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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별장들(외언내언)

    어른들도 어린이 못지않게 장난감집이나 인형의 집 같은 모형의 세계에 매력을 느낀다.강기슭에 숲으로 둘러싸인 그림같은 벽돌집은 누구나 그려보는 별장에의 동경이다. 1924년 당시 54세이던 영국왕 조지5세의 메리왕비는 별장은 아니지만 영국국민을 위해 바로 이 환상의 세계를 실제로 현실화시킨 예가 있다. 바로 조지왕조 양식을 딴 장난감집을 지은 것이다.길이 2.5m 높이 1백55㎝인 이 미니,그러나 장엄한 장난감 건물 속에는 서랍을 열면 아름다운 정원,서랍을 열면 왕비의 방,또 주방과 식당과 접견실도 달려 있다.이탈리아산 호도나무로 짠 책장에는 AE하우스만 서머셋 모엄의 명작들이 얼마든지 비치되어 있기도하다.이 장난감 집은 윈저성에 보존되어 1920년대 왕실의 생활을 후대에 보여주는 것으로 되어있다. 엊그제 이처럼 그림같고 장난감집같은 아름다운 집들이 TV화면에 비쳤다.초호화판 별장들이 들어선 속에 옥외수영장이며 축구장 테니스장 어린이 놀이터들이 설치되어 있고 남양주군에 있는 한 별장에는 드넓은 잔디와 정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아스팔트길,국립공원 수락산 계곡물을 끌어다 자연수영장을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집앞으로 시냇물이 흘러나가게 시공하고 있었다.물론 드넓은 산속에서 혼자서 수영을 즐기는 맛이란 백두산 천지를 혼자서 차지한 기분일지는 모른다.혼자서 정자에 앉아 양주를 마시는 맛이란 도연명 부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한 재벌이나 부자가 아닌 정치인들의 취향이란 점에 절로 눈쌀이 찌푸려진다.그것은 비벌리힐스의 할리우드 배우들이나 지향하는 취미에 지나지 않지 않은가. 몇년전만해도 자연풍광이 수려하고 공해가 없는 시골에 빈집을 사서 이를 개조한 별장이 유행되기도 했다.소박한 주말 별장인 셈이다. 영국의 메리왕비만큼의 취미나 취향으로 후대까지는 생각지 않더라도 기왕 공기좋은 곳에 집을 지을바엔 할리우드 배우들의 취향을 쫓기보다는 율곡이나 다산의 공부방같은 집이라도 지어 정신수양을 했으면 한층 훌륭한 인물로 비쳤으리라는 생각이다.
  • 영에 중세풍마을 조성 계획

    ◎찰스왕세자,건축가에 설계위촉… 연내 착공 미술과 건축등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는 영국의 찰스왕세자가 중세양식의 건물들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을 조성할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영국에서 적잖은 화제와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남부 도싯주의 왕실소유땅인 파운드베리에 붉은 벽돌집등 석조건물로만 이루어진 고풍스러운 마을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올해안에 착공을 추진하고 있는 이 계획은 마을 한가운데의 뾰족탑을 중심으로 중세 조지아왕조의 양식을 본뜬 건물들을 가로수를 따라 늘어 세우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주민은 1만명이 넘지 않도록 하고 자동차없이 모두 걸어서 10분안에 일터에 도착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찰스왕세자는 이 마을을 다음세기에 영국이 추구해야 할 도시의 모델로 내보일 생각이다.이를 위해 도시설계가인 레온 크라이어등 전문가들을 위촉해 설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찰스의 이같은 구상에 대해 많은 전문건축인들은 혹독한 비판을 퍼붓고 있다.『할리우드의 영화세트가 될 뿐』이라는 비난이 있는가 하면 『조각공원에 사람을 살게 하겠다는 발상』이라고 성토하는 사람도 있다. 현대인들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고루한 발상이고 이상향일 뿐이라는 것이다.이들은 특히 이 마을이 규모가 너무 작아 취업과 교육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그래서 밤에 잠만 자는 베드타운이 되거나 아예 빈마을이 돼버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게다가 중세양식의 건물을 제대로 지을 사람도 찾을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대해 설계를 맡은 크라이어는 『현대적 건물이 인간을 거칠고 메마르게 했다』면서 『중세풍의 건물에서 보다 인간다운 삶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찰스왕세자가 현대건축가들과 마찰을 빚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는 지난 84년 국립미술관을 현대식으로 증축하려는 계획에 대해 「괴상한 종유석」같다고 비판해 모더니즘계 건축가들과 한차례 설전을 벌인바 있다.그 뒤에도 건축가 데니스 라스던경이 설계한 국립극장을 「핵발전소」같다고 비난하는 등 현대식 건물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 왔다. 최근또다시 가열되고 있는 논란속에서도 파운드베리마을은 일단 찰스왕세자의 계획대로 올해안에 착공될 것으로 보인다. 찰스의 구상이 앞날에 대한 산뜻한 비전으로 평가받을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엉뚱한 발상으로 끝날 것인지는 훗날 이 마을의 성쇠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 “북핵 방치땐 안보리 기능상실 초래”/독 헤센재단 보고서 요약

    ◎석달내 NPT복귀 않을땐 강력대응 필요/공·해봉쇄 통한 경제제재 효과적 【본=유세진특파원】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평화및 분재연구를 위한 헤센재단」은 최근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발간,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를 선언한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으면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이 보고서는 그러나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은 한국의 민간용 핵발전시설에 대한 북한의 보복공격을 부를 위험이 있음을 함께 지적했다.보고서는 『국제사회가 북한측 행위에 강력히 대응하지 않으면 동아시아에서의 핵무장경쟁,핵확산금지조약및 대량살상무기 제한을 위한 규정의 무효화,유엔안보리의 기능무력화와 같은 위협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북한이 NPT조약당사국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전적으로 다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해결책이 강구돼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헤럴드 뮐러,마티아스 뎀빈스키,아네트 샤퍼등 3명이 공동작성한 「북한은 핵무기보유국인가?­공산왕조의 핵무장배경,현황및 파급효과」를 간추려 본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선언은 국제협력과 군비통제,군비공개및 국제연합의 기능강화 등을 통해 국제안정을 이루려는 시도들을 단번에 불확실한 상태로 몰아넣었다.탈퇴선언과 함께 시한폭탄의 초침이 째깍거리기 시작했다.이처럼 불길한 상황의 도래를 막을 수 있을지 아니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저지 노력이 결정적으로 실패할 것인지는 앞으로 3개월 이내에 결판날 것이다. 미국 비밀정보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적어도 한개의 핵탄두제조가 가능한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북한의 5Mw급 연구용원자로가 기술적 결함으로 계속 작동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북한이 자주 연료를 교체했다면 한개 혹은 몇개의 핵탄두제조에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이 생산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또 핵무기점화를 위한 기폭장치같은 핵무기제조의 열쇠가 되는 기술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북한은 이라크처럼 군사목적을 위한 핵폭발물 제조,즉 무기화를 위한 기술적인 사전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여진다.기술적인 증거들,군사목적에 적합한 원자로 형태의 채택,큰 기술을 요하는 핵처리에로의 사전진입,수년간의 지연전술,남북상호사찰의 거부,플루토늄 추출의 오랜 경험에 대한 침묵,특별사찰의 거부,핵확산금지조약으로부터의 이유없는 탈퇴등 모든 정황은 북한이 조약을 위반해가며 핵무기개발 계획을 추진해왔음을 보여준다. IAEA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간에 북한의 NPT 탈퇴선언문제는 유엔안보리의 협상테이블에 놓여 있다고 할수 있다.▲IAEA가 안보리에 통보한다면 그 이유 때문에 ▲IAEA가 안보리에 통보하지 않더라도 북한이 NPT 탈퇴를 안보리에 통보했기 때문에 ▲안보리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국제안보와 평화에 대한 위협이라고 선언하고 NPT조약의 침해는 매우 중대한 범죄의 증거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유엔안보리가 북한의 NPT 탈퇴문제를 다루는 것은 불가피하다.안보리가 북한이 NPT 조약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하면 제재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앞으로 90일간 북한이 탈퇴선언을 철회하고 핵무기개발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외교적 노력이 집중적으로 펼쳐질 것이다.그 핵심적 열쇠는 북한에 대해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인 중국이 쥐고 있다.또 유엔이 어떤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도 중국에 달려있다고 할수 있다. 90일의 기한동안 아무 성과도 없다면 제재조치가 불가피하다.우선 북한과의 모든 경제접촉을 단절하는 경제제재조치가 있을 수 있다.경제제재가 가해지면 북한의 위태로운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그러나 북한은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것보다 핵무기를 가져야겠다는 욕구를 더높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른다.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조치로 봉쇄가 있을 수 있다.봉쇄조치가 취해지면 북한으로 향하는 선박은 물론 북한을 출발하는 선박과 경우에 따라서는 항공기도 나포할 수 있다.이로써 북한의 무기거래가 저지될 수 있으며 북한으로서는 유일한 외화벌이 수단인 무기거래에 의한 수입을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사조치도 가능하다.현재 건설중인 핵재처리시설과 원자로들,미사일공장및 미사일기지등이 공격목표가 될 것이다.핵실험실이나 연구용원자로에 대한 공격은 주변을 방사능으로 오염시켜 민간인들의 피해를 부를 수 있다. 군사개입을 꺼리는 가장 심각한 이유는 북한의 보복공격 가능성 때문이다.북한은 한국의 민간용 핵발전소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행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첫째 동아시아의 안보상황이 불안해질 것이다.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한국과 일본은 고유의 핵전투력을 보유하는 것이 장차 국가안보의 전제조건이라는 생각을 갖게될 것이다.또 일본의 핵무기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도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김일성이 죽고난뒤 북한의 장래는 매우 불확실하다.핵무장한 국가의 국내불안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이미 소련의 경우를 통해 익히 알고있다.더욱이 북한은 핵무장의 보호우산을 한국에 대한 공격적 정책에 이용하거나 다른 나라들을 자신이 몰락하는데로 끌어들일 가능성이 있다. 셋째 핵확산금지체제가 종말을 고할 것이다.국제기구가 제기능을 하려면 규정침해 사실이 발견됐을때 그에 상응하는 제재가있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위협을 당하는 국가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구책을 강구,결국 대량살상무기 획득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넷째 이란,리비아,시리아,이라크같은 나라들이 북한과 같은 행동을 하려는 충동을 받게 될 것이다.동시에 인도나 파키스탄,이스라엘,아르헨티나 같은 조약미체결국가들도 핵확산금지 외교를 우려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다섯째 북한이 경화를 벌기위해 서슴지 않고 핵무기에 사용될 분열재나 기술을 팔아넘길 우려가 있다. 여섯째 생화학무기같은 다른 대량살상무기의 확산금지체제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이들 체제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사찰과 제재조치가 제대로 이뤄지느냐에 그 존립이 좌우된다.핵확산금지조약의 거부는 생화학무기 확산금지의 신뢰성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곱째 안전보장이사회도 시험대위에 설 것이다.걸프전이후 안보리가 대량살상무기 확산금지체제의 보장자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됐었다.안보리가 이러한 책무를 다하지 못하면 유엔을 주축으로 한 범세계적 안전에 대한 희망은 또한번 수포로돌아갈 것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중개로 북경에서 개최된 미국과 북한간의 협상에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에 남게될지도 모를 해결책이 보인다고 한다.
  • 인왕산의 앓는 소리는…(박갑천칼럼)

    역사를 뒤돌아보느라면 현군아래 현신있었음이 눈에 뜨인다.가령 우리의 조선왕조만 보아도 세종임금 때에 어질고 학문 깊으며 충성심 짙은 신하가 많았음을 알게 한다.왜일까.현군은 보배로운 재목을 볼줄 아는 위에 그러안을 줄까지도 알았기 때문이다.다른 시대라고 해서 어찌 재목이 없었다고 할 것인가.중요한 것은 그것을 볼 줄 아는 눈이었다고 할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유명한 보물이 이른바 「화씨의 구슬」(화씨벽)이다.초나라의 화씨가 발견했대서 붙은 이름이다.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가장 값비싼 보물로서 어느 때던가,성 열다섯개와 바꾸자는 말이 나왔을 정도이다.그렇건만 화씨가 이를 여왕에게 바쳤을 때 그는 보배임을 몰랐다.도리어 왕을 속였다 하여 왼다리를 잘린다.그 다음 무왕이 즉위한다.그 또한 돌로밖에 못보게 된다.이번에는 오른발까지 잘려 앉은뱅이가 된다.그를 잇는 임금이 문왕이다.그가 비로소 이 구슬을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들어오는 복을 발로 찬다는 우리 속담을 생각케 한다.여왕이나 무왕은 보배를 보는 눈이 멀어 있었다.그것은 그 복을 받을 만한 주제가 못되어서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마태복음」(7장 6절)에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가르친 뜻도 거기에 있다.그 진가를 모르는 자에게 고귀한 것을 주어도 무의미하다는 뜻이었다.여왕이나 무왕은 그 「돼지」였다고 할 것이다. 보배로운 것을 안겨주는데도 옅은 생각이나 어두운 시력으로 해서 괘괘떼는 것을 볼때 사람들은 이를 비웃는다.알아주면서 소중히 간직할 줄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보기 때문이다.그 어리석음은 더 빛나는 보물이 들어오는 길까지 막는 짓이기도 하다.모든 보배로운 것은 보배로움으로 보아줄 줄 아는 사람의 품을 동경하는 게 아니던가. 청와대 언저리를 개방한 것은 민주발전이라는 보배로운 빛에 연유한다.그것은 우리 모두가 소중히 북돋워야 할 보배로운 계기이다.그런 곳을 시위하고 소리치는 곳으로 만드는 짓은 어리석다.인왕산을 신음하게 하는 공중도덕 부재 역시 그렇다.「화씨의 구슬」을 돌로 아는 짓이며 돼지 앞에 던져진 진주 꼴로 만드는 짓이다.스스로 「누릴 자격 없음」을 고백하며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작태들이 아닌가.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봉건독재자/개혁정치가/대원군 상반된 평가

    ◎사후 1세기… 근대사연간 「…한국현대사」서 쟁점화/비판/대외적 위기 모면위해 쇄국정책/긍정/명 신종 모신 묘 폐쇄 등 자주정치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고루하고 완고한 봉건적 폭군·독재자인가,과감한 실천력을 가진 자주적 개혁정치가인가.사후 1세기가 가까운 지금도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긍정과 비판이 엇갈리는 이중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즉 대외정책면에서 쇄국책은 제국주의열강의 침략을 물리쳐 자주성을 고취시켰으나 내치면에서는 근대화를 지연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온 것이다. 한국근대사연구소가 최근 펴낸 「쟁점 한국근현대사」창간호에서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에 대한 역사학계의 이같은 상반된 견해를 쟁점화,그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규명해 내는 새로운 인물연구를 시도했다.홍순창전영남대 사학과교수는 개혁정치가의 시각에서,성대경성균관대 사학과교수의 경우 보수정치가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홍전교수는 「대원군 이하응 그는 개혁정치가였다」에서 격동기였던 한말의 역사적 상황속에서 주역으로 등장했던 대원군집정의 당위성과 임오군란으로 인해 재집권한 배경,청군으로 납치된뒤의 세론등을 분석한뒤 긍정적인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다.우선 대원군집권의 역사적 상황으로 사교로 규정된 천주교의 만연,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인한 왕도정치의 위기,삼정의 문란등 정당성을 논거했다.특히 서원철폐시 명나라 신종을 모신 화양동 만동묘를 폐쇠한 것은 대원군이 종래 중국에 대한 사대정치로부터 자주정치에의 일대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강압적인 개혁정치는 『흔미속에서 갈길을 잃은 한말의 우리 민족을 영도한 지도자상』으로 보았다.또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단순한 쇄국책이 아니라 위정척사론을 사상적 배경으로한 쇄국양이정책으로 한민족의 자존을 위한 반침략적 애국애족사상과 결부돼 결국 한말의 민족정신으로 고양됐다』고 평했다.임오군란이후 대원군의 재등장은 국내정치의 부패를 일소하는 기회가 되었으며 일본의 침략적 행동에 단호하게 대처한 내외책 또한 국민에게 용기를 주고 정치적 혼란을 수습한 성공작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반해 성교수는 대원군정권 성립의 역사적 의의는 『봉건지배자 즉 양반관료지주들이 그들의 경제적 신분적 기반인 봉건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는 독재자를 만들어 낸 것』이라는 반론을 폈다.대원군집정후 최초,최대의 과업이 왕조체제를 강화하고 왕권의 중앙집권화를 꾀하는 일이었음을 그 예로 들었다.그리고 비변사폐지및 의정부기능회복과 삼군부의 부활,종친세력의 대거 중용등도 자신의 지지세력포섭과 장악기도의 맥락에서 파악돼야 한다는 주장이다.또한 임술민란직후 나타난 민중의 변혁에네르기를 새로운 사회건설로 영도할만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했다. 즉 대원군정권은 『본질적으로 봉건귀족양반의 계급적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쇄국양이정책 또한 대외적 위기에 몰린 대원군정권이 봉건제도수호를 위해 위정척사사상을 끌어 들여 전개한 반역사적 보수정권』으로 규정했다.
  • 동성서취/공주도와 반도 축출… 무림영웅담(새영화)

    뛰어난 장인정신으로 이름난 홍콩의 명장 왕가위감독이 총감독겸 제작총지휘를 맡은 무림소재의 코믹액션물. 금륜국의 왕비와 그녀의 사촌인 서독이 사랑에 빠진 나머지 왕국을 차지하기위해 국왕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되는 영화로 공주를 도와 서독을 물리치기까지 무림의 영웅들이 펼치는 활약을 담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무협의 정통성 보다는 음모와 배신 사랑과 질투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사건에 더 큰 비중을 두어 매우 익살스럽게 꾸몄다.특히 상상을 초월하는 액션과 SFX 그리고 중국인 특유의 해학이 넘쳐있다. 홍콩영화계의 제작기술이 함축돼있는 오락영화로 임청하 장국영 왕조현 양가휘 장만옥 장학우 유가령 등 홍콩의 스타들이 대거 등장,불꽃튀는 연기대결을 벌인다.
  • 「소설 장보고」(화제의 책)

    ◎해상왕 장보고 행적 사실토대 재구성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고송지영선생의 신문연재소설을 저자가 생전에 다듬고 정리한대로 3권의 책으로 재구성해 펴냈다. 『소설은 내용이 안고 있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평소 지론대로 독자들의 시선을 놓치지 않게 하는 재미를 추구한 소설이다.그러면서도 장보고의 행적을 기록한 「삼국사기」「신당서」「입당구법순례행기」등 사서를 통해 역사적 사실에도 충실하도록 꾸몄다. 소설은 1천년전 절대왕조시대에 황해를 무대로 동아시아의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왕권을 넘보던 사나이의 어린시절과 야망,권력쟁탈전,시기와 모함,영웅의 사랑등이 전편에 넘친다. 송지영지음 호암출판사 4천5백원.
  • 두려운 건 성안의 적이다(박갑천칼럼)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는 죽어서 시체가 된 다음에도 다른 짐승이 범접하지 못한다.벌레까지도 달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렇건만 그 몸속에 절로 생긴 벌레가 있어 시체를 먹어 치운다고 한다.「범망경」에 쓰여있는 말이므로 은유에 뜻을 두어야지 과학적으로 해석할 일만은 아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예로 들면서 불법을 파괴하는 것은 이교도가 아니라 불교를 받드는 불제자 자신들이라고 경계한다.이것이 「사자 몸속의 벌레」(사자신중충)의 비유이다.외부로부터의 침범이 아니라 내부에서의 와해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하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상일을 들여다 보느라면 이 말이 진리임을 느끼게 된다.「사자 몸속의 벌레」그대로 이 종교 저 종교 할 것 없이 밖이 아닌 내부에서 분규의 연기가 솟아온다.자해행위나 다름없는 갖은 형태의 내홍이 얼마나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것이던가.눈살 찌푸리게 하는 것이던가.그런 현상은 비단 종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교육의 위상에 먹칠을 하는 것은 외부의 소행이 아니라 바로 교육자 자신들임을우리는 보아온다.언론의 모양새를 구기는 것은 언론인이란 이름의 사람들이고 정치를 우습게 전락시키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다. 기업체 같은 조직도 그렇다.그것이 비대해져 가면서는 차츰 창업의 정신이 바래어 간다.조직 내부에 느슨해지는 곳도 생기고 독버섯도 피어난다.대립이 날카로워지는 가운데 분열이 조장되기도 한다.그런 현상들은 외부의 어떤 도전보다 더 두려운 적이 된다.이는 나라의 경우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어째서 나왔던가.창업때의 일사불란했던 정신이 무너져 내리면서 내부가 허술해짐을 경계하는 말이 아니던가.멀리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볼 것까지도 없다.고구려·백제·신라를 비롯하여 역대의 우리 왕조가 무너진 까닭은 「사자신중충」에 있었다.『나라가 망할 때는 그 망할 짓을 한다』고 하는 옛 성현의 말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계씨는 속히 전유를 치려고 한다.그러지 않을 때는 나라가 위태롭다고 생각한다.염유와 자로가 그 사실을 공자에게 말했을 때 한 스승의 대답은『계손의 근심은 전유에 있지 아니하고 그 성안에 있다』였다.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일은 성밖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었다.개인이고 가정이고 기업이고 국가고 간에 먼저 안이 튼실하고서야 밖의 근심에 대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엊그제 있은 새 대통령의 취임사 가운데 그 점이 강조되고 있다.『…우리에게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도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번지고 있는 정신적 패배주의입니다……』.우리 내부의 정신이 건전해야 한다.우리 내부가 굳게 결속하여 앞을 내다봐야 한다.경계해야 할 것은 「사자 몸속의 벌레」이다.「성안의 적」이다.뭉친겨레의 힘을 보여주었던 3·1절이 내일모레로 다가왔다.
  • 인왕산 열리다(외언내언)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있나』하는 속담이 있다.하는 뜻으로 쓰인다.한국의 산천을 누비는 호랑이라면 반드시 인왕산에를 다녀가야 한다는 옛말에 연유하는 속담이다.자기를 인왕산에,상대방을 호랑이에 비기고 있다.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주산은 북악이다.안산은 남산이고 좌청용이 낙산이며 인왕산은 우백호.우람하여 남성적인 산세이다.본디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북악과 남산을 좌청룡·우백호로 삼으라고 건의했다.그것을 정도전이 반대한다.그렇게 하면 궁궐이 남향 아닌 동향이 되는데 동향으로 지은 궁궐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무학은 내말대로 않을땐 2백년 뒤 후회한다고 「경고」 했다.그게임진왜란이라고들해석한다. 옛사람들이 남긴 글에 의하면 옛날엔 지금보다 숲도 울창했던 듯하다.그랬으니 호랑이가 다녀가는 「성지」로도 되었겠지만.이런 인왕산 경관을 충신 성삼문도 「인왕모종」이란 제하에 노래한다.『인왕산 해 떨어지니/종소리 때를 알리네/책상머리에 숨어있는데/온 성안은 밤중이로세』.주변에 명승지·고적지도 적지 않다.바위산임으로 해서 이름있는 바위들도 많고.중종과 신비의 애틋함에 얽힌 치마바위,태조와 무학의 상이라는 전설을 담고 있는 선바위,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붙임바위 등등. 어제 닻을 올린 새 정부는 곧바로 인왕산의 통제를 풀고 청와대 앞길도 활짝 열어 놓았다.인왕산의 경우 88년에 약수터에 한해 일반인 출입을 허용했던 것인데 이번에 전역으로 확대한 것이다.68년의 1·21사태 이후 25년만에 취해진 일.청와대 주변의 교통사정도 한결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람이 막고 하여 그동안 국민과의 정신적 거리를 멀게 했던 곳이 청와대였다.그 앞길을 활짝 연다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을 여는 것 그것이다.나라의 앞길도 열린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그 주변 동네의 불이익도 차츰 풀려가게 돼야 할 것이다.
  • 「매국노의 유산」을 찾겠다니…/박화진(정경문화포럼)

    ◎이완용증손의 눈먼 과욕,국민감정 불용/국기보존차원 특별법 만들어 몰수 마땅 잘못되어도 대단히 잘못되었단 생각이 든다.매국노 이완용의 유산이 남아있었다니 말이다.그것을 이완용의 증손인가 하는자가 겁도 없이 찾겠다며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정부등을 상대로 당당히 소송까지 제기하고 있다고 한다.88년부터 지금까지 17건의 유산부동산 환수소송을 제기해 6건의 승소판결로 이미 60억원상당의 땅을 되찾는 재미까지 보고 있다는 것이다.정말이지 기가찰 노릇이다. 이완용이 누구이며 그 유산이란 것이 무언가.나라와 민족을 통째로 일제에 팔아먹은 5천년민족사의 전무후무한 매국역적 1호다.그 대가로 일제의 백작·후작칭호에 엄청난 돈과 특전의 혜택을 받은 민족반역자다.그 매국의 돈으로 만든 자산이요 유산아닌가.그것을 일부일망정 광복50년이 가깝도록 제대로 몰수처리도 않고 방치해 하늘무서운줄 모르는 후손이 찾아가게 버려두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우리의 무능이요 태만이며 수치가 아닐수 없다. 법률전문가들은 증손자 이윤형의 이완용땅찾기소송은 법적하자가 없는 합법적인 것이어서 막을수 없다고 한다.후손에게 죄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럴지도 모른다.그렇더라도 그냥둘 수는 없지 않는가.법이론이전에 국민감정과 정서가 용서하지 않는다.법이 잘못되었다면 진작에 고쳤어야 할것이며 뒤늦게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헌법을 고쳐서라도 바로 잡을것은 잡아야 할 것이다.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가 될일은 따로 있다. 이윤형의 이완용유산찾기문제는 온세상을 경악시킨 대학입시부정의 위기상황보다 경우에 따라선 훨씬더 중요하고 근본적이며 반드시 해결의 매듭을 조속히 지어야할 심각한 문제다.그것은 국기와 관련되는 문제일수 있다.매국노의 후손이 매국의 유산을 찾아 다시 번영을 누리게 버려둔다는 것은 국가와 민족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조상은 물론 아이들과 후손들에게 아니 우리 자신에게도 설명하고 변명할 말을 찾을수가 없다. 이데올로기분단과 대립의 피치못할 사정은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친일및 부일파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되지않은 심각한 후유증의 괴로움을 당해왔다.민족반역의 친·부일파 후손들은 부모·조상들의 민족반역 덕분에 계속 부귀와 번영을 누리고 조국광복을 위해 모든것을 바친 독립지사의 후손들은 몰락의 고난을 감수하지 않을수 없었던 현실을 안타까워해온 우리다.그 모든 국가·민족·후손희생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원흉이 바로 이완용아닌가. 왕조시절의 역적은 3주을 멸하는것이 원칙이었다.다시는 그런짓 못하게 뿌리뽑기 위해서였을 뿐아니라 일벌백계를 노린 참혹한 형벌이었다.왕조에 대한 거역도 그러하였거늘 그보다 훨씬더 크고 중요한 민주에 대한 반역의 처벌은 어떠해야 마땅하겠는가.우리는 원통하게도 광복이 늦어 살아있는 이완용을 충분히 응징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그후손들의 잠적도 허용하고 말았다. 물론 지금와서 후손들을 잡아다 3주을 멸하자는 소리는 아니다.조상 잘못만난 탓이지 그들에게 죄가 있는것도 아닐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숨어살때의 이야기일 것이다.그래도 용서할수 없는것이 민족의 양심일 것이다.나라위해 목숨을 바치는 속죄의 희생을 자청해도 부족할 그들이 감히 고개들고 매국유산 찾겠다고 나섰다니 말이되는 소린가.그 조상에 그 후손이란 탄식을 금할수 없다.아무리 합법적이며 민주화의 사회적분위기라도 그렇다.그냥둘수 없고 두어서도 안될 것이다. 매국의 유산은 재산만이 아니다.민족반역의 죄업도 포함되는 것이다.유산을 찾고 상속하겠다는 것은 매국의 죄업도 상속하겠다는 소리 아닌가.그렇다면 징벌도 함께 상속되어야 할것이다.재산을 찾아 명예회복과 불우이웃돕기등 뜻있는 일을하는 재단설립등에 쓰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이무슨 해괴하고 건방진 망언인가.명예는 무슨놈의 명예이며 이완용매국유산의 도움이라면 불우이웃도 거절할 것이다.특별법이라도 만들어 국가가 몰수해야 한다.어려운 독립지사 후손들을 위해 써야한다는 소리도 있으나 그것은 모독이다.그분들은 어디까지나 나라와 우리가 도와야 한다.독립기념관에 이완용등 매국노들의 죄업을 자손만대에 전하고 경계시킬 「역적관」이라도 하나 만들면 어떻겠는가.그런데밖에쓰지못할 돈이다. 아무튼 새정부와 국회는 제아무리 어렵고 또 무슨일이 있다 하더라도 이문제만은 바로잡아 주었으면 한다.그것은 저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광복회·극일운동시민연합뿐아니라 온국민의 일치된 소망일 것이다.해이된 나라기강과 전도된 가치및 무디어진 민족적양심을 바로세우는 한국병치유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할것이란 생각을 한다.
  • 계유오덕/최완수 간송미술과 연구실장(굄돌)

    조선왕조 오백년을 통틀어 닭 그림을 잘그리기로는 화재 변상벽을 단연 제일인자로 꼽아야 할 것이다.화재는 겸재와 거의 동시대를 산 화원화가로 특히 인물전신과 동물전신에 탁월한 재능을 타고 나서 초상화와 동물화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고양이와 닭 그리기를 좋아하여 많은 걸작품들을 남기었다.이에 사람들은 그를 변고양이라는 애칭으로 즐겨부르며 그의 동물 그림들을 지극히 애호하였다 한다. 그래서 그의 고양이 그림과 닭 그림이 지금까지 상당수 전해지고 있는데 우리 간송미술관에는 희귀하게도 그의 자필 제사가 곁들여진 「자웅화명」이라는 병아리 딸린 닭의 한가족 그림이 비장되어 있다.그 제사의 첫머리 부분을 소개해보면 이렇다. 『새벽을 맡은 것은 천성이다.또 오덕을 채우고 한마리 암수가 화답하여 서로 꼬끼요 운다』 여기서 오덕이라는 것은 수탉이 갖춘 다섯가지 덕성이라는 것이다.한시외전에 의하면 전국시대 재나라의 전요가 재애공에게 한 말이라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머리가 관(벼슬)을 이고 있는 것은 문이고,밭이 며느리발톱으로 차는 것은 무이며,적이 앞에 있으면 용감하게 싸우는 것은 용이고,먹을 것을 얻으면 서로 알리는 것은 인이며,밤을 지켜 때를 잃지 않는 것은 신이다.닭은 이 오덕이 있다』 화재는 닭의 외형적 특성뿐만 아니라 그 습성과 심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 계유오덕의 고사까지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그래서 그 제사 벽두에 오덕을 채우고 있다 하였다.화가가 어떤 소재로 그림을 그리든지 간에 이렇게 그 소재에 대해 확실한 지식을 가져야만 그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 좋은 본보기이다. 계유 흑계지년 벽두에 전도유망한 화가라면 한번 생각하고 지나야 할 줄 안다.수탉이 갖춘 오덕을 실천하며 산다면 그 더욱 좋을 것이다.
  • 책의 해… 책을 사자,선물로도(박갑천칼럼)

    아나톨 프랑스였던가,『이 세상의 기쁨은 선물을 받는데 있는게 아니라 주는데 있다』고 했던 사람이.맑은 현악기의 소리 같은 수필을 쓰는 피천득교수도 「선물」이란 제하에 그런 내용의 글을 쓰고 있다.『… 무엇을 줄까 미리부터 생각하는 기쁨,상점에 가서 물건을 고르는 기쁨,그리고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인편이나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에는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상상하여 보는 기쁨,이런 가지가지의 기쁨을 생각할 때 그 물건이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선물은 그렇게 주는 기쁨만 있는게 아니라 받는 기쁨이 더 큰 법이다.다만 그 선물에 검측한 타의가 묻어있지 않고 오롯한 정의만이 포장되어 있을 때라고 주석을 달아야겠지만.그래서 『내금강에 갔다가 만폭동 단풍 한잎을 노산(노산:이은상시인)에게 선물로 갖다준』금아(금예:피교수의 아호)도 『한 학생이 갖다준 이름 모를 산새의 깃,무지개같이 영롱한 조가비』를 기쁨으로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다양한 것이 선물의 내용이라고할 것이다.「만폭동 단풍잎」뿐 아니라 황금·보석등 이 세상의 물건치고 선물의 대상 안되는 것 없다 할 정도로.사람이 선물의 대상으로 되는 시대도 있지 않았던가.이렇게 선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까닭은 지난 설무렵 평소 아껴주던 친지가 보내준 도서상품권에 있다.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것이었고 느긋하게 고른 책이 10여권에 이르렀다. 결혼 예물로 책을 선물한 사람도 있다.조선왕조 초기의 의학자이면서 문장에도 능했던 유효통이 그 사람이다.이육 「청파극담」에 실려 전한다. 그의 한 아들이 정승인 황보인의 딸한테 장가를 들게 된다.돈많은 사람들은 진귀한 보물을 함에 담아 보내는 것이 시속이었고 그런 예물함이 3∼4개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유씨네도 황보씨네 집으로 함을 보냈다.그런데 일가친척이 주시하는 가운데 함을 열었더니 빽빽히 들어있는 건 보물 아닌 책이었다.사돈이 된 황보인이 유효통에게 물었다.『예물함에는 왜 책만 넣어 보냈습니까』.유효통의 대답은­『황금이 상자에 가득차 있더라도 자식에게 한 권의 경서를 가르치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있으니 혼인에 어찌 책을 예물로 못쓴다 하겠습니까』 다달이 「의무감」으로 책을 몇권씩 사는 사람들이 있다.그렇게 해서 출판업도 돕고 자신도 돕자는 뜻이다.장서가 취미인 사람한테는 별로 읽지도 않는 책을 무엇 때문에 사느냐는 질문도 따른다고 한다.하지만 설사 못(안)읽는다 하더라도 책을 사랑하는 분위기를 집안에 심는다는 것 그것으로서 값지다.향기롭다.교육적이다.어느날 읽으려니 하다가 끝내 못읽고 이승을 하직한들 어떤가. 올해는 책의 해이기도 하다.도서상품권이 황금보다 귀한 선물로 정착되어나갔으면 한다.
  • 조선왕조실록 국역 곧 마무리

    ◎68년 국책사업으로 시작… 26년만에 결실/52억 투입 연 2,500여명 참여/1,707의 내용 413책에 담아 조선왕조 5백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의 국역발간사업이 올해말 완료된다.지난 1968년 국책사업으로 시작되었던 조선왕조실록의 국역발간은 이로써 26년만에 모두 마무리짓게돼 조선시대사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조선왕조실록은 금년에 광해군일기11책 영조실록6책 정조실록22책 순조실록9책등 잔여분 48책을 펴냄으로써 총1천7백7책의 내용이 모두 4백13책의 국역본에 담겨지게 된다.또한 이들 국역본에 대한 색인 34권도 편찬될 예정이다.조선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일기형식의 종합기록인 이 실록은 조선왕조사 연구의 필수적인 사료일 뿐아니라 중국 일본 만주등 주변국가와의 교섭기록도 상당량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동양사연구에도 불가결한 사료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이번 작업중 광해군일기의 경우 최종원고인 정초본을 번역한 다른 실록과는 달리 유일하게 남아있는 교정본인 중초본을 번역했다는 점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 실록은 철종대에서 끝나고 있어 고·순종시대 객관적 사료의 확보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민족문화추진회의 이원순회장은 『고·순종실록은 일제때 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인학자들에 의해 기술됐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에는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이 중요한 시기의 사료가 공백상태에 놓여있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당시의 승정원일기등의 국역이 뒤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 70년 사회과학원 고전연구실에서 이 실록의 국역작업을 시작,지난 81년 「리조실록」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4백책으로 완간한바 있다.따라서 민족문화추진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분담하여 추진해온 이 사업은 52억원의 예산과 연인원 2천5백명의 전문학자들이 동원된 사상최대의 국역사업으로 부각됐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1)

    ◎소년시절:12/화성의숙서의 불만/40년대까지 신식훈련 못받았으면서/“이청천 등 낡은 군사교육에 환멸” 기술/겨우 3개월 배우고 트집 위한 트집 김일성은 화성의숙에 들어갈 때 팔도구 시절부터의 김형직의 친구 김시우가 데려간 모양이다.그는 당시 화전현 관가에서 정의부 화전총관소 총관으로 있었고 영풍정미소를 경영하여 정의부의 각 기관에 재정원조도 하고 있었다. ○기숙사에서 생활 그 다음 날부터 김일성은 화성의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학급에서는 몇몇 친구가 생겼는데 그 하나는 훗날 김일성이 중공계 유격대에 있을 때 그에게 일제에 투항할 것을 권고하러 온 박차석이었고 다른 하나는 1930년 무렵까지 언제나 그의 선배였던 최창걸이었다.그는 이밖에 김리갑,계영춘,이제우,박근원,강병선,김원우 등과도 알게 되었다 한다. 회고록에서 그는 화성의숙에 2주일 남짓 있은 후부터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학과목은 김일성에게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그런데 의숙생들은 특히 수학문제로 그를 괴롭혔다.4칙계산도 잘못하는 청년들이 숙제가 나올 때마다 찾아왔다.그런데 군사훈련 때는 거꾸로 의숙생들이 김일성을 도와주는 형편이었다. 의숙생과 김일성 사이에는 학습과 훈련 면에서 서로 정반대의 실력 차이가 있었다.자라난 환경과 사회생활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지만 김일성에게는 특히 무송소학교 시절부터의 불량한 사고방식과 비정상적인 학교생활 습성이 남아 있었다.이런 상황이 그의 당시 감수성으로는 「환멸」이었던 모양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에게 화성의숙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는 1960년대에 밝히게 되었다.그러나 이 시기는 그가 26년 3월에 입학한 것같이 서술했던 것을 「26년 6월 전학」으로 바꾸어 나가는 복잡한 조작이 잇따랐다. 또 이 때는 이른바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을 날조하는데 바빠서 그가 화성의숙에서 어떤 학창생활을 지냈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학생 지지받았다” 전기작가들이 화성의숙 생활문제를 쓰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이다.그들은 김일성이 이 학교에서 어떻게불만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쓰게 되었다.「불멸의 자욱을 따라」가 그 대표적인 것인데 필자는 이 책을 분석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회고록에서는 그 「불만」이 더욱 체계적으로 설명되어 있다.그것을 3개로 나누어 그중 2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군사훈련…실탄사격에 쓸 탄알이 없어서 늘 나무총이나 가지고 훈련했다.아래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기도 했다.또 독립군 대원들이 와서 안중근 장인환 강우규 이재명 나석주 같은 열사들이 쓴 개인 테러를 무훈담이라고 들려주었다. 김일성은 이러한 구한국 냄새가 나는 낡은 군사훈련이나 투쟁방법으로는 도저히 왜놈들을 타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상…어떤 학생은 왕조정치에 미련을 가져 봉건왕조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또 어떤 학생은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어느 시간에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강의와 토론이 있었다. 이때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선생의 강의와 학생들의 토론에 대항하여 김일성은 자본주의나 봉건주의는 다같이 돈 많은 놈들이 근로대중을 착취하여 호강하는 사회다.자본주의나 봉건주의의 병집을 잘 보아야 한다.조선을 독립시킨 후는 조국땅에 착취와 압박이 없고 근로대중이 잘 사는 사회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여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필자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당시 정의부에는 일본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청천 그리고 군사훈련을 체육이라 불러서 실시한 평양 대성학교 졸업생 오동진 등이 간부였고 한일합방 후 이시영 이상용 등이 남만주에 세운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도 많았다.그들은 신식 군사지식과 훈련방법도 알고 있었다.나무총이나 모래주머니·테러리즘 같은 것도 결코 구식은 아닐 것이다. 한편 김일성은 화성의숙 초창기에 군사학을 모르는 초년생으로 있었는데 겨우 3개월 정도 밖에 재학하지 않았다.따라서 이러한 불평은 트집을 위한 트집일 뿐이다.화성의숙의 군사학을 구식이라고 하지만 김일성에게는 구식이 아닌 신식 군사훈련을 받을 기회는 1940년대까지 주어진 일이 없었다. ㈁당시 만주의 독립운동가 속에는 이씨왕조를 다시 일으키려는 전덕원 같은 복벽파가 있었고 정의부 청년들에게도 그 영향이 있었다.또 미국식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안창호 계통의 인물들과 학생들도 있었다. ○요주의학생 신분 김일성은 이런 민족주의 군사학교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전학」하였다.박만포선생에 따르면 그는 전학 이전에 이미 살부회에 들어가고 있었다.부친이라도 부르주아 같으면 타도한다는 「이론」의 소유자는 화성의숙에서는 요주의 학생이게 마련인데 그는 「전기」에서 사실을 거꾸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1」140∼148면 ②같은 책 149면 ③평전 74∼75면 ④「불멸의 자욱을 따라」전4권 1978년 당간 ⑤「세기와 더불어Ⅰ」150∼154면
  • 화가와 화공/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굄돌)

    일찍이 사숙재 강희맹은 그림을 논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대체 사람의 기예는 비록 같지만 마음을 쓰는 것은 다르다.군자가 예술을 하는 것은 뜻을 가탁할 뿐이지만 소인이 예술을 하는 것은 뜻을 머물러 두려한다.예술에 뜻을 머물러 둔다는 것은 공사와 예장과 같이 기술을 팔아 그 힘으로 먹고사는 사람의 하는 짓이고,예술에 뜻을 가탁한다는 것은 고인 아사와 같이 마음으로 묘이를 탐구하는 사람의 하는 짓이다.어찌 저에 뜻을 머물러 두어 그 마음을 더럽힐 수 있으랴!」 곧 먹고살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화공이고 묘리를 탐구하는 것 즉 아름다움 그 자체를 창조해내는 것을 목표로 그리는 사람은 화가란 의미이다. 그래서 조선왕조에서는 화공은 천대했지만 화가는 몹시 우대하였다.이에 사대부들도 화업에 종사하는 것을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으며 그로 말미암아 명성을 얻은 이도 적지 않았으니 인재 강희안,사숙재 강희맹 형제를 비롯하여 명종 선조 연간의 양송당 김제,탄은 이정및 인조,효종,현종 연간의 창강 조속,숙종 영조시대의 공재 윤두서,겸재 정선,관아재 조영석,현재 심사정,작암 강세황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그런데 이들이 평생 화업에 종사하면서 고심하였던 것은 어디까지가 화가의 길이고 어디로부터가 화공의 경계인지 구분하는 일이었다. 그림을 그려주고 응분의 윤필료를 폐백으로 받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인데 그 행위 자체만으로 화공의 경계를 넘어섰다 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늘 당면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더구나 국왕의 어진을 그리는 일에 참여하는 문제가 대두되면 참여여부와 참여하면 어떤 자격으로 참여하고 그 논공행상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냐 하는 등의 문제에서 격심한 갈등과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각자가 그런 문제들을 나름대로 해결해 나가고 있지만 이들 사대부화가의 공통점은 결코 그림을 생계수단으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자신의 그림을 애호하는 이들이 어떤 종류의 폐백으로든 윤필료를 대신하면 그것으로 만족해 했고 공감과 공명의 화답으로 대작을 자청하여 기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떤 물리적인 힘으로 그림을 요구할 때는 비록 국왕의 어진을 그리라는 왕명일지라도 벼슬은 물론 목숨까지도 내걸고 정면으로 거부하였으니 숙종의 처남으로 인물화에 능하였던 죽천 김진규가 인현왕후 어진을 그리라는 숙종의 어명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나 관아제 조영석이 세조어진 모사에 참여하라는 영조의 어명을 정면 거절하며 벼슬을 버린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요즘이라고 화가와 화공이 구분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 화가의 기개/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굄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의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조차 초개같이 버리는 이들을 존경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예수가 그런 사람이었고 정몽주나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이 그런이들이었다.이런 분들인들 어찌 목숨이 아깝지 않았겠는가.다만 정의를 수호해야만 세도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투철한 이념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미련없이 포기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인류사회는 사회를 지켜나갈 기준을 다시 세우게 되고 그분들은 그 질서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며 살아남게 되었다.예술이 투철한 이념의 포상이라면 예술가인들 어찌 이런 현인의 범주에서 소외되겠는가.초당삼대가의 하나인 저수양이 선왕의 후궁이던 칙천무후의 왕후책봉을 한사코 반대하다 애주지사로 좌천되어 죽은 것이나 성당서예의 대표자인 안진경이 이희렬의 반란을 회유하러 갔다가 그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피살되는 것 들은 중국에 있었던 그런 실례 중의 한둘이다. 조선왕조에서는 시서화금기 오절로 꼬히던 풍류왕자 안평대군 이용이 세조의 왕취찬탈을 저지하려다 피살되고 낙성으로 추앙되던 난계 박연(1378∼1458)도 80고령으로 오히려 사육신들과 함께 단종복위를 꾀하는 일에 동조하였다가 아들들을 모두 잃고 고향으로 쫓겨나 죽는 것을 그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을 듯 하다. 화가로 불의에 목숨을 내걸고 대항하여 절의를 지킨 이를 꼽는다면 벽은 진재해(1671∼1769)를 들 수 있다.그는 숙종 39년(1713)에 약관 23세로 숙종 어진을 도사한 화원화가였다.32세 때인 경종2년(1722)에 노론사대사을 비롯한 노론대가들이 역모를 도모하였다고 무고하여 신임사화를 일으킨 목호용이란 자가 그 공으로 공신이 되어 6월30일 녹훈하는 자리에서 충훈부공신화상첩에 그려 넣을 화상을 그려달라고 하자 화원의 신분으로 당연히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함에도 결연히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이 손은 이미 선대 왕의 어용을 그렸었는데 어찌 차마 다시 호룡을 그리겠는가』이는 죽음을 각오한 항변이었다.그랬었기에 차마 죽이지 못하였고 영조의 즉위로 정국이 일변되어 목호룡이 역적으로 능지처참되자,영조원년(1721) 4월21일에는 우의정 민진원이 경연에서 국왕께 그 입절하던 사실을 아뢰어 품계를 올리도록 하였다 하니 그 씩씩한 기개를 누군들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2)

    ◎전통적 특질/역사를 관류해온 인본 평등사상/홍익인간­한얼­인내천 등 모두 한 맥락/화랑도의 충­효­신은 정의의 가치체계 한민족은 오랜 민족문화사 전개과정에서 슬기로운 민족고유문화를 바탕으로 시대에 따라 여러 외래문화를 수용하였다.그러나 이를 주체적으로 재창조하면서 특징있는 우수한 한국정신문화를 발전시켜왔다는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민족이 추구한 문화생활은 온고지신의 전통문화 계승 발전이다.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한국인의 정치사상이나 정치사회의식구조를 논의함에 있어 그것이 새롭다거나 또는 어느 선진 특정문화권의 영향이라하여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수는 없다.그 전통적 요소는 역사과정에서 시종일관된 내용과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즉 같은 전통적 요인이라 하여도 농업사회의 경우와 현대대중사회나 또는 오늘과 같은 고도산업사회의 경우와는 그 나타나는 방식이 현저하게 상이할수도 있다. ○지연 등 극복 가능 따라서 전통적 요인이 연속되는 과정에서 창조적 변화가 있고 거기서 고차적인 승화·발전의 요소를 찾아야할 것이다.이와같이 볼때 중요한 것은 역사발전 속에서 어떤 점에 연속성을 인정하고 또 어떤 점에 어떠한 형태의 변화를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다.여기서 한국정신의 전통적 기반의 특질을 살펴보고 그 연속과 변천,나아가서 오늘의 한국실정에 조명,그 바람직한 방향에 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국은 고래로 사회구조의 기본단위로 가족이 중핵을 이루어왔다.고대사회의 씨족·부족으로부터 현대산업사회의 핵가족화에 이르기까지 혈연공동체본위를 자연스런 체질로하여 발전해온 것이다.이런 특수한 상황하에서 한국의 정치는 공공성이나 공익성을 강조하되 그것은 서구의 개인본위의 민주주의사회와는 다른것이었다.다시말하면 개인이 전체속에 매몰된 가운데 집단전체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이를 위하여 상징으로서 가장이나 국가가 중심이 되는 집단주의적 권위체계가 성립하게 되었다. 우리 겨레는 또 일찍이 동질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단일민족으로서의 역사적인 기반위에서 통일민족을 형성·발전시켜왔고 그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의 활력으로써 친족공동체적 통합력 또는 대동주의적 친화력을 배양해왔다.이러한 한민족의 전통문화의 잠재력을 오늘날 정치적 지도 차원에서 국민적 에너지로 결집시켜 힘바람을 불러일으킨다면 오늘의 병폐인 지연 혈연 학연및 직연을 초월할수 있지 않을까 한다.그리하여 공동체의 일체감을 바탕으로 국민화합과 민족통합을 이룩해서 이른바 총체적 위기상황을 타개하고 더나가 남북통일성취에 기여할수 있을 것이다. ○대동적 친화력 배양 우리의 전통문화 속에 남아있는 귀중한 유산으로서의 인본주의적 위민사상과 정의정신에 입각한 순결의지와 정신적 창조성 그리고 진취적 개혁정신과 자주독립을 지향하는 강건한 주체의식등을 오늘에 조명해서 계승해야 한다. 인본및 민본주의적 평등사상은 홍익인간의 건국이념과 조선조의 천·인 합일의 한얼사상,조광조의 지치주의와 율곡의 국시론,그리고 한말의 인내천사상등으로 연면하게 계승되었다.이는 치자와 지도자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고귀한 합리적 지도성을 기반으로 하는 지도자의 정직성과신뢰성을 강조한 것이다.만일 이러한 전통속의 문화적 유산을 오늘날에 되살린다면 이기주의에 빠져 공사를 혼동하고 변절과 기회주의를 일삼아 빙공영사를 다반사로 하는 오늘의 병든 정치풍토를 쇄신할수 있다.또 건전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집단이기주의를 탈피하고 준법사회와 민주화개혁을 추진하는데 활력소가 될것이다. 우리민족의 결백성에 근거한 정의정신은 한국인의 정신적 창의성과 진보주의 개혁정신의 근본원리가 되었다.정의정신은 신라 화랑도에서 충·효·신의 윤리가 되고,고구려에서는 사회정의와 균복의 이상으로,또 고려조에서는 최승로가 제창한 정치개혁논리로서 시무28조와 광종의 관제개혁등으로 나타났다.조선조에서는 사림정치의 대의명분론과 지치주의유신론,혁구경신론,그리고 일련의 실학운동과 한말의 근대화운동등으로 계승되었다. 이러한 전통적 정신구조의 유산은 오늘날 한국과 같이 사회전반에 기강이 이완되어 도덕성이 쇠퇴하고 국민생활에서 가치전도와 부조리가 확산되어 이른바 한국병에 신음하는 소위 총체적 위기상황에서 수용되어야할 가치체계이기도 하다.이는 국정쇄신과 사회개혁의 이념을 정립하고 실천하는데 견인력이 될것이며 나아가서는 개혁과 개방이 촉구되는 세계적 추세에 적응될수도 있다.더불어 복지화와 인간화의 시대적 요청을 우리 나름으로 해결하고 국내정치 안정과 국제협력증진 그리고 세계평화에 기여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근본주의의 맥락인 정의주의가 한민족을 통해 대외적으로 표현되어 나온것이 자주의 원리이다.한민족의 자주독립정신은 역사상 빈번한 외침에 대한 항쟁의 주체의식으로 또한 외래의 우수한 보편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재창조하는 문화수용능력으로서 한민족주체사 전개의 원동력이 되었다. 자주정신의 빛나는 유산은 통일신라에서 지배계층인 육두품들의 국가의식및 문화의식으로,고려에서는 이민족에 대한 항쟁의 주체의식으로,조선조에서는 세종조의 6도4군 국경선확정과 선비들의 애국애족정신이나 민족운동으로 승화되기도 했다.그것은 일제시대에는 민족독립운동으로 각기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한편 자주의식은 문화면에서 고대에 유·불·선(도)을 융합한 최치원의 현묘지도에서 찾아진다.이어 조선조에서 훈민정음의 창제,주체적인 국사전의식정비,과학기술,국악,행약등 민족문화의 창달과 제반 자주화정책 그리고 율곡의 10만 양병설,한말의 위정척사운동과 민족운동에서도 국가적 자주의식이 발현되었다. ○의식구조 개선 시급 이와같은 전통적 정신문화구조는 일제식민통치하에서 많이 변질왜곡되었다.더욱이 해방후의 급격한 사회·경제·정치변동의 혼란속에서 각분야의 지도층과 국민의 정신구조에 부조리를 드러내기에 이르렀다.그 부조리는 대체로 지도층과 국민의 역사의식과 민족적 주체의식의 결여와 정치적 지도력의 빈곤에서 비롯되었다.그리고 한국인의 가치관의 혼란과 의식구조의 후진성등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했다.우리는 이와같은 왜곡된 정신문화 상황하에서 특히 정치사회의식을 개선하여야할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첫째로 역사의식과 민족적 주체의식을 함양하여야 한다.역사의식이란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과 역사관을 의미하며 민족이 어떻게발전해왔으며 또 어떻게 발전해가야 하는가 하는 민족주체사에 관한 자기 나름의 통찰력을 민족사적 주체의식이라고 한다.우리의 정치발전지표가 민주복지국가의 건설이요 정의사회의 구현이며 나아가서 통일민족국가의 완성이라 할때 이에 부합되는 역사의식으로서 무엇보다 민족주의적 자주의식의 정립이다.그리고 민주적 국가관을 확립하는 가운데 이에 준거한 정치발전정책을 체계화,단계적으로 구현해 나가야 할것이다. 둘째로 오늘날의 바람직한 지도자는 인간적 자질에 있어 도덕성과 신뢰성,그리고 공익성과 관용성의 특질을 구비햐야한다.그것은 시대의 역사적 요청인 민주화와 국제화및 개방화 그리고 복지화와 인간화의 제요구를 충족시켜 국민적 일체감을 증진하는데 기여할 것이다.또 우선 내정을 견고히 하고 나아가서 국가의 이익과 민족의 번영을 기약하는 대외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지도자의 길이기도 하다.특히 전통적 유산을 기반으로 정치인과 지도자·공직자의 정치도의 내지 사명의식이 높아져야 한다는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셋째로 한국인의 가치관의 순화와 의식구조의 개선으로 건전한 사회윤리가 확립되어야 한다.오늘날 가치관의 혼란과 배금주의현상 그리고 인간부재와 정치지상주의적 권력지향의 병리가 만연되어 생활질서에 혼란이 야기되고 각종사회 부조리와 범죄행위가 증가되었으며 아울러 시민의식과 직업윤리가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우린 법과 질서의 엄수,공중도덕의 고양,개인의 능력과 업적에 따르는 응분의 대가보장,인간의 인격과 권익의 존중이 요구된다.아울러 사회윤리면에서는 신뢰와 협동,질서와 공익이 제고되고 인간관계에서 상호이해,개인의 발전과 사회발전이 조화된 직업윤리와 소명의식이 제고되어야 할것이다. □김운태 약력 ▲1921년 경기화성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 미네소타주립대 대학원 수료 ▲문학박사(서울대) ▲서울대교수 ▲한국행정학회장 한국정치학회장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원장 ▲현재 학술원회원 ▲저서:「조선왕조행정사」 「미군정의 한국통치」 등 다수있음
  • 애 문화재 수난/무리한 발굴·복원으로 훼손 잦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나라로 잘 알려진 이집트에선 요즘 전국 곳곳이 파헤쳐져 흉한 황토색의 몰골을 드러내고있다.벽화와 집채만한 돌덩이가 포클레인에 의해 어디론가 치워지고 이름모를 예술품들도 자리를 옮겨간다. 그런가하면 푸른색을 띤 회교사원들로 둘러싸인 마을의 테라스에는 사료용 건초더미가 잔뜩 쌓여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선사시대의 무덤들이 마치 황갈색 칸막이를 질러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도시도 「복원과 발굴」이란 이름아래 심하게 훼손돼있다.나일강에 흰 새떼가 떼다니는듯 하던 물위의 집들도 수난을 당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아스완 사막에 자리잡고 있는 웅장한 생 시메온 수도원에도 최근들어 무리한 발굴작업이 진행돼 문화재 전문가들을 안타깝게 하고있다. 이집트당국은 그 옛날 수에즈운하로 가는 지중해의 길목에 자리잡고 있던 알렉산드리아 등대를 재건하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등대는 기원전 2백70년 톨레미왕조시대에 한 고관의 아리따운 신부가 타고가던 배가 칠흑같은 밤바다에서 좌초한뒤 난파사고를 막기위해 건설됐다.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이 등대는 1천5백년동안 서있다가 14세기 이집트를 휩쓴 대지진때 무너졌다. 알렉산드리아 시의 관광관계자들은 알렉산드리아 등대사업이 완료되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및 국제회의센터와 함께 이 도시를 지중해의 일급 관광중심지로 변모시켜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깨끗한 정부와 강력한 정부(사설)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를 신뢰하게 하는 일이야 말로 예나 이제나 변할 수 없는 위정의 첫째 요체라 할 수 있다.국민에게 믿음을 심지 못한 정부라면 그 정부는 허공에 떠있는 것과 같다.민심이 이미 이반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런 정부를 가리켜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진다. 그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바로 청렴이다.깨끗한 정부이다.모든 공직자가 맡은바 직분에 충실한 가운데 공익을 앞세우고 사익을 멀리 하는 것이 피부로 전달될 때 국민은 그 정부를 믿는다.국민이 정부를 믿을 때 그 정부는 강력해지고 나라는 부강해진다.사회기강이 올바로 서서 질서사회가 이룩되는 것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지나간 우리의 왕조시대에 청백리가 현창되었던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할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당선자의 「깨끗한 정치」구현을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대통령 입후보 때부터 윗물 맑기론을 누차에 걸쳐 펼치면서 깨끗한 정부에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온 김당선자는 「대통령직 이수위원회」아래 설치할 「신한국 위원회」로 하여금 그 실천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할 것이라 한다. 그에 따라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 범위확대,장·차관급 이상 공직자의 이취임시 재산공개 의무화,재벌의 정치참여차단 조치 등이 검토·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또 김당선자는 취임 직후 「반부패선언」을 할 것이며 대통령 직속으로 「부정방지위원회」를 둠으로써 「깨끗한 정치」를 위한 길을 지속적으로 모색·연구하여 펴나갈 뜻을 보다 확고하게 천명할 것으로 보인다. 윗물이 맑지 못하고 아랫물이 흐려져 부정·부패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가장 뼈아픈 절망감에 젖어드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며 정직하게 사는 선량한 시민들이다.정직과 성실이 소외와 패배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이것은 위정이 있는 올바른 사회의 모습일 수가 없다.따라서 새로운 정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깨끗하게 이끌어 가려고 하는 김당선자는 「한국병」을 제대로 진단했고 또 가장 올바른 근본적 처방전을 냈다고 할 것이다.그는 도덕사회에 기초한 위정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의지가 어떻게 착실하게뿌리내려 현실화해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과거라고 해서 그러한 노력이 없지 않았음을 국민들은 알고 있는 터이다.우선 모든 공직자부터 이 뜻에 부응하여 공직윤리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고장난명이라고 했다.국민 또한 깨끗한 정부­깨끗한 사회기강이 바로 복지국가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저마다 「반부패선언」을 해야 한다.「깨끗한 정부」못지않게 「깨끗한 국민」으로도 되자는 뜻이다.
  • 고종임금 이름도 「개똥이」라(박갑천)

    지금도 「김간란」 「이입분」같은 「호적이름」의 할머니가 살아 있을 수 있다.이 할머니들의 아이때 이름은 「간난이」 「이쁜이」였고 그렇게 불리다가 출가를 했다.출가한 다음에는 「××형수님」 「△△아주머니」하는 식으로 불렸으므로 「이름」의 필요성이 별로 없었다.그러므로 「김간란」 「이립분」은 사회활동을 위한 이름이 아니라 법률적 필요에 의한 한자표기의 이름일 뿐이다. 아지·예지·아지·아지·아지·아지·아지·아지·아기·아기·아기·아기·아기·아기·아기·예가·아개·아가·아이·아이·예이·애지·애기·악지·악기·악기·악이·악지·악지…등등이 「아지·아기·아이」라는 이름의 한자 표기였다.한 국어학자(고 최범훈교수)가 각종 금석문(김석문)과 노비문서(노비문서)·고문서 및 그밖의 사료(사료)등에서 뽑아낸 것들이다.앞서의 「갓난이」 「이쁜이」와 다를 것 없는 고유어 이름.「글자」로 쓰려면서 그렇게 한자화한 것이다.「삼국사기」(삼국사기:탈해니사금9년조)에 보이는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알지」도 이 갈래의 이름이라 생각케 하는 것.「□」과 「지」가 합쳐진 이름이었다는 견해도 있겠으나 「아지」의 표기가 「알지」였다고 할 것이다. 신문지상에서도 가끔씩 대할 수 있는 남자 이름에 ◎소동·소동·소동,◎계동·개동·개동,◎마동·마동·마동…등이 있다.이름이 천해야 무병장수 한다해서 갖게된 아명(아명)들.◎은 「쇠똥이」,◎는 「개똥이」,◎은 「말똥이」이다.다만 ◎의 경우는 「막동이」(막내아들)일 수도 있긴 하다.그 맥락에서 「서동요」의 「서동」을 「●둥→막둥이」로 해석하는데 대해(양주동)「말똥이」였다고 이설을 제기해 볼 수도 있다.「고려사」(고려사:지지주)에는 「백제무왕=말통대왕」으로 나와 있는바 뜻으로 새길때 「막동이」,음으로 새기자면 「말똥이」로 안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왕으로 말하자면 조선왕조 고종(고종)의 아명도 「개똥이」였다.「점잖게는」명복(명복)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시인이자 영문학자였던 눈솔 정인섭(정인섭)박사가 생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어느 해던가,그가 세계 언어학자들의 국제회의에 나갔을 때다.유럽의 어떤 학자한테 한자로 된 자기 명함을 내밀었더니 질문하더라는 것이다.『당신 중국 사람이오?』하고.그 「창피」이후부터 한글로 된 명함을 쓴다고 했다.아호 「눈솔」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 얘기를 눈솔선생 특유의 재담이냐 아니냐로 몰고 갈일은 아니다.성명 석자 한자로 쓰면 중국사람과 구별이 안된다는 건 사실이니까.대체로 넉자 이상인 일본사람과는 그 점에서 달라진다. 국자생활의 한글화 추세 따라 고유어로 이름짓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얼마전 삼성생명이 자기회사 보험가입자들의 이름을 조사한 결과에도 그 흐름은 나타난다.그에 의할때 남녀 모두 「슬기」라는 이름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음절을 셋 이상으로 하는등 동명이인 없애는 작명법도 생각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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