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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빛 발견] 한글, 기쁨이지만 아픔도 있는 이름

    ‘한글’은 문자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한글’과 ‘한국어’는 곳곳에서 섞여 쓰인다. ‘한국어’라는 단어가 잘못 쓰이는 예는 찾기 어렵지만, ‘한글’이 오류를 범하는 예는 수없이 많다. ‘한글 이름’이라든가, ‘한글로 번역한다’ 같은 표현이 그러하다. ‘우리말 이름’이거나, ‘한국어로 번역한다’라고 해야 말이 된다. 이렇게 ‘한글’과 ‘한국어’가 구별되지 않고 쓰이는 데는 역사적 이유가 있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붙인 ‘훈민정음’에서 시작해 ‘한글’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다. 대표적인 게 ‘언문’이다. 일찍부터 ‘한자’에 대응해 붙여진 이름이다. 애초 낮추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속되다는 의미가 스며들었고 그렇게 쓰였다. 이 외 ‘암글’이나 ‘반절’이라고도 했다. 그러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이 새로워지면서 나라 문자의 중요성도 커졌다. ‘언문’은 다시 ‘국문’이란 이름을 얻고 사용되기 시작했다. 갑오개혁 때 ‘국문’은 국가의 공식 문자가 된다. 공문서에 ‘국문’을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국문’의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국문’은 곧 일본의 ‘가나’를 가리키게 됐고 ‘국어’는 ‘일본어’를 뜻하게 됐다. 우리 고유문자를 가리키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이 탄생했다. ‘한글’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우리 정신을 지키는 무엇이기도 했다. 이렇게 ‘한글’에는 문자 이상의 구실을 한 역사가 있다. 지금 ‘한글’은 모든 언어의 꿈이라고도 불린다. 이경우 어문팀장 wlee@seoul.co.kr
  • ‘혼술남녀’ 하석진, “서울대+사짜 직업+모델스타일” 고퀄리티 이상형 언급

    ‘혼술남녀’ 하석진, “서울대+사짜 직업+모델스타일” 고퀄리티 이상형 언급

    ‘혼술남녀’ 하석진의 ‘고퀄리티 배우자 이상형’이 공개됐다. 최근 방송된 tvN 월화드라마 ‘혼술남녀’에서는 자신의 이상형을 상세히 밝히는 하석진(진정석 역)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석진은 자신이 평소 원하던 ‘고퀄리티 배우자’의 조건을 하나씩 꼽았다. 하석진은 “일단 저랑 동문인 서울대 출신, 2세를 위해서라도 학벌 떨어지는 여잔 딱 질색입니다”라고 학벌을 조건으로 꼽았다. 이어 “직업은 전문직 종사자. 기왕이면 사짜 붙은 직업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석진은 “연봉이 저랑 같을 순 없어도 1/10 정도만 되면 좋을 것 같네요. 생긴 건 키가 큰 모델 스타일을 좋아합니다”라며 연봉과 외모 조건까지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욕심이 과하다’고 지적하자 하석진은 “그게 왜 욕심입니까? 저 진정석입니다. 그런 여자 만날 능력 되고 자격 되는 고퀄리티 남자라고요”라고 반문했다. 여기에 “이런 제가 학벌 후지고 연봉도 낮고 생긴 것도 그저 그런 여자를 만나야겠습니까? 그게 더 웃기죠”라고 응수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열린세상] 유자광과 어떤 출세/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유자광과 어떤 출세/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거의 모든 사람은 출세하기를 원한다. 입신양명 같은 표현도 출세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미사여구나 다름없다. 사람들이 죄다 출세를 향해 경주하니 출세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도 잘 타고나야 할뿐더러 정세 판단에 탁월하고 인맥도 잘 타야 한다. 따라서 한 사회의 주류에 들지 못한 소수 출신으로서 주류의 벽을 넘고 출세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이들은 대개 최고 보스에게 절대 충성을 실천해 보임으로써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각인시켜 출세를 도모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 역사의 예를 보자면 얼자(孼子)라는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어 권력의 한복판에 들어가 일세를 풍미하다가 끝내 몰락한 유자광(柳子光·1439~1512)의 삶이 한 전형적 예다. 조선에서는 서얼(庶孼)을 혹독하게 차별했다. 서자는 가족의 정식 일원이 아니었기에 족보에도 제대로 오를 수 없었다. 국가마저도 서자를 차별해 서자는 원칙적으로 과거(문과)에 응시할 수 없었고, 설사 요행히 벼슬길에 나가더라도 요직에는 오를 수 없었다. 이런 조선에서 태어났으니 유자광에게 출세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렇지만 문무를 겸비한 유자광은 타고난 감각과 대담한 실천을 통해 출세가도를 달렸다. 1467년에 발생한 이시애의 난은 그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지방의 일개 군인 신분임에도 대담하게 상소를 올려 진압군 장수들의 무능을 질타하고 자신이라면 충정으로 선봉에 서서 이시애의 목을 당장 따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에 세조는 그를 바로 전선으로 보냈고, 유자광은 실제로 선봉에 서서 용감히 싸움으로써 진압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때부터 유자광은 세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아 서얼에서 허통(許通)되어 벼슬길에 나섰으며, 급기야 병조정랑에 임명됐다. 인사권을 행사하는 정랑은 전통적으로 문과 급제 출신들에게만 가능한 요직인데,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지방의 천출(賤出) 군인이던 자가 그 자리에 떡하니 앉으니 조정이 조용할 리 없었다. 그러자 세조는 특별 과거시험을 통해 유자광을 1등으로 합격시킴으로써 양반 신료들의 반대를 일축했다. 이런 세조의 갑작스런 죽음은 유자광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는 시간문제였다. 그렇지만 그는 새 국왕 예종의 관심을 얻기 위해 또 다른 폭탄 상소를 올려 남이(南怡)를 역모 혐의로 고변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예종의 신임을 받았고, 공신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 예종마저 바로 죽었으니 유자광에게는 운명의 장난이었다. 오히려 역모에 휘말려 옥에 갇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그렇지만 이때도 그는 옥중에서 자기 옷을 찢어 절절한 상소를 올림으로써 살아나 재기했다. 상소의 내용은 국왕 성종이 이제 성인이 됐으므로 당장 친정(親政)에 임해야 하는데도, 한명회(韓明澮) 등 중신들이 대비를 조종해 수렴청정을 연장하려 한다는 폭탄 발언이었다. 이 상소를 계기로 한명회의 권세는 크게 꺾였고, 성종은 친정을 시작했으며, 유자광은 특사를 받아 살아났다. 연산군 때도 유자광의 출세 비결은 국왕의 의도대로 충실히 움직임으로써 국왕이 정국을 확실히 주도할 수 있도록 판을 짜는 일이었다. 실제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배후에서 긴밀하게 움직인 이가 바로 유자광이었다. 이 두 사화를 통해 국왕의 총애는 날로 깊어 갔으나 주류 양반사회는 그를 공공의 적으로 여겼다. 유자광의 감각은 연산군 말기에 두드러졌다. 역모를 눈치챈 그는 고변하기는커녕 오히려 역모(반정)에 가담함으로써 연산군과 함께 몰락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반정공신으로 우뚝 섰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주류 양반 신료들의 거센 탄핵을 받아 몰락하여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그의 한계였던 것이다. 이렇듯 유자광의 출세 비결은 오로지 국왕의 특별한 총애였다. 여종의 몸에서 태어난 그가 국왕의 신임을 받기 위해서는 사실상 그 길밖에 없었다. 주류에 들지 못한 신분으로 정치 무대에 올라선 그는 시종일관 오직 한 사람 곧 국왕만 바라보며 내달렸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근 여당 대표의 단식이라는 전대미문의 희한하고도 황당한 뉴스를 접하면서 불현듯 뇌리를 스친 ‘어떤 출세 이야기’다.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추사 김정희도 힐링했다는 백사실계곡 별장터 찾아 시간 여행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추사 김정희도 힐링했다는 백사실계곡 별장터 찾아 시간 여행

    서울미래유산은 정치역사, 산업노동, 시민생활, 도시관리, 문화예술 등 5개 분과로 나뉜다. 산업노동분과 세부선정기준에 따르면 개별 건조물보다는 산업활동 간 상호 유기적 관계를 갖는 단지 전체를 대상으로 선정한다. 도시산업사에서 상징성이 높은 건물은 개별 선정이 가능하다. 공산품의 경우 최초 제품이라는 상징성이 있어야 하고 동상·탑·기념물인 경우 예술적 가치만을 고려한다. 서울의 산업화와 노동현실을 다룬 문학작품도 지정할 수 있다. 다음엔 시민생활분과 세부선정기준을 알아본다. 서울시는 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서울신문·문화지평과 공동주관으로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입추, 처서, 백로 등 가을 절기가 모두 지났지만 여전히 무더웠던 지난달 10일.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홍지문과 탕춘대성(서울시 유형문화재 33호)에서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아홉 번째 답사가 오전 10시 시작됐다. 참석자 대부분이 생소하게 마주한 성과 성문 앞에서 배건욱(47)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해설에 귀를 쫑긋 세웠다. 홍지문·세검정 현판은 박정희 친필전국 21개 문화재에 흔적… 가장 많아 “홍지문, 탕춘대성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산성 명칭을 탕춘대성이라고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쪽 100여m 되는 산봉우리에 탕춘대(蕩春臺)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탕춘대는 연산군이 1506년 이곳에 누대(樓臺)를 지어 연희 장소로 삼은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영조 때는 무사들을 훈련시키는 연융대(鍊戎臺)로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세검정 정자를 지나 월드캐슬 빌라 정문 왼쪽 암벽 아래 표지석으로 남아 있다. 배 해설사는 특유의 또렷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왜란과 호란 과정에서 수차례 한양이 함락되는 수모를 겪었던 조선 왕조는 수도 방위를 전후 복구의 중심에 뒀습니다. 성 축조에는 많은 찬반 양론이 있었고 공사가 거의 완성될 때까지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신하들이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서울미래유산’ 소전 손재형 옛 가옥현재는 한정식집 ‘석파랑’으로 변신 홍지문 편액은 숙종이 친필로 내렸다. 한성 북쪽 문이라서 한북문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임금이 편액을 내렸기 때문에 홍지문으로 정리됐다. 1921년 1월 문루가 주저앉은 데 이어 8월에 대홍수로 사천(모래내)이 흐르던 오간수문마저 유실된 것을 1977년 복원했다. 편액은 이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것이다. 편액 글씨와 관련해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대통령 친필 문화재 현판 현황’에 따르면 전국 27곳 문화재에 전직 대통령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그중 홍지문, 세검정 등 박 전 대통령 친필이 있는 곳이 21곳으로 가장 많았다. 노 의원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재복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코스에는 서울미래유산이 단 한 곳뿐이다. 종로구 홍지동 125에 있는 한정식집인 석파랑이다. 서예계 거목인 소전 손재형(1903∼1981) 선생이 말년에 작품활동을 했던 곳으로 보전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배 해설사에 따르면 이곳은 한정식집으로 서울미래유산이 된 게 아니라 소전이 지은 옛 가옥이기 때문이다. 1985년 사용 승인된 한옥은 1989년 소유주가 소전의 딸에서 현재 석파랑을 운영하는 김주원 회장으로 변경됐다. 김 회장은 1993년부터 이곳을 한식당으로 탈바꿈시켰다. 김 회장은 “가족 잔치와 상견례 장소로 많이 이용되고 특히 한국을 찾은 외교사절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석파랑 언덕배기에는 석파정 별당(서울시 유형문화재 23호)이 있다. 소전이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석파정(서울시 유형문화재 26호)에서 별당을 옮겨 놓은 것이다. 별당에서는 조선 후기 유행했던 중국풍 건축미를 감상할 수 있다. 배 해설사는 “별당 규모는 작지만 훌륭한 기술을 가진 한옥 장인이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 지은 조선 후기 상류사회의 대표적인 별장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석파(石坡)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호로 석파정은 이번 답사 종착지인 서울미술관 뒤쪽에 있다. 원래 이 정자는 조선 말 세도가인 영의정 김흥근의 별장이었다. 흥선대원군은 이를 자신의 별장으로 만들고 싶어 고종을 하룻밤 머물게 하는 꼼수를 부린다. 배 해설사는 “당시 군신관계 관습상 군왕이 머물렀던 곳은 신하가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흥근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정자를 상납해야 했다”고 말했다. 경내 안양각 뒤 바위에 ‘삼계동’이란 각자(刻字)가 있어서 ‘삼계동 정자’로 불리다가 대원군이 차지하면서 자신의 호를 딴 석파정(石坡亭)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번 코스의 테마는 ‘도심의 쉼터 부암동’이다. 서울 시내에서 몇 안 되는 고즈넉한 시골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동네다. 그래선지 예부터 세도가들의 별장이 많았다. 부암동 동명은 부암동 134에 부침바위(付岩)가 있던 데서 유래됐다. 부침바위에 다른 돌을 자기 나이 숫자대로 문지르다 붙여서 떨어지지 않으면 잃어버린 아들을 찾거나 사내아이를 얻는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 높이 2m 정도 되던 바위는 1960년 자하문 도로공사 때 깨뜨리기 전까지 서 있었다. 지금은 이 바위를 기념하는 비슷한 크기의 석조 조형물이 세검정 삼거리에 있고 표지석은 부암동 유원빌라 근처에 있다. 답사단은 세검정(서울시 기념물 4호)과 조선시대 궁중, 중앙관청에서 쓰는 종이를 만들던 조지서 터를 지나 세검정초등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운동장 구석진 곳에 있는 장의사(莊義寺) 당간지주(보물 235호)를 보기 위해서다. 장의사는 황산벌 싸움에서 전사한 신라 화랑 장춘랑과 파벌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당간지주란 절 입구에 깃발을 거는 기둥인 당간을 받치는 돌기둥을 말한다. 운동장 한쪽에 높이 3.63m의 거대한 석주 두 개가 단단하게 박혀 있다. 신라의 화랑 넋 기리는 ‘당간지주’초등학교 운동장 한켠에 위치한 ‘보물’ 답사에 참여한 류창국(46)씨는 “당간지주를 바라보고 있자니 신라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고 두 화랑의 기백을 상상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장의사는 연산군이 일대에 탕춘대를 만들면서 폐사되고, 이 터에는 ‘이괄의 난’의 영향으로 인조 2년(1624년)에 총융청이 자리잡았다. 총융청은 한양도성 외곽 경기지역 경비를 맡아 오다 고종 21년(1884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세검정초등학교 담장 중간쯤 총융청 표지석이 있다. 답사단은 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백사실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본격적인 도심의 쉼터로 들어가기 위함이다. 부암동 마을정자인 신영정을 지나면 마을 사람들이 만든 이정표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한다. 백사실계곡을 가려면 거대한 바위 위에 지어진 현통사를 지난다. 종로구 부암동 115 일대 백사실계곡은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지정된 도심 청정구역이다. 북악산 북사면에서 발원한 계곡물에는 도롱뇽, 가재, 무당개구리 등이 서식한다. 1800년대 별서 유적지인 백석동천(명승 제36호)이 각자로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별장터는 백사 이항복의 소유였다는 설이 많으나 고증되지 않았다. 후일 추사 김정희가 이 터를 사들여 새롭게 별서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옛 문헌에서 찾아냈다. 백사실계곡이 도심 속에 깨끗하고 조용한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아온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답사단이 찾은 이날 역시 계곡 밖은 햇볕이 이글거렸지만 이곳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만든 ‘녹색그늘’로 시원했다.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백석동천’(白石洞天)의 호방한 각자가 풍광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어머니와 부인, 딸 등 일가족과 함께 나온 이영기(41)씨는 “평소 무심코 지났던 곳에 대해 역사적 배경이 담긴 해설을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지역 문화 시니어클럽에서 활동하는 이재원(63)씨는 “저보다 연세가 많으신 클럽 어르신들을 백사실계곡에 모시고 와서 설명해 드리고 싶어서 먼저 배우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창의문(보물 1881호)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한양도성 백악구간이 훤하게 보인다. 멀리 백악의 가파른 산세를 좇아 도성을 쌓았을 조선 민중들의 거친 숨소리가 메아리로 들리는 듯하다. 서울 사소문 중 하나이자 자하문이란 예쁜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창의문에 다다랐다. 사소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귀한 유적이다. 인왕산 산세가 흡사 지네 같다고 해서 홍예문 천장에는 지네의 천적인 닭이 그려져 있다. 안평대군 이용의 별장인 무계정사(서울시 유형문화재 22호)가 있던 터에 이르자 한옥채 공사가 한창이었다. 명필이었던 안평대군이 남긴 ‘무계동’(武溪洞)이라는 각자가 이곳이 무계정사가 있던 터라는 것을 증명했다. 바로 옆은 문인 현진건의 집터가 있다. 답사단은 마지막 지점인 석파정이 있는 서울미술관에 도착했다. 몇 해 전 개인에게 팔린 뒤 미술관으로 변모했다. 입장권을 사야만 대원군의 별장을 오롯이 볼 수 있다. 아쉽지만 배 해설사가 준비해 온 사진으로 답사 갈증을 풀었다. 배 해설사는 “부암동이라는 공간은 조선시기 한양도성 너머에 있어 도성 배후지 역할을 했고 개발도 많이 됐지만 그래도 고유 모습을 꽤 간직한 곳이다. 특히 백사실계곡은 자연을 잘 간직하고 있고 일급수지의 청정지역이자 다양한 시간을 넘나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답사를 마무리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모델 빠나나 “몸무게 43kg 허리 22.5인치… 밥 절대 안 먹어”

    모델 빠나나 “몸무게 43kg 허리 22.5인치… 밥 절대 안 먹어”

    ‘160cm 모델’ 빠나나가 bnt와 패션 화보를 진행했다. 빠나나는 정식으로 모델 활동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신인이지만 15만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SNS 스타다. 짙은 쌍꺼풀에 두툼한 입술 등 서양적인 외모로 유명세를 떨쳐 혼혈아 오해를 받았던 그는 토종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모델로서는 다소 작은 키 160cm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몸매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작은 얼굴과 글래머러스한 라인을 완성, ‘마성의 비율’을 뽐냈다. 이번 촬영에서도 그의 비율은 빛을 발했다. 첫 번째 콘셉트는 보디수트를 입고 진행됐다. 아찔한 의상에 정장 재킷을 매치해 시크하고 도도한 여성으로 변신했고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캐주얼룩에 빠나나의 몽환적인 무드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사진 찍히는 것이 좋아 SNS에 올라온 게시물 중 마음에 드는 포토에게 직접 촬영을 요청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모델이 제 직업이 됐다. 피팅 모델을 시작으로 현재 경력은 채 1년도 되지 않은 상태. 이국적인 외모로 많은 관심을 받아 감사하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서양인처럼 생겼다는 말이 싫지는 않지만 수줍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현재 몸무게 43kg에 허리 22.5인치를 소유한 그의 몸매 관리 비결이 궁금했다. 그는 “과일은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마음껏 섭취하지만 밥은 하루 종일 안 먹는다. 빵 하나 혹은 콘푸라이트 한 그릇을 오후 2시 전에 먹고 다음날까지 아무것도 입에 안 댄 적도 있다. 40kg을 한 번쯤 찍어보고 싶다”고 전했다. 이상형에 대해서는 “이왕이면 성격 좋은 남자.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지 않고 침도 안 뱉는 사람이 좋다. SNS도 잘 안 했으면 좋겠다. 셀카도 안 찍어야 남자다워 보인다. 키도 크고 잘생기면 더 좋겠죠”라며 수줍게 말했다. 앞으로 활동 계획에 대해 묻자 그는 “뮤직비디오나 잡지 촬영을 통해 음산한 분위기 속 슬픔에 찬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다. 몽환적이면서도 스산한 분위기가 좋다. 또한 제가 직접 디자인한 속옷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디자인에 관심은 많지만 따로 공부는 하고 있지 않다. 성격이 안일한 편이라서 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며 열정에 가득 찬 눈빛을 보였다.
  • 그 사건 후 돌아온 힙합왕, 그러나 아직은 …

    그 사건 후 돌아온 힙합왕, 그러나 아직은 …

    대마초 흡연 혐의로 복역했던 래퍼 이센스가 출소했다.  복수의 연예 관계자에 따르면 이센스는 3일 오전 충청남도 홍성교도소에서 약 1년 6개월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조용히 출소했다. 특별한 인터뷰나 행사는 진행되지 않을 예정이며, 소속사 관계자들과 지인들의 경호 아래 극비리에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이센스는 음악 작업 등에만 열중할 계획이다. 활동 계획 역시 아직 정해진 바 없다.  한편 이센스는 지난해 9월부터 서울 마포구의 한 주차장 및 자택에서 3차례에 걸쳐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 기소돼 수감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수감 전 완성한 첫 정규앨범 ‘디 애넥도트(The Anecdote)’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한정판 1만6000장이 매진됐다. 지난 2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힙합음반’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네티즌들이 “죄는 미워하겠지만 재능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최고의 힙합왕이 돌아왔다”, “악마의 재능”며 안타까움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범죄자인 것은 분명하며 청소년에게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하는만큼 충분한 자숙이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제적 남자’ 김지운 “영국 해리 왕자와 동문, 왕가 특별대우 없었다”

    ‘문제적 남자’ 김지운 “영국 해리 왕자와 동문, 왕가 특별대우 없었다”

    ‘문제적 남자’ 김지운이 영국 윌리엄 윈저 왕자와의 에피소드를 공개해 화제다. 지난 2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문제적 남자’에서는 요리연구가 김지운이 영국 해리 왕세자와의 에피소드를 공개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MC 전현무는 “해리 왕자와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동문이라도 들었다”고 말했고, 이에 김지운은 쑥스러운 듯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물론 그 분이 가신 곳을 제가 간 거다”라고 말했다. 타일러는 “학교에서 왕가 특별 대우는 없냐”고 물었고, 김지운은 “학교 안에서는 똑같은 학생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지운은 “해리가 학교에서 연극하는 모습을 보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학교에 방문한 적이 있다. 평상시 보이는 모습처럼 고급 차에 기마병을 데리고 올 것 같았지만, 평범한 차에 보디가드 한 명을 데리고 여느 부모처럼 소박하게 왔다”며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어 “학교 안에서는 혼나는 것도 똑같이 혼났다”고 덧붙였다. 사진=방송화면 캡처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새 영화] ‘맨 인 더 다크’

    [새 영화] ‘맨 인 더 다크’

    제임스 완 감독의 ‘컨저링2’를 제치고 올해 공포 스릴러 중 최고 흥행작이 될 것으로 보이는 ‘맨 인 더 다크’가 국내 영화 팬들을 찾는다. 지난 8월 말 개봉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는 등 현재까지 제작비의 아홉 배에 달하는 8200만 달러(약 901억원)를 벌어들인 작품이다. 제작비 4000만 달러를 들인 ‘컨저링2’는 6월 개봉해 두 달 반 동안 1억 247만 달러(약 1126억원)를 벌었다. ‘맨 인 더 다크’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약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순식간에 강자로 변모하는 독특한 상황 설정이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작품이다. 지역 경제가 무너진 미국 디트로이트의 한 마을에 사는 로키(제인 레비), 앨릭스(딜러 미네트), 머니(대니얼 조바토)는 빈집털이를 일삼는 10대들이다. 로키는 크게 한 건을 올려 밑바닥 삶을 청산하고 어린 여동생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나려 한다. 이들은 인근 유령 마을에 홀로 살고 있는 늙은 퇴역 군인(스티븐 랭)을 타깃으로 삼는다.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받은 거액의 합의금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노인은 이라크 전쟁에서 다쳐 눈이 보이지도 않는다. 삼인조가 자물쇠 투성이인 집에 어렵지 않게 침입하지만 누워서 떡 먹기일 것 같던 도둑질은 곧 악몽이 된다. 이들이 방심하는 순간 노인이 잠에서 깨어나고, 불이 꺼지자 노인의 집이 출구 없는 지옥으로 돌변한 것. 집안 형태에 익숙하고 소리에 민감한 노인은 어둠의 제왕이 되어 토끼를 몰듯 침입자들을 쫓고, 침입자들은 노인의 충격적인 비밀과 마주한다. ‘맨 인 더 다크’는 ‘호러의 샛별’ 페데 알바레즈 감독의 작품이다. 우루과이 출신인 그는 2013년 샘 레이미의 컬트 ‘이블데드’를 리메이크하며 할리우드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샘 레이미가 제작에 나섰다. ‘아바타’의 악역 마일즈 쿼리치 대령 역으로 국내에도 널리 얼굴을 알린 스티븐 랭이 위압적인 존재감을 뿜어낸다. 어둠으로 스며드는 장면이 압권이다. 중저음으로 낮게 깔리는 쉰 목소리에서도 섬뜩함이 묻어난다. 제인 레비도 주목된다. ‘이블데드’에 이어 알바레즈 감독과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며 새로운 공포의 여왕으로 등극할 채비를 갖췄다. 원래 제목은 숨 쉬지 말라는 뜻의 ‘돈트 브리드’(Don’t Breathe)다.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들은 긴장감에 저절로 숨을 죽이게 된다. 오는 6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와우! 과학] 세계 최초의 ‘컴퓨터 음악’ 복원 성공

    [와우! 과학] 세계 최초의 ‘컴퓨터 음악’ 복원 성공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 사용한 암호기계 ‘에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 그가 개발한 거대한 기계장치로 1951년 녹음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 음악’이 마침내 복원됐다고 뉴질랜드의 연구자들이 26일(현지시간) 밝혔다. 12인치 아세테이트 디스크에 잠들어 있던 이 음악은 신시사이저(전자 악기)부터 모던 일렉트로니카(전자 음악)까지 컴퓨터로 창작한 모든 음악의 기초라고 할 수 있지만, 거기에는 지극히 전통적인 음악이 녹음돼 있었다. 이는 바로 영국의 국가인 ‘신이여 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King)였다. 참고로 이 노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재위할 때는 ‘왕’이 ‘여왕’으로 바뀌었다. 당시 녹음 작업은 영국 맨체스터 대학 산하 컴퓨팅머신 연구소에서 진행됐으며 영국방송협회(BBC)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연구소 1층을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한 장치를 사용해 영국 국가 외에도 어린이 동요 ‘바 바 검은 양’(Baa Baa Black Sheep), 미국 트롬본 연주가 글렌 밀러의 ‘인 더 무드’(In the Mood ) 등 총 3곡을 녹음했다. 이번 복원 연구를 진행한 뉴질랜드 캔터베리대 연구팀은 “이 음악이야말로 암호해독자로 유명한 튜링이 음악 분야에서도 혁신자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또한 “1940년대 후반부터 컴퓨터를 악기로 전환한 튜링의 선구적인 업적은 지금까지 대체로 간과돼 왔다”고 말했다. 앨런 튜링은 ‘에니그마’를 해독해 종전을 2~4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951년 동성애 행위로 맨체스터 경찰에 체포된 뒤 화학적 거세 치료를 받는 등의 논란 속에 자살하는 불운한 결말을 맞이했다. 이후 61년 만인 지난 2013년 영국 왕실로부터 특별 사면을 받았다. 참고로 이번에 복원된 2분에 걸친 음악은 다음 링크에서 들어볼 수 있다.(http://blogs.bl.uk/files/first-recorded-computer-music---copeland-long-restoration.mp3) 사진=computerhistory.org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르네상스 꽃 피운 메디치家의 비결은 ‘親서민’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르네상스 꽃 피운 메디치家의 비결은 ‘親서민’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 피렌체의 역사를 이야기 하려면 메디치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메디치 가문이 지금까지 기억되고 존경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오랜 시간 피렌체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를 이끌었지만 군림하지 않고 늘 시민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메디치가의 정궁이었던 리카르디궁이다. ●수수하고 견고한 궁… 시민 위한 돌 벤치 눈길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리카르디궁은 가문의 수장이었던 조반니 디 비치(1360~1429)의 주문으로 미켈로초 디 바르톨롬메오(1396~1472)가 설계해 지었다. 원래 두오모의 돔을 완성한 브루넬레스키가 설계를 맡았지만 지나치게 사치스러워 메디치가에서 견지해 온 친서민적인 이미지를 해친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켈로초가 설계한 궁은 피렌체에 지어진 최초의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축물로 단단한 벽돌로 된 3층 건물은 견고한 요새를 연상하게 한다. 대부호이자 실질적인 통치자의 성이라고는 보여지지 않을 정도로 수수하다. 피렌체의 귀족들과 대립하면서 평민의 입장을 옹호하며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된 조반니가 자신의 거처를 지으면서도 친서민적 행보를 한 결과였다. 조반니는 궁전 주변으로 시민들이 걸터앉아 쉴 수 있는 돌 벤치를 마련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당시 유행했던 도시형 궁전(팔라초) 스타일의 전형이 된 리카르디궁의 1층 입구에 들어서면 기둥으로 둘러싸인 중정이 있고 2층에 침실과 응접실, 그리고 작은 예배당이 있다.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미사를 드렸던 이 공간은 아주 특별한 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초기 르네상스 화가 베노초 고촐리(1420~1497)가 그린 ‘동방박사의 행렬’이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예수가 태어날 즈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현자 세 명이 별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으로 와서 성모자에게 선물을 드리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동방박사는 메디치 가문의 수호 성인으로 가문에서는 동방박사 형제회의를 후원하고 거창하게 축제일 행사를 치르곤 했다. 조반니의 아들 피에로 메디치(1416~1469)는 리카르디궁 예배당의 장식화로 그들 가문의 국제적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던 1439년의 피렌체 종교회의를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장래 피렌체를 다스리게 될 로렌초를 동방박사 일행으로 그려 달라고 부탁한다. 고촐리는 코시모의 총애를 받았던 수도사 화가 프라 안젤리코의 수제자로 산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메디치 가문의 기도실에 ‘동방박사의 경배’(1440~1443)를 그린 바 있다. 동방박사가 예수께 경배하는 이야기와 메디치 가문의 외교적 업적인 종교회의를 한데 엮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지만 고촐리는 주문자의 의중을 충실하게 헤아려 5년의 시간을 들여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완성한다. 1464년 완성된 메디치 예배당의 벽화 ‘동방박사의 행렬’은 사실적인 디테일과 생생하고 화려한 색채로 뒤덮여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크지 않은 공간에 3개의 벽면을 장식한 그림의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15세기 복장을 한 당대의 실존 인물들로 채워져 있어 볼수록 흥미롭다. 동쪽 벽면에는 황금빛 옷을 입은 젊은 왕이 수많은 수행원들을 이끌고 화려하게 장식된 흰 말을 타고 예수를 보러 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앳된 얼굴이 정면을 향해 있는 이 어린 동방박사는 코시모의 손자이자 피에로의 아들인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다. 고촐리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10세 정도에 불과했지만 어릴 때부터 남다른 리더십과 용기, 총명함으로 가문에서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 뒤의 흰말을 탄 이가 로렌초의 아버지 피에로다. 그 오른편에 흑인 시종이 이끄는 갈색 당나귀를 타고 있는 인물이 ‘국부’ 코시모다. 코시모는 피렌체 시민들이 지닐 수도 있는 부유층에 대한 적대감과 귀족들의 견제와 질투를 의식해 당나귀를 애용했다고 전해진다. ●메디치家 3대가 그려진 ‘동방박사의 경배’ 그림을 주문한 피에로는 어려서부터 약골이어서 병을 달고 살았던 까닭에 ‘통풍환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자신의 생명이 오래가지 않을 것을 예견했기 때문인지 피에로는 종교회의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았던 자신의 어린 아들 로렌초를 맨 앞에 세워 장래에 피렌체를 이끌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실제로 피에로는 메디치 가문과 피렌체의 통수권을 이어받았으나 2년 만에 병사하면서 로렌초에게 통수권을 넘겨야 했다. 40여년간 피렌체를 통치한 로렌초는 뛰어난 외교수완으로 피렌체가 이탈리아 정치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하는 한편 예술과 철학 등 인문학 연구를 장려했다. 피렌체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르네상스 문화가 최고조에 이른 것은 로렌초가 통치하던 시기다. 사람들은 그를 로렌초 일 마그니피코, 즉 ‘위대한 자’로 칭송했다. lotus@seoul.co.kr
  • ‘라디오스타’ 화요비 홍보 덕분? SNS 팔로워 급증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파”

    ‘라디오스타’ 화요비 홍보 덕분? SNS 팔로워 급증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파”

    라디오스타 화요비가 자신의 SNS 팔로워 수를 늘리기 위해 적극 홍보에 나섰다. 지난 28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한 화요비는 6년 만에 들고 나온 자신의 정규 앨범보다 SNS 홍보를 더 많이 하고 싶다고 어필했다. 화요비는 “시작한 지 두 달 밖에 안 됐고, 게시물도 12개 밖에 없어서 현재 팔로워 수가 800여 명이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팔로워 수를 늘리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는 “차린 건 별로 없지만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MC들은 SNS를 홍보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 줬다. 이에 화요비는 카메라를 보며 “예쁜 사진, 정보 등 많이 올릴게요. 35살이 이렇게 begging(구걸)합니다. 많이 친구 맺어요. 제가 팔로잉 같이 못 해도 연예인은 그럴 수 있으니까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홍보한 덕분에 현재 화요비 SNS 팔로워 수는 12000명을 넘어섰다.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

    19행에 2운을 가진 ‘비라넬’(villanelle) 시체(詩體)의 또 다른 좋은 예는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Mad Girl’s Love Song)이다. 어느 영문학박사가 낭송하는 “I shut my eyes and all the world drops dead”를 듣고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눈을 감고 세상을 떨어뜨리다니. 이렇게 강력한 이미지로 시작하는 시는 오랜만이다. 시는 첫 줄에서부터 승부를 걸어야 한다.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라는 제목은 또 얼마나 단순하며 매력적인가.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실비아 플라스 “내가 눈을 감으면 모든 세상이 죽어서 떨어지지;눈꺼풀을 들어 올리면 모든 게 다시 태어나지.(내 머릿속에서 널 만들어낸 것 같아.) 별들이 파랑과 빨간색으로 차려입고 왈츠를 추지,그리고 제멋대로 어둠이 빠르게 밀려오지:내가 눈을 감으면 모든 세상이 죽어서 떨어지지. 네가 나를 유혹해 침대로 데려가는 꿈을 꾸었지.그리고 내게 문 스트럭을 불러주고, 미친 듯이 키스했지.(내 머릿속에서 널 만들어낸 것 같아.) 신은 하늘에서 쓰러지고, 지옥의 불들이 사그라들고:천사들과 악마의 남자들도 떠나지:내가 눈을 감으면 모든 세상이 죽어서 떨어지지. 네가 말했던 대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나는 상상했지,하지만 나는 늙어가고 너의 이름을 잊었지.(내 머릿속에서 널 만들어낸 것 같아.) 차라리 천둥새를 사랑했어야 했어;천둥새는 그래도 봄이 오면 윙윙거리며 다시 돌아오기나 하지.내가 눈을 감으면 모든 세상이 죽어서 떨어지지.(내 머릿속에서 널 만들어낸 것 같아.)” “I shut my eyes and all the world drops dead;I lift my lids and all is born again.(I think I made you up inside my head.) The stars go waltzing out in blue and red,And arbitrary blackness gallops in:I shut my eyes and all the world drops dead. I dreamed that you bewitched me into bedAnd sung me moon-struck, kissed me quite insane.(I think I made you up inside my head.) God topples from the sky, hell’s fires fade:Exit seraphim and Satan’s men:I shut my eyes and all the world drops dead. I fancied you’d return the way you said,But I grow old and I forget your name.(I think I made you up inside my head.) I should have loved a thunderbird instead;At least when spring comes they roar back again.I shut my eyes and all the world drops dead.(I think I made you up inside my head.)” *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는 대학생이던 스무살의 실비아 플라스가 뉴욕의 여성잡지 ‘마드모아젤’에 발표한 시다. (네가 아니라) 차라리 천둥새를 사랑했어야 했어. 천둥새는 (고맙게도!) 봄이 오면 윙윙거리며 다시 돌아오니까…. 미국의 명문여대인 스미스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여자가 이런 시를? 그녀의 그에 대한 집착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하련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한다. 실비아가 이십대였던 1950년대에 미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상실조차 찬란하며 탄력이 넘치는 언어에서 풋풋한 젊음이 느껴진다. 늙은 시인은 이처럼 탱글탱글한 시를 지어내지 못한다. 이 시의 형식상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말로 미친 여자의 노래처럼 보이게 하는, 처음과 끝에 들어간 인용부호이다. 자신의 지옥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심함, 혹은 용기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듯한데, 쟁쟁한 영국 시인 테드 휴스(1930~1998)와의 결혼으로 실비아는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영국에 온 실비아는 케임브리지의 파티에서 테드 휴스를 만났고, 서로에게 시를 보내며 친해진 둘은 석 달 만에 결혼했다. 낯선 영국 땅에서 아이 둘을 건사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주부는 삶의 에너지를 잃어간다. 시 ‘대디’(Daddy)에서 실비아는 자신을 억압하는 (남편을 연상시키는) 남성을 “7년 동안 내 피를 빨아먹은 뱀파이어”에 비유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테드의 외도를 목격한 실비아는 남편과 별거에 돌입했다. 혼자 아이들을 돌보며 우울증이 도진 실비아는 추운 새벽에, 부엌의 가스오븐에 머리를 박고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잠든 아이들이 깨어나면 먹을 우유를 옆에 놓고. 테드와 바람났던 유부녀인 아시아도 몇 년 뒤에 실비아처럼 가스를 틀어놓고, 테드와 관계해 낳은 딸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테드 휴스는 훗날 영국의 국왕이 임명하는 계관시인이 되었다. 남편의 명성에 가려졌던 실비아는 죽은 뒤에 ‘비운의 천재’로 ‘원조 페미니스트 시인’으로 거듭났다. 그녀는 전설이 되었다. 안나 에릭손이 실비아에게 바친 노래 ‘Mad Girl’s Love Song’을 또 듣고 싶다. “You can call me Sylvia.” 너는 나를 실비아라고 불러도 좋아.
  • 최진호 vs 박상현, 상금왕 결전 시작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2016 시즌 상금왕이 이번 주 가려진다. 29일부터 나흘 동안 인천 베어즈 베스트 청라 골프클럽(파71·6933야드)에서 열리는 신한동해오픈은 올 시즌 남은 대회 중 가장 많은 상금이 걸렸다. 총상금은 지난해보다 2억원 오른 12억원이 됐고, 우승 상금은 2억 1600만원이다. 28일 현재 상금 레이스에서는 최진호(32·현대제철)가 4억 2300만원을 쌓아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 박상현(33·동아제약)은 3억 4800만원으로 뒤를 바짝 쫓고 있다. 한국오픈에서 2연패를 일궈내면서 상금 3억원을 받은 3위 이경훈(25·CJ대한통운)은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최후의 상금왕 경쟁은 최진호와 박상현의 대결로 좁혀졌다. 그러나 이들 외에도 모처럼 국내 투어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우승한 안병훈(25·CJ그룹)과 2015 일본프로골프투어 상금왕 김경태(30·신한금융그룹)가 우승 경쟁에 뛰어든다. 리우올림픽까지 경험한 안병훈은 28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고국에서 첫 우승이었던 만큼 신한동해오픈은 굉장히 특별한 대회”라면서 “작년과 같은 순위면 좋겠다”고 2연패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톡!톡! talk 공무원] 22년간 대통령 4명·총리 5명 연설문 작성 “연설문 쓸 땐 연설자 신념·습관 살피죠”

    [톡!톡! talk 공무원] 22년간 대통령 4명·총리 5명 연설문 작성 “연설문 쓸 땐 연설자 신념·습관 살피죠”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5월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크 대통령과의 만찬장에서 낭독할 답사 연설문을 썼지요. 그런데 노 대통령께서 곧장 한글 파일로 직접 타이핑해서 쪽지를 건네지 뭡니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받고 보니 그 내용이….” 김철휘(57) 국무총리실 연설비서관은 28일 이렇게 말하며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쪽지엔 ‘요리사는 짚신으로도 맛있는 요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적혀 있었다. 김 비서관은 “맛없는 연설문이라는 의미로 해석한 다음 골머리를 앓다가 ‘역사적으로도 우리 두 나라는 오랜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각하의 고향인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벽화에는 1300년 전 이곳을 찾은 한국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내일 사마르칸트 방문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큽니다’라는 구절을 넣었다”고 덧붙였다. 김 비서관은 27년에 걸친 공직 생활 중 22년간을 대통령 4명과 총리 5명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데 바쳤다. 대학 때 특용식물학을 전공한 그는 민주정의당 사무처에 몸담던 1989년 2월 노태우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보통사람의 밤’ 행사에서 대통령 연설문 초안을 쓰며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그해 6월엔 청와대 공보수석실 연설 담당 행정관으로 옮겼다. 이후 여성부 기획예산담당관, 국무조정실 고용식품의약정책관을 빼면 연설문 담당 외길이다. 연설문 작성에서 뽐낸 이름은 공무원 대상 연설에서도 빛난다. 2011년부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1만여명에게 ‘공직자의 말과 글’을 주제로 명강의를 펼쳤다. 공적인 연설문, 더구나 대통령이나 총리의 연설문은 조직이나 대표자의 주장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발표되기 전에 건의하고 토론하며 반영하는 데 의미를 둔다. 연설문 필자는 연설하는 사람의 철학과 신념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업무로 평가된다. 그는 또 “연설문을 쓸 땐 말하는 분의 습관까지 살펴봐야 한다”며 살짝 웃었다. “일례로 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5년 10월 아태관광협회 총회 연설문을 쓰고 나서 ‘관광’이라는 단어를 일일이 세어 최대한 줄였다. (경상도 출신인) 대통령의 발음을 걱정해서였는데, 다행히 그날 연설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되돌아봤다. 김 비서관은 즉석 발상도 중요하다는 점을 에피소드로 귀띔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이탈리아를 방문한 2000년 3월 현지인들에게 맞춰 연설문에 조크를 추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일 새벽에야 베네디니 이탈리아경제인연합회장의 취미가 스포츠카 타기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연설문을 고쳐 ‘지금의 인터넷 시대는 속도와의 경쟁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탈리아 경제의 앞날은 매우 밝다고 생각합니다. 속도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베네디니 회장이 계시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을 넣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김 비서관은 “기왕이면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고 싶겠지만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되뇌었다. 연설문이란 말을 글로 옮기는 것이라 명문장을 고집하다간 오히려 설화(舌禍)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서부진언 언부진의(書不盡言 言不盡意)라고 강조한다. ‘글로는 하려는 말을 다 쓰지 못하고, 말로는 마음속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꽃 피운 메디치가의 리카르도 궁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꽃 피운 메디치가의 리카르도 궁

     르네상스를 꽃 피운 도시 피렌체의 역사를 이야기 하려면 메디치 가문을 빼 놓을 수 없다. 피렌체 공화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문에서 출발한 메디치가는 금융업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면서 재력을 얻고 실질적으로 피렌체를 통치했으며 특히 학문과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피렌체에서 만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메디치 가문이 지금까지 기억되고 존경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오랜 시간 피렌체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를 이끌었지만 군림하지 않고 늘 시민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메디치가의 정궁이었던 리카르디 궁(Palazzo Medici Ricardi)이다.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리카르디 궁은 가문의 수장이었던 조반니 디 비치(1360~1429)의 주문으로 미켈로초 디 바르톨롬메오(1396~1472)가 설계해 지었다. 원래 두오모의 돔을 완성한 브루넬레스키가 설계를 맡았지만 지나치게 사치스러워 메디치가에서 견지해 온 친서민적인 이미지를 해친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켈로초가 설계한 궁은 피렌체에 지어진 최초의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축물로 단단한 벽돌로 된 3층 건물은 견고한 요새를 연상하게 한다. 대부호이자 실질적인 통치자의 성이라고는 보여지지 않을 정도로 수수하다. 피렌체의 귀족들과 대립하면서 평민의 입장을 옹호하며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된 조반니는 자신의 거처를 지으면서도 친서민적 행보를 한 결과였다. 조반니는 궁전 주변으로 시민들이 걸터앉아 쉴 수 있는 돌 벤치를 마련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당시 유행했던 도시형 궁전(팔라초) 스타일의 전형이 된 리카르디 궁의 1층 입구에 들어서면 기둥으로 둘러싸인 중정이 있고 2층에 침실과 응접실, 그리고 작은 예배당이 있다.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미사를 드렸던 이 공간은 아주 특별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초기 르네상스 화가 베노초 고촐리(1420~97)가 그린 ‘동방박사의 행렬’이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예수가 태어날 즈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현자 세 명이 별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으로 와서 성모자에게 선물을 드리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동방박사는 메디치가문의 수호성인으로 가문에서는 동방박사 형제회의를 후원하고 거창하게 축제일 행사를 치르곤 했다. 조반니의 아들 피에로 메디치(1416~69)는 리카르디 궁 예배당의 장식화로 그들 가문의 국제적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던 1439년의 피렌체 종교회의를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장래 피렌체를 다스리게 될 로렌초를 동방박사 일행으로 그려 달라고 부탁한다. 고촐리는 코시모의 총애를 받았던 수도사 화가 프라 안젤리코의 수제자로 산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메디치가문의 기도실에 ‘동방박사의 경배’(1440~1443)를 그린 바 있다.  동방박사가 예수께 경배하는 이야기와 메디치 가문의 외교적 업적인 종교회의를 한데 엮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지만 고촐리는 주문자의 의중을 충실하게 헤아려 5년의 시간을 들여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완성한다.  1464년 완성된 메디치 예배당의 벽화 ‘동방박사의 행렬’은 사실적인 디테일과 생생하고 화려한 색채로 뒤덮여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크지 않은 공간에 3개의 벽면을 장식한 그림의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15세기 복장을 한 당대의 실존 인물들로 채워져 있어 볼수록 흥미롭다. 동쪽 벽면에는 황금 빛 옷을 입은 젊은 왕이 수많은 수행원들을 이끌고 화려하게 장식된 흰 말을 타고 예수를 보러 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앳된 얼굴이 정면을 향해 있는 이 어린 동방 박사는 코시모의 손자이자 피에로의 아들인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다. 고촐리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10세 정도에 불과했지만 어릴 때부터 남다른 리더십과 용기, 총명함으로 가문에서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 뒤의 흰말을 탄 이가 로렌초의 아버지 피에로다. 그 오른 편에 흑인 시종이 이끄는 갈색 당나귀를 타고 있는 인물이 ‘국부’ 코시모다. 코시모는 피렌체 시민들이 지닐 수도 있는 부유층에 대한 적대감과 귀족들의 견제와 질투를 의식해 당나귀를 애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림을 주문한 피에로는 어려서부터 약골이어서 병을 달고 살았던 까닭에 ‘통풍환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자신의 생명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을 예견했던 때문인지 피에로는 종교회의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았던 자신의 어린 아들 로렌초를 맨 앞에 세워 장래에 피렌체를 이끌어 가기를 바래는 마음을 표현했다. 실제로 피에로는 메디치가문과 피렌체의 통수권을 이어 받았으나 2년 만에 병사하면서 로렌초에게 통수권을 넘겨야 했다. 40여년간 피렌체를 통치한 로렌초는 뛰어난 외교수완으로 피렌체가 이탈리아 정치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하는 한편 예술과 철학 등 인문학 연구를 장려했다. 피렌체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르네상스 문화가 최고조에 이른 것은 로렌초가 통치하던 시기다. 로렌초는 수많은 고전 문헌을 수집해 그리스 아카데미를 피렌체에 설립하는 등 학문과 예술에 대한 장려와 보호를 위해 자금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로렌초 일 마그니피코, 즉 ‘위대한 자’ 로 칭송했다. 그림에서는 어린 왕의 수행원들이 유달리 많은데 실제로 주변 공화국의 실제 인물들을 그려넣었다고 한다. 그중에는 화가 고촐리의 얼굴도 들어있는데 어딘지 불만이 있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다. 막대한 경제력은 지니긴 했으나 15세기 피렌체공화국에서 아직까지 그렇다할 정치적 직함이 없던 메디치 가문의 주문으로 동방박사를 빗대 3대를 그렸지만 진심으로 수긍하지 않았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남쪽 벽의 주인공은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잔티움에서 온 요한 8세 팔라이올로고스이고, 서쪽 벽에는 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동방정교회의 수장이 그려져 있다.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행렬’은 피렌체에서 개인 사재를 털어 국제적인 종교회의를 개최한 메디치가의 업적을 선전하는 동시에 메디치가가 피렌체를 이끌 영도력이 있는 가문이라는 것을 대외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메디치 가문은 이 후 1748년까지 약 350년간 지속됐으며 르네상스 문화를 이끌고 세 명의 교황과 9명의 왕비를 배출했다. 사진이 없던 시절임에도 우리가 메디치 가문을 일으킨 주요 인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이 그림 덕분이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불법은 세간에 있는데 어찌 세간을 떠나 얻나”

    “불법은 세간에 있는데 어찌 세간을 떠나 얻나”

    “한국불교 지나치게 수행에 치우쳐 수행·실천은 양 날개… 균형 필요” “불법(佛法)은 세간에 있는데 어찌 세간을 떠나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찾는다면 토끼뿔이나 거북털을 구하는 것처럼 헛되지 않을까요.”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조계종출판사) 출간에 맞춰 지난 26일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금산사·영화사 조실 송월주(세수 81세) 스님은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뭘 원하는지 살펴 밥이 필요한 사람에겐 밥을 주고 약이 필요한 이에겐 약을 줘야 한다”며 “기본적인 삶의 질을 높여 주고 법을 베풀 때 모래사장에 물이 스며들듯 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월주 스님은 중앙종회의장(5대)과 총무원장(17·28대)을 비롯한 조계종 최고 소임을 맡고도 사회활동에 천착한 까닭에 ‘불교계 시민운동 선구자’로 통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를 비롯해 지구촌 곳곳에 학교며 우물을 마련해 세상 사람들에게도 친근한 지도자로 꼽힌다. 각국 2307곳에 우물을 파 식수를 공급했고 58곳에 초·중·고교를 건립해 놓았다. 6·25전쟁 직후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뇌하다가 출가 입산했다는 스님은 “법문을 설해서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야말로 큰 나무”라며 “이왕이면 작은 나무보다는 큰 나무가 되겠다”는 초발심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한다. “자기 내면의 부처를 믿고 부처의 눈으로 바라보고 부처의 마음으로 나누고 스스로 부처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기고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는 지극한 안락을 누리며 영원을 살 수 있습니다.” 그 소신대로 스님은 절름발이 수행으로 비난받곤 하는 한국불교에 대해 “수행에만 지나치게 치우친 측면이 있다”며 쓴소리를 냈다. 특히 선가에서 관습처럼 전해지는 오도송이며 임종게를 향해 날 선 비판을 던졌다. “후학들과 대중의 귀감이 될 만큼 치열하게 수행에 전념해 살았다면 문제 될 게 없지요. 그러지 못했고 오도송을 전한 적도 없고 임종게를 직접 남기지도 않았는데 상좌(제자)들이 대단한 업적인 양 전하는 관습은 부당합니다.” 그 수행 풍토를 반성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했다는 스님은 “누군가 앞장서야 한다면 ‘내가 하자’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번다할 정도로 많은 소임을 맡아 살아왔다”며 웃었다. “지혜의 수행과 자비행의 실천은 수레의 양쪽 바퀴와 같고 새의 양 날개와 같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동체대비의 보살행이 필요하다는 스님은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향해 치우치지 않는 자비심을 베풀라고 당부했다. 세월호를 비롯한 재난 희생자와 유족, 시위의 가·피해자와 관련해서도 치유, 위로의 마음과 실천행이 중요하지만 법과 원칙의 형평성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했다. “종교인은 민족의 향도이자 민중의 보살이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신뢰를 잃는 게 당연하지요. 종교인들이 먼저 참회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스님은 ‘한국불교 최대의 치욕’이라는 10·27 법난의 가장 큰 피해자다. 1980년 총무원장에 취임, 개혁종단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신군부에 의해 강제 퇴진당했다. 조계사의 견지동 45 주소명을 딴 신군부의 ‘45계획’이 진행되던 당시 스님은 “조사 내용을 발설하지 않고 향후 2년간 모든 공직을 맡지 않는다는 각서를 썼다”고 했다. 그 사건을 놓고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10·27 법난은 신군부가 정권 창출을 위해 정화를 명분 삼아 불교계 길들이기 차원에서 저지른 만행이나 다름없다.” “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은 행복을 만드는 으뜸 요인입니다.” ‘자기 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며 사는 게 행복’이라는 아주 평범한 행복론을 들려준 월주 스님. 그는 “이제 스님이 계실 곳은 어디인가”라는 마지막 질문에 이런 대답을 돌려 줬다. “대중과 함께 사는 나의 삶은 언제나 부족한 진행형입니다. 지금까지 해 온 일을 계속 다듬어 내야지요.” 글 사진 금산사(전북 김제)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세계 최초 컴퓨터 음악 복원 성공…천재 수학자의 업적

    세계 최초 컴퓨터 음악 복원 성공…천재 수학자의 업적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 사용한 암호기계 ‘에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 그가 개발한 거대한 기계장치로 1951년 녹음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 음악’이 마침내 복원됐다고 뉴질랜드의 연구자들이 26일(현지시간) 밝혔다. 12인치 아세테이트 디스크에 잠들어 있던 이 음악은 신시사이저(전자 악기)부터 모던 일렉트로니카(전자 음악)까지 컴퓨터로 창작한 모든 음악의 기초라고 할 수 있지만, 거기에는 지극히 전통적인 음악이 녹음돼 있었다. 이는 바로 영국의 국가인 ‘신이여 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King)였다. 참고로 이 노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재위할 때는 ‘왕’이 ‘여왕’으로 바뀌었다. 당시 녹음 작업은 영국 맨체스터 대학 산하 컴퓨팅머신 연구소에서 진행됐으며 영국방송협회(BBC)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연구소 1층을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한 장치를 사용해 영국 국가 외에도 어린이 동요 ‘바 바 검은 양’(Baa Baa Black Sheep), 미국 트롬본 연주가 글렌 밀러의 ‘인 더 무드’(In the Mood ) 등 총 3곡을 녹음했다. 이번 복원 연구를 진행한 뉴질랜드 캔터베리대 연구팀은 “이 음악이야말로 암호해독자로 유명한 튜링이 음악 분야에서도 혁신자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또한 “1940년대 후반부터 컴퓨터를 악기로 전환한 튜링의 선구적인 업적은 지금까지 대체로 간과돼 왔다”고 말했다. 앨런 튜링은 ‘에니그마’를 해독해 종전을 2~4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951년 동성애 행위로 맨체스터 경찰에 체포된 뒤 화학적 거세 치료를 받는 등의 논란 속에 자살하는 불운한 결말을 맞이했다. 이후 61년 만인 지난 2013년 영국 왕실로부터 특별 사면을 받았다. 참고로 이번에 복원된 2분에 걸친 음악은 다음 링크에서 들어볼 수 있다.(http://blogs.bl.uk/files/first-recorded-computer-music---copeland-long-restoration.mp3) 사진=computerhistory.org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골프 전설 아널드 파머 별세…전인지 “파머 할아버지, 영원히 기억할게요”

    골프 전설 아널드 파머 별세…전인지 “파머 할아버지, 영원히 기억할게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잭 니클라우스 등이 ‘골프 전설’ 아널드 파머(미국)의 타계에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6일(한국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골프 코스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고 필드 밖에서는 사람들에게 항상 관대했던, 왕이라고 불린 그에게 이 메시지를 전합니다. 고마운 추억을 남겨줘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파머가 자신에게 골프 레슨을 해주는 사진을 함께 올렸다. 메이저 대회에서 7승을 거뒀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통산 62승을 기록하며 시대를 풍미한 파머는 현대 골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오바마 대통령 외에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파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수많은 역전승을 일궈냈던 그의 모습에 가장 큰 찬사를 보낸다”라고 추모했다. 부시 전 대통령 역시 “파머가 마지막 홀 그린을 향해 걷는 장면과 같은 멋진 모습은 지금껏 본 일이 없다”고 그의 타계를 아쉬워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도 자신의 트위터에 “그동안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고 애정을 보여준 아널드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그는 또 나에게 많은 웃음을 주기도 했다”는 글을 올렸다. 파머의 생전 라이벌이었던 잭 니클라우스(미국)는 “파머는 골프라는 게임을 초월한 존재”라고 말했다. 올해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인지(22·하이트진로)도 인스타그램에 “아놀드 파머 할아버지, 제게 편지를 보내주신 게 엊그제인데 영원히 기억할 거에요. 천국에서의 안식을 두 손 모아 빕니다”라고 추모했다. 그는 파머가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을 축하하며 보낸 편지를 함께 올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가야, 국악 듣고 건강하게 태어나렴

    아가야, 국악 듣고 건강하게 태어나렴

    우리 음악과 춤, 먹거리로 태교를 돕는 특별한 태교 음악회가 마련됐다. 오는 28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국악태교음악회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감사’다. 국악이 태교에 좋다는 건 옛 문헌에도 나온다. 1800년(정조 24년)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가 태교에 관해 쓴 책 ‘태교신기’(胎敎新記)에는 ‘시를 읽고 글을 읽으며 거문고나 비파를 타게 해 임신부의 귀에 들려줘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공연은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선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수제천’과 천년만년 행복을 기도하는 ‘천년만세’를, 2부에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이 아름다운 선율로 구성된 창작국악 ‘아이보개’와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들려준다. 국악 연주와 함께 임신부와 태아 건강에 좋은 궁중음식 조리법도 소개한다. 마지막 무대는 생명력 넘치는 화려한 무용으로 꾸며진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꽃 중의 왕이자 위엄과 품위를 상징하는 모란꽃을 꺾으며 각종 궁중연회 때 췄던 궁중무용 ‘가인전목단’과 새 생명이 태동하는 듯 화사한 부채로 화려한 움직임을 선사하는 ‘부채춤’을 선보인다. 선물 증정 이벤트도 진행된다. 객석 추첨으로 35명에게 고급 담요, 분유, 로션, 크림 등을 제공하고 관람 후기 공모를 통해 우수작 2명을 선정, 유모차와 놀이방 매트를 지급한다. 국립국악원은 “느릿한 박자와 차분한 선율, 아름다운 율동 등이 임신부의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석 1만원. (02)580-3300.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복면가왕 에헤라디오 4연승, 로빈훗 허각도 꺾지 못해..인어공주는 솔비

    복면가왕 에헤라디오 4연승, 로빈훗 허각도 꺾지 못해..인어공주는 솔비

    복면가왕 에헤라디오가 4연승에 성공했다. 25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 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에서는 가왕 에헤라디오가 4연승을 차지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로빈훗은 ‘나는 나비’ ‘살다가’ 등을 열창하며 인어공주 솔비와 시계 이재훈을 꺾고 가왕 에헤라디오와 결승 무대를 펼쳤다. 가왕 에헤라디오는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를 선곡해 가을에 어울리는 감성적인 무대를 선보였고 가왕 자리를 지켰다. 4연승을 차지한 가왕은 “로빈훗 무대를 보고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며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아쉽게 가왕이 되지 못한 로빈훗은 가면을 벗었고 그의 정체는 가수 허각이었다. 한편 복면가왕 인어공주는 솔비였다. 인어공주는 서문탁의 ‘사미인곡’으로 가창력을 뽐냈으나 로빈훗에 패해 가면을 벗었다. 솔비는 “타이푼 시절에 성대결절이 와서 음악 스타일을 바꾸고 하고 싶은 음악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대중분들은 아직 10년전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지금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복면가왕’ 출연 계기를 밝혔다. 사진=MBC ‘복면가왕’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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