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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탄, 민주주의 도입 첫 총선

    티베트 독립시위 사태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티베트와 이웃한 부탄에서 조용하지만 의미있는 정치 실험이 진행돼 대조를 이루고 있다. 1907년부터 왕정 체제를 유지해온 부탄은 24일 민주주의 도입을 위한 첫 총선을 실시한다. 지난 1월 선거에서 상원을 구성한 데 이어 이번 총선에서 하원 47명을 선출하면 신생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채로운 것은 세습왕조 국가가 민주주의 전환 과정에서 흔히 겪는 갈등이나 투쟁이 없다는 점이다. 부탄의 4대왕인 지그메 싱계 왕추크는 사망하기 한 해 전인 2005년 민주주의 도입을 발표했고,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영국 유학파 출신 지그메 케사르 왕추크는 부친의 유지를 그대로 따랐다. 이웃국가인 네팔의 왕조가 피플 파워에 떼밀려 권력을 내놓은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배경에는 부탄 왕조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과 믿음이 있다.1971년 즉위한 지그메 싱계 왕추크 국왕은 국민총행복(GNH) 개념을 도입, 물질적 풍요로움보다 전통적 가치와 환경을 우선하는 정책을 펼쳤다. 부탄은 한 해 외국 관광객을 2만명으로 제한하는 등 폐쇄적인 정책 탓에 ‘은둔의 왕국’으로 불리지만 동시에 ‘히말라야의 낙원’으로 칭해지기도 한다. 부탄에는 거지가 없고, 실업률도 낮다. 보건과 교육 여건이 뛰어나고, 범죄율은 제로에 가깝다. 향후 경제발전 가능성도 높다.세계은행은 부탄의 연간 경제성장률을 14%로 예측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부탄의 민주주의 도입이 오히려 기존의 국민총행복 개념을 훼손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3일 보도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곳곳에 우편향 역사인식… 논란 불가피

    곳곳에 우편향 역사인식… 논란 불가피

    현행 고등학교용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와 ‘해방 전후사의 인식’으로 대표되는 기존 역사서를 ‘좌파적 역사인식’이라고 비판하는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이 ‘대안교과서’를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주축으로 하는 ‘교과서포럼’은 23일 기존 역사 서술의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이 곳곳에 보이는 ‘대안교과서 한국 근ㆍ현대사’(기파랑 펴냄)를 펴냈다. 이 책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등에 대하여 일본에 의존한 경거망동으로 식민지화 위기만 불러일으켰다는 기존의 역사 서술과는 달리 청나라에 대한 조공과 문벌폐지 등을 시도했다는 점을 들어 근대화를 추구했던 선각자로 적극평가를 요구했다. 반면 ‘동학란’ 당시 농민군이 요구했다는 탐관오리 처벌 등의 폐정개혁안은 1940년 출간된 ‘역사소설 동학사’에 수록된 내용일 뿐으로, 실제 봉기는 유교적인 근왕주의(勤王主義)에 입각하여 서민 경제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성격이 강했다고 언급했다. ●“동학은 혁명아니라 복고운동에 불과” 또 일제 지배체제인 1910∼1945년은 ‘일제 강점기’가 아니라 ‘식민지 시기’로 ‘정치적 차별과 억압을 동반한 야만의 정치체제’였지만, 일제의 지배는 총칼로 한국인의 재산을 빼앗는 전근대적 폭력적 수탈이 아니라 근대적 재산제도와 시장경제의 원리에 준하는 것이었다고 서술했다. 앞서 ‘대안교과서’ 편찬은 시작단계에서부터 반발에 부딪혔다.‘교과서포럼’이 2006년 11월30일 학술심포지엄을 열었으나, 군사정권과 유신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4·19 관련단체 회원들이 몰려들면서 폭력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문제가 됐던 4·19는 민주혁명,5·16은 쿠데타로 정리했다.10월유신은 정변으로 박정희의 비타협적 귄위주의의 정점이었으며, 정통성에 치명적 오점을 남겼다고 비판했다.12·12는 하극상,5·18은 민주화운동으로 서술했다.6·25는 남침전쟁으로 규정하고, 북한은 세습왕조나 다름없는 체제이고 세계에서 가장 낙후한 정치집단이라고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제주 4·3사건은 좌익무장 반란” 역사용어의 선택도 파격적이어서 ‘명성황후’는 ‘민왕후’로 격하시켰고, 여순사건과 제주 4·3사건은 ‘좌파세력의 무장반란’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이 책은 일본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후쇼사 교과서의 한국판”이라면서 “이들의 주장은 한국 근현대사를 오로지 경제시장주의와 반공주의로만 설명하려는 것으로 과거 조선총독부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 책의 필진으로는 이영훈 교수를 비롯하여 김재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 12명이 참여했다. 서동철 이문영기자 dcsuh@seoul.co.kr
  • [부고] ‘사계절의 사나이’ 폴 스코필드

    1960년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은막과 연극무대를 누빈 영국 배우 폴 스코필드가 별세했다.AP통신은 20일(현지시간) 그가 오랜 백혈병 투병생활 끝에 영국 남부 서식스의 자택 근처 병원에서 전날 숨졌다고 보도했다.86세. 1940년 연극 무대에서 배우 인생을 시작한 스코필드는 67년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에서 튜더 왕조의 정치인 토머스 모어 경 역으로 호연하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배우이자 동시대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명으로 꼽혀온 인물이다. 그는 셰익스피어극에 정통해 연극무대는 물론 영화 ‘리어왕’ ‘헨리5세’ ‘햄릿’의 단골배우였다.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생애를 마친 그는 가정에도 각별했다. 촬영이 없을 때는 주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모범적인 가장이었다. 인터뷰도 기피해 대중의 주목을 반기지도 않았다. 기사 작위를 제의받자 “그것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다.”면서 “굳이 직함을 얻고자 한다면 미스터(Mr.)라도 무방하다.”며 거부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훗날 훈작 작위를 수여받았다.유족으로 여배우인 아내 조이 파커와 자녀 두 명이 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윌리엄 존스턴 지음

    프로이트, 루카치, 비트겐슈타인, 슘페터, 말러, 브로흐, 볼츠만, 부버, 후설, 만하임, 클림트, 곰브리치, 쇤베르크…. 전 세계가 기억해 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기억할 사상가이자 예술가인 이 이름들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모두 오스트리아가 낳은 거목들이란 점이다. 이들의 사상과 예술이 무르익은 시간적 공간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역사학과 교수였던 윌리엄 존스턴은 세계적 지성들이 한데 어울렸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황혼기에 주목했다.‘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변학수 등 옮김, 글항아리 펴냄)은 1848년에서 1918년 사이 오스트리아의 지식인들이 그토록 거대한 정신적 성과를 이뤄내기까지 어떻게 사회와 유기적으로 교류했는지를 짚었다. ●프로이트 등 오스트리아 지성 70여명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근 6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조가 몰락하면서 대제국은 극도의 혼란을 맞았다.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가 왕위를 포기하자 제국은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등 모두 6개 민족국가로 분열돼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수도 빈을 포함해 700만 인구를 거느린 오스트리아의 사정은 가장 열악했다. 호프부르크 궁전의 비품들은 식량과 바꿔치기되는 신세가 됐고, 수백년 세를 떨쳤던 쇤브룬 성은 고아원으로 전락했다.1921년 몰아친 혹한으로 이듬해 빈대학은 문을 닫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조피아와 화가 에곤 실레 등 수천명이 죽은 것도 이 시기였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오스트리아의 문화유산과 사상적 가치들은 독일의 아류쯤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사상과 예술이 대접받는다는 건 당시 형편으로는 사치였다. 시대정황을 정밀묘사한 책은, 그럼에도 그 시점의 오스트리아 사상가와 예술가들을 홀대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세기말, 오스트리아라는 이름의 ‘정신적 대륙’을 누빈 거목들은 세계 지성사에 결정적 자양이 됐기 때문이다.730여쪽의 방대한 저술 속에서 호명된 오스트리아 지성들은 줄잡아 70여명. 사회민주주의자 빅토르 아들러, 오토 바우어, 막스 아들러, 법률가이자 정치학자 요제프 슘페터, 안톤 멩거, 한스 켈젠이 있다. 음악 장르를 확장시킨 브루크너, 볼프, 말러, 쇤베르크를 비롯해 화가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 등에 이르기까지 예술사에 새 이정표를 세운 명단도 화려하다. ●세계 역사·문학·예술 등서 족적 남겨 세기말 혼란기를 살았던 거목들의 족적 자체를 상세히 추적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의 목표지점은 일관되게 하나다. 그들의 정신적 허기와 지적 위기를 버티게 해준 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추적이다. 예컨대 당시 빈에서 야유와 모함을 받았으며 오늘날에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당시 프로이트의 사회적 좌표를 되돌아보는 것은 기본이고, 그의 제자들과 반대론자들에 관한 에세이 두 편을 실어 그의 학자적 삶이 시대와 어떻게 유기적 호흡을 시도했으며 또 불화했는지를 되짚는다. 빈을 떠나 보헤미아 지역과 부다페스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프로이트의 면모를 새롭게 읽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 연구에 천착한 지은이의 학문적 깊이 덕분에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된 사실도 적지 않다. 하이데거의 스승이자 오늘날 프랑스어권에서 집중연구되고 있는 에드문트 후설. 보헤미아의 정신권에 뿌리를 대고 빈과 그라츠로 지평을 확장해 간 일련의 재조명 작업 등은 깊이 있는 사상사를 기다려온 독자라면 반색할 만하다. 유럽을 넘어 세계의 문화·사상사 전반을 끝점없이 활강하는 지적 편력, 그 사유의 깊이에 번번이 발목이 잠긴다.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잊혀진 한 시대의 정신사적 성과들을 새삼 확인하는 의미는 선명하다. 저자는 물었다.“온고지신(溫故知新)이 없다면 우리의 정신적 삶은 얼마나 공허하며 얼마나 황량한 것이겠는가?” 2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다관에 담긴 한·중·일 차 문화사/정동주 지음

    한·중·일의 차(茶)문화는 사뭇 다르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성인병 예방이나 다이어트 등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차를 마신다. 중국인들은 물이 좋지 않은 탓에 물을 대신하거나, 기름진 음식을 중화시키기 위해 차를 마신다. 일본인들은 차를 마시는 게 예(禮)이고 도(道)다. 다도를 수련하는 것이 참선과 같은 인격수양의 한 방편이라는 얘기다. ‘차력(茶歷)’ 43년의 작가 정동주씨가 펴낸 ‘다관에 담긴 한·중·일 차 문화사’(한길사 펴냄)는 찻그릇인 다관(茶罐)을 통해 이같은 한·중·일 차 문화의 속내를 살핀 책이다. 다관은 잎차를 넣고 더운 물을 부어 차를 우려내는 찻그릇. 중국에서는 차후(茶壺), 일본에서는 규스(急須)라고 불린다. 차를 우려낸다는 기능은 같으나, 모습과 발전과정은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의 다관은 조선초부터 1970년대까지 쇠퇴하다가 1980년대들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정교하고 다양한 무늬와 장식으로 꾸며지고 색채가 우아한 것이 특징이다. 중국 차후는 서역의 문물과 다양한 민족문화를 보듬고 있는 만큼 중원의 지배 왕조에 따라 다양한 형식을 취한다. 일본의 규스는 중국의 찻그릇과 페르시아의 문양과 장식을 본떠 새로 만든 까닭에 모양과 색채가 가장 화려하다. 이 책은 다관이라는 찻그릇의 특성을 살피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한·중·일 차문화의 특성을 폭넓게 다룬다. 다관의 기원이 된 고대 청동기부터 중국 왕조의 변천에 따른 도자 형식의 변화, 찻잎 종류에 따라 다른 중국 차후의 형식, 일본 규스의 출현과 차 문화 개혁 등 한·중·일 차문화의 중요 사항을 남김없이 짚어간다.2만 2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이동진과 함께 튀니지로 ‘환상여행’

    퀴즈 하나.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와 ‘스타워스’ 시리즈의 촬영 장소이며 ‘글래디에이터’의 모티브가 됐던 나라는? EBS ‘세계테마기행’은 숱한 영화들의 배경이 될 정도로 빼어난 장관을 지녀 ‘아프리카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나라 튀니지를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와 함께 찾아간다.‘영화평론가 이동진이 만난 튀니지’편은 17∼20일 오후 8시50분에 방송된다. 튀니지는 3300년 전 페니키아인들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이후 로마, 비잔틴, 아랍, 오스만튀르크, 스페인, 프랑스 등 다양한 왕조와 제국의 지배를 끊임없이 받았다. 그토록 수많은 이민족들이 탐냈을 만큼 튀니지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이다. 1부 ‘지중해의 양지’에서는 튀니지의 명소들을 훑어 본다. 튀니지 역사의 산증인과 같은 카르타고, 지중해의 아름다운 해변과 오렌지 농장을 볼 수 있는 캡본 반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철새들의 천국 비제르트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2부 ‘아프리카의 보물창고’에서는 수천년 동안 튀니지를 거쳐간 다양한 제국들의 유적을 둘러본다. 튀니지의 알프스라 불리는 아이드람·베니 메티르의 아름다운 숲,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만들어진 로마 유적 도시 두가,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모티브가 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콜로세움 등이 화면에 펼쳐진다. 3부 ‘올리브 향기가 있는 외계마을’은 올리브 농장이 끝없이 펼쳐진 튀니지의 북서부 지중해를 따라간다. 스팍스에는 올리브 향기가 가득하고, 가베스에서는 튀니지 전통 가정식을 맛볼 수 있다. 또 조지 루카스 감독이 외계 풍경으로 삼았던 요새 가옥 마을, 스타워스 세트장이 있는 웅크주멜에서는 튀니지의 환상적인 모습을 접할 수 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신정공화국… 최고 성직자가 최고 지도자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팔레비왕조가 붕괴된 뒤 이란은 최고 성직자가 최고 지도자가 되는 신정공화국체제(theocratic republic)를 채택하고 있다.최고지도자 아래 대통령 중심의 행정부·입법부·사법부 등 3권 분립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란은 지난 수십년간 보수파 비선출직 권력체제와 개혁파 선출직 권력체제 사이에서 치열한 견제와 투쟁을 벌여 왔다.그러다 2004년 강경보수파가 의회를 장악하고 대선까지 승리하면서 모든 권력 조직을 아우르게 됐다.
  • “김시습은 천재적 우울증 환자?”

    “김시습은 천재적 우울증 환자?”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은 우울증 환자였다?” 윤채근(43)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가 최근 펴낸 자신의 저서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소명출판)에서 이 같은 도발적 주장을 내놓았다. 독특하게도 한문소설을 대상으로 정신분석 비평을 시도하는 저자는 프랑스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을 통해 김시습의 내면 세계를 분석한다. 책에는 ‘김시습과 금오신화:존재 불안의 서사적 탐구-히스테리와 우울증을 중심으로’ 등 11편의 논문이 실렸다. 히스테리와 우울증의 경우 증상의 메커니즘이 서로 다르지만, 김시습이라는 독특한 인격 속에 서로 녹아들어 소설 창작의 동기를 유발하는 데 기여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 따르면 김시습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후실을 얻은 아버지의 곁을 떠나 외가에서 자라면서 마음에 큰 상처를 안은 채 보냈다. 이런 가정적 비극이 어린 김시습의 예민한 정서에 영향을 끼쳐, 결국 이를 다른 사람의 관심으로 보상받으려 하다 보니 히스테리화했다는 것. 저자는 또한 김시습이 당대 왕조에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았다는 점, 국가사업에 종사하고 세조의 도첩을 받고 감격했다는 점 등 여러 정황을 들어 생육신, 절의지사로 알려진 점은 과대포장됐다는 주장도 편다. 윤 교수는 “광기와 기행으로 점철된 김시습의 자기파괴 과정은 타인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종종 자신의 행복이나 성공을 거부하는 행위로 나타나는데, 이런 심리적 현상이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천재병’으로 불린다.”고 지적한다. 윤 교수에 따르면 김시습의 강력한 지적 욕구와 박학(博學)의 추구야말로 천재적 우울증의 공통적인 속성이다.1만 9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책꽂이]

    ●새로 쓴 5백년 고려사(박종기 지음, 푸른역사 펴냄) 1999년 초판된 것을 고려시대의 문화분야를 집중 보강해 새로 쓴 고려사 개설서. 삼국 및 조선왕조사와의 비교를 통해 고려사의 특성을 짚는 데 중점을 뒀다.1만 8000원.●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구트룬 슈리 지음, 김미선 옮김, 다산북스 펴냄) 안테나에 잡히는 소음을 추적하다 빅뱅을 발견한 펜치아스와 윌슨 등 인간의 열정이 ‘우연’을 만나 이룬 쾌거의 역사 16가지를 소개한다.1만 3000원.●이인식의 세계신화여행(전2권)(이인식 지음, 갤리온 펴냄) 대각선 모서리에 서 있을 듯한 신화와 과학의 경계를 허물어 신화 속 과학, 과학 속 신화를 찾는다. 신화에 담긴 인간의 꿈이 어떻게 과학기술로 실현됐는지 추적한다. 각권 1만 2000원.●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지음, 시대의창 펴냄) 진보대안을 만드는 민간 싱크탱크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은 우리 사회의 현실과 과제를 논의해 묶었다. 달라진 경제구조 안에서 노동자와 농민, 대학생, 자영업자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고, 그 어떤 대안보다 스스로 희망을 찾아 대안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1만 6000원.●도그 위스퍼러(세사르 밀란 지음, 오혜경 옮김, 이다미디어 펴냄)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세사르 밀란의 도그 위스퍼러’를 진행하며 인기를 모은 진행자 세사르 밀란이 쓴 애견 훈련법. 개를 너무 응석받이로 만들거나 인간과 동격으로 대하지 말고,“개는 개답게 키우라.’는 도발적 메시지로 미국에서 화제가 됐던 내용이다.1만 1000원.●인권교육, 날다(인권교육센터 ‘들’지음, 사람생각 펴냄) 인권재단에서 공부방, 어린이·청소년 인권캠프 등을 운영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인권운동 및 교육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알기 쉽게 소개했다.1만 8000원.●위대한 나(매튜 켈리 지음, 이창식 옮김, 세종서적 펴냄) 백만 달러짜리 경주마에게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이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햄버거를 먹을까. 현대인들은 행복을 향해 너무 바삐 달리다 결국 불행에 빠지는 ‘행복 패러독스’를 겪고 있다. 행복을 위해 불행한 삶을 사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한다.1만원.●동의보감 외형(外形)편-제2권(허준 엮음, 동의과학연구소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신체 각 부위에서 생기는 질병의 증상과 진맥법, 약물 처방, 침뜸법 등의 치료법을 제시한다.‘외형’편은 인체 각 부분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륙판 4만 5000원.●우리 그래도 괜찮아(빅맘스클럽 지음, 여성신문사 펴냄) 여성 한부모 모임 ‘빅맘스 클럽’(Big Mom’s Club) 회원들이 자신들의 생생한 삶을 함께 엮었다. 빈곤여성 한부모 가족의 현주소가 한국사회의 바로미터라 주장하고, 우리 사회의 가족모델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한다.9800원.
  • 명말·청초 조선외교 ‘현장보고서’

    명말·청초 조선외교 ‘현장보고서’

    병자호란 때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가 본국에 써 보낸 ‘심양장계’(瀋陽狀啓, 소현세자 시강원 지음, 이화여대 국문과 고전번역팀 옮김, 창비 펴냄)가 번역·출간됐다. 심양장계는 신하가 임금에게 보내는 보고서 형식의 글이다. 세자를 수행한 시강원(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한 관청으로 소현세자가 심양에 볼모로 잡혀갈 때 따라감) 관리가 장계를 작성해 승정원으로 보내면 승지가 국왕에게 전달했다. 본국에 보내기 전에 세자의 재가를 거쳤다는 점에서 세자가 임금에게 보낸 글이라 봐도 무방하다. 소현세자 일행은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이듬해인 1637년 4월 심양에 도착(당시 세자 나이 26세)한 뒤부터 귀국을 허락받은 1644년 8월에 이르기까지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세자는 자신을 수행해간 남이웅, 박로, 박황 등 시강원 관료들을 통해 본국 승정원에 장계를 올렸다. ●정치상황·청나라 궁실 생활상 자세히 심양장계는 명말 청초의 조선 외교사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자료 중 하나로 꼽힌다. 책엔 청나라 건국 초기의 정치상황과 궁실의 내부 사정, 만주 귀족들의 생활상까지 상세히 기술돼 있다. 당시 조선과 명·청 3국의 외교관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조선이 몰락하는 명나라와 흥성하는 청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시강원 관리는 심양의 세자와 대군 이하 종신들의 동정 외에도 청나라 관아의 모습, 심양의 정치·경제·사회 상황, 청나라와 명나라의 관계까지 탐문해 보고했다. 특히 국경 지역에서 벌어진 담배와 종이 등의 교역에 관한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본국에서는 장계 내용을 토대로 적절한 대책을 세우고 지시를 내렸다. 장계에 따르면, 소현세자가 심양에서 풀어야 할 시급한 외교 현안은 요동 일대를 장악한 청나라가 명의 본토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조선에 요청한 군대 파병 문제였다. 세자는 조선과 청 사이에서 양국의 의견을 조율했고, 조선군을 향한 청군의 각종 항의를 무마시키기도 했다. ●세자가 양국 의견 조율·청군 항의 무마 시급한 현안을 놓고 급하게 쓰인 글인 만큼 심양장계는 정통 한문 문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조선식의 이두가 섞여 있고 부정확한 표현들도 적지 않아 해독이 쉽지만은 않다. 미묘한 국제관계를 다룬 탓에 조선왕조 기간엔 대외유출이 철저하게 금지됐고, 규장각에 국가 기밀자료로 보관된 채 왕실 친인척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 심양장계에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일본인 학자들이었다. 명말 청초의 조선 외교관계를 파악하고 조선 식민지화 구실을 찾기 위해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고서번각위원회’가 1932년 ‘규장각총서’ 제1책으로 간행했다. 이번 번역본은 이화여대 국문과 고전번역팀이 이강로 한글학회 이사의 감수를 받아 수년간 공동작업 끝에 완성한 완역주석본으로 경성대 판본에 기초했다. 학술적 목적으로 이화여대 팀과 비슷한 시기에 직역 위주로 옮긴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번역본에 비해,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썼다는 것이 번역팀의 설명이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태릉·강릉에 왕릉 전시관 들어선다

    조선 제11대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와 13대 명종, 그의 비인 인순왕후의 능이 있는 노원구 공릉동 태릉·강릉(사적 제201호)에 ‘왕릉 전시관’이 만들어진다. 노원구와 문화재청은 12일 공릉동 산 223의19에 지상 1층,1013㎡ 규모로 조선왕조 600년의 역사와 문화, 왕실의 국장의례를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왕릉 전시관’을 내년 7월까지 조성한다고 밝혔다. 왕릉 전시관은 크게 태릉·강릉 전시관과 조선 왕릉전시관 등으로 이뤄진다. 태릉·강릉 전시관은 왕릉의 역사와 왕릉의 인물, 왕릉 구조를 알 수 있도록 꾸며진다. 조선 왕릉전시관은 왕권의 상징 및 조선왕조 국장의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전시관의 관람 동선은 길이 143m, 관람 소요시간은 80분 정도 걸린다. 태릉·강릉 입장료 외에 별도의 전시관 관람료는 없다.구 관계자는 “태릉·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록과 함께 인근 육사박물관, 초기 한글의 형태를 알 수 있는 하계동 한글영비(보물1524호),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 경춘선 폐선 부지의 테마파크 등과 연계해 문화 관광벨트로 묶을 계획”이라고 말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열린세상] 베이징 올림픽과 ‘성당(盛唐)의 꿈’/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연극인

    [열린세상] 베이징 올림픽과 ‘성당(盛唐)의 꿈’/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연극인

    2008년 8월8일 오후 8시8분8초에 개막하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인권 문제, 공해 문제, 음식 문제 등 몇가지 악재가 터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중 나의 관심을 끈 소식은 미국의 세계적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베이징올림픽 예술고문직 사퇴다.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토착민인 푸르족과 정부군 사이의 내전으로 20여만명이 학살되고 난민 250만명이 발생했는데도 수단의 석유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학살을 중단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국제사회의 거센 압력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반인권적인 중국 정부가 개최하는 올림픽에 협조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로 사퇴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의 세계적 감독이며 베이징올림픽 개막행사의 예술감독인 장이머우는 당나라의 수도이던 시안을 방문한 자리에서 “성당(盛唐) 문화는 중화 문화의 최고봉이다. 성당은 군사적으로도 세계 최고였다. 곧 중화의 문명이 성당처럼 불끈 일어나 세계인의 긍지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올림픽 개막식은 개최국이 자국의 문화와 국력을 전세계인들에게 자랑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당국은 개막식 주제를 특급비밀로 분류해 놓고 보안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으나 장이머우의 발언이나 여러 정보들을 종합해 볼 때 ‘성당시대의 재현’이 거의 확실한 듯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조라는 당을 개막식에서 부각시키려는 것은 또다시 세계적 강국으로 부상해 보겠다는 의지의 문화적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개막공연에서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의 예술도 웅장하게 선보일 것이라고 전해진다.56개 소수민족의 예술을 통일적으로 집대성함으로써 후진타오 주석이 주창해 온 ‘조화(和諧·화해)사회’의 꿈을 전세계에 알리겠다는 전략일 것이다. 이런 개막식의 주제들은 베이징올림픽의 3대 테마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3대 테마는 첫째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둘째 ‘녹색 올림픽, 과학기술 올림픽, 인문 올림픽’, 셋째 ‘조화’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정황들을 살펴볼 때 1970년대 말 이후 중국의 대외정책과 경제정책을 대표하는 용어이던 ‘도광양회(韜光養晦)’와 ‘흑묘백묘(黑猫白描)’는 이미 용도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인민이 잘살 수만 있다면 외국기업이든 환경오염 유발업종이든 가리지 않겠다던 정책이 몇년 전부터는 첨단산업과 친환경산업만 받아들이겠다는 ‘녹묘(綠猫)’ 정책으로 바뀌었다. 또 최근 들어 공식·비공식 행사에서 중화민족 부흥과 강대국 건설이 주창되고, 중앙텔레비전이 강대국 흥망사인 ‘대국굴기(大國屈起)’란 프로그램을 만들고, 동북공정을 비롯한 여러 공정들을 활발하게 진행해 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의 신중함은 벗어던진 지 오래다.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중화권 내 소수민족이나 주변국들을 ‘조화’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통일하고, 미국과 경쟁하는 세계적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올림픽이란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를 앞두고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감독과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감독이 각기 반대의 입장에서 대응하는 것을 우리는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 우리에게 중국이란 나라는, 그리고 베이징올림픽은, 메달 획득과 함께 풀기 어려운 여러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 과제에 심각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장이머우의 화려하고 장엄한 연출로 펼쳐질 56개의 소수민족 공연에서,‘조선족’의 춤과 노래가 중화민족의 ‘거대하고 조화로운 세계’에 행복하게 편입되는 광경을 황홀하게 감상할지도 모른다.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연극인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8) 전주 경기전 태조 어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8) 전주 경기전 태조 어진

    흔히 조선 초상화의 핵심 정신으로 영조가 선왕인 숙종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언급했다는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곧 다른 사람(一毫不似 便是他人·일호불사 변시타인)’이라는 극도의 사실성을 들곤하지요. 일호불사론(論)은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중국 북송의 사상가 정이의 어록에 먼저 나온다고 합니다. 한오라기 수염이라도 더 많으면 다른 사람이니 영정이 아니라 신주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제의론이었다는 것이지요. 선조 이후 현종까지 250년 남짓한 기간동안 임금의 초상인 어진(御眞)의 제작이 활발치 않았던 이유를 여기서 찾기도 합니다.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대부들의 신권(臣權)이 왕권을 능가할 만큼 강한 시절에는 어진조차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럼에도 어진을 비롯한 초상화는 조선시대 내내 끊이지 않고 그려졌지요. 어진을 더 많은 장소에 봉안하여 권위의 상징으로 삼으려는 왕과 성리학적 명문을 앞세우며 이를 견제하려는 사대부 사이의 갈등이 잠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진은 ‘일호불사’라는 글자 그대로 최대한 ‘모델’의 실제 모습에 가깝게 그려야 했을 것입니다. ●태조 초상화는 모두 26축 그려져 태조 이성계(1335∼1408년)의 초상화는 전신상과 반신상은 물론 승마상까지 모두 26축이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주 경기전 것이 유일하지요. 이 어진이 처음 그려지고,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임금의 초상이 갖고 있는 의미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선 왕조는 국초에 태조의 초상화를 모시는 진전(眞殿)을 6곳에 세웠습니다. 태조의 아버지인 환조 이자춘의 옛집으로 이성계가 태어난 함경도 영흥에는 준원전, 이씨의 본향인 전주에는 경기전, 왕위에 오르기 전 태조가 머물던 개성의 집터에는 목청전을 지었습니다. 고구려와 신라의 고도인 평양과 경주에도 각각 영숭전과 집경전을 두었지요. 경복궁에는 역대 왕과 왕비의 초상을 가리키는 쉬용(容)을 한데 모아 봉안하는 선원전을 세웠습니다. 영흥과 경주의 어진은 태조 재위 당시 그려졌습니다. 경기전 어진은 태조가 승하한 이듬해인 1409년 경주 것을 모사하여 1410년 봉안했지요. ●도성의 어진 6·25때 대부분 소실 경기전 어진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바닷길로 선조가 머물던 의주를 거쳐 묘향산에 보관됩니다. 어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탄 경기전이 광해군 6년(1614년) 중건된 뒤에야 돌아왔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경기전과 영흥전 것을 제외한 태조 어진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경기전 어진은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무주 적산산성으로 다시 한번 피란길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에도 이 어진은 영조 43년(1767년) 전주성에 불이 나서 2300호가 잿더미가 되는 상황에서 향교로 한동안 옮겨졌고,1894년 동학농민혁명군이 전주를 점령했을 때도 위봉산성으로 피란하는 곡절을 겪었습니다. 그 사이 경기전 어진은 숙종 14년(1688년) 서울 나들이를 합니다. 조선왕실은 이 초상화를 모사하여 남별전에 봉안함으로써 임진왜란 때 선원전이 불타는 바람에 태조의 어진이 도성에서 사라졌던 공백을 마감했지요. 도성의 어진은 1921년 새로 지은 선원전에 한데 모아졌는데,6·25전쟁 당시 피란지 부산에서 그만 대부분이 불에 타버리고 맙니다. 영흥의 태조 어진도 광복 이후까지 남아있었으나 지금은 행방을 알 길이 없습니다. 현재의 경기전 어진은 고종 9년(1872년)에 다시 모사한 것입니다. 모사 과정은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어진이모도감의궤(御眞移模都監儀軌)’에 자세히 전하고 있지요. 어진을 모사한 것은 초상화가 낡으면 새로 그리고 이전 것은 파기하던 관행 때문입니다. 최근 전주시는 ‘낡고 오래된 어진을 태운 뒤 백자 항아리에 담아 경기전 북편에 묻었다.’는 의궤의 기록에 따라 이 흔적을 찾아나서기로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조선시대에 어진은 살아있는 임금과 다르지 않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경기전의 태조 어진도 격동의 세월을 살아간 역대 왕만큼이나 풍상을 겪었지요. 한 점의 그림에 이 정도의 역사가 담겨 있는 사례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시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dcsuh@seoul.co.kr
  • [문화마당] 상처뿐인 우리 문화/윤대녕 소설가

    [문화마당] 상처뿐인 우리 문화/윤대녕 소설가

    2000년 5월 한·일문학작가회의 참석차 일본 아오모리에 간 적이 있었다. 사흘 간의 행사를 마친 뒤, 한·일 양국 작가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너도밤나무의 원생림으로 알려진 시라가미산치로 소풍을 갔다. 일정을 마치고 차에 올라타려는데, 안내원이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달라고 정중히 말했다. 처음엔 그네들 특유의 위생관념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국립공원의 흙을 한 점이라도 밖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는 취지의 안내 멘트였다. 비록 과장된 표현이었으나 한편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진대 문화 혹은 문화재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치밀해서 섬뜩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문화란 그것이 속한 사회나 국가의 수준을 나타낸다고 한다. 거기에 문화에 대한 자국민의 인식과 태도가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기에 문화는 말 그대로 경작(culture)되는 것이고 그 시대의 사람들과 더불어 성장한다고 말한다. 왜 그토록 문화가 중요하냐고 간혹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화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통합하고 유지하고 회복하는 순환적 기능을 담당한다. 이 순환의 고리 안에 공동체적 삶의 원형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숭례문 화재 이후 나타난 일련의 사회 현상들을 살펴보면 그 기능이 보다 자명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파괴 현상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다. 작년에 전국 미군기지 내 문화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을 비롯하여 삼국시대 고분, 고려시대 불상, 조선시대 문화재들이 미군 공여지 안에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었다. 고분은 도굴된 지 오래고 고인돌은 군인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었다. 최근 텔레비전 보도에 따르면, 천년 고찰인 청양 칠갑산 장곡사의 국보 제300호 괘불 탱화가 식당 한구석에 처박혀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미술품으로 알려진 국보 제307호 태안마애삼존불은 습기로 마모돼 그 원형을 상실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얼마 전 지붕을 걷어낸 서산마애삼존불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앞으로 ‘백제의 미소’를 제대로 친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을 언론이 반복적으로 보도해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잦은 외침을 받아 숱한 문화재가 소실되거나 약탈당한 경험이 있기에 오히려 둔감해진 걸까. 아니면 저 개발경제시대를 살아오면서 잘먹고 잘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가치를 두지 않게 된 것일까. 조선왕조 때부터 시작해 무려 600년 넘게 제례 행사를 이어온 종묘 옆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사태를 우리는 장차 후손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경제를 말할 때 더불어 문화를 운운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문화는 곧 그 사회의 얼굴인 것이다. 불탄 숭례문 앞에 조화(弔花)가 쌓이는 것을 보고 필자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진혼제까지 열렸다. 마치 국상(國喪)을 당한 듯한 분위기였다. 도저한 박탈감 때문이겠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가령 문병을 갈 때 누가 조화를 들고 가는가. 그 누가 미리 진혼제를 올리는가. 애초에 돌보고자 하는 의식이 없었기에 지레 체념에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문화는 정책과 제도만으로 유지되거나 성장하지 않는다. 강압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전시체제와 다름없이 전국민이 동원된 독점적 개발시대를 우리는 몸소 겪으며 살아왔다. 그러므로 개발만이 성장이 아님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성장의 이면에 감춰진 숱한 상처를 되새기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문화가 거래나 교환의 대상이 아니듯 인간의 삶이 개발의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윤대녕 소설가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8) 금지된 사랑의 만남 ‘밀회’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8) 금지된 사랑의 만남 ‘밀회’

    신윤복의 그림 ‘밀회’다. 때는 초승달이 뜬 밤. 서정주는 ‘동천’에서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라고 하였다. 초승달은 우리님의 고운 눈썹이다. 해서 초승달은 ‘우리님’의 사랑을 떠올린다. 이 그림 역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그림의 왼쪽에는 기와집이 꼭 반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기와집에 이어서 담이 있는데, 흙담이 아니고 제대로 깎아서 만든 돌담이다. 그리고 그림의 중앙에서 돌담은 꺾이고 있으니, 아마도 도시의 골목길일 터이다. 또 도시의 골목이라면, 필시 서울의 골목일 것이다. 그림의 위쪽에는 초승달이 떠 있고, 그 아래에는 나무를 그려 담을 슬쩍 지우고 있다. 어쨌거나 초승달이 희미하게 비치는 한밤중이다. 그림 오른쪽에는 남녀가 있다. 이 그림의 핵심은 이 두 남녀다. 먼저 여자를 보자. 여자는 쓰개치마를 쓰고 있지만, 얼굴은 다 보인다. 쓰개치마는 여성이 내외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옷이다. 내외를 위해 여성이 뒤집어쓰는 옷은 다양하지만 장옷이 으뜸이고, 장옷보다 간단한 것이 쓰개치마다(장옷은 신윤복의 또다른 그림 ‘장옷 입은 여인’에도 여실히 묘사돼 있다). 한데 여자는 저고리 깃과 소맷부리에 자주색 회장을 대고 있으니, 삼회장으로 제대로 갖추어 입은 차림이다. 그리고 신발을 보라. 맵시 있는 가죽신이다. 여성은 필시 지체 있는, 부유하게 사는 집안의 여성이다. 오른쪽의 남자를 보자. 넓은 갓을 쓰고 중치막을 입었다. 이 남자는 수염도 나지 않았고 또 얼굴이 앳되며, 갓끈이 아무 장식 없는 헝겊으로 만든 것을 보아, 아직 벼슬하지 않은 양반가의 젊은이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가죽신을 신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 젊은이 역시 체모를 차리는, 산다 하는 양반가의 자제가 분명하다. 한데 초승달 희미하게 비치는 한밤중에 이 두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남자가 왼손을 품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떤 물건을 여자에게 건네기 위해 여자를 불러낸 것인가. 아니면 여자를 불러내어 둘이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인가.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그림만으로는 알 길이 없다. 어딜 가고 있는가. 그림 왼편에 있는 화제를 보자.“달빛 어둑어둑한 밤 삼경/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月沈沈夜三更,兩人心事兩人知) 화제처럼 두 사람의 마음속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삼경이랬다. 삼경은, 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다. 알다시피 조선시대에는 통금이 있어서, 초경(밤 8시)에 인경종을 33번 치면 성문이 닫히고 시내의 통행이 금지된다. 인적은 완전히 끊기고 도성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가 5경(새벽 4시)이 되면, 다시 33번 울리는 인경종에 성문이 열리고 통행이 시작된다. 이 그림의 시각은 3경이니, 통행금지 시간에 해당한다. 통행금지 시간에 사방등을 들고 젊은 두 남녀는 조심스러운 얼굴로 어디를 가고 있는가. 두 사람은 부부인가. 부부라면 무엇이 아쉬워서 통행금지 시간에 길거리에서 만나겠는가. 이 두 사람이 부부가 아닌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위에 인용한 시에 바로 이 그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있다. 화제는 이 시기에 유행한 시조에서 따 왔다. 창외(窓外) 삼경 세우시(細雨時)에 양인심사양인지라 신정(新情)이 미흡한데 하늘이 장차 밝아온다 다시곰 나삼을 부여잡고 훗기약을 묻더라 삼경이라 한밤중이다. 창 밖에는 가랑비가 소리도 없이 내린다. 남자와 여자는 빗소리를 듣는다. 위 시조의 중장에 등장하는 신정(新情)이란 말은 새로 사귄 정이란 뜻이니, 이제 막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단계다. 둘은 만나서 하룻밤 내내 사랑을 나누었다. 이내 날이 밝을 것이다. 남자는 떠나려 하니, 여자가 옷깃을 잡고 뒤에 만날 날을 묻는다. 시조는 원래 노래의 가사다. 이 노래는 워낙 인기가 있었다. 조선후기의 웬만한 시조집에는 모두 실려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보다시피 남녀 간의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을 토로하고 있기에 대중의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 지낸 김명원의 일화 한데 이 시조의 사랑은 어떤 금지된 바를 범하고 있다. 삼경은 위에서 말했다시피 밤 11시에서 다음날 새벽 1시까지다. 밤은 밤이지만, 사람들의 활동이 완전히 멈추는 그런 시간은 아니다. 한데 남자는 날이 밝아올 것을 의식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서고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잡고 다시 만날 날을 묻는다. 둘이 부부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금지된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시조는 원래 한시를 다시 풀어 쓴 것이다. 한시는 다음과 같다. 삼경 깊은 밤 창 밖에 가는 비 내리는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환정(歡情)이 미흡한데 하늘이 밝아오니 다시금 나삼 잡고 뒷날 기약을 묻는다 窓外三更細雨時,兩人心事兩人知 歡情未洽天將曉,更把羅衫問後期 어떤가. 시조는 한시를 온전히 풀어서 다시 쓴 것이다. 시조로 풀어 쓴 사람은 알 길이 없지만, 한시를 쓴 사람은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를 지낸 김명원(1534∼1602)의 작품이다. 이 시를 쓴 김명원의 젊은 시절이 이 시의 내용과 관계가 있다. 김명원은 젊은 시절 어떤 어여쁜 기생을 좋아했다. 이 기생이 권세가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기생은 관청에 매인 계집종이기 때문에, 권력을 쥔 자가 예쁜 기생을 차지하고 다른 여자를 계집종으로 대신 넣는 일이 허다하였다. 김명원은 기생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해서 그 권세가의 집 담을 넘어 기생과 만나 통정을 하던 중, 발각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법은, 자신의 아내나 첩이 다른 남자와 통정하는 것을 현장에서 잡았을 경우 즉시 타살해도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죽일 요량으로 묶어 놓고 한참 분풀이를 하고 있는데, 소식을 들은 김명원의 형 김경원이 달려와 자기 아우의 인물을 보라고 말한다. 요컨대 장차 나라에 크게 쓰일 인물이 아닌가, 제발 젊은이의 앞날을 위해 살려만 달라고. 김경원의 호소가 주효했던지, 주인은 망설이다가 포박을 풀고 술대접까지 해서 보낸다. 김명원은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로 공을 세우고 좌의정까지 지냈으니, 과연 형의 말과 같았다. 김명원의 일화가 이 한시와 관계가 있는지는 미상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담장을 넘고, 남편이 오기 전에 떠나야 하는 처지는 위의 한시와 여합부절로 들어맞는다. ●조선시대 남녀도 금지된 사랑을 했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 화제를 볼 때 이 그림의 여자와 남자는 역시 사회적으로 공인된 그런 사이는 아니다. 여자의 표정은 어딘가 수줍어하면서도 조심스럽다. 남자 역시 나직한 목소리로 무슨 말을 건네고 있다. 남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관계, 금지된 사랑을 이 두 남녀는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랑은 합법적인 것일 수도 있고, 합법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합법적인 것이라면 처녀 총각이 만나는 것이겠지만, 신윤복이 살던 시대에 양반가의 젊은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한밤중에 몰래 만나는 것은, 유가의 도덕이 금지하는 것이었다. 불법적인 것이라면, 그야말로 두 사람 다 결혼한 상태이거나, 한 쪽만 결혼한 상태일 것이다. 어느 쪽도 모두 비윤리적인 것이다. 불법적이건 비윤리적이건 사랑은 사랑이고, 연애는 연애다. 자유연애가 금기시되어 있었을 뿐 조선시대 남녀도 사랑을 하고 연애를 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인간이 지구상에 생겨난 이래 변하지 않았다. 다만 사랑의 방식이 지역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달리 나타날 뿐, 사랑하는 감정과 남녀의 만남 자체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금기를 넘는 사랑의 행위는 얼마든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추관지’ 등의 사료에는 금지된 사랑, 곧 간통의 행위가 허다하게 실려 있다. 혜원은 그 금지된 사랑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절묘하게 잡아냈을 뿐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선묘조제재경수연도’중 조찬소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선묘조제재경수연도’중 조찬소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거(李·1532∼1608)는 지금의 서울시 부시장 격인 한성우윤으로 있던 선조 37년(1604년) 11월12일 72세의 나이로 형조참판에 발탁됩니다. 그러나 사관(史官)은 이 인사가 마뜩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 날짜의 ‘조선왕조실록’에는 ‘이거는 사람됨이 용렬하고 나이도 노쇠한데 101세의 편모가 있으므로 이 벼슬에 제수되었다.’고 편치 않은 심기가 담겨있습니다. 실제로 이거가 참판에 오르는 데는 어머니 채씨의 존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선조는 이거의 노모 이야기를 두해전 승정원으로부터 듣고는 매우 기뻐했다고 하지요.7년동안에 걸친 임진왜란의 참혹함 속에서도 이거의 어머니가 백수(白壽)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나라에 좋은 징조라고 여겼습니다. 선조는 채씨를 기쁘게 하려고 어머니를 잘 모신 효자 아들 이거를 형조참판에 임명한 데 이어 이거의 아버지에게는 이조참판을 추증하여 채씨를 정부인(貞夫人)으로 높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진흥군 강신 등 13명은 ‘어르신을 받드는 이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 봉로계(奉老契)를 만들게 되지요. 이들도 모두 편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특히 강신과 공조판서 윤돈, 여흥군 민중남, 병조참지 윤수민, 장악원 첨정 권형의 어머니는 모두 팔순을 넘은 고령이었습니다. ●모두 5폭… 중신 부모 장수축하연 그려 이들이 채씨 정부인과 자신들의 노모를 모시고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를 열기로 했다는 소식에 선조는 적극적으로 지원하라는 분부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왜란의 뒤끝이라 환갑잔치 말고는 풍악을 금지한다는 하교가 있었지요. 예조는 ‘이들의 모친이 모두 죽음에 임박한 연세로서 날을 받아 함께 모여 한 집에서 즐겁게 노는 것이 크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선조에게 건의하여 풍악을 울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조 38년(1605년) 4월9일 삼청동에 있는 예조의 부속건물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게 되지요.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는 이날 잔치의 모습을 다섯 폭으로 나누어 그린 기록화입니다.‘선조 시대 여러 재상이 참여하여 펼친 경로잔치 그림’쯤으로 풀이할 수 있겠지요.▲손님을 맞는 대문 안팎의 정경에서부터 ▲음식을 만드는 임시 부엌 ▲계원들이 회동하는 광경 ▲대부인에게 예를 올리는 모습 ▲주인공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연회 장면을 담았지요. 이런 종류의 기록화는 대개 참여한 사람의 숫자만큼 그려서 나누어 갖곤 했습니다. 경수연도도 최소한 13권이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런데 과거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록화가 훼손되거나 없어지면 모사본을 만들었습니다. 또 집안의 대소종가에서도 모사하여 갖고 있는 게 보통이었지요. 현재 세 가지 ‘선묘조제재경수연도’가 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전통음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 이 가운데 홍익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 원본 격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고려대박물관이 갖고 있는 것은 18∼19세기, 국립문화재연구소 것은 19세기에 다시 모사한 것이지요.‘남씨 집안에 내려오는 귀중한 문서’라는 뜻을 가진 ‘남씨전가경완(南氏傳家敬翫)’이라는 표제의 두루마리에 담긴 고려대박물관 소장본은 의령 남씨 집안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봉로계의 일원으로 의령 남씨인 당시 형조참판 남이신의 후손이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이 경수연도에서 조찬소(造饌所) 또는 숙설소(熟設所)라고 불리는 야외의 임시 부엌을 묘사한 두번째 그림이 특히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하지요. 일반적으로 풍속화나 기록화에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나 부엌의 모습은 잘 등장하지 않는데, 이 그림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장소와 사람, 접대하는 장면까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엌 장면뿐만 아니라 다른 네 폭의 그림에서도 음식의 종류나 가짓수, 독상차림, 상의 형태나 그 위에 굄새로 담아진 모습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dcsuh@seoul.co.kr
  • 서울 ‘세계역사도시’ 등재 차질 빚나

    숭례문 화재 여파로 서울을 유네스코 ‘세계역사도시’로 등재하려던 문화재청의 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당초 광화문 복원을 2009년 말까지 끝낸 뒤 2010년 서울성곽이 포괄하는 ‘서울역사도시’ 지역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해 201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총회에서 승인받는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세계역사도시는 역사·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특정 도시 혹은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한국의 경우 신라유적이 밀집한 경주역사지구가 역사도시라는 개념에 포괄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그러나 숭례문 화재로 복원공사가 완료될 때까지 세계역사도시 등재신청은 미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엄승용 문화재청 문화유산국장은 “불타버린 숭례문을 복원도 하지 않은 채 세계유산 등재신청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서울의 세계역사도시 등재 신청과 연계해 조선왕조 정궁인 경복궁에 대한 대대적인 복원사업을 벌여왔고, 숙정문 등 청와대 뒤편 북악산 일대를 2006년 완전 개방하기도 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예비중학생 봄방학 잘 활용하면 실력 쑥쑥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예비중학생은 2월 봄방학때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메가스터디 엠베스트(www.mbest.co.kr)의 도움말로 첫 관문인 반배치고사 준비방법과 중학교때 배울 과목별 학습요령을 알아본다.●반배치고사 준비가이드 초등 6학년 교과서를 정독한다. 예전에 정리해 놓은 노트필기를 훑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 다음엔 반편성 배치고사용 문제집을 시험 보듯이 풀어본다. 수학은 반드시 스스로 풀어보고 정확한 답이 나오는지 확인해야 한다. 과학이나 사회는 실험, 도표, 사진 등을 눈여겨 보고 분석해야 한다. 영어는 알파벳 26개 자음과 모음을 정확하게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단어나 표현도 다시 확인한다.●국어… 다양한 책을 통한 독서습관 유지 중학교 1학년생을 위한 권장도서목록을 활용한다든지 단체에서 운영하는 ‘독서교실’을 이용해 독서량을 늘린다. 중학교 국어에서는 시, 희극, 수필 등 다양한 장르를 공부하게 된다. 때문에 교과서를 통해 장르별 특징을 정리해보거나 주인공과 작가의 관계, 서술자 입장 등의 의미를 정리해 보는 것도 좋다.●영어… 교과서를 통한 반복학습 교과서에 나오는 문장을 큰소리로 읽어보고 외울 때까지 반복한다. 회화는 듣기와 대화를 통한 표현을 익히면서 유사 표현도 함께 공부한다. 듣기 자료는 겨울방학 동안 썼던 만화영화나 회화 테이프를 다시 활용한다. 듣기는 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하루도 빠트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수학… 기초가 중요 초등 6학년 과정을 다시 한번 훑어본다. 새 학년이 되었다고 해서 새로운 것만 배우는 게 아니다. 초등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중학교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언젠가 기초실력이 흔들리게 된다. 반 배치고사를 대비할 겸 초등 6학년 과정을 복습해둔다.●과학… 온라인 사이트로 공부를 중등 과학은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파트로 나뉜다. 그림과 연관지어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실험의 목적을 파악하고 현상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봄방학 때는 온라인 사이트를 활용해 중학교에서 해볼 과학실험을 간접 경험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사회·국사… 신문을 통해 시사에 관심을 사회적 이슈나 시사문제에 관심을 갖기 위해 신문을 꾸준히 읽는다. 또 사회과부도나 지도를 자주 보면서 여러 지형의 모습이나 지명에 흥미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국사는 이야기한국사, 조선왕조실록 등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책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면서 연도를 익혀본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책꽂이]

    ●신동(하인리히 창클 등 지음, 이수영 옮김, 프로네시스 펴냄)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파스칼에서부터 언어학자 안네마리 심멜 등 신동에서 천재로 성장한 세계적 지성 25명의 이야기를 담았다.1만 3000원.●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 지음, 박규태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일본문화의 객관적 인식이나 이중성을 고찰한 교양 입문서.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부 박규태 교수의 역주본이다.1만원.●초씨역림(焦氏易林)(초연수 지음, 유방현·고덕현 엮음, 신지평 펴냄) 주역(周易) 상수학(象數學)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초씨역림’을 완역했다. 우주만물의 변화를 상(象)과 수(數)로 파악했다.6만원.●통합적 표현예술치료(샐리 앳킨스 등 지음, 최애나·이병국 옮김, 푸른솔 펴냄) 예술치료는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음악·영화·무용·미술치료 등 현대인의 심신을 달래주는 예술치료 프로그램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떤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예술치료 각 분야를 ‘통합적’ 관점에서 살폈다.2만 2000원.●조선의 방외지사(이수광 지음, 나무처럼 펴냄) 조선왕조실록 같은 정사에는 잘 등장하지 않았던 아전, 의원, 점술가, 무인, 내시, 궁녀 등 조선시대 ‘아웃사이더’ 25명을 소개했다.1만 2000원.●보이지 않는 엔진(데이비드 에번스 등 지음, 최민석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휴대전화나 인터넷 검색엔진의 핵심기술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진화과정과 미래.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란 리눅스, 윈도처럼 다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1만 7000원.●DNA의 진실(정연보 지음, 김영사 펴냄) 기본원리에서 다양한 실제 사례들까지 유전자 감식에 관한 모든 것을 흥미롭게 설명했다. 향후 대두될 유전자 감식의 윤리적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만 3500원.●아직도 찾아야 할 나(에노모토 히로야키 지음, 조헌주 옮김, 부글 펴냄) ‘자기’라는 개념이 어떻게 심리학의 세계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는지 배경을 살펴봤다. 특히 심리학적 성과들 가운데 특히 ‘자기의 심리학’으로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했다.1만 3500원.●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이하영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라디오 방송작가인 지은이가 ‘두 도시 이야기’ ‘콜레라 시대의 사랑’ 등 영화에 등장한 책 23권을 다시 읽으며 삶을 성찰했다.1만 1000원.●인생만화(人生萬花)(박재동 글·그림, 열림원 펴냄)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카툰에세이 91점을 묶었다. 평범한 이웃이야기들이 풋풋하다.1만 2000원.●내 마음의 방은 몇 개인가(손병일 지음, 궁리 펴냄) 저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독서치료, 영화치료를 시도하는 중학교 체육교사. 영화 이야기로 청소년들에게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제안한다.9500원.●견디지 않아도 괜찮아(박원순 등 지음, 샘터 펴냄) 최인호, 안성기, 최태지, 장영희, 김창완, 김주하 등 각계 인사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한마디가 무엇이었는지를 고백했다.9500원.●불편을 위하여(이일훈 지음, 키와채 펴냄)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를 근간으로 하는 설계방법론, 이른바 ‘채 나눔’을 주창하는 건축가 이일훈의 건축작품 사진집.2만 5000원.
  • 中 현대사 재조명

    지난 해 강대국들의 흥망성쇠를 다룬 ‘대국굴기’를 방송한 바 있는 EBS가 그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 역사 다큐멘터리 한 편을 들고 왔다. 제목은 ‘부흥의 길’. 이번엔 ‘대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한 중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재조명한다. 이 6부작 다큐멘터리는 28일부터 새달 4일까지(월∼금 오후 9시50분) 방영된다. ‘부흥의 길’은 1840년 아편 전쟁부터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 전까지 중화민족이 대국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한 과정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다룬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묘사된 중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면면은 중국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 자긍심을 가졌고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갖추게 됐는지 등을 드러낸다. 28일 첫 방송되는 1회 ‘근대화를 향한 움직임’은 제국주의 서구 열강들의 침략과 식민지 확장 정책, 청 왕조의 몰락 등 고난의 역사와 구국 움직임 등을 함께 살펴본다. 제2회 ‘역경 속에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29일)은 신해혁명 실패 이후 공산당이 탄생, 발전, 좌절하는 과정을 거쳐 신 중국이 건설되기까지의 시기인 1912∼1949년을 들여다본다. 당시 중국은 산업화와 제국주의의 미명 아래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고, 이에 따라 마르크스주의가 점점 퍼져나가게 된다. 제3회 ‘중국,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하다’(30일)는 1950년대 사회주의 제도를 확립하고 계획 경제를 통해 놀라운 성과를 얻게 된 신중국의 모습을 살펴본다. 그러나 경험 부족과 성과 위주 정책 때문에 곧 위기에 부딪히고, 중국에 맞는 사회주의 건설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제4회 ‘개혁과 개방의 시작’(31일)은 1976∼1992년의 시기로 사인방 사건 이후 사상적 해방을 꾀하며 개혁 개방을 전개한 역사적 과정들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계획적 상품 경제를 수립하되 경직된 계획 경제 체제를 포기하면서 시장 경제를 향한 걸음을 내딛는다. 제5회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첫 발을 내딛다’(2월1일)는 1989∼2002년 개혁개방 정책이 본격적으로 실행되면서 경제 번영을 맛본 것이 주요 내용이다. 국영기업의 체제 개편, 민영경제의 번성과 발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도 포함된다. 마지막인 제6회 ‘과거를 통해 부흥을 도모하다’(2월4일)에서는 2002년 후진타오 주석 취임 이후의 신세기를 다룬다. 신중국 수립 후 50여년, 개혁 개방 공표 후 30여년 간의 노력 끝에 다시 시작점에 서서 현대화된 국가로서의 재도약을 꿈꾸는 중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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