고 봅니다.3년전쯤 작품헌팅관계로 30대 중반의 일본 방송인을 현지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당시 「민비암살」이라는 일본인이 쓴 작품이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의외로 그 젊은이는 전혀 민비암살사건을 모르고 있더군요.이번 요코하마 총영사관 난입사건도 일본국민이 과거 역사를 잘 알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신=피해자의 상처가 더 오래가는 법입니다.과거와 현재를 무시하고 무조건 미래지향으로 치닫기는 불가능하지요. ▲이시즈카=전적으로 동감입니다.일본 우익단체의 요코하마 한국총영사관 난입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일본 역사교육과정에서도 근현대사가 다루어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그래서 일본 젊은이들이 특히 한일 근대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게 사실이지요.저만해도 고교시절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을 졸업후에야 알게 된 부분이 많지요.한일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교육이라고 봅니다.양국관계의 오해를 풀기 위해선 정부대 정부의 협상도 중요하지만 민간레벨,그 중에서도 청소년교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고 있습니다. ▲이=그렇습니다.한일양국이 과거를 잘 알때 아·태시대속의 동반자관계를 무리없이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그런 측면에서 「분노의 왕국」과 관련된 이번 사태도 프로그램측면에서만 이해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이번에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면 양국관계에서 악순환이 계속될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이번 드라마가 일왕을 모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상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한일과거사를 짚어보자는 뜻이기에 혐한감정의 빌미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시즈카=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현재 한일간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사회적 특성을 고려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게 되겠지요. ▲신=어찌 보면 한일관계는 휴화산에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항상 불을 머금고 있지만 언제든지 내뿜을 수 있는 상태지요. 마지막으로 이번 드라마가 과거역사를 정확히 알자는 계몽의식을 담았다는 배경이해를 통해 더이상의 불상사가 없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양국이 서로의 이해를 통한 21세기 아·태시대의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 일본서 연출되는 「반한극」(사설)

    일본의 시위대들이 주일한국공관에 침입을 했다고 한다.즉위하는 일본왕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이 묘사된 한국의 한 드라마 장면을 꼬투리잡아 연일 협박과 공격을 계속하던 일본의 우익단체소속 폭력배들의 소행인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우려를 자아내는 일이다. 이 일이,단순히 한편의 드라마가 끼친 즉흥적이고 우발적인 감정의 폭발이라고만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걱정스런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지난 연초,한일정상회담을 위한 일본총이의 방한이 이뤄졌을때 이미 사태는 발단되었다.급격히 제기된 이른바 「정신대」문제로 민간단위의 반일감정은 극도로 나빠졌고 그 여파로 시위대에 의해 일왕의 화형식까지 벌어졌었다.그때부터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거기에다,『노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감정에 고무된 전체 일본인들의 민족감정까지 상승되어 한국에 대해서도 『하고싶은 말을 실컷 하겠다』는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고 있는 듯하다.소위 우익필진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한국을 비판하고 나섰으며 그런 「이론지원」에 힘입은 행동부대들은 한국 대사관 영사관 언론사들을 무차별 협박하고 공격하고 있다.바로 그런 시점에서 MBC의 미니시리즈 「분노의 왕국」이 방영되자 기어코 치외법권구역인 한국공관까지 침입하는 본격적인 난동을 부리게 된 것이다.흡사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드라마를 물고 늘어지는 그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잠재된적의」를 실감하는 느낌마저든다. 누구나 알다시피 「분노의 왕국」은 한 민영방송이 내보내는 가상극이다.일본처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선진적인 민주주의의 나라에서는 법이에 의한 제재가 아닌 어떤 물이력으로도 표현의 자유를 구속할수 없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조차도 자국리기주의에 입각하여 왜곡하기를 서슴지않는 「관점」을 확대하여 외국의 문화예술적 표현까지 간섭하는 듯한 태도는 옳은 것이 아니다.특히 그들의 침략으로 멸망한 이웃나라 왕조의 가상적 후손이 연극속에서 적중도 못시킨 총구를 그들 왕에게 겨눴다고 해서 극우행동대원들이 독기를 뿜으며 나선다는 것은 용인하기 어렵다. 이 사태를 보며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일본의 관과 민이 암암리에 손발을 맞춘 거대한 연출을 보는 듯하다는 사실이다.『암살기도장면이 국민감정에 상처를 남기지 않을수 없다』는 정부인사의 발언을 신호처럼 우익 테러분자들은 행동에 나섰다.그때가 『시의적절』하게도 사회당과 자민당 의원들이 백수십명씩 떼를 지어 북한을 방문하는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국익」이라면 지식인과 언론과 「야쿠사」까지도 일사불란하게 단결하는 것이 일본사회다.이런 일로 「민주감정」이라는 무기의 효용성을 휘두르는 일본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한일관계가 악화하는 것이 양국의 미래에 해로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도 알고있다.그러므로 서로 국위에 상처를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에 깊이 동의한다.그러므로 「방송」같은 공공매체는 신중하고 성숙해야 한다는 뜻을 충분히 새기도록 당부한다.그와함께 같은 인식을 일본 또한 깊이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가해자의 반성에 전혀 성의가 없으면서 여전히 강자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는 한 그들은 세계정치의 지도국이 될만한 도덕적 성숙성을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 일 정부 사극 「분노의 왕국」에 항의/방송계 “문화주권침해” 논란

    ◎일,첫회분 「일왕저격장면」에 문제제기/MBC선 “가상극일뿐… 계속 방영방침”/“창작행위에 트집” “자극할 필요없다” 방송계 양론 지난 주 MBC­TV가 방영한 드라마 「분노의 왕국」에 대한 일본정부의 반응은 국내 방송프로그램을 둘러싼 첫 공식적인 외교마찰이었다는 점에서 당분간 적지 않는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분오의 왕국」제작 당사자인 MBC측에선 방송의 내용,그것도 픽션드라마의 특정장면을 문제삼은 일본정부의 행동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불쾌한 반응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고 방송계에서도 일본측의 이같은 반응이 최근 비등하고 있는 국내 반일감정을 방송과 연결한 이례적인 처사로 공식대응이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특히 전문가인 시청자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작용했던 과거 특별한 한일관계를 볼 때 「일왕저격」과 같은 방송장면은 얼마든지 설정될 수 있다는 반응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MBC측은 「분노의 왕국」 방영직후 발빠르게 움직였던 일본측이 심의기관인 방송위원회에 정식심의요청할 것으로 기대됐던 당초 예상과는 달리 더이상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는 점을 들어 이번 반응의 목적이 뚜렷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즉 방송심의에 관여하는 방송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외무부와 MBC측에 대한 항의전달로 끝난 것은 반일감정을 부추길 수 있는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차원의 제스처로 볼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제작진들은 16부작 중 이미 제작된 8회분 방영뿐만 아니라 나머지 부분도 당초 기획대로 고수할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MBC 이연헌TV제작국장은 『일본측이 일본내에서 특수한 위치에 있는 천황에 대한 저격장면을 문제삼는 입장에 대해선 이해하나 정부간 외교경로를 통해 문제제기를 한 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권침해」의 사례이며 문제의 방송장면도 일본측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몽타주로 처리한 모티브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분노의 왕국」은 조선군 마지막 황제 순종에게 적자가 있었다는 가설을 설정해 그 적자의 아들인 이하연이란 가상의 인물이 일본과 맞물린 왕조의 몰락으로 기구한운명을 살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가상사극이다. 때문에 왕조몰락후 처절하게 살아간 이하연의 대일감정을 부각시키기 위한 결정적인 모티브가 바로 첫회 도입부의 「일왕저격」장면으로 처리됐다는 게 제작자들의 설명이다. 「분노의 왕국」을 총괄지휘한 이병훈부국장(드라마제작국 드라마담당)은 『이하연의 일왕저격기도 실패후 그의 석방운동에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극의 흐름상 일왕저격문제는 앞으로도 계속해 다루어지게 되지만 내용과 장면수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또 『방송드라마에 대한 이같은 외교적 경로를 통한 간섭은 유례없는 일로 최근 국내에서 급격히 부각된 종군위안부문제 등으로 인한 반일감정을 의식한 해프닝쯤으로 보여진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방송계 안팎에선 이번 사태를 창작행위에 대한 일종의 검열행위로 봐야 하며 적극적인 대응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일고 있다. 성균관대 김원용교수(신문방송학)는 『할리우드 등에서 국가원수 암살을 다룬 영화가 얼마든지 자유롭게 통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볼 때 문화주권침해의 전형적인 예로 받아들여지며 특히 위성방송 도입 등으로 인한 양국간 프로그램 유통이 가속화될 전망임을 볼 때 앞으로의 방송에 대한 경고의 의미까지 담고 있어 적절한 대응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켠에선 『최근 첨여해지는 한일관계를 감안해서라도 일왕저격장면을 굳이 극중에 삽입해 일본측을 자극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견해도 없지 않다.
  • 오늘 상해임시정부 수립 73주년/7요인영정 효창원에 봉안

    ◎「추모사업 40년」… 남다른 감회의 김재홍위원장/석오·백구선생등 초상/영정모실 의열사건립에만 12년 진력/“임정기념관 건립이 꿈… 정부수립일 재조정 돼야” 13일은 1919년 중국의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지 73주년이 되는 날. 이날을 맞아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자리잡은 효창원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의정원장과 주석을 지낸 석오 이동령선생과 역시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선생등 이곳에 묻혀있는 임정요인 7인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열린다. 그동안 썰렁하기만 했던 사당 의렬사에 일곱분 선열들의 영정이 이날 비로소 봉안되는 것이다. 지난 52년부터 순국선열들의 추모사업에 헌신,78년 「효창원 순국선열추모위원회」를 만들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온 이 위원회 위원장 김재홍씨(66·한국전통문화사상연구소장)에겐 눈물이 나올만큼 흐뭇한 일이다. 이날 14번째 합동추모대제전과 함께 봉안식을 갖는 영정의 주인들은 석오선생과 백범선생을 비롯,임정 국무위원을 지낸 조성환·차리석선생과 일본왕을 저격했던 이봉창의사,일본군 장성등 10여명을 살상시킨 윤봉길의사,주중 일본공사를 폭살시키려 했던 백정기의사 등이다. 이들 선열의 일생이 조국의 수난사와 운명을 같이 한 파란만장한 것이었던 것처럼 선열들이 잠들고 있는 효창원의 역사 또한 우여곡절이 이만저만 아니다. 효창원은 원래 조선왕조 정조대왕의 맏아들인 문효세자와 그의 생모인 의빈 성씨,순조의 후궁 숙의 박씨 및 영온옹주의 묘가 있던 곳. 그러나 조선왕조를 침탈한 일본은 서울 도심에 있는 이같은 사적을 제거하기 위해 공원법을 만들어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뜯어 고치고 세자묘도 경기도 고양군의 서삼릉으로 이장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조국의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백범선생등은 46년 7월 아끼고 사랑했던 3의사의 유해를 일본으로부터 봉환,안중근의사의 가묘와 함께 이곳에 안장해 일본인들의 잘못을 꾸짖었다. 이어 48년 9월에는 이역만리 중국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치다 순국한 석오선생과 차선생의 유해도 옮겨왔고 다음달에는 환국해 활동하던 조선생도 운명,이곳에 안장됐다. 그리고 이듬해 6월26일 백범선생마저 흉탄에 서거,7월5일 국민장으로 이곳에 봉안됨으로써 오늘의 선열묘역을 이루게 됐다. 47년 육사를 졸업하고 6·25동란에 참전했다가 부상으로 예편한 뒤 순국선열들의 추모사업에 뛰어든 김씨는 자유당정권때 효창공원운동장이 개설되면서 울창했던 공원안의 나무들이 마구 베어지고 철없는 아이들이 선열들의 묘위를 올라가 뛰어노는 등 놀이터로 변해가는 안타까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더이상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게된 지난 78년 이인·이희승·이항령씨 등 40여명과 함께 「효창원 순국선열추모위원회」를 발족시키고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이듬해부터 해마다 임정이 수립된 4월13일이면 추모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요로에 건의를 거듭하기 10년 넘어 마침내 지난 88년 사당이 착공됐고 89년에는 사적 제330호로 지정됐으며 90년 11월 의렬사가 준공됐다. 그러나 사당에 모실 제대로 된 영정이 없어 또한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7억원가량으로 추산되는 영정제작비를 마련할 길이 막연한 것이었다.시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5천만원 이상의 지원은 어렵다고 했다. 이리뛰고 저리뛰던 끝에 재일동포실업가 신해성씨(56)가 거금 5억원을 냈고 한국역사인물연구회장 옥문성씨가 그 돈으로 영정을 모두 새로 그려 이번 추모식에서 봉안식을 갖게 됐다. 효창원에 사당을 짓는데만 12년의 세월이 걸렸고 그후 7인의 여정을 준비하는데도 2년이 걸렸다. 『이곳에 임정기념비와 기념관을 세우는 등 앞으로 할일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나라 민주공화제의 제1공화국을 임시정부로 재정립하는 일과 이에 따른 정부수립일 및 제헌절을 재조정하는 일도 이뤄져야 한다』는 김씨는 『선열추모사업은 몇몇 개인이나 유족들에게만 떠맡겨질 일이 아니라 국민들의 관심속에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경국대전 초간본 발견/국내최고 성문법전/1470년 간행 신묘본

    조선왕조 5백년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 초간본으로 추정되는 「신묘본」일부가 발견됐다. 삼성출판박물관(관장 김종규)은 18일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의 성문법전인 경국대전 「신묘본」6권중 1,2권 1책을 공개했다. 지금까지 경국대전은 최초의 간행본인 신묘대전(1470년 간행,1471년 1월부터 준용)이 전해지지 않고 그뒤 수정 보완을 거쳐 다시 간행한 갑오대전(1473년 간행)의 잔본과 을사대전(1484년 간행)만이 전해져왔다. 이번에 경국대전 「신묘본」을 검토한 민족문화추진회 신승운 편찬실장은 『조선왕조실록의 예종·성종편에 실린 법률변경상황과 비교,분석한 결과 「신묘본」의 편찬시기를 1471년 11월까지 끌어올릴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신묘대전의 3권 예전도 최근 발견됐으나 1,2권(이전·호전)을 발굴한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문우서림을 통해 개인소장가 김민영씨에게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 외언내언

    김일성주석은 20일 낮 주석궁에서 정원식총리등 우리대표단 일행과 오찬을 나누면서 예의 「흰쌀밥에 고깃국이 조선사람의 최고 욕망」이라는 말을 또다시 꺼냈다.북에서 그의 최대 최고의 통치목표가 그것인줄은 아나 한국도 아직 그런 수준으로 알고 있다는건지 아니면 솔직히 말해 「우리는 아직 이런 상태에 있다」는 토로인지 알쏭달쏭하다.◆어쨌든 북의 현실이 하루 두끼먹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전기가 제대로 안들어 오며 공장은 대부분 가동이 중단되고 기름이 모자라 얼마안되는 배급용 식량마저 배달이 제때 안돼 백성들의 불만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는게 최근 북을 다녀온 외국인들의 한결같은 얘기다.◆한국에서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었으면 그만이지」하고 어느 정치인이 국민에게 말했다면 아마 「그놈 미쳐도 한참 미친 녀석」이라며 국민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다.그런데 「그것이」아직 통하는게 북이고 보면 그들에게 「민주」니 「인권」이니 하는것은 사치로 밖에 들릴리가 없겠구나 싶어 그저 안타깝고 민망하다.◆그런데 그 「통치권자」라는 사람은 스탈린식 철권수법으로 권력을 움켜쥐고 모택동식 권위를 세우며 이제 또 살아 남겠다고 등소평식 부분개방을 실험해보고자 이사람,저사람 주석궁으로 불러들여 「합작」이니 「관광개발」을 입에 담으며 「쏘가리회」나 「삽조개」등 장수식만 즐기며 왕조식 부자승계에 희망을 걸고 있으니 참으로 안스럽다.◆노회한 독재자는 그래도 술수만은 남아,이미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에 동의 서명을 해놓고도 「핵은 없다」면서 동시사찰은 거부하는 억지를 쓰고 있는데,남과 협력만 잘 하면 북한 백성의 흰쌀밥과 고깃국 먹는 일는 그리 어렵고 시간이 걸릴 일은 아니련만….
  • 외언내언

    「삼별초의 난」이냐,「삼별초의 항몽(항쟁)」이냐.왕조를 중심해서 볼 때는 전자이고 민중의 편에 서서 볼 때는 후자로 된다.똑같은 하나의 사실을 놓고도 보는 각도에 따라 부르는 것이 달라진다.◆1905년 한일간에 체결된 치욕의 조약을 일본사람들이 「을사보호조약」이라 한다 해서 한국사람도 그렇게 부를 수는 없다.「보호」란 침탈을 위한 일제의 양두구육이었기 때문이다.일제가 「6·10 만세사건」이라 한다 해서 우리도 덩달아 그리 부를 수는 없는 것.그들의 처지에서 「사건」이지 우리로서는 애국운동이었기 때문이다.하건만 별로 크게 의식하지 못한 채 잘못 부르는 경우들이 많다.◆여수·순천쪽에서 「여순반란 사건」이라는 부름에 반발하고 나섰다.그래서 문화원이 중심이 되어 「개칭 추진위」를 구성하고 그를 위한 서명작업을 벌이고 있다.당시의 반란부대가 14연대였던 만큼 「14연대 반란사건」이라야 한다는 것.「여순 반란사건」이라 하면 마치 그 지역 주민들이 반정부 봉기라도 한 것으로 오해 받을 소지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의 어수선한 정정속에서 있었던 붉은 무리들의 책동.주민이 반란한게 아니라 주민은 무고하게도 3천여명이나 죽어갔던 사건이다.그 옛날 홍경래군의 파죽지세를 연상케 할만큼 동부 전남을 한때나마 휩쓸었던 반란군.곧 진압은 되었으나 입산한 여세의 소탕에 애를 먹었다.주민들로서는 한이 깊은 상처.듣고 보니 수긍이 가는 오해불식 움직임에 좌단하는 심정이다.◆이와 관련하여 「한반도」라는 말에 불쾌감을 나타낸 한 지리학자(이형석씨)의 말도 떠오른다.우리 옛 전적에 안보이는 「반도」라는 말은 일제가 제나라를 「본도」라 하면서 대비시켜 깎아내리려고 만들었다는 것.옛 전적의 「곳­곶」따라 「한곶」이라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벌로 넘겨버릴 말들은 아니다.
  • 오늘 김정일 50회 생일… 법석떠는 북한

    ◎이미지 개선으로 “권력세습 굳히기 쇼”/선전매체 총동원,개인선전 대폭강화/2백16만송이 「김정일화」로 평양치장/유례없는 성대한 행사준비… 기간도 배로 늘려 「김일성 왕조」의 후계자 김정일의 50회 생일을 맞아 북한 전역이 대대적인 경축행사로 법썩하다. 올 김정일의 생일은 그가 지난해 12월24일 군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직후라는 점과 이른바 「꺾어지는 해」인 50회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행사로 준비되고 있으며 권력승계자로서의 그의 이미지 부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통 매년 2월초에 시작되던 생일축하행사가 올해에는 1월초부터 시작됐으며 과거 김일성의 「꺾어지는 해」생일에만 사용되던 「경축행사」라는 용어와 비슷한 「2월 대명절 경축」이라는 구호도 내걸리는등 지난 74년 처음으로 김정일의 생일행사가 치러진 이래 최대의 축제분위기속에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의 권력승계 기반강화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경축행사의 스타트는 지난해 11월초 전국 각 시·도별로 열린 「전국문답식학습경연대회」.김일성에 대한 김정일의 충성등을 주제로 한 이 행사는 지난달 10일부터 16일까지 7일간 평양에서도 계속됐다. 북한정무원은 김정일의 올 생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맞이한다는 구호아래 도시경영부주관으로 수도 평양을 비롯한 각 지방도시들을 조기개화한 2백16만송이(김의 생일인 2·16상징)의 「김정일화」로 뒤덮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축하행사 가운데 가장 이색적인 것은 「충성의 편지 이어 달리기」와 「백두산상국제피겨대회」. 「충성의 편지 이어달리기」는 통상 김일성의 생일행사때만 열렸으나 올해 처음으로 김정일의 생일축하행사로도 개최되고 있다. 이 행사는 백두산 밀영·회령 등 전국 21개 지점에서 군중대회를 열고 김정일에 충성을 맹세하는 편지내용을 채택,북한 전역의 모든 시·군을 거쳐 생일 당일인 16일 평양에 도착,김에게 이를 전달하는 것으로 노력영웅·사회안전원·학생·모범과학자 등이 참가한다. 「백두산상 국제 피겨대회」는 김정일의 생일축하를 「국제화」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관측되는데 노르웨이·덴마크·러시아·스웨덴 등 12개국 선수단 1백50여명이 참가했다고 북한언론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이밖에 몽골에서는 이미 지난달 24일부터 지난1일까지 「2·16상 탁구대회」가 열렸으며 탄자니아에서도 「정일봉컵 전국탁구대회」가 같은 의도로 개최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김정일생일행사의 「국제화」를 위해 이같은 행사외에도 기존의 영화감상회·도서사진전시회·세미나 등 각종 행사를 짐바브웨 콩고 등 친북국가에서 개최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지난 3일부터 「김정일생일 경축 전국학생소년예술축전」을 개막하는 등 3백여종의 예술공연을 벌이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2월 경축영화상영순간」 등 다양한 영화관련행사가 눈길을 끈다. 이는 김정일의 영화관심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선전·선동기능이 강한 영화를 통해 김정일의 위상을 제고시키려는데 목적이 있는듯. 「2월 경축영화상영순간」은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평양과 각 도·시·군 소재지의 영화관에서마련되고 있는 바 극영화 「민족과 운명」(4부작)등 김정일의 「치적」을 선전하는 작품들이 상영되고 있다.「2월 경축예술인들의 경축무대는 지난 9일부터 1주일간 평양 국제영화회관에서 전체 영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으며 「전국영화부문 기술 전시회」는 12일 평양서 개막됐다. 그러나 이같은 행사의 외형적 규모보다 눈길이 모아지는 것은 그 내용이 김정일 개인에 대한 선전이 대폭 강화된 점이다.즉 김정일이 김일성의 대를 이을 후계자라는 점을 기정 사실화하고 빠른 시일내에 후계체제를 정착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치적홍보의 대표적인 예는 올들어 건설된 ▲평북 삭주의 식료품 공장 ▲평양피복 합작회사 ▲원산 송도원의 국제소년단야영소 등이다. 문화·예술분야의 치적으로는 지난해 12월 김정일이 조선문학창작사 작가들에게 「당 건설과 활동에서 영원한 동행자,충실한 방조자,훌륭한 조언자가 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과 함께 김정일이 지난 3년동안 「축복받은 인민이여」등 시 1백30여편과 「내나라 제일로 좋아」등 가사 3백50여편을 지도해주었다는 점을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다. 50회 생일을 맞는 김정일에 대한 찬양 수식어도 점차 강도를 더해 로동신문등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김정일을 「사회주의 위업의 견실한 수호자」「세련되고 노숙한 영도자」「우리 시대의 위대한 사상·이론가」「희대의 위인」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배곯는 주민들은 내팽겨둔채 김정일생일 잔치준비에 얼이 빠진 북한의 올 행사준비는 예년과 달리 김정일의 능력과 치적부문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데 이는 김정일의 주석직 승계 임박설과 무관하지않은 움직임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 소장학자들/한국사 개설서 출간 붐

    ◎집단연구·새 시대구분 공통점/주조사탈피… 시대별 모순구조 주목/「한국역사」/시각자료 활용 친근한 역사책 지향/「도해…」 올들어 한국역사 개설서의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80년대말 30대 전후의 소장학자들이 주축이 돼 발족된 한국역사연구회(회장 안병우·한신대교수)가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통사인 「한국역사」를 이달말 펴낸다. 이와함께 또 다른 소장학자들의 연구모임인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이리화)도 오는 4월쯤 대중역사개설서인 4권분량의 「도해 한국사」(웅진출판사간)를 내놓을 계획이다. 한력연의 「한국역사」가 사회구성체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90년까지 이루어진 소장학자들의 한국사 연구성과를 최대한 반영한 성과물인 반면 역문연의 「도해 한국사」는 전자와 역사를 보는 시각이나 본문서술은 유사하면서도 고교생이상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쉬운 역사책이라는 특징이 있다. 「한국역사」는 50여명의 연구진이 공개세미나와 내부토의를 거쳐 집필한 집단작업이면서도 기존 역사학계는 물론 진보적인 소장학자들 사이에서도 아직 의견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시대구분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와 이를 둘러싸고 상당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조선부터 87년 6월까지를 다루고 있는 「한국역사」는 집권세력(왕조)에 따른 도식적인 시대부분에서 벗어나 역사적 발전단계를 근거로 고대·중세·근대·현대로 시대구분을 하고 있다.또 시대별 모순구조와 변혁세력의 형성·발전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한국역사」는 고려시대를 중세의 기점으로 보던 통설과는 달리 통일신라시대를 중세의 시점으로 잡고 있고 근대 역시 조선사회가 세계자본주의체제에 편입되고 반제·반봉건의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18 76년 개항이후로 설정하고 있다. 한편 현대는 19 45년 8·15해방이후로 보고 있다. 역문연이 펴낼 「도해 한국사」는 학문적 엄밀성보다는 쉬운 대중역사개설서라는 목적 아래 19 87년 6월까지의 한국역사를 다룬 책이다.지난 90년 6월부터 연구소 연구진과 외부의 고대·중세사 연구원 현직 교사 4명을 포함,20여명이 참여해 집필한이 책은 도해를 전제로 한 본문 서술이 가장 큰 특징이다. 다시말해 사진과 그림만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끔 시각적인 자료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이밖에 비교적 사진자료가 풍부하지 못한 고대사의 경우 상상도를 첨가하고 지도의 경우도 본문과 연관되도록 단순화시켜 역사를 보다 쉽게 접하고 싶어하는 일반인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고 있다. 소장역사학자들의 집단연구가 잇따라 출간되는 것은 8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된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성과가 어느 정도 축적되었다는 내부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학계 일각에서는 보고 있으나 축적된 연구성과의 질적 수준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 역시 만만치 않다.그러나 최근까지의 연구성과를 종합해 오는 97년까지 연차적으로 간행될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박영석)의 「신편한국사」60권 편찬을 앞둔 시점에서 발간돼 쟁점이 되고 있는 학설이나 견해를 객관적으로 종합서술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 안방극장에 다시 부는 「사극바람」

    ◎궁중야화서 탈피,민초의 삶등 조명/「삼국기」 40억 투입… 채널경쟁 가열 안방극장에 사극경쟁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지난해말 MBC­TV 「동의보감」이 좋은 반응을 얻은데 이어 12월초 개국한 SBS­TV가 일일연속사극 「유심초」로 사극의 새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방송3사가 미니시리즈·주간드라마·특집물 등 다양한 형태로 사극을 잇따라 선보일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그동안의 사극이 조선시대의 궁중암투와 비화 등에 머물렀던데 반해 올해 새롭게 시도될 사극은 시대층의 다변화와 야사위주의 서민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 제작중이거나 방송예정인 사극을 보면 S­TV의 일일사극 「유심초」를 비롯해 M­TV가 수·목드라마 「여명의 눈동자」후속으로 52부작 「일출봉」(임충 극본·이재갑 연출)을 12일부터 새로 내보낼 예정이고 KBS­1TV와 M­TV는 4월초부터 역시 52부작 「삼국기」(유현종 극본,최상식·안영동 연출)와 16부작 미니시리즈 「분노의 왕국」(문영남 극본·이관희 연출)을 각각 선보이게 된다. 이가운데 현대물 위주의 편성에서 탈피해 일일연속사극화한 S­TV 「유심초」는 난시청과 경쟁사의 인기프로에 밀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사극의 일일극화 측면에서 볼 때 과감한 시도로서 일단 관심 유발에 성공적이라는 게 SBS측의 자평이다. 이에 비해 12일부터 선보일 M­TV 「일출봉」과 비슷한 시기(4월초)에 경쟁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K­1TV 「삼국기」나 M­TV 「분노의 왕국」은 두 방송사가 사극의 흐름을 바꿔 놓겠다는 의욕을 담은 야심작들이어서 방송 전부터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5백년­대원군편 이후 2년만에 시도하는 M­TV 사극 「일출봉」은 이조말기인 정조·순조시대 양반·서자·천출들을 각각 상징적으로 내세워 이들의 행적을 통해 신분제도의 붕괴과정을 서민층 시각에서 다룬 야사. 양반이면서도 운명의 회오리에 말려 천민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업산역에 유인촌,서자출신 삼류문사 윤진성에 정성모,씨종 염동에 전인택이 각각 반해 민초들의 거친 삶을 대변하는 내용이다. 전북 고창읍 성에 설치된오픈세트를 극촬영 무대로 현재 10회분 촬영을 끝낸 K­1TV 「삼국기」는 국내 방송사상 드문 40억원의 제작비 투입과 1년간에 걸친 방영시간 등으로 일찍부터 화제가 됐던 매머드 사극. 6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고증위원회를 발족해 서기 629년부터 40년간의 3국관계를 중심으로 우리 고대인들의 웅지와 기상을 파란만장한 역사적 사실에 최대한 충실하게 담게 된다. 주요 출연자만 해도 김유신역의 서인석,김춘추역의 유인촌,계백에 유동근,의좌왕에 길용우,연개소문 조경환,천관녀 김서라 등 주연급 배우 5백여명이 출연하는 호화출연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응해 M­TV가 시도하는 미니시리즈 사극 「분노의왕국」은 사극에 시대물 성격을 가미한 특집물. 조선왕조 5백년사는 순종을 마지막으로 몰락하지만 이 드라마는 순종이 왕조의 맥을 잇기위해 일본의 탄압을 물리치면서 왕자 「이호」를 낳았다는 가설을 설정해 조선왕조의 마지막 아들로 태어나 철저히 버림받고 고통의 삶을 살아간 이좌연(이호)이란 인물의 역정을 극화하고 있다.특히 해방을 전후한 19 40년대,경제적 빈곤기인 19 60년대를 거쳐 90년대의 한국과 일본을 입체적으로 연결해 사회변동을 반추하는 흐름을 띠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촬영에 돌입,현재 일본 현지촬영중이다. 이같은 사극제작 경쟁에 대해 전문가들은 『쇼·코미디 등 오락물과 일상적인 드라마 등 인기프로그램 경쟁과는 다른 측면에서 보여지는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사극 작가의 부족과 현실적인 제작여건의 열악함에 따른 배우들의 기피현상이 곧 시청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일반적인 사극방송의 흐름이어서 방송사의 적극적인 지원과 시청자들의 사극에 대한 인식전환이 따라야 한다는 견해들이다. 「삼국기」연출자인 KBS 최상식PD는 『고증과 역사지식 등 사극제작이 일반방송물 제작과정보다 훨씬 힘든 작업』이라며 『사극이 흥미 위주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조명을 통한 현실반영차원으로 제대로 자리매김 되기 위한 방송사·제작진·시청자들의 총체적인 노력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 영 엘리자베스여왕 즉위 40돌

    ◎52년 26살때 승계… 20세기 최장수 군주로/입헌정치·왕조전통 유지,국민존경 여전 지금으로부터 40년전 두명의 어린아기를 가진 청순한 얼굴의 25세 여성으로 영국왕의 자리에 앉았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6일로 즉위40주년을 맞는다. 엘리자베스여왕이 갑작스런 즉위는 지난 1952년 2월6일 케냐를 방문하던중 부왕인 조지 6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남에 따라 영국의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 당시 일부 인사들은 작은 체구,조용한 말씨의 이 여인이 왕실에 던져지는 갖가지 도전을 이겨낼수 있을까 의문을 표시했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1천년의 역사를 갖는 영국왕의 자리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대영제국을 영연방으로 순탄하게 변화시키는 외교적 역량을 발휘했다고 최근 홍수처럼 인쇄되어져 나오는 각종 기념문서들은 찬양하고 있다. 올해 66세인 「엘」여왕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위를 지킨 최장수 여왕이다.「엘」여왕은 그동안 제국들과 이데올로기가 붕괴하는 것을 보았으나 국내에서는 세습왕조의 오랜 전통을 지켜오는데성공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세계에서 드물게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그의 존재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비록 여왕이 덕과 검약·절제의 전형이라 할지라도 왕실의 일부 다른 구성원들은 반드시 그같은 미덕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부 왕족의 엄청난 부의 과시는 왕실을 값싼 멜로드라마의 무대로 전락시켰다고 비판자들은 말한다. 점차 왕실에 대한 존경심을 잃고있는 신문들은 걸프전 당시 일부 왕족이 사냥을 즐겼다든지 영국 전체가 심각한 경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스위스의 호화스러운 휴양지에서 스키 휴가를 보냈다든지 하는 등의 왕실 동정을 비판적으로 보도하고있다. 비판의 물결은 여왕 자신에게도 미치고 있다.일부 인사들은 여왕이 단 한푼의 소득세를 내지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영국,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인으로 알려진 여왕의 개인 재산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그녀의 개인 투자 재산이 5천만 파운드(약 9천만달러)로서 앞서의 추산에 비해 단지 10분의1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여왕은 6일 샌드링엄 별궁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낼 계획이라고 버킹엄궁의 관리들이 전하고있다.또한 영국정부도 이 여왕의 즉위 40주년을 맞아 대규모 공식 축하행사를 개최하거나 깃발을 거리에 내다 걸지도 않았다. 그러나 영국의 군주제 지지파들의 단체인 왕실기념 기금은 금년 내내 여러가지 행사를 준비중이다. 여론조사들은 국민들이 사치스러운 일부 왕족들에 불만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왕에 대해서는 높은 존경심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조선실록」·「대장경」 한글완역은 괄목(북한 문화실상:4)

    ◎학술/쉽게풀어 대중화 치중… 전문성 결여/북방사 연구,한국사 공백부문 메워/「고조선」·「발해사」 연구는 독보적 업적 북한에서의 학술활동의 가장 큰 특징은 전문적인 연구보다는 대중적인 정리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상당한 수준의 고전국역 성과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의 대중화 작업과 함께 구·신석기 청동기문화에서부터 조선후기 실학사상 연구에 이르기까지 집약적인 노력이 이루어졌다. 물론 이와같은 연구경향에는 북한의 역사적인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히 내재돼 있지만 북한의 거의 독점적인 북방사연구는 한국사의 공백부분들을 채우고도 남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60년대이후부터 지난 90년까지 보고된 북한의 구석기관련 유적은 20여개소에 이르며 남한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고인류인골과 동물골들이 서북지방의 석회암지대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어 한반도의 홍적세 고인류의 거주방식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다.때문에 북한의 고고학연구는 남한의 석기·토기연구와는 달리 고생물학적·고인류학적인 측면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의 신석기유물은 두만강연안을 중심으로 한 동북지방과 대동강유역 압록강유역등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특히 두만강 연안의 유물은 신석기문화 편년의 기준이 될만큼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의 고조선연구 역시 북한학계의 독점적 업적에 속한다.리지린의「고조선연구」(64년),김용간 황기덕 공동명의로 발표된 「기원전 천년기 전반기의 고조선문화」(67년)등의 저서는 그 대표적인 작업이다.또한 중국과 북한에서 발굴된 토기·무덤·장식무늬등 고조선유물은 고조선영역과 고고학적 연대와의 연결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후한서」「삼국지」등을 근거로 부여의 건국시기와 영역을 밝힌 북한의 부여연구역시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으며 고구려의 적석총과 적토석실분등 고분과 산성 사지의 독점적인 연구도 두드러진다. 정책적으로 주요연구의 하나로 정해져 일찍부터 진행돼온 발해사연구는 62년 발표된 박시형의 「발해사연구를 위하여」라는 논문을 출발점으로 한다.이논문은 발해사를 한국사안에 편입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논증을 시도한 최초의 논문이며 한말 계몽사가들이후 단절된 발해사연구전통을 다시 잇는 최초의 논문이라는 점에서 남북한을 통틀어 매우 의미가 큰 글로 꼽힌다.이렇게 출발한 북한의 발해사연구는 북한이 60년대초 중국에서 발굴한 자료를 기초로한 고고학적 연구결과인 주영헌의 「발해문화」(1971)로 완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조선사연구중 가장 괄목할만한 부분은 실학사상 연구인데 이는 실학사상을 우리나라의 유물론적 전통으로 받아들여 사회개혁의 이론적 기초로 삼았기 때문.최익한의「실학파와 정다산」(1955)을 비롯,김석형등의「다산 정약용탄생 2백주년기념논문집」(과학원 철학연구소 1952)등 연구저서가 풍부하다. 한편 북한의 고전국역 사업은 과학원고전연구실을 중심으로 지난50년대부터 진행돼 왔다.홍기문 류수 리용학 김상훈 리철화 김찬순 등의 학자들이 중심이 돼 이미 완역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팔만대장경 고가요집 고대전기설화집 한시선집 박지원·김시습의 작품선집등이 국역됐다. 「철저히 원문중심」원칙 아래 완역된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주없이 쉽게 풀어 썼으며 인명·지명·관명할 것없이 한문을 전혀 안쓴 명역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역사의 대중화작업은 역사서술의 평이화와 한글화작업으로 뒷받침되고 있다.우리 학계에서 참고할 만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대중화와 한글전용 고집으로 역사적 용어의 의미가 상실된 경우도 많은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김정일,곧 대남 군축정책 결정/남북정상회담에 관건

    ◎한국 수용 불투명 【모스크바 연합】 노태우대통령과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간 정상회담은 한국이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세계최초의 「공산주의 왕조」를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러시아 일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가 3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일성이 지난 84년부터 당정의 주요정책 결정권을 그 아들에게 넘겨 주었지만 남북한 문제만은 항상 그 자신이 처리해 왔으며 김정일은 2선에 머물렀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조만간 김정일이 직접 남한과의 교섭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김정일은 총사령관으로서 남북한 군축문제에서 직접 협상에 임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서울이 김의 지시로 감행된 것으로 전해진 버마 아웅산사건·KAL기 폭파사건을 잊어버리고 김을 받아들인다고 하면 노대통령과 김주석간 역사적 정상회담이 금년내로 가능할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망했다.
  • 운경 이재형선생 영전에…

    ◎“차분히 통일 준비” 당부 귓전에 쟁쟁 평소 존경하던 운경 이재형선생이 타계하셨다는 부음을 듣고 나는 망연자실하였다.운경선생은 명문의 후예로서 일제시에는 망국민의 살 길은 산업을 일으켜 경제력을 제고하는데 있다는 남다른 포부와 항일자주의 뜻을 품고 금융계에 종사하였다. 광복후에는 반공립국과 민주지상·국가지상을 내세워 대한민족청년단을 조직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다하였으며 향리에서 절대지지를 받고 자유당의 최년소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6·25동란시에는 가족을 버리고 남하하여 난민수습과 구국전선에서 싸우던중 이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역시 최년소 상공장관으로 발탁되어 국난극복에 큰 공헌을 하시었다. 운경선생은 한때 나와 같이 당시 난마와 같은 정국에서 신민당을 이끌어 가는데 탁월한 경륜을 발휘하시었으며 5공시절에는 여당인 민정당을 대표했으며 국회의장의 대임을 맡기도 하시었다. 그의 여야 정치생활을 놓고 정치변신을 시비하는 일부 구설이 있음직도 하지만 운경선생께서는 나라의 위급한 국란을 당하여서는 여야를 넘어서서 오로지 민주국가의 내일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몸소 지키겠다는 초당적인 사신위국의 일념으로 헌신하신 국가관과 시국관이 분명한 정치인이었다. 운경선생의 생애는 오로지 강직성과 직관력,그리고 혜안으로 우리나라 정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분이다. 운경선생과 같은 분의 피나는 공헌으로 공산주의가 지상에서 사라지고 남북통일의 최대난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때,김부자 세습왕조가 와해되고 생지옥 속의 북한동포를 해방시키는 날을 기약하면서 나에게 허황된 통일바람에 들뜨지 말고 내실을 도모하고 국민화합과 축적있는 대비를 하라는 평소의 당부가 아직도 귓전에 머물고 있다. 운경선생은 민족진영의 총결합체인 「통일준비국민협의회」의 고문직도 흔쾌히 수락하시었다. 평화통일을 못보고 가신 임이나 남은 우리가 다함께 원통해 마지 않는다. 모든 정치인의 사표가 되시는 운경선생 영전에 삼가 머리숙여 명복을 빈다.
  • 음악평론가 박용구의 풍기(명사의 고향:23)

    ◎죽령 넘어서면 눈아래 확투인 들판/할아버지대에 십자거리에 터잡아/희방사 스님졸라 훈민정음 탁본도/구한말 이강년·신돌석등 의병의 본거지… 척박했던 땅이 이젠 인삼·능금의 명산지로 나의 고향 풍기를 가려면 죽령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기야 남으로 봉현고개,동으로 단산고개,북으로 잠뱅이고개를 넘어갈 수도 있지만 서울과 직통하는 국도나 중앙선이 모두 죽령고개를 넘게 마련이다. 해발 1천3백14m의 도솔봉과 희방사를 품에 안은 비로봉,그리고 풍기군수시절의 이퇴계가 나라일을 근심해서 축지법(축지법)으로 한달음에 올랐었다는 1천4백21m의 거봉­그래서 이름이 국망봉인 웅장한 소백산줄기 중에서 그나마 서산에 지는 해를 안고 넘을 수 있는 길이 죽령고개다. 옛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이어서 고구려의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의 설화로 유명한 온달장군은 한강이남의 고구려땅을 수복하겠다고 죽령을 묵표로 진격하다가 아단성에서 전사했다고 삼국사기 온달조에 있다. 죽령고개를 38선으로 고구려와 신라가 대치해서 밀고 당기던 국경마을,그 시절에는 기목진으로 불리던 풍기만이 고구려에 저항해서 신라의 국경을 지켰다고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은 풍기사람들을 평해서 이 고장은 기질이 강하고 사납다고 기록했다. 어쩌면 풍기사람의 억센 기질은 삼국시대부터 비롯된 저항정신의 전통일는지 모른다. 무엇이고 해내는 억센 기질,청량리의 왕초도 풍기사람이라지 않는가. ○억센 저항의 고장 이왕조의 실정으로 나라가 기울고 군대마저 침략국의 강요로 해산 당하자 전국에서 의병들의 무장투쟁이 전개 되었을 때 소백산의 깊은 골짜기들을 근거지로 삼아 풍기 사람의 저항정신에는 또다시 불이 붙는다. 영주 순흥 봉화 등 인근 고을과 힘을 모아 게릴라전을 군대해산에서 망국까지 3년동안이나 전개했던 것이다. 일본제국의 조선군 사령부가 1913년 3월에 발행한 비밀문서 「조선폭도토벌지」에는 1907년 8월부터 1910년 12월까지의 전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지도를 곁들여 기록하고 있다(우리 의병을 폭도로 지칭한 것으로 보면 된다). 「토벌지」는 1907년 8월27일 약3백명의 우리게릴라부대가 경찰지서를 습격,일경 1명을 참살하고 29일에는 순흥,31일에는 봉화의 경찰지서를 습격,불태워 승리의 개가를 올리는데서 시작한다. 그 게릴라부대의 리더­즉,의병장은 이강년,신돌석. 그러나 그 세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지만 그들의 무장봉기는 소백산을 근거지로 3년을 견디어 매국노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일본의 학정이 시작된 1910년 일인이 임명한 조선인 군수들의 행위로 종말을 맞는다. 「토벌지」에 기록된 게릴라대장의 이름을 「열사」로 모시기 위해 기록해보면 최성천 한명만 김상태 정경태 윤국범 문성조 김성운 유시영.그 중에서 조선인 군수들의 밀고로 4월에는 최성천 한명만이 체포,처형되고 12월에는 윤국범 문성조가 역시 잡혀서 처형당했다. 다행히 이 무렵까지 저항운동을 계속한 이강년 신돌석의 체포기록은 없다.아마 그뒤 만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의 선봉장이 되지 않았을는지. 「조선 폭도 토벌지」는 경상북도의 부장봉기에 대해서(비밀문서인 탓일까)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안동에는 약 50명의 진위대가있었으나 군기가 해이하여 거의 토벌의 임무를 못했음』 ○국립천문대 위치 서울에서 경기·강원·충청의 3도를 지나 죽령재마루에 오르면 질펀한 들판이 확 트여 경상도의 첫 고을은 우선 시원스럽다. 그러나 여기서 곧바로 산을 내려가기에는 그 경관이 너무 아깝다. 오른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립천문대가 있고,왼편으로는 희방사와 희방폭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고장이 낳은 인물로 세종때의 김담은 일영대라는 그당시 천문대의 대장을 지낸바 있으니 천문학과는 일찍부터 인연이 깊다 하겠고 주위의 아늑함이 속세를 잠시 잊게 하는 희방폭포와 희방사는 1568년에 개판된 훈민정음과 월인석보의 판본 2백개가 있던 곳이어서 더구나 잊을 길없는 곳이다. 일본이 패망하던해 7월,나는 병요양을 위해 이 절에 머물면서 사고에 판목을 발견하고 주지를 설득해서 「훈민정음」과 「월인천강지곡」만의 탁본을 했었는데 6·25가 터진 이듬해 1월13일,유엔군이 작전상의 이유로 휘발유를 뿌려 이 절을 불태워 버리는 바람에 귀중한 문화재는 재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가곡 「성불사의 밤」의 노래말처럼 노승은 어디로 갔더란 말인고! 글깨나 하는 늙은이라면 예언서로 믿었던 「정감록」에는 삼재­즉,흉년 악질 병화가 없는 십승지지의 첫째로 「풍기」를 꼽았건만,동족끼리 살륙전을 벌인 6·25는 깊은 산속의 문화재마저 불태웠으니 그 황당무계를 알만하다. ○6·25 동란중 소실 그러나 죽령재에서 구곡량장의 고갯길을 내려오면 밋밋한 언덕에는 능금밭,그 자락에는 인삼밭들이 타관사람의 눈을 끌게 마련이다. 뚜렷한 4계절과 낮과 밤의 기온격차,그리고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는 토질탓으로 예부터 풍기인삼은 개성인삼과 쌍벽을 이루었다. 38선으로 「개성인삼」을 맛볼수 없게된 오늘,「풍기인삼」은 6연근의 홍삼재배구역으로 지정되고 해마다 9월에 5년근을 채취하는 유일한 명산지가 된 셈이다. 아마도 6·25의 실향 월남민으로 개발이 시작된 능금재배는 66년의 7만그루가 76년에는 1백75만그루를 기록했으니 「풍기능금」의 시장점유율을 짐작할만하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풍다 석다 황다의 「삼다」로 황폐했던 풍기가 지금엔 산나물 인삼 능금의 「삼다」로 넉넉하고 윤기가 흐르는 고을이 되었으니 그 까닭은 어디서 찾을수 있을까. 그 황폐했던 「삼다」로부터 풍기를 탈바꿈시킨 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황당한 「정감록」에 있었다. 나라가 망하고 세상이 뒤숭숭할 무렵,『풍기읍내 십자거리에 5분만 서있으면 조선팔도의 사투리를 들을수 있다』는 속담이 유행했다. 「십자거리 박약국」으로 알려졌던 우리집도 사실은 월남민이요,나는 3세인 셈이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억센 저항기질과 월남민들의 실향의식이 오늘의 풍기를 있게한 것이 아닐까. 죽령을 요람으로 자란 내게 반골정신같은 것이 바닥에 있다면 아마도 「자랑스러운 풍기사람의 기질」탓이리라. ▷약력◁ ▲1914년7월2일 경북풍기출생 ▲1946년 중앙방송국 음악계장 ▲1950년 동경소목발레단 문예부장 ▲1966∼70년 예그린 악단장 ▲1981년 예술평론가 협의회장 ▲1986년 88올림픽개폐회식 기획단장 ▲1989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외언내언

    새해가 떠오른다.1992년(단기 4325년)을 여는 새해.어제 아침에 뜬 해와 다를 것은 없다.하지만 의미가 다른 새해.동해를 가르고 둥두렷이 떠오른다.◆어느 해라 할것 없이 한해를 보내는 마음은 허전한 것.처져 남는 회한도 적지 않다.지난밤이 그랬던 제야.그 밤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 새 아침이다.지난해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아야겠다는 결의를 새로이 한다.새해 새 아침의 거창한 서원은 제야의 실망을 크게 해왔던 것.의욕적이면서도 반드시 실천해 낼수 있는 새해의 설계도를 그려보는 새 아침이다.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심신이 건강한 한해로 될수 있어야겠다.◆간지로 칠 때 올해는 임신년.역사적으로 의미깊은 일도 많은 임신년이다.대충 큰것만 훑어보자.을지문덕장군의 살수대첩이 임신년(단기2945년)에 있었다.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연 해가 또 임신년(3725년).순조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이 이듬해 임신년(4145년)에 진압된다.지금부터 60년전의 임신년은 이봉창·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해.중·일 양국간에 충돌이 잦아지고도 있다.◆임신년은 동물로 칠 때 원숭이 해.종류야 여러가지이지만 사람과 가장 비슷한 동물이다.클라우드 빌레의 저서 「인간의 진화」에 의할 때 사람은 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의 순으로 닮았다는 것.물론 닮았다는 것뿐 같은 건 아니다.하여간 사람과 닮아선지 영리하기도 하다.침팬지의 경우 그 새끼가 추락사했을 때 주워서 품에 안고 다닌다.썩는 냄새가 나도 계속해서.그만큼 정이 깊은 동물이다.부부의 금실도 유다르다.◆국내외적으로 지난해 못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해이다.그러나 모두가 최선의 노력으로 후회가 적은 한해를 만들어 나가야겠다.독자 여러분,새해에 복많이 받으십시오.
  • 오늘의 혼돈상황 극복의 길/정옥자교수 인터뷰(서울신문 새해특집Ⅲ)

    ◎선비정신 되살려야 한다/옛날의 「철저성」과 「검약」 다시 배워야/아집보다 대의·미래지향의 통찰 필요/시속 영합않고 시비 분명히 가리는 자세 긴요 물질문명의 발달이 극도에 이르고 사람의 지혜가 하늘꼭대기를 향해 끝간데를 모르고 달려가고 있는 오늘날,전통사회의 덕목이었던 「선비정신」을 들먹인다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지 않는 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니 그보다도 더 나아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과연 선비정신은 이미 오늘날에는 쓸모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말았으며 이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일까. 이에 대해 뜻있는 많은 사람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뿐만아니라 오늘날 우리사회의 많은 문제,특히 지식인계층에 팽배해 있는 혼란·방황·무정견·몰가치 등 여러 현상을 극복하는 방도를 선비정신에서 찾아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정옥자교수(50·서울대 국사학과)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조선후기지성사」(일지사 간)란 저서를 펴내기도 했던 그는 가치판단과 윤리의식이 마비된 오늘날 우리 사회(특히 지식인 계층)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로지 선비정신의 회복밖에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를 만나 선비정신에 대해 들어본다. 『선비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오늘날 우리 지식인들의 실상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은데 저도 물론 그 속에 포함됩니다만 한마디로 실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썩은 냄새를 풍기는 이 시대에 지식인이라 해서 예외는 없다는 듯이 함께 부패하고 타락하는 군상들이야 이미 지식인이기를 포기했으니 언급할 가치조차 없겠지요. 그러나 그래도 일말의 기대와 관심을 모을만한 지식인들의 행태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니 바로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는 그러한 지식인의 예를 끝도 없이 나열한다. 지식전달자 이상의 역할은 아예 사양해버리고 단지 지식의 기능공으로 전락한 대학교수를 비롯해 이전투구의 정치상황속에서 스스로 도구화를 자처하는 지식인,비판의식조차 위험시하고 무사안일의 타성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지식인,방향성을 상실한 채 현실도피의 무기력을 냉소로 위장하는 지식인 등…. ○지식인의 사명 상실 『오죽하면 이러다가는 지식인 전체가 이대로 안락사하는 것이 아니가 하는 위기의식까지 느끼겠습니까. 이들은 이미 이상과 도리를 펼쳐 사회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지식인으로서의 기본자세까지도 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개인과 가족,집단과 영역의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당장의 이득을 위해서는 신념도 수시로 변해버리니 국민에게 심한 상실감만 안겨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지식인의 보편적 양태가 양심과 진보를 표방하는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예외없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 또한 스스로의 이득이나 기득권확보를 위해서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상황이 불리할 때는 눈 딱감고 모른체 하다가도 상황이 호전되는 기미만 보이면 누구보다 앞에 나서서 목청을 높이는 불철저성이나 시류에 편승해서 한몫 보려는 사이비성 등이 다 이에 속한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좌절감과 신념의 결핍,그로 인한 방황과 표류,그리고 도피와 단절 등이 저 자신을 포함한 이 시대 지식인들이 어쩔 수 없이 공통적으로 몸에 붙이고 다니는 병균과 같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행태들이 지식인의 본래 모습인가 하는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통사회 지주역할 이러한 회의 끝에 결국 그는 그 대안을 전통시대의 지식인­선비속에서 찾아냈다. 선비정신이 비록 단절되어 버린 과거의 가치관이었지만 그것을 현대적 입장에서 승화시켜 수용한다면 이 시대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지식인 사회가 이렇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의 전통사회를 지탱시켜온 선비정신이 갑자기 단절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서릿발같은 기개와 대쪽같은 지조,그리고 청빈으로 대표되는 선비정신이 조금이라도 살아있었던들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월등히 깨끗하고 활기찬 사회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선비정신이 단절된데는 세가지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첫째는 19세기 후반부터 밀어닥친 서양제국주의의 힘의 논리이며,둘째는 이를 토대로 한 일제의 식민사관,그리고 셋째는 망국으로 인한 주체의식의 상실과 자기비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정신문화는 서양의 실용주의에 의한 물질문명과는 그 기본성격이 달라 일괄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인데도 결과적으로 그 힘의 논리가 물리적 우세를 차지하게 되자 마침내 힘의 유무를 우선순위에 두게된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의 정신문화 역량을 일찍이 감지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이를 깎아내리고자 힘의 논리만 가지고 우리의 역사를 해석했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하루아침에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하자 극도의 좌절감과 자기비하에 빠져 모든 책임을 전통의 선비문화에 돌린 나머지 그 정신까지도 철저하게 평가절하했던 것이지요』 ○왕조 멸망으로 단절 결국 이렇게 하여 불과 1세기도 채 안되는 근대까지 우리사회의 버팀목이었던 선비정신은 여지없이 말살되고 오늘날에는 마치 아득한 옛날의 일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미국의 프런티어정신이나 일본의 사무라이정신이 오늘날까지 그들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어 그들을 지켜주고 그들의 힘의 원천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우리는 거기에 대응할 정신적 지주가 없음을 안타까워 한다. 그래서 더 늦기전에 우리도 우리의 선비정신을 오늘에 맞게 되살려 우리 스스로를 다잡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은 혼돈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옹골차고도 청렴한 선비정신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선비의 역할과 모습은 조금씩 달랐지만 「철저성」과 「검약」으로 대표되는 그 근본정신은 언제나 한결같았다고 말한다. 『서릿발같은 기개와 대쪽같은 지조는 바로 이 「철저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분명히 알았고 결코 시류에 영합하거나 돈과 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치가 도리를 벗어나든지 권력자가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리를박차고 나옵니다. 사필을 들었을 때는 선과 악을 직필함으로써 어떠한 권력의 부정과 불의도 은폐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또 검약은 청빈을 자랑으로 여기게 했고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부귀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지조를 지키게 하여 늘 확고한 비판정신을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보다높은 가치 추구 그리하여 선비정신은 각 시대마다에서 그 사회의 양심이요 지성이며 인격의 기준으로 인식되었고 심지어 생명의 원동력인 원기로까지 여겨졌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비정신은 지식인으로 하여금 현실적·감각적 욕구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높은 가치를 향하여 상승하기를 추구하는 가치의식을 갖게 해주며 그 신념을 실천하는데 꺾이지 않는 용기를 주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전통사회에서 선비정신이 빛을 발하면 사회 전체가 원기왕성해지고 반대로 선비정신이 퇴색하면 사회전체가 침체해지고 타락하는 현상을 보여왔습니다. 이 때문에 지식인들은 사회의 침체기에 이를 때마다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려고 노력했지요.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조선후기의 실학입니다』 그는 조선후기의 듯있는 지식인들이 침체된 지식인 사회를 실학으로 극복했듯이 오늘날 우리 지식인 사회의 분위기를 바꿔놓기 위해서는 개혁의 의미로서의 또다른 실학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것을 바로 외래의 것이 아닌 우리 고유의 선비정신을 되살리는데서 찾자는 것이다. 『우리는 참 나쁜 버릇이 한가지 있습니다. 바로 모든 문제를 일본이나 서구 등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나은 외국의 경우에 비교해서 해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저들과 우리는 문화적 배경이나 처해 있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른데도 저들의 경우와 맞으면 합리적인 것으로 보고 그렇지 않으면 애써 그들의 경우에 맞추어 억지로 합리화 시키려는 경항이 바로 그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문화적인 미신이라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합리주의는 그들의 실용주의에서 온 것이며 실용주의는 궁극적으로 물가가치기준에 다름 아니지요. 만약 이 방향으로만 치닫다 보면 결국 우리 사회는 정신이피폐해져 돌이킬 수 없는 윤리적·도덕적 타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한 징후는 이미 우리 주위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늘 도리보다 실리가 앞서기 때문에 염치없는 일을 버젓이 해놓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우리의 것인 선비사상으로 자기혁신을 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뼈깎는 자기반성을 그는 선비정신의 발현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인들이 부단히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아집보다는 대의를 앞세우는 인격수양을 통해 찾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선비정신을 되찾은 지식인 사회는 우선 대의를 앞세우기 때문에 눈앞의 작은 실리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개 되며 사소한 일로 서로 질시·반목하여 대세를 그르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또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는 불요불굴의 정신과 예리한 통찰력이 생겨 혼돈의 시대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적 화합과 협력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이득이 있고 없음보다 도리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때문에 사회의 도덕성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마다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함으로써 방황은 그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철저성 때문에 시시비비,즉 옳은 것은 어떤 경우라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언제라도 그르다고 함으로써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건전한 비판환경이 정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지만 지식인들의 각성여부에 따라 멀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실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 「이데올로기 전쟁」마침내 종언(대변환 지구촌 ’91:1)

    세계공산주의 맹주노릇을 해오던 소련공산당의 소멸과 소련방의 해체라는 대사건을 경험한 1991년은 동서이념대결종언의 원년이며 세계사에 큰획을 그은 한해로 기록될 것이다.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새해부터는 더이상 낫과 망치의 소련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볼수없게 됨으로써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혁명 이래 세계의 절반을 붉은 이데올로기로 지배해오며 전쟁과 증오와 대립을 야기시켰던 「소련왕조」는 이제 종말을 고하게 된것이다. 80년대 후반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 실시로 도래한 「민주화」는 왕조의 가장 충실한 동맹국이었던 동구제국을 비롯,제3세계권의 추종국가들을 이탈시켰다.더욱이 올해들어서는 지난 8월 강경보수파의 쿠데타 실패 이후 발트3국이 독립해 나가는등 왕조자체의 해체작업이 가속화되더니 마침내는 붕괴의 운명을 맞고 말았다. 이로써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으로 본격화됐던 국제공산주의운동 또한 1백43년만에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결국 그들이 추구하던 유토피아의 건설은 공산주의방식으로 즉 혁명찬미의 방식으로는 더이상 불가능함이 확인된 것이다. 단지 이같은 공산주의 몰락의 벼랑에서 아직도 중국을 비롯한 북한·쿠바·베트남등 잔존 공산주의 국가들이 체제유지를 위해 발버둥치고 있으나 그들이 역사의 흐름을 역류시키기에는 역부족임이 이미 여러가지 측면에서 판명된 상태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사회학자인 다니엘 벨이 50년대말 자신의 저서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선언한 소련이데올로기와 서구이데올로기 대립의 종식이 실제 이뤄지기까지는 3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유토피아의 종언은 아니다』며 이데올로기의 함정을 알고 거기서 유토피아 논의를 다시 시작할것을 강조한 벨의 혜안이 다시금 돋보이는 91년이었다. 21세기의 진정한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새해부터는 그동안 이데올로기에 쏟아온 인류의 정열을 공존과 화해의 휴머니즘 고양에 쏟아야 한다.
  • 외언내언

    프랑스 발루아왕조의 루이 11세앞에 불길한 예언을 하여 혹세무민하는 자가 끌려왔다. 왕은 그를 사형에 처할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묻는다. 『넌 사람운수를 잘 아는 모양인데 네 운수도 알겠지. 몇년이나 더 살 것 같으냐』『잘은 모릅니다만 폐하가 돌아가시기 3일전에 죽는다는 것만 압니다』 ◆이 말에 루이 11세는 사형을 중지시킨다. 그 사람의 말이 꼭 옳다고 믿어서 중시켰던 것일까. 왕은 이 자가 살기 위하여 빈 소리를 하는구나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엉터리 점쟁이 말이라곤 해도 빈총도 안맞느니만은 못한 법. 3일후 제가 죽을 짓을 왜 하겠는가.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한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죽음이 두려워서 백전노장도 도망을 친다. 붙잡힌 몸이 되어서는 한목숨 살려 달라고 애걸하고. 죽음이 두려워서 비굴해진다. 거짓을 지껄이고 배신을 한다. 불의를 보면서도 입을 막는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였던 것. 하지만 대의 앞에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삶도 적지 않다. 그런 의인은 역사에도 있고 현실에도 있다. 며칠전 애기와 함께 산화한 이상희 대위도 그런 사람이다. ◆견위수명이란 말이 「논어」(헌문편)에 나온다. 위기에 처하면 사람들은 제가 해야할일 버리고 달아는 경향이지만 그러지말고 목숨을 내던지라고 하는 가르침이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목숨 아까운 것은 인지상정인 것을. 그런데 견위수명했던 이대위, 비행기가 마을로 떨어지면 피해가 클 것을 염려하여 끝까지 조종간을 잡고 민가추락을 막은 끝에 자신은 갔다. 숙연해지는 죽음이다. ◆초등·중등·고등비행 훈련과정에서 줄곧 수석을 차지했다는 이대위. 우리는 훌륭한 조종사 하나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이악스런 이 사회에 고귀한 의를 심은 것. 그 뜻이 결코 「훌륭한 조종사」에 못지않다 할 것이다.
  • 시대이념 실천하는 선비정신 피력/서건일편집국장 대통령 회견기

    ◎“사회 모든 계층을 통합 조화시키는 지도자 구실 다하겠다는 의지 확인” 청와대는 밝고 따뜻했다.11월 20일 우리나라 최고의 「권부」를 찾는다는 긴장감,그래서 딱딱하고 뭔가 짓눌릴 것만 같던 예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그것은 뜻밖의 발견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크고 화려하리라던 신축 본관은 무척이나 아담했고 그 안의 벽면을 가득채운 대동여지도,잘 그려진 한국화들은 마냥 풋풋한 정취를 담고 있었다.접견실은 2층에 있었고 50평 남짓했다.필자는 아무런 검색을 받지 않고 비표도 달지 않은 채 그곳에 이르렀다.참으로 변한것이 많구나 싶다.정각 상오11시. 『안녕하세요』 조용히 가라앉은 그러나 친숙감을 더해 주는 목소리.노태우대통령의 웃음 띤 모습이 다가왔다.필자는 문득 어질고 지식있는 큰 선비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회 시대가 격변해감에 따라 언론사도 어려움이 많겠지요.국가이익과 목표를 실현해 나가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러면서 노대통령은 한 시대의 고뇌를 거르며 서울신문이 전향적 미래지향적 제작에 기울이고 있는 사명감과 주도적 역할에 대해 평가했다.시대변화에 맞춰 신문의 특성화,개성화도 이루어져야 하며 정부를 반대하고 비판하면 좋은 것이고 정부가 하는 일을 지지하면 그른 것처럼 여기는 편견은 이제 없어져야 할 것이란 말도 했다. 대통령의 미소와 친근감에 대한 얘기가 동석한 정치부장(강수웅)에 의해 이어졌고 경제부장(장정행),사회1부장(이중호)에게도 경제·사회 현안에 대한 하문과 더불어 자신의 집념과 소신을 잔잔히 피력했다. 대통령은 줄곧 일본이 그처럼 경제를 발전시킨 역사적·문화적 배경에 대해 언급하며 우리도 훨씬 더 잘될 수 있는 요인이 많은데도 왜 그렇지 못한가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대통령은 언젠가 일본의 역사소설가인 시바 료타로(사마료태낭)가 조선왕조가 일본의 막강했던 도쿠가와(덕천)시대보다 수백년간이나 더 오래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에 대해 물었을 때,기꺼이 「선비정신」이라고 대답해준 적이 있다고 했다.그것은 일본의 사무라이정신과는 사뭇 다른것으로 옳은 것을 밝히고지키며 실천하는 인격과 양심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그러한 선비가 관직에 올라 임금을 보필하고 은거해서는 서민대중들에게 도를 가르침으로써 위·아래로부터 존숭을 받았다. 말하자면 사회의 가치를 실현하고 제시하는 주체로서 전통사회의 모든 계층을 통합 조화시키는 중심의 구실을 했기에 5백년 왕조의 역사는 가능했다는 것이었다.현대적 의미에서도 오늘날의 모든 지식인 사회지도자들이 시대사회의 가치와 도덕성을 개인 내면이나 사회질서 속에서 확립하는 원천으로서 「선비의 임무」를 다할 때 나라는 아무 탈없이 굳건하게 발전하게 될 것이란 뜻으로 받아들였다. 『민주주의 하기가 어렵고 그 대가 또한 너무 비싸다는 얘기도 듣고 있습니다.그렇지만 걱정만 하면 안됩니다.국민 모두가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의식하고 의욕을 되살려 내야지요』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고 발전시키겠다는 원칙과 노력이 옳은 것이라면 자신은 끝까지 참고 나아갈 것이며 그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정확히 평가해 주리란 말을 잊지 않았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더이상 나빠지면 안된다는 기업인 근로자들의 상황인식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이제 우리는 냉전체제의 와해와 더불어 분단의 고통을 극복해 나갈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이러한 상황변화를 향한 마지막 진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한 시대이념을 이끌어 가는 옛날의 선비,지성인의 구실을 다해줄 것을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당부했다.그렇게 말하는 대통령의 맑고 따뜻한 웃음을 보며 필자는 옛날의 한 큰 선비의 어질고 꿋꿋한 얼굴을 다시한번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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