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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유한자 총정리/「한국한자어사전」 출간

    ◎단대 동양학연 15년만에 결실/삼국유사 등 문헌서 채록한 어휘 바탕/한자 2만자·한자어 15만여단어 수록/고 이희승선생 등 석학 19명 편찬작업 우리 고유의 한자및 한자어를 총정리해놓은 「한국한자어사전」이 최근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에 의해 출간됐다. 이 「한국한자어사전」은 지난해 한글학회가 펴낸 「우리말 큰 사전」개정판을 비롯한 대형 한글사전의 잇따른 출간과 함께 국학연구의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만이 독특하게 만들어 써 온 한자·한자어·차자어·이두·구결등만을 골라 수록한 「한국한자어사전」의 첫권 출간은 지난 77년 단국대 장충식총장의 발의로 사전편찬작업에 착수한지 꼭 15년에 거둬들인 값진 결실.모두 5권(부록 1권 포함)으로 기획돼 한자 약 2만자와 한자어 약 15만단어를 수록한 「한국한자어사전」은 오는 93년 완간된다.「한국한자어사전」의 대역사는 19명의 국내 저명학자들로 구성된 사전편찬위원회 중심으로 추진돼왔으며 편찬위원회 위원들로는 작고한 이희승·권오돈·김동욱선생을 비롯해 이숭령,이가원,이병도박사등 국어·역사학자등이 참여했다. 「한국한자어사전」은 「삼국유사」「삼국사기」「조선왕조실록」등 옛 문헌 1백50여종 3천5백여책에서 채록한 어휘를 바탕으로 한자및 우리 고유 한자,그리고 중국·일본에서 간행된 자전과 사전에 수록돼 있지않은 한자어등만을 골라 실었다.또 우리 고문헌을 독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반어휘는 물론 제도어·전문어·인명·지명·서명·자호·이두·차자어·동식물명·성구·속담등을 선별하여 싣고 이를 부수·획수·한자어음순으로 배열해놓았다.그리고 각 한자 또는 한자어마다 출전및 원전을 상세히 명시했으며 예문과 주석도 달아놓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고유하게 만들어 써 온 이른바 국자도 수백자정도 정리해 수용하고 기존 한자라도 다른 음·의로 사용된 차용어의 경우 국음·국의로 구별하고 이를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별도의 표시도 해 놓았다.한편 옛날에 쓰이던 각종 기구,사물 가운데에 현재 이해하기 힘든 일부 명사들에 한해서는 삽화도 곁들여 넣어 이해를 돕도록했다. 예를들어 「한국한자어사전」에서 「갈」자를 찾으면 국자임을 표시하는 「*」부호와 함께 「음은 갈·뜻은 없다」라고 적혀있으며 「우리말의 「갈」음을 표기하기 위해 가와 을을 결합하여 만든 글자」라는 설명이 되어있다.이밖에 새 「을」은 이독로 쓰일 경우 「을,를 목적격 조사」로 쓰인다고 적었다.또 붉을 「적」의 경우 「적」으로 소리나면 「틀림없이,분명히」라는 뜻으로 또 「치」로 소리날 때에는 「사람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로 몽고어의 사람에 해당하는 「chi」의 음역으로 쓰는 글자」라는 설명이 함께 되어있다.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한 이두와 구결,차자어는 고유의 독음에 따라 발음하는 것으로 설명했다.예를 들어 고사는 「코사」로 발음하고 「­코사,하고야」의 뜻으로 표기하고 불동은 「안들」로 읽고 「아니,아니하다」의 뜻이라고 설명한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소는 「한국한자어사전」의 출간을 필두로 지난 15년간 편찬작업을 함께 진행시켜온 총 18권규모(부록 1권포함)의 「한한대사전」도 오는 20 04년까지 완간해낼 계획이다.「한한대사전」에는 모두 약5만5천자의 한자와 50만개의 한자어가 수록돼 명실상부 우리나라에 가장 방대한 규모의 한한사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반미 선전속 모든 계산 달러로만

    ◎“마지막 냉전의 현장” DMZ 르포/WP지/콘크리트 장벽·철조망도 관광상품화/북 안내책자 소개와 달리 긴장 감돌아 미워싱턴 포스트지는 6일자 일요판 여행면에 남북한의 비무장지대(DMZ)관광르포를 특집기사로 실었다.남쪽에서 판문점의 「자유의 집」으로 가는 관광코스와 북쪽에서 「판문각」으로 가는 코스를 각각 여행한 특별기고가의 기행문을 게재하는 형식으로 「이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의 현장」을 소개했다.다음은 이중에서 북한의 비무장지대 관광르포기사를 간추린 것이다. 미니버스는 울퉁불퉁한 도로를 털털거리며 들꽃이 만발한 언덕을 넘었다.가시철망을 따라가다 이윽고 콘크리트 벙커앞에서 멈췄다.승객들이 우르르 내렸다.『지구상에서 가장 신비한 관광지에 온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비무장지대는 다른 곳과는 다른 관광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호텔은 물론 택시운전사도 없고 다만 별난 기념품을 나눠주는 면세점만 있었다. 외화획득에 혈안이 되고있는 북한은 이 분쟁의 지역을 관광코스로 만들었다.관광객들은 가시철망이 쳐진 황량한 개괄지,지뢰지대와 무장한 초병들,불쑥 튀어오르는 사격표적판등 모두 이국적인 장면들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다.관광객들은 한국전쟁당시 2백만명이 피를 흘렸고 지금은 1백50만명의 병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이 지역을 자세히 관찰했다.관광안내책자의 소개와는 달리 한때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린 이 곳에 평온함이란 찾아볼수가 없었다. 옛 왕조의 수도였던 개성에서 광광객들은 하룻밤을 묵으며 다도회를 가졌다.판문점은 새 「통일로」를 따라 10마일쯤 떨어져있었다.4차선 포장도로는 넓었지만 텅 비어있었다.이정표에는 서울이 43마일밖에 안된다고 표시되었지만 이 하이웨이는 판문점에서 끝난다. 판문점관광에서는 남북정전회담이 열리는 회의실까지 걸어가볼 수 있고 회의실 테이블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특별관광에는 대형 쌍안경이 설치되어있는 고지에 올라가는 코스가 들어있었다.산능선을 따라 콘크리트 건조물이 보인다. 관광안내원은 『이것이 미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괴뢰가우리 민족을 분열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가증스런 콘크리트장벽입니다』라고 설명했다.그는 이 장벽이 한반도를 가로질러 1백55마일로 이어져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방외교관들은 이 장벽은 단지 북한의 은밀한 침입을 막기 위해 지난 70년대에 축조한 대전차장애물로서 불과 수마일밖에 안된다고 반박하고있다. 콘크리트장벽관광은 소위 판문점 패키지관광의 일부였다.판문점에서는 관광엽서는 돈을 주고 사야하지만 선전물은 무료로 나눠준다. 콘크리트장벽과 철조망을 본뒤 브리핑룸으로 들어가 북한군소령 이홍섭으로부터 「미국」의 침략을 그들의 「용맹한 군인」이 어떻게 막았는가를 설명들었다. 버스에 실려 기념품가게에 내렸는데 거기에는 「미깡패와 남조선괴뢰들의 잔학상」을 6개국어로 상세하게 기술한 책과 포스트,각종 핀등이 진열되어 있었다.그들의 과장된 반미선동의 와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건값등 모든 계산은 반드시 미화달러로 해야한다는 안내였다.
  • 개성경공업대,「고려성균관」 개명(북한 이모저모)

    ◎국자감정신 계승… 종합대학으로 승격/창립연도 992년으로 소급 ○…북한은 지난달 20일자로 개성경공업단과대학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고 고려시대 성균관(국자감 후신)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이 대학이름을 「고려성균관」이라고 명명키로 했다고 중앙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북한은 지난달 20일자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을 통해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나라의 기술인재 양성사업을 더욱 강화하며 우리 민족의 유구한 교육·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그같이 결정했다』고 밝히면서 이 대학의 창립연도를 성균관의 전신인 국자감의 창립연도인 992년 9월 1일로 소급해 정한다고 발표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국자감은 고려 성종때부터 유학을 가르치는 소임을 맡아온 교육기관으로서 충렬왕 원년(1275)에 국학,24년(1298)에 성균감,34년(1308)에 성균관으로 각각 개명됐다가 공민왕5년(1356)에 다시 원래 이름을 되찾았으나 공민왕11년(1362)에 성균관으로 고쳐 조선왕조로 넘어왔다. 현재 개성시 부안동에 있는 고려 성균관은 임진왜란 당시소실됐으나 그후 복구됐으며 문묘·기숙사·대성전·명륜당 등 12동의 건물로 이루어졌는데 북한은 이 성균관을 중심으로 지난 89년 「고려박물관」을 조성한 바 있다. ○고무공장 가동 중단/「칡넝쿨신」까지 등장 ○…북한의 신발사정이 크게 어려워져 산간오지에서는 칡넝쿨로 만든 「칡 넝쿨신」까지 등장했다. 이와함께 판자조각을 이용한 「나무신」과 폐타이어를 이용해서 만든 슬리퍼도 주민들 사이에서 많이 눈에 띄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신발사업이 나빠진 것은 외화부족으로 인해 고무원료 수입이 어려워져 고무의 주생산공장인 평양고무공장의 가동이 중단되고 이로인해 신의주 신발공장 등 주요 신발공장이 제품을 생산해 내지 못한데 기인하고 있다. 이에따라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는 조악하기는 하지만 까만 비닐신을 한켤레 구하면 어머니와 딸이 번갈아 신고 다니기 때문에 먼저 신고 나간 사람이 귀가해야 다른 사람이 외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북한의 「신발류 공급규정」에 의하면 학생과 노동자들은 2개월에 운동화와 노동화를 각1켤레,사무원은 1년에 구두 1켤레를 공급받도록 돼있으나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운동화는 1년,구두는 2년이 지나야 겨우 지급받을 수 있을 만큼 신발사정이 악화됐다. ○평양 역포구역 야산에 「해외동포묘지」를 조성 ○…북한은 최근 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 야산에 8정보(약 2만4천평) 규모의 「해외동포묘지」를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가 보도했다. 평양 중심가로부터 약 25Km 떨어진 이곳에는 모두 3천5백구의 시신을 안치할 수 있는데 해외동포의 요구를 고려,가족묘(14구까지),부부합장묘,개인묘의 세종류로 나뉘어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북한은 지난 88년 추석을 「휴식일」로 정한 이후부터 주민들의 성묘를 공식적으로 허용해오고 있는데 이번에 해외동포 묘지를 조성하고 있는 것은 보다 많은 해외동포들의 북한방문을 유도하기 위한 선전사업의 일환인 것으로 보인다.
  • 중국,국가주석에 교석 내정/경보 보도/강택민·이붕체제 유지

    ◎주용기 총리승진 좌절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공산당은 연말의 14차당대회에서 현재의 강택민총서기­이붕총리체제를 유임시키는 한편 국가주석에는 교석정치국상무위원이 내정됐다고 홍콩에서 5일 발행된 중국문제 시사월간 경보9월호가 보도했다. 이 잡지는 중국고위소식통들을 인용,지난 3개월동안 지도부 개편문제를 논의해온 당대회준비 영도소조가 지난 8월중순 당중앙에 제출한 인사안에 따르면 진운 양상곤 왕진 박일파등 당원로를 비롯한 70대이상 지도자들을 대부분 퇴진시키는 대신 강­이체제를 존속시키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끈질기게 나돌던 주용기부총리의 총리기용설은 등소평이 『총리는 경제를 잘 알아야 하지만 큰 정책혼란을 가져올 지도부개편은 피해야 한다』고 밝힘에 따라 일단 좌절됐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이 잡지가 밝힌 이밖의 인사내정자는 다음과 같다. ▲정치국상무위원(7명)=강택민·이붕·교석·전기운·주용기·양백영·이서환 ▲정치국원(21명)=정치국상무위원 7명외에 정관근(통전부장)이철영(국가교육위주임)온가보(중앙판공청주임)전기침(외교부장)유화청(군사위부주석)호계립(기계전자공업부 부부장)담소문(천진시당서기)오방국(상해시당서기)사마의(국가민족사무위주임)사비(광동성당서기)추가화(부총리)지호전(총참모장)왕조국(국무원대만판공실주임)호금도(티벳자치구당서기) ▲전인대상무위원장=이서환(정치국상무위원) ▲국가부주석=호계립·송건(국가과학기술위원회주임) ▲정협주석=만리 ▲부총리=주용기·추가화·전기침
  • 한·중 우호시대에 부쳐/토머스 로빈슨(해외특별기고)

    ◎평양의 변화는 「역사의 필연」 한중수교는 가장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아야 할것이다.한중수교는 한국의 안보를 강화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 가능성을 증진시켰으며 한중 양국의 경제에 보탬이 되고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을 강화하며 대만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다. 한반도교차승인을 향해 한걸음 더 다가갔다는 점에서도 한중수교의 외교·안보적 의미는 깊은 관심을 끌만하다.중국은 이번 수교를 통해 한반도에 새로운 분쟁이 일 경우 북한이 중국에 의존할수 없으며 중국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북한도 개혁과 대외개방정책을 뒤따라야 함을 북한측에 알렸다.북한은 고립이 더욱 심화됐으며 최후의 우방을 잃게 됐다.게다가 김일성은 북한의 핵무기개발과 관련된 의혹을 깨끗이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 문제로 국제사회(특히 미국)와 분쟁이 빚어질 경우 중국에 의존할수 없음을 알게 됐다.이 모든 것은 한반도의 평화전망이 한층 강화됐음을 의미한다. 한·중국의 움직임은 또 미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북한과 어떤 형태로든 외교관계 내지 최소한의 접촉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미·일과 북한간의 관계개선은 북한의 핵무기개발 의혹으로 인해 정체상태에 빠졌다.북한은 사실상 그들의 오래된 지연전술을 다시한번 구사하고 있을 뿐이다.즉 핵무기에 대한 복잡한 협상과 접촉을 통해 한국과 미국을 묶어놓음으로써 핵무기개발의 기초기술 획득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벌려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불행하게도 미·북한간의 관계개선 전망은 오는 11월의 미대통령선거 이후로 지연될 것으로 보이며 만일 클린턴이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더욱 늦어질는지도 모르는 상태이다.그러나 이제 러시아와 중국이 모두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미국과 일본의 대북한 자세가 바뀔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됐다.즉 미·일은 「선핵문제해결,후관계개선」이라는 종래의 대북입장에서 다소 후퇴하는 경우가 되더라도 북한과 관계를 진전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북한은 미·일의 외교적 승인과 그에 따른 경제적 지원,투자와 교역확대등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관계개선의 지연은 북한으로선 매우 불행한 일일 것이다. 북한에의 압력을 유지하는 한(좀더 강화해야 할는지도 모르지만) 국제사회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김일성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강요할수 있다.중국이 한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함으로써 이같은 압력은 더욱 증가됐다.그러나 미·일은 북한승인이라는 유화책을 쓰려면 러시아 및 중국과의 연대속에 미국의 대북군사적 위협을 포함한 강경책을 함께 추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한국을 승인함으로써 중국은 북한에 대해 시장경제개혁과 외부세계에의 전면개방을 통한 경제자유화외엔 달리 선택의 방안이 없음을 통고한 것이다.중국에 있어 경제자유화는 동구와 구소련을 휩쓴 공산주의의 몰락으로부터 공산지도부를 구하고 천안문사태의 재발을 방지할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다.중국은 이제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자신들을 구하고 싶으면 그같은 길을 뒤따르도록 말하고 있는 것이다.북한의 체제가 유지될수 있을지의 여부는 사실상 명확치 않다.경제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고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로의 세습이이뤄지면 무질서와 혼란이 확산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김부자 공산왕조의 전도는 매우 어두운게 사실이다.한중수교는 국제사회가 이제 북한이 중국식 모델에 따라 현대화하는 것을 지원할 것이냐 아니면 북한을 계속 고립된 상태로 방치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북한의 개방노력을 외부세계가 적극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북한의 고립이 계속된다면 후계세습에 따른 혼란은 극대화할 것이며 심지어는 북한내에서의 내전발발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실정이다.그럴 경우 이는 남북한간의 분쟁으로까지 이어질수도 있다.어떻든 북한의 체제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내부적으로 개혁이 이뤄지든 외부세계에 대한 개방이 이뤄지든 어느 경우에나 시장경제의 건설을 가져올 것이며 필연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전혀 다른 정치적 이념을 낳을 것이다.북한의 다음 세대들은 시장경제와 표현의 자유,민주주의 등의 매력을 느끼게 될것이며 결국 김일성체제에 반발,이를 전복시키게 될것이다.따라서 그것이 단지 북한사람들에게 좋다는 이유에서 뿐만아니라 한반도에서의 대규모 유혈사태를 피할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란 이유에서도 이같은 과정은 한시라도 빨리 시작돼야 한다.한중수교는 이같은 선상에서 북한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방안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남은 문제는 대만이다.다행히도 양국간의 문제를 해결할 비교적 손쉬운 방법이 존재하고 있다.한국과 대만은 매우 성공적인 미국·대만간의 모델에 따라 서로 연락사무소를 설치할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함으로써 외교적 접촉은 모든 분야에서 거의 공식적인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며 상황은 조만간 그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끝으로 한중수교가 한국의 국내정치 문제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노태우정부가 한중수교를 오는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후보를 위한 선거운동에 이용해서도 안될 것이며 야당의 김대중후보가 이를 공격대상으로 삼을 문제도 아닌 것이다.한중수교는 단지 국가이익의 차원에서 한국민 모두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이뤄진 일로 국내정치와는 무관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것이다. ◇미 조지타운대 교수 미 엔터프라이즈연 중국연구실장,「중국과 국제관계」등 저서 다수
  • 부패 만연돼가는 「김일성 왕조」

    ◎「축첩」보도 계기로 본 「평양의 타락상」/일지 분석/헐벗은 인민과 동떨어진 초호화 생활/1백불팁 뿌리며 일인 호스티스 유혹/김일성 이미지 손상… 권력세습에 영향줄지도 산케이신문은 서울발기사에서 김일성이 애첩을 둔 것과 관련,이는 특권층의 부패일단을 엿볼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북한에선 신격화된 존재로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김일성이 숨겨둔 첩과 그 사이에 5살짜리 딸까지 두었다는 사실은 김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끼치는 것은 물론 세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그 해설기사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서울의 평양 관측통들은 금년 만 80세가 되는 북조선 김일성 주석에게 5세의 딸과 그 어머니가 있다는 보도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고 극단적 개인 숭배하에서 일반국민과 유리된 특권을 즐기는 북조선 특권층의 부패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의 권력층이 관계되는 알려질 수 없는 처자에 관한 정보는 87년12월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지가 베를린에서 추방된 북한의 보도기관원의 동향을 추적하는 형태로 보도된 일이 있다. 당시의 보도는 북한으로부터 보건성의 고위의사와 적십자의 베테랑 간호원 3인등을 동반한 젊은 임산부가 빈을 방문하여 김정일 서기의 아이를 비밀리에 출산한 것같다는 것이었다. 이번의 정보에는 이것이 사실은 김일성주석의 숨겨진 딸이었다는 것으로서 한국의 정보관계자도 『기관에 비슷한 정보가 입수되었다』는 긍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 김주석이 75세때 애를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의문시하는 견해도 있지만 김주석에 대해서는 「장수연구소」까지 설치되어,건강면에서는 만전의 배려가 되어 있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김주석의 가족관계는 베일에 쌓여 있고,고 김정숙이 낳은 김정일,김경희 그리고 김성애 현 부인이 낳은 김평일,김경진,그(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일이라는 이름이 전해지고 있고,3남2녀설이 있는 한편,아이가 더 많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 권력층의 사생활에 관해서는 망명자들을 통해서 단편적으로밖에 전해지지 않았지만 북에 납치되어 그후 탈출한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증언에서는별장에서 고급양주를 마시고 일본이나 한국의 노래를 부르고 미녀를 곁에 둔 철야의 호화파티등이 일상 다반사라고 한다. 또 접객지도를 위해 평양에 체재한 일이 있는 일본인호스테스의 증언에서는 김정일은 1백달러짜리 지폐를 팁으로 뿌리면서 『1억엔과 벤츠와 집을 줄테니까 평양에서 살지 않겠느냐』고 언급한 사실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구소련,동구권등 공산당 독재체제하에서의 특권층의 부패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북한은 주민통제의 엄격함에 있어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권력층은 일반국민생활수준과는 유리된 특권을 향유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 그중에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은 희망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하며,망명자에 의하면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김부자를 위한 외화는 별도 관리되고 있고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도 해외 각국으로부터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 조선시대회화전/고서화감상전/고미술명품전 “풍성”

    ◎조선/정선·이등 등의 진품90점 공개/고서/퇴계·율곡서간문·민화등 다채/당대의 화풍·변천사 본격 조명기회 하한기 화랑가에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준높은 고미술명품전이 인사동의 두 화랑에서 마련된다. 대림화랑이 15∼25일에 펼치는 「조선시대회화전」과 학고재가 매년 여름에 꾸미는 특별기획 「고서화감상전」(23일∼8월31일)이 그것들로 고서화에 관한 한 오랜 경륜과 식견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두 화랑대표가 자신있게 내놓는 전시회다. 이들 전시회는 양도소득세법 시행을 앞두고 고미술품들이 개인 수장고에 묻혀 그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처럼 마련된 명품전이어서 고미술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줄 것같다. 대림화랑의 「조선시대회화전」은 화랑대표 임명석씨가 10년전부터 추진해 오다가 비로소 결실을 맺은 대규모 기획전이다. 조선시대 명서화가들의 미공개작품을 조선왕조 초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망라하는 것으로 90점이 공개된다. 이중 왕실출신의 화가 이징의 「수묵화조도」,은호 이함의 「쌍응도」,동국진경산수의 대가로 평가되는 정선의 「해주허정도」,조희용의 「백매도」,장승업의 「영모절지도」,김규진의 「장생오우도」등 대부분이 미공개 진품들이다. 미술사가 안휘준교수(서울대 고고미술사학)와 허영환교수(성신여대 동양미술사)의 고증을 거친 이 기획전은 당대의 화풍과 변천사를 학문적 토대위에서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하다. 대림화랑은 또 이 전시회와 함께 태조원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시대 화가들의 교유기,작품일지등을 다룬 70쪽분량의 연표와 전시작품의 해설과 원색도판을 실은 2백10쪽의 대형화집 2천부를 발간했다. 학고재의 고서화 감상전은 「여름미술관­품위있는 글씨,소담한 옛그림」이란 제목으로 마련되는데 방학을 맞은 학생들을 특별히 겨냥해서 꾸며진다. 어른은 물론 학생들도 관심있게 고미술을 접하게 하자는 취지아래 학고재대표 우찬규씨는 교훈적인 글씨와 재미있는 내용의 민화들을 주로 장만했다. 출품작은 여섯부류로 구성되어 조선중기에서 구한말,근대에 이르는 화가들의 그림과 조선후기 서예인들의 서예작품과 조선시대 명현 대신 문인들의 간찰,조선후기의 민화,무낙관그림,청나라의 서화등이 망라된다. 1백36점의 출품작중에는 퇴계와 율곡의 서간문에서부터 김옥균 박영효등의 작품,근대6대가인 청전,의재등의 작품,중국화가 장대천등의 작품들이 고루 있다. 옛정취 물씬 풍기는 품위어린 글씨와 소담한 그림속에서 모처럼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귀중한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세계적 음악가·자유주의 신봉정치인/파데레프스키유해 조국 파품에

    ◎미서 사망,사후 51년만에 “국민영웅” 추대/5일 바르샤바대성당서 성대한 봉안식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 음악가이자 자유주의 신봉 정치가인 이그나시 장 파데레프스키(Ignacy Jan Paderewsky)가 폴란드 국민영웅으로 추대되고 5일 그 유해가 사후 51년만에 미국에서 자유 폴란드에 이송돼 바르샤바 대성당에서 성대한 봉안식이 열린다. 폴란드는 일요일인 이날 전국성당에서 동시에 파데레프스키 영결미사를 올리며 바르샤바 대성당의 안장행사에는 바웬사대통령을 비롯,독일 뮌헨서 열리는 선진공업7개국 정상회담(G7)길의 부시미국대통령등 정치지도자들과 세계적 음악가들이 대거 참석한다.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그는 폴란드가 1백년이상 프러시아(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 3개국에 의해 분할통치를 받고 있을 18 91년 미국 첫 순회공연에서 미국민을 열광케 해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가 된 이후 폴란드 자유투쟁의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다.파데레프스키는 이후 여러차례 미국 순회연주회를 가졌으며 그와 친교를 맺었던 우드로우 윌슨미국대통령은 1918년 그의 요청에 따라 의회에서 폴란드독립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줄 것을 요청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결과 19 19년 새로 탄생한 폴란드 첫 수상이자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베르사이유평화회담에 폴란드대표로 활약했다.그는 수상직을 그만둔 뒤 20년부터 3년간 국민연합의장으로 이웃 독일의 팽창주의로부터 폴란드 자유를 수호하는 활동을 벌이다 후에 스위스에 정주했다. 39년 나치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그는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이주,폴란드 자유쟁취를 위해 투쟁했으나 이미 고령인데다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는 폴란드가 16세기 야젤로왕조이후 이웃 독일과 러시아등 열강들에 의해 계속 유린당하는 역사적운명을 극복하는데 헌신했다.파데레프스키는 40년 폴란드 망명정부 대통령으로 활동하다 41년 7월29일 뉴욕서 사망했다.
  • 학습부담 덜고 시민생활교육 강조/중학교과과정 개편 내용

    ◎언어구사능력등 표현력 배양/국어·영어/음수등 어려운 단원은 고교로 넘겨/수학·과학 오는 95학년 신입생부터 단계적으로 배우게되는 「새 중학과정 개정방향」은 개인의 창의성과 시민생활교육을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21세기를 살아갈 미래의 세대가 교육대상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대여건에 적응하도록 남녀 성차별을 없애고 창조성 개발과 사회 공동생활에서의 도덕성및 규범등을 전 교과가 일관되게 다루도록 했다. 또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학습수준을 낮춤으로써 한창 발육기의 중학생들이 지나친 공부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점은 종전의 교육과정 개편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으로 꼽을수 있다.이는 중학진학률이 1백%에 육박,중학교육이 의무교육화했다는 점을 감안,외국에 비해 높은 수준의 교과서를 채택함으로써 학생들의 학습의욕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을 이번 난이도 하향조정을 통해 해소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새로운 과목별 개편방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어·영어◁ 현대사회에서는 언어 구사능력이 특히중요한 만큼 종래의 독해 중심에서 말하고·듣고·쓰는 표현력을 배양하는 방향으로 개편한다.특히 국제어인 영어는 정확성보다는 유창성을 기르기 위해 생활영어를 늘리고 필수어휘도 기존의 7백35단어에서 1천40개로 확대한다. ▷수학·과학◁ 수학에서는 1학년에서 배우던 근사값을 2학년으로,정수중 음수와 어려운 직선 방정식 등은 모두 고교로 넘김으로써 학습분량을 줄인다.또 평소 수학시간에 필요하면 계산기나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교과서를 제작,정보화 사회에 대비한다. 과학은 열과 온도,강장동물,편형동물,극피동물,힘의 작용등 1학년에서 배우던 단원을 아예 중학과정에서 삭제해 학습부담을 줄이는 한편 에너지 이용등을 추가,실생활 관련문제를 강화한다. ▷사회·도덕◁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원리나 이론 대신에 실생활 관련내용 등을 강조한다.특히 국사는 왕조중심에서 주제사와 연대사를 적절히 조합한 형식으로 개편하고 지리의 경우 생활근접 사례를 보강하며 세계사는 연대사적 접근보다는 지역사를 강조한다. ▷가정·기술·산업◁ 3년동안 남녀 공통필수 과목으로 기술·산업도 자전거 가전제품 주택 컴퓨터등 생활주변의 학습내용을 선정해 실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체육·음악·미술◁ 체육은 실기비율을 70%로 높여 운동능력을 배양한다.음악은 전통음악 부문이 크게 강화되며 미술은 「미술과 생활」단원을 신설,생활에서 미술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강조된다. ▷한문·컴퓨터·환경◁ 선택교과로 바뀐 한문은 상용어 기본한자 1천8백자 가운데 각 학년별로 3백자씩 9백자를 가르치는데 기본을 두며 가급적 한문학은 배제한다. 선택과목으로 신설된 컴퓨터는 생활필수품화하는데 대비,컴퓨터에 대한 기초지식을 기르고 친숙감을 갖도록 한다.신설 선택과목인 환경은 사회,과학등 각 교과에서 분산 지도되던 환경교육을 통합한 것으로 지식 중심보다 지역 및 과제 중심으로 편찬한다.
  • 미·일·불등 돌며 고문서 찾기… 한국학 발전 이바지 이우성씨

    ◎“해외유출 고서적 수집­정리에 보람”/주로 임진왜란·구한말에 대량반출/국내선 찾아볼수없는 희귀본 수두룩/박제가 산문집등 27종32책 찾아 발간(저자와의 대화) 『우리 선조가 쓴 책들을 복사본으로나마 다시 들여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일본과 미국 관계자들이 쉽게 응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해외로 유출된 우리 고문서들을 다시 수집해 들여와 한국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온 이우성씨(68·전성균관대 교수)가 최근 제5차분으로 3종5책을 출간했다.이로써 그의 호인 벽사(누벽외사)를 따 이름붙여진 「누벽외사해외수질본총서」(아세아문화사 펴냄)는 모두 27종32책으로 틀을 갖췄다. 『표면적으로는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었으나 특히 일본의 경우는 한국에도 없는 것을 자기들만 갖겠다는 욕심이 있는 듯했습니다』 이씨가 영인본으로 펴낸 책들은 심의·윤현·홍한주·정원용·안석경 등 조선 초·중기의 이름있는 학자들의 문집도 있지만 지은이가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많다.이번 5차분은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의 한 사람인 초정 박재가의 시문집 및 관계자료들을 묶은 「초정전서」와 조선 성종조의 문인학자인 사숙재 강희맹의 문집을 묶은 「사숙재집」,조선후기의 학자 좌소산 서유본의 시문집「좌소산인문집」 들이다. 이씨는 앞으로 남겨진 최대 과제로 세종때 70∼80권 분량으로 만들어진 「치평요람」의 재간행을 꼽았다.「치평요람」은 서울대 규장각에 30∼40권 분량이 남아있는데 일본 「동양문고」가 보관중인 50∼60권과 함께 보완하면 원래의 형태를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치평요람」에는 세종 이전의 정치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을 망라하여 싣고 있는데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없는 사실도 실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책들이 해외로 많이 유출된 것은 임진왜란 시기와 구한말·일제초입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우리나라 특유의 호화로운 활자본들이 수없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요토미(풍신)로부터 도쿠가와(덕천)에게 인계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존경각·봉좌문고 등 일본 각처의 장서속에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전 활자본 하면 희귀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웬만큼 유서있는 장서라면 으레 그 활자본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씨는 『활자본으로서 뿐 아니라 그 책 자체가 국내에서 아주 없어져서 책이름조차 잊어버려진 것들이 일본에서는 지금 그대로 전해져 오는것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구한말·일제초의 대량 유출도 주목할 만하다.경술국치 이후 일본은 왕조실록등을 공공연하게 반출했으며 외국학자들의 손으로 수집·구매해 가져간 책들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그 이전 병인양요때에는 프랑스군이 강화도에서 고문서를 약취해갔다. 『해방후 미국쪽으로 흘러 나간 책들도 적지 않은데 여기에는 학술적으로 중요한 각종 잡록·비사 및 수기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중 상당량이 미국 국회도서관·하버드대합불연경도서관·캘리포니아대극동도서관·콜롬비아대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친필로 된 수사본 그대로 유출되어 국내에서는 그 부본조차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 이씨는 30년동안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로 강의 및 연구를 계속하다 3년전 정년퇴임했다.이씨는 은퇴뒤에도 집근처인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 「실시학사」를 차려 놓고 뜻을 같이하는 학자들과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안병직·김진균·강만길교수 등과는 「다산연구회」를 결성,정약용의 「목민심서」 전7권(창작과비평사 펴냄)을 펴냈으며 30대의 대학원생 10여명과는 「다산경학세미나」를 주1회씩 열고 있다. 또 그는 지난 90년 한·중·일 3국의 학자들을 초청,「국제실학학술대회」를 여는데 앞장섰다.올 10월 제2차 대회가 중국 산동성 제남시 산동대에서 열린다. 이씨 개인적으로는 통일신라에서 개항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중세사를 집필할 계획을 갖고 있다.사회·경제사에 중점을 둘 것이지만 인간중심의 딱딱하지 않은 역사를 쓰겠다는 포부다.
  • 정주영대표의 발언을 듣고/이철승 반공애국단체연 공동의장(특별기고)

    ◎「공산당 합법화」가 웬말인가 이 땅에 공산당의 결성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정주영씨의 발언은 대권주자로서 인기를 모아보려는 일과성의 실언으로 넘겨서는 안된다. 정씨의 발언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정씨의 발언이 순간적인 망언이 아니라는 근거는 최근 그가 걸어온 행적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그는 89년 1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거물인 손달원의 안내로 북한을 방문했다. 정씨는 이때 북한이 계속적으로 추진해온 가족상봉을 미끼로 한 공작극에 따라 김일성에게 막대한 헌금을 하고 그의 가족들을 만났다. 그는 방북당시 중앙방송등과의 회견을 통해 김일성체제를 비판하기는 커녕 부자세습의 왕조체제를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 그의 발언은 순치돼 있는 북한주민들에게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했으며 남한의 주사파들을 고무시키는 이중적인 역할을 했다. 두번째 정씨는 금년초 남북간에 핵문제를 둘러싼 협상이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을때 미국의 핵저장시설공사를 자신이 했노라는 발언을 해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와 같은 안보상의 기밀을 공공연히 누설할 수 있는 상식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또 정씨는 국민당을 창당하면서 모 일간지와의 대담을 통해 『전대협의 강령을 실천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토지국유화와 재벌해체를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폭력혁명을 위해 공공건물을 방화한 학생들을 양심수로 석방시키고 청와대 비서관들을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지난 총선유세를 통해 호언한 바도 있다. 정씨는 5공정권과 밀착해서 치부하고 국회청문회에서는 시류에 따라 6공정권에 붙었고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자 현정권을 공격하고 있다. 결국 그는 김일성을 만난뒤 김일성에 밀착한 것으로 밖에 볼수 없다. 정씨는 국가보안법이 헌법에 위배되므로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김일성 때문에 만든 것이지 우리 자유시민들 때문에 만든 것이 아니다. 소련의 괴뢰인 김일성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켰고 아웅산에서 폭거를 저질렀으며 KAL기를 격추시켰다. 최근에는 휴전선으로 무장군인을 빈번히 침투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김일성의 통일전선전략을 완성시켜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일본에 체류하던 한 북한인사는 『우리의 대남 통일전선전략은 80%정도가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열차를 강탈해 전대협 출범식에 참가한 5만명의 주사파 학생들이 인공기를 휘둘러도 정부에서는 총리든 교육부장관이든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러한 도덕적 타락과 정치적 진공상태 속에서 다가오는 대통령선거 기간동안 대혼란을 일으켜 친북성향의 정부를 남한에 세운다는 것이 통일전선전략의 마지막 단계이다. 정씨는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방북 당시의 행적을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 정씨는 국가야 어떻게 되건 김일성과도 손잡고 돈벌이만 하면 그만이라는 위험한 생각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씨의 발언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주시한다. 정부가 어떤 대응을 하느냐가 국민들이 국가의 권위를 바라보는 척도가 될 것이다. 정부가정씨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국가보안법은 폐지되고 미군이 철수하게 되며 남한에 친북 정부가 들어서는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을 1백% 완성시켜주게 될 것이다.
  • 5천년전 애토기에 돛단배 그림(배:2)

    ◎초기 문명사회서 유선형목선 첫 등장/손으로 젓기→장대로 밀기→노로 발전 일류가 최초로 이용한 배는 물위에 떠있는 통나무 원목 그대로 였다.그후 차츰 지혜가 발달하면서 여러개의 나무를 묶어서 만든 뗏목배(벌선),통나무를 파내서 만든 통나무배(벌선),동물의 가죽에 바람을 불어 넣거나,가죽을 씌워 만든 가죽배(피선)등으로 다양하게 발전 되었다. 우리가 확인할수 있는 가장 오래된 배의 모습은 기원전 3500년경의 이집트 제1왕조 시대의 토기에 그려져 있는 배이다.그 배는 선체의 앞뒤가 뽀족하게 생긴 날렵한 유선형 선체로서,17개의 노를 가지고 있다.그리고 기원전 34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강에서 사용된 배의 모습은 마치 바구니처럼 생겼다.또한 이보다도 약간 늦은 시기에 에게 해에서 사용된 배의 모습은 파도를 막기 위해 이물에 높은 가로막을 올렸다.이것으로 보아 선사시대에도 강에서 사용하는 배와 바다에서 사용하는 배의 모습이 달랐음을 알수있다. 이들 배를 움직이는데 처음에는 손과 발만으로 젓거나 긴 장대로 강바닥을 밀어내는방법을 이용하였으며,한편으로는 막대기 끝에 오리발같이 생긴 물체를 묶은 물갈퀴(Paddle)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물갈퀴보다 기술적으로 한단계 발전된 노는 배의 고물이나 현측에 고리를 만들어 지지해 주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서,작은 힘으로도 큰 추진력을 낼수있다.기원전 2000년경 이후의 이집트나 지중해의 배들은 거의 대부분 노를 이용하고 있었다.노의 발명은 배의 속도를 증가시켰고,또한 돛의 발명과 더불어 보다더 큰배를 만들수 있게된 기초가 되었다.노의 종류에는 두가지가 있는데,하나는 앞뒤로 밀고 끌어당기는 서양식 노와,또 하나는 옆으로 밀고 당기는 동양식 노이다.서양식 노는 노젓는 사람이 반드시 후방을 향하고 앉아서 저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으나 많은 사람으로서 큰 추진력을 얻을수가 있다.반면에 동양식 노는 노젓는 사람이 전방을 보고 서서 젓게 되므로 배를 자유자재로 조종할수가 있다.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주로 동양식 노를 사용하여 왔다. 다음은 돛으로 바람을 이용하는 추진방법이등장하였는데,인류가 돛을 이용한 가장 오래된 자료는 역시 기원전 3100년경의 이집트 토기그림이다.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것보다도 매우 오래전부터 이용되어 왔고 19세기에 동력선이 등장하기까지 수천년동안 선박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 목포서도 2명 구속

    【목포】 지난 3일 영해를 침범해 나포된 중국어선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 목포해양경찰서는 5일 중국 대어도촌 선적 1113 회영어호 선장 송인량(43·산동성 영성시 속도진 대어도촌)과 1114호 선장 왕조중(30)등 2명을 영해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 경복궁 원형유구 확인/조사단,창건때의 청기와 조각 발굴

    문화재관리국 경복궁발굴 조사단은 25일 발굴현장설명회를 갖고 그동안의 조사결과 대원군때의 유구외에 조선초기및 중기 경복궁의 원형을 알려줄 선대유구를 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또 발굴조사과정에서 경복궁 창건당시 근정전에 썼던 것으로 보이는 청자기와편 8점을 처음으로 수습,함께 공개했다. 발굴조사결과 대원군대에 다시 세워진 연생전과 경성전은 경복궁창건당시보다 8m쯤 북쪽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과 함께 대원군대에는 없는 강녕전과 연생전·경성전·연길당·응지당을 연결하는 회랑이 조선중기이전까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조사단은 내전의 후원인 아미산에서 발굴한 청자기와편은 「조선왕조실록」중종때 기록에 근정전에 청자기와 사용사실이 언급되어 있는 점에 미루어 적어도 그 이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했다.
  • “국가위기의 해결사” 태 국왕

    ◎국민신뢰 절대적… 추인 못받은 쿠데타는 실패 푸미폰 태국국왕의 절대적 권위가 그 위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파국으로 치닫던 유혈시위사태에 직접 개입,수친다와 잠롱으로 대표되는 군사정부와 재야세력에 정국수습을 위해 한걸음씩 물러서도록 한 것이다. 태국 국영TV로 중계되고 전세계 TV가 이를 받아 방영한 21일의 국왕의 사태해결 중재장면에서 보여주듯이 이나라에서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는 거의 절대적이다.국왕이 나타날 때는 땅바닥에 엎드려 그의 발앞에 손수건을 깔고 그것을 가정의 제단에 모셔놓을 정도다. 국왕이 현실정치에 일일이 참견하지는 않지만 태국 정치의 특징인 군·관료·승려등 지배세력간의 균형을 유지시켜 주는 심판자로서의 역할은 거의 신성불가침이라 할 수 있다.그동안 17차례나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군인들이 그의 승낙을 얻기 위해 하나같이 왕궁으로 달려간 점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지난 32년이래 실패한 7번의 쿠데타도 왕의 추인을 받지못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번 시위사태의 경우 푸미폰국왕의 후계자들인 왕세자와 공주가 모두 외국방문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이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뿐만아니라 시린돈 공주가 파리에서 위성중계된 TV방송에 출연,그녀의 눈물겨운 자제호소가 수친다총리의 기세를 잠재우는 위력을 발휘했다. 사실 이번 사태 말고도 태국국왕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예는 더러 있었다.지난 73년 반일데모로 시작,반정부운동으로 번진 학생시위가 바로 그것이다.당시 타놈군사정권은 학생시위가 격화되자 무차별 발포로 대항,40여명의 희생자를 낳게 했다.이때에도 푸미폰국왕은 침묵을 지키다 결국 군의 자제를 호소,타놈정권을 전복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76년에도 군부 우파세력이 타마사트대학의 학생시위를 유혈진압,46명이 숨지자 군부에 자제를 촉구,사태를 수습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가의 위기상황을 맞게되면 국왕이 항상 중재자로 나서 사태를 진정시켰다. 태국형 입헌군주제가 뿌리내린 것은 32년 절대왕정이 무너질 때 사회 제세력간의 타협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푸미폰국왕은 47년5월 즉위했다.불교와 함께 태국의 정신을 상징하는 현재의 라타나코신 왕조는 19세기말 대대적인 개혁으로 근대화정책을 펴면서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식민지화로 전락한데 반해 태국은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현 왕실이 국민들의 구심적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일부 식자층에서는 푸미폰국왕은 때로는 민주화 수호세력이 되고 한편으론 걸림돌이 되는 이중적 존재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즉 국왕이 지난 81년과 85년의 프렘총리 당시 두차례의 쿠데타를 모두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헌정질서의 수호자가 됐으나 지난해 2월 수친다의 쿠데타를 용인하고 총리취임을 승인,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외면한 것이 그 단적인 사례라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왕실의 이중성은 근본적으로 국왕은 군사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해주는 대신 왕실의 이익을 보장받는 조건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 선사미술서 조선백자까지 조감

    ◎한림대,「한국미술사현황」 심포지엄·책 발간 한국의 선사미술로부터 조선시대 백자까지 한국미술사를 조감하는 심포지엄이 지난16일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데 이어 여기에서 발표된 주제논문과 논평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져 동시에 발간됐다. 심포지엄의 주제는 「한국미술사의 현황」이며,개교10주년 기념행사로 이를 마련한 함림대학교측이 한림과학원(원장 김원용)총서 제7권으로 같은 제목의 책 「한국미술사의 현황」(도서출판 예경)을 발간한것. 이 책에는 주제논문 14평과 이에 대한 논평 14편이 수록돼 있는데,한국미술사연구의 최신 수준과 동향을 정리,기록화해 한국미술사연구의 한 이정표가 될것으로 평가된다. 각 주체는 「한국의 선사미술」(노혁진)「3국시대의 불상」(김리방)「3국시대의 회화」(이성미)「통일신라 조각론」(강우방)「한국석탑양식과 분석적 연구」(김정기)「신라토기」(최병현)「고려,조선시대의 불화」(홍윤식)「고려,조선시대의 조각」(문명대),「고려청자의 기원과 발전」(윤용인)「신라,고려의 금속공예」(이난영),「조선왕조시대의 회화」(안린찬)「고려,조선의 목조건축」(장경호),「분청사기」(강경숙)「조선백자,청화백자」(정양모)등이다. 한림과학원 김원용원장은 『이 행사의 논문발표 성과는 앞으로 학계의 평가에 밭길수 밖에 없지만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나뉘어 써진 최신의 한국미술사이면서 한국미술사 연구의 문제집이라는 긍지를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 정부기록보존소 이용 급증

    ◎일제자료 열람규제 풀고 절차 간소화가 큰 몫/총 2백60만점… 사료·분쟁 해결자료 망라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가 소장하고 있는 각종 문서를 열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16일 총무처에 따르면 지난 70년만 해도 기록보존소 열람건수가 연간 23건에 불과해 기록보존이란 취지를 무색케 했으나 80년에 들어 2천2백97건으로 10년새 무려 1백배나 늘었고 지난해만도 모두 8천3백77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올들어서도 지난 4월말까지 모두 2천9백48건으로 나타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가 늘었다. 이처럼 이용건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총무처는 일제시대 판결문을 비롯한 해방전 개인 신상기록을 전면공개한 것과 3∼4가지 서류를 갖춰야 열람할 수 있던 것을 간단한 서류 한가지만으로도 열람할 수 있도록 지난해 절차를 간소한 이유가 가장 큰 요인. 예컨대 재산관련기록물의 경우 필요에 따라 토지대장 소제기증명 등기부등본등의 서류가 필요했으나 지금은 호적등본만으로도 열람이 가능하다. 간소화 이유에 대해 기록관리과 양태진과장은 『주로 6·25때 각종 서류가 소멸됐고 구비서류를 갖추지 못했을 때 열람을 원하는 사람들이 큰 불이익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아 보다 적극적인 민원봉사차원에서 간소화했다』고 말했다. 또한 기록보존소가 일제시대 각종 기록열람규제를 완전해제한 것도 큰 요인. 이 규제해제로 소유권문제를 가늠할 일제시대 판결문 행형기록 지적원도의 이용이 늘어나 전체 이용건수의 62%를 차지하고 있고,일제가 만든 판결문등 기록에서 우리의 옛선열들이 일제시대에 펼친 항일독립운동사례를 알 수 있어 이를 입증할수 있을 뿐 아니라 학술연구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 근세사에 대한 활발해진 연구도 이를 이용하는 사례를 증가시킨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기록보존소는 국가기관에서 취급한 모든 문서를 관리해오는 부서로 조선시대 사고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국가기관이 다룬 모든 공문서를 비롯,개인인사기록자료·법원판결문·관보·지적원도·임야원도등 각종 대장이 총망라돼있다. 현재 보존소에는 조선왕조실록 8백28책을 비롯,지적원도 78만여장,정부기관으로부터 이관된 정부수립후 문서 약 30만건을 포함한 2백60여만점이 보존돼있다. 현재 총무처 기록보존소는 서울과 부산지소에서 열람을 받고 있으며 이용 민원인의 편의를 위해 각종 목록집 등을 발간하고 있다.
  • 대학가 인공기… 이철승씨는 말한다

    ◎「김일성왕국」 찬양은 국제적 조소거리/「김부자 초상화」는 나붙지 않을지…/사상교육강화,반역사세력에 대처해야 『안팎으로 위기에 몰려있는 김일성부자의 왕조구축전략에 우리 학생들이 말려들고 있습니다』 철저한 자유민주체제 수호론자인 이철승 자유민주총연맹총재는 지난 8일 부산 동아대와 광주 전남대에 북한의 「인공기」가 내걸린데 이어 13일 서울에서도 인공기가 게양된데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씨는 『한참 발전해 나가는 한국에서 일부 친북세력이 경제·교육·사상등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혼란을 주도하고 있는데 대해 전세계의 식자들이 불가사의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옛소련과 동유럽에서도 볼셰비키즘과 마르크시즘이 무너지고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해가는 상황에서 역사의 흐름에 반역해 고립왕국을 유지해 가려는 김일성부자에 우리학생들이 동조하는 것은 세계의 조소거리가 되고 있다』고 이씨는 안타까워했다. 그는 최근 대학가에 인공기가 내걸린 것은 『정부가 통일노선을 선택하고 진행하는 과정과 학생들을 교육하고 학원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의 오류가 오랜 세월 누적되어 일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북한과의 교류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좋지만 그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기본인식을 흔들리게하는 것도 사실』이라는 지적이다. 제7차 남북총리회담에서 북한대표들이 이산동포의 고향방문등 몇가지 합의를 도출하고 돌아간뒤 곧바로 이런 사건이 터진 것은 그들의 일면협상 일면투쟁의 양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씨는 『해방을 전후한 미 군정시대에도 남로당의 조직이 사회 각계각층에 잠입해 있었고 학생들도 공산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간헐적으로 붉은 깃발을 들고 기습시위를 벌였지만 수천 수만의 학생들이 길 한복판에 북한기를 걸어놓는 행위는 없었다』면서 『당시에는 좌경화된 학생과 사회세력에 맞서 대항할 학생및 사회세력이 있었으나 최근의 대다수 학생들은 통일과 안보문제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씨는 이어 『50년동안이나 암흑속에서 억압과 탄압을 받아온 북한주민들이 해방되어야 할 이 시점에서 엉뚱하게 준동하는 반체제세력에 대항할 세력이 하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이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우리의 책임감이 미군정 때보다 떨어지고 사상교육이 후퇴했기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이씨는 이와함께 『학원가에 인공기가 게양된 사태는 정부가 학생운동을 적절한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최루탄만으로 해결하려 한데서도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루탄만으로는 수만명 「주사파」의 돌팔매는 막을 수 있어도 그들의 마음은 돌릴 수가 없다』면서 『최루탄이 없으면 그들의 행동을 아무런 제재없이 방치할 것이냐』고 이씨는 반문했다. 이씨는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치를 이끄는 여야지도자들은 대권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기를 흔드는 이런문제가 대통령선거운동의 쟁점이 되어야 하는데도 정치지도자들은 학생들에게 아부하느라고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정원식국무총리가 『정부와 치안당국은 학원가의 인공기 게양문제를 단호한 의지를 갖고 대처하겠다』고 밝힌데 대해 이씨는 『이 문제는 총리가 아니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학원가에 「인공기」가 내걸린 사태는 몇년전부터 지적해온 사실이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면서 『그러나 좌경화된 학생들의 행동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몇년후에는 대학가에 김일성의 동상이 들어서고 김정일의 초상화가 나붙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소나무­사시사철 푸른 「백목지왕」(나무이야기:6)

    ◎한·일에만 자생… 5월 꽃피고 9월에 열매/집짓고 땔감으로도 써온 「민족의 나무」 나무줄기의 색이 붉어 적송,육지에 많다고 육송,잎이 사철 푸르다고 청송,잎이 바닷가에 자라는 해송보다 더 부드럽다고 하여 여송…소나무는 그 이름이 많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다.대만이나,중국본토는 물론 구미에도 없다.한반도의 지명에 송자가 붙은곳이 6백81곳이나 된다.그만큼 먼옛날부터 오늘까지 우리와 뗄수없는 관계를 갖고 살아온 나무이다. 예부터 소나무로 집을 지어 대대손손 살면서 소나무 땔감으로 난방과 취사를 했고 거북선 건조에 썼으며 세상을 떠날때에도 소나무관에 몸을 맡겼다.이와같이 소나무와 더불어 살았고 소나무의 문화를 가꿔온 것으로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나무이며 백목지왕이라 할 수 있다.이렇게도 유용했던 소나무는 오늘 줄기가 굽으며 가지만 많고 빨리 자라지 못하며 각종 병충해에 약하다하여 온갖 푸대접을 받고있다.그러나 이웃 일본의 경우 똑같은 소나무이면서도 줄기가 곧다.일본은 형질 좋은 나무를 모수로 꼭남겨두었으나 우리는 줄기가 곧고 형질이 우수한 나무들을 맨 먼저 모두 베어 써버렸기 때문에 형질적으로 열등한 후손만 가질수 밖에 없게됐다. 이제부터라도 우량형질의 개발 및 육종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소나무의 꽃은 5월에 피며 열매는 다음해 9월에 익는다.밑부분에서 굵은 가지가 갈라지는 반송과 줄기가 곧게 자라는 강원도 지역의 금강송 등이 소나무의 품종이다.소나무는 용재용 뿐 아니라 정원수,풍치목으로도 매우 뛰어난 수형을 보여준다.우리나라에는 각처에 유명한 소나무 숲이 많이 있다.홀로 서 있는 정자목,동신목 등 모양이 좋은 것이 도처에 있다.소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속리산의 수령 5백년인 정이품송은 1464년 조선조 세조대왕이 벼슬을 내린 나무로 잘 알려져 있고 수원시의 북문밖에 노송지대에 자라고 있는 약 2백년생의 소나무 가로수 또한 자랑거리이다.조선왕조초기인 1409년초에는 경기도 장정 3천명과 감독관 5백명을 동원해 남산에 소나무를 20일 동안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남산 위의 저 소나무…」 못지 않게 매우 귀중한 소나무들이 각지에서 병충해에 시달리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건만 이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고 자연보호의 목소리만 크다.이제 이들을 돌보아주는 자연보호도 되어야만 하겠다.
  • 원로학자 김재근씨,저서 「거북선」서 처음밝혀

    ◎“임란때 거북선길이는 21.5m”/너비 7.36m로 정조때것보다 작은 규모/“철장식을 붙인 목선… 철갑선 아니다” 임진위란 발발 4백주년을 맞아 당시 해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거북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성과가 칠순이 넘은 노학자에 의해 최근 단행본으로 발표됐다. 한선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원로조선공학자 김재근서울대명예교수(72·학술원 부회장)가 30여년간의 연구결과를 정리한 책 「거북선」(정우사간)을 충무공 이순신 탄신 4백47주년(4월28일)에 즈음하여 펴낸 것. 김교수는 이 책에서 임란당시 거북선의 크기를 처음으로 밝혀내 눈길을 끈다.즉 임란당시 거북선은 선체의 길이가 21.5m,저판의 길이 15.3m,선체의 너비 7.36m,상장의 너비 9.2m,노의 수는 14자루로 정조대의 거북선 크기보다는 약간 작다는 주장이다.이는 광해군 당시 한선의 크기·치수가 나와있는 문헌들을 근거로 추정해낸 것이다. 김교수는 또 이 책에서 거북선은 철갑선이 아니라 소나무로 만들어진 철장식이 된 목선으로 임란 당시 주력 군선이었던 판옥선을 바탕으로 개량된특수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거북선철갑선설」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오직 일본문헌뿐이며 정조때 충무공 관련자료들을 모아 편찬한 「이충무공전서」등 한국사료에는 한군데에도 언급된 곳이 없어 신빙성이 없다면서 대신 거북선은 상갑판에 왜구의 접근을 막기 위해 칼송곳을 꽂고 선수부와 상장의 요소요소를 철로 장식하고 보강한 특수전함으로 오히려 「장갑선」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또 「난중일기」「당포파왜병장」「이분의 행록」등을 들어 임란 당시 해전에서 활동한 거북선은 모두 세 척뿐이었다는 최영희전국사편찬위원장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이밖에 「영귀선」「방답귀선」「순천귀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북선 세 척의 건조장소를 비교적 상세하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지난 57년 「대학신문」에 「구선고」라는 글을 발표한 뒤 줄곧 한선을 연구해온 김교수는 20년전부터 거북선은 판옥선을 개량해 만든 특수전선이라는 주장을 펴오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이제는 이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판옥선은 비전투원인 노군을 집안에 들여놓아 전사들이 상갑판에서 방해받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종전의 군선에 비해 몸집이 월등히 크며 16세기에 개발돼 임란때 거북선과 함께 맹활약을 했던 우리 수군사의 대표적인 군선이다. 김교수는 『거북선이 당대의 판옥선과 똑같은 방식으로 건조되었으나 상갑판을 없애고 그 대신 둥그런 개판을 덮어놓은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거북선은 튼튼한 송재를 써 구조부의 치수도 넉넉하게 잡는 한선구조법의 기본적인 특성에 따라 아주 강건하게 건조돼 이와 같은 강인한 선체구조로 적의 선단속에 뚫고 들어가 적선을 충파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반면 판옥선은 포의 발사 위치가 상갑판에 있어 명중률이 높아 적을 멀리 떼어놓고 발포할 수 있어 서로 상이한 역할을 담당했었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현재 거북선에 대한 개괄적인 연구는 어느 정도 완성된 단계에 이르렀지만 예를 들어 거북선에 비치됐던 비품목록등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한 연구는 이제부터라고 말했다.그는 그러나 요즘 젊은 학자들이 한문을 잘 몰라 원문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연구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72세라는 나이에 전문서를 펴내게 돼 무엇보다도 기쁘다』는 김교수는 그동안 「조선왕조군선연구」「거북선의 신화」「우리배의 역사」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앞으로도 세계의 희귀한 배들을 소개하는 「배이야기」등 책 2∼3권정도는 더 펴낼 계획이다. 『거북선은 우리겨레의 탁월한 창조물로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하는데 앞장섰던 무적함인 만큼 긍지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거북선에 대한 불필요한 신화나 수수께끼를 갖고 이를 자랑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거북선과 같은 민족적 유산은 좀더 성의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뤄야하며 일반국민들이 거북선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마지막으로 『임란당시 해전에서의 승리가 단순히 이순신이라는 인물과 거북선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이보다는 우리 수군의 우수한 전통과 조직,판옥선과 같은 뛰어난 전선과 일본수군으로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던 우리 수군의 우수한 화포술이 합쳐져 이루어낸 결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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