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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리용호·中 왕이 “양국 정상회담 성과 실천에 옮겨야”

    北 리용호·中 왕이 “양국 정상회담 성과 실천에 옮겨야”

    왕이 “한반도 비핵화에 노력”북한과 중국이 지난주 정상회담을 연 데 이어 3일 베이징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하는 등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리는 비동맹운동(NAM) 각료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베이징에 도착해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 양국 주요 관심사와 현안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왕 부장과 리 외무상 모두 “북·중 정상회담 성과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 부장은 “현재 상황에서 북·중 전통 우의를 유지하고 발전하는 것은 양국 및 지역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양국 최고 지도자의 베이징 회담 성과를 조속히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지지한다”면서 “중국은 계속해서 대화와 담판을 촉구하며 한반도 비핵화 목표 실현과 평화 메커니즘 구축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북·중 베이징서 ‘외교장관’ 회담... “북중 관계 발전”

    북·중 베이징서 ‘외교장관’ 회담... “북중 관계 발전”

    북한과 중국이 지난주 정상회담을 연 데 이어 3일 베이징(北京)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하는 등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리는 비동맹운동(NAM) 각료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이날 베이징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 양국 주요 관심사와 현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왕이 국무위원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성공적인 방문을 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김 위원장과 북·중 관계 발전 및 한반도 핵 문제의 평화적 추진에 대해 중대한 인식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또 “현재 상황에서 북중 전통 우의를 유지하고 발전하는 것은 양국 및 지역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양국 외교 부문은 각급 교류를 강화하고 양국 최고 지도자의 베이징 회담 성과를 조속히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중국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입장과 한반도 정세 완화에 기울인 노력에 찬성하며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지지한다”면서 “중국은 계속해서 대화와 담판을 촉구하며 한반도 비핵화 목표 실현과 평화 메커니즘 구축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리용호 외무상은 “북중 양국 지도자의 성공적 베이징 회동은 북중 관계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면서 “북한은 중국과 함께 양측 지도자의 공동 인식을 잘 실천하고 고위급 상호 방문과 각 급별 외교 소통을 강화하며 북중 전통 우호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길 원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북중은 양국 최고지도자의 베이징 회담이 가리킨 방향에 따라 한반도 유관 문제에 대해 중국 측과 긴밀한 전략적 소통을 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리 외무상과 왕 국무위원은 북중 정상회담에서 논의한 한반도 문제 등 주요 의제에 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외무상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공식 중국 방문 시 동행했으며, NAM 각료회의에 참석한 뒤 러시아에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리 외무상이 다른 행사 참석을 위해 베이징을 경유할 때 중국 측 고위인사와 만나는 경우는 드문 편”이라며 “양국 외교장관 간 회담은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중 관계가 많이 회복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리 외무상은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우군인 중국 측과 구체적인 논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후 러시아를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 내용 공유하고, 러시아 측과도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실험적이고 SNS 소통 서점…젊은층만 즐기는 건 아쉬워”

    “실험적이고 SNS 소통 서점…젊은층만 즐기는 건 아쉬워”

    일본 누마북스 대표 우치누마 신타로와 아사히 출판사 편집자 아야메 요시노부는 2016년 6월 서울에 있는 소형서점 몇 곳을 둘러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 접하기 어려운 실험적인 서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소통을 활발히 하는 서점 등에 마음을 빼앗겼다. 내친김에 서울의 ‘핫’한 소형서점 14곳과 출판사·북카페 16곳의 대표 등을 만나 인터뷰하고 최근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컴인)을 냈다. 2일 두 전문가를 만나 서울의 소형서점에 끌린 이유를 물었다.→서울 소형서점을 찾아다닌 이유는. -아야메 일본도 출판업계가 어렵다. 소형서점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위기를 극복할 아이디어를 찾고 싶었다. 이왕이면 가까운 곳, 우리와 비슷한 곳에서 찾아봤다. -우치누마 한국은 큰 서점도 무너지고, 출판계도 많이 어렵다고 들었다. 이런 와중에 소형서점 일부가 인기라더라. 왜 그런지 찾아보면 일본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서울 소형서점이 일본과 다른 점은. -아야메 서점을 준비하고 열기까지 속도가 일본보다 훨씬 빠르다. 최근 어떤 곳은 한 달 정도만 준비했다 하더라.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6개월 정도 준비하고 시작해도 ‘그렇게 빨리 준비해 뭐가 되겠느냐?’고 할 정도다. -우치누마 한국은 시작하고 나서 공부하고, 일본은 공부하고 나서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일단 시작부터 하니 실험적인 시도도 많이 하는 거 같다. →소형서점은 큐레이션이 중요한데. -우치누마 세세한 진열이나 큐레이션(책을 선정하고 진열하는 일)을 잘하는 곳도 많다. 서울 마포구 ‘땡스북스’의 진열대 책은 한글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재밌을 거 같은 책이 놓여 있다. 서울 서대문구 ‘유어마인드’는 독립출판물을 진열했는데, 대표가 소개하고 싶은 책을 잘 골라놨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야메 서울 마포구 북바이북은 자매 둘이서 맥주를 파는 서점이다.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을 보여주며, 함께 소통하며 즐거워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대표가 ‘혼술’(혼자서 술 마시는 일) 서가를 마련하면 고객들이 종이에다 멘트를 다는 ‘책꼬리’가 인상 깊었다. →홍보나 마케팅에 어려움이 있지 않나. -우치누마 우리가 봤던 소형서점들은 ‘홍보나 마케팅이 어렵다’고 하지 않았다. 일본과 다른 한국의 특징인데, SNS의 영향력이라고 본다. 소형서점에서 올린 게시물에 수백개의 ‘좋아요’가 달리는 일은 일본에서 극히 드물다. 한국은 재밌는 것을 즐기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젊은층만 즐기는 문화는 아쉽다. -우치누마 동감한다. 소형서점이 젊은이들 중심으로만 유행하는 느낌이다. 부작용도 있다. 어떤 뮤지션이 카페를 하며 책을 파는 곳이었는데, 책을 ‘인테리어용’으로만 쓰더라. 적어도 서점이라면 방문하는 이들에게 책 소개는 해야 하지 않을까. 책을 그저 ‘인스타그램’(SNS의 일종) 배경으로만 써서는 안 된다. →소형서점이 지속하려면. -우치누마 역시나 책에 관한 애정, 그리고 서점을 누가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앞으로 한국도 일본도 대형서점 체인점을 통해 서점을 확대하기에는 한계에 부닥칠 거다. 누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책을 팔고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느냐 고민하는 업체만 살아남을 수 있다. -아야메 동감한다. 유명한 레스토랑에는 ‘바로 그 셰프’가 있으니까 가는 거다. 소형서점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출판업계에도 ‘이 출판사가 낸 책이어서, 이 편집자가 만든 책이어서 고른다’는 문화가 강해질 거다. 일본말 중에 ‘서점은 사람이다’라는 게 있다. 그야말로 딱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경복궁 명예수문장 된 마크 테토

    경복궁 명예수문장 된 마크 테토

    1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홍례문 앞에서 개최된 ‘경복궁 수문장 임명 의식’에서 미국 기업인이자 방송인인 마크 테토(오른쪽)가 명예수문장패를 전달받고 있다. 올해로 7회를 맞이한 경복궁 수문장 임명 의식은 1469년(예종 1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수문장제도 설치와 수문장 임명’을 역사적으로 근거해 국왕이 친히 경복궁 홍례문에 행차한 후 2명의 수문장을 새로 임명하고 이를 축하하는 전통문화행사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만우절, 옴진리교가 검색어에 오른 까닭은?

    만우절, 옴진리교가 검색어에 오른 까닭은?

    1일 오전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악마를 믿었다’ 편에서 옴 진리교가 소개돼 1995년 발생한 도쿄 지하철역 사린가스 테러사건이 또다시 화제다.옴 진리교는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가 1984년 요가를 수행하는 옴 신선회의 도장을 기반으로 창시했다. 그는 “일본의 왕이 돼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산바라화 계획’을 세웠다. ‘우주의 창조 유지 파괴’를 뜻하는 힌두교의 문구 ‘옴’에서 따온 옴 진리교의 신도들은 힌두교의 파괴의 신인 ‘시바’를 주신으로 믿었다. 특히 공중 부양 자세로 명상을 하는 아사하라 쇼코의 사진이 잡지에 실리면서 초능력 요가 신비주의 등을 따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옴 진리교가 크게 유행했다. 아사하라 쇼코는 “인류가 세균과 핵 무기로 최후 종말을 맞는다”며 “옴 진리교 신자들은 1995년 11월 아마겟돈을 극복하고 천년왕국을 영위할 것”이라고 설법했다. 그러던 중 1995년 3월20일 오전 8시쯤, 일본 도쿄 지하철역에서 사린가스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지하철 3개 노선과 5개 차량에서 13명의 시민이 숨지고 60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 조사 결과 아사하라 쇼코와 교단이 그동안 설파해온 ‘종말’을 실현하기 위해 꾸민 일로 드러났다. 하야시 히쿠오 등 체포된 주범 4명은 “모든 게 교주님 지시”라고 털어놨다. 결국 아사하라 쇼코는 사형 선고를 받았고, 사린가스 테러사건 주범은 지금도 복역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는 형님’ 이승훈-김민석-정재원, 허벅지 힘 대결 승자는? ‘반전’

    ‘아는 형님’ 이승훈-김민석-정재원, 허벅지 힘 대결 승자는? ‘반전’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승훈 김민석 정재원은 31일 방송된 JTBC ‘아는 형님’에 전학생으로 출연해 입담을 뽐냈다.이날 이승훈은 “스피드 스케이팅 3대 천왕이다. 세계 최강 빙신들이高에서 전학왔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반면 정재원은 긴장된 모습으로 첫 인사를 하던 도중 버벅거려 웃음을 자아냈다. 강호동보다는 유재석이 더 좋다고 밝히기도. 정재원은 “유재석 형이 연예대상 나올 때 응원하고 그랬다. 근데 호동이 형은 요새 안 나오더라”고 디스했다. 반면 이승훈은 예능 경력자다운 입담으로 예능감을 뽐냈다. 형님들의 짓궂은 질문에도 여유롭게 빠져나갔다. 신문선 해설위원 성대모사를 하는가 하면, 형님들과의 2단 줄넘기 대결에서 가볍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장래희망은 주부라고. 이승훈은 “집안일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정재원은 ‘돈 많은 백수’가 장래희망이라고 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형님들은 “건물주가 되고 싶은 것이냐”고 물었고, 정재원은 “그렇다. 돈 많은데 일 안 하면 편하지 않냐”고 답했다. 이를 들은 이승훈은 “스케이트 선수 해서 건물 사기 쉽지 않다”고 말했고 형님들은 “너무 현실적이다”라며 타박했다. ‘아형고 체육부’ 코너에서는 허벅지 줄다리기 대결이 펼쳐졌다. 김민석은 이상민을 상대로 가뿐하게 승리를 거뒀다. 맏형 이승훈과 막내 정재원의 대결도 이어졌다. 대결 시작과 동시에 이수근이 “광고 보고 오겠습니다”라고 외치자 정재원은 주저 않으며 “I SEE”라고 말해 큰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진 경기에서 이승훈이 정재원을 꺾었으나 서장훈에게는 패했다. 서장훈과 강호동의 대결에서는 강호동이 이겨 최후의 승자가 됐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시진핑, 정전협정 65주년 맞춰 7월 말 방북”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7월 말 북한 평양을 답방하기로 했다고 홍콩 시민단체가 밝혔다. 홍콩 중국인권민운정보센터(中國人權民運信息中心)는 30일 홈페이지에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시 주석이 오는 7월 26일 한국전쟁 정전 65주년 기간에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문 다음날인 7월 27일은 1953년 유엔 연합군과 북한, 중국이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에 서명한 날이다. 민운정보센터는 시 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을 연장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북·중 간 ‘혈맹’ 관계를 규정한 조약은 북한과 중국이 1961년 체결한 상호 방위조약으로 어느 한 나라가 침략을 받으면 상대국에 즉각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 주석의 한국전쟁 정전 65주년을 맞이한 북한 방문은 미국에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하고 한·미와 북·중 간 대립 구도를 한층 부각시킬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시 주석 특사 자격으로 다음달 4~5일 러시아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병약한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 전장 누빈 당당한 전사!

    [핵잼 사이언스] 병약한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 전장 누빈 당당한 전사!

    황금가면의 주인이자 소년 파라오로 알려진 투탕카멘이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병약하기만 한 어린 파라오는 아니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투탕카멘은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재위 BC 1361∼1352) 파라오다. 18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으며, 사망 원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영국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진은 지난 2014년 투탕카멘이 생전 ‘내반족’이라는 발 기형에 뻐드렁니를 가졌으며, 근친상간으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 때문에 신체에 여러 장애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당시 연구진은 투탕카멘의 조기 사망 역시 이러한 병약한 신체와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최근 영국 노샘프턴대학 연구진은 RTI(Reflectance Transformation Imaging)라는 촬영 기법을 통해 3000년 전 죽은 소년 파라오의 유물을 재분석했다. RTI는 인공조명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음각된 글자의 모양을 촬영한 뒤 이미지 처리를 거쳐 선명도를 높여 판독을 용이하게 하는 ‘디지털 탁본’이다. 연구진은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가죽 소재의 갑옷을 정밀 분석한 결과 갑옷의 가죽 부분 모서리에서 닳거나 긁힌 흔적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루시 스키너 박사는 “갑옷에 있는 흔적은 투탕카멘이 이를 입고 전쟁에 나간 ‘전사’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투탕카멘은 더이상 병약하고 여린 소년왕이 아닌 다른 이미지를 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연구진은 투탕카멘 가죽 갑옷의 비밀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당 갑옷이 세상에 다시 나온 지 약 100년이 흘렀지만, 전문가들은 갑옷에 사용된 가죽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다. 스키너 박사는 “일반적으로 가죽은 수분과 만나면 쉽게 손상되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 연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우리는 이런 종류의 가죽을 만드는 데 사용된 고대의 방법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탕카멘은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1922년 11월 나일강 서쪽 ‘왕가의 계곡’에서 황금 가면를 쓴 그의 미라와 수많은 부장품이 보존된 그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유명해졌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남편 여읜 고려·조선의 신분 높은 여인들 승려가 되어 ‘죄’를 씻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남편 여읜 고려·조선의 신분 높은 여인들 승려가 되어 ‘죄’를 씻다

    정업원(淨業院)은 불교국가 고려의 국책 비구니 사찰이었다. 왕가(王家)를 비롯해 신분이 높은 여인들이 남편을 여의면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성리학을 국시로 하는 유교국가 조선에서도 정업원의 전통은 이어졌다. 업(業)이란 중생이 지은 선악(善惡)과 그 응보를 가리킨다. 정업원이란 살아생전의 잘못을 깨끗하게 씻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정업원에 몸담은 여인들이 지은 가장 큰 잘못은 아마도 남편을 먼저 저세상에 보낸 죄가 아닐까 싶다.고려시대 정업원이 언제 창건됐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한다. 1164년 의종이 정업원에 행차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를 임시수도로 삼았을 때도 정업원을 지정해 비구니들이 모여 살도록 했고, 환도한 이후 다시 정업원을 운영했다. 조선은 한양에 도읍하면서 개경의 정업원을 옮겨 세웠다. ●고려 의종 이전부터 존재… 창건 시기 불명확 국가가 운영하는 정업원이라는 이름의 비구니 사찰이 고려 초기부터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신분이 높은 여인들이 다양한 이유로 승려가 되어 절에 머무는 전통은 건국 초기부터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전국의 세력가와 혼인해 결속력을 높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태조는 오늘날의 평양인 서경(西京)에서도 지역의 유력호족 김행파의 두 딸과 각각 인연을 맺었다. 그런데 이후 태조가 서경의 부인들을 돌아보지 않자 두 사람은 출가해 비구니가 됐고, 태조가 이런 사실을 알고는 서경에 대서원(大西院)과 소서원(小西院)이라는 비구니 사찰을 세워 두 여인을 머물게 했다고 한다. 이들이 태조의 제19비 대서원부인과 제20비 소서원부인이다. 공민왕의 제2비 혜비(惠妃) 이씨는 고려 말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학자인 계림부원군 이제현과 수춘국부인 박씨의 소생이다. 공민왕의 정비 노국대장공주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명문가의 딸을 후비로 들이자는 조정 공론에 따라 간택됐다. 혜비는 공민왕이 시해되자 비구니가 되었는데 세상을 떠나자 조선 태종이 부의를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혜화궁주로 불리던 혜비는 당시 조선왕실 정업원의 주지 직함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은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정업원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이야기는 아무래도 영조가 세운 정업원구기비(淨業院舊基碑)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정업원구기비는 한양 도성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의 동쪽 기슭에 있다. 오늘날 행정구역으로는 서울 종로구 숭인동이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창신역에서 낙산으로 휘돌아 오르는 길 중간이다. 구기비 보호각은 청룡사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정업원구기비란 정업원 옛 터에 세운 비석이라는 뜻이다. 영조가 단종비 정순왕후를 기리고자 1771년 친필로 ‘정업원구기’ 다섯 글자를 써서 새겼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영월에서 살해된 뒤 정업원에서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생을 보낸 것을 넘어 최근에는 정순왕후 스스로 ‘정업원주지 노산군부인 송씨’(淨業院住持 魯山君夫人 宋氏)라고 쓴 문서가 발견됐다. 정순왕후가 아예 정업원으로 출가했음을 알 수 있다.●임진왜란 때 창덕궁 일대 전소되면서 폐사 조선 초기 정업원은 창덕궁 서북쪽 원서동에 있었던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성종실록’에는 ‘정업원은 궁궐의 담장 곁에 있는데 범패(梵唄) 소리가 궁중까지 들리니 진실로 적당한 곳이 아닙니다’라는 대사헌 박건의 상소가 나온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범패는 불교 의식에 쓰이는 음악이다. 정업원은 조선 초기 세 차례 폐지됐다가 설치되기를 반복했다. 세종 시대인 1448년 없어졌다가 호불왕(好佛王)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던 세조에 의해 1457년 옛 터에 다시 세워졌다. 정업원은 연산군이 1504년 창덕궁 주변을 사냥터로 만들면서 다시 폐지됐다. 중종반정 이후 정업원 건물은 독서당으로 활용됐다. 이후 명종의 어머니로 불교의 부흥을 꾀했던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던 1546년 다시 세워진다. ‘명종실록’에는 “인수궁을 선왕의 후궁을 위하여 수리하도록 하고, 정업원은 인수궁에 소속시켰다가 아울러 수리하여 선왕의 후궁 가운데 연고가 생기는 이를 이주시키도록 하라’는 전교가 보인다. 정업원은 임진왜란 때 창덕궁 일대가 모두 불타면서 폐사됐다. ‘선조실록’에는 “정업원 등의 옛터에 여승이라 불리는 자들이 많이 들어가 집을 짓고 감히 전철을 따르고 있다”는 상소에 임금이 “정업원의 일은 비록 옛터에다 초가집을 지어 거처하는 장소로 삼고 있지만…허물고 내쫓기까지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할 듯하다”고 답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정업원의 기능이 왜란 이후에도 그런대로 이어졌음을 보여 준다. 그러다 1666년(현종 2) 실록에는 “인수(仁壽)와 자수(慈壽)의 두 이원(尼院)을 혁파하여, 자수원 것은 재목과 기와를 성균관에 내려 학사를 수리하는 데 쓰게 하고 인수원 자재는 옮겨다가 질병가를 짓도록 했다. 질병가는 궁인 가운데 질병이 든 자를 거처하게 하는 집”이라는 내용이 있다. 인수원과 자수원이란 선왕 후궁들의 거처였던 인수궁과 자수궁의 부속 사찰을 일컫는 표현일 것이다. 정순왕후가 정업원주지를 맡고 있던 시기는 연산군이 창덕궁 옆 정업원을 철폐한 이후, 명종이 복설(復設)하기 이전이다. 도성 내부에서 쫓겨난 정업원의 비구니들이 도성 바깥 인창방에 다시 절을 세운 것이다. 인창방은 오늘날 흥인지문 밖 숭인동과 창신동 일대에 해당한다.●비구니 사찰 청룡사에 정순왕후 출가설도 정업원구기비를 둘러보고 나면 담장 너머 청룡사와의 관계가 궁금하다. 오늘날 청룡사는 정업원처럼 비구니 사찰이다. 청룡사 측은 정순왕후가 출가한 절로 한때 이름이 정업원이었다고 주장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명으로 922년 비구니 혜원을 주석하게 했다는 역사도 전한다. 하지만 구기비를 세울 당시 주변에는 정업원도, 청룡사도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추정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선왕의 후궁들이 머무는 왕실 부속 사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은폐된 공간에서 절개를 지키며 살아가기를 강요당했던 궁녀들의 존재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가운데 불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많았고, 정업원이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사실상 같은 역할을 하는 사찰이 필요했다. 정업원구기비가 세워진 곳은 이런 절을 세울 적지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청룡사는 19세기 이후 은퇴한 궁녀들이 여생을 보내는 사찰로 쓰였고, 역시 낙산 동쪽 기슭으로 구기비 언덕 너머에 있는 보문사도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잘 알려진 것처럼 정순왕후는 수양대군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계유정난 이후 인창방에 살면서 남편이 귀양 가서 죽은 영월 쪽에 바라다보이는 집 뒤편 돌산에 올라 눈물을 삼켰다고 한다. 영조는 정업원구기비를 세우면서 이 봉우리에도 동망봉(東望峰)이라고 친필로 써서 새겼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곳이 채석장이 되면서 영조 어필 표석도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동망봉 봉우리는 체육공원이 됐고, 한켠에 정순왕후의 이야기를 새긴 최근의 작은 표석이 하나 보일 뿐이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중국 자동차의 해외시장 진출을 주도하는 지리(吉利)차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중국 자동차의 해외시장 진출을 주도하는 지리(吉利)차

    중국 지리(吉利·Geely)자동차 계열사인 스웨덴 볼보는 내년부터 벨기에 겐트 공장에서 공동 브랜드인 링크&코(Lynk&Co)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본격 생산할 계획이다. 이런 계획은 경비 절감과 생산량 단기 확대를 위해 기존 XC40 생산라인을 이용해 링크의 하이브리드 SUV ‘01’과 후속 모델을 생산하겠다는 조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중국 브랜드의 자동차가 유럽에서 생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볼보의 이번 결정은 리수푸(李書福) 지리차 회장의 유럽 진출 방안 중의 하나라고 지난 27일 보도했다. 호칸 사무엘손 볼보 최고경영자(CEO)는 “새 브랜드의 유럽 시장 진출에 큰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며 “볼보의 기술적·산업적 전문성으로 링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중국 지리자동차가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자사 브랜드의 유럽 생산, 글로벌 자동차 업체 볼보와 벤츠 브랜드를 소유한 다임러 인수 등 해외 사업은 물론 내수 호조로 매출액 급증 등 국내 사업도 순풍에 돛단 듯이 잘 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자동차는 이번 유럽 생산 계획 발표에 앞서 지난 2월24일 90억 달러(약 9조 7000억원)를 들여 독일 자동차업체 다임러의 지분 9.69%를 인수해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리수푸 회장은 “친구들 없이 외부 침입자들에게 대항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자동차 메이커는 없다”며 “공유하고 힘을 모아 새로운 방식에 적응해야 하며, 다임러에 대한 투자는 이런 비전이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리 회장은 그동안 적극적인 해외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를 키웠다. 지리차는 2010년 볼보승용차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처음 존재를 드러냈다. 당시 “뱀이 코끼리를 삼켰다”(蛇呑象)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지만 리 회장은 이에 아랑곳 없이 볼보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독자경영을 보장하는 혁신책을 내놓았다. 2013년엔 영국 택시 ‘블랙캡’을 생산하는 망가니즈 브론즈를 인수했다. 지난해 5월 말레이시아 국영자동차 업체 프로톤 지분 49.9%를 인수했고, 프로톤이 보유한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 로터스 지분 51%도 매입했다. 11월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로 유명한 미국 실리콘밸리 업체 테라퓨지아를 인수한 데 12월에는 볼보상용차의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 해외 시장에서만 순항하는 게 아니다. 지리차는 국내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에 힘입어 지난해 수익이 2배 이상 증가하는 상승세를 탔다고 지난 21일 공시했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지리차는 보웨(Boyue·博越)를 비롯한 SUV의 판매 증가가 호재로 작용해 지난해 매출액 928억 위안(약 15조 7500억원), 순이익 106억 위안으로 각각 집계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지리차의 판매 규모는 전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125만대를 기록했고 주가도 100%나 뛰었다. 트럭에서 슈퍼카에 이르는 지리차의 다양한 모델 라인은 중국내 경쟁사를 압도한 것이다. 리 회장의 재산가치는 1100억 위안으로 불어나 올초 발표된 중국 부자를 연구하는 후룬(胡潤)연구소의 ‘중국 부호 리스트’에서 딩레이(丁磊) 왕이(網易)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공동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8년 전까지만 해도 148위에 머물러 그는 ‘재계의 다크호스’로만 불렸다.리 회장의 성공은 ‘자동차 굴기’(崛起)를 추진 중인 중국 정부와 ‘자동차 왕국’을 꿈꾸는 그의 목표가 절묘히게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1963년 저장(浙江)성 타이저우(台州)에서 태어난 리 회장은 고교 졸업 후 사진관을 하며 모은 돈으로 1986년 냉장고 부품 공장을 세우며 사업에 첫 발을 디뎠다. 1990년대 중반까지 부동산 투자와 건축자재 등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대 나름대로 사업자금을 축적했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너무 좋아했던 만큼 자동차산업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중국 정부가 민간자본의 자동차산업 진출을 허용하지 않았던 탓에 1993년 오토바이 제조업에 먼저 뛰어들었다. 대만 오토바이를 베끼던 수준이던 그는 1996년 타이저우에 지리그룹을 설립해 파산 직전에 있던 국유 자동차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동차산업에 진출했다. 이 분야 초보였던 리 회장은 벤츠를 직접 분해할 정도의 자동차에 빠져들었다. 1998년 첫 자동차 생산에 이어 2002년 한국의 대우차 생산설비를 도입해 ‘지리CK’란 차종을 출시했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성장했다. 중국법에 따르면 중국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중국 자동차 업체들과 50 대 50 합작법인을 설립해야 한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 ‘무임승차’하면서 별다른 노력 없이 성장해온 셈이다. 그러나 ‘중국의 헨리 포드’를 꿈꾸던 리 회장은 여느 중국 자동차 업체 CEO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합작사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 기술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해외 기업과 경쟁하기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저가 자동차 생산만으로는 사업 확장에도 한계를 느꼈다. 그는 자동차 분야의 핵심 기술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글로벌 자동차 업체를 인수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해외 유명 자동차업체를 M&A하는 방식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2007년 미국 디트로이트쇼에 참석해 볼보를 보유한 미국의 자동차 업체 포드자동차 부스로 찾아가 “볼보 인수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포드 측 인사들은 당연히 리 회장이 누구인지도 몰라 볼보를 팔 생각이 없다고 정중하게 답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이후 현금이 바닥난 포드는 볼보를 인수하고 싶어 한 중국 기업인을 떠올렸다. 결국 2010년 그에게 볼보승용차를 매각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리 회장이 세계 자동차 시장의 ‘무서운 포식자’로 등장할지 아무도 몰랐다. 볼보승용차를 인수한 후에도 지리차는 한동안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15년까지 중국 내수 시장 판매 실적에서 지리차는 10위권 밖에 머물렀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다. 하지만 볼보승용차 인수하면서 대규모 투자와 독자경영 보장 등 대대적으로 혁신 작업을 한 것이 5년만에 현저한 성과로 나타났다. 2016년 10위에 오른 지리차는 지난해엔 6위로 4계단 급상승했다. 특히 올해 2월 중국 시장에서 10만 9718대의 차량을 판매한 지리차가 7.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고 중국승용차연석회의(CPCA)가 밝혔다. 폭스바겐(16.8%)과 GM(16.2%)에 이어 중국시장 점유율 3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2월 6위에서 3단계나 점프한 것이다. 이처럼 지리차가 고속 성장한 배경에는 ‘시진핑(習近平) 인맥’ 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리 회장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저장성 당서기 시절부터 친분을 맺어왔다는 이유에서다. 시 주석의 저장성 인맥인 ‘즈장신쥔(之江新軍)의 핵심 일원이라는 얘기다. 그는 2012년 시 주석이 당총서기에 취임한 이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에 3차례 연임했고, 중국 최대의 경제단체인 중화전국공상연합회 부주석도 맡고 있다. 지난해 해외 M&A를 진행한 주요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집중 견제를 받는 와중에도 지리차가 해외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시 주석의 암묵적 지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의 부인 펑리젠(彭麗娟)이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과 자매라는 설도 있다. 이에 대해 리 회장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NCND’로 일관하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천만 열차 다시 탈까

    천만 열차 다시 탈까

    “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다시는 저한테 올 수 없는 로또 복권 같은 것이죠. 제 작품을 봐주는 시선이 더 많아졌으니 부담이 클 수밖에요.”(추창민 감독) “어쩌다 온 ‘흥행 감독’이란 수식어를 유지하려 발버둥치는 제 모습이 좋아 보이진 않았어요. ‘염력’은 ‘그런 부담에서 자유로워져 보자’고 만든 거고요.”(연상호 감독)●추창민 “광해 흥행은 로또 당첨” 각각 ‘광해’, ‘부산행’으로 ‘천만 감독’ 수식어를 단 감독들의 말은 큰 흥행의 환희 끝에 뒤따르는 중압감을 잘 보여 준다. 전작의 성공은 곧 차기작의 짐이 된다. 이를 두고 영화계에선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용어를 쓴다. 첫 작품에서 성공한 뒤 내놓는 차기작이 흥행이나 완성도에서 전작에 비해 부진한 상황을 일컫는 것. 올해 잇따라 신작을 선보이는 ‘천만 감독’들이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된다. 지난 28일 개봉한 ‘7년의 밤’은 그런 점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한국 영화다. ‘광해, 왕이 된 남자’로 1231만 관객을 모은 추창민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화가 기대되는 소설 1위’로 꼽혀 온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7년의 밤’ 원작 무게 덫으로 원작의 무게는 영화의 ‘힘’이기도 했지만 ‘덫’이기도 했다. 추 감독도 “이야기의 힘이 굉장히 좋고 회화적인 부분도 커서 모든 감독들이 탐냈으나 영화로 푸는 건 불가능하다 싶어 처음엔 제안을 거절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베일을 벗은 ‘7년의 밤’에서는 그 부담과 고민의 깊이가 뚜렷이 짚인다. 영화는 ‘극단의 사이코패스’인 오영제(장동건)와 찰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살인자가 된 최현수(류승룡)의 심리를 파고드는 데 주력했다. 운명을 극복하려는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 비뚤어진 부성애에 공을 들이며 인간의 내면을 묵직하게 통찰하지만 내내 음울하고 무겁게만 가라앉는다. 그렇다 보니 소설에서 서늘하고 속도감 넘치는 문장으로 직조했던 스릴러의 짜릿함은 반감됐다. 추 감독은 “후반 작업을 하면서 여러 버전을 만들어 관계자들과 논의했는데 합의가 쉽지 않아 작품 개봉이 늦어졌다”며 “하잘것없는 인간이 가장 멍청한 방법으로 운명을 극복하려 하는 이야기와 선택, 그리고 그 이유를 녹여내고 싶었는데 그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건 알지만 창작자로선 만족한다”고 했다.지난 1월 말 극장가에 선보였던 ‘염력’도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에서 개봉 전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연 감독은 작가 정신이 빛나는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내놓다 도전한 첫 실사영화 ‘부산행’으로 1156만 관객을 모았다. 하지만 그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인 ‘염력’은 관객수 98만명에 그치며 흥행에 참패했다. ●연상호 “‘염력’ 전작 부담 덜고 즐겨” 소포모어 징크스를 피하지 못했지만 연 감독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부산행’ 이후 자유롭게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왔을 때 20대 때 좋아하던 블랙코미디 영화를 해 보고 싶었다. 또 철거민 문제를 상업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컸다.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꼈을 지점이 뭔지 고민도 된다. 하지만 창작자로서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구현한 ‘염력’은 내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말했다.●오달수 여파에 ‘신과 함께2’ 재촬영 지난해 12월 ‘신과 함께-죄와 벌’로 흥행 감독으로 자리를 굳힌 김용화 감독의 차기작 ‘신과 함께-인과 연’도 오는 8월 개봉 예정이다. ‘신과 함께’ 1편이 1441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 영화 흥행 2위에 오른 터라 2편은 ‘이미 차려진 밥상’이나 마찬가지다. 1편만으로 극장 매출 1157억원을 기록하며 두 편의 제작비 400억원을 모두 회수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2009년 ‘국가대표’로 8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천만을 코앞에 뒀다. 하지만 4년 뒤 제작비 300억원을 쏟아부은 ‘미스터 고’(132만명·2013년)에선 참패를 맛봤다. 이 때문에 ‘신과 함께’ 1편은 그가 명예 회복을 이룬 작품인 셈이다. 하지만 ‘신과 함께’ 2편은 여름 개봉을 앞두고 최근 ‘악재’를 만났다. ‘미투’ 폭로 과정에서 작품에 출연한 오달수·최일화의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것. 제작사 측은 두 배우의 촬영분을 통째로 들어내고 조한철, 김명곤을 새로 투입해 다음달 초 재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2013년 ‘7번방의 선물’(1281만명)로 ‘천만 감독’이 된 이환경 감독의 신작 ‘이웃사촌’도 미투 암초를 만나 휘청이고 있다. 국정원 요원과 정치인 간의 우정과 권력 암투를 그린 작품인데 오달수가 주연을 맡아 촬영을 완료하고 개봉 날짜만 고르고 있었다. 제작사 측은 “오달수가 주연이라 촬영 분량이 상당해 (재촬영은) 쉽게 결정 내기 힘든 사안”이라며 “연내 개봉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현 단계’냐 ‘점진적’이냐 … 中 “단계적 조치” 표현 논란

    다시 한번 ‘단계적‘(階段性)이라는 중국어 표현이 등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제시한 한반도 비핵화의 해법은 ‘단계적 조치’였다. 김 위원장은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 동시(同步)적인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관련 발언을 보도하지 않았으나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를 ‘단계적‘(階段性)인 조치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은 지난해 11월 한·중 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협의 때 한 차례 논란을 일으켰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사드 문제가 봉인됐다’고 밝혔지만, 이후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단계적 처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드는 ‘봉인’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이어 강경화 외교장관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한 이후 정부는 이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단계적 처리는 ‘점차적으로’(step by step)가 아니고, 중국이 영어로 번역한 것을 보면 ‘현 단계’(in the current stage)”이며 “현 단계에서 잘 관리하자는 인식”이라고 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나서 “중국 측 설명에 따르면 단계적 처리는 ‘step by step’이 아니고 ‘현 단계’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 신화통신 영문판은 이 표현을 ‘점진적인’(progressive)으로 해석했다. 중국이 ‘이중적’으로 설명했거나, 청와대가 오해한 셈이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시진핑 “북·중 친척처럼 왕래” 김정은 “우의 결코 안 흔들려”

    시진핑 “북·중 친척처럼 왕래” 김정은 “우의 결코 안 흔들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5~28일 비공식 중국 방문에서 초록색 1호 열차를 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전통을 따랐고, 중국은 북한 지도자가 중국 영토를 벗어날 때까지 ‘죽의 장막’을 치고 철통 보안을 유지하는 관행을 유지했다.김 위원장의 깜짝 중국 방문은 28일 오전 7시 30분(현지시간) 중국 관영언론인 신화통신과 중앙(CC)TV가 일제히 보도하면서 공개됐다. CCTV는 약 14분에 걸쳐 김 위원장의 26~27일 이틀간의 베이징 일정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김 위원장이 26일 오후 4시 30분쯤 인민대회당에 도착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레드카펫을 걸으며 환담을 나누는 모습을 비롯해 정상회담장에서 시 주석의 발언을 받아 적거나 인민대회당 베이다팅(北大廳)에서 시 주석과 나란히 걸으며 사열하는 장면 등을 중계했다. 이어 다음날 중관춘(中關村)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시 주석 부부와 다정하게 환담하는 모습까지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양측의 선대 지도자들이 손수 마련한 북·중 우의는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새로운 국면에서 북·중 친선을 다지는 것은 북한의 전략적 선택이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통적인 북·중 관계를 강조했다. 이에 앞서 시 주석은 “북·중 지도자들은 늘 친척처럼 자주 왕래하곤 했다”며 “우리는 여러 차례 중조(中朝)의 전통적 우의를 잇겠다는 뜻을 밝혔고 국제적인 구도와 북·중 관계의 틀에 입각해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북·중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국 당과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2011년 김 위원장의 취임 이후 첫 해외 방문이자 7년 만에 재개된 북·중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의 선(先) 제의가 있었고, 이를 시 주석이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27일 오찬 연설에서 “이번에 우리의 전격적인 방문 제의를 쾌히 수락해 주었다”고 말했다고 전하면서 “김 위원장도 시 주석의 북한 공식 방문을 제안했고, 이 초청은 흔쾌히 수락되었다”고 보도했다. 만약 시 주석이 방북한다면 그에게는 두 번째 북한행이 된다. 시 주석은 2008년 6월 국가부주석 자격으로 북한에 간 적이 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이 40차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7차례 중국을 찾는 동안 중국 지도자가 북한에 간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2000년 들어서는 2001년 9월 장쩌민(江澤民) 주석, 2005년 10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방북뿐이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시 주석의 방북 가능성에 대해 “김 위원장과 상호 방문, 상호 특사 파견, 상호 서신 교환 등의 방식으로 접촉을 유지하길 원한다고 말했다”고 에둘러 답했다. 정상회담에는 중국 측이 7명, 북한 측이 4명 배석했다. 중국은 시 주석의 왼쪽으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양제츠 정치국위원, 왕후닝 상무위원, 시 주석, 통역, 딩쉐샹 판공청 주임, 황쿤밍 중앙선전부장, 왕이 외교부장이 배석했다. 북한은 같은 방향으로 리수용 국제부장, 통역, 김 위원장,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이 앉았다. 이번 수행단에는 김정은 시대에 실세로 등극한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박광호 선전선동부장은 지난해 10월 당 정치국 위원 등으로 일약 승진한 인물이고 리 부장은 김 위원장의 스위스 유학 시절부터 후견인 역할을 맡아 왔던 측근이다.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은 수행 전문으로 ‘김정은의 그림자’로 불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어 전담 통역이었던 김성남 당 국제부 부부장, 조선중앙통신 사장을 지낸 김병호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도 수행단에 포함됐다. 정상회담에는 리설주도 동행해 중국의 퍼스트레이디인 펑리위안(彭麗媛)과 사진을 찍고 환담을 나누었다. 인민대회당에서 가장 호화로운 내부 장식으로 유명한 진써다팅(金色大廳)에서 국빈만찬이 열렸고 정상회담에는 배석하지 않은 리커창 총리와 왕치산 부주석 등이 참석하는 등 중국의 지도자들이 총출동했다. 특히 중국은 공개 활동을 꺼리는 김 위원장을 위해 베이징 시내를 이동할 때는 20여대의 경찰 모터사이클과 구급차까지 동원해 철저히 도로를 통제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서울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투탕카멘, 병약한 소년 아닌 ‘전사’였을 것” (연구)

    “투탕카멘, 병약한 소년 아닌 ‘전사’였을 것” (연구)

    황금가면의 주인이자 소년 파라오로 알려진 투탕카멘이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병약하기만 한 어린 파라오는 아니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투탕카멘은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재위 BC 1361∼1352) 파라오다. 18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으며, 죽음의 의혹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다만 이탈리아·영국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진이 2014년 투탕카멘이 생전 내반족이라는 발 기형에 뻐드렁니를 가졌으며, 근친상간으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 때문에 신체에 여러 장애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었다. 당시 연구진은 투탕카멘의 조기 사망 역시 이러한 병약한 신체와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 노스햄턴대학 연구진은 RTI(Reflectance Transformation Imaging)라는 촬영기법을 통해 3000년 전 죽은 소년왕의 유물을 재분석했다. RTI는 인공조명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음각된 글자의 모양을 촬영한 뒤 이미지 처리를 거쳐 선명도를 높여 판독을 용이하게 하는 ‘디지털 탁본’이다. 유물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도 글자나 그림, 흔적을 찾아낼 수 있어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다. 연구진은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그의 갑옷을 정밀 분석한 결과, 갑옷의 가죽 부분 모서리에서 닳거나 긁힌 흔적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투탕카멘이 생전 이 갑옷을 실제로 사용했으며, 전쟁터에 나갈 수 있는 신체를 가진 ‘전사’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루시 스키너 박사는 “갑옷에 있는 흔적은 투탕카멘이 이를 입었으며, 아마 이를 입고 전쟁에 나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투탕카멘은 더 이상 병약하고 여린 소년왕이 아닌 다른 이미지를 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연구진은 투탕카멘 가죽 갑옷의 비밀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당 갑옷이 세상에 다시 나온 지 약 100년이 흘렀지만, 전문가들은 갑옷에 사용된 가죽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다. 스키너 박사는 “일반적으로 가죽은 수분과 만나면 쉽게 손상되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 연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우리는 이런 종류의 가죽을 만드는데 사용된 고대의 방법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투탕카멘은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1922년 11월 나일 강 서쪽 ‘왕가의 계곡’에서 황금 마스크를 쓴 그의 미라와 수많은 부장품이 보존된 그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유명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데스크 시각] 스승이 없는 사람들/박상숙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스승이 없는 사람들/박상숙 문화부장

    ‘내가 해봐서 아는데….’최근 영어의 몸이 된 전직 대통령의 ‘유행어’(?)다. 한밤 구치소로 향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 말이 떠오른 건 최근 ‘미투 태풍’에 낙엽처럼 떨어진 거장들의 몰락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3평짜리 독방에 갇힌 그는 누구나 알다시피 자수성가의 상징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민생 현장에서 만난 청소부, 호떡장사, 식당 주인 등에게 늘 저 문구로 시작하는 훈수 아닌 훈수를 늘어놨다. 저 말에는 ‘(고생이든 뭐든)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유아독존식의 자신감이 담겨 있다. 남자들은 늘 가르치려 든다며 신조어 ‘맨스플레인’이 만들어진 것처럼 성공한 남성들은 경청보다 훈수 두기에 바쁘다. 여기에 나이까지 들면 병은 더 깊어진다. 일가를 이룬 인물일수록 ‘전능자’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아무 말이나 해대는 것이다. 비리 혐의로 투옥된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미투 가해자가 된 고은, 오태석, 이윤택, 김기덕이나 미투 바람을 조롱한 소설가 하일지와 진보 경제학자 윤소영 등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한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빛나는 시간을 바치고 치열하게 싸운 사람들이다. 그랬던 청춘들인데, 왜 ‘꼰대’나 ‘개저씨’가 돼 스스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걸까. 최근 읽은 ‘속국 민주주의론’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일본 사회를 총체적으로 분석, 비판한 이 책은 일본에서도 ‘왕년에 잘나갔던 할아버지들’이 말썽을 일으키는지 이에 대한 진단도 담았다. 저자들은 ‘단나게이’(旦那藝)의 소멸에서 원인을 찾는다. 단나게이는 성공한 사람들이 여가로 배우는 전통 무용·소리나 무예 등을 말한다. 예로부터 일본에선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에 도달한 사람은 50세쯤 되면 단나게이를 익혔다. 인간은 정기적으로 꾸지람을 들어 가며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자각해야 지성이나 감수성을 올바르게 유지할 수 있다. 단나게이는 원로들을 다시 ‘초심자’로 만들어 에고가 비대해지는 것을 막는 문화적 장치였다. 나이가 들어 높은 지위에 오른 권위자일수록 스승이 없으니 전능자가 되고 싶은 욕구를 다스릴 수 없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장년층과 노년층 남성들을 향해 “무엇이든 배우라”고 역설한다. “어렵고 도전이 되는 환경과 일은 겸손을 가르친다.” 천재적 배우로 통하는 미국의 말런 브랜도도 생전에 일부러 질책받을 위치에 자신을 둔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 분야에서 왕이 된 사람들일수록 스스로 가장 ‘바보’가 되는 상황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도 개선장군을 맞으며 ‘메멘토 모리’를 외치고, 솔로몬왕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글귀를 늘 가슴에 새겼다고 한다. 자아가 암세포처럼 증식하고 팽창하는 것을 경계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지혜였다. 오래전 지방 법원 판사로 근무하고 있던 지인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3년차 판사였던 그는 검도를 배우려다 만 사연을 들려주며 푸념했다. “사범도 수련생도 다 젊은데, 나보다 어린 애들 앞에서 지적을 계속 받으니까 쪽팔려서 못하겠더라고.” 학창 시절 새것을 배우려는 겸손함과 호기심으로 충만했던 그가 고작 법관 생활 몇 년 만에 그야말로 ‘영감님’이 된 것이다. 초심자의 길을 포기하면 에고는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닫는다. ‘너희들이 뭘 알아, 내가 다 안다’는 오만과 편견 속에서 갑질과 경거망동이 자라나는 것 아닐까. 노년의 삶을 안전하고 품위 있게 영위하려면 ‘영원한 학생’을 고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okaao@seoul.co.kr
  • ‘미스티’ 종영, 최종회 시청률 8.5%..미스티가 남긴 것

    ‘미스티’ 종영, 최종회 시청률 8.5%..미스티가 남긴 것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가 지난 8주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청률은 수도권 8.9%, 전국 8.5%(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 최종회에서 또 한 번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한 안녕을 알렸다.지난 24일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 최종회에서는 모든 진실이 드러났다. 의도된 바는 아니었지만 강태욱(지진희 분)은 케빈 리(고준 분)를 죽게 했고, 고혜란(김남주 분)은 이를 장국장(이경영 분)에게 뉴스 헤드로 보도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하명우(임태경 분)는 태욱에게 “끝까지 혜란의 옆을 지키는 게 당신이 받아야 하는 벌”이라며 자신이 케빈 리를 죽였다고 자수했다. 명우의 진심 때문에 진실은 안개 속으로 묻혀버렸지만, 혜란과 태욱은 행복할 수 없었다. 혜란은 자신 때문에 태욱이 케빈 리를 죽였다는 사실에 괴로워했고 행복하냐는 물음에 답을 하지 못했다. 운전 중, 터널로 빠르게 들어갔던 태욱은 사고 소리가 들렸지만, 짙은 안개에 가려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끝까지 안개 속에 갇힌 듯 쉽게 단언할 수 없는 엔딩을 선사한 것. 이에 ‘미스티’가 남긴 것을 되짚어봤다. #1. 인생 캐릭터를 새로 쓴 배우들 밀도 높은 대본과 섬세한 연출을 각자의 개성으로 뒷받침하며 인생 캐릭터를 쓴 배우들. 최고의 앵커 고혜란으로 변신한 김남주는 완벽한 연기 변신으로 시청률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입증했고 지진희는 디테일한 감정 연기로 어른 멜로의 시작과 끝, 미스터리까지 아울렀다. 전혜진은 특유의 존재감으로 매회 몰입도를 높였고 임태경은 첫 드라마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섹시한 멜로 연기로 여심을 사로잡은 고준, 입체적인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낸 진기주 뿐만 아니라 이경영, 안내상, 이준혁, 이성욱, 김수진, 구자성 등 모든 배우가 떠나보내기 아쉬운 활약을 펼쳤다. #2. 인생 드라마, 명품 격정 멜로의 탄생 탄탄한 인물간의 서사,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한 배우들의 연기로 격정이라는 단어 앞에 명품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미스티’. 첫 방송 이후 드라마와 출연자 화제성 지수에서 1위에 등극한 것은 물론,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고 방송 6회 만에 7%를 돌파한 시청률은 지난 14회에서 8%(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의 벽을 돌파하며 어른 멜로 열풍을 일으켰다. 시청자들 역시 “오랜만에 인생 드라마가 탄생했다”며 매회 뜨거운 사랑과 응원을 보냈다. #3.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행복을 위해 물불 안 가린 채 앞만 보며 달려왔지만 결국, “지금 행복하세요?”라는 물음에 눈물이 왈칵 터진 혜란. “나는 행복을 꿈꿨어. 내가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꿈, 내가 잡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런 행복. 언제나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손을 펴보면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어”라는 그녀의 깨달음은 진실과 거짓, 사랑과 미움 등 모든 가치가 전복되고 실종된 세상. 그리고 그 속에서 잡히지 않는 걸 잡으려 미친 듯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사진=JTBC ‘미스티’ 마지막회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美·中 무역전쟁] 中, 30억弗 보복관세… 중국산 애플·GM 역수출 땐 특수 관세

    [美·中 무역전쟁] 中, 30억弗 보복관세… 중국산 애플·GM 역수출 땐 특수 관세

    트럼프 지지벨트 농축산물 표적 관세 맞불 관세와 별개로 비관세 장벽 검토 美기업 ‘中생산·역수출’ 무력화 가능성 검역 강화해 통관 지연 유도할 수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폭탄에 중국은 즉각 보복 관세로 맞대응했다. 중국 상무부는 23일 30억 달러(약 3조 2400억원)에 이르는 미국산 철강, 돈육 등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15~25%의 관세를 부과할 품목은 철강과 돈육 등 7개 분야 128개로 총수입액은 29억 6900만 달러다. 상무부는 “이번 조치는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결과에 따라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데 대한 손해를 메우기 위한 대응”이라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또 “미국의 제품 수입 제한은 다자간 무역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국제 무역 질서를 저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상무부는 이례적으로 두 번에 걸친 대변인 성명을 통해 ‘중국의 경제 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대해 비판했다. 특히 ‘낭떠러지에 이르러 말고삐를 잡아채야 한다’(懸崖勒馬)란 표현까지 사용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현애늑마’는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지난해 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비난할 때 사용한 표현이다. “미국이 위험에 직면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신중한 결정을 내려 양국의 경제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상무부는 보복 관세 조치 발표에 앞서 이날부터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에서 수입되는 사진 인화지에 대해 5년 기한으로 계속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혀 보복 관세 예고가 단순 경고가 아님을 보여 줬다. 중국은 2012년부터 이들 3개 지역의 인화지에 각각 17.6∼28.8%의 반덤핑 관세를 5년간 부과한 뒤 지난해 3월부터 관세 부과 만기 심사를 했다. 중국이 즉각적으로 발표한 보복 관세 리스트를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이 몰려 있는 주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이 대거 포함돼 그동안 미국의 관세폭탄에 대비했음을 보여 준다. 중국 정부는 이미 지난달 미국산 수수에 대해 반덤핑 조사에 나섰고 미국산 대두의 수입 제한도 검토 중이다. 중국에는 비관세 장벽 카드도 있다. 이미 수입 대두의 품질 기준을 높인 것처럼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안전 검사나 위생 검역을 확대하거나 행정 절차를 지연시키는 방법이 있다. 세무조사, 금융감독, 품질관리, 개발계획, 반독점, 환경보호, 소비자보호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미국 다국적기업의 중국 내 사업에 차질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제조해 미국으로 수출,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특수 부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에서 차를 생산하는 GM과 휴대전화를 제조하는 애플과 같은 미국 기업은 아예 생산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 앞으로 북핵 문제, 마약성 진통제 밀수, 이란 문제 등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현안에 중국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예측 가능한 수다. 무역전쟁을 둘러싼 미·중 간 힘겨루기는 남중국해에서 군사 무력시위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 해군 구축함이 남중국해 인공섬 근처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실행하자 중국군 기관지 해방군보(解放軍報)는 시진핑 주석의 훈련동원령을 받아 해군이 조만간 남중국해 해역에서 실전화 훈련을 할 예정이라고 23일 전했다. 중국이 매립을 통해 인공섬으로 만든 미스치프 암초는 주변국과 영유권 분쟁이 진행되는 곳이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해외서 대박난 알리바바·텅쉰·바이두, 中증시로 ‘금의환향’할까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해외서 대박난 알리바바·텅쉰·바이두, 中증시로 ‘금의환향’할까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등 중국 글로벌 기업들이 화려한 귀향 길을 준비한다.”중국 정부가 해외 증시에 상장된 중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본토 증시로 회귀하는 방안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중국 본토 금융시장의 인지도를 높이고 중국 투자자들이 이들 기업의 주가 상승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야심찬 구상이다.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알리바바는 이르면 올여름 본국 증시에서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마트폰 제조 업체인 샤오미(小米)도 올 하반기에 중국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WSJ는 “중국 글로벌 기업을 본토로 불러오는 게 정책의 우선순위가 됐다”며 “중국 산업의 기반이 탄탄해지고 자본시장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알리바바는 2014년 9월 19일 상장 당시 뉴욕 증시에 250억 달러(약 26조 8000억원)를 조달해 역대 최고액 기록을 경신했다. 주가는 상장 첫날 개장부터 폭등하며 공모가(68달러)보다 38%나 오는 94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덕분에 알리바바의 시가총액 역시 2314억 4000만 달러로 불어나며 페이스북(2026억 7000만 달러)을 가볍게 따돌리고 구글(4031억 8000만 달러)에 이어 2위에 오르는 대박을 터뜨렸다. 알리바바 주가는 현재 뉴욕증시 데뷔 이후 2배 이상이나 껑충 뛰어 주당 200달러 선을 오르내린다. 이에 따라 중국 투자자들은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라고 WSJ가 지적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百度)도 1년 새 50% 올랐다. 알리바바는 뉴욕 증시 상장에 앞서 중국 증시 IPO를 타진했으나 외국 기업은 중국 투자자들에게 직접 주식을 사고파는 것을 금지하는 관련법 규정 탓에 무산됐다. 알리바바가 사업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벌이고 있지만 본사는 영국령 케이맨제도에 있는 만큼 외국 기업으로 분류된다. 중국 증시는 의결권이 주주마다 다른 차등의결권을 채택한 기업의 상장도 허용되지 않고, IPO 직전 3년 동안 흑자를 유지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도 있다. 마윈(馬雲) 회장 등 알리바바 경영진은 차등의결권이 허용된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증권 당국의 승인을 얻기 위해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절차적 문제 등도 국내 상장에 대한 기피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 나스닥에 상장한 왕이(網易·NetEase) 딩레이(丁磊)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증시의 복귀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중국 시장의 주식거래 중단 조치의 불합리성 등을 지적하며 중국 증권당국에 문제 해결을 주문했다. 이런 제약조건 탓에 알리바바와 텅쉰(騰訊·Tencent) 등 중국 글로벌 기업들은 국내보다 해외 증시 상장을 택했다. 중국 시장정보업체 WIND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홍콩 증시(25개사)와 미국 증시(15개사)에 상장한 중국 기업은 모두 40개사에 이른다. 해외 증시 상장은 회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다 경영권의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알리바바와 텅쉰은 홍콩과 뉴욕 증시에서 각각 IPO를 마친 까닭에 정보기술(IT) 업종에 대한 외국인 투자 제한 조치도 벗어날 수 있다. 텅쉰은 주가가 지난해 2배 이상 오르면서 중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시가총액 5000달러를 돌파했다. 알리바바 역시 최근 시총 5000억 달러 선을 오르내린다.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홍콩 및 뉴욕에 상장된 중국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증시(내국인이 거래하는 A주 시장) 상장이 가능토록 관련 제도를 손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주식이 국내 증시에서 거래되는 것을 금지하는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주식예탁증서(DR) 발행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승인 절차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통상 1~2년이 걸리는 상장 기간 단축도 검토하고, 비상장 유망 기업들이 국내 증시에서 손쉽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국유 투자은행들과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의 제도 손질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DR 발행을 허용하는 방안이다. DR은 해당 기업이 상장돼 있는 국내 주식시장이 아닌 해외에서 주식 거래를 할 경우 현지에서 발행하는 대체증권이다. 여기서는 외국 기업들이 중국 주식 시장에서 유통시키는 중국 주식예탁증서(CDR)를 말한다. 외국 기업 입장에서는 주식은 본국에 보관한 채 이를 대신하는 증서인 DR을 발행해 해외 투자자들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이는 기업들이 주식을 외국에서 직접 발행해 거래할 때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는 피하면서도 해외 증시에서 자사 주식을 유통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다시 말해 DR 발행을 통해 해외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주식이 국내 증시에서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이들 기업이 중국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알리바바와 텅쉰, 바이두, 왕이, 징둥(京東)닷컴, 셰청(携程·Ctrip), 웨이보(微博·Weibo) 등 홍콩과 미 증시에 상장된 8개 기업을 우선적인 CDR 발행 대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접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류스위(劉士餘)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은 “곧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회사들이 기대하는 것보다는 조금 느리고 여러분이 예상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투자자들은 해외에 상장된 기업들의 주가 상승에 따른 이익을 볼 수 없었는데, 이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며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가 ‘당근’책을 내세워 중국 글로벌 기업들의 귀환을 모색하려는 것은 중국 금융시장의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중국 투자자들이 해외 상장 자국 기업의 주가 상승 혜택을 누릴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포석이다. 애플과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글로벌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중국의 글로벌 블루칩(우량주)들을 증국 국내 증시로 불러들여 중국 금융시장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중국 블루칩의 주가 상승 효과도 맛보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지난 수개월 사이에 중국의 증권 당국은 글로벌 투자은행 여러 곳과 접촉해 이들 기업의 본토 상장을 모색해 왔다고 WSJ는 전했다. 중국 본토 회귀 대상 주요 기업들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텅쉰과 바이두, 징둥닷컴 등 중국 글로벌 기업들의 CEO들은 중국 증시 상장에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화텅(馬化騰) 텅쉰 회장은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증시 여건만 성숙하면 A주 시장에 돌아오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옌훙(李彦宏) 바이두 회장도 “바이두의 주식을 중국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되길 줄곧 희망해 왔다”면서 “정부 정책이 복귀를 허용하면 조기에 중국 증시로 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창둥(劉强東) 징둥닷컴 CEO도 “(중국 귀환을) 당국이 허락한다면 그렇게 할 용의가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주식 투자가 카지노와 비슷한 평판을 사고 있는 만큼 거물급 기업들의 상장이 투기 광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 기업들의 DR을 사들인 개인 투자자들이 제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khkim@seoul.co.kr ■이 기사는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 중인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goo.gl/sdFgOq)의 전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 [리뷰] 영화 ‘7년의 밤’을 기다려온 이들에게...원작의 맛은 덜하더라도

    [리뷰] 영화 ‘7년의 밤’을 기다려온 이들에게...원작의 맛은 덜하더라도

    # 구불구불한 길이 끝도 없이 늘어져 있고, 자욱한 안개가 그 위를 덮는다. 발밑으로는 깜깜한 호수가 깔려 있고, 그 안엔 7년 전 어느 밤의 진실이 감춰져 있다. 탄탄한 스토리와 짧고 간결한 문장.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머릿속에 그려졌던 소설 속 세령호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영화 ‘7년의 밤’에서다.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7년의 밤’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원작의 긴장감은 스크린으로 옮겨지며 극대화됐고, 세령마을과 세령호가 주는 스산함, 눈썹에서마저 느껴지는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는 극에 몰입을 더했다. ▲추창민 감독표 ‘7년의 밤’ 탄생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린 추창민 감독이 스릴러 영화로 6년 만에 돌아왔다. 추 감독은 앞서 ‘7년의 밤’ 속 두 남자의 지독한 복수를 통해 인간의 악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인물들이 행하는 악행 ‘이면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영화는 그가 바란 대로였다. 원작이 가진 스릴러 적 요소에 추 감독만의 휴머니즘이 담겨 ‘추창민식 스릴러물’이 완성됐다.원작과 같이 ‘7년의 밤’은 한순간 우발적 살인으로 모든 걸 잃게 된 남자 최현수(류승룡 분)와 그로 인해 딸을 잃고 복수를 계획한 남자 오영제(장동건 분)의 7년 전 진실과 그 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그린다. 거기에 추창민 감독의 앞선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인간미’가 담겼다. 영화 ‘마파도’ 속 할머니들이, ‘사랑을 놓치다’의 설경구가 그러했듯, 영화 속 인물에게선 온기가 느껴졌다. 또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나이 든 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슴 절절한 사랑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던 것처럼 ‘7년의 밤’ 속 최현수와 오영제의 ‘사랑’은 매섭도록 뜨겁게 그려졌다.▲ 원작의 묘미는 ‘글쎄’ 이 덕에 원작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그려진 오영제는 영화 안에서 ‘어쩌면 이해 가능할 것도 같은 한 남자’가 됐고, 잘못된 선택으로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살인마 최현수는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사랑에 분풀이라도 하듯 아들을 사랑한 한 아버지’로 그려졌다. 각기 다르게 표출된 두 사람의 ‘부성애’는 누가누가 더 뜨겁나, 그래서 어떻게까지 어긋날 수 있나를 보여주는 대결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이러한 ‘인간미’가 원작을 사랑한 관객에겐 아쉬울 수 있는 대목이다. ‘7년의 밤’ 원작의 장점은 숨 막히는 긴장감과 함께 7년 전 벌어진 세령의 죽음이 각기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그려지며 진실에 대한 퍼즐이 맞춰져 나가는 데에 있다.하지만 추 감독의 ‘따뜻함’이 녹아들면서 원작의 묘미는 심심해져 버렸다. 오히려 후반부에는 최현수와 오영제에 대한 이해를 갈구하는 듯한 전개가 다소 ‘억지 연민’을 끌어내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년의 밤’ 원작의 묘미를 기대했던 관객은 서운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7년의 밤’은 봐야 할 가치가 있다. 소설에서 그대로 나온 듯한 세령마을과 세령호의 모습, 그리고 그 누구도 대체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하다. 서서히 또는 빠르게 움직이는 카메라 앵글과 긴장감을 더하는 음악에, 극장을 찾은 관객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 세령호에서 머물다 온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23분. 15세 관람가. 3월 28일 개봉. 사진=영화 ‘7년의 밤’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아련한 추억처럼…곰삭은 풍경이 흐르다

    아련한 추억처럼…곰삭은 풍경이 흐르다

    “군산이 소고기 한 근이면 갱개이(강경)는 참새고기 한 점이지요.” 충남 논산 강경역사문화연구원의 김무길 연구부장이 평가한 근대 문화 유적지 강경의 가치입니다. 겨울철 참새고기 한 점은 소고기 한 근과도 안 바꿀 만큼 맛있다는 옛말을 차용한 표현입니다. 어디 김 부장뿐이겠습니까. 강경 사람 대부분이 그리 자평하겠지요. 알려졌듯 전북 군산은 근대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반면 강경은 명성에서 군산에 다소 뒤지는 게 사실입니다. 한데 강경 사람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는 명성의 차이일 뿐, 담긴 풍경들은 결코 얕거나 작지 않다는 거지요. 근대 문화유산을 돌아보기 위해 강경을 찾았습니다. 현지인의 자랑처럼 곰삭은 풍경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하지만 참새고기 같은 맛을 유지하려면 강경 안팎의 많은 관심도 필요해 보였습니다. 세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건물은 허물어져 가고 있었고, 불필요하게 변형되는 조짐도 엿보였습니다.강경 읍내 외곽. 주택가 이면도로 한 켠에 허물어진 문 두 개가 서 있다. 오래전 미곡창고로 쓰였던 건물의 흔적이다. 창고 터의 직선길이는 눈대중으로도 100m는 족히 넘어 보인다. 허물어진 문 위로 옛 건물을 그려 넣어 본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창고 건물이 옛 터 위에 얹혀진다. 번성했던 강경의 옛 모습을, 날로 쇠락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이보다 명확하게 웅변하는 잔해는 없지 싶다. 강경은 논산시에 딸린 소읍이다. 하지만 두 도시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강경이 잘나갈 때는 “은진(논산)은 갱개이 덕에 먹고 산다”고 했다. 지금이야 옛날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쇠락했지만, 당대의 영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은 여전히 도처에 널렸다.●하루 100여척 고깃배 드나들던 황산나루의 추억 옥녀봉부터 찾아간다. 금강변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부여와 경계를 이룬 곳으로 강경의 전체적인 윤곽을 개략적이나마 그려 볼 수 있다. 옥녀봉은 높이가 약 44m에 불과해 봉우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게다가 정상 바로 아래까지 차로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꼭대기의 늙은 나무 옆에 서서 굽어보는 풍경만큼은 넓고 시원하다. 옥녀봉 아래는 황산나루다. 금강 하류의 강경은 예부터 포구와 시장이 발달했다. 바다와 내륙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강경포는 북한 원산항과 함께 2대 포구로 꼽혔다. 강경장은 평양장, 대구장과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번성했다. 황산나루엔 하루 100여척의 고깃배와 상선이 줄을 섰고, 전국에서 몰려든 장사치들로 들끓었다. 지금은 금강 하굿둑 탓에 뱃길이 끊겼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저 물길 위로 강경과 군산을 잇는 정기 운항선이 오갔다. 옥녀봉에 올라 금강을 굽어보면 그 기억이 새삼 되살아난다. 옥녀봉은 저물녘 풍경이 빼어나다. 붉은 해가 황산나루 너머 부여의 들녘으로 잠길 때면 하늘도, 땅도, 강물도 죄다 붉게 물든다. 우리나라 침례교회의 발상지인 기억자 교회, 한옥 형태로 지어 희소가치가 높은 옛 강경성결교회예배당(등록문화재 42호) 등도 이 봉우리에 기대어 있다.●빨간 벽돌 건물·빛바랜 나무 빛깔에 간직한 역사 강경의 등록문화재는 대부분 읍내 중심부에서 반경 1㎞ 이내에 몰려 있다. 자박자박 걸어도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물은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등록문화재 324호)이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인 1905년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으로 설립된 이후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 등으로 쓰였다. 지금은 강경역사관으로 사용 중이다. 옛 금고 등 강경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구 연수당 건재 약방(등록문화재 10호)에선 근대 한옥의 건축 양식을 살필 수 있다. 1920년대 촬영된 강경 사진 속에 등장할 만큼 오래된 건축물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갑문인 강경갑문(등록문화재 601호), 아치 형태의 천장이 인상적인 강경성당(등록문화재 650호), 화교학교 교사와 사택(등록문화재 337호), 현재 강경역사문화안내소로 사용되고 있는 구 강경노동조합(등록문화재 323호), 충남 최초의 수도시설이었던 강경정수장, 불 꺼진 황산포구의 옛 등대 등도 잊지 말고 돌아봐야 한다. 읍내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나가면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등록문화재 60호)이 나온다. 강경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 건물이다. 1937년 건축됐다. 외벽의 빨간 벽돌엔 여러 발의 총탄 자국이 선연하다. 한국전쟁 당시 기관총에 맞은 흔적이다. 강경고등학교는 스승의 날 발원지다. 교정에 이를 기념하는 탑이 세워져 있다. 이웃한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등록문화재 322호)는 1931년 건축됐다. 일본 목조 형식의 집을 벽돌조로 바꾼 것이다. 여러 이음으로 이어진 지붕 형태와 석재로 마감한 외벽이 매우 인상적이다. 비교적 원형도 잘 보존돼 일부러 찾을 만하다. ●300년 전 돌로 만든 ‘번영의 상징’ 미내다리 이제 미내다리를 찾을 차례다. 긴 장대석을 쌓아 올려 사발처럼 넉넉하게 원을 이룬 정교하고 튼튼한 다리이다. 다리의 역사는 300년을 넘어선다. 일대의 재력가들이 돈을 추렴해 세웠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나무가 아닌 돌다리를 놓는 일은 탄탄한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었다. 강경장이 아우른 사람들의 경제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름에서 보듯 미내다리는 미내천 위에 세워졌다. 하지만 다리 아래로 물이 흐르지는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물길을 바꿨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미내다리는 삼남 일대에서 손에 꼽을 만큼 큰 다리였다고 한다. 미내다리를 건너지 않고는 한양에 갈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 한 자락.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묻는단다. “강경 미내다리를 보고 왔느냐”고. 뭐, 그 정도로 유명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겠다. 글 사진 논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 수첩(지역번호 041) →맛집: 봄철 금강 일대의 대표적인 먹거리는 웅어다. 현지에서는 ‘우여’라 불린다. 웅어는 길이 30㎝ 안팎의 은빛 물고기다. 작은 갈치를 연상하면 알기 쉽다. 웅어는 보통 3월 말부터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온다. 금강 하구의 갈대숲이 최고의 산란지 노릇을 한다. 미식가들은 이 무렵 잡히는 웅어를 최고로 친다.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과 고소한 뒷맛이 일품이다. 백제 의자왕이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고 조선 말기에는 ‘위어소’(葦漁所)를 둬 왕실에 진상했다고 한다. 위(葦)는 갈대를 뜻하는 한자다. 웅어는 보통 향긋한 미나리에 오이, 당근, 양파 등 각종 채소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는다. 반면 식도락가들은 뼈째 송송 썰어 초장에 찍어 먹기를 즐긴다. 보통 3월 말이면 웅어를 내는 가게마다 ‘올해 잡힌’ 웅어를 판다는 현수막을 내건다. 웅어가 소상하기 이전엔 냉동 저장해 둔 것을 요리해 먹는다. 금강변에 ‘우여’를 내는 집들이 많다. 황산옥(745-4836)이 널리 알려졌다. 봄철 황복탕으로 이름을 얻은 집이다. 강경은 젓갈로만 200여년 곰삭은 ‘젓갈의 도시’다. 읍내에만 젓갈가게가 100여개에 이른다. 한데 젓갈 백반을 파는 집은 손가락 두 개 꼽고 나면 끝이다. 달봉가든(745-5565)이 알려졌다. 1인분은 팔지 않는다.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출발할 경우 미내다리를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강경 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이어 미내다리 인근의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등을 둘러본 뒤 등록문화재들이 즐비한 강경 읍내로 들어서는 게 무난한 동선이다. 강경역사관(745-3444)은 월요일 휴관이다. 관람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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