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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영 서울시의원 “서울역사박물관 전시물 표기 오류 올해만 벌써 12건 발생…관람객 혼란 우려돼”

    김혜영 서울시의원 “서울역사박물관 전시물 표기 오류 올해만 벌써 12건 발생…관람객 혼란 우려돼”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혜영 의원(국민의힘·광진4)은 지난 2일 개최된 제326회 서울시의회 임시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올해 상반기 동안 서울역사박물관이 전시했던 전시물 및 학술총서의 표기오류와 관련된 민원이 12건에 달했다는 사실을 지적, 박물관 차원의 개선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김 의원은 업무보고에 출석한 서울역사박물관장을 향해 “서울역사박물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월~8월) 동안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총 35건의 민원이 접수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이들 민원 중 박물관 내 전시물 및 학술총서의 표기오류와 관련된 민원이 무려 12건에 달한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자표기 오류, 영문 번역 오류 등 곧바로 알아채기 힘든 오류들도 있지만 조선왕조의 멸망 시점(1910년)을 1919년으로 표기한 사례와 같은 매우 초보적인 실수에 해당하는 오류들도 발견되었다는 것은 공공박물관으로서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박물관 내에 이미 진열된 전시물에서 오류가 발견될 수는 있겠으나, 박물관 내부 자체 검열을 통해 오류를 수정한 것이 아니고, 시민들의 제보로 오류가 적발되어 뒤늦게 잘못 표기된 내용을 바로잡게 되는 일이 계속 발생하는 것은 대외적 망신이나 다름없으며, 서울역사박물관에 대한 국내외적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처럼 시민들에 의해서 발견된 전시물 내 오류 외, 박물관 자체적으로 이미 진열한 전시물 내에서 오류를 발견한 사례는 그동안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서울역사박물관장은 “박물관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전시물 내 표기오류를 찾아낸 경우는 그동안 없었던 것 같다”라며 “공공박물관에서 전시물 표기오류와 관련된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 자체적인 검증시스템을 만들어 보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마지막으로 김 의원은 “서울역사박물관은 추후 전시물 전시에 앞서 해당 전시물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먼저 확인하는 전시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면서 질의를 마쳤다.
  • “이승만 미화·우상화 없이, 객관적 사실 기술하는 기념관 만들 것”[박성원의 직설대담]

    “이승만 미화·우상화 없이, 객관적 사실 기술하는 기념관 만들 것”[박성원의 직설대담]

    내년 상반기 착공… 2027년 개관초대 대통령 기념관 없는 건 잘못실체 없는 건국절 논쟁 부질없어독도 지우기 논란, 답답하고 한심“정파적 이익보다 국익 생각해야”공동체 이익 위해 대화·타협 중요독일 발전은 협치와 연정의 산물정치란 미우나 고우나 타협해야“4대 개혁 위해 獨 경험서 배워야”개혁정책 계승, 경제 번영의 토대어느 한쪽 완승완패는 해결 아냐독한 말 ‘업보’… 표현에 신중해야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지난해 6월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발족 때부터 이사장을 맡아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추진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재임 시절부터 온화한 성품의 김 전 총리였지만, 기념관 건립 활동을 비롯한 일에 관해 설명할 때는 열정이 느껴지는 여전한 ‘청년’이었다. 김 전 총리는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대통령의 기념관이 없다는 건 잘못된 일”이라며 “일방적으로 미화하거나 우상화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기술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건국절 논쟁에 대해선 “부질없는 짓”이라고 했고 독도지우기 논란에 관해서는 “답답하고 한심스럽다”며 안타까워했다. ―총리 퇴임 후 독일에 계실 때 이승만 연구를 하셨는데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독일에 가서 독일 총리들의 리더십을 연구했는데, 특히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를 공부하다 보니 자꾸 이승만 대통령이 오버랩되는 거예요. 독일도 아데나워 총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매우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독일이나 한국이나 국운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 전 총리는 저서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에서 집필 동기를 ‘모두 성공적이었고 실패한 총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라는 관심에서 출발했다고 소개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온전한 퇴임 후를 보낸 이가 드문 우리로선 부러운 얘기였다. ―두 나라의 어떤 차이가 양국 국가지도자들에 대한 상이한 평가를 가져온 걸까요. “우리는 왕조와 일제강점기를 거쳤을 뿐 민주주의 경험이 없이 민주국가로 출발한 반면 독일에는 바이마르 민주공화국과 나치 전체주의라는 우여곡절을 겪은 민주주의 역사가 있었어요. 우리는 6·25전쟁을 치르는 등 이념 갈등이 너무 컸고요. 그럼에도 우리 대통령들이 나름의 역할들을 다 하셨기에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있는 거죠.” 이승만 기념재단은 10여곳의 부지를 검토한 끝에 지난달 1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인근을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부지로 선정했다. 2027년 개관을 목표로 관계기관 협의 등 절차를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에 착공할 예정이다. 부지 결정에는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서울 중심에 있으며 인근에 국립중앙박물관, 한글박물관, 전쟁기념관, 용산가족공원 등이 있다는 접근성과 편의성이 고려됐다고 한다. -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기념관 건립이 갖는 의미와 필요성은 무엇입니까. “일부 반대하는 분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과를 부풀리거나 오해해서 그러는 게 있을 겁니다. 공과를 평가해서 국민께 정확히 알린다면 모든 국민이 찬동할 것입니다. 지금 네 분 대통령의 기념관은 있는데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대통령의 기념관이 없다는 건 잘못된 일이죠.” 김 전 총리는 기념관의 전시 내용에 관해서도 “일방적으로 미화하거나 우상화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정확히 기술할 것”이라고 했다. 견해가 다른 부분은 병렬적으로 소개함으로써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건립 비용은 독립유공자예우법에 따르면 전액 정부 예산으로 충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초대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30%만을 국비로 지원받고 나머지 70%는 국민 모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택했다. 모금 목표액 700억원 가운데 지난 5일 현재 140억원가량이 모금된 상태라고 한다. ―내년이 광복 80주년입니다. 칼럼 모음집 ‘풍경이 있는 세상’에서 “광복절은 분노하는 날이 아니라 미래를 다짐하는 날”이어야 한다고 쓰셨죠.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제대로 사과하는 태도를 보여 주지 못한 데 대해서는 우리가 서운해하고 (사과를) 요구할 수 있죠. 그러면서도 일본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고 이제 우리도 맞설 수 있는 국력을 키웠으니 그저 싸우거나 화를 내기보다는 좀더 당당하고 어른스럽게, 품격 있게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올해 ‘쪼개진 광복절’ 행사와 건국절 논쟁, 최근의 독도 지우기 논란을 어떻게 보셨는지. “건국절 논쟁은 시민사회나 학계에선 있을 수 있겠지만, 정부가 건국절을 따로 제정하려는 계획은 없는 걸로 압니다. 그걸 갖고 마치 그러한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전제로 해서 저렇게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며, 그걸 기화로 행사도 반쪽으로 나눠서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국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정말 부질없는 짓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요.” 김 전 총리는 대체로 담담한 어조를 유지했지만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이 조금 빨라졌다. “독도 문제도 느닷없이 독도를 지운다, 일본에 내준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며, 만약 정부가 그런 일을 한다면 그 정부는 그날로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함부로 공공연히 하는지, 그리고 그 기반 위에 정치권이 그걸 또 정치적으로 이용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건설적인 일에 신경을 써서 함께 가야지, 어떻게라도 핑곗거리를 찾아서 서로 분열할 생각을 하는지 너무 답답하고 한심스럽습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얘기들을 갖고서 왜 이렇게 나라가 갈갈이 찢겨지는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하고 ‘민족’ ‘통일’ 등의 개념을 아예 지워 버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독일 통일의 교훈은 어떤 것인가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이고, 전쟁 아닌 평화통일을 해야 하는데 거기엔 너무 많은 장애가 있으니까 어떤 구체적인 계획으로 통일할 수 있는 건 아니고요. 하나의 민족으로 서로 교류하고, 경제적으로 앞선 우리가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면서 할 도리를 해 나가다 보면 통일의 기회는 온다고 봅니다. 독일도 구체적 통일정책을 세운 것은 아니고, 통일부도 없었어요. 다만 하나의 민족으로 서로 교류하며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잔잔하게 해 나갔기에 동독 사람들의 마음을 사서 하늘이 준 기회를 살렸던 것이죠.” ―칼럼집 ‘풍경이 있는 세상’에서 “정치, 종교, 언론, 법원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 따라 그 결과로 우리 사회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넘쳐나고 있다”라며 걱정하셨죠. 오늘 우리 정치가 특히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무엇을 고치는 게 좋을까요. “정치란 건 미우나 고우나 타협을 해야죠. 개인의 정파적 이익보다는 국익을 생각해야 하는데, 국익이라는 게 생각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독일이 오늘날 저런 발전을 한 것은 협치와 연정을 통해 이뤄 낸 겁니다.” 김 전 총리는 ‘풍경이 있는 세상’에서 “거칠고 독한 이야기, 남에게 상처를 주는 글은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썼다. 이에 대해 그는 “누구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내 생각을 얘기하며, 함께 생각해 보자는 뜻으로 썼다. 그래서 설명하듯 구어체로, 또 낮은 자세로 경어체로 썼고, 되도록 문장을 쉽고 평이하게 쓰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요즘 정치인을 비롯해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리면서 거칠고 독한 말들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현재 입장에서만 생각하니까 독한 얘기를 할 텐데, 언젠가 그런 독한 말이 업보가 돼 부메랑으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표현한다면 본인에게도 이득이 될 겁니다. 나중에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게, 자중자애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료계의 진료 거부 장기화로 응급실 공백이 우려되는데요, 해결 방법이 없을까요. “이것도 서로 타협하고 절충할 여지가 분명히 있는 문제죠. 서로 인정하고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로 대화했으면 좋겠어요. 어느 한쪽이 완승완패한다면 해결이라 할 수 없겠죠.” ―로스쿨과 의과대학으로 우수 인력이 쏠리는 현상을 적절히 제어할 합리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쓰신 적도 있죠. “이건 정말 국가 장래가 걱정되는 현상이에요. 현실적으로 법조인이나 의사라는 직업에 안정성이 있다 보니 몰려가는 건 뭐라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국민들이 좀더 이 사회에 헌신하고 자기만족을 할 수 있는 것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도록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003~2005년의 ‘어젠다 2010’과 ‘하르츠4’라는 포괄적 노동·사회 개혁을 통해 독일 경쟁력의 회복을 시도했다. 이 정책은 슈뢰더와 사민당에 2005년 총선 패배를 가져왔지만, 개혁정책을 계승한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독일 경제를 회복시켜 번영의 기틀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연금·의료·노동·교육 등 4대 개혁은 더이상 늦출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인데요. 슈뢰더의, 독일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슈뢰더가 시작한 개혁은 사민당 지지자들이 손해를 보는 것이었어요. 그럼에도 국가 발전을 위해선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내세웠던 것이고, 메르켈 총리가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정책을 계승하고 독일을 번영시키는 엔진이 됐던 거죠. 우리도 정파적 이익이나 목전의 선거만 생각할 게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장래를 위해 어떤 게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을 해 줘야 해요. 서로 충분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절충점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화와 타협이 안 된다면 제비뽑기라도 해서 타협을 해야죠.” ■김황식 前총리는 1948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광주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광주지방법원장, 대법관, 감사원장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 제41대 국무총리(2010년 10월~2013년 2월)를 지냈다. 퇴임 후 안중근의사숭모회, 호암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동 중이고 지난해 6월부터는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산통신’,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풍경이 있는 세상’ 등의 저서를 펴냈다.
  • 도핑 논란에도… 신네르, US오픈 테니스 제패

    도핑 논란에도… 신네르, US오픈 테니스 제패

    얀니크 신네르(23·이탈리아)가 ‘도핑 논란’을 딛고 US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로저 페더러(43·은퇴·스위스), 라파엘 나달(38·스페인), 노바크 조코비치(37·세르비아) 등 ‘페나조 왕조’가 22년 만에 메이저 ‘무관’으로 전락하는 등 세대교체 흐름이 뚜렷하다. 신네르는 9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빌리 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끝난 대회 남자단식 결승에서 테일러 프리츠(27·미국)를 3-0(6-3 6-4 7-5)으로 제압하며 우승했다. 우승 상금은 360만 달러(약 48억원). 올해 1월 호주오픈에서 생애 처음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오른 신네르는 US오픈까지 차지하면서 1977년 기예르모 빌라스(72·아르헨티나) 이후 47년 만에 개인 첫 메이저 우승 2회를 한 시즌에 달성하는 흔치 않은 기록을 세웠다. 또 페나조와 카를로스 알카라스(21·스페인)에 이어 다섯 번째로 2000년 이후 단일 시즌 메이저 단식에서 2회 우승한 남자 선수가 됐다. 신네르의 US오픈 우승으로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을 석권한 알카라스와 신네르가 메이저 타이틀을 양분하며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각인시켰다. 남녀 테니스를 통틀어 4대 메이저 단식 우승자가 모두 2000년대생인 것은 올해 남자부가 처음이다. 페나조 가운데 아무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 역시 2002년 이후 22년 만이다. 페더러는 이미 은퇴했고, 나달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 절차를 밟고 있다. 조코비치는 대회 3회전에서 탈락했다. 대회 직전 신네르는 ‘도핑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3월 BNP 파리바오픈 당시 두 차례 약물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나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고의로 약물을 쓴 것이 아니다’라는 해명이 받아들여져 출전 정지 징계를 받지 않아 ‘1위 특혜’라는 논란도 불거졌다. 이와 관련, 신네르는 이날 우승 인터뷰에서 “최근 힘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우승은 의미가 크다”며 “나는 테니스를 사랑하고 여기에 오기까지 많이 연습했다”고 말했다.
  • 한국계 해밀턴의 레이븐스, 최강 치프스와 격돌…2024 NFL 개막 팡파르

    한국계 해밀턴의 레이븐스, 최강 치프스와 격돌…2024 NFL 개막 팡파르

    2024 미국프로풋볼(NFL)이 6일 오전(한국시간) 디펜딩 챔피언 캔사스시티 치프스와 아메리칸풋볼리그(AFC) 강자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여섯달간 열전에 돌입한다. 이번 시즌도 쿠팡플레이가 한국어 생중계로 NFL경기를 국내 팬들에게 선보인다. 최근 2년 연속 슈퍼볼을 제패한 캔자스시티는 당대 최고 쿼터백 패트릭 마홈스와 인기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연인으로 더 유명한 타이트 엔드 트래비스 켈시 등이 뛰고 있다. 최근 5년 가운데 4차례 슈퍼볼에 진출해 이 가운데 3번 우승하는 등 왕조를 구축했다. 이에 맞서는 볼티모어는 과거 두 차례 슈퍼볼에서 우승한 AFC 북부 지구의 강자다. 지난 시즌에는 AFC 챔피언십에서 캔자스시티에 완패하며 슈퍼볼 진출이 좌절됐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한국계 미국인 선수 카일 해밀턴이 2022시즌 지명되어 세이프티로 활약하고 있다. 2021년부터 입문자 가이드 영상, 한국계 선수 인터뷰 등을 통해 NFL 문턱을 낮추고 있는 쿠팡플레이는 2024시즌도 개막전을 시작으로 내년 2월 대망의 슈퍼볼까지 한장희 캐스터와 이요셉 해설위원이 호흡을 맞춰 생중계한다.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 슈퍼볼과 슈퍼볼 하프타임 쇼도 독점 중계할 예정이다.
  • ‘조선 왕실 기도처’ 경기 북부의 불교 문화 유산…서울 조계사서 ‘교종본찰 봉선사’전 개막

    ‘조선 왕실 기도처’ 경기 북부의 불교 문화 유산…서울 조계사서 ‘교종본찰 봉선사’전 개막

    경기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등 처음으로 산문을 나선 경기 북부지역의 대표적인 불교 문화유산과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대한불교조계종은 4일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조계사 경내 불교중앙박물관에서 ‘큰 법 풀어 바다 이루고, 교종본찰 봉선사’전 개막식을 열고 보물 15건 등 총 93건 262점의 문화유산을 선보였다. 조계종 총무원이 주최하고 경기 남양주 봉선사와 불교중앙박물관이 공동 주관하는 행사로, 조선 불교를 대표하는 교종 사찰인 봉선사의 본·말사 주요 성보들과 경남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등 여러 사찰과 기관 26곳에서 소장한 문화유산들이 대거 포함됐다. 불교는 조선 왕조에서 이념적으로 억압받았지만, 왕비와 후궁, 왕자, 공주 등 왕실의 수많은 일원은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대대로 이어 나갔다. 무엇보다 도성과 가깝고 능(陵), 원(園), 묘(墓)와 인접한 경기 북부 지역의 사찰은 조선 왕실의 기도처로 주목 받았다. 수많은 불사를 주도하는 등 왕실의 염원은 성보를 매개로 고스란히 전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 성보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전시는 3개 주제로 나뉘어 진행된다. 1전시실에선 ‘봉선사, 산문을 열다’를 주제로 봉선사의 주요 역사와 성보 문화유산을 조명한다. 가평 현등사 ‘범종’,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이상 보물), ‘치성광불회도’(경기 유형) 등이 처음으로 공개됐고,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세조 어진 초본’과 해인사성보박물관의 ‘세조대왕 진영’이 최초로 비교 전시된다. 1, 2전시실은 ‘불교, 경기 북부를 물들이다’가 주제다.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 파주 보광사 ‘범종’ 등 봉선사 말사의 대표 문화유산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약사불회도’,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상 보물), 가평 현등사 ‘수월관음도’(경기 유형) 등 조선 왕실과 연관이 있는 성보들이 전시된다. 아울러 해인사성보박물관 소장 ‘감지금니문수최상승무생계법’, 통도사성보박물관 소장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이상 보물) 최초로 비교 전시된다. 근대 불교회화의 거점이었던 19세기 남양주 흥국사 등에서 활동한 승려장인과 불교회화 작품도 조망한다. 3전시실은 ‘선지식, 미래를 꿈꾸다’를 주제로 독립운동, 교육불사, 우리말 번역 등을 통해 한국불교의 초석을 닦은 월초, 운허 스님 등 근현대 봉선사 선지식의 업적을 조명한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12월 1일까지 이어진다.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은 10월 2일~20일, 국립중앙박물관 ‘약사불회도’는 오는 2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의 ‘세조 어진 초본’은 11월 3일까지만 한정 전시된다. 입장은 무료다.
  • 세계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발견

    세계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발견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됐으면서도 가장 큰 천문대가 이집트에서 발견됐다고 미국 폭스 뉴스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집트 국가유물최고위원회의 고고학 조사·발굴단은 최근 북부 카프르 엘 셰이크주(州) 텔 엘 파라인(파라오들의 언덕·옛 부토)에 있는 부토 신전에서 기원전 6세기에 지어진 천문대를 성공적으로 발굴했다. 이 유적은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약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유하고 천문대 유적과 그 안에서 나온 일부 유물 사진도 공개했다. 그러면서 석회암 덩어리로 지은 이 천문대는 길이 최대 800m, 면적 총 850㎡에 달한다면서 세계 최초이자 가장 큰 천문 관측소라고 설명했다. 이집트 당국은 이 유적이 부토 신전 안에서도 태양과 별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등 천문학적 발견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이집트 고고학자들은 발굴 과정에서 해시계 뿐 아니라 일출과 일몰을 묘사한 조각화, 고대 이집트 왕조의 보물들도 발견했다. 유적 발굴 작업을 이끈 아이만 아쉬마위 박사는 신전에 있는 천문대가 구조적으로 천문 관측이 수월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밝히면서 일출과 일몰을 더 잘 추적하기 위해 동쪽과 서쪽에 측면 입구가 있고 내부에는 태양과 그림자의 움직임을 측정하기 위한 기울어진 구조물들도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해시계가 발견된 적도 있다. 이 시계는 기원전 1500년쯤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를 발명한 것은 바빌로니아인들이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 가장 오래 됐으면서 가장 커…이집트서 ‘기원전 6세기 천문대’ 발견 [핵잼 사이언스]

    가장 오래 됐으면서 가장 커…이집트서 ‘기원전 6세기 천문대’ 발견 [핵잼 사이언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됐으면서도 가장 큰 천문대가 이집트에서 발견됐다고 미국 폭스 뉴스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집트 국가유물최고위원회의 고고학 조사·발굴단은 최근 북부 카프르 엘 셰이크주(州) 텔 엘 파라인(파라오들의 언덕·옛 부토)에 있는 부토 신전에서 기원전 6세기에 지어진 천문대를 성공적으로 발굴했다. 이 유적은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약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유하고 천문대 유적과 그 안에서 나온 일부 유물 사진도 공개했다. 그러면서 석회암 덩어리로 지은 이 천문대는 길이 최대 800m, 면적 총 850㎡에 달한다면서 세계 최초이자 가장 큰 천문 관측소라고 설명했다. 이집트 당국은 이 유적이 부토 신전 안에서도 태양과 별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등 천문학적 발견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이집트 고고학자들은 발굴 과정에서 해시계 뿐 아니라 일출과 일몰을 묘사한 조각화, 고대 이집트 왕조의 보물들도 발견했다. 유적 발굴 작업을 이끈 아이만 아쉬마위 박사는 신전에 있는 천문대가 구조적으로 천문 관측이 수월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밝히면서 일출과 일몰을 더 잘 추적하기 위해 동쪽과 서쪽에 측면 입구가 있고 내부에는 태양과 그림자의 움직임을 측정하기 위한 기울어진 구조물들도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해시계가 발견된 적도 있다. 이 시계는 기원전 1500년쯤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를 발명한 것은 바빌로니아인들이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 이윤기문학상 수상한 전군표 “힘들고 어려워도 살아야 해요”

    이윤기문학상 수상한 전군표 “힘들고 어려워도 살아야 해요”

    “1994년 강원 영월에 있는 청령포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단종의 유배지죠.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는개’라고 하죠. 안개보단 짙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품어 왔던 소설입니다.” 평생 세무공무원으로 숫자를 다뤘던 전군표(70) 전 국세청장은 2021년 소설가로 데뷔한다. 조선시대 사육신(死六臣) 중 한 사람인 성삼문(1418~1456)의 딸 성효옥을 앞세운 역사소설 ‘효옥’(난다)을 펴내면서다. 조선 최고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노비로 팔린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 이 소설로 제1회 이윤기문학상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하는 전 전 청장을 오는 30일 시상식에 앞서 27일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만났다. “육필로 쓴 원고가 500쪽이 넘어요. 출판사에 갖다줬더니 300쪽으로 줄이자더군요. 덜어 내는 과정이 마치 생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팠어요. 자식 같은 문장들이었으니까. 그래도 결국 편집자의 말을 듣기로 했죠. 그렇게 완성된 책을 보니 그 말이 맞더군요. 콘텐츠가 넘치고 책을 잘 안 읽는 시대니까, 가벼워야죠.” 사육신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고 오래전 마음을 먹었지만, 공직 생활과 소설 집필을 병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06년 제16대 국세청장 자리에 올랐으나 이내 그만두고 극심한 고초를 겪었다. 그때 다시 읽은 것이 조선왕조실록이었고, 거기서 효옥을 찾았다. 최고의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은 어떨까. 그럼에도 효옥의 인생이 아름다웠으면 하는 마음에서 소설을 썼단다. 작품 속 “죽지 말고 살아”라는 말이 유독 많이 나오는 이유다. “처음 상을 준다고 했을 땐 진심으로 사양했어요. 미흡한 제게 과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한 번 더 연락이 왔을 땐 받기로 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글과 문학을 향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이윤기 선생님의 이름을 딴 상을 받게 돼 영광입니다.” 글깨나 읽은 사람이라면 소설가이자 번역가, 신화학자로 이름을 날린 이윤기(1947~2010)의 이름을 모를 수 없다. 교양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서양 문화의 원천을 맛보게 했으며,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번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구 군위 출신인 이윤기의 정신을 기리고자 지난 6월 28일 군위군 우보면에 이윤기 문학비가 세워졌다. 이윤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이윤기문학상도 올해 처음으로 제정됐다. 전 전 청장 외에도 단편소설 부문에서는 홍선희 작가가, 번역문학 부문에서는 남주희 번역가가 각각 상을 받는다. “차기작이요? 일단 자료 수집하면서 너무 고생해서 역사소설은 안 쓰고 싶어요. 인구소멸 같은 큰 주제들은 여럿 떠오르는데…. 잘 써지진 않네요. 그래도 요즘 ‘작가님’이라고 불릴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이 책을 쓰는 과정이 국세청장 자리에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힘들었으니까요. 이 소설이 멋진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떨까요?”
  • [서울광장] 통진에서 병자호란을 바라보니

    [서울광장] 통진에서 병자호란을 바라보니

    학창 시절 친구가 손수 번역했다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역사 기록 여러 권을 사과 상자로 부쳐 준 것이 벌써 오래전이다. 그럼에도 며칠 전에야 ‘강도일기’(江都日記)를 끝으로 모두 읽었으니 이제야 마음의 빚을 조금 덜어낸 느낌이다. 병자호란 당시 경기좌도 수운판관이던 어한명(1592~1648)이 강화도로 건너가는 통진 나루에서 목도한 조선 지도층의 적나라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강도일기’다. 염하(鹽河)라고도 부르는 강화해협으로 들어서기 전 도로 표지판에는 통진이라는 땅 이름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통진(通津)은 통일신라의 분진(分津)을 고려가 바꾼 이름이라고 한다. 분진은 한강과 염하가 갈래를 이룬다는 뜻일 텐데 두 물길이 여기서 이어진다는 다르지 않은 의미로 통진이라 이름 붙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조선 후기 통진도호부는 월곶면, 통진읍, 대곶면, 하성면 등 오늘날의 경기 김포시 북부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읍치의 흔적을 둘러보려면 통진읍이 아니라 월곶면으로 가야 한다. 월곶면 군하리에 통진도호부 터와 통진향교가 있다. 도호부 터에는 현감·부사의 선정비가 줄지었는데 당시 건물은 아전 집무 공간인 이청(吏廳)만 남았다. 아마도 도호부 관아의 중심 권역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자리의 월곶생활문화센터에는 다행히 통진도호부전시관이 들어서 역사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다. 통진은 정묘호란(1627) 당시 인조가 강화도를 오가며 밤을 보낸 곳이다. 강화도로 건너가는 갑곶 나루는 고개 하나만 넘어가면 나타난다. 이곳에 강화대교가 세워졌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강화를 잇는 큰길이다. 눈을 돌리면 강화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 문수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숙종이 통진현을 통진도호부로 승격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현감은 종6품, 도호부사는 종3품이니 통진의 위상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강도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병자년(1636) 겨울 10월 호조판서가 “수참선을 남김없이 통진에 옮겨 정박시키라”고 공문을 내렸으니 난리가 났을 때 호조 화물을 운반하려는 것으로 여겼다’고 적었다. 12월 12일 ‘서쪽 변방에 청군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급보가 이르렀다’고 했으니 병자호란이었다. 이후 불과 수일 만에 청군이 한양에 이르고 강화 길이 막히자 인조가 조정을 이끌고 남한산성에 들어간 것은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과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비롯해 빈궁과 원손 등 다른 왕실 구성원은 갑곶 나루에서 가까스로 강화로 건너갈 수 있었으니 ‘강도일기’에는 암울하기만 했던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때 소현세자는 인조와 남한산성으로 갔다. 어한명은 당시 강화도 방어의 책임을 맡았던 김경징의 추악한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일 듯싶다. 김경징은 인조반정의 1등 공신인 김류의 아들로 호란이 일어나자 강도검찰사에 임명됐다. 하지만 갑곶 나루에선 대군과 빈궁보다 자기 가족을 먼저 배에 태우려 했고, 강화에선 김포와 통진의 곡식을 실어 오게 해서는 측근들에게만 나눠 줘 민심을 들끓게 했다. 그는 “강화는 금성철벽(金城鐵壁)”이라고 호언하면서 대책 없이 술만 마시다 청군에 쫓겨 도망쳤다는 인물이다. 북한땅 개풍군이 바라보이는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는 얼마 전 고려천도 공원이 문을 열었다. 고려왕조가 몽골의 침략에 강화로 천도할 때는 당연히 수도 개성을 출발해 오늘날의 개풍 승천포에서 배를 타고 건넜다. 개풍의 포구와 같은 이름인 강화 승천포는 한강을 거슬러 한양으로 가는 배들이 거쳐가는 포구였다고 한다. 용산에서 배를 띄우면 강화 승천포는 지척이지만 겨울이었다. 청나라 군사는 얼어붙은 강을 손쉽게 건넌 반면 조선은 같은 이유로 뱃길이 가로막혔다. 어한명은 경기 서부의 조운을 담당한 관리였다. ‘강도일기’를 읽고서야 홍타이지의 침략이 얼마나 정교한 판단의 결과로 이루어졌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반면 어한명이 그린 통진 갑곶 나루의 모습은 감추어 놓았던 조선의 실체를 들킨 것만 같아 씁쓸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 3500년 전 ‘입 벌리고 절규’ 이집트 미라…생전 모습은 어땠을까

    3500년 전 ‘입 벌리고 절규’ 이집트 미라…생전 모습은 어땠을까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절규하는 듯한 표정의 3500년 전 미라의 생전 얼굴이 복원됐다. 영국 가디언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그림 ‘절규’와 유사한 이 미라는 1935년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하트셉수트 여왕 시대의 건축가 세넨무트 무덤 아래의 나무 관에서 발견됐다. 인근에서는 세넨무트의 어머니인 하트노페르와 친척들의 무덤도 함께 발견돼, 이 여성 역시 세넨무트의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를 이끈 사하르 살림 카이로 대학교 방사선과 교수 연구진은 해당 미라가 입을 크게 벌린 채 절규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고통스러운 죽음, 또는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연구진은 CT를 통해 여성의 사망 당시 나이는 48세, 키는 155㎝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여성은 생전에 척추 등에 가벼운 관절염을 앓았으며 여러 개의 치아가 빠져있는 상태였다. 독특한 표정으로 굳어진 미라의 생전 모습을 복원한 것은 브라질의 그래픽 전문가인 시세로 모라에스다. 그는 여러 접근 방식을 결합해 최종적으로 죽기 직전의 모습과 생전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래픽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피부 톤과 머리 모양 등은 상상력을 적용해 재건됐다. 해당 여성은 둥근 얼굴과 짙은 쌍커풀을 가지고 있으며, 죽기 직전에는 눈을 모두 감은 채 앞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린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피부 톤이나 눈 색깔 등 일부 요소는 고정적 관념을 피하기 위해 회색빛으로 표현됐다. 특히 고대 이집트인의 피부색에 대한 많은 논란을 고려해, 이와 관련한 출판물과 연구 자료, 고대 이집트 미술에 기반해 색을 입혔다. 모라에스는 “얼굴을 재구성하는 전통적인 방식과 CT 스캔 데이터 결합한 새로운 방식을 이용했다”면서 “이러한 방식을 통해 귀, 눈, 코, 입 등의 구조에서 공간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에 재건된 여성의 얼굴 이미지에서는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뚜렷한 특징은 표현되지 않았다. 앞서 살림 교수 연구진은 이 여성이 금과 은으로 된 풍뎅이 모양의 반지 ‘스카라베’를 낀 채 매장됐으며 방부 처리 재료로 값비싼 향나무와 헤나 염료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해당 여성이 상류층이었을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장기가 전혀 제거되지 않은 미라, 놀라운 발견”한편, 이번에 공개된 미라는 다른 미라와 달리 몸 안에 장기가 제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들어있었고, 방부 처리를 위한 절개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미라를 연구한 살림 교수는 “이집트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69년)의 미라화 방법은 심장을 제외한 모든 장기를 제거했다”면서 “(이 여성 미라처럼) 미라의 장기가 그대로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여성은 사망 당시 극심한 고통이나 정서적 스트레스를 겪었으며, 즉각적으로 사후 경직이 나타나면서 그 고통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을 수 있다”면서 “방부처리사가 시신의 입을 다물어주지 못했고, 시신이 부패하거나 이완되기 전에 미라화가 진행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학계에서는 이 여성 미라의 입이 크게 벌어져 있는 상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교의 살리마 이크람 교수는 “사후 경직 때문에 방부 처리를 맡은 사람들이 이 표정을 영원히 놔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미라화 중 건조 작업에는 40일이 걸리므로 그동안 충분히 이목구비를 재배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통스러운 표정의 3500년 전 미라와 관련한 연구는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메디신’에 실렸다.
  • ‘절규하는’ 3500년전 여성 미라, 죽기 전 ‘이 얼굴’ 이었다…생전 모습 복원[핵잼 사이언스]

    ‘절규하는’ 3500년전 여성 미라, 죽기 전 ‘이 얼굴’ 이었다…생전 모습 복원[핵잼 사이언스]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절규하는 듯한 표정의 3500년 전 미라의 생전 얼굴이 복원됐다. 영국 가디언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그림 ‘절규’와 유사한 이 미라는 1935년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하트셉수트 여왕 시대의 건축가 세넨무트 무덤 아래의 나무 관에서 발견됐다. 인근에서는 세넨무트의 어머니인 하트노페르와 친척들의 무덤도 함께 발견돼, 이 여성 역시 세넨무트의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를 이끈 사하르 살림 카이로 대학교 방사선과 교수 연구진은 해당 미라가 입을 크게 벌린 채 절규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고통스러운 죽음, 또는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연구진은 CT를 통해 여성의 사망 당시 나이는 48세, 키는 155㎝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여성은 생전에 척추 등에 가벼운 관절염을 앓았으며 여러 개의 치아가 빠져있는 상태였다. 독특한 표정으로 굳어진 미라의 생전 모습을 복원한 것은 브라질의 그래픽 전문가인 시세로 모라에스다. 그는 여러 접근 방식을 결합해 최종적으로 죽기 직전의 모습과 생전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래픽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피부 톤과 머리 모양 등은 상상력을 적용해 재건됐다. 해당 여성은 둥근 얼굴과 짙은 쌍커풀을 가지고 있으며, 죽기 직전에는 눈을 모두 감은 채 앞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린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피부 톤이나 눈 색깔 등 일부 요소는 고정적 관념을 피하기 위해 회색빛으로 표현됐다. 특히 고대 이집트인의 피부색에 대한 많은 논란을 고려해, 이와 관련한 출판물과 연구 자료, 고대 이집트 미술에 기반해 색을 입혔다. 모라에스는 “얼굴을 재구성하는 전통적인 방식과 CT 스캔 데이터 결합한 새로운 방식을 이용했다”면서 “이러한 방식을 통해 귀, 눈, 코, 입 등의 구조에서 공간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에 재건된 여성의 얼굴 이미지에서는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뚜렷한 특징은 표현되지 않았다. 앞서 살림 교수 연구진은 이 여성이 금과 은으로 된 풍뎅이 모양의 반지 ‘스카라베’를 낀 채 매장됐으며 방부 처리 재료로 값비싼 향나무와 헤나 염료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해당 여성이 상류층이었을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장기가 전혀 제거되지 않은 미라, 놀라운 발견”한편, 이번에 공개된 미라는 다른 미라와 달리 몸 안에 장기가 제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들어있었고, 방부 처리를 위한 절개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미라를 연구한 살림 교수는 “이집트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69년)의 미라화 방법은 심장을 제외한 모든 장기를 제거했다”면서 “(이 여성 미라처럼) 미라의 장기가 그대로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여성은 사망 당시 극심한 고통이나 정서적 스트레스를 겪었으며, 즉각적으로 사후 경직이 나타나면서 그 고통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을 수 있다”면서 “방부처리사가 시신의 입을 다물어주지 못했고, 시신이 부패하거나 이완되기 전에 미라화가 진행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학계에서는 이 여성 미라의 입이 크게 벌어져 있는 상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교의 살리마 이크람 교수는 “사후 경직 때문에 방부 처리를 맡은 사람들이 이 표정을 영원히 놔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미라화 중 건조 작업에는 40일이 걸리므로 그동안 충분히 이목구비를 재배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통스러운 표정의 3500년 전 미라와 관련한 연구는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메디신’에 실렸다.
  • 경북 시군, 베트남 도시들과 교류협력 강화 러시

    경북 시군, 베트남 도시들과 교류협력 강화 러시

    경북 시군들이 베트남 도시와의 교류협력 강화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경북 봉화군은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2024 다낭시 한국·베트남 축제’에 참가, 홍보 부스를 운영하고 양 도시 간 교류를 강화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방문은 지난 7월 다낭시의 당서기 등 다낭 대표단이 봉화군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양 도시 간 교류 강화를 위해 마련됐다. 봉화군은 축제에서 봉화가 베트남 독립 왕조인 리 왕조의 후손과 유적지가 위치한 유일한 고장임을 알리고 현재 추진 중인 K-베트남밸리 조성 사업과 농특산물 등을 소개했다. 또 지난 16일 다낭시청을 방문, 응웬 반 꽝 다낭 당서기장과 환담을 갖고 관광 분야의 교류 협력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박현국 봉화군수는 “양국 간의 상호 협력과 발전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만남이 됐다”며 “앞으로 양 도시간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구미시는 국제우호도시 베트남 박닌시와의 교류 협력 강화를 지난 6일부터 4일간 박닌시를 방문했다. 김장호 시장이 시 대표단을 이끌었다. 이번 방문은 박닌시 독립 70주년을 축하하고 양 도시 간 교류 확대 방안을 논의 및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진행됐다. 대표단은 박닌시장 및 관계자들과 면담을 갖고 경제협력 강화, 국제행사 홍보, 문화 예술 교류 확대, 글로벌 인재 교류 방안 등을 논의했다. 또 공적개발원조사업(ODA)인 구미시 새마을 해외시범마을 조성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박닌성 정부 관계자와 함께 사업 대상지인 보껑동 화딘마을 현장을 시찰했다. 울진군은 지난 14일 군청을 방문한 베트남 풍딘현 지역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풍딘현 대표단 10여명을 맞았다. 양 도시는 지난 2016년 풍딘현 새마을 시범마을 조성 사업을 계기로 교류를 시작, 2017년엔 국제자매결연도시 협약을 체결했다. 군은 앞으로 풍딘현과 경제, 관광,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교류해 일자리 창출, 관광객 유치 등 실질적인 성과를 낼 계획이다.
  • 조선 최후의 왕녀, 뉴욕서 “父 의친왕, 어떻게든 광복하려 애써” 회고

    조선 최후의 왕녀, 뉴욕서 “父 의친왕, 어떻게든 광복하려 애써” 회고

    조선왕조 마지막 왕녀이자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94) 여사는 15일(현지시간) “아버지는 어떻게든 나라를 되찾으려고 애를 쓰셨다”고 회상했다. 이 여사는 이날 맨해튼 뉴욕한인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뉴욕한인회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으며 “나는 받을 자격이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가 받으신다고 생각하고서 받겠다”라며 이같이 언급했다. 고종 손녀이자 의친왕 이강(1877∼1955)의 딸인 이 여사는 의친왕이 별세한 이듬해인 1956년 미국으로 유학한 뒤 뉴욕에서 살며 컬럼비아대 도서관 사서로 일했다. 의친왕은 1919년 항일 독립투사들과 접촉해 상하이 임시정부로의 탈출을 모의하다 발각돼 강제 송환된 바 있다. 이후 의친왕 부부는 수년간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여사는 사서 재직 시절 의친왕의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를 발굴하며 부친의 삶을 재조명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이 여사는 이날 “사실 오늘은 아버지의 69주년 기일이라 마음이 착잡하다”라고 소회를 말했다. 또 “8월 15일은 제게 잊을 수 없는 날”이라며 “둘째 오빠 이우가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돌아가셔서 장사를 지냈던 날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장사를 지내고 집에 돌아오는데 종로에 전 국민이 나와 만세를 부르는데, 그때의 감격은 지금 생각해도 떨린다”라고 했다. 이 여사는 “우리 집안이 결국 책임을 못 지고 나라를 잃었지만 아버지는 그게 너무 속상해서 평생 어떻게든 나라를 되찾겠다고 열심히 뛰셨다”며 “그러나 성공하지 못하고 1955년 8월 16일 새벽 한 많은 생을 마치셨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밤낮없이 ‘내가 죽어야지’라고 말씀하시던 게 지워지지 않는다”라고 이 여사는 회고했다. 뉴욕한인회는 이날 이 여사에게 감사패를 전하면서 “의친왕의 왕녀로서 나라 사랑 일편단심으로 평생을 살아온 애국의 열정에 감사하며 왕가의 예와 전통을 후대에 보여줌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갖게 해줬다”라고 소개했다.
  • 시진핑 1인 천하… 中 불길한 미래

    시진핑 1인 천하… 中 불길한 미래

    긴 역사와 수많은 왕조, 전 세계에 남은 5개 공산국가 가운데 하나이자 독재국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세계의 공장, 미국과 맞서는 유일한 나라. 여러 키워드를 놓고 봐도 중국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에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중국 전문가인 저자는 시험(Examination), 독재(Autocracy), 안정(Stability), 기술(Technology)의 머리글자를 딴 ‘EAST’로 중국을 해석한다. 저자는 “중국과 다른 문명의 차이점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수나라(581~618) 때 처음 치러진 국가 주도 관료 채용 시험”이라고 말한다. 국가가 최고의 인적 자본을 독점할 수 있도록 한 시험은 다른 사회 기관들이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접근성을 박탈했고 개인의 비판적 사고와 다양성, 공감 등 자유주의적 가치를 말살했다. 국가의 힘이 세지면서 권력자에게 힘이 몰리고 권력이 지나치게 쏠릴 때마다 중국은 휘청거렸다. 분서갱유, 문화대혁명, 천안문 항쟁 등 이른바 ‘흑역사’는 경고등이었다. 그럴 때마다 중국은 나름의 권력 분산을 통해 안정을 꾀했다. 저자는 1980년대 중국을 특징짓는 놀라운 권력 분산과 이념적 다양성, 눈부신 경제 성과를 EAST의 틀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이런 발전이 수직적 자본주의, 즉 국가에 의존하는 자본주의를 재창조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1989년 6월 4일 천안문 항쟁 이후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고 이후 중국공산당 총서기라는 직책에 힘이 실리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이런 누적 투자의 수혜자가 바로 시진핑이며, 역설적으로 천안문 항쟁이 미래의 독재자를 위한 길을 열었다”고 지적한다. 2018년 국가주석 임기 제한이 폐지되면서 중국은 사실상 시진핑 1인 독재 체제로 돌입했다. 재앙과도 같았던 마오쩌둥의 종신 집권 체제로 다시 돌아간 셈이다. 향후 중국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책의 제목처럼 저자는 중국 앞에 놓인 것은 ‘불길한 미래’라고 꼬집는다.
  • 110년만에 귀향한 ‘조선실록’…“소중한 유산 널리 알린다”

    110년만에 귀향한 ‘조선실록’…“소중한 유산 널리 알린다”

    강원 평창 월정사가 110년 만에 귀환한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오대산 사고본을 선양하기 위해 강원도, 평창군과 손을 잡는다. 퇴우 정념 월정사 주지스님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의궤선양회(선양회)는 오는 16일 강원도청에서 오대산 사고본 선양에 상호 협력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강원도, 평창군과 맺는다고 15일 밝혔다. 협약에 따라 선양회, 강원도, 평창군은 오대산 사고본 선양을 위한 사업을 전개한다. 이병섭 월정사 기획팀장은 “오대산 사고본이 돌아온 것을 계기로 강원, 평창이 세계적인 기록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협력 방안을 논의해 나갈 것”이라며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선양, 지역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벌이겠다”고 설명했다. 오대산 사고본 실록은 1913년 조선총독 데라우치와 도쿄대 교수 시로토리의 결탁으로 강릉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 도쿄대로 갔고, 의궤는 192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 왕실 사무를 담당하는 궁내청에 기증해 반출됐다. 1980년대 환수운동이 벌어졌고, 2006년과 2011년 환국에 이어 지난해 11월 오대산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으로 환지본처(본래 자리로 돌아감)했다. 이후 지난 3월 오대산 사고본 범도민 환수위원회는 선양회로 전환했다. 퇴우 정념 선양회 이사장은 “많은 분의 관심과 도움으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인 오대산 사고본이 고향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며 “이제 그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박정희 광장’ 5m 표지판 우뚝… 새 이름 붙는 대구 동대구역 광장

    ‘박정희 광장’ 5m 표지판 우뚝… 새 이름 붙는 대구 동대구역 광장

    대구시, 내년엔 박정희 동상도 설치 예정 홍준표 대구시장이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개칭하고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고 밝힌 계획이 실행되자 야권과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12일 대구시 등에 따르면 시는 오는 13일 동대구역 광장에 높이 4~5m의 ‘박정희 광장’ 표지판을 설치하고 14일 제막식을 연다. 시는 그동안 해당 광장이 공식적인 명칭 없이 ‘동대구역 광장’으로 불려 왔다며 표지판을 세움으로써 공식적인 명칭을 ‘박정희 광장’으로 삼겠다고 설명했다. 시는 표지판 외에도 박정희 동상을 내년에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제막식 일정이 알려지자 시민단체와 야당 등은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이날 논평을 내고 “홍준표 시장의 시대착오적이고 반역사적인 박정희 우상화 사업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240만 대구시민뿐만 아니라 5000만 국민과 외국인들이 널리 사용하는 ‘동대구역 광장’의 이름을 제대로 된 시민 의견 수렴 없이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는 것은 왕조시대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폭거”라고 주장했다. 정의당도 성명을 통해 “공원 이름 하나 바꿔도 주민 의견을 듣는데 ‘동대구역 광장’ 이름을 시장 마음대로”라며 “그야말로 박정희 독재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홍 시장의 이러한 행보가 스스로의 대권가도와 정치적 야욕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이 없다”면서 “한 개인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시민의 소유인 광장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대구참여연대는 성명을 내고 “친일 부역자, 반민주적인 성향의 동상을 공공장소에 건립하려는 대구시의 계획을 반대한다”며 “동상 건립 관련 찬반 여론이 분분한 지금 무리하게 ‘박정희 광장’ 표지만 제막식을 강행하는 것은 시민 의사를 무시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전형적인 불통행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8월 15일 광복절을 앞둔 시점에서 혈서로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인 박정희의 이름을 대구 관문인 동대구역 이름으로 명명하는 표지판 제막식을 개최하는 것은 홍준표 시장의 반역사적인 사고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최보기의 책보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비결에 대하여

    [최보기의 책보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비결에 대하여

    놀랍다 #1.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기자로 18년 밥벌이를 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깔끔하게 <숲 해설가>로 변신했다. 아마도 유력 언론사일 것 같은데 경력 18년차라면 한참 왕성하게 활동하고, 영향력도 클 중견 기자다. 생계를 위한 연봉에 더해 기자에게 주어지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번아웃이 있었다’ 해도 그런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 놀랍다. 놀랍다 #2. 나뭇잎에 붙어 있는 누에를 보면 징그러워 눈을 돌리는 사람으로서 누에를 직접 키우면서 성장과정을 꼼꼼히 챙기고 살피는 일 하나로 이렇게 대단한 책 한 권을 엮을 수 있음이 놀랍다. 저자는 아홉 마리의 애벌레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조선왕조실록』까지 여러 문헌을 들춰가며 누에와 양잠업을 ‘공부’했다. 여기서 다시 소설가 김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그가 쓰는 명문의 비결은 ‘관찰과 공부’다. 그는 먼 곳과 세밀한 것의 관찰을 위해 망원경과 루페(돋보기)를 늘 가방에 넣어 다닌다고 했다. 산문집 『자전거 여행』을 읽다 보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수련(睡蓮)이 피었다가 지는 과정을 쓴 글에 ‘숨 막히는 허송세월’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는 그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광릉수목원의 연못가에 죽치고 앉아 수련이 피는 과정을 새벽부터 저녁까지, 수련과 연못의 모든 변화를 꼼꼼하게 관찰했고 수련의 식물성에 대해 공부했다. 놀랍다 #3.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의 서평을 쓰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누에 키우기 상자’가 이미 보급 중이고, 누에 키우기를 즐기는 ‘누에 집사(잠모)’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양이 집사는 들어봤지만 누에 집사라니! 놀랍다 #4. 물론 저자는 누에 이야기로만 책 한 권을 채울 공력이 아니다. <숲 해설가>인 저자가 자연에서 통찰한 ‘고급진 사유(思惟)’가 ‘무해한 최소한의 삶’, ‘무심하고 무참한 자연의 질서’ 등으로 녹아들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전우익 선생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실천적으로 구현한 ‘자연철학’이 함께 숨을 쉰다. 지금까지는 솔직히 <숲 해설가>는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이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인생이모작으로나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결코 그게 아니었다. 자, 이제 누구든 좋은 책을 쓰고 싶거든 자기가 가장 자신 있는 한 가지 종목을 선택해 ‘관찰과 공부’를 시작하기 바란다.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임도혁 전 조선일보 기자 ‘의병은 살아 있다, 호남·충청 순례’ 펴내

    임도혁 전 조선일보 기자 ‘의병은 살아 있다, 호남·충청 순례’ 펴내

    임도혁 전 조선일보 기자가 6일 저서 ‘의병은 살아 있다, 호남·충청 순례’(312쪽,가디언)를 펴냈다. 저자는 “미증유의 참혹한 국난을 맞아 절대적 열세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일어난 임진왜란 의병의 뜨거운 함성과 숨결, 우리 마음에 살아 있는 그 정신을 발로 뛰어다니며 조명했다”며 “다른 책과 차별화를 위해 사료에 충실하고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한마디로 ‘3D 입체서적’”이라고 말했다. 의병들의 후손이나 관련 인사들의 목소리를 담았고, 드론까지 동원해 ‘현장’을 생생하게 찍어 넣었다. 책은 4부로 이뤄졌다. 1부는 임진왜란 전황을 바꾼 의병과 수군의 역할, 2부는 송제민·황진·고경명·조헌·영규대사·김천일 같은 쟁쟁한 의병을 설명한다. 3부는 정유재란 때 호남을 유린한 상황과 김덕령 등의 활약을 소개한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의병장도 알린다. 4부는 ‘간양록’ 등 전쟁 일기를 기록했다. 서울대 규장각의 조선왕조실록 태백산본을 1985년 부산역사기록관으로 옮긴 이유, 칠백의총에 영규대사가 이끈 승병 800명의 순국이 제외돼 불교계에서 불만스러운 상황, ‘국민 연인’ 논개 담론의 확대재생산 과정 등 흥미로운 대목도 적잖다. 조선왕조실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의의도 설명한다. 저자는 “AI(인공지능)가 만든 가공의 정보까지 넘쳐나는 시대지만 이 책에는 앉아서 얻을 수 없는 정보와 통찰이 담겨 있다고 본다. 의병의 숭고한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깨달음이 함께할 것”이라며 “앞으로 영남 의병과 중부·이북 의병에 대한 집필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조선일보 충청취재본부장을 끝으로 정년 퇴임한 뒤 현재 한밭FM 대표로 있다.
  • 나일강 바닥서 ‘이집트 파라오’ 묘사된 상형문자 발견

    나일강 바닥서 ‘이집트 파라오’ 묘사된 상형문자 발견

    이집트 나일강 수중 탐사 과정에서 고대 이집트 파라오가 묘사된 암각화 및 상형문자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라이브사이언스 등 과학전문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이집트 합동팀이 나일강 상류의 국경도시인 아스완에서 탐사 활동을 벌이던 중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암각화를 발견했다. 앞서 아스완은 1960~1970년 아스완 하이 댐이 건설되면서 일대가 완전히 수몰됐다. 해당 지역이 침수 피해를 입기 전 유네스코가 주도해 이 지역에서 가능한 한 많은 고고학적 유물을 기록하고 옮기려 노력했다. 때문이다. 여기에는 각각 21m 높이의 람세스 2세 동상 4개가 있는 아부심벨도 포함돼 있다. 유네스코 주도로 세계 각국이 협력하여 이 신전들을 해체 후 고지대로 옮겨 재조립했다. 일부 소규모 신전들은 수몰을 피할 수 없어 미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의 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많은 유물이 제때 옮겨지지 않았고 댐 건설로 상당수의 유물이 수장됐다. 아스완은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국경이 인근에 있었던데다 여러 중요한 사원도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고대 유적이 나일강 깊숙한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현재 수중에 있는 비문과 조각을 식별하고 이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은 나일강에 잠수한 뒤 사진과 비디오 등의 방식으로 유물을 찾고 기록하는데, 최근에 해당 프로젝트에서 아멘호테프 3세(기원전 1390년~1352년경 재위), 투트모세 4세(기원전 1400년~1390년경 재위), 프삼티크 2세(기원전 595년~589년경 재위), 프삼티크 2세의 아들 아프리에스(재위 B.C 589년-B.C 570년) 등 이집트 파라오들에 대한 비문이 적힌 조각품을 발견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해당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들은 아스완 댐 건설로 수십 년 동안 물에 잠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오타와대학의 한 전문가는 라이브사이언스에 “매우 흥미로운 발견인 것은 사실이나 그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영국 에섹스대학의 윌리엄 캐루터스 박사는 “유네스코가 1960년대 당시 유물 구조 활동을 수행했을 당시의 예상보다 더 많은 유물이 홍수에서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아스완 인근에서 발굴을 지휘하는 스페인 하엔대학의 알레한드로 히메네스-세라노 박사는 “아스완은 고대 이집트 시절 화강암을 캐는 중요한 채석장이었으며, 새로 발견된 암각화가 적힌 바위는 이집트의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해 제작된 것일 수 있다”면서 “또는 아스완 인근에 있던 사원의 일부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지난달 아스완에서 발견한 고대 무덤에서 출토된 화려한 장식의 석관(사르코파구스) 일부를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집트 당국은 아스완에서의 발견이 당시 창궐했던 질병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줄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한 바 있다. 한편, 아스완을 대표하는 아부심벨은 기원전 13세기 고대 이집트 제19조왕조 시기 66년간 이집트를 통치한 파라오 람세스 2세(기원전 1279~1213년 재위)가 세운 것이다. 집권 기간 여러 차례 전쟁을 치러 영토를 시리아에서부터 수단 북부까지 확장하며 이집트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이끈 파라오로 평가받는 람세스 2세는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룩소르와 아스완에 아부심벨, 태양 신전을 포함해 수많은 건축물을 세웠다.
  • 이집트 파라오의 ‘비밀’ 적혔을까…나일강 바닥서 비문 적힌 바위 찾았다[핵잼 사이언스]

    이집트 파라오의 ‘비밀’ 적혔을까…나일강 바닥서 비문 적힌 바위 찾았다[핵잼 사이언스]

    이집트 나일강 수중 탐사 과정에서 고대 이집트 파라오가 묘사된 암각화 및 상형문자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라이브사이언스 등 과학전문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이집트 합동팀이 나일강 상류의 국경도시인 아스완에서 탐사 활동을 벌이던 중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암각화를 발견했다. 앞서 아스완은 1960~1970년 아스완 하이 댐이 건설되면서 일대가 완전히 수몰됐다. 해당 지역이 침수 피해를 입기 전 유네스코가 주도해 이 지역에서 가능한 한 많은 고고학적 유물을 기록하고 옮기려 노력했다. 때문이다. 여기에는 각각 21m 높이의 람세스 2세 동상 4개가 있는 아부심벨도 포함돼 있다. 유네스코 주도로 세계 각국이 협력하여 이 신전들을 해체 후 고지대로 옮겨 재조립했다. 일부 소규모 신전들은 수몰을 피할 수 없어 미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의 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많은 유물이 제때 옮겨지지 않았고 댐 건설로 상당수의 유물이 수장됐다. 아스완은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국경이 인근에 있었던데다 여러 중요한 사원도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고대 유적이 나일강 깊숙한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현재 수중에 있는 비문과 조각을 식별하고 이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은 나일강에 잠수한 뒤 사진과 비디오 등의 방식으로 유물을 찾고 기록하는데, 최근에 해당 프로젝트에서 아멘호테프 3세(기원전 1390년~1352년경 재위), 투트모세 4세(기원전 1400년~1390년경 재위), 프삼티크 2세(기원전 595년~589년경 재위), 프삼티크 2세의 아들 아프리에스(재위 B.C 589년-B.C 570년) 등 이집트 파라오들에 대한 비문이 적힌 조각품을 발견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해당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들은 아스완 댐 건설로 수십 년 동안 물에 잠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오타와대학의 한 전문가는 라이브사이언스에 “매우 흥미로운 발견인 것은 사실이나 그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영국 에섹스대학의 윌리엄 캐루터스 박사는 “유네스코가 1960년대 당시 유물 구조 활동을 수행했을 당시의 예상보다 더 많은 유물이 홍수에서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아스완 인근에서 발굴을 지휘하는 스페인 하엔대학의 알레한드로 히메네스-세라노 박사는 “아스완은 고대 이집트 시절 화강암을 캐는 중요한 채석장이었으며, 새로 발견된 암각화가 적힌 바위는 이집트의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해 제작된 것일 수 있다”면서 “또는 아스완 인근에 있던 사원의 일부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지난달 아스완에서 발견한 고대 무덤에서 출토된 화려한 장식의 석관(사르코파구스) 일부를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집트 당국은 아스완에서의 발견이 당시 창궐했던 질병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줄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한 바 있다. 한편, 아스완을 대표하는 아부심벨은 기원전 13세기 고대 이집트 제19조왕조 시기 66년간 이집트를 통치한 파라오 람세스 2세(기원전 1279~1213년 재위)가 세운 것이다. 집권 기간 여러 차례 전쟁을 치러 영토를 시리아에서부터 수단 북부까지 확장하며 이집트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이끈 파라오로 평가받는 람세스 2세는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룩소르와 아스완에 아부심벨, 태양 신전을 포함해 수많은 건축물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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