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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 공부친구 해주다 박사됐네요”

    자녀들의 공부 친구를 해주다 대학에 들어가 박사 학위까지 따낸 주부가 화제를 낳고 있다. 주인공은 14일 인하대학교에서 ‘저고리 변천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태옥(55·여)씨. 이씨는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1981년 교사인 남편(62)과 당시 일곱살, 다섯살이던 두 아들과 함께 서울 강서구 개화동으로 이사하면서 이씨의 공부가 시작됐다. 주변에 변변한 학원조차 없는 시골에 가까운 교육환경 때문에 아이들의 학교 공부 보충을 위해서 가정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이 옆에서 가계부를 쓰는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게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막상 공부를 해보니 재미도 있고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가 직접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한번 마음먹자 숨어 있던 이씨의 향학열이 불타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방송통신대 가정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졸업한 뒤엔 외가 쪽에서 물려받은 재능을 살려 대학원(건국대 의류학과)에 들어가 한국 전통 복식(服飾)을 공부했다.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한복집을 열었다. 침선(針線) 장인을 찾아 다니며 공부한 뒤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등에서 13차례나 수상했고 한복침선 관련 특허도 6개나 냈다. 배움을 향한 이씨의 열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손재주 못지않게 깊이 있는 지식에 목 말랐기 때문이다. 인하대 박사 과정에 들어간 지 4년만에 결국 ‘조선왕조 말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우리나라 저고리에 대한 실증적 변천’이란 논문으로 꿈에 그리던 박사학위를 받았다.연합뉴스
  • [이슬람 문명과 도시](3)알함브라 궁전을 지닌 스페인 그라나다

    [이슬람 문명과 도시](3)알함브라 궁전을 지닌 스페인 그라나다

    그라나다를 찾아가는 길은 알함브라 궁전을 떠올리면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건축예술. 스페인 땅에 남아 있는 마지막 이슬람 유산. 지상에 마련한 실존의 파라다이스. 어떤 찬사로도 모자라는 알함브라는 그라나다에 있다. 무어(Moor)라 불리는 북아프리카 아랍인들이 800년간이나 이곳에 화려한 이슬람 문화를 남겨 놓았다. 바로 안달루시아 문화다. 기독교와 이슬람 두 문화가 공존할 때, 얼마나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인류 역사의 산 교육장이다. 물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픈 역사가 도시의 언저리마다 웅크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안달루시아 문화의 중심도시가 바로 그라나다다. “그라다나라는 에메랄드에 알함브라라는 빛나는 오리엔트산 진주가 박힌 인류 최고의 보석” 15세기 한 아랍 시인의 표현이다.1492년 1월.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새해, 알함브라 궁전은 조용히 숨을 거둔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궁전의 새 주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결혼에 의해 아르곤과 카스티야 왕국은 통합을 이루고, 이베리아 반도에 이슬람의 지배를 청산하는 거룩한 사명을 천명했다. 그라나다의 마지막 아랍 왕 보아브딜은 자신의 가련한 시민들을 보호해 준다는 조건으로 금화 3만냥과 궁전을 바치고 항복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라나다의 주민들은 무참한 학살과 추방을 당해야 했다. 예술을 사랑하고 유난히 눈물이 많았던 보아브딜은 약자의 비애를 처절하게 되뇌며 정든 알함브라 궁전을 떠나갔다. 겉으로 언뜻 보면 투박함이 어느 아랍 궁성이나 성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언덕을 오르고 첫 번째 문을 들어서는 순간, 비감함과 퇴폐적인 아름다움이 아련하게 전해져 온다. 왕궁이 있던 팔라치오 레알 안으로 들어선다. 분수가 있는 전형적인 아랍식 실내 정원과 천국에서의 휴식을 설계한 시원한 공간 구조, 아라베스크 벽면 장식과 조각 예술의 극치에 나는 한참 동안 적당한 묘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과연 알함브라구나. 네 이름만으로도 이제 충분하구나. 아랍건축의 특징은 외관의 투박함과 내부의 화려함이다. 그리고 많은 문들을 통해 실내로 연결되는데, 문 하나를 지나갈 때마다 화려함과 정교함은 점점 도를 더해간다. 속세와 천국을 건축에 표현하려는 아랍인들의 삶의 철학이 느껴진다. 왕궁 입구로 들어서면 두 벽 사이로 기다란 아라야네스의 안뜰이 이방인을 맞는다. 하얀 대리석 바닥과 벽면의 초록색 모자이크가 기가 막힌 대조를 이루고, 아치를 이루는 조각 기둥이 떠받치는 지붕에는 붉은 아도베 기와를 얹었다. 작은 연못 물위에 비친 맞은편 건물의 아치와 기둥 장식이 수중 도시처럼 느껴진다. 술탄이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대사의 방에서는 뚫려 있는 아치 사이로 맞은 편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라나다의 정신과 영혼을 담고 있는 알바이신 이슬람 마을이다. 역사와 가슴 아픈 사연이 깔려 있는 마을이다. 이슬람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는 그때, 스페인 병사들은 소수 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보호해 주겠다는 항복 조건을 내팽개치고 마을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잔혹한 살육을 저질렀다. 이교도를 소탕하고 신성한 하느님의 땅을 새로 세운다는 그들의 종교적 사명 앞에 한 문명은 무참히 무릎을 꿇었다. 무슬림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이교도의 지배를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그들은 죽어가면서 처참한 역사를 후세에 남기고자 그들의 피를 곳곳에 뿌렸다. 그래서 하얀 집과 벽에는 당시의 학살로 붉게 물든 핏자국이 오랫동안 남아있었다고 한다. 지금 그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30여개에 달하던 모스크는 지금 성당이 되어 버렸다. 다만 좁은 골목과 서로의 목소리로 이웃과 통하는 가옥 구조가 전형적인 아랍 마을을 닮아 있다는 것뿐이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옹기종기 모인 하얀 집들 사이로 성당의 종소리가 석양을 이고 나직이 깔린다. 가슴 아픈 역사를 잠시 떠올리다가 ‘사자의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내 정원과 마주하고 섰다.12마리의 사자가 떠받치는 중앙 분수와 사자의 입에서는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물은 파놓은 홈을 따라 정원 구석구석을 흐른다. 야릇한 향내를 머금은 앞뜰의 정원수가 작은 그늘을 이루고,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역동적인 종유석 조각을 담은 아치 아래에는 커다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황량한 사막을 뚫고 온 아랍인들이 이곳에 오아시스의 정서를 그대로 옮겨 담은 것 같다. 아니면 코란에서 묘사하는 천국을 설계한 것일까? 사자의 정원을 나오니 아름다운 분수가 바라다 보이는 계단에 한 맹인이 앉아 구걸을 하고 있다. 그 옆에는 스페인어로 팻말을 세워놓았다.“아름다운 여인이여! 자선하세요. 그라나다에서 맹인이 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인생이 또 있을까요.” 스페인 시인 프란시스코 데 이카자의 시구다. 아! 동전 한 닢을 놓으면서도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에서 만난 맹인의 말없는 절규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이슬람의 궁성이 함락되던 1492년 그 해, 이사벨라 여왕을 후원자로 모신 제노아의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다. 무적 함대를 자랑하는 스페인의 전성 시대가 막을 연 것이다. 한편 이슬람의 술탄 보아브딜은 다시 스페인에서 쫓겨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로 건너갔다.800년 전인 711년, 그의 선조 타리크 이븐 지야드 장군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할 때 의기양양하게 건넜던 바로 그 길이다. 모로코의 이슬람 도시 페스에 정착한 뒤에도 보아브딜은 꿈에도 알함브라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63세를 끝으로 눈을 감았던 그의 초라한 페스 궁전은 너무나도 알함브라 궁전을 닮아 있다. 지금 대성당이 있는 알카이세리아 주변지역은 전형적인 아랍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아랍인들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한번 이슬람화 된 세계의 모든 지역이 끝까지 이슬람을 지켰지만,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만은 예외였다. 다시 가톨릭이 점령한 이 땅에서 이교도인 무슬림들과 유태인들이 가혹한 추방과 학살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한 때 문화용광로로서 유럽 르네상스를 일으키게 했던 최고 수준의 지적 산실이었던 안달루시아는 문명과 학문이 소멸되면서 역사의 뒤안으로 잊혀졌다. 그리고 지금은 관광객들이 이슬람 유산을 보기 위해 다시 안달루시아로 몰려들고 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우리구 최고야! 동대문] 담장 헐고 산책로 낸 배봉산

    [우리구 최고야! 동대문] 담장 헐고 산책로 낸 배봉산

    옛날부터 동부 서울의 관문이었던 동대문구. 경기도나 강원도, 멀리 경상도에서 길을 떠나 광나루나 송파나루를 통해 한강을 건너 온 사람들이 흥인지문(동대문)을 통해 한양 문안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대문구를 지나야 했다. ●주민들이 마음 놓고 오를 수 없던 곳 초입에 자리한 야트막한 야산이 배봉산(拜峯山)이다. 당파싸움 탓에 쌀뒤주에 갇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사도세자의 무덤이 그 곳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날 때마다 사도세자의 불쌍한 영혼을 위해 산봉우리를 향해 절을 하며 고개를 숙였으리라. 그래서 산 이름이 봉우리(峯)에 절하는(拜) 산(山)이란다.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개하고, 초여름엔 아카시아꽃 향기가 가득한 산. 그러나 집 가까이 있어도 주민들이 마음 놓고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었다. 처음엔 산봉우리에 있는 군부대 때문에 출입이 통제됐다. 군부대가 철수한 이후에는 배봉산 3분의 1 이상을 소유한 위생병원이 사유재산을 보호한다며 700여m 이상을 콘크리트 담장으로 가로막았다. 그래서 자연생태계가 단절되고 주민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었다. ●50년 만에 철거… 연못 만들고 초화류 등 심어 생태계 ‘부활´ 지난해 비로소 그 길이 뚫렸다. ‘만세 만세 만만세.’ 그 얼마나 우리가 바라고 바랐던 일인가.50여년 만에 콘크리트 담장을 철거한 그 자리(6570㎡,1987평)에 각종 초화류(금낭화 등 60여종 5만 7480그루)와 수목식재(때죽나무 등 55여종), 생태연못(3곳), 정자, 지압보도 등 시설물이 들어서고, 자연학습장과 주민휴식공간인 산책로가 조성됐다. 이제 산을 올려 봐도 숨이 막히지 않는다. 걸어서 구름다리를 지나 답십리로도 갈 수가 있고 중랑천 뚝방길이며 체육공원까지도 갈 수가 있다. ●꽃 향기에 싸여 즐기는 해맞이란… 위생병원을 방문하는 구민들이나 환자들이 맑은 공기와 꽃향기를 맘껏 마시며 산책을 할 수도 있고 새벽 일찍 배봉산에 오르면 멀리 아차산 위로 떠오르는 둥근 해맞이도 가능하다. 비록 사도세자의 무덤은 그의 아들 정조가 수원에 있는 화성을 축조해 이장했지만 아직도 배봉산에는 역사의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 조선왕조 22대 임금인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의 무덤인 휘경원(徽慶園)이 자리하던 휘경동에서 올라 한천(漢川·중랑천)이 만든 넓은 벌인 장한평(長漢坪) 장안동으로 내려간다. 조선왕가의 농장이며 곡식창고인 전농(典農)이 위치했던 전농동에서 산을 품고, 임금님이 10리 논둑을 밟고 다니셨다는 답십리(踏十里)로 발길을 옮긴다. 이제 누구나 사방 어디에서나 배봉산에 취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지방자치 행정의 결실이 봄향기와 함께 다가오고 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왕의 남자’ 원작가 겸 연극연출가 김태웅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왕의 남자’ 원작가 겸 연극연출가 김태웅씨

    누가 왜 그를 ‘광대’라 했나. 광대론을 처음 정리한 신재효(1812∼1884)의 ‘광대가’(廣大歌)를 살짝 들여다보자.‘…금상첨화 칠보단장 미부인(美婦人)이 병풍에 내리는 듯 삼오야 밝은 달이 구름밖에 나오는 듯 새눈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중략)도도와 울리는 목 만장봉이 솟구는 듯 장단고저 변화무궁 이리 농락 저리 농락’ 요즘 ‘광대’가 새삼 화두로 떠올랐다.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무려 1000만명 가까이 불러내 희희낙락 ‘농락판’을 질펀하게 벌이고 있는 것. 천당과 지옥이면 어떠랴. 시공을 사뿐사뿐 뛰어넘는 재주, 미부인 뺨치는 여장남자의 색기 또한 범상치 않다.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걸쭉하게 놀아본 적이 있을까. 아무도 예상 못한 것을 마치 조롱이나 하듯 첨단 디지털 시대에 홀연히 나타나 새해 벽두부터 돌풍놀이를 실컷 즐기고 있지 않은가. 왕과 ‘맞짱’ 뜨는 광대의 모습은 절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어쨌거나 천의무봉의 이 광대는 마흔을 갓 넘긴 한 사나이에 의해 만들어졌다.‘왕의 남자’의 원작가 겸 연극 연출가 김태웅(41)씨.1999년 동아신춘문예 희곡 ‘달빛유희’로 당선, 연극계에 처음 명함을 내밀었다. 이듬해 희곡 ‘이(爾)’를 쓰고 극단 연우무대에서 직접 연출까지 맡았다. 이때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극협회선정 베스트5 작품상과 희곡상, 평론가협회선정 베스트3 작품상, 서울공연예술제 희곡상 등을 수상했다. 이처럼 광대 ‘공길’은 ‘이’를 통해 처음부터 화려하게 등장한 셈이다. 그러던 차에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왕의 남자’가 지난해 말 개봉되자 ‘공길’은 영화와 연극을 넘나들며 얼씨구 절씨구 덩실덩실 춤을 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원작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영화-연극’의 동시 ‘대박’이라는 새로운 문화 마케팅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됐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극장 용’에서 상연중이던 연극 ‘이’는 매일 800여석을 모두 유료관객으로 채우는 이변을 연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영화 못지않게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두차례의 앙코르 공연을 거듭하면서 지난 2일 일단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김해 대구 부산 등 전국 투어에 나설 예정이어서 ‘공길’의 희희낙락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올 하반기 뮤지컬로 다시 무대에 올려질 예정인데다 일본에서 판권계약 제의가 오는 등 즐거운 비명이다.‘극장용’에서 김씨를 만났다. 먼저 소감을 물었다.“연극을 공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관객들이 올 만하면 막을 내리곤 한다.”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이어 “영화 티켓을 가지고 오면 30% 할인혜택을 주었는데 영화와 연극을 비교하려는 관객들이 의외로 많아 놀라웠다.”고 설명했다. 심지어는 10회 이상 관람할 정도의 마니아들도 생겨났다고 귀띔했다. 수익이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유료관객이 3만명정도 된다. 공연하느라 생긴 빚도 갚고 나머지는 배우들에게 개런티를 후하게 줄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원작의 배경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김씨는 평소 전통연희에 관심이 많았다. 서양은 드라마 중심이었지만 우리는 놀이문화였다는 점에 착안, 전통에 내장된 웃음을 집요하게 찾아들어갔다. 대학원 시절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한국공연예술연구’ 시간에 사진실(41·중앙대 음악극과)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궁중 광대놀음인 ‘소학지희(笑謔之戱)’였다. 김씨는 이어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일기를 꼼꼼이 뒤져 흙속의 진주 ‘공길’을 찾아낸다. 공길이가 임금 앞에서 군군신신(君君臣臣), 즉 ‘왕이 왕다워야 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어디 밥맛이 나겠는가.’하는 대목에 큰 감동을 받는다. 왕의 권력과 광대의 권력이 어떻게 다른지, 웃음과 놀이가 어떤 상황으로 몰고 가는지에 초점이 모아졌다. 아울러 공길과 장생이 당시 궁중 희락원에 소속된 광대임을 확인하는 등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이’를 쓰게 됐다. “영화가 비교적 원작에 충실했다고 봐요. 다만 영화에서 공길과 장생이 궁궐에 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이들을 통해 연산군이 피비린내를 불러들이는 장면을 새로 담은 것 같아요. 원작에는 연산이 일을 다 끝낸 후 밀려오는 허무를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두었어요. 놀아도 뒤끝이 늘 허해 공길과 장생을 불러들였지요.” 영화에서는 연극의 압축적 의미, 즉 연극무대에서 형상화하기 어려운 공간변화나 줄타기 등의 기교를 매우 흥미롭게 다뤘다고 설명했다.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과는 2001년 대학로에서 처음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영화감독을 제의받았지만 거절했다. 단지 내키지 않아서였다. 얼마 후 이 감독이 다시 찾아와 ‘이’를 영화화하자고 했다. 이때 김씨는 추진력이 강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이 감독의 성품과 스타일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둘은 ‘300만 관객’을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어릴 적 김씨는 연극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버지가 교회 장로여서 집안 분위기로 볼 때 장남인 그가 당연히 뒤를 잇는 것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목사가 돨 생각을 했지만 1년 재수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서울대 사범대 역사교육학과에 진학했으나 한문을 잘 몰라 곧 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치러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한다. 이때 후배들의 권유로 연극반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매력적으로 느꼈지만 곧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회의에 빠져 연극반 출입을 하지 않았다. 하루는 학교 도서관에 갔다.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하는 모습에 ‘어, 한국 사람들 왜 이러지.’하는 반성과 감명을 동시에 받았던 것. 이후 며칠동안 술만 퍼마시며 방황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배우? 아니야…. 고민끝에 결국 극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전공인 철학공부는 뒷전이었다. 졸업논문 내용을 묻자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브레히트의 소외와 헤겔의 소외가 어떻게 다른가’였으니….”하며 피식 웃는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좋아한다는 김씨. 이번 ‘이’를 통해 느낀 바가 적지 않다. 글을 쓰는 것, 공연을 하는 것, 관객을 만나는 것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에 어떤 깨달음을 느꼈다고나 할까. 관객의 수치가 곧 작품성의 잣대일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아울러 이번 ‘대박’을 계기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접목해 상승점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도 실감했다. “지금 이 순간 대학로 후진 곳일지라도, 불과 10명의 관객만이 있더라도 얼마든지 작품성 높은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지요.”‘장생’과 ‘공길’이 연산군 권력에 항거한 것처럼 연극인의 역할도 이와 다름없지 않으냐는 의지가 엿보여진다. 어쩌면 ‘공길’은 자신의 분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벌써 신작을 준비 중이란다. 한국 근현대사의 과거청산 문제를 다룬 ‘반성’이란 작품을 하반기 무대에 올릴 예정. 비운의 일가족 5명을 통해 반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화해와 용서가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다룬다. 또한 올 4월까지 지방공연을 하면서 틈틈이 뮤지컬 각색작업에도 몰두할 예정이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5년 남양주 출생 ▲84년 문일고 졸업 ▲85년 서울사대 역사교육과 입학 ▲87년 서울대 철학과 재입학 ▲94년 동대학 철학과 졸업 ▲97년 연우무대 20주년 신예작가발굴 시리즈 ‘파리들의 곡예’ 작·연출. ▲99년 ‘동아신춘문예’ 희곡 ‘달빛유희’ 당선 ▲2000년 ‘이’ 작·연출(연우무대).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극협회선정 베스트5 작품상과 희곡상, 평론가협회선정 베스트3 작품상, 서울공연예술제 희곡상 등 수상. ▲01년 ‘풍선교향곡’ 작·연출(악어컴퍼니),‘불티나’ 작·이성열 연출(극단 백수광부). ▲02년 ‘꽃을 든 남자’ 작·연출(극단 우인 창단공연). ▲04년 ‘즐거운 인생’ 작·연출(예술의 전당) 등.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강사, 극단 우인 대표.
  • 하버드대, 이대에 ‘서머 스쿨’

    |보스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명문 하버드 대학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이화여대에 ‘서머 스쿨(여름학기)’을 개설하기로 했다. 하버드 대학의 데이비드 매캔 한국학연구소장은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하버드 서머 스쿨에는 미국과 한국의 학생이 절반씩 모두 30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버드대의 서머 스쿨이 개설되는 날짜는 6월18일부터 7월29일까지다. 학생들은 한국문학 전공자인 매캔 교수로부터 ‘2100년의 한국’ 강좌를 필수로 듣는다. 이대 임은미 교수의 ‘한국에서의 여성’, 박인휘 교수의 ‘1945년 이후의 한반도 정치’, 신지영 교수의 ‘한국미술의 역사(선사시대∼조선왕조)’ 등 세 과목 가운데 하나를 수강하면 8학점을 얻게 된다. 이화여대 서머 스쿨의 학점은 하버드의 학부와 대학원에서 인정해준다. 매캔 교수는 “많은 하버드의 학생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면서 “새로 개발된 이번 프로그램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버드의 서울 서머 스쿨은 재학생의 국제화 지식과 경험을 늘리기 위해 하버드 서머 스쿨 담당자들과 하버드 국제 프로그램측이 공동으로 기획한 것이다. 서머스쿨의 학비는 5500달러(약 550만원)이며 하버드 재학생은 대부분 학교로부터 경비를 지원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dawn@seoul.co.kr
  • ‘생활속 문화공간’ 지하철

    ‘생활속 문화공간’ 지하철

    지하철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닙니다. 생활속 문화공간입니다. 하루평균 632만명이 드나들며 재즈에 취하고 명화에 흠뻑 빠집니다. 자치구 현장민원실을 찾으면 인터넷과 책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지요. 이색 결혼식장으로 깜짝 변신하기도 한답니다 30년간 지하철이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우리는 제자리 걸음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휴대전화 벨소리와 통화소리가 끊이질 않고, 의자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자주 만납니다. 내리기도 전에 몸을 밀치며 먼저 타려는 승객들로 눈살을 찌푸릴 때도 있습니다. 지하철 마니아들은 우리 지하철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뉴질랜드는 개찰구에서 표를 확인해 번거롭고, 프랑스 파리는 문을 직접 열고 닫아야 해서 내릴 역을 지나치기 쉽답니다. 중국은 덜컹거리고 소음이 심하고요.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지하철, 올해는 문화시민답게 이용해 봅시다. 해질 무렵 한강철교위를 질주하는 열차의 모습에서 고단한 삶의 희망을 읽어 봅니다. 글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녹사평역에서 행복한 새출발 이색적인 결혼식을 꿈꾼다면 6호선 녹사평역으로 달려가 보자. 국내 유일의 지하철 결혼식장이 그 곳에 있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도수현 부역장은 “교통이 편리하고,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 시설이 완벽해 장애인에게 더없이 좋은 예식장”이라고 자랑했다. 서울시 건축상 동상을 받은 곳이라 볼거리도 다양하다. 녹사평의 특징은 자연광이 지하 5층까지 오롯이 비추는 원통형 구조라는 점이다. 천장이 돔형(지름 12m)이라 은은한 빛이 하루 종일 역사를 감돈다. 지하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을 유리로 만들어 바닥까지 반짝인다. 햇빛 만큼이나 화사한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웃음을 머금은 신랑에게 내려가는 길이다. 층마다 매단 청사초롱이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182인치 대형 멀티비전에선 신랑, 신부의 성장 모습이 상영된다. 결혼식장은 에스컬레이터를 가운데로 둔 원형이다. 규모가 1520㎡(460평)라 출장 뷔페를 부르면 식장 반대편에서 식사도 할 수 있다. 평소엔 갤러리로 활용되는 터라 하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폐백실, 신랑·신부대기실도 모두 공짜다. 역사를 꾸미는 비용은 이벤트 회사와 따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 녹사평의 또다른 볼거리는 이색 벽화다. 작가 최범진·안혜경씨가 색상 유리로 만든 ‘교렴(轎簾)’과 ‘상생(相生)’은 빛과 색을 조화시킨 작품이다. 교렴은 전통적인 조각보의 느낌을 살렸고, 상생은 손을 맞잡아 새로운 화합을 표현했다. 덕분에 영화,TV,CF, 뮤직비디오, 각종 잡지의 단골 촬영장소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말아톤’‘와일드키드’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 50여곳선 흥겨운 공연활동 24일 오후 6시, 지하철 7호선 이수역 공연장. 록밴드 ‘아수라’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를 부르고 있다. 보컬의 목소리가 역사를 뒤흔들고, 연주자는 시린 손을 털어가며 기타와 드럼을 두드린다. 찬 바람이 지하 1층에 자리한 공연장까지 그대로 불어왔다. 퇴근길 시민들이 공연장 앞에 멈췄다. 락밴드의 화려한 음악과 몸짓에 눈길을 빼앗긴 탓이다. 여중생들은 ‘보컬이 꽃미남’이라며 연신 플래시를 터트렸다. 회사원 박영석(35)씨는 “대학 축제 때 이후로 록밴드 공연을 본 적이 없다.”면서 “오랜만이라 신기하고 재밌다.”고 했다. 그러나 이봉학(71) 할아버지는 “시끄러워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같은 날 오후 1시30분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 자신을 ‘산해’라고 소개한 안중신씨가 통기타를 치며 고 김광석씨의 노래 ‘일어나’를 부르고 있다. 하모니카 연주까지 이어지자 탄성이 나왔다. 박수를 친 관객들은 1000원짜리를 꺼내 기타 케이스에 집어넣었다.2004년 10월부터 지하철에서 공연하는 안씨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멈춰서서 감상하는 시민들이 참 고맙다.”면서 “지하철 공연은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문화공간”이라고 말했다. 지하철에서는 포크송, 남미민속음악, 록밴드, 응원퍼레이드, 섹스폰 연주 등 다양한 공연이 매일 펼쳐진다. 주말에는 더욱 다채롭다. 사단법인 서울지하철문화연구원 등이 오디션을 통해 뽑은 예술가들이 지하철 50여곳에서 활동한다. 서울메트로(www.seoulmetro.co.kr)와 도시철도공사(www.seoulmetro.co.kr)에서 공연자와 공연장소·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 곳곳에 미술품 상설전시장 지하철역이 갤러리로 거듭났다. 벽화에 더해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곳곳에 생겼다. 대표적인 곳이 3호선 경복궁역 지하 1층에 자리한 서울메트로미술관.400평 규모로 전시면의 크기는 가로 4m, 세로 2m. 전시관은 1,2관으로 나뉘어 있고, 중간에는 출입문을 설치해 미술품 도난을 방지한다. 24일 찾은 미술관에선 ‘서울체신청 100주년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공간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뤄져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천장과 측면에 달린 조명이 은은하게 작품을 비췄다.CCTV와 함께 공익근무요원이 전시장 주변을 맴돌며 도난을 방지하고 있었다. 사진을 감상하던 주부 이정녀(49)씨는 “편지를 써놓고 우편 배달부를 애타게 기다리던 옛 생각이 떠오른다.”면서 “전시장 덕분에 누군가를 기다릴 때도 짜증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지하철 전시장이 일상생활을 여유롭게 해준다는 얘기다. 딸 이소희(8)양과 함께 방문한 직장인 김인수(여·36)씨도 전시장이 만족스럽다고 했다.“바빠서 아이와 문화생활을 즐기기 쉽지 않는데 지하철 갤러리는 오가며 자주 찾게 된다.”면서 “다양한 미술품이 많이, 자주 전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볼륨을 높인 TV 소리가 아쉬웠다. 서울시내 교통정보를 들으며 미술품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4호선 혜화역에 위치한 혜화전시관은 아기자기하다.1층 대합실에 유리담장으로 구분해 조성한 57평 규모.50여점을 전시할 수 있다. 5호선 마포, 광화문역,6호선 녹사평역,7호선 이수역,8호선 몽촌토성역 등에도 상설전시장이 있다. ■ 지하철에도 지름길 있다 ‘2호선을 타고 한번에 갈까? 중간에 4호선으로 갈아탈까?’ 지하철 노선이 얽혀있다보니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기 전에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고민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좋은 방법은 경험자들로부터 도움말을 듣는 일이다. 이마저도 안된다면 서울메트로(www.seoulmetro.co.kr)와 도시철도공사(www.seoulmetro.co.kr)의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환승 시간까지 계산해 최단 거리를 알려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경험담이 최고다. 서울의 ‘동서남북’에 살며 시청 인근 도심으로 출근하는 회사원 4명으로부터 생생한 지하철의 지름길을 들어봤다. ●목동에서 시청까지 서울 서쪽 양천구 목동에 사는 조모(38)씨는 갈아타기가 귀찮아 5호선을 이용, 광화문역에서 내렸다. 그러나 요즘에는 신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시청역에서 내린다. 직장이 시청 인근이어서 지하철에서 내려 걷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출퇴근 시간이 5∼10분정도 빠른데다 요금도 100원 저렴하다. 목동에서 시청까지 가는 방법은 모두 3가지.(1)목동∼광화문까지 5호선을 타는 방법.(2)목동∼신길(1호선)∼시청 (3)목동∼영등포구청(2호선)∼을지로 입구. 시청을 기준으로 광화문, 시청역은 지하철 맨 앞칸, 을지로역은 맨 뒤칸에 타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노원역에서 시청까지 서울 북쪽 노원구 상계동에서 사는 이모(43)씨.4호선 노원역에서 출근을 시작한다. 그리고 환승노선에 따라 길이 2가지로 갈린다. (1)노원역∼동대문역(1호선)∼시청역과 (2)노원역→동대문운동장역(2호선)→을지로입구역 (1)코스와 (2)코스의 경우 승차시간은 45분 정도로 비슷하다. 다만,(1)코스는 동대문역에서 환승거리가 길다. 게다가 혼잡하다.(2)코스는 동대문운동장의 환승거리가 짧지만 을지로역에서 시청 인근 회사까지 좀 긴 편이다. 전체적으로 (2)코스가 2∼3분 빠르다. 이씨는 4호선 노원역 신문판매대에서 한 칸 뒤쪽에서 탄다. 동대문운동장역에서 내리면 에스컬레이터가 바로 앞에 있다.2호선 동대문운동장역에서는 전철 진행방향 가장 앞쪽에서 타면 을지로입구역 계단과 만난다. ●방배역에서 시청까지 서울 남쪽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회사원 박모(30)씨는 2호선 방배역∼사당역(4호선)∼서울역(1호선)∼시청역으로 다녔다. 시간은 36분.2호선 방배역∼시청역 코스보다 13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동료직원 고모(29)씨에게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리라는 권유를 받았다. 하차한 뒤 역사 밖으로 나오는 거리가 절반 정도로 짧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맞았다. 방배역에선 여섯번째 칸, 첫번째 문에서, 사당역에서 맨 앞 칸에서 타면 갈아탈 때 가장 빠르다. 특히 환승자가 많은 사당역에선 인파의 앞 부분에 서야 편하다. ●오금동에서 시청까지 이모(31)씨가 서울 동쪽 송파구 오금동에서 시청까지 오는 방법은 2가지다.(1)버스∼잠실역(2호선)∼을지로입구역 (2)방이역(5호선)∼광화문역이다. 이씨는 첫 번째 방법을 선호한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잠실역까지는 20여분, 지하철로 잠실역에서 을지로입구역까지는 28분 걸린다. 방이역에서 광화문역까지는 36분 소요된다. 그러나 집에서 방이역까지는 13분, 광화문역에서 시청까지는 10분을 걸어야 한다. 을지로입구역에서 시청까지는 도보로 5분이면 충분하다. 출퇴근시간의 지하철 배차간격도 2호선은 2∼3분인 반면 5호선은 5∼6분이다. 모두 감안하면 첫번째 방법이 두번째보다 5∼10분 정도 덜 걸리는 셈이다. 더구나 5호선이 2호선보다 더 붐빈다. 시청을 향한다면 2호선이나 5호선 모두 앞쪽에 타는 게 좋다. 서울시청팀종합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명당’ 잡으면 10분을 아낀다 지하철에도 ‘베스트 포지션’이 있다.‘아는 사람들’은 이런 자리만 골라탄다. 바로 환승역과 가장 빨리 연결될 수 있는 열차 위치다. 어떤 문으로 내리느냐에 따라 목적지 도착 시간이 짧게는 3분에서 길게는 10분까지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바쁜 출근 시간에 10분은 하루를 좌우할 만큼 가치있다. 당신의 황금같은 10분을 위해 서울인이 베스트 포지션을 공개한다. 지하철 1호선이나 3∼8호선을 이용하다가 2호선으로 갈아탄다면 열차 앞쪽이나 끝쪽이 베스트 좌석이다. 시청역에서 1호선 인천·천안행을 탔다가 2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열차의 첫번째 칸 첫번째 문에서 내리면 좋다.2호선 환승구와 맞닿아 있는 곳이다. 반대로 의정부북부행에서 2호선으로 가려면 열차 마지막칸 마지막문 앞에 서면 된다. 지하철 4호선을 이용, 동대문운동장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탈 때도 열차의 맨 앞 또는 가장 끝부분이 베스트 좌석이다. 사당행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탈 때는 열차 마지막칸 마지막 문이, 오이도행 4호선에서는 첫번째 열차 첫번째 문이 빠르다.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승강장 중간쯤에서 탑승해야 한다.1호선 인천행 열차를 타고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바꾸어 타려면 뒤에서 네번째 칸 두번째 문, 의정부북부행에서 갈아타려면 네번째 칸 네번째 문을 이용하면 빠르다. 지하철 3개선이 한꺼번에 있는 종로3가역과 왕십리역은 매우 혼잡하고 환승구간이 길기 때문에 베스트 포지션을 알아두면 특히 유용하다.1호선 종로3가역에서 3호선이나 5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무조건 여섯번째 칸 첫번째 문앞에 서는 것이 좋다. 반면 3호선 종로3가 역에서 1호선으로 빨리 갈아탈 수 있는 베스트 포지션은 다소 복잡하다.3호선 수서행 열차에서 1호선 인천·병점행 열차로 빨리 갈아타려면 첫번째 열차 첫번째 문을,1호선 청량리행 열차에 타기 위해서는 두번째 열차 두번째 문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 반대로 3호선 대화행 열차에서 인천·병점행 1호선을 타려면 가장 마지막 열차 마지막 문을,1호선 청량리행에 타려면 아홉번째 열차 두번째 문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 지하철 5호선 상일동·마천행 열차를 타고 종로3가역에서 1·3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열차 맨 앞칸에 타는 것이 좋다. 반대로 방화행 열차에서 1·3호선으로 바꾸어 타려면 맨 마지막 열차 마지막 문을 이용하면 가장 빠르다. ■ 1호선 동묘앞역 안전·편리 최우수 지난해 12월21일 개통된 1호선 동묘앞역은 새로운 개념의 역사다. 이용이 편리하면서도 안전하게 설계됐다. 우선 기능실을 지상으로 올려 지하를 말끔히 정리했다. 그래서 6호선까지 환승거리가 45m에 불과하다. 에스컬레이터 16대와 엘리베이터 8대, 장애인 전용 게이트를 만들어 장애우, 노약자가 불편 없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승강장 바로 옆에 화장실을 배치한 것도 작은 배려다. 개찰구도 승강장과 맞붙어 오가기 편하다. 안전시설은 정교하다. 승강장과 대합실을 불연소재를 마감하고, 계단 부근에 제연수막을 설치해 유독가스의 확산을 막았다. 승객대피 유도등과 더불어 시각장애인 음성안내기를 마련해 비상시를 대비했다. 화재가 발생하면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차단된다. 불이 위층으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밖에도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승강장을 2배로 넓혔다. 종합화상감시시스템을 도입해 역무실에 CCTV 48개를 한꺼번에 보며 승강장을 관리한다. 문철현 역장은 “동묘앞역은 ‘안전하고 편리한 지하철’을 말 그대로 실천한 새로운 역사”라고 강조했다. 역사의 또 다른 변화는 화장실에서 시작된다.4호선 숙대입구역와 삼각지역이 깨끗한 화장실로 명성을 얻자 서울메트로 강경호 사장이 1∼4호선 전 역사의 화장실을 바꾸도록 지시했다. 24일 삼각지 화장실 입구. 무가지와 잡지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여자화장실에는 화장대와 아동용변기, 기저귀대, 숙녀용 비데가 마련돼 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대까지 눈에 띈다. 겨울이라 화분은 역무실로 옮겼지만 작은 화분과 시계가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화장실 개선을 주도한 삼각지 영업사업소 황춘자 소장은 “화장실이 깔끔해져 기분까지 상쾌해 졌다는 시민을 자주 만난다.”면서 “작은 변화가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 하루 632만명, 한해 22억명 수송 연간 22억명을 수송하는 서울지하철은 서울의 핵심 교통수단이다. 규모면에서 세계 3∼4위를 다툴 정도로 선진 지하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서울메트로(1∼4호선)와 도시철도공사(5∼8호선)에서 운영하는 서울지하철은 1974년 8월15일 1호선이 개통한 이래 30여년 동안 양적·질적인 팽창을 거듭했다. 알고 타면 더 유익한 지하철에는 재미있는 통계가 살아 숨쉬고 있다. 수송인원은 하루평균 632만명을 수송, 연간 22억명에 이른다. 이는 하루 32만명에 불과하던 30년전에 비해 무려 27배가 늘어난 것이다. 서울지하철은 모스크바 33억명과 도쿄 26억명에 이어 세계 3위다. 영업거리는 286.9㎞로 30년전 7.8㎞에 비해 36배나 늘어났다. 이는 런던 415㎞, 뉴욕 368㎞, 도쿄 292㎞에 이어 세계 4위다. 서울지하철 역사는 30년전 9개 역사에서 1∼4호선 117개,5∼8호선 158개 등 모두 265개 역사로 29배 증가했다. 전동차량 수도 60량에서 3505량으로 59배 증가했다.2호선 본선과 1·3·4호선은 편성당 10량이다.5·6·7호선은 8량,8호선은 6량으로 구성돼 있다.2호선 지선인 성수∼신설동 구간은 편성당 4량이며, 신도림∼까치산역 구간은 6량이다. 한량의 길이는 20m로 내구연한 25년이 지나면 폐차시킬 수 있다. 지하철 1량의 탑승정원은 160명이지만 최고 400명까지 탈 수 있다. 최고 운행속도는 1∼4호선이 시속 110㎞이며,5∼8호선은 80㎞다. 가장 깊은 역은 8호선 산성역으로 지하 60m에 위치하고 있다. 가장 짧은 역간 길이는 5호선 행당∼왕십리 구간으로 552m이며, 가장 긴 곳은 3호선 삼송∼원당 구간으로 5㎞에 이른다. 전철은 평택∼성환 구간이 9.4㎞다. 지하철역 중 가장 많은 출입구를 가진 역사는 1·3·5호선이 교차하는 종로 3가역으로 출입구가 16개나 된다. 역무원 수는 4139명이다. 서울메트로 2380명, 도시철도공사 1759명이다. 하루 수익금만도 31억여원에 이른다. 1∼4호선의 전력사용량은 연간 8억 8000㎾, 한달 7360만㎾로 연간 655억원으로 한달 평균 55억원이 전기료로 들어간다. 이는 서울시 전체 전력사용량의 2.7%이며, 인구 14만여명이 거주하는 김포시나 구리시 전체가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규모다. 지하철 1㎞를 운행하는 데 1998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전기료로만 운임수익의 약 10%가 쓰여진다. 지하철 전기는 71%가 전동차 운행, 전동차 내부조명, 에어컨 가동 등에 쓰이며, 나머지는 역사조명과 에스컬레이터, 환기시설 가동 등에 사용된다. 2005년 지하철 1∼4호선의 유실물은 하루평균 74건, 연간 2만 6846건으로 한해 접수된 유실물의 70.2%인 1만 8850건이 본인에게 인계됐다. 유실물 중에는 가방이 전체 28.9%인 777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휴대전화와 MP3 등 전자제품이 12.3%(3305건), 의류 11.1%(2981건) 등의 순이었다. 현금도 7.9%(2145건)로 액수로 따지면 3억원에 달했다.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량은 5∼8호선의 경우 하루 15t에 이르는데 연간 5475t의 쓰레기가 나오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지하로 들어간 구청 민원서비스 지하철 현장민원실의 대민 서비스가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강남·서초·노원·동작·양천구청 등 25개 구청에서 운영중인 지하철 현장민원실에서는 각종 민원서류 발급 뿐만 아니라 도서 대여, 인터넷 이용, 휴게실, 공부방, 어학강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서비스는 민원서류 발급. 직장인들이 50여개 역사에 있는 현장민원실이나 무인민원발급기에서 주민등록등초본 등 일선 동사무소에서 발급되는 대부분의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다. 운영시간은 구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오전 8시에서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양천구청(구청장 추재엽)은 양천구청역과 신정네거리역, 목동역 등 3곳에 민원서비스와 함께 도서대여점을 운영한다. 하루 민원처리 건수는 하루 평균 100∼200건 정도로 이용객의 대부분이 출퇴근 직장인들이다. 역별로 2000여권의 도서를 배치해 무료도 대여해 주고 있다. 특히 차별화된 구청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역사내에 도서방, 문화의집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노원구청(구청장 이기재)은 지하철 7호선 마들역에 ‘문화의집’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어학강의와 문화교실, 어린이 놀이방, 인터넷 이용시설, 휴게실 등을 제공, 구민들이 주말에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하루 평균 100∼120명이 이용한다. 공부방에는 지하철 이용객은 물론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즐겨 찾는다. 컴퓨터 교실과 노래교실, 서양화교실, 한문교실, 서예교실 등 13개 강좌가 매일 개설돼 운영되고 있다. ■ 지하철 타고 고궁여행 “진분홍 연꽃을 물에 띄우고, 금으로 장식한 배로 봉래궁(蓬萊宮)에 이르니,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없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이 경복궁 경회루에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지금은 연꽃도, 금으로 장식한 배도, 봉래궁도 없지만 조선시대 왕들이 노닐던 장소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지하철 티켓 한 장이면 그 곳들을 손쉽게 갈 수 있다. 서울시내에서 역사여행을 떠날 수 있는 지하철역 주변의 명소를 소개한다. ●조선시대 왕들의 풍류 경복궁(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건축한 조선시대 정궁(正宮). 광화문의 해태조각상, 근정전의 기단에 조각된 방위신상, 경회루 다리 및 영제교의 석교에 설치된 석조조각물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조각 미술품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경회루 방지(方池)는 왕과 왕비가 생활하는 침전의 서쪽과 연결됐으며 잔치도 하고 뱃놀이도 즐기며 때로는 외교사절을 영접하던 곳이다. 규모는 남북 113m, 동서 128m에 이른다. 1506년 연산군 시대 기록을 보면, 방지 서쪽에는 만세산(萬歲山)을 만들어 화려한 꽃을 심고 금·은·비단으로 장식한 봉래궁(蓬萊宮), 일궁(日宮), 월궁(月宮) 등 작은 궁궐을 만들었다. 왕은 황용주(黃龍舟)라는 작은 배를 타고 만세산(萬歲山)을 오고 갔으며, 때로는 비단꽃을 물 위에 띄우고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워 밤이 낮같이 밝을 정도로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통합요금권 3000원(성인 기준) 한 장이면 경복궁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국립민속박물관·조선 왕실의 유물 4만여점이 전시된 국립고궁박물관도 함께 둘러 볼 수 있다. ●왕이 거닐던 정원 둘러볼까 창덕궁(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은 1405년 태종이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지었다. 경복궁 주요건물이 일직선상으로 놓여있다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을 골짜기에 안기도록 배치했다. 지형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정자·연못·담장·다리 등을 설치해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창덕궁은 현재 남아 있는 궁궐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돼 있고 자연과 잘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언어권별로 정해진 시간에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정문인 돈화문 앞에서 일정 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들어갈 수 있다. 창덕궁 건너편의 종묘(1·3·5호선 종로3가역 8·11번 출구)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도심 속에 숲으로 둘러싸여 엄숙하면서도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돌담길 걸으며 문화의 향기 덕수궁(1호선 시청역 3번 출구,2호선 시청역 12번 출구)은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이 있는 곳으로 구한말 수많은 시련의 역사를 간직한 궁이다. 아관파천의 장소였던 옛 러시아공사관과 을사조약이 체결된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국중유물전시관과 덕수궁미술관이 있으며, 대한문에서는 월요일을 빼고 매일 수문장 교대의식이 열린다. 덕수궁 돌담길 건너편의 서울시립미술관도 볼거리다. 현재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3월 5일까지)’‘박노수 기증 작품전(2월 19일까지)’‘천경자 상설전’이 열리고 있다. 남정 박노수(藍丁 朴魯壽)는 한국화단의 대표적인 원로작가로 남정의 작품세계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풍경 등을 모티브 삼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실험도 선보이고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면 서울역사박물관(5호선 서대문역 4번출구·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이 나온다.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보여 주는 대표적인 도시 역사박물관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과학·생활·놀이 문화 등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월드이슈] 중동 이슬람정당 돌풍

    [월드이슈] 중동 이슬람정당 돌풍

    중동지역에 반미와 근본주의 회귀를 표방하는 이슬람 정당들의 돌풍이 거세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레바논과 이집트를 거쳐 지난달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무장조직 하마스가 집권에 성공함으로써 이슬람 율법에서 미래를 발견하려는 염원은 더욱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테러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선거를 통해 제도권에 진입하는 이들 정당이 실용 노선을 좇아 해묵은 갈등을 해결할지, 아니면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오를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돌풍의 배경과 전망, 미국의 중동정책 변화 기류 등을 짚어본다. 역사적으로도 이슬람 근본주의는 이 지역의 특정 종족이나 분파가 심한 박해를 받을 때 희망과 대안으로 떠오르곤 했다. 시아파 부족 국가였던 이라크가 1638년 수니파들의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면서, 또 1970년대 말 이란의 세속 정권인 샤 왕조가 무너진 뒤 시아파들이 모스크 주변에 모여들어 정치 세력으로 결집했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한참 세월을 건너 뛰어 미군 점령으로 수니파 바트당이 축출된 이라크에서 시아파 네트워크가 가장 효율적이고 응집력 있는 조직으로 떠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해와 시련에 대한 반작용 태풍은 지난해 2∼3월 사상 최초로 지방선거가 치러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됐다. 지방의회 의석의 절반을 뽑은 이 선거에서 이슬람 성직자들이 추천한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4개월 뒤 레바논에 근거지를 두고 수십년간 이스라엘 항쟁을 주도했던 무장조직 헤즈볼라가 시아파 정당 아말과 연합해 128석을 뽑은 총선에서 30석을 차지하면서 헤즈볼라 인사들이 정부와 의회에 진출했다. 이집트의 11∼12월 총선에서는 근본주의의 뿌리를 제공한 무슬림 형제단 후보 150명이 출마해 88명이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법외 단체로 활동에 제약이 따랐던 형제단이 무바라크 정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출마자를 제한했음에도 이같은 이변이 생기자 많은 이들이 놀랐다. 형제단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돼 지난 1989년 결성된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장악한 것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일방주의가 낳은 결과물이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궤를 달리하지만, 이라크 총선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의 통합이라크연맹(UIA)이 275석 중 128석을 차지한 것은 물론, 종교 지도자가 통솔하는 수니파 ‘이슬람 이라크당’이 전체 수니파 의석 55석 중 80%를 얻은 것도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후세인 정권이 부른 서방의 경제제재로 피폐해진 실상에 대한 분노는 수니파라고 피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는 풀이다. ●하마스, 파타 전철 밟을 수도 이슬람 정치 세력의 상승세라는 공통된 현상 뒤에는 물론, 각국의 역사와 현재 상황에 따라 다양한 편차가 나타나고 있다. 미군 점령에 시달려온 이라크에서는 시아파와 수니파 모두 이슬람 원리에서 희망을 찾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친미 노선을 걸어온 이집트마저 무바라크 정권에 맞서는 무슬림 형제단의 제도권 진입이 가시화됐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기층 민중과 해외에 근거지를 뒀던 집권 파타당 지도부가 38년에 걸친 이스라엘 점령이라는 외적 환경 때문에 오랫동안 격리된 것이 하마스에의 민심 결집으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1993년 오슬로 협정에 의해 귀환하기 이전부터 국내파와 해외파의 대립은 있었다. 또 완전한 국가의 외형을 갖추지 못한 팔레스타인에서 정파 추종자들은 지도부와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압력을 가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하마스도 언제든 파타당의 전철을 밟을 여지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조급한 대응은 금물 캐나다 일간 ‘토론토 스타’는 지난달 30일 ‘하마스, 민주주의의 실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1991년 알제리 총선 1차 투표에서 압승을 거둔 무장조직 ‘이슬람 해방전선(FIS)’의 교훈을 들고 있다. FIS의 선전(善戰)에 충격을 받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알제리 군부와 협력해 결선 투표를 유보한 채 FIS 탄압에 몰두했다. 수십년 내전이 이어져 수만명이 죽음을 면치 못했다. 새로운 이슬람 전사들의 출현이라는, 서방이 원했던 정반대 결과로 이어졌다. 미국의 중동 전문가 딜립 히로는 진보 매체 ‘커먼드림스’에 기고한 ‘이슬람 정치세력의 발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부시 정부는 이라크에서 수많은 이슬람 정당과 상대하면서 동시에 하마스나 무슬림 형제단 같은 조직과도 대결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백악관이나 미 국무부 관리들은 허를 찔린 듯 보이지만, 사실 이같은 결과는 예견돼 있었다. 미 공화당 산하 기관인 ‘국제공화연구소’가 이라크인들을 설문 조사한 결과,10명 중 7명은 샤리아(이슬람 종교법)가 법률의 ‘유일한 원천’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같은 비율의 응답자가 종교 국가에서 살고 싶다고 밝혔으며 세속 국가를 희망한 이는 23%에 그쳤다. 토론토 스타는 앞서 알제리 FIS의 교훈을 들며 ‘깊이 숨을 들이 마시고 조급하게 행동하려는 유혹에 맞서야 하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의지를 꺾음으로써 새 위기의 씨앗을 뿌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서방의 원조 중단 위협에 맞닥뜨린 하마스의 딜레마도 문제이지만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도 중동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강요받고 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역풍’ 맞는 美의 중동정책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잇따라 제도 정치권에 화려하게 진출하면서 미국의 중동정책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민주적 선거로 중동의 평화를 구축하고 테러리즘을 해결하려 했던 의도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자 백악관과 국무부는 벙어리 냉가슴이다. 테러집단으로 규정한 이슬람 무장조직들이 선거를 통해 의회에 들어온 만큼 민의를 무시할 수도, 그렇다고 웃으며 협력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당장 국제기구를 통한 원조를 중단해야 할지, 지원을 계속하면 어떤 통로를 통해야 할지 미국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중동에 민주주의와 자유를 확산시키겠다는 조지 W 부시 정부의 외교 전략이 이상론에 치우쳐 미국의 적들을 되레 키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이 밀어준 정권들이 부패와 나약함으로 기층 민중의 신뢰를 잃고 쓰러지고 있었던 점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최대 정당으로 부상한 직후 “폭력노선을 바꾸지 않는 한 대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었다. 하지만 총선결과가 하마스의 압승으로 나온 뒤에는 “왜 하마스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자신도 물어보고 다녔다.”고 답답한 심정을 솔직히 드러냈다. 무엇보다 미국의 정책이 애초에 이중성과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지적이 많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 등 친미와 친이스라엘 정권에 대해서는 독재도 눈감아주는 행태가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정당성을 훼손하고 아랍권에서 반미 감정만 고조시켰다는 점이다. 또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이른바 ‘반테러’ 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슬람 세계의 반미 정서는 예전보다 훨씬 깊어졌다. 미국의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최신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만 잘 해결되면 반미 감정이 날아갈 것이란 생각도 다 틀렸다.”고 지적했다. 반미 감정이 미국의 일방적 이스라엘 지원으로 촉발된 만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창설되고 이 지역 평화가 정착되면 그 문제도 함께 해결될 것이란 가설이 점차 안이한 생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제도권에 들어온 무장단체가 과거와 같은 방식의 투쟁일변도로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들이 변방에서 계속 소요를 일으키기보다는 책임있는 정치조직으로 거듭나 민생고를 해결하다 보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기대다. 부시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테러리스트를 물리치는 유일한 길은 정치적 자유와 평화적 변화를 제시함으로써 증오와 공포에 찬 그들의 어두운 비전을 패배시키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한편에선 부시 정부가 레바논에서 했던 것처럼 팔레스타인에도 ‘분리 대응’ 전략을 펼 것이란 관측도 있다. 즉 강경파인 하마스는 계속 무시하되 온건파인 마무드 아바스 수반을 돕는 것이다. 이럴 경우 팔레스타인이 내전에 빠질 가능성이 가장 문제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길찾는 로드먼

    “한 달 정도 준비하면 NBA에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악동’ 데니스 로드먼(44·204㎝)이 30일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프로농구(NBA)에 컴백할 뜻을 드러내 관심을 사고 있다. 미국 댈러스의 슬럼가에서 태어나 전형적인 뒷골목 불량소년으로 자란 로드먼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농구에 입문할 만큼 출발도 늦었다. 기본기와도 담을 쌓은 그였지만 동물적인 리바운드 재능을 인정받아 8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에 지명됐다. 이후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거듭한 로드먼은 데뷔 3시즌 만에 주전으로 도약, 소속팀에 88∼89,89∼90시즌 2연패를 안겼다. 파워포워드로는 작은 203㎝의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저녁 숙소에서 녹화 테이프를 보며 연구한 로드먼은 91∼92시즌 평균 18.7개의 경이적인 리바운드로 첫 타이틀을 거머쥔 것을 시작으로 7시즌 연속 리바운드왕에 올랐다. 샌안토니오를 거쳐 시카고 불스로 이적한 뒤 필 잭슨 감독과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과 함께 ‘불스 왕조’를 3연패(95∼96부터 97∼98시즌)로 이끈 로드먼은 이후 끝없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0년 은퇴 이후엔 성추행 및 성폭력 혐의로 10여차례 고소를 당하는가 하면, 프로레슬러와 영화배우, 누드 퍼포먼스 등 갖가지 ‘기행’으로 가십난을 장식했다. 로드먼이 복귀의 꿈을 이룬다면 NBA 역사상 최고령 선수가 된다. 종전은 43세의 로버트 패리시.‘영원한 악동’ 로드먼의 농구인생이 어떤 식으로 막을 내릴지 궁금하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우리區 브랜드 ‘명품 만들기’

    ‘우리구 상품을 사세요∼.’ 서울시 자치구들이 자체 브랜드 상품을 개발, 홍보와 수익이란 두 마리 토끼사냥에 나섰다. 지방화시대에 걸맞은 도시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종로구(구청장 김충용)는 문화재를 본뜬 모형을 관광 상품으로 내놓았다. 보신각종과 신문고를 모방한 상품에는 ‘Hi Seoul’이란 마크를 새겼다. 손수건과 스카프에는 정조대왕행렬도, 인사동·서울관광지도, 조선왕조정도개념도 등을 담았다. 외국인의 방문이 많아 인기를 얻고 있다. 성동구(구청장 고재득)는 ‘소레인(Sorain)’이란 자체브랜드를 만들었다. 소레인 상표를 붙인 패션·생활용품은 넥타이, 스카프, 시계, 지갑, 핸드백, 찻잔, 우산 등 61종이나 된다. 넥타이는 실크로, 지갑·다이어리·핸드백은 소가죽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가격은 백화점 수준. 성동구청 1층에 마련된 10평 규모의 전시관에서 판매한다. 고급화를 지향하는 상품이라 앞으로 백화점, 면세점에 납품할 계획이다. 또 조달청을 통해 정부기관과 다른 자치단체들이 기념품으로 활용하도록 홍보할 방침이다. 기획예산과 이상국 팀장은 “크고 작은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지역 경쟁력 향상에 힘쓴다.”면서 “자치단체의 경영마인드 도입은 필수적인 생존전략”이라고 말했다. 강동구(구청장 신동우)는 신석기 흔적이 남아있는 암사동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암사동은 6000년전 신석기를 대표하는 빗살무늬 토기와 움집터가 발견된 곳. 우선 신석기 역사를 상징하는 원시인을 자치구 캐릭터로 삼았다. 캐릭터는 구 마크와 함께 기념품과 생활용품이 새겨진다. 판매도 주로 암사동 선사 주거지에서 한다. 하루방 머그잔, 과일꽂이, 공방화병, 청자투각필통, 빗살무늬토기 등이 대표적이다.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 자연사 박물관은 가방고리와 노트를 판매한다. 박물관 마스코트를 그려넣은 기념품이다. 한문상씨는 “반응이 좋으면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영등포구(구청장 김형수)와 송파구(구청장 이유택)도 구 로고와 캐릭터를 담은 기념품을 제작, 판매한다. 영등포구는 넥타이·스카프·스포츠타월·허리띠·볼펜 등 6종을, 송파구는 손목시계·넥타이·볼펜·열쇠고리, 머그컵 등 9종을 내놓았다. 구내매점에 진열대를 설치, 직원과 주민들이 상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외 자매결연지 등 외부기관을 방문할 때 선물용으로 건네면 좋은 반응을 얻는다. 주민들도 행사 때 기념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영등포구 문화체육과 김광택 팀장은 “상징기념품은 지역을 알리고 애향심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책꽂이]

    ●라 로슈푸코의 인간을 위한 변명(홋타 요시에 지음, 오정환 옮김, 한길사 펴냄) 잠언집으로 유명한 프랑스 고전 작가 프랑수아(6세) 드 라 로슈푸코의 일대기를 시대상과 엮어 소설처럼 재미있게 꾸몄다. 프랑수아 6세는 루이 13세 때 리슐리외 재상 타도 음모에 개입돼 바스티유에 투옥되고 프롱드의 난에서 반란군을 지휘하는 등 시대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었다. 그는 “사람은 결코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다.”고 말한다.1만 8000원.●왜관, 조선은 왜 일본사람들을 가두었을까?(다시로 가즈이 지음, 정성일 옮김, 논형 펴냄) 왜관(倭館)은 이런저런 이유로 바다를 건너 조선 땅에 와서 머문 일본 사람들을 위해 조선 정부가 마련해 준 거처를 뜻하는 말. 에도시대의 전 기간은 물론, 메이지 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일본 아닌 외국땅에 있었던 유일한 ‘일본인 마을’이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초량왜관은 1678년 부산포 초량에 설치돼 200년 동안 존속했던 것으로, 현재 부산의 용두산 공원에 해당하는 곳이다.1만 8000원.●비단같고 주옥같은 정치(하워드 웨슬러 지음, 임대희 옮김, 고즈윈 펴냄) 의례와 상징으로 본 당대(唐代) 정치사. 당 왕실이 왕조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 각종 의례와 상징행위를 어떻게 유효적절하게 활용했는가를 밝힌다. 그중 하나가 태산 봉선제(封禪祭). 당 고종은 서기 666년 1월, 후한 광무제 이후 600년 동안이나 자취를 감췄던 태산 봉선제를 성대하게 거행함으로써 절대군주는 오직 자신뿐임을 만천하에 알렸다.1만 5500원.●제로 이야기(마리아 몰리나 지음, 김승욱 옮김, 경문사 펴냄) 0이라는 개념은 4세기경 인도에서 생겨났다. 이것이 이슬람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됐다. 책은 새로운 수 체계를 도입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픽션 형식으로 그렸다.9∼10세기 인구 50만이 넘은 대도시였던 이슬람 왕국의 수도인 코르도바가 배경. 수학에 심취한 한 모즈아랍인(이슬람 지역에 살면서 믿음을 지킨 기독교인)의 이야기가 시선을 끈다.8000원.●이야기 독일사(박래식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게르만족은 신장이 크고 힘이 세어 로마의 용병으로 활용됐으며, 때론 로마의 변방지역을 침입해 로마제국이 두려워하는 민족이었다. 로마는 게르만민족의 침입에 대비해 대부분의 군대를 게르만족과 경계를 이루는 라인강과 도나우강 지역에 배치했다. 이 책은 게르만족의 이동과 부족국가 시기를 거쳐 근대 국가체제로 발전하며 입지를 강화해온 역동적인 독일역사의 현장을 다룬다.1만 4000원.●자본론, 자본의 감추어진 진실 혹은 거짓(칼 마르크스 지음, 손철성 풀어씀, 풀빛 펴냄) ‘자본론’은 마르크스가 약 20여년에 걸친 연구를 바탕으로 쓴 방대한 책이다. 이미 역사적 사형선고를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책을 오늘날 다시 읽는 게 의미있는 일일까. 자본주의가 여전히 내적 모순을 양산해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9000원.
  • [14일 TV 하이라이트]

    ●희망풍경(EBS 오후 5시40분) 고등학교 때 야구공에 정통으로 눈을 맞아 시각장애인이 된 김지욱씨. 그는 침술원 원장이지만 본업보다는 동두천 희망지킴이 천사운동본부와 시각장애인협회 일로 더 바쁘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김지욱씨를 만나보자.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35분) 전통과 맛, 멋이 정겹게 어우러진 곳 전주의 풍경을 담았다. 조선왕조 문화의 뿌리를 간직한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전통의 다례를 배울 수 있다. 전통 공예품, 전주한지의 색다른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공예품 전시관을 체험해볼 수 있고, 궁중요리와 전주 한정식을 한 상에서 맛볼 수도 있다.   ●결혼합시다(MBC 오후 7시55분) 석순은 소원대로 차장 승진을 하고, 재호의 축하까지 받으며 마냥 행복해한다. 하지만 석순의 승진을 지켜보는 재원과 나영은 씁쓸하기만 하다. 한편 재원은 우연히 나영의 산부인과 진료증을 보고 나영의 임신 사실을 확신한다. 가족들 역시 재원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나영을 평소와 다르게 대한다.   ●잘먹고 잘사는 법(SBS 오전 9시) ‘건강음식大백과’에서는 식탁 위의 하얀 고기라 불리는 치즈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주고,‘비교체험 여행쇼! 일상탈출’에서는 경기도 이천의 이벤트 온천과 충남 예산의 가족온천을 소개한다. 또 ‘금주의 웰빙뉴스’로는 2006년 신년 프로젝트 1탄으로 ‘다이어트’를 준비해 이와 관련된 비법을 알려준다.   ●파워 인터뷰(KBS1 오후 11시) 최근 정치권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과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 원희룡 의원은 박근혜 대표의 사학법 장외투쟁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고, 임종석 의원은 유시민 입각을 반발하고 있는 386의원의 대표주자이다. 원희룡·임종석 의원으로부터 2006 한국정치의 해법을 들어본다.   ●인생이여 고마워요(KBS2 오후 7시55분) 큰 충격을 받은 연경은 인석에게 화를 내고 다른 병원에서 재차 검사를 받아보지만 같은 진단을 받는다. 연경은 사진전 준비로 들떠있는 남편 윤호에게 차마 발병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혼자 고민을 한다. 연경은 윤호의 사진전을 무사히 끝낸 밤에서야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로 마음먹는다.
  • [토요일 아침에] 소태산에게서 배우자/ 박맹수 원광대 원불교학과장

    소태산 박중빈은 1891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시대는 한 마디로 고난의 시대 그 자체였다. 밖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고, 안으로는 조선왕조 지배체제가 파탄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조선의 민중들을 더욱 위기로 몰아간 것은 서세, 즉 서구적 가치의 만연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성리학적 지배질서를 부정하는 서학의 만연은 조선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뿌리째 뒤흔드는 가공할 만한 사태였다. 이같은 시대상황 속에서 동학이 등장하여 ‘아래로부터의 혁명’에 불을 댕겼다는 것은 우리들이 주지하는 사실이다. 소태산의 청소년기 일화를 담고 있는 ‘원불교교사’는 그가 7세부터 벌써 깊은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우주자연 현상 등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소태산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그의 열렬한 탐구심을 충족시켜주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그는 주로 산신과 도사 등 초인적 능력을 가진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전술한 ‘원불교교사’에 의하면, 이같은 그의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하여 소태산은 결국 사색과 명상, 기도생활 등 자신의 내면적 세계로 침잠하는 커다란 방향전환을 통해 1916년 4월28일에 ‘큰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 소태산의 ‘큰 깨달음’은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큰 깨달음’을 이루기 전의 소태산의 삶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개인적 고난 해소에 필요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큰 깨달음’ 이후의 소태산의 삶은 개인적 고난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시대적 고난 해소를 위한 새로운 정신운동의 실천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큰 깨달음’ 직후 소태산이 전개했던 정신운동으로는 저축조합운동(1917), 간척지개척운동(1918∼1919), 기도결사운동(1919) 등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운동은 모두 전라남도 영광이라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운동이었다는 점, 조직적 기반이 전혀 없이 전개된 운동이라는 점, 무단통치로 대변되는 식민지시대에 비밀결사 형태로 전개되었다고 하는 점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소태산은 마침내 1919년 가을에 전라남도 영광에서 전라북도 부안 변산반도로 입산,1924년 봄까지 약 5년에 걸쳐 그간의 운동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종교운동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가 바로 1924년의 불법연구회(현 원불교의 전신)라는 새로운 종교조직의 창설이다. 전라북도 익산을 무대로 창설된 불법연구회는 9년 전 ‘큰 깨달음’을 계기로 치열한 사회변혁운동을 전개해왔던 소태산이 그동안 전개했던 여러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총괄하는 가운데, 기왕의 운동을 넘어서는 새 차원의 종교운동을 열어가기 위한 결사체, 즉 새로운 종교공동체 조직이 정식으로 결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서 우리는 불법연구회 창설에 따른 소태산의 기쁨이 어떠했으며, 불법연구회에 거는 기대가 어떠했을까를 한번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불법연구회라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새롭게 전개하고자 했던 사회변혁운동의 구체적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표어로 상징되는 ‘정신개벽운동’이었다. 소태산은 1943년 6월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평생토록 파란고해에서 헤매는 중생들의 ‘정신개벽’을 통한 낙원 건설에 모든 것을 바쳤다. 태극기와 애국가를 마음껏 보고 부를 수 있었던 날이 단 하루도 없던 암울한 식민지시대에 물질개벽을 선도할 수 있는 정신개벽운동을 통해 민중들의 앞길을 비추는 ‘등불’로서의 삶을 살다 간 것이다. 21세기 우리 민족에게는 지금 헤쳐가야 할 숙제가 참으로 많다. 그 숙제를 푸는 지혜를 소태산의 생애와 사상에서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길이 되지는 않을까. 소태산의 꿈과 실천이 구석구석 배어 있는 솜리 땅에서 소망해 본다. 박맹수 원광대 원불교학과장
  • [실전 논술] 예술 표현의 자유

    [실전 논술] 예술 표현의 자유

    ●예술적 표현의 자유는 사회 상황과 통념에 따라 제한받는 정도가 다르다.‘예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 글의 주장을 활용하여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로 쓸 것.) 바라건대 부패된 정부나 또는 포악한 전제적인 정부에 반대하는 보장책의 하나로서 ‘출판의 자유’를 새삼스럽게 옹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으로 생각되었으면 한다. 일반 민중과 이해(利害)를 달리하는 입법부나 행정부가 민중에게 명령하여 일정한 의견을 품도록 한다든가, 또는 어떠한 교의(敎義) 혹은 어떠한 논의라면 일반 민중이 들어도 무관한가를 결정한다든가 하는 일을 허용해 두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오늘날에는 반대론을 전개할 필요가 없어진 것으로 상상해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또한 자유 문제의 이러한 측면은 종래의 저술가들에 의해서 매우 빈번히,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강조되어 왔으므로 여기에서 특별히 그것을 역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국의 법률은 출판의 문제에 관해서는 지금도 여전히 튜더 왕조의 시대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굴종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각 부 장관이나 판사들이 반란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잘잘못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일시적인 위기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정치적 문제의 논의에 대해서 이와 같은 법률이 적용될 위험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하면 입헌 국가에 있어서는 정부가 일반 민중에게 완전히 책임을 지고 있거나 지지 않고 있거나 간에 가끔 의견의 발표에 대해 통제를 기도하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단, 정부 스스로가 민중을 일반적으로 너그럽게 대하려고 하지 않는 불관용의 기관으로 되어 의견의 발표를 통제하려고 하는 경우는 예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경우를 한번 상상해 보기로 하자. 즉, 정부는 완전히 민중과는 일체이며 따라서 민중의 소리라고 생각되는 것과 일치되지 않는 한 어떠한 강제권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경우를 상상해 보기로 하자. 그러나 나는 민중에게는 그와 같은 강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그것이 민중 자신에 의해서 행사되든, 그 정부에 의해서 행사되든 간에-권리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와 같은 권력은 그 자체가 불법적인 것이다. 비록 최선의 정부라 할지라도 최악의 정부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강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권력은 그것이 여론에 따라서 행사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여론에 반하여 행사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해하거나 또는 그 이상으로 유해하다. 가령 한 사람만을 제외한 전 인류가 동일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단지 한 사람만이 그것에 반대하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인류가 그 한 사람에게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도록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 부당한 것은,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전 인류를 말하지 못하도록 침묵케 하는 것이 부당한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어떤 의견이 그 소지자 이외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개인적인 소유물에 지나지 않거나 또는 그러한 의견의 향수(享受)-즉, 그러한 의견을 자유롭게 품는 일-가 방해되는 것이 단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손해에 머무른다 해도 그러한 손해가 단지 적은 수의 사람에게만 가해지느냐 아니면 많은 수의 사람에게 가해지느냐의 약간의 차이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의견의 발표를 억제하게 하는 데 따르는 특유한 해학은 그것이 전 인류로부터 행복을 빼앗는다는 점에 있다. 즉, 그것은 현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세의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으며, 그 의견을 품고 있는, 즉 지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또한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더 한층 많이 빼앗게 된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고 하면 사람들은 잘못을 버리고 진리를 포착할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또한 비록 그 의견이 잘못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전자의 경우와 거의 마찬가지로 큰 이익- 즉, 진리와 오류가 서로 충돌할 때 진리가 마침내 오류를 물리치게 되는 데서 생겨지는 진리에 대한 보다 더 뚜렷한 이익과 보다 선명한 인상을 받게 되는 이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개의 가설은 제각기 그것에 대응하는 별개의 뚜렷한 논의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따로 떼어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억압하려고 애쓰는 의견이 잘못된 의견이라고 단정해 버릴 정도로 확신할 수 없으며 설사 그렇게 확신한다 하더라도 그 의견을 억압하는 일은 여전히 악일 것이다. ●지문의 분석 이 글은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역사학자인 J.S. 밀의 대표적 저서인 ‘자유론’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자유에 관한 사상을 집대성함과 동시에 19세기 중엽의 자유를 둘러싼 문제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논술한 고전적 명저로 평가된다. 이 글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내용으로서 비록 소수, 아니 한 사람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그에게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한 사람이 전 인류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무제한적인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 의견의 발표를 억제하는 것은 전 인류로부터 행복을 빼앗는다는 관점을 보이고 있다. 설령 잘못된 의견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억압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억압했을 때의 이익보다 더 크다고 말하고 있다. ●출제의도와 생각하기 다들 표현의 자유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그 한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르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바탕으로 의견을 논술해야 한다. 물론 일방적인 입장에서 극단적인 주장을 전개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주장이 지닌 정당성을 주장하되 그 주장이 지닐 수 있는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보다는 자신의 주장이 더욱 타당하다는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무방하다. 그리고 이 글의 내용을 활용하여 내용을 전개하라고 하였으므로, 먼저 제시문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제시문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글쓴이의 입장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글쓴이는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관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관점과 입장을 파악하여 이에 대한 평가를 하는 내용을 본문의 첫 문단에서 제시하면 논의가 그만큼 구체적일 수 있다. 물론 제시문을 그대로 옮기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고 이것을 자신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극단적인 주장은 대개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하였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현실 속의 사례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관점을 잡았다면 그와 관련하여 논의를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즉, 표현의 자유를 일반적으로 언급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논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예술 분야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예술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논란은 우리 사회에서 자주 논의되는 내용이다. 인터넷에 올라 논란이 된 미술 교사의 나체 사진이나 영화와 소설에서의 예술과 외설 논란 등 구체적인 논의를 인용하여 견해를 제시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예술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하여 언급할 수 있는데, 예술의 표현 자유는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극단적인 관점이나 절대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관점보다는 예술의 표현의 자유가 지닌 의미를 구체적으로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즉, 예술의 표현 자유는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 표현의 자유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드러내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는 관점 등을 전제로 논의를 전개하면 그만큼 심도 있는 내용이 전개될 수 있다. ●어떻게 쓸까 주어진 논제와 관련해 볼 때, 주제의 방향은 인간의 삶에서 표현의 자유가 지니는 중요성과 필요성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방향과 관련하여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으로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제문을 바탕으로 논의를 이끌어 가면 자연스러운 전개가 될 수 있다. 글의 서론 부분에서는 자유주의 원칙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언급으로 시작하면 된다. 우리 사회가 자유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점을 토대로 하여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문제를 자연스럽게 제시하여 논의의 방향을 제시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상황을 언급하여 논의를 전개하되 표현의 자유가 인간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간단하게 언급하면 논의가 심도 있게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본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전개할 수 있다. 먼저 처음 부분에서는 제시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제시문에서 글쓴이는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관점을 보이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인간의 삶과 직결된다는 점을 전제로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서 그것이 표현의 자유와 연결지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정리를 하면 된다. 물론 이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단순하게 내용을 요약하는 수준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가가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평가는 다른 말로 비평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글쓴이의 견해가 극단적이라든지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닌다든지 하는 입장을 제시하여 다음 부분에서 자신이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를 정리해야 한다. 본론 두 번째 부분에서는 예술 분야에서 표현 행위가 지니는 의미를 성찰한 다음, 우리 사회의 현실과 관련된 논의를 전개하면 된다. 다른 분야와 달리 예술 분야에서는 창의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태도에 대하여 사회적 관용의 필요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언급하면 된다. 그에 대한 논증으로 예술 분야에서 창의성은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토대로 하여야 하고, 인간의 삶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면 된다. 물론 이러한 내용과 관련해 핵심적으로 예술 분야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의 관용적 태도의 필요성을 언급하면 자연스러운 논의 전개가 된다. 마지막 결론 문단에서는 예술 행위에 대한 관용적 태도가 지니는 의의에 관해 언급하고 정리해 주면 된다. 이 때 단순히 논의한 내용을 중언부언하기보다는 논의의 의의를 마무리하면 훨씬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책꽂이]

    ●한국 식물명의 유래(이우철 지음, 일조각 펴냄) 개망초, 개아마, 개솔새, 개벚나무…. 여기서 접두어 ‘개’는 개불알꽃(꽃 모양이 여름에 축 처진 개의 불알과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의 그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유사하다, 흡사하다는 뜻으로 동물 개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 예컨대 개망초란 이름은 그것이 망초와 비슷하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식물학자인 지은이(강원대 명예교수)가 북한과 옌볜지역에서 통용되는 이름까지 조사해 식물 이름의 유래를 소개한다.3만 5000원.●검은 천사, 하얀 악마(김융희 지음, 시공사 펴냄) 무채색인 검정과 하양은 신의 색이 되기도 하고 악마의 색이 되기도 한다. 또 시대에 따라 우울한 색이 되기도 하고 순수한 색이 되기도 한다. 서양 미술에서 사용된 흰색과 검정색의 의미를 살폈다. 폴 세잔이 그리고 싶어했던 새하얀 식탁보, 파르테논 신전에서 영감을 얻은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하얀색 건물에서 백설공주의 ‘백설 같았던’ 피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나왔던 오드리 헵번의 검은색 지방시 드레스까지 다룬다.1만 2000원.●교황 베네딕토 16세 평전(존 알렌 지음, 왕수민 옮김, 한언 펴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바티칸 광장에서 열린 한 행사에 빨간 구두를 신고 나타났다. 이는 교황이 추기경 시절 ‘신의 충복’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보수적이었던 이미지와는 달리 교황에 재임하면서 훨씬 부드럽고 소탈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서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전세계 10억 가톨릭 신자들을 이끌고 있는 교황을 다방면에 걸쳐 분석했다. 저자는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의 바티칸 통신원.1만 9000원.●와일드 하모니(윌리엄 프루이트 지음, 이한음 옮김, 이다미디어 펴냄) 미국의 세계적인 동물학자인 저자가 북극과 알래스카의 광대한 자연을 직접 탐사하고 쓴 책. 아한대 침엽수림인 타이가에서 나무가 자라지 않는 땅인 툰드라 지대에 걸쳐 살아가는 순록과 늑대, 말코손바닥사슴, 회색곰과 흑곰, 스라소니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이 사냥을 위해 뿌린 독약에 순록이 죽고, 그 순록을 먹은 늑대와 늑대를 먹은 갈까마귀가 차례로 죽는 죽음의 연쇄고리가 섬뜩하게 묘사된다.9800원.●북한정권 탄생의 진실(시모토마이 노부오 지음, 이혁재 옮김, 기파랑 펴냄) 구 소련 공산당 정치국 사료(대통령궁 문서관 소장) 등을 토대로 아시아 냉전의 역사를 살폈다. 저자(호세이대 교수)는 ‘김일성이 1930년대 이후 항일 혁명투쟁을 이끌어온 결과 형성된 주체의 나라’라는 1998년도 개정 북한 헌법 전문은 정치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한반도에 진주한 구 소련 적군(赤軍, 제25군)의 지도 아래 만들어진 국가가 바로 북한이라는 것이다.9000원.●경복궁 근정전(신응수 지음, 현암사 펴냄)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이후 133년 만인 2003년 해체ㆍ보수 공사를 마친 경복궁 근정전에 대한 중수기(重修記).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인 저자는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 최원식, 조원재, 이광규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관영 건축 기문(技門)의 계승자. 근정전은 하층 190평, 상층 146평으로 이뤄진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로 임금이 집무를 보고 국가의식을 거행하던 조선왕조의 상징적인 궁궐 건물이다.5만원.●조영래 평전(안경환 지음, 강 펴냄) 1990년 마흔셋의 나이에 세상을 뜬 조영래 변호사에게 늘 따라다니는 형용어구가 있다. 인권변호사, 그리고 ‘전태일 평전’의 숨은 저자라는 것이다. 그를 우리 시대의 공동 기억으로 만든 이 두 가지 말 속에 그의 삶이 압축돼 있다. 인간 조영래의 다양한 면모(낙서벽, 술을 못하면서도 끝까지 술자리를 지킴, 헤비 스모커 등)도 들려준다.1만 5000원.●조선영화-소리의 도입에서 친일 영화까지(이화진 지음, 책세상 펴냄) 조선에 최초로 발성영화가 도입된 1935년부터 해방을 맞은 1945년까지의 영화사를 돌아보며 오늘날 한국 영화에 남아 있는 식민지의 흔적을 살펴본다.4900원.
  • 좌우 대립 넘지못한 운명적 사랑

    좌우 대립 넘지못한 운명적 사랑

    ‘KBS 대하드라마, 부활할까?’ 지난해 숱한 화제를 뿌린 ‘불멸의 이순신’의 뒤를 이어 KBS 1TV의 새 대하드라마가 이번 주말 시청자들과 다시 만난다. 해방 전후 한국 현대사 공간을 배경으로 좌·우익 젊은이들의 사랑을 다룬 60부작 대하드라마 ‘서울 1945’(연출 윤창범·유현기, 극본 이한호·정성희)가 7일부터 매주 토·일요일 밤 9시30분에 방송된다. 이 드라마는 ‘태조왕건’,‘불멸의 이순신’ 등 왕조시대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작들과 달리 해방공간에서 활약한 실존 인물로부터 모티브를 빌려와 차별화를 꾀했다.1930년대부터 45년 광복,50년 한국전쟁 전후까지 젊은이들이 믿고 따른 좌우 이념과 이상을 함께 다루는 것도 현대사를 소재로 한 기존 드라마와도 다르다. 광산 노동자 출신으로 공산주의의 길을 걷는 최운혁(류수영)과, 하인 집안의 딸로 태어나 신교육을 받고 호텔에서 일하지만 운혁을 도우면서 공산주의에 합류하는 김해경(한은정)의 사랑은 미 군정기 실존인물인 김수임과 이강국의 관계에 기초한다. 이한호 작가는 “실제 인물들로부터 모티브를 얻었지만 다큐멘터리나 실록은 아니다.”라면서 “따라서 주인공들이 실존 인물의 이름을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이들의 관계에 지주의 아들인 이동우(김호진)와 일제 귀족 출신 문석경(소유진)이 가세하면서 난마처럼 엉킨 시대상을 격동적으로 풀어나간다. 문석경은 일제 치하에서 김해경을 자신의 몸종으로 부리다가 해방 후 집안이 몰락하게 되자 이승만의 양딸이 돼 사교계로 진출한다. 이동우는 이승만을 대부로 모시며 여운형을 추앙하는 최운혁과 정치적으로 대립한다. 이처럼 치열한 이념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제작진은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는 정치드라마는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윤창범 PD는 “이념보다는 그 당시 보통사람의 삶을 통해 그 시대가 얼마나 생명력이 있고, 열린 가능성이 있는 시대였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호 작가도 “젊은이들의 각기 다른 경험을 조망하겠지만 이념에 치우친 것은 아니며, 좌우에 편향적인 시각을 배제하고 봐달라.”면서 “시대상을 대표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의 역사가 무엇을 얻었고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조명할 것”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책꽂이]

    ●전기(傳奇)(배형 지음, 최진아 풀어씀, 푸른숲 펴냄) 전기란 기괴하고 신기한 일을 다룬 이야기를 말한다. 중국 당나라 시대는 어느 왕조보다도 일상을 벗어난 ‘기(奇)’에 관심이 많던 시대였다. 중국 각지의 민담과 설화를 채록한 이 책엔 원숭이 아내, 물고기가 둔갑한 미인, 바다속 신선국, 동굴 속 낙원 등 기이한 소재의 이야기 31편이 실렸다.1만 5000원.●하늘 아래 기와집을 거닐다(박선주 지음, 다른세상 펴냄) 한국 전통 건축을 전공한 저자(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전국 한옥 22곳을 둘러보며 느낀 단상을 담은 에세이집. 담양 소쇄원, 영천 매산종택, 예산 추사고택, 양동 관가정, 논산 윤증 고택, 안동 학봉 종택, 구례 운조루, 상주 양진당, 함양 정여창 고택 등이 소개된다.9800원.●불량정권(재스퍼 베커 지음, 김구섭·권영근 옮김, 기파랑 펴냄) 김정일과 북한 정권의 본질을 분석한 연구서. 영국 BBC방송 중국 특파원을 지낸 저자는 북한을 ‘죽음의 수용소 군도’‘마르크스주의 절대왕조 국가’로 규정한다.1만원.●조선의 화가 조희룡(이성혜 지음, 한길아트 펴냄) 조선문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선비화가 매수(梅) 조희룡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조명한 평전. 조희룡의 문학론과 화론, 예술론을 다뤘다. 저자(경성대 교수)는 조희룡의 문학예술은 19세기 여항문화의 대미이자 20세기 새로운 문화예술의 시작점이라고 말한다.1만 5000원.●인도를 읽는다(사카키바라 에이스케 등 지음, 정택상 옮김, 황금나침반 펴냄) “코끼리는 움직임이 굼뜨다. 그러나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큰 걸음에 가속도가 붙어 아주 빠르다.” 맘모한 싱 인도 총리가 최근 인도의 경제성장과 관련해 한 말이다.‘잠자던 코끼리’ 인도가 깨어나 달리기 시작했다.‘아시아의 거인’ 인도 진출을 위한 전략이 담겼다.1만 2000원.●천지가 다정하니 풍월은 끝이 없네(마에노 나오아키 지음, 윤철규 옮김, 학고재 펴냄) 중국 고전 속에 나타난 자연에 관한 이야기들을 묶었다. 당·송대의 시가와 소설, 신화의 세계를 넘나들며 자연과 인간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원제는 송나라 시인 소식의 ‘적벽부’에서 유래한 ‘풍월무진(風月無盡)’.1만원.●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하몬 스미스 지음, 서보명 옮김, 이레 펴냄) 미국 정신사의 두 영웅인 소로우와 에머슨의 25년에 걸친 비밀스러운 우정 이야기. 소로우보다 열네 살 위로 언제나 멘토의 역할을 자임했던 에머슨이 소로우의 성장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시선을 끈다.1만 2000원.●마음이 머무는 풍경(최진연 지움, 대산출판사 펴냄) 문화재신문 기자인 저자가 20여년간 그리운 풍경, 우리 옛것을 찾아다니며 사진과 글로 남긴 기록을 묶었다.1만8000원.●수첩 속의 풍경2(중앙 일간지 여행전문기자 지음, 한국관광공사 펴냄)경가도 여주 해여림식물원, 제주도 동거문오름 등 전국 유명 여행지 39곳의 독특한 색깔과 사연을 원색 사진과 함께 실었다.1만원.
  • 조선왕릉등 53기 세계유산 등재 신청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최근 조선시대의 왕릉과 원 53기를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해 달라고 유네스코에 신청했다고 4일 밝혔다. 조선의 왕실과 관련된 무덤은 ‘능’(陵)과 ‘원’(園)으로 구분되는데 왕릉으로 불리는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등의 무덤이다. 이런 왕릉과 원들은 강원도 영월의 장릉, 경기도 여주의 영릉과 녕릉 3곳 외에는 모두 서울(옛 한양)에서 40㎞ 이내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왕릉 40기, 원 13기가 남아 있다.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인 유교에 근거해 조성된 왕릉과 원은 시대변화에 따라 능원 공간의 조영(造營) 형식도 함께 변모하는 등 시대정신의 변화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왕과 왕비 등에 대한 제례인 산릉제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새해 온라인 집필 시작한 유홍준 문화재청장

    “창덕궁에는 400여년 전 호랑이가 나타났고, 인왕산에는 120여년 전까지도 호랑이를 볼 수 있었답니다.”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인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이번에는 오프라인 책이 아니라 문화재청이 홈페이지(www.cha.go.kr)를 통해 1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국민과 함께하는 문화유산 이야기’(가칭)코너를 통해서다. 유 청장은 일주일에 한차례 정도 이 코너를 통해 우리 문화유산에 얽힌 재미있는 역사적 내력과, 문화재 이해를 위한 정보 등을 알기 쉽게 풀어쓸 예정이다. 미술과 문학의 역사를 넘나들며 선인들의 삶의 체취를 씨줄과 날줄로 엮은 ‘21세기판 문화유산 이야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 청장뿐 아니라 소재구 국립고궁박물관장, 김봉건 문화재연구소장과 문화재청 직원들도 필자로 참여한다. 이들은 문화재 보수·수리 등에 얽힌 뒷이야기 등을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유 청장이 첫 글의 소재로 삼은 것은 ‘창덕궁과 호랑이’. 지난해 12월 창덕궁관리소가 발간한 ‘창덕궁 600년’에 실린 ‘조선왕조실록’에 소개된 호랑이의 출현을 읽으면서 느낀 소회를 담았다. 그는 “선조40년(1607년) 등 수차례 창덕궁에 호랑이가 나타났고 북악산에서 잡혔으니 어릴 적 듣던 ‘인왕산 호랑이’ 전래민요도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지난해 10월에는 멧돼지가 창덕궁에 나타나 훗날 ‘창덕궁 700년’ 책에는 호랑이 대신 멧돼지 출현에 대한 글이 실릴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한편 문화재청은 오는 20일까지 ‘문화유산 이야기’코너 명칭을 공모, 당선작 1편과 가작 2편에 각각 30만원,10만원씩 포상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1)끝. 새날의 희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1)끝. 새날의 희망

    ‘정감록’ 연재도 막바지라 맺음말이 없을 수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예언문화를 다각도로 다루려 노력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화제는 조선후기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바로 그 시기에 ‘정감록’이 등장했고, 그것이 한동안 정치 및 종교운동의 모태가 되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엔 이른바 ‘정감록’ 사건이 참 많기도 했다. 그런데 ‘정감록’은 과연 무슨 사상을 담고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때가 많다. 아무리 ‘정감록’을 읽어봐도 어떤 체계라든가 사상성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설사 ‘정감록’에 예고된 정진인(鄭眞人)의 세상이 된다 해도, 그것은 또 하나의 왕조일 뿐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잘 알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 은 예수의 재림이 가져다 줄 인류역사의 완성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정감록’은 기껏해야 왕조교체를 논하는 수준이란 평가다.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정감록’이란 텍스트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정감록’을 읽는 나의 방법은 적혀 있는 글자만 읽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문화적인 맥락에 비추어 읽는 방식이다. 텍스트의 안과 바깥을 부지런히 오가며 ‘정감록’을 읽는 것이다. 그러면 수수께끼가 풀린다. ●정감록, 지배이데올로기에 맞선 대항이데올로기 ‘정감록’은 조선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 맞서 평민 지식인들이 준비한 대항 이데올로기였다. 이 점은 19세기 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한 여러 신종교의 가르침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동학·증산교 및 원불교는 하나같이 곧 밝아올 새 세상을 노래했다. 그들이 선포한 새날은 ‘정감록’이 민중에게 약속한 새 나라였다. 그것은 역사상 존재했던 여러 왕조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새 하늘, 새 땅이었다. 새 날의 모습은 성리학자들이 추구해온 목가적 이상세계와는 달랐다. 그것은 ‘정감록’으로 빚은 대항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 연재 가운데 이미 검토된 사실이지만 동학과 같은 새 종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17세기 이후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런 운동은 ‘정감록’을 매개로 평민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신종교 운동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나름대로 조직적 경험과 이론을 확립해갔다. 마침내 19세기 후반에는 동학이란 교단으로 화려하게 부활해 민중에게 널리 지지를 받았다. 최제우의 동학은 ‘정감록’운동의 터전 위에서 창립된 것으로,‘정감록’없이는 동학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옳다. 나중에 동학의 교명을 천도교로 바꾼 손병희 같은 지도자도 ‘정감록’을 무척 중시했다. ●오만년 대운, 전환기의 괴질 동학을 비롯한 여러 신종교에서는 조선왕조가 망하고 나면 새 세상이 열린다고 보았다. 바로 ‘정감록’에 예언된 정진인의 나라다. 그때가 되면 문자 그대로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롭고 복된 사회가 건설된다고 한다. 이를 두고 오만년대운(五萬年大運)이 새로 시작된다고 표현했다. 동학의 경전 ‘용담유사’에는 ‘오만년’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한다.‘용담가’에 “한울님 하신말씀 개벽 후 오만 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라는 대목이 있다. 세상이 열린 지 오만 년 만에 최제우가 큰 가르침을 열었다는 말이다. 최제우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이상적인 종교를 창립했다며,“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좋을시고”라고 했다. 불교와 유교는 이미 낡은 것이 되었고, 이제는 인류 최상의 가르침인 동학을 통해 새 세상을 건설할 때라는 것이다. 최제우는 동학의 유행을 천운(天運)이라 했다. 그러면서 보통사람들은 근심걱정 없이 이러한 시운에 따라 최제우가 가르치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했다. 최제우에 앞서 세상이 바뀔 거란 점을 누누이 강조한 것은 ‘정감록’이었다. 그 유행에 힘입어 사람들은 최제우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정감록’엔 새 세상이 밝아올 때 여러 가지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고 예언돼 있다. 전쟁과 질병과 굶주림이 그것이다. 최제우는 ‘정감록’ 예언을 대폭 수용해 과도기의 징후를 ‘몽중노소문답가’에서 이렇게 정리한다.“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는가.” 여기서 말하는 십이제국이란 문자 그대로 열두 나라가 아니라 온 세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온 세상이 정체불명의 질병으로 시달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른 곳에서 그는 ‘삼년괴질’이니 ‘연년괴질’과 같은 말을 한다. 요컨대 여러 해 동안 인류가 조류독감이나 에이즈와 같은 질병으로 시달린 다음에 “개벽”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것은 마치 성경에서 말세에 큰 환란을 겪은 뒤 예수가 재림한다는 식이다. 조선 후기엔 천주교가 수용되어 종말론이 널리 전파되었다.‘정감록’에 기록된 환란도 그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최제우의 동학 역시 마찬가지다. 동학은 이름부터 천주교(서학)에 반대한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지만, 그 주장이 꼭 대립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동학을 계승한 증산교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증산교의 창립자 강일순은 한국에 출생하기 전에 로마 교황청 꼭대기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고 했다. 그는 서양신부 마테오리치를 중국으로 파견한 장본인이라고도 했다. 이런 증산교도 전환기에 찾아올 환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강일순의 생각은 동양적이었다. 그는 이른바 괴질의 원인을 과거의 모든 악업(惡業)과 신명들의 원한과 보복이 쌓인 것이라 했다. 악업과 신명을 강조한 점에서 그의 생각은 다분히 불교적이다. 강일순은 괴질의 발생을 사계절과 비교한다. 봄과 여름에는 큰 병이 없다가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에 병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말세에는 이런 식으로 큰 병이 세상을 휩쓸게 되는데, 한국에서 최초 발병자가 나오며 병을 치료할 구원의 도(道) 역시 한국에서 일어난다 했다. 괴질은 전라북도 군산과 순창에서 발생해 49일 동안 전국을 휩쓸고는 외국으로 건너가 3년 동안 전 세계를 휩쓴다. 이것이 강일순의 예언이다. 그는 한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했는데 이런 사고방식은 ‘정감록’에서도 확인된다. 동학의 최제우 역시 오만년 대운을 열 새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한국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겼다. 19세기 한국은 내우외란이 겹쳐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외래종교인 천주교가 들어와 전통사상이 도전에 직면했다. 이런 판국이라 ‘정감록’을 비롯한 각종 예언은 더욱 인기를 끌었고, 마침내 말세의 환란과 새 세상에 대한 기대가 꽃을 피웠다. 동학과 증산교의 등장이 바로 그 보기다. ●새 세상은 미륵세상 최제우의 글에는 새 세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강일순의 경우는 달라 다가올 세상을 비교적 자세히 예고했다. 언제나 발뒤꿈치를 땅에 붙이고 살기 마련인 사람들도 하늘에 올라갈 수 있게 된다 했다. 새 세상은 밤도 낮처럼 환해지며, 들에는 백가지 곡식이 풍성하고 만 가지 과일이 다 굵고 커, 음식이 풍성하게 된다. 아름다운 옷도 무척 흔해진다. 강일순이 꿈꾼 새날은 의식이 풍족하고 교통이 편리하게 되며 어둠이 사라진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선 거짓이 사라지고 온갖 차별도 없어지며 수명이 늘어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강일순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말한다. 이제 비행기를 타고 얼마든지 하늘을 날게 되었고, 전깃불로 밤을 밝히게 되었다. 또한 대형 할인마트에는 국산과 외국산을 막론하고 음식과 과일 그리고 의복이 넘친다. 헐벗고 굶주리던 옛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인권이 잘 보장되며 평균수명도 많이 늘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강일순이 예고한 새 세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세상이다.‘미륵하생경’에 비슷한 모습이 더욱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새 세상이 되면 거리마다 번화하기 짝이 없고, 밤마다 향수가 가랑비처럼 내린다 했다. 길바닥은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고 평탄하며, 식량이 풍족해 인구도 번창한다. 보배가 무수하고 감미로운 과일나무, 향기로운 풀과 나무도 무성하다. 기후는 늘 온화하고 화창하며, 계절의 변화가 순조롭고 사람들은 착하고 고운 말만 서로 주고받는다. 대소변을 볼 때면 땅이 저절로 열렸다 닫혀 아무런 냄새도 안 난다. 인간의 수명도 늘어나 보통 8만 4000세까지 살게 된다. 이것이 지금 도솔천에서 수행 중인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건설할 새 세상의 모습이다. 물질이 지극히 풍족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답고, 누구나 심신에 고통을 받지 않고 오래 사는 이상향이다. 불교신자라면 누구나 이런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불교는 오랫동안 한국의 국교였다.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까지 늘 그랬다. 상하를 불문하고 모두 불교를 믿었다. 조선시대에야 사정이 달라졌다.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아 불교를 업신여기는 풍조가 유행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불교적 세계관에 익숙했다.19세기에 강일순이 미래의 이상향을 언급하면서 미륵세상을 사실상 그대로 옮긴 것도 우연이 아니다. 미륵세상은 한국사람 누구나가 지향한 이상향이었다. 그 점을 감안하면 조선후기 신종교운동을 펼친 평민지식인들이 이상세계를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은 것도 납득이 된다.‘정감록’에 미래사회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 때는 누구나 미륵세상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정감록’이든 또는 동학의 경전이든 이상향에 관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던 시절이다. 조선시대 민중이 궁금했던 것은 이상향의 모습이 아니라 과연 언제 새날이 밝느냐는 문제였다.‘정감록’이 선포한 새 세상은 미륵세상이란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미륵이 얼마나 중시됐는가는 전국각지에 미륵신앙이 퍼져 있다는 사실에 나타난다. 일제시대 함경도 함흥에서 수집된 무가(巫歌)를 보면, 미륵은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로 인식될 정도였다. 바로 그 “미륵님 세월에는 섬(石)으로 말(斗)로 밥을 배불리 많이 먹고 인간 세월이 태평하였다.” 과거 미륵세상이 태평했다는 대목은 앞으로 다가올 미륵세상이 그러리란 기대를 역으로 투사한 것이다. ●정감록은 후천세계로 귀결 다가올 미륵세상을 신종교에서는 후천(後天)이란 용어로 표현한다. 인류의 역사를 양분해 지난 세상은 선천(先天), 다가올 세상은 후천으로 설명한다. 선천은 각종 모순이 쌓여 불합리하고 상극이 되어 충돌하던 어두운 세상, 후천은 상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밝은 세상으로 본다. 원불교 교조 박중빈은 이미 선천과 후천이 교대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후천세계는 평화롭고 평등한 문명 세상이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차별과 대립이 사라진 지상낙원인데, 한국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정감록’이 기약했던 정진인의 나라는 결국 후천세계로 귀결되었다. ■ 정감록과 임진왜란 ‘정감록’이 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임진왜란이었다. 선조25년(1592)에 일어난 왜란의 여파는 무척 컸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돼 전쟁에 관한 예언이 수집되었다. 일종의 사후 약방문인 셈인데, 그것은 뒷날 ‘정감록’에 녹아들었다. ‘조선금석총람’ 하편을 보면 세조5년(1459) 원각(圓覺)이란 승려가 81세를 일기로 입적하며 앞날을 예언했다. 자기가 죽고 130여년이 지난 뒤 고래 같은 도적(왜적)이 쳐들어와 나라가 의지할 곳을 잃게 된다고 했다. 그 때가 되면 산과 냇물에 시체가 쌓이고 피가 천리를 적시는데 서쪽(중국) 병사들이 와서 구원하리라 했다. 임진왜란 발생과 경과를 대강 맞춘 셈.‘산과 냇물에 시체가 쌓인다.’는 식의 표현은 ‘정감록’에도 보인다. 원각은 참혹한 전쟁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늘의 신들이 도와주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그는 향불을 태우며 무릎꿇고 관세음보살의 주문을 외우면 화를 입지 않게 되며 오래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당시 유행한 예언서에 “적은 부산에서 일어나 부산에서 그친다.”라고 돼 있었다 한다. 임진왜란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경상도 부산포에서 시작돼 어찌보면 거리가 매우 먼 평안도 부산에서 끝난다는 이야기였다. 보통은 잘 모르고 있지만 평양 서쪽 30리에 부산 고개라는 곳이 있다. 그 왼쪽 언덕에는 사람 모양의 석상이 있는데 언제 누가 무슨 일로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한다. 임진년(1592년) 봄, 석상이 피를 흘려 이웃한 부산 고개까지 흘러 내렸다. 전쟁이 일어날 징조였다. 전라도 광양에선 돌에 적힌 예언서가 발견되었다. 쇠무덤(鐵叢)이라 알려진 곳에서 출토된 예언서에는 이상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동쪽으로 시오리 되는 곳에 황금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면 만 배 이익이 될 것인데 그리 되면 아들은 능지기가 되고 노비가 능 주인이 되어 상하가 뒤집힌다. 승려가 승려노릇을 그만 두고 선비가 붓과 먹을 버리게 되며, 베 짜는 여인이 베틀을 버리고 농부가 쟁기를 버린다.” 상하의 질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본업에 충실하지 않는 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예언이었다. 비슷한 표현이 ‘정감록’에도 있다. “임진년에는 나라가 셋으로 갈라졌다가 계사년에 다시 평정되리라. 말해 또는 양해에 다시 태평하여질 것이다. 두류산에 들어가 난을 피하는 것이 제일이다. 호서는 조금 편안하고, 한양에 도읍하면 마땅히 팔백년을 갈 것이다. 당나라 병사가 임진강을 건너면 국운이 2백년은 더 하리라.” 이 대목은 ‘정감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삼국으로 갈라졌다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 말해와 양해가 대길하다고 예언한 것은 모두 ‘정감록’에 수용되었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한 번 나온 예언은 어떤 식으론가 계승되게 마련인 것을 알 수 있다. 선조 때 명신인 이항복에 관한 이야기도 전한다. 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 겨울날이었다. 이항복이 퇴궐해 막 집에 도착하자 청지기가 뛰어 나와 어느 괴상한 남자가 뵙자고 야단이라 하였다. 그 사나이는 헤진 갓에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있었다. 더러운 누더기를 몸에 걸쳤고 좁은 바지 자락은 정강이까지 돌돌 말아 올렸는데 얼굴은 큰 돌 같았고 키가 무척 컸다. 붉은 입을 괴물처럼 열고 한참 동안 무슨 말인가를 늘어놓은 뒤 갑자기 사라졌다. 이웃집에 살던 이덕형이 이를 목격하고 사정을 캐물었다. 이항복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를, 그 사나이는 자칭 백악산의 야차(범어의 yaksa, 두억시니)라고 하는데 장차 내년에 큰 난리가 터질 텐데 아무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어 이렇게 내게 알려주러 왔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야차는 10세기 초 철원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토성 신을 연상케 한다. 그는 고려태조의 등극을 알리는 ‘고경참’을 시장에 내다 판 것으로 돼 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儒林 속 한자이야기] 白面書生(백면서생)

    儒林(487)에는 ‘白面書生’(힌 백/얼굴 면/글 서/낳을 생)이 나오는데,‘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한갓 글만 읽고 세상일에는 전혀 經驗(경험)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白面郞(백면랑)이나 學究(학구),措大(조대)도 이와 類似(유사)한 말이다.‘白’의 字源(자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머리’라는 설이 타당해 보인다. ‘白’에는 ‘희다’의 뜻 외에도 ‘아뢰다’ ‘말하다’ ‘없다’ ‘비다’ 등이 있다.用例(용례)에는 ‘白頭如新(백두여신:오랫동안 사귀어 온 사이지만 서로 간의 정이 두텁지 못함을 비유),白書(백서:정부가 정치, 외교, 경제 따위의 각 분야에 대하여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여 그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하여 만든 보고서) 등이 있다. ‘面’자의 甲骨文(갑골문)은 사람 얼굴 안에 ‘目’(눈 목)이 있는 형태이다. 얼굴이란 뜻을 표현하는데 눈을 강조한 것은 사람의 印象(인상)에서 눈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 때문이라고 한다. 후대로 오면서 ‘만나다, 향하다, 겉, 방향’과 같은 여러 가지 뜻이 派生(파생)하였다.用例에는 ‘面目(면목:얼굴의 생김새. 사람이나 사물의 겉모습),面識(면식:얼굴을 서로 알 정도의 관계)같은 것들이 있다. ‘書’자의 위쪽은 ‘聿’(붓 율)은 붓을 잡고 있는 모양이며, 아래쪽은 ‘날’(日)이나 ‘말하다.’(曰)가 아니라 먹물이 담긴 벼루의 모양이다. 본래의 뜻은 ‘글을 쓰다.’이며 글을 써둔 ‘책’을 가리키기도 한다.用例로는 ‘書庫(서고:책을 넣어두는 곳집),書案(서안:책상, 문서의 초안),良書(양서:내용이 교훈적이거나 건전한 )’ 등을 들 수 있겠다. ‘生’자는 풀 포기의 상형인 ‘ ’(철)과 地表(지표)를 나타낸 ‘一’을 합쳐 ‘땅을 뚫고 나온 새싹’의 모양을 나타냈다.用例(용례)에는 ‘生家(생가:자기가 태어난 집),生老病死(생로병사:사람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 고통 등이 있다.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에 宋(송)과 北魏(북위)는 江南(강남)의 四鎭을 둘러싸고 尖銳(첨예)하게 대립해 있었다.西紀(서기) 449년, 북위의 太武帝(태무제)가 柔然(유연:몽골 땅에 자리 잡고 살던 고대의 유목민족)을 공격하였다. 송나라의 文帝(문제)는 북위를 制壓(제압)할 수 있는 絶好(절호)의 機會(기회)로 보고 文臣(문신)들과 구체적인 방법을 論議(논의)하였다. 이때 武官(무관)인 심경지(沈慶之)는 북위와의 빈번한 전투에서 패배했던 前例(전례)를 들어 섣부른 出兵(출병)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進言(진언)하였다. “밭갈이는 종에게 물어보고, 베를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적국을 공격하려고 하시면서 백면서생과 圖謀(도모)하시니 어찌 적을 이길 수 있겠사옵니까.”(田事可問奴 織事可問婢.今陛下 將欲攻敵國 與白面書生謀之 事何由濟) 이 이야기는 ‘宋書’(송서)의 ‘沈慶之傳(심경지전)에 전한다. 그는 열 살의 나이에 이미 東晉(동진)의 遺臣(유신:왕조가 망한 뒤에 남아 있는 신하) 손은(孫恩)이 逆謀(역모)를 꾀하자 私兵(사병)을 이끌고 參戰(참전)하여 武名(무명)을 떨쳤다. 그 후 수많은 戰功(전공)을 세워 建武將軍(건무장군)에 임명되어 邊境(변경) 守備(수비)를 總括(총괄)한 百戰老將(백전노장)이었다.專門家(전문가)의 忠言(충언)을 무시한 卓上空論(탁상공론)이 실패를 부를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김석제 경기도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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