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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피투게더’ 장위안 “중국 벌레 음식, 현지인도 잘 안 먹어” 답변 눈길

    ‘해피투게더’ 장위안 “중국 벌레 음식, 현지인도 잘 안 먹어” 답변 눈길

    ‘해피투게더 장위안’ ’해피투게더’ 장위안이 중국의 다양한 음식 문화에 대해 언급해 관심을 모았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에 이봉원, 박은혜, 이영아, 김희철, 장위안이 출연해 설 명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방송에서 박명수는 장위안에게 “중국에 가 봤는데 별별 음식이 많더라. 심지어 원숭이의 뇌를 먹는다고도 들었다. 중국은 벌레도 쌓아놓고 그러냐?”라고 질문했다. 이에 장위안은 “’정말 중국 사람은 다 먹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면서 “제 생각은 다 문화 때문이다. 민족 따라 음식문화가 다양하다”고 답했다. 이어 장위안은 한족은 평범한 음식을 먹는 한편 다른 민족은 쥐, 고양이, 벌레 등을 먹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왕푸징’ 거리에서 파는 벌레음식은 관광객들 위주로 판매하고 현지인들은 잘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장위안은 함께 출연한 배우 박은혜의 미모에 대해 “박은혜씨가 왕조현보다 훨씬 더 예쁘시다”고 답했다. 박은혜는 “학창 시절 내내 인천에서 살았다”며 인천 토박이라고 밝혔다. MC 박명수는 “인천 왕조현으로 유명했다”며 박은혜의 별명을 공개했다. 중국인인 장위안에게 박은혜가 왕조현과 닮은 것 같냐고 묻자 장위안은 “지금 보면 왕조현보다 더 예쁘다”고 칭찬해 박은혜를 미소짓게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피투게더’ 장위안 “중국 벌레·쥐 음식, 현지인은 잘 안 먹어” 눈길

    ‘해피투게더’ 장위안 “중국 벌레·쥐 음식, 현지인은 잘 안 먹어” 눈길

    ‘해피투게더 장위안’ ’해피투게더’ 장위안이 중국의 다양한 음식 문화에 대해 언급해 관심을 모았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에서 박명수는 장위안에게 “중국에 가 봤는데 별별 음식이 많더라. 심지어 원숭이의 뇌를 먹는다고도 들었다. 중국은 벌레도 쌓아놓고 그러냐?”라고 질문했다. 이에 장위안은 “’정말 중국 사람은 다 먹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면서 “제 생각은 다 문화 때문이다. 민족 따라 음식문화가 다양하다”고 답했다. 이어 장위안은 한족은 평범한 음식을 먹는 한편 다른 민족은 쥐, 고양이, 벌레 등을 먹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왕푸징’ 거리에서 파는 벌레음식은 관광객들 위주로 판매하고 현지인들은 잘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장위안은 함께 출연한 배우 박은혜의 미모에 대해 “박은혜씨가 왕조현보다 훨씬 더 예쁘시다”고 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vs왕조현 미모 승자는 누구?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vs왕조현 미모 승자는 누구?

    방송인 장위안이 배우 박은혜 외모를 칭찬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에는 방송인 이봉원, 박은혜, 이영아, 김희철, 장위안이 출연했다. 이날 MC들은 박은혜에게 “인천의 왕조현 아니었느냐”라며 장위안에게 “왕조현에 대해 잘 알지 않으냐. 장위안이 보기에도 박은혜가 왕조현과 닮았느냐”라고 질문했다. 이에 장위안은 “왕조현보다 더 예쁘시다”라며 박은혜의 외모를 칭찬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KBS 해피투게더 방송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 미모 극찬해 ‘훈훈한 분위기’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 미모 극찬해 ‘훈훈한 분위기’

    방송인 장위안이 배우 박은혜 외모를 칭찬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에는 방송인 이봉원, 박은혜, 이영아, 김희철, 장위안이 출연했다. 이날 MC들은 박은혜에게 “인천의 왕조현 아니었느냐”라며 장위안에게 “왕조현에 대해 잘 알지 않으냐. 장위안이 보기에도 박은혜가 왕조현과 닮았느냐”라고 질문했다. 이에 장위안은 “왕조현보다 더 예쁘시다”라며 박은혜의 외모를 칭찬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KBS 해피투게더 방송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 미모보더니 “왕조현보다..”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 미모보더니 “왕조현보다..”

    방송인 장위안이 배우 박은혜 외모를 칭찬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에는 방송인 이봉원, 박은혜, 이영아, 김희철, 장위안이 출연했다. 이날 MC들은 박은혜에게 “인천의 왕조현 아니었느냐”라며 장위안에게 “왕조현에 대해 잘 알지 않으냐. 장위안이 보기에도 박은혜가 왕조현과 닮았느냐”라고 질문했다. 이에 장위안은 “왕조현보다 더 예쁘시다”라며 박은혜의 외모를 칭찬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KBS 해피투게더 방송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vs왕조현 외모 선택은?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vs왕조현 외모 선택은?

    방송인 장위안이 배우 박은혜 외모를 칭찬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에는 방송인 이봉원, 박은혜, 이영아, 김희철, 장위안이 출연했다. 이날 MC들은 박은혜에게 “인천의 왕조현 아니었느냐”라며 장위안에게 “왕조현에 대해 잘 알지 않으냐. 장위안이 보기에도 박은혜가 왕조현과 닮았느냐”라고 질문했다. 이에 장위안은 “왕조현보다 더 예쁘시다”라며 박은혜의 외모를 칭찬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KBS 해피투게더 방송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vs왕조현 미모 질문에 선택은?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vs왕조현 미모 질문에 선택은?

    방송인 장위안이 배우 박은혜 외모를 칭찬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에는 방송인 이봉원, 박은혜, 이영아, 김희철, 장위안이 출연했다. 이날 MC들은 박은혜에게 “인천의 왕조현 아니었느냐”라며 장위안에게 “왕조현에 대해 잘 알지 않으냐. 장위안이 보기에도 박은혜가 왕조현과 닮았느냐”라고 질문했다. 이에 장위안은 “왕조현보다 더 예쁘시다”라며 박은혜의 외모를 칭찬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KBS 해피투게더 방송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 미모칭찬 ‘눈길’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 미모칭찬 ‘눈길’

    방송인 장위안이 배우 박은혜 외모를 칭찬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에는 방송인 이봉원, 박은혜, 이영아, 김희철, 장위안이 출연했다. 이날 MC들은 박은혜에게 “인천의 왕조현 아니었느냐”라며 장위안에게 “왕조현에 대해 잘 알지 않으냐. 장위안이 보기에도 박은혜가 왕조현과 닮았느냐”라고 질문했다. 이에 장위안은 “왕조현보다 더 예쁘시다”라며 박은혜의 외모를 칭찬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KBS 해피투게더 방송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 외모에 깜짝 ‘왜?’

    해피투게더 장위안, 박은혜 외모에 깜짝 ‘왜?’

    방송인 장위안이 배우 박은혜 외모를 칭찬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에는 방송인 이봉원, 박은혜, 이영아, 김희철, 장위안이 출연했다. 이날 MC들은 박은혜에게 “인천의 왕조현 아니었느냐”라며 장위안에게 “왕조현에 대해 잘 알지 않으냐. 장위안이 보기에도 박은혜가 왕조현과 닮았느냐”라고 질문했다. 이에 장위안은 “왕조현보다 더 예쁘시다”라며 박은혜의 외모를 칭찬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KBS 해피투게더 방송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정도전이 ‘조선의 지식인’이 안 된 이유는

    정도전이 ‘조선의 지식인’이 안 된 이유는

    조선의 지식계보학/최연식 지음/옥당/336쪽/1만 6000원 조선시대의 지식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조선시대에는 지식인을 대외적으로 공인하는 ‘문묘 종사’라는 구체적인 기준이 존재했다. 조선에는 수준 높은 학문과 비판 정신을 겸비한 지식인이 많았지만 문묘에 종사된 이는 단 15명뿐이다.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으로 최근 ‘정도전 열풍’을 몰고 왔던 정도전은 문묘종사 성현의 목록에 포함돼 있지 않지만 조선 개국에 반대했던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문묘종사 목록에 포함돼 있다. ‘조선인의 지식계보학’은 조선의 지식인 15명이 문묘에 종사되는 과정을 통해 지식인 국가 공인 과정에서 벌어진 치열한 권력 전쟁을 파헤치고 있다. 책은 정도전과 정몽주의 차이를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이렇게 해석한다. “정치 권력 싸움에서 패배한 정도전에게는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며 고려인 정몽주는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조선 지식계보의 기원으로 탄생했다”고 말이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정도전과 정몽주를 비롯해 이황, 이이, 김굉필, 조광조 등 조선의 지식인 대상자 선정 과정을 들여다보며 조선 권력 정치의 속살을 파헤친다. 저자는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관찬 사료뿐만 아니라 개인 문집을 광범위하게 활용해 다양한 시각으로 인물을 분석했다. 조선 성리학의 계보가 순수한 학문적 기원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권력과 지식인 사이 정치투쟁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결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임을 에둘러 주장한다. 이 같은 계보를 탄생시킨 당대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현대 사회의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성룡 최시원 출연작 ‘드래곤 블레이드’ 1차 예고편

    성룡 최시원 출연작 ‘드래곤 블레이드’ 1차 예고편

    배우 성룡과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최시원의 동반 캐스팅 소식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드래곤 블레이드’의 1차 예고편이 공개됐다. ‘드래곤 블레이드’는 중국 한왕조 시절, 서한과 흉노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모함으로 인해 신분이 하락한 ‘중국 장군’과 동방으로 도망쳐 내려온 ‘로마 장군’의 전투를 다룬 무협 액션이다. 거대한 모래폭풍이 휘몰아치는 혼란의 땅 실크로드. 평화 유지를 위해 그 곳을 지키는 부대의 총사령관 후오안(성룡)은 어느 날 로마 군대와 맞닥뜨리게 된다. 후오안은 로마 군대를 이끌고 있는 로시우스 장군(존 쿠삭)과 피할 수 없는 결투를 하게 되지만, 각각 자국에서 반역죄의 누명을 쓰게 된 사연을 알게 되면서 서로에게 존경심과 우정을 느낀다. 하지만 이들은 조국과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건 마지막 전투를 하게 된다. 이번에 공개된 1차 예고편에는 이러한 이야기를 사막을 횡단하는 동방 군사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어 각양각색의 전사들과 존 쿠삭, 애드리언 브로디의 긴장감 넘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제작과 주연을 맡은 성룡은 중국의 위대한 전사인 ‘후오안’ 역을 맡아 화려한 액션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에 후오안의 호위무사 ‘은호’ 역을 맡은 최시원의 출연은 국내외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삼국지-용의부활’(2008년)과 ‘초지한-천하대전’(2011년)을 통해 이미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감각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이인항 감독이 ‘드래곤 블레이드’의 연출을 맡았다. 영화 ‘드래곤 블레이드’는 오는 3월 12일 개봉예정이다. 15세 관람가. 사진·영상=롯데엔터테인먼트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조선의 국왕실 새단장했소

    국립고궁박물관은 상설전시관 ‘조선의 국왕실’을 10일 재개관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지난해부터 상설전시관의 노후 설비를 전면 교체하고 유물 감상에 최적화된 전시 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조선의 국왕실’은 첫 번째 사업으로, 지난해 10월부터 개·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새 단장한 전시실은 제1부 ‘국왕의 존엄과 일생’, 제2부 ‘조선 왕조의 기록과 계승’, 제3부 ‘조선의 왕도정치’로 구성됐다. 조선 왕조의 역사와 제도 등에 관한 유물과 내용을 보강했고, 평소 외형만 관람할 수 있었던 창덕궁 신선원전과 규장각 등의 내부를 실감 나게 되살렸다. 재개관에 맞춰 ‘홍룡포 태조 어진’ 복원 모사도가 처음 공개됐다. 영조 임금이 83세에 왕세손 정조에게 하사한 ‘효손은인’과 ‘유세손서’ 진품을 비롯해 보물 제1508호 ‘이성윤 위성공신교서·공신초상’, 1795년 정조 임금의 화성행차를 다양하게 기록한 병풍 등 조선 왕조 기록문화유산도 종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영상 세대를 위한 전시 영상물도 대폭 늘렸다. ‘왕세자입학도첩’, ‘화성행차도 병풍’ 등 평면적인 궁중기록화 작품을 3D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현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文의 중도 확장 ‘반쪽 행보’… 진정성 의심 땐 파괴력 약할 듯

    文의 중도 확장 ‘반쪽 행보’… 진정성 의심 땐 파괴력 약할 듯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역사가 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현실 권력’이다. 이제는 두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9일 당 대표 당선 후 첫 공개 행보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파격’을 선보인 것을 문 대표 측은 이렇게 평가했다. 문 대표는 “지난 대선 패배 이후 개인적으로라도 참배하겠다는 뜻을 굳혀 왔다”고 한다. 문 대표는 방명록에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입니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꿈꿉니다”라고 적었다. 문 대표 측의 인식을 종합해 보면 이날 행보는 ‘국민 통합, 역사와의 화해’ 측면에서 선택된 것이었다. 그러나 야권 내에서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오랜 전통을 거스르는, 정치적으로는 용인되지 않은 ‘돌출 행동’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당사자의 의도와 해석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신임 최고위원들은 참배 자리에 모두 빠졌다. 문 대표와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 등 일부만 참석하는 반쪽짜리가 됐다. 문 대표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중도로의 확장이 녹록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들이다. ‘파격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일회성 정치 행위’로 간주돼 중도 표심을 움직일 정도의 파괴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며칠 만에 결정된 즉흥적인 논의 과정에 진정성마저 의심하는 쪽도 있다. 진보 진영은 이날 문 대표의 행보를 ‘기습 공격’처럼 받아들였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트위터에서 “건국과 산업화를 들먹이며 자랑스러운 전임 대통령 운운하는 문 대표의 평가는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을 방불케 하는 놀라운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백찬홍 씨알재단 홍보위원장은 “왕조도 아닌데 전직 대통령에게 머리 숙일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면 무명용사 묘역에 헌화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이날 현충탑 참배 뒤 이·박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참석하지 않은 새정치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톨레랑스(관용)는 피해자의 마음을 더 먼저 어루만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며 이견을 드러냈다. 유승희 최고위원은 “지금은 당의 지지와 결속이 중요하고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하는 행보가 필요하다. 대선 국면에 필요한 전략적 행보는 조금 천천히 해도 된다”고 말했다. 중도표 확장 측면에서의 실효성에도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행보가 일회성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중도 행보가 뒤따라야 하는데, 과연 ‘정책’에서도 지속적으로 중도를 채택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에서다. 문 대표의 행보를 우클릭의 시작으로 보고 ‘기대감’을 높여 갈 중도우파의 욕구를 마냥 충족시켜 줄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문 대표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용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거짓말을 했다’고 일관되게 비판했다”면서 “문 대표가 중도 행보를 지속하지 못할 때 뒷날 대선에서 이날 참배에 대해 선거용이라고 비난받는다면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이라며 복잡다단한 심경을 드러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격동의 한·일 70년] 문화재 반환

    [격동의 한·일 70년] 문화재 반환

    1993년 한·일 양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경복궁 안에 있어야 할 자선당 유구(遺構, 옛 건축물의 흔적)가 일본 도쿄의 오쿠라호텔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가 찾아냈다. 김 교수는 “건축문화재는 우리뿐 아니라 일본도 몰랐다. 1965년 한·일협정 때도 논의되지 않았다. 건물까지 뜯어서 갖고 갔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선당은 세자와 세자빈이 머물던 전각이다. 일본은 1914년 식민통치 홍보 박물관인 ‘조선총독부미술관’을 세우기 위해 자선당을 철거했다. 당시 작업을 맡았던 오쿠라 기하치로는 데라우치 총독에게 자선당 반출을 부탁, 일본으로 뜯어갔다. 조선관으로 개명, 오쿠라슈코칸 전시실로 사용했다. 1923년 간토대지진 때 소실됐다. 기단, 주춧돌, 계단 등 석재들만이 남아 수십년간 방치됐다. 자선당 유구는 반출 81년 만인 1995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경복궁에서 뜯어간 가마쿠라의 ‘관월당’, 벽제 또는 경복궁에서 옮겨간 것으로 알려진 이와쿠니의 ‘정자’, 이천에서 가져간 오쿠라호텔 경내 이천오층석탑 등 일본에는 아직 국내의 건축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김 교수는 “관월당, 정자 등은 일본에서 돌려줄 것처럼 얘기했는데 한·일관계가 경색되면서 대화 채널이 완전히 끊어졌다. 일본 측은 예민한 한·일문제 때문에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고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는 정년퇴직 뒤 우리근대건축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건축문화재 반환에 힘을 쏟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된 한국 문화재는 공식 확인된 것만 6만 7000여점에 달한다. 개인 소장 등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20만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본 소재 우리 문화재는 김 교수 사례처럼 민간의 노력으로 돌아온 게 많다. ‘김시민 선무공신교서’는 시민 모금으로 되찾았다. 1592년 10월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진주목사 김시민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1604년 전공 및 김시민과 그의 가족에게 내리는 포상 내용을 적은 임금의 글이다. 2005년 일본 도쿄 고서점가 경매에서 이 교서를 낙찰받은 한 일본인 고서적상이 재판매하려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국민 모금이 시작됐다. 2006년 7월 1400만엔(당시 환율로 약 1억 2000만원)을 주고 찾아왔다. 정부 협상으로 돌아온 문화재도 적지 않다. 1965년 한·일협정 부속협정에 의거해 고고유물, 도서, 도자기 등 1326점이 돌아왔다.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을 앞두고 일본은 ‘외교적 제스처’로 1958년 4월 경남 창녕 고분군 출토 유물 106점을 반환했다. 1991년에는 한·일 정부 간 협상에 의해 복식류, 장식물, 장신구 등 ‘영친왕 일가 복식’ 333점이 환수됐다. 이는 이방자 여사가 소장했다 1957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2002년 이토 히로부미가 무단으로 일본 황실로 반출했던 규장각 도서 숫자를 기재한 문서철이 발견됐다. 한·일협정 때 반환된 90책을 제외한 900여책에 대해 반환요구 움직임이 일었다. 2010년 11월 ‘도서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간 협정’에 의거 이듬해 일본 궁내청에서 소장하고 있던 900여책과 조선왕실의궤 등 1205책이 반환됐다. 민관 협력도 빼놓을 수 없다. 북관대첩비는 남북 합작으로 반환이 이뤄졌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정문부가 함경도 길주, 쌍포, 단천 등지에서 왜군을 격퇴한 업적을 기리는 비로, 숙종 때 세워졌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무단 반출해 야스쿠니 신사에 세워 놨다. 일본 유학생과 학자에 의해 존재가 국내에 알려지면서 정부와 남북 불교단체가 환수에 앞장섰다. 2005년 국내에 돌아온 뒤 이듬해 북한으로 보내져 본래 자리에 세워졌다. 2006년에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가운데 47책이 되돌아왔다. 일제강점기 조선 연구를 명목으로 조선총독부를 통해 도쿄대학으로 무단 반출됐다. 1923년 간토대지진 때 대부분 소실됐다. 혜문 스님이 2004년 도쿄대학 도서관 귀중본 서고에서 발견, 반환 운동을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에 되돌아온 문화재도 있다. 국외 유출 문화재의 첫 환수 목록에 올라 있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등이다. 현재 국내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후쿠이현 조구진자(常宮神社) 소장 신라종, 도쿄 오쿠라호텔 경내 이천오층석탑,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오구라컬렉션 등 반환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문화재가 반출된 지 100년이 넘으면서 일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들의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류, 문서, 목재 건축물 같은 건 보존이 시급하다. 조선왕조 도서 환수 공로로 훈장을 받은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은 “어떤 문화재가 어디 있는지 실태부터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며 “실태도 모른 채 반환 캠페인을 앞세워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세계의 창] 美 뿌리 깊은 명문가 세습정치… ‘신귀족주의’ 고착화 논란

    [세계의 창] 美 뿌리 깊은 명문가 세습정치… ‘신귀족주의’ 고착화 논란

    ‘왕조’라는 단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을 선출한 미국과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은 신분이 아니라 재능과 노력으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메리칸 드림’은 허망한 꿈이 됐다. 왕국을 거부하고 공화국의 반석을 다진 미국에서도 개인의 ‘스펙’보다 ‘탯줄’이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특히 미국 정치판은 이런 봉건적 특성을 두드러지게 보여 준다. 2016년 대선은 일찌감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공화당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맞대결 구도로 좁혀지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대선이 열릴 때마다 두 집안 사람들은 고정 출연 중이다. 알다시피 힐러리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이고, 젭은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이다. 숙명적 라이벌이 된 두 가문의 싸움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2008년 어머니 대선 캠프에서 활동을 시작한 딸 첼시 클린턴에 대해 아버지 빌은 “대권에 도전한다면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젭 부시의 아들 조지 P 부시는 최근 텍사스주 국토부 장관 격인 ‘랜드 커미셔너’로 본격 정치 활동을 시작해 두 가문의 대결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족벌 정치 필리핀·인도와 뭐가 다르나” 경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세습, 대물림은 후진적이란 비판을 받는다. 3대에 걸쳐 권력세습을 이룬 북한을 향해 미국을 필두로 국제사회의 규탄과 조롱은 끊이지 않는다. 소수 가문이 권력을 주무르는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도 족벌 정치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내년 대선 판도를 뒤집을 다크호스가 출현하지 않는 이상 미국도 이런 멍에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정치가 ‘패밀리 비즈니스’로 전락한 데에 미국 안팎에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유력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미국을 ‘신귀족주의’ 사회라 칭하고 엘리티즘의 고착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영국의 가디언은 3선 대통령을 금지하는 헌법까지 제정한 미국에서 ‘정치 왕조’(Political Dynasty)의 권좌 돌려 앉기에 대해서는 유독 무감각하다고 꼬집었다. 미국에서 정치 왕조는 사실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8명의 대통령이 애덤스, 해리슨, 루스벨트, 부시 등 4개 가문에서 나왔다. 정치 왕조의 시초는 애덤스 집안이다.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와 그의 장남 존 퀸시 애덤스가 6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사상 첫 부자(父子) 대통령이란 기록을 세웠지만, 둘 다 형편없는 리더십으로 최악의 대통령이란 불명예도 함께 얻었다. 루스벨트 가문도 직계는 아니지만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1901년 윌리엄 매킨지 대통령이 암살되자 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백악관의 주인이 됐다. 1932년에 12촌뻘인 친척 동생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올랐다. 진정한 ‘정치 왕조’를 이룬 곳은 케네디가(家)다. 케네디 가문은 막대한 부를 활용해 정치를 ‘가업’으로 만든 최초의 집안이라 할 수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초대 위원장과 영국 대사를 지낸 조지프 케네디 아래 4대를 거치며 정치판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조지프는 네 명의 아들 가운데 장남을 대통령으로 키우려고 했으나 그가 29살에 2차대전에 나가 전사하는 바람에 계획을 바꿨다. 그는 차남인 존 F 케네디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셋째 로버트를 법무장관에, 막내 에드워드를 상원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2009년 에드워드가 세상을 뜨면서 케네디 가문 1세대의 정치 활동은 종말을 고했지만, 후손들의 활약은 여전하다. 에드워드의 아들 에드워드 케네디 주니어는 코네티컷주 상원의원, 둘째 아들 패트릭 케네디 2세는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 캐럴라인 케네디는 현재 일본 주재 미국 대사로 활동 중이다. 아들인 존이 1999년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못다 한 꿈을 이뤘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큰딸인 캐슬린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메릴랜드주 부주지사를, 아들 조지프는 6선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 손자인 조지프 케네디 3세는 2012년 매사추세츠주 하원의원에 당선돼 4대가 공직을 맡았다. 평론가들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기점으로 후보자뿐 아니라 그의 배우자, 형제·자매까지도 관심을 두는 경향이 시작됐다고 얘기한다. 케네디가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명문가는 부시 집안이다. 1988년 백악관에 입성한 조지 H W 부시는 코네티컷주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아버지 프레스콧 부시의 영향력을 물려받았다. 1992년 민주당의 빌 클린턴에게 패하면서 단임에 그쳤던 한은 2000~2008년 아들 조지 W 부시가 연이어 백악관을 차지하면서 풀렸다. 이제 차남 젭 부시가 세 번째 대통령 도전자로 의욕을 불태우고 있고, 손자 조지도 벌써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등 부시가는 3대에 걸쳐 워싱턴 정가를 지배하고 있다. 지난달 타계한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도 ‘부자 지사’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탈리아 출신 식료품 가게 아들인 그는 주지사에 연거푸 세 번 선출됐다. 장남인 앤드루 쿠오모도 2010년 뉴욕 주지사에 처음 당선된 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해 아버지의 연임 전통을 이었다. 그는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딸 케리 케네디와 결혼했다가 2003년 이혼했다. 이 밖에 최근 ‘대권 3수’ 포기를 선언한 공화당 밋 롬니의 아버지는 미시간 주지사를 지내고 1968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까지 나섰던 조지 롬니다. 내년 대선에서 공화당 ‘잠룡’ 중 한 명인 랜드 폴 연방 상원의원(켄터키)의 부친은 1988년, 2008년, 2012년 세 차례나 대선 경쟁에 뛰어들었던 론 폴 전 하원의원이다. 미국인들이 정치 왕조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하버드대학의 바버라 켈러맨 교수는 “미국에서 정치 세습이 이뤄지는 데에는 셀러브리티(명사)에 대한 숭배와 선거제도 그리고 과거에 대한 향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에 대한 은근한 열등감이 있는 미국인들은 명문가의 출현을 한편으론 반기기도 한다. 소수의 유권자에 의해 1차 선택을 받는 오픈프라이머리도 유명인에게 유리한 발판으로 작용한다. 정치 무관심도 정치 왕조 부흥에 한몫한다. 후보자의 정보가 없거나 알고 싶지 않을 때 익숙한 ‘라스트네임’(성)은 정치인에게 생명과 같은 즉각적인 인지도 제고 효과를 가져다준다. ●“권력 세습은 국가보다 집안 앞세워” 지적도 무엇보다 정치 왕조를 지탱하는 것은 돈이다. 기업들은 특히 미래 보장을 위해 아는 이름에 기꺼이 큰돈을 쾌척한다. 아직 판이 열리지 않았는데도 힐러리 캠프는 벌써 400만 달러나 끌어모았다. CNN에 따르면 미국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가족 또는 친척이 공직 경험이 있는 사람이 3분의1가량 된다. 첫 정계 진출자가 쌓은 관계, 인맥 등은 한집안에서 제2, 제3의 정치인을 만드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걸 말해 준다. 소수 가문의 권력 분점은 미국 사회 특유의 다양성과 혁신을 저해하고 엘리트주의를 극대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지난해 LA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아들 부시가 이라크전을 일으킨 이유가 아버지 부시의 복수를 위한 것이었다고 꼬집으며 대를 잇는 권력 세습은 국가보다 집안을 앞세우는 우를 범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부시는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행한 연설에서 “이 자(사담 후세인)는 내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고 대놓고 말해 미국민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이후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 증대와 이슬람국가(IS)의 급격한 부상은 이슬람권을 상대로 ‘패밀리 비즈니스’를 벌인 부시 전 대통령의 업보라는 비난이 설득력 있게 퍼지기도 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시대별 가장 이상적인 여성의 체형변천사 영상 화제

    시대별 가장 이상적인 여성의 체형변천사 영상 화제

    고대 이집트에서 2000년대까지 이상적인 여성의 체형 변천사를 제작한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28일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미국 뉴스 및 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 버즈피드(BuzzFeed)의 동영상팀이 만든 ‘이상적인 여성 체형 변천사’(Women‘s Ideal Body Types Throughout History) 영상을 기사와 함께 소개했다. 영상에는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2000년대 현재에 이르기까지 체형들을 각각의 모델들이 출연해 보여준다. 호리호리한 몸·좁은 어깨·높은 허리·좌우 대칭 얼굴의 고대 이집트(기원전 1292~1069년), 통통한 체형·풍성한 보디·밝은 피부의 고대 그리스(기원전 500~300년). 중국 한 왕조 시대(기원전 206~서기 220년)에는 가는 허리·창백한 피부·큰 눈·작은 발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1400~1700년)에는 풍만한 가슴·둥근 복부·커다란 엉덩이·흰 피부가 가장 이상적인 여성의 신체였다. 이어 영국 빅토리아 왕조(1837~1901년)에는 과하지 않은 풍만함·큰 체격·잘록한 허리, 20세기 급변기(1920년대)에는 납작한 가슴·짧은 밥 헤어스타일·남성적인 외모, 할리우드 황금기(1930~1950년)엔 굴곡이 드러난 몸매·모래시계 체형·큰 가슴·잘록한 허리의 여성이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에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몸매·마른 체형·길고 가는 다리·미성년의 체형이, 슈퍼모델 시대인 1980년대에는 건강한 체형·말랐지만 풍만한 몸·큰 키·그을린 팔이, 1990년대에는 방랑의 느낌·아주 마른 체형·반투명의 피부·양성적 느낌이라고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2000년대에서 현재까지는 홀쭉한 복부·건강하지만 마른 체형·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매력적인 허벅지 사이의 틈이 있는 여성들이 이상적이라며 현재의 여성들은 “이상적인 체형을 가지려고 성형수술을 받는다”란 말이 나오며 영상은 끝이 난다. 한편 이 영상은 지난 26일 유튜브에 게재된 지 사흘만에 426만 48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사진·영상= BuzzFeedVideo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씨줄날줄] 혜음령/서동철 논설위원

    혜음령은 경기 고양시 고양동과 파주시 광탄면을 잇는 고갯길이다. 조선시대에는 한양과 의주를 잇는 의주대로의 일부였다. 혜음령은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임진각으로 달리다 보면 나타나는 벽제에서 의정부 쪽으로 길을 갈아탄 뒤 고양향교가 있는 고양동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만날 수 있다. 고개를 넘으면 서울시립 용미리공원묘원이다. 의주대로는 지금 고양시와 파주시의 협력으로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정비되어 있다. 삼송동에서 임진강과 만나는 임진나루까지 걸어서 탐방할 수 있다. 조선 왕조는 개성에서 개창해 한양으로 천도했으니 혜음령은 ‘두 서울을 잇는 고개’였다. 고려 왕조도 지금의 서울인 남경(南京)을 새로운 수도로 삼을 것을 고민했다. 고려가 혜음령 일대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는 용미4리의 혜음원(惠陰院) 터에서도 드러난다. 혜음원은 개성과 남경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1122년(고려 예종 17) 세운 국립 숙박시설이다. 왕의 행차를 위한 별원(別院)과 사찰도 있었다. 발굴 조사에서는 ‘혜음원’이라고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출토됐고, 27개에 이르는 건물터, 연못터, 배수로 등 대규모 유구가 확인됐다. 고려시대 혜음원과 이웃한 장지산 기슭에 높이 17.4m의 용미리석불입상이 세워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거대한 석불은 의주대로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국가의 위세를 보여 주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먼 길에 나선 사람들도 두 분 부처의 자비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혜음령은 중요한 간선도로였지만 도적이 출몰하는 위험한 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세기가 목전이었던 1891년(고종 28)에도 ‘도적의 무리가 자주 출몰해 백성이 안심하고 터 잡을 수 없으니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는 장계(狀啓)가 경기감사로부터 올라오기도 했다. 값나가는 물건이 아무래도 많았을 여행자는 더욱 도적의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서울과 의주를 잇는 길은 일제강점기 벽제에서 금촌과 문산을 거치도록 바뀌었다. 이후 이 길을 넓힌 것이 통일로, 조선시대에는 완전치 않았을 한강과 임진강의 강둑을 이은 길이 자유로다. 과거 혜음령처럼 높은 고개를 지나는 길을 이용한 것은 하천 때문이다. 광탄(廣灘)이라는 땅 이름부터가 ‘넓은 여울’이라는 뜻이다. 양주에서 흘러내려온 두 개의 물길이 합류해 넒어진 문산천은 난코스였다. 의주대로가 임진나루로 이어지는 것도 강폭이 좁고 수심이 얕기 때문이다. 산과 하천은 이제 터널과 교량으로 극복한다. 통일로와 자유로도 수많은 다리로 이어졌다. 혜음령에서도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745m짜리 터널이 올해 완공되면 희미해진 옛 의주대로의 존재도 다시 부각될 것이다. 주변에 ‘혜음원 박물관’이나 ‘의주대로 박물관’이라도 세운다면 그 효과는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신하균 첫 사극 도전작 ‘순수의 시대’ 1차 예고편

    신하균 첫 사극 도전작 ‘순수의 시대’ 1차 예고편

    신하균, 장혁, 강하늘 주연의 사극 영화 ‘순수의 시대’ 1차 예고편이 공개됐다. ‘순수의 시대’는 1398년 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왕국 조선을 개국한지 7년째 되는 해가 배경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왕자 이방원이 반대파를 숙청하고 권력을 손에 넣은 ‘왕자의 난’으로 기록된 해다. 이에 ‘순수의 시대’는 왕좌의 주인이 되기 위해 붉은 피가 흘렀던 ‘왕자의 난’의 이면을 영화적 상상력을 보태 그려내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예고편에는 어지러웠던 혼란의 시대에 대한 전운을 드러내듯 까마귀 한 마리가 화면에 내려앉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누구의 사람도 아니다. 칼로 왕을 모시고 백성을 지킬 뿐”이라고 말하는 강직한 장군 김민재 역의 신하균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권력의 막후이자 밀실의 제왕이었던 이방원 역의 장혁과 함께 김민재의 아들이자 출구 없는 비틀린 욕망의 소유자 진 역의 강하늘까지, 인물 각자의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데뷔 16년 만에 처음 사극에 도전하는 신하균의 변신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신하균이 연기하는 ‘김민재’라는 인물은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이다. 이를 통해 신하균은 조선 제일의 무장이 선보이는 전장의 리얼 액션과 난생 처음 느낀 사랑 앞에서 순수를 쫓는 상반된 모습을 연기했다. 첫 사극으로 ‘순수의 시대’를 택한 이유에 대해 신하균은 “격변의 시대에 개인의 욕망이나 사랑, 그런 것들을 담은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극이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이야기로 바꿔보더라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한국형 스릴러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블라인드’ 안상훈 감독의 신작 ‘순수의 시대’는 오는 3월 개봉 예정이다. 사진·영상=CJ엔터테인먼트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루쉰 ‘아Q정전’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루쉰 ‘아Q정전’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迅), ‘고향’ 중에서- 얼마 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미생’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용됐던 말이다. 미생이란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완벽하게 안전하지 않은 돌’이라는 뜻의 바둑 용어다. 이를 좀 더 넓게 해석하면 이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완전하게 살지는 못하는 존재들이라는 의미다. 드라마에서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완생을 ‘희망’하는 모든 미생에게 남기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에게 희망을 품게 한 루쉰, 그는 누구인가. 그는 누구나 한번쯤 접해 보았을 ‘아Q정전’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어떤 시대를 살았으며 그는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을까? 중국의 작가 루쉰은 1881년 저장성 사오싱의 저우씨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문가였던 그의 집안은 15세에 아버지의 사망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는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난징으로 가서 광무철로학당을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의학공부에 매진하였으나, 강의시간에 동포가 처형되는 장면을 담은 시사 영화를 보고 국민의 육체적 질병을 고치는 일보다는 정신 개혁이 급선무라 여기고 문학으로 전향한다. 그러나 도쿄에서 잡지 ‘신생’을 발간하려는 계획이 실패하면서 좌절에 빠진다. 글쓰기를 권하는 친구에게 루쉰은 가령 쇠로 된 방이 있는데 사방이 막혀 죽을 판이라면 잠자는 그들을 깨워 죽음의 고통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중국의 현 상황을 우회하여 반문한다. 그때 친구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몇 사람이라도 깨어 있다면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있다고. 이 말을 듣고 루쉰은 마음을 바꿔 중국의 미래를 위해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1911년에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청나라가 망하고 쑨원(孫文)을 총통으로 추대한 ‘중화민국’이 출범하였지만 국내에 지지 세력이 약했던 쑨원은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총통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위안스카이는 황제가 되기 위해 외국 차관에 의지하고 일본의 굴종적인 21개조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가 병사한 뒤에는 각지에서 군벌이 할거하면서 무정부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때 루쉰은 귀국하여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교육부원으로 참가해 베이징에 이주하지만 신해혁명에 대한 실망과 어두운 현실을 보며 방황한다. 루쉰은 1918년에 최초의 소설 ‘광인일기’를 써서 중국의 유교적인 가족제도가 지니는 병폐와 예절이라는 굴레가 인간을 얼마나 구속하는지 광인(狂人)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이는 봉건왕조를 청산하려는 중국 젊은이에게 큰 자극을 주었고, 언문일치의 문학 혁명을 일으켜 중국 신문예를 탄생시켰다. 1921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아Q정전’에서 중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정신승리법의 우매성과 약점을 냉철하게 풍자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중국 사회의 의식개조를 목적으로 수많은 글을 발표한 루쉰은 1936년 폐결핵이 악화되어 56세로 사망했다. 유해는 상하이 만국공원에 묻혔다. 그가 중국의 위대한 문학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민족의 고뇌를 몸소 체험하고 중국민족을 각성하고자 실천한 열망 때문이었다. 진정한 문학이란 정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작품 속에 진실이 살아 숨 쉬어야 하는데, 이러한 진실이 인간을 바꾸고, 희망을 주므로 독자들에게 삶을 긍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근대화 속에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중국민족을 문학을 통해 치료하고자 한 루쉰. 그의 작품 대부분은 봉건적 습속이 혼재된 반식민지 상태라는 어두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변혁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쓴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의도가 ‘아Q정전’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아Q정전’은 신해혁명을 전후로 한 농촌을 배경으로 성명도 본적도 불확실한 날품팔이꾼 아Q의 이야기를 정전의 형식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웨이짱 마을 토곡사에 사는 아Q는 집도 없고 일거리도 없으며 탈모 흉터로 외모 콤플렉스가 심한 볼품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존심이 매우 강하여 마을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그는 항상 ‘정신승리법’으로 자신을 무장한다. 그는 동네 지주인 짜오 영감이나 가짜 양귀신에게는 비굴하게 몸을 조아리는 반면 자기보다 약한 비구니에게는 남에게서 받은 수모를 앙갚음한다. 어느 날 웨이짱 마을에도 혁명의 바람이 불어온다. 아Q는 평소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이 혁명당을 보고 허둥대자 투항하여 원한을 갚으려고 한다. 하지만 아Q는 혁명당원들이 짜오 영감의 집을 약탈하는 것을 본 뒤 짜오 영감의 집을 털었다는 누명을 쓴 채 어이없는 총살을 당한다. 루쉰은 아Q의 정신승리법이 서세동점의 위기 속에서 자신을 마취시키는 병리적 현상으로 중국인의 잘못된 민족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했다. 정신승리법이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머릿속에 그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합리화하여 만족감을 얻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위기와 불안, 실패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겨 나가려 하지 않고 정신 속으로 달아나 그 속에서 위안을 얻은 다음 현실을 외면해 버리는 심리를 가리킨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속에 영웅주의와 패배주의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약한 사람들에게는 잔인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아첨한다. 루쉰은 아Q가 가진 이러한 성향이 청나라 말기 유교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안고 자아정체성을 상실한 중국인의 표본으로 보았던 것이다. 또한 아Q가 즉흥적으로 혁명당에 투항하기로 한 것이나, 혁명을 변발의 자유나 가슴에 단 은복숭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통해 당시 중국민족이 신해혁명을 매우 피상적이고 형식적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신해혁명을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와 근본적인 변혁을 위한 의식적인 활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부화뇌동하는 정도로 보았던 것이다. 혁명의 완성이란 거대한 목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 개체가 변화되는 것이라고 볼 때 그 한계는 극명해 보인다. 또한 아Q의 총살을 형편없는 사형수법으로 인식하는 군중의 한계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루쉰은 아Q정전을 통해 중국인들의 의식구조의 문제점과 신해혁명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자조적인 태도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중국민족에게 희망의 출발은 근대 주체로서의 자기 발견, 비극적인 현재를 정확히 각성하여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루쉰의 이러한 시각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역시 구한말 억압적이고 굴종적인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반봉건, 반외세의 이중고를 겪었기 때문이다. 루쉰이 ‘아Q정전’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중국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결국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외침이었고,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일어서라는 절규였다.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근대화의 시행착오 속에서 바른 길을 찾아가려는 시도와 노력이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만의 자주적 근대화였고, 통합된 외침이어야 했으며,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개개인 주체 모두의 각성이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작품 속 아Q는 우리에게 희망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고통 속의 자각이다.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90억장의 기록, 강대국 미국을 만들다

    90억장의 기록, 강대국 미국을 만들다

    대통령의 욕조/이흥환 지음/삼인/384쪽/1만 8000원 한국은 국가기록의 나라였다.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히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왕명을 받아 처리한 업무를 낱낱이 기록한 ‘승정원 일기’ 등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을 가진 나라다. 역사 속 부끄러움도, 자랑스러움도 모두 기록이 됐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가 빛나는 기록 전통을 오롯이 물려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2007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물러날 때면 재임기간 동안 생산한 문서를 없애버리거나 사사롭게 들고 나갔다. ‘대통령의 욕조’는 미국 국가기록 시스템의 무서움을 유감없이 확인시켜 주는 책이다. 1909년 백악관에서는 150㎏의 뚱보였던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이 사용할 ‘욕조 특수 제작 주문서’를 만든다. 빛바랜 문서 한 장조차 100년 넘게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록을 대하는 미국인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엿보게 한다.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mistration), 즉 국가기록보관소의 역사는 81년이 됐다. 90억 장에 가까운 문서를 보존하고 있다. 1900만 장의 사진, 640만 장의 지도, 36만 릴의 마이크로필름, 11만 개의 비디오테이프가 별도로 보관돼 있다. 고작 230년 남짓의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미국은 물론 미국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세계 여러 나라의 문서도 들어 있다. 책 속에는 그 가운데서 추려낸 한국 관련 문서 59건이 소개된다. 1977년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입장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분명한 이해’를 갖고 있다는 내용의 1급 비밀문서, 한국전쟁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원자탄 사용을 검토했다는 내용의 문서 등 굵직한 사건부터 28세 농사꾼 아낙의 조선인민군 입대 청원서, 인민군 병사의 낡은 사진첩 등 사소한 생활의 부분까지 보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국가기록보관소를 뒤져온 미국 워싱턴의 이흥환 코리아정보서비스넷(KISON) 선임 편집위원이 국가기록의 중요성과 의미, 미국 국가기록보관소를 이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글을 딱딱하지 않게 썼다. 새삼 깨닫게 된다. 국가기록물은 결코 대통령 개인이나 청와대의 것이 아니다. 그 소유권은 오늘의 국민과 내일의 국민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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