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왕조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통시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장병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전설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선출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479
  • 신행정수도 건설사업 전면 중단

    신행정수도 건설사업 전면 중단

    신행정수도 건설사업이 전면 중단되게 됐다. 21일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에 따라 사업추진이 법적으로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여권이 수도 이전을 재추진하려면 개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국회 의석이 개헌 정족수인 3분의2 이상에 못 미치는 데다 이전 반대 여론이 우세한 현실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특단의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이해찬 국무총리는 이날 “추진위가 법률적 효력에 미치는 활동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 대변인인 정순균 국정홍보처장도 같은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극심한 국론 분열 양상을 빚어온 수도 이전 논란은 법적으로 일단락됐지만 정치·경제·사회 등 국정 전반에 걸친 파장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해 온 수도이전 사업에 제동이 걸림으로써 향후 정국은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우리당 긴급의총… “국민투표 검토” 정부 차원에서도 국가균형발전계획,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신수도권 발전방안 등은 사실상 수도 이전을 전제로 추진해 온 사안인 만큼 대폭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헌재의 ‘관습헌법’ 논리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이론”이라고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시한 뒤 “충분히 시간을 갖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여권은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인 채 대책 마련에 부심했으며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헌재 판결을 환영한 반면 민주노동당은 수도이전 전면 중단을 촉구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긴급 수석·보좌관 회의를 가졌으며 열린우리당은 긴급 상임중앙위에 이어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해찬 총리와 이부영 의장, 천정배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위 당정협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당정은 회의에서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과 청와대 정책실장, 국무조정실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당·정·청 특별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열린우리당은 또 저녁 7시 긴급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국민투표를 통해 수도 이전을 재추진하거나 청와대와 국회 등을 뺀 정부 부처만 이전하는 방안 등 대안을 검토키로 했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대변인은 “예상하지 못했던 너무나 뜻밖의 결과여서 커다란 충격과 고통을 받았다.”며 “국민 여론을 수렴해서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자들이 참석해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 정체성이 흔들리고 법질서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우려했는데 법치주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결정”이라고 헌재 판결을 환영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부 여당이 민생경제 살리기에 전념하기를 바라고 한나라당도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 정체성을 지키면서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토균형 발전의 취지에 맞지 않게 추진돼 온 수도 이전 사업을 전면 중단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장전형 대변인은 논평에서 “헌재의 판결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천도’ 수준이라면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시장 요동…외환시장 덤덤 이날 주식시장은 요동쳤고, 외환시장은 덤덤했다. 부동산 투기꾼과 건설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건설경기 급랭으로 내수 부양의 ‘큰 재료’가 사라져 단기적으로는 경제 운용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대출 안미현기자 dcpark@seoul.co.kr ■ “개헌·국민투표 안 거쳤다”…8대1“위헌”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1일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대1의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은 단순히 행정수도 이전이 아닌 수도 이전”이라고 지적하고 “국민투표가 필수적인 헌법개정 사항임에도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정부가 수도 이전을 재추진하려면 헌법을 개정해 이전하려는 지역이 수도라는 조항을 명문화해야 한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7명의 재판관이 다수의견으로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헌법상 명문의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왕조 이래 600여년간 오랜 관습에 의해 형성된 관행이므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정부는 헌법 개정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만큼 위헌”이라고 말했다. 별개의견을 낸 김영일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개진하면서도 “수도 이전은 헌법 72조가 정한 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라면서 “이 경우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함에도 이를 어긴 것은 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피력했다. 소수의견을 낸 전효숙 재판관은 그러나 “서울을 수도로 한 관습헌법의 변경이 반드시 헌법개정을 요하는 문제라고 할 수 없다.”면서 “행정수도 이전 정책 역시 국민투표를 요하는 사안이라고 볼 수 없어 헌법소원은 이유없다.”는 각하 의견을 냈다. 청구인측 이석연 변호사는 선고 직후 “개혁이란 이름으로 헌법정신을 무시한 채 국가를 분열시키고 갈등으로 몰고 가는 집권세력에게 헌법의 가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측 오금석 변호사는 “헌재 결정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법 이론적으로는 소수의견이 타당하다고 본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강충식 박경호기자 chungsik@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41)

    儒林 193회에는 ‘美人計’(아름다울 미/사람 인/꾀 계)와 ‘傾國之色’(기울 경/나라 국/어조사 지/색 색)이 나온다. 姜太公(강태공)이 집필하였다는 ‘六韜’(육도)에서는 이른바 美人計(미인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무기를 써야만 상대방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상대방 신하들을 포섭해 군주의 눈과 귀를 막아버리고,美人(미인)을 바쳐 군주를 유혹하라.” 적군의 위세가 강하고 장수의 통솔력이 출중하다면 전면전보다 적의 힘을 분산시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럴 때는 미리 알아서 땅을 떼어 주거나 은밀하게 뇌물을 바치거나 美人計로 상대방 장수의 넋을 빼는 등의 방법이 있다. 이 가운데 미인계는 별다른 밑천 없이 상대방의 체질을 약화시키고 自中之亂(자중지란)에 빠져들도록 하는 妙策(묘책)이다. 傾國之色은 ‘혹하여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이라는 뜻이다. 傾자는 人(사람 인)과 頃(기울 경)을 조합하여 ‘기울다.’라는 뜻을 나타내었다. 발음 요소에 해당하는 頃자는 본래 머리가 ‘기울어지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후에 ‘잠시’ 등으로 쓰이는 예가 빈번하자 傾(기울 경)자를 새로 만들었다.傾은 ‘기울다.’란 뜻 외에도 ‘다투다.’,‘다치다.’ 등이 있다.用例(용례)로는 傾斜(경사:기울어짐),傾聽(경청:귀를 기울여 들음),左傾(좌경: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따위의 좌익 사상으로 기울어짐) 등을 들 수 있다. 國자는 원래 ‘或’으로 썼으나 점차 ‘혹시’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자 본래의 뜻을 보존하기 위하여 ‘國’과 ‘域’을 새로 만들었다.或자는 특정 지역을 나타내는 ‘口’와 ‘긴 창’의 상형인 ‘戈’, 그리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시설물인 ‘一’을 합하여 ‘방책을 설치하고 삼엄하게 경계하는 구역’을 의미하였다. 후대로 오면서 점차 그 의미가 확대되어 ‘나라’를 뜻하게 되었다.國이 쓰인 단어에는 國紀(국기:나라의 기강),國旗(국기:나라를 상징하여 정한 깃발),國事(국사:국정),國史(국사:자기 나라의 역사) 등이 있다. 之는 止(지)와 一(일)을 합친 글자이다.止는 본래 발을 뜻하였으나 점차 ‘그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렇게 발을 나타내는 止 아래에 출발선 또는 지면을 가리키는 一을 넣어 ‘어디론가 가다.’라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色자는 ‘사람 인’(人)과 ‘병부 절’( )의 변형이 합쳐진 글자인데,‘얼굴 빛’이 본래의 뜻이라는 설과 ‘성행위’를 나타낸 것이라는 설이 있다.色에는 ‘빛’,‘낯’,‘여색’,‘갈래’,‘색칠하다.’ 등의 뜻이 있다. 몇 가지 용례를 들어보면 脚色(각색:희곡이나 시나리오로 고쳐 쓰는 일),巧言令色(교언영색:아첨하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色狂(색광:색에 미친 사람) 등이 있다. 傾國이라는 말의 유래는 한무제(漢武帝) 때의 歌客(가객) 李延年(이연년)이 자기 누이동생을 가리켜 “한번 돌아봄에 城(성)이 무너지고 다시 돌아봄에 나라가 기울도다.”(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라고 읊은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또 李白(이백)의 ‘淸平調(청평조)’에서 “모란꽃과 미인이 서로 반긴다.”(名花傾國兩相歡)라고 읊은 구절과 白居易(백거이)가 ‘長恨歌(장한가)’에서 “한나라 황제는 여색을 즐겨 절세의 미인을 찾는구나.”(漢皇重色思傾國)라고 한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殷(은)나라의 마지막 왕 紂(주)를 酒池肉林(주지육림)과 烙之刑(포락지형)을 일삼는 暴君(폭군)으로 만든 稀代(희대)의 毒婦(독부) 己(달기),越(월)나라의 勾踐(구천)이 吳(오)나라의 夫差(부차)에게 西施(서시)라는 미녀를 보내 吳나라를 破滅(파멸)시킨 일, 중국 封建社會(봉건사회)의 황금 시대라 일컬어졌던 唐(당) 왕조를 기울게 한 楊貴妃(양귀비) 등은 역사 속에 등장하는 대표적 傾國之色이다. 경기도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전통 궁중 꽃장식 살려야죠”

    1902년 고종황제는 대한제국 황실의 존엄을 만방에 과시하고자 ‘고종 임인년 진연’을 덕수궁 중화전에서 열었다.당시 연회장 곳곳은 궁중의례 법도에 맞춘 10만송이의 가화(假花)로 화려하게 장식됐다.그 장관이 100여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한번 펼쳐졌다. 조선시대 궁중 꽃장식 문화를 재현한 ‘조선왕조 궁중 채화전(綵花展)’이 5일 서울 덕수궁에서 개막됐다. 이번 채화전은 황수로(70) 한국꽃문화학회 이사장이 당시 행사내용을 상세히 기록한 ‘고종 임인년 진연 의궤’를 그대로 재현한 것.설치미술가로 여러차례 설치미술전을 가진 황 이사장에게도 꽃 장식 전시는 첫 시도다. “궁중의례는 단순한 유흥이 아닌 백성을 교화하는 근본이었습니다.그리고 궁중연회는 그 궁중의례의 중요한 부분이었지요.그 속에서 꽃 장식은 궁중연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그런데 솔직히 지금까지는 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화 하나가 점점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황 이사장은 40여명의 제자와 지난 1년6개월동안 거의 매일 전시회에 쓸 ‘채화’ 10만송이를 직접 만들었다.채화란 비단을 자연염색해 만든 최고급 조화.오직 궁중에서만 쓸 수 있었다.또 옥장(玉匠) 장주원,유기장 이봉주,매듭장 김은영 선생 등 전통 공예 장인들의 도움으로 당시 연회에 쓰였던 옛 기물들까지 원형그대로 마련해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황 이사장은 “제대로 하려다 보니 기물까지 욕심이 생기더라.”면서 웃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10일 전시회가 막을 내리면 모두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영구보관된다.“언젠가는 꽃을 만드는 화장(花匠)도 무형문화재가 되어야 합니다.우리 아름다운 궁중 꽃 문화를 후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6) 영원한 이상향,‘우산민국’ 울릉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6) 영원한 이상향,‘우산민국’ 울릉도

    조선 영조 연간에 대역사건이 터졌는데,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삼봉도가 동해 가운데 있으며,둘레가 심히 크고 사람도 많으나 예부터 나라의 교화를 벗어나 도망친 사람들이 만든 섬이다.빈한하고 미천한 자를 위하여 망명 역적인 황진기가 장군이 되어 정 진인을 모시고 울릉도에서 나오고 있다.청주와 문의가 먼저 함락되고,서울이 함락될 것이매,이씨 대신에 정씨가 들어서서 가난없고 귀천없는 새 세상을 만들 것이다.’ 이씨 왕조가 무너진다는 이런 내용의 유언비어는 괘서와 투서로 널리 퍼져서 당시 경기·충청도의 백성들을 동요시켰다.삼봉도는 이미 15세기 말인 성종 연간에도 운위된다.도망친 무리가 1000명이 넘게 살고 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토지가 비옥하고 풍요로우며,청명한 날이면 경흥에서 바라보이며 회령으로부터 동쪽으로 7주야를 가면 도달한다고 하였다. 조정에서는 수차례나 이 무리를 뿌리뽑으려고 노력했으나 뱃길이 험하고 위치도 불명확하여 실패한다.세금을 내지 않는 자유스러운 땅으로 회자되어 민심을 유혹하므로 그곳에 다녀왔다는 자는 극형에 처하여 백성들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삼봉도는 유토피아의 땅이니,실제의 울릉도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랴.성종실록에는 영흥 사람 김자주가 삼봉도를 발견한 대목이 나오는데,그는 아마 독도를 삼봉도로 간주한 듯하다.실존 여부와 무관하게 민중들에게 오랜 이상향으로 알려져 왔으며,그만큼 먹고 살기에 요족한 섬이 동해에 있다는 믿음의 증거다.오죽하면 고려 현종 9년(1018) 동북 여진이 먼 울릉도까지 침범했을까. ●3만 헤아리던 인구 8000명으로 줄어 “참으로 살 만한 곳이지요?”“무슨 말입니까? 먹고 살 길이 막막해요.”섬목선창에서 만난 어부에게 이상향 운운하는 고상한 말을 건넸더니 대뜸 막막하다는 대답이 되돌아온다.그 옛날 이상향의 지금 모습은 강파르기만 해 3만을 헤아리던 인구가 8000명으로 줄었다.오징어 흉년에다가 주업인 약초재배도 중국산이 범람해 막을 내리는 중이다. 이 땅의 역사 기록은 ‘이사부’로부터 시작된다.신라 22대 지증왕 13년(512)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정벌케 하였다.인심이 사나워서 무력으로는 항복시키기 어려우니 계책으로 항복케 하리라 하고 목우사자로 위협하여 굴복시킨 뒤 매년 신라 조정에 조공을 바치도록 했다.이 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우산국 우해왕(于海王)이 대마도 공주와 결혼했다는 전설이 현재까지 전승된다.울릉도와 대마도가 해상을 통해 상통하였다는 증거다.‘말을 잘 듣지 않는’ 우산국은 항복은 하였으되 반독립적 상태를 장기간 지속했음 직하다.학자에 따라서는 해상 강국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울릉도 ‘거주 금지’와 ‘육지 소환’은 육지로부터의 ‘독립성’을 중앙 통치권력에의 도전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울릉도 개척은 조선조 고종 19년(1882)의 개척령 반포에 이르러서야 공식 윤허된다.그렇다하여 개척령 이전에 잠행하는 도민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으리라.개척령이 가난한 이들에게 울릉도행 배를 타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동해안의 강원·경상도민뿐 아니라 멀리 전라·제주에서까지 들어왔다.지금도 곳곳에서 개척이란 단어를 많이 듣게되며,주민의 뿌리도 각양각색이다. “개척 당시,겨울을 지내면 식량이 바닥나곤 했지요.굶주림에 시달릴 때 눈 속에서 명이가 올라오는 거예요.그걸 캐다가 연명했대요.명(命)을 잇게 한다고 이런 이름이 붙은 나물입니다.” 저동항에서 작은 음식점을 경영하는 이정례(49)씨 식탁에도 틀림없이 이 명이가 올라온다.귀한 반찬이다.산마늘을 뜻하는 말로,울릉도 나리분지의 특산물이다.남획으로 줄어들기는 했으나 부지깽이 삼나물 고비 땅두릅 산마 더덕 미역취 도라지 등과 더불어 여전히 울릉도의 특산물에 속한다.도민의 대부분이 비탈밭에서 나물농사를 짓거나 자연채취로 생계를 꾸려갈 정도다. 섬이기는 하지만 어업 못지않게 농업이 중요하다는 증거다.사실 횟감보다도 산나물이 더 잘 알려져 있다.풍족한 비와 적설량,대마난류권의 따스한 연중 기온,제주 화산토와는 다른 강한 지력(地力) 등은 이곳을 산채 및 약초의 본향으로 만들었다.화산섬이란 특수한 자연 조건이 만든 결과이다. ●땅과 바다의 힘이 맞서 탄생한 화산섬 미국의 저명한 생태학자 레이철 카슨은 화산섬을 ‘지속적이며 격렬한 산고의 결과물’로서,‘창조하려 애쓰는 땅의 힘과 거기에 저항하는 바다의 힘이 맞선 결과로 탄생한다.’고 하였다.지금도 세계의 바다 속에서는 끊임없이 화산 폭발이 진행돼 섬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있다.울릉도 역시 폭발 이후에 누적된 바다의 침식과 풍뇌우설의 공격으로 깎이고 다듬어져 오늘에 이르렀다.분화구였던 나리분지에는 물이 고이고 고여 기름진 토양의 원천이 되었다. 1787년 서양인 최초의 울릉도 탐사기라 할 수 있는 ‘라 페루즈 항해기’에는 울릉도를 ‘다주레’라고 명명한 기록이 남아 있다.‘경사가 굉장히 심했고,산정에서 물이 있는 곳까지 좋은 수목으로 뒤덮여 있다.상륙 가능한 7곳의 모래로 된 조그만 만(灣)을 제외하고는 벽처럼 수직으로 노출된 암벽이 섬 주위를 둘러쌌다.’ 지금이라고 이 기록과 크게 다를 바 없다.울릉도의 시원지인 현포,연락선이 닿는 도동,어업 전진기지 저동,아름다운 천부항,신항이 건설되는 사동 등을 제외하면 가파른 암벽투성이다.울릉도가 신비롭다 함은 그만큼 산세가 험하다는 의미다.고종 29년(1892)에 창작된 정처사술회가(鄭處士述懷歌)에도 개척민의 고난과 험준한 도로사정이 잘 그려져 있다.현포에 상륙해 바닷길을 따라 귀암을 거쳐서 천부동에서 나리동을 올라가 거기에서 다시 저동으로 내려와 도동을 거쳐 사동으로 가는 고단한 노정이었다. 나리분지의 투막집과 너와집은 이런 고난의 개척사를 여실히 증명해 준다.최병용(36) 북면 청년회장이 원시림 속의 산신령 약수터로 잡아끈다.“성인봉 아래에서 솟는 이 물 자시고 가면 천년을 살지요.” 마셔 보니 과연 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천연기념물이 된 울릉국화와 섬천리향이 곳곳에서 자라고 있으니 나리분지야말로 울릉도의 중핵이다.지금은 일부에만 후박나무와 향나무 숲이 남았지만 예전에는 조밀한 숲이 우거져 선박건조용으로 남벌됐다.일본은 물론이고 러시아까지 벌채권을 확보하여 이곳 나무를 베어갔다.강원도 관초(關草·1886)에 따르면,일본인들은 대규모 선단으로 출몰하여 아예 도동에 점포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송곳같이 솟은 추산 자락에서 고비와 도라지농사를 짓는 주민 서영필(전 북면 면장)씨는 이곳을 ‘해중보배’로 표현한다.“관음도는 원래 깍새섬이라고 했지요.고기가 없던 개척 당시에 그 깍새 고기로 영양을 보충했고요.” 깍새는 슴새를 말한다.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슴새나 멧비둘기들이 모두 훌륭한 단백질원이었다.산세는 거칠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먹을 것이 지천이다.“그러나 해중보배라도 교통 불편은 어쩔 수 없습니다.”실제로 섬을 헤짚고 다니는 차는 모두 사륜구동이다.일반 승용차로는 어림없다. 석포에 오르니 독도가 먼 발치에 떠있다.고 이종학옹이 자료를 내놓고 삼성이 지원하여 독도박물관을 지은 것까지는 좋았는데,하필이면 바다도 보이지 않는 계곡에 지은 것이 영 불만스럽다.코 아래로 죽도가 보이고 쾌청한 날이면 독도까지 보이는 석포야말로 독도 관해(觀海)의 명당임은 필자만의 생각일까.토박이 박태철(73)옹도 “물마루에 떠오르는 독도는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라며 거든다. 육지와 섬 사이에 간극이 있다면,울릉도에도 도동을 중심으로 한 관청 중심지와 북면 등의 오지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일주도로가 관음도 바로 앞의 섬목에서 끊겨 반드시 배를 타야만 도동이나 저동으로 나올 수 있다.섬 안에 또 하나의 섬이 존재하는 셈이다. ●따스한 기온 기름진 땅에 후덕한 인심까지 지금의 조건만으로도 울릉도는 충분히 ‘이상향’이다.맑은 공기,따스한 기온,기름진 땅,게다가 후덕한 인심까지 더해진다.섬이라는 조건에 부합하고 백년을 내다볼 수 있는 장기적 비전이 아쉽고 절실하기만 하다.울릉도는 울릉도다워야 한다.‘육지 따라 배우기’를 거부하는 고집스러운 해양생태적 사고만이 울릉도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으리라. 이곳의 옛 길과 임도(林道)를 살린다면 어떨까.가령 길이 끊긴 내수전~섬목 구간은 옛길로 얼마든지 갈 수 있다.작은 섬에 수천 대의 차량이 나다닐 필요가 있을까.친환경적인 자전거도로를 거미줄처럼 엮어놓는다면 그 자체가 장관 아니겠는가.‘자전거의 섬’이 완성된다면 현재의 차량 물결에 비하랴.덧붙여,포항 배편 같은 독점 노선은 언제나 말썽이다.교통문제 해결없이는 현실적으로 이상향은 어렵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용출수만으로도 수력발전을 할 수 있는 섬,죽도와 삼선암을 비롯한 천혜의 자연풍광으로 유혹하는 신비의 섬,우산국은 사라졌어도 여전히 ‘우산민국’인 섬,그 섬에서 돌아오는 뱃전에서 연방 울릉도 호박엿을 먹고 있었다.이상향이 될 조건은 여전히 충분한데,그 이상향이 현실 속에서도 이 호박엿만큼이나 달콤했으면 오죽 좋으랴.
  • [이경형칼럼] 秋夕민심 살폈다면…

    [이경형칼럼] 秋夕민심 살폈다면…

    추석 연휴가 끝났다.닷새의 비교적 긴 연휴 동안엔 민족 대이동이라고 할 만큼 부모형제,친척들이 서로 만나 얘기 꽃을 피웠다.나라 전체로는 정보의 유통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다. 포털 사이트 다음이 네티즌을 상대로 추석 연휴 중 가족들이 나눴던 주된 화제는 무엇이냐고 물었다.65.7%가 경제 문제였다고 응답했다.‘경기 회복’(45.1%)과 ‘가정 경제 문제’(20.6%)가 각각 1,2위를 차지했다.그 다음이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로 14.0%였고,행정수도 이전 11.3%,친일청산 등 과거사 규명 5.3% 순이었다.연휴 내내 이런 추세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정치·사회·문화 등 국정의 한 분야인 경제 문제를 과거사 규명 등 이와는 성격이 다른 현안을 뒤섞어 놓고 고르라고 하는 것은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왜 경제문제가 이처럼 만인의 입에 오르내리는가. 연휴 직전 집권여당의 고위 간부가 민심을 살핀다고 서울 남대문 시장을 들렀을 때,한 상인이 “소금이라도 뿌리고 싶다.”고 말한 대목을 곱씹어 봐야 한다.추석날 큰댁에서 가내 수공업 수준으로 작은 스프링을 제조하는 사촌 형제를 만났다.추석 대목에 일감이 없어 애를 먹었다고 실토했다. 국민 3명 가운데 2명이 경제가 어렵다고 하면 두말할 것 없이 어려운 것이다.거기에 대고 지표 경제 운운해봤자 곧이 들릴 리가 없다. 이헌재 경제 부총리가 지난주 추석 귀성객들에게 민심을 달랜다고 “서민 경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경제 정책이라는 게 국민 개개인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게 사실”이라는 내용의 서한 85만통을 돌렸다.이런 유인물 읽는다고 체감 경제의 고통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기 침체,물가 불안,실업 증가 등 모든 경제난의 원성은 노무현 정부,구체적으로는 노 대통령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과거 왕조 시대,가뭄이 들어도, 역병이 창궐해도 모든 게 임금이 부덕한 소치라고 여기는 백성의 마음은 지금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요즘 같이 인터넷으로 쌍방향 의사전달이 잘 되는 시대에 국민들이 두드리는 저 ‘신문고 소리’는 분명 노 대통령의 심기를 편하지 않게 할 것이다.그래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노 대통령은 내주부터 인도,베트남을 방문하고 하노이의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참석할 예정이다.오는 12월까지 노 대통령의 정상 외교는 남미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간헐적으로 계속 이어진다. 상당 기간 행정·경제 등 일반 국정은 이해찬 총리와 이 부총리에게 맡겨야 할 판이다.또 정치문제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정기국회를 통해 풀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국정의 최종적인 평가와 책임은 어디까지나 노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비록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당직은 맡지 않았다고 해도 여당의 실책도 결국 대통령에게 돌아간다.“지난날 김영삼 전 대통령은 IMF사태(외환위기)를 불러왔고,김대중 전 대통령은 ‘카드 망국’을 초래했으며,노무현 대통령은 경제를 IMF 때보다 더 못하게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 않은가. 노 대통령은 지난번 카자흐스탄·러시아 순방 중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바깥에 나와보니 기업이 곧 나라더라.”는 말이다.이 한 마디는 많은 기업인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대통령이 나라 안에 있든,바깥에 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정말 중요한 것은 국정을 이끄는 대통령의 인식이다.이러한 인식은 열린 마음으로 국민의 쓴소리를 들을 때 더욱 풍성해진다. 편집제작 이사 khlee@seoul.co.kr
  • 중국 고대사 최대의 미스터리-­진시황제/쓰루마 가즈유키 지음

    중국이 오늘날과 같은 정체성을 형성한 것은 전국시대를 통일하면서부터다.그 주역은 역시 진시황제다.중원을 처음으로 통일해 대제국을 건설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한 진시황제.그러나 진시황제와 그의 시대는 숱한 고사와 전설로 신화화되어 있다.진시황은 과연 분서갱유를 저지른 무자비한 폭군인가.정말 여불위의 자식인가. ‘중국 고대사 최대의 미스터리-진시황제’(쓰루마 가즈유키 지음,김경호 옮김,청어람미디어 펴냄)는 사료와 문헌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분석을 통해 시황제의 실체를 밝힌다. ●폭군인가, 여불위의 자식인가 시황제는 전국시대(기원전 403∼221년) 말 진나라의 왕자로 태어났다.13세에 왕위에 올라 처음 25년 동안은 전국시대 진나라의 왕으로,후반 12년 동안은 통일제국 진의 황제로 군림하다 50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이러한 시황제에 관한 기록은 중국 전한시대의 역사가 사마천이 쓴 ‘사기’에 남아 있다.사마천은 시황제를 폭군으로 적었다.‘사기’의 ‘진시황본기’엔 시황제는 승상 이사의 제언에 따라 기원전 213년 분서(焚書)를 명령했고,다음해에는 학자 460여명을 땅에 묻어 죽인 것으로 되어 있다.이 사건은 훗날 시황제를 깎아내리는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그러면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중국고대사를 전공한 저자(54·일본 가쿠슈인대 교수)는 시황제를 둘러싼 신화와 전설의 옷을 벗겨내고 역사의 진실에 한걸음씩 다가선다. 먼저 ‘사기’의 한계를 지적한다.‘사기’는 시황제가 죽은 기원전 210년으로부터 1세기가 지난 뒤 한대인(漢代人)의 관점에서 한(漢)왕조의 정통성을 찬미하기 위해 쓴 역사서다.그런 만큼 진시황의 실상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저자는 시황제 당대의 시대상을 복원하기 위해 15년에 걸쳐 시황제릉과 병마용갱 등 유적지를 답사하고,수호지 진묘 죽간,용강 진간,마왕퇴 백서,장가산 한묘 죽간,한대 화상석 등 다양한 출토자료들을 검토했다.전국시대 진나라의 사서인 ‘진기’,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종합 지리서인 ‘수경주’ 등 각종 문헌사료들도 폭넓게 활용했다. ●분서갱유는 정책의 일환 이렇게 해서 저자가 얻은 결론은,시황제가 분서령을 내린 것은 유가를 탄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 정치정세에서 현실을 비방하는 학자들의 언동을 처벌하고 대외전쟁을 치르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이는 의약서나 농학서 등 실용서들이 대부분 분서 대상에서 제외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저자는 한대의 유가들이 분서령의 부정적인 면을 부풀리면서 시황제의 분서갱유 정책이 유가탄압 사건으로 변질됐다고 강조한다. ‘사기’의 ‘여불위전’은 진왕 정(훗날의 진시황제)의 출생 비밀에 관해 상인 여불위가 자초(진나라 장양왕)의 장래를 내다보고 자신의 자식을 임신한 여자를 자초에게 바쳤다고 전한다. 진시황제는 흔히 사마천의 기록대로 여불위의 자식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저자는 그것은 진나라의 정복에 반감을 가진 동방 사람들이 진 왕실의 정통성을 흔들기 위해 한 말일 뿐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사마천 스스로도 사실(史實)과 전설의 내용을 명확히 구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듯이,전설에서 사실을 분리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시황제를 유능한 군주이자 폭군으로 묘사하고 있는 ‘진시황본기’나 ‘진본기’등 시황제 관련 문헌사료들의 내용은 상당 부분 실상과 거리가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이 책은 2200년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간극을 뛰어 넘어 시황제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하나의 작은 시도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부시·케리 지지율 ‘요동’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공화당의 전당대회 이후 2주일 동안 5∼11% 포인트까지 벌어졌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소멸되고 선거전은 다시 백중세로 돌아섰다. 해리스 인터랙티브가 지난 9∼13일 실시한 조사에서 투표할 가능성이 높은 유권자의 48%가 케리 후보를,47%가 부시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이는 지난 2일 끝난 공화당 전당대회 이후 처음으로 케리 후보의 지지율이 부시 대통령보다 앞선 결과다.또 퓨 리서치의 지난 11∼14일 조사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47% 대 46%로 불과 1% 포인트 앞섰다. 이처럼 부시 대통령과 케리 후보의 지지율이 최근 두달 사이에만 10%안팎의 편차를 기록하는 등 크게 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언론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상대당 후보를 겨냥해서 집중공격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부동층에게 먹혀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최근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도 CBS방송이 병역특혜 의혹을 다시 부각시킨데다,그의 마약 복용설을 거론한 책 ‘부시왕조의 진실’이 출간돼 부시 대통령의 신뢰성에 타격을 입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들은 조사대상을 단순히 유권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투표할 가능성이 높은 유권자’ ‘투표 의사를 피력한 유권자’ 등으로 바꿔가기 때문에 조사마다 편차가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조사가 1000명 안팎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접전지역의 경우 표본수를 더 늘려야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USA투데이가 17일자 인터넷판 기사에서 갤럽이 지난 13∼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투표가능성이 있는 유권자층의 부시와 케리의 지지율이 55% 대 42%로 부시 대통령이 13%포인트 앞섰다고 보도했다.조사대상이나 조사 주체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사실이 재확인된 셈이다. dawn@seoul.co.kr
  • [이런 책 어때요]

    ●경제를 보는 눈/홍은주 지음 ‘경제를 보는 눈’을 갖는다는 건 일상생활에서 ‘눈먼 우연’에 기대지 않고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고훈련을 의미한다.경제학을 전공하고 20년 넘게 경제부 기자생활을 한 저자(MBC경제부장)가 강조하는 것은 경제학이 진정으로 가르치고자 하는 합리적인 사고와 생각의 기술을 내면화하라는 것이다.저자에 따르면 그 합리성이란 바로 단선적 사고를 부정하는 능력이다.이 책은 이런 관점에서 생활 속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경제학의 기초이론을 흥미롭게 설명해 일반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꾸몄다.9500원. ●진화/칼 짐머 지음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이래 진화론은 처음부터 종교와 대척점에 있었으며,‘위험한 이론’으로 백안시됐다.이런 상황은 DNA와 인간 게놈의 비밀이 밝혀진 오늘날까지도 여전하다.특히 미국의 기독교 창조론자들은 지금도 진화론의 전파를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이 책은 종교의 언어를 그대로 과학인 양 이해하는 창조론자들에 대한 답변이요,진화론과 진화의 ‘사실’을 옹호하고 바로 알리기 위한 책이다.진화론의 핵심원리인 ‘자연선택’이 어떻게 종 차원의 생물을 발전시켜 왔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3만원. ●패권의 시대/리우웨이 등 지음 중국 역사상 학문적으로 가장 자유롭고 화려했던 시기이자 천하통일에 대한 몽상으로 패권다툼이 극에 달했던 춘추전국시대를 재조명.각종 유물과 유적,간결한 텍스트를 통해 변혁과 혼란 속에 발전해간 춘추전국 문명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했다.중국사를 왕후장상과 역대 왕조라는 틀에서 이해하던 방식에서 탈피,문헌과 고고학을 결합한 색다른 접근법을 택한 점이 눈에 띈다.약소국들이 어떻게 칠웅(七雄)에 대항했는가,오왕과 월왕의 호신무기는 왜 원수였던 초왕의 묘에서 발견됐을까,공자는 어떻게 사교육을 발전시켰을까 등 궁금증을 풀어준다.1만 4800원. ●케테 콜비츠/케테 콜비츠 지음 ‘노동계급의 위대한 예술가’‘미술사의 로자 룩셈부르크’로 불리는 프로이센 태생의 판화가이자 조각가인 케테 콜비츠의 작품·일기 선집.‘내가 나를 보는 시선’으로 씌어진 일기는 고난의 신화와 강한 이미지 뒤에 감춰진 콜비츠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게 한다.콜비츠는 천성적으로 예민하고 우울한 기질이 강했다.갓난아기 남동생의 죽음이 그리스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놀이를 한 자신 때문이라는 정신적 압박에 사로잡힌 그녀는 사물이 작아지는 악몽 등에 시달렸다.마지막 석판화 ‘씨앗을 짓이겨서는 안된다’엔 진보와 희망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3만 800원.
  • [시네마 천국]장예모 감독의 ‘연인’

    10일 개봉하는 중국 장이머우 감독의 화제작 ‘연인’은 강렬하고 대담한 색채의 향연이 펼쳐지는 무협멜로다.동양적 스펙터클을 자랑한 전작 ‘영웅’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시 한번 그 기대치에 걸맞은 만족감을 선사할 듯하다. 극의 무대는 중국 당대.무능한 왕조와 정가의 부패로 나라 곳곳에 반란군이 득시글거리는 가운데 관리인 리우(유덕화)와 진(금성무)은 최고의 반란조직인 비도문의 우두머리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는다.두사람은 비도문 두목의 딸로 홍등가에서 춤을 추는 맹인기생 메이(장쯔이)를 의심해 체포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선굵은 액션으로 웅장한 스케일을 암시한다.장쯔이가 고혹적인 자태로 북춤을 추는 도입부의 시퀀스는 감독의 탐미주의 영상을 압축적으로 은유한다.서사액션에 어울림직한 온갖 자극적인 레시피도 다 동원했다.한 여자에게 접근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 구도가 액션에 진한 멜로요소가 녹아드는 ‘서사 무협멜로’ 장르임을 귀띔한다. 옥중의 메이를 진이 구출해주면서 영화는 멜로의 분위기를 본격적으로 피워올린다.진이 메이를 비호하며 함께 비도문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메이는 진의 사랑고백을 받아들인다. 남녀를 쫓는 관군들,대자연을 배경삼아 그들을 물리치는 남녀의 신기에 가까운 무술 시퀀스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남녀의 연애감정이 현대극 빰치게 빠르게 속도를 붙여갈 즈음,영화는 첫번째 반전을 드러냄으로써 밋밋할 뻔한 드라마에 요철장치를 마련한다.비도문 두목을 잡기 위해 진이 리우와 짜고 의도적으로 메이에게 접근했다는 설정이 노출되면서 관객들은 새로운 감상포인트를 쥐고 두 남자의 음모에 동조하게 되는 것. 주인공들의 동선에 사활을 걸었다.세 남녀가 화면에서 빠지는 장면이 단 한번도 없을 정도.현란한 기교의 액션장면들이 중간중간 양념으로 끼어들지 않았다면 단조로운 인물캐릭터가 큰 단점이 됐을 법하다. ‘보고 즐기는’ 서사물로는 크게 나무랄 데 없는 영화다.시청각을 끊임없이 자극해 관객의 감각을 깨어있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여주인공이 맹인이란 설정 덕분에 화면은 한결 더 감각적으로 다듬어졌다.북소리,바람소리,댓잎 부딪는 소리 등이 청각을 내내 곤두세워 놓는다.그러나 감각에 의존한 전개방식이 화학조미료의 얕은 뒷맛처럼 거북스러울 관객도 있겠다.내용보다는 포장에 공들인 탓에 이미지 과잉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죽음으로까지 내몰린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그 절절함에 동조하기에는 주인공들의 내면묘사가 지나치게 허술하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데스크 시각] 서울의 중국어표기/김규환 수도권부 차장

    서울의 중국어 표기안이 ‘서우얼(首)’과 ‘서우얼(首午)’로 압축됐다.서울시는 최근 공모를 통해 신청받은 1040여건의 표기안 가운데 3차례에 걸친 심사끝에 ‘首’·‘首午’의 2개 안을 선정했다.首는 ‘산뜻하고 꽃이 무성한 도시’,首午는 ‘한낮의 밝은 도시’로 풀이할 수 있다.시 관계자는 서울 이미지에 잘 어울리고 발음도 비슷해 뽑았다고 설명했다.이중 ‘首’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인들에게 수도 이름을 산뜻하고 멋있게 지어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겠다는 데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표기안이 시행되면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우선 우리들은 한자의 원 글자를 그대로 쓰는 번체(繁體)자를 채용하고 있는 반면,중국은 이를 간략화한 간체(簡體)자를 사용하고 있는 까닭에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따라서 간체자의 서울 표기는 ‘首爾’나 ‘首午爾’가 아닌 ‘首’이나 ‘首午’이어서,우리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단어가 추가될 우려가 있다. 잘 접하지 않는 한자인 탓에 우리들이 한자로 적으려면 너무 어렵다는 점도 있다.중국인들이 사용하니까 상관이 없다고 치부할 수 있지만,중국인들이 ‘서울’을 어떻게 쓰느냐고 물으면 ‘얼’에 해당하는 ‘’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표기안을 중국 정부에 홍보하는 것도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무엇보다 표기안을 홍보하기 위해 뛰어줄 ‘발’이 없다. 서울시는 예산을 절약한다는 차원에서 2002년 베이징(北京)에 파견돼 있던 2명의 주재관들을 불러들였다. 이들 2명이 쓰는 예산은 연간 4억원 선.4억원이라는 돈이 거액임에는 틀림없지만,연간 14조원의 예산을 쓰는 거대조직 서울시가 ‘서울의 국제화’와 ‘중국 전문가 양성’,‘중국과의 네트워크 구축’ 등에 쓰는 비용으로 0.003%도 채 안 되는 돈을 아껴야 할 만큼 재정사정이 어려운가.정작 요긴하게 써야 할 때 사용할 수 없어 아쉬운 대목이다. 이 때문에 홍보는 전적으로 베이징에 주재하는 외교통상부·국정홍보처 등의 외교관들에게 의존해야 한다.그러나 외교관들은 북한 핵문제,탈북자 문제 등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나 시도 때도 없이 방문하는 국회의원 등 ‘높은 분들을 모시는 데’ 매달리고 있어,이를 홍보하는 데 어느 정도 신경을 써줄지도 의문이다. 직접 사용 당사자인 중국 정부도 냉담한 편이다.중국 관영 광밍르바오(光明日報)는 지난달 사설을 통해 “한국인들은 ‘漢城(서울)’의 ‘한(漢)’자가 중국의 漢왕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 서울의 중국어표기 개정작업을 하는데,이는 남의 나라 고대 왕조에 대한 거부 반응”이라며 “시안으로 내세우는 ‘首’ 등은 15억 한자문화권의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표기법”이라고 비판했다.이 탓인지 서울시가 표기안과 관련,설명회를 갖겠다고 주한 중국대사관측에 비공식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좋은 이름을 짓는 것도 중요하다.하지만 지은 이름이 불리도록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한·중 수교 12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은 ‘중공(中共)’보다 ‘중국(中國)’이라고 부르지만,아직도 많은 중국인들은 ‘한궈(韓國)’ 보다 ‘난차오셴(南朝鮮)’이라고 말한다.중국인들이 새 표기안을 불러주도록 보다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김규환 수도권부 차장
  • 쉬어가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나란히 지정받은 한국의 해인사와 독일의 로쉬수도원이 새달 4일 서울 프라자호텔 덕수홀에서 자매결연식을 갖는다.양측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WHC)가 지난 2000년 세계문화유산들 사이에 글로벌 네크워크를 형성하도록 권고한 데 따라 자매결연을 맺게 됐다.해인사(802년)와 비슷한 시기인 8세기말 설립된 로쉬수도원은 중세 카롤링거왕조 시대의 희귀한 양식을 간직한 건축물로,1991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 [메트로 플러스] 고양 ‘덕양어울림누리’ 새달 개장

    1200석의 대극장과 종합운동장,문화센터 등을 갖춘 고양시의 대형 문화예술공간 ‘덕양어울림누리’가 다음달 1일 문을 연다.고양문화재단(총감독 이상만)은 26일 착공 5년 2개월만에 덕양어울림누리 1단계 공사가 완료됨에 따라 개장 축하공연을 갖는다고 밝혔다. 덕양어울림누리 1단계 시설은 1218석의 대극장인 고양어울림극장,374석의 소극장 별모래극장과 축구와 육상경기가 가능한 관람석 2400여석의 종합운동장인 덕양별무리경기장,미술관을 갖춘 문화센터인 고양 별따기배움터 등으로 구성됐다.특히 대극장은 110명의 오케스트라와 200명이 동시 출연할 수 있는 가변형 무대가 갖춰졌고,조경지구에는 테니스장·배드민턴장·게이트볼장·민속놀이장·인공암벽 등 다양한 체육휴게시설이 만들어졌다.2단계 시설은 아이스링크·실내체육관·수영장 등으로 오는 2005년 8월 완공된다. 재단측은 개장기념으로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인형극단을 초청,인형극 ‘서커스’를 공연할 계획이다.또 조선 정조때 수원 화성에서 치러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재현한 궁중연례악 ‘태평서곡,왕조의 꿈’도 공연한다.세계적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이끄는 이탈리아 라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초청 공연도 계획돼 있다.
  • 캄보디아 압사라 댄스 무료 공연

    캄보디아 압사라 댄스 무료 공연

    앙코르와트 보물전을 열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은 오는 31일(화)∼다음달 5일(일) 캄보디아 왕실무용단을 초청,압사라 댄스 무료공연을 개최한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12세기에 앙코르왕조가 건설한 석조건축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예술성과 웅장미에 있어서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과 로마 콜로세움에 못지 않다. 공연되는 압사라 댄스(Apsara Dance)는 캄보디아 전통무용의 진수로 천상의 존재를 표현한 아름답고 우아한 춤이다.압사라는 ‘춤추는 여신’,‘천상의 무희’를 뜻한다.무희들은 금빛 머리장식,실크튜닉과 치마를 입고 앙코르와트 사원 벽화에 그려진 동작들을 그대로 재현한다. 화ㆍ목요일에는 오후 2·7시,수·금·토·일요일에는 오후 2·4시에 공연이 열린다.홈페이지(www.museum.seoul.kr)를 통해 사전접수,좌석을 배정받아야 한다.공연 10분전에 빈 좌석이 있으면 현장에서 선착순 입장가능하다.(02)724-0192.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세계유산 등록이후 첫발-중국 고구려유적지를 가다] (하)두번째 도읍지 지안

    [세계유산 등록이후 첫발-중국 고구려유적지를 가다] (하)두번째 도읍지 지안

    ‘세계유산 등록 이후 지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고구려의 북방개척의 전진기지인 나통산성과 고구려 첫 수도의 환런(桓仁)의 오녀산성에서 역사 왜곡을 확인한 우리 일행은 8월14일 지안(集安)으로 들어갔다.우리는 퉁화(通化)를 출발하고 얼마 가지 않아 지안에서 100㎞나 떨어진 곳에서 ‘세계문화유산 고구려 유적의 도시 지안’이라는 대형 광고와 마주쳤다.철기둥으로 만든 반영구적인 광고판이었다.중국이 고구려 유적에 쏟는 관심과 열기를 다시 실감했다. ●지안-고구려는 중국 지방정권 선전 가장 먼저 지안박물관으로 갔다.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지안박물관은 전시물의 90%가 바뀌었을 정도로 완전히 새 단장을 했다.박물관 가운데에 있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천장까지 닿는 대형 광개토태왕비 탁본이 걸려 있고 그 앞에는 1.5m쯤 되는 표지판에 박물관을 안내하는 인사말(前言)이 쓰여 있다.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방의 고대문명 발전과 생산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중국 동북지방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 아마 이 한마디가 중국이 지안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던지는 핵심적인 메시지일 것이다.물론 중국어를 모르는 한국인 관람객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갈 수 있다.그러나 이 문구는 한국인보다는 중국인을 목표로 한 것이다.고구려 역사를 알고 있는 조선족들은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일반 중국인들이 입구에서부터 고구려를 자기 역사로 알도록 역사 왜곡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서쪽에 있는 방부터 관람을 시작하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이 ‘고구려 역사에 대한 중요한 기술(高句麗歷史重要記述)’이다.제목은 ‘고구려 역사’이지만 모두 고구려 건국에 관한 내용이다.한서,후한서,삼국지,태왕비,위서 같은 유명한 사서들을 인용하여 ‘고구려는 한나라가 세운 현토에서 일어났으므로 중국 역사’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말만 교묘하게 엮어 놓았다.현토군의 고구려현은 아직 추모(주몽)의 고구려가 성립되기 이전 역사인데 마치 고구려가 한(漢)나라의 한 현인 것처럼 왜곡해 모르는 사람은 고구려 전체가 중원의 한 현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했다. 동쪽 방에 들어가면 왜곡은 더 심하다.먼저 나타난 ‘고구려 조공·책봉 조견표(高句麗朝貢受封簡表)’에는 고구려가 중원의 각국에 조공을 바치고 벼슬을 받았던 14번을 표로 만들어 쉽게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고구려 역사 705년 동안 외교적 관례로,그것도 50년 만에 한번 정도 있던 행사를 가지고 마치 고구려는 항상 벼슬을 받아 행세한 지방정권처럼 왜곡해 놓았다.고구려 705년 동안 중국에서는 35개 나라가 망했으며 그 가운데 50년도 못 가고 망한 나라가 절반이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다.도대체 705년이나 지속된 고구려가 35개 나라 가운데 어떤 나라의 지방정권이란 말인가? 또 있다.바로 ‘고구려 유민 천도 정황(高句麗流民遷度情況)’이라는 표이다.이것은 고구려가 멸망하고 대부분의 고구려인들이 중국 땅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록들을 모아놓은 것이다.그러나 그 기록과 통계들도 고구려 땅에 그대로 남아 고구려를 이은 발해의 주민이 된 사람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음에도 교묘하게 짜맞춘 것이다. 유물을 관람하면서도 끊임없이 중국 연대를 생각하도록 해 놓았다.고구려 유물을 이야기할 때는 고구려의 초기라든가 후기,또는 무슨 왕대의 것이라고 고구려 연대로 표기해야 하는데,모두 한-왕망-후한-위-진-제-양-진-수-당 식으로 중국의 왕조로 설명하고 있어 이곳에 관람하는 중국인은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박물관 밖-관광을 통한 역사왜곡 무거운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오니 담벼락에 붙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 지린성 지안 고구려 관광주간의 성대한 개최를 열렬히 경축한다(熱烈慶祝中國吉林·集安高句麗旅游節 隆重召開)’ 왜 박물관에 ‘세계문화유산 등재 축하’ 현수막이 아닌 관광축제 개최 축하 문구가 걸려 있는 것인가? 바로 이 현수막이 역사왜곡을 위해 진행되는 과정을 분명히 보여준다.첫째 세계유산 등록을 계기로 하여 관광산업을 극대화하여 수입을 올리고,둘째 현지를 찾은 관광객에게 고구려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의 축하행사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지린성 정부 부비서장을 주임으로 하는 ‘중국 지린·지안 고구려문화관광주간(中國吉林·集安高句麗文化旅游節)’은 지린성,퉁화시,지안시가 모두 참여하여 정부에서 지원하는 260만 위안(약 4억원)으로 여러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첫 행사가 바로 ‘지안 중국 우수 관광도시 명명식(集安中國優秀旅游城市命名儀式)’이다.지난달 20일 지안시에서 열린 명명식에서는 전국의 유명 관광 도시에서 초청한 인사를 비롯하여 3만 명이 모인 가운데 시정부 앞에서 국가 관광국이 지안시를 중국우수관광도시로 선포했다고 한다. 7월9일 관광이 시작된 뒤 20일 만에 한국에서 학생,교사 등 5000명이 다녀갔으며,올해는 적어도 1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관광회사 사장의 즐거운 비명을 들으며 마음이 착잡했다.중국 관광객들도 예전에는 주변 도시에서만 왔는데 지금은 남방에서도 많이 온다고 한다. “지금 일본 관광객이 1000명이나 신청을 해왔는데,일본사람들이 왜 고구려 유적을 보러 오는 겁니까?” ‘준비된 역사왜곡’으로 돈을 벌면서 철저하게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현장에서 필자는 잠시 대답을 잃었다.이제 우리 모두가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 [열린세상] 상상력과 지혜/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 교수

    시가를 물고 줄기차게 영국의 중무장을 외치는 윈스턴 처칠의 영화 속에서 우리를 본다.다른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평화를 이야기하던 상황에서 독일의 공격에 대비한 영국군의 무장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고집으로 야유의 대상이 되었다.독일이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야 영국 정가는 처칠을 중심으로 뭉치게 되었다. 호치민 역시 역사의 중요 고비에서 과감하게 인기없는 방향을 선택하였다.예를 들면 제2차 대전 말기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했을 때 프랑스와 협력해서 일본에 대항하기로 결정을 했다.당시 일본군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며 프랑스 식민지로부터의 해방군임을 자처하던 상황이었다.프랑스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이 목표였던 대다수의 독립투사뿐 아니라 일반 국민정서도 일본과 협력하여 프랑스와 싸우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유독 호치민만은 프랑스와의 협력노선을 선택하였다.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줄기차게 그리고 간절하게 국민들을 설득하였다.인기없는 정책을 선택하고 나서도 국민의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묶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나라 사랑에 대한 지도자의 진정과 국민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기를 공감하고 문제 해결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을 때에만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지혜를 구하고 손을 내밀 수 있게 된다.과감한 역사적 상상력 속에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보이지 않는 미래를 열고자 하는 노력이 여기저기서 느껴진다.지금은 1000년 단위의 지각 변동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반지의 제왕’ 같은 팬터지 소설들이 전 세계의 베스트 셀러가 되는 이유도 과감한 상상력을 구하는 신세대의 목마름 때문이다. 2004년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이제는 팬터지 소설의 자리에 각 나라의 뛰어난 정치 지도자의 전기가 앞다투어 등장하고 있다. 인도 뭄바이의 서점가에는 간디와 네루의 전기가 가득했고 미국에서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이 서점가의 중심에 있었다.중국도 ‘영웅’이라는 영화를 통해 진시황 시대의 천하 통일을 현재로 끌어들이고 있고 강희제,옹정제,한무제가 소설과 영화로 오늘의 중국인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정치지도자를 넘어,새로운 사상에 대한 현실 또는 상상의 리포트가 나오고 있다.일본에서는 사무라이 관련 책이 영화로,문고본으로 나오고 있고 미국에서는 예수 생존기부터 현재까지를 다루는 ‘다빈치 코드’가 기독교 문명과 르네상스 문명의 화해를 암시하면서 등장하고 있다. 우리도 독도 문제,고구려사 왜곡으로 이제는 천년 단위의 역사여행을 강요받게 되었다.멀리 갈 것도 없이 2004년에 1904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친러,친일,친청파의 당파적 주장 속에 몰두했던 정치 지도자 중에 영·일동맹과 가쓰라 태프트 밀약의 의미를 읽어내고 1905년과 1910년의 비극을 막기 위해 인기없는 외로운 입장을 취한 사람이 있었는지를 따져보자. 일본 국민문고인 이와나미 문고 제1권은 일본 외무성 관리였던 무쓰가 쓴 청·일전쟁 당시의 외교비사를 기록한 ‘건건록’이다.‘동양’과 힘을 합쳐 서세동점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청 왕조가 유능한 외교관인 리훙장을 대책 없이 전격 교체하는 것을 보고 같이 협력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개인이나 사회의 운명을 바꾸는 카이로스적 시간에는 특히 외교문제나 국내의 갈등이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지금부터 100년 후 아니 5년,10년 후 지금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두가 상상력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 교수
  • [세계유산 등록이후 첫발-중국 고구려유적지를 가다] (상) 첫 수도 홀본성

    [세계유산 등록이후 첫발-중국 고구려유적지를 가다] (상) 첫 수도 홀본성

    지난 7월1일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뒤 처음으로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고구려 유적지를 두루 다녀온 고구려연구회 서길수(서경대 교수) 회장이 본지에 답사기를 보내왔다.중국 중앙정부와 관련 지방도시들은 세계문화유산 등록 이후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면서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임을 강조하는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세계유산 등록을 준비하기 시작한 지난해 초부터 관광객들이 접근조차 하지 못하도록 통제했으나,등록 이후에는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에게까지 새롭게 단장한 유적지들의 사진 촬영까지 허용하는 등 고구려사의 자국 역사 편입을 자신하는 듯한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등재 이후 현지의 움직임,고구려 첫 수도인 환런현(桓仁·홀본성)과 두 번째 수도인 지안시(集安·국내성) 유적지들의 변화 모습을 사진과 함께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외국인 단체로서는 이 팀이 처음입니다.” 답사 첫날인 12일 창춘(長春)에서 고구려의 옛 수도인 지안으로 가는 도중에 들른 고구려 나통산성의 관리가 우리 일행에게 던진 말이다.나통산성은 고구려 북방개척의 전진기지이자 현재 지린(吉林)성에서 가장 큰 고구려 산성이다.성벽이 잘 남아 있어 그동안 여러 차례 답사를 시도했지만 현지 공안국의 제지로 실패했다. ●곳곳에 ‘중화민족 찬란한 역사’ 플래카드 하지만 중국은 고구려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한 뒤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한국 단체의 나통산성 답사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두번 모두 고구려연구회에서 주최한 만큼 그 변화를 분명하게 비교할 수 있었다.첫 답사 때에는 현지 문화국에서 일일이 따라다니며 사진 촬영을 철저하게 금지했으나 이번 답사에는 마음대로 사진을 찍도록 했다.고구려 유적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뒤 생긴 첫 변화를 확인한 것이다. 고구려의 첫 수도이자 오녀산성이 있는 환런에 들어서자 올 들어 말끔하게 단장한 가로등이 먼저 우리를 맞았다.우리나라의 읍에 해당하는 환런현은 오녀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뒤 마치 새롭게 태어난 도시처럼 바뀌었다.거리와 주요 건물에는 ‘고구려 수도의 유적을 보호하고,중화민족의 찬란한 역사를 전시하자(保護高句麗都城遺迹 展示中華民族輝煌歷史)’‘오녀산산성 세계문화유산 등록 성공을 열렬히 경축한다(熱烈慶祝五女山山城申報世界文化遺産成功)’는 플래카드들이 곳곳에 걸려 있어 세계유산 등록에 대한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환런에서는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되기 이전인 6월15일부터 경축행사가 시작돼 7월15일까지 계속됐다고 한다.정부에서 행사를 위해 200만위안(3억원)을 지원했다.지원금은 고구려와 오녀산성을 주제로 한 그림전시회와 춤·노래공연을 한달 동안 계속하는 데 쓰였다.농촌의 각 마을과 랴오닝(遼寧)성에서 참석하거나 파견된 공연팀들이 한달 내내 대축제를 벌였다.조선족들도 우리 춤을 추며 참가했다고 한다.“순리대로 한다면 환런이 고구려 첫 수도이니,평양보다 먼저 신청해야 되는 것 아닌가?” 현지에서 만난 순진한 한 조선족 노인의 반문은 가슴을 때렸다. 환런현 외곽을 돌아흐르는 훈강(고구려 비류수) 가의 행사장에는 행사가 끝난 지 열흘이 지났지만 각종 조명과 음향시설이 설치됐던 대형 가설무대가 남아 있어 당시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다.남아 있는 플래카드에는 ‘고구려 문화예술 주(周) 오녀산의 여름-고구려 첫 왕도 환런 오녀산성’(주최:중국환런만족자치현 위원회,중국환런만족자치현,후원:중국환런만족자치현 위원회 선전부,중국환런만족자치현 문화국)이라 적혀 있었다. 세계유산에 등록된 뒤 환런현의 현장,부현장 등 3명은 1등 공(功),선전부장·문화국장 등 3명은 2등 공,부선전부장 등 3명은 3등 공으로 9명이 표창을 받았다고 한다.중국이 세계유산 등록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역사 왜곡의 심각성은 환런현이 세계유산을 신청하면서 만든 ‘오녀산산성 사적진열관’에서 그대로 드러났다.진열관은 세계유산 심사를 받기 한달 전인 2003년 7월 초에 시작해 8월11일까지 급조해 같은 달 30일 개관했다.그러나 발굴 당시의 평면도와 시대별로 분류한 유물을 전시해 오녀산성의 발굴 결과를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전시 출토유물 202점과 복제유물 145점을 전시했는데,화살촉 같은 유물을 빼놓고는 대부분 복제유물이었다.진열관에는 고구려가 중국 땅에서 건국됐음을 집중 부각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보였다. ●‘고구려왕 中조복 받았다’ 기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박물관 안내문에는 “문헌에 흘승골서라고 기재된 오녀산성은 랴오닝성 환런현 오녀산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중국 동북지구의 고대 소수민족 고구려가 창건한 초기의 수도이다.”라고 돼 있다.바로 옆에 있는 고구려사 연표는 중원왕조기년-고구려 왕계 및 재위기간-중요 사실로 나누어 맨 앞 머리에 중국의 왕조에 따라 고구려사를 분류하고,중요 사실은 중국과 관련된 사실만 뽑아 적었다. 먼저 BC 108년 한나라가 현토를 세웠다는 사실을 쓰고,이어서 BC 82년에 현토를 고구려현으로 옮겼으며 바로 그 한나라 현토에 BC 37년 주몽이 고구려를 세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나머지 중요 사실도 대부분 고구려가 조공한 사실과 책봉 받은 사실만 기록하고 있다. 전시장 안에 있는 고구려의 건국에 대한 사실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었다. “기원 전 108년 한사군이 설립됐다.그 가운데 현토군 아래 고구려현이 설립됐다.오녀산 주위는 이 고구려현에 속했다.선진적인 한문화의 영향을 받아 현지 주민의 생산력이 빠르게 높아졌다.기원 전 37년 부여왕자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오녀산에 성을 쌓고 도읍했다.고구려 왕은 (중국의)중앙정권이 내린 조복(朝服)을 받고 그 호적을 고구려 현령이 관장했다.여기서 고구려 민족과 중앙왕조의 예속관계가 확립됐다.” 이 설명을 보는 사람들은 한눈에 고구려가 한나라의 지방정권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교묘하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더구나 중앙정권이 임명한 고구려 현령이 고구려의 호적을 관리했다는 주장은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진열관에는 이러한 중국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구려 유물이 아닌 한나라의 기와(현토) 같은 중국계 유물을 특별히 전시하고 있었다.앞으로 박물관이 될 이 진열관은 고구려 역사가 중국역사임을 국내외 관광객에게 주입하는 교육장으로 개발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14일 오전 8시 서둘러 오녀산성으로 찾아갔으나 거기에는 정말 뜻밖의 ‘장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오녀산성 위에 있는 주차장은 물론 서문과 남문으로 가는 갈래길까지 차들이 꽉 들어차서 시장바닥을 방불케 했다.우리는 비교적 덜 밀리는 남문 쪽을 택해 올라갔으나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올랐다. “국경절에는 하루에 5000명이 몰린다.”는 가이드의 말이 실감났다. 세계유산 등록 이후 ‘이제는 관광사업’이라는 중국의 의도가 한눈에 읽혔다.국가등급 관광지(별 4개)로 변했고,새로 새운 오녀산산성 표지판에는 유네스코와 세계유산 휘장이 선명하게 부각돼 있다. ●관광객 줄서…시장바닥 방불 전에 갔을 때는 조선족중학교 교사들을 안내원으로 활용해 우리말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정식으로 안내원 교육을 받은 안내원을 앞세워야 했다.그러나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뒤 경계심이나 신경질적인 제약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자신감을 보여 주었다.입구의 울타리도 뜯어버렸고,일일이 따라다니며 감시하던 직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고구려의 첫 수도 환런에서는 이제 관광객을 끌어들여 수입을 올리면서,찾아오는 국내외 관광객에게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모든 준비를 끝내고 그 목표 달성에 총력을 기울이는 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 [이런 책 어때요]

    ●김인배, 동학농민혁명의 선두에 서다/이이화·우윤 지음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말기인 1894년(고종 31년) 외세의 수탈과 정치·사회제도의 문란,경제적 파탄이라는 삼중고를 겪던 농민들이 새 세상을 갈구하며 일으킨 민중봉기다.약 300만명의 농민이 참여해 그 중 3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이 항쟁은 그동안 ‘동학란’으로 불려오다 지난 2월 ‘농민군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발발 110년 만에 ‘동학농민혁명(갑오농민전쟁)’으로 재평가됐다.이 책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영호대접주라는 영남과 호남을 아우르는 동학의 최고 책임자로 활약했던 김인배의 삶을 다룬다.1만 1000원. ●마쿠라노소시(枕草子)/세이쇼나곤 지음 일본 수필의 효시로 꼽히는 작품.우리말로 옮기면 ‘베갯머리 서책’이라 할 수 있다.11세기 초 세이쇼나곤이라는 이름의 궁녀가 천황비인 데이시(定子) 중궁을 보필하면서 보고 들은 일을 자유로운 문체로 써내려간 수필집으로,헤이안 시대(794∼1192년) 수필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일본 고전소설의 대표 작품인 ‘겐지 이야기’가 왕조시대의 귀족적인 미학을 그대로 구현해 내향적이고 은근한 반면,‘마쿠라노소시’는 자연과 사람을 밝은 마음으로 찬미하며 솔직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302개의 장단(章段)으로 이뤄져 있다.2만 2000원. ●기사도의 시대/타임라이프 북스 지음 중세 유럽(800∼1500년)의 기사들은 전시든 평상시든 기사도라고 하는 상세한 윤리지침의 지배를 받았다.기사들 중엔 영주에 대한 충성의 대가와 동료 기사들과의 마상시합에서 획득한 노획물을 통해 부유하고 강력한 지주가 된 사람들도 적잖았다.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들은 다소 경멸적인 어투로 ‘중간시대’,즉 중세라고 불렀지만 이 시기는 역동적인 시기임에 틀림없다.중세는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이룩한 위업의 토대가 됐다.이 책은 중세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복잡하고 순수한 중세의 이상,신앙의 깊이,예술의 장엄함 등을 살펴본다.2만 5000원. ●덩샤오핑/벤저민 양 지음 불굴의 의지로 중국의 21세기를 설계한 지도자 덩샤오핑 평전.재미 중국인 학자인 저자는 덩샤오핑은 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이 실패해 3000만명이 굶어죽는 참상을 보고 충성스러운 마오쩌둥의 지지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중국의 국체인 공산주의마저 실용적 관점에서 냉정하게 바라본 인물이 바로 덩샤오핑.자기 손으로 이룩한 공산주의를 생시에 스스로 청산한 그는 개혁 개방정책을 추진,‘웬만큼 여유있는(小康) 사회’라는 새로운 비전을 현실로 관철시켰다.“단호하게 대처하고 재주껏 이용하라.”는 게 덩샤오핑의 외교지침이다.1만 8000원. ●내멋대로 출판사 랜덤하우스/베네트 서프 지음 미국의 유명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의 설립자 베네트 서프의 자서전.1927년에 설립된 랜덤하우스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유진 오닐,월리엄 포크너,싱클레어 루이스 등을 비롯해 거트루드 스타인,트루먼 커포티,제임스 미치너,아인 랜드,윌리엄 스타이런 등 20세기 미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책을 펴내 명성을 날린 출판사.책에는 미국 출판계와 문학계의 뒷 얘기들이 실렸다.아내에게 구박받으며 불행한 생을 마감한 유진 오닐,고집불통이었던 싱클레어 루이스,허름한 옷차림에 구멍난 양말을 신고 다녔던 월리엄 포크너 등의 일화가 흥미롭다.2만 5000원.
  • [아테네 2004] 만리장성 문턱서 무너지다

    [아테네 2004] 만리장성 문턱서 무너지다

    만리장성은 끝내 흔들리지 않았다. 생년월일(1976년 12월25일)까지 같은 콤비 석은미(대한항공)-이은실(삼성생명)조는 20일 아테네 갈라치올림픽홀에서 열린 탁구 여자복식 결승전에서 세계 1·2위가 호흡을 맞춘 중국의 장이닝-왕난조에 0-4(9-11 7-11 6-11 6-11)로 완패,금메달 문턱에서 좌절했다. 석-이조는 88서울올림픽 때 남자단식(유남규)과 여자복식(양영자-현정화)에서 각각 금메달을 딴 이후 최고의 성적을 낸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그러나 여자 탁구는 88서울 양영자-현정화(금메달),92바르셀로나 현정화-홍차옥,96애틀랜타와 2000시드니 유지혜-김무교(이상 동메달)조에 이어 올림픽 복식 메달 행진을 이어갔다. 석-이조는 2002부산아시안게임 복식에서 중국의 왕난-궈이옌조를 꺾고 우승했다.이들에게 16년만의 금메달을 기대한 이유였다. 그러나 중국은 이때 충격을 받아 세계랭킹 1·2위인 장이닝과 왕난을 복식조로 묶었고,결국 이날 경기를 포함해 석-이조를 상대로 4전전승을 거두는 치밀함을 보였다. 1세트 중반까지의 분위기는 좋았다.석은미의 송곳 드라이브가 테이블 구석구석을 날카롭게 파고들며 7-5로 리드했다.그러나 장-왕조는 뒤진 상황에서 위력적인 드라이브를 찔러 넣으며 순식간에 9-11로 경기를 역전시켰다. 1세트를 내준 석-이조는 순식간에 무너졌다.세계 최강을 상대하는 부담감에 특유의 속공이 살아나지 않았다.몸도 무거운 듯 연신 범실을 범했고,운도 따르지 않았다.테이블 가장자리와 그물에 맞고 튕겨 나가는 에지와 네트만 무려 5개나 나오며 허무하게 점수를 잃었다.2000시드니올림픽 단·복식 금메달리스트 장난의 백핸드 드라이브는 끊임 없이 한국 쪽 테이블을 맹폭했다.결국 석-이조는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떠나야 했다. 이은실은 “우리의 스타일을 다 파악한 중국 선수들이 한수 위였다.”고 말했고,석은미는 “공의 회전이 생각보다 많아 계속 끌려 다녔다.”고 아쉬워했다. 한편 3·4위전에서도 김경아(대한항공)-김복래(마사회)조가 중국의 니우지안펑-궈예조에 3-4로 져 4위에 그쳤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中지안 ‘고구려사’ 가정비치 의무화

    광개토대왕비를 비롯,고구려 유적이 밀집한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가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기술한 시민교육 책자를 발간하고,각 가정마다 의무 비치토록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고구려의 첫 수도인 환런(桓仁)에서도 동북공정의 내용을 기조로 이 지역의 유적을 설명한 ‘오녀산지’를 간행,대외 홍보자료로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이는 중국 정부가 학술·정치적 차원에서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단계를 넘어 시민교육 등을 이용해 편입된 고구려사의 대내외 홍보에 주력하는 단계로 나아갔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최근 고구려 역사 유적 답사차 중국을 방문한 우석대 조법종(43·사학)교수는 19일 “지안시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왜곡한 동북공정 내용을 그대로 소개한 시민교육서 ‘지안 시민수책’(集安 市民手冊)을 발간,각 가정과 호텔에 비치를 의무화했다.”고 말했다.수책은 97쪽의 컬러판 소책자로,지난 3∼4월 기획돼 7월 초 고구려 유적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 이후 본격 배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안역사연혁’에서는 동북공정의 결과를 요약,소개하는 ‘요해고구려’(了解高句麗)항목을 별도로 만들고,그 숙지를 의무화함으로써 시민들에게 고구려사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지안역사연혁’은 지안 지역이 역사적 허구로 밝혀진 ‘기자조선’과 관계 있다고 강조해 고구려사가 중국사임을 부각시켰으며,‘요해고구려’에는 고구려가 중국 동북지역의 소수민족 정권이며 주나라에 조공을 바친 이래 중국 왕조에 속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조 교수는 “환런 지역에서도 동북공정 내용을 기초로 유적을 설명한 ‘오녀산지’를 출간하고,고구려의 첫 수도 ‘홀승골성’을 당나라때 명칭인 ‘오녀산성’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Seoulites]서울의 鎭山 삼각산 제이름 찾기 본궤도

    [Seoulites]서울의 鎭山 삼각산 제이름 찾기 본궤도

    ‘북한산’으로 불리고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 ‘삼각산’이 김현풍(63) 서울 강북구청장에 의해 제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초선의 김 구청장은 2002년 취임과 동시에 ‘삼각산 이름찾기’를 주장하며 차근차근,그러나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문화재청 등 관계기관에 북한산의 개명을 요구하고 있다.일제에 의해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다. 김 구청장은 “고려때부터 불려오던 삼각산이란 명칭이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에 의해 잃어버렸다.”며 “산이름,지명 등을 되찾는 것은 우리 문화를 찾는 첫 걸음이다.”라고 말했다. ●인수봉,만경대,백운대는 국가 문화재로 김 구청장은 지난해 문화재청에 강북구에 위치한 북한산의 3대 봉우리인 백운대(836.5m)·인수봉(810.5m)·만경대(799.5m) 일대 27만 3000㎡를 국가지정문화재로 보호해 줄것을 요청해 명승 제10호로 지정받았다.이와 더불어 이 일대를 ‘삼각산’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식화하는 데도 성공했다.따라서 종전 북한산의 3대 봉우리는 공식적으로는 ‘삼각산에 위치한 봉우리’라고 부를 수 있게 됐다. 김 구청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건설교통부,서울시 등에 북한산 전체를 원래의 이름인 삼각산으로 개명해 줄 것을 줄기차게 건의하고 있다. ●지명위원회 검토유보 김 구청장은 지난 3월11일 서울시지명위원회(위원장 원세훈 행정1부시장)에 ‘북한산 명칭을 삼각산으로 변경해줄 것’을 요청했다.10명의 심의위원들은 “파급효과가 커 신중히 검토해야 된다.”는 이유를 들어 심도있는 논의 자체를 유보했다. 만약 김구청장의 제안이 지명위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같은 산자락에 위치한 인근의 경기도 고양시와 협의가 필요한 만큼 시·도지사협의회에서도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이 과정을 거치면 개명작업은 건교부의 중앙지명위원회로 넘어가 최종 결정된다. 김 구청장은 개명작업이 최소 1∼2년은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자료확보 등 체계적인 준비작업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 지명위원회는 “북한산이란 이름이 반드시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 수 도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하지만 김 구청장은 “북한산이란 명칭이 일제시대(1912년)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지명을 개정하는 와중에 생긴 출처불명의 지명인데도 광복이후 정부가 북한산국립공원이란 명칭을 사용하면서 삼각산이 북한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주장한다. ●학술대회 준비등 철저한 고증 이에 따라 김구청장은 보다 정확한 역사적 사료를 찾고 학술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조만간 ‘삼각산 학술대회(가칭)’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 현재까지 확보된 역사적 사료에는 ‘고려사’ 서희전에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의 옛 땅입니다.”라는 표현이 있고 조선시대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여지도서’,‘증보문헌비고’,‘북한지’,‘대동지지’ 등 지리서와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한결같이 삼각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김 구청장은 “현재에도 경동·서울고 등 서울지역 46개교의 교가에도 북한산이 아닌 삼각산으로 불리고 있다.”며 흥미로워했다. ●내부문서 등 각종 기록 삼각산으로 표기 김 구청장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청내 내부문서나 각종 기록,주민 행사 등에 ‘삼각산’으로 표기토록 하고 있다.구민을 대상으로 ‘삼각산 부르기 운동’도 펼치고 있다.지난 4일부터 오는 10월27일까지 ‘삼각산 해설가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역 고유의 삼각산축제,삼각산 국제산악문화제 등 각종 축제에도 ‘삼각산’이란 명칭을 사용토록 하고 있다.삼각산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전통문화를 되살리고 지역의 문화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다. 김 구청장은 “문화가 역사를 주도하고 경제를 생산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며 “내고장만이 간직한 고유한 역사와 전통·문화를 찾아내고 이를 계승발전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