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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돌아오는 덕종어보/나선화 문화재청장

    [기고] 돌아오는 덕종어보/나선화 문화재청장

    과거를 기억해 현재를 돌아보는 일은 미래를 전망하는 소중한 과정이다. 과거는 무형의 이야기로 전해지기도 하지만 또렷한 형상으로 오래된 역사를 증명하기도 한다. 과거의 산물을 현재에 만져 보거나 관찰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 속에서 옛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며 선조들의 지혜와 예술적 감성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가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다면 가슴앓이 같은 진한 그리움만 쌓여 갈 것이다. 문화재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잃어버린 과거의 하나는 이 땅을 떠나 있는 문화유산들이다. 국외에는 16만점이 넘는 우리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유출된 문화재를 찾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풀어야 한다. 덕종어보가 돌아오기까지도 시간과 역사의 실타래를 조심스럽게 풀어 온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문화재 반환 문제를 놓고 양국 혹은 양 기관과 갈등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덕종어보는 1471년에 성종이 부친인 덕종을 ‘온문 의경왕’으로 추존하기 위해 존호를 올리면서 제작된 것이다. 이는 조선왕조 건국 이념인 유교의 효사상의 상징이기도 하다. 덕종어보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자료를 보면 1943년까지 종묘에 보관돼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 2013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외국 박물관에 있는 한국문화재 현황을 조사하던 차에 덕종어보가 미국 시애틀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왕실의 도장은 쓰임새에 따라 국새와 어보로 나누어 부른다. 국새가 중요한 나랏일에 사용된다면 어보는 왕과 왕비, 왕세자와 왕세자빈 등의 의례를 국가적으로 기념하기 위한 성격을 지닌다. 제작 목적이 다르긴 해도 국새와 어보는 한 나라의 국격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7월부터 덕종어보를 소장하고 있는 시애틀미술관 측과 직접 반환 협상에 나섰다. 우리 측은 우호적 반환을 위한 방안과 입장을 제시했으며 반환의 법적 근거 마련과 교류협력 강화를 위해 양측은 양해각서 체결에 합의했다. 2014년 11월 시애틀미술관 이사회가 반환을 승인하면서 성숙한 협상의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었다. 이 같은 덕종어보 반환은 협의에 의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우호적인 교류 형식을 취하는 방법이어서 불법 반출 문화재 환수에 새로운 역사로 기록될 수 있으며 앞으로의 환수 방향에도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 기대된다. 물론 반환 과정에서 오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힘겨운 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교류와 협력으로 설득을 이끌어 낸 성숙한 협상은 고국을 바라보고 있는 많은 국외 문화재에도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상의 얼이 배어 있는 유물들이 대한민국으로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은 국제사회와의 합법적 소통과 문화적 교류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국외 문화재 반환 작업이 문화강국의 뿌리와 문화융성의 국가 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일일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 [42년 만의 최악 가뭄] “가뭄 대응 조직·매뉴얼·경보 전혀 없어… 2년 연속 가뭄 닥치면 버텨내기 힘들어”

    [42년 만의 최악 가뭄] “가뭄 대응 조직·매뉴얼·경보 전혀 없어… 2년 연속 가뭄 닥치면 버텨내기 힘들어”

    “현재 중부지방의 가뭄은 관측 이래 ‘최악’입니다. 특히 개성과 강화도의 상황이 매우 극심해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절대적인 양도, 평년과 비교한 상대적인 양도 ‘최소’입니다.”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29일 이번 가뭄을 ‘관측 이래 최악’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변 교수가 고안한 계산법으로, 현재 남아 있는 물의 양을 계산하는 ‘유효강수량’과 남아 있는 물의 양이 평균보다 얼마나 모자란지를 가늠하는 ‘유효가뭄지수’(EDI)가 모두 역대 ‘최소’라는 것이다. 가뭄의 원인이 ‘지난해 여름의 마른장마’ 때문이라는 일부 의견에 대해 변 교수는 “그건 여러 이유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변 교수는 그보다 지난겨울 엘니뇨 때문에 남풍이 약해진 것이 더욱 주요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겨울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북태평양고기압이 약화됐고, 이에 저기압의 경로가 남편향되고 약화됐다”며 “남풍이 약해 지리산을 넘지 못한 수증기가 남쪽에만 비를 뿌리는 반면, 그 위로는 올라가지 못하는 ‘비그늘 효과’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가뭄주기설’을 주장하고 있다.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 등에 남아 있는 가뭄 기록을 분석한 결과 6년, 12년, 38년, 124년의 주기가 있다는 것이다. 변 교수는 “2015년은 38년을 주기로 한 가뭄기의 정점이자 124년을 주기로 하는 극대 가뭄기의 시작점이 되는 중요한 해”라고 경고했다. 향후 기상 전망도 어둡게 내다봤다. 변 교수는 “2025년을 정점으로 해서 올해부터 그때까지 해마다 가뭄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현재 우리나라 물 살림이 한 해 가뭄은 견디지만, 연속 두 해까지는 버텨 내기 힘든 실정이라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가뭄 대책과 관련해서는 “가뭄이 발생하면 대응하는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조직도 없고 매뉴얼도 없으며 기상청은 가뭄 경보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면서 “‘가뭄대책반’ 같은 조직의 일원화, 정책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4200년 된 역대 최고(最古) 유방암 걸린 유골 발견

    4200년 된 역대 최고(最古) 유방암 걸린 유골 발견

    무려 4200년 된, 역대 확인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유방암으로 죽은 유골이 발견됐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이집트 당국은 파라오 제 6 왕조 말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방암을 앓은 여성의 유골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200년 전 살았던 이 유골은 이집트 아스완 지역에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발굴됐으며 현재 나일강 가운데 떠있는 엘레판티네섬의 귀족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유골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역시 유방암을 앓은 흔적이 발견된 점이다. 오늘날 암은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대표적인 병이지만 암으로 죽은 이같은 고고학적 '기록'은 의외로 거의 발견되지 않고있다. 이 때문에 암 발병 이유가 현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밀접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왔다. 이집트 고대유물부 장관 맘두 알-다마티는 "여성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심한 수준으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 였다" 면서 "죽기 전까지 오랜 시간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러시아 연구팀은 일명 '시베리아 공주' 미라가 유방암으로 사망했다는 MRI(자기공명영상진단)로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1993년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고지대 탐사 도중 고분에서 처음 발견된 이 미라는 2500년 전 약 25세에 사망했으며 전문가들은 그녀가 왕족이자 여사제일 것으로 추정해 이후 ‘시베리아 공주’, ‘얼음 공주’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작가 30대 남자인줄 알았더니 ‘반전’ 미모 보니..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작가 30대 남자인줄 알았더니 ‘반전’ 미모 보니..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작가 30대 남자인줄 알았더니 ‘반전’ 미모 보니..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웹툰 ‘조선왕조실톡’의 작가 무적핑크가 화제에 올랐다. 26일 방송된 JTBC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에는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가 출연했다. 웹툰 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무적핑크는 서울대학교 디자인학과에 재학중이며 수려한 미모를 자랑했다. 무적핑크는 “다들 날 30대 남자로 알고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난 역사 만화가 아니라 일상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상 이야기다. 단지 조선시대서 소재를 얻었을 뿐이다”고 웹툰 ‘조선왕조실톡’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무적핑크는 대화체로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자체가 대화를 기록한 로그라서 원본 덕을 많이 봤다. 난 거기에 인격을 추가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한편 무적핑크의 ‘조선왕조실톡’은 조선시대 인물들의 이야기를 메신저 대화로 재치있게 재구성한 웹툰이다. 네티즌들은 “조선왕조실톡 무적핑크, 얼굴도 예쁘네”, “조선왕조실톡 무적핑크, 남자인줄 알았던 1인 추가요”, “조선왕조실톡 무적핑크, 머리가 좋으니 이런 소재도 생각해내는구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JTBC ‘썰전’ 캡처(조선왕조실톡 무적핑크)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보니 세종대왕이 신하를 굴려? 인격 부여하니 ‘반전’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보니 세종대왕이 신하를 굴려? 인격 부여하니 ‘반전’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보니 세종대왕이 신하를 굴려? 인격 부여하니 ‘반전’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웹툰 작가 무적핑크가 ‘조선왕조실톡’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지난 26일 방송된 JTBC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에는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는 “다들 날 30대 남자로 알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난 역사 만화가 아니라 일상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상 이야기다. 단지 조선시대서 소재를 얻었을 뿐이다”고 웹툰 ‘조선왕조실톡’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무적핑크는 대화체로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조상님들 공덕이다. 조선왕조실록 자체가 대화를 기록한 로그라서 원본 덕을 많이 봤다. 난 거기에 인격을 추가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무적핑크의 ‘조선왕조실톡’은 조선시대 인물들의 이야기를 메신저 대화로 재치있게 재구성한 웹툰이다. 사진=JTBC ‘썰전’ 캡처(조선왕조실톡 무적핑크)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조선왕조실톡’ 무적핑크 “역사 만화 아닌 일상 만화일 뿐”

    ‘조선왕조실톡’ 무적핑크 “역사 만화 아닌 일상 만화일 뿐”

    지난 26일 방송된 JTBC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에는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는 “난 역사 만화가 아니라 일상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상 이야기다. 단지 조선시대서 소재를 얻었을 뿐이다”고 웹툰 ‘조선왕조실톡’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무적핑크는 대화체로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조상님들 공덕이다. 조선왕조실록 자체가 대화를 기록한 로그라서 원본 덕을 많이 봤다. 난 거기에 인격을 추가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 ‘썰전’ 출연..미모에 깜짝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 ‘썰전’ 출연..미모에 깜짝

    26일 방송된 JTBC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에는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가 출연했다. 무적핑크는 “다들 날 30대 남자로 알고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난 역사 만화가 아니라 일상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상 이야기다. 단지 조선시대서 소재를 얻었을 뿐이다”고 웹툰 ‘조선왕조실톡’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무적핑크는 대화체로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자체가 대화를 기록한 로그라서 원본 덕을 많이 봤다. 난 거기에 인격을 추가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조선왕조실톡 무적핑크, 작가 맞아? 미모에 ‘화들짝’

    조선왕조실톡 무적핑크, 작가 맞아? 미모에 ‘화들짝’

    26일 방송된 JTBC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에는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가 출연했다. 무적핑크는 “다들 날 30대 남자로 알고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난 역사 만화가 아니라 일상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상 이야기다. 단지 조선시대서 소재를 얻었을 뿐이다”고 웹툰 ‘조선왕조실톡’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무적핑크는 대화체로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자체가 대화를 기록한 로그라서 원본 덕을 많이 봤다. 난 거기에 인격을 추가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역사 만화? “일상 만화일 뿐”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역사 만화? “일상 만화일 뿐”

    지난 26일 방송된 JTBC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에는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는 “난 역사 만화가 아니라 일상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상 이야기다. 단지 조선시대서 소재를 얻었을 뿐이다”고 웹툰 ‘조선왕조실톡’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무적핑크는 대화체로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조상님들 공덕이다. 조선왕조실록 자체가 대화를 기록한 로그라서 원본 덕을 많이 봤다. 난 거기에 인격을 추가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웹툰보니 세종대왕의 반전 성격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웹툰보니 세종대왕의 반전 성격

    지난 26일 방송된 JTBC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에는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는 “난 역사 만화가 아니라 일상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상 이야기다. 단지 조선시대서 소재를 얻었을 뿐이다”고 웹툰 ‘조선왕조실톡’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무적핑크는 대화체로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조상님들 공덕이다. 조선왕조실록 자체가 대화를 기록한 로그라서 원본 덕을 많이 봤다. 난 거기에 인격을 추가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어떻게 만들어졌나 보니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어떻게 만들어졌나 보니

    지난 26일 방송된 JTBC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에는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는 “난 역사 만화가 아니라 일상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상 이야기다. 단지 조선시대서 소재를 얻었을 뿐이다”고 웹툰 ‘조선왕조실톡’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무적핑크는 대화체로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조상님들 공덕이다. 조선왕조실록 자체가 대화를 기록한 로그라서 원본 덕을 많이 봤다. 난 거기에 인격을 추가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 알고보니 미모의 서울대생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 알고보니 미모의 서울대생

    26일 방송된 JTBC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에는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가 출연했다. 서울대학교 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진 무적핑크는 “다들 날 30대 남자로 알고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난 역사 만화가 아니라 일상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상 이야기다. 단지 조선시대서 소재를 얻었을 뿐이다”고 웹툰 ‘조선왕조실톡’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무적핑크는 대화체로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자체가 대화를 기록한 로그라서 원본 덕을 많이 봤다. 난 거기에 인격을 추가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작가 30대 남자라고?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작가 30대 남자라고?

    26일 방송된 JTBC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에는 웹툰 ‘조선왕조실톡’ 작가 무적핑크가 출연했다. 무적핑크는 “다들 날 30대 남자로 알고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난 역사 만화가 아니라 일상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상 이야기다. 단지 조선시대서 소재를 얻었을 뿐이다”고 웹툰 ‘조선왕조실톡’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무적핑크는 대화체로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자체가 대화를 기록한 로그라서 원본 덕을 많이 봤다. 난 거기에 인격을 추가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4200년 전에도 ‘유방암’ 있었다...역대 최고 유골 발견

    4200년 전에도 ‘유방암’ 있었다...역대 최고 유골 발견

    무려 4200년 된, 역대 확인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유방암으로 죽은 유골이 발견됐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이집트 당국은 파라오 제 6 왕조 말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방암을 앓은 여성의 유골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200년 전 살았던 이 유골은 이집트 아스완 지역에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발굴됐으며 현재 나일강 가운데 떠있는 엘레판티네섬의 귀족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유골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역시 유방암을 앓은 흔적이 발견된 점이다. 오늘날 암은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대표적인 병이지만 암으로 죽은 이같은 고고학적 '기록'은 의외로 거의 발견되지 않고있다. 이 때문에 암 발병 이유가 현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밀접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왔다. 이집트 고대유물부 장관 맘두 알-다마티는 "여성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심한 수준으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 였다" 면서 "죽기 전까지 오랜 시간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러시아 연구팀은 일명 '시베리아 공주' 미라가 유방암으로 사망했다는 MRI(자기공명영상진단)로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1993년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고지대 탐사 도중 고분에서 처음 발견된 이 미라는 2500년 전 약 25세에 사망했으며 전문가들은 그녀가 왕족이자 여사제일 것으로 추정해 이후 ‘시베리아 공주’, ‘얼음 공주’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영조시대 宮생활 재현 참여하세요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은 조선왕조 영조 시대의 궁궐 일상 재현에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1750 시간여행, 그날!’을 개최한다. 1750년(영조 26년) 3월 26일 창경궁을 배경으로 당시 국왕의 하루와 궁궐 사람들의 일상을 국민들이 열연하는 행사다. 오는 5월 2~10일 4대궁, 종묘, 한양도성에서 열리는 제1회 궁중문화축전 개최 기념 행사 중 하나다. 창경궁에서 5월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 당상관, 당하관, 상궁, 나인, 호위군사, 차비(差備·임시로 특별 사무를 맡은 사람), 의장수(儀仗手·각종 의장물을 드는 사람) 등을 연기할 200여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26일부터 4월 20일까지 이메일(gfestival@chf.or.kr)로 참가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무려 4200년 된 역대 최고(最古) 유방암 걸린 유골 발견

    무려 4200년 된 역대 최고(最古) 유방암 걸린 유골 발견

    무려 4200년 된, 역대 확인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유방암으로 죽은 유골이 발견됐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이집트 당국은 파라오 제 6 왕조 말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방암을 앓은 여성의 유골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200년 전 살았던 이 유골은 이집트 아스완 지역에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발굴됐으며 현재 나일강 가운데 떠있는 엘레판티네섬의 귀족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유골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역시 유방암을 앓은 흔적이 발견된 점이다. 오늘날 암은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대표적인 병이지만 암으로 죽은 이같은 고고학적 '기록'은 의외로 거의 발견되지 않고있다. 이 때문에 암 발병 이유가 현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밀접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왔다. 이집트 고대유물부 장관 맘두 알-다마티는 "여성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심한 수준으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 였다" 면서 "죽기 전까지 오랜 시간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러시아 연구팀은 일명 '시베리아 공주' 미라가 유방암으로 사망했다는 MRI(자기공명영상진단)로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1993년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고지대 탐사 도중 고분에서 처음 발견된 이 미라는 2500년 전 약 25세에 사망했으며 전문가들은 그녀가 왕족이자 여사제일 것으로 추정해 이후 ‘시베리아 공주’, ‘얼음 공주’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조선왕조 국왕이 임명했던 경복궁 수문장 임명식 재현

    조선왕조 국왕이 임명했던 경복궁 수문장 임명식 재현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은 오는 29일 오후 2시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수문장(도성과 궁궐의 문을 지키는 책임자)을 국왕이 친히 낙점해 임명하는 ‘경복궁 수문장 임명의식’을 재현한다. 수문장 임명식은 ‘조선왕조실록’ 예종 1년(1469) 기록을 근거로, 국왕이 친히 경복궁 흥례문에 행차해 수문장에게 패(牌)와 광화문 출입관원을 기록하는 출문부를 내리는 의식과 축하공연으로 진행된다. 왕실 호위군 갑사(甲士)를 선발하기 위한 활쏘기·곤봉 체험, 조선왕조실록 등 고증에 따라 제작된 갑옷·깃발·무기 등 수문군의 복식·소품 관람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열린다. ‘2015년도 명예 수문장’으로는 의정부소방서 진옥진 소방사가 임명된다. 진 소방사는 지난 1월 의정부 아파트 화재 때 투철한 사명감과 살신성인의 자세로 소중한 생명을 지켜냈다. 지난해엔 서울 종로구 시청각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 16명이 명예수문장으로 임명됐었다. 문화재청은 “수문장을 임명하는 의례 재현과 함께 전문가의 고증으로 제작된 복식과 의장물 등을 통해 품격 있는 조선시대 궁궐 호위문화를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세계유산 서울 정릉 재실 복원 25일 공개

    세계유산 서울 정릉 재실 복원 25일 공개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는 1960년대 없어졌던 서울 정릉(貞陵)의 재실(齋室·제사를 준비하는 곳)을 3년에 걸쳐 복원해 25일 일반에 공개한다. 정릉은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의 계비(繼妃)인 신덕왕후 강씨(1356~1396)의 능이다. 원래는 도성 내 지금의 서울 중구 정동에 있었고 규모도 현재보다 크고 화려했다. 정동이라는 현재의 지명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성계는 신덕왕후를 극진히 아껴 그의 소생인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1392년)한 데 이어 왕비가 죽자 지금의 정동에 능 자리를 웅장하게 조성하고 그 옆을 자신의 묏자리로 점찍기도 했다. 하지만 태조의 정비(正妃)였던 신의왕후 한씨 아들인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1400년)하고 상왕으로 있던 이성계마저 승하(1408년)하면서 1409년 성북구 소재 현재의 자리로 내몰렸고, 규모도 대폭 축소됐다. 정자각은 해체돼 중국 사신단을 영접하던 태평관을 짓는 데 쓰였고 병풍석은 홍수에 무너진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되는 등 온갖 수난도 겪었다. 폐허처럼 방치되던 정릉은 우암 송시열 등의 주도로 1669년(현종 10년) 비로소 정비됐다. 1899년 신덕왕후가 신덕고황후로 추존되면서 이듬해 재실도 다시 지었지만 초석만 남은 채 1960년대 멸실됐다. 문화재청은 “재실이 어떻게 없어졌다는 기록이 없어 정확한 멸실 경위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2009년 정릉을 포함한 조선왕릉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능제(制·능의 기본 시설) 복원 차원에서 재실을 복원키로 하고 2012년 그 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과정에서 1788년 발간된 ‘춘관통고’(春官通考) 기록과 일치하는 6칸 규모의 재실 터와 건물 배치 등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흔적)를 확인했다. 발굴조사 결과와 사료를 근거로 2012년부터 3년간 재실 본채와 제기 보관 창고인 제기고, 행랑, 협문(3곳)과 담장 등을 15억원을 들여 복원했다. 문화재청은 “재실 복원을 통해 정릉의 진정성을 회복하고 역사성과 정체성도 확고히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씨줄날줄] 中 ‘방방면’과 명동 거리음식/정기홍 논설위원

    중국 고사(古史)집에서 시안 지방의 관중(關中)인들이 좋아한다는 ‘방방면’을 소개한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모양이 우리의 수제비와 비슷한데 면발의 폭은 2~3촌(1촌=3.3㎝), 길이는 1m 남짓 된다고 한다. 두꺼운 것은 동전 두께이고 얇은 것은 매미 날개처럼 가늘다. 국수 한 가락이면 밥 한 끼를 너끈히 먹는 셈이라고 한다. 관중 방언인 ‘방’ 자는 무려 57획이나 돼 중국의 글자 가운데 획수가 가장 많고 사전에 실리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아직 표준음이 없다니 글자로 유명한 음식이 아닌가 싶다. 중국에는 궁중식은 물론 골목 길거리 음식도 매우 다양하다. 중국을 프랑스, 이탈리아(혹은 터키)와 함께 3대 음식 국가라지만 종류만큼은 이들 국가가 따르지 못한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요리문화를 달리하면서도 한족 음식의 정통성을 이어오다가 만주(몽골)족이 세운 청나라 때부터 음식문화가 뒤섞여 오늘에 이른다. 한족의 요리사들이 만주족 관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솜씨 경쟁을 벌이면서 종류와 맛이 진화했다. 30~40가지의 요리가 나오는 ‘만한취안시’(滿漢全席)가 대표적 궁중식이고, 베이징의 양고기 샤부샤부인 ‘솬양러우’도 몽골 제국이 만든 음식이다. 베이징의 골목길인 ‘후퉁’(胡同)으로 잘 알려진 길거리 음식도 궁중식 못지않다. 후퉁에서 파는 ‘바이미저우’(흰 쌀죽), ‘유타오’(막대기 모양의 튀긴 빵) 등은 관광객이 먹는 필수 코스의 요리다. ‘책상다리 빼고 네 발 달린 건 다 먹는다’는 중국 음식문화의 일면이다. 중국의 흥미로운 음식문화는 이외에도 많다. 환관과 문화혁명은 큰 영향을 끼쳤다. 환관이 황제에게 올리는 음식의 재료를 까다롭게 고르면서 중국 음식 역사를 ‘환관 요리’의 역사라고도 한다. 청나라 말의 서태후가 먹었다는 달걀 요리는 지금 가격으로 한 개에 수십만원대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문화혁명은 큰 전환점이었다. 혁명을 이끌던 마오쩌둥은 고급 음식점을 문 닫게 하고 요리사를 부르주아 앞잡이로 탄압해 요리법을 적은 원본을 상당수 없앴다. 반면 노동자와 농민, 병사의 식단인 ‘노동병 메뉴’를 등장시켰다. 당시 배추와 당면 몇 가락을 담은 멀건 죽과 찐빵만을 내놓았다고 한다. 마오쩌둥은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며 매운 음식을 권장했다. 매운맛의 고장인 쓰촨 출신인 덩샤오핑도 매운 것을 좋아해 매운맛은 중국 음식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요즘엔 서민 요리는 매워지고 고급 요리는 달아지고 있다. 서울 명동 거리에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몰리면서 이들의 입맛에 맞춘 일색으로 바뀐다고 한다. 한때 일본인이 좋아하던 음식은 물론 떡볶이 등 우리의 포장마차 음식도 자리를 내주고 있다. 명동에서 우리의 길거리 음식이 사라질까 걱정된다. ‘방방면’도 상륙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음식 주권을 생각할 때가 아닌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3000 여년 전 벽화 간직한 이집트 무덤 내부 공개

    3000 여년 전 벽화 간직한 이집트 무덤 내부 공개

    이집트 룩소르에서 3000 여년 전 그린 벽화가 고스란히 보존된 무덤 2곳을 새로 발견됐다고 라이브사이언스 등 해외 언론이 14일 보도했다. 현지시간으로 2일과 10일에 발견된 이 무덤들은 이집트 남부 나일강 주변에서 발견됐으며,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시대(1543-1292 BC)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일 발견된 무덤의 주인은 이집트의 신 ‘아문’(Amun)을 숭배하는 사원을 지키는 아멘호텝(Amenhotep)의 것으로 보이며, 10일 발견된 무덤은 그의 아들과 아내의 무덤인 것으로 추정된다. 두 무덤에서는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벽화가 다수 발견됐다. 벽화는 밝은 녹색과 갈색 위주로 그려져 있으며, 비교적 밝은 색이 주를 이룬다. 세밀한 표현이 눈에 띄며 아멘호텝 아들 부부의 나이와 이들의 일상, 두 사람을 축복하는 내용을 담은 상형문자가 함께 포함돼 있다. 이집트 유물부 맘도 알다마티 장관은 “무덤 주인과 아내의 일상을 담은 수려한 벽화를 찾아냈다”면서 “안타깝게도 무덤 주인의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 무덤은 이미 고대에 도굴을 당한 것 같다”고 발표했다. 미국 출신 고고학자로 구성된 발굴팀은 아멘호텝과 그의 아들 내외 무덤이 T자 형태로 되어 있으며, 신전 및 석관이 파괴된 이유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들이 숭배한 아문 신(神)은 애초 바람과 공기의 신이었으며, 후에 태앙신 라(레)와 합쳐진 뒤 아문-라, 아문-레 형태로 태양을 상징하는 신이 되었다. 이들 무덤이 발견된 곳은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700㎞가량 떨어진 곳으로 ‘귀족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유적지 부근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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