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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속 행정] 조선의 진정한 ‘소통왕’ 영조

    [역사 속 행정] 조선의 진정한 ‘소통왕’ 영조

    궁궐 밖에서 백성들 만나 나랏일 토론하고 의견 취합 영조의 ‘조선판 공론화위’1750년 7월 3일 진시(오전 7~9시)에 영조가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에 나섰다. 이때 영의정 조현명과 좌의정 김약로, 우의정 정우량 등 당대 고위 관원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 성균관 유생 80여명을 비롯해 도성 주민들도 이 광경을 지켜보려고 나왔다. 이 자리는 영조가 당시 심각한 사회문제였던 양역(16~60세 양인 장정에게 부과하던 공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선비와 일반 백성들을 만나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참석자들을 확인한 영조는 강한 어조로 “양역 문제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더이상 보고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간 논의됐던 양역변통론(양역제 개혁을 주장하던 여러 논의) 가운데 유포론(세금을 내지 않는 양인 가정을 찾아내 세금 징수를 늘리자는 논의)과 구전론(성인 남녀 모두에게 인두세 개념의 돈을 징수하자는 주장)은 시행할 수 없고 호포론(신분에 관계없이 집집마다 면포를 내게 하자는 의견)과 결포론(대동법처럼 토지 면적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만 갖고 논의하라”고 전교했다. 일반 백성들의 이해를 돕고자 성균관 유생에게 이 내용을 전달하게 했다. 이 논의는 숙종 때부터 시작됐지만 그간 양역 징수 대상에서 제외됐던 양반들의 반대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양역 문제는 더욱 수렁에 빠져들었다. 영조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날 모임을 주도했다. 자기 의견을 밝힌 영조는 재상을 시작으로 고위 관리, 유생, 주민에게 각자 의견을 말하게 했다. 아침 일찍 시작한 이날 만남은 석양이 내릴 때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의견이 좀처럼 모아지지 않았다. 신료들은 국왕의 건강을 우려해 모임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영조는 되레 “좋은 대책을 얻은 뒤에 파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고는 각자 생각에 따라 북쪽과 남쪽에 나눠 서도록 했다. 오늘날 퀴즈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OX’ 문제 같은 것이었다. 아쉽게도 이날 만남에서는 하나의 의견이 도출되지 않았다. 결국 국왕이 신하들에게 “5일 안에 하나의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모임이 일단락됐다. 조선 시대 국왕이 조정 관리가 아닌 일반 백성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앞의 사례처럼 각자 소견을 들은 뒤 자신의 의견에 따라 남북으로 나눠 서게 해 의견을 취합하는 방식은 거의 없었다. 실제 조선 시대 국왕이 궁궐 밖에 출입하는 일은 국가적 제사 때나 왕실 행사, 선대 국왕이나 왕비의 능 행차, 사신 접견 등으로 제한됐다. 궁궐 안에서만 생활하는 임금이 일반 백성을 접촉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면 국왕은 여러 가지 목적으로 백성들과 만났다. 백성들은 국왕의 행차가 쉬는 곳에서 기다리다가 상언(국왕에게 올리는 문서)을 올리거나 징·꽹과리를 두드려 호소하는 격쟁으로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궁궐 밖으로 직접 나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백성의 의견을 청취하는 소통 방식은 영조대에 시작됐다.실제 영조는 재위 기간 동안 30여 차례 이상 궁궐 밖으로 나왔다. 조선 후기 궁궐은 ‘동궐’이라 불리던 창덕궁과 창경궁, ‘이궁’이란 별칭을 가진 경희궁(경덕궁으로 불리다가 1760년 개칭)이 주로 활용됐는데, 국왕은 이들 궁궐을 오가며 국정 의견을 나눴다. 흥화문을 비롯해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서도 다양한 계층의 백성을 스스럼없이 만났다. ■한국행정연구원 ‘역사 속 행정이야기’ 요약 이근호 연구교수 (명지대)
  • 해리·마클의 ‘파격 로열 웨딩’

    해리·마클의 ‘파격 로열 웨딩’

    英해리 왕자·美배우 마클 ‘세기의 결혼식’ 영국 해리(33) 왕자와 미국 할리우드 배우 메건 마클(36)이 19일(현지시간)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미국 성공회 흑인 주교가 설교에 나서고 솔음악이 축가로 불리는 등 다양성을 포용한 파격적인 결혼식이었다.두 사람은 이날 정오 윈저성의 왕실 전용 예배당 세인트 조지 교회에서 영국 성공회 수장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의 주례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해리 왕자와 흑백 혼혈이면서 연상, 이혼 경력이 있는 마클의 ‘동화 같은 로열 웨딩’은 결혼 전부터 큰 화제를 몰고 왔다.결혼식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우선 신부 아버지가 신랑에게 신부를 인계하는 절차는 없었다. 마클은 아버지의 에스코트 없이 혼자 입장하다가 중간에 시아버지 찰스 왕세자와 함께 걸었다. 평소 마클이 성평등과 여성 인권운동을 해온 만큼 신부가 신랑에게 건네지는 형식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설교는 미국 성공회 최초의 흑인 주교인 마이클 커리(65) 신부가 맡았다. 커리 신부는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설교를 인용해 “사랑의 다른 어떤 것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고 강조했다. 축가도 흑인 위주로 구성된 20여명의 합창단이 미국 솔팝송 음악 ‘스탠드 바이 미’(Stand by me)를 불렀다. 이런 파격은 영국 왕실이 다양성을 포용하는 등 변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됐다.결혼식엔 1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등 국가 정상과 정치 지도자들은 초청받지 못했다. 대신 신랑 신부와 직접 친분이 있는 사람 600여명이 초청됐다. 세계적 축구스타인 데이비드 베컴 부부와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 부부, 테니스 스타 세리나 윌리엄스 등이 참석했다. 해리 왕자의 전 여자친구 첼시 데이비와 크레시다 보나스도 결혼식장을 찾았다.신부 측에서는 신부를 스타로 만든 미 법정 드라마 ‘슈츠’의 주연 가브리엘 막트 등 배우들이 초청을 받았다. 마클의 아버지는 파파라치 사진 판매 논란과 건강상 이유로 끝내 불참했다. 결혼식 비용은 4280만 달러(약 463억원)로 추산된다. 이 중 하객들의 경비·보안 비용이 결혼식 예산의 94%인 4010만 달러에 이른다.해리 왕자는 왕위 계승 서열 6위다. 마클은 ‘슈츠’와 영화 ‘스트레스를 부르는 직장상사’ 등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두 사람은 2016년 11월부터 교제해 지난해 9월부터 공식 석상에 동행했다. 해리 왕자가 결혼식을 앞두고 서식스 공작 작위에 오름에 따라 마클은 서식스 공작부인이 된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신랑 해리-신부 마클보다 시선 빼앗은 커리 주교, 누구길래 왜?

    신랑 해리-신부 마클보다 시선 빼앗은 커리 주교, 누구길래 왜?

    이쯤 되면 시선 강탈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19일 윈저궁에서 화려하게 펼쳐진 해리 왕자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혼혈 메건 마클의 결혼식에서 신랑신부보다 더 많은 눈을 사로잡은 것이 열정적인 설교를 한 마이클 커리(65·미국) 주교였다. 14분에 걸친 긴 주례사를 통해 시종 열정적이고 힘에 넘치는 연설을 했다. 시카고 태생인 그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발언을 인용하며 사랑의 힘을 역설했다. “사랑의 힘이 있으며 과소평가하면 안된다”고 말할 때 다채로운 몸동작도 겸했다. 이번 결혼식은 여러 모로 파격이었다. 신부가 아프리카인의 피가 흐르는 혼혈에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이며 신부의 아버지는 병석에 있어 시아버지가 되는 찰스 왕세자가 신부 입장 때 함께 행진하는 등 종래 영국 왕실에서 없었던 모습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영국 성공회가 주관하는 왕실 결혼식에서 흑인 주교가 최초로 결혼 예배를 집전했다. 1978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사회 정의나 이민 정책, 결혼의 평등함을 비롯한 사회 이슈에 목소리를 높여 왔으며 최근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메릴랜드 등 자신이 관장하는 3개 주에서 가족 돌봄 서비스나 교육센터, 도시 이웃 개발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특히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10만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말라리아 예방기금 같은 것을 만들자고 주창해왔다. 또한 2015년 성공회가 동성 커플의 결혼을 허용하도록 교회끼리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스코틀랜드와 함께 미국은 전 세계 성공회 계열로는 유이하게 동성 커플의 결혼을 허용했다. 그가 펼쳐 보인 연설 스타일도 색달랐다.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즐겨 불렀다는 ‘다운 바이 더 리버사이드’ 가사를 거침 없이 인용했다. 성적 소수자(LGBT)들의 권리나 성적 유린 같은 민감한 주제들도 입에 올렸다. 데이비드 베컴이나 카밀라 콘월 공작부인처럼 열렬한 신도들을 미소짓게 만들었다. 물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나 윈저 공 같은 이들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는 듯했다.결혼식 전체를 주관한 저스틴 웰비 대주교는 신랑신부가 커리 주교를 선택한 것에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은 불같은 연설이었다고 하는 이도 있었고 노동당 지도자였던 에드 밀리밴드는 “나도 거의 신봉자로 만들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노동당 동료인 데이비드 래미 역시 “커리 주교가 강론을 통해 사랑, 정의, 빈곤, MLK, 불과 노예제를 언급하다니. 아멘 형제 자매, 아멘”이란 반응을 내놓았다. 길다 싶은 주례사 마지막에는 예수회 성직자였으며 프랑스 철학자인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의 언급을 인용하며 불의 발견과 사용이야 말로 인류사를 발전시켰다며 “인류애가 사랑의 에너지를 잡았던 것처럼 우리가 불의 힘을 깨닫는 것이 그 두 번째 역사가 될 것”이라고 갈파했다. 이어 “우리는 이 낡은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만들어가야 한다”며 신랑신부를 향해 “형제여 자매여. 신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은총을 내린다. 신이 모든 권능을 사랑의 손 안에 붙들어 매기를”이라며 긴 강론을 마무리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유기견에서 왕실 견공으로…신데렐라 된 마클의 반려견

    유기견에서 왕실 견공으로…신데렐라 된 마클의 반려견

    ‘가이’라는 이름의 비글 한 마리는 마치 한편의 동화 속 주인공 같다. 2015년 미국 켄터키주(州)의 한 숲속에 버려진 채 발견됐던 가이는 며칠 뒤 안락사될 운명이었지만, 운 좋게 한 동물구조단체에 의해 보호된 뒤 입양 가족을 찾기 위해 캐나다로 보내졌다. 그때 가이의 크고 쓸쓸한 듯한 눈이 향한 곳은 바로 미국 배우 메건 마클이었다. 메건 마클은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교외 윈저성에서 해리 왕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로써 마클의 반려견 가이 역시 정식으로 영국 왕실의 일원이 됐다. 가이의 캐나다행을 주선한 동물단체 ‘어 도그스 드림 레스큐’를 운영하는 덜로리스 도허티는 최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이는 켄터키 숲에 버려진 뒤 보호시설에서 지내다가 마클에게 입양됐고 이제는 영국 궁전에서 살게 됐다”면서 “마치 신데렐라 속 주인공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가이는 캐나다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열린 한 입양 행사에서 미국 드라마 ‘슈츠’의 촬영으로 캐나다 토론토에 머물고 있던 메건 마클을 첫 눈에 반하게 했다. 도허티에 따르면, 당시 메건 마클은 반려견인 저먼셰퍼드 믹스견 ‘보가트’에게 친구가 돼줄 개를 찾고 있었다. 도허티는 “가이는 갈색의 긴 귀와 큰 눈, 그리고 비글다운 둥글고 짧은 몸통을 하고 있어 아주 귀엽다. 메건 마클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 다른 개를 보여줬지만 그녀는 가이를 보자마자 가족으로 들이기로 했었다”고 말했다. 가이는 이미 지난해 11월 영국으로 이사했고 이제 마클은 물론 해리 왕자와도 함께 살게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또 다른 반려견 보가트는 나이가 너무 많고 몸이 쇠약해 장기간 비행기를 탈 수 없어 캐나다에 있는 메건 마클의 절친 집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포토] ‘세기의 결혼식’ 해리 왕자♥메건 마클, 달콤한 키스

    [포토] ‘세기의 결혼식’ 해리 왕자♥메건 마클, 달콤한 키스

    19일(현지시간) 영국 윈저성 왕실 전용 예배당 세인트 조지 채플에서 거행된 해리 왕자와 헐리우드 배우 메건 마클이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콤한 키스를 나누고 있다. 2016년 7월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약혼에 이어 이날 결혼식을 마치면서 정식 부부가 됐다. 사진=AFP·로이터 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상]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 어땠나

    [영상]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 어땠나

    영국의 해리 왕자와 미국 배우 출신인 메건 마클의 결혼식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런던 교외 윈저성에서 성대히 치러졌다. 신랑 해리 왕자가 먼저 왕실 전용 예배당 세인트 조지 채플로 들어섰고, 예정된 12시 정각에 신부 메건 마클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클은 화려하기보단 전통적인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들어섰다. 웨일스 출신 유명 소프라노 엘린 마나한 토머스가 노래하는 가운데 채플 제단에서 메건 마클을 맞은 해리 왕자는 미소를 띠었고, 어머니인 도리아 래글랜드는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생중계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어진 성경 낭독과 연설, 결혼서약 등을 거친 뒤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은 반지를 주고받았고, 주례를 맡은 영국 성공회 수장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됐음을 선포했다. 결혼식엔 여왕을 비롯한 양가 가족과 친구 등 600명이 참석했고 윈저성 주변에도 이들을 축복하기 위해 약 1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식을 마친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윈저성 주변을 돌면서 군중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영상=영국BBC/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영국 해리 왕자·여배우 마클, 2년간의 교제 끝에 ‘로열 웨딩’

    영국 해리 왕자·여배우 마클, 2년간의 교제 끝에 ‘로열 웨딩’

    영국 해리(33) 왕자와 할리우드 여배우 메건 마클(36)이 2년여 간의 교제 끝에 19일(현지시간) 런던 인근 윈저 성에서 결혼했다. 두 사람은 이날 정오 윈저 성 왕실 전용 예배당 세인트 조지 채플에서 영국 성공회 수장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11세기에 만들어진 윈저성은 왕실 가문의 주 거주지 중 한 곳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대부분의 주말을 이곳에서 보낸다. 이날 결혼을 올린 해리 왕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손자이자 찰스 왕세자의 차남으로 영국 왕위 계승 서열은 6위다. 신부인 마클은 미국 법정 드라마인 ‘슈츠(Suits)’로 스타덤에 오른 할리우드 여배우다. 2016년 7월 처음 만나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약혼에 이어 이날 결혼식을 마치면서 정식 부부가 됐다. 이날 결혼식은 영국 왕실이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인이자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를 둔 혼혈을 맞는다는 점에서 영국민은 물론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정오에 예정된 결혼식을 앞두고 신랑인 해리 왕자가 형이자 들러리인 윌리엄 왕세손과 함께 11시 35분께 윈저 성에 도착했고, 10여분 뒤 마클이 어머니 도리아 래글랜드와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찰스 왕세자 부부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부는 11시 50분이 조금 넘은 시각 세인트 조지 채플에 도착했다. 마클은 시아버지인 찰스 왕세자의 팔짱을 낀 채 입장했다. 12시 조금 넘겨 시작된 결혼식은 세인트 조지 채플의 주임 사제인 데이비드 코너 주교의 미사 집전에 이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의 결혼선언과 혼인서약, 반지교환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결혼식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인 필립공 등 왕실 가족이 총출동했다. 신부측에서는 마클의 모친만 참석했다. 이날 결혼식장에는 해리 왕자 및 마클과 직접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 위주로 600여명이 초청됐다. 세계적 축구스타인 데이비드 베컴 부부,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유명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 부부, 테니스 스타 세리나 윌리엄스, 가수 제임스 블런트 등도 결혼식에 참석했다. 초청장에 기재된 것처럼 남성의 제복이나 정장을, 여성은 모자와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결혼식 직후 신랑 신부는 지붕이 없는 마차를 타고 윈저 성에서부터 시내를 한 바퀴 돌면서 대중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 4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는 영국 왕실이 매년 주관하는 전통의 경마대회에 이용되는 5대의 ‘애스콧 사륜마차(Ascot Landaus)’ 중 하나다. 이날 저녁에는 찰스 왕세자가 윈저성 인근 프로그모어 하우스에서 200명을 초청해 비공개 연회를 개최한다. 신랑 신부는 이날 바로 신혼여행을 가지는 않는다. 지난해 11월 약혼한 두 사람은 노팅엄 코티지에서 신접 살림을 꾸릴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리 왕자 결혼식 앞두고 엘리자베스 여왕에 공작 작위 받아

    해리 왕자 결혼식 앞두고 엘리자베스 여왕에 공작 작위 받아

    영국 해리(33) 왕자가 19일(현지시간) 결혼식을 앞두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서식스(Sussex) 공작 작위를 받았다. 버킹엄 궁은 “여왕이 웨일스 왕자 헨리(해리 왕자의 공식 호칭)에 공작 작위를 수여했다”면서 “그의 호칭은 서식스 공작, 덤바턴 백작, 카이킬 남작이 될 것”이라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서식스 공작은 잉글랜드, 덤바턴 백작과 카이킬 남작은 각각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작위에 해당한다. 서식스 공작 작위는 19세기 영국 왕 조시 3세의 6남인 오거스터스 프레더릭 왕자가 사용한 뒤로 공석이었다. 앞서 지난 2011년 결혼한 형 윌리엄 왕세손은 케임브리지 공작과 함께 스코틀랜드 스트라선 백작, 북아일랜드 캐릭퍼거스 남작 호칭을 수여받았다. 해리 왕자가 서식스 공작 작위에 오름에 따라 해리 왕자와 결혼하는 메건 마클(36)은 서식스 공작부인이 된다. 이전 서식스 공작이었던 프레더릭 왕자는 두 번에 걸쳐 결혼을 했으나 왕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 마클은 영국 왕실의 첫 번째 ‘서식스 공작부인 전하(HRH)’가 된다. 영국 왕실 전통에 따라 왕실의 남자는 결혼식날 왕으로부터 작위를 수여받는데, 라틴어로 지도자를 의미하는 ‘dux’에서 유래한 공작이 가장 높은 작위이고, 그 밑으로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등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궁예가 불 지르고 왕건이 중건한 영월 흥녕사 터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궁예가 불 지르고 왕건이 중건한 영월 흥녕사 터

    법흥사(法興寺)가 있는 강원 영월군 무릉도원(武陵桃源)면은 2016년 수주(水周)면이 이름을 바꾼 것이다. 무릉도원이 중국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이상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릉도원면으로 이름을 바꾸자 “이러다 유토피아면도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무릉도원면에는 예부터 무릉리와 도원리가 있었다. 나름대로 역사성과 동떨어진 작명(作名)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도화원기’는 어부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강을 따라 계곡 깊숙이 들어가다 복숭아꽃 만발한 살기 좋은 산속 마을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금은보화와 산해진미가 널린 호화로운 천국이 아니라 달콤한 향기가 감돌고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소박한 꿈속의 마을이다. 무릉도원면이 그런 동네다. 많은 사람이 찾아들면서 법흥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름다운 계곡에는 펜션이며 캠프장이 수없이 들어섰다.법흥사는 영월과 평창, 횡성에 걸쳐 있는 해발 1167m의 사자산 아래 자리잡고 있다. 절을 창건할 때 도승(道僧)이 사자를 타고 왔다고 하여 사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자는 부처를 상징한다. 깨달음을 이룬 이가 앉는 자리가 사자좌(獅子座)이고, 그가 말하는 진리의 가르침이 사자후(獅子吼)다. 법흥사는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한 곳으로 꼽히는 성지다. 신라승려 자장(590~658)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전수받아 643년 돌아왔다.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에 이어 마지막으로 사자산에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당시 사자산에 창건한 절 이름은 흥녕사(興寧寺)였다.진신사리란 부처의 유골이니 적멸보궁은 곧 부처의 무덤이다. 한국 불교에만 있다는 적멸보궁은 진신사리를 모신 무덤과 그 무덤을 바라보며 배례하는 전각을 가리킨다. 부처의 유골이 묻혔다면 그 산 전체가 적멸보궁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대산, 태백산, 영축산, 설악산이 모두 부처의 무덤이고, 사자산이 또한 그렇다. 흥녕사는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禪宗)이 사회 변화를 주도하던 신라 말 다시 역사에 등장한다. 철감 도윤(797~868)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을 개창한 곳은 화순 쌍봉사지만, 그의 제자 징효 절중(826~900)이 흥녕사에 머물며 선맥을 이어 감에 따라 문파의 중심지로 부각된 것이다. 흥녕사는 역사에 기록된 대로 891년(신라 진성여왕 5) 병화로 소실된 것을 944년(고려 혜종 1) 중건했다. 그 뒤 다시 불타서 천년 가까이 소찰(小刹)로 명맥만 이어 오다가 1902년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몽감(夢感)에 의하여 중건하고 법흥사로 개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은 1912년 다시 소실됐고, 1933년에는 적멸보궁을 지금의 터로 이전 중수했다고 법흥사 측는 홈페이지에 밝히고 있다. 그런데 작고한 미술사학자 호불 정영호 선생의 1969년 동국대 석사학위 논문이 ‘신라 사자산 흥녕사지 연구’다. 그는 1955년 절터를 처음 답사한 뒤 1967년과 1968년 신라오악종합학술조사단의 일원으로 현장을 다시 조사했다. 1934년생이니 일선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 35세가 되어서야 석사학위 논문을 쓴 것이다. 선생은 논문에 ‘현재 절터 일대는 경작지로 변해 지상의 유구마저 파괴되고 광활한 사역에는 주초석 몇 점만 잔존하여 청자 및 기와 조각을 수집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어 ‘유물은 모두 석조물로 고려 초기에 건립된 징효대사보인탑비를 비롯해 석조부도 2기와 석실, 석관, 석조불대좌 등이 오래된 것으로 잔존한다’고 덧붙였다. 법흥사를 두고는 ‘금세기에 들어와 흥녕사 옛터에 조영된 사찰로 선문과는 직접 관련은 없다’고 적었다.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법흥사를 돌아봤다. 법흥계곡을 따라 난 길이 끝날 때쯤 나타나는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새로 지은 일주문이 보인다. 사실 ‘새로 지은’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은 약간의 시간차가 있을 뿐 모든 전각을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 일주문에서 조금 더 차를 달리면 놀이공원을 방불케 할 만큼 넓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법흥사와 적멸보궁을 찾는다는 뜻이다. 차에서 내리면 절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적송숲이 먼저 눈길을 끈다. 이 정도의 노거수(老巨樹)가, 그것도 토종 적송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절 초입에 보이는 2층 전각은 원음루다. 부처의 가르침을 소리로 전하는 법고, 운판, 목어가 있다. 이 세 가지와 더불어 사물(四物)을 이루는 범종은 극락전 앞에 있다. 원음루에 다가가니 1층에 ‘금강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성역(聖域)이다. 정면으로 곧바로 난 산길로 10분 남짓 오르면 적멸보궁이다. 전각 안에는 다라니경을 외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밖에도 두 손을 모으고 수없이 전각을 도는 기도객들이 보인다. 전각 너머에 정영호 선생이 언급한 석분이 있다. 입구가 직사각형인 석분은 기도를 위한 돌방으로 안쪽으로는 사리를 모셨던 돌널이 있다고 한다. 다시 산을 내려오면 원음전 서쪽은 극락전 권역, 동쪽은 요사채 권역이다. 요사채 권역에 숙소로 쓰는 듯한 큼지막한 전각에 붙은 ‘흥녕원’(興寧院)이라는 편액이 눈길을 끈다. 구산선문 시절의 흥녕선원 터에서 법등(法燈)을 이어 가고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서쪽의 극락전 앞마당은 뭔가 채워지지 않은 듯 황량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극락전 오른쪽에 보이는 커다란 비석이 흥녕사터 징효대사탑비다. 비문에는 징효 절중이 출생해서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이 실려 있다. 비석은 대사가 입적하고 44년이 지난 944년(고려 혜종 원년)에 세워졌다. 왼쪽 산비탈에는 그의 부도가 있다. 비문에 새겨진 내용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절중과 후삼국의 관계다.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알려진 궁예는 오늘날 영월 남면의 세달사에서 머리를 깎았다. 양길도 멀지 않은 원주에서 세력을 키웠다. 흥녕사가 소실된 891년의 병화는 ‘북원의 적수 양길이 그 부장 궁예를 보내 백기(百騎)를 거느리고 북원 동쪽의 부락과 명주 관할인 주천 등 십여 군현을 침습하게 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학계는 본다. 궁예가 군사를 몰아 험준한 영월 지역으로 들어간 목적은 사자산문의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한편 징효대사탑비의 건립과 흥녕사의 중건은 고려 왕실이 주도했다. 탑비에 적힌 시주자 가운데 왕요군(王堯君)과 왕소군(王昭君)은 훗날 정종과 광종이 되는 태조 왕건의 아들들이다. 또 태조의 제15비 광주원부인과 제16비 소광주원부인, 혜종비 후광주원부인의 아버지인 광주(廣州)의 왕규를 비롯해 왕건의 장인들도 다수 참여했다. 결국 절중과 사자산문이 궁예와는 적대적이었던 반면 왕건과는 우호적이었음을 보여 준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칠궁(七宮)/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칠궁(七宮)/서동철 논설위원

    신분이 낮은 어머니 숙빈 최씨 때문에 영조의 고민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수없이 나온 대로 최씨는 무수리였다. 궁중에서 청소나 물 긷는 일을 하는 무수리를 한자로는 수사이(水賜伊)라고 쓴다. 무수리는 몽골말이라고 한다. 고려 말 원나라 공주가 왕실에 들어오면서 풍습과 언어가 따라왔고, 조선에도 이어졌다.최씨는 열 살 안팎에 궁궐에 들어가 숙종비 인현왕후를 섬기다 임금 눈에 들어 1693년 왕자를 갖는다. 태어난 왕자는 두 달 만에 죽었지만, 이듬해 또 다른 왕자 연잉군을 낳는다. 곧 영조다. 최씨는 1718년(숙종 44) 세상을 떠났다. 무덤은 지금의 경기 파주시 광탄면 영장동에 썼다. 영조가 어머니 사당으로 점찍은 장소는 즉위하기 전 머물던 창의궁이었다. 경복궁 영추문 서쪽인 지금의 종로구 통의동에 있었다. 하지만 왕이 거처하던 곳에 사친(私親)의 사당을 둘 수 없다고 신하들이 반대하자 영조는 청릉군의 168칸 집을 사들여 사당을 조성토록 한다. 오늘날의 청와대 서쪽 칠궁(七宮) 자리다. 영조는 즉위 직후부터 숙빈 최씨를 기리는 데 적극적이었지만, 자기 손으로 지위를 높이는 것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즉위 30년이 다 되어서야 사당을 숙빈묘(廟)에서 육상궁, 무덤을 소령묘(墓)에서 소령원으로 격상시킬 수 있었다. 이후 육상궁은 1908년 저경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이 더해져 육궁(六宮)이라 부르다 1929년 덕안궁이 옮겨지면서 칠궁이 됐다. 저경궁은 인조의 아버지인 추존왕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 대빈궁은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 연호궁은 영조의 맏아들로 세자 시절 세상을 떠난 추존왕 진종의 생모인 정빈 이씨의 사당이다. 선희궁에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 경우궁에는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 덕안궁에는 영친왕의 생모 순헌귀비 엄씨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왕비의 지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왕을 낳은 후궁의 사당을 한자리에 모았음을 알 수 있다. 숙빈 최씨가 아니라도 칠궁을 이루는 사당의 주인공들은 한 분 한 분이 조선 역사의 중요한 대목을 장식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칠궁을 한 번 둘러보려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청와대 특별 관람객만 제한적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문화재청이 칠궁의 문을 크게 넓히기로 했다고 한다. 시범 개방 기간인 6월부터 경복궁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하루 다섯 차례 시간대 중에서 골라 관람할 수 있게 된다. 역사 자원이자 관광 자원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청와대를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도 작지 않다. dcsuh@seoul.co.kr
  • 적폐 청산 시동 건 말레이시아… 90대 총리 이을 野 실세 석방

    적폐 청산 시동 건 말레이시아… 90대 총리 이을 野 실세 석방

    “부패 심해… 관련자 무관용 체포” 안와르 前부총리 연말 복귀할 듯 61년 만에 첫 정권교체를 이뤄낸 말레이시아의 새 정부가 부패 혐의와 관련해 나집 라작 전 총리 등을 겨냥한 부패청산 작업을 가동시켰다. 또 싱가포르 정부가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돼 온 국영투자기업 1MDB의 비자금 스캔들에 관해 국제공조수사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혀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지난 10일 취임한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는 선거유세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국부펀드 1MDB가 미국과 스위스, 기타 몇 개 국가들에서 돈세탁을 한 것으로 보이는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회수할 계획”이라면서 “증거가 드러나는 즉시 부패 관련자들을 체포할 것이며 어떤 타협도 없다”고 부패 척결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였다. 나집 전 총리는 2009년 국내외 자본을 유치해 경제개발 사업을 하겠다며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국영투자회사 1MDB를 설립했다. 2015년 말 1MDB에 13조원에 육박하는 부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나집 전 총리 측이 최대 60억 달러(약 6조 4000억원)의 나랏돈을 국외로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마하티르 총리는 지난 16일에도 초기 조사 결과 나집 전 행정부의 부정 행위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말레이 신정부는 1MDB 스캔들을 재조사해 나집 전 총리를 기소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19일로 예정된 마하티르 총리와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의 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말레이 경찰은 나집 전 총리의 자택과 사무실 등 5곳을 압수수색했다고 17일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검찰도 나집 전 총리와 부인 로스마 만소르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앞서 이들은 지난 12일 인도네시아행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야권연합의 실세인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는 16일 왕실에 의해 사면·석방됐다. 그는 석방 직후 “곧바로 정치 복귀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빠르면 연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 총리직에 앉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말레이 정계는 마하티르 총리가 93세로 고령이라, 안와르 전 부총리에게 머지않아 자리를 물려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월드 Zoom in] 아버지 없이 입장하는 왕자비, 복종서약도 안 한다

    [월드 Zoom in] 아버지 없이 입장하는 왕자비, 복종서약도 안 한다

    혼혈 여배우… 주례는 흑인 주교 영국민 오바마 당선 같은 기대감 정치인 대신 시민·지인만 초대 파파라치 돈 받은 부친은 불참영국 찰스 왕세자의 차남이자 영국 왕위 계승 서열 6위인 해리(34) 왕자가 19일(현지시간) 미국 여배우 메건 마클(37)과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다. 이번 결혼은 해리 왕자의 형인 윌리엄 왕세손과 평민 출신 케이트 미들턴의 2011년 결혼식보다 더 파격적인 ‘로열 웨딩’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흑백 혼혈 왕자비에 영국 왕실 사상 첫 흑인 성공회 주교의 주례, 흑인 연주자의 축하 공연 등 관례를 깬 모습이 여럿 보인다. 하지만 마클의 복잡한 가정사가 부각되면서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의 표정을 어둡게 만드는 요소도 있다. 19일 낮 12시(현지시간) 런던 원저성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열리는 결혼식에서는 마이클 커리 의장 주교가 혼배미사 설교를 한다. 커리 주교는 영국 국교인 성공회 사상 최초의 흑인 의장 주교이자 성공회 교회의 미국 최고 지도자다. 결혼 축하 공연엔 19세 흑인 첼리스트 세쿠 카네메이슨이 맡는다. BBC 방송은 “인종차별을 겪은 아프리카 출신 영국인들에게 마클은 미국에서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당선 때와 비슷한 기대감을 준다”고 전했다.2011년 형 윌리엄 왕세손 결혼식에 들러리를 섰던 해리 왕자는 이번엔 본인 결혼식에 형이 들러리를 설 것을 요청했다. 마클의 신부 들러리와 시동으로는 월리엄 왕세손의 첫째와 둘째 자녀인 조지(4) 왕자와 샬럿(3) 공주가 선정됐다. 마클은 별도로 대표 들러리는 세우지 않는다.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한 명을 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나머지 5명의 신부 들러리는 해리 왕자와 마클의 대자녀와 마클의 가장 친한 친구인 스타일리스트 제시카 멀로니의 딸이 맡을 예정이다. 멀로니의 아들 두 명은 조지 왕자와 함께 신부 시동 역할을 수행한다. 과거 왕실에서는 신부의 ‘복종’을 서약하는 관례가 있었지만 마클은 복종 서약 대신 식장에서 직접 연설할 예정이다. 하객도 주요 정치인 대신 시민과 지인들만 초대했다. 마클의 아버지와 이복오빠는 결혼식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아버지 토머스는 1979년 흑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도리아 래글랜드와 결혼해 마클을 낳고, 1987년 이혼했다. 최근 파파라치의 돈을 받고 딸의 결혼을 준비하는 사진을 찍었다는 언론 보도로 논란을 빚었다. 왕실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면서 결혼식 불참을 알려왔다. 때문에 결혼식 당일 신부가 아버지와 함께 결혼식장 복도를 걸어오는 왕실 관례도 깨지게 됐다. 이 모든 역할은 어머니인 도리아가 맡을 가능성이 크다. 마클이 20년 넘게 보지 못한 이복오빠 토마스 마클 주니어는 지난 2일 해리 왕자에게 편지를 보내 “마클은 막 굴러먹고, 천박한 여성이며 시간이 지나면 이번 결혼이 왕실 역사상 가장 큰 실수였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한편 CNN머니는 이날 결혼식 비용이 100만 파운드(약 14억 6000만원)를 넘어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수 보안 비용으로 인해 결혼식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 것이란 관측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300년 동안 왕실 지킨 ‘로열 블루다이아몬드’, 72억에 낙찰

    300년 동안 왕실 지킨 ‘로열 블루다이아몬드’, 72억에 낙찰

    300년 만에 베일을 벗은 ‘로열 블루 다이아몬드’가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됐다. 300년 넘게 유럽의 왕가에서 보관해 온 희귀 블루 다이아몬드가 최근 제네바에서 열린 경매에서 670만 달러에 낙찰됐다. 영국 BBC 등 해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푸른빛을 띠는 이 블루다이아몬드는 300년 전 세계에서 유일한 다이아몬드 광산이었던 인도 골콘다 광산에서 채굴됐다. 이후 1715년 스페인 펠리페 5세의 두 번째 왕비인 엘리자베스 파르네세(1692~1766)의 소유가 되면서 ‘파르네세 블루’(The Farnese Blue)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다이아몬드는 파르네세 왕비의 후손이 유럽의 다른 왕족과 결혼하면서 7대에 거쳐 스페인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왕족에게 유물로 전해졌다. 한때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왕관에 장식품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왕의 컬러’로 인식되는 푸른색을 띠는 이 블루 다이아몬드는 지금까지 유럽의 왕족들이 개인적으로 보관해 행방이 묘연했는데, 지난 4월 파르네세 왕비의 후손이 이를 공개하면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 경매는 현지시간으로 15일 제네바에서 열렸으며, 경매를 맡은 소더비 측은 낙찰가를 350만~500만 달러로 추정했다. 하지만 경매가 시작된 지 단 4분 만에 670만 달러, 한화로 약 72억 1500만원에 낙찰됐다. 소더비 측은 “보석의 디자인과 공예 수준이 매우 좋으며, 완벽한 다이아몬드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이 다이아몬드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300년 동안 유럽 왕가의 보물로 여겨져 온 로열 블루 다이아몬드의 새 주인의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사진=EPA·연합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세종대왕 ‘초정 행궁’ 축구장 5배로 복원 추진

    세종대왕 ‘초정 행궁’ 축구장 5배로 복원 추진

    충북 청주시가 내년 9월 완공을 목표로 초정문화공원 일원에 세종대왕 행궁(조감도)을 조성하고 있다.15일 청주시에 따르면 이 사업에는 국비와 도비, 시비 등 총 155억원이 투입된다. 초정 행궁은 현재 남아 있는 충남 온양 행궁 등 조선시대의 다른 행궁이나 행궁도 등을 참고해 건립된다. 똑같이 복원을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초정 행궁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없다. 터에 남은 흔적조차 없다. 세종대왕이 초정을 떠난 뒤 수년 후 방화범이 불을 질러 사라졌다는 내용만 전해질 뿐이다. 건립 예정지는 초정문화공원 일대의 10여 필지가 왕실 소유로 기록돼 있는 일제 강점기의 토지대장을 근거로 결정됐다. 초정 행궁의 부지 전체 면적은 축구장 5배 정도 크기(3만 8006㎡)다. 중심부에는 세종대왕이 평소 업무를 보는 공간인 ‘편전’과 잠을 잤던 ‘침전’, 세자가 사용했던 ‘왕자방’이 자리잡는다. 주변에는 학문연구기관인 ‘집현전’과 세종대왕이 먹을 음식을 만들었던 ‘수라간’이 위치한다. 집현전 옆에는 ‘독서당’이 꾸며진다. 세종대왕은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줘 학문에 전념하게 하는 사가독서제를 시행했는데, 독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전용공간이 독서당이다.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의 연결고리였던 목욕시설 ‘탕실’과 행궁의 정문에 해당하는 ‘초수문’도 재현된다. 행궁 어가가 전시될 ‘사복청’, 행궁 호위병들이 머물렀던 ‘사장청’도 배치될 예정이다. 방문객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마련된다.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전통 한옥 6동 12실, 산책로, 연못, 야외 족욕 체험이 가능한 원탕 행각, 전통찻집도 꾸며진다. 서흥원 관광과장은 “행궁이 조성되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초정 일대를 세종대왕 테마관광지로 만들 계획”이라며 “관광객들이 몰리면 초정약수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美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팔 “분노의 날” 시위 유혈 충돌

    美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팔 “분노의 날” 시위 유혈 충돌

    미국이 14일(현지시간)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고 대사관 개관식을 개최했다. 이날은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기념일이다. 팔레스타인은 격렬한 분노에 휩싸여 전역에서 대규모 반(反)이스라엘 시위 ‘분노의 날’에 돌입했다. 이날 특히 가자지구 시위가 격화하면서 이스라엘군이 실탄을 발사해 최소 52명이 숨지고 1200여명이 다쳤다.●이스라엘 축구단에 트럼프 이름 붙여 행사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과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대신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의 거리에 이스라엘 국기와 나란히 성조기를 내걸었다. 이스라엘의 프로축구 명문팀 ‘베이타르 예루살렘’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기리고자 팀 이름을 ‘베이타르 트럼프 예루살렘’으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저녁 이스라엘 외교부에서 전야제를 겸해 열린 연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를 만들고 있다. 우리 국민은 그의 대담한 결정에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면서 “예루살렘은 지난 3000년 동안 유대 민족의 수도였고 70년 동안 이스라엘의 수도였다. 영원히 우리의 수도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므누신 장관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협상에서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과 동시에 새 대사관을 개설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면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거듭 강조했다. 개관식은 물리적 충돌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삼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이스라엘은 행사장 주변 인근 교통을 차단했고 팔레스타인 접경 지역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주변에 보병 여단 3개 대대를 추가로 배치했다. 미국을 따라 대사관을 옮길 예정인 과테말라, 파라과이를 비롯해 난민 문제 등으로 유럽연합(EU)과 대립 중인 헝가리와 루마니아, 체코 등의 대표단이 개관식에 참석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지역의 대표단은 불참했다.●교통 차단·3개 대대 추가 배치 ‘삼엄’ 국제사회가 이번 문제의 매듭을 풀어낼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유엔 등 국제기구는 그간 수차례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 예루살렘 수도 주장 등을 비판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했다. 팔레스타인은 외로운 투쟁을 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슬람 수니파 맹주 사우디는 이스라엘, 미국과 함께 반이란 연대 구축을 모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가 미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에 동조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앞서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면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사우디 국영언론은 서방 외신을 인용해 팔레스타인의 반대 시위, 미 대사관 이전 소식을 인용해 보도했고 왕실이나 외무부도 따로 비판 성명을 내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이 분노의 날 시위로 저항을 시작한 가운데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미국 대사관 이전에 대해 “모든 아랍인, 아랍 국가에 대한 도발”이라고 반발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100만명의 순교자를 이스라엘에 보내겠다”고 경고했다.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미국이 현대판 십자군전쟁을 하겠다는 진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면서 “이 전쟁에서 후퇴와 유화정책은 소용없다”며 미국에 맞서는 성전(지하드)을 촉구했다.이날 가자지구에서는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가자지구 북쪽 분리장벽을 돌파하기 위해 타이어를 태워 연기를 피우면서 이스라엘군의 시야를 가리고 분리장벽으로 향했다.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이스라엘군은 실탄을 쐈다. 14세 소년을 포함해 최소 52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숨지고 1200여명이 다쳤다. 일일 사망자로는 2014년 7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집중 폭격한 이후 최다다. 시위가 격화하면서 사상자 수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 관광 케이블카 설치 논란 한편 이스라엘 정부는 개관식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서예루살렘과 동예루살렘을 잇는 관광 케이블카 설치 프로젝트를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케이블카 설치는 기존의 서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점거한 동예루살렘에 대한 관할권까지 강화하는 조치다. 야리브 레빈 이스라엘 관광장관은 “케이블카 프로젝트는 관광객과 방문객들이 통곡의 벽에 더 쉽고 편하게 접근하게 함으로써 예루살렘을 바꿔 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역사 속 행정] 소장파 청요직의 기득권 견제책

    [역사 속 행정] 소장파 청요직의 기득권 견제책

    정당성 강변 위해 일시 사직 ‘피혐’ 5품 이하 신원·도덕성 검증 ‘서경’ 비리 소문만으로 처벌 ‘풍문 탄핵’조선시대 청요직이란 홍문관과 사간원, 사헌부, 예문관 등 주요 부처의 당하관(중하위직) 관직이었다. 당상관(임금이 회의를 열 때 당상에 오를 수 있는 고위직)에 오르기 전 실무를 책임지는 소장파 관료들이었다. 이들은 국왕과 공신 등 기득권 세력이 국정 운영에서 독점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강한 연대를 구축하고 공정성을 명분 삼아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 특히 청요직들은 다양한 형태로 언론(국왕에게 직언하는 것)개혁을 추진했다. 언론관행은 법전에 규정된 고유 권한은 아니지만 대간 활동과정에서 그 필요성이 인정돼 사실상 대간의 권한으로 자리잡았다. 대간이란 언론기관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감찰관 계열의 대관과 간쟁관 계열의 간관(국왕의 과오를 지적하는 일을 하는 관리)을 합친 용어다. 성종 때 정착된 대표적 언론관행으로는 피혐과 서경, 풍문 탄핵을 들 수 있다. 피혐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난을 피하고자 일시적으로 사직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대간만이 피혐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간에서 피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왕권 견제에 나섰다. 실제로 대간은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집단적으로 피혐을 요청해 정당성을 강변했다. 동료가 어떤 사안을 주장하다가 국왕의 노여움을 사 처벌받으면 대간 전체가 피혐을 청해 연대 책임을 졌다. 대간 내부 회의 모임인 ‘원의’ 석상에서 동료들과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할 경우 소수 의견을 가진 이가 피혐을 통해 자진 사퇴했다. 이를 통해 형식적이나마 대간의 주장이 만장일치 공론으로서 위상을 갖게 됐다. ‘처치’는 대간의 피혐에 대해 그 적절성을 따져 사직(벼슬에서 물러남)이나 체직(벼슬을 바꿈)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를 말한다. 처음에는 국왕이 처치의 주체였지만 16세기를 넘어서면 홍문관(왕실 문헌 관리기구)이 맡게 된다. 처치의 주체가 왕에서 언관으로 바뀌면서 피혐에 따른 대간의 교체가 그만큼 잦아져 조선 후기에는 폐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서경’은 대간에서 5품 이하 관직에 임명된 관료들의 신원을 조사해 그 적절성을 가리는 일을 뜻한다. 성종대에 이르러 청요직들은 서경을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간쟁에 소극적이거나 국왕과 대신에 아부를 일삼는 이들의 관직 임명 시 대간에서는 그에 대한 서경을 거부해 결국 임명이 취소되게 했다. 또 일상생활에서의 청렴도와 도덕적 흠결 여부도 서경의 통과 요건에 포함시켜 도덕적 권위가 갖는 위상을 높였다. 청요직 당하관들은 서경에 통과하고자 언론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수준의 도덕성도 갖춰야 했다. 풍문 탄핵은 말 그대로 실제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소문만으로 관리를 탄핵하는 것이다. 조선 초기만 해도 왕의 입장에서는 대신에게 일부 비리가 있다고 해도 자신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려면 이를 눈감아 줘야 해 풍문 탄핵이 어려웠다. 하지만 성종 때부터 언론이 활성화되면서 풍문에 입각한 탄핵활동이 크게 늘었다.결국 대간의 대표적인 언론관행인 피혐과 서경, 풍문 탄핵 등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언로를 넓혔고 언론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이들의 노력이 왕권을 도덕적 권위와 대비시켜 상대화함으로써 공적 정치 운영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청요직들은 공론으로 표방되는 언론을 매개로 ‘도덕적 권위’를 강조하며 국정 현안에 대해 시비 분별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 때문에 왕권은 도덕적 권위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될 때 그 정당성이 용인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한국행정연구원 ‘역사 속 행정이야기’ 요약 송웅섭 연구원(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 작품도, 80세 미술관도 걸작

    작품도, 80세 미술관도 걸작

    6개의 웅장한 코린트식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완벽한 대칭과 건축적 미가 감흥을 준다. 국내에서 고전주의 미학을 오롯이 구현한 근대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건물에는 역사의 비운도 서려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일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1880~1963)의 설계로 지어져 조선 왕실의 미술품을 전시한 ‘이왕가 미술관’으로 활용된 것. 당시 일본 총독부는 고종황제의 마지막 거처였던 석조전(현재 대한제국역사관)에는 일본 근대미술을 전시하며 이왕가 미술관의 소장품과 대비해 조선 미술을 열등한 것으로 몰아 갔다.●건물도 작품… ‘덕수궁관 8경’ 선정 올해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이왕가 미술관으로 지어진 지 80주년이자 국립현대미술관이 ‘근대미술 중심 미술관’이 된 지 20주년이다. 이를 되새기기 위해 미술관 자체가 지닌 근대의 굴곡과 근대 예술 작품들을 한데 조망하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관에서 10월 14일까지 여는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전이다. 작품뿐 아니라 덕수궁관이라는 건물 자체의 역사적 의미와 건축 미학도 전시의 일부라는 게 이번 기획의 방점이다. 미술관 측은 덕수궁관 정면 모습, 옥상으로 연결된 원형 계단, 덕수궁관의 중앙홀, 덕수궁관과 대한제국역사관의 연결 다리 등 ‘덕수궁관 8경’을 선정해 관람객들이 관람 동선에 따라 미술관이 곧 전시를 완성하는 곳임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2014년 11월 일본에서 발굴된 개관 당시의 덕수궁 미술관 설계도(1936~1937년 작성)도 처음 일반에 공개된다.●발굴·소장 뒷얘기 등 역사 한눈에 전시장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이후 모아 온 주요 근대 미술 작품과 발굴·소장의 뒷이야기 등 작품을 둘러싼 역사도 한눈에 꿸 수 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이 처음 한국 근대 미술을 조명한 1972년 전시 ‘한국근대미술 60년’에 나와 미술관 소장품이 된 작품들은 교과서에서 익히 봐 온 한국 미술의 대표작이자 현재는 천문학적 금액의 가치를 지닌 걸작이기도 하다.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 이중섭의 ‘투계’, 고희동의 ‘자화상’, 김기창의 ‘가을’ 등 풍성한 컬렉션이 관람객을 맞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씨줄날줄] 복병 만난 ‘대고려전’/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복병 만난 ‘대고려전’/황성기 논설위원

    올 연말 전시를 앞두고 있는 ‘대고려전’이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대고려전은 고려 건국 1100년을 맞아 세계사적으로 ‘KOREA’를 널리 알린 고려(918~1392년)를 고찰해 보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야심 찬 기획이다. 첫째 복병은 해외에 있는 고려 문화재를 빌려 오는 게 순탄치 않은 점이다. 한·일 관계가 해빙되고 있다지만 우리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일본 측이 마음을 열지 않고 임대를 꺼리고 있어서다. 교류가 있는 국공립박물관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사립박물관, 사찰로부터 빌리려는 고려 불화·불상, 나전칠기 등은 대전고법에 계류 중인 ‘도난 불상 사건’ 여파로 애를 먹고 있다.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직지심체요절’(1337년 간행)도 사정은 비슷하다. 프랑스 측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가 한국 내에서 전시되는 동안 우리 정부가 한시적으로 압류나 몰수를 금지한다’는 압류면제법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반드시 직지를 돌려준다는 ‘보험’을 프랑스가 요구한 셈인데, 국회에서 논의하다가 지금은 답보 상태다.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직지를 국내에서 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른 복병도 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전시 기간(12월 4일~2019년 3월 3일) 중 서울에 모셔 온다는 계획이지만 그리 간단치 않다. 해인사 본사와 말사의 주지 회의가 조만간 열리는데 여기서 승인하지 않으면 대장경 반출은 어렵다. 해인사 대장경은 두 차례 바깥나들이를 했다. 1993년 ‘한국의 책문화 특별전’에 대장경 2매, 2010년 ‘국제기록문화전시회’에 1매가 바깥 바람을 쐰 것이다. 밝은 소식도 있다. 4·27 남북 정상회담으로 문화예술체육 분야 교류에 물꼬가 트인 것은 숱한 복병 속에 다행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북한 국보 ‘고려 태조(왕건)상’ 등 50점을 임대한다는 방침이다. 50여점에는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한 개성 만월대에서 나온 금속활자 등이 포함돼 있다. 박물관은 대고려전에 ‘국제도시 개경과 고려 왕실의 미술’ 코너도 두는데, 북한의 협조를 기대하고 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4월 3일 평양에서 만난 박춘남 문화상에게 대고려전에 북한의 참여를 제안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역사적인 ‘고려 1000년’ 1918년은 일제강점기로 어떤 기념행사도 치르지 못했다. ‘고려 1100년’ 2018년은 남북이 고려를 통해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대고려전이 불교가 꽃피운 고려 문화의 정수, 팔만대장경의 출품 등으로 더 풍성해졌으면 한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새근새근… 모습 드러낸 英 루이 왕자

    새근새근… 모습 드러낸 英 루이 왕자

    영국 왕실이 최근 태어난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셋째 아이인 ‘루이 아서 찰스’ 왕자의 사진을 공개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왕실은 루이 왕자가 쿠션에 기댄 사진, 누나인 샬럿(3) 공주가 잠자는 루이 왕자에게 입 맞추는 모습 등 2장의 사진을 배포했다. 이 사진은 윌리엄 왕세손 가족의 거처인 켄싱턴 궁에서 루이 왕자의 어머니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이 직접 촬영했다. 루이 왕자의 독사진은 출생 사흘 만인 지난달 26일, 샬럿 공주와 함께한 사진은 공주의 생일인 지난 2일 각각 찍었다. 루이 왕자는 할아버지인 찰스 왕세자, 아버지인 윌리엄 왕세손, 형 조지(4) 왕자, 누나 샬럿 공주에 이어 영국 왕위계승 서열 5위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루이 왕자 이마에 샬럿 공주가 뽀뽀…英 왕실 사진 공개

    루이 왕자 이마에 샬럿 공주가 뽀뽀…英 왕실 사진 공개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의 막내인 루이 왕자에게 둘째인 샬럿 공주가 뽀뽀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켄싱턴궁은 6일 공식 트위터(@KensingtonRoyal) 계정에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이 촬영한 루이 왕자의 사진 두 장을 공개했다. 그 중 첫 번째 사진은 샬럿 공주가 잠들어 있는 루이 왕자의 이마에 뽀뽀하는 모습으로, 지난 2일 샬럿 공주의 세 번째 생일에 촬영한 것이다. 나머지 한 장은 루이 왕자가 쿠션에 기대어 있는 모습으로, 지난달 26일 루이 왕자의 생후 3일째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켄싱턴궁은 트위터를 통해 “윌리엄 왕세손 부부는 샬럿 공주와 루이 왕자의 모습이 담긴 두 사진을 공유하게 돼 매우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 두 사진은 공개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첫 번째 사진은 지금까지 ‘좋아요’(추천) 4만 회, ‘리트윗’(공유) 7000회 이상, 두 번째 사진은 ‘좋아요’ 2만2000회, ‘리트윗’ 3400회 이상을 기록했다. 사진=영국 켄싱턴궁/트위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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