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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소 따라 느낌 따라 시인 6명 골라 봐요

    장소 따라 느낌 따라 시인 6명 골라 봐요

    “주저앉는다. 큰 키의, 짙은 눈썹을 가진 밤이, 깊고 어두운 글자들을 품은 밤이 무너져 내린다. 밤의 글자들이 내 얼굴 위로 쏟아진다. 바다를 건너가던 황혼의 글자는 섬이 되었고, 빗속에서 태어난 글자는 우산을 두 개나 잃어버렸다.”(박상순 ‘밤이, 밤이, 밤이’ 중) “밤이 되면 레몬이 빛나고 레몬이 자라는데/떠오르는데//우리에게 계속 레몬 향이 흘러나와서 권태로운 고백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양안다 ‘레몬 향을 쫓는 자들의 밀회’ 중)시단의 허리를 이루는 중견 시인부터 이제 막 첫 시집을 펴내는 신인까지 각기 뚜렷한 개성을 지닌 시인 6명의 작품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시집 세트가 나왔다.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실은 작품을 6권의 시집으로 묶어 출간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Vol. 1’ 이다. 박상순의 ‘밤이, 밤이, 밤이’, 이장욱의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이기성의 ‘사라진 재의 아이’, 김경후의 ‘어느 새벽, 나는 리어왕이었지’, 유계영의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양안다의 ‘작은 미래의 책’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문학은 문학의 위상이 갈수록 축소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순문학의 본질에 집중하자는 의도로 ‘핀 시리즈’를 기획했다. 매달 시인과 소설가를 한 명씩 선정해 7편의 신작시와 짧은 산문, 중편 소설을 지면에 선보이고 이를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다. 1955년 창간한 월간 현대문학이 시인선을 펴낸 것은 1980년대 초반 이후 30여년 만이다. 그런 만큼 시집의 외양과 구성에서 차별화된 특색을 갖췄다. ‘여섯 시인의 여섯 권 신작 소시집’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일반 시집에 비해 적은 20편 안팎의 작품을 수록했다. 판형도 가로 10.4㎝, 세로 18.2㎝ 크기로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다. 관행적으로 문학평론가의 해설이나 작가의 말을 싣는 시집 말미에는 각 시인이 새로 쓴 짧은 에세이를 담았다. ‘공간’이라는 공통된 테마 아래 시인 6명이 각각 카페, 동물원, 박물관, 매점, 공장, 극장에 대해 쓴 글들이다. 시집 세트의 표지는 최근 주목받는 패브릭 드로잉 작가인 정다운의 작품으로 장식됐다. 6인의 친필 사인과 메시지가 담긴 양장본 세트는 500질 한정으로 판매된다. 세트 4만 8000원. 낱권 8000원.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태평성대라도 위기를 대비하라…‘수신제가’ 실천한 조선의 대문호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태평성대라도 위기를 대비하라…‘수신제가’ 실천한 조선의 대문호

    憂治世而危明主(우치세이위명주) 잘 다스려진 세상을 근심하고 명철한 군주를 위태롭게 여기다중국 송나라 때 문인 소동파가 한 말이다. 근심할 만한 위기가 없으면 안일하고 게을러져 고식적으로 되기 쉬움을 경계한 것이다. 조선 초기 제도와 문물이 완성되고 사회가 안정기로 접어든 시기 소동파의 이 말을 실천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다. 서거정의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또는 정정정(亭亭亭)이며 본관은 달성(達成)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 배경과 타고난 재능으로 1444년(세종 26년) 스물다섯 살 되던 해 문과 급제했다. 사재감 직장으로 벼슬을 시작한 이래 성종까지 여섯 왕을 섬기고 고위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일생 아무런 고난도 역경도 없는 영화로운 삶을 살다 간 서거정. 사회 최상층 위치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사가집’ 속에서 진정한 지도층 인사의 면모를 찾아보자. #씻고 또 씻으리 다음은 ‘사가시집’ 제1권에 수록된 ‘침류조’(枕流操)라는 시의 일부다. 나는 베개가 없노라 대신 흐르는 물을 베고 눕지 머리도 감고 갓끈도 씻노라 씻고 또 씻어 가을볕에 말리지 혼탁한 세상 이미 멀리했으니 이 한 몸 깨끗이 하여 내 생애 마치리라 너무나 풍족해 오히려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있다. 부유할수록 오만함과 나태함이 스며들고 뻔뻔함이 파고들어 후회 가득한 삶으로 마감하기 일쑤다. 서거정은 부유하고 고귀한 집안 자제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다. 뛰어난 재능까지 지니고 태어나 일찍부터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위 시에서처럼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갈고닦았다. 이러한 다짐은 ‘사가집’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철장조’(鐵腸操)라는 시에서는 굽히지 않고 꺾이지 않는 강한 의지를 동경했는가 하면 ‘패위조’(佩韋操)라는 시에서는 부드러운 가죽을 통해 강경하고 급박한 자신의 성격을 반성하며 고치고자 노력했다. #당대 시운과 문운을 통찰하다 서거정은 48세 대제학이 된 이래 23년간이나 일국의 문예를 이끌었다. 국가의 정책과 사명뿐만 아니라 제도, 언어, 문학, 역사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수많은 서적을 주도적으로 편찬해 나갔다. ‘동문선’(東文選)은 이 가운데 하나다. ‘사가문집’ 제4권에 실려 있는 ‘동문선서’ 일부를 보자. 우리나라는 역대 성왕이 서로 계승하여 덕을 함양한 지가 100년이다. 훌륭한 인재가 그 사이에 나서 성대하고 순수한 자질로 문장을 지으니, 역동적이고 뛰어난 문장 또한 옛날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 이 동문선은 우리 동방의 문장이다. 한나라와 당나라의 문장도 아니고 송나라와 원나라의 문장도 아닌 바로 우리나라의 문장이다. 역대의 문장과 함께 나란히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마땅하니, 어찌 사라지게 놔두어 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물한국사’에서 신병주 교수는 서거정을 서문 전문가로 규정했다. 현재 남아 있는 서문만도 거의 80편에 이른다. 서거정은 이런 글을 통해 우리 문화의 자주성과 우수성을 천명하고, 자기 시대에서 시운과 문운이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는 당대에 완성된 제도와 문물을 후대에 길이 전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임을 깊이 자각한 것이라 하겠다. #해주(海州)는 언제 생겼을까 서거정이 지은 기문(記文)은 건축물과 관청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기문을 읽다 보면 학술서를 읽는 느낌을 받는다. 유래와 내력과 제도의 변천까지 기록이 매우 치밀하고 상세하다. 그중 하나로 ‘사가문집’ 제1권에 실린 ‘해주객관동헌중신기’(海州客館東軒重新記)를 예로 들어보자. 해주는 고구려의 내미홀인데, 신라 경덕왕이 폭지군을 설치하였다. 고려 태조 때 이 폭지군의 남쪽이 큰 바다와 닿아 있다 하여 비로소 해주라고 명명하였다. 성종 때 12목을 설치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해주이다. 얼마 뒤 절도사로 고쳐 우신책군이라고 부르다가 현종 때 고쳐서 안서 도호부로 삼고, 예종 때 다시 승격하여 대도호부로 삼았으며, 고종 때에 다시 해주목을 설치하였다. 공민왕 22년(1373년)에 왜구가 침략하여 수령을 죽이는데도 고을의 아전들이 구하지 않자 이에 주를 강등하여 군으로 삼았다가 얼마 뒤에 다시 목으로 삼았다. 해주의 옛 이름은 대령(大寧) 혹은 고죽(孤竹)이다. 해주에는 대수갑, 소수갑, 연평, 용매 등 4개의 섬이 있다. 내미홀과 폭지군은 매우 낯설다. 그러나 이 낯선 지명이 오늘날 해주임을 알게 한다. 고려가 세워지고 나서야 해주라는 이름이 생긴 것과 지역이 바다와 붙어 있어 붙여진 이름임을 알려준다. 이 밖에 이 서문은 해주 연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고 옛 지명과 소속된 섬의 이름을 담고 있다. 문집에 수록된 기문 57편에는 이처럼 지명이나 관청에 관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정보가 수두룩하게 실려 있다. #다시(茶時)는 무슨 의미일까 ‘승정원일기’에 ‘감찰다시’(監察茶時)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사가문집’ 제1권에 수록된 ‘사헌부제좌청중신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사헌부에는 청사가 둘이 있는데 다시청(茶時廳)과 제좌청이다. ‘다시’는 다례의 뜻을 취한 것이다. 고려 때부터 조선 초기까지는 대관이 간언을 올리는 책무만 맡고 다른 업무는 수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날마다 한 번 모여 다례를 베풀고 마쳤다. 국가의 제도가 점차 갖추어지면서 대관도 송사를 처결하는 직무를 겸하게 되어 다스릴 일이 많아지자 마침내 항상 출근하여 직무를 처리하는 장소가 되었다. 다시청은 애초에 대관이 수행해야 할 실무가 없었기 때문에 모여서 차를 마시며 의견을 나누는 장소였는데, 후에 실무가 생기면서 업무를 처리하는 집무실이 됐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감찰이 다시를 행한다는 것은 대관들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출사하지 못하면 감찰이 그날 업무를 대신 처리한다는 의미인 셈이다. 차를 마신다는 의미에서 업무를 처리한다는 의미로 바뀐 과정을 잘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에는 자신의 시대에 완성된 모든 제도와 문물을 후대에 알려야 한다는 인식과 책무가 짙게 배어 있다. 나라도 태평하고 섬기는 군주도 훌륭하며 제도와 문물도 갖추어졌다. 평온한 환경이 되었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고식에 빠지지 않고 과거 전통과 미래 문화를 이어 준다는 자신의 책무를 빠짐없이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완벽한 상태에서 오히려 뒤를 걱정하여 준비하고, 위기가 없는 상황에서 훗날의 위기를 대비하는 서거정의 인식이야말로 ‘잘 다스려진 세상을 근심하고 명철한 군주를 위태롭게 여긴다’는 소동파의 말을 실천한 것이 아니겠는가. 물질문명이 이 이상 풍성할 수 없고 문화와 학술이 흘러넘치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선종순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사가집’은 서거정, 직접 편찬한 시문집 시집 50권·문집 20권 수록 초간본 사라진 ‘인문의 보고’사가집은 조선 초기에 나라의 기틀을 잡고 문운을 이끈 사가 서거정의 시문집이다. 생전에 왕명으로 저자가 직접 편찬했다는 사실에서 당시에 저자의 글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이후로 세 번 간행됐는데 초간본은 저자가 작고한 직후 저자 편찬본 30권에 나머지 유고를 모아 1488년 운각에서 갑진자로 간행한 것이다. 시집이 50여권이고 문집이 20여권이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중간본은 1705년에 목판으로 간행했다. 시집은 초간본 잔권을 수습해 결권을 비워 둔 채 그대로 편차해 52권에 이른다. 권6, 권11, 권15~19, 권23~27, 권32~43, 권47~49가 결권이고 새로 찾은 시 3권이 보유로 첨부됐다. 문집은 6권만 실려 있으며 보유 2권이 첨부됐다. 삼간본은 흩어져 없어진 중간본을 1929년에 보결하고 증보해 활자로 간행한 것으로, 모두 15권 7책이다. 초간본이 전해지지 않아 방대한 작품이 많이 없어진 게 안타깝다. 워낙 다작이라 현재 남아 있는 작품만도 인문의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中, WTO총회서 “美, 세계경제 위협” 작심 비판

    中, WTO총회서 “美, 세계경제 위협” 작심 비판

    “中 대미흑자 年 10억불 줄여라” 트럼프, 트위터 통해 압박하자 왕이 “중·미관계 기본은 협력…무역전쟁 올바른 해법 아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연간 10억 달러씩 줄이라고 압박하자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앞에서 미국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열린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선 한 발짝 물러서 중·미 협력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중국은 7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총회에서 철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려는 미국의 무역정책을 비판하는 데 총대를 멨다. 이날 모두발언을 한 중국 대표단은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한국과 유럽연합(EU), 캐나다, 일본 등이 포함된 10개국을 대표해 “미국의 관세는 세계 경제의 위협”이라고 공격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무역전쟁의 승자는 없다’란 기사를 통해 193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 사례를 꺼냈다. 당시 스무트·홀리 무역법을 통해 미국의 승리를 내세우며 2000여개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다가 결국 대공황 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8일 양회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무역전쟁 시에는 필요한 대응을 할 것이라면서도 “중·미 관계의 기본은 협력으로, 무역전쟁은 결코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라며 ‘중·미 협력이 곧 세계의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미는 경쟁할 수 있지만 경쟁자가 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파트너가 돼야 한다”며 “우리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길을 걸을 것이고 그 핵심은 평화 발전 견지와 협력, 공영에 있다”고 덧붙였다. 왕 외교부장의 언급은 미국이 중국을 경쟁자로 규정해 ‘신냉전 시기’로 회귀할 것이라는 우려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중국이 매년 덩치를 키우는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자국의 이익을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껄끄러운 요인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중국의 수출 증가율이 44.5%로 36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며,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전년보다 35%나 증가해 중국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위안화 약세로 1∼2월 대미 수출은 694억 달러로 전년 대비 26.6% 늘었고, 수입은 265억 달러로 12.0% 증가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429억 달러로 확대됐다. 지난주까지 양제츠(楊潔) 외교 담당 국무위원에 이어 류허(劉鶴) 중국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을 잇따라 대미 특사로 파견하며 무역전쟁의 해결을 모색했던 중국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불안정으로 제대로 대화조차 하지 못했다. 미국은 류의 방미 전에 대표단 숫자를 40명에서 10명으로 줄이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고, 그가 접촉했던 자유무역론자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사임했다. 중국은 다음 해결사로 2008년 금융위기 때 대미 파트너로 활약했던 왕치산(王岐山)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카드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박진성 시인 “고은 시인의 성범죄 현장 목격했고 방관했다”

    박진성 시인 “고은 시인의 성범죄 현장 목격했고 방관했다”

    고은 시인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 “부끄러울 행동을 한 적이 없고, 집필을 계속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박진성 시인이 고은 시인의 추행에 대해 증언하는 글을 썼다.박진성 시인은 5일 자신의 블로그에 ‘고En 시인의 추행에 대해 증언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저는 추악한 성범죄 현장의 목격자이자 방관자”라며 “지난날의 제 자신을 반성하고 증언한다”며 글을 시작했다. 박진성 시인은 고은 시인의 성추행이 지난 2008년 4월 C대학교에서 주최한 강연회 이후에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박 시인은 “당시 H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 K로부터 이 자리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서 “고En(고은)을 만날 수 있는데다 뒤풀이도 있다고 들어 전날 밤잠을 설칠 정도로 설레고 떨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후 5시 술기운에 취해서였는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고En 시인이 참석자 중 옆자리에 앉은 한 여성의 손을 만지기 시작했고 팔을 만지고 허벅지를 만졌다. 당시 20대였던 여성은 고En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 만으로 그런 ‘추행’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박진성 시인은 K교수에게 “안 말리고 뭐하는 것이냐”라고 말했지만 K교수는 “가만히 있으라”고 답했다. 박 시인은 “K교수에게 밉보일가 두려웠고 문단의 대선배 고En 시인에게 밉보일까 두려웠다”면서 “고은 시인이 여성 3명 앞에서 지퍼를 열고 자신의 성기를 꺼내 흔든 뒤 자리에 다시 앉아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라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박진성 시인은 “2018년 ‘30년 전 격려 차원에서 그랬다’는 고En 시인의 변명을 보고 또 한 번 경악했다.‘부끄러울 일 안 했다, 집필을 계속하겠다’는 고En 시인의 입장 표명을 보고 다시 참담함을 느꼈다”면서 “그의 추행과 희롱을 보고 겪은 시인만 적게 잡아 수백 명이 넘는다. 문단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왜 노(老) 시인은 부정하는 것인가”라며 강조했다.또한 박진성 시인은 “고En 시인에 대한 증언은 정말 수도 없이 많다. 그는 이 세계의 왕이자 불가침의 영역이자 신성 그 자체였다. 고En 시인의 진정한 사과를 바라며 이를 묵살하지 말기를 바란다. 저 역시 방관자로서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쓴다”고 끝맺었다. 앞서 최영미 시인은 지난해 12월 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를 통해 시 ‘괴물’을 발표했고, 시에 등장하는 ‘En선생’이 고은 시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관련 기사 ▶‘괴물’ 시엔 “노벨상 후보 En선생” 최 시인은 지난달 27일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 서울 탑골공원 인근 한 술집에서 가진 선후배 문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고은 시인이 저지른 추태를 고발하는 글을 동아일보에 기고했다. 그러나 이 글에는 반박글도 올라왔다. 해당 술집 여주인으로 알려진 한모씨는 자신의 SNS에 글을올려 “최 시인이 언급한 고은 시인은 그런 부류가 아닌것으로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시인 고은의 성추행 #미투에 반박하는 ‘술집 마담’ 화제의 글 일각에서는 고 시인이 한 달 가까이 국내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오다 외국 언론을 통해 첫 입장을 밝힌 것은 노벨상 후보로서 해외 여론의 악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자 고은 시인은 수원시에서 마련한 ‘문화향수의 집’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는 그의 서재를 본따 만든 ‘만인의 방’의 철거 결정을 내렸고 교육부 등에서는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들을 삭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는 오는 3월 10일 이사회를 통해 고은 시인에 대한 징계안을 상정 및 처리할 예정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역사 속 행정] 조선시대 언론개혁

    [역사 속 행정] 조선시대 언론개혁

    침체됐던 언론, 성종 때 전환기 비위 풍문만으로도 탄핵하고 취재원 적극 보호로 言路 열어 ‘도덕적 권력’ 앞세운 청요직들조선의 언론활동은 세조 때까지도 극심한 침체를 겪었지만 성종이 즉위하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어린 나이에 택현(어진 사람을 고름) 방식으로 왕위에 오른 성종은 대비와 원상(나이 어린 국왕을 위해 원로대신 일부가 국정 전반을 조언하는 임시직)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다. 세조와 같은 절대권력을 행사하기 불가능했다. 오히려 경연(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론하는 일)을 통해 국왕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쌓으며 ‘자신을 왕으로 선택한 것이 결코 잘못된 결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안았다. 이 때문에 성종은 왕위에 있는 동안 8700여회 넘게 경연에 참여하며 호학군주로서의 면모를 발휘했다. 그는 원로 대신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대간(감찰·언론 담당)들이 고위 대신의 권세에 위축되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는 역할도 했다. 세조 때 공신들은 성종 즉위 초반만 해도 원상제(왕이 지명한 삼중신인 한명회, 신숙주, 구치관이 왕자와 모든 국정을 상의해 결정하는 제도)와 좌리공신(왕을 잘 보필했다는 공으로 봉해진 공신) 책봉 덕분에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하나둘 숨지며 영향력을 잃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국왕의 왕권행사에 전제적 성향이 줄고 공신들 권력도 약화되다 보니 자연스레 ‘청요직’들의 영향력이 점차 커졌다. 청요직이란 홍문관과 사간원, 사헌부, 예문관 등 주요 부처의 당하관(중하위직) 관직으로, 당상관(임금이 회의를 열 때 당상에 오를 수 있는 고위직)에 오르기 전 실무에서 일하는 소장파 엘리트 관료들이다. 이들 청요직들은 국왕과 공신 등이 국정 운영에 독점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한 연대체제를 구축해 공적 기준에 입각한 관료제 운영을 명분 삼아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 청요직들은 다양한 형태로 언론개혁을 시도했다. 언론관행이란 법전에 규정된 고유권한은 아니지만 대간 활동과정에서 그 필요성이 인정돼 사실상 대간의 권한으로 자리잡은 규범이다. 성종 때 정착된 대표적 언론관행으로는 풍문탄핵을 꼽을 수 있다. 풍문탄핵은 말 그대로 소문만을 근거로 관리를 탄핵하는 것이다. 조선 초기만 해도 대간이 풍문만으로 대신을 탄핵할 수 없었다. 왕의 입장에선 대신들에게 일부 비리가 있다고 해도 국왕이 구상하는 정책을 완수하기 위해 이를 눈감아 줘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종 때부터 언론이 활성화되면서 풍문에 입각한 탄핵활동이 늘어났다. 급기야 대간에서는 “풍문탄핵이 조정 기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변하면서 점차 일상적 언론활동으로 자리매김했다. 풍문탄핵이 늘면서 ‘언근불문’(言根不問·취재 출처를 묻지 않는 것)의 기치 또한 강조됐다. 풍문탄핵의 근거가 무엇인지 추궁하는 국왕과 대신들에 맞서 대간에서는 “말(言)의 근거(根)를 캐는 일은 언로를 막히게 하는 처사”라며 강하게 맞섰다. 청요직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권위’를 내세워 국정현안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했다. 점차 왕권은 도덕적 권위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될 때만 그 정당성이 용인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도덕이 군주보다 상위에 있다는 이른바 ‘도고우군’(道高于君) 이념이 현실정치 무대에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청요직의 언론개혁은 ‘도덕을 따르는 것이 군주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조선사회 전반으로 퍼지는 데 기여했다.■한국행정연구원 ‘역사 속 행정이야기’ 요약 송웅섭 연구원(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 ‘복면가왕’ 동방불패vs 복면협객 8인 대결...2연승 성공할까?

    ‘복면가왕’ 동방불패vs 복면협객 8인 대결...2연승 성공할까?

    4일 MBC ‘복면가왕’에서는 새로운 가왕 ‘동방불패’에게 맞서는 8인의 복면협객들이 1라운드 듀엣대결을 펼친다.지난 주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목소리의 70대 가왕 집시여인을 꺾고 혜성처럼 등장해 새로운 가왕이 된 ‘동방불패’가 처음으로 왕좌에 앉았다. 폭발적인 성량을 자랑하며 모든 도전자들을 K.O 패 시킨 그녀는 “국가에서 보호해줘야 할 성대다.”, “이변이 없다면 여름까지 가왕을 할 것 같다.” 등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가왕이 된 뒤 첫 번째 방어전을 기다리는 그녀에게 MC김성주가 소감을 묻자 ‘동방불패’는 “아직 실감은 잘 안 나지만 열심히 방어해보겠다. (가왕을) 오래오래 해보겠다.” 며 왕좌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김구라는 “동방불패를 처음 봤을 때부터 가왕을 오래 해서 좋은 음악을 들려줘야겠다는 욕구가 느껴졌다.” 며 그녀의 당찬 포부를 칭찬했다. ‘동방불패’에게 도전하기 위해 모인 복면협객 8인 또한 “풍성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있는 삼합 같은 목소리다.”, “노래에서 가왕에게 한 번 붙어보자고 얘기 하는 것 같은 자신감이 느껴졌다.” 등의 찬사를 받은 쉽게 볼 수 없는 실력자들이다. 이에 새로운 가왕 ‘동방불패’와 8인의 도전자가 써내려갈 각본 없는 드라마에 큰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과연 ‘동방불패’는 지난 경연에서 보여주었던 파워풀한 노래 솜씨로 2연승을 거둬 가왕의 위엄을 지킬 수 있을까? 가왕 ‘동방불패’의 질주에 제동을 걸기 위해 나선 다크호스들의 무대는 이날 오후 4시 50분 ‘복면가왕’에서 만날 수 있다. 사진=M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특파원 생생 리포트] 경찰도 미친개 때렸다가 혼쭐… 5성급 전용호텔 쓰는 ‘대륙의 개팔자’

    [특파원 생생 리포트] 경찰도 미친개 때렸다가 혼쭐… 5성급 전용호텔 쓰는 ‘대륙의 개팔자’

    7000년 전부터 개를 키운 중국에서 애완동물 산업이 개의 해를 맞아 조명받고 있다.개는 보안, 사냥, 식량의 용도로 키워졌고, 중국 동북 지역 조선족과 남부 지역에는 개를 먹는 풍습이 남아 있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기가 귀했던 봉건제 국가에서 아들을 낳은 산모에게 왕이 개고기를 하사해 산후 회복을 도왔다는 기원전 4세기 춘추시대 월국(越國) 구천왕의 기록이 있다. 중국인들이 개고기를 멀리하게 된 것은 송나라와 당나라 때 개를 포함한 특정 고기 섭취를 금기한 불교와 이슬람교가 도입되면서다. 개고기를 먹는 풍습이 점차 줄면서 애완동물 시장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 중국 애완동물 시장은 25억 달러(약 2조 7000억원) 규모로 성장해 세계 1위 규모가 될 전망이다. 애완견 숫자는 5000만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중국인의 바뀐 애완견 문화를 보여 주는 사례로 개를 패 죽인 경찰이 공개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후난성 창사의 경찰이 지난해 12월 31일 상점이 밀집한 거리의 주차 방지 철조망에 골든 리트리버를 묶어 놓고 때린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중국인들은 분개했다. 창사 경찰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개가 사람을 여러 차례 물어 죽여야만 했고, 마취총이 없어 각목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글을 올렸다. 법에 따라 광견병이 의심되는 개를 죽인 것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의 해명에도 동불 복지 단체는 개를 때린 경찰을 찾아내 개인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이 경찰에게는 협박 메시지가 폭주했고 심지어 집 앞에 장례식 화환이 걸리기도 했다. 쑤저우 동물보호단체는 골든 리트리버는 대체로 말을 잘 듣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개를 때리는 대신 지역 동물보호협회에 맡기는 방법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에는 간쑤성에서 공무원들이 최소 10마리의 길 잃은 개를 잔혹하게 죽여 역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홍콩에 있는 동물보호단체인 아시아동물협회는 이후 간쑤성에 “개를 죽여야 한다면 안락사를 시키는 인도적인 방법을 사용해 달라”는 내용의 공개 편지를 보냈다. 수영장, 개 시력에 맞춤한 영화를 상영하는 개 전용 영화관 등이 달린 5성급 애견호텔이 생길 정도로 중국인의 개 사랑은 넘쳐난다. 고대 중국인들이 집을 지키고 사냥할 때 보호견을 두었듯이 현대 중국 젊은이들은 자신을 위안하는 데 개를 이용한다. ‘야근개’(加班狗), ‘독신개’(身狗)는 네티즌들이 현실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만들어낸 신조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설을 앞둔 지난달 14일 국무원 신년회에서 “중국 전통문화에서 개는 충성스러운 동반자를 의미한다. 충과 의, 그리고 평안을 상징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고대부터 개를 금견(金犬), 옥견(玉犬), 의견(義犬)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하늘의 별따기’ 베이징 車번호판, 위장 결혼으로 취득

    ‘하늘의 별따기’ 베이징 車번호판, 위장 결혼으로 취득

    중국의 위장 결혼을 이용한 자동차 번호판 취득 꼼수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중국 유력 언론 ‘왕이망’은 지난해 베이징 차 번호판 당첨 가능성이 0.05%에 불과, 자차를 소유하고자 하는 이들 사이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사고파는’ 매매 행위가 만연하다고 2일 이 같이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시정부는 지난 2011년부터 베이징 호구자 1인당 1년에 단 6차례로 자동차 번호판 추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는 대도시의 교통 체증을 우려한 행정 조치로, 시 정부 집계에 따르면 1회 추첨 시마다 9만 명, 연평균 54만 명의 참가자가 몰리지만 실제로 매년 번호판을 부여받는 이들의 수는 극히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올해 베이징교통국이 발급하는 중소형 자동차 번호판 수는 올해 3만 8천 대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해 9만대에서 절반 이상 감축한 수준이다. 이 같은 제한적인 자동파 번호판 발급 정책 탓에 거금을 주고 위장 결혼을 한 뒤 번호판을 취득하려는 꼼수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설명했다. 더욱이 베이징 호구가 없는 외지인의 경우 외지 번호판을 단 자동차로는 베이징 입경 자체가 불법이다. 때문에 외지 번호판 소유자는 베이징에 들어올 때마다 관련 행정당국으로부터 ‘진경증(进京证)’이라고 불리는 허가서를 발급받거나, 베이징 번호판을 단 자동차를 단기 임대해야 하는 등의 불편을 겪어야 한다. 때문에 베이징 번호판은 온오프라인 상에서 최대 20만 위안(약 3400만원)까지 각종 불법적인 방식으로 매매되는 사례가 언론을 통해 종종 보도돼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와 위장 결혼 등 꼼수를 통한 번호판 이전 사례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차량 등록번호는 현실상 매매가 불가능한 반면 법적 부부 관계가 증명되는 경우에만 상호 이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돈을 주고 위장 결혼을 한 뒤 차량 등록번호를 넘겨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위장 결혼과 이혼을 통한 번호판 이전 계약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중개인도 등장했다. 베이징에서만 약 60차례 위장 결혼을 중개했다는 한 씨는 이 같은 방식에 대해 ‘가장 안전하고, 가장 편리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한 씨는 위장 결혼을 통해 번호판을 판매하려는 자동차 번호판 소유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업무를 담당하는데, 그는 해당 번호판 이전 절차가 종료된 이튿날 곧장 이혼 절차까지 진행해 준다면서 응모자를 모집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별에 따라 위장 결혼 및 번호판 이전, 이혼 절차까지 포함된 한 씨의 중개 비용 일체는 여성의 경우 9만 위안(약 1700만원), 남성은 11만 위안(약 2000만원)으로 상이하다는게 한 씨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위장 결혼을 통한 차량 번호판 이전은 과연 합법적인 방식일까. 이에 대해 베이징시 교통국 자동차관리소 종합서비스센터 관계자(北京市交管局车管所综合服务中心)는 “명의 변경을 통한 차량 등록 이전은 부부 쌍방이 직접 해당 센터를 찾아와 현장에서 혼인증 등 자료를 첨부한 뒤에야 이전이 가능하다”면서 “대리인을 통한 이전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이전 관련 서류를 제출한 이후에도 민정부와 교통국 담당자의 상의 과정 이후에야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온라인 상에서는 위장 결혼과 이혼 등의 남발 문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 됐다. 네티즌 A씨는 “베이징에서는 각종 행정 규제 탓에 집을 사기 위해 위장 이혼이나 위장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제는 급기야 자동차 번호판을 구매하기 위해 위장 결혼을 하고 있다”며 “일생일대 중요한 과정인 결혼이 ‘위장’이라는 단어로 너무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위장 결혼을 통한 차량 번호판 이전을 법적으로 가려낼 수단이 없다면, 1년 이상 혼인 기간을 지속한 이들 사이에서만 이전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40년 이상 사라졌다가 나타난 ‘나이지리아 모나리자’ 18억원에 경매

    40년 이상 사라졌다가 나타난 ‘나이지리아 모나리자’ 18억원에 경매

    ‘나이지리아의 모나리지’로 40년 이상 사라졌던 명작 ‘투투’가 영국 런던 경매에서 120만 5000 파운드(약 18억원)에 팔렸다. 1974년 나이지리아 화가 벤 엔원우가 비아프라 내전 상처를 치유하는 데 앞장섰던 이페족 공주 아데투투 아데밀류이를 캔버스에 담은 이 작품은 그 동안 흔적을 찾을 수 없었는데 “북런던의 검소한 저택”에서 발견됐다. 28일(현지시간) 본햄 경매회사의 현대 아프리카 예술 담당인 자일스 페피아트가 문제의 자택에 있는 에술품들을 감정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찾아가 진품임을 확인했다. 맨부커상 수상자인 작가 벤 오크리는 이번 발견이 “같은 세대 아프리카 50년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당초 30만파운드(약 4억 5000만원)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낙찰가는 120만 5000파운드로 현대 나이지리아 작가로서는 최고가다. 물론 낙찰자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페피아트는 여러 차례 투투 변형판들을 살펴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모두 사본으로 판명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투투 초상화는 나이지리아에서 국가의 상징과 같다. 엄청난 문화적 의미를 갖는다. 많은 관심을 끌고 그 작가의 판매 기록을 경신해 기쁘다. 내가 그 작품을 발견하고 이렇게 빼어난 작품을 판매하는 데 역할을 한 것에 짜릿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모더니즘의 아버지로 통하는 엔원우는 투투의 변형판으로 세 작품을 그렸는데 이것들도 모두 1994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사라져 지금껏 행방을 알 수 없다. 엔원우는 1940년대 골드스미스, 러스킨 칼리지, 옥스퍼드, 슬레이드 예술학교 등에서 공부했다. 1956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나이지리아를 찾았을 때 여왕 청동상을 제작하는 데 간여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본햄 제공
  • 사우디 軍 수뇌부 물갈이… 예멘 참전 부진 탓?

    BBC “빈살만 왕세자 개혁 착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군 수뇌부를 물갈이했다. 사우디가 개입한 예멘 내전이 지지부진한 데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해석된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은 27일 살만 국왕이 참모총장을 포함해 최고위급 군사령관, 육군·공군 수뇌부를 교체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왕실은 “이번 인사는 은퇴 연령에 이른 일부 인사가 퇴임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임 인선에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제1 왕위계승자(왕세자) 겸 국방장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가 예멘 내전에 개입한 지 3년이 다 돼 가는 시점에 이런 인사를 한 데 대해 미국 CNBC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사우디가 예멘 내전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수뇌부를 경질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싱크탱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사이먼 핸더슨 연구원은 “이번 인사의 이유는 예멘”이라면서도 “종전의 강경 기조를 이어 갈 것인지,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지는 지금으로서는 예측할 수 없다”고 밝혔다. RBC캐피털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원자재 수석 전략가는 “빈살만 왕세자의 지지 기반이 한층 단단해졌다”고 평가했다. BBC는 “사우디의 예멘 내전 참전은 빈살만의 주도로 이뤄졌다. 지금까지는 사실상 실패한 전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서 “빈살만 왕세자가 또 다른 개혁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사우디는 2015년 3월 적성국 이란에 우호적인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가 정권을 잡는 것을 막으려고 예멘 내전에 참전했다. 사우디의 참전으로 예멘은 대규모 인명피해와 경제파탄 등 피해를 입었고 사우디 또한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고 부족에 시달렸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고은 성추행 추가 폭로... 20대 대학원생 허벅지 만져

    고은 성추행 추가 폭로... 20대 대학원생 허벅지 만져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고은 시인이 20대 대학원생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추가로 나왔다.27일 동아일보는 고은 시인(85)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성폭력을 일삼았다고 주장하는 제보자의 증언을 보도했다. 문인 A씨는 지난 2008년 4월 지방의 한 대학 초청 강연회에 참석한 고은 시인이 뒤풀이 자리에서 20대 여성 대학원생에게 성추행을 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고은 시인은 “이름이 뭐냐”, “손 좀 줘봐라”라며 대학원생의 손과 팔, 허벅지 등 신체 부위를 만졌다. 누구도 이를 말리지 못했고, 술에 취한 고은 시인은 노래를 부르다 바지를 내리고 신체 주요 부위까지 노출했다. A씨는 “그는 이 세계의 왕이자 불가침의 영역, 추앙받는 존재였다. 그런 추태를 보고도 제지할 수 없어 무력함을 느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 밖에 고은 시인이 자신의 시집 출판 계약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중소 출판사 여직원의 손과 팔, 허벅지 등을 주물렀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한편 고은 시인은 최근 미투 운동(Me Too·성폭력 피해 고발) 확산으로 조명된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속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세간의 비난을 받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또 하나의 외규장각 약탈품/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또 하나의 외규장각 약탈품/서동철 논설위원

    지금 국립고궁박물관의 ‘조선의 국왕’ 전시실에 가면 최근 프랑스에서 돌아온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孝明世子嬪冊封竹冊)을 만날 수 있다. 조선은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새겨 보관했는데, 주인공이 왕이나 왕비이라면 옥책(玉冊), 세자나 세자빈이라면 대나무를 엮은 죽책(竹冊)을 만들었다.효명세자는 순조의 맏아들로 2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효명세자빈 풍양 조씨는 헌종의 어머니로 효명세자가 익종에 추존되면서 신정왕후가 됐다. 그는 82세까지 살면서 흥선군의 둘째 아들 고종으로 하여금 왕위를 넘겨받게 하고, 3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기도 했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그동안 불탄 것으로 알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 해군이 외규장각 수장품 가운데 의궤 등을 약탈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강화행궁과 강화유수부는 물론 외규장각에도 불을 질렀으니 약탈한 것보다 훨씬 많은 자료가 잿더미가 됐다. 당시 외규장각 수장품은 강화부 외규장각 봉안 형지안(形止案)의 존재로 알 수 있다. 형지안이란 ‘현재의 상황을 적어 놓은 문서’라는 뜻이다. 프랑스의 침략이 있기 9년 전인 1857년의 마지막 봉안 상황을 정리한 이 형지안은 옥책·죽책 같은 왕실 귀중품 99점과 도서류 1007종, 5067책을 보관하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 여기에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 있다. 그런데 프랑스군이 정리한 ‘전리품 목록’을 보면 ‘887㎏ 남짓의 은괴 19상자와 외규장각 비치품 359점’이 전부다. 구체적으로는 ‘가철된 큰 책 300권, 가철된 작은 책 9권, 흰색 나무상자에 든 작은 책 13권, 또 다른 작은 책 10권과 8권, 지도 1부, 평면천체도 1부, 족자 7개, 대리석판 3개, 백색의 대리석판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 3개, 3개의 갑옷과 투구, 가면 1개’다. ‘가철된 큰 책’은 의궤를 지칭할 것이다. ‘효명세자빈 죽책’은 ‘백색의 대리석판’, 곧 옥책을 넣은 작은 상자에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프랑스군이 의궤 같은 서적은 국립도서관에 넘긴 반면 옥책이나 죽책같은 왕실 귀중품은 내용을 알아보는 노력도 없이 자국 고관대작들에게 선물로 뿌렸다는 것이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프랑스 경매에 나온 것을 사들였다고 한다. 의궤도 297점을 영구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았지만, 1점은 영국에 있고 2점은 행방을 알 수 없다. 또 무엇이 어디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외규장각 약탈의 역사가 수습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
  • 얼굴만 보면 안다, 진화의 속내

    얼굴만 보면 안다, 진화의 속내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덤 윌킨스 지음/김수민 옮김 을유문화사/672쪽/2만 5000원“내가 왕이 될 상인가?” 2013년 개봉한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은 관상쟁이 김내경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이렇게 말한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뺏으려 일으킨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얼굴에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이 있다는 관상학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수양대군 역할을 맡은 배우 이정재의 잘생긴 얼굴을 보노라면 다윈의 성 선택설이 설득력 있는 학설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얼굴이 사람의 운명까지 결정하는지는 제쳐 놓더라도 얼굴은 분명히 개인의 큰 자산임이 틀림없다.●인간만 얼굴에 다양한 감정 표현 가능 얼굴을 미추(美醜)가 아닌 과학적 차원에서 살펴보자. 분류학자들은 동물을 30개 집단으로 분류한다. 대다수 종은 ‘얼굴’이라는 게 없다. 갑각류와 곤충류를 포함하는 절지동물과 인간이 속한 척추동물 두 종만 얼굴을 가진다. 그리고 수많은 척추동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 감정에 따라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지만, 인간의 얼굴이 어떻게, 그리고 왜 지금 모습이 됐는지 제대로 설명한 학설은 아직 없다. 35년을 유전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로 지낸 애덤 윌킨스가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를 쓰게 된 배경이다. 2011년부터 이 궁금증에 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 그는 각종 화석을 비롯해 유전학, 생물학, 인류학 등 인간 진화에 관한 방대한 이론을 살폈다. 저자는 5억년 전 최초 척추동물인 무악어류(턱이 없는 어류)부터 유악어류, 포유류, 영장류, 그리고 인간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역사를 촘촘히 따라갔다. 그리고 진원류(원숭이, 유인원, 인간으로 구성된 영장류)의 얼굴을 분석해 5000만~5500만년 전 인간의 얼굴이 만들어진 과정과 그 특징을 뽑아냈다. 우선 벌레와 다른 작은 동물들을 먹는 식생활에서 과일을 먹는 식생활로 바뀌며 송곳니가 작아지고 주둥이가 축소됐다. 성 선택설, 환경 등에 따라 털은 점차 적어졌다. 두뇌 크기가 증가하면서 이마가 드러나고, 머리는 둥글어졌다. 눈의 간격은 좁아지고 전방을 향하게 됐다. 이런 변화는 표정을 더 잘 드러나게 했다.●두뇌 커지면서 표정 잘 읽을 수 있게 돼 얼굴의 진화는 두뇌 진화와 불가분 관계였다. 저자는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이 인간 진화에 혁신을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바로 ‘사회적 상호작용’이다. 두뇌가 커지면서 표정을 잘 읽게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표정도 더 잘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표현력이 커지면서 무리의 동료와 사회적 상호작용도 촉진됐다. 저자는 이런 사회성 증가가 또다시 두뇌 진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측했다. 사회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다시 말해 표정을 더 잘 읽으려고 두뇌가 더 복잡해진 것이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자 대뇌피질에 새로운 연결 요소가 추가되면서 진화가 뒤따랐다. 다만 이런 일들은 순차적으로, 모든 종에서 일관되게 일어난 게 아니라 수많은 유전자 조합 바탕 위에 비순차적으로, 불규칙하게 진행됐다. 저자는 이런 진화를 가리켜 ‘비틀거리는 모습’이라 표현했다. 이런 연구를 통해 저자가 얼굴의 미래에 관해 내린 추론들도 흥미롭다. 미래에는 인간의 얼굴이 균질화하면서 동시에 세계화한다는 것. 5만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로 흩어지면서 여러 유형으로 나뉘어 제각각 달라졌던 인간의 얼굴은 세계화 현상에 따라 지역 차가 줄면서 또다시 합쳐지는 추세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새로운 유전자가 추가·혼합되면서 얼굴은 또다시 다양해질 것이다. 하버드대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J 굴드는 저서 ‘풀하우스’를 통해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고 했다. 인간의 얼굴이 계속 진화하게 되는 이유인 셈이다. ●얼굴과 성격의 연관성도 찾게 될 것 저자는 또 얼굴 유전학이 계속 발달한다면 얼굴과 성격 사이의 연관성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얼굴 형성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에 대한 연구를 이어 가면 결국 관상가들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다만 이런 일들이 결과적으로는 인간 존재에 대한 경이감을 더 깊게 할 것이라고 저자는 자신했다. 방대한 자료와 이론을 검토한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얼굴이야말로 진화의 최종 산물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생존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 그러니까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 자신의 얼굴에 자신감을 좀 가져도 되겠다. 물론 그래 봤자 원빈 옆에 서면 내 얼굴은 ‘오징어’가 되겠지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전략적 요충지 강릉에서… ‘김씨 왕국’ 원대한 꿈 품었을까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전략적 요충지 강릉에서… ‘김씨 왕국’ 원대한 꿈 품었을까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인천공항에서 서울과 평창을 거쳐 강릉을 잇는 경강선 고속철도가 개통됐다. 대관령국도에 의존하던 강릉과 영서(嶺西)의 교통은 앞서 1975년 왕복 2차로의 영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었다. 이후 대관령고개를 넘는 대신 여러 개의 터널로 이은 4차로 확장공사가 2001년 마무리되면서 영동고속도로는 훨씬 편안해졌다.이제 서울역에서 KTX 열차에 올라 1시간 40분이면 강릉이다. 하지만 지하터널로 백두대간을 지나는 경강선을 타면 결정적인 여행의 재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대관령 고개 너머에 펼쳐진 강릉시내와 동해바다의 장관이 그것이다. 대관령에서 강릉을 바라보면 산과 바다가 제법 멀리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영동지방에서는 드물게 토지는 넓고 비옥하다. 강릉 도심의 서쪽은 태백산맥의 준령이 가로막고 북쪽은 야트막한 산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겨울바람을 차단한다. 그 남쪽으로는 남대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조선시대 강릉도호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길지(吉地)다. 그러니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발굴조사에서는 심곡리와 홍제동, 옥계면 현내리와 주수리 등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됐다. 초당동을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적은 헤아리기 어렵다.강릉은 예(濊)의 옛 땅이었다. 이때부터 하슬라((河瑟羅)라는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이곳에서 빈번히 맞부딪친다. 고구려에는 남쪽에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이었고, 신라에도 북방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일 수밖에 없었다. 하슬라가 신라의 영역에 완전히 편입된 것은 진흥왕(재위 540~576) 시대라고 한다. 이후 하서소경(河西小京)과 명주(溟州)로 잇따라 이름과 지위가 바뀐다. 하서는 하슬라의 한자식 표기다. 고려시대에는 1263년(원종 4년) 강릉도, 1308년(충렬왕 34)에는 강릉부, 1389년(공양왕 1) 강릉대도호부로 변화를 겪는다. 오늘날에도 흔히 쓰이는 임영(臨瀛)은 공양왕이 붙인 강릉의 별호(別號)다. 대도호부 체제는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강릉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 해변 휴양도시로 완전히 거듭나고 있다. 강릉은 태백산맥과 동해바다, 경포호만으로도 아름다움의 극치다. 여기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그 역사가 남겨 놓은 다양한 전통문화, 이 도시의 새롭고도 특별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커피 문화’는 여행자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오늘은 강릉이 가진 흥미로운 역사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주인공은 김유정과 김주원 부자(父子)다. 태종무열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모두 생몰 연대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통일신라가 하대로 접어드는 8세기 중·후반을 살았다. 김유정이라면 낯설어도 김무월랑과 연화부인에 얽힌 설화라면 익숙한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남대천 월화정 설화’를 가장 자세히 적어 놓은 글은 ‘홍길동전’을 지은 강릉 출신 고산 허균의 ‘별연사고적기’(鼈淵寺古迹記)라고 한다. 김무월랑은 강릉에 머무는 동안 연화부인과 사귀었다. 그런데 무월랑은 경주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었다. 연화부인은 편지를 써서 연못에 던졌는데 잉어가 물고 갔다고 한다. 어느 날 경주의 무월랑 집에서는 잉어를 시장에서 사 왔는데 배 속에 연화부인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고려사’ 악지(樂誌)에 나오는 ‘명주가’(溟州歌)의 배경설화이기도 하다. 강릉 남대천 남쪽의 바위 언덕 위에는 월화정(月花亭)이 있다. 무월랑과 연화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이름 지은 정자다. 1933년 강릉대도호부의 객사인 임영관의 부재를 가져다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월화정은 1936년 대홍수 때 남대천이 범람해 휩쓸려 간 것을 2003년 복원한 것이다. 연화부인의 집이 이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연화정은 남대천을 사이에 두고 강릉중앙시장과 마주 보고 있다. 중앙시장은 이제 강릉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됐다.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옛 동해북부선 다리는 최근 인도교로, 철로를 걷어낸 시장 골목은 ‘월화거리’로 새 단장했다. 김유정과 연화부인의 혼인은 중앙귀족과 상당한 세력을 가진 지방호족의 결합을 의미한다. 두 사람의 아들이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이다. ‘삼국사기’를 비롯해 통일신라를 다룬 각종 사서(史書)에는 그의 이름이 예외 없이 등장한다. 선덕왕이 785년 후사(後嗣) 없이 죽자 군신(群臣)은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런데 김주원이 때마침 홍수로 알천(閼川)이 범람해 건너지 못하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며 상대등 김경신을 추대했으니 곧 원성왕이다. 왕위쟁탈전에서 패한 김주원은 명주로 낙향했는데, 원성왕은 786년 그를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했다. 식읍(食邑)은 강릉은 물론 오늘날의 통천·양양·삼척·울진·평해에 이르렀다고 한다.강릉 성산면 보광리 대관령 중턱에는 명주군왕 김주원의 무덤이 있다. 다만 당초의 무덤인지는 확실치 않은 것으로 전한다. 지금의 무덤은 조선 명종 때 강릉 부사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후손 김첨경이 복원한 것이다. 이름처럼 왕릉을 방불케 한다. 군왕이라는 호칭은 좀 낯설다. 원성왕은 당나라로부터 선덕왕의 ‘검교태위 계림주자사 영해군사 신라왕’(檢校太尉 鷄林州刺史 寧海軍使 新羅王)의 작위를 물려받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를 두고 비정상적으로 왕위에 오른 원성왕이 스스로 황제국의 제후라는 것을 내보여 대외적 입지를 강화하면서 국내적으로는 특정 지역 세력을 군왕에 봉하는 일종의 봉작제(封爵制)로 황제적 지위를 행사하려 했다는 학계의 시각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김종기는 김주원의 아들인데 작위를 물려받아 왕이 됐다. 김정여는 김종기의 아들인데 처음 조정에 벼슬해 상대등에 이르렀고, 명원공에 책봉됐다. 김양은 정여의 아들인데 김명의 난(亂) 때 신문왕을 도와 사직을 안정시켰고 명원군왕에 추봉됐다’는 대목이 보인다. 김주원 말고도 아들 김종기와 증손 김양이 군왕에 오른 것이다. 김주원 집안이 신라왕의 책봉을 받는 군왕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독립적인 국가를 추구했다는 연구도 있다. 김주원은 당나라의 수도를 모방해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의 수도를 정했는데, 오늘날 남대천 북쪽의 장안동이 그 흔적이라는 것이다. 당나라의 장안은 고유명사이면서 동시에 천자(天子)의 국도(國都)를 통칭하는 일반명사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김주원의 꿈은 원성왕의 그것보다도 컸다. 명주군왕묘는 강릉시가 제작한 관광지도에도 소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무덤 입구의 숭의재(崇義齋)는 김주원을 기리는 사당이다. 정문에는 삼왕문(三王門)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세 사람의 군왕, 곧 김주원, 김종기, 김양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겠다. 무덤 일대를 돌아본 전체적 인상은 이렇다. 강릉 김씨 종중의 기념물이라는 시각을 덜어내고 객관적 역사를 부각시키면 훨씬 더 진정성 있는 문화유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사설] 추악한 문화계 성폭력에 입 닫은 정부

    막혔던 봇물이 터졌다. 문화계의 성폭력 피해 사례들이 숨 고를 새 없이 폭로된다. 연극 연출가 이윤택씨는 며칠 전의 성폭력 사과 기자회견마저 사전 시나리오를 짰다고 한다. 내부 단원들한테는 성폭행 사실을 버젓이 시인하고 변호사 도움을 받아 가며 불쌍한 표정 연습까지 했다는 것이다. 할 말을 잃는다. 공연계 거장으로 대접받으며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추하게 무너지는지, 이쯤 되면 거장이 아니라 ‘막장’이다. 중견 배우 조민기씨의 사례도 심각하다. 자신의 모교인 청주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최근까지 딸 같은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줄을 잇는다. 구체적인 고발 사례가 쏟아지는데도 소속사를 통해 “명백한 루머”라고 부인하니 피해 학생들의 분노는 더 커진다. 경찰이 움직이고서야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한 발을 빼는 모양새다. 자신의 오피스텔로 수시로 학생들을 불러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주장들은 공연한 음해로 보기 어렵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몇몇 인물들의 도덕적 일탈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일부 인사들이 개인적으로 빚은 끔찍한 추문이 아니라 권위를 권력의 칼자루 삼아 여성 인권을 조롱하고 짓밟은 만행이다. 이씨는 폐쇄된 연극계 안에서 왕이자 신 같은 존재로 통했다. 도제 시스템으로 가뜩이나 힘겹게 굴러가는 공연계에서 사회적 권위로 포장된 거대 권력에 맞서는 것은 누가 봐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대학에서 연기 공부를 하는 어린 학생들도 다를 게 없다. 연희단거리패의 김소희 대표가 이씨의 상습적인 추행을 알았으면서도 “성폭력인 줄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문화계 내부는 올 것이 왔을 뿐 새삼스럽지 않다는 반응들이다. 손바닥만 한 연극계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폭력이 입막음 될 수 있었다면 대중문화계 전반의 사정은 어떨지 짐작할 만하다. ‘미투 운동’의 발원지인 할리우드에서 조사했더니 연예산업 종사자의 94%가 “한 번 이상 성희롱을 당했다”고 답했다. 우리 사정이 더 나을 것 같지는 않다. 성폭력 문제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나 공공기관 채용 부정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끔찍한 사회적 병소다. 사안의 특수성으로 적극적인 개입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한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축이어야 할 여성가족부는 “공공부문 성폭력 근절 대책을 다음주 내겠다”며 뭘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실태를 조사하겠다고만 했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면 미적거리지 말고 속도를 내야 한다. 문화계를 넘어 교육계 등 전방위로 실태를 철저히 파악하고 가해자에게 법적 처벌이 이어지도록 피해자 권리 구제를 도와야 한다. 범정부 차원의 움직임만으로도 성폭력 엄단의 강력한 사회적 기제가 된다.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고려ㆍ조선 모두 섬긴 ‘수재’… 새나라 문장의 기틀 다지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고려ㆍ조선 모두 섬긴 ‘수재’… 새나라 문장의 기틀 다지다

    조선 유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학자이자 조선 최초 문형(文衡·대제학)으로 칭해지는 걸출한 문장가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 사람들은 동시대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에게 열광할 뿐 왕조가 교체하는 격변기에 전형적인 삶을 살아간 그를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 초기 안정적 기반을 다지는 데는 양촌의 역할이 누구보다 컸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과거에 급제한 까마귀 소년 고려 공민왕 때 얼굴이 유난히 검었던 청년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까마귀라고 불렀고, 스스로도 작은 까마귀라는 의미의 ‘소오자’(小烏子)라는 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 청년이 18세 때 문과에 급제했다. 요즘으로 치면 고등고시에 합격한 셈이다. 공민왕이 급제자들의 면면을 살피다가 갑자기 그 과거를 주관했던 목은(牧隱) 이색(李穡)을 돌아보며 “아니, 이렇게 젊은 자도 급제시켰는가”라고 노기에 가까운 불평을 했다. 장차 크게 쓰일 그릇이라는 이색의 극찬을 듣고서야 왕은 화를 풀었다고 한다. 그 젊은이가 바로 양촌 권근이었다. 이후 양촌은 벼슬길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왕조의 교체기에 불가피한 정치적 선택으로 인해 한 차례 큰 시련을 겪게 된다. #유배지에서 꽃핀 학문 양촌은 1389년(창왕) 38세 되던 해에 탄핵을 받은 이숭인(李崇仁)을 변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편당으로 몰려 황해도 우봉으로 유배됐다. 이후 약 1년간 이곳저곳으로 유배지를 옮겨 다녔다. 유배생활은 많은 제약을 받지만, 경우에 따라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킬 기회일 수도 있다. 바쁜 세상사에서 벗어나 오로지 학문과 저술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전남 강진 유배지에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대표적인 사례다. 양촌의 저술도 이 시기에 주로 완성됐다. 1390년 7월부터 11월까지 전라도 익산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양촌은 초학자들이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에 담긴 유학의 기본 개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림과 설명을 곁들인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저술했다. 그 앞부분에 실린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선조에게 올린 ‘성학십도’(聖學十圖) 중 제4도인 ‘대학도’에 그대로 전재하고 있을 정도로 후대 성리학자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11월 홍수로 인해 사면받아 풀려났으나, 그는 다시 충주의 양촌으로 돌아가 오경의 주석 작업에 몰두했다. 54세 때인 1405년(태종)에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을 마지막으로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을 완성했다. 겸손하게 ‘자신의 얕은 견해’라는 의미의 ‘천견’(淺見)이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 경전 주석서다. 특히 유학 경전 주석의 독자적인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의가 큰 저술이다. 이런 학문적 업적은 결코 짧은 시기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벼슬살이로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학문적 성과가 유배라는 일종의 휴식을 계기로 꽃피게 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려의 신하, 조선에 몸을 맡기다 양촌은 개국 소식을 듣고도 1년 가까이 양촌에서 은거하며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양촌의 아버지 권희(權僖)를 통해 집요하게 설득했다. 양촌은 할 수 없이 계룡산에 행차했던 이성계에게 나아갔다. 그곳에서 이성계의 아버지인 환조(桓祖) 이자춘(李子春)의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지어 개국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이성계의 덕을 송축하는 ‘풍요’(風謠)를 짓기도 했다. 애초에 고려의 신하로서 조선의 개국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새로운 왕조와 함께하겠다는 뜻을 보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실망감이었다. ‘축수록’(逐睡錄)이라는 야사에 “당시 선비들이 평소에 공을 종주(宗主)로 여겼었는데, 그때 이후로 모두 머리를 돌리고 침을 뱉었다”고 기록했을 정도였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신원에 가장 공이 컸음에도 사람들은 그를 포은과 비교하며 변절(變節)이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이런 시각은 조선 후기까지 계승돼 유학에 끼친 큰 공로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공자(孔子)의 문묘(文廟)에 종사(從祀)되지 못하고 말았다.#황제가 시를 내리다 비슷한 시기에 건국한 명나라와 조선은 초기부터 기세 싸움이 있었다. 이른바 ‘표전’(表箋) 문제도 그중 하나이다. 표전은 국왕이 황제에게 올리는 일종의 외교 문서다. 평소 정도전의 요동정벌 계획이 거슬렸던 명나라 태조는 1396년(조선 태조)에 조선에서 보낸 표전의 표현을 문제 삼아 표문의 작성에 관여한 정도전을 명나라로 들여보내라고 독촉했다. 의도를 눈치 챈 삼봉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응하지 않자 45세의 양촌이 자원해 명나라로 들어가 대신 용서를 구했다. 그를 가상하게 여긴 황제가 학사들이 모인 문연각(文淵閣)에 머물게 하고 시를 지으라 명했다. 양촌은 모두 24수를 지어 올렸는데 18수는 여정과 조선의 역사, 절경을 읊었다. 6수는 명나라와 태조의 덕을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감탄한 황제는 그를 ‘수재’로 칭하면서 직접 시 3수를 지어 하사하고 융숭하게 대우했다. 외교 문제도 자연히 잘 해결됐다. 이 당시 양촌이 얼마나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는 훗날 일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3대 황제인 영락제(永樂帝)의 즉위를 알리기 위해 사신 유사길(兪士吉)이 왔을 때 국경에서 양촌의 안부를 물었고 연회에서 양촌이 술을 권할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받는 등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나라의 문장을 주관하다 관각(館閣), 즉 예문관과 홍문관은 주로 왕실 의식, 외교 문서 등 국가의 공식적인 제술(製述)을 담당하던 관청이었다. 문학적 역량이 뛰어난 인물들이 배속되는데 그 수장인 대제학은 문형(文衡), 주문(主文)이라 해 국가에서 특별히 우대하였고 문신들도 가장 영예로운 자리로 생각했다. 양촌은 조선 최초의 문형으로 전해진다. 조선 초기의 국가적인 문 대부분은 그의 손에서 나왔다. “우리나라의 관각체(館閣體)는 권근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 정조(正祖)의 평가에서 양촌의 문학적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다. 관각체는 수식적인 면이 많기 때문에 서정적인 문장에 비해 다소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한 느낌을 준다. 관각체 비중이 높은 양촌의 문장에 대해서도 자연히 비슷하게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양촌의 문장이 모두 그렇지는 않았다. 시의 경우는 꾸밈없이 평담하고 자연스러운 맛이 있었다. 그의 문학적 진가는 다음의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봄날 성남(城南)에서의 즉흥시 봄바람에 어느덧 청명절이 다가오니 / 春風忽已近淸明 가랑비 부슬부슬 늦도록 개질 않네 / 細雨??晩未晴 집 모퉁이 살구꽃은 온통 필 듯한데 / 屋角杏花開欲遍 이슬 머금은 몇 가지가 내게로 기울이네 / 數枝含露向人傾 정도전은 이 시를 보고 “시어가 천지조화를 빼앗았다”고 극찬했다. #수성(守城)의 군주를 보필하다 조선은 삼봉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국가의 각종 시스템은 물론 궁궐의 이름까지도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으니 과언은 아니다. 양촌은 목은 문하에서 삼봉과 동문수학했다. 둘 다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고 경세 능력도 출중했다. 서로를 존경하는 것도 같았다. 다만 정치적으로 선택한 길이 달랐다. 이는 두 사람의 기질과도 연관이 있었다. 개혁적인 성향의 삼봉은 창업 군주를 보필하는 쪽이 적성에 맞았고, 보수적인 가문에서 성장한 양촌은 수성 군주를 보필하는 쪽이 적성에 맞았다. 삼봉은 태조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고 요동을 정벌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양촌은 태종을 도와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는 쪽에 더 치중했다. 결과적으로 누가 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일까. 누구의 업적이 더 뛰어났던 것일까.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하다. 창업 시기에는 삼봉이 곧 양촌이었고, 수성 시기에는 양촌이 곧 삼봉이었기 때문이다.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 베이징이 더 기대되는 최민정... 앞도적 실력으로 다음 올림픽 기약

    베이징이 더 기대되는 최민정... 앞도적 실력으로 다음 올림픽 기약

    앞도적인 실력을 보여준 최민정(20·성남시청)이 평창동계올림픽을 2관왕으로 마치게 됐다.최민정은 22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에서 심석희(한국체대)와 부딪쳐 넘어지며 4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1500m와 3000m 계주 금메달을 딴 최민정은 1000m에서 대회 3관왕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비록 운이 따라주지 않아 더 많은 금메달을 수확하진 못했으나 최민정은 이번 올림픽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레이스로 이미 세계 최강의 쇼트트랙 선수임을 증명했다. 예선부터 결승까지 최민정이 100%를 쏟아내면 그와 2위 사이엔 꽤 넓은 간격이 있었다. 일단 출발선에 최민정이 서기만 하면 ‘믿고 보는’ 든든한 선수였기에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도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최민정의 전관왕 기대감이 흘러나왔다. 최민정이 이번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랭킹에서 500m, 1000m, 1500m, 3000m 계주에서 모두 정상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기대였다. ‘초대 쇼트트랙 여제’인 전이경조차 최민정을 향해 “아무와도 비교할 수 없는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칭할 정도였다. 불과 스무 살인 최민정 앞에는 지금까지 이룬 것보다 더 밝은 미래가 남아있다.지금처럼 기량을 유지하며 성장해나간다면 4년 후 베이징올림픽에선 최민정이 정말 4관왕이 된다고 해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악~ 심석희 최민정 충돌 ..여자 1000m 노메달

    악~ 심석희 최민정 충돌 ..여자 1000m 노메달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쌍두마차’ 심석희(한국체대)와 최민정(성남시청)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에서 충돌하면서 메달 사냥에 실패했다. 심석희와 최민정은 22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에서 마지막 바퀴에서 서로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동시에 넘어진 심석희와 최민정은 끝내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이날 충돌로 최민정은 3관왕의 꿈이 깨졌고, 심석희는 개인전 금메달 기회를 날렸다. 최악의 결과였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쌍두마차’가 출격해 최소 금메달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사고는 9바퀴를 도는 레이스 마지막 바튀에서 벌어졌다. 하위권에서 틈을 노리던 최민정이 가속도를 붙이고 코너를 도는 과정에서 3위로 달리던 심석희와 엉키면서 동시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한국 선수 2명이 탈락하면서 금메달은 네덜란드의 쉬자나 스휠팅(1분29초778)이 차지했고, 킴 부탱(캐나다·1분29초956)이 은메달, 아리안나 폰타나(이탈리아·1분30초656)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심석희는 패널티를 받아 실격처리됐고, 최민정은 4위로 밀렸다. 노메달로 대회를 마친 심석희는 “마지막 스퍼트 구간이 겹치면서 충돌이 일어났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레이스의 마지막 스퍼트 구간이 겹치면서 충돌이 일어났고, 그러면서 넘어졌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심석희는 레이스를 마치고 링크를 돌던 최민정에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심석희는 “민정이가 혹시 다친 게 아닐까 봐 제일 먼저 걱정이 돼서 괜찮으냐고 물어보고 어디 다친 데 없는지 확인했다”며 “충돌로 인해 넘어져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넘어지기는 했지만 제 마지막 종목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끝까지 타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심석희는 또 “가능하다면 1500m 경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너무 허무하게 끝난 경기”라며 “그래도 1000m에서 결승까지 올라 마지막 경기까지 (스케이트를) 타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고향인 강릉에서 올림픽을 치르게 된 것도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심석희와의 충돌로 3관왕이 무산된 최민정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경기장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미시대’, ‘컬크러시’는 어때요?…여자컬링 대표팀 애칭 공모 열기

    ‘영미시대’, ‘컬크러시’는 어때요?…여자컬링 대표팀 애칭 공모 열기

    국민영미 ‘김영미’ 따온 별명 가장 많아걸그룹 이름 빌린 ‘원더컬스’도재치있는 별명까지 5000명 넘게 참여 “‘마늘소녀’ 대신 예쁜 애칭으로 불리고 싶어요”시원시원한 플레이와 인간적인 매력으로 아이돌을 능가하는 사랑을 받는 여자컬링 국가대표팀에게 새로운 애칭을 지어주자는 이벤트에 5000명 이상이 참여해 화제다. 여자컬링 대표팀은 21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예선에서 8승 1패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둬 조 1위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대표팀은 이날 인터뷰에서 마늘소녀(갈릭걸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귀여운 불만(?)을 나타냈다. 더 예쁜 애칭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경상북도체육회 소속의 여자컬링 대표팀 5명 가운데 4명이 마늘 특산품으로 유명한 경북 의성 출신이다. 대표팀은 김영미(27)를 중심으로 ‘영미 친구’ 김은정(28), ‘영미 동생’ 김경애(24), ‘영미 동생 친구’ 김선영(25), ‘영미랑 같은 성씨’인 김초희(22)로 구성돼 있다.mbc가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 계정(@mbcolympics)에서 개최한 ‘컬링 여자 대표팀 대국민 애칭 공모’이벤트에는 22일 오전 기준 5000명 이상이 댓글로 참여했다. 응모작 가운데 인상적인 별명을 특징별로 분석해봤다. 컬링 여자 대표팀이 김영미의 인맥을 중심으로 구성된 점에 착안한 애칭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다. ‘영미와 아이들’, ‘영미와 친구들’이 대표적이다. 영미와 컬링하는 소녀들이라는 뜻의 ‘영컬즈’, 수호랑 대신 ‘영미랑’, ‘영미쓰’, ‘영미걸스’, ‘YM걸스’, ‘영미의 굴레’ 등도 나왔다. 한 네티즌은 “영미의 조합으로 이뤄진 팀 구성과 의성 출신이라는 공통점, 실력 또한 하나의 성을 이룬 듯 출중하다는 뜻에서 ‘영미의 성’을 추천한다”고 적기도 했다.대표팀이 5명으로 이뤄진 점을 들어 ‘파이브’를 애칭에 넣자는 의견도 있었다. 환상적인 컬링 실력을 가진 다섯 선수라는 뜻의 ‘판타스틱5’, 겨울왕국 엘사여왕이 5명이란 뜻의 ‘엘사파이브’, ‘킴스파이브’, ‘위너파이브’, ‘파이브영스’ 등이다. 컬링의 특징을 담은 별명들도 눈에 띄었다. ‘컬크러시’가 제법 많이 응모됐다. 한 네티즌은 “대한민국 온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녀들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고, 또다른 이는 “선수들의 열정과 카리스마로 상대팀을 으스러뜨린다는 듯”이라고 적었다. 컬링하는 귀염둥이라는 의미의 ‘컬둥이’, 컬링과 에이스를 합친 ‘케이스’, ‘컬스카우트’, ‘컬스온탑’, ‘컬시스터즈’, ‘뷰티컬스’ 등이다. 카리스마와 컬링을 합친 ‘컬리스마’, 비질로 얼음판을 닦는 동작에서 따온 ‘스윕걸즈’, 컬링스톤에 착안한 ‘스톤걸스’, 컬링계의 칼루이스(전설적인 미국의 육상선수)라는 뜻의 ‘컬루이스’ 등도 추천됐다. 얼음판의 여왕이라는 뜻을 담아 ‘컬링퀸즈’, ‘컬퀸즈’ 등을 응모한 사람도 있었다.걸그룹의 이름을 빌려온 별명 또한 꽤 많았다. 소치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팀의 애칭이었던 ‘컬스데이’와 함께 ‘원더컬스’, ‘오마이컬’, ‘컬스언니쓰’, ‘미끄럼언니쓰’, 소녀시대를 차용한 ‘영미시대’, 올림픽 오륜기와 컬링, 러블리즈를 합친 ‘컬러링즈’ 등이다. ‘애프터컬링’을 추천한 네티즌은 “대표팀 선수들이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했다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마늘만큼 컬링 대표팀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별명이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갈릭천사’, ‘갈릭군단’, ‘갈릭파이브’, ‘갈릭앤젤스’ 등이 추천된 이유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별명도 나왔다. ‘프리티스톤’을 응모한 사람은 “컬링할 때 모습은 강하지만 내면에는 아름다움을 가진 선수들, 무거운 스톤을 만지는 아름다움이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김밥’을 추천한 네티즌은 “성이 모두 김씨이기도 하고 김밥 재료처럼 리드, 세컨드, 서드, 스킵이 있어서 모두 역할과 장단점이 다르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웃음을 터뜨리는 재치있는 별명도 추천됐다. ‘B사감과 러브이터’로 응모한 네티즌은 “김은정 선수 특유의 분위기가 여자기숙사 사감같다. B는 선수들이 체력보충을 위해 휴식 도중 먹는 바나나를 뜻하기도 한다”면서 “먹는 걸 좋아하는 선수들의 특성을 고려해 러브이터로 지어봤다”고 했다. 컬링 대표팀의 장수(?)를 바라는 별명으로 ‘킴수한무영미와친구들갈릭갑자돌방삭’이란 별명도 있었다. 이번 이벤트는 23일까지 진행되며 당첨자는 25일 발표된다. mbc는 이벤트에 당첨된 사람에게 30cm 크기 수호랑(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인형(5명)과 무한도전 탁상시계(50명)를 준다고 밝혔다.여자 컬링 대표팀은 오는 23일 준결승에서 예선 4위로 올라온 일본과 결승 진출을 다툰다. 일본은 예선에서 우리 대표팀에 유일한 1패를 안긴 숙적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英여왕 패션쇼 깜짝 관람

    英여왕 패션쇼 깜짝 관람

    엘리자베스 2세(앞줄 왼쪽 두 번째) 영국 여왕이 20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리고 있는 ‘런던 패션위크’ 행사장을 깜짝 방문해 미국의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세 번째) 등과 함께 패션쇼를 관람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런던 패션위크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런던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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