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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원구에 “구강교육 뮤지컬 공연 보러 놀러와”

    서울 노원구가 30일과 다음달 2~3일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6~7세 아동을 대상으로 구강청결과 건강실천을 유도하기 위한 아동연극인 ‘꾀돌이 토선생’을 공연한다. 뮤지컬은 바닷속 용궁에서 회의가 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치아가 아픈 용왕을 위해 땅으로 올라온 자라가 토끼를 만나 건강한 치아를 갖기 위한 올바른 치아관리 방법과 식습관을 배워 용궁으로 돌아오고, 그 덕분에 용왕이 다시 건강을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연기자들은 공연 도중 객석의 어린이들과 ‘치카치카 3.3.3’ 노래를 함께 부르며 건강한 이닦기 방법을 알려준다. 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앞 로비에 포토존을 설치해 어린이들이 친구, 선생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이벤트도 마련됐다. 오승록 구청장은 “뮤지컬을 통해 어린이들이 이 닦는 법, 치아관리 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어린이 스스로 구강관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원구는 올바른 구강관리습관의 조기형성을 위해 월계보건지소 구강보건센터에서 관내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아를 대상으로 ‘신나는 어린이 구강교실’과 ‘찾아가는 어린이 양치 교실’도 연중 실시한다. 또 관내 취학 전 6~7세 아동을 대상으로 ‘어린이 불소 도포’를 시행하고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우리가족 양치 상담실’도 운영한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순박한 불심의 땅…마지막 황금 도시

    순박한 불심의 땅…마지막 황금 도시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대부분을 여행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여행지가 미얀마다. 하지만 미얀마는 우리에게 다소 가기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옛날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육로를 통해서는 입국이 힘들었고 오직 항공만 이용해야 했다. 미얀마 여행에 대해서도 세계 여행자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여행자들이 현지에서 사용하는 돈이 고스란히 미얀마 군부정권의 독재 자금줄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불편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은 미얀마로 기꺼이 떠났다. 아마도 마음 깊이 부처님을 믿는 순박한 사람들, 곳곳에 자리한 불탑과 사원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이미지가 여행자들의 가슴에 강렬한 매혹을 불러일으켰으리라. “밍글라바.” 미얀마 양곤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이드 틴윈투(31)가 처음 한 말이었다.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아마도 미얀마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일 것이다. 길을 걷다가도 음식을 먹다가도 미얀마 사람들은 눈만 마주치면 ‘밍글라바’ 하고 고개를 가볍게 숙인다. 물론 새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를 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미얀마를 여행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나라에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설 수 있지? 어떻게 로힝야족 사태 같은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지? 하며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양곤에서 곧장 바간으로 향했다. 미얀마의 가장 일반적인 여행 루트는 양곤~바간~만달레이~인레로 이어지는 코스다. 양곤은 가장 최근까지 미얀마의 수도였고 바간은 우리의 경주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만달레이는 미얀마 제2의 도시다. 인레는 거대한 호수인 인레 호수가 있고 수상마을이 만들어져 있다. 각각 다른 특색과 매력을 가진 이 네 도시를 돌아보면 미얀마 기본 코스를 섭렵했다고 보면 된다. ●11~13세기 수도 ‘바간’… 세계 3대 유적지 양곤에서 바간의 냥우 국제공항까지는 비행기로 약 1시간 20분이 걸렸다. 기내식으로 나온 사과파이를 먹다 보니 어느새 도착. 거리로 나오니 동남아시아 특유의 시끌벅적한 풍경이 펼쳐졌다. 바간은 미얀마 이라와디강 동쪽에 자리한 도시다. 11~13세기 버마족은 이 도시를 수도로 삼아 바간왕조를 세웠다. 2000여 기가 넘는 불탑과 사원이 아득한 들판을 메우고 서 있다. 바간의 수많은 불교 사원들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과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르드 사원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꼽힌다. “옛날 바간에는 지금보다 열 배는 더 많은 탑과 사원이 있었습니다.” 틴윈투가 서툰 한국말로 띄엄띠엄 말했다. “안타깝게도 2011년과 2016년에 큰 지진이 나면서 많은 불탑이 무너졌습니다.” 바간에는 고고학 구역이 있다. 서울 강남구 면적과 비슷하다. 불탑은 이곳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불탑 앞에서 도시락을 먹고 사원 안에 자리를 펴고 낮잠을 잔다. 여행자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빌려 탑과 탑 사이를 메뚜기처럼 건너다닌다. 가이드북에는 “바간에서는 사방 어디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켜도 반드시 불탑을 볼 수 있다”고 씌어 있는데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여행자들은 2만 5000원 정도 하는 프리패스를 산다. 이것만 있으면 5일 동안 바간의 사원을 돌아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슈웨지곤 파고다. ‘성지에 세운 불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황금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종 모양의 탑이 서 있는데 이 탑은 바간 불탑의 어머니로 불린다. 바간 왕조 초기 아나우라타가 옆 나라 타톤을 정벌하고 불사를 시작해 그의 아들 치얀지타가 완성했다. 1105년에 지어진 아난다 사원은 건축미가 가장 빼어나고 내부에 불상과 벽화가 잘 보존돼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수도 ‘만달레이’ 이튿날 바간을 떠나 만달레이로 갔다. 냥우 국제공항에서 오전 8시 30분 날아오른 야다나폰 항공 7y131 편은 이륙 후 16분 만에 착륙 안내방송을 했다. 스튜어디스가 나눠 준 사탕 하나를 다 먹기도 전이었다. 비행시간은 24분. 하지만 차로 가면 여덟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니 바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거리는 삼륜오토바이와 자동차, 마차로 북적였다. 미얀마 정중앙에 자리한 만달레이는 약 200만명이 넘게 사는 미얀마 제2의 도시다. 미얀마가 19세기 중엽부터 1948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을 당시 수도였다. ‘황금의 도시’로도 알려졌던 이 도시는 19세기에 버마왕국 최후의 왕족들이 건설했다. 만달레이를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왕궁이다. 1857년 민돈왕이 아마라푸라에서 이곳으로 천도하고 지었다. 성벽의 높이가 8m나 된다. 1885년 영국군이 미얀마를 점령했을 때 왕궁을 클럽으로 이용해 수치심을 안겨 주었다. 1942년 일본군이 함락했을 때는 왕궁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지금의 왕궁은 1990년 복구된 것이다. 높이 33m의 전망대에 오르면 왕궁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우베인 다리도 유명하다. 타웅타만 호수를 가로지르는 1.2㎞의 다리다. 1850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다리다. 당시 시장이었던 우베인이 잉아 궁전을 짓다 남은 티크목으로 다리를 만들었다. 오랜 세월 굳건하게 버티던 다리 기둥은 양식사업을 위해 호수물을 가두는 바람에 썩기 시작해 지금은 콘크리트 기둥으로 교체하고 있다. 다리 기둥 수는 무려 1086개에 달한다. 운이 좋지 않아 비가 왔다. 이 다리는 낮에는 별로 볼품이 없지만 일몰 때면 그 풍경이 180도 변한다. 다리 주차장은 대형관광버스로 가득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우르르 다리로 몰려갔다. 다리 위에는 ‘유명해서 와봤는데, 별로 볼 게 없군’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앞사람의 등을 보고 줄지어 걸어가고 있다. 걷다가 중간에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다음에는 꼭 날씨 좋을 때 저물 무렵에 와 봐야지. 쿠도더 사원도 특별한 곳이다. 사원 경내에는 하얀색 탑이 무려 729개나 있다. 탑마다 대리석에 새겨진 불경이 안치돼 있다. 그래서 이 사원의 별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책’(The World’s Biggest Book)이다. 미얀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핫스폿으로 불리는 곳이다. 봉우리 거느린 호수… 그 안에 자리잡은 삶●호수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다음날 다시 인레 호수로 향했다. 공항에서 한 시간 거리의 리조트에 체크 인을 하고 다시 배를 30분이나 타고 나가 점심을 먹었다. 샨족 전통 요리라고 했는데 중국 광둥요리와 비슷했다. 호수는 해발 880m 고원지대에 자리한다. 호수 주변에는 12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다. 호수의 넓이는 충주호의 두 배(116㎢)쯤 된다. 길이는 22㎞, 폭 11㎞로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호수 위의 수상마을만 스무 곳에 달한다. 미얀마에는 160여개의 소수민족이 살아가는데, 이곳 인레 호수에는 샨족과 인타족, 파오족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이 사는 부족은 인타족이다. 미얀마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인타족의 75%인 8만여명이 호수 주변에 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들은 장대로 물을 내리쳐서 고기를 잡고 배를 타고 한 발로 노를 저으며 호수를 가로지른다. 한 발은 배 위에 딛고 노는 다른 발 장딴지에 끼워 젓는데, 드넓은 호수에서 방향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전통옷을 입고 삿갓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노를 젓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보여 주기 위해 공연하는 사람들이다. 진짜 어부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평상복을 입고 그물질에 열중이다. 고기잡이 외에도 이들은 갈대와 대나무를 이용해 물위에 밭을 만들어 수경재배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대부분의 인타족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호수 위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티크 나무를 호수 바닥에 꽂아 기둥을 세운 뒤 수상가옥을 짓는다. ●수상 상점 둘러보면 마을이 큰 테마파크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호수 위 상점을 차례차례 방문한다. 연줄기에서 실을 뽑아내 천을 만드는 마을, 은세공 상점, 목이 긴 카렌족 가옥 등을 방문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관광객들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팔려고 하고 남자들은 의자에 누워 쿤야를 씹고 있다.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테마파크 같다. ●“돈 없어도 그냥 가져가요… 햇빛 따가우니까” 인레 여행을 끝내고 다시 양곤으로 가는 공항이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공항 대합실에서 양곤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머니에는 바간 냥우 시장에서 어느 소녀가 쥐어준 타나카(천연 자외선 차단제)가 들어 있다. 시장에서 만난 소녀는 타나카를 사라고 계속 졸라댔지만 지갑을 차에 두고 내려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돈이 없다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더니 선물이라며 바지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이건 그냥 선물이에요. 햇빛이 따가운 미얀마에서는 필요할 거예요.” 나는 일본의 여행작가 후지와라 신야의 책 ‘동양기행’에서 본 에피소드를 떠올랐다. 후지와라 신야가 양곤을 여행하던 중 뜨거운 뙤약볕 아래 노천식당에서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어떤 아이 두 명이 그의 등 뒤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후지와라는 그 아이들이 소매치기일까 의심하며 배낭을 꼭 안고 국수를 다 먹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기 갈 길을 갔다. 후지와라는 옆에 있던 남자에게 저 아이들은 소매치기냐고 물었는데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 아이들은 ‘응달’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땡볕 아래에서 쌀국수를 먹는 이방인이 너무 더울까 봐 그들의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나는 양곤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타나카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글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여행수첩 인천국제공항에서 미얀마 양곤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미얀마의 정식 명칭은 미얀마 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이다. 우기가 끝나는 5월부터 9월 중순까지가 여행하기에 가장 좋다. 시차는 2시간 30분. 통화는 차트로 1000차트(MMK)는 약 800원이다. 1000원으로 계산하면 대략 맞아 떨어진다. 사원이나 탑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맨발이어야 한다. 양말과 덧신도 허용되지 않는다. 신고 벗기 편한 샌들이 좋다. 올해 9월 30일까지 관광객에 한해 30일 무비자를 허용한다. 연장은 불가. 비용이 넉넉하다면 항공 이동을 추천한다. 버스 이동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바간~만달레이는 6시간, 인레~양곤은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모힝가는 생선 국물을 우려내 만든 미얀마식 쌀국수다. 양파, 레몬그라스, 생강, 파, 마늘, 바나나, 무 줄기 등을 함께 넣어 먹는데, 베트남·태국·라오스에서 먹던 쌀국수와는 맛과 향이 확연히 다르다. 처음 맛보는 이들은 약간 비린 육수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지만 2∼3일 미얀마에 머무르다 보면 아침부터 모힝가를 찾게 된다.
  • [여기는 남미] 2018 미스볼리비아 갑작스러운 왕관 박탈…이유는?

    [여기는 남미] 2018 미스볼리비아 갑작스러운 왕관 박탈…이유는?

    볼리비아 최고의 미녀가 여왕 자리에서 쫓겨났다. 미스볼리비아대회 조직 기관인 '글로리아 프로모션'은 최근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2018 미스볼리비아 조이스 프라도(22)의 왕관을 박탈했다"고 밝혔다. 볼리비아 최고의 미녀로 뽑히면서 여왕에 등극한 지 10개월 만이다. 글로리아 프로모션은 프라도의 미스산타크루스 자격도 박탈한다고 밝혀 프라도는 그간 쟁취한 미녀 타이틀을 모두 잃게 됐다. 기관은 중징계를 내리면서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진 않았다. 계약 위반과 관련된 사유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만 했다. 궁금증은 현지 언론의 취재를 통해 드러났다. 문제가 된 건 프라도의 임신이었다. 현지 일간 엘데베르에 따르면 프라도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임신 사실을 밝혔다. 태아의 아버지는 사귄 지 4개월째인 파라과이 출신의 모델이다. 프라도는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건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적 중 하나"라면서 "엄마나 아빠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감사할 일일 것"이라고 기뻐했다. 엘데베르는 "글로리아 프로모션이 미인대회를 개최하면서 참가자들과 계약을 맺는다"면서 "계약엔 임신을 금하는 조항이 있다"고 보도했다. 여왕이 되면 역할을 수행하는 기간 동안엔 절대 아기를 가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산타크루스 지방 출신인 프라도는 2018 산타크루스 미인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미스볼리비아대회 출전 자격을 얻었다. 지난해 6월 열린 미스볼리비아대회에서 당당히 우승, 영예의 여왕에 등극한 그는 볼리비아 대표로 미스유니버스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런 프라도가 왕관을 박탈당하자 일부 네티즌들은 격분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임신 때문에 왕관 박탈이라니 말이 안 된다" "미스볼리비아가 출산을 장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왜 이런 결정을?"이라는 등 대회 주최 측을 비난했다. 사진=자료사진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천년의 혼을 빚는다 왕실 도자를 만난다

    천년의 혼을 빚는다 왕실 도자를 만난다

    경기 광주시 ‘왕실도자기 축제’가 26일 곤지암읍 도자공원에서 막을 올린다. 5월 12일까지 ‘오감만족 왕실도자 여행’이라는 주제로 광주 도예명장전과 중국도자교류전 등의 전시 행사와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도자 체험 프로그램, 문화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개막식에서는 왕실에 진상했던 광주 도자기의 명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왕이 광주시를 방문하는 ‘왕의 귀환’ 퍼포먼스를 펼친다. 왕이 행사장에 당도하면 광주 사기장들이 최고의 도자기를 진상한 뒤 시민들을 위한 연희를 베푸는 순서로 진행한다. 광주시 도자기 명장 8명과 경기도 무형문화재 1명이 모두 18점을 출품해 도자기의 진수를 선보인다. 조선 백자 원료인 광주 백토로 빚은 백자 도자 작품 20점도 일반에 공개된다. 축제 기간에는 오카리나 공연과 농악단, 서도민요, 브라스 앙상블, 버스킹, 오케스트라 등 관람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문화공연이 매일 펼쳐진다. 농악대 줄타기와 희귀동물 마술쇼, 풍선쇼 등도 준비했다.‘오감만족’ 체험도 진행된다. 흙을 밟아보고 물레로 도자기를 빚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으며 도자기 핸드페인팅, 흙놀이 가족경연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짰다. 특히 도자기에 독특한 무늬를 넣는 과정이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초벌구이가 끝난 도자기를 일부러 유약을 녹일 때까지 가열한 뒤 곧바로 가마 밖 공기에 노출시켜 균열을 유도하는 라쿠 기법이다. 예측할 수 없는 그을음을 입혀 하나밖에 없는 무늬를 만든다. 또 도자기 명장이 증강현실(AR)을 통해 전통가마 체험을 안내하며 드론 체험도 운영된다. 가족이 함께 도자기를 만들면 도예명장의 심사를 통해 우수작품을 선정, 상장과 식사권을 제공하며 주말엔 고고학자로 변신해 왕실 도자기를 직접 발굴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꾸린다. 정영민 광주왕실도자기협동조합 이사장은 “예로부터 광주시는 조선 국가백자제작소인 사용원 본원을 설치한 곳으로 550년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질 좋은 광주토와 풍부한 땔감을 갖춘 지리적 조건으로 일군 명성과 선조들의 얼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따듯한 봄 기운과 더불어 가족, 연인끼리 프로그램을 즐기고 도자기를 구입해 집안의 분위기도 바꾸면 좋다”고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신동헌 시장은 “광주 백자의 우수성을 알리고 관람객을 아우르는 도예 체험과 문화공연까지 준비하는 데 최선을 다해 마음껏 즐기다 가는 열린 축제로 꾸미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사우디, 테러 음모 가담했다며 남자 참수 후 머리 장대에 효수

    사우디, 테러 음모 가담했다며 남자 참수 후 머리 장대에 효수

    사우디아라비아가 23일(이하 현지시간) 37명의 목을 자르는 참수로 사형을 무더기 집행한 뒤 한 남성의 머리를 장대에 꽂아 놓는 효수(梟首)까지 했다고 국영 매체 사우디 프레스 에이전시(SPA)가 전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49명의 사형을 집행했고 올해 들어 벌써 104명의 사형을 집행한 이 나라는 이날 수도 리야드를 비롯해 메카와 메디나에서 모두 37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이들은 국가 보안 사령부를 공격해 병사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들과 적어도 14명의 반정부 시위에 과격하게 참여한 이들이었다. SPA는 성명을 통해 “극단주의 테러 이데올로기를 채택하고 테러 조직을 형성해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해치려 했다”고 처형 배경을 설명했다. 처형된 이들 가운데는 체포됐을 때 불과 열여섯 살이었던 남자도 포함됐다.  사우디는 보통 참수로 사형을 집행하는데 효수까지 한 것은 당국이 훨씬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이를 본보기 삼은 것이라고 영국 BBC는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하고, 다른 여성을 강간하려 하고, 다른 남성을 살해하려 한 혐의로 한 남성이 처형 후 효수됐다. 사우디 정부는 사형 집행 숫자를 공표하지 않지만 국영 매체들은 자주 처형 소식을 전하고 있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이를 근거로 집계하고 있다.  사우디 보안 당국은 21일에도 리야드 북쪽의 알줄피의 보안국 지부를 공격하려 했던 음모를 적발했다며 4명의 가담자를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AP통신은 2016년 1월 47명을 집단 처형한 뒤 사우디에서 하루에 이뤄진 사형 집행 건수로는 가장 많은 것으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이번에 처형된 사람 대부분이 시아파 남성이라며 고문으로 끌어낸 자백을 근거로 한 “가짜 재판” 뒤 유죄를 선고받았다면서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통신은 이번 처형이 시아파 맹주이며 숙적인 이란과 수니파 맹주 사우디의 지역, 종파 긴장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3년 전 무더기 처형 때는 저명 시아파 종교 지도자 한 명이 포함되면서 파키스탄과 이란 등에서 시위를 촉발했고,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은 약탈당해 현재까지 문을 닫은 상태다.  두 차례 무더기 처형 모두 살만 사우디 국왕이 재가한 것으로, 그는 2015년 왕위에 오른 이래 이전 국왕들보다 더 대담하고 단호한 리더십을 드러내고 있다고 AP는 설명했다.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고 이란을 상대로 한 경제 제재를 복원하는 등 이란을 계속 압박하면서 사우디와 수니파 아랍 동맹국들이 더욱 대담해졌다고 분석했다.  미국 워싱턴에서 싱크탱크 ‘걸프협회’를 운영하는 사우디의 반체제 인사 알리 알아흐메드는 이번 처형이 미국의 반(反) 이란 물결에 편승해 이란을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日 10살 바둑신동 프로 데뷔전, 16세 언니 만나서 결국…

    日 10살 바둑신동 프로 데뷔전, 16세 언니 만나서 결국…

    일본 바둑 최연소 프로기사로 유명한 나카무라 스미레(10) 초단이 22일 치러진 프로 데뷔전에서 쓴맛을 봤다. 일본 기원이 신설한 영재 시스템의 첫번째 사례로 이달 1일 프로에 입문한 나카무라 초단은 2년 전부터 한국에서 기량을 연마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나카무라 초단은 오사카의 일본기원 간사이총본부에서 프로 입문동기인 오모리 란(16) 초단과 첫 공식대국을 가졌다. 그러나 174수만에 패배했다. 나카무라 초단은 ‘10세 1개월’ 나이에 데뷔전을 치름으로써 기존에 후지사와 리나(20) 여류삼관왕이 갖고 있던 ‘11세 8개월’ 기록을 1년반 이상 앞당겼으나 ‘최연소 프로 승리’의 기록은 다음으로 미뤄졌다.이날 대국은 TV 기전인 ‘류세이전’의 예선경기에 불과했음에도 인터넷과 위성방송 등에서 이례적으로 생중계에 나섰고,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나카무라 초단은 의자에 앉았을 때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별도로 발 받침대를 써야 했다. 나카무라 초단은 패배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긴장해서 잘하지 못했다. 억울하다. 후반에 잘 안 됐다”라면서 “다음 경기에서는 긴장하지 않고 잘하고 싶다”고 했다. 현장에서 대국을 지켜본 고토 ?고(52) 9단은 “중간까지는 팽팽했지만 승부처에 오모리 초단이 나았다”고 평가했다. 나카무라 초단의 아버지 나카무라 신야(46)는 프로 9단 전문기사다. 나카무라 초단은 아버지의 권유로 3살 때부터 바둑돌을 잡았고, 2017년 봄부터는 한국에 있는 한종진 바둑도장에서 수학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왕이 후궁 처소를 찾을 때 썼던 이 물건, 아시나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왕이 후궁 처소를 찾을 때 썼던 이 물건, 아시나요”

    고미술 수집 40년 최형술씨가 말하는 골동품“이 향난로는 아마 한국에서 하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약재를 가루로 만드는 약연과 한약을 달이는 약탕기, 약주전자, 약탕관 등 한약과 관련된 모든 도구가 한 세트입니다. 약주전자와 약맷돌에 새겨진 이 문양을 보세요. 용, 불로초, 사슴, 잉어가 보이죠. 그리고 이번에 청자철제귀면종에 대해 문화재 등록신청을 했습니다.” 골동품 가게 앞에 5층 8각 석탑 두기 서 있어“14세기 청자철제귀면종, 문화재 등록 신청해”서울에서 가장 큰 고미술점을 운영했다는 최형술(81)씨를 인터뷰하려고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청계8가 한국도자기 뒤에 있는 골동품점 갤러리 미(취강당)을 지난 17일 찾았다. 철물점 상가들 사이에서 두 기의 8각형 5층 석탑이 가게 앞을 지키고 섰다.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의 가게에 들어서자 세월의 더께에 쌓인 갑옷과 놋그릇, 제사용품과 서화, 가구 등이 가득했다. 그는 처음엔 골동품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사진이 나가면 짝퉁이 나돌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사화 하려면 사진이 필요하다고 설득한 끝에 촬영을 허락받았다. 사진을 찍으러 공예품 먼지를 털자, 먼지도 털지 못하게 했다. 최씨는 가리킨 약주전자에는 뚜껑은 용이 똬리를 튼 특이한 모양새다. 물이 나오는 주구 부분 역시 특이하다. 손잡이는 나무로 만들었다. 이 주전자를 끓일 아궁이 역시 커다란 돌덩이로 만들어졌다. 그 옆에는 향난로가 놓여있었다. 사각형의 돌상자에는 다시 작은 돌상자를 넣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구멍이 2개에서 4개씩 나 있었다. 들어보니 아주 묵직했다. “장수곱돌로 만든 거예요. 이게 옛날에 임금님이 어느 후궁 처소로 가겠다고 하면 상궁들이 이것을 미리 그 후궁방에 두고 방을 따뜻하게 데우면서 향기롭게 하는 기능을 했다고 합니다. 저도 용도를 몰라 궁금해했는데 수년 전 한 스님이 이렇게 설명해 줬습니다만 좀 더 정확한 용도와 고증이 필요합니다.” 기자가 이 사진을 한의사에 보여줬지만 그 한의사 역시 처음본다고 했다. 이렇게 한약방과 관련된 도구가 100여 점에 이른다. “장수곱돌로 만든 한약방 도구 100여점용 무늬, 불로초, 잉어 등의 그림 새겨져충청도 대갓집에 3년간 공들여 수집해”- 한약 도구세트, 어떻게 소장하게 됐나. “1980년대에 충청도의 한 가문으로부터 수집했습니다. 99칸에 이를 정도의 대갓집이었는데 그 집 할아버지로부터 사들였습니다. 처음엔 안 팔겠다고 했는데, 한번 내려갈 때마다 술, 고기 등을 사들고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팔아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설득하면 그 할아버지가 한꺼번에 팔지 않고, 한점 팔고, 몇 달 뒤에 또 내려가면 3점 팔고…. 이렇게 해서 다 사모는데 한 3~4년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이 한약방 도구들의 출처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하지 않고, 집안에 내려오는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현재 소장한 가장 비싼 미술품은. “글쎄, 가격을 다 매겨보지 못해 잘 몰라요. 그런데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물건은 있습니다. 고려시대인 14세기 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가마터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철제귀면종’은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고 있어요. 청자로 만든 종의 사금파리는 전하고 있지만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청자 종(鐘)으로는 아마 국내에서 유일할 겁니다. 사찰에서 쓰였을 것 같은데, 전문가들의 감정을 받아보면 가치와 용도를 알 수 있겠지요. 또 한가지 백자대호(달항아리)는 다음 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한 달간 전시할 생각입니다. 18세기 전후에 광주 분원리에서 구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고가품은 분청사기…신사동 땅값 100배골동품 안목 수업료로 집 몇 채 값 날아가”- 그러면 최고가 수집품은. “미련을 갖지 말아야지요. 박수근·김환기·이수근의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 그림도 제 손을 거쳐 간 것이 제법 됩니다. 한번은 평당 강남 땅값의 100배로 샀던 것도 있습니다. 1976년인가에 분청을 그때 돈 2000만원에 샀습니다. 그때 허허벌판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비포장이었지만 도로 옆에 붙은 좋은 땅은 평당 2만~3만원이었고, 안쪽 구석에 있던 것은 5000원도 안 되었습니다. 분청사기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 그 분청 아직도 갔고 있나. “벌써 임자를 만나 나갔지요. 비싸게 매입한다고 다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골동품과 관련해 수업료로 집 몇 채 값은 날아갔습니다. 수십년 골동품을 거래한 저도 사람의 손때를 탄 물건, 어찌 보면 혼이 담긴 물건이기에 알기가 무척 어려워요. 살 때 분명히 진품으로 보였는데, 가게에 와서 보면 다르게 보이고 해서….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일반인도 아닌 전문 장사꾼이라 무를 수도 없고 집 한 채 값 그냥 날아가지요.” - 그 분청사기 누가 사갔나. “이름은 말할 수 없지요. 의사와 변호사, 교수 등이 우리 집에서 물건 많이 사갔습니다. 예술품이나 골동품은 소장자가 누구냐에 따라 가치가 또 확 달라집니다. 같은 분청사기라도 골동품상인 제가 가진 가치와 유명 교수나 학자가 소장한 것의 가치가 다르다는 거죠.” - 현재 보유한 고미술품 수는. “고미술품과 민예품 등을 합쳐서 아마 1만 점이 넘을 겁니다. 중간 상인이 차로 100점~200점 갔고 옵니다. 그중에서 서너 점이 마음에 들면 차떼기로 전부 다 샀던 겁니다. 중간 상인도 값나가는 서너 점을 알거든요. 좋은 것만 사고, 나머지를 사지 않으면 다음엔 거래하러 오지 않아요. 그 서너 점으로 본전을 뽑고, 나머지를 팔아서 이익을 내는 구조입니다. 많을 때 10만 점가량 보유했습니다. 다 보관을 할 수가 없어서 팔기 시작한 겁니다. 가구와 같은 목제품, 그림이나 글씨와 같은 서화는 비바람을 맞아 곰팡이가 피면 안 되잖아요. 여기 가게에도 있지만 개운사 옆 카페 봄에도 삼국시대의 토기 등을 전시하고 있지요. 창고에도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자개 농과 같은 나무 제품은 공간도 많이 차지합니다. 사람이 쓰는 물건이 3만가지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 대부분을 다루어봤을 겁니다.” “50~90년대 광장시장서 복지점으로 돈 벌어1970년대 우리 민예품 해외 마구 팔려나가남아있는 게 없겠다는 생각에 수집 시작박물관 생각에 마구 수집…여건 달라져 포기수집품 한때 10만점쯤 …지금은 1만점가량 보유”- 고미술 수집엔 돈이 엄청 든다. “동대문과 광장시장에서 양복을 짓는 데 쓰는 옷감인 복지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1958년부터인가 시작했는데, 그 당시 신랑이 장가갈 때 양복 한 벌 맞춰 입으려면 쌀 10가마의 돈이 들었습니다. 저는 도매와 소매를 겸해서 전국에 거래상을 두고 팔았지요. 그때 돈을 제법 만졌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닥친 1998년 복지 가게는 다 정리했습니다.” - 왜 고미술에 빠졌나. “1970년대에 보니깐 우리 공예품이 외국으로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심지어 수석까지 미국 일본 필리핀 이탈리아 등으로 팔려가가더군요. 소련에도 팔려나갔습니다. 이래서는 우리 것이 남아있지 않겠다는 생각에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좋은 것을 사 모아야겠다는 사명감에 보이는 대로 사서 모았지요. 그러다가 우리 공예품, 민예품을 보는 눈도 생기고, 알게 되니깐 더 애착이 가더라고요. 어느 순간 더 이상 보관할 수가 없게 되어서 골동품 가게를 열었습니다. 매장 면적이 170평으로 전국은 몰라도 서울에서는 가장 컸습니다. 18~19년간 하다가 땅 주인이 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해서 여기로 이사해 소일거리로 하는 겁니다.” - 아무리 고미술에 빠져도 그렇게 사모을 수 있나. “처음엔 박물관을 하나 운영할까 생각했습니다. 서울에다 박물관 하나 하려다 보니 땅값이 엄청나게 올라 있고, 박물관 운영비 마련도 쉽지 않아 보여서, 그냥 나자빠진 거죠. 결국, 이렇게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게 된 거죠. 한창때는 귀하거나 없는 물건을 보면 안 사고는 못 배겼어요.” - 고미술 수집과 복지점 운영하면 물려받은 게 많았겠다. “저는 1939년생으로, 고향이 전남 해남인데, 그때 꿈이 교사였어요. 중학교 졸업하고 해남고등학교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집안이 어려워 진학 대신 농사일을 도우며 서당에 3년가량에 다녔습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싶어서 무작정 상경해서 동대문시장에서 행상을 해서 돈을 아끼고 모으고 해서 복지점을 낸 겁니다. 복지점을 낸 지 3년 만에 해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한데 논 20마지기(4000평)와 기와집을 사드렸습니다.” “아파트 거주공간에 고미술 둘 공간 없어져조상 손때 묻은 골동품, 갈수록 가치 올라”- 고미술 대신 강남에 땅을 샀다면. “강남에 땅을 샀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잖아요. 잘 되었을 거라는 보장이 없지요. 신사동의 좋은 땅이 평당 2만원할 때 고려대 뒤 개운사 옆에 7500만원을 들여 큰 한옥을 지어 살았습니다. 그동안 건강하게, 화목하게 살았으니, 강남에 땅을 사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후회는 없어요. 남들은 뭐라 생각하든 우리 고미술 보존에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 고미술 찾느라 전국 많이 다녔겠다. “복지점을 할 때 전국 거래처를 다녔지만, 고미술을 할 때는 가지 않습니다. 골동품도 수십년 거래한 믿는 중간 상인들이 있습니다. 중간 상인들은 지역별로 골동품을 모아두는 사람들을 두고 있었지요. 그래야 탈도 없고, 외상거래도 떼어먹는 일도 없지요. 집안에서 대대로 쓰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정말 돈이 급하잖아요. 그래서 언제든지 현금으로 지불할 준비는 해 놓고 있었습니다. 물론 속은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그 또한 제 안목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엔 곁눈질로 한번 보면 10가지 이상이 파악됩니다. 그리곤 가격이 바로 매겨집니다. 수십년 경험이지요.” - 문제는 없었나.“무슨 문제요? 아~, 한번도 경찰에 조사받은 일이 없습니다. 수십년 거래한 중간 상인들이라도 의심스러우면 거래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골동품이라는 것들이 무겁고, 부피도 커고 해서 귀금속과는 많이 달라요. 이 부근 한자리에서 20년가량 장사를 하는데 손님을 속이고 그렇게 운영해서는 오래 못가요. 손님들이 수년 지나서 찾아와 물러달라거나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손님들 요구대로 다 해줬습니다.” - 요즘 고미술 인기는. “한때 한국화가 잘 나갔습니다만 아파트가 못도 박지 못하게 하잖아요. 소품의 유화라도 그림을 걸어둘 곳도 없어졌습니다. 동양화는 액자나 족자를 하게 되면 무겁고 공간도 넓게 차지하는 단점이 있지요. 병풍을 쳐 놓을 공간도 없고, 조상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같아요. 고미술을 사려는 사람도 적지만, 수요는 꾸준히 있습니다. 하지만 고미술, 골동품을 구하기가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가격도 비싸졌고…. 동묘에도 골동품상이 한두집 밖에 없어요. 요즘엔 물건이 안 나오니깐 못하는 거지요. 그래도 조상들의 혼이 담긴 골동품, 갈수록 가치가 올라갈 겁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일년에 하루 특별한 종묘를 보는 날… ‘조선왕실 큰제사’ 종묘대제 새달 5일 거행

    일년에 하루 특별한 종묘를 보는 날… ‘조선왕실 큰제사’ 종묘대제 새달 5일 거행

    조선왕실이 지낸 큰 제사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대제가 새달 5일 열린다. 국립무형유산원과 한국문화재재단은 종묘대제봉행위원회가 주관하는 종묘대제를 새달 5일 오후 2시 종묘 정전에서 거행한다고 22일 밝혔다. 종묘대제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왕이 직접 거행하는 중요한 제사로 1969년 복원된 이후 해마다 개최한다. 종묘 정전에는 역대 조선의 왕 19명과 왕비 30명 등 총 49명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오후 2시 정전 제향에 앞서 영녕전 제향과 경복궁에서 종묘에 이르는 어가행렬을 진행한다. 정전 제향 이후에는 평소에 공개하지 않는 정전 신실(神室)을 개방한다. 정전 관람석 중 300석의 입장권은 22일부터 네이버 예약관리시스템을 통해 제공하고, 나머지 550석의 입장권은 선착순으로 현장에서 배포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종합] 구본임 비인두암으로 별세, 누구? ‘아! 그분.’

    [종합] 구본임 비인두암으로 별세, 누구? ‘아! 그분.’

    구본임이 비인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故(고) 구본임은 지난 21일 비인두암으로 투병하던 중 사망했다. 향년 50세. 고인은 지난해 비인두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1969년생인 구본임은 서울예술대학교 연극학과 출신으로, 1992년 극단 ‘미추’에 입단하면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그 해 영화 ‘미스터 맘마’로 데뷔했으며 ‘마누라 죽이기’, ‘홍반장’, ‘음란서생’, ‘미녀는 괴로워’, ‘화려한 휴가’, ‘식객’, ‘나는 왕이로소이다’, ‘늑대소년’ 등의 영화에서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또 ‘외과의사 봉달희’, ‘조강지처클럽’, ‘탐나는도다’, ‘검사프린세스’, ‘주군의 태양’, ‘호텔킹’, ‘싸우자 귀신아’, ‘훈장 오순남’, ‘훈장 오순남’, ‘맨도롱 또똣’, ‘판다양과 고슴도치’ 등 드라마를 통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또 연극 ‘블랙 코메디’, ‘허풍’, ‘유 햄릿’ 등의 무대에 올랐으며 이와 같은 꾸준한 활동 덕에 전국 연극제에서 ‘다시라기’로 최우수 여자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비인두암은 비인두에 생긴 악성 종양이다. 비인두는 뇌기저에서 연구개까지 이르는 인두의 가장 윗부분으로, 이곳에 생긴 악성 종양을 비인두암이라 한다. 고인이 지난해 병을 발견하던 당시 이미 말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본임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동료 배우들은 SNS등을 통해 구본임의 사망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한편 구본임의 빈소는 쉴낙원 인천 장례식장 12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3일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광주에 천문대” 가이드에 ‘경주’로 바로잡은 문 대통령

    “광주에 천문대” 가이드에 ‘경주’로 바로잡은 문 대통령

    우즈베키스탄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의 대표적 역사·문화 유적지인 사마르칸트를 찾았다. 이날 방문에는 부인 김정숙 여사와 샤프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내외도 동행했다. 양국 정상 내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15세기 티무르왕의 손자 울루그벡이 만든 ‘천문대’였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티무르 왕이 최연소 왕이었는데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하는 등 자부심을 내비쳤다. 세종대왕이 통치하던 시기와 울루그벡이 사마르칸트를 통치하던 시기가 같다는 우즈베키스탄 가이드의 말에 문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 대통령은 울루그벡이 만들었다는 천문표를 보면서 “천문표가 세종대왕과 같은 시기에 도입됐는데, 그 시기에 천문학까지도 교류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종대왕 시기가 한국 왕조 시기에서 가장 융성했던 시기”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가이드가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자 이를 바로 잡기도 했다. 가이드가 “한국 광주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다”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경주”라고 고쳐 설명했다.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첨성대’를 설명한 것이다.양국 정상이 다음으로 들른 곳은 아프라시아브 박물관 내 벽화실이었다. 이곳에 있는 궁전벽화는 고구려 사신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그려져 있어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 가이드가 고구려 사신이 나오는 부분을 설명하자 문 대통령은 손가락으로 고구려 사신이 있는 곳을 찾아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사신이) 쓴 관에 새 깃털이 있는데 이것이 고구려의 특징이라는 것을 중국 전문가가 확인했고, 차고 있는 칼도 고구려 것이어서 고구려 사신이 이 시기에 사마르칸트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이어 “그만큼 양국 교류의 역사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1월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의 국빈방한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벽화의 사본을 본 것을 언급하며 “실물로 보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소감을 밝혔다. 곧이어 벽화 앞에서 양 정상 내외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우즈베크 문화유산 교류협력 양해각서 체결식’이 진행됐다.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벡조드 율다셰브 우즈베키스탄 과학 아카데미 장관이 체결한 양해각서에는 한국 정부가 아프라시아브 박물관 관람환경 개선 사업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문 대통령은 체결식 기념촬영 후 가이드에게 “(벽화에) 사용된 안료와 물감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관심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조명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색채를 잘 보존하고 안료 분석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보존인데, 습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전통 공예품과 전통악기를 파는 상점에도 들렀다. 뽕나무 종이에 대한 설명을 듣던 문 대통령은 상점 주인에게 “이게 그 유명한 사마르칸트 종이인가”라고 물은 뒤 “한국 닥나무 종이랑 (만드는 방법이) 비슷해 보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티무르 왕의 묘도 들렀다. 묘에서 나온 문 대통령은 가이드에게 “훌륭한 가이드였다”고 칭찬한 뒤 문화재 시찰을 마쳤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미국 보이콧에도 더 커진 일대일로 정상 포럼

    미국 보이콧에도 더 커진 일대일로 정상 포럼

    중국의 제2회 일대일로 정상 포럼(국제협력 고위포럼)이 미국의 보이콧에도 불구, 2017년 첫 포럼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국가 정상과 대표단이 참석하는 등 초메머드 급으로 성대하게 열린다. 25~27일 3일 동안 열리는 이번 포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해 37개국 정상과 유엔 사무총장 및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등 90여개의 국제기구 수장, 150여 국 고위급 대표단 5000명이 참석한다. 중국의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전하면서 각국 지도자들이 일대일로 건설의 정치적 공감대를 보여주는 공동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 간 협력 협의 외에도 각국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투자,자금 조달 등 프로젝트 협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에 열린 1차 포럼에서는 29개국 정상과 130개국에서 1500명의 대표단이 참석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정부 대표단장격으로 참석하고, 민간에서는 김한규 21세기한중교류협회 회장(전 총무처장관) 등이 참석한다. 북한도 대표단을 보내기로 했다고 이날 왕의 부장은 밝혔다. 주요 행사로는 25일에 12개의 세션과 기업가 대회가 있다. 26일에는 개막식과 고위급 회의가 있으며, 27일에는 원탁 정상회담이 열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원탁 정상회담도 주재한다. 시 주석은 국내외 매체에 정상회담의 성과도 설명할 예정이다. 또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각국 지도자와 귀빈을 환영하는 연회도 열린다. 포럼 취재를 위해 약 4000명이 취재 신청을 했다. 왕의 부장은 이날 “일대일로는 공동발전을 촉진하고 공동번영의 협력과 ‘윈윈’을 실현하는 길이며 이해와 신뢰를 높이고 전방위 교류와 평화 우의를 강화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왕이 부장은 미국이 1회 포럼때와는 달리 고위 관리를 보내지 않는 등 사실상 보이콧한 것에 대해 “일대일로는 개방적 이니셔티브로 우리는 관심 있는 어떤 나라라도 참여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각국에는 참가할 자유는 있지만 다른 나라의 참가를 막을 권리는 없다”고 지적했다. 왕 부장은 일대일로 사업으로 세계 화물 운송 시간이 1.2∼2.5% 단축됐으며 무역비용이 1.15∼2.2% 절감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대일로와 관련된 논란을 의식하듯 “부채 위기의 책임을 일대일로에 덮어씌우는 것은 어떤 당사국도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대일로 건설은 단번에 되는 것도 아니며 발전 중에 나오는 문제를 피할 수도 없다”면서 “건설적인 의견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자치광장] 농사 시작을 알리는 선농대제/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

    [자치광장] 농사 시작을 알리는 선농대제/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농경사회였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겐 예기치 못한 자연 현상으로 인해 풍년과 흉년이 엇갈리는 게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백성들의 어려움을 같이 고민하고 백성들과 함께하고자 했던 애민사상이 깃든 제례가 있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선농단의 선농대제가 바로 그것이다. 선농단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현재 위치에 단이 조성됐다고 한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에서는 절기에 맞춰 입춘과 입하, 입추 때 세 번에 걸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중 입춘 후에 지내는 제사를 선농제(先農祭)라 했다. 조선 태종 때 선농단 형태와 제도 전반에 대한 정비를 시작했고 성종 때 친경의식 전반에 대한 절차를 정비했다. 성종 7년에 조선 건국 이후 최초로 선농제를 지냈으며 숙종 대에 왕이 몸소 밭갈이 시범을 보이는 친경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예조에서 해일(亥日ㆍ穀雨日)에 제삿날을 정하면 임금은 3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당일 새벽 선농단에서 여러 중신과 백성들이 참가한 가운데 농사와 곡식의 신들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행사가 끝나면 왕은 모든 참가자들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해 소를 잡아 국말이밥을 내렸는데, 이를 ‘선농탕’이라 했다. 훗날 음운변화를 거쳐 설롱탕으로 읽게 되었고, 오늘날에 와서는 설렁탕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선농단과 선농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시설 대부분이 훼손됐고, 초석과 향나무 등 일부 잔존하던 선농단은 역사·문화적 가치와 의의를 되살리려는 민관의 꾸준한 노력으로 2015년 4월 선농단 역사문화관 조성과 함께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유산으로 계승 보존되고 있다. 1979년 제기동의 뜻있는 분들이 선농단의 전통을 보존하고 선인들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모임을 만들어 1년에 한 번씩 이 단에서 치제를 올리기 시작한 이래로 1992년부터 동대문구가 이를 계승해 매년 4월 곡우(穀雨)를 전후해 선농대제를 열고 있다. 올해도 20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초헌관으로 선농대제를 봉행한다. 농사의 시작을 알리고 풍년을 염원하려는 선현들의 얼이 깃든 곳에 많은 사람들이 들러 제례를 보고 무료 설렁탕도 먹으면서 진정한 애민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면 어떨까.
  •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전시관 본격 운영에 들어가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전시관 본격 운영에 들어가

    삼국유사의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주제로 경북 포항에 만든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17일 포항 남구 동해면 임곡리에 만든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전시관 ‘귀비고’ 개관식을 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3대문화권 관광기반 조성사업의 하나로 2018년까지 10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졌다. 시설은 전시실을 비롯해 일월영상관, 카페, 야외테라스로 구성됐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는 만화영화, 가상현실영상체험 콘텐츠를 갖췄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아달라왕 4년(157년) 동해 바닷가에 살던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자 신라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에 신라 왕이 일본에 사자를 보내 세오녀가 짠 비단을 받아와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다시 빛이 나타났다. 비단을 보관하던 창고를 귀비고,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고 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포항 앞바다인 영일만을 비롯해 일월지 등 지명에 연오랑세오녀 설화와 관련한 자취가 남아 있다.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은 신라마을, 일월대, 연오랑뜰, 일본뜰, 쌍거북바위 등 볼거리를 갖췄고 영일만 바다와 포스코, 포항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소다. 한만수 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지난 2월부터 귀비고를 시범 운영한 결과 평일에는 500명, 주말에는 하루 3000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아! 성모마리아”… 화마, 1시간 만에 96m 성당 첨탑 삼켰다

    “아! 성모마리아”… 화마, 1시간 만에 96m 성당 첨탑 삼켰다

    “오, 신이시여.” 거대한 불길이 프랑스 파리의 상징 노트르담대성당을 휘감은 지 약 1시간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후 7시 50분 우뚝 솟은 성당 첨탑이 모로 쓰러졌다. 96m짜리 첨탑이 기울자, 불타는 성당을 하릴없이 바라보던 시민과 관광객의 인파 속에서 비명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성당이 탄 희뿌연 연기가 파리 시내 하늘을 뒤덮었다. 한 파리 시민은 CNN에 “첨탑이 무너진 순간 사람들이 ‘오!’, ‘아!’ 같은 비명을 질렀다. 많은 이들은 그냥 너무 놀라 말을 잃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시민은 AFP통신에 “파리가 훼손됐다. 파리는 이제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에서 25년 거주한 스테판 시뉴리는 “노트르담대성당은 전쟁과 폭격을 겪고 살아남았다. 불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공허하다”고 밝혔다.수많은 시민·관광객들이 성당과 인접한 센강 주변에 서서 울고 탄식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몇몇 시민들은 불타는 성당을 향해 찬송가 ‘아베마리아’(성모송)를 합창했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여인’ 즉, 가톨릭의 성모마리아를 뜻한다. 이번 화재는 가톨릭 성주간에 발생한 것이어서 침통함을 더했다. 성주간은 부활절 직전 일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리는 기간이다.당국은 이번 화재의 원인을 개·보수 작업 과정에서의 실화로 보고 조사 중이라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다만 개·보수 작업이 발화 요인인지, 아니면 화재를 확산시킨 요인인지는 더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에마뉘엘 그레그와르 파리 부시장은 “첨탑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노트르담성당의 독특한 구조와 화재방지 시스템의 부재가 복합적으로 키운 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 연방소방국(USFA)의 키스 브라이언트 국장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화재의 원인으로 “관광객들이 노트르담대성당을 꼭 봐야 하도록 만드는 요소들, 즉 오래된 연식과 거대한 크기, 석조 벽과 나무 대들보라는 프랑스 고딕 양식”을 꼽고 “이런 건물은 소방관이 내부에서 불을 끄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P는 그러나 “1878년에 건축한 미국 뉴욕의 성 패트릭 대성당은 곳곳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목조지붕에 방염제 코팅을 하며, 연간 최소 네 차례 소방점검을 한다”면서 “1912년에 벽돌, 석회석으로 만들어 화재 위험이 비교적 적은 워싱턴 국립 대성당 역시 리모델링을 하면서 스프링클러를 달았다”며 노트르담대성당의 화재방지 시스템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악조건 속에서도 소방당국은 성당 전소를 막아냈다. 장클로드 갈레 파리 소방청장은 “노트르담의 주요 구조물은 보존된 것으로 본다. (전면부의) 두 탑은 불길을 피했다”고 밝혔다. 소방관들은 또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지기 전 썼다는 가시면류관, 13세기 프랑스 루이 왕이 입었던 옷 등 성당 내부의 유물 일부도 구해냈다. 하지만 수많은 목재로 이뤄져 ‘숲’이라 불리던 13세기 지붕 구조물은 결국 소실됐다. 현지 언론은 성당 내부 목재 장식 대부분은 화마에 소실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성당의 나무 뼈대 중 오래된 것은 1160~1170년에 벌목한 것이다. BBC는 ‘장미 창’으로 불리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일부도 파손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최악은 피했다. 슬픔이 우리 국민을 뒤흔든 것을 알지만, 오늘 나는 희망을 말하고 싶다. 화재 피해 수습과 재건을 위해 전 국민적 모금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말을 하는 도중 눈물을 글썽였다. 각국에서 위로가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너무 끔찍하다”면서 “아마도 공중 소방 항공기를 불 끄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훈수를 뒀다. 파리 소방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했던 공중 살수는 건물 구조에 심각한 위험을 끼칠 수 있어서 사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냉부해’ 김성주, 아들 민국이와 붕어빵 외모 “나도 보고 놀라”

    ‘냉부해’ 김성주, 아들 민국이와 붕어빵 외모 “나도 보고 놀라”

    ‘냉장고를 부탁해’ 샘 해밍턴과 김성주가 자신의 아이들과 닮은꼴 외모를 자랑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15일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방송인 샘 해밍턴과 동물훈련사 강형욱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MC 김성주는 샘 해밍턴에게 “아이들이 본인 어릴 적 모습과 똑같다고 말한다더라. 본인을 닮아서 예쁜 것이라고 주장한다던데”라고 말했다. 이어 샘 해밍턴의 어릴 적 사진과 두 아들 윌리엄, 벤틀리의 사진이 함께 공개됐다. 사진을 본 출연진들은 “윌리엄이 샘을 많이 닮았다”, “셋 다 정말 똑같다” 등 반응을 보였다. 이에 MC 김성주가 “그럼 윌리엄, 벤틀리도 크면 샘처럼 되는 거냐”고 묻자, 샘 해밍턴은 “살 빼면 인물 괜찮다.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고 답하며 웃었다. 김성주는 “아빠들은 유전자에 대한 애착이 있다. 날 닮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MC 안정환은 “성주 형이 끝판왕이다. 아들 민국이랑 정말 똑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성주 아들 민국이의 사진이 공개됐다. 김성주는 아들 민국이와 붕어빵 외모로 웃음을 자아냈다. 김성주는 “사진을 보고 놀랐다. 그러면서도 내 아들이라는 뿌듯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JTBC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소백산 철쭉 복원…영주시 성과 낸다

    소백산 철쭉 복원…영주시 성과 낸다

    경북 영주시가 지역 명물인 소백산 철쭉 복원에 힘을 쏟고 있다. 16일 영주시에 따르면 이날 국립공원소백산사무소, 영주산악연맹과 함께 순흥면 배점리 소백산 국망봉 남쪽 계곡 아래 초암사 탐방지원센터에서 초암사 구간에 4년생 철쭉 묘목 4000그루를 심었다. 시가 2006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소백산 철쭉 복원과 보전 사업의 일환이다. 지난해까지 소백산 연화봉을 비롯한 철쭉 군락지 10곳과 탐방객이 많은 관광명소 주변에 9050그루를 심었다. 이 가운데 생존율이 평균 50%로 복원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나라 고유 자생관목이며 영주 소백산을 대표하는 향토 수종인 철쭉은 3년이면 개화하는 다른 곳 철쭉과는 달리 7년 만에 꽃이 피는 낙엽성이다. 화색이 연분홍빛으로 선명하고 뿌리가 곧고 멀리 뻗어 선비 기개를 상징해 철쭉류 가운데 왕이라는 로얄 아젤레아(Royal Azalea) 라고 한다. 우리 민족 정서와 맞아 그 가치가 매우 높다. 그러나 기상환경 변화, 자연훼손 등으로 자생지 안에 소백산 철쭉 군락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영주시 관계자는 “철쭉 생태복원은 소백산 가치를 높이고 우리나라 토종 종자 맥을 잇는 것으로 연구와 증식,복원을 통해 철쭉 군락지로 잘 보전하겠다”고 말했다. 영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종묘 정전을 중심으로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종묘 정전을 중심으로

    진달래가 핀 봄날 종묘를 보고 싶어 하는 몇 분과 종묘 나들이를 했다. 고구려부터 존재했던 전 왕조의 종묘는 추정 유적지로 흔적만 겨우 남았지만, 조선의 종묘는 온전히 남아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종묘의 정전은 죽은 왕들의 신위를 모시는 왕가의 사당이다. 왕이 죽으면 신주를 이곳 정전에 모셨다가 그 밑으로 다섯 왕이 죽으면 세상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신주를 땅에 묻게 된다. 그러나 조선의 종묘는 차마 땅에 묻지 못하고 영녕전이라는 별묘를 지어 그곳에 모시고 대부분의 왕은 불천위로 만들어 정전에서 영원히 모셨다. 불천위는 공덕이 큰 왕을 기리기 위해 영원히 모시는 것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평가가 후해서 몇몇 왕을 제하고는 대부분 불천위가 됐다.종묘에는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25명의 왕 외에 훗날 왕으로 추존된 왕들이 모셔져 있다. 25명의 왕 중 19명이 불천위로 정전에, 단명하거나 힘이 없었던 왕 6명과 9명의 추존왕, 영친왕 등 16명이 영녕전에 모셔졌다. 추존왕이란 세자로 책봉돼 왕이 됐어야 하지만, 단명하거나 왕위에 오르지 못해 후대에서 왕의 칭호를 받은 왕과 태조의 4대조까지를 말한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세자를 비롯해 다섯 명이 추존왕이 됐다. 정전은 문이 세 곳에 있다. 그 하나는 신문이라 하여 죽은 왕의 혼이 드나드는 문이니 신주가 들고 날 때만 열린다. 신문의 중앙에는 신이 다니는 신로가 있다. 나머지 두 문은 제례를 위한 출입문이다. 동문은 왕이 재궁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제례를 위해 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동문에 들어서면 계단을 통해 월대를 오르기 전 동 월랑을 만난다. 종묘에 원래는 없는 양식이나 태종이 월랑을 만들게 했는데 꼭 학의 날개를 보는 듯하다. 양쪽의 월랑 중 동쪽은 비어 있고 서쪽은 벽을 막아 대칭을 깨뜨렸다. 동쪽을 비움으로써 재궁 쪽에서 진입하며 기둥 사이로 정전 건물 전체를 볼 수 있다. 불국사가 청운교, 백운교를 오르면 불국이듯 정전의 월대는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을 구별해 신성시하는 역할을 한다. 하월대는 좌우 폭이 109m에 앞뒤 폭이 69m에 이른다. 박석이 깔린 월대는 정전 건물의 규모와 합해져서 텅 빈 느낌이다. 박석이 거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걸음을 신중히 하라는 의미와 자연광이 난반사돼 눈부심을 줄여 주는 의미다. 정면의 신문 앞에서 정전을 바라보면 하월대, 상월대, 처마선, 용마루선의 긴 수평선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 수평선들은 보는 이를 포함해 모든 것을 땅이 붙잡고 있는 느낌이라 관찰자를 차분하게 한다. 합각의 추녀같이 날아갈 듯한 미려함과 화려한 공포도 없이 긴 맞배지붕이 차분하게 분위기를 잡아 준다. 건물의 위계로 보아서는 궁궐의 정전만큼 화려한 장식이 어울리지만 엄숙함과 차분함을 위해 화려함을 내려놓았다. 신문을 통해 정전의 영역에 들어서면 101m의 정전 건물이 보이지만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신문을 더 멀리 배치하면 되겠지만, 일부러 한눈에 다 안 들어오는 거리에 문을 내 건물의 크기에 압도당하게 했다. 정전은 다섯 칸에 협칸을 더해 일곱 칸으로 시작해서 열한 칸으로 증축됐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 이후 광해군이 11칸의 정전을 완성하고 두 차례의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됐다. 조상의 사당을 완성했으나 정작 광해군 자신은 왕의 칭호를 받지 못하고 정전에 못 들어간 두 명의 군주 중 한 명이 된다. 목조 건축의 증축은 다른 구조의 증축과 비교해 어렵다. 서에서 동으로 증축됐기 때문에 건물의 중심축이 옮겨지며 월대나 남문의 위치까지 모든 것이 중심축을 따라 이동했다. 정전의 증축이 대단한 것이 증축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자세히 보면 기둥의 형태가 조금 다르다. 흘림의 정도가 조금씩 달라 열한 칸의 기둥에서는 배흘림이 관찰된다. 이후에 사용된 기둥은 민흘림에 가깝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518년 조선 왕조를 지키며 지금에 이른 종묘의 진면목을 보려면 5월 첫 주와 11월의 첫 주에 종묘제례를 함께 볼 수 있을 때 가보는 걸 추천한다.
  • 中, 日소고기 받고 일대일로 러브콜

    日 10개 지역 식품 수입규제 철폐 요구도 26일부터 베이징 일대일로 포럼에 참가 中은 제3국 기반시설 개발에 협조 요청 화웨이 배제 우려 “中기업에 공평해야” 중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 노력이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산 소고기의 중국 수출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은 오는 26~27일 중국 주도로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포럼에 참가하기로 했다. 오는 6월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맞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 일정 협의도 본격화하는 등 중일이 신밀월을 맞고 있다는 평가다. 15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중일 양국은 전날 베이징에서 열린 양국 고위급 경제대화에서 일본산 소고기의 중국 수출 재개에 필요한 검역협정 체결에 실질적인 합의를 봤다. 이번이 5차인 중일 고위급 경제대화는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고노 다로 외무상 등 일본 대표단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고노 외무상은 검역협정 체결과 관련해 베이징에서 기자들에게 “수출 허용을 위한 중요한 단계”라고 평가했다. 최종적으로 수출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중국은 2001년 일본에서 광우병(BSE·우해면상뇌증)이 발생하자 일본산 소고기 수입을 금지했다. 일본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중국이 실시 중인 10개 지역의 식품 수입 규제의 철폐를 재차 요청하는 한편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할 것도 요구했다. 이에 중국은 일대일로에 기초해 동남아시아 등 제3국 기반시설 개발에 일본이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제5세대(5G) 이동통신 시스템 활용과 관련, 일본이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의 기기를 사실상 배제하려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자국 기업을 공평하게 대우할 것을 요구했다. 왕 국무위원은 “중국의 거대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 포럼에 일본 고위급 대표단이 참석하기로 했다”면서 “일본이 더욱 명확한 태도로 일대일로에 참가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중국 외교부가 전했다. 그는 이어 “중국이 올해 건국 70주년이고 일본도 곧 ‘레이와’(5월 1일 나루히토 왕세자 일왕 즉위 이후의 연호) 시대로 들어가 양국 관계는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투자와 무역, 양국 기업 협력에 의한 동남아 등지의 시장 개척 등 경제협력 강화에 의욕을 보였다. 왕 국무위원과 고노 외무상은 경제 분야와 별도로 시 주석의 방일 일정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고 실무작업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고노 외무상은 이날 리커창 중국 총리도 예방했다. 리 총리는 “고위급 경제대화가 중일 관계를 정상 궤도에서 더 전진시켜 실무적인 성과로 이어지게 했다”며 “주요 경제대국인 두 나라가 협력을 심화하는 것이 세계경제의 안정적인 회복세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고노 외무상은 “중일 관계에는 다양한 난제가 있어 제대로 관리해야만 한다”며 “양국 이외에 전지구적 과제에 대해서도 두 나라가 어깨를 나란히 해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종묘(宗廟), 으뜸이 되는 사당

    세계문화유산 종묘(宗廟), 으뜸이 되는 사당

    종묘는 사직과 함께 왕조의 근간이 되는 가장 중요한 장소다. 조선시대 한성에 화재가 나면 종묘가 진화 1순위였다. 군주제에서는 왕이 곧 국가이며 이 왕과 왕의 조상을 모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세운 시조의 조상과 그 후손인 왕들을 모시는 곳이 종묘다. 많은 외국인이 종묘를 파르테논과 비교해 ‘동양의 파르테논’이라는 별칭이 있다. 외국인들이 종묘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았던 것이다.종묘제도는 중국의 주나라 때부터 있었으나 중국은 공산화를 가치며 명맥이 끊기고 우리는 종묘와 종묘제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며 아직도 제례를 올리는 살아있는 정전을 유지하고 있다. 종묘에는 정전과 영녕전이 있으며 정전에 19분의 왕의 신주가, 또 영녕전에 16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업적이 있다고 판단한 ‘왕 중의 왕’ 19분을 정전에, 태조 이성계의 4대조와 사도세자를 비롯한 추존왕 9분과 재임기간이 짧고 업적이 미약한 왕 6분과 영친왕이 영녕전에 모셔졌다. 조선의 임금 중 폐위된 광해군과 연산군을 당연히 제외된다. 문화재 이전에 전주이씨의 사당이기에 제례는 전주이씨 종친회에서 주관한다.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으로 나뉘어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간다고 믿었다.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매장하며 신주를 만들어 혼을 신주에 모신다.종묘는 유학을 통치기반으로 삼은 조선에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새왕조가 들어서면 정통성을 위해 종묘를 세우고 전 왕조의 종묘는 패망한 왕조와 운명을 같이했기 때문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고려의 종묘는 송악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일제가 종묘를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이 위대한 건축물이 남아있다. 종묘는 임진왜란 때 한번 완전히 소실되었다. 일제는 종묘를 파괴하지는 안았지만, 조선왕조의 종묘 앞을 유흥가로 만들어 집창촌이 되도록 하였다. 이 집창촌은 ‘종삼’이라는 이름으로 1968년까지 번성하다가 세운상가 개발과 함께 ‘나비작전’이라는 이름으로 30여년 만에 해체되었다. 종삼 집창촌은 오랫동안 소위 먹물들이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욕정을 풀어놓던 곳이었다. 어느 원로시인은 명동의 술과 종삼의 여자는 작가들에게 고향같은 곳이라고 말을 했단다. 세운상가는 군부정권의 상징적 도시개발 사업이었다. 일제는 미군의 공습에 대비해 화마를 끊기 위해 가로세로의 격자 공지를 조성하였는데 이를 소개지라 하였다. 세운상가는 이 소개지에 종로와 청계천을 잇는 최초의 주상복합 건축물이다. 이 소개지 덕분에 을지로, 퇴계로 등 지금 강북의 큰 길들이 쉽게 만들어졌다. 당시 군출신의 서울시장 김형옥이 세운상가 개발지 시찰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집창촌의 한 여인이 시장임을 몰라보고 놀다가라고 팔을 잡았고 이에 화가 난 김형옥이 종로구청에 들러 집창촌의 해체를 지시했다고 하는 설과, 세운상가의 개발로 정비가 필요했던 지역에 대한 계획적인 정비였다는 설이 나도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군출신 시장의 추진력 덕분에 종묘 앞의 집창촌은 빠른 시간 내에 해체되었고 지금의 종묘 앞 공원이 조성되기 전까지 공지로 있었다. 세운상가는 김수근이라는 대한민국 대표건축가의 작품이지만 군부정권의 기형적인 요구로 지어졌기 때문에 김수근 스스로 본인의 대표작품에 넣지 않았다. 종묘 주변은 많은 역사가 있다. 종묘의 한쪽 끝은 창경궁과 이어지는 북신문이 있다. 왕은 비공식적으로 이 문을 통해 종묘를 찾아 선대의 왕들과 많은 마음의 대화를 했었다. 창경궁과 창덕궁, 종묘는 붙어있었지만, 일제가 율곡로를 만들며 단절되었다. 현재 율곡로를 확장해 지하화하고 담장과 문을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빠르면 올해 이 복원된 보행로를 따라서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종묘 뒤쪽으로는 익선동과 이어진다. 피맛길이라 하면 종로의 뒷길만 생각하지만 익선동길도 창덕궁 창경궁에 따른 피맛길이다. 종묘의 담장을 따라 순라길이 있었다. 순라군이라 하여 지금의 방범순찰대 역할을 하던 군인들이 육모 방망이를 들고 순찰하던 길이다. 지금도 순라라는 이름은 근처 식당이나 카페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종묘의 정문 앞에는 임금이 행차시 물을 마시던 어정이 복원되었고 하마비가 있다. 하마비는 누구든 종묘 앞을 지날 때는 말이나 가마에서 내리라는 문구가 적혀있어 종묘를 얼마나 신성시 하였는지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종묘를 살펴보자. 종묘의 문은 외대문 이라고 하지만, 원래 창엽문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정면은 세 칸이며 가운데 칸은 신문이다. 왕의 신주를 모실 때만 개방하는 문이니 이 문이 열리기를 바라지 마시라. 궁궐의 문과 달리 세 칸의 높이가 같은 평대문이다. 가운데 신문을 높여 솟을대문으로 만들 수도 있었으나 사자의 집이라서 화려함은 없는 단아한 건물들로 축조되었다. 문을 들어서면 박석이 깔린 삼로가 보인다. 삼로중 중앙의 높은 길은 ‘신로’라 하여 산 사람이 딛지 않는 길이고 왼쪽은 ‘어로’라하여 임금의 길이다. 오른쪽은 ‘세자로’다. 신로는 지금도 관람객들에게 밟지 말라는 안내문이 있다. 어로와 세자로는 지금 주인이 없으니 밟아도 된다. 종묘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신로를 따라 이동하여 정전에 이르는 길이고 하나는 신을 모시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재궁과 전사청을 거쳐 정전의 동문을 통해 정전에 이르는 방식이다. 신로를 따라 이동하는 방법은 정전과 영녕전의 남문인 신문이 개방되지 않아 평소 불가능하다.두 번째 길을 따라 이동하며 살펴보면 들어가며 좌우에 연못이 있다. 연못의 주 용도는 소방수로 쓰기위해 만들어지나 때에 따라서 정원의 일부로 보는 연못이 되기도 한다. 오른쪽의 연못은 네모난 연못의 가운데 둥근 섬이 있고 섬에는 소나무가 아닌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죽으면 향기만 남는다는 뜻과 제당에 향이 쓰여서 향나무를 심었다 한다. 실제로 다른 향교나 사당을 가도 다른 장소에 비해 향나무가 많다. 지방의 향교나 서원에는 일제때 일본의 향나무인 가이스카 향나무를 심었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아직도 가이스카 향나무가 많이 보인다. 네모난 연못은 천원지방설에 따라 땅을 뜻하며 둥근 섬은 하늘을 나타내니 땅이 하늘을 품은 연못이다. 못 가운데 하늘은 사후의 세계라 향나무를 심었다고도 한다.우측에 향대청과 공민왕 사당이 자리잡고 있고 향대청에는 망묘루가 있다. 루라는 글자가 붙은 건물은 오늘날 피로티 구조와 같이 기둥으로 받혀진 떠있는 마루의 구조다. 주로 전망을 하며 쉬거나 연회를 하는 장소다. 경복궁의 경회루가 대표적이고 남원 광한루 진주 촉석루도 많이 알려져 있다. 망묘루는 건물의 형식이나 위계를 보며 정말 왕이 종묘를 보던 공간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향대청은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고 예전에는 근처에 종묘를 지키는 군인들이 머무는 건물도 있었다 한다. 현재 향대청에는 정전안에 모셔진 신위를 재현한 공간과 설명이 있다. 신주는 혼이 머무르는 집과 같다. 밤나무로 만들며 홀을 만들어 혼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공민왕 신전이 이곳에 있는 것에 대하여 전 왕조에 대한 예로 마지막 왕을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일인의 손에 있던 공민왕의 영정이 반납되어 적정한 장소를 찾지 못하다 종묘의 한쪽에 모셨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다. 삼로를 따라가다가 길이 갈라진다. 신로는 없이 어로만 있는 길을 따라가면 재궁과 이어지고 신로를 따라가면 정전과 영년전의 정문에 이른다. 재궁은 임금과 세자가 제사전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며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이곳은 세동의 건물로 이루어졌는데 그나마 왕과 세자가 머무르는 공간이라 격을 조금 높였다. 향대청은 막새없이 앍매흙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나 재궁의 건물은 막새기와를 사용하였고 박공의 측면에는 풍판까지 설치되어있다. 세 건물 중 중앙에 있는 건물은 임금이 머무르는 어재실이다. 이곳에는 왕의 밀랍인형과 용교의라는 의자가 놓여있다. 이 밀랍인형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고종이나 순종이다. 이유는 9장복이 아닌 12장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황제는 12장복을 입고 왕은 9장복을 입었는데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임을 선포하였고 최초로 12장복을 입었기 때문이다. 12장복은 9장복에 비하여 화려하며 면류관에 구슬을 꿰어 단 유의 수가 12줄이다. 9장복은 류의 수가 아홉줄이다. 어재실의 한옆에는 무쇠로 된 큰 솥단지같은 것이 있는데 이름이 ‘드무’라하며 소방수를 담아두었던 단지다. 왼쪽에는 어 목욕청 건물이 있는데 목욕재개를 하는 곳이다. 왕이 어떻게 목욕을 하였는지 기록이 없어 욕조를 만들어 전시해놓고 있다. 재궁은 정전의 동측 마당으로 이어지고 그 뒤로 전사청과 제정이 있다. 전사청은 제수 음식을 준비하던 곳으로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로 건물이 앉아있다. 당연히 제기고와 찬간이 갖추어져 있고 생물을 도살하는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제례의 음식은 익히지 않은 생물을 올린다. 고기는 소와 양과 돼지고기를 생것으로 올리는데 전사청까지 살아있는 제수용 동물이 들어와 전사청에서 검사를 한뒤 도살되었다. 전사청 앞에 단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찬막단이라 하여 여러 제수 음식을 검사하는 단이고 하나는 성생위라 하여 살아있는 소 등의 제수용 생물을 검사하던 단이다.왕가에서는 소, 양, 돼지를 올렸고 양가에서는 양과 돼지를 올렸으며 민가에서는 돼지만 올렸다. 요즘 가정의 제사에는 소고기 산적을 올리는데 조상님을 왕의 대우를 하는 것인 셈이다. 전사청 옆에 담장으로 둘러싸이고 문를 통해 통제되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우물이 제정으로 제사때 쓰는 우물물이니 신성시되고 보호되었다.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 되었다. 임진 왜란때 종묘의 건물들이 모두 불탔지만, 왕들의 신위는 제일 먼저 왕과 함께 피신되었다. 제사에 쓰이는 제기는 가져갈 수 없어 포장을 해서 이 제정에 숨기고 피난을 갔다고 한다. 배례를 마친 왕과 신하들은 동문을 통해 정전에 이른다. 이 정전 건물이 종묘의 백미다. 동문을 지나면 월대 위로 월랑이 보이고 이 월랑의 기둥 사이로 정전건물 전체가 보인다. 월랑은 정전에 없던 형식을 태종이 만들었는데 마치 학의 날개같이 정전건물은 한층 멋지게 보이게 한다. 월대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하는 장치다.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를 오르면 높은 축위의 공간이 불국이듯 월대는 신의 영역을 상징적으로 구분한다. 월대의 중앙에서 살짝 비켜서 부알판위가 있는데 이는 삼년상을 모시고 신주를 모실 때 정전에 들어가기 전 신주를 임시로 모시는 곳이다. 백미터가 넘는 월대와 정전 건물은 담장 안 어느 곳 에서도 온전히 한눈에 담을 수 없다. 상하월대와 처마, 용마루의 수평선은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킨다. 수평선이 갖는 차분함은 경건함이 절로 우러나게 한다. 열아홉 칸을 구성하는 열주도 수직선이 아니고 수평선의 구성 요소로 보인다. 공간의 구성요소와 규모는 신전으로서 경건함을 갖기에 최적으로 디자인 되었다. 만약 전면의 신문과 담장이 더 물러나서 그곳에서 정전이나 월대가 한눈에 쉽게 들어왔다면 또 다른 분위기였을 것이다.원래는 정전이 석실 5간 허실 두 간 합이 7실이었다. 유교의 법식에 4대조를 모시니 태조의 4대조와 이성계를 모시기 위해 다섯 간을 만들도 예비로 두간을 만들었다. 이전의 풍습을 따르면 4대조를 모시니 왕이 한 명 죽게 되면 제일 윗대의 한 분은 신위를 땅에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종이 승하하자 세종은 차마 땅에 묻지 못하고 중국 송대의 별묘기록에 따라 영녕전을 지어 태조의 4대 추존왕을 한 명씩 영년전에 모시고 정조를 정전에 모셨다. 영년전은 4대조가 넘어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묘였으며, 정전은 제사를 지내는 제묘였다. 연산군에 이르러 성종이 승하하자 다시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게 되었고 태조를 영년전으로 모셔야 했으나 시조라 하여 불천위로 정전에 계속 모시고 정종을 영년전으로 모시게 된다. 이때부터 공적이 있는 왕은 계속 정전에 모시고 그렇지 못한 왕은 영년전으로 모셨다. 불천위가 있으면 원래는 그 이상의 공적이 있어야 다시 불천위로 모실 수 있었으나 자신의 부친 공적을 높여 불천위로 만드는 왕이 많아졌고 후대에는 그 공적이 미미한 왕조차도 불천위로 정전에 남았다. 명종대에 정전을 11칸으로 증축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종묘가 모두 소실되었다. 이후 선조와 광해군때 종묘가 정전 11간에 양 협실 두 간, 영녕전 네 간에 양 협실 세 칸씩으로 복원 되었다. 이후 정전은 동쪽으로 두 차례 네 간씩 증축 되었고 영녕전은 동서 양측으로 증축되어 최종은 현종때 정전 19간 영녕전 16간으로 완성되었다. 증축이 얼마나 정교하게 잘 되었는지 전문가들조차 증축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영녕전은 불천위가 아닌 왕과 추존왕을 모신 곳으로 효심, 또는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별묘다. 원래는 현 왕의 4대조까지만 모시고 나면 인연이 끝났다고 보고 땅에 묻는 것이나 불천위와 이 별묘는 조선왕조의 왕들을 영원히 모시도록 만들었다. 조선왕조가 세계에 유래 없는 긴 시간을 유지한 것에는 이곳 종묘의 공이 크지 않을까 싶다. 5월과 11월의 첫주에는 종묘제례가 시연된다. 이때 연주되는 제례악 역시 세종 때 만들어진 우리 음악으로 서양의 음악인들에게도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이시기를 맞추어 가면 건축물로서 세계문화유산과 무형의 세계문화유산을 함께 만날 수 있으니 그때 가 보시길 추천한다. 글 사진: 최세일 한건축 대표
  • “국가의 주인, 왕 아닌 나”… 5000년 역사 첫 개인 주권시대 열어

    “국가의 주인, 왕 아닌 나”… 5000년 역사 첫 개인 주권시대 열어

    세계 최초로 헌법에 ‘민주공화정’ 명기 세계 대공황 후 진보 색채… 파업권 도입 상하이 활동가 중심 파벌주의 반면교사로 민족·세계시민 사이 정체성 공존도 과제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으로 표출된 민족국가와 국민주권국가 수립 욕구를 처음으로 구체화했고 국내외 여러 정부를 하나로 묶어 독립운동 대표체로 거듭났다. 이것만으로도 임정은 대한민국의 시원(始原)으로 정통성을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은 11일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에 준 영향과 과제, 의미를 들여다봤다. 임정은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명시한 동시에 새 나라가 대한제국(조선)을 계승하면서도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닌 인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간간이 이어지던 ‘복벽주의’(나라를 되찾아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 움직임을 완전히 단절시켰다.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국가에서 살게 된 것은 임정의 수립이 결정적이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11일 “임정 설립과 이후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는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정으로 정치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소개했다.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동녕(1869~1940)과 이광수(1892~1950) 등은 우리 역사 최초의 의회인 임시의정원을 꾸리고 첫 번째 회의를 가졌다. 밤을 새워 토의하던 중 신석우(1894∼1953)가 “임정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고종 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에서 ‘대한’을, 공화제 국가로 태어난 중화민국에서 ‘민국’을 가져왔다. 이에 여운형(1886~1947)이 “이 나라가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망했는데 또다시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묻자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 보자”고 재치 있게 답했다. 의원 다수가 이에 공감해 국호가 정해졌다. 다음날인 11일 이들은 한국사 최초의 민주공화정 국가 건설을 공식화한 뒤 임시헌장(1차 헌법)을 반포했다. 새 헌법은 내용이 너무 간략해 선언적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방향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임정은 민주공화제와 대의제를 채택하고 평등권과 자유권, 참정권을 인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했다. ‘소유의 자유’를 명시해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생명형(사형)과 신체형(태형)을 폐지해 인도주의 원칙도 명시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헌법에 ‘민주공화정’을 명기한 것은 임정이 세계 최초였다”고 설명했다. 세계 대공황(1929~1933)을 통해 제어되지 않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경험하고 1942년 조선민족혁명당 김원봉(1898~1958) 등이 임정에 가담하면서 임정은 민주공화정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진보적 색채를 대거 가미했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파업권 등이 이때 도입됐다. 학계에서는 3·1운동으로 임정이 수립된 것을 두고 ‘5000년 역사의 최대 사건’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한반도에 민주공화정을 세우는 토대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임정은 우리에게 숙제도 남겼다. 1919년 9월 11일 임정은 여러 정치세력을 한데 모아 통합정부로 태어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하이 독립운동가들이 주도권을 쥐고자 다른 세력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갈등을 빚었다. 만약 이때 모든 세력을 끌어안아 완전체가 됐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지금과 달라졌을 수 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TV에서 흔히 보는 상하이 임정 기념관은 ‘보경리 청사’로 1926~1932년에 썼던 곳이다. 아직 1919년 4월에 입주한 첫 번째 청사를 찾지 못했다.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대한민국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기에 김구의 혈통적 민족 개념에 대한 발전적 계승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족주의에 내재된 권위주의와 인종주의까지 인정해서는 안 된다. ‘민족과 세계 시민 사이의 상반된 정체성을 어떻게 공존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새로운 100년으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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