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왕조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푸른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그물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연결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진출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502
  • ‘다현’ 이후 한국의 새 희망을 쓰다

    ‘다현’ 이후 한국의 새 희망을 쓰다

    쉬쉬하며 책 읽고 토론하는 대학가 풍광은 1980년대 후반을 지나 대망의 1990년대 초반까지도 여전했다. 교문 앞에서 경찰들에게 가방 뒤짐 당하기는 예사였고, 청춘남녀들 역시 애꿎은 경찰서 신세 지기 싫거든 시위가 있는 날 서울 종로, 을지로 인근의 배회는 피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이슈 다원화… 새역사 인식 정립할 때 그 시절 대학에 갓 들어온 이들이라면 통과의례처럼, 꼭 한 번쯤 읽어야 했던 책이 바로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였다. 왕조사관 또는 식민사관에 근거해 쓰여진 역사 교과서와 달리 ‘역사의 주인은 민중’이라는 일관된 관점으로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명암을 새로 들여다보게 했다. ‘다현’으로 통하던 그 책은 그렇게 수많은 젊은 청춘들에게 고등학교 때까지는 접하지 못했던 ‘제2의 역사 교과서’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1988년 처음 나온 뒤 숱하게 팔려나간 스테디셀러다. 꼬박 20년이 넘게 흘렀다. 세상은 바뀌었다. 민주주의는 비틀거릴지언정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제는 굳이 그런 ‘불온한 책’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꽤 균형잡힌 시각으로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그때, 그 ‘다현’을 쓴 저자는 다시 한번 한국의 현대사를 적어내려갔다. 1990년대 초반 이른바 서태지로 상징되는 ‘X세대’를 시작으로 최근 촛불시위에 등장한 중고등학생들까지 세계 무대에서 더이상 주눅들거나 눈치보지 않는 새로운 역사의 주체들이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새로운 눈으로 역사를 복기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또한 과거 군부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또는 노동 해방 등 단선적으로 환원되곤 했던 사회의 핵심 모순이 불과 10년 남짓 사이에 여성, 이주노동자 등 정치사회적 소수자 문제와 함께 크고 작은 경제적 이슈로 다원화됐다는 점 역시 새로운 역사 인식의 정립을 필요로 한 배경이 됐다. ‘미래를 여는 한국인사’(박세길 지음, 시대의창 펴냄)는 세상이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성찰을 나누는 것만이 새로운 내일을 약속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보수와 진보로 나눠 도식적으로 접근하는 역사 인식을 거부한다. 한국 현대사의 발전을 지탱해온 두 축이 서로에 대한 거부나 외면이 아닌, 반쪽씩의 장점을 자양분으로 삼아야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다양성의 존중과 연대의 가치를 갖고 살아갈 수 있음을 얘기한다.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 민주화운동 시기 등으로 나눠 통사적으로 접근했던 ‘다현’과 달리 ‘…한국인사’는 ‘정치사회편’, ‘경제편’ 분야별 두 권으로 나눴다. 그리고 저자가 학교,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현장을 다니며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주로 접했던 구체적 질문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재구성한다. ‘정치사회편’의 출발 지점은 여전히 1945년 분단이다. ‘왜 선배들은 분단을 막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1961년 5·16, 1980년 5·18, 1987년 6월 항쟁, 2000년 6·15,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2002년 여중생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 등 역사의 주요 길목을 짚어가며 신세대들이 품음직한 질문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풀어간다. ‘경제편’은 기존의 박정희식 개발독재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부정의 시선을 배격한다. 대신 한국의 경제건설 역사의 명암(明暗)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며 그것의 불가피성과 이뤄놓은 성과에도 주목한다. ●“승자독식 넘어 공존의 패러다임 필요” 다만 그 과정에서 희생양이 됐던 노동자, 농민의 아픔 역시 외면하지 않는다. 편년체로 시대순 나열이 아닌, 고민해볼 주제를 정해가며 국가주도의 고속성장, 재벌의 형성, 정보기술(IT) 강국의 허실, 부동산 열풍, 외환위기, 신자유주의의 확산, 새로운 대안에 대한 고민까지 경제를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짚어낸다. 저자 박세길씨는 서문과 맺음말을 통해 “과거처럼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엄중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국제무대에서 뜨고 싶어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고 그에 대해 적절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할 것”이라면서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공존의 패러다임을 기초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역사 인식의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인사’는 우리 민족과 인류의 미래 주역이 될 생기발랄한 신세대에게 바치는 역사 인식의 헌정(獻程)이라고 볼 수 있다. 각권 1만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이목희칼럼] 애국심만으론 외규장각 해법 없다

    [이목희칼럼] 애국심만으론 외규장각 해법 없다

    올 가을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는 외규장각 문제로도 주목받는 행사다. G20에 즈음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외규장각 도서와 관련한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 때문이다. 남의 국보급 문화재를 약탈해 간 프랑스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둘러싸고 갈팡질팡했던 한국 정부를 두둔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국민들이 사실은 알아야 한다. 외규장각 문제는 대단히 민감한 현안이다. 맹목적인 애국심을 앞세우면 이번에도 기대가 실현되기 어렵다. 일반에 널리 퍼진 오해는 1993년 9월 한·프랑스 정상회담에 관한 것이다. 많은 이들은 프랑스가 TGV를 한국에 파는 특혜만 챙기고 외규장각 반환 약속을 팽개쳤다고 믿고 있다. 당시 정서상 외규장각을 돌려준다고 하면 TGV 판매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서일 뿐 공식계약서 어디에도 그런 합의는 없었다. 특히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그때 ‘등가교환-영구임대’를 약속했을 뿐이었다. ‘등가교환-영구임대’가 치적을 앞세운 한국 정부에 의해 ‘반환’ 약속으로 부풀려지면서 일이 꼬였다. ‘등가교환’과 ‘완전반환’의 인식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외규장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2001년 한상진 전 서울대 교수가 프랑스측 민간대표 자크 살루아와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프랑스가 보유한 외규장각 유일본을 우리의 복본과 맞바꾸는 방식에 의견을 모았다. ‘교류와 대여’ 원칙에 비추면 나름의 합리성을 가진 안이었다. 그럼에도 국내 여론은 들끓었다. “빼앗긴 문화재를 찾아오는데, 왜 다른 물건을 내줘야 하느냐.”는 비난이었다. 한상진·살루아 합의는 그렇게 스러져 갔다. 뜨거운 맛을 본 정부는 이후 몇 번의 헛발질을 했다. 프랑스와 국내 여론의 틈새전략으로 택한 게 디지털 복사본이었다.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유일본을 복사해 국내로 가져오는 방안이다. 이 또한 각계의 반발에 부딪혔다. 외규장각 반환협상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이의제기였다. 지난해부터는 외규장각을 장기 임대하는 대신 우리 문화재를 프랑스에서 순회전시하는 방안이 집중거론됐다. 이번에도 ‘임대’라는 용어에 비판의견이 쏟아졌다. 올 들어 ‘장기임대’를 ‘영구대여’라는 말로 바꾸면서 분위기가 조금은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시민단체인 문화연대는 프랑스 법원을 상대로 외규장각 반환소송을 벌이고 있다. 항소심까지 가면서 조건 없는 소유권 반환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임대’, ‘대여’ 등의 포장을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완전반환론자들은 리비아에 약탈 문화재를 돌려준 이탈리아 사례를 든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돌려받을 게 더 많은 나라다. 프랑스와는 다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자.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에게 ‘오타니 컬렉션’을 돌려달라면 우리가 선뜻 응하겠는가. 중앙아 국가로서는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유한 ‘오타니 컬렉션’은 약탈 문화재다. 2006년 서울대 규장각이 일본으로부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을 돌려받았다. 그때도 일본은 ‘반환’이라는 용어를 기피했다. ‘기증’이라는 용어를 쓰길 고집했다. 자비를 들여 힘든 투쟁을 벌이는 문화연대에 존경심을 보낸다. 완전반환을 주장하는 이들의 충정을 평가해야 한다. 그런 전제를 깔고 이제는 좀 유연해지자. 한국의 국력을 의식한 프랑스가 ‘대여’ 형식으로라도 돌려준다고 하면 받아들이자. 한국 문화를 프랑스에 알리는 차원에서 우리의 문화재를 파리에서 순회전시할 수 있지 않은가. 얼마 전 한국의 ‘영구대여’ 요청을 공식적으로 받은 프랑스가 부처 간 의견을 조율 중이라고 한다. 사르코지가 오는 11월 방한해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주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한국민은 형식에서 유연성을 수용하는 게 바람직한 해법이다. 아름다운 외규장각 도서를 서울에서 볼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논설실장 mhlee@seoul.co.kr
  • [씨줄날줄]세종대로/노주석 논설위원

    성군 세종대왕의 정식 칭호는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대왕이다. 세종은 묘호(廟號)이고, 장헌은 명나라 황제가 내려준 시호(諡號)이다. 영문예무는 사후 신하들이 올린 존호(尊號)이고, 인성명효는 아들 문종이 바친 시호이다. 세종이라는 호칭은 묘호를 지칭한다. 나머지 시호와 존호는 대왕의 업적이나 능력, 인성을 나타낸다. 묘호란 임금이 죽은 뒤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올리는 존호이다. 박영규의 ‘조선의 왕실과 외척’(김영사)에 따르면 묘호는 조(祖)와 종(宗) 두 가지 중 하나를 쓴다. ‘유공왈조(有功曰祖) 유덕왈종(有德曰宗)’이나 ‘입승왈조(入承曰祖) 계승왈종(繼承曰宗)’이 원칙이다. 쉽게 설명하면 왕조를 세우거나 그에 비견되는 업적을 세웠다면 조를, 나머지엔 종을 붙인다고 보면 된다. 고려는 태조(왕건)가 유일하다. 시호법의 원조인 중국에서도 개국시조가 아닌 조는 원의 세조(쿠빌라이)와 명의 성조, 청의 세조와 성조 등 4명 뿐이다. 조선은 좀 복잡하다.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등 6명이 있다. 신명호의 ‘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생활’(돌베개)을 보면 세조 사후 신하들이 묘호를 신종, 성종 등으로 올리자 뒤를 이은 아들 예종이 “대행 마마께서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공을 알지 못하는가?”라면서 몇 번을 되물린 끝에 힘들게 고쳤다. 선조는 임진왜란 승전의 공이, 인조는 광해군을 폐위시켜 유교이념을 지켰고, 순조는 서학 침투를 막았고, 영조와 정조는 당쟁을 막은 업적을 인정받았다. 세조와 인조는 처음부터 조를 받았지만, 나머지는 후대에 변경됐다. 본래 선조는 선종, 영조는 영종, 정조는 정종, 순조는 순종이었다. 예외 없이 종을 조로 바꿨다.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인조는 종을 받고 싶었지만, 신하들의 생각은 달랐다. 세종대왕도 조를 받지 못했다. 영토를 넓히고, 한글을 창제한 업적으로 따지자면 태조에 못지않은데도 말이다. 서울 광화문 입구에서 서울역 앞을 잇는 2200m 길이의 국가상징 대로에 ‘세종대로’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세종대왕을 기리는 작명이다. 지금까지는 세종로, 태평로로 나뉘었지만 한 길로 통일된다. 도로명 통일에 머물러선 안 된다. 파리의 샹젤리제처럼,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처럼 인간과 역사, 문화가 살아 숨쉬는 중심거리가 조성돼야 한다. 국가상징 대로의 위상에 어울리는 보행자 네트워크 구축과 상응하는 주변 개발이 필요하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주요 기록물사진전 26일부터

    국가기록원은 26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국제기록문화전시회 기념 주요 기록물 사진전을 개최한다. 이번 사진전은 6월1일 개최되는 ‘2010국제기록문화전시회’를 앞두고 주요 전시기록물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다음달 2일까지는 청계천 광교갤러리에서 1차 전시회가 열린다. 전시에 적합한 환경이라 24시간 내내 기록물들을 만날 수 있다. 2차 전시회는 다음달 5일부터 9일까지 종로3가역 환승구간에서 열린다.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이후 10~12일 같은 시간에 서울광장에서 3차 전시회가 개최된다. 팔만대장경 외에도 조선왕조 실록, 동의보감 등 국보급 기록물과 마그나카르타, 미국독립선언서, 뤼미에르 필름 등 해외의 굵직한 기록물 2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남상헌기자 kize@seoul.co.kr
  • 조선 선비들의 눈으로 본 가깝고도 먼 나라 ‘몽골’

    조선은 몽골과 두드러진 인연이 눈에 쉬 띄지 않는다. 명(明)대에는 여진족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으며 숭명주의(崇明主義)가 승하던 시절이었고, 청(淸)대에 와서도 여진족과 몽골족의 공동정권과 비슷했음에도 한족(漢族) 문화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몽골과 교류 관계라고 함은 그저 대부분 고려의 몫에 가까웠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몽골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당대 지식인들은 이미 몽골에 수 차례 다녀오고, 몽골에 대한 구체적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조선과 몽골’(박원길 지음, 소나무 펴냄)은 조선 선비들의 눈에 비친 몽골의 실체와 함께, 조·몽 관계를 맺어나간 인연과 기록이 각별했음을 보여준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몽골 관계 기록만 무려 604건에 이를 정도다. 기록의 물량 면에서 오히려 고려 시대를 압도한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몽골사학을 전공한 저자 박원길 칭기스칸 연구센터 소장은 이 기록들을 꼼꼼히 분석하며 몽골의 역사와 지리, 정치외교 관계 등을 집대성하고 있다. 또한 최덕중, 박지원, 서호수의 여행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몽 관계를 제안하고 있다. 18세기 초 사절단의 일원으로 북경을 방문한 뒤 ‘연행록’을 남긴 최덕중은 ‘조·몽 군사동맹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예 주자학자이자 조선 후기 실학자인 박지원 역시 ‘열하일기’를 통해 ‘청나라는 몽골과 티베트를 분열하여 견제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열하가 흔들리면 몽골이 맨 처음 준동할 것이며 미래의 주역은 몽골’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박 소장은 정조 시대의 주자학자 서호수(1736~1799)를 ‘몽골 전문가’로서 재발견한 것에 특히 주목한다. 그가 남긴 ‘연행기’에 드러난 몽골에 대한 객관적 관찰 기록은 후대 1920년대에 쓰인 일본 학자들의 몽골 보고서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20세기에나 가능한 기록이 주자학을 숭상하던 18세기 조선에서 나왔다는 점은 놀랄만하다는 설명이다. 3만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조선시대 왕관 日유출 확인

    조선시대 왕관 日유출 확인

    조선시대 임금이 사용했던 왕관과 투구, 갑옷이 일본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왕조의궤환수위원회(이하 환수위) 사무처장 혜문 스님은 제작연도가 19세기로 추정되는 익선관(翼善冠), 용봉문(龍鳳紋) 투구 및 갑옷을 일본 도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환수위는 일본 내 한국 문화재 실태 확인을 위해 지난 6~10일 일본을 찾았다. 도쿄박물관을 방문한 일행은 박물관 관계자로부터 조선시대 익선관과 투구, 갑옷의 소장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 투구와 갑옷은 권력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 여의주가 화려하게 장식돼 있어 임금이 의전 때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익선관은 임금이 평상시 착용하던 모자다. 투구와 갑옷은 국내에서 아직 발견된 예가 없다. 환수위는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朝鮮王室儀軌)’도 5종이 더 있음을 확인했다. 지금까지는 76종 158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환수위가 일본 공산당 가사이 아키라 의원에게서 입수한 ‘조선왕실의궤 소장 일람’에 따르면 총 81종 167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 확인된 의궤 5종은 1903년 고종이 순비 엄씨를 황귀비로 봉하는 의식을 기록한 ‘진봉황귀비의궤’를 비롯해 ‘책봉의궤’ 2종, ‘빈전혼전도감도청의궤’, ‘화성성역의궤’다. 환수위는 와세다대 연극박물관이 갖고 있는 양주별산대 가면, 도쿄박물관에 있는 금산사 향로 등도 확인했다. 혜문 스님은 “한 나라 왕의 투구와 갑옷, 왕실 문서를 이렇게 빼앗겼다는 것은 망국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심히 반성해야 할 문제”라면서 “국회 차원의 반환위원회를 시급히 구성하고 일본 측 의원 등과 교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사극 최다출연 조선왕은 숙종

    사극 최다출연 조선왕은 숙종

    1956년 첫 TV 사극인 MBC의 ‘숙종시대 여인열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장편 드라마 사극은 93편에 이른다. 기록이 비교적 많은 조선시대 사극이 가장 많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극 가운데 최다 출연한 왕은 누굴까. ●정조·고종 8편·세조·광해군 5편 서울신문이 13일 1956년부터 2010년까지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한 66편의 장편 사극을 분석한 결과, 숙종이 총 11편에 나와 출연횟수가 가장 많았다. 그 뒤는 정조와 고종이 각각 8편, 세조와 광해군이 각각 5편이었다. 한 사극에 여러 왕이 출연한 경우는 주인공 1명으로 집계했다. 가령 1994년 KBS의 ‘한명회’는 세종부터 중종까지 8명의 왕이 출연했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이 핵심인 까닭에 세조만을 헤아렸다. 1983년 시작된 MBC의 역사 시리즈 ‘조선왕조 500년’은 10편으로 나눠 분석했다. 출연횟수가 전무한 비운(?)의 왕은 현종으로 나타났다. 정종과 단종, 예종, 인종 등이 3년 안팎의 짧은 재위기간에도 짧게나마 조명을 받은 것과 대조된다. 정종은 태조의 조선 건국과 태종의 ‘왕자의 난’을 주제로 삼은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나왔으며 단종 역시 세조의 왕위 찬탈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 단골 출연했다. 하지만 15년이나 재위한 현종은 조선시대 가장 치열한 붕당 싸움으로 꼽히는 ‘예송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음에도 사극의 주요 인물로 극화된 적이 없다. 예송 논쟁은 유교 경전의 해석을 둘러싼 학술 논쟁이기 때문에 시청자 흥미를 끌기엔 극적 매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숙종의 출연횟수가 가장 많은 이유는 단연 ‘장희빈’ 덕분이다. ‘궁중 암투’와 ‘악녀의 비극적 최후’란 소재는 시청자의 호기심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궁중암투·요부캐릭터 대중관심 끌어 사극의 장희빈 사랑은 한국의 정치상황과도 연관이 깊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통제가 강했던 1950~70년대에는 정치성을 배제시킨 드라마를 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장희빈은 정치적이지 않으면서도 ‘요부’ 캐릭터 덕분에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최적의 소재였다. 실제 1950~70년대에 제작된 8편의 사극 가운데 6편이 장희빈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1956년 ‘숙종시대 여인열전’, 1963년 TBC(현 KBS2) ‘인현왕후전’, 1975년 MBC ‘요녀 장희빈’ 등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2002년 KBS의 ‘장희빈’과 현재 방영 중인 MBC의 ‘동이’ 두 편 뿐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1996년 KBS의 ‘용의 눈물’ 이후 정치적 해석이 가능해지면서 장희빈 중심의 사극이 정치적 논쟁 거리가 있는 사극으로 진화되는 양상”이라면서 “여권신장과 더불어 남성의 소모품에 불과했던 장희빈의 여성상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 것도 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동이’의 장희빈만 하더라도 정치영역에서 입지가 강화된 여성상으로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지연 민우회 모니터분과장은 “왕의 환심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구축하는 인물 설정은 주체적 여성상과 거리가 있다.”면서 “아무리 재해석을 하더라도 사극 속 장희빈이란 인물이 가진 태생적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기록문화 홍보대사 오정해씨

    국악인 오정해(39)씨가 기록문화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국가기록원은 12일 서울 세종로정부중앙청사에서 기록문화주간(12~18일)을 선포하고 오씨를 홍보대사로 위촉했다고 밝혔다. 오씨는 오는 6월1일부터 6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0 국제기록문화 전시회’ 홍보활동을 맡게 된다. 이번 전시회는 팔만대장경, 구텐베르크 성경을 비롯해 조선왕조실록, 마그나카르타, 안데르센 필사본 등 국내외 진귀한 기록물 1000여점이 한자리에 모여 지구촌 국보급 기록축제가 될 전망이다. 입장료는 전액 무료다. 오씨는 “우리나라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기록문화전시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홍보대사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남상헌기자 oscal@seoul.co.kr
  • 만화가 김태권 ‘漢나라’ 다룬 까닭은

    해박한 지식과 재기발랄한 풍자를 담은 ‘십자군 이야기’로 유명한 만화가 김태권(36)이 한나라 400년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김태권의 한(漢)나라 이야기’(비아북 펴냄)다. ‘십자군’은 중세 상황에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을 빗대 인기를 끌었고, 김태권은 ‘조선왕조실록’의 박시백과 함께 지식교양 만화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지식교양 만화는 어린이 대상 학습 만화와 달리 성인 독자층을 겨냥한다. 그런데 김태권은 왜 21세기 한반도에서 2000년도 더 묵은 중국의 한나라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오래 전부터 한나라를 다루고 싶었다는 그는 머리말에서 동아시아를 이해하는 열쇠가 한나라에 있다고 강조한다. “로마가 서양 역사에서 하나의 전범(典範)이듯, 한나라 역시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그러했다. 로마를 알면 서양 사회의 관습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한나라를 아는 것 역시 오늘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불현듯 깨닫게 되는 사실 한 가지. 우리가 한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로마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 진시황과 이사를 다룬 1권, 항우와 유방을 조명한 2권이 동시에 나왔다. 앞으로 여태후와 두황후, 문경지치, 한무제, 조조와 유비 이야기 등이 10권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김태권이 이번 작업에서 견지하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초한쟁패를 항우와 유방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민초들이 들불같이 각성한 결과로 보는 등 영웅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고 민담과 설화에 근거한 판타지적인 요소를 되도록 줄이고 객관적·보편적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십자군’에서는 만담식 개그 요소가 빛을 발했으나, ‘한나라’에서는 유쾌함이 상당히 줄었다. 글 읽는 재미에 비해 그림 보는 재미가 떨어지는 아쉬움도 있다. 그림체 탓인지 등장인물들이 서양 캐릭터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조선 ‘모란도 10폭 병풍’ 90년만의 외출

    조선 ‘모란도 10폭 병풍’ 90년만의 외출

    주요 박물관들이 봄맞이 새단장을 마쳤다. 80년 만에 외출하는 조선시대 모란 병풍 등 가족단위 관람객을 ‘유혹’하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그저 유물을 걸어 놓는 정적인 전시에서 탈피해 체험공간을 따로 마련하는 등 살아 있는 공간으로서의 박물관 매력도 물씬 풍기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봄과 어울리는 모란도를 대거 선보인다. 6일부터 6월20일까지 회화실에서 열리는 특별공개전 ‘방 안 가득 꽃향기’에서는 조선시대의 모란도 10점이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다. 하이라이트는 박물관이 1921년 입수해 약 90년 만에 공개하는 ‘모란도 10폭 병풍’. 18세기 후반 작품으로 제작 당시의 병풍 틀과 비단 바탕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회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가로 580㎝, 세로 194㎝의 대형으로, 10폭이 모두 이어진 바탕에 무성한 모란꽃이 나무, 바위 등과 어울려 피어 있는 모습이다. 조선 후기 화가 심사정(1707~1769), 강세황(1713~1791)이 문인의 취향을 반영해 그린 모란도, 조선 말기 허련(1809~1893)이 채색 없이 먹으로만 그린 모란도 등도 선보인다. 아시아관의 인도·동남아시아실도 새롭게 단장했다. 지금까지는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국립박물관 소장 유물을 주로 전시했으나, 이번에 중앙박물관 자체 소장품으로 전시를 개편했다. 간다라 지역의 초기 불교 미술, 인도 팔라 왕조(8~12세기)의 힌두교·불교 조각 등 이국적인 작품 84점이 7가지 주제로 나눠 전시관을 채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평생 봇짐과 등짐을 지고 길 위를 떠돌던 ‘장돌뱅이’ 부보상(負褓商)의 삶을 준비했다. 오는 26일까지 열리는 ‘부보상, 다시 길을 나서다’ 특별전에는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 등 충남에 현존하는 부보상 단체들이 내놓은 부보상 관련 자료 250여건이 출품된다. 부보상들의 고된 여정과 함께 이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장시(場市)의 흥겨운 분위기도 재현한다. 이들이 사용한 장사도구, 운반용 지게, 휴대용 이정표, 부보상 조직 규율 문서 등을 선보여 어린이들의 교육 장터로도 활용할 만하다. 박물관 앞에 마련된 장터에서는 물물교환 거래도 체험할 수 있다. 온양민속박물관(6월15일~8월22일)과 충남역사박물관(9월15일~10월17일)에서도 순회전시를 갖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오만한 일본 주권침해 도발 왜곡교과서 검정 취소하라”

    일본이 초등학교의 모든 사회과 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게 한 데 대해 적극적·공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는 2일 본회의를 열고 일본 정부에 독도 영유권을 표기한 교과서의 검정승인 취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승인은 오만한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주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도발행위”라면서 “이는 한·일 양국 미래세대의 진취적 동반자 관계 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앞서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에 따른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은 우리 교과서에도 일본의 침탈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도 日약탈 목록 싣자”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은 “우리 교과서에도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명확히 표기해 우리 학생들이 약탈문화재 목록 등을 주지해서 일본 학생들을 만나면 토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같은 당 권영진 의원은 “일본이 시도때도 없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하는 것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자는 것인데, 같은 논리라면 대마도도 우리땅 아니냐.”고 물었다.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대마도 관료들은 조선왕조의 관직을 받고 해마다 부산 동래왜관에 와서 관복을 입고 조선 임금에게 절을 하게 되어 있었다.”면서 “우리 고지도에는 제주도와 대마도가 양쪽 발처럼 그려져 있는데, 이는 대마도가 우리 영역 안에 들어있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지도 수집가 인센티브 주자” 외교적 차원의 반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의 일본 영유권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요미우리 보도에 대해 정부가 사실이 아니라고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통령에게 건의해 일본 총리에게 강력 항의하고 시정을 촉구하게 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교과부 이주호 차관은 “총리실·외교통상부와 협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예산지원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2010년도 예산안 심사 때 동북아역사재단의 독도 및 동해표기 오류 시정사업 예산을 2억원 증액할 것을 요구해 교과위에서 의결됐지만, 최종 예산 심의과정에서 모두 삭감됐다.”면서 “이러고서 강력한 대처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명하는 고지도 등 각종 자료를 모으는 민간 수집가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독파라치’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故 장국영 7주기,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

    故 장국영 7주기,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

    故 최진영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비통함을 감추기도 전에 영화팬들은 또 한 명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7년 전 만우절,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홍콩 배우 장국영. 당시 장국영이 투숙 중이던 호텔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은 만우절 농담으로 치부될 정도로 큰 충격을 주었다. 아직도 어딘가에서 흰 민소매에 사각 트렁크 차림으로 맘보춤을 추고 있을 것 같은 그를 다시 불러내 본다. ◆ 고독한 아비, ‘아비정전’생모를 찾아 먼 길을 떠나는 아비(장국영 분)는 불안함과 약간의 설렘으로 혼란스럽다.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만들어진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은 바로 ‘혼란’ 그 자체였고 장국영만큼 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없었다. 맘보춤을 추는 장국영의 모습은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몸짓의 하나였으며 이 역할은 그에게 더없이 어울렸다. 장국영은 이후에도 왕감위 감독의 ‘동사서독’, ‘해피투게더’ 등에 출연하며 고독과 불안, 그로인한 페이소스를 강렬하게 드러냈다. ◆ 풋풋한 송자걸, ‘영웅본색’이 영화를 본 남자들 중에 성냥개비 한 번 물어보지 않은 사람 드물었다. 또한 말도 안 되는 중국어로 이 영화의 주제가를 따라 불러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었다. 오우삼 감독의 홍콩느와르 영화 중 ‘첩혈쌍웅’과 함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영화는 남자들의 영화이자, 주윤발의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기억하는 여성 팬들이라면 장국영의 풋풋한 모습과 특유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연기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사랑스러운 영채신, ‘천녀유혼’ 장국영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안겨준 대표적인 영화. 당대의 최고 스타였던 왕조현과의 조우는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이 영화에서도 장국영은 허약하고 겁이 많은 영채신 역할이다. 하지만 영채신이 소천(왕조현 분)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장국영이 여성 팬들로부터 사랑을 얻을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이 유약함이 크게 한 몫했다. 그는 근육질 몸매에 쌍권총을 난사하는 홍콩의 남자배우들 사이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낸 배우였다. 이 영화는 영화예매사이트 맥스무비에서 실시한 ‘다시보고 싶은 장국영 영화’ 설문에서 1위로 뽑히기도 했다. 사진=각 영화 포스터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장국영 투신자살 7주기, 연예인 자살 재차 ‘주목’

    장국영 투신자살 7주기, 연예인 자살 재차 ‘주목’

    2003년 4월 1일 영화배우 장국영이 자살했다. 장국영은 홍콩의 한 호텔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이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전 세계 팬들은 ‘4월 1일 만우절 유언비어’라며 믿지 않았다. 하지만 곧 장국영의 자살이 사실로 밝혀졌고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장국영의 팬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장국영은 1956년 9월 12일 홍콩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영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뒤 77년 홍콩 ATV가 주최한 ‘아시아 송 콘테스트’에서 2위로 입상하며 연예계에 입문했다. 1979년 영화 ‘열화청춘’이 첫 스크린 데뷔작이며 가수 활동도 왕성하게 했다. 홍콩 TVB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주제곡을 함께 불렀고, 85년엔 동경가요제에 홍콩 대표로 참가도 했다. 장국영이 ‘홍콩 느와르’라는 수식어를 얻을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영화 ‘영웅본색’. 이어 87년 왕조현과의 ‘천녀유혼’에 이어 ‘영웅본색2’ 등을 히트시켰으며 ‘백발 마녀전’, ‘동사서독’을 통해 스타의 입지를 더욱 굳혔다. 이후 장국영은 세계적인 거장 첸 카이거감독이 연출한 93년 ‘패왕별희’에선 경극배우인 여장남자로 나와 대스타로 부각됐다. 또 왕가위 감독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날아가 ‘해피투게더’를 완성했으며 왕가위 감독은 이 영화로 97년 칸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한편 국내에서도 과거 안재환, 유니, 장자연, 최진실부터 최근 최진영의 죽음까지 연예인들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누나 최진실을 보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포기한 최진영의 발인식은 오늘 오전 8시 비가 내리는 가운데 거행됐다. 사진 = 미디오션 제공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DMZ 주인이 한반도 지배한다”

    “풀잎을 흔들며 처연히 울리는 바람과 맑은 하늘 구름 곁을 스치듯 나는 새, 숲속을 자유로이 오가는 고라니, 멧돼지들이 비무장지대(DMZ)의 주인이겠죠. DMZ의 진짜 주인은 평화여야 합니다.” ●차지하는 세력마다 역사의 중심에 ‘한국사의 중심 DMZ’(파란하늘 펴냄)를 쓴 최현진(39)씨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된 국가로 세계에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DMZ(Demilitarized Zone)의 중요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구려 광개토왕을 시작으로 조선왕조까지 이어지는 긴 역사 속에서 DMZ를 차지한 이가 한반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주인이 된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DMZ는 말 그대로 비무장지대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고 있는 휴전선으로부터 남북2㎞씩만큼 248㎞ 길이로 펼쳐져있는 곳이다. 한국 전쟁이 멈춘 이후 군인도, 무기도 둘 수 없는, 인간의 발길이 끊긴 공간이다. 엄혹한 분단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역설적으로 풍성하게 보전된 생태계는 평화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은 누천년의 역사 동안 한반도의 주인을 결정짓는 중심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고구려 광개토왕은 대륙을 누비면서 한강 지역까지 지배하며 한반도의 실질적인 주인을 자처했고, 그 뒤를 이은 장수왕이 한반도의 주인 역할을 했다. 이후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 태봉국 궁예의 꿈을 이어받은 왕건은 통일 국가를 건설했다. 서울에 도읍을 정한 조선은 말할 것도 없음이다. 조선 지배 세력의 중심부에 있던 서인 노론 세력의 지리적 기반 역시 파주DMZ 주변 임진강이었다. ●DMZ서 죽은 인물은 ‘신화’ 돼 한반도의 실질적 지배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DMZ 지역에서 죽은 이들은 민간 신앙의 주인공이 돼 신화로서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다. 역사와는 별개로 철원에서 죽은 궁예는 미륵으로 구전된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개성에서 살다가 죽어 연천 임진강가에 묻혔다. 그리고 인제 민간신앙 속에서 김부대왕으로 부활했다. 최영 장군 또한 개성 남쪽 DMZ 주변 덕물산에 묻힌 뒤 널리 알려졌다시피 무속신앙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그가 DMZ를 통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통일된 한반도의 필요성을 역사 속에서 배웠으면 합니다. 지금 미국과 북한이 관리하고 있는 한반도 역사의 중심지 DMZ를 남북 한민족이 스스로 우리의 것으로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 속 남북의 발전이 필요하겠죠.” 강원도 양구에서 군대 생활을 하며 DMZ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1997년 중·고등학생 DMZ 현장체험 학습 강사로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한 달이면 서너 차례 이상 DMZ를 찾는다. 지금껏 쓴 책도 ‘안녕 DMZ’, ‘DMZ는 살아있다’ 등 모두 DMZ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는 “잦을 때는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방문하기도 했으니 아마 총 횟수가 500차례는 훌쩍 넘을 것”이라면서 “평화와 통일, 생태의 가치뿐 아니라 우리 한반도의 역사를 공부하는 데도 이만한 곳이 없다.”고 DMZ의 미덕을 설명한다. 1만 3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천대받던 ‘노비’들 추노질로 300억 초대박

    천대받던 ‘노비’들 추노질로 300억 초대박

    잘 만든 노비 사극의 인기는 대작 드라마 혹은 양반 사극 안 부러웠다. 평균 시청률 30%를 웃돌며 지난 25일 막 내린 ‘추노’는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됐다. ‘추노’가 처음부터 기대를 받았던 건 아니다. ‘비(非)왕조 사극은 망한다.’는 방송가의 법칙에 ‘추노’는 기대보다는 우려를 낳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뚜껑을 열어본 ‘추노’는 탄탄한 구성과 박진감 넘치는 짜임새로 시청률을 유지, 또 하나의 신화를 낳았다. ‘추노’가 우려를 깨고 거둬들인 경제적 효과의 규모는 어느정도일까. 가장 큰 수익을 올린 건 광고 매출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추노’의 회상 평균 광고료는 8억 원선. 15회 광고 매출은 10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를 돌파, 16회부터 순익행진을 시작했다. ‘추노’는 총 24회동안 192억원 광고 매출을 올렸다. 여기에 재방송 광고 분까지 더해지면 공중파 광고 매출만 250여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리스’와 비교해볼 때 더욱 대비된다. 20부작 ‘아이리스’는 광고매출을 총 160억원 올렸으나 회당 3억원을 호가하는 주연배우들의 출연료 등 기대만큼 큰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광고 단가 자체가 높았던 점도 매출을 올리는데 일조했다. 지난해 최대 히트작 ‘꽃보다 남자’의 광고 단가 1000만원선이었으나 1월 ‘추노’는 1500만원선으로 꽤 높았다. ‘추노’는 끝이 났지만 해외수출로 인한 수익도 기대된다. 일본과 태국 등에 선 수출된 ‘추노’의 해외 판매액은 32억원 가량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인 한국 드라마 소비국인 대만, 홍콩 등의 구매가 이어질 경우 판매액은 훌쩍 증가한다. 드라마 관계자는 “이병헌, 소지섭, 이영애 등 한류스타가 단 한명도 출연하지 않은 ‘추노’가 드라마의 질로만 이뤄낸 성과라 더욱 뜻깊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250억원에 이르는 광고매출과 30억원이 넘는 해외 판매액, 드라마 종영 뒤에도 이어지는 부가가치 등을 포함해 ‘추노’의 총 매출은 최소 3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추노’에 대한 잠재적 경제 효과 역시 막대하다. ‘추노’의 수출이 침체에 빠진 한류드라마 부활에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카리스마 연기를 펼친 장혁, 오지호 등 주연 배우들의 개런티는 월등하게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며 김하은(설하 역), 하시은(선영), 민지아(초복) 등 이 드라마가 낳은 명품 조연 등은 ‘추노’의 필포그래피를 발판 삼아 다양한 작품과 CF 등에 캐스팅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설] 日왕실에 묻힌 나라의 魂 되찾아야 한다

    일본 왕실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조선왕실 의궤 등 조선왕조 희귀본 고문서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 행사를 시기·주제별로 정리해 글과 그림으로 남긴 자료다.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비교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2007년 조선왕조실록 등과 함께 유네스크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기록문화의 정수로 꼽힌다. 일 왕실 도서관인 궁내청 서릉부에는 의궤 외에도 임금의 교양도서였던 ‘경연’, 고려시대 송나라에서 들여와 조선시대까지 이어서 왕실이 소장했던 대표적 경연 도서 ‘통전’, 조선시대 의학과 관습 등을 소개한 ‘제실도서’들이 보관돼 있다고 한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끝난 지 65년이 지났건만 우리의 얼과 혼은 여전히 일본의 왕실에 갇혀 있다니 참담하다는 개탄 외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동안 우리는 프랑스에 외규장각도서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던 데 비해 일본에 남아 있는 약탈 문화재 반환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간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문화재 1432점을 반환함으로써 문화재 반환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한 까닭이다. 그러나 궁내청이 버젓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자료는 639종 4678책에 이른다. 약탈의 근거가 명확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120종 661책이며 이 가운데 ‘조선총독부 기증’이라는 도장이 찍힌 게 79종 269책으로 그 대다수가 조선왕실 의궤다. 궁내청은 일본 왕실이 관리하는 기관으로 치외법권과 같은 존재라고 하지만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약탈문화재는 조건 없이 반환해야 한다. 그것이 식민시대에 저지른 만행을 청산하는 길이며 문명국가의 도리임을 상기해야 한다. 지난달 국회도 ‘일본 소장 조선왕조 의궤 반환촉구 결의안’을 의결해 본회의에 상정한 마당이다. 정부는 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우리의 혼을 되찾아 오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바란다. 약탈 문화재 반환은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올해에 한·일 두 나라가 반드시 풀어야 할 역사적인 과제다.
  • 천안 “위례신도시 이름 바꿔라”

    “위례신도시에서 ‘위례’라는 이름을 빼라.” 충남 천안시는 최근 국토해양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건의문을 보내 이같이 요구했다고 17일 밝혔다. 시는 건의문에서 “위례(慰禮)는 백제의 첫 도읍지로 천안 직산과 위례산 일대를 일컫는다.”면서 “송파 등에 위례라는 이름을 쓰면 후손들이 이곳에서 백제가 건국한 것으로 오해한다.”고 철회를 촉구했다. 정부는 LH를 통해 2014년까지 서울 송파구, 경기 하남·성남시 등 3개 시에 걸쳐 인구 11만 5000여명 규모로 위례신도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2기 신도시 중 유일한 강남권으로 최근 첫 분양에 들어간 송파구의 ‘보금자리주택’은 관심이 높아 치열한 청약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천안시는 삼국유사에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BC18년 천안 직산에 첫 도읍을 정해 13년간 재위하다 BC5년 경기 광주지역(하남 추정)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기록돼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 여러 고문헌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고, ‘조선후기지방지도(1872년)’ ‘청구도(1873년) 등 옛 지도에도 천안에만 백제의 첫 도읍을 뜻하는 위례성이 그려져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태 문화예술팀장은 “천안에 위례산과 그 산에 둘레 950m의 위례성이 있지만 수도권에는 위례와 관련한 어떤 역사적 근거와 유적도 없다.”며 “이름을 도둑 맞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안시는 정부에서 위례를 계속 고집하면 시민들과 함께 위례명칭 철회 운동을 벌이고 학계에서 이를 쟁점화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천안시 건의문을 받고) 검토 중이지만 이미 결정이 난 신도시 이름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한ㆍ일 100년 대기획] 日 “한일협정때 끝난 얘기”… 환수율 10%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문서’는 해외 반출 문화재 환수의 상징 유물이다. 그렇지만 프랑스에는 외규장각 문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올해 1월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가 발표한 조사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에만 한국 문화재가 총 2093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별 분포 순위로는 7위다. 그럼 1위는 어디일까. ●“공식적 6만점… 실제는 60만점” 바로 일본이다. 일본에는 공식적으로만 6만 1409점의 우리 문화재가 반출돼 있다. 이는 전체 해외 소재 문화재 10만 7857건의 57%에 이르는 양이다. 2위 미국(2만 7726점), 3위 중국(3981점)과는 순위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격차가 크다. 게다가 지난 1월 말 일본 궁내청이 기존에 알려진 조선왕실의궤(朝鮮王室儀軌) 외에도 조선왕실 도서인 ‘제실(帝室)도서’ 38종 375책, 왕의 학습에 쓰인 ‘경연(經筵)자료’ 3종 17책을 더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일본 내 우리 문화재의 정확한 반출 규모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수많은 문화재들이 대부분 불법 반출됐다는 데 있다. 의궤나 제실도서는 물론 안견의 ‘몽유도원도’(덴리대학 소장), ‘고려대장경 재조대장경’(오타니대학 소장) 등 국보·보물급 문화재들이 모두 일제강점기에 불법 약탈돼 일본 땅으로 건너갔다. 그럼에도 일본 소재 문화재 환수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지금껏 개인 또는 단체가 기증하는 방식으로 5100여건이 돌아왔을 뿐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1965년 한일 협정 당시 돌려받은 1431점을 포함해 1728점 환수에 그쳤다. ●경제 원조에 밀려 환수 양보 일본 소재 문화재 환수가 이토록 지지부진한 것은 한일 협정 당시 부속 협정으로 체결한 ‘한·일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서 근거를 찾는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 자금을 빌미로 문화재 환수에 대해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일본 정부는 지금도 이를 근거로 문화재 반환에 소극적이다. 조동주 문화재청 국제교류과 사무관은 “일본은 문화재 반환이 1965년 한일협정에서 이미 정부 간에 끝난 이야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정부 협상에 늘상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조선왕실의궤 등 반환 협의 나서 정부는 외교통상부를 단일 창구로 환수 협상을 벌이고 있다. 올해는 한일병탄 100년을 맞아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환수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협의할 계획이다. 지난달 11일 열린 한·일 외무장관 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비공식 안건으로 언급했다. 국회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일본 소장 조선왕조의궤 반환촉구 결의안’이 지난달 23일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돼 향후 국회 차원의 후속 움직임이 기대된다. 시민단체에서는 문화연대 등이 민간 차원의 환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일본 소재 문화재는 지금까지 파악된 게 6만여건이지만 실상은 60만건도 넘을 것”이라면서 “정부 협상, 남북 공동 운동, 민간 운동 지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환수 운동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모순된 시대 가운데 선 비운의 세자

    모순된 시대 가운데 선 비운의 세자

    아주 오래전 갓 스무 살의 나이에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던 김인숙(47)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안다. 기성의 성(性) 인식 굴레에 갇혀 있던 사랑과 자유, 도덕의 문제를 그가 얼마나 감각적인 문체로 능수능란하게 풀어냈는지 말이다. 그러나 당시 여성잡지 등에서는 ‘여대생의 성애 소설’로만 주목하며 난리를 피웠다. 오죽했으면 당시 심사위원조차 “통속소설 작가로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하고, 또 정진하라.”고 그에게 덧붙였을까. 우려와 기대 속에 등단한 김인숙은 이후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으며 민중문학 작가로 ‘변신’한다.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함께 걷는 길’, ‘하나 되는 날’ 등을 발표한다. 굳이 전태일 문학상 수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1980년대 후반 당시 방현석, 안재성 등과 함께 민중문학 작가로 활약한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인간의 문제, 관계 속 소통의 문제 등을 천착하는 작품으로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받았다. 김인숙이 다시 한 번 새로운 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수백년 전 역사 속 인물과 그의 고독, 번민, 불안을 지금 이곳으로 불러들인 역사 장편소설이다. ‘소현’(자음과모음 펴냄)은 병자호란 뒤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8년을 지내고 환국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난,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삶의 마지막 2년 동안 겪어야만 했던 조선의 비극, 권력의 암투 속에 방치되는 백성, 시대의 혼란 등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의 얼개는 이렇다. 조선을 침략한 청이 명에 승리해야 모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조선의 굴욕은 계속된다. 이 모순된 상황이 소현의 몫이다. 청은 승리했고, 소현은 돌아온다. 하나 인조와 신하들은 청의 신임까지 업고 돌아온 소현을 권력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소현은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에서는 ‘학질’로, 많은 사학자들의 평가로는 ‘비공식 암살’로 눈을 감는다. 김인숙은 ‘친청파’로 남은 소현의 고뇌와 갈등을 그릴 뿐 아니라 아들을 삶 저편으로 보내야만 하는 아비로서 인조의 고뇌와 갈등을 예의 섬세하면서도 객관의 문체로 풀어낸다. 마치 건조하면서도 간결한 김훈의 문장을 보는 듯 때로는 몰아치고, 때로는 훈훈하게 기록한다. 김인숙은 “역사를 소설화하는 것은 실존 인물과 사건에서 한 걸음 떨어져 새롭게 상상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굉장히 매력있는 작업”이라고 첫 역사 장편소설에 대한 감회를 밝혔다. 이어 “현대소설의 스타일과 달리 역사소설인 만큼 의도적으로 객관적이고 간결한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 애썼다.”면서 “이것 또한 역사소설이 주는 재미있는 것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17개大 연합 해외봉사활동 눈길

    대학생들이 연합해 ‘프로보노(전문성을 토대로 나눔을 실천하는 것)’ 활동을 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17개 대학 모임인 ‘국인(國人)’ 소속 대학생들은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 일본 오사카에 있는 한인학교인 건국중·고교를 찾아 한글로 된 헌 책 400여권을 전달하고 교류방안을 논의한다. 우리나라 교포 자녀들이 우리말을 잊지 않도록 하는 ‘한글나눔프로젝트’의 하나로 회원들은 한국의 정체성이 담긴 책을 서너 달에 걸쳐 모았다. 여기에는 ‘조선왕조실록’ ‘백범일지’ ‘칼의 노래’ ‘한국문화기행’ 등이 포함돼 있다. 올 여름방학에는 건국학교를 다시 방문해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며, 전세계에 퍼져 있는 한인학교로 대상을 넓혀 나갈 방침이다. 회원들은 또 매년 1월 중국을 찾아 임시정부 청사와 한국기업 등을 방문하고, 중국 학생들과 한·중 관계에 관한 토론회를 갖고 있다. 학생들은 특히 해외방문에 드는 비용은 외부의 도움없이 각자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아 활동의 순수성을 지향하고 있다. 2008년에는 기아체험활동을 통해 500여만원의 후원금을 모아 아프리카에 식수 펌프를 설치했고, 강원도 오지 분교 학생들을 서울로 초청해 여름학교를 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위치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로 평가될 만하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