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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 칼럼] 월드컵과 서비스

    월드컵이라는 초대형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새삼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지구촌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점을 느낀다.이는 비단 필자만의 소회가 아닐 것이다. 이제 한국의 상대는 60억 인구의 지구촌이다.과거에는 지역시장과 국가내 시장에서 경쟁을 했다.그러나 이제 그런 차원의 경쟁력으로는 존립의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 만큼 우리는 모두 생각과 행동 하나 하나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돌아봐야 한다.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글로벌 수준에 맞도록 고급화·국제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소프트웨어, 즉 서비스다. 서비스는 상대방에게 관심과 배려,성의를 제공하는 것이다.서로가 서로에게 기쁨과 보람,성취와 행복을 느끼게 하는 선순환의 원리를 말한다.즐겁고 행복한 상관관계는 서비스를 통해 이뤄진다.서비스는 평화를 유지하는 도구인 셈이다. 이 도구를 사용하는 개개인(국민)은 고객(외국인)에게 즐거움을 주고,이를 자신의 기쁨으로 승화시킬 의무가 있다. 고객은 서비스를 받아 기쁘고,고객은 다시자신(국가)을 찾아 줌으로써 그 서비스에 보답하게 된다.이처럼 서비스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원리’에 바탕을둔다. 사람은 몸과 마음의 이원적 존재로 태어났다.그래서 한자에서 사람을 ‘二’또는’11’의 2획으로 표시하지 않고 ‘人’으로 표기했다.서로 협조하고 잘 주고 받는 관계를 유지하라는 뜻에서다. 한국사회에서 서비스 문화가 쉽게 전파되지 못하는 것은 왕조문화·유교문화·군사문화의 탓일 것이다.남에게 굽히면 마치 자신이 아랫사람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때문에 서비스 문화가 꽃을 피우지 못했다. 상대방에게 관심과 배려, 정성을 베푸는 것을 자기 비하나 자기 멸시로 생각하는것은 분명히 잘못된 현상이다.서비스는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만 바치는 것’이라는 인식은 버려야 한다. 과거 어렵게 살던 시대에 서비스는 수직의 개념,주종의 개념으로 파악하기도 했다.하지만 오늘날처럼 국경없이 문물을 주고받는 열린 시대의 서비스는 한정된 지역,제한된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지구촌에서 살아가는 모든 구성원의필수요소가 됐다. 서비스맨은 항상 표정이 밝다.평소 품위와 웃는 얼굴을 유지한다.만약 서비스가주기만 하는 것이라면 서비스맨이 본전 생각이 나서라도 그처럼 밝게 미소 짓고 품격있는 자세를 보일 수 있겠는가.불가능한 일이다. 월드컵을 치르는 우리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친절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독특한 쌍방향 대화와 행복,감동을 줘야 한다. 한국적이고,토속적인 서비스만이 우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때 외국인들은 한국을 다시 찾게 된다. 월드컵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양식,시스템을 과감히 바꾸는 계기가 돼야한다. 허태학/ 호텔신라 사장
  • 덕수궁뒤 美아파트라니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뒤 미국 대사관저 안에 직원용 아파트 건립이 추진되고 있어 문화시민단체 등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춘희(李春熙) 건설교통부 주택도시국장은 17일 “미국대사관측이 관저안의 부(副)대사 숙소를 헐고,그 자리에 8층 높이로 54가구 직원용 아파트를 짓겠다며 협조를 요청,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이 아파트는 대사관 직원용으로,외교관 시설로 봐야 하기 때문에 시행령에 예외조항을 신설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시행령이 개정되면 주촉법 규제를 받는 평형,공급 절차,주차장 등 부대시설 설치 등에서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는 최근 임인택(林寅澤) 건교부장관과 고건(高建) 서울시장을 만나 “대사관 숙소라는 특수성을 감안,일반아파트를 지을 때 적용하는 주촉법규제를 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지역은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 보호구역 내여서 승인여부가 주목된다.문화재청 관계자는 “보호구역이라고 해서 건축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은 없으나 문화재위원회의 현지조사와 심사를 거쳐 문화재나 주변경관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결정이 내려져야 승인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4월 미 대사관측이 숙소용아파트 건립계획을 알려왔으며,지표조사 결과 문화재가 발굴되지 않을 경우 문화재보호법을 이유로 건축을 불허할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관련 인사들은 아파트터가 조선왕조의 왕궁터로 역대 왕들의 영정을 모시던 ‘선원전’이 있던 자리라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문화연대 김성한 팀장은 “세계에서 옛 왕조의 영령을 모신 자리에 외국 대사관 직원을위한 아파트를 지은 사례는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민주당 김민석(金民錫) 서울시장 후보측도 “서울시민과의 형평성과 문화재 보호구역이라는 특수성,민족적 관점에서 특혜는 허용될 수 없다.”면서 반대입장을 분명히했다.서울시의 건립허가 여부도 차기 시장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한 시민단체 관계자도 “서울의 심장부인옛 덕수궁터에 미 대사관 직원용 아파트 건립을 허용하는것은 민족적인 자존심을 고려하지 않는 처사”라며 관련법률 시행령 개정 철회를 촉구했다. 류찬희기자 chani@
  • 전통寫經 전시회 갖는 김경호씨 “”고려청자보다 값진 문화재 원형 살려 복원·보존 시급””

    “사경(寫經)은 어찌보면 고려 청자보다도 더욱 가치있는 문화재인데도 잘못된 인식 탓에 원형복원 노력과 연구가전무한 실정입니다.” 15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백상기념관에서 전통사경 전시회를 갖는 김경호(40)씨.“사경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독보적인 우수성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흔치않은문화재인만큼 원형 복원과 보존이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김씨는 중학교 때부터 불교에 깊이 빠져 불경을 한 자 한 자 그대로 옮겨 쓰는 사경을 시작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고교시절 출가해 1년간 행자생활을 했으나 부모의 만류로 귀가,어렵게 고교를 졸업했다.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뒤 사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입학했지만,기본자료조차 없는 실정을 개탄, 사경 복원에 고군분투해 왔다. 고교시절부터 친다면 23년간사경 외길을 걸어온 셈이다. “우리의 사경 역사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불교가 전래되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절정기를 이루었던 고려시대엔 중국이 오히려 고려에 와서 사경을 배워갈 정도로 번창했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사경은 아주 드물게,그것도단지 서예 차원의 경전 베껴쓰기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지요.” 고려사 충렬왕·충선왕·충숙왕조 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 원 조정에서 많게는 한 번에 100명씩 고려에 관리를 파견해 사경을 제작해갔다고 한다.사경 기술은 중국에서 전래됐지만 전성기인 고려시대의 사경은 서예,회화,금은 공예 등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월등한 종합예술로 꽃피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거 그토록 번성했지만 국내엔 옛 사경을 추적할만한기초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그에 비해 일본에선 오래전부터 사경연구가 활발히 전개돼왔지요.” 그동안 국내 박물관을 샅샅이 뒤졌으나 신통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일본 측 자료에 많이 의존했다고 한다.그런 점에서 현재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국보196호 ‘대방광(大放光)불화엄경’은 주목할만한 유물이라고 강조한다. “8세기 통일신라시대 때의 사경인 ‘대방광불화엄경’은 연대가 분명한 사경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이 사경은먹으로 쓴 것이면서도 표지그림과 경 내용을 설명하는 변상도를 금·은으로 그려 당시 금은 공예가 얼마나 발달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유물입니다.무엇보다 통일신라기인 일본 천평(天平)시대 전국적으로 흥했던 일본 사경의 모태가 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김씨가 치중하는 것은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니라 우수한우리의 사경을 원형 그대로 살려내 발전시킨다는 점.표지와 뒷 발제,경전,변상도로 구성된 양식을 옛 모습 그대로복원하는 것이다.사경작업을 하면서 불교 경전의 원뜻이많이 왜곡된 것을 발견하곤 자구 수정과 일반인들이 알기쉽게 풀어쓰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우선 우리 사경의 의미와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합니다.내년말쯤 그동안 해왔던 작업을 묶어 교본을 낼계획입니다.옛날엔 사경작업이 분화됐었는데 모든 작업을일일이 혼자 하자니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뜻있는 이들이많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금강경,부모은중경,천수경,법화경 약찬게,화엄경 정행품 약찬게 등 50점을 내놓는다. 김성호기자 kimus@
  • ‘한국 고전용어사전’ 나왔다

    한국 고전 문헌에 나오는 용어를 집대성한 ‘한국고전용어사전’이 발간됐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회장 박종국)가 12억원의 예산을 들여 10년간의 작업끝에 내놓은 이 사전은 5권, 총 6005쪽으로 역사서와 문집,법전,운서 등 각 분야 고전에서 뽑은 용어 5만여개를 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고려사절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정사류,경국대전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 대명률직해등의 법전류,여유당전서 삼봉집 등 문집류,용비어천가 석보상절 등 한글 고전류,광개토왕비를 비롯한 금석문 등 100여종이 넘는 고전을 텍스트로 했다. 각 어휘에 대한 단순한 풀이뿐만 아니라 그 쓰임의 예와해당 원문을 수록했으며,올림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유의어,참고어,반의어를 덧붙였다. 사전 편찬작업은 손보기 단국대 석좌교수 김석득 연세대명예교수,이성무 국사편찬위원장,허웅 서울대 명예교수 등으로 구성된 ‘한국고전용어사전 편찬위원회‘가 맡았으며,100여명의 각 분야 전공자들이 힘을 보탰다. 손보기 위원장은 “그동안 제대로 된 고전용어사전이 없어 관련 연구자는 물론 고전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의 불편이 컸다.”며 “새 사전 발간으로 이러한 불편을 크게 덜어주게 됐다.”고 말했다.5권 1질 39만원.문의 (02)969-8851. 임창용기자
  • [만나고 싶었습니다] ‘인기강사’ 된 극작가 신봉승씨

    최근 TV에서 치맛자락에 휩싸인 궁중사극이 판치자 ‘정사(正史)에 바탕을 둔 정통역사극’을 썼던 것으로 평가받는 작가 신봉승(辛奉承·69)씨를 다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80년대에 방영된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을통해 5공화국 당시를 빗대 역사의 교훈을 가르쳤던 기억은 드라마가 끝난 지 12년이 지났어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신씨는 방송에의 관심은 아예 접은 듯 ‘역사분야의 최고인기강사’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있다. 교수와 공무원,대기업 직원 등 지식인층이 그의 강의를앞다퉈 듣고 있고,역사학자 모임에서도 강연요청이 올 만큼 그의 강의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그는 역사의자긍심과 존경할 인물을 잃어버린 이 시대인들에게 조선시대 선비정신인 ‘지행(知行)’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강조하며 지금이야말로 그릇된 역사인식을 바로잡아야할 때임을 강조하고 있다. 28일 그가 운영하는 서울 인사동 ‘한국역사연구소’의문을 열고 들어서니 ‘조선왕조실록’이 먼저 눈을 맞춘다.‘홈페이지 제자’인 10대 후학들의 질문에 답글을 올리느라 컴퓨터 앞에 앉았던 노작가는 ‘인기강사’란 호칭이 쑥스럽다며 웃음지었다. “역사학자의 ‘대타(代打)’라는 생각으로 역사인식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한국의 진로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지식인층이 우리 역사를 알려고 하는 것은 대단히 기쁘고 중요한 일이라 어디든 달려갑니다.” 쇄도하는 강의요청이힘에 부친다면서도 한달에 10회 이상의 강연일정을 마다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조선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규정한다.‘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쓴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느냐.’면서 역사를 두려워하고,역사에서 배우는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다고 말했다. ‘당쟁으로 나라가 망했다.’는 식민사관에 익숙한 사람에게 그의 조선 예찬은 좀 낯설다.그러나 작가에게 2시간여 조선역사 강연을 듣고나면 ‘민족적 자부심’은 자연스레 깊어진다.그래서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를 ‘계몽사학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가 역사에 진정한 관심을 갖게된 것은 70년대 ‘연려실기술’등 야사를 기본으로 한 드라마를 집필하며 적잖은비난에 직면한 뒤였다.그후 사료공부를 본격 시작했고 역사의 행간을 읽어내면서 작가의 역사관은 정립됐다. 늘 고증이 문제되는 역사드라마에 대해서도 그의 견해는명쾌하다.“역사드라마에서 사실(史實)이 맞느냐,틀리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예를 들면 정몽주가 선죽교에서죽었다는 사실이 달라져서는 안되겠지만 그것만큼 중요한것은 우리 선대의 삶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가,잃어가는우리 고유한 정서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민족의 장래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느냐가 더 문제죠.” 최근 대덕연구단지에서의 역사강연 후 한 과학자로부터“앞으로 국가관을 갖고 연구해야겠다.”는 소감을 듣고무척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사법·행정고시 등 공무원이 되기 위해 역사를 단한 줄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도 잊지않았다.“민족의 가능성을 선도해 국민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몫이 아니라,역사드라마를쓰는 작가,역사소설과 역사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의소임”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요즘은 서울 추계예술대학원에서 시나리오작가 교육을 맡고 있다. 허남주기자 yukyung@
  • [씨줄날줄] 대통령의 父情

    “고통스럽고 쓸쓸한 날들이 이어졌다.아들이 원망스럽다가는 아버지로서의 자책이 몰려오는 순간들이 반복되었다.집무를 하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온갖 번민과 회한으로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아들 현철씨의 구속을 앞둔심경을 ‘회고록’에 이렇게 표현했다. 보태고 빼고 할 것도 없이 지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심경이 이와 똑 같을 것이다.김 대통령은 지난 1980년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일 때부인과 세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옥중서신’으로 펴냈다.깜깜하고 희망이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장짜리 엽서에깨알같이 적어보낸 사연에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 자식들에대한 연민과 사랑이 구구절절 담겨 있다.아버지의 망명, 납치,수감,연금기간 동안 성장한 둘째 홍업과 막내 홍걸씨 생각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아버지 때문에 감옥생활을 하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큰아들 홍일씨에 대한 죄책감은 오죽했을까.겪어보지 않은 사람조차도 눈시울을 젖게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중 아들 현철씨 구속을 앞두고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은 “아버지의 책임”이라고 말한 바 있다.5년 뒤 김영삼 전 대통령도 같은 말을 했다.두 전·현 대통령이 지적했듯 이 모두가 틀림없이 아버지의 책임이다.자식이 아버지의 권세를 이용했든,주변에서이를 부추기고 이용했든 간에 어쨌든 아버지로 인해 비롯된일인 것이다. 자식 사랑에는 눈이 멀다지 않는가.김 대통령이 자식들이연루된 비리사건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최근 건강이 좋지않은 것도 부정(父情)과 번민 때문일 것이다.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 그 아버지는 애틋한 부정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게 됐다.권력을 세습하던 왕조시대가 아닌 바에야가족의 일과 국가의 일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에게 각종 비리에 연루된 자식들을 구속하라 마라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닐 것이다.이치에 닿는 대로 내버려둘 뿐인 것이 현실이다.분명한 것은 과거에도 그랬듯 대통령은 한 국가를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것이다.작금의 사태는 국가라든가,그 국가를 지탱하는 법과 제도는한 가족사를 훨씬 뛰어넘는 차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
  • [대한광장] 헌법 비웃는 ‘연좌제’ 유령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13조 3항) 모반이나 반역 혐의자에게 삼족을 멸하던 왕조시대에 비하면 실로 눈부신 인권의식의 성장이 아닐 수없다.연좌제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무엇일까?세습제 왕조시대의 한 장면이 아닐까? ‘단종애사'의 사육신에 얽힌 일화중에 심금을 울리는 대목은 성삼문이 형장으로 끌려 가면서 어린 딸에게 한 말이다.‘너는 괜찮다.너는 딸이니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라던. 왕조의 몰락과 함께 사라진 연좌제는 군국주의 일본이 식민통치 강화를 위해 소생시켰다.아무 법적 근거없이 독립사상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휘두른 이 피묻은 칼날은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인해 고난받아야 했던 숱한 원혼과 짓붉은 상흔을 남겼다. 그래서 동족 학살과 단군 이래의 천문학적 부정축재로 역사에 오명을 남긴 전두환 정권조차도 그 비이성과 반인륜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어 폐지를 결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연좌제가다시 유령처럼 출몰하고 있다. 한밤중에 햄릿에게 몰래 나타나 원한을 애소하던 힘 없는 유령이 아니다.밤비 내리는 음습한 묘지 어드메쯤서 배회해야 할 유령이 나타난 곳은 어디인가.초국적 자본이 지구촌을 휘젓는 세계화의 중심부에 서 있는 21세기 한국의,인터넷 환경이 종이매체의 권위를 붕괴시키고 있는 기술정보 강국의 대선 후보자를 향한 검증 과정이라는 환한 대낮의 광장이다.그것도 민주인권 국가를 소망하는 노벨평화상수상자가 대통령으로 있는 곳이다. 필자는 인권위에서 차별행위 조사와 구제라는 소임을 맡고 있다. 이 서슬 푸른 연좌제마저도 철저하게 차별적으로 적용됐음을 역사는 기록으로 말하고 있다.박정희 전 대통령은 본인이 젊은 한때 남로당 군사책이었고,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장인으로 대구 10·1폭동에 연루돼 사망한 박상희는 그의 형이었다.인근에서 그는 두루 존경받았던 인품으로 전해지고 있다.뿐만 아니라 5공 실세였던 허화평씨는 남파된 동생 때문에 군복을 벗을 뻔했다가 전두환씨의 부하사랑으로 구사일생했다.오랫동안 공화당의 곳간 열쇠를 관리한 김성곤씨 부부는 인민위원회 활동가 출신이다. 반면 권력과 먼거리에 있는 문인들은 피울음을 삼켜야 했다.이문열·김성동·이문구·김원일 등은 작가로 입신해야 했다.이뿐인가.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확인되지 않은 좌익 경력으로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꿈을 접어야 했던가.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남편의 행위 또는 ‘머릿속 생각'으로 고난을 감내했던가. 혈연관계로 인한 책임을 묻는 ‘연좌(緣坐)'든,사제간 또는 친구와 같은 비혈연적 관계의 연대책임을 묻는 ‘연좌(連坐)'든 간에 이는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최고가치로 삼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념에 정면으로 반한다.연좌제는봉건왕조와 군국주의가 체제수호를 위해 제한적으로 쓰다가 버린 낡은 유물이다. 굳이 말하자면 장인 사위관계는 혈연도 아닌 관계이다.설령 혈연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시비선악을 떠나 민족사의아픔이 가로놓인 문제를 두고 손쉽게 경쟁자를 비방하는근거로 들이대는 일만은 제발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한다.일거수 일투족이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는 공론의 장,특히 그 파급력이 폭풍과도 같은 대선후보 검증과정에서벌어지는 연좌제 공방은 깨어 있는 국민을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필자의 친구중에 방송가에서 성공해 이름이 꽤 알려진 이가 있는데 그가 지난해 어느 밤에 불쑥 집에 찾아 왔다.취기가 완연한 얼굴에 눈이 젖어 있었다.북에 어쩌면 살아있을지 모르는 팔순 아버지를 적십자사에 상봉신청하고 오는 길이었다.나는 그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줄로 알고있었다.남편의 월북을 감지하고 평생 홀로 살아온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장래를 염려한 나머지 일찍이 사망신고한까닭으로 그는 입사시에 큰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다.그날 밤,그는 말했다.‘내 가슴에 박힌 못을 누가 알겠노?' △ 유시춘 국가인권위원·작가
  • [네티즌 칼럼] 정치는 正이다

    공자는 “정치라는 것은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政者正也)라고 말했다. 유교의 도덕적인 정치사상은 공자가 활동할 당시인 춘추시대엔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당시 제후국들은 부국강병으로 천하의 패권을 잡는 데 혈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권모술수가 횡행하고 이 때문에 나라의 흥망이 계속 이어졌다. 법가를 국정에 썼던 진나라는 오래 가지 못하다가 다시 분열되고 말았으며 곧이어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면서 왕조를 수성한다는 차원에서 유교를 국시로 정하게 된다. 이 때부터 중국의 역대왕조는 정치에 있어서 유교를 국시로 하였다. 우리도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유교가 국시는 아니었지만 국정에 반영을 했었고 조선시대에는 국시로 정해져 500년 동안 끊임없는 영향을 끼쳐왔다. 조선시대 정치가들이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들로 인하여 백성들이 안정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율곡의 수미법(收米法)이다. 이러한 수미법은 훗날 대동법으로서 전국적으로 시행되어 백성들의 경제생활에 안정을 가져왔다. 그러나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유교의 정치이념은 단절됐고 해방 후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수입되면서 전통과 단절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다. 국민들이 대표를 직접선거로 뽑는데 이때의 선거는 후보들이 어디까지나 국민들을 위하여 정책을 선보이면서 경쟁하는 제도이다. 이 점 때문에 한국민주주의 역사상 최초로 당원뿐만 아니라 국민들까지 포함된 선거로 모처럼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와 희망을 꽃피우고 있는 민주당 후보경선의 시작과 끝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역대 선거 문화를 볼 때 후보들간에 인신공격이 난무했으며 현재 치러지는 여야의 대선 후보경선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네거티브 선거전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전 국민의 축제 분위기를 특정 후보가 ‘대통령' 야심으로 혼탁하게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 식으로 승리를 해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지 답답한 심정이다. 지금은 유권자들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정책으로 경쟁을 하는 게 필요하다. 또 도덕적으로 올바른정치문화를 펼치는 것도 주요한 정책으로 삼는 것이 어떨지 여야 후보들에게 제의해본다. 상식인 바름(正)의 정치도 실천하지 못하고 남의 흠을 부각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선동이나 한다면 국민들은 더 이상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순간의 승리를 위한 권모술수는 법가,진시황의 예와 같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후보들은 명심해야 할 때이다. 이 종 우 홍익대 강사 daecho1@hanmail.net
  • ‘민주사관’ 이달순씨 ‘한국 정치사 논쟁’ 펴내

    한국 정치사를 ‘민주사관’을 적용해 해석해온 이달순(李達淳) 전 수원대 교수가 자신의 정치사적 해석 및 이에대한 다른 학자들의 비평을 담은 ‘한국정치사논쟁’(수원대출판부 펴냄)을 냈다. 지난 2월 정년퇴임한 이 교수는 머리말를 통해 “나의 한정된 정치사적 해석을 바로잡아 보자는 의욕에서 다른 시각의 논리를 대비시켜 독자들의 판단을 유도하자는 취지로 책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필자는 이 책에서 “현대 시민사회에서는 민족사관으로부터 탈피하고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피치자의 노력을 바탕으로 한 민주사관이 필요하다.민주사관에 의해 한국정치사에 접근할 때 우리 민주정치 구현의 길이 열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영명 한림대 교수는 “민주사관적 관점에서볼 때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주의 세력간의 투쟁 속에서 시민사회가 꾸준히 성장했으며,비록 수준이 낮은 단계에 있지만 마침내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엔 이밖에 한국정치사의 시대구분 문제와 고려·조선왕조의지배체제,이승만정권부터 김대중정권에 이르기까지의 집권과정 및 정권의 성격,정치·역사적 평가 등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이에 대한 학자들의 비판적 해석이 잘정리돼 있다. 안외순(이화여대)김호성(서울교대)홍순호(이화여대)이택휘(서울교대)유병룡(정문연)김영식(세종대)김성주(성균관대)교수 등이 비평논문을 냈다.2만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
  • 내밀한 인간삶 글쓰기 축제

    ▲사생활의 역사 1·3·4-아리에스·뒤비 엮음/새물결 펴냄. 80년대 이후 세계 역사학계는 역사연구에 대한 고정관념을깨뜨리는 기발하고 혁신적인 발상의 글쓰기로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정치,왕조,민족,국가 같은 거대담론에 역사의 조명을 맞추는 대신 지금까지는 잊혀져 왔던 개인,민중,그리고인간 삶의 내밀한 부분들에 초점을 맞춰 역사를 재현해냄으로써 인간과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것이다.10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85년부터 프랑스에서 발표되기 시작한 ‘사생활의 역사’ 전 5권(필립 아리에스·조르주 뒤비 엮음,새물결)은 이러한 ‘새로운 역사’의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저서이다. 이 책은 ‘인간의 사생활’이란 내밀하고도 표준화되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로마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통사적인고찰을 시도했다는 점,책임편집을 맡은 프랑스의 두 역사가를 비롯해서 각국에서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40여명의역사학자가 참여해 거대한 학문의 소통공간이 되었다는 점,사회경제사의 고전적 방식은 물론 인구학,역사인류학,심성사,미시사,문화사회학,여성학 등 다양한 접근방식을 망라해 학문의 교향곡을 연주해냈다는 점 등 화제거리가 많다.또한 주제가 주제인 만큼 사용한 자료도 공적인 문서 뿐만 아니라사적인 편지,일기,낙서,그림,소설,심지어 개인 집의 주춧돌에 씌어진 글씨에 이르기까지 내밀성의 벽을 뚫고 들어가기위한 노력이 총동원됐으며 이를 풍부한 컬러도판으로 수록,‘눈을 위한 화려한 축제’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참여자가 많은 대신 학자에 따른 시각과 글맛의 편차가 좀있다.그러나 신선한 발상,다양한 주제,방법론의 차이는 획일적인 시각만을 강요받아 온 우리에게 역으로 시사하는 바가크다고 할 수 있다.예를 들어 필립 아리에스는 중세 사회는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혼재되어 있었으나 19세기가 되자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기 시작했다며 그 원인을 국가의 새로운 역할과 문자해독률의 증가,종교의 새로운 형태 등에서 찾는다.즉 국가가 사법권을 갖춤으로써 개인에게 사적 공간이 주어졌고 독서를 통해 ‘고독한 성찰’이 가능해졌으며 ‘내면적인 신앙심’의 형태 또한 고독한 명상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그는 또 이러한 사태들이집단적으로 침투한 지표들로 타인과의 거리를 강조하기 시작한 예절서,글쓰기 습관,고독 취향,일상생활에서 멋 찾기,사생활이 가능해진 가옥 구조 변화 등을 지목하며 독특한 접근을 계속해간다.이번에 나온 책은 1권 ’로마 제국부터 천년까지’(주명철·전수연 옮김),3권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까지’(이영림 옮김),4권 ‘프랑스 혁명부터 제1차세계대전까지’(전수연 옮김) 등 3권이다.2권과 5권은 연말에 출간될 예정이다.각권 4만3000원. 신연숙기자 yshin@
  • “기록보존소 서고 꽉찼다”

    국가의 각종 기록물을 보존 관리하는 정부기록보존소의서고가 포화상태에 달해 시급한 신축이 요구되는 가운데각 지방자치단체가 유치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정부기록보존소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보존서고는185만권으로 대전·부산서고의 수용능력(216만 4000권) 대비 85%에 이르고 있다.또 최근 필름,광(光) 파일 등 다양한 기록매체의 보존을 위한 특수전문 보존서고 설치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록보존소는 2007년까지 총 499억원을 투입해연면적 8607평 규모의 매체·종류별 분류가 가능한 전문서고를 건축한다는 계획으로 올해 5억 9000여만원의 기본조사설계 예산을 확보했다. 문서고 신축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 자치단체의 유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경기도 구리시가 건축에 따른 각종 편의 제공의 뜻을 비추며 적극 나서고 있고 전북도와전주시,무주군 등은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본실록,적상산사고지 등 역사적 연계성과 지역 형평성 등을 내세워 유치를 추진 중이다.대전의 경우 자치단체보다는 김광희 시의원이 “기록보존소가 있고 대전청사내에 여유 부지가 있는 만큼 당연히 이곳에 들어서야 한다.”면서 유치에 적극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정부기록보존소 관계자는 “현재 포화상태인 사고 신축은 시급한 사안으로 지역에 앞서 기능적인 측면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며 “정보공개 청구의 약 60%가 서울 등 수도권에서 이뤄지고 있는 점도 위치 선정시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
  • 국사편찬위, 올부터 ‘승정원일기’ 전산화도

    해외 소재 한국학 자료 수집과 ‘승정원일기' 전산화 작업이 본격 추진된다. 국사편찬위원회(국편·위원장 이성무)는 최근 ‘2002년 주요 사업'에 관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렇게 밝혔다. 국편은 해외 한국사 자료 수집·이전의 경우 우선 미국과 일본,러시아,중국 등 4개국을 대상으로 사업을 추진키로했다.이를 위해 현재 24명인 국외사료조사위원을 40명으로 증원했으며 재미 사학자 방선주씨가 운영하는 아메라시안 데이타 리서치와 사료 수집을 위한 약정을 체결했다. 총 글자수가 ‘조선왕조실록'의 4.5배에 달하는 ‘승정원일기' 전산화는 올해 9억3600만원을 투입해 현종∼숙종(1659∼1720년) 재위기간(62년)의 기록을 전문 입력하고 이를인터넷으로 공개할 방침이다.오는 2010년까지 총 150억원이 투입되는 대작업이다. 이성무 위원장은 “‘승정원일기'는 한 사람이 평생을 읽어도 통독할 수 없다”면서 “이것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되면 한국 역사학 연구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말했다. 한편 한국사 관련 남북협력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남북공동 한국사연구회’를 운영하고,오는 7∼9월에는 ‘개항기 동북아정세와 한국의 대외정책’을 주제로 한 남북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임창용기자
  • 제주 전국제일 ‘장수마을’

    제주도가 80세이상 장수 노인 점유비율이 전국 1위이며,장수 요인은 근면·검소한 생활태도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용철(李庸哲) 제주도 경로복지계장이 21일 제주대 행정대학원에 제출한 ‘제주도 장수마을을 중심으로 한 장수지역노인들의 생활실태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 논문에 따르면 2000년말 기준 제주도내 80세이상 고령인구는 총 8313명으로65세이상 인구 4만 3334명의 19.1%를 차지하는 등 전국 1위의 장수지역이라는 것이다. 논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주도의 85세이상 고령인구는 타 시·도에 비해 월등히 앞서고 있다.이는 과거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역사적 기록이나석주명 선생이 지난 44∼45년 제주도 노인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장수 원인으로는 무엇보다 선천·유전적인 면을 들 수 있겠으나 80세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부분근면·검소한 생활태도에 기인하고 있다. 제주도 노인 대부분은 70대까지 일 하고 있으며,일부는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밭에 나가 일하면서 건강을유지하고 있다.자식과 같은 집에 기거 하더라도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로 나눠 서로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고부간의 갈등을최소화하는 독특한 주거형태도 장수의 한 요인이다. 장수 노인들은 밤 10시 이전에 자고 새벽 6시 이전에 일어나는 등 수면시간이 8시간이상 되고,식생활은 편식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80%만 먹는 소식 위주로 하고 있으며,된장국은거의 매일 먹고 있다. 채소와 해조류를 좋아하고 육류보다 어류를 즐기고 있다.그러나 특이하게도 장수노인 절반 이상이 일주일에 2∼3회는돼지고기를 먹고 있고 감귤을 즐기고 있다. 제주도 장수 노인들의 식생활 사례를 중심으로 노인들을 위한 표준식단을 개발,보급하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한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제국의 아침’ 광종役 김상중 “기틀 닦은 임금 참모습”

    “노련한 지략가로서의 고려 광종의 면모와 기개를 최대한 살려낼 각오입니다.” 오는 3월2일 첫 방송될 KBS 1TV의 대하사극 ‘제국의 아침’에서 고려의 4대 왕 광종역을 맡은 김상중(37)은 인터뷰 내내 역할에 대한 열정 때문인지 전과는 사뭇 다르게흥분한 모습이었다. 고려의 수도가 가깝고도 먼 북한 땅에 자리 잡고 있었기때문일까? 왕조 초기의 웅장한 서사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TV에서는 고려역사물이 드물었다.김상중이 긴장하는 건바로 이때문이다. 안방극장에서 자주 회자되었던 여느 인물들과는 달리,고려의 광종은 거의 최초로 드라마속에서되살아나는 인물이다. “부담이 큽니다.광종과 관련된 논문도 숱하게 읽었고 사극식 말투도 많이 연습했습니다.고려의 실질적인 기틀을닦은 광종의 진실한 면모를 보여줄 것입니다.” 조선 태조의 자식들이 그랬듯이 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왕건의 아들들도 피비린내 나는 왕권다툼을 벌였다. 광종역시 배 다른 형을 독살하고 왕좌에 오른,어찌보면 비정한인물이다. 김상중은 그동안 사극 ‘홍길동’‘미망’등에 출연하여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제국의 아침’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을 때 우려의 소리도 없지 않았다. 연극·영화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다진 연기자이지만 대중적인 이미지 차원에선 다소 벗어나 있었기 때문. 그러나 단단하게 다져진 몸매에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입고 있었던 것처럼 잘어울리는 궁중의상 차림의 그를 보면기품에 압도당한다. “일제하에서 생겨난 식민사관 탓에 광종 역시 사실과는달리 나쁘게 기술된 책들이 많더군요.그러나 광종은 안으로는 신라,백제민들을 아우르면서 밖으로는 독립적인 연호를 사용했던 자주적이고 자애로운 왕이었습니다.” 차갑고 야무진 이미지에 맞게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그는 이탈리아산 오토바이 MV아우거스타로 스피드를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푼단다. “영하 40도의 날씨에 20㎏의 배낭을 메고 오른 백두산에서 일출을 보니 두려운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백두산의 일출에서 받았던 인상을 살려 근엄하면서도 멋진 왕으로 태어나겠습니다.”이송하기자 songha@
  • 동아시아에 우뚝 세운 한국사

    ■‘오국사기’ 전3권-이덕일 지음/김영사 펴냄. 우리 선조들은 좁은 반도를 서로 갈라 작은 것에 목매며 싸움이나 해댄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넓은 대륙에 말을 달려천하를 다투었고 푸른 파도 넘실대는 해양을 헤쳐나가 정복왕조를 열었던 역사의 승부사였다.일제 식민사관은 한국사를 한반도 안에 가두어 버렸다.그러나 일단의 민족사가들과 ‘역사평론가’라는 새로운 지식인 집단들은 왜곡과 무지의 안개를 걷고 동아시아 한복판에 한국사를 다시 세우고 있다. 역사평설 ‘오국사기’(이덕일 지음,김영사 펴냄)는 우리 역사에 초반도(超半島)의 대륙성과 해양성을 회복시킨 또하나의 현저한 성과물로 기록될 만하다. 먼저 저자는 굳이 ‘오국사기’란 제목을 써 ‘삼국사기’에서 연원한 ‘한국사=삼국사’란 고정관념 뒤집기를 시도한다.그리고 고구려,백제,신라,당,그리고 왜에 이르는 동아시아전체를 한민족의 역사무대로 끌어들여 6∼7세기 한민족의 통일국가 건설 드라마를 서술해 간다. 저자는 이미 전작 ‘우리역사의 수수께끼’에서 전남 나주지역의 백제인 ‘왜’세력이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싸우다 해양을 건너가 일본 왕가를 세웠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전방후원분(앞은 모나고 뒤는 둥근 무덤양식) 등 유적과 유물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새 책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일왕가와 일본고대사를 한국고대사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작업을 편다.1500년 전 백제 모습 그대로인 나라 지역에 독자들을 데려다 놓고 법륭사와 비조사 등 백제인들이 지은 절 안을 거닐게 하고 백제인들이 만든 불상을 바라보게 한다.또한 백제계 일왕인 중대형 황자(천지천황)의 집권과 ‘일본’수립(일본서기에 668년으로 기록)과정 등을 자세하게 밝혀 중대형 황자를 우리 역사속의 위인으로 복권시킨다. 고구려왕 연개소문도 중국사 최고의 황제로 평가받는 당 태종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긴 인물로 묘사된다.당태종은 645년 17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하지만 연개소문은 안시성 혈전에서 60여일의 공방전 끝에 이를 격퇴시킨다.중국과당당히 맞선 우리 역사의 대륙성을 다시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또 하나 저자가 새롭게 들여다보는 것은 신라의 통일이다.흔히 신라의 통일을 외세를 끌어들여 한국사의 대륙성과 해양성을 사장시킨 역사로 비판하지만 저자의 시각은 다르다.고구려,백제와 달리 신라는 약소국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신념과 열정이 있었다.김춘추는 군사를 빌리려 고구려에 갔다가 감금당하기도 하고 바다 건너 왜에 가서도 거부당하지만또다시 아들을 이끌고 중국 서안까지 찾아가는 집념을 보인다.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서슴없이 자신의 몸을 던진화랑들의 희생정신,즉 노블레스 오블리제도 이런 신념과 열정이 만들어낸 우리 역사의 정화로서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정신이라는 것이다.때론 소설처럼,때론 논문처럼,문학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결합한 독특한 글쓰기도 이 책의 새로운 점이다.글 곳곳에서 한·중·일 사료를제시하고 현장답사 사진과 도면을 곁들이는 등 공들인 흔적도 역력하다. 백제의 일본정복을 기정사실화한 것은 과감한 시도로서 앞으로 한일 학자들간 논쟁이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각권 9900원. 신연숙기자yshin@
  • ‘2월의 명소’ 종묘·드림랜드

    서울시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종묘와 대형 놀이공간인 드림랜드를 ‘2월의 명소’로 선정했다. 종묘는 조선 왕조의 역대왕과 왕비,공신들의 신위를 모셔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지난 95년 12월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양력 5월 첫째 일요일에 지내오던 종묘대제는 월드컵축구대회를 맞아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월드컵 기간중인 6월2일로 늦춰 열린다. 지난 87년 4월 개장한 드림랜드는 문화·레저·오락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최신 놀이시설은 물론 수영장·눈썰매장 등을 갖추고 있다.특히 설을 맞아 민속놀이인 제기차기·투호놀이·팽이치기·사물놀이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시 관계자는“종묘는 월드컵을 앞두고 외국인에게 우리의 문화유산을 미리 알리기 위해,드림랜드는 설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 점을 고려해 각각 뽑았다.”고 밝혔다. 조덕현기자
  • [씨줄날줄] 통치사료

    정관 초년에 태종이 주위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군주의도리는 모름지기 먼저 백성을 잘 보호해야 한다.만약 세금을 많이 거두어 들여 백성을 괴롭히면서 자신은 사치한다면,마치 다리의 살을 떼내어 배를 채우는 것과 같으므로 그몸은 쓰러지게 된다.” 한자문화권에서 ‘제왕학의 전범’으로 평가받는 ‘정관정요(貞觀政要)’의 첫 대목이다.‘정관’(서기 627∼649년)은 중국 당나라 태종의 연호이며,‘정관정요’는 태종의 정치적 언행을 사후에 10권,40편으로 편찬해 낸 책이다.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통치사료 가운데 핵심을 정리한 것이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다루었기에 사료적인 가치가 높은것은 물론이고 정치학의 이론 및 실용서로서 역대 한·중·일 3국의 통치자들에게는 필독서였다.대통령 취임을 앞둔김영삼 당선자가 1993년 신년 초에 ‘정관정요’를 읽으며구상을 가다듬었다고 해서 한동안 인기를 끌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통치사료를 정리·보존하는 일에는 남 못잖은전통을 가지고 있다.조선시대에는 왕이 승하하면 실록청을두어 그 왕의통치기록을 정리했는데 그 결과물이 5,400만자로 구성된 조선왕조실록이다. 또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왕의 통치 행위를 비롯한 일상사를 기록한 것이 승정원일기로 그 양은 왕조실록의 4배에 이른다.둘 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다만 해방이후 우리 정치사에 굴곡이 심해 역대 대통령의 통치사료를 제대로 보존·승계하지 못함으로써 전통이 단절되었을 뿐이다. 이번에 청와대 비서실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서 김영삼직전 대통령 기간까지 작성된 통치사료 1,302점을 찾아내공개했다. 1968년 ‘1·21사태’직후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존슨 미 대통령 사이에 오간 친필서한을 포함해 중요한 자료가 다수 들어 있어 현대사를 바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되리라고 기대한다. 우리는 전두환 전대통령 시절에야 비로소 통치사료 비서관을 두어 기록을 공식으로 남겼다.그런데도 이후 대통령들이퇴임하면서 기록들을 가져가는 바람에 제대로 남은 게 없다. 아마 공개하기 부끄러운 일들이 많아서일까. 그렇더라도자신을 위해서가아니라 국민을 위해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면 관련기록을 내놓아야 한다.그것은 국민 모두의 것이고,역사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기고] 문화국가와 인문학

    김구 선생이 해방 직후에 쓴 ‘나의 소원’이라는 글을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부력도 아니요,경제력도 아니다.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이 마음만 발달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그러면서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군사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는 사랑과 평화의 문화가 꽃피는‘문화국가’가 되기를 소망하였다.21세기를 흔히 ‘문화의 시대’라 한다.그렇다면 이 글은 오히려 오늘에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국가’란 무엇인가.그것은 인문학이 꽃피는 국가를 말한다.인문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한 개인이 가족·사회,지역공동체와 어울려 사는 길을 가르쳐 주고,옳고 그른 것을 분간하는 방법,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그뿐만 아니다.오늘날에는 문화산업에 필요한 각종 응용콘텐츠의 기초콘텐츠를 마련하는 일도인문학의 몫이 되고 있다.영화,애니메이션,관광 등 문화산업은 인문학의 기초 없이는 제대로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의 인문학은 오늘날 어떤 처지에 놓여 있나. 각 대학의 학부제 실시 이후 인문학은 학생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는 분야가 되었다.인문학 대학원도 텅 비어가고 있다.인문학 박사학위 소지자 수만 명이 사실상 반실업상태에 놓여있는데 누가 대학원에 진학하려 하겠는가.이미 인문학은 학문후속세대가 단절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인문학 교육만 위기에 봉착한 것이 아니다.인문학 연구도 위기상황이다.2001년도 학술진흥재단의 ‘인문학육성지원사업’ 예산은 겨우 40억원이었다.다른 프로그램에 들어있는 인문학 지원을 다 합쳐도 겨우 100억원을 넘는 수준이었다.이는 2000년도 산업과 과학기술 부문의 연구개발비가 약 13조원에 달한 것과 너무나 대비된다. 인문학자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인문학 지원’을 정부에 요구해왔다.최근에는 정부도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모처럼 ‘인문학 육성계획’을마련하였다. 이 계획은 각 대학 인문학연구소의 인문학 박사 등 연구인력 채용,인문학 대학원생 지원,한국학·향토문화·외국지역문화연구 지원사업,동서양 고전번역,인문학 저서 출판지원사업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정부는 일부 기초과학 지원까지 포함하여 매년 1,000억원씩,3년간 3,000억원을 기초학문에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이 계획대로만 실행된다면 인문학은 어느 정도 위기를 모면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산 지원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제도 상의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법학·경영학·언론학·사범계 등을 전문대학원으로 옮기는 일이다.학생들은 학부에서기초학문을,전문대학원에서 응용학문을 공부할 수 있도록제도를 고쳐야 한다.조선 왕조는 건국 이후 반세기도 채안되어 민족문화를 활짝 꽃피운 세종대왕기를 맞이했다.그것은 건국 이후 수십 년 동안 인문학 진흥에 온 힘을 쏟았기 때문에 가능하였다.새해는 김구 선생이 소망하던 선진문화국가로 가기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박 찬 승 충남대교수·국사학
  • [기고] 생태친화적 수자원 개발

    봄가뭄으로 온 나라가 한바탕 난리를 피운지가 엊그제인데 벌써 겨울로 접어들고 까마득히 가뭄에 대한 고통을 잊어버리고 있다.2002년에는 또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 심히 걱정스럽다. 왜 우리는 해마다 봄이나 가을에는 가뭄을,여름철에는 홍수를 되풀이해서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가뭄과 홍수는 하늘의 재앙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 같은 건 있을 수도 없는 것일까? 물은 인간생활에 필수적인 자원일 뿐만 아니라,21세기 강대국의 필수적 자원이 되고 있다.수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개발은 악이고 보존은 선이라는 이분법적인사고가 팽배하고 있지만,최소한 물에 관해서만은 나는 이러한 견해에 맞장구칠 마음이 없다. 지나온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인간의 문명은 물과의 싸움에서 비롯되었고,예로부터 치수(治水)가 한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요체로 인식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일례로4천여년전 중국 하왕조의 시조인 우(禹)의 등극도 물관리에 성공한 결과였다. 인간은 보다 풍요로은 삶을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물을개발하여 왔다.홍수를 막기 위해서 제방을 쌓았고,가뭄에대비하기 위해서 저수지를 만들어 왔다.흔히 옛날에는 물이 풍부했다고 말하지만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보기에는 풍부했을지 몰라도 결코 쓰기에도 풍부했던 것은 아니다.개화기 외국 선교사들의 기행문에는 우리 민족이 더럽다는 표현이 보이는데,이는 강에 많은 물이 흘러도 매일 길어다 쓰다보니 밥이나 설거지는 할 수 있었을지언정 목욕이나 빨래는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물 전망은 결코 밝지만은 않다.우리나라는 몬순기후의 특성으로 여름철에 강우가 집중되는 특성이 있고하천이 발달된 지형적 특성을 갖는다.따라서,많은 비가 내릴 때 대부분의 강우는 바다로 바로 유입되어 버리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강우를 담아 보존했다가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그러한 시스템으로 현재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방법중의 하나가 댐이다. 물 부족의 발생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수자원에 관한 한 결코 ‘개발따로,보존따로'여서는 안되고 보존과 개발이 반드시 함께 계획되고추진되어야 한다.이제는 서로 머리를맞대고 어떻게 하면 환경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물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도출해야 한다.즉,지속 가능한 수자원의 개발을 위하여 우리는 환경 친화적인 수자원 관리기술의 개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즉,인간중심의 댐의 건설이나 수자원 관리차원에서 벗어나,생태중심(ecocentrism)의 수자원 관리 기술의 도입이 필요함을 의미한다.수자원의 질적 관리를 위하여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동식물의 서식처가 훼손되지 않은 채로 보존될 수 있는 생태계의 기능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이는 멸종위기의동식물 보호와 생태계 보존뿐만 아니라,홍수 조절기능,오염수질의 자정 및 여과 작용 그리고 경관기능을 보유하게 되어 인간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역할까지도 제공한다. 따라서,생태 친화적 수자원의 관리기술의 개발은 댐의 건설에 따른 생태계 파괴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으며,해마다 겪는 가뭄과 홍수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우리의 후손들에게 물 부족으로 인한 고통을덜어주기 위한 노력을 올 겨울부터라도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한명수 한양대교수·생명학
  • [대한광장] 김육같은 정치인이 그리운 이유

    225회 정기국회는 싸움만 하다가 기나긴 회기를 다 써버리고 민주·한나라당 원내총무는 14일부터 임시국회를 다시열어 112조 5,800억원에 달하는 새해 예산안과 민생법안을처리하기로 합의했다.졸속 처리가 되지않을지 걱정이 아닐수 없다.수업시간에는 장난만 치다가 방과 후 남아서 나머지 공부하는 불량 학생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예산안과 민생법안까지도 정치싸움의 볼모로 잡는 이런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내게 잠곡(潛谷) 김육(金堉·1580∼1658)선생을 떠올리게 한다.김육은 조선 최대의 민생법안인 대동법 시행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었던 인물로서 그 때문에대동법(大同法)의 경세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동법은 공납(貢納)을 쌀로 통일해 내게 하자는 민생법안이었다.왕조시대 그 지방의 특산물을 나라에 바친다는 소박한 충성개념에서 시작된 공납은 근본적 문제를 갖고 있었다.수 백가지에 달하는 품목의 잡다함도 문제였지만 각 호(戶·가구)를 단위로 삼는 부과 단위는 더 큰 문제였다.송곳꽂을 땅 한 평 없는 가난한 백성과 수십 만평의 농지를 가진 양반 부호들이 똑같은 액수를 내야했던 것이다. 부호들이 반대한 이유 대동법은 부과 가짓수의 잡다함과과세의 불공평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었다.잡다한 품목을 쌀로 통일하고 토지 소유의과다를 기준으로 삼으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대동법이 바로 그것이었다.토지를 많이 소유한 부호는많이 내고 토지가 없는 가난한 백성은 내지 않아도 되는 조세정의에 근접한 법안이었다. 광해군 즉위년(1608)에 경기도에 시범 실시된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때는 숙종 34년(1708)으로서 꼭 100년이걸렸다.일개 세법 하나의 전국적 실시에 100년이란 긴 세월이 걸린 이유는 토지를 많이 소유한 양반 지주들이 이 법의실시를 극력 저지했기 때문이다. 대동법이 양반 지주들의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꾸준히 확대 실시될 수 있었던 것은바로 김육 때문이었다.김육은 효종 즉위년 이런 내용의 상소를 올린다. “대동법은…먼저 경기·강원도 두 도에서 실시하고 호서(湖西·충청)에는 아직 실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지금 마땅히 이 도에서 실시해야 하는데,삼남(三南,영남·호남·충청)에 많은 부호들이 이 법의 시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국가에서 영(令)을 시행할 때 마땅히 소민(가난한 백성)들의 바람을 따라야 합니다.어찌 부호들을 꺼려서 백성들에게 편리한 법을 시행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민생 정치가의 출현을 그러면서 김육은 대동법을 시행하려면 자신을 쓰고 그렇지 않으면 쓰지 말라고 배수진을 쳤다. 그러자 반대당파에서는 김육이 임금을 협박했다고 공박했고그 결과 김육은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막상 호서에 대동법이 시행되자 가난한 모든 백성들이 쌍수 들어 환영했고 결국 대동법 확대 실시는 대세가되었던 것이다.이 외에도 김육은 화폐의 주조·유통,수레의제조 ·보급과 시헌력(時憲曆)의 제정·시행 등에 노력하는등 다른 벼슬아치들이 정쟁에 몰두할 때 민생에 주력하는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육이 세상을 떠난 지 400년이 훨씬 지났다.그러나 잠시그를 생각하며 오늘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자.눈만 뜨면정쟁에 몰두하는 우리 정치권에 가장 필요한인물은 김육과같은 인물일 것이다. 대동법같은 민생법안의 실시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거는 그런 정치가의 출현을 바란다면 우리 정치권의 현실을 너무모르는 것일까?[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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