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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항쟁 80돌 아침에/김삼웅 대한매일 주필

    3·1항쟁 80주년이다. 1세기에 가까운 세월의 더께와는 달리 갈수록 엷어지는 항쟁의 정신을 아쉬워하면서 다시 그날을 맞는다. 해마다 3월이면 3·1정신을 계승하자는 구호는 요란하지만 정작 우리 주변은 일제 잔재로 가득차 있다. 여기서는 지식인들까지 부지불식간에 쓰고 있는 일제가 남긴 ‘역사용어’에 대해 살펴본다. 일제는 한국침략과 지배를정당화시키고자 관학자들을 동원하여 각종 용어를 만들었다. 그런 용어를 우리는 해방 반세기가 지나도록 부끄러움을 모른채 그대로 쓰고 있다. ▲정한론(征韓論)― 중·고등학교 국사책이나 역사학자들의 저서에 ‘정한론’이란 용어가 수록돼 있다. 1860년대 이후부터 일본 정부내에서는 조선을정벌하여 식민지로 만들어야 일본이 대륙에 진출할 수 있고 아시아의 패권을 누리게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일본은 이미 강호(江戶)시대의 해방론(海防論)에 이어 막부(幕府) 말기의정한론,다시 명치 이후에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일한일역론(日韓一域論)으로 한국침략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먼저 정(征)자의의미를 살펴보면,두인변과 바를 정(正)자가 합쳐서 생긴 회의문자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 또는스승과 제자 즉,올바른 웃어른이 어린아이의 잘못을 꾸짖어 훈계한다는 뜻이다(여씨춘추). 또 다른 의미에는 정(征)이란 천자(天子)가 죄인을 호되게 꾸짖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여진정벌’이나 ‘대마도정벌’의 경우,도발하는 외적을 응징할때 주체적 의미로 쓴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는 의미의 ‘정한론’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일제의 침략론’으로써야 옳다. ▲이조(李朝)― 우리 역사에 ‘이조’란 나라는 없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합병하면서 한국민에게 조선왕조를 격하,한 씨족사회를 합방했다는 점을 인식시키고자 만든 용어다. 즉,일본은 ‘조선’이란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씨족 대표가 지배하는 사회를 해체하고 대신 자기들이 다스리게 되었으니독립운동이나 애국심 따위를 갖지 말도록 조작한 용어다. 이런 것도 모르고 우리는 ‘이조 500년’,‘이조백자’,‘이조시대’ 어쩌고 하면서 역사를 말한다. 정식국호는 ‘대조선왕국’(1894),‘대조선제국’(1895),‘대한제국’(1897)이고 통칭 ‘조선왕조’또는 ‘조선’이라 써야 옳다. ▲의병토벌―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일본군이한국의병을 토벌했다는 기록이 많다. ‘토벌’은 관군이 반란군을 진압하는것인데,왜병은 관군이고 우리 의병은 반란군이란 말인가? ‘의병학살’로 써야 한다. ▲당쟁― 흔히 조선왕조가 ‘당쟁’으로 망했다고 말한다. 당쟁이란 용어는일본인들이 만들었다. 대한제국의 학정참여관을 지낸 幣原단이 1907년에 쓴‘한국정쟁지(韓國政爭志)’에서 처음으로 ‘당쟁(黨爭)’이란 용어를 쓰면서 조선시대를 당쟁시대로 부정적으로 규정했다. 細井이란 자는 “조선사람의 혈액에 특이한 검푸른 피가 섞여 있어서” 당쟁이 여러 대에 걸쳐 계속되고,결국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체질론을 폈다. 조선시대에 파쟁이 심했던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을 비롯,어느 나라든 정도의 차이일 뿐 정치적 파쟁은 있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에는 ‘붕당’이란 용어가 사용됐다. ▲민비― 고종의 왕비 민황후를 일제는 민비로 비칭했다. 1895년 일본공사미우라가 일본군대와 정치낭인들을 내세워 왕궁을 습격하고 황후를 시해한뒤 정권을 탈취하는 을미사변의 만행을 저질렀다. 대한제국 정부는 1897년명성황후로 추책하고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일제는 한국의 황후를 시해한 만행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민비’라 부른 것을 우리가 그대로호칭한다. ▲모의(謀議)―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모임을 ‘모의’라고 표기하는 경우가흔하다. 모의는 “옳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한 음모”를 말하는데,독립운동이옳지 않은 일인가.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협의’나 ‘논의’로 써야 한다. ▲징용(徵用)― 일제시대 많은 한국인이 전쟁터나 탄광으로 강제로 끌려가노역에 시달렸다. 이를 ‘징용’이라 부르는데,원래 징용은 국가가 사람을불러 일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징용’당한 것이 아니라 ‘강제노역’당한 것이다. ‘징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신대― 정신대란 몸을 던져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일제에 끌려가 성노예 노릇을 한 여성을 어찌 정신대라 부를까. ‘일본군 강제 위안부’라 표기하자. 3·1항쟁 80주기를 맞아 일제의 용어 한가지라도 바로 잡으면서 선열들의구국정신을 기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kimsu@
  • [사설]3·1 정신으로 제2국난 극복

    기미년 3·1독립항쟁 80주년을 맞는다.남북분단 상태와 우리의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북한의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정지)상태에서 맞는 3·1항쟁은 과거 어느때보다 의미가 각별하다고 하겠다. 3·1항쟁은 개항을 전후하여 외세에 대항하면서 전개된 일련의 민족운동의결과로 민족내부에 축적된 독립운동 역량이 자발적으로 발산된 항일구국투쟁이다. 3·1항쟁 이후 전국을 휩쓴 시위상황을 보면, 집회 1,542회, 참가인원 202만 3,089명,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만 5,961명, 피검자 5만 2,770명, 불탄교회 47개, 불탄민가가 715채나 되었다.이러한 수치는 일제의 은폐에도 불구하고 밝혀진 것에 불과하고 실제는 더 많은 희생을 가져왔을 것이다. 비록 3·1항쟁은 일제의 잔인한 탄압으로 엄청난 희생을 낸채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드러냈으며,중국 인도 베트남 필리핀 이집트 등 피압박 민족의 해방투쟁의 봉화가 되었다.이런 의미에서 3·1항쟁은 세계피압박민족해방투쟁의 선구적 혁명이라 하겠다. 3·1항쟁은 갑오농민운동·애국계몽운동·의병운동을 비롯하여 모든 민족운동이 집약되고,그 이후의 항일구국운동도 여기서 발원하는 민족운동의 요람이다.계층 노소 지역 성별 신분을 초월한 거족적인 항일투쟁이었다.봉건왕조에서 식민지로 전락한지 9년만에 전민족이 대동단결하여 통일역량을 보여주고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일깨웠던 구국항쟁이었다. 대한민국 존립의 준거 3·1정신은 바로 오늘 우리가 존립하는 대한민국의 준거이기도 하다.그것은 3·1운동을 계기로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임정은 26년 동안이나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카이로선언을 계기로 민족해방을 쟁취하게 되었다. 임정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에 놓여있음을 유의하여앞으로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할 결의를 가진다”라는 카이로선언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3·1항쟁은 순수한 민족역량의 자발적인 결집이고 발산이었다.흔히 학계 일각에서는 3·1운동이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받아 일어난 독립운동으로 평가하지만,당시 일제의 철저한언론통제로 파리평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발표됐을 때 유일한 국내 한글신문이었던 총독부기관지는 한줄도 보도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한국민중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북한 학계일각에서 주장해온 러시아 10월혁명의 영향설도 비슷한 상황으로서 한국 민중이 이를 알 수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다.당시 러시아 한인사회에서는 국내의 3·1항쟁 소식을 접하고 3월 17일에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축하회를 개최한데서도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있다. 국민화합의 가치관 3·1항쟁으로 시작된 민족의 저항은 마침내 8·15해방으로 귀결되었지만 통일조국을 이루는데는 성공하지 못하였다.내부분열과 외세개입 때문이었다. 그리고 분단과 동족상쟁과 대결의 시대가 50년 이상 지속되면서 남한의 IMF사태,북한의 모라토리엄상태로 민족적 시련을 겪고 있다. 오늘 우리의 형편은 일제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면서도 겨레가 하나되어 독립항쟁에 나섰던 선열들에게 부끄럽고 죄스런 모습이다.분단 남쪽은다시 동서로 갈리고 지역별로 토막쳐서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야간의 비생산적인 정파싸움,제 밥그릇 챙기기에 개혁을 거부하며 거리투쟁에 나선 일부 세력,부패와 복지부동의 관료집단,탈세와 외화도피를 일삼는 반사회적 기업가 등 반 3·1정신적인 행태가 도처에서 국난극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80년전 선대들의 애국정신을 회복하는 역사적 결기(結起)가 있어야겠다.망국의 백성들이 손에 손을 잡고 일제의 폭압에 맞섰듯이 3·1정신으로 다시하나되어 IMF국난을 극복하고 분단조국 통일의 구심점으로 삼아야겠다. 우리 건국이념이고 민족통합의 원형질인 3·1정신을 화합과 통일이념으로승화시켜야 한다.그리하여 작은 이해와 갈등 따위는 80년전 선대들의 구국정신으로 용해하면서 10개월 후 열리는 2000년대에 한민족이 세계무대에서 우뚝서는 이념적 지표를 세워 나가자. 3·1항쟁과 항일구국투쟁으로 희생된 순국선열과 그 후손들이 대접받고, 양심적이고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정직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이것은 50년 만에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를 통해 집권한 金大中정부의 책무이면서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국민이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의 정부’를 선택한 것은 바로 3·1정신을 잇는 ‘정직한 역사’를 만들자는 소망의 결집이었다.3·1정신은바로 정직한 사회·정직한 국가를 만들자는 겨레의 소망이며 실천운동의 거대한 축(軸)이다.
  • 행자부, 사이버캠퍼스 ‘유혹’

    ‘1만 1번째 접속하는 분에게는 도서상품권을 드립니다’ PC통신업체의 판촉구호가 아니다.정부가 공무원 교육훈련을 위해 인터넷으로 운영하는 ‘사이버 캠퍼스’가 내건 슬로건이다.‘행운 페스티벌’로 이름붙여진 이번 행사를 통해 ‘손님’을 더 많이 끌어보겠다는 것이다.물론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다. 행정자치부가 사이버 캠퍼스를 개설한 것은 지난 1월4일.교육훈련의 패러다임이 일정기간 교육기관에서 받는 교육에서 원하는 내용을 원하는 장소에서,원하는 시간에 받을 수 있도록 바뀌어가고 있는 데 따른 변화이다. 사이버 캠퍼스의 운영은 아직 초기단계이다.핵심프로그램인 ‘사이버강좌’는 테마강좌와 영어광장(English Plaza),정보(IT)기술강좌,서평·신간서적안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가운데 테마강좌는 ‘조선왕조실록은 어떤 과정을 거쳐 편찬되었을까’‘문서실무’‘보안실무’ 등 업무에 필요한 전문및 교양강좌가 실려있어 인기가 높다. ‘행운 페스티벌’은 7일 영어광장을 새로 단장한 것을 계기로 마련했다.1만 1번째 방문객과 함께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접속건수가 가장 많은 사람을 한 달에 한 사람씩 선정해 도서상품권을 준다.‘함께하는 영어’ 코너에 글을 올려 이용자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는 영어교재가 주어진다. 사이버 캠퍼스에 접속하려면 현재는 행정자치부 홈페이지(www.mogaha.go.kr)를 거쳐야 한다.그러나 사이버 캠퍼스가 모든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이달안에 독자적인 주소(www.training.go.kr)로 접속이 가능토록 할 방침이다. 행자부는 올 하반기 중앙공무원교육원에 ‘사이버 멀티미디어 훈련센터(가상공무원교육원)’가 문을 여는 것을 계기로,장기적으로 일반대학의 학점취득까지 가능하도록 사이버 캠퍼스를 확대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 경제프리즘-정부부처 명칭 또 바꾸나

    정부조직 개편작업이 진행되면서 또다시 정부부처 이름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재정경제부에서 일부 기능을 떼어내고 붙여서 ‘재정부’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지난 94년 재무부에 기획원을 합쳐 ‘재정경제원’으로 만들었다가 작년에 ‘재정경제부’로 개명한 지 1년만이다. 기획예산위는 ‘기획예산처’나 ‘기획원’또는 ‘경제자문위원회’로 달리부른다는 말도 있다. 얼마전 정부는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바꾸었다.새 정부들어 ‘외무부’는 ‘외교통상부’로 개명했다. 재벌 회사가 간단한 로고를 하나 바꾸면 수억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한다.정부 부처가 이름을 바꾸면 주차장의 팻말부터 각 과장급이상의 명패,기안용지까지 바꿔야 한다.적어도 부처별로 수억원의 개명 비용이 들 것이다. 국민들은 사실 ‘안기부’와 ‘국가정보원’간,‘재경원’,‘재정경제부’와 ‘재정부’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며 오히려 헷갈리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태조부터 갑신정변때까지 400여년간 이조(내무)와 호조(재무)라는 이름을 지켰다.고려시대 등 그 전에도 왕조가 바뀌기 전에는정부 부서 이름을 그대로 고수했다.일본의 대장성이나 통산성은 일부 기능의 조정에도 불구 1900년대 이후 이름을 바꾸지 않고 있다.미국은 정권교체에도 불구 그대로 ‘재무부’이고 ‘국무부’이다. 기업들은 이미지를 대폭 혁신하거나 통폐합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상호를바꾼다. 정부가 실체의 큰 변화도 없이 일부 기능조정을 이유로 부처 이름을 바꾸려는 것은 전시행정과 행정편의주의적인 냄새가 짙다.개명보다는 기능위주의개편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 나라도장 ‘국새’ 37년만에 재탄생

    나라도장인 국새가 37년 만에 새로 태어났다.손잡이가 거북 모양에서 봉황으로 바뀐 새 국새는 2월부터 사용하게 된다. 행정자치부는 “62년말에 제작된 현재의 국새는 해마다 1만6,000여 차례 이상 사용해 인면(印面)이 손상된 데다 재질이 은으로 되어 있어 국새의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제기돼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새로 만들었다”고 밝혔다.새 국새는 봉황이 무궁화 꽃잎을 함께 물고 구만리 창공을 웅비하는 모습으로 돼 있다.21세기에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 국가지도자와 온 국민이 하나가 돼 화합·협력하는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금으로 제작하던 과거 전통을 되살려 금·은·구리 등을 합금해 18금으로만들었다.인면의 크기는 조선왕조 때의 국새 크기와 비슷한 가로·세로 10.1㎝씩이다.무게는 현재의 국새보다 다소 무거운 2.15㎏이다. 서체는 훈민정음 판본체와 한글창제 뒤 최초의 작품인 ‘용비어천가’‘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 등의 서체를 참조해 만들었다. 국새는 사무관 이상의 국가공무원 임명장이나 훈·포장증,외교사절의 신임장,중요 외교문서 등에 사용하는 관인으로 국가 상징물 가운데 하나다.朴賢甲
  • 日 대표적 고전 ‘겐지이야기’ 완역 출간

    일본의 대표적 고전문학 작품인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의 ‘겐지 이야기’(원제 源氏物語)가 전용신 고려대 명예교수에 의해 국내 처음으로 완역돼나왔다.전3권,나남출판. 11세기 초에 씌어진 ‘겐지 이야기’는 약 1,000년전 일본의 왕조 전성시대 궁중생활을 배경으로 한 애정소설.주인공인 왕실의 귀공자 히카루 겐지(光源氏)의 생애를 통해 사랑과 풍류,권력과 음모 등이 어우러진 귀족생활의 전모를 생생하게 다룬다.모두 54책에 달하는 대작으로 70여년에 걸쳐 4대의 천황과 430여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모노가타리(物語)’는 일본 고대문학의 한 장르로 영어로는 보통 ‘tale’로 번역된다.‘겐지 이야기’는 최초의 모노가타리는 아니지만 이전의 모노가타리문학과 일기문학을 통합한 헤이안(平安)시대 문학의 집대성으로 간주된다.일본문학의 기원을 이루는 이 작품은 지난 10세기 동안 그들 감수성의 원천으로 작용해 왔다. ‘겐지 이야기’와 관련해서는 몇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작자인 무라사키 시키부는 당시 궁녀였으며,셰익스피어의 경우에서처럼 시키부를 중심으로 한 집단창작이라는 설이 있다는 점이다.또한 작품을 읽는 중간에 고려(高麗)에 대해 시사하는 부분을 만나게 되는 점도 주목할만하다.작품 초입에 고려인 관상가를 등장시켜 겐지의 운명을 예견하게 한 점이 특히 시선을 끈다.
  • 金三雄 칼럼-방울새와 조개 노리는 어부

    ”삼한이 나날이 서로 싸우니 백만창생이 고통 속에 지새웠네.신라·백제는 어찌 몰랐던고,입술이 다치면 이빨이 시린 것을.수당(隨唐)이 방울새와 조개 모두를 노리는 어부인데도.” 조선 초기 재상을 다섯번이나 지낸 문인 서거정(徐居正)이‘삼국사를 읽고’란 글에서 개탄한 내용이다. 지금 일본 보수세력은 북한의 금창리 핵시설 의혹과 광명성 1호 발사를 계기로 군사첩보위성 도입과 전역미사일방위(TMD)체제를 서둘고 있다.최근 일본 언론은‘노동미사일 실전배치’‘대포동미사일용 지하기지 건설’ 등을대서특필하면서 한반도 위기설을 제기한다. 연립정권을 발족한 집권 자민당과 자유당은 유엔평화유지군(PKF)에 대한 자위대의 참가동결 해제에 합의하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분담금(10%)도 거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이른바‘강성국가 건설’노선과 미사일개발이 일본 보수세력에 명분을 주고 재무장의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이와 관련,최근 중국 외교부대변인은 일본의‘평화헌법 준수’를 촉구하면서 급속한 우경화에 우려를 나타냈다.한·미국방장관은 연례안보협의회에서 북한에 핵의혹 해소와 미사일개발 중단을 촉구하고,한·일국방장관회담에서는 양국 국방당국간 핫라인 개설과 해군합동훈련에 합의했다. 북한의 모험주의적 현실 인식이 일본의 재무장과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부른다.북한은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을‘반통일 대결론’으로 치부하면서 계속‘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론’을 제기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햇볕정책에 호응하는 것이 사는 길이다.‘햇볕’이란 용어가 거북스럽다면 화해정책이면어떤가.문제는 대결 아닌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의 길을 찾자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과 화해협력의 바탕에서 당국자간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한국정부가 상호주의원칙에 융통성을 보이면서 비료,종자 등 농산물자의 지원 계획을 밝히고 성의를 보였다.북한도 상응하는 자세로 나와야 한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먹는 문제 해결을 공식 언급할 정도로 식량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상태다.우리가 지원할 씨감자나 슈퍼옥수수 등이 파종 시기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햇볕정책이북한체제가 당면한 위기를 넘기는 좋은 기회인 데도 이를 대결론으로 받아들이면서 강경론을 펴는 것은 북한 스스로는물론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못하다.오로지 일본에 구실을 줄 뿐이다. 남북한은 고려의 삼한 통일 이후 1,300년 동안 봉건왕조와 일제식민지를 함께 겪은 민족공동체다.분단 반세기 만에 북한은 300만 기아자,남한은 170만실직자라는 지극히 어려운 공동위기 시대를 맞게 되었다.그리고 미국과 일본에서는 한반도 위기설이 나돌게 되었다. 과거 신라는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북한은 소련과 중공을 끌어들여 6·25전란을 일으켰다.지금 한국은 미·일과 협력하여 북의도발에 대비하고 있다.역사에 부끄러운 원교근공(遠交近攻)정책을 끝내기 위해서는 북한이 변해야 한다.‘민족’이란 접두어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화해협력의 길에 나서야 한다.북한은 변화를 통해 대통령이 제기한 핵의혹과 미·일 수교 등 일괄타결론이 성사되면 경제건설에 큰 도움을 받을 수있을 것이다. ‘극단의 시대’를 쓴 영국의 에릭 홉스봄은베를린장벽 붕괴시점을 20세기종점으로 시대구분한다.유일한 냉전지대 한반도는 언제까지 20세기로 남을것인가.지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4자회담이 평화체제 구축과 긴장완화의 전기가 됐으면 한다.남북당국은‘방울새와 조개 모두를 노리는’어부를경계해야 한다.
  • 일본의 대륙 경제침략 낱낱이 폭로

    아시아 지역의 경제사정 악화로 일본의 재등장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20세기초 일본의 아시아 대륙 금융침략 실상을 파헤친 책 ‘돈의 전쟁’(상·하2권)이 번역 출간됐다.저자는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으로 일본 부동산은행을거쳐 현재 일본 채권신용은행 총합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다다이 요시오(多田井喜生)씨.다다이씨는 87년에 출간된 ‘조선은행사’ 집필자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이 책의 원제는 ‘대륙으로 건너간 엔(円)의 흥망’.번역자는재무부 관리와 주택은행 지점장을 역임한 辛永吉씨(현 한국장서가협회 회장).두 사람 모두 전·현직 금융인이다. 이 책은 부제 ‘조선은행권과 엔을 앞세워 대륙을 먹어 들어간 진상’이함축하고 있듯이 청일전쟁·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이 조선·대만·만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엔화의 유통권역을 대륙으로 전개해 나간 과정을 담고 있다.저자는 당시 활동했던 인사들의 증언과 일본정부의 비밀 공문서를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번역자 신씨는 이 책을 “일본의 대륙 침략사를 경제면에서 본 다큐멘터리”라고 평가하고 있다.일본으로서는 치부랄 수 있는 부분을 일본인 저자가 파헤친 점도 이채롭다. 이 책의 내용중에서 한국의 독자가 흥미를 가질 만한 대목중의 하나는 제2장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한국은행’편.1909년 10월 安重根 의사가하얼삔역에서 처단한 이토는 흔히 ‘한국 침략의 원흉’으로 일컬어지고 있다.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토는 ‘일본은 한국을 합병할 필요는 없다’며한국의 자치 육성을 지향했던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런 이토가 ‘한국병합론’에 찬성하게 된 계기는 한국의 중앙은행,즉 한국은행의 설립을 놓고 당시 가쓰라 다로(桂太郞) 총리와의 타협 때문이라는 것.한국통감 취임후이토는 일본 제일은행 경성(京城)지점에서 한국의 중앙은행 업무를 빼앗아새로 중앙은행을 설립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그런데 가쓰라가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한국의 금융권을 장악하려 하자 이토는 가쓰라의 ‘한국병합론’을 수용하는 대신 가쓰라는 이토가 추진하던 한국중앙은행 설립을 받아들였다는 것.한국은행(조선은행의 전신·1904년 4월 설립) 설립을 놓고 이토와 가쓰라간에 치열한 줄다리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저자가 이 책에서 처음으로 밝혀낸 사실이다. 지난 95년 러시아정부와 일본정부간에 러시아혁명 당시 사라진 로마노프 왕조 소유의 금화(金貨)·금괴의 행방을 두고 논쟁이 인 적이 있다.당시 러시아의 한 일간지는 “일본이여,‘감춰둔 금’을 돌려달라”고 보도했었다.이는 일본정부에 혐의를 둔 것이었다.그러나 심증만 갈 뿐 물증이 없어 이 논쟁은 이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로마노프 왕조의 금화 가운데 150t의 금이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동송(東送)되었는데 그중 일부가 만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밝히고 있다.저자는 당시 러시아주재 재무관과 일본 대장상 사이에 오간 극비 암호전문을 인용,이를 처음으로 폭로하였다. 이밖에도 이 책은 관동군이 만주국 경영을 위해 아편 밀매를 장려한 사실이나 상호예치라는 미명하에 지폐를 남발한 사례 등 대륙침략기 일제의 치부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한국산업정책연구소(이사장 金尙榮)가 연구소 창립 25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기획,출간했다.지선당 발행,상·하 각 권 1만2,500원.鄭雲鉉 jwh59@
  • 지난 1천년간 50대 갑부 선정

    │뉴욕 연합│지난 밀레니엄(1001년∼현재)의 최고 갑부는? 월스트리트 저널은 11일 무어족의 지도자 알-만수르에서 빌 게이츠,쿠빌라이 칸과 앤드루 카네기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0년 동안의 최고 갑부 50인을 선정,소개했다. 이 신문은 밀레니엄 초기의 최고 갑부들은 국가 통치자이거나 이웃 국가를점령해 부를 차지하는 정복자들이었다고 밝혔다.아랍어로 ‘정복자’를 뜻하는 알-만수르(938∼1002),현재의 아프가니스탄에 속하는 가즈니 왕조의 마치무드(971∼1030),칭기즈 칸(1162∼1227) 등을 들었다.50대 거부에 포함된 민간인들은 14세기 이후 생겨났다.피렌체의 무역상 필립포 디 아메데오 데 페루치(?∼1303),무역과 금융업을 겸한 독일의 야코프 푸거 2세(1459∼1525)가대표적 인물.20세기 인물은 빌 게이츠를 비롯,10명이 올랐다.그 10명은 다음과 같다. ●헤티 그린(1835∼1916)-금융투자 ●카네기-철강●록펠러-석유 ●돈 시몬 이투르비 파티노(1860∼1947)-광산업 ●칼루스테굴벤키언(1869∼1955)-석유 ●미르 오스만 알리 칸(1886∼1967)-인도 시프자히왕조의 마지막 통치자 ●T.V.숭(1894∼1971)-금융투자 ●폴 게티(1892∼1976)-석유 ●하지 하사날 볼키아(1946∼ )-브루나이 국왕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회장
  • 대한광장-200년만의 도약

    힘겨운 1998년은 가고 1999년의 새해가 밝았다.새해는 20세기를 마감하는 해이다.그리고 민주화의 개혁을 정착시켜야 하는 해이다.지난해에는 경제파탄을 수습하느라고 민주화 개혁은 문제 제기나 부분적인 것에 그쳤다.이제는농업협동조합을 농민에게 돌린다든지,유신체제의 산물들을 개폐한다든지,본질적으로 인간주의를 고양할 민주화 개혁을 정말 구조적으로 정착시킬 차례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인간을 발견하고 인간을 위한 근대적 개혁을 시도했던 것은 18세기 조선후기의 개혁에서 비롯되었다.그때 사회경제적 변동이나 실학이 대두했듯이 괄목할 변화와 개혁이 추진되었다.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정확히 말해서 1801년부터 보수적 반동인 세도정치가 등장하여 봉쇄 당하고 말았다.그후 각종 개혁운동 및 계몽운동으로 새롭게 시도되었으나 결국에는 일제의 침략으로 짓밟히고 말았다.독립운동을 통하여 다시 근대화를 일으켜 역량을 성장시키기는 했으나 자갈길의 달구지처럼 한계가 많았다. 독립운동을 계승한 해방후의 개혁운동은 미·소의 군사점령과남북분단,그리고 6·25남북전쟁으로 난도질 당하고 그 위에 남북 공히 왕조시대를 방불할 독재정권을 맞아 갈기갈기 찢기고 말았다.남한에서 4·19혁명으로 극적인 전환을 보는듯 하였으나 군사정권의 엄습으로 또 파탄의 운명을 맞아야 했다.하지만 민주화의 물줄기는 흩어지는가 하면 모이고,숨는가 하면 솟아올라 대하(大河)를 이루는 법,사라질수는 없었다. 4·19정신이 운명을 다한 것 같았지만 다시 솟아올라 60년대의 6·3항쟁과3선개헌 반대투쟁,70년대의 유신 반대투쟁과 부마민중항쟁,80년대의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항쟁으로 발전하면서 이 땅에 민주주의의 줄기찬 전통을 심었다.세계에서 드물게 보는 아래로부터 민주화를 달성한 전통인 것이다.그것은 처절한 희생의 대가였지만,처절하고 숨막히는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오늘의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다.위로부터 민주화를 이룩한 이웃나라들에 비하면얼마나 자랑스러운 한국현대사인가? 그렇게 보면 1801년부터 지금까지,200년래의 과제였던 개혁을 오늘 우리가달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그것은 21세기를 맞는 세계인의 자세이고 21세기우리의 최대과제인 통일을 준비하는 채비이다.다만 공동정부로 말미암아 보수화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어 마음에 걸린다.민주화의 용광로를 믿는다.98정권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불을 지펴라.국민이 93년에 김영삼을 택하고 98년에 김대중을 선택한 이유는 그들의 독단과 카리스마적 매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개혁의 창조자로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93정권은 가시적 개혁을 이루고도 군사정권의 핵심적 독버섯을 도려내지 못하여 그 독에 감염돼 경제파탄에 이르고 말았다.그 독버섯이란 정경유착과 군사독재를 비호하던 권위조직들의 발호였다.그렇다면 98정권은 정경유착을 분쇄하면서 모든 사회조직을 점검하여 교수들의 모임도,의사·변호사·세무사·관료·농민들의 모임도 뒤집을 것은 뒤집어라.부정부패의 온상도거기에 있다.바로 그러한 개혁이 1999년의 정의이다.앞을 가로막고 있는 통일의 길도 더욱 훤하게 열어 젖히면서 말이다.기묘년의 토끼처럼 민첩하게뛰자.그리하여 ‘200년만의 도약’이란 영광을 안지 않으려는가?
  • 李泳禧-姜萬吉교수 대한매일 새해 특별대담

    ●한양대 대우교수 ●평북 삭주·69세 ●한국해양대졸,미 노스웨스턴대신문대학원 수료 ●조선일보외신부장 ●한양대 신문방송학과교수 ●한겨레신문 논설고문 ●주요 저서‘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10억인과의 대화’ 올 99년 한해는 우리 사회의 묵은 비리를 청산하고 개혁에 박차를 가해 새 로운 천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역사적 전환기다.대한매일은 새해 벽두 李泳禧(한양대 대우교수)·姜萬吉(고려대)교수의 특별 대담을 통해 분단 50 년사에 걸친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점과 향후 개혁 과제들을 짚어보고,나아가 21세기 우리가 지향해야할 좌표를 모색해 보았다. ●李泳禧교수 나는 프레스센터에는 종종 들어와 봤지만 옛 서울신문 건물에 들어오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4·19때 기자를 하면서 학생들 대열에 오히려 앞장섰습니다.당시 경무대 근처에서 수도관을 굴려 올라가는 앞에 섰습니다 .경찰이 총을 쏴서 골목에 숨었다 내려오면서 보니까 서울신문이 불타고 있 습디다.오랫동안 체했던 것이 내려가는 통쾌함을 맛보았습니다.나는 권력의신문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서울신문이 대한매일로 이름이 바뀐 것을 보니 뭔가 시대가,역사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느낌이 아닌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姜萬吉교수 얼마전 서울신문이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꿀 때 글을 기고한 적 이 있습니다.한 신문이 제호를 바꿔 원래 이름을 되찾는 발상 자체가 이 시 대가 어떤 시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 같습니다.저도 옛 서울신문 건 물을 찾기는 이번이 처음으로,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 미가 있는 것 같군요. ●李교수 60년대 중반 모 신문의 정치부에 있었을 때 부장 이하 11명의 기자 가 있었습니다.그런데 朴正熙정권 초기 12∼13년 사이에 정치부 기자 9명이 장관,국회의원이 되거나 청와대 비서실에 들어갔습니다.한국의 신문인들은 평상시 한 눈은 직업에,한 눈은 청와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우리 신문인들 은 조금만 위상이 올라가면 벌써 사팔뜨기가 됩니다.내가 이름을 말하지 않 아도 짐작이 가는 다른 신문도 마찬가지입니다.역대 군사정권에 간교한 사회 통제,언론 통제 탄압의 기법과 수법을 가르치고 앞잡이가 된 것이 한국신문 의 정치부 기자들입니다.흔히 요즘 일각에서 지난날 정치를 망친 것이 서울 법대 출신이라고 하지만,나는 실생활을 통해 바로 신문기자들,주로 정치부 출신이 이 나라를 망쳤다고 봅니다.65년까지는 언론인들도 절개를 지키고,사 회정의를 위해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언론의 정도를 가려고 하는 풍토가 있 었습니다.그러나 朴정권 들어서 3∼4년 뒤부터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군인들이란 일체의 윤리관념이 없는 집단입니다.오로지 목적의식만 있 고 동기,과정,윤리적 의식이라곤 없는 집단입니다.그것이 한국 사회 전체를 무질서,몰(沒)윤리 사회로 몰아가는 원리가 됐습니다.거기에 언론기관,신문 인이라는 사람들이 특혜와 입신영달과 권력과 출세를 위해 군과 일체화됐습 니다.정권은 곧 부패하기 시작하고 나라의 재부(財富)를 자기 것처럼 뜯어먹 기 시작합니다.이 때 자기 추태를 국민의 눈에서 변론해 줄 부패한 신문이 필요해집니다.이런 것이 되풀이돼 왔습니다.신문이 타락하면 무책임해집니다 .바로 우리 신문이 그렇습니다.함부로 쓰는 것이지요.요즘 모 신문이 역대 독재 정권 아래서 정권을 쥐고 놀던 작태를 되풀이하다가 들통이 나는 모양 입니다. 뉴욕타임스 경우는 미국의 대학 박사학위 논문에서 인용의 공식적 근거가 됩니다.뉴욕타임스가 100% 제 책임을 다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신문이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수칙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한국의 신 문은 그렇게 인용할 가치가 없습니다. ●姜교수 내 전공이 역사학이기 때문에 언론에 대해 평소 하고 싶은 말이 많 았습니다.신문기사는 어떤 사실을 보도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치관을 갖고 다 뤄야 합니다.현대사회에서 신문기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사료가 됩니다.신문 기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시대적 상황에 얽매여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겠지 만 사회가 더 나은 곳으로 가도록 하는 가치관을 제시해야 합니다.요컨대 인 류 역사 전체의 방향에 중점을 두고 기사를 쓰고 신문을 제작해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요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출입하는 곳을 춘추관이라고 하는데, 본 래 춘추관은 역사를 편찬하는 곳이라는 점에서도 신문의 사명은 자명해집니 다. ●李교수 이미 상식이 된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정한 숙정과 개혁의 아픔을 거칩니다.그러나 유독 언론계만 한번도 지난날의 적폐에 대해,지난날 저지른 과오와 국민을 오도한 죄과에 대해 반 성하고 스스로 비판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명시하는 일 없이 넘어가곤 했습니 다.몇 대에 걸친 군사정권을 거치는 동안 왜곡된 논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주필이나 논설위원 한 사람이 펜을 놓고 물러난 일이 없습니다.그 아래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무책임성이 체질화된 것입니다.‘국민의 정부’ 5년은 다 시 과거로 돌아가느냐 안 돌아가느냐 하는 기틀을 만드는 분수령이 되는 기 간입니다.이번에 정말로 언론계 스스로 각성해서 내부적으로 개혁하거나,시 대적 사명과 요청에 합당하도록 탈바꿈해야 합니다.근래에는 언론이 나아가 야 할 방향이 제시되고 있는데도 언론기관 내부에서 일부 저항이 일어나고 냉소적 풍조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참으로 걱정이 앞섭니다. ●姜교수 조선 왕조 때 사관은 임금 옆에 앉아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 습니다.태종 같은 왕은 제왕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고 재야에서 거칠게 자라 언행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그래서 아예 사관을 옆에 두지 않으 려고 했으나,당시 사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금의 모든 언행을 기록하겠다 는 식으로 대단한 기개를 보여줬습니다.현대의 기자가 일개 직업인으로 과거 조선 왕조 때의 사관과 같을 수는 없지만 자기 직업의식이 투철하지 못하다 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이들은 권력 쪽만 쳐다보게 되는 경향이 있 습니다.기자나 교수 등 지식인사회에서 사명의식을 갖고 한 평생을 바치려는 직업의식이 부족한 것입니다.과거 조선시대의 경우 자질과 능력이 없으면 상공업에라도 종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천민으로 전락한다고 생각한 게 큰 문제였습니다. 권력도 자기 개혁을 해야 하겠지만 국민의식도 너무 권력지향적인 역사적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해방 이후 일제시대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했던 친 일파들이 고스란히 남아 높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군사정권에서는 군인들이 그 뒤를 이어 권력을 독차지했습니다.문민정권도 군사정권의 태(胎) 안에서 탄생,그들과 타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친일파 들이 자연도태된 기반 위에서, 군인 중심의 권력에서도 벗어나 비로소 국민 이 처음으로 역사의 주인으로 참여하는 정부입니다.이 상황이 정착되어야 합 니다.다시 과거로 되돌아 가는 일이 생겨선 안됩니다. ●李교수 우리가 분단상태로 반세기를 지나면서 통일은 커녕 평화공존의 가 능성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큰 수치입니다.독일 민족 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2차대전 후 대국 수뇌들은 자기들 이해관계 조절을 위해 많은 민족과 국토를 억지로 합치기도 하고 또는 억지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해결이 이루어졌습니다.독일민족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던 통일을 일궈냈습니다.독일은 지난날 침략과 평화 파괴의 행적 때문에 앞으로 상당한 기간 두 개의 국가로 존립한다는 공식 조약까지 맺었었습니다.4대국 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독일을 절대로 통일 시키지 않겠다고 했었습니다.그 런데 독일은 통일이 됐습니다.독일 통일은 외부세력의 균형 파괴에 의한 것 이 아니라 민족적 각성과 정치적 숙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새 대통령의 민 족관,통일관,남북관계에 대한 철학은 그 어느 시기의 정권이나 대통령보다 훨씬 성숙하고 길게 내다보는 면이 있습니다.나는 앞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그래서 한결 희망을 갖습니다. ●姜교수 해방 이후 50여년이 지나면서 커다란 기득권 세력이었던 친일파들 은 거의 도태됐습니다.다시 형성된 기득권 세력은 군사정권하에서 성장한 군 부와 재벌 및 언론과 교수 등 지식인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金泳三 전 대통령의 문민정권은 경제나 남북문제에서 큰 실책을 범했지만 그래도 군의 횡포를 약화시킨 점은 평가받을 만합니다.지금의 국민의 정부는 재벌문제와 씨름중인데 그 해체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반드시 그 방향은 바꿔 놓아야 합 니다.언론개혁도 자체 개혁에 맡긴다고하고 있으나,시민운동이 여기에 가세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재벌문제와 언론개혁문제에 시민운동 단체가 적극성을 발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교수,기자,심지어 의사 등 90년대 들어 사회개혁에 앞장선 지식인들의 (불 의에 대한)‘ 저항 자산’이 시민운동 확산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지식사회가 사회에 산재한 수많은 문제들 뿐만 아니라 자기 개혁 노 력에도 힘을 기울여 사이비 지식인이 설 땅이 없어지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李교수 지난해 11월 특정 목적,즉 53년 전 헤어진 누님과 형님의 생사 여 부를 확인하러 북한에 갔습니다.고향에 갈 수 있느냐고 북에 정식으로 요청 했고,북에서 회답과 함께 초청장이 왔습니다.통일부에 허가를 신청했더니 허 가를 선선히 내줍디다.처음부터 특정 목적을 위해 북에 간 것은 鄭周永 현대 그룹 명예회장 이후 내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그러나 만나고자 했던 혈육들 이 4년 전 모두 돌아가셔서 서러운 귀향이 됐습니다.우리 정부는 방북 목적 이 반국가적이거나 하지만 않다면 거의 다 허가하는 것 같습니다.내가 북한 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조그마한 사건입니다.앞으로 이같은 사례가 확대 발전 돼 교류와 접촉의 기회가 촉진돼야 합니다.동해안에서 북의 잠수정이 그물에 걸리고 하는 것은 대세를 돌릴 만큼 중대한 사건이라고 보지 않습니다.북한 은 金大中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알레르기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북한의 대외 정책 책임자 3명과 이야기를 했는데 ‘햇볕정책’이라는 말(표현)이 싫다는 겁니다.지금까지 주체적 존재로,그런 철학을 갖고 살아왔는데 “팬티를 벗 기겠다는 것이냐”는 겁니다. 올 99년 한해는 우리 사회의 묵은 비리를 청산하고 개혁에 박차를 가해 새 로운 천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역사적 전환기다.대한매일은 새해 벽두 李泳禧(한양대 대우교수)·姜萬吉(고려대)교수의 특별 대담을 통해 분단 50 년사에 걸친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점과 향후 개혁 과제들을 짚어보고,나아가 21세기 우리가 지향해야할 좌표를 모색해 보았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민주열사 열전(20회)

    민주열사열전 시리즈가 20회로 막을 내린다.어두웠던 시대에 조국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고 고단한 싸움을 벌이다 생을 마감한 이들의 진실은 무엇이었을 까.그들은 굴절된 현대사에서 희망의 빛이었고 그들의 희생적 투쟁이 밀알이 되어 오늘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그들의 진실 밝히기가 현재와 미래를 더 욱 의미있게 하기 위한 과거의 재창조 행위라는 인식에서 시리즈를 이어갔다 .그동안 독재정권에 의해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이들을 제자리로 돌려야 한다는 작은 소망의 표현이기도 했다.시리즈를 마무리하며 그 의미와 성과 를 짚어보는 좌담을 마련한다.가톨릭대 安秉旭교수와 李相勳변호사,전국민족 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金學喆사무국장,대한매일 金三雄주필이 자리를 같이했다. 金三雄주필:8월7일 장준하선생편을 첫 회로 시작된 시리즈가 5개월만에 마 무리하게 됐습니다.제도언론 매체로서는 처음으로 반독재투쟁에 몸을 불사른 인물들의 행적과 사상,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역사적 의미,유족과 동지들의 근황 등을 총체적으로 담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安秉旭교수:언론뿐만이 아니라 유관단체를 포함해서도 처음이라고 봅니다. 민주화투쟁을 하다 희생된 분들의 증거로 그분들의 업적은 중요합니다.이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뒤늦은 감은 있지만 대한매일이 어려운 여건 에서 이러한 작업을 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金學喆국장:이번 시리즈는 하나의 사변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진실이 뒤집어진 상태에서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과감히 밝힌 것이 언론 계의 ‘사변적 사건’이란 의미입니다. 李相勳변호사:한 건의 의문사를 해결한 것만큼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과거 군사독재에 의해 저질러진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법 률 제정 등에 가장 강력한 압력수단의 역할을 했습니다. 安교수:더 이상 잘못된 50년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중요합 니다.과거역사를 청산하고 정리해 새로운 역사를 위한 디딤돌의 의미가 깊다 고 봅니다. 金주필:‘항일운동을 하다 산화한 이들에게 붙였던 ‘열사’라는호칭이 부 적절하다,과거지향적인 것을 꺼내어 국민분열을 부추기는 행위다’라는 지적 이 있었습니다.하지만 민주화를 위해 몸을 불사른 사람들은 열사로 불리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봅니다.또 역사적으로도 두번 다시 잘못됨을 되 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에 연재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金국장:보훈처 관계자의 열사호칭에 문제가 있다는 기고를 보고 제가 반론 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항일정신이나 반독재의 민주화 정신은 구국의 의미 에서 맥을 같이합니다.과거를 덮어두고 어떻게 제대로된 미래가 나오겠습니 까.밝은 미래와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청산이 꼭 필요 합니다. 安교수:민주화 정신은 항일정신만큼 높이를 같이한다고 봅니다.아직 민주화 에 대한 인식이 덜 보편화되어 있어 항일정신과 민주화정신을 구분하려는 것 같습니다.더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이러한 논란이 나오 지 않을 것입니다.과거에 대한 진실이 허심탄회하게 밝혀졌을 때 미래지향적 인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金주필:우리 역사를 보면 가장 투철했던 시대정신이 있습니다.신라의 화랑, 조선시대의 의병·승병,한말의 의병,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들이 그 정신을 주도했습니다.해방 후 그 대를 잇는 것이 바로 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이라고 봅니다.그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지탱될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아직 그들 에 대해 의미부여가 덜 되어 있습니다.현 정부도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세 워졌는데 그들을 홀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李변호사:민주열사 예우와 보상 관련 법안 작성에 민족민주운동의 개념문제 가 불거졌습니다.보상과 명예회복을 전제로 한 민족민주운동 개념의 실례가 부족하고 사회적 일치점도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金주필:해방후 반민족행위자 규정처럼 민주화운동 유공·희생자들과 관련해 역사·사회학계 등의 주도로 전 국민적인 토론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또 활발한 학술토론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安교수:민족민주운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밀렸던 숙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입니다.개념 설정과 인물의 구체적 선정과정에서 큰 논란이뒤따를 것입 니다.하지만 우리 민주화에는 큰 희생이 있었다는 큰 틀에서 볼 때 그러한 논란은 지엽적인 문제일 뿐입니다.공개적인 논의과정에서 문제를 하나씩 충 분히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金국장:열사들이 유공자 대우를 바라고 민주화투쟁을 한 것은 아닐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결국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독재정 권에 맞섰던 민주화투쟁의 정당성 획득의 의미입니다.폭압적 공안기구와 정 권의 부도덕성이 낱낱이 파헤쳐져 그러한 행태가 줄어들고,장기적으로 없어 져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데 법 제정의 의미가 있습니다. 金주필:나치 치하에서 함께 저항하던 사람들과 함께 죽지 않고 살아남은 죄 를 야스퍼스는 ‘형이상학적 죄’라고 했습니다.군사독재 치하에서 살아남은 우리들도 야스퍼스가 말한 ‘형이상학적 죄인’에 해당될 것입니다.마땅히 희생된 이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관련 법률안을 만 들어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합니다.기념관을 세워 그들의 뜻을 기려야 하고 묘역을 조성해 민주성지로 만들어야겠지요.또 어렵게 살 고 있는 그 유족들을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조선왕조시대에도 병자·정묘 호란 희생자들의 자손들을 7·8대까지 돌봐준 예가 있습니다. 安교수:민주열사 관련 법안은 다음 세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더이상 독재하에서 저질러진 반민주적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징 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둘째는 그들의 행적을 조사·정리해 기념관 등을 조성해 모아놓고 학교와 국민교육에 적절히 활용하게 하는 것입니다.셋째는 그 유족들에 대한 적절한 배상과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李변호사:현재 국민회의가 내놓은 최종 법률안인 ‘민주유공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돼 있습니다.이 법안이 통과되면 가해자 측면에서는 진상규명,피해자 측면에선 명예회복과 예우 및 보상에 직접 당사자가 될 것입니다.하지만 시기와 적용대상이 처음 작성할 당시의 원안에서 많이 축소됐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安교수:정당별로 이해관계에 따라 이견을 보이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항력 적인 면이 있습니다.보훈대상자 선정이 아직도 계속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 주유공자 선정문제도 장기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역사속으로 사라져간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장차는 이런 분들까지 발굴해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金주필:이승만정권 이후 최근까지를 포괄하는 법률안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이번 기회에 촉구해야하지 않을까요. 金국장:처음엔 1945년 이후로 잡아 법안 작성을 추진했습니다.하지만 집권 여당에서도 부담을 갖고 반대했습니다.보수 기득권층의 반발을 감당하기 힘 들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그래서 절충한 것이 3선 개헌을 기준으로 잡은 6 9년 8월7일 이후입니다.하지만 이 문제는 법안 개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개선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安교수:전거가 없어 법률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법률안이 다른 나라에도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는,자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국회의원들도 자신이 국회의원일 때 역사적인 법률을 만들 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눈앞의 위기 탈출에만 급급하지 말고 한달이 아닌 1 0년 앞을 내다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金주필:일각에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로 생각하고 위기감을 갖는 사람들 이 많은 것 같습니다.하지만 진실규명 차원에서 참여기회를 주고 적절한 배 상과 보상을 통해 화해의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金국장:유가족도 진상규명을 원합니다.처벌이 아니라 진상규명을 통해 진정 한 고백과 사과를 받으면 용서한다는 입장이지요. 李변호사:예우·보상은 진상규명의 전제 위에서 가능합니다.결코 떨어질 수 없는 문젭니다.진상규명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입니다. 金국장:국회에 상정된 법안은 늦었지만 의미 있습니다.‘형이상학적 죄’를 짓고 있는 우리들이 열사들의 뜻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대한매일은 이 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습니다. 安교수:민주열사들에 대한 공적인 자리매김을 대한매일이 했습니다.시리즈 에서 다룬 인물들은 우리 자랑스런 역사의 출발점이고 굴절된 50년 역사를 그나마 빛나게 한 분들입니다. 金주필:필리핀의 호세 리잘은 스페인 침략시절에 ‘나는 조국의 밝은 새벽 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그러나 밝은 세상의 사람들은 밤사이 스러져간 사람 들을 잊지 말라’라고 했습니다.우리는 바로 밤사이 스러져간 열사들의 희생 위에 지금의 민주화를 누리고 있습니다.그들의 뜻을 기리고 희생을 생각하 는 것은 우리 전부의 의무입니다. 金在暎·任昌龍 kjykjy@daehanmaeil.com [金在暎·任昌龍 kjykjy@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정말 알아야 할 우리음식 백가지/한복진·복려 지음(화제의 책)

    ◎기본적인 전통음식 화보 곁들여 소개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황혜성씨와,그를 뒤이은 두 딸 한복진·복려씨 등 세 모녀가 우리 음식문화의 정수를 한데 모았다. 주변에 흔한 요리책들과 구분되는 점은 단순히 재료·요리법·영양가등을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문화의 주요 영역으로 다루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100여년전 책에 나오는‘효종갱,열구자탕,수정회,너비아니,석류탕,석탄병’등 이름도 아름다운 우리 음식은 차츰 잊혀지고,요즘은 ‘뼈다귀 해장국,부대찌개,쇠머리국밥,통돼지구이’등 천한 이름의 음식이 그자리를 차지했다”고 개탄한다. 이 책을 정리한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쌀밥에서 달걀반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음식을 원색화보를 곁들여 소개하고 그 기원,관련풍속 등도 자세히 밝혔다. 상하 2권에 1,100여쪽에 이르는 노작이다. 황혜성 감수/현암사/각권 2만원
  • “이집트인 인류 최초 문자 발명”/독일 고고학연구소 밝혀

    ◎아비도스 점토판명문·기호… 수메르보다 빨라 【카이로 AFP 연합】 가장 오래된 문자인 표음문자가 발명된 곳은 메소포타미아가 아니라 고대 이집트일 가능성이 높다고 군터 드라이어 독일 고고학연구소 소장이 15일 밝혔다. 드라이어 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는 수메르인들이 가장 오래된 문자형태인 쐐기모양의 글자를 발명했다는게 정설이었으나 이집트 아비도스(카이로 남쪽 500㎞ 지점)에서 새로운 표음문자(사진)가 나와 최고(最古)문자 논쟁이 일게 됐다”고 말했다.이번 발견으로 가장 오래된 문자형태인 ‘읽을 수 있는 표음문자’의 시기가 수메르 문자보다 200∼300년 앞선 BC 3200년경으로 추정되게 됐다. 그는 새 문자가 아비도스의 이집트 고대왕조 이전 지역에서 발견된 점토판 명문(銘文)이나 기호 약 170개,도기의 잉크 명문 100개 등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 국악 원로 김천흥 선생 구순 기념 공연

    ◎궁중의 樂·歌·舞 어우른 보은의 잔치/후배·제자 출연 수제천·춘앵전·천년만세 등 선사 원로 국악인 심소(心韶)김천흥 선생(국립국악원 원로사범)의 구순 기념공연이 16일 오후 7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다. 김옹은 한국 국악학계의 제1세대 학자인 만당(晩堂)이혜구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국악계 최고 원로.1909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옹이 궁중예술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2년 당시 국립아악사 양성기관인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에 2기생으로 들어가면서부터.김영제,함화진 등으로부터 제례악을 배웠고 해금을 전공하며 양금과 아쟁을 익혔다.23년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50수(壽)잔치 때 무동(舞童)으로 뽑혀 임금의 천수를 기원하는 춤을 추면서 무용과도 인연을 맺었다. 악(樂)·가(歌)·무(舞)등 전통예술을 두루 익힌 김옹은 이후 궁중무용 재연 발표회,처용의 이야기를 엮은 ‘처용랑’,대금의 역사를 각색한 창작무용극 ‘만파식적’,‘정악양금보(正樂洋琴譜)’같은 저서 등을 통해 우리 궁중예술의 계승·발전에 힘써 왔다.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과 제39호 처용무 기능보유자로 국민훈장모란장과 한국문화대상을 받았다. 이번 무대는 부산교대 이두원 교수를 비롯한 후배 및 제자들이 김옹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정농악회와 심소춤연구회,해금연구회,서울악회,국립국악원 정악단 등 5개 단체가 나와 관악 ‘수제천’과 궁중무용 ‘춘앵전’,‘처용무’,해금합주 ‘천년만세’,관현악 ‘취태평지곡’,가곡 ‘태평가’ 등을 선사한다.(02)580­3130
  • 장쩌민의 인민복/李慶衡 논설위원(外言內言)

    일본을 방문중인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6일 아키히토(明仁) 일황(日皇) 주최 궁중 만찬에서 ‘인민복’차림으로 참석해 일본측을 긴장케 했다.일본측은 중국측 관계자들에게 ‘예기치 않은 차림’에 대해 조심스럽게 타진했으나 “별 의미가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장주석은 28일 와세다대에서 “일본은 정확한 역사관으로 국민과 청년을 계도해야 하며 군국주의의 사조와 세력이 거듭 대두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했다. 사실 인민복은 1911년 청(淸)왕조를 거부하고 공화제의 중화민국을 건국한 중국혁명의 선도자 쑨원(孫文)이 처음 착용한 복장으로 그의 아호를 따 일명 중산복(中山服)이라고도 한다.그후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등샤오핑(鄧小平)등 중국지도자들은 물론 인민들도 즐겨 입었었다.반제국주의,사회주의혁명과 평등의 상징이었던 인민복은 최근 중국의 개방화와 함께 청바지를 선호하는 젊은이들로부터 서서히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일전쟁을 체험한 역사의 증인’이라고 자처한 장주석이 해외여행에서는 잘 입지 않던 인민복을 입은 것은 따지고 보면 와세다대 연설의 예고편이었다.국가지도자의 만찬복식은 이처럼 외교무대에서 무언의 웅변으로 작용한다. 진한 감청색의 인민복 차림으로 일황과 건배를 하는 장주석의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우리 생활한복의 국제무대 진출을 생각해본다.세계적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오늘날 무슨 한복타령이냐 할지 몰라도 남북화해의 회담이나 모임에서 다함께 한복차림으로 만난다면 그 분위기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남쪽은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강조한 생활한복으로,북쪽은 고구려 냄새가 물씬 나는 복식을 입고 나온다면 그 만남의 절반은 성공할 것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한반도주변 4강이나 제3국인에게도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외교무대의 만찬이나 파티때도 정통한복이나 품위있는 생활한복 차림으로 나선다면 ‘한국의 메시지’를 말(言)이전에 먼저 전할 수 있을 것이다.
  • 충무공의 七年不解帶(金三雄 칼럼)

    조선왕조의 국난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었다. 왜란때는 전 국토가 왜병에게 짓밟히면서 수많은 백성이 참살되고 전란으로 굶어죽거나 유행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시산혈해를 이루었다. 호란때는 임금이 직접 청태종에게 항복하고 군신관계를 맺었으며 역시 국토가 호병(胡兵)에게 유린되었다. 조선조는 두차례 국난에 이어 한말에는 일제의 침략으로 망국을 당했다. 왜란과 호란의 상처와 양차 국난을 겪고도 각성하지 못한 지도층의 무능 때문이었다. 우리는 반세기 짧은 건국사에서 두번째 국난을 겪고 있다. 한일합병 이후 최대 국치라고도 하고 6·25 전란 이래 최대 국난이라고도 한다. IMF체제를 맞은 지 1년, 참으로 숨가쁜 1년이었고 고통의 세월이었다. 임진란때 의주로 몽진한 선조가 “이런 국난을 겪고도 또 동인 서인할 것이냐”고 개탄했지만, 오늘 정치권이나 재벌기업, 사회지도층 행태를 보면 국난극복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것 같다. ○국난극복의 저해 부류 여느 해보다 춥다는 이 겨울, 지금 전국의 실업자 수는 157만명(9월말 현재)으로 지난해 이맘때부터 하루 평균 3,700명씩 쏟아지고 재직 근로자의 60%가 감봉을 당했다. 서울의 2,600명을 포함, 전국적으로 2만명이 넘는 노숙자가 한데 생활을 한다. 대량실업 사태는 가족 동반 자살,이혼,실업고아,가출,주부매춘,가정폭력,생계범죄,노숙자 증가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이 붕괴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사회현상이다.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실업은 곧 가정파탄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환난을 불러온 재벌은 빅딜과 구조조정등 개혁에 머뭇거리고 국난의 책임이거나 예방하지 못한 정치권은 정치개혁을 외면한다. 공직자들은 보신과 복지부동으로 숨을 죽이고 수구세력은 틈만 나면 개혁정책을 헐뜯는다. 세간에서는 “대통령 혼자 뛴다”고 한다. 누가 만든 국난이고 환난인데 개혁을 거부하고 헐뜯는가. 먼저 정치권부터 개혁해야 한다. 경쟁의 틀과 게임의 룰을 바꿔서 저비용 고효율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고 선거제도를 고쳐 양심적 개혁인사들이 정치의 중심에 서야 한다. 업종전문화와 빅딜, 재무구조개선 등 재벌개혁이 시급하다. 재벌의 무분별한 선단식 경영과 정경유착이 환난과 부패의 주범인데 재벌개혁이 무산되면 환난극복은 커녕 경제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공직사회의 기강확립에 정부가 혁명적 결단을 보여야 한다.“중소기업 창업 방해자는 공무원”이란 말이 나돌듯이 복지부동의 공직자가 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방·교육계 등 해묵은 공직비리는 새정부에서도 여전하며 경찰과 세무공무원들의 탈선도 바뀌지 않았다. ○충무공 정신으로 IMF체제 1년, 새정권 9개월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기업·금융·노동·공공부문 등 4대개혁 중 마무리된 것이 없다. 정치개혁은 손도 대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마치 개혁이 중단된 듯이, IMF가 끝난 것처럼 행세한다. 충무공 이순신정신을 배워야 한다. 칠년불해대(七年不解帶)! 임진란 7년동안 전쟁때나 휴전때나 공은 전대(戰帶)를 풀지 않았다. 무거운 가죽띠를 허리에 두른채 먹고 자고 언제나 긴장한 그대로 지내면서 외적을 물리쳤다. 지금은 국난기, 아직 IMF터널은 어둡고 춥고 길다. 허리띠를 풀때가 아니다. “저는 오랫동안 진중에 있어 수염과 머리가 모두 희어져서 다음날 서로 만나면 전일의 나로는 알아보지 못하리이다”­충무공의 ‘난중일기’처럼 지도층 인사들이 ‘수염과 머리가 희어지도록’ 노력한다면 국난극복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 한국 언론 변해야 한다(전문가 좌담)

    ◎“총체적 혁신… 바른 언론 다시 세울때”/여론독과점 따른 획일주의… 계도역할 전혀 못해/치외법권지대로 착각 무한경쟁 경영파탄 초래/편집권 독립­소유구조 손질 등 총체적 개혁 시급 한국 언론의 시침은 지금 몇시인가.2000년대를 맞는 우리 언론의 개혁과제는 무엇인가. 대한매일신보사는 11일 재창간을 맞아 비판적인 시각에서 우리의 언론 상황을 짚어보고 미래를 위한 개혁과제를 제시하기 위해 언론학자와 언론단체 전문가를 초청,좌담회를 가졌다. 元佑鉉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교수,鄭大澈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林尙澤 민주언론운동 시민연합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참석자 元佑鉉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鄭大澈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林尙澤 민주언론운동 시민연합 사무총장 ▲元佑鉉 교수=언론의 변화는 정치,경제,사회 등 여러 환경 변화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 IMF관리체제로 인해 경제적 대수술이 진행됐고 정치적으로도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소를 염두해 두고 언론의 현 주소를 직시해야 한다. 대부분의 국민과 언론인들까지 언론의 개혁이 시급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鄭大澈 교수=이제 언론도 변화의 시점이 됐다. 경영 등 외적변화와 함께 질적변화도 병행돼야 한다. 제1의 개화기는 외세 침입에 대응했을 때이고 지금은 제2의 개화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세계화 속에서 국익을 취하는 등의 부국강병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社主 과잉투자책임 회피 ▲林尙澤 총장=현재 국난은 국가 전반적인 점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현 국난을 진단하지 못하고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언론의 책임이 크다. 국난의 극복은 언론이 정상화될 때 가능하다. 언론개혁 없이는 사회개혁도 없다. 일부에서는 언론개혁을 시장경제에 맡겨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정부,시민단체,언론사 등의 중지가 모아져야 할 때다. ▲元교수=IMF이후 언론의 소유·경영에는 시장원리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언론 정체성의 위기는 자신은 시장원리에 따르지 않으면서 제4의 권력으로 자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수급원리에도벗어나 있다. 자신의 주어진 길을 가지 않고 힘만 비대해진 느낌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는 정치권력이 언론개혁에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할 수도 있다. 국민이 원하는 예측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겼다. ▲鄭교수=언론은 총체적으로 문제다. 경영과 편집에서 단선화가 이루어 졌다. 지난 50년대에도 편집권의 자율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근자에는 경영이 편집권 위에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지면은 당연히 조제된 내용에 국한될 수 밖에 없다. 언론은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권리를 되돌려 주지 않고 있다. 언론에 정치·경제적인 영향이 가중되고 있어 언론의 독립성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元교수=지금은 언론의 경영자체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방송의 경우 지역민방에서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얼마전부터 시작된 무한경쟁으로 차별화는 사라졌다. 그래서 경영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언론은 자신을 치외법권으로 생각해 무한경쟁에 열중했다. 그러나 사회중추신경으로서 예측 역할을 제대로 못해 사회가 흔들렸다. ▲林총장=지금 언론사도 구조조정으로 빅뱅 현상이 일고 있다. 이런 문제는 과잉투자에서 비롯됐다. 언론사는 자신이 총체적 파탄상태를 겪고 있으면서도 다른 산업에 대해 얘기할 때는 구조조정을 해야 하느니,빅딜을 해야 하느니 하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언론의 문제가 집약돼 있다. 언론사의 경영파탄으로 직원들이 1차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직원보다 사주의 책임이다. 왜냐하면 과잉투자는 직원이 아닌 사주의 일방적 결정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주는 경영이 파탄에까지 이르고 있지만 재산을 헌납하거나 전문경영인에 맡기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즉 책임지지 않는 풍토가 언론사의 현황이다. ▲鄭교수=독자들의 목소리가 언론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시민운동과 언론이 통하는 채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이런 노력이 부족했다. 80년 이후 시민운동의 양적팽창은 있었지만 언론에 대해서는 시민운동이 얻어낸 것이 별로 없다. 시민과 언론 사이에 소통의 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에는 언론사의 사고의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개혁이나 개선은 어렵다고 본다. 과거 언론은 당장의 어려움만 피하고 보자는 식이었고 어려움이 계속될까 두려워했다. 신문의 경우 50%이상이 광고다. ○자사이익 지상주의 탈피를 ▲元교수=우리나라 신문 편집제작 측면에서 문제를 짚어 볼 필요도 있다. 여기에는 상업주의를 들 수 있다. 현재 언론은 여론 독과점에 따른 획일주의로 치닫고 있다. 즉 다양화가 안되고 있다. 또 편집은 공익성을 앞세운 자사 이기주의가 많다. 즉 포장만 공익을 위하고 실제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상황에 따른 기회주의로 인해 예단성 있는 계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다. 회사의 일관된 입장이 없었다고도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전반적인 언론의 위기를 가져왔다. 구한말에 발행됐던 대한매일신보와 지금의 신문들을 비교해 보면 얼마나 신문의 역할이 변질됐는지 알 수 있다. 서울신문이제호를 바꾼 것은 과거 언론의 역할을 따르겠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즉 언론 제자리찾기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초기 언론의 자세를 되찾자는 의미에서,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의미에서 서울신문의 제호변경을 받아 들여야 한다. ▲林총장=늦은 감은 있지만 서울신문이 제호를 바꾼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한매일이 언론사의 모범을 보여 제자리 찾는데 힘이 됐으면 한다. 여론이 독과점돼 있어 언론사들이 주장하는 방향이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 풍토는 오랫동안 차곡차곡 조성돼 왔다. 그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시민단체들은 이제 언론의 여론 독과점을 타파하기위해 법개정운동에 나설 것이다. 편집권의 보장 등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사법당국은 진짜 큰 사이비 언론은 단속하지 못하고 중소매체만 손보는 식의 단속을 하고 있는 듯 하다. ▲鄭교수=‘나무는 먹줄을 따라 곧아지고 임금은 간쟁을 통해 성군이 된다’고 했다. 언론은 이런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의개념은 옛날 왕조사회에서도 나와있다. 임금에 대해 진정으로 간쟁할 수 있는 언론이 돼야 한다. 지금까지는 언론이 피해가는 부분이 많았다.또 경영과 편집의 투명성도 있어야 한다. ▲林총장=기자의 선발,훈련,출입처 배치에도 과감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언론고시가 계속되면 취재관행도 옛날 것을 답습하게 된다. 선발도 스카우트 등 다양화 돼야 한다. 출입처 제도도 변화가 모색돼야 한다. 이런 일들이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 또 언론사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야 한다. 종업원 지주제 등도 과감하게 도입했으면 한다. 그래야 정권의 눈치보기를 탈피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언론은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 통일 후 커뮤니케이션에 장애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언론이 장기적인 대비를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매일신보’가 귀감 ▲元교수=기자선발의 변화에는 공감한다. 대한매일이 단지 껍질만 바뀐 것이 아니라 내용에서도 바뀌어야 한다.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대한매일신보가 지난 1905년 을사조약시 항일의구심체 역할을 했듯이 지금은 경제난을 극복하는데 앞장 서야 한다. 또 양식있고 격조 높은 큰 언론인을 과감히 받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옛날 대한매일신보는 박은식,신채호 같은 큰 언론인이 주필이 돼 배일 호국을 위해 강력한 논조를 폈다. 지난날의 항일투쟁을 오늘날 IMF극복이나 도덕성회복 등으로 계승하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鄭교수=신문은 결국 기사로 판가름난다. 지난 개화기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번의 제2개화기는 성공해야 한다. 성공을 이루기위한 선도적 역할은 신문에 주어져 있다. 정치·경제로부터 탈피해야 하고 이에 앞서 소유구조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元교수=신문의 제작기획에 있어 과거 편협한 입장에서 벗어나 세계적 흐름에 맞춰 나가야 한다. 또 심층취재나 탐사보도를 많이 해야 한다. 특히 냄비식으로 사건화하는 경향을 버려야 한다. 센세이션을 일으켜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깨야 한다. 한건주의를 추구하다보면 그 신문은 죽을수 밖에 없다. 제작의도,편집권 등에 있어 모든 언론인이 조화돼야 한다. 지금은 어려운시기니만큼 국가이익을 위해 언론은 통합적 기능을 해야 한다. 특히 대한매일신보는 일제 때 국익에 역행되는 일에는 일격을 가하는 등의 일관성있는 기사를 실었다. 지금도 국익을 생각해 힘이 실린 목소리를 내야 한다. ▲林총장=대한매일은 새로운 변화의 시점에 있다. 경영진과 노조는 중장기적인 방향에 관해 많은 토론을 해야 한다. 다시 시작하는 대한매일에 있어 변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 새로쓴 言官史官(金三雄 칼럼)

    언론인 출신의 사학자 千寬宇 선생은 ‘언관과 사관’이란 글에서 현대의 언론인은 왕조시대의 사관과 같다고 했다. 임금의 말 한마디로 생명이 좌우되기도 하는 시대,그 속에서도 할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언관의 책임이라는 것,그는 언관의 기개를 서거정(徐居正)의 말을 빌어 “항뇌정(抗雷霆) 도부월(蹈斧鉞) 이불사(而不辭)”(벼락이 떨어져도 목에 칼이 들어가도 서슴지 않는다)라고 썼다. 추상열일과 같은 언관의 기개다.조선왕조가 끊임없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도 500년 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언관과 사관의 기개 때문이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과 함께 역사를 쓰는 사가들의 기개 또한 대단하였다.단재 신채호 선생이 31세때인 1910년 국치 4개월 전에 안창호·이갑 등과 망명길을 떠나면서 가져간 책이 있다.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東史綱目)’필사본이다. 동사강목은 안정복이 22년간에 걸쳐 완성한 노작으로 단군조선부터 고려말까지를 다룬 실학기의 대표적 역사서다. 단재는 이 책을 짊어지고 고국을 떠나 만주·노령연해주·중국땅을 전전하면서 우리 고대유적과 유물,사서(史書)를 두루 섭렵했다. 단재는 이 책을 자료로 삼고 연구를 거듭하여 ‘조선상고사’와 ‘조선사연구초’등을 집필하였다. 안정복이 단재의 스승인 셈이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역사가의 중요한 원칙으로 ①계통을 밝힐 것 ②찬탄자와 반역자를 엄하게 평할 것 ③시비를 바르게 내릴 것 ④충절을 높이 평가할 것 ⑤법제를 상세히 살필 것을 들었다. 안정복의 다섯가지 원칙은 언론인이 지켜야 할 수칙이기도 하다. 오늘의 언론인은 어제의 언관이고 내일의 사관이기 때문이다. 언관이고 사관인 언론인은 모름지기 역사를 의식하면서 글을 쓰고 말을 해야 한다. 군사독재시절부터 길들여진 냉전논리와 수구세력과의 유착 커넥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젖어온 안보상업주의 멘탈리티를 깨뜨려야 한다. 남북이 차츰 화해와 교류의 물꼬를 트고 서유럽국가들의 정치이념 지도가 바뀌는 터에 냉전의식과 매카시즘으로 중세기적 마녀사냥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히틀러 피아노 건반 언론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앙그리프(Hangriff:공격)’란 신문을 창간하면서 “신문은 피아노 건반이다”고 썼다. 히틀러는 이를 받아서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천국도 지옥으로 느끼게 하고 반대로 더없이 비참한 생활을 낙원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은 나치즘적 언론관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양심세력을 모해하는 글쓰기 행태를 지양해야 한다. 나치가 패망한 지 반세기도 더 지났는데 언제까지 ‘피아노 건반’식의 글쓰기를 한다면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레이몽 아롱의 비판정신 ‘지식인의 아편’을 쓴 레이몽 아롱은 지식인의 비판활동의 유형으로 기술적 비판, 논리적 비판,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들면서, 어떤 유형의 비판활동이든 양심과 진실의 전제가 아니면 비판의 자격이 주어질 수 없다고 했다. 언론인과 지식인은 레이몽 아롱이 지적한 양비론의 기술적 비판이나 길들여진 냉전논리의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지양하고 당당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논리적 비판정신을 따라야 한다. 개혁과 민족화해 ‘시대정신’으로 모아지는 때에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식의 언론활동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그리하여 선배 언관과 사관에 부끄럽지 않은 언론인으로 개혁과 민족화해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
  • 日 소장 조선왕조실록/정부 반환 요청키로

    정부는 일본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의 반환을 일본에 공식 요청키로 한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정부는 실록의 반환을 위해 외교경로 또는 민간 학술경로 등 가능한 방법을 동원키로 하고,현재 실록이 일본에 반출된 근거기록을 수집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행정자치부 정보기록보존소의 한 관계자는 “이 실록이 강탈이나 도난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본측이 돈을 주고 샀을 수도 있어 학술교류,협조서신을 통해 반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은 오대산사고본(교정본)으로 모두 800여책 가운데 46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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