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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날 한곳서 태어난 한 쌍의 운명은?

    최근 중국에서 한날, 한 공간에서 태어난 두 사람이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이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면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6일 결혼식을 올린 신랑 자오즈이(焦志毅)씨와 신부 왕징징(王敬京)씨의 부모는 1980년 두 사람이 태어날 무렵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시에 살았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왕씨의 어머니가 인근 산부인과의 한 병실에 입원을 했고, 2인실이었던 그 병실에는 자오씨의 어머니가 이미 입원해 있었다. 11 월 9일, 오전 10시경 왕씨가 태어났고 왕씨의 어머니가 축하를 받기도 전 자오씨가 태어나 그 병실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들은 한 병실을 함께 쓰며 아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일주일 후 서로의 행복을 빌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두 집안은 82년과 92년에 각각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서로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그리고 지난 2000년 왕씨가 허베이대학(河北大學) 일어과에, 자오씨가 상아이이공대학(上海理功大學) 일어경제무역과에 입학한 후 2005년 한 중매쟁이의 소개로 선을 보기 전까지는 만날 가능성이 없는 남남이었다. 신랑 자오씨는 “선을 보기 전 생일이 같은 줄은 알았지만 태어나자마자 같은 방에 있었다는 사실까지는 몰랐다.”며 “고향 이야기를 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고 전공까지 같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이어 “처음에는 그저 신기할 뿐이었지만 점점 마음이 끌렸다.”며 “강한 자립심과 선량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며 웃으며 말했다. 신부 왕씨의 아버지는 “두 아이가 한 방에서 함께 태어났을 때에는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이뤄졌다.”며 “결국 두 집이 사돈의 인연을 맺는다.”고 기뻐했다. 이어 “지금까지 한번도 만나지 못하다가 이렇게 큰 인연을 맺게 돼 놀랍다.”며 “앞으로 두 사람의 생일이 더욱 시끌벅적해질 듯 하다.”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80대노인이 ‘사랑의 도피’ 행각 벌인 속사정

    80대 노인이 어느날 갑자기 가출해버린 까닭은? 중국 대륙에 한 80대 초반의 할아버지가 별다른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갑작스레 집을 나가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가출 사건’의 주인공은 중국 중부 장시(江西)성 잉탄(鷹潭)시에서 살고 있는 왕(王·82)모씨.그는 최근 아들에게 아무런 이유도 말하지 않고 갑자기 집을 나가는 통에 아들 왕씨가 공안(경찰)당국에 실종 신고를 내는 통에 주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고 중경시보(重慶時報)가 14일 보도했다. 중경시보에 따르면 사연은 이렇다.지난 12일 오전 7시쯤 아들 왕씨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버지에게 아침 인사를 하러 아버지 방으로 갔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아버지가 ‘흔적’도 남기지 않은채 가뭇없이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화들짝 놀랐다. 이에 왕씨는 곧바로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걸어 통화를 시도했다.그때 받아야 할 아버지 왕씨가 받지 않고 60대 중반의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그를 또다시 긴장시켰다. 그녀는 “당신 아버지와 함께 1시간 뒤에 충칭(重慶)직할시로 기차여행을 떠날 예정”이라며 “한 1주일 푹 쉬다가 집으로 돌아갈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들 왕씨는 아버지가 어떤 여인에게 납치된 것으로 판단,즉각 철도 공안(경찰)에 연락해 아버지를 구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12일 오전 10시 30분쯤,중국 남부 푸젠(福建)성 샤먼(厦門)발 충칭행 K336호 열차가 막 출발한 직후인 철도 승무원 전용 열차안.한 철도 공안원이 심각하게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상부로부터 걸려온 그 전화는 “한 80대 할아버지가 60대 중반의 여인에게 납치돼 충칭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란 철도 공안원은 1호칸부터 샅샅이 톺아나가며 납치범이 있는 지를 살펴보았다.그러던중 7호칸에서 한 백발의 할아버지와 60대 중반의 여인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전화로 연락받은 납치범 여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철도공안이 조용히 다가가 이들을 불러 정밀 조사한 결과 이 여인은 할아버지의 납지범이 아니라,바로 할아버지의 애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철도 공안원에 따르면 원래 할아버지 왕씨는 양(楊·64)모 여인과 서로 사귀고 있었다.그런데 아들 왕씨가 이들 두사람이 교제하는 것을 워낙 심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이들 두사람은 양씨의 고향인 충칭으로 ‘사랑의 도피 행각’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철도 공안원의 연락을 받고 득달같이 달려온 아들 왕씨는 아버지와 여인의 사랑이 그렇게 깊을 줄은 몰랐다며 교제를 허락하는 한편 결혼하더라도 반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80대 할아버지지의 ‘사랑의 도피 행각’은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 셈이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3) 명과 후금의 정세 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33) 명과 후금의 정세 Ⅰ

    조선이 모문룡의 작폐에 시달리고 있던 정묘호란 무렵 대륙의 정세는 어떠했는가? 1621년 누르하치의 후금군은 요동 전체를 장악했다. 후금은 요동 벌의 중심인 심양(瀋陽)으로 천도하여 산해관까지 넘볼 기세였다. 명은 분명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명의 내정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당쟁은 격화되었고 환관들은 날뛰고 있었다. ●격화되는 黨爭 1620년 7월 명의 만력제(神宗)가 죽었다. 제위에 오른 지 48년만이었다. 장남 주상락(朱常洛:1582∼1620)이 즉위하여 연호를 태창(泰昌)으로 고쳤다. 길고 긴 세월 동안 만력제의 암우(暗愚)와 태정(怠政)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태창제(光宗)에게 기대를 걸었다. 태창제는 즉위 직후 내탕(內帑)에서 100만냥의 은을 풀어 누르하치를 방어하고 있는 요동의 장사들에게 지급하고, 악명 높았던 광세사(鑛稅使) 등의 파견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조야는 감동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태창제는 즉위한 지 한달 만에 급사하고 말았다. 다시 태창제의 아들 주유교(朱由校)가 즉위하니 그가 곧 천계제(天啓帝) 희종(熹宗)이다. 만력 중반부터 천계 연간까지 명 조정의 당쟁은 격렬했다. 비운의 황제였던 태창제의 존재와 급사는 당쟁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만력제는 정비(正妃)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었고 후궁들에게서 얻은 5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 주상락은 왕(王)씨 성을 지닌 궁녀의 몸에서 태어났는데, 만력제는 왕씨와 주상락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만력제는 정귀비(鄭貴妃)와의 사이에서 난 삼남 주상순(朱常洵)을 총애했다. 그는 주상순을 황태자로 세우려고 했다. 신료들은 ‘장유(長幼)의 순서를 무시하는 것은 불가하다.’며 격렬히 반발했다. 이미 언급했지만 당시 명 예부가,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해 달라는 조선의 요청을 계속 거부한 것도 이 문제와 연관이 있었다.‘차남’ 광해군을 승인할 경우, 만력제가 ‘삼남’ 주상순을 책립(冊立)하는 것에 반대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상락의 황태자 책립은 19년 동안이나 미루어졌고, 그는 1601년에야 비로소 황태자가 되었다. 황태자가 된 이후에도 그는 파란의 한 가운데 있었다.1615년 장차(張差)라는 괴한이 주상락의 거처에 몽둥이를 들고 난입하여 그를 위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벌어졌다. 황태자를 해치려 했던 엄청난 사건임에도 재상 방종철(方從哲) 등은 사건의 전말을 철저히 규명하려 들지 않았다. 사건의 배후에 정귀비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동림당(東林黨) 계열의 신료들은 방종철 등을 탄핵했다. 이 사건을 ‘정격안(檄案)’이라고 한다.‘안(案)’이란 사건을 가리킨다. 태창제의 급사 원인을 둘러싼 당론(黨論)도 치열했다. 태창제는 병석에 누운 뒤, 이가작(李可灼)이란 관인이 바친 붉은 환약(紅丸)을 복용했다. 홍환 복용 후 황제가 급사하자 다시 치열한 논란이 빚어졌다. 동림당 관인들은 시약(侍藥) 업무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방종철을 공격했고, 방종철을 옹호하는 관인들은 황제의 죽음이 홍환과는 관계가 없다고 맞섰다.1625년(천계 5)까지 이어진 치열한 논란을 ‘홍환안(紅丸案)’이라 부른다. 태창제 사후, 그가 총애하던 후궁 선시(選侍) 이(李)씨는 황자 주유교를 자신의 거처인 건청궁에 감추었다. 주유교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빌미로 환관 위충현(魏忠賢)과 연결하여 조정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동림당 계열은 그 같은 기도에 반발하여 주유교를 이씨에게서 떼어내고, 이씨를 별궁으로 옮기게 했다. 이 과정에서 또한 격렬한 정쟁이 빚어졌는데 그것이 ‘이궁안(移宮案)’이다. ●東林黨과 奄黨 ‘정격안’,‘홍환안’,‘이궁안’을 아울러 삼안(三案)이라고 한다.‘삼안’을 놓고 명 조정의 관료들은 수많은 장주(章奏)를 올려 논쟁했고 그 과정에서 당쟁은 격화되었다. 천계 연간(1621∼1627) 명 조정에는 절당(浙黨), 초당(楚黨), 선당(宣黨), 제당(齊黨), 곤당(昆黨) 등 여러 당파가 있었지만 당쟁의 중심은 동림당과 엄당이었다. 동림당은 만력 초기 재상이었던 장거정(張居正)의 전횡에 반대, 도전했던 청의파(淸議派) 관료인 고헌성(顧憲成), 추원표(鄒元標), 조남성(趙南星)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장거정이 죽은 뒤에도 내각과 환관들의 비정을 비판했다. 동림당은 강소성(江蘇省) 무석(無錫)에 있는 동림서원(東林書院)을 거점으로 삼았다. 주자학 강학(講學)을 통해 자파 세력을 결집하는 한편, 조정의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했다. 그들이 황태자 책립, 인사, 요동 방어 등 다양한 문제를 놓고 내각이나 환관들과 대립하게 되면서 당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었다. 엄당은 환관들의 무리를 가리킨다. 일본의 동양사학자 미타무라 다이스케(三田村泰助)는 환관을 가리켜 ‘만들어진 제3의 성(性)’이라고 표현했다. 환관 가운데는 종이를 발명한 후한(後漢)의 채륜(蔡倫)이나 명 초기 아프리카까지 이르는 대원정(大遠征)을 주도했던 정화(鄭和)처럼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인물도 있었다. 하지만 환관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다. 환관이 맡은 일은 천한 것이었지만 때로 천자나 후궁과의 연결을 통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궁극에는 국가의 명운마저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른 자들도 나타났다. 명대에 특히 환관의 폐해가 심했다. 왕진(王振), 유근(劉瑾), 위충현 등이 대표적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삼안’처럼 궁정의 문제가 정쟁의 현안이 될 경우, 환관들이 그 과정에 개입하고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높았다. 천계 연간 위충현이 엄당을 이끌며 조야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은 유명하다. ●끔찍한 魏忠賢의 시대 위충현(?∼1627)은 하북성(河北省) 숙녕현(肅寧縣) 출신이었다. 젊은 시절 무뢰배였던 그는 도박에 모든 것을 탕진한 뒤, 스스로 환관이 되었다. 본래 이진충(李進忠)이었던 이름도 위충현으로 바꾸었다. 천계제가 즉위하면서 위충현의 권세는 날로 높아졌다.1621년 사례감(司禮監)의 병필태감(秉筆太監)이 되었다. 환관들의 수장 격이었다. 그는 황제 직속의 비밀 경찰인 동창(東廠)의 책임자도 겸했다. 1624년, 동림당원 양련(楊漣)은 위충현을 탄핵했다. 그에게 스물 네 가지의 잘못이 있다고 했다. 위충현은 동창의 책임을 사임하는 등 일단 몸을 낮춰 위기를 벗어났다. 이윽고 천계제의 신임이 회복되자 보복이 시작되었다. 위충현은 1625년 동림당의 핵심 인물인 양련, 좌광두(左光斗), 원화중(袁化中), 위대중(魏大中), 주조서(周朝瑞), 고대장(顧大章) 등 6인을 ‘수뢰’ 혐의로 탄핵했고, 곧 이들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졌다. 위충현의 심복 허현순(許顯純)은 이들에게 상상을 초월한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고문을 못 이겨 고대장은 자살했다. 차라리 그가 행복했다. 나머지 5명의 시신은 전부 문드러졌다. 위충현은 1626년에도 옥사를 일으켰다. 고반룡(高攀龍), 주순창(周順昌), 황존소(黃尊素) 등 7명에게 체포령이 떨어졌다. 고반룡은 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고, 나머지 6명은 예의 혹형을 받았다. 환관들이 금의위(錦衣衛)에서 행한 고문은 잔혹했다. 끌려온 자들에게 5가지의 도구를 이용하여 혹형을 가한 후 가죽을 벗기기도 했다고 한다. 주순창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위충현을 비판하다가 이를 모두 뽑혔다. 동림당을 탄압하면서 위충현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 배경에는 천계제의 방임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림서원을 비롯한 동림당의 근거지는 파괴되었고, 각 지역에는 위충현을 모시는 생사당(生祠堂)이 세워졌다. 모문룡도 가도에 위충현을 기리는 생사당을 세웠다. 위충현의 전횡에 절망한 관료들은 사직했고, 변방의 지휘관들 상당수는 누르하치에게 귀순했다. 누르하치의 철기(鐵騎)는 달려오고 있는데 명은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한명기명지대 사학과 교수
  • 中, 이번엔 가짜 달걀까지

    中, 이번엔 가짜 달걀까지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내 식품가격이 뛰면서 흰자위, 노른자위, 껍질까지 가짜인 ‘짝퉁 달걀’이 중국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현지 정저우일보가 14일 보도했다. 이 가짜 달걀은 천연 성분은 하나도 없이 화학약품을 합성해 만들어져 장기 섭취하면 기억력 쇠퇴, 치매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제조법은 식품첨가제 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왕(王)모씨의 폭로를 통해 알려졌다. 해조산 나트륨 수용액(●사진1)을 고르게 반죽해 진득진득한 가짜 흰자위를 만든다(●〃2). 소량의 레몬색 식품색소를 첨가한 액체를 용기에 넣고 염화칼슘 액체에 용해시키면 가짜 노른자위를 만들 수 있다.(●〃3) 이후 가짜 흰자위(●〃4)로 싸고 탄산칼슘으로 만든 가짜 달걀껍질에 밀어넣으면 5분만에 가짜 달걀이 완성된다. 이런 가짜 계란 1㎏을 제조하는 데 드는 원가는 0.55위안(한화 68원). 현재 중국에서 시판되는 계란 1㎏ 가격이 6.5위안(800원)이므로 10배 이상의 폭리가 가능해진다. 정저우 시내에서만 하루 최소 3000∼4000개의 가짜 계란이 쏟아지고 있다고 왕씨는 전했다. jj@seoul.co.kr
  • 남자친구 찾아 천리 길 떠나는 70대 할머니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천리길은 그다지 멀지는 않죠.” 중국 대륙에 한 70대 할머니가 60대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천리길을 떠나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동방금보(東方今報)에 따르면 ‘화제의 인물’은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중산(中山)시에 살고 있는 정차이진(鄭彩珍·70) 할머니이다.그녀는 어릴 때 배운 ‘곰의 웅담을 절묘하게 빼내는 기술’이 워낙 출중해 돈벌이가 좋아 셈평도 펴이고 남편과의 금실도 꽤나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잘 나가던 정씨 부부에게 불행의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지난 1988년 정씨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통에 얼굴을 많이 다쳐 망가지고 왼쪽 팔마저 잃은 장애인이 됐다.이 사품에 돈이 많은 남편은 자연스레 바깥 쪽으로 눈을 돌려 외박이 잦아지는 등 정씨의 품을 떠나버렸다. 이에 정씨도 남편과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으나 결혼한지 20년이 지난 만큼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없었다.하루하루가 재미도 없고 심드렁해져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러던 중 2004년 8월 어느날.정씨의 눈앞에 ‘왕루이우(王瑞武)’라는 헌헌장부가 나타났다.왕씨의 키꼴이 껑충하고 부드럽고 세련된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녀는 다시 생활의 활력이 샘 솟았다.당시 왕씨는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정씨는 은근히 그에게 접근했다.그녀는 “그는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특히 나의 추해진 내 얼굴 모습도 결코 싫어하지 않아 나를 감동시켰다.”고 털어놨다. 이들이 사귄지 얼마되지 않아 왕씨는 광둥성 중산시를 떠나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로 홀연히 떠나는 바람에 두 사람의 연락은 끊어져버렸다. 해서 정씨 할머니는 남자친구를 찾기 위해 허난성 정저우로 출발했다.그것도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고 두 발로 걸어서….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왕씨의 옛날 전화번호.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면 ‘없는 번호이니 확인하고 다시 걸어라.’는 메시지만 되돌아왔다. 정씨 할머니는 “남자친구를 만나든 못만나든 무조건 정저우로 가겠다.”며 “정저우로 찾아가면 분명히 만날 것을 확신한다”며 기대감이 넘쳤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명품옷을 입고 자가용 모는 아줌마가 가정부를?”

    명품옷을 입고 자가용 모는 사람이 가정부를 하겠다면?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부일을 구하는 한 돈많은 기혼 여성의 이야기다.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에서 발간되는 일간지 화상천바오(華商晨報)는 19일 명품옷에 자가용을 몰고 가정부 소개소를 찾아가 구직을 하는 왕(王)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선양(瀋陽)에 사는 30살의 이 여성은 화목한 가정의 주부다. 남편은 의류사업을 하고 5살난 딸이 하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계일을 하던 그녀는 임신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만 힘썼다. 그러나 아이도 크고 점점 집에서의 생활에 싫증을 느낀 그녀는 가정부 소개소를 찾아가 구직을 원했다. 그녀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람들과 교류가 하고 싶다.”며 집안일도 문제없다고 밝혔다. 신문은 가정부 소개소 책임자의 말을 인용해 “명품 옷에… 자가용에…이런 일을 할 사람으로 안 보인다.”며 “누가 감히 고용을 하겠냐.”고 전했다. 소개소 책임자의 말대로 그녀는 회사 청소원과 가정부 모집에서 차례로 “당신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쓴잔을 마셨다. 자신이 가정부도 못된다는 생각에 화가 난 왕씨는 다른 소개소를 찾아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때는 너무 막연하게 일을 찾았던 것 같다.” 며 “현재는 보험을 하고 있다. 벌이에 상관없이 매일 일이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선양시 정신위생센터의 부원장 왕슈전(王秀珍)은 “고소득층의 기혼 여성들이 가정부를 하는 것은 가정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나가 자아를 찾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신문 조사에 따르면 선양에서 일명 ‘부자집 마나님’들이 가정부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나우뉴스 신청미 기자 qingme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야생인간? 깊은 산속서 풀을 먹고 사는 中여인

    “뭐요,‘야생인간’이 나타났다구요?” 중국 대륙에 전설 속의 인물로 널리 알려진 ‘야생 인간’이 등장,화제를 모으고 있다. 중국 동중부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 베이룬(北侖)구 궈쥐(郭巨)촌 주민 왕(王·여)모씨는 최근 귤나무 밭 가지치기 작업을 하기 위해 산에 들어갔다가 전설 속의 ‘야생인간’을 만나 혼비백산했다고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이 12일 보도했다.하지만 베이룬구 공안(경찰)당국이 정밀 수사를 한 결과 이 ‘야생인간’은 직업도 없고 돈도 없다보니 구걸에 나섰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못해 산으로 들어간 ‘여자 거지’인 것으로 드러나 또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고 이 인터넷신문은 덧붙였다. ‘여자 거지’가 ‘야생인간’으로 둔갑한 사연은 이렇다.이달 초 베이룬구 궈쥐춘 주민 왕씨 아주머니가 심산유곡에 있는 귤나무 밭에 가지치기를 하러 갔다.첩첩산중에 들어선 순간,갑자기 겁이 난 상황에서 그녀는 멀리서 봉두난발에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여인이 풀뿌리를 씹으며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귤나무 가지치는 것도 잊어버리고 곧바로 되돌아 내려와 베이룬구 공안당국에 신고를 했다.전설 속의 ‘야생인간’을 만났다고…. 왕씨는 공안당국에 신고하는데 그치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설속의 ‘야생인간’을 봤다.”며 소문을 퍼뜨렸다.이 소문은 삽시간에 궈쥐춘은 물론 베이룬구 전체로 일파만파 퍼져 나가며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베이룬구 공안당국은 즉각 수사할 채비를 갖췄다.베이룬구 공안당국측은 “21세기 첨단 과학시대에 무슨 전설 속의 ‘야생인간’이 있겠느냐.”며 미심쩍었지만,주민들에게 황당한 소문이 퍼져 민심이 흉흉해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는 탓에 즉각 수사에 들어갔다. 베이룬구 공안당국은 왕씨 아주머니가 ‘야생인간’을 보았다는 첩첩산중 귤나무 밭으로 가 샅샅이 조사한 결과 그 ‘야생인간’을 찾아냈다.공안당국 조사결과 ‘야생인간’은 중국 동북부 허베이(河北)성 출신의 장(張·여·36)모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장씨는 돈도 없고 일할 곳도 없어 구걸에 나섰으나 이 마저도 여의치 않아 산속을 들어갔다고.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를 캐먹으며 살다보니 전설속의 ‘야생인간’처럼 보인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야생인간? 깊은 산속서 풀을 먹고 사는 여인

    “뭐요,‘야생인간’이 나타났다구요?” 중국 대륙에 전설 속의 인물로 널리 알려진 ‘야생 인간’이 등장,화제를 모으고 있다. 중국 동중부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 베이룬(北侖)구 궈쥐(郭巨)촌 주민 왕(王·여)모씨는 최근 귤나무 밭 가지치기 작업을 하기 위해 산에 들어갔다가 전설 속의 ‘야생인간’을 만나 혼비백산했다고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이 12일 보도했다.하지만 베이룬구 공안(경찰)당국이 정밀 수사를 한 결과 이 ‘야생인간’은 직업도 없고 돈도 없다보니 구걸에 나섰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못해 산으로 들어간 ‘여자 거지’인 것으로 드러나 또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고 이 인터넷신문은 덧붙였다. ‘여자 거지’가 ‘야생인간’으로 둔갑한 사연은 이렇다.이달 초 베이룬구 궈쥐춘 주민 왕씨 아주머니가 심산유곡에 있는 귤나무 밭에 가지치기를 하러 갔다.첩첩산중에 들어선 순간,갑자기 겁이 난 상황에서 그녀는 멀리서 봉두난발에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여인이 풀뿌리를 씹으며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귤나무 가지치는 것도 잊어버리고 곧바로 되돌아 내려와 베이룬구 공안당국에 신고를 했다.전설 속의 ‘야생인간’을 만났다고…. 왕씨는 공안당국에 신고하는데 그치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설속의 ‘야생인간’을 봤다.”며 소문을 퍼뜨렸다.이 소문은 삽시간에 궈쥐춘은 물론 베이룬구 전체로 일파만파 퍼져 나가며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베이룬구 공안당국은 즉각 수사할 채비를 갖췄다.베이룬구 공안당국측은 “21세기 첨단 과학시대에 무슨 전설 속의 ‘야생인간’이 있겠느냐.”며 미심쩍었지만,주민들에게 황당한 소문이 퍼져 민심이 흉흉해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는 탓에 즉각 수사에 들어갔다. 베이룬구 공안당국은 왕씨 아주머니가 ‘야생인간’을 보았다는 첩첩산중 귤나무 밭으로 가 샅샅이 조사한 결과 그 ‘야생인간’을 찾아냈다.공안당국 조사결과 ‘야생인간’은 중국 동북부 허베이(河北)성 출신의 장(張·여·36)모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장씨는 돈도 없고 일할 곳도 없어 구걸에 나섰으나 이 마저도 여의치 않아 산속을 들어갔다고.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를 캐먹으며 살다보니 전설속의 ‘야생인간’처럼 보인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30) 500년만에 복원된 개성 영통사

    [종교건축 이야기] (30) 500년만에 복원된 개성 영통사

    남과 북이 공동으로 복원 불사에 나서 2005년 10월 원래의 모습을 되살려 놓은 고려 사찰 개성 영통사(개성시 개풍군 영남면 용흥리). 고려 태조 왕건의 조상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왕씨의 발상지이자, 대각국사 의천이 출가해 35년간 주석하며 한국 천태종을 개창한 유서깊은 고찰이다. 고려 현종 18년(1027년)에 창건되어 고려 왕실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받아 융성했으나 16세기쯤 소실되어 이름만 전하던 사찰. 천태종 개창자인 대각국사 비와 당간지주, 그리고 세 개의 탑만 덩그맣게 남아있던 것을 남북이 힘을 모아 29개의 전각을 원 모습대로 세워놓았다.500여년간 불교계에선 그저 ‘꿈의 성지’로 남아있었던 폐사 영통사. 하지만 이젠 웅장한 제 모습을 어엿하게 되찾아 일반 신도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조선 중기의 기록들에 따르면 고려시대 불교가 한창 성할 무렵 개성 성내에는 300여개의 사찰이 있었으며 절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것 만도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태조 왕건 자신도 고려를 세운 뒤 궁궐 주변과 송악산 기슭에 25개의 절을 지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 가운데 갓을 쓴 5개의 산 봉우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오관산(五冠山) 아래, 영통사가 자리잡은 영통골은 예로부터 절경과 길지로 이름 높았다. ‘큰 골짜기’란 뜻의 마하갑으로 통했던 영통골에서 왕건의 할아버지가 출생했다. 승려가 된 증조 할아버지도 이곳에 작은 절을 짓고 살았는데 왕건이 고려를 세운 뒤 절을 중창해 이름을 숭복원이라 고쳐지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 왕실은 숭복원을 왕의 원당으로 삼아 왕건의 아버지인 세조 왕륭과 태조 왕건, 문종, 인종, 명종 등 역대 왕의 초상을 모셔놓고 정기적으로 참배했다. 지금 영통사란 이름의 사찰은 고려 현종기인 1027년 그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전한다. 왕실 사찰의 위상에 더해 영통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1세기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하면서부터. 대각국사 의천은 이곳에서 35년간 주석하며 불교학설을 강의해 남북한을 통틀어 빼놓을 수 없는 명찰로 키웠다. 1530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영통사의 온전한 모습이 등장하고 있지만 1671년 김창협의 ‘송도유람기’에 적힌 “영통사의 주요건물이 불 탔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16세기 중반 절이 소실됐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북한이 고려왕조에 눈을 돌리기 시작할 무렵인 1997년부터 북한 조선사회과학원과 일본 다이쇼(大正) 대학이 공동으로 발굴 작업을 벌였다. 이후 남한의 천태종이 50억원 상당의 기와 46만장, 단청 재료, 묘목 등을 제공해 1만 8000여평 부지에 고려양식의 원 사찰을 고스란히 되살려놓은 것이다. 형태는 옛 고려 사찰 그대로이지만 북한군이 상주하며 올려세운 전각들은 한결같이 콘크리트 건물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절 앞에 서면 예사롭지 않은 대찰이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주차장에 바로 붙여 조성한 큰 마당 서편에 선 높이 4.7m, 두 돌기둥 사이 폭 72㎝의 거대한 당간지주가 당시 영통사의 사격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남한 사찰에선 흔한 일주문은 보이지 않는다. 일주문 격인 남문을 통해 절 안에 들면 거대한 회랑으로 나뉜 3개의 구역에 각각 들어앉은 전각들이 웅장하게 다가온다. 서편 끝의 종루와 동편 모서리의 경루가 회랑으로 연결된 정문인 중문에 들어서면 양 옆의 삼층석탑, 가운데에 오층석탑을 거느린 보광원이 우뚝선 채 내려다보고 있다. 전통사찰의 대웅전격 전각으로 영통사에선 중심 건물.2층 구조의 지붕 아래 닫집을 만들어 그 아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을 모셨다. 보광원 뒤편에는 중각원과 숭복원이 차례로 앉았다. 중각원은 대각국사와 제자들이 공부를 하던 곳.‘고려사’에는 이곳에서 50여차례의 대규모 강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숭복원은 태조 왕건의 원당으로 썼던 곳으로 나중에 사찰을 찾는 왕의 숙소로도 사용되어 행궁이라 불린다. 회랑으로 사방을 막은 것을 볼 때 당시에도 사찰의 다른 공간과 경계를 철저히 했음을 알 수 있다.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보조원 구역을 들어가려면 동문을 통해야 한다. 동문 앞에는 그 유명한 대각국사비가 우뚝 섰다. 거북 받침과 바닥돌을 1개의 통돌로 만들었는데 비 높이가 4.32m나 된다. 앞면엔 어린 시절부터 천태종을 개창하기까지의 대각국사 행적을 새겼고 뒷면에는 대각국사 제자 영근화상이 해서체로 쓴 묘실과 비명 내력인 사적기와 문도들의 이름이며 직명을 적은 제자 혜소의 글이 들어 있다. 보조원 뒤편에는 영통사와 관련있는 역대 고려 왕들의 초상을 모신 영영원이 서 있다. 사찰 뒤편 산 중턱엔 대각국사의 화상을 모신 경선원이 사찰을 내려다보고 있다. 대각국사는 이 곳에서 서쪽으로 4㎞ 떨어진 총지사에서 열반했는데 대각국사의 유언을 따른 제자들이 영통사에 잠시 법구를 안장했다가 다비한 다음 사리탑인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경선원 바로 앞에는 그 때 세운 부도가 그대로 서 있다. ‘송도제일루(松都第一樓)’라 쓰인 종루에서 회랑을 통해 동쪽 끝 경루에 올라서면 옛 시인이 쓴 시구가 눈에 든다. ‘오관산하고총림(五冠山下古叢林) 풍만누대녹수음(風滿樓臺綠樹陰) 경절진훤상한적(境絶塵喧常閒寂)’ ‘오관산 아래 총림이 섰으니/바람 가득한 누대에 푸른 나무 숲이 우거졌구나/빼어난 절경에 티끌마저 사라지니 이 얼마나 한가롭고 고요한가’ 남북이 합동 공사를 진행하면서 서로 다른 입장 차로 인해 수차례나 중단될 뻔했던 영통사 복원. 처음부터 수월치 않았지만 마침내 500년 염원을 풀어낸 큰 불사를 예견한 듯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kimus@seoul.co.kr ■ 대각국사 의천은 영통사는 고려 왕조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한 북한의 정책에 따라 500년 만에 복원되었지만 천태종찰을 되찾기 위한 남북한 불교계의 원력으로 되살아났다는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말할 나위 없이 그 가운데에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있다. 대각국사 의천은 태조 왕건의 4세손인 고려 11대 문종왕의 넷째 아들로 만월대 왕궁에서 태어난 인물. 여러 왕자들을 불러모은 문종이 당시 왕들도 자식을 승려로 만들었던 세태를 따라 “누가 승려가 되겠느냐.”고 물었는데 의천이 서슴없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영통사로 출가했다고 한다. 10살 때 출가해 2년 뒤 승가에서 수여하는 높은 칭호인 ‘우세승통’에 올랐고 송나라의 이름난 사찰을 돌며 선지식인들과 만나 불교를 익혔다. 송나라에서 가져온 불경·경서 1000권 등을 모아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 이 곳에서 1000여종 4769권에 달하는 불경을 출판한 게 ‘고려속장경’이다. 고려속장경은 원의 침략으로 1232년 불탔다. 의천은 어머니와 선종이 죽은 뒤 남쪽으로 유람해 합천 해인사에 은거하던 중 의천의 셋째 형인 숙종의 부름을 받아 흥왕사 주지로 있다가 개성 총지사에서 입적했다. 의천이 세운 천태종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전파되었으며 의천은 입적후 대각국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대각국사비는 17대 왕 인종의 지시에 따라 세워진 것이다.
  • 이택순 청장·유시왕씨 등 라운딩 의혹 골프장 3곳 압수수색

    보복폭행 늑장수사·외압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7일 밤 이택순 경찰청장 등이 보복폭행 사건이 발생한 뒤 한화증권 유시왕 고문 등과 골프를 친 의혹이 있는 골프장 3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8일 밝혔다. 검찰이 압수수색한 곳은 경기 용인 N, 여주 R, 강원 춘천 J골프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시점에도 이 청장이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고교 동창생인 유 고문과 골프를 쳤다는 등의 첩보를 입수해 확인 조사를 벌여왔다. 검찰은 골프장 압수수색을 통해 예약자 명단이나 CCTV 등을 확보, 경찰 수뇌부와 한화 관계자들이 사건 수사 진행 중에 ‘부적절한 골프 모임’을 가졌는지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8일 오전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홍영기 전 서울경찰청장의 자택도 압수수색했다. 한편 보복폭행 사건을 수사한 강대원 전 남대문경찰서 수사과장은 검찰이 새로운 혐의도 없이 자택을 두 차례나 압수수색한 것은 인권 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그는 “지난달 경찰이 검찰 지휘를 받아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지만 아무 것도 나온 게 없고 새로운 의혹이 드러난 것도 아닌데 또다시 압수수색을 한 것은 인권 침해”라고 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中 “고려 태조 왕건은 중국인 후예”

    |베이징 이지운특파원|고려는 기자조선과 고구려에 이어 ‘중국 출신 통치자가 한반도에 세운 세번째 정권’이라고 주장한 논문이 나왔다. 고려 태조 왕건이 중국 한족(漢族)후예이고 고구려와 고려는 아무런 계승관계가 없다는 주장에 이은 것이어서 고구려사, 발해사에 이은 또 다른 한국 고대사 왜곡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논문은 중국 지린(吉林)성 정부산하 사회과학원의 격월간 역사잡지 ‘동북사지(東北史地)’ 2007년 3호(5∼6월호)에 실려 그 의도에도 의혹이 일고 있다. 논문은 서두에서 “왕건은 한반도 토착 신라인의 자손이 아니라 중국 화이허(淮河)유역에서 온 한인(漢人) 후예”라고 단정하면서 고려사 ‘태조세가(太祖世家)’의 내용을 풀이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서기 933년 태조 16년 당나라 명종 이사원(李嗣源)이 고려에 책봉사를 보내 왕건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책봉조서의 내용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논문은 전반적으로 앞서 중국 사학자 양바오룽(揚保隆)이 “왕씨는 서한(西漢) 낙랑군(樂浪郡) 당시의 명문 귀족이었기 때문에 왕건도 낙랑군의 한인 후예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주장한 것보다 몇 걸음 더 나아갔다.한편 논문의 저자로 표기된 ‘스창러(史長樂)는 필명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동북사지’에는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의 동북공정에 참여했던 학자들이 대거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jj@seoul.co.kr
  • 中역사잡지 “고려는 중국 출신 통치자의 정권”

    고려는 기자조선과 고구려에 이어 ‘중국 출신 통치자가 한반도에 세운 세번째 정권’이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포함한 논문이 중국에서 나와 한.중 역사학계에 또 한차례 파문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주장은 고려 태조 왕건이 중국 한족(漢族)의 후예이고 고구려와 고려는 아무런 계승관계가 없다는 주장에 이어 나온 것이어서 중국의 고구려사.발해사 침탈에 이은 또 한차례의 한국 고대사 왜곡 시도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논문의 저자가 지린(吉林)성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원이고, 이 논문을 게재한 역사잡지가 지린성사회과학원 주관 아래 발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잡지 발행인이 바로 지린성 당 위원회 선전부 부부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격월간 ‘동북사지(東北史地)’ 2007년 3호(5-6월호)에 실린 ‘당(唐)나라 명종(明宗)이 고려 태조 왕건의 족적(族籍)을 밝혔다’라는 논문의 저자로 돼 있는 연구원 ‘스창러(史長樂)’가 본명이 아니라 가공인물의 이름일 가능성이 농후해 이 논문의 의도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논문은 고려사 ‘태조세가(太祖世家)’에 태조 16년(서기 933년) 당나라 명종 이사원(李嗣源)이 고려에 책봉사를 보내 왕건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책봉조서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그같은 강변에 대한 증거자료로 제시했다. ”주몽이 개국한 땅의 상서로운 조짐을 좇아 그 군장이 되고 기자(箕子)가 이룩한 번국(蕃國)의 자취를 밟아 행복과 화락(和樂)을 펴도다”라는 대목과, “경(卿)은 장회(長淮)의 무족(茂族)이며 창해(漲海)의 웅번(雄蕃)이라”고 하는 대목이다. ’주몽이 개국한 땅’과 ‘기자가 이룩한 땅’에 대한 언급을 “한반도 역사에서 기자와 주몽에 이어 또 한 사람의 중국 출신 통치자가 새로운 고려정권을 세우고 임금이 되어 행복과 화락을 가져다 주었다”는 뜻이라고 논문은 풀이했다. 동북사지는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추진한 동북공정의 연구과제를 수행한 학자들이 대거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발행자는 장푸여우(張福有) 지린성 당위원회 선전부 부부장이고, 고문은 전 현직 변강사지연구중심 주임들인 마다정(馬大正)과 리성(려<力 없는 勵>聲)이다. 논문은 왕건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처럼 위장했다면서 “그는 한반도 토착 신라인의 자손이 아니라 중국 화이허(淮河) 유역에 살던 한인(漢人)의 후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앞서 이른바 ‘민족사학가’ 양바오룽(揚保隆)의 고구려 관련 문장에서 “왕씨는 서한(西漢) 낙랑군(樂浪郡) 당시의 명문귀족이었기 때문에 왕건도 낙랑군의 한인 후예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한 주장보다 훨씬 더 나아간 것이다. 논문은 “당 명종이 조서에서 왕건을 ‘장회의 무족’이라고 한 것은 조상의 고향이 장회지방이었다는 뜻과 조상이 장회지방의 명문귀족, 즉 벼슬을 사는 집안이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면서 “바로 이 대목에서 그의 원적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로 왕건의 조상이 중국인임을 거듭 강조했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돈이 뭐길래…” 中 남편, 아내에 맞아 ‘불귀의 객’

    “돈이 뭐길래….” 중국 대륙에 50대 후반의 한 남자가 생활비와 자녀 학비를 제대로 못 벌어온다고 아내와 심하게 다투며 주먹다짐을 벌이다 끝내 남편이 맞아죽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충격을 주고 있다. ‘불귀의 객’이 된 주인공은 중국 동북부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에 살았던 왕샤오룽(王小榮·가명)씨.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기술이 가지지 못해 뜬벌이 생활을 해오던 그는 지난해 10월 돈을 제대로 못 벌어온다고 바가지를 긁던 아내 리수펀(李淑芬·55)씨와 심하게 부부싸움을 벌이다가,결국 주먹 다짐으로 번지는 바람에 남편이 맞아죽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요녕만보(遼寧晩報)가 최근 보도했다. 사건은 지난해 10월 29일로 거슬러올라간다.뜬벌이 생활을 하던 왕씨는 수입이 적고 일정치 않은 까닭에 집안 셈평은 나날이 쪼그라들었다.물론 애옥살이 살림이지만 이들 부부간의 정마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날 사건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완전히 우발적인 일이었다.사건 당일 밤 9시쯤,왕씨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일을 끝낸 뒤 한잔 얼큰히 취한 채 귀가했다. 이에 아내 리씨는 남편 왕씨에게 요즘 아이 학비는 물론 생활비마저 모자라는 판국에 무슨 술타령이냐고 심한 면박을 주며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녀는 이어 “어서 생활비와 아이 학비를 내어놓으라.”고 닦달했다.안그래도 아버지와 남편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에 마음이 무겁던 그는 아내의 추궁에 오히려 화가 꼭뒤까지 치밀었다. 화를 참을 수 없던 왕씨는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의 가슴을 향해 냅다 주먹을 내질렀다.아내 리씨도 이에 질세라 남편을 향해 돌진했다. 서로 뒤엉킨 부부는 누가 어디를 어떻게 때리는지도 모르고 주거니 받거니 정신없이 주먹을 내지르며 한참 동안 ‘육탄전’을 벌였다. 한 5분쯤 지났을까.남편의 배 위에 올라탄 리씨는 갑자기 남편이 대거리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길래,이상하게 생각돼 찬찬히 남편의 얼굴을 살펴봤다.남편은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 그녀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해서 손을 남편의 코에 대어 보니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리씨는 남편의 시신을 수습한 뒤 이튿날 공안(경찰)당국에 자진 출두,자수했다. “홧김에 그냥 주먹질을 했을 뿐인데….” 리씨는 고개를 떨구며 깊은 후회를 했으나 열명길에 오른 남편은 결코 돌아올 수가 없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50대 사나이가 아내에게 맞아죽게 된 속사정

    “돈이 뭐길래….” 중국 대륙에 50대 후반의 한 남자가 생활비와 자녀 학비를 제대로 못 벌어온다고 아내와 심하게 다투며 주먹다짐을 벌이다 끝내 남편이 맞아죽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충격을 주고 있다. ‘불귀의 객’이 된 주인공은 중국 동북부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에 살았던 왕샤오룽(王小榮·가명)씨.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기술이 가지지 못해 뜬벌이 생활을 해오던 그는 지난해 10월 돈을 제대로 못 벌어온다고 바가지를 긁던 아내 리수펀(李淑芬·55)씨와 심하게 부부싸움을 벌이다가,결국 주먹 다짐으로 번지는 바람에 남편이 맞아죽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요녕만보(遼寧晩報)가 최근 보도했다. 사건은 지난해 10월 29일로 거슬러올라간다.뜬벌이 생활을 하던 왕씨는 수입이 적고 일정치 않은 까닭에 집안 셈평은 나날이 쪼그라들었다.물론 애옥살이 살림이지만 이들 부부간의 정마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날 사건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완전히 우발적인 일이었다.사건 당일 밤 9시쯤,왕씨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일을 끝낸 뒤 한잔 얼큰히 취한 채 귀가했다. 이에 아내 리씨는 남편 왕씨에게 요즘 아이 학비는 물론 생활비마저 모자라는 판국에 무슨 술타령이냐고 심한 면박을 주며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녀는 이어 “어서 생활비와 아이 학비를 내어놓으라.”고 닦달했다.안그래도 아버지와 남편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에 마음이 무겁던 그는 아내의 추궁에 오히려 화가 꼭뒤까지 치밀었다. 화를 참을 수 없던 왕씨는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의 가슴을 향해 냅다 주먹을 내질렀다.아내 리씨도 이에 질세라 남편을 향해 돌진했다. 서로 뒤엉킨 부부는 누가 어디를 어떻게 때리는지도 모르고 주거니 받거니 정신없이 주먹을 내지르며 한참 동안 ‘육탄전’을 벌였다. 한 5분쯤 지났을까.남편의 배 위에 올라탄 리씨는 갑자기 남편이 대거리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길래,이상하게 생각돼 찬찬히 남편의 얼굴을 살펴봤다.남편은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 그녀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해서 손을 남편의 코에 대어 보니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리씨는 남편의 시신을 수습한 뒤 이튿날 공안(경찰)당국에 자진 출두,자수했다. “홧김에 그냥 주먹질을 했을 뿐인데….” 리씨는 고개를 떨구며 깊은 후회를 했으나 열명길에 오른 남편은 결코 돌아올 수가 없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어머니와 함께 한 900일간의 소풍/왕일민·유현민 지음

    어머니와 함께 한 900일간의 소풍/왕일민·유현민 지음

    중국 최북단인 헤이룽장성 타허부터 티베트 라싸고원까지 무려 3만㎞. 이 길을 자전거 수레를 끌고 걸었다. 그 수레에는 100세의 노모가 있었고, 수레를 끈 이는 74세의 아들이었다.900일간의 소풍이 끝나자 103세 생일을 며칠 앞둔 노모는 하얼빈에서 세상을 뜬다. 아들은 이제 ‘티베트(시짱·西藏)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두 번째 여행에 나선다. ‘어머니와 함께 한 900일간의 소풍(왕일민·유현민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은 인구 13억의 중국 대륙을 울린 이 시대 마지막 효자의 이야기이다. 과장을 좋아하는 중국인답게 ‘효자왕’으로 불린 왕일민씨는 고향 타허에서 평생을 산 노모가 ‘죽기 전에 세상 구경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길을 떠난다.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티베트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이다. 산골에 붙박혀 살아온 노모가 대체 어떻게 티베트란 곳을 알았는지 연유를 알 수 없었지만, 아들은 어쨌든 떠나기로 한다. 자신도 없었지만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란 생각에 자전거 수레를 직접 만들었다. 수레는 어머니가 겨우 누울 수 있는 크기였다. 언덕이라 자전거가 오를 수 없는 곳은 밧줄을 어깨에 메고 수레를 끌었다. 피가 흐르는 것은 예사였다. 중국 가장 북쪽인 타허에서 최남단인 하이난다오까지 자전거 수레는 내려왔다. 여행 중간에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에도 보도되면서 이들의 여행은 중국 전역의 화젯거리가 됐다. 고급호텔에서 서로 모셔가 편안한 잠자리와 식사를 대접했다. 여비로 쓰라며 돈을 던져넣고 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왕일민씨는 하이난다오에서 길을 멈춘다. 티베트의 라싸까지 가기에는 어머니의 건강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여행 중간에 “내가 100년된 인삼”이라며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지만, 바지를 버려놓고 소변을 보지 않았다고 우기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의 성정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아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이 될 어머니의 여행이 최대한 편안하도록 노력했다. 글을 쓴 작가 유현민씨는 신문보도를 통해 왕씨의 소식을 접한 뒤 여행 중인 그를 찾아다니려 2년 동안 노력한 끝에, 어느 추운 겨울날 하얼빈에서 결국 그를 만났다. 책을 펴내고 싶지 않다는 왕씨의 진지한 뜻을 설득해 일주일간 동고동락하며 마침내 글을 완성했다.98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아들 낳은 값은?”… 백만장자 vs 씨받이 법정싸움

    “5만 위안(약 600만원)이냐,100만 위안(1억 2000만원)이냐.” 중국 대륙에 아들을 대신 낳아준 값을 둘러싸고 백만장자와 씨받이간에 법정 소송이 벌어지는 바람에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성 스옌(十堰)시에 살고 있는 한 백만장자가 자신의 아내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젊은 여성과 씨받이 계약을 맺고 아들을 봤으나,씨받이한 값을 제대로 주지 않않아 법정 소송이 벌어져 주변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고 북경일보(北京日報) 인터넷신문인 첸룽(千龍)망이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건축업자인 쾅젠밍(況建明)씨는 아내와 알콩달콩 살며 지난 몇년간 큰 돈을 모아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부를 쌓았다.이 덕분에 이들 부부는 아무런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냈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은 한 구석에는 육장 돌덩이을 얹어 놓은 것처럼 답답함이 자리잡고 있었다.백만장자의 가산을 이뤘으나 아내가 불임이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바람에 자식 문제가 제대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이들 부부는 이에 따라 아내 대신 아이를 낳아줄 씨받이를 들이기로 결심했다.2005년 여름 쾅씨는 젊은 여성 왕아이친(王艾琴·가명)을 알게 됐다. 서로 눈이 맞은 쾅-왕씨 이들 두사람은 동거에 들어가기 직전 “만약 아이를 낳아주면 우선 10만 위안(약 1200만원)을 주겠다.”고 구두 계약을 맺었다.왕은 2006년 7월 아들을 낳았다. 쾅씨는 왕이 아들을 낳자마자 구두계약과는 달리 5만 위안(약 600만원)만 달랑 던져주고 아들을 데려가 버렸다.왕씨와 함께 동거하던 집을 찾아가지 않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왕씨는 아들이 생각나 쾅씨에게 아들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몇번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이에 화가 난 왕씨는 스옌시 장완(張灣)구 법원에 쾅씨를 상대로 아이를 돌려주고 생활보상비조로 100만위안(약 1억 2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냈다. 쾅씨와 왕씨는 올초 이후 물밑 교섭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들 두사람아의 입장 차가 워낙 커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아들 낳은 값은? 백만장자-씨받이 법정싸움

    “5만 위안(약 600만원)이냐,100만 위안(1억 2000만원)이냐.” 중국 대륙에 아들을 대신 낳아준 값을 둘러싸고 백만장자와 씨받이간에 법정 소송이 벌어지는 바람에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성 스옌(十堰)시에 살고 있는 한 백만장자가 자신의 아내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젊은 여성과 씨받이 계약을 맺고 아들을 봤으나,씨받이한 값을 제대로 주지 않아 법정 소송이 벌어져 주변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고 북경일보(北京日報) 인터넷신문인 첸룽(千龍)망이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건축업자인 쾅젠밍(況建明)씨는 아내와 알콩달콩 살며 지난 몇년간 큰 돈을 모아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부를 쌓았다.이 덕분에 이들 부부는 아무런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냈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은 한 구석에는 육장 돌덩이을 얹어 놓은 것처럼 답답함이 자리잡고 있었다.백만장자의 가산을 이뤘으나 아내가 불임이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바람에 자식 문제가 제대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이들 부부는 이에 따라 아내 대신 아이를 낳아줄 씨받이를 들이기로 결심했다.2005년 여름 쾅씨는 젊은 여성 왕아이친(王艾琴·가명)을 알게 됐다. 서로 눈이 맞은 쾅-왕씨 이들 두사람은 동거에 들어가기 직전 “만약 아이를 낳아주면 우선 10만 위안(약 1200만원)을 주겠다.”고 구두 계약을 맺었다.왕은 2006년 7월 아들을 낳았다. 쾅씨는 왕이 아들을 낳자마자 구두 계약과는 달리 5만 위안(약 600만원)만 달랑 던져주고 아들을 데려가 버렸다.왕씨와 함께 동거하던 집을 찾아가지 않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왕씨는 아들이 생각나 쾅씨에게 아들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몇번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이에 화가 난 왕씨는 스옌시 장완(張灣)구 법원에 쾅씨를 상대로 아이를 돌려주고 생활보상비조로 100만 위안(약 1억 2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냈다. 쾅씨와 왕씨는 올초 이후 물밑 교섭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들 두사람아의 입장 차가 워낙 커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무슨 문제가…” 결혼 4개월만에 이혼한 까닭

    “아주 지극히 정상인 데도 결혼한지 4개월이 지나도 아직 첫날밤을 보내지 못해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했어요.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결혼생활을 계속 해나갈수 있나요?” 중국 대륙에 한 신부가 결혼 4개월동안 신랑과 함께 신혼 초야를 치르지 못했다고 이혼을 요구하는 바람에 시끌벅적하다. 중국 동북부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시 지안(集安)에 살고 있는 왕샤오리(王小麗·가명)씨는 지난해말 결혼했으나 지금까지 지극히 정상인 남편 양쥔(楊軍·24·가명)과 신혼 초야를 치르지 못하는 바람에 이혼을 요구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동아무역신문(東亞貿易新聞)이 11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동네 소꿉친구들인 이들이 결혼한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문구가게를 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는 양씨는 아주 착실했고 왕씨는 늘씬한 몸매와 해사한 모색으로 인기가 높아 주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나.모든 면에서 멀쩡한 이들 두사람은 다른 보통 신혼부부와는 달리 첫날밤을 서로 쳐다보다가 잠이 들어 초야를 치르지 못한 것이다.신부 왕씨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신랑이 부부생활에 너무 부끄러워서 그렇겠거니 하고 일단 넘겨 보냈다.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그녀는 결혼 준비와 결혼식 등 스트레스도 많이 쌓였을 것으로 판단,그럭저럭 1주일을 ‘아무 일 없이’ 보냈다. 이렇게 참는 가운데서도 세월은 쉬지 않고 흘렀다.어영부영 결혼한지 4개월이 지났다.신랑 양씨와 신부 왕씨는 그때까지 첫날 밤을 치르지 않아 여전히 처녀·총각으로 남아 있었다. 신부 왕씨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신랑이 말못할 병에 걸린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해서 더이상 부부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왕씨는 남편 양씨와 함께 일단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양씨는 지린성 성도 창춘(長春)시 비뇨기과건강센터 불임과에서 정밀 진단을 받았다.결과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신부 왕씨는 신랑 양씨와 이혼수속을 밟고 있다. 담당 의사 황광화(黃光華)씨는 “신랑 양씨는 신체 하드웨어 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성지식이 전혀 없으면 성생활에 무관심할 수가 있다.”고 귀띔했다.그는 “양씨처럼 성지식이 없고 부끄러워 초야를 치르지 못하는 신혼부부들은 심리적 질병인 만큼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거울인간? 몸속 장기가 반대쪽에 붙은 사내

    “뭐라구요,몸 속 장기의 위치가 일반 사람들과는 반대쪽에 붙었다구요? 그래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까.” 중국 대륙에 신체 장기가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반대쪽에 붙어 있는 희한한 ‘징몐런’(鏡面人·거울인간)이 등장,화제를 뿌리고 있다. ‘미스터리의 인물’은 중국 동중부 저장(浙江)성 타이저우(臺州)씨에 살고 있는 왕퉁인(王統銀·56)씨.막노동판 십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키가 168㎝ 정도이며 신체가 아주 건장한 편.외견상으로는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왕씨는 얼마전부터 오른쪽 허리 부분에 참기 어려운 통증이 계속돼 병원을 찾았다가 CT 촬영 및 초음파 검사를 받던 중,이같은 사실이 밝혀져 주변 사람들은 물론 담당 의사까지도 경악하게 하고 있다고 도시쾌보(都市快報)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왕씨는 지난 6개월동안 오른쪽 허리 부분에 통증이 아주 심해 지난달 27일 타이저우 시립의원을 찾았다.이 병원 비뇨기과 옌둥량(燕東亮) 부주임(박사)은 환자 통증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 CT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실시했다. 초음파 검사를 하던 옌 박사는 갑자기 “아니,이거 왜 이렇지.”라며 큰소리로 외쳤다.그의 심장과 위장,간장,비장 등 내장 전부가 서로 상반되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몸속 장기가 일반인들과는 정반대편에 붙어 있는 모습이 그대로 보여 ‘징몐런’으로 판명된 것이다. 옌 박사는 “정상인은 보통 심장과 위장 등의 장기가 왼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왕씨는 오른쪽에 있으며,본래 오른쪽에 있어야 할 간장과 담낭 등의 장기는 왕씨의 경우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며 “‘징*런’이 태어날 확률은 10만분의 1로 아주 희귀한 질환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만일 거울로 왕씨의 몸속 장기를 비추면 거울속의 왕씨 장기 구조는 정상인과 똑같다.”며 “이런 사람은 곧 정상인의 거울속 장기 위치와 같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징몐런’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들은 왕씨는 아주 생뚱맞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지금까지 50여년을 살아오면서 큰 병을 한번 앓은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 편이었다.게다 살아계시는 부모도 모두 정상인이다.이 때문에 자신의 몸 속 장기가 정반대편이 붙어 있는 ‘징몐런’이라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얘기다. 옌 박사는 “‘징몐런’은 유전성 질환이 아닌 선천성 질환”이라며 “아마도 태아가 이상 발육돼 생기는 현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결혼전야 성폭행범이 된 사내의 기막힌 사연

    “쯧쯧,인생에서 가장 기뻐야 할 결혼식을 올린 날이 가장 슬픈 날로 바뀌었네!” 중국 대륙에 30대의 한 사내가 결혼 하루 전날 10대 후반의 소녀를 성폭행하는 어이없는 일을 저질러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새 신랑은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에 사는 뤼후이(呂輝·30·가명)씨.그는 결혼 하루전 찻집 아가씨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 뒤 호텔 방으로 가 성폭행을 한 혐의로 결혼식 당일 붙잡혀 빈축을 사고 있다고 차이나데일리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뤼씨는 차는 물론 집도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생활의 여유도 있는 등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하루를 참지 못하고 성폭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차디찬 철창 속에서 젊음을 보내야 하는 ‘조종(弔鐘)이 울린 인생’이 됐다. 그가 양두구육(羊頭狗肉)의 파렴치한이 된 사연은 이렇다.지난 1월21일 일요일 오후 1시쯤,아리잠직한 소녀가 “자신은 성폭행당했다.”며 눈물로 호소하며 정저우시 공안국 진수이(金水)분국에 찾아오면서 사건은 서서히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그 소녀의 이름은 왕리리(王麗麗·18·여).찻집에 근무하는 종업원이라고 밝힌 왕씨는 한참 동안 마음으로 가라앉힌 뒤 뤼씨와 얽히게 된 저간의 사정을 하나하나 털어놨다. 3개월전 엄장이 크고 얼굴이 길쭉한 젊은 남성이 찻집을 찾아왔다.그는 차를 마시며 잡상스런 몇마디의 말을 나눈 뒤 곧 나갔다.그후 가끔씩 들러 차를 마시며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갔는데,특별이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왕씨는 그 젊은 남성이 찾아와 허섭쓰레기 같은 농담을 해도 즐겁게 대거리를 해줬다.그것이 바로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중 1월 19일 오후 그 사내는 다시 찻집을 찾아왔다.당시 찻집에는 다른 손님이 없었다.왕씨는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무려 4시간 동안 그와 가벼운 주제로 여러가지 얘기를 즐겁게 나눴다.이때야 비로소 그 젊은 남성의 이름이 ‘뤼후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뤼씨는 떠나면서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고,왕씨는 흔쾌히 알려줬다.하루가 지나 20일 오후 7시40분쯤,왕씨는 뤼씨로부터 여느때와 다른 진지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내일 내가 결혼식을 올려요.총각으로 마지막인 오늘 밤을 당신과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습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뤼씨의 정중한 초청에 응한 왕씨는 그를 만나 훠궈(火鍋·중국식 샤브샤브)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가라오케로 가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즐겼다.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그녀에게 술을 권했다.하지만 술을 잘 못마시는 왕씨는 달착지근하게 칵테일한 양주를 그의 강권에 못이겨 몇 잔 거푸 마시고 말았다.이것이 화근이었다. “얼마 있지 않아 갑자기 술기운이 올라왔어요.어떻게 방으로 들어왔는지도 몰랐습니다.한참을 잤을까.술이 조금 깨면서 어떤 남자가 나의 옷을 벗기는 것 같았어요.처음에는 나의 남자친구인줄 알고 가만히 있었습니다.그런데 뭔가 이상했어요.해서 자세히 보니 남친이 아니고 뤼후이였습니다.깜짝 놀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역부족이어서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죠.” 사건 다음날 21일 오후 4시쯤,진수이 공안분국 대원들은 뤼의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이 모두 떠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새신랑 뤼를 체포했다.한순간의 실수로 신혼 초야도 치르지 못한 뤼는 차디찬 철창 속에서 ‘암울한 꿈’을 곱씹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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