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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찰스 3세 대관식 초청장에 ‘커밀라 왕비’ 공식 표기… 과거 불륜 낙인에 호칭 논란

    찰스 3세 대관식 초청장에 ‘커밀라 왕비’ 공식 표기… 과거 불륜 낙인에 호칭 논란

    영국 왕실이 5일(현지시간) 공개한 찰스3세 국왕 대관식 초청장에 ‘커밀라 왕비’라는 공식 칭호를 처음 사용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커밀라 왕비는 이번 대관식을 계기로 ‘콘월 공작부인’이었던 호칭이 격상하면서 영국 왕실의 명실상부한 왕비가 됐다. 찰스 3세는 사별한 다이애나비 생전에 커밀라와 불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왕비란 호칭을 부여할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해 2월 즉위 70주년 기념 성명에서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부인 커밀라를 왕비로 인정하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호칭이 정리됐다. 초청장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찰스 3세의 뜻을 반영해 재생 종이로 만들어졌다. 표지에는 담쟁이덩굴과 산사나무, 참나무 잎 등이 그려졌다. 초청장 하단부에는 성장과 순환을 상징하는 영국 전설 속 존재 ‘그린맨’도 등장한다. 영국 왕실은 이 초청장은 새로운 왕의 통치를 기념하는 봄과 부활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다음달 6일 웨스티민스터 사원에서 열리는 대관식 초청장은 2000여명에게 발송된다. 미국은 질 바이든 여사가 대리 참석한다. 왕실을 떠나 찰스 3세와 갈등을 빚고 있는 해리 왕자 부부의 참석 여부는 미정이다.
  • 태국 왕실, 한국 아이돌에 ‘두 번째 왕비’ 제안

    태국 왕실, 한국 아이돌에 ‘두 번째 왕비’ 제안

    바다가 태국 왕비가 될 뻔한 사연을 고백했다. 5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는 바다, 조현아, 코드 쿤스트, 김용필이 출연했다. 바다는 S.E.S 당시 피피섬으로 촬영을 갔다고. 그는 “우리가 큰 요트에서 촬영하고 있었는데 훨씬 더 큰 요트가 다가오더라. 의문의 여성이 내렸고, 그 여자 열 손가락에 모두 루비 사파이어 반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여자가 한국인인데 ‘너네 타고 있는 건 내가 빌려준 거야’라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바다는 “의문의 여성은 나를 요트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분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알고 보니 태국 왕실이었다. 내 관상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며 “두 번째 왕비를 제안했다. 결혼하면 100대가 먹고 산다 말했다. 어른들하고 얘기하겠다고 번호를 달라고 했다”고 일화를 전했다.
  • 경복궁·덕수궁에서 맞는 고품격 봄

    경복궁·덕수궁에서 맞는 고품격 봄

    봄이 찾아온 경복궁과 덕수궁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오는 5일부터 10월 30일까지 경복궁 집옥재 권역 전각 내부를 독서 공간으로 조성해 일반에 개방한다. 집옥재는 ‘옥처럼 귀한 보배(서책)를 모은다’라는 의미를 가진 전각으로 고종이 서재 겸 집무실로 사용하며 외국 사신들을 접견했던 장소다. 현재는 집옥재의 건립취지를 반영해 내부 공간에 조선 왕실문화를 엿볼 수 있는 왕실자료 영인본(원본을 사진 등으로 복제한 인쇄물)과 다양한 역사 서적을 비치했다. 경복궁의 경치가 잘 보이는 팔우정은 독서를 하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개방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로 경복궁 찾은 관람객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덕수궁에서는 오는 11월부터 5월 11일까지 대한제국의 황궁인 덕수궁 석조전을 야간 관람으로 즐길 수 있다. 관람객들은 해설사와 함께하는 ‘석조전 야간 탐방’과 덕수궁의 야경을 조망하며 클래식 공연과 함께 가배차(커피)와 서양식 후식(디저트)을 즐기는 ‘테라스 카페 체험’과 뮤지컬 ‘고종-대한의 꿈’을 감상하게 된다. 또한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인화해 가져갈 수 있다. 하루 3회차에 걸쳐 진행하며 4일 오후 2시부터 회당 16명까지 선착순 예매 가능하다. 궁능유적본부는 “봄을 맞아 진행되는 이번 문화행사들을 통해 관람객들이 궁궐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궁궐에 깃든 역사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청백의 조화가 주는 여유/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청백의 조화가 주는 여유/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꽃도 기후변화에 흔들린다. 평년보다 기온이 높은 탓에 꽃 소식도 앞당겨졌다. 매화 지나간 지 이미 오래고, 남쪽에서는 벌써 벚꽃이 지고 있다 한다. 서울에도 개나리가 만개했고, 볕이 좋은 곳엔 진달래도 피었다. 봄의 전령들이 성급하게 움직인다.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니 예나 제나 꽃은 미술의 주요 소재가 됐다. 붓을 이용해 문양을 그리게 되면서는 도자기에도 자유롭게 꽃을 그렸다. 청화 안료로 그림을 그린 망우대(忘憂臺)명 전접시에도 꽃이 있다. 접시 오른쪽 아래는 국화과의 꽃 몇 송이가 보이고, 위에는 벌이 그려졌다. 꽃은 우리네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망초나 금계국을 닮았다. 꽃향기를 맡고 호박벌 같은 통통한 벌이 날아든다. 그릇 가운데 반듯한 정자체로 망우대라고 썼다. 전접시는 테두리가 띠처럼 달린 접시를 말한다. 조선 전기인 15세기 말 경기 광주에서 만든 질 좋은 고급 백자다.조선 전기부터 청화 안료를 이용해 자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회청이라 불린 청화는 코발트를 말한다. 중국에서 수입한 값비싼 안료로 금보다 훨씬 비쌌다고 한다. 코발트 산지는 아프가니스탄과 중동 지역이니 그 옛날에 멀고 먼 길을 돌아 조선까지 들어온 셈이다. 청화백자를 처음 만든 것은 원나라 때였는데 도자기 산업에서 대단히 중요한 발전이었다. 도자기에 문양을 찍거나 다채로운 유약을 발라 무늬를 내던 방식에서 벗어나 도자기 표면을 화폭으로 삼아 자유자재로 그림을 그리게 됐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장식적인 도안을 그리다가 점차 그림이 자유분방해졌다. 그림을 잘 그리는 전문 화가가 도자기에도 그림을 그렸다. 조선에서는 솜씨 좋은 왕실 소속의 도화서 화원이 도자기 가마에 내려가 그림을 그렸다. 값비싼 안료로 그리는 것이니 붓질 한 번 삐끗하면 곤란하다. 조선 전기에는 화원이 되기 위해 과거시험처럼 그림도 시험을 봐야 했다. 시험으로 선발된 화원들이니 당연히 솜씨가 좋았고, 비싼 청화를 버릴 위험도 줄었다. 조선은 사대부들의 검소한 취향을 반영해 순백의 백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대부들도 눈이 있고 감각이 있다. 수입품인 청화값이 비싸다고 세종 때는 국내에서 청화를 찾으라고 명을 내렸지만 쉽지 않았다. 오히려 청화백자는 조선 자기의 대세로 등극한다.처음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백자 전면에 그림을 가득 메운 청화백자를 만들었지만 점차 조선 취향을 반영해 소박하면서도 아취가 있는 그림을 그렸다. 망우대명 전접시처럼 한쪽에만 그림을 그리고 여백을 두어 보는 이가 맘껏 상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국인들은 표면을 꽉 채운 그림을 보면 답답해한다. 화려하지 않으나 한가롭고, 상쾌한 정취를 즐기면서 모든 근심을 잊으라는 ‘망우’ 뜻을 봄밤에 되새겨 본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전시 중이다.
  • 마가리타 공주의 초상화,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광 그리고 역변의 아이콘[으른들의 미술사]

    마가리타 공주의 초상화,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광 그리고 역변의 아이콘[으른들의 미술사]

    얼마 전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장품 전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 전시는 한국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합스부르크 왕가가 소장한 바로크 회화와 각종 공예품을 비롯해 고종이 요제프 황제에게 선물한 투구와 갑옷 등을 선보였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 포스터는 5살짜리 마가리타 공주(Margarita María Teresa·1651~1673)를 그린 초상화였다. 이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누구길래 이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일까.빈 미술사 박물관에는 마가리타 공주의 초상화만 따로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 이 전시실에는 스페인 궁정화가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1599~1660)가 그린 마가리타 공주의 2살, 5살, 8살, 9살 모습의 초상화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스페인 공주의 초상화가 고국 스페인보다 타국인 오스트리아에 더 많은 셈이다.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군사적 동맹으로 맺어진 결혼 마가리타 공주는 1651년 스페인 펠리페 4세와 두 번째 부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나 대공비 사이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마가리타는 그 시절 공주들이 그랬듯이 태어나면서 이미 혼처가 정해져 있었다. 공주의 미래 남편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레오폴트 1세(Leopold I·1640~1705)였다. 이 결혼은 마가리타 공주의 친할아버지이며, 레오폴트 1세에게는 외할아버지인 펠리페 3세가 오래 전에 기획한 것이었다. 17세기 강국 프랑스와 경계를 맞댄 두 나라 즉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은 협력하여 프랑스의 힘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마가리타 공주의 결혼은 양국 간 군사적 동맹의 필요에 의해 맺어진 일종의 계약이었다.  거대한 영토를 지키고 혈통 보호를 위한 근친 결혼 전통  마가리타와 레오폴트 1세 부부는 사촌 사이로 근친 간 결혼의 전통은 16세기 초 막시밀리언 황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522년 막시밀리언 황제는 두 손자 카를 5세 황제와 페르디난트 1세에게 땅을 물려주었다. 이때 합스부르크는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라는 두 나라로 나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두 나라의 거대한 영토를 지키고 혈통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대에 걸쳐 근친혼을 적극 추진했다. 마가리타의 부모 역시 사촌지간이었다. 유럽 왕실의 결혼은 사랑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 재산과 정치, 군사력 간 궁합이 첫 번째 조건이다. 서로의 결혼 조건이 충족되자 미래 시댁은 며느리인 마가리타 공주의 외모, 체형, 질병 등을 확인할 목적으로 전신 초상화를 요구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는 장차 미래의 며느리가 될 아이의 커가는 모습이 궁금했고 스페인 합스부르크 처가에서는 답신으로 마가리타 공주의 변화 과정을 초상화에 담아 2-3년 간격으로 보냈다. 근친 결혼으로 인한 턱 부정교합 증상 유전병  빈 미술사 박물관 전시실에는 벨라스케스가 그린 4점 외에도 다른 화가들이 그린 마가리타 공주의 초상화가 함께 걸려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벨라스케스가 그린 공주의 초상화와 확연히 구분된다. 작가가 다르니 결과가 다를 수 밖에 없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10대 들어 마가리타 공주의 외모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합스부르크 턱이라 부르는 부정교합 증상이었다. 이 증상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람들이 보인 후천적 외모 변화를 이르는 말이다.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2차 성징이 나타날 무렵 유난히 턱 골격이 발달했다. 이 증상은 대를 이어온 근친상간으로 유전병이 누적된 결과였다. 이로 인해 마가리타 공주는 커가면서 인물이 어릴 적만 못하다는 의미로 역변의 아이콘이 되었다.  외모의 단점을 가린 통치자의 초상화 전략  마가리타 공주의 아버지 펠리페 4세도 턱이 길어지는 증상 때문에 초상화를 그릴 때 화가들이 꽤 애를 먹었다. 예로부터 통치자의 초상화는 이상화 전략을 쓴다. 즉 외모의 단점은 가리고 장점은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향한 뽀샵의 유혹은 이처럼 역사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초상화는 특정 인물에 대한 회화적 기록이기 때문에 엉뚱하게 그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영리한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의 턱을 수염으로 교묘히 가려 펠리페 4세의 단점을 가리고 초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완벽한 뽀샵 능력을 보여준 화가였기에 마가리타 공주 입장에서는 벨라스케스의 사망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1666년 마가리타는 15세에 26세의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그러나 마가리타 공주는 7번째 아이를 낳다 22세 짧은 생을 마감했다. 비록 마가리타 공주의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하나 5살 꼬마의 초상은 17세기 두 합스부르크 왕가의 연합을 상징하는 그림이 되었다. 마가리타 공주의 초상화 이면에는 17세기 강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운명이 펼쳐지고 있었다.  
  • 골든블루, 수입맥주 ‘칼스버그’ 유통 중단…“일방적 계약해지” 반발

    골든블루, 수입맥주 ‘칼스버그’ 유통 중단…“일방적 계약해지” 반발

    골든블루는 칼스버그 그룹으로부터 덴마크 왕실 공식 맥주인 칼스버그(Carlsberg) 유통을 중단한다는 계약 해지 통지서를 받았다고 28일 밝혔다. 이에 따라 31일 이후 칼스버그 맥주의 모든 유통을 중단하게 된다. 골든블루는 2018년 5월 칼스버그 그룹과 수입 및 유통 계약을 맺고 지금까지 국내 수입맥주 시장에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왔다. 골든블루에 따르면 칼스버그는 지난해 10월 국내법인을 설립하고 자체 유통, 마케팅, 물류 조직을 구성하는 등 계약 해지를 위한 사전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골든블루 측은 “이번 계약 해지 통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라며 “2022년 1월 이후 칼스버그 그룹은 골든블루와 칼스버그 수입·유통 계약을 2~3개월 단기 단위로만 연장해 왔고, 2022년 10월 이후에는 단기 계약마저도 맺지 않은 무계약 상태에서 골든블루가 칼스버그를 유통하는 사태가 지속돼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안정한 계약 관계 하에서도 계약 연장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갖고 시장 침체의 어려움에도 지속해 인력과 비용을 투입하고 손해를 감수해 가면서까지 칼스버그의 유통 공백 없이 지금까지 정상적으로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골든블루 측은 칼스버그 그룹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고 꼬집고 있다. 회사 측은 “계약 해지일을 캔 제품의 경우 3월 31일, 병과 생맥주 제품은 8월 31일로 통보함으로써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날짜로 못 박았다”고 전했다. 골든블루는 이번 사태를 글로벌 주류회사 갑질 및 다국적 기업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라고 규정하고, 덴마크 대사관 방문, 공정위 제소, 법적 소송 등을 전개해 일방적인 계약 해지의 부당성을 알리고 그에 따른 손해 배상도 청구할 계획이다.
  • 어머니 죽음 복수 나선 해리 왕자…언론 상대 소송 법원 출석

    어머니 죽음 복수 나선 해리 왕자…언론 상대 소송 법원 출석

    영국 해리 왕자가 유명인의 개인적 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했다며 데일리 미러를 상대로 벌인 소송의 예비심리에 출석해 눈길을 끌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27일(현지시간) 가수 엘튼 존 등 유명인 7명이 타블로이드지를 대상으로 낸 이번 소송은 파파라치에 쫓기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어머니 고 다이애나비의 죽음에 해리 왕자가 복수에 나선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 왕실을 떠나 미국에 살고 있는 해리 왕자의 귀국은 지난해 할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 이후 처음으로 그가 얼마나 이번 소송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준다. 해리 왕자는 재판정에서 검은색 작은 수첩에 메모하며 주의 깊게 경청했다. 이번 소송은 해리 왕자와 가수 엘튼 존 부부, 배우 엘리자베스 헐리, 새디 프로스트 등 유명인 7명이 지난해 10월 데일리 메일 등의 발행인인 ‘어소시에이티드 뉴스페이퍼스(ANL)’를 상대로 제기한 것이다. 변호인은 데일리 메일 등이 1993~2018년 25년간 불법 정보 수집으로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구체적으로는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집과 차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뒤 통화 내용을 녹음하고, 내부 민감한 정보를 위해 경찰에게 돈을 주었으며, 의료 정보를 사기로 받아내고, 불법 수단과 조작으로 금융 거래 명세와 신용 이력에 접근했다는 것이 소송 내용이다. 해리 왕자는 고소장에서 데일리 메일 등이 적어도 2001년 초부터 2013년 말까지 자신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불법 수단을 사용했으며 형과 형수인 미들턴빈도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해리 왕자는 또 자신의 전 여자친구인 첼시 데비, 나탈리 핀크햄, 크레시다 보나스 등에 대한 기사 작성에 있어서 데일리 메일이 불법적인 정보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데일리 메일의 모회사가 어머니 다이애나비의 임종 사진을 보도한 것을 두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형인 윌리엄 왕세손과 논의한 것도 그 구체적인 사항을 언론이 파악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의 불법적 활동으로 10대 시절 중요한 순간을 박탈당했으며, 자신과 친구들이 용의자 취급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언론 활동으로 신변 안전에 위협을 받았고, 1997년 어머니 다이애나비의 사망 이후 언론이 약속했던 것을 위반한 행동이라고 덧붙였다.해리 왕자는 언론의 불법 행위 증거로 자신과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데이트했던 전 여자친구 데비에 관한 데일리 메일의 기사 14건 등을 제출했다. 이 기사들이 휴대전화 해킹, 도청 등으로 작성됐다는 것이다. 반면 데일리 메일 발행인 측은 성명에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원고들이 이 의혹에 관해 파악한 이후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으므로 소송이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법정에는 엘튼 존 부부도 출석했다. 이들은 집 전화가 도청됐으며 개인 비서와 정원사들도 데일리 메일 등의 표적이 됐다고 밝혔다.
  • 베르나르도X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러, 콜라보한 와인보틀 및 고블렛 잔 국내 전시

    베르나르도X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러, 콜라보한 와인보틀 및 고블렛 잔 국내 전시

    프랑스 포셀린 브랜드 ‘베르나르도는 전 세계 와인 애호가에게 사랑받는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와 협업을 기념해 지난 24일 ‘베르나르도 한남’ 매장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뉴욕에 이어 열렸으며, 상징적인 몬다비 와이너리 한정판 MCMLXVI 와인 보틀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아 베르나르도에서 선보인 와인 보틀과 고블렛 잔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양사는 오랜 역사를 유지하고 혁신과 탁월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파트너십의 의미를 더했다. 특히 유니크한 디자인의 고블렛 잔은 와인을 마시는 경험을 향상시키도록 설계됐다. 해당 제품들은 오는 4월 23일까지 베르나르도 한남을 방문하면 전시품으로 만날 수 있다. 한편, 150년 이상의 헤리티지를 지닌 ‘베르나르도’는 오랜 기간 사랑받는 클래식 제품부터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한 혁신적이고 유니크한 제품까지 프렌치 럭셔리와 장인 정신의 정수를 전하고 있다. 재료, 기술, 디자인을 기반으로 유럽 내 여러 국가의 왕실, 전 세계 특급 호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수환 추기경 등 시복시성 추진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수환 추기경 등 시복시성 추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23일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의 시복시성 추진을 선언했다. 조선대목구 초대 대목구장 바르텔미 브뤼기에르(1792∼1835) 주교와 한국 순교 복자 가족 수도회 설립자 방유룡(1900∼1986) 신부의 시복시성도 함께 추진한다. 시복시성은 가톨릭교회가 성덕이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나 순교자에게 공식적으로 복자(福者)나 성인(聖人)의 품위에 올리는 예식이다. 성인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복자는 해당 지역 가톨릭교회가 모시게 된다. 국내에는 김대건(1821~1846)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한 103명의 성인과 124명의 복자가 있다. 정 대주교는 이날 서울 중구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회의에서 “정식으로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하고 오랜 노력과 기도가 필요한 여정이지만, 세 분의 시복시성을 위해 이 시간부터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왕실의 박해로 고통받던 교회 지도자들이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 신부의 순교 이후 교황청에 성직자 파견을 요청해 1831년 조선대목구장에 임명된 인물이다. 당시 선교활동이 엄격히 금지됐던 중국을 관통하는 데 3년이 걸려 조선 입국을 목전에 두고 선종했다. 중국에서 선종해 관할권이 중국 교구에 있었지만 교황청의 검토 끝에 지난 1월 12일 관할권이 한국으로 이전됐다. 김수환 추기경은 1968년 제11대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후 1998년 퇴임까지 30년간 교구장으로 사목했다. 개인적 덕행의 모범과 한국교회의 성장과 위상을 높인 공헌,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헌신 등으로 많은 이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한국 종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방유룡 신부는 가톨릭 신앙을 동양적 정서 속에 녹여낸 고유한 수도 영성을 만들었고, 그가 만든 한국순교복자 가족 수도회는 이를 바탕으로 순교자 현양 사업에 앞장서 왔다. 신자들의 순교 신심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해 79위 복자(1925년 시복) 이후 24위 복자(1968년), 103위 성인(1984년), 124위 복자(2004년) 탄생 등 시복시성의 밑거름이 됐다. 시복시성은 우선 국내 관련 절차를 통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후 로마 교황청 시성부에 전달돼 시성부 주교 및 추기경 위원들의 추가 검증을 거쳐 교황의 승인으로 시복시성이 이뤄진다.
  • 왕실 지위 박탈에 ‘분노’…덴마크 왕자 가족 미국 이주 계획

    왕실 지위 박탈에 ‘분노’…덴마크 왕자 가족 미국 이주 계획

    덴마크 마르그레테 2세(83) 여왕의 차남으로 덴마크 왕위 계승 서열 6위였던 요아킴 왕자(54)가 가족들을 이끌고 미국으로 이주할 계획을 밝혔다. 지난 16일 덴마크 현지 언론과 영국 데일리메일 등은 요아킴 왕자가 지난해 9월 자신의 네 자녀에 대한 왕실 지위를 박탈한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결정에 불만을 품고 일찍이 해외 이주에 대한 의사를 결정했으며, 그 최종 목적지가 미국 워싱턴 DC가 됐다고 보도했다. 요아킴 왕자의 미국 이주에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결정으로 지난 1월 1일부터 요아킴 왕자의 네 자녀인 니콜라이(24), 펠릭스(21), 헨리크(14), 아테나(11)에게는 각각 왕자와 공주라는 기존의 호칭 대신 ‘몬페자트 백작’이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당시 왕실은 이 같은 결정을 내리는 이유에 대해 ‘여왕이 네 명의 손자, 손녀가 덴마크 왕실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훨씬 더 큰 범위에서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성명서를 공고한 바 있다. 이는 최근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왕실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여론에 호응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실제로 마르그레테 여왕은 즉위 후 매년 치러지는 왕실 기념식 행사 규모를 줄일 것을 직접 지시하는 등 왕실의 현대화를 이끈 소탈한 성품으로 높은 국민 지지를 받고 있다. 여왕이 즉위했던 1972년 당시 덴마크 왕실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45% 수준이었으나, 지난해에는 무려 80% 수준까지 높아졌을 정도다. 하지만 요아킴 왕자의 자녀들에 대한 왕실 지위 박탈 결정이 공개된 직후 요아킴 왕자는 여왕의 방침이 언론을 통해 대중에 알려지기 불과 4일 전에 소식을 들었으며, 이에 대해 매우 불쾌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왔다. 현지 매체는 당시 여왕의 결정이 있은 직후부터 요아킴 왕자는 모친인 여왕을 포함해 장남 프레데릭 왕세자, 시누이 메리 왕세자비 등 왕실 일원들과의 만남을 일절 거부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휴가 때도 이전과 다르게 요아킴 왕자 가족들은 장기간의 해외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여왕과의 만남을 거부했다. 요아킴 왕자 측은 여왕의 방침이 왕실 규모 간소화를 위한 조치라는 것에는 긍정하면서도 무엇보다 왕실은 가족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현지 언론을 통해 “왕실 규모 축소 분위기에 대한 의견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왕실의 현대화든 규모 축소든 그것은 적절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며, 왕실 아이들이 갑작스레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무거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여왕의 결정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요아킴 왕자 측의 비판이 제기된 이후에도 여왕은 “가족들을 불쾌하게 만든 것에 대해서는 사과한다”면서도 “여왕은 항상 왕실이 시대에 맞게 형성되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의무이자 열망을 갖고 있다. 이 의무는 때때로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과 일맥하며 (나는)항상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말로 왕실 지위 박탈 조취를 취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표명해왔다. 왕실 규모를 축소해 덴마크 왕실이 앞으로도 존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설명이다. 한편, 덴마크 왕실 왕위 계승 서열 순위는 여왕의 장남인 프레데릭 왕세자가 1위이며, 그의 4명의 자녀들은 여전히 왕실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2~5위까지 왕위 계승 순위에 올라있다. 
  • 이억기, 왜적 서진 봉쇄 ‘수훈’… 이순신 도와 남해안 제해권 장악[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이억기, 왜적 서진 봉쇄 ‘수훈’… 이순신 도와 남해안 제해권 장악[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조선수군이 왜적의 서진(西進)을 철저히 봉쇄한 결과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다면 그 공적의 상당 부분은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1561~1697)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경상우수사 원균의 갈등이 전쟁을 한때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억기는 뛰어난 상황판단 능력과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품으로 전라우수군을 이끌고 이순신을 도와 조선수군이 남해안 제해권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억기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이 전쟁의 결과는 훨씬 참혹했을지도 모른다.●왕실 배경 출세가도… ‘신화적 인물’로 임진전란사 연구자들에 따르면 당시 전라좌수영과 전라우수영은 매우 불균형했다. 전라좌수영은 순천, 보성, 낙안, 흥양, 광양의 5관과 방답, 사도, 녹도, 발포, 여도의 5포로 이루어져 있었다. 관(官)은 수군 소속 지방행정기관, 포(浦)는 수군기지를 이른다. 그런데 전라우수영은 전라좌수영의 두 배가 훨씬 넘는 14관 12포였다. 장흥, 강진, 해남, 진도, 영암, 나주, 무안, 함평, 영광, 무장, 흥덕, 고부, 부안, 옥구 등 서남해안 고을이 망라됐다. 수군기지도 임치, 목포, 다경포, 법성포, 검모포, 군산포, 가리포, 회령포, 금갑도, 어란, 남도포, 이진 등 서남해안을 감싸고 있었다. 개전 초기만 해도 이순신과 이억기는 같은 정3품 수군절도사였지만, 위세는 나이가 열여섯 살이나 적은 이억기가 이순신을 압도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억기는 정종의 아들인 덕천군 이후생의 후손이다. 덕천군이 고조, 신종군 이효백이 증조, 신곡군 이부정이 할아버지, 심주군 이연손이 아버지다. 왕실 종친이라는 배경이 작용한 듯 이억기는 일찍부터 출세가도를 달렸다. 17세에 사복시(司僕寺) 내승(內乘)으로 기용된 것도 이례적이다. 사복시는 왕실의 수레와 말, 목장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임금의 탈것을 책임지며 궁궐에 상주하는 내승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임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억기는 이후 무과 시험에 급제한 뒤 21세에 세종시대 때 개척한 6진의 하나인 경흥의 종3품 부사에 부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거급제 현황을 담은 방목에서는 이억기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사실 무과에 장원급제했다고 해도 곧바로 여진족의 발호로 혼란을 겪고 있던 시대 북방 요충지에 곧바로 지휘관으로 기용하는 파격은 보통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종친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듯 당시 이억기의 집안은 각별히 존중받았던 듯하다. 이억기는 입신(立身)을 위해 굳이 과거에 매달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아닌가 싶다.매산 홍직필(1776~1852)은 이억기 신도비명에 ‘겨우 5~6세부터 전쟁에서 지휘하는 놀이를 했다. 어느 날 강을 건너는데 갑자기 폭풍이 불어 배가 거의 기울어지자 수십 보를 뛰어올라 언덕으로 내려서니 뱃사람들이 크게 놀라며 옛날의 비장군(飛將軍)이라 불리는 사람도 이보다 나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적었다. 이억기가 천성적으로 무관의 자질을 타고난 인물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조선시대 문집에 반복적으로 담긴 스토리라고 하는데 특별한 업적을 남긴 역사적 인물이 신화적 인물로 탈바꿈하는 전형적인 과정을 보여 준다. 유례없이 고속출세한 이억기지만 이런 종류의 인물에게서 흔히 보이는 지나친 자신감이나 우월감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순신과는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는데 ‘난중일기’에도 그런 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이순신은 이억기를 존중하면서도 아우 같은 느낌을 가졌던 듯하다. 함께 밥 먹고 술 마시며 바둑과 장기를 두었다는 내용이 일기에 줄기차게 나온다. 1593년 3월 17일자에는 ‘우수사와 활을 쏘았다. 아주 형편이 없으니 우스운 일’이라고 적기도 했다. 왕실의 일원인 이억기가 보통의 무인들과는 다소 결이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선조실록 1591년 2월 12일자에는 비변사가 ‘이천, 이억기, 양응지, 이순신을 남쪽에 보내 공을 세우게 하자고 청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후 이순신과 이억기가 전라좌·우수사에 나란히 기용됐다. 앞서 1583년 한 해의 정치적 이야기를 기록한 ‘계미기사’에도 ‘비변사로 하여금 기이한 재주가 있는 출중한 선비를 뽑으라 하여 김여물, 서익, 유극량, 이억기를 뽑았다’는 대목이 보인다. 활 솜씨는 몰라도 지휘관으로 이억기는 일찍부터 능력을 크게 인정받고 있었던 듯하다. 왜적이 임진년 부산포에 상륙한 직후 원균 경상우수사는 이순신 전라좌수사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이순신 전라좌수사는 다시 이억기 전라우수사에게 연합함대 구성을 요청했다. 이순신이 임지를 벗어나 경상우수영 해역으로 출병해야 하는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억기 역시 책임 지역을 방치하고 경상도해역으로 나가야 할 것인지 장고(長考)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억기의 전라우수영 수역은 넓기만 했다. 무엇보다 왜구의 노략질이 극에 달했던 지역이다.●삼도수군통제사 체제에선 참모 역할 이순신과 전라좌수군은 이억기가 전라우수군을 이끌고 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전라우수군은 6월 5일 당항포해전부터 참전했다. 앞서 5월 7일 옥포해전, 5월 29일 사천해전, 6월 1일 당포해전은 이순신의 전라좌수군이 주도하고 이름만 남은 경상우수군의 병선 몇 척이 참여했다. 6월 4일 이억기 함대가 합류하자 이순신은 ‘진중의 장병들은 매우 기뻐했다’고 ‘난중일기’에 적었다. 이순신도 군사들 못지않게 다행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후 ‘이억기와 논의하다 바다에서 잤다’는 이순신의 일기 내용이 숱하게 보인다. 7월 9일 왜수군의 주력함대를 무찌른 한산도대첩도 이억기와 전라우수군이 참여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한산도대첩과 이튿날 벌어진 안골포 싸움의 승리로 이순신은 정2품 정헌대부, 이억기와 원균은 종2품 가의대부에 올랐다. 선조실록 1593년 1월 11일자에는 ‘각 도에 있는 병마의 숫자’를 헤아려 보고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 ‘전라도 순천부 앞바다에 주차한 본도 좌수사 이순신의 수군 5000명과 우수사 이억기의 수군 1만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억기의 전라우수군이 사실상 조선수군 전체 병력의 3분의2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수군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배경에 이억기와 전라우수군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이억기에 대한 기록은 이상할 정도로 남아 있는 것이 적다. 실록에도 이순신을 다룬 대목에 부차적으로 언급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삼도수군통제사 체제가 출범한 이후 이억기는 이순신의 참모가 됐으니 더욱 드러나지 않는 존재가 됐다. 수군통제사는 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새로 만든 자리다. 경상좌수영, 경상우수영,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충청수영의 사령관인 절도사는 수평적 관계인 만큼 의견 차이가 있을 경우 작전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순신과 원균의 다툼이 수군통제사 직제를 신설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을 것이다. 이순신이 초대 수군통제사에 올랐고, 충무공이 백의종군한 이후 원균이 제2대 통제사가 됐다. 원균 체제에서도 이억기는 성실한 참모였다.●시신 수습 못해 의관으로 장사 지내 정조시대 이억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쓰여진 홍직필의 신도비명은 비교적 자세히 그의 일생을 다루고 있지만, 당시에도 자료 부족에 시달린 듯 내용의 정밀성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에서 바깥의 어지러움에 대한 근심으로는 북방이 먼저이고 남방은 다음이었다. 공은 경흥·회령에서 숫돌에 새로 간 칼날같이 날카로웠는데, 북방이 어지러울 때 이미 위엄과 명성을 크게 떨쳤다. 남쪽에서 왜적을 방어할 때에는 명성과 지위가 충무공에게 약간 모자랄 뿐이었다. 공은 매번 이순신을 위해 자신의 공훈을 사양하고 충무공이 모함을 당한 것을 변명했으니 이순신이 다시 군대를 통솔하게 된 것도 오직 공에 힘입은 것이다. 공을 충무공보다 아래 두는 것은 부당한 면이 있다.’ 이억기는 원균이 조선수군을 궤멸로 이끈 칠천량해전에서 전세가 기울자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해 양주 아차산에 의관으로 장사를 지냈다. 아차산이 서울에 편입되어 워커힐이 들어서자 후손들은 하남시 배알미동에 새로운 무덤을 썼다. 선무공신 2등에 올랐고 병조판서에 추증됐다. 정조는 의민(毅愍)이라 시호하고 완흥군(完興君)에 추봉했다.
  • 새한류 K티 향기 진하게… 천년의 보성차 세계를 품다[2023 제11회 보성세계차 EXPO]

    새한류 K티 향기 진하게… 천년의 보성차 세계를 품다[2023 제11회 보성세계차 EXPO]

    전국 최대 차 주산지이자 차 문화의 본고장인 전남 보성군이 ‘천년의 보성차, 세계를 품다!’라는 주제로 제11회 보성세계차엑스포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달 29일부터 오는 5월 7일까지 보성군 일원에서 통합 축제형으로 개최된다. 보성차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보성의 대표 축제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다. 군은 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보성차의 국제적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차의 치유력, 차의 미래 가치를 엑스포에 자연스럽게 녹여 즐거운 차 문화 확산과 실질적 차 소비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특히 ‘보성차’라는 브랜드를 전 국민을 넘어 전 세계인에게 선보여 ‘K티’ 문화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부도 밝히고 있다. ●보성세계차엑스포 킬러 콘텐츠 김철우 보성군수와 손학래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보성세계차엑스포조직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학계, 문화계, 세계 차 전문가와 각계각층의 국내외 전문가가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출향 향우, 기관단체장 등이 추진위원을 맡아 지난달 총 130여명으로 출범했다. 군은 보성차엑스포 예산의 대부분을 축제 콘텐츠를 만드는 데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승부를 낸다. 전국 단위 스포츠대회, 불꽃축제 등 다양한 축제와 부대 행사로 구성했다. 또 이색 도슨트와 함께하는 주제관, 6개국이 참여한 세계 차 문화 전시관, 차 명상관, 월드 티 퍼포먼스, 세계 티 로드, 동양 차 문화 5000년 유물 전시회 등도 선보인다. 세계 차 문화 전시관은 한국, 중국, 일본, 영국 등 6개국의 차 문화와 역사를 바탕으로 세계 차의 흐름을 한눈에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꾸민다. 세계 티 로드는 한국차문화공원 내 온실을 활용한다. 세계를 대표하는 차밭을 미니어처 형식으로 구현해 직관적으로 세계 유명 차 생산 현장을 둘러본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봇재에 꾸려지는 티 생태 존에선 보성의 차 문화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현재 보성 차 산업을 이끄는 차 농가들을 소개하는 전시관이다. 대를 이어 차 산업을 이어 오고, 친환경을 고집하는 보성의 차 농가 등 다양한 다원의 사연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성대한 개막식을 축하하기 위해 다음달 29일 오후 3시 보성공설운동장에서 20여분간 ‘블랙이글스 에어쇼’도 열린다. 최근 참가한 ‘2023 호주 애벌론 국제 에어쇼’에서 종합 최우수상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블랙이글스는 이날 고도의 팀워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곡예비행을 선보인다.●통합 축제형 보성세계차엑스포 이번 엑스포는 보성 대표 축제가 총출동하는 통합 축제형 행사다. 보성다향대축제, 서편제보성소리축제, 전국 단위 스포츠 행사(요트, 씨름, 마라톤), 벌교 갯벌 레저뻘배대회, 일림산 철쭉제, 불꽃축제, 보성군민의 날 등 다채로운 축제를 만나 볼 수 있다. 보성다향대축제는 다음달 29일부터 5월 7일까지 한국차문화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2023년 다신제, 월드 티 퍼포먼스, 월드 티 푸드쇼, 차밭 플로깅, 세계 티 포럼, 세계 차 품평대회 등이 펼쳐진다. 서편제보성소리축제는 다음달 29일부터 5월 1일까지 군문화예술회관과 판소리성지에서 진행한다. 명창 추모제 및 추모 공연, 명인·명창 고수 경연대회,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 등으로 인재 발굴과 판소리의 명맥을 이어 가는 대회다. 전국 단위 스포츠 행사로 요트, 씨름, 마라톤 대회가 있다. 한국옵티미스트 전국요트대회는 5월 5~6일 보성 율포솔밭해변에서 레이스를 펼친다. 제1회 대한체육회장기 전국장사씨름대회는 다음달 30일부터 5월 6일까지 다향체육관에서 개최된다. 보성녹차마라톤대회는 5월 7일 보성공설운동장에서 열린다. 일반과 마니아 2개 분야, 7개 종목으로 진행된다. 다음달 25일까지 홈페이지(www.run1080.com)에서 신청받는다. 5월 5일 벌교천 일원에서는 불꽃축제가 열린다. 드론쇼, 감성 축하 콘서트, ICT미디어아트 불꽃쇼가 펼쳐진다. 다음날인 6일 벌교 장양어촌체험마을에서는 벌교 갯벌 레저뻘배대회가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 최대 철쭉 군락지인 일림산에서는 철쭉 문화행사인 ‘일림산 철쭉 축제’가 상춘객들을 맞는다. 5월 5일부터 7일까지 철쭉 제례와 산림문화행사, 숲속 음악회 등의 프로그램을 환상적인 풍광 속에서 즐길 수 있다. 특히 ‘제1회 보성 데일리 콘서트’는 보성역 일원에서 다음달 30일부터 5월 6일까지 만날 수 있다.●D-30… 서울서 천년 보성 차 진상 퍼포먼스 오는 30일에는 제11회 보성세계차엑스포 개막 D-30 사전 행사로 서울에서 왕의 차인 뇌원차 진상 행렬과 궁중 다례 시연 이벤트를 펼친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왕에게 천년의 보성 차를 진상하는 행사를 열어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기 위해서다. 군은 실제 고려시대 진상 행렬을 재현해 수도권 주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보성세계차엑스포를 홍보할 계획이다. 진상 행렬이 시작되고, 특설 무대 앞에서 뇌원차 진상 의식과 고려시대 국가 행사 등 주요 행사에서 차로 예를 올리는 진다례 시연이 예정돼 있다. 진상 의식이 끝나면 서울에서 수도권 주민을 비롯한 관광객과 함께하는 차 나눔 행사를 갖는다. 김 군수는 “보성군에는 고려시대부터 가을평다소, 포곡다소 등 국가에 차를 공납하는 다소라는 기관이 존재했다”면서 “고려시대 왕실 진상품이었던 뇌원차 등을 생산하며 천년의 차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명성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中 “사우디와 위안화 결제”… ‘페트로 달러’ 와해 시동

    中 “사우디와 위안화 결제”… ‘페트로 달러’ 와해 시동

    중국이 최대 원유 수입처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무역 대금 결제용 위안화를 풀었다. 양국 간 위안화 무역 거래 시장을 조성할 ‘마중물’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종 목표는 미 달러화로만 원유를 사고파는 현 ‘페트로 달러’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1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중국 수출입은행은 지난 14일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을 통해 “사우디 국영은행과 첫 위안화 대출 협력을 성공리에 마쳤다. 양국 무역 관련 자금 수요를 충족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랍권 금융기관에 처음 실시한 위안화 대출”이라며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국가들의 금융·무역의 원활한 흐름을 촉진해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앞서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중국·걸프 아랍국가협력위원회 정상회의’에서 “(장기적으로) 원유 및 천연가스 무역에서 위안화를 쓰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아랍의 맏형’ 격인 사우디가 총대를 멘 것으로 보인다. 1975년 미국은 사우디 왕실에 ‘중동 맹주국 지위를 보장할 테니 원유 결제엔 달러화만 쓰라’고 은밀히 제안했는데, 이것이 바로 페트로 달러 체제다. 그간 사우디는 미국의 핵심 우방국을 자처해 왔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18년 사우디 반체제 인사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책임을 물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홀대하고,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하자 양국 관계도 급변했다. 미국을 대체할 새 안보·경제 파트너로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베이징도 지난해 미국이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시키는 상황을 지켜보며 ‘달러가 필요 없는 무역’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러시아 다음은 우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다만 시 주석이 원하는 대로 사우디가 원유 거래까지 위안화로 결제할지는 미지수다. 워싱턴이 이를 보고만 있을 리 없어서다. 그간 페트로 달러 체제에 반기를 든 이란과 이라크, 리비아, 베네수엘라 등은 예외 없이 미국의 경제 제재·군사 행동 대상이 됐다. 한편 관찰자망은 전날 “중국 당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전면 재개했다. (양국 관계 악화로) 도입 금지령이 내려진 지 2년 만”이라고 전했다. 중국 국무원도 대만의 냉장 갈치와 냉동 전갱이 수입을 재개하기로 했다. 내년 1월 대만 총통(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반중 정서를 누그러뜨려 국민당 후보의 당선을 도우려는 취지라고 일본 지지통신은 분석했다.
  • 中, ‘페트로 위안’ 시동 “사우디와 위안화로 무역결제”

    中, ‘페트로 위안’ 시동 “사우디와 위안화로 무역결제”

    중국이 최대 원유 수입처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무역 대금 결제용 위안화를 풀었다. 양국 간 위안화 무역 거래 시장을 조성하려는 ‘마중물’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종 목표는 미 달러화로만 원유를 사고 파는 현 ‘페트로 달러’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1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에 따르면 중국 수출입은행은 지난 14일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을 통해 “사우디 국영은행에 첫 위안화 대출 협력을 성공리에 마쳤다. 양국 무역 관련 자금 수요를 충족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랍권 금융기관에 처음 실시한 위안화 대출”이라며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국가들의 금융·무역의 원활한 흐름을 촉진해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앞서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중국·걸프 아랍국가협력위원회 정상회의’에서 “(장기적으로) 원유 및 천연가스 무역에서 위안화를 쓰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아랍의 맏형’격인 사우디가 총대를 멘 것으로 보인다. 1975년 미국은 사우디 왕실에 ‘중동 맹주국 지위를 보장할 테니 원유 결제는 오직 달러화만 쓰라’고 은밀히 제안했는데, 바로 ‘페트로 달러’ 체제다. 그간 사우디는 미국의 핵심 우방국을 자처해 왔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18년 사우디 반체제 인사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책임을 물어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홀대하고,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하자 양국 관계도 급변했다. 미국을 대체할 새 안보·경제 파트너로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베이징도 지난해 미국이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시키는 상황을 지켜보며 ‘달러가 필요없는 무역’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러시아 다음은 우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다만 시 주석이 원하는 대로 사우디가 원유 거래까지 위안화로 결제할지는 미지수다. 워싱턴이 이를 보고만 있을 리 없어서다. 그간 ‘페트로 달러’ 체제에 반기를 든 이란과 이라크, 리비아, 베네수엘라 등은 예외 없이 미국의 경제 제재·군사행동 대상이 됐다. 한편 관찰자망은 전날 “중국 당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전면 재개했다. (양국 관계 악화로) 도입 금지령이 내려진지 2년 만”이라고 전했다. 중국 국무원도 대만의 냉장 갈치와 냉동 전갱이 수입을 재개하기로 했다. 내년 1월 대만 총통(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반중정서를 누그러뜨려 국민당 후보의 당선을 도우려는 취지라고 일본 지지통신이 분석했다.
  • 英 엘리자베스 여왕 1조원 재산…찰스 3세 혼자 전액 상속

    英 엘리자베스 여왕 1조원 재산…찰스 3세 혼자 전액 상속

    서거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전 재산이 찰스 3세에게 이전되면서 사실상 앤드류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 앤 공주는 단 한 푼의 유산도 상속받지 못하게 됐다고 미국 폭스뉴스는 14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복수의 익명 제보자 발언을 보도한 영국 매체를 인용해 ‘여왕이 소유했던 전 재산은 찰스 3세에게 이전돼 찰스 국왕이 여왕 재산의 유일한 수혜자가 됐으며, 1993년 제정된 왕실 특혜 규정에 따라 유산 상속분에 대한 상속세는 일절 부과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찰스 3세 국왕이 받은 여왕의 재산은 약 8억 달러(약 1조 48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상속세율이 40%인 점을 고려하면 ‘국왕은 상속세를 면제받는다’는 특혜 규정이 없을 시 찰스 국왕은 수천억 원대의 세금을 지불해야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시 2002년 어머니가 서거했을 당시 남긴 재산 7000만 달러(약 915억 원)를 물려받으면서 상속세 전액을 면제받는 특혜를 누렸다. 반면 여왕의 천문학적인 재산을 100% 상속받은 찰스 3세의 형편과는 다르게 여왕의 자녀이자 찰스 3세의 동생들인 앤드류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 앤 공주에게는 단 한 푼도 상속이 배분되지 않을 전망이라고 이 매체는 예측했다. 베스트셀러 ‘더 킹’의 저자 크리스토퍼 안데르센은 앤드류 왕자는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산과 관련해 “어머니가 남긴 재산을 기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 “왕실 재산 상속과 관련한 과정과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발언했다고 전했다. 안데르센은 또 “앤드류 왕자는 이와 유사한 사례로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가 그의 모친이 사망했을 당시 다른 형제들을 제외하고 모친의 재산 전액을 상속받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여왕의 모친은 서거 직전 특정인을 지목해 고가의 보석과 개인 재산을 상속하라는 구체적인 내용의 유언을 남겼지만 사실상 법적 구속력이 없었던 탓에 재산 전액은 엘리자베스 2세가 수령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여왕의 재산 상속분에 대한 소유권에서는 제외됐지만, 에드워드 왕자와 앤 공주는 여전히 로열 패밀리를 위한 영국 왕실 보조금 명목의 수당을 지급 받아오고 있다. 하지만 앤드류 왕자는 사정이 다르다. 그는 지난 2001년 미성년자 성폭행 스캔들에 휘말린 직후 왕실 직무에서 공식적으로 제명됐고, 이후 로열패밀리를 위한 수당 지급자 목록에서도 제외됐기 때문이다. 그는 2001년 무렵, 미국의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당시 17세 미성년자였던 미국 여성 버지니아 주프레를 성폭행했다는 스캔들에 연루돼 왕족 및 군대 직함을 박탈당했다. 이 때문에 앤드류 왕자가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개인 재산은 1800만 파운드 상당의 스키 샬레가 유일하다. 이 매체는 그의 현 상황과 관련해 “앤드류 왕자는 어둠 속에 남겨져 있는 상태다. 그는 매우 절망적이다”고 전했다. 작가 안데르센 역시 “찰스 3세 국왕이 앤드류 왕자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닐 것이지만, 영국 왕실은 분명하게 앤드류에게 과거 그의 방탕했던 생활 방식을 바꾸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분위기”라면서 “과거 여왕이 생존했을 당시 앤드류 왕자는 여왕에게 의지할 수 있었지만, 여왕이 서거하면서 그런 생활은 더 이상 허락되지 않게 됐다”고 했다. 
  • [씨줄날줄] 흑주술/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흑주술/이순녀 논설위원

    조선은 ‘유교의 나라’지만 왕실은 불교와 무속신앙을 떠받들었다. 최고 권력을 둘러싼 온갖 음모와 계략이 난무하는 궁궐에서 사람들은 합리적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욕망의 여백을 기괴한 주술로 채웠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숱한 주술 관련 사건 중에서도 효종실록에 등장하는 조귀인의 뼈 저주 사건은 그 수법이 매우 엽기적이고 잔혹하다. 인조의 후궁인 조귀인은 사이가 좋지 않던 효종이 즉위하자 여종, 승려들을 포섭해 효종과 대비를 상대로 끔찍한 저주 행각을 벌였다. 죽은 사람의 두골, 벼락 맞은 나무, 시체에서 흘러나온 물을 적신 솜, 마른 뼈를 갈아 만든 가루 등을 몰래 구해다 효종과 대비가 머물거나 자주 드나드는 곳에 숨겼다. 심지어 무덤을 파헤쳐 시신의 살점을 떼어 오라고 시키기도 했다(유승훈, ‘조선궁궐저주사건’). 조귀인은 여종들에게 “수고하지 않고 성공하는 길로는 저주가 최고”라고 말했다고 한다. 효종이 1651년 수리도감을 설치해 3개월간 승려 2000명을 동원해 궁궐 내부의 저주 흔적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왕실 대대로 오랫동안 은밀하게 숨겨 온 저주물이 다량 발견된 걸 보면 이런 비뚤어진 주술 의식에 빠진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모 묘소 훼손 사건을 둘러싸고 ‘흑주술’, ‘주술 테러’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대표가 지난 12일 SNS에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묘소 봉분 둘레 네 곳에 구멍이 파였고, 두 개의 돌이 놓여 있었다. 첫 번째 돌에는 ‘生’(생), ‘明’(명), ‘氣’(기)가 적혀 있고, 두 번째 돌의 경우 앞 두 글자는 ‘생’과 ‘명’으로 식별됐으나 마지막 글자는 불명확하다. 이 대표는 “일종의 흑주술로 무덤의 혈을 막고 후손의 절멸과 패가망신을 기원하는 ‘흉매’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니 범인과 범행 동기를 철저히 규명해 의혹이 남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타인이 죽거나 쓰러지길 비는 흑주술은 고도로 응축된 증오의 결정체다. 그런데 대통령 부부 인형에 바늘을 꽂거나 초상화에 활을 쏘는 저주술이 시민단체 집회에 버젓이 나오는 판이다. ‘천공 스승’ 논란에 이어 흑주술 의혹까지, 어쩌다 우리나라가 주술의 나라가 됐는지 참담하다.
  • “휴가 못 가” 부하직원 설움 담긴 한글편지 보물됐다

    “휴가 못 가” 부하직원 설움 담긴 한글편지 보물됐다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인 ‘나신걸 한글편지’가 보물로 지정됐다. ‘나신걸 한글편지’는 조선시대 군관으로 활동한 나신걸(1461~1524)이 아내에게 부친 편지 2장으로 구성됐다. 편지에는 “집에 가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 장수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가서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라며 휴가를 못 가게 막는 상사에 대한 기록 등이 담겨 있다. 이 편지는 2011년 대전 유성구에 있던 나신걸의 아내 신창 맹씨의 무덤에서 나왔다. 당시 저고리, 바지 등 유물 약 40점과 함께 편지가 여러 번 접힌 상태로 발견됐다. 편지에 1470~1498년 쓰였던 함경도의 옛 지명인 ‘영안도’라는 말이 나오고, 나신걸이 함경도에서 1490년대 군관 생활을 한 점을 미루어 편지가 15세기 후반에 작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범한 편지가 보물까지 된 이유도 시기와 맞물려 있다.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0년도 안 된 시점에서 변방에서도 한글이 널리 쓰였음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또한 조선 초기 남성도 한글을 익숙하게 사용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은 “상대방에 대한 호칭, 높임말 사용 등 15세기 언어생활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앞으로 조선 초기 백성들의 삶과 가정 경영의 실태, 농경문화, 여성들의 생활, 문관 복식, 국어사 연구를 하는 데 있어 활발하게 활용될 가치가 충분하며 무엇보다도 훈민정음 반포의 실상을 알려주는 언어학적 사료로서 학술적·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전했다.이와 함께 ‘창녕 관룡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도 보물로 지정됐다. ‘창녕 관룡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조각승 응혜를 비롯한 9명의 조각승이 1652년 3월 완성해 관룡사 명부전에 봉안한 17구의 불상이다. 17세기 활약한 응혜 스님이 완숙한 조각 솜씨를 펼치던 전성기에 만든 것으로 사찰 구조 및 불교 조각을 연구할 때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18∼19세기 양식을 볼 수 있는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는 1806년 순조(재위 1800∼1834)와 순원왕후의 장수를 기원하며 상궁 최씨가 발원한 불화다. 당대 대표적 화승었던 민관 등 5명의 화승이 참여해 제작한 대형불화로 궁녀가 발원해 조성한 왕실 발원 불화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문화재청은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는 19세기 초 서울·경기 지역의 새로운 괘불 양식이 반영된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 여래형 비로자나불과 좌우에 보관(寶冠)을 쓴 보살형 노사불과 석가불로 구성된 유일한 삼신불 도상이라는 점,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시대적 전환기 속에서 신·구 양식을 모두 반영한 작품이라는 점 등에서 예술적, 학술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 그리스 노예의 성공담, 우화같은 죽음…거지꼴을 한 철학자 이솝[으른들의 미술사]

    그리스 노예의 성공담, 우화같은 죽음…거지꼴을 한 철학자 이솝[으른들의 미술사]

    한 남자가 한 손엔 책을, 한 손은 옷에 찔러 넣은 채 정면을 무심히 바라본다. 헝클어진 머리, 주름진 얼굴, 아무렇게나 막 입은 옷으로 볼 때 그는 세상의 가치를 초월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의 이름은 화면 오른편 상단에 적혀 있는 대로 아이소포스(Aesopus·BC 620~BC560)다. 아이소포스는 고대 그리스 기원전 6세기 사람으로 소크라테스보다도 한 세기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많이 들어본 이름 같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다. 그는 이솝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우화 작가다.  ‘이솝 우화’ 작가의 삶을 함축한 벨라스케스의 작품 <이솝>  우화(寓話)란 동물을 주인공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글이다.  언뜻 생각나는 이솝 우화만 해도 개미와 베짱이, 시골 쥐와 서울 쥐, 여우와 포도 등 신랄하고 재치 번뜩이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동물에 빗댄 이솝 우화는 인간 사회를 통찰하는 이솝의 철학적 직관과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이솝의 초기 삶은 우아한 철학자의 삶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는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노예의 삶을 살았다.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어도 그의 외모에 대한 기록은 하나같이 그가 추남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솝은 낮은 이마, 들창코에 튀어나온 입,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해 오늘날 미의 기준으로 보면 잘생겼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솝의 스토리텔링 솜씨와 재치, 지혜는 주변의 많은 노예들로부터 인기가 있었다. 그의 재주는 주인에게까지 알려져 대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솝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웃 나라에까지 알려졌다. 사모스 철학자 크잔토스가 이솝의 능력을 눈여겨 보고 그를 곁에 두고자 했다. 크잔토스의 도움으로 이솝은 노예 신분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솝의 능력은 최고 통치자에게도 알려져 통치자 곁에서 국사를 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느 그리스 노예의 성공담이다.  입담 넘치는 노예에서 국사를 논하던 철학자  그러나 이솝의 죽음은 너무 어이없었고 죽음 자체가 우화였다. 이솝이 출세하면 할수록 이를 배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날 이솝이 델피로 길을 떠나자 시기심에 눈이 먼 사내들이 이솝의 길을 막아섰다. 노예 주제에 어디를 감히 돌아 다니느냐, 어디 감히 국정을 논하느냐 등 지금까지 이솝이 해왔던 모든 일들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들의 시기, 모함은 끝이 없었다. 델포이 사람들은 이솝의 짐에 잔을 미리 숨겨 이솝을 도둑이라 몰아세웠다. 이 절도 때문에 이솝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라 이솝을 절벽에서 떨어뜨려 사형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렇게 이솝은 허무하게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얼마 후 현자를 살해한 델포이에 전염병이 돌았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솝을 살해한 델포이는 이솝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똑같은 결말을 맞았다.  이제 벨라스케스(1599~1660)가 그린 <이솝>을 자세히 보자. 이솝이 입은 걸인의 옷은 바로 노예의 삶을 상징하며 한 손에 든 책은 이솝 우화로 그의 업적을 상징한다. 왼편의 물통은 이솝을 해방시켜준 크산토스와 나눈 지혜의 샘을 의미한다.  오른편에 있는 물건은 델포이 사람들이 잔을 숨긴 이솝의 짐으로 그의 죽음을 상징한다. 벨라스케스는 모델에게 실제로 거지가 입는 옷과 신발을 신겨 사실성을 더했다.  이는 철학과 배고픔을 동일하다고 본 바로크식 관념을 보여준 것이다. 거지꼴을 하고 남루한 옷을 입었어도 철학자 이솝의 태도는 당당하다.  벨라스케스의 시선에서 본 고귀한 존재들  17세기는 다들 먹고살기 바쁠 때라 인권, 기본권과 같은 인간의 권리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배려와 보살핌은 기대할 수 없던 시기였다. 그러나 벨라스케스가 그린 거지, 난장이, 광대들을 보면 사회적 편견과 달리 인간의 품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실 궁정에 사는 광대와 난장이들은 말 그대로 왕실의 장난감이었다.  태엽을 감거나 건전지를 갈아 끼울 필요가 없는 살아있는 장난감으로서 이들은 왕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는 서글픈 존재들이었다. 현실에서도 서글픈 존재들이 있다. 바로 노인들이다. 벨라스케스 작품에 등장하는 노인들은 하나같이 쓸모를 다한 잉여 존재들이 아니라 지혜를 갖춘 인물들로 등장한다. 벨라스케스의 시선으로 보면 이들은 고귀한 존재들이다. 벨라스케스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현자 앞에 마음이 못난 사내들이 길을 막아섰을 때 이솝이 느낀 감정을 표현했다. 철학자가 느낀 이 감정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이솝의 달관한 듯한 표정에서 할 말은 많은데 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읽힌다. 2500여 년 전 이솝에게서, 400여 년 전 벨라스케스에게서 으른들의 품격이 느껴진다.
  • “고통 대처에 도움” 英 해리 왕자, 이번엔 ‘마약 옹호’ 논란…추락하는 호감도

    “고통 대처에 도움” 英 해리 왕자, 이번엔 ‘마약 옹호’ 논란…추락하는 호감도

    영국 해리 왕자(38)가 과거 어머니 다이애나 빈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 극복에 대마초 등 마약의 도움을 받았다며 마약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5일(현지시각) 영국 데일리메일과 미국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해리 왕자는 스트레스, 중독 문제 등을 다루는 헝가리계 캐나다인 의사 거보르 머테와 진행한 생방송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해리 왕자는 어머니 다이애나 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으며 정신적 문제를 겪었다고 밝혔다. 해리는 그럴 때 “대마초가 나에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영국은 의료용 대마를 제외한 일반 대마초 흡연이 불법이다. 또한 해리는 대마초 외에도 환각제의 일종인 ‘아야와스카’도 자주 복용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야와스카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고통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줬다”며 “나에게 휴식과 해방, 위안의 감각을 느끼게 해줬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해리 왕자의 마약 옹호 발언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해당 발언이 자칫 젊은이들에게 마약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 “부작용 심각…무책임한 발언” 마약 교육 자선단체를 운영하는 피오나 스파고-맙스는 해리 왕자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약물이 삶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며 “(삶의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 마약을 복용하는 것은 의존성 문제가 크다”고 우려했다. 환각제 아야와스카 역시도 위험하다. 아야와스카는 아마존 인디언들이 종교 의식에 사용해온 환각성 음료다. 대체의약품 전문가 에드자드 언스트 전 엑서터대 교수는 “아야와스키는 우울증, 불안 등 정신적 문제에 있어 대안 물질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그것을 인생을 바꾸는 치료법으로 홍보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고,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의사이자 언론인인 맥스 펨버턴은 데일리메일 기고문에서 “만약 마약이 그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지 않았다면 대단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해리 왕자의 발언은 내가 국민보건서비스(NHS) 정신과 의사로서 경험한 것들과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리 왕자가 보통의 셀러브리티였다면 그저 무시하고 넘겼을 것”이라며 “그는 왕가 일원이라는 점을 자신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데다 정신건강 정책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누구도 그에게 이 같은 역할을 부탁한 적 없다”고 꼬집었다. ‘왕실 사생활 폭로’ 해리 왕자, 민심은 싸늘 해리 왕자는 2020년 영국 왕실을 떠나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다. 그는 자신과 아내 메건이 영국 왕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영국 왕실의 사생활을 폭로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1월 자서전 ‘스페어’ 출간 이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선 호감도가 역대 최저치로 내려갔다는 결과가 나왔다. 해리 왕자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과거 아프간전 참전 당시 25명을 사살했다는 고백부터 동서 지간인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과 아내 메건의 싸움, 미성년 때 마약을 복용했다는 등 개인사를 털어놓으면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출간 직후 온라인 독자 20만명을 상대로 데일리메일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만이 해리 왕자와 그의 부인 메건 마클을 지지했다. 나머지 95%(19만 5000명)는 이들 부부가 왕실 작위를 반납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1%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 英 국왕 대관식 때 식물성 성유 바른다, 왜 예루살렘에서 만들까

    英 국왕 대관식 때 식물성 성유 바른다, 왜 예루살렘에서 만들까

    오는 5월 6일(현지시간)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 때 식물성 성유를 쓰기로 했다. 영국 대관식은 종교적 색채가 강한데 국왕의 머리와 가슴, 손에 성유를 바르는 일은 가장 신성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순간으로 여겨진다. 동물을 학대하지 않고 야생동물을 해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대관식에 사향유나 향유고래에서 나오는 용연향이 들어간 성유를 사용하지 않고 참깨, 장미, 재스민, 계피, 오렌지꽃 등으로 향을 낸 올리브 오일을 쓰기로 결정했다고 BBC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올리브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감람산에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 수도원에서 난 것을 쓴다. 성유는 이날 예루살렘 성묘교회에서 종교의식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이곳은 예수가 죽음을 맞아 묻힌 곳으로 많은 이들이 믿고 있다. 비밀스러운 순간이라 함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 때도 성유를 바르는 의식만큼은 가려졌기 때문이다. 찰스 3세의 부인 커밀라 왕비도 성유를 바르는 의식을 하게 되며, 이 때 시선을 가리는 캐노피는 커밀라 왕비배우자가 이전 결혼에서 얻은 손주들이 들기로 했다. 한편 국왕의 친할머니 앨리스 공주가 왜 예루살렘 감람산에 묻혀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바텐베르크 공녀 앨리스(1885~1969)는 그리스와 덴마크 왕자 안드레아스의 아내였으며 에든버러 공작 필립의 어머니다. 바텐베르크 가문은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영국에 반독일 감정이 심상찮자 독일 귀족 지위를 버렸다. 앨리스 공주는 날 때부터 청각 장애인이었지만 상대 입술을 보고 그리스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 대답할 수 있어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앨리스는 죽은 뒤 이모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가 묻혀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 수도원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여러 사정 때문에 윈저궁에 묻혔다. 사후 10년 만에 앨리스의 이장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해 12년 뒤인 1988년에야 이모의 묘 옆에 이장할 수 있었다. 찰스 3세 국왕은 성탄 메시지를 통해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장소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곳을 찾았을 때 얼마나 감동 받았는지 털어놓곤 했다.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예루살렘 바깥이지만 성경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감람산에서 난 올리브를 쓰는 것을 환영했다. 그는 “대관식과 성경, 신성한 땅(Holy Land) 사이에 깊은 역사적 연결이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고대 왕들부터 지금까지 군주들은 이 신성한 곳에서 난 올리브를 바르곤 했다”고 말했다. 성유를 바르는 행위는 여러 차례 수정됐는데 1649년 올리버 크롬웰이 명예혁명으로 왕권을 부정했을 때조차 완전히 없애지 못한 몇 안되는 왕실 전통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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