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왕실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제비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준비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시너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652
  • 파리에 부는 한국패션 바람

    파리에 부는 한국패션 바람

    |파리 함혜리특파원|센강 우측으로 파리시청과 바스티유 광장 사이에 위치한 파리 마레(Marais)지역은 박물관,갤러리,고가구점,장식품점들이 밀집한 예술·문화의 중심지로 유명하다.하지만 독특하고 자유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개성파 파리지앵들에게는 ‘보물’을 발견할 수 있는 쇼핑명소로 정평이 나 있다.옛 파리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뒷골목에 자리잡은 고색창연한 외관의 상점들에는 최첨단 감각의 아방가르드한 디자인부터 격식을 깨는 유니섹스 디자인,뉴웨이브 등 다양한 스타일의 의상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성파 파리지앵의 쇼핑 명소 ‘마레’ 마레지역에 한국 패션피플들의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창작성이 강한 젊은 디자이너들이 가장 먼저 자신의 부티크를 열고 싶어 하는 곳으로 꼽는 마레지역에 가장 먼저 터를 닦은 디자이너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문(Moon)’이라는 브랜드로 활동해 온 문영희씨.80년대 중반 파리 프레타포르테 전시회에 출품을 해 오다 10년 전 아예 파리로 옮겼다.작업실 겸 사무실은 마레지역의 중심부인 샤를로가 62. 2005∼2006 봄·여름 컬렉션 발표회(10월5일·와그람홀)를 앞두고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는 문씨는 “주변 분위기가 자유로워서인지 한국에 있을 때보다 작업이 훨씬 자유롭다.”고 말했다. 뛰어난 눈썰미로 재능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을 발굴해 온 패션에이전트 오성호(41)씨의 활약도 두드러진다.6년 전 마레지역에 진출한 오씨는 150㎡ 크기의 쇼룸 ‘ROMEO’(www.showroomromeo.com)를 운영하고 있다. 쇼룸이란 전속계약을 맺은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바이어들에게 판매대행을 해 주는 곳이다.여성복의 경우 3월과 10월,남성복은 1월과 7월 등 파리에서 컬렉션 쇼가 열리는 기간 중 소속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을 전시해 보여주고 바이어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물건을 보내주는 일을 해 준다.파리에만 이런 형식의 쇼룸이 30여곳 있으며 컬렉션 기간 중에는 150여곳의 쇼룸이 개설된다. ●패션에이전트 오성호, 디자이너 발굴 맹활약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돈도 열심히 쓰고,모든 행동을 자기 책임하에 하는 우아한 신세대’가 ROMEO 제품의 타깃 고객이다.오씨는 “컨셉트에 맞는 좋은 디자이너를 찾고,좋은 상품을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에이전트의 능력에 달려 있다.”며 “그동안 돈은 많이 벌지 못했지만 좋은 옷과 디자이너를 선택할 줄 안다는 이미지는 벌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디자이너 헌터’라고 소개한 오씨는 “한정된 장소에서 최대한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만 있는 독특한 작품들을 확보해야 한다.”며 “동서양을 오가며 문화여행을 하듯이 다양한 국적의 디자이너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로메오와 전속계약한 디자이너는 25명 정도인데 국적은 11개국이나 된다.오씨는 최근 쇼룸 근처에 ‘심지’라는 의상점을 열어 직접 디자이너의 제품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스타일리스트,의상 바이어,기자,영화배우,패션 종사자 등 나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주로 심지의 고객이다. ●황미나의 ‘텔레시스’ 도 인기몰이 중 30대 후반의 디자이너 황미나씨는 지난 해 10월 프랑스 역사박물관 뒤편 블랑망토 거리에 여성복 매장 ‘텔레시스’를 열었다.텔레시스란 지적인 능력으로 자기의 목표에 이른다는 뜻.파리 에스모드에서 스틸리즘(디자인)을 전공한 황씨의 의상은 A라인을 기본으로 하면서 아랫단을 과감하게 비대칭으로 커트해 절제된 자유로움을 리드미컬하게 표현하고 있다.색상은 주로 검정. 황씨는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인 것처럼 의상은 우리 몸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며 “정열적으로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모습들을 디자인 속에 담고 싶었다.”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직장인들이 입는 정장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른 황씨의 의상들은 작가,스타일리스트,연극배우 등 자유로우면서도 개성이 강한 고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남성복 솔리드옴므로 탄탄한 국내 기반을 다진 디자이너 우영미씨도 마레지역 진출을 준비 중이다. ■마레(Marais)지역은 ‘늪지대’라는 뜻의 마레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이곳이 원래 늪지대였기 때문.1200년대에 늪의 물을 퍼내고 건축이 시작됐고,17세기에는 왕실과 부유한 파리귀족들이 선호하는 주거지로 바뀌었다.프랑스 대혁명 이후 1세기 반 동안 영세상인들이 들어서 옛모습을 상실했다가 1964년 앙드레 말로가 이 지역을 기념비적인 장소로 선포함으로써 본격적인 복원작업이 펼쳐져 예전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17세기풍의 대저택(Hotel)들과 좁은 중세풍의 거리,통로,광장,세련되고 깜찍한 상점과 화랑 등이 뒤섞여 관광객들과 파리시민들의 발길을 모은다.최근엔 아방가르드한 패션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lotus@seoul.co.kr
  • [서울 포토] 자동차는 ‘애물단지’?

    [서울 포토] 자동차는 ‘애물단지’?

    진흙탕 길에 빠진 승용차를 건져내려고 소를 동원한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그러나 엄연히 20세기 서울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1호는 1911년 왕실과 총독용으로 각 1대씩 들어온 관용 리무진이다.1914년부터 총독부 고관과 주한 외교관,친일 귀족들을 중심으로 자동차를 탔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전차 등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자동차가 늦게 들어온 까닭은 나쁜 도로 사정에 있다. 1917년 일제가 한강 인도교를 세워 물길을 건너는 데 도움을 줬지만 도로 불편은 썩 달라지지 않아 1932년 승용차는 전국을 합쳐봐야 겨우 984대에 그쳤다.그러던 것이 지난 5월 1000만대를 훌쩍 넘어서 72년 만에 1만배 이상 늘어났다. 그나저나 지금은 도로여건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데 마구 풀린(?) 자동차들 때문에 비좁게 느껴질 뿐 아니라 크고 작은 사고로 짜증만 일으키고 있으니 ‘보물단지’가 ‘애물단지’로 바뀌어 버린 셈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40년만에 장서 500만권 돌파”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분량이지요.짧은 역사지만 이제야 세계 10위권대의 도서관 선진국으로 거듭 태어나게 됐습니다.” 15일 장서 500만권 돌파 기념행사를 앞두고 임병수(53)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이 밝힌 소감이다. 국립중앙도서관 하면 얼핏 ‘어디에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지난 98년 남산에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사해 기획예산처 바로 옆에 자리잡았다.지난 주말 이 도서관 열람실은 내방객으로 북적댔다.놀랍게도 하루 평균 3200명,주말에는 8000여명이 이용한다. 임 관장은 “장서 500만권 돌파는 일천한 우리나라 도서관 역사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가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내방객도 꾸준히 늘고 있지만 특히 인터넷을 이용한 열람객은 하루 1만명을 족히 넘는다.”고 했다.장서 500만권 중에는 일본서 22만권,중국서 3만 6000권,서양서 43만 5000권,고서 25만 7000권,각종 논문 120만편,조선시대 왕실 가계 등 족보 25만권….‘동국이상국집’ ‘석보상절’ 등의 희귀 고문헌,중앙도서관 최초 등록자료인 ‘해방전후의 조선진상’,이밖에 국보·보물급 자료 등 사실상 없는 것이 없다는 게 임 관장의 설명이다. 이들 장서는 1964년 납본제도가 시행되면서 수집됐다.물론 매년 25억원의 예산으로 외국서적과 학계에서 필요로 하는 자료 등을 구입하기도 한다. 충북 영동 출신인 그는 성균관대 신방과를 나와 문화관광부 문화산업국장,LA 주재 총영사관 영사 겸 문화홍보원장 등을 역임한 뒤 지난 93년 5월 도서관장으로 부임했다.15일 행사에는 전국 도서관 관계자들을 초청한다.또 희귀자료 100여종의 전시를 열며 저녁에는 금난새씨의 지휘로 기념음악회도 열린다.문의 02-590-0632. 김문기자 km@seoul.co.kr
  • 한가위 선물 뭘 살까

    한가위 선물 뭘 살까

    민족의 큰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서울 시내 호텔들이 일제히 추석 선물을 선보이고 있다.갈비와 와인·굴비 세트 등이 공통적인 반면 바닷가재·훈제 연어·철갑상어알·파스타 등도 선보여 선물 아이템이 넓어졌다. ●호텔 아미가는 이달 말까지 뷔페식당 훼밀리아의 맛을 그대로 재연한 모둠전을 내놓았다.녹두빈대떡·새우전·생선전·해물완자전이 30개씩 들어있는 모둠전세트는 17만원,훈제연어 세트(2㎏·15만원)와 함께 웰빙찜(전복 20·대하찜 30마리)을 70만원에 내놓았다.3440-8140. ●신라호텔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극찬한 박영숙요를 추석 선물로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일본·미국과 유럽의 최상류층 소장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박영숙요는 백옥처럼 하얀색과 따뜻한 느낌으로 조선왕실의 품위를 돋보이게 하는 백자다.40만∼200만원.2230-3456. ●웨스틴조선호텔은 잼·올리브기름·벌꿀 등을 넣은 선물 바구니인 프레스티지 햄퍼(28만원)와 코냑·시가·커피·초콜릿 등으로 구성된 프레지던츠 햄퍼(34만원)를 내놓았다.내용물을 별도로 구성해 바구니에 담아주기도 한다.317-0022. ●밀레니엄 서울힐튼은 28일까지 추석 선물로 바닷가재(29만 7000원)를 선물 세트로 내놓았다.24일 오후 6시까지 주문한 것에 대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배달이 가능하다.317-3066. ●호텔 리츠칼튼은 와인과 샴페인·치즈·차·초콜릿·훈제 연어·과일 등으로 구성된 고메이선물 바구니를 내놓았다.철갑상어알과 파스타 등도 추가할 수 있다.4만 5000∼55만원.3451-8278. ●그랜드하얏트서울은 호텔 주방장이 직접 만든 소시지·치즈·샴페인 등이 들어있는 햄퍼를 20만∼48만원에 내놓았다.또 호텔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호텔상품권과 객실이용권,레스토랑이용권 등도 준비했다.799-8213.
  • [세상에 이런일이]가슴 보고 후궁 뽑고

    |루드지드지니 왕립촌(스와질랜드) 연합|아프리카 스와질랜드의 젊은 여성 2만여명이 30일 음스와티 국왕의 후궁으로 뽑히기 위해 왕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놓고 춤을 추는 경연을 벌인 결과 ‘미의 여왕’ 출신인 16세의 소녀가 국왕의 12번째 부인으로 최종 간택됐다.올해 36세의 국왕은 이처럼 매년 왕실 축제를 통해 신부를 뽑는다.전통수호론자들은 이 행사가 오래된 문화 행사의 하나라고 옹호한다.그러나 음스와티 국왕은 사하라사막 이남에서는 유일의 절대 군주로 이미 부인 11명과 약혼자 1명을 두고 있으며 가난,가뭄,에이즈로 고생하는 나라에서 너무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다. 음스와티 국왕은 표범 가죽으로 된 전통 의상을 입고 귀빈석에서 이 여성들의 행렬을 보았으며 측근이 나중에 이를 다시 보려고 비디오로 촬영하자 빙그레 웃었다는 것이다. 한편 스와질랜드는 최근 음스와티 국왕을 세계 10대 독재자로 언급하는 내용의 보도를 일축했다.
  • [이경기의 스크린1인치]2시간 동안의 세계여행

    ‘사랑한다는 것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라는 명언을 탄생시킨 ‘러브 스토리’.올드 영화팬이라면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더욱 극적으로 돋보이게 한 뉴욕 센트럴파크를 비롯해 뉴욕 시립대학,뉴욕 롱아일랜드 지역 등 오염되지 않은 자연 절경을 기억할 것이다. 외국의 유명 관광지나 절경을 등장시켜 이국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관광 필름’.오락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하는 영화 매체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다. 오드리 헵번의 출세작 ‘로마의 휴일’을 비롯해 2003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 수상작 ‘시카고’의 경우는 타이틀에 지명이 새겨져 있어 배경 도시에 대한 홍보 효과를 거둔 바 있다. 우디 앨런이나 마틴 스콜세스 등은 뉴욕파 감독이라는 애칭을 받을 정도로 자신들의 신작 배경지로 뉴욕을 단골로 등장시켜 영화 공개 후 해외 영화 애호가들이 뉴욕을 관광차 찾도록 만드는 부대 효과도 거두고 있다.‘스파이더 맨’의 경우에도 마천루로 상징되는 뉴욕 맨해튼의 최고층 빌딩을 눈요깃거리로 삽입시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의 경제력을 은연중 드러내는 효과를 거두었다. 로마,베네치아,피렌체 등 이탈리아의 주요 곳곳은 세계 영화계가 단골 로케이션 장소로 활용할 만큼 풍부하고 뛰어난 절경을 자랑하고 있는 대표적 국가.일본의 여류 작가 다나카 지세코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세계 주요 영화를 리뷰한 ‘문화와 예술로 보는 이탈리아 기행’을 출간해 출판가의 뉴스를 만들어 냈다.‘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지가 됐던 헝가리를 비롯해 한석규 주연 ‘이중간첩’의 촬영지로 등장했던 체코의 프라하 등은 동유럽 나라 중 정책적으로 해외 영화의 촬영지를 적극 유치하는 국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인도차이나’의 배경지가 됐던 베트남 하롱베이를 비롯해 제임스 본드 ‘닥터 노’의 태국 푸켓,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비치’의 태국 카오야이 국립공원 등은 뛰어난 절경을 내세워 해외 영화 자본을 유치해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로사리토 지역은 드넓은 토지와 주변의 해수(海水) 자원을 특화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의 선박 침몰 장면을 촬영한 뒤로 해양 재난물만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특화 스튜디오로 명성을 얻고 있다.홍콩 배우 성룡의 천부적인 연기 재능과 순발력 있는 쿵후 실력을 담고 있는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전세계 주요 국가를 80일 안에 순례하겠다는 내기를 걸고 진행된다. 이같이 전개되는 극중 스토리 때문에 관객들은 객석에 앉아 영국,프랑스,터키,중국,인도,미국 등 주요 각국을 유람하는 듯한 기분과 ‘관광 영화’만의 특징을 맛볼 수 있다.1956년 마이크 토드 감독이 공개해 선풍적 인기를 얻은 소재를 리바이벌한 이 작품은 1872년 발표한 줄 베르누이의 팬터지 소설을 원안으로 하고 있다. 프랭크 코라치 감독의 신작에서는 발명가이자 영국 학술원 회원인 포그(스티브 쿠간)가 고루하고 융통성 없는 영국 왕실 학술원장과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하게 되면 자신이 차기 학술원장이 되고 만일 실패했을 경우에는 영원히 학술원 회원에서 추방 당하는 것을 수용하겠다는 비장감 어린 내기를 한다.포그는 옥(玉)으로 만든 부처상을 되찾아 주려는 중국인 라우(성룡)의 도움으로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80일 동안 약속했던 세계 일주에 성공하게 된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8) 기장의 명물 멸치·미역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8) 기장의 명물 멸치·미역

    멸치로 찌개를 끓인다? 놀랍다.멸치로 찌개를 끓이는 이 당연한 일을 두고 왜 놀라느냐고 묻는다면,찌개에서 멸치의 역할이 뭐냐고 되묻고 싶다.‘멸치찌개’하면 당연히 찌개거리나 어묵에 멸치를 넣어 끓여낸 국을 연상하리라.그러나 부산 기장에서는 멸치대접이 융숭해 다른 곳에서는 ‘보조’에 불과한 것이 융숭한 ‘주연’ 대접을 받는다.우린 뒤 버리는 국물용이 아니라 어엿한 생선의 반열에 올라있는 것.그 찌개라는 게 값은 단돈 5000원 정도지만,맛깔스럽기 비할 바 없는 데다 속풀이 해장에도 그만이어서 전국의 술꾼들이 부러워할만 하다.미나리와 우거지,방앗잎 등이 어울린 얼큰한 기장의 멸치찌개 맛이란. 미안하지만 기장을 벗어난 곳에서는 이런 멸치찌개를 먹기가 쉽지 않다.대형 권현망 어선에서 잡아들인 멸치는 배에서 곧바로 끓는 물에 데쳐 건멸치로 만들어야 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그렇다 보니 생멸치를 애써 포구까지 실어갈 이유가 없다.멸치찌개,멸치회,멸치구이,멸치젓,건멸치 등등 다양한 멸치문화가 기장에서 형성되고 있으니 가히 ‘멸치의 메카’라 할 만하다. ●봄멸치 몰려들 때면 ‘멸치축제’ 열려 멸치를 두고는 삼천포나 통영도 말깨나 하는 곳이지만 부산이란 거대 배후지가 기장멸치의 명성을 보장하다 보니 아무래도 명성에서 기장에는 못미친다.기장 멸치는 권현망이 아니라 자망(刺網)으로 잡는다.참새가 얽혀 잡히는 촘촘한 자망에 멸치는 여지없이 대가리가 꿴다.그물에 하얗게 달라붙은 멸치를 배에서 털 수 없으니 그물을 통째로 실어와 포구에서 멸치털이를 한다.그래서 봄멸치가 몰려들 때면 아예 기장에서는 ‘멸치축제’가 열리며,곳곳에 널린 멸치를 줍는 재미도 또한 그곳만의 여락이다. “오영수 선생의 소설 ‘갯마을’의 배경이 바로 요아입니까?” “아하,그래요.갯마을은 영화로 본 적이 있습니다.영화 촬영도 여기서 했겠군요?” “영화에서 풍광 좋은 대목은 거지반 요서 찍었다꼬 봐야지.” 바다가 마주 보이는 대변 포구의 한적한 음식점에서 김진옥(66) 기장문화원장과 멸치찌개를 앞에 두고 앉아 바다 이야기로 빠져드는데,들을수록 기장의 갯내가 진하게 우러 나온다. ‘기장현읍지’에는 이곳 일대를 구포(九浦)라고 명명해 놓았다.무지포(기장읍 신암과 대변 사이),공수포(공수마을),을포(일광면 이천리),동백포(동백리),가을포(송정 일대),독이포(장안읍 문동리),월내포(월내리)를 아우르는 말이다.기장 바다를 둘러보니 실제로 만(灣)의 드나듦이 심하다.내만이 형성되어 바람이 피해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마을이 들어섰다.대변항에는 기장 유일의 섬인 죽도(竹島)가 있어 포구의 바람막이와 방파제 역할까지 한다. ●공수마을 ‘멸치후리잡이’ 흔적만 남아 공수마을을 찾았다.옛 공수포가 있던 포구.어민 김소랑(63)씨는 포구에서 조금 떨어진 멸치후리어장 ‘고래기안’으로 필자를 안내했다.고래가 떠밀려온 곳이어서 이런 이름이 생겨났다.후리는 양쪽에서 사람들이 잡아끌어 고기를 잡는 어법.여름에 많이 하는데 추석이 지나 찬바람이 불면 고기가 사라진다.오늘날 공수포의 후리어업은 ‘체험관광 어업’에 지나지 않는다.그물은 어촌계에서 관리하며,뱃삯까지 포함해서 한번에 20만원씩 받고 대여한다. 옛 방식대로 배를 몰고 나가 그물을 타원형으로 드리운 뒤 한 쪽에 10여명씩 모두 20여명이 모랫벌로 그물을 잡아끈다.예전에는 ‘엄청’ 잡혔지만 지금은 망상어,메가리,고등어 등이 조금씩 들 뿐이다.주종이었던 멸치는 별로 들지 않고 있으니 멸치후리라고 부르기도 뭣하다. 옛날에는 후리로 멸치나 꽁치를 잡았다.오영수의 소설을 보면 멸치후리에서 악기를 치고 요란법석을 떨면서 멸치떼를 몰아가는데,공수마을에서는 예전에도 악기를 동원하지는 않았단다.후리는 물살이 빠르고 물이 흐린 사리 물때가 좋다.조금 때는 물이 잔잔하고 맑아 눈 좋은 멸치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보통 오후 3∼4시에 끌어당기는데,하루에 오전 오후 두번이나 그물을 드리울 때도 있다. ●왕실에까지 올려졌던 기장 미역 그러나 멸치만으로 기장의 삶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기장미역이 또한 멸치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기장미역은 기장멸치와 더불어 전국적 유명세를 타고 있다.왜 똑같은 미역인데 유독 기장미역만 예부터 왕실 진상품 반열에 올랐을까. 기장 바닷가로 나서면 의문은 금세 풀린다.파도가 거칠다.부산을 휘돌아 동해로 치고 올라가는 모퉁이답게 파도도 강박스럽다.물살이 급하니 미역발도 드세다.게다가 기장바다는 온통 돌밭이다.크고 작은 돌이 제법 큰 여(암초)와 더불어 만을 형성한다.기장미역은 끓여 보면 그 진가가 여지없이 드러난다.대개의 미역은 끓이면 풀리지만 기장미역은 아무리 끓여도 원형을 간직한다.물살의 힘이 미역의 힘을 만들어냈으니,이곳 산모(産母)들이야말로 천혜의 자연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기장 미역의 진실을 알려면 ‘시르게질(돌씻기)노래’를 알아야 한다.“어이샤 어이샤 이돌을 실걸려고/찬물에 들어서서/바다에 용왕님네/구부구비 살피소서/나쁜 물은 썰물따라 물러가고/미역물은 덜물따라 들어오소/백색같이 닦은 돌에/많이많이 달아주소.” 백색 같이 돌을 닦아서 미역포자가 많이 붙게 해달라는 기원을 담은 노동요.자연산 미역이 사라지고 양식 미역이 등장하면서 이런 돌씻기노래도 사라지고 말았다.“미역이 제 스스로 나는 줄로 알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실게질’이라고 나무에 철정을 붙여서 바위에 붙은 잡초를 제거해야 미역이 붙지요.”국립수산진흥원의 이윤 연구관(해양미생물학)은 미역 포자가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다며 이렇게 설명했다.마치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리듯 미역포자도 물결을 타고 떠돌면서 자리를 잡는다.바위에 붙어야 하는데 정작 다른 조류들이 뒤덮고 있으면 곤란하므로 돌씻기를 잘해 포자가 잘 붙도록 해야 한다는 것.“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바다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떠돌고 있습니다.그 중 미역포자는 비교적 큰 경우지요.소금기만 있는 바다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바위 잘 닦아야 미역 많이 자라 요즘도 천연미역이 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미역씻기 자체가 워낙 고된 노동이기 때문에 대부분 자연산을 포기하고 대량 생산체계인 양식으로 바꿔 미역을 길러낸다.다행히 명맥은 아직 끊이지 않아 인근 두호와 항리에서는 아직도 천연미역을 채취한다.미역은 아무 곳에서나 나지 않는다.‘미역밭’이라 해서 바닷물 속에도 바위마다 밭이름이 정해져 있고 소출량도 다르다. 이곳 대변에도 벌목암,외지암,사전암,우모암 등 바다 속 미역밭이 제각각이다.그러다 보니 그 밭에서 미역을 길러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 ‘추잠’이라는 투표를 통해 미역밭을 할당하곤 한다.민주적 방식이므로 결과에 불만이 있을 수 없다.일단 그 해 자신의 밭이 결정되면 손수 시르게질을 비롯,온갖 품을 들여 ‘미역농사’를 짓는다.사적 소유와 다른 어촌의 공동체적 삶이 ‘총유(總有)적 경영’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얕은 밭의 미역은 썰물때 낫을 들고 들어가 베어낸다.하지만 미역숲이 주로 수심 6m쯤 되는 곳에 이뤄져 대부분은 썰물이라 해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그래서 해마다 가을이면 마을의 ‘선두’가 멀리 제주도까지 가서 잠녀들을 모집해 온다.잠녀들은 떼를 지어 마을로 들어오는데 한창 때는 대변항에만 100명이 넘게 들어오기도 했다.잠녀들은 선두에게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미역베기에 나선다.가을부터 5월까지 잠수일을 하다가 돌아간다.엄동설한에도 주저없이 물로 뛰어드는 잠녀들이 없었더라면 기장미역의 명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이렇게 일한 잠녀들에게는 생산량의 5분의 1 정도가 지분으로 할당됐다. ●추억 속으로 사라진 시르게질·잠녀 8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시르게질도 사라지고,잠녀들도 오지 않는다.압도적 생산량을 보장하는 양식 줄미역이 등장하면서 천연미역은 점차 종적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지금도 춘궁기의 미역을 ‘밥줄’로 생각한다.보릿고개에 어김없이 굶주린 뭍의 생명을 구하곤 했던 까닭이다.예나 지금이나 기장시장과 좌천시장,동래시장 등에 가면 기장에서 생산된 미역과 멸치,그리고 다시마,갈치 등이 좌판을 장악하고 있고,어촌 노파들은 좌판에 손수 뜯어말린 미역이며 멸치 등속을 내어 판다. 기장군청을 찾으니 “아침이 좋은 고장”이란 슬로건이 눈에 띈다.실제로 기장의 명소 1번지로 꼽히는 시랑대(侍郞臺)에서는 정말 아침다운 아침을 만날 수 있다.차성 8경의 하나로,돛단배가 멀리서 포구로 들어서는 원포귀범(遠浦歸帆)의 뛰어난 경관이었으니,가히 시인묵객들이 찾아들어 즐길 만한 곳이다.시랑대에 견줄 만한 명승지가 곳곳에 널려 있다.고려말 정몽주와 이색 등이 찾아 즐겼다는 삼성대,일출 경관이 뛰어난 적선대,윤선도의 유배지로 추정되는 황학대 등이 그곳이다 ‘교남지’에 따르면,대변 앞바다의 죽도도 예전에는 손꼽히는 명승지였다.뛰어난 경관에다 신선한 미역과 멸치,갈치떼가 살아움직이니 아침이 좋을 밖에. 이렇듯 풍요로운 곳이었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기장민의 삶이 얼마나 참담했던가를 금방 읽어 낼 수 있다.임진왜란 때는 “남녀노소는 물론 개·고양이 할 것 없이 살아있는 모든 것이 살육을 당했다.”고 해 지금도 ‘혈제(血祭)’라는 말로 기억될 정도다.그 때 왜장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쌓은 왜성이 지금도 이곳에 남아있다.왜란 때만 그런 게 아니었다.시시 때대로 왜구들이 떼지어 몰려와 사람을 해치고 산물을 약탈해 갔다.오죽했으면 의병장 김산수·김득복 부자가 죽으면서까지 무덤을 기장 해변에 둬 사후에도 왜구를 지키게 해달라고 유언했을까.
  • [1일 TV 하이라이트]

    ●압구정 종갓집(SBS 오후 9시20분) 문희와 자옥은 윤식에게 상의도 없이 몰래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 준다.두 사람은 돈을 돌려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할 수 없이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윤식을 망신시키게 된다.윤식은 아르바이트 금지령을 내리지만 문희와 자옥은 아르바이트를 계속한다. ●사이언스+(YTN 오전 8시30분) 미래 에너지원,원자력에 대해 알아본다.요즘 고유가 행진이 지속되면서 대체 에너지의 필요성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우리나라도 원자력 발전에 있어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원자력 연구소 장인순 소장으로부터 원자력의 경제성과 제2원자력밸리 조성계획을 들어본다. ●오늘의 아시아2(EBS 오후 11시40분) 쿠데타를 당한 네팔왕실의 통치기간 동안 네팔은 빈부의 격차가 극에 달하고 사회는 대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네팔의 산악지대에서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게릴라들을 취재한 이 다큐멘터리는 그들이 그런 삶을 선택하게 된 개인적,사회적 배경과 함께 생활,훈련방식을 보여준다. ●인생극장〈오 마이 갓〉(iTV 오후 10시50분) 딸부잣집의 막내 아들 강두.누이들 틈에서 여자들의 놀이를 즐겨하고 점차 여성화되어 간다.학교에서 신체검사가 있던 날 강두는 바지를 벗지 못하고 뛰기 시작하는데 그가 달음질쳐야 했던 까닭은? 덜렁거리는 성격의 양순이.어느날 방문이 안에서 잠기는 난관에 부딪히는데…. ●와!e-멋진 세상(MBC 오후 7시20분) 스스로를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과자족의 여자들은 사춘기가 지나면 새끼 원숭이를 데려다 젖을 물린다.세계 최초로 브라질의 과자족을 공개한다.캐나다 서부에 위치한 도시 애드먼튼에서 무려 740㎏의 대형 들소 베일리와 동고동락하는 짐과 린다를 만나본다. ●아름다운 유혹(KBS2 오전 9시) 성필은 기태의 부도를 이용해 재혁에게 돈을 끌어낼 궁리를 한다.나경은 아버지가 유언장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민우로부터 듣게 된다.한편 기태는 주란이 베개를 들고 방으로 들어오자 화들짝 놀라고,솔이는 아침밥을 떠먹여주는 주란의 숟가락을 확 밀쳐 버린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KBS1 오후 7시30분) 식당 일을 하며 돈을 벌어오던 상훈의 아내 선정이 이혼을 선언한다.상훈은,선정이 갑자기 이혼을 하려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한편 마을 사람들은 선정이 식당에서 일하다가 다른 남자가 생긴 게 아닌지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마을에 낯선 남자 순철이 선정을 찾아오는데….
  • 캄보디아 압사라 댄스 무료 공연

    캄보디아 압사라 댄스 무료 공연

    앙코르와트 보물전을 열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은 오는 31일(화)∼다음달 5일(일) 캄보디아 왕실무용단을 초청,압사라 댄스 무료공연을 개최한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12세기에 앙코르왕조가 건설한 석조건축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예술성과 웅장미에 있어서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과 로마 콜로세움에 못지 않다. 공연되는 압사라 댄스(Apsara Dance)는 캄보디아 전통무용의 진수로 천상의 존재를 표현한 아름답고 우아한 춤이다.압사라는 ‘춤추는 여신’,‘천상의 무희’를 뜻한다.무희들은 금빛 머리장식,실크튜닉과 치마를 입고 앙코르와트 사원 벽화에 그려진 동작들을 그대로 재현한다. 화ㆍ목요일에는 오후 2·7시,수·금·토·일요일에는 오후 2·4시에 공연이 열린다.홈페이지(www.museum.seoul.kr)를 통해 사전접수,좌석을 배정받아야 한다.공연 10분전에 빈 좌석이 있으면 현장에서 선착순 입장가능하다.(02)724-0192.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러 박물관 한국문화재 600점 ‘햇빛’

    러 박물관 한국문화재 600점 ‘햇빛’

    긴박했던 구한말 한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희귀 자료들이 무더기로 세상에 드러났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 200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표트르대제 인류학민족학박물관 한국문화재에 대한 조사를 거쳐 최근 발간한 도록 ‘러시아 표트르대제 인류학민족학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구한 말 한국 조정과 러시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 600여점의 컬러도판에 해설을 붙여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이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896년 아관파천을 성공리에 완수한 친러내각 조직의 주동이었던 베베르가 수집한 유물들.명성황후가 지장상자(紙裝箱子·얇은 나무로 짠 다음 주홍종이를 바르고 겉에 壽福康寧의 문자를 새긴 상자)에 담아 베베르에게 직접 하사한 청자완(靑姿琬)은 급변하는 당시의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나라와 러시아와의 긴밀한 외교적 접촉을 그대로 보여준다. 흥선대원군의 조카인 독판내무부사(督辦內務府事) 이재원이 고종의 명으로 1885년 9월7일자로 베베르에게 보낸 초청장도 왕실과 베베르와의 밀접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초청장에는 베베르와 러시아 함대 함장 및 사관을 편전으로 초대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으며 ‘위패(韋貝)’라는 베베르의 한국이름과,당시 우리나라에서 불린 그의 직함 ‘大俄國欽差大臣韋大人’도 기록되어 있다.일등상궁이 한 러시아 부인에게 아이의 안부와 날씨를 물으며 “오늘 오실까 하였는데 빗기운이 있으니 내일이라도 날씨가 청명하면 오시라.”며 보낸 궁체 서한문도 흥미롭다. 표트르대제박물관은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표트르대제(1672∼1725)에 의해 세워진 세계적인 민족학박물관 가운데 하나로 독립된 한국실을 갖추고 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예술의 향기 솔솔 양평에 가볼까

    예술의 향기 솔솔 양평에 가볼까

    드라이브 명소인 양평에 가면 궁금했던 것이 있다.‘아니 시골에 웬 갤러리가 이렇게 많은 거야,언젠가 한번 들어가 봐야지.’ 하지만 마음뿐,왠지 아는 사람 없는 잔칫집마냥 서먹했던 도심의 화랑 생각이 나 선뜻 발을 들이지 못했다.그러나 어렵게 문턱을 넘어서자 편안한 전원적 분위기가 손님을 맞았다.편하게 보고,마시고,이야기도 나누고. 가까운 곳에 드라이브를 가고 싶다면,약간의 예술적 허영심까지 있다면,주저 말고 양평으로 떠나자.화가만 280여명,문학·음악인 등까지 합치면 450여명의 예술인이 모여 산다는 ‘한국의 바르비종’으로.예술투어 프로그램까지 운영되고 있다니 더욱 매력적이지 않은가. ■ 화가마을 ‘양평에 이런 두메산골이 있었나.화가라고 하더니 산에서 도를 닦는 모양이군.’ “험하죠? 그래도 이곳 양지산 자락에만 화가들이 10여명 모여 삽니다.항금리 화가마을이라고 하지요.” 불편한 심사를 눈치라도 챘는지 ‘닥터박컬렉션&갤러리’의 큐레이터 손갑환(41) 실장이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구불구불,울퉁불퉁한 비포장길 끄트머리.승용차 바닥을 몇 차례나 긁힌 끝에 도착한 곳은 여류화가 김영리(46)씨의 보금자리 겸 작업실이었다.김씨는 ‘양평예술투어’에 아틀리에를 개방한 양평의 예술인중 한명이다. 연락을 받은 김씨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허름한 농가(나중에 물어보니 우사라고 했다)를 대충 고쳐 쓰는 듯한 집안엔 그림과 그림도구 일색이다.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마치고 국내서 작품활동,뉴욕에서 10년간 학업과 작품활동,귀국해 양평의 이 두메로 흘러든 지 벌써 10년이란다.처음 10여년은 ‘도시와 인간’이란 테마에 천착했고,이후엔 자연으로의 회귀,지금은 자연의 해체를 보듬는 생태적 테마에 매달린단다. 유치원생이라는 그의 7살배기 아들이 손님들에게 물을 한 잔씩 따라 준다.이야기에 열중하는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함이다.딸 쌍둥이를 낳은 후 12년 만에 얻은 늦둥이다.쌍둥이중 하나는 올해 서울대에 합격해 다니고 있고,다른 하나는 재수중이란다.과외는커녕 학원도 구경하기 힘든 산골에서 시골 학교를 나와 서울대에 덜컥 합격했으니 부모로선 눈물겹도록 기특할 수밖에. 그림에서 아들 얘기로,다시 집안 얘기 및 양평의 화가들 이야기를 듣는 동안 1시간이 후딱 지나갔다.양평 예술투어는 이렇듯 도심 갤러리에서 느끼기 어려운 예술인들의 작업현장과 소박한 삶의 단면을 느낄 수 있는 코스로 짜여져 있다. 손 실장,김씨와 함께 집을 나서 양평읍 초입에 있는 양평군민회관으로 향했다.이곳엔 양평 맑은물사랑 미술관(031-770-2472) 및 창작스튜디오가 있다.양평군측이 관내의 예술인들을 위해 마련해준 전시 및 창작공간이다.미술관에선 서양화가 조영호(44)씨의 ‘생태’전이 열리고 있었다.기괴한 듯하면서도 무언가 강렬한 희구의 메시지가 느껴지는 듯한 작품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도덕과 아름다움을 걷어낸 생태의 심연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조씨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관람객들.생태전은 14일 끝나고,20일부터는 조근상씨의 ‘전통악기전’이 2주간 열린다. 미술관 옆 창작스튜디오에 들어가니 큼직한 도자기 작업을 하던 아줌마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쪽으로 쏠린다.김영리씨를 비롯해 서양화가 김호순,이봉임씨 등이 오는 9월 서울에서 열게 될 도자전을 준비중이라고 했다.명함을 보니 모두 화가들이다.웬 도자전이냐고 했더니 회화작업을 위한 ‘자금마련’이 목적이란다.파블로 피카소도 어려울 적 돈이 되는 도자기를 만들어 팔아 그림에 매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하긴 지난해 이천·여주에서 열린 도자기엑스포에 갔다가 ‘피카소 도자기 특별전’에서 도예가 피카소의 생경한 면모를 본 적이 있었다.도자전은 오는 9월3일부터 9일까지 청담동 가산화랑(02-516-8886)에서 ‘물메리 사람들의 이야기전’이란 제목으로 열린다. 멤버중 한 사람인 이봉임(48)씨가 북한강변 서종면의 ‘문화의집’(011-296-1511)을 소개한다.서양화가인 그의 남편 이근명(48)씨가 운영하는 곳으로,지역주민들에게 ‘인기 짱’이란다.지역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전시,음악행사가 지역주민 전체는 물론 서울 등 외지에서 마니아들이 몰려올 정도라고 했다. 매 주말 열어온 ‘우리동네음악회’가 오는 21일 50회째를 맞는다.서종면 거주 화가들이 동네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고 전시하는 ‘우리동네그리기전’ 역시 역사가 꽤 오래됐다. 요즘은 매주 토요일 북한강변 서종체육공원에서 ‘8월의 북한강 주말음악축제’를 열고 있다.시골행사라고 얕보지 마시기를.지난 7일 첫회엔 타악그룹 ‘4PLUS’가 열정적 공연을 선보였고,14일엔 국립국악원 단원들로 구성된 ‘다움 우리소리 앙상블’이 국악의 진수를 선보였다.21일엔 체코의 금관5중주단인 ‘체코프라하 브라스앙상블’이 출연한다. ●양평예술투어 ‘화가마을로 떠나는 예술기행’이란 이름으로 진행된다.양평 화랑가 작품 감상,강변 습지 탐방,아틀리에 탐방,도예체험 등이 포함된다.1인 참가비 2만원.10명 이상이어야 운영되기 때문에 몇 가족이 모여서 함께 움직이는 게 좋다.이 프로그램은 5년 전 손갑환 실장이 만들었다.우연히 파리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아틀리에를 탐방한 뒤,갤러리에서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달리 작가의 진솔한 삶과 열정적인 작업과정을 보면 일반인들이 예술에 대해 좀더 깊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문의 (02)553-0246. ■ 갤러리카페 몇년 전 남한강변에서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강상면 병산리에 이르러 독특한 외관의 건물에 들른 적이 있다.갤러리아지오.양평에 거주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옆방엔 자그마한 카페가 있던 곳.작품 감상을 하고 카페에 들르면 4000원짜리 스파게티와 2000원짜리 커피가 기다리고 있었다.스파게티 맛이 서울 유명 레스토랑 못지 않았고 커피향도 참 진했었는데.예술적·생리적 배고픔을 한꺼번에 달래는데 제격이었다. 아지오는 지금도 있다.다만 쇼나조각 전문 갤러리로 바뀐 것이 다를 뿐.아니 카페에서도 이젠 차 종류만 팔아 스파게티를 맛볼 수 없다.쇼나(Shona)는 아프리카 짐바브웨 인구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부족 이름.이 부족은 조각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쇼나조각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스케치나 밑그림 없이 순수하게 돌과 자연에 깃들어 있는 형태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것이 특징. 석재사업을 하던 이영두(52)씨가 대리석이 유명한 짐바브웨를 오가다 쇼나조각의 매력에 푹빠진 뒤 아지오를 인수해 지난 2월 쇼나 전문 갤러리로 재오픈했다..일산의 ‘터치 아프리카’와 함께 국내에 2곳뿐인 쇼나조각 전문 갤러리다.카페에선 몇가지 커피와 함께 국화잎을 띄운 국화차,영국 왕실에서 즐겨마신다는 산딸기홍차,보이차 등 20여가지의 차를 낸다.찻값은 균일하게 5000원.(031)774-5121. 아지오처럼 작품 감상과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강하면 전수리의 ‘몬티첼로’,북한강변 서종면 문호리의 ‘인더갤러리’가 있다.몬티첼로(031-774-9301)는 도예공방과 전시실,카페,아트숍을 갖추고 있다.지금 진행중인 전시 테마는 ‘세라믹가든’.세라믹 도예가와 플로리스트의 만남이다.30일까지. 공방은 도예가 윤현경(45)씨의 작업실.다양한 재료와 모양의 작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예전엔 체험교실도 운영했으나 장소가 비좁아 요즘엔 못하고 시연만 한다고.부담없이 구입할 만한 것도 많다.화병이나 물병용으로 좋은 피처는 2만원,사발이나 주발 7000∼9000원,큼지막한 면기 2만 5000원 등. 카페에선 바게트 모양의 빵에 고기와 야채 등을 넣어 만든 호기 샌드위치와 커피가 함께 나오는 샌드위치 세트가 먹을 만하다.1만 2000원. 인더갤러리(031-771-6191)는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북한강변을 따라 20분쯤 달리면 나온다.얼핏 보기엔 작은 창고모양으로 볼품 없게 생겼지만,일단 들어가면 오히려 작아서 어울리는 곳이다.1층은 전시실.여름특별기획으로 ‘흐르는 강물전’(30일까지)이 열리고 있다.윤경림 등 6인 초대전이다.인더갤러리 박인아실장은 “고여 있지 않아서 맑은,늘 살아 숨쉬는 강물같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2층은 북한강이 한 눈에 들어오는 카페.차와 간단한 음식을 판다.이밖에 서종면 문호리의 ‘갤러리 서종’(031-774-5530)과 강상면 교평리의 ‘전원갤러리’(771-1959),‘예사랑도예공방’(774-0307),가일미술관(584-4700)도 들러볼 만하다. ■ 바탕골 예술관 보는 것,듣는 것만으로 채울 수 없는 예술적 허영심을 갖고 계시다면 강하면 운심리의 ‘바탕골예술관’으로 가보시길.특히 아이들과 함께라면 ‘꼭’이란 말을 덧붙이고 싶다. 먼저 도자기 공방.흙은 만지면 IQ에 EQ까지 높아진다는데.이곳에선 흙을 마음껏 만지고,흙에 그림도 그리고,그릇을 만들고,굽는 과정도 구경할 수 있다.가스가마,천연장작가마에서 각양각색의 도자기를 꺼내는 모습을 못보면 두고두고 서운할지 모른다. 체험료는 도자기 5000∼1만 5000원,공예는 5000∼2만 5000원.한시적으로 8월31일까지 반짝이 티셔츠 및 머그컵 만들기,바비큐파티,미술관 투어 등을 묶어 1인 4만원(어린이 3만 2000원)에 판매한다. 미술관1에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전이 열리고 있다.박석호,박의순 등 13인이 각자에게 익숙한 재료인 섬유,종이,목재,금속,흙을 이용해 ‘물고기’라는 소재를 재미있게 표현했다.미술관2에선 숭숭이장,문갑,경대 등 선조들의 미감을 잘 살린 전통 목가구전이 진행중이다. 바탕골극장에선 무용공연 ‘Carnival In Yangpyeong’이 29일 펼쳐질 예정.국민대 문영,이미영 교수의 연출과 지도로 ‘날개 없는 꾀꼬리’,‘몽환’,‘Freedom’ ‘Re-Turn’ 등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홈페이지(www.batangol.com)에 들어가 회원 가입후 할인 쿠폰을 출력해 가져가면 체험료나 관람료 할인혜택도 받을 수 있다. 강하면 전수리 남한강변에 올 10월 완공되는 ‘닥터박컬렉션&갤러리 양평아트센터’(02-553-0246)도 바탕골예술관에 이은 대형 복합예술공간으로 태어날 예정. 글 양평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정신우와 양평 맛드라이브 서울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남짓한 북한강과 남한강 줄기를 따라 맛집도 즐비하다.녹음이 짙은 산과 매혹적인 강에 어우러진 강변의 음식점들.이들만으로도 훌륭한 나들이가 되지 않을까? 물론 어떤 음식점이냐가 관건이다.“맛 없으면 돈을 받지 않겠다.”며 맛을 장담하는 현수막을 내건 집도 있지만 쉽게 발이 들어가지 않는다.국내 최초의 남성 푸드스타일리스트이자 전국의 맛집을 순례했던 정신우씨를 따라 나섰다. ●45번 국도(조안∼화도) 정신우씨가 첫번째로 들른 맛집으로 45번 국도상의 연세중교 앞의 죽여주는 동치미국수(576-4070).평일 오후지만 빈 자리가 없어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동치미국수(4000원)의 살얼음이 살짝 언 국물은 무더위를 금방 식힐 정도로 시원했다.면발은 툭툭 끊어지면서 부드러웠다.비교적 저렴한 가격 덕분에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이 많이 찾았다.국수 한 그릇으로 허전할 것 같으면 김치를 넣어 만든 찐만두(5000원)나 찐계란(3개에 1000원)을 곁들이면 된다.퇴촌면에 있는 죽여주는 동치미국수(031-768-6868)가 여기의 본점이다. 이어 그는 서울종합촬영소로 올라가는 길의 초원(576-8941)은 삼겹살과 김치찌개가 그만이라고 소개했다.종갓집에서 국도를 따라 500m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에 나오는 카페 행복의 강(576-4050)은 북한강의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야외 테라스에는 강과 눈높이가 거의 같아 물이 찰삭거리는 소리가 다 들린다.네티즌들이 한때 북한강 최고의 명소로 꼽기도 했다.주스가 8000원. ●88번 지방도(퇴촌∼양근대교) 양수대교를 건너 좌회전해 조금 나오면 강초매운탕(772-9059)과 본가해장국(772-2577)이 지역에선 널리 알려진 집이다. 생선구이를 전문점 해마(771-9202) 맞은편의 라리아(774-9717)도 프랑스식 레스토랑 겸 카페로 마니아들에겐 널리 알려져 있다.불어로 공기를 뜻하는 라리아는 63빌딩과 워커힐호텔 출신의 조리사들이 포진하고 있단다.화이트와 짙은 브라운이 조화를 이룬 인테리어와 유리창을 통해 훤히 내다보는 남한강은 한폭의 그림이다.멀리 용문산도 보인다. 북한 여름 보양식인 초계탕을 하는 평양초계탕(772-8229)도 팬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맛집이다.초계탕은 닭고기를 가늘게 찢고 오이·묵 등을 무쳐 함께 담아낸 것으로 닭찬국물에 부어낸 것이다.2인분에 3만원,4인분 4만원.기본으로 나오는 물김치에도 살얼음이 둥둥 떴다.초계탕이 나오기 전에 유일하게 따뜻한 음식으로 메밀전이 나온다.평양식 막국수(5000원)도 별미다.초계탕을 먹고 난 육수에 말아 먹어도 그만이다. 한국두부연구소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초심(768-8848)은 직접 만든 두부 요리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손두부·철판순두부·칼국수와 함께 손만두를 하고 있다.가족 단위 손님들에게 인기가 높다.이어 퇴촌밀면(767-9280)은 3년 숙성한 백김치와 얼음이 서걱거리는 육수가 그만이다. ●363지방도(양수리∼수입리) 양수대교를 건너 좌회전,363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오른쪽의 연꽃언덕(774-4577)은 생선 매운탕과 장어구이를 내놓고 있다.북한강을 쭉 올라가면 카페와 음식점이 밀집한 서종면 문호리에 닿는다.문호리 마을 가운데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버섯전골과 비빔밥이 전문인 한우리(772-4368)와 길옆이지만 산속처럼 적요하게 느껴지는 카페 로뎀(772-5777) 등도 드라이브객을 붙잡는다. 문호리에서 조금 올라간 수입리에도 카페와 음식점이 밀집해 있다.문호리가 옛날 시가지라면 수입리는 요즘 한창 들어서기 시작하는 곳이다.매운탕과 간장게장 전문인 낙원(774-1938)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토방(774-2521).두부전골,두부김치 등을 구수하게 내온다.내부 인테리어도 고풍스럽고,밑반찬으로 나오는 메뉴도 맛깔스럽다.말만 잘하면 비지를 공짜로 얻을 수 있단다. ●6번국도(양수리∼양근대교) 양수대교를 지난 두물머리 근처의 촌미(772-6778)는 유기농 농산물로 음식을 만드는데,순두부 정식이 7000원이다.또 카페 오데뜨를 겸하고 있는 두물머리밥상(774-6022)도 유기농 쌈밥과 순두부를 내놓는다. 양수콩나물국밥(771-5995)은 6번 국도에서 가장 먼저 생긴 원조집이다.콩나물을 직접 길러 전주식으로 끓여낸다.경춘선 국수역 뒤쪽의 모비딕(774-4548)은 원양어선 출신의 주인이 흰 고래인 모비딕을 형상화해서 지었다고 한다.궁중비빔밥과 조랭이떡국이 전문이다.옥천면옥(772-9693)은 양평 최고의 평양식 냉면집으로 꼽힌다.4대째 이어오고 있으며 굵으면서도 쫀득한 면발을 자랑한다.양평역 옆의 화천갈비(771-2487)는 동네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집이지만 시간에 쫓겨 찾지 못했다. ●정신우씨에겐 요리하는 탤런트,국내 최초의 남성 푸드스타일리스트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16세 때 자취를 하면서 스스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그는 집안의 김치를 모두 담그는 등 조리에 20년 내공이 쌓였다.서른 즈음의 어느날 “요리가 천직임을 문득 깨달은” 그는 국내외의 푸드스쿨을 다니며 요리와 스타일링을 공부했다.이후 전국의 맛집 순례도 다녔던 그는 최근 ‘게으른 음식남녀 집에서 밥해먹기’란 책도 냈다. ●산당-강하면 운심리 바탕골예술관(031)772-3959 양평지역 최고의 음식점으로 강하면 운심리 바탕골예술관 근처의 한식을 코스화한 산당(772-3959)을 들 수 있다.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꼭 한번 들를 만한 곳이다.요리 예술가이자 음식 연구가인 임지호씨가 음식,특히 한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음식점이다.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재료를 이용해 조리사 마음대로 만든 음식이지만 감동을 준다.맛이 다소 생소한 것도 있지만 다음 코스를 기대하게 한다.물론 인공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채 자연의 맛을 찾고 있다. 음식은 강(3만 3000원),하늘(5만 5000원),자연(7만 7000원) 세 종류다.자연은 최소한 하루 전에 예약해야 한다.음식은 앙증맞기도 하지만 예술적으로 담겨 나온다.하지만 간단찮은 가격이 단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강의 메뉴를 보면,고등어까지 세 종류의 회가 나오는데 회를 찍어 먹을 양념으로 측백나무잎을 갈아 만든 측백나무 소스와 산초절임이 나온다.돼지 목살을 녹차가루에 비벼 장작으로 익힌 바비큐,감자를 실처럼 썰어 튀긴 위에 적포도주 소스를 올린 것,연근을 적포도주에 졸여 뽕잎을 올려낸 것,방게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방게 튀김 등 12가지가 나온다. 그 다음에 김치 4종류,젓갈 2종류,산나물 9가지,굴비구이,간장게장 등과 함께 동충하초쌀로 지은 밥이 나온다.음식 이름으론 다른 음식점과의 차이점을 찾기가 어렵겠지만 실제로 하나하나가 아주 독특하다.식사를 마친 다음 2층에서 커피나 녹차를 가지고 올라가면 전원카페 못지않은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산당 입구에 쓰인 ‘음식은 종합예술이고 약이며 과학이다.’는 글귀를 나오면서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어머니 가마솥밥-서종면 문호리에서 정배리쪽(031)772-9252 카페가 밀집한 서종면 문호리에서 정배리쪽으로 빠지다가 왼쪽 길가의 어머니 가마솥밥(772-9252)은 현지인들이 가장 먼저 추천하는 음식점이다.주인은 서종면 토박이다. 생선 구이가 주메뉴.삼치구이를 주문했더니 생선을 은박지에 싸서 구워냈다.노릇하게 고루 익었다.간은 약간 싱거운 듯 삼삼했다.살코기는 입안에서 녹는 듯했다.여기에 나물과 김치·젓갈 등 20여 반찬이 한 상 가득하다.가마솥으로 지은 밥이 나무 밥통에 담겨 나온다.가마솥에서 밥을 지은 까닭인지 밥맛이 한결 찰지고 구수하다.나물은 모두 텃밭에서 기른 것이란다. 된장찌개 국물에 밥과 콩나물 등을 함께 넣고 비벼 먹어도 그만이다.식사를 마친 다음에 나오는 누룽지 숭늉도 구수한 맛으로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준다.누룽지가 토실토실해 입맛을 자꾸 다시게 한다. 2명 이상일 경우 여러 가지를 주문할 수도 있지만 어머니정식(3만원)을 시키면 골고루 맛볼 수 있다.간장게장과 생선구이·불고기가 함께 나오는 까닭이다.간장게장만 별도로 주문하면 1만 5000원이다.삼치·조기·꽁치구이는 5000원,굴비와 안동간고등어는 1만원이다. ●외할머니집-삼봉리 구봉부락서 왼쪽(031)576-7272 45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외할머니집’이란 간판이 곳곳에 눈에 띈다.언제나 포근하고 정겨운 이름 탓에 구봉부락(삼봉리)에서 왼쪽으로 핸들을 꺾었다.비포장 도로를 거쳐 2∼3㎞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외할머니집(576-7272)이 나왔다.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맛은 많이 알려진 듯 손님들이 가득했다. 겉보기엔 흐름한 초가집이지만 실내는 나무로 아가자기하게 엮었다.할머니가 아니라 40대 후반의 주인 부부가 한다.하지만 손맛이 깊다.가장 대표적인 식단은 대나무통보리밥(7000원).보리밥을 대나무통에 담아 낸다.상추·무·호박·고사리 등의 산나물과 고추장·참기름도 함께 나오는데,그릇에 담아 쓱싹 비벼먹는 맛이 그만이다.여기에 된장찌개를 조금 넣어도 좋다.향이 강한 참기름은 너무 많이 넣으면 다른 재료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한여름인 요즘에도 두릅초회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식사가 나오는 동안 도토리묵무침(1만원)이나 파를 썰어넣어 두툼하게 익혀 내오는 녹두전(8000원)으로 입맛을 돋워도 좋다.시간 여유가 있고 일행이 있다면 돌솥한방백숙(3만 5000원)도 좋다. ●종갓집-서울종합촬영소 길목 맞은편(031)576-1100 푸드스타일리스트 정신우씨가 북한강 일대에서 강력하게 추천하는 음식점이 서울종합촬영소 올라가는 길목 맞은편의 종갓집(576-1100)이다.촬영소 입구인 탓에 영화배우와 탤런트 등이 많이 찾는 집이다. 종갓집의 대표 메뉴는 장어구이.주인 최성환(51)씨는 “장어구이 비법은 8대째 북한강에 터를 잡고 살아온 종가에만 비전돼 온 것”이라고 전한다.그는 경주 최씨 반가정파 32대 종손이다.장어의 기본 양념으로 대추·생강·인삼을 졸여서 쓴다.장어는 찬 기운을 가진 식재료여서 따뜻한 기운이 강한 생강과 인삼 등을 써야 탈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안주인 추숙녀(48)씨의 설명이다. 뒷마당의 바비큐 그릴에서 장어에 붓으로 양념을 바르면서 굽는다.장어를 싸 먹는 야채는 텃밭에서 모두 기른 것이다.“직접 농사도 짓지만 일손이 부족해서 농약은커녕 비료도 못 뿌린다.”는 것이 추씨의 하소연 섞인 야채 자랑이다.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무공해란 이야기다.장어정식은 1만 8000원,1㎏에 3만 8000원이다. 또 한가지 빠지지 않는 것이 훈제돼지갈비(1인분 8000원·200g).참나무 연기로 돼지갈비를 4시간 정도 훈제한다.돼지의 기름기와 특유의 냄새가 모두 빠진다.고루 익은 고기를 한방 재료로 양념을 해서 먹는데,어찌보면 햄과 비슷한 맛이 났다.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추씨는 “원래 장어구이 전문점인데 훈제돼지갈비가 더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이를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 더 많다.”고 자랑했다.장어구이나 훈제돼지갈비를 먹고 나면 구수한 된장찌개나 열무국수(3000원)를 먹으면 된다. 이외도 닭백숙과 닭도리탕이 3만원,버섯전골 2만 5000원,영양돌솥밥과 감자전·도토리묵이 각 8000원이다. 양평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양평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올 가을 새 브랜드 20여개 론칭

    올 가을 새 브랜드 20여개 론칭

    찜통 더위가 한풀 꺾였다.가을을 예감케하는 시원한 바람은 패션에 실려왔다.이번 가을의 가장 큰 특징은 국내패션계에 국경이 완벽히 허물어졌다는 것.칼 라거펠트의 매장이 세계 3번째 서울에서 문을 열 정도로 이제 서울은 세계패션시장이 됐다. 올 가을 새로 론칭되는 브랜드는 20여개.국내 브랜드는 이랜드의 ‘뉴트(Newtt)’,모아베이비의 ‘엘룩(ELOQ)’ 정도.이탈리아의 ‘끌로에’‘피오루치’,영국의 ‘존 롭’‘카리모’,스페인의 ‘캠퍼’,미국의 ‘띠오리’‘토미 진’ 등 수입 브랜드가 압도적으로 많다.특히 국내외 스타들이 즐기는 수입브랜드가 눈에 띈다. 살 여유가 없으면 어떠랴.새로운 스타일을 눈으로 즐기는 것도 즐거움이거늘.새로운 브랜드를 즐겨보자. ●스타의 옷을 입는 즐거움 미국시트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꿈의 구두’라 표현했던,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리즈 위더스푼이 열광했던,나체 공연을 한 영국가수 메이시 그레이가 실오라기 하나 없는 몸에 유일하게 걸쳤던,‘그 구두’가 찾아왔다.캐서린 제타존스,할 베리,니콜 키드먼,줄리아 로버츠,심지어 다이애나 황태자비까지 즐겨 찾았다는 구두 ‘지미 추’. “지미 추를 신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지미 추를 먼저 만나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신는 사람의 성향을 중요시하기로 유명하다.국내에서 그런 기회를 갖기는 힘들겠지만 그의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디자인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을 일. ‘연예인 모자’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스타들이 즐기는 ‘본더치’도 정식매장이 생긴다.보아,이효리,브리트니 스피어스,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국내외 스타들이 캐주얼 차림에 꼭 애용하는 야구모자 브랜드로 청바지 티셔츠도 들어온다. ●유럽의 멋을 만나는 즐거움 ‘영국 왕실의 니트웨어 브랜드’의 자존심을 가진 ‘프링글’도 상륙했다.데이비드 베컴과 빅토리아 베컴,팝스타 로비 윌리엄스,인기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등 영국계 스타가 즐기고 있어 패션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벌써 눈독을 들이는 브랜드다.컬러풀한 카디건,편한 통바지,몸의 곡선을 따라 흐르는 치마 등,누구나 쉽게 연출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프랑스 패션계의 거장 칼 라거펠트도 그의 이름을 걸고 올 가을 첫 인사를 했다.라거펠트는 샤넬의 아트디렉터,펜디의 책임디자이너,사진작가,영화감독으로 변신해온 다재다능한 인물.상류사회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그의 옷은 입는 것뿐 아니라 보는 즐거움도 크다든가.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 오픈하는 매장은 파리와 모나코에 이어 세계 세번째 개설되는 단독매장이란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변화된 스포티즘을 만나는 즐거움 기존의 브랜드는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재탄생하고 있다.다양한 용도의 주머니,기능성 지퍼 등 아웃도어웨어(레저용 의류)의 세부장식을 캐주얼에 접목해 일상생활에서나 레저활동용으로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 변화의 초점. 최근 론칭행사를 가진 ‘SS311’는 제일모직이 야심차게 내놓은 도시 스포츠캐주얼 브랜드다.365일 중 일요일이 아닌 평일(311일)에도 스포츠를 즐기자는 의미를 담았다.세련된 디자인과 여유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를 겨냥해 기능성 아웃도어웨어 스타일에 화려한 원색을 접목했다. 이달초 진행된 ‘노티카’의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무릎이나 허벅지에 주머니를 비스듬히 붙인 카고바지와 앞여밈을 지퍼로 처리한 니트 등 세련된 디자인에 방수·방풍·투습 기능을 강화해 스포츠웨어에 캐주얼의 접목을 시도했다. 아웃도어 컨셉트를 강조해온 ‘팀버랜드’는 아웃트로(Outtro=Outdoor+Metro) 라인을 새롭게 선보였다.아웃도어 부문의 전문성을 살린 기능성 소재를 캐주얼에 풀어내 캐주얼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팝의 전설’ 엘튼 존 온다

    ‘팝의 전설’ 엘튼 존 온다

    어떤 수식어를 동원해도 부족함이 느껴지는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팝스타 엘튼 존이 드디어 역사적인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새달 17일 오후 8시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그 화려한 무대가 예정돼 있다. 엘튼 존의 내한은 그동안 수차례 추진된 바 있으나 비싼 개런티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이번엔 9월12일 홍콩 공연을 시작으로 타이완,한국,중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성사됐다.개런티는 약 100만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의 멤버로 구성된 엘튼 존 밴드 8명을 포함해 30여명의 제작진이 함께 내한하며 25t에 달하는 공연장비가 공수된다.파격적인 무대 의상과 기발한 연출로 관중들을 매료시켜온 그답게 이번 공연을 위해 준비한 의상과 구두만 해도 방 2개를 채울 정도라고 한다.곡목은 공연 당일 리허설에서 결정된다. 1969년 데뷔한 엘튼 존은 대중적 인기면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비틀스와 견주어 결코 빠지지 않는다.50년대 엘비스,60년대 비틀스에 이어 70년대 팝 음악계를 평정한 그는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로 평가받고 있다.1970년 ‘Your Song’ 이후 23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히트곡을 빌보드 톱40에 올려 엘비스 프레슬리의 22년 기록을 깼으며,지금까지 30여장의 정규 앨범과 9개의 넘버원 히트곡,27개의 톱10 히트곡을 선보이며 지난 30년간 팝계를 지배해온 ‘살아있는 전설’이다. 영화·뮤지컬로도 영역을 확장,다방면에 재능을 뽐내고 있는 그는 록 음악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을 인정받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영국 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동성애자로 사생활 면에서 줄곧 화제를 몰고 다닌 그는 에이즈 퇴치 등 자선사업에도 열의를 보여왔다. 기타가 주름잡던 대중음악계에 반주 악기에 지나지 않았던 피아노를 처음으로 전면에 등장시킨 그의 음악 뿌리는 클래식.1947년 런던 교외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 왕립음악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정도로 피아노 신동이었다.레이 찰스와 같은 흑인 뮤지션들의 음악에 심취했던 그는 16살 때 ‘블루스롤러지’라는 흑인 솔밴드에 합류하며 방향을 틀었고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꾸는 불세출의 뮤지션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음반으로만 듣던 그의 주옥 같은 노래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적잖이 설레는 팝 팬들이 많을 듯하다.팝음악 공연으로 다소 비싼 입장권 가격(로열석 30만원)이 흠이다.(02)2113-3480.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儒林(156)-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儒林(156)-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공자가 찾아가고 있는 사람은 이렇듯 바로 라오시오스 즉 노자인 것이다.전설에 의하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80년간이나 들어있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백발로 그래서 이름도 ‘늙은 자식’이라 불렸다는 노자.이 노자를 공자는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대충 헤아려보면 공자가 노자를 만나러 갈 무렵에는 노자가 공자보다 나이가 20∼30세가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 무렵 노자의 나이는 80세에 가까운 노인이었을 것이다. 노자는 공자와는 달리 ‘유가’를 형성하여 제자를 키우거나 학문을 가르치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하였으므로 공자가 노자에게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주나라로 구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마음속으로 노자를 존경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공자가 존경하였던 인물로는 주의 노자,위(衛)의 거백옥,제의 안평중,초(楚)의 노래자(老萊子) 등이다.” 공자가 위대한 정치가인 안평중,즉 안영을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기록한 바가 있다. 그러나 공자가 존경하였던 인물 중 첫 번째로 노자가 등장하고 있음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인 것이다.사기에 의하면 노자가 평생 동안 공식적인 벼슬을 했던 것은 주나라의 수장실(守藏室)의 기록관인 사(史)가 고작이었다.수장실이라 하면 왕실 서고를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중앙도서관을 지키는 사서였던 것이다.아마도 노자의 그 웅대하고 심오한 사상은 수장실을 지키면서 수많은 책을 읽고 사색함으로써 완성되었겠지만 이미 그때 전국시대 최고의 대학자이자 사상가였던 공자가 수천 수만리의 먼 길을 무시하고 오직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은자(隱者)를 찾아가는 것만 보더라도 공자의 열정적인 학구열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배움에 있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공자의 태도로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들에게서 좋은 점을 가려서 따르고 좋지 못한 점은 거울삼아 고치기 때문이다.(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고 말함으로써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일이 그가 배울 스승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어진 이를 보면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자를 보면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반성한다.(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라고 말함으로써 배움에 있어서 몰두하는 태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논어의 첫 장도‘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기쁘지 아니하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하고 있는 공자였으므로 공자가 ‘공야장’편에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은 공자가 얼마나 배움에 철두철미하였던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열 집이 있는 고을이라면 반드시 충성과 신의에 있어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겠지만,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공자는 죽을 때까지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웠다.이는 조금 안다고 해서 자신의 학문이 완성되었다고 착각하는 오늘날의 변설가들이 심각하게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덕목이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는 노자의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알지도 못하면서 잘 아는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은 사람을 속이는 죄악이며 무서운 범죄행위인 것이다.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노자를 만나러 간 공자는 노자에게 특히 예에 대해 묻고 싶었던 것 같다.왜냐하면 사마천은 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으므로. “남궁 경숙과 함께 주나라로 간 공자는 노자를 만나 예에 대해서 물었다.”
  • 儒林(153)-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儒林(153)-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노나라에서는 대대로 이 청동솥에 새긴 정고보의 명문을 공직자들이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하여 사표로 삼고 있었다.3대에 걸쳐 주군을 섬길 만큼 뛰어난 정치가였으면서도 특히 ‘여기에 범벅이라도 좋고,죽을 쑤어도 좋다.내 입에는 풀칠만 하면 그뿐이다( 于是 于是 以余口).’라고 기록한 정고보의 명문은 공직자가 지켜야 할 겸손과 청렴결백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따라서 대대로 노나라에서는 새로운 벼슬아치들이 등용될 때에는 이 청동솥 앞에서 마음가짐을 다짐하는 불문율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공자가 바로 이 정고보의 후손이었던 것이다.공자는 비록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회에서 벼슬할 수 있는 계급 중 가장 낮은 계층인 사(士)에 속하는 계급에서 태어났지만 이토록 가문만은 명문이었다.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조상은 은나라 최후의 임금 주왕(紂王)의 서형(庶兄)이며,그 시대의 어진 신하로 알려진 미자계(微子啓)에 이르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공자의 계보는 이처럼 은나라의 왕들을 지나 탕(湯)임금에 이르고,송(宋)나라의 왕실로 다시 이어져 줄곧 왕실의 적자로 내려오고 있는데,불보하(弗父何)에 이르러서부터 왕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는 불보하가 임금의 자리를 다투지 아니하고 스스로 물러나 은둔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왕계로부터 갈라진 불보하의 후손은 솥에 명문을 새긴 정고보를 거쳐 그의 아들인 공보가(孔父嘉)에 이르게 되는데,이때 집안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대사건이 일어난다.공보가는 그 무렵 송나라의 장군격인 사마의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그에게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어느 날 권신 화보독(華父督)이 길거리에서 공보가의 부인을 보고는 반해 버려 음모를 꾸민 뒤에 군대를 동원하여 공보가를 죽이고 부인을 빼앗아 버렸던 것이다.이로 인해 화보독이 보복을 두려워하여 계속 박해를 하자 할 수 없이 그의 아들 자목금보(子木金父)는 송나라를 떠나 노나라로 도망쳐 살게 되었으며,이때부터 자기 아버지의 자(字)인 공보(孔父)에서 공(孔) 자만을 따서 정식으로 성을 삼았던 것이었다. 그 뒤를 이어 하숙(夏叔),그리고 공자의 아버지인 숙량흘(叔梁紇)을 거쳐 공자에 이르게 되었는데,어쨌든 공자의 조상을 은나라에까지 계보를 끌어올리고 족보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마치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족보를 첫 장에 상세히 기록하고,‘누가복음’에서는 예수를 마침내 하느님에게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무릇 인류가 낳은 성인을 신성시하려는 후세 사람들의 존경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사마천도 사기에서 공자를 ‘그의 선조는 송나라 사람으로서 공방숙(孔防叔)이라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비록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공자의 조상은 명문이었던 것만은 분명하게 보여지고 있다. 그 족보가 후세에 그럴듯하게 꾸며진 것이든 사실이든 간에 공자는 송나라의 명재상이었던 정고보의 후손으로 그 무렵 노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국어(國語)를 편찬한 민마보(閔馬父)란 사람이 쓴 기록에 의하면 ‘옛날에 정고보란 사람이 상나라의 노래 12편을 주나라의 태사혜에게 가서 교정을 하였는데,나(那)편을 첫머리에 놓았다.’고 하였다. 상나라의 노래인 상송(商頌)은 상나라 조정에서 쓰여지던 악가로 시경(詩經)에 전하고 있는데,훗날 공자가 시경을 편찬,정리하여 만인의 교과서로 삼으려 했던 것을 보면 정고보가 공자의 조상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 [삶과 경영이야기] (21)워크아웃 딛고 개성공단서 승부 박성철 신원 회장

    [삶과 경영이야기] (21)워크아웃 딛고 개성공단서 승부 박성철 신원 회장

    “섬유 업종이 불황이 아니라 생각이 불황입니다.우리의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석권할 때입니다.” 박성철(64) 신원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 지난해 초 5년만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졸업했다.구조조정의 모범사례로 경제전문지 ‘포브스’ 등 해외언론의 취재대상이 될 정도라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섬유로 시작했으나 외환위기 이전에 이것저것 사업을 확장하다 구조조정까지 하게 됐지만 ‘중간외도’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앞으로 해외 브랜드를 수입해 팔기보다 자존심을 걸고 고유 브랜드 육성에 매진할 계획이다.대기업 가운데 드물게 개성공단 입주업체로 선정되는 등 남북 경제협력에도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기자 출신으로 가장 성공한 기업인 -1964년 산업경제(현 헤럴드경제)에 입사해 7년 동안 기자생활을 했다.기독교인인데 기자로 일하면서 3∼4년간 교회에 못 나가서 힘들었다.기자생활을 청산하고 1971년 직물 하청공장을 만들었다.기자로 일하다 사업해서 성공한 사람은 오직 혼자로 알고 있다.사업 시작한지 이제 32년째이니 아주 성공한 케이스다. -경제부에서 섬유 분야를 취재하다 섬유업계 사람들과 가까워졌다.처음에는 직물 편직기 7대와 직원 13명을 데리고 시작했다.기자생활을 통해 알게 된 섬유수출업자와 원사업자 등의 인맥이 도움이 됐다. ●사막에 스웨터까지 수출 -유럽은 안 가본 나라가 없고,일본은 한달에 한번씩 갔다.미국은 계절마다 방문해 직접 세일즈를 했다.초창기에는 일본에 출장가서 300엔짜리 아침식사를 먹고 1500엔짜리 모텔에서 자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섬유업체들은 1971년 대미 섬유쿼터제(수입할당제)가 타결되면서 치열한 쿼터 확보 경쟁을 벌였다.신생 업체 신원은 수출 실적이 없어 쿼터를 받기 힘들었다.박 회장은 쿼터 규제가 없는 나라를 대상으로 비쿼터 품목을 팔기 위해 이란,이라크,시리아,요르단,이집트,이스라엘 등 셀 수 없는 나라를 직접 뛰어다녔다.일교차가 심한 사막의 나라 사우디 왕실에 군용 스웨터를 수출하면서 신원 무역부 직원들은 “우리는 사막에 스웨터도 수출한다.맡겨만 주면 북극에서 냉장고도 팔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76년 해외시장 개척상,80년 수출공로상,84년 5000만달러 수출탑 등을 받았다.지난해 수출액은 2100억원.과테말라와 중국,인도네시아,베트남 등 4개 해외법인에서 만든 스웨터,니트,가죽 제품을 전세계로 수출 중이다.월마트,갭,DKNY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어들을 확보하고 있다. 신원의 해외사업 부문은 30년 동안 수출을 하면서 한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다.97년 세운 중남미의 과테말라 공장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니트 공장이다.2600명의 근로자가 하루에 8만장의 니트를 생산 중이다. ●뼈아픈 구조조정… 5년만에 졸업 -섬유로 시작한 기업이니 섬유로 끝내는 것이 좋았을 텐데….92년쯤에는 투자금융회사가 30개쯤 생겨나 기업에 돈을 갖다 쓰라고 했다. 여기저기 돈을 빌려서 전자,건설,전기,골프장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북한과 거래하고 금장사도 했다. -갑자기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와서 환율이 뛰니 빚도 두배 이상 늘었다.12%에 돈을 빌렸는데 이자율이 24∼40%로 치솟았다. 계열사들이 같이 넘어가자 가장 좋은 것부터 팔기 시작했다.골프장을 시작으로 전기,전자,건설회사 등 모두 팔고 나니 섬유만 남았다.섬유는 30년 전에 시작해서 수출만 했는데 이젠 내수가 합해졌다. -1700명의 직원 가운데 1000명을 내보내고 700명이 남았다.최근 회사를 떠났던 일부 직원들이 다시 와서 일하고 있다.기능직이라 놀고 있던 사람은 없었다.예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다시 일하게 되니 다들 좋아한다. -2003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기까지 탕감이나 면제받은 것은 한 푼도 없다.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00% 출자전환했다.가장 먼저 워크아웃에 들어가 5년만에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데 신경을 잘 썼기 때문이다.정부에서 살 기업은 회생시키고,죽을 기업은 정리 정돈하는 데 아주 빨랐다.4개의 해외공장이 풀가동됐고 수출경기도 좋았다.덕분에 신원의 신용도는 물론 한국의 국가 신용도도 높아졌다. -신원의 회생은 좋은 선례다.정부가 재빠른 워크아웃 제도로 잘 도와줬고,기업은 자생력을 갖고 있었으며,직원들도 열심히 했다.기업,정부,직원이 혼연일체가 돼 IMF체제를 빨리 졸업하게 됐다. -저는 처음에 오너였다(현재 신원은 지분 12%를 소유한 우리사주조합이 최대 주주이며 박 회장의 개인 지분은 없다).채권단이 업종을 잘 알고 있는 저에게 기업을 그대로 운영하게끔 해줘 섬유업종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워크아웃을 빨리 졸업할 수 있었다. 현재 빚이 1100억원 정도 남아 있다.지난해 137억원을 갚았다.경기가 불황이지만 이자를 잘 물고 있으며 원금도 일부 갚고 있다.올해도 어렵지만 몇십 억원의 원금을 갚을 것이다.지금 바닥을 쳤으니 앞으로 2∼3년만 경기가 좋아지면 완전 무차입경영을 할 수 있다. ●한국인 체질·성격에 맞는 옷 개발중 -구조조정을 통해 이것저것 사업확장을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얻었다.앞으로 기술개발로 세계적인 섬유회사를 만들 것이다.한국 사람은 외제보다 국산 옷을 입는 것이 나은 때가 왔다.우리나라 사람의 체질,체격,성격,기후에 맞는 기능성 옷을 개발 중이다. -우리나라 섬유 역사 100년 중에 40년간 192개국에 수출했다.이제 세계를 한국이 주름잡아야 한다.자존심 차원에서도 외국 물건은 들여오지 않아야 한다.저가품은 중국,동남아,중남미에서 만들어 수출하고 고가품은 국내 기술자들이 만든다. -국내 브랜드는 15개 가운데 10개를 없애고 남성복 지이크,여성복 베스띠벨리·씨·비키,캐주얼 쿨하스 등 5개만 남겼다.해외 브랜드도 보스,예거 등 3개를 갖고 있다가 모두 없앴다.우리 브랜드를 키우는 것이 수입 브랜드를 보유하는 것보다 낫다. ●경제인은 사회와 국가에 책임감 가져야 -경제인은 돈버는 것이 목적이지만 사회와 국가에 책임감을 갖는 것이 좋다.손실이 없는 범위에서 적은 이익이지만 남북 경제협력 차원에서 교류해야 한다.7∼8년 전에 북한과 거래하면서 손해도 봤다.액수는 얘기할 것 없다. 중국 등 해외 공장에서 100∼300달러의 월급을 지불할 것이 아니라 물류비 싸고,관세 없으며 임금도 싼 우리 민족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이 좋지 않으냐.개성의 임금은 남한의 15분의1 정도로 싸다. -개성은 언제고 터진다고 생각해서 가장 먼저 들어갔다.20∼30년 전부터 북한에 공장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우리처럼 작은 나라가 분단된 것은 애석하고 마음아픈 일이다. 95,96년 북한에서 300만달러 정도를 임가공하면서 평양에 두번 갔고,지금 공장을 짓고 있는 개성에도 두번 갔다. -개성이 성공하려면 두가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공장 직원들이 육로를 통해 하루에 10번도 더 왔다갔다 할 수 있어야 한다.전화도 서울시내 전화처럼 소통이 잘 돼야 한다.물과 전기는 남한에서 가져가면 되므로 문제가 없다.남과 북이 문화가 다르므로 서로간에 말하는 데 조심하고 이해를 많이 해야 한다. -처음에 북한에 갈 때는 사람들이 ‘빨갛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보니 완전한 형제였다.북한 기술자들은 나이가 40∼50세에,20년 전쯤에 러시아의 국민복을 만들어 본 이들이 많다.몇달 동안 기술 교육은 시켜야 할 것이다. -15개 공장이 들어서는 개성 공단 시범단지가 잘 돼야 앞으로 100만평,800만평까지 늘어나게 된다.그렇게 되면 실업자가 구제돼 북한의 생활양상도 수준급으로 올라서는 등 북한 경제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박성철 회장은 26년째 매일 새벽 3시40분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나가고 있다.뛰어서 집근처 교회에 갔다가 다시 아침을 먹으러 집까지 뛰어오는 것이 하루 운동이다.6시30분에 수출 담당 직원들과 함께 출근한다. 신원(信元)은 ‘믿음을 으뜸으로 한다.’는 회사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믿음의 기업이다.직원의 70% 정도가 기독교 신자다.월요일 아침에는 과테말라,중국의 공장 직원을 포함해 전 직원이 예배에 참여한다.개성공단에서도 월요예배를 할 수 있을지가 요즘 그의 걱정거리다. 박 회장은 “베트남이나 중국도 공산권 국가지만 공장 직원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정치적 문제가 아니다.개성에 신앙의 자유가 있어야 미국,유럽에서도 개인 투자가 이뤄질 것이므로 북한에 예배 허용을 호소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기독교 신자답게 올 여름 노출 패션이 신원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하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박 회장은 “야한 옷도 하나의 상품이고 시대의 변화이자 조류”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30년간 패션 산업에 몸담으면서 앞만 보고 달렸지 결코 뒤에서 따라간 적은 없다고 밝혔다.지금도 감각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패션 전문서적을 보고 해외 시장을 연구한다.하루에 두번씩 사업장을 돌아본다는 그는 자상한 말솜씨로 특히 여직원들에게 인기가 높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박성철 회장은 31년 역사의 의류회사 신원을 일궈낸 박성철 회장을 실제로 만나면 젊고 다정다감한 모습에 놀라게 된다.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직원들에게 “요즘 날씨 덥지?”라며 손수 인사를 건네는 ‘자상한 회장님’이다. 7년간 기자로 일하면서 섬유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낸 눈썰미도 갖췄다. 하지만 주말에도 술을 마셔야 하는 등 기자생활 동안 교회를 못 간 것이 힘들었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서울 영등포 신길 성결교회의 장로로 있다. 그의 경영이념은 ‘청지기 사명’이다.주인의 재산을 철저히 관리하는 믿음직하고 선한 청지기처럼 IMF외환위기를 맞아 회사의 오너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했다.1940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으며,목포고와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가족으로는 아내와 세 아들이 있다.
  • [기고] 청소년이여 궁궐을 배우자/손용해 한국의 재발견 대표

    ‘궁궐’은 임금과 왕실 가족,그리고 그들의 생활을 돌보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이다.‘고궁’이라는 말은 단지 지나간 과거의 공간일 뿐 현재 우리들의 삶과는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궁궐은 단지 오래된 최고 권력자의 특수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우리 민족의 과거의 삶과 생활이 녹아 있는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그러기에 궁궐을 자세히 알면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만날 수 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녹아 있는지 느낄 수 있으며,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침을 준다. 이렇게 우리 삶에 밀접한 영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궁이라는 말보다는 궁궐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면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자신도 청소년시절에는 궁궐이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이었으며,데이트 장소도 마땅치 않았던 시절에 여학생을 만나는 장소로 가끔 이용했을 뿐이다.40대에 들어서 외국에 오래 근무를 하고 돌아온 후 우리문화에 대한 여러 가지 강의를 즐겨 들으면서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점차 우리문화에 대해서 알게 되니 재미있었고 열심히 답사를 다니게 되었다.그러던 중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우리의 지식을 나누어 주기 위한 노력의 일부로 궁궐의 건축양식,유래,역사들을 안내하는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너무 늦게 우리문화와 역사에 눈 뜨게 된 것이 너무 아쉬워 특히 청소년들이 궁궐을 방문할 때면 성심 성의껏 설명을 하게 된다.과거에 비해 청소년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끼기에 참으로 흐뭇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청소년들이,특히 단체로 온 학생들은 장난을 치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경우가 많다.봄,가을에는 수학여행을 궁궐로 찾아오는 일본 학생들이 많은데,이들은 대부분 중요한 설명을 적어가면서 조용히 경청한다.남의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며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청소년들과 자신의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소홀히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이끌어갈 미래가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상세한 기록문화를 가지고 있다.예를 들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 일기 등이 있다.궁궐을 방문할 때는 서적이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미리 공부를 한 후에 관람을 하거나 궁궐 안내를 해 주는 궁궐지킴이로부터 도움을 받으면 더욱 보람될 것 같다. 또 하나,궁궐을 과거의 공간으로 밀어 놓지 말고 현재의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내 친구의 아들은 외국에서 태어나 거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낸 청년이다.그는 친구들과 궁궐을 둘러보고 역사를 배운 후에는 우리 청소년들이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자주 애용하지 않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궁궐은 임금이 정사를 돌보는 정무공간과 일상생활을 위한 생활공간,그리고 휴식과 정서를 위한 정원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현재 남아있는 대표적인 궁궐에는 조선시대의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이 있다.이 궁궐들은 조상의 숨결과 손때가 묻어 있는 최대의 야외 박물관이다. 그런데,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놀이터나 공원으로 경박하게 생각하면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심지어 음식을 싸가지고 들어와 펼쳐놓고 먹는 행락행태를 보이고 있다.어른들은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부분을 원 상태로 복원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는 반면에 우리의 청소년들은 조상의 숨결을 그 안에서 느끼고 선조의 정신을 이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 현대는 눈으로 직접 보면서 느끼는 비주얼 시대이다.살아있는 역사 교육장에 청소년들이여 많이 찾아 오라. 손용해 한국의 재발견 대표
  • 儒林(147)-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안영이 공자를 비판함에 있어 “크게 현명한 사람(文王·周公)이 나오지 않게 된 이래로 주나라 왕실은 많이 쇠약해지고,예악은 많이 소멸되었습니다.”라고 논박하였던 것은 공자를 지나치게 주나라를 숭상하는,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나라 초기엔 천자가 천하의 종주로서 세상을 다스려 여러 제후들 사이의 공전(攻戰)이 금지되고 있었다.그리고 역시 여러 제후의 나라들은 천자의 주나라보다 세력은 물론 문화적으로도 훨씬 뒤떨어져 있어 그러한 지배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그러나 오랫동안의 평화를 통하여 여러 제후들의 나라들은 국력이 크게 늘어난 반면 주나라는 견융(犬戎)에게 패하여 도읍을 낙읍(洛邑)으로 옮긴 뒤로는 국세가 날로 쇠약해졌다.그 결과 천자가 제후들을 통제할 능력을 잃게 되고,제후들은 멋대로 전쟁을 일삼게 되어 남의 나라를 침략함으로써 더욱 강대해진 제후들의 나라가 연이어 출현하게 되었다.이것은 봉건질서의 파괴와 혼란을 의미한다. 그리고 약육강식의 싸움들은 제후들만 벌이는 것이 아니라 제후들 밑의 대부들 사이에도 일어나 결국 남의 집안을 합병시켜 강성해진 대부들이 늘어나서 많은 제후들이 실권 없는 명색뿐인 지위로 밀려나게 되었다.천자는 천자로서의 권위를 잃고 제후들은 제후로서 권능을 잃었던 것이었다.이 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르고 있는데,이 북새통 속에 주나라의 여러 가지 제도는 파괴되고 백성들은 고통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여전히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천자중심의 정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이러한 공자의 정치관은 논어의 계씨(季氏)편에 기록된 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오고,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들로부터 나온다.그것이 제후들로부터 나오게 되면 대략 10대에 망하지 않는 일이 드물고,대부로부터 나오면 5대에 망하지 않는 일이 드물고,가신들이 국권을 잡으면 3대에 망하지 않는 일이 드물게 된다.” 그러고 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권력이 대부들에게 있지 아니하고,천하에 도가 있으면 백성들이 혼란되지 않는다.(天下有道 則庶人不議)” 천하의 도. ‘하늘 아래의 바른 길’을 공자는 이처럼 천자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제’로 보고 있음에 반하여 안영은 공자의 그러한 정치철학은 현실을 무시한 보수적인 낡은 정치관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안영은 이미 제후중심의 ‘지방분권제’가 도래하였음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정치를 펴고 있었던 것이었다.따라서 안영이 공자를 쇠약해진 주나라의 왕실을 지나치게 숭상하는 몽상가로 보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들은 경공은 안영에게 다음과 같이 반문하였다. “경은 공구를 월석보를 뛰어 넘은 현인 중의 현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경공의 질문은 정곡(正鵠)을 찌른 말이었다.경공의 말은 두 가지 의미에서 안영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안영이 평소 현인을 존경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던 경공은 안영이 극찬하였던 월석보를 빗대어 힐문(詰問)을 던진 것이었다.이에 대한 일화가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어 있는데,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월석보는 현인이었지만 그만 죄를 지어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어느 날 안영이 외출을 하다가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되었다.안영은 두말하지 않고 삼두마차의 왼쪽 말 한 필을 풀어 속죄금으로 내주고 월석보를 함께 마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 儒林(147)-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47)-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안영이 공자를 비판함에 있어 “크게 현명한 사람(文王·周公)이 나오지 않게 된 이래로 주나라 왕실은 많이 쇠약해지고,예악은 많이 소멸되었습니다.”라고 논박하였던 것은 공자를 지나치게 주나라를 숭상하는,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나라 초기엔 천자가 천하의 종주로서 세상을 다스려 여러 제후들 사이의 공전(攻戰)이 금지되고 있었다.그리고 역시 여러 제후의 나라들은 천자의 주나라보다 세력은 물론 문화적으로도 훨씬 뒤떨어져 있어 그러한 지배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그러나 오랫동안의 평화를 통하여 여러 제후들의 나라들은 국력이 크게 늘어난 반면 주나라는 견융(犬戎)에게 패하여 도읍을 낙읍(洛邑)으로 옮긴 뒤로는 국세가 날로 쇠약해졌다.그 결과 천자가 제후들을 통제할 능력을 잃게 되고,제후들은 멋대로 전쟁을 일삼게 되어 남의 나라를 침략함으로써 더욱 강대해진 제후들의 나라가 연이어 출현하게 되었다.이것은 봉건질서의 파괴와 혼란을 의미한다. 그리고 약육강식의 싸움들은 제후들만 벌이는 것이 아니라 제후들 밑의 대부들 사이에도 일어나 결국 남의 집안을 합병시켜 강성해진 대부들이 늘어나서 많은 제후들이 실권 없는 명색뿐인 지위로 밀려나게 되었다.천자는 천자로서의 권위를 잃고 제후들은 제후로서 권능을 잃었던 것이었다.이 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르고 있는데,이 북새통 속에 주나라의 여러 가지 제도는 파괴되고 백성들은 고통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여전히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천자중심의 정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이러한 공자의 정치관은 논어의 계씨(季氏)편에 기록된 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오고,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들로부터 나온다.그것이 제후들로부터 나오게 되면 대략 10대에 망하지 않는 일이 드물고,대부로부터 나오면 5대에 망하지 않는 일이 드물고,가신들이 국권을 잡으면 3대에 망하지 않는 일이 드물게 된다.” 그러고 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권력이 대부들에게 있지 아니하고,천하에 도가 있으면 백성들이 혼란되지 않는다.(天下有道 則庶人不議)” 천하의 도. ‘하늘 아래의 바른 길’을 공자는 이처럼 천자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제’로 보고 있음에 반하여 안영은 공자의 그러한 정치철학은 현실을 무시한 보수적인 낡은 정치관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안영은 이미 제후중심의 ‘지방분권제’가 도래하였음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정치를 펴고 있었던 것이었다.따라서 안영이 공자를 쇠약해진 주나라의 왕실을 지나치게 숭상하는 몽상가로 보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들은 경공은 안영에게 다음과 같이 반문하였다. “경은 공구를 월석보를 뛰어 넘은 현인 중의 현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경공의 질문은 정곡(正鵠)을 찌른 말이었다.경공의 말은 두 가지 의미에서 안영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안영이 평소 현인을 존경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던 경공은 안영이 극찬하였던 월석보를 빗대어 힐문(詰問)을 던진 것이었다.이에 대한 일화가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어 있는데,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월석보는 현인이었지만 그만 죄를 지어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어느 날 안영이 외출을 하다가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되었다.안영은 두말하지 않고 삼두마차의 왼쪽 말 한 필을 풀어 속죄금으로 내주고 월석보를 함께 마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 세계 지도자들 어떤음식 즐기나

    “우리는 요리로 외교합니다.” 26일(현지시간) 워싱턴에 있는 윌라드 인터콘티넨털 워싱턴 호텔에는 세계 최고의 요리사 24명이 모여들었다.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유럽의 프랑스와 영국,모나코,남아프리카공화국,남미의 멕시코 등 모두 23개국에서 온 이들은,각국의 왕실이나 대통령,총리 등의 전담 요리사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요리사 중의 요리사모임(Le Club des Chefs de Chefs)’ 회원들.‘요리로 하는 민간외교’를 내세우며 매년 회원국을 번갈아 방문해 각 국별 요리법을 공유하며 우의를 다지고 있는 이들이 워싱턴을 방문한 것은 다음달 열리는 ‘세계 지도자들이 즐겨 먹는 음식축제(WLFFF)’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음식을 전담하는 백악관의 월터 셰이브는 “우리의 요리법은 최고급 요리들이라기 보다는 세계 지도자들이 집에서 손쉽게 해먹는 요리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축제에서 선보일 요리들에 대해 설명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