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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0년만에 막내리는 ‘네팔 왕실’

    240년만에 막내리는 ‘네팔 왕실’

    네팔이 240년간 유지해온 왕정을 폐지한다.23일(현지시간) BBC 인터넷판에 따르면 네팔 6개 정당 연합체와 공산반군은 이날 군주제 폐지를 주내용으로 하는 협약을 체결하고 성명을 통해 “네팔이 연방민주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격인 네팔의회당의 아르준 나르싱 대변인은 “군주제 폐지는 내년 봄 실시될 예정인 총선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지난 9월 이후 군주제의 즉각 폐지 및 공화정 선포, 갸넨드라 국왕의 하야, 완전비례대표제 총선방식 등을 요구하며 과도정부를 탈퇴했던 공산반군의 요구사항이 대부분 수용됐다. 이번 합의로 제헌의회 규모도 기존 497석에서 601석으로 늘어났다. 이중 58%인 335석은 비례대표방식으로 선출하고 240석은 단일승자방식에 의한 선거, 나머지 26명은 내각 지명으로 정하기로 합의했다. 네팔 국민 대부분도 공화정으로의 전환에 찬성하고 있어서 240년 역사의 네팔 군주제는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네팔왕정은 비렌드라 전 국왕이 2001년 궁중 총격전으로 사망한 뒤 국민들의 신망을 급속히 잃기 시작했다. 갸넨드라 현 국왕은 사망한 형의 뒤를 이어 국왕자리에 오른 뒤 2005년 2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곧이어 네팔의회는 해산됐고 독재체제가 수립됐다. 하지만 갸넨드라 국왕은 지난해 4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야당과 공산반군의 연합전선에 굴복해 14개월간의 직접통치를 마감한 바 있다. 네팔에서는 지난 10년간 공산 반군 내전으로 인해 1만 30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2007하반기 소비자만족 히트상품] 행남자기 ‘칠첩반상기 화촉’

    [2007하반기 소비자만족 히트상품] 행남자기 ‘칠첩반상기 화촉’

    ‘칠첩반상기 화촉´은 옛 궁중 왕실에서 사용되던 반상기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디자인한 혼수 예단용 제품이다. 왕실의 품격과 위엄을 느낄 수 있도록 일반 반상기보다 뚜껑 모양이 두드러졌으며 곡선 디자인이 우아하게 처리됐다. 전체적인 금빛 효과로 고전미가 강조됐다. 아울러 전통적 느낌의 꽃 그림이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재해석돼 중후하고 우아하게 새겨졌다. 제품은 고급 비단으로 마감한 나무 상자로 포장돼 마무리까지 세심함이 담겨 있다. ‘칠첩반상기 화촉´은 지난 9월 출시돼 현재까지 1000여 세트가 판매됐다. 이는 같은 시기에 선보인 ‘칠첩반상기´의 두 배 가까운 판매량이다.
  • 엘리자베스2세 여왕, 유튜브 개인채널 인기

    엘리자베스2세 여왕, 유튜브 개인채널 인기

    지난 10월 개설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유튜브(Youtube.com) 개인 채널이 인기를 얻고 있다. ‘The Royal Channel’이라는 제목의 이 UCC채널은 여왕의 첫 TV연설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 지난 10월 개설됐지만 최근에 1957년 흑백 TV로 방송됐던 크리스마스 연설을 공개하면서 뒤늦게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동영상에서 여왕은 “이 새로운 미디어(TV)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며 당시 ‘뉴미디어’였던 TV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그 기대가 50년이 지나 TV에서 UCC로 옮겨진 것. 왕실 대변인은 “여왕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왔다.”며 “UCC를 통해 전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여왕의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81세로 영국 최장수 국왕이 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올해 연례연설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왕의 UCC채널에는 왕실파티와 버킹엄 궁전을 방문하는 각국 명사들의 생활모습 등 영국 왕실의 생활 모습이 업데이트 되고 있다. 그러나 댓글은 등록되지 않는다.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내 사랑 도디… 함께 한 여행 너무 황홀”

    “내 사랑 도디… 함께 한 여행 너무 황홀”

    “내 사랑 도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커프스 단추를 당신께 선물하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1997년 8월13일. 당신을 사랑하는 다이애나.” 다이애나 스펜서 영국 왕세자비가 97년 8월31일 숨지기 전 연인이었던 이집트 출신 백만장자의 아들 도디 알 파예드에게 쓴 마지막 편지 2통이 공개됐다. 17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 미러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편지들은 런던의 법원에서 16일(현지시간) 이들 커플의 사망 원인을 밝히는 심리 도중 도디의 아버지 마호메드 파예드에 의해 공개됐다. 다이애나는 켄싱턴 왕실 노트에 쓴 편지를 통해 “여자 친구(chick)인 내게 삶의 기쁨을 가져다 준 것에 대해 도디 당신에게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애틋한 정을 담았다. 앞서 같은 달 6일 도디에게 쓴 편지도 더불어 공개됐다. 다이애나는 이 편지에서 “최근 함께 한 크루즈 여행은 바다에서 보낸 가장 매혹적인 6일”이라면서 “내 마음을 하늘만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묘사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아시아 음식이란 바로 이런 것!

    케이블·위성TV Q채널은 아시아의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5부작 다큐멘터리 ‘맛있는 아시아’를 자체제작해 새달 3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9시에 방송한다. 다양하고 독특한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는 아시아 음식 요리법, 최근 웰빙·장수의 비결로도 인정받는 아시아 음식들의 진수 등을 두루 살펴본다. 100일간 현지 올 로케이션으로 음식을 조명한 곳은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 인도,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8개국. 프로그램은 이들을 ‘왕의 만찬’‘별난 음식’‘매운 음식’‘길거리 음식’‘웰빙 푸드’ 등 5가지 테마 아래 5주에 걸쳐 펼쳐보일 예정이다. 3일 방송되는 1부 ‘왕의 만찬, 최고의 음식’편은 제목 그대로 각국의 왕실요리를 선보인다. 한국의 조선왕조 궁중요리, 일본의 가이세키 요리, 중국의 만한전석 등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귀족요리와 전통조리비법도 귀띔해 준다. 10일 방영되는 2부 ‘놀라운 음식, 별난 요리’편은 돼지 귀, 뱀의 허파, 개구리 알 등 일생에 한번도 맛보기 어려운 독특한 음식들을 내놓는다. 별난 재료들이 먹거리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놀라움 그 자체다. 17일에는 각국의 매운 음식이 다 모인다. 이 ‘新나고 火끈한 매운맛 열전’편에 등장하는 음식은 한국의 청양고추, 태국의 쥐똥고추(프리키누), 인도네시아의 삼발 소스 등이다. 그야말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매운 양념들이 집합하는 셈. 최근 매운 음식은 다이어트와 스트레스 해소 효험도 인정받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24일 방송되는 ‘3분의 승부! 거리음식 총출동’편은 아시아의 재래시장을 찾아간다. 색다른 풍경에 저렴한 가격, 맛좋은 음식까지 1석3조를 거머쥘 수 있는 재래시장의 장점은 어느 나라를 가나 마찬가지. 길거리 음식의 향연에 함께 빠져본다. 31일 마지막 편인 ‘몸을 위한 음식, 슬로푸드’에서는 패스트푸드에 찌든 몸을 정화시키는 보양식들을 만날 수 있다.21세기의 화두는 뭐니뭐니 해도 건강. 환경친화적인 재료와 전통적인 조리방식으로 건강식의 맥을 잇고 있는 각국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수십 년 동안 정성스럽게 묵힌 간장, 젓갈, 천연 조미료를 이용해 만든 음식들이 망라된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격루 복원한 남문현 건국대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격루 복원한 남문현 건국대 교수

    흥미있는 가정을 불쑥 해본다. 만약 동양의 천재 장영실과 서양의 천재 에디슨이 만났다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아마도 우린 현재보다 100년 후의 세계 문명 속에 살고 있지 않을까. 어쨌든 장영실은 시대의 벽에 막힌 불운의 과학자였고, 에디슨은 시대를 초월한 발명가였기 때문에 둘의 만남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에디슨과 달리 장영실은 오랜 세월이 지난 근래에 이르러서야 위대한 과학자로 새삼 평가받고 있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 세계적인 학자 영국의 도널드 힐 박사는 지난 1990년 ‘국제중국과학사학회’에서 “13세기를 대표하는 시계 기술자가 아랍의 알재재리라면 장영실은 15세기를 대표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면서 “복잡한 기계를 설계·제작해 의도했던 대로 기능을 발휘하게 했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또 ‘세종실록’ 보루각기에 보면 “모든 기계(機械)는 감추어져 보이지 않고…”라는 구절과 함께 “영실은 성질이 정교하여 항상 궐내의 공장(工匠) 일을 주관했다.”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장영실은 왕실 최고 장인(匠人)이었다. 이런 장영실이 최근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가 만든 위대한 발명품 물시계 ‘자격루’가 서울 한복판에서 돌기 시작한 것. 꼭 573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 11월28일부터 고궁박물관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이는 한국 기술발달사, 나아가서는 세계 시계 제작역사에서 차지하는 자리매김을 당당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궁박물관 재개관 첫날, 작동시간이 미리 시작되는 바람에 약간의 착오가 있었지만 정밀도만큼은 탄복을 자아내게 했다. 관심이 집중된 이날, 오전 11시에 울리기로 된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 시보는 이보다 앞선 오전 10시45분에 울렸다. 이어 미시(未時·오후 1∼3시)는 낮 12시35분, 신시(申時·오후 3∼5시)는 오후 2시34분, 유시(酉時·오후 5∼7시)는 4시34분쯤에 알렸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작동이 제대로 안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첫시보가 15분 빨리 시작됐을 뿐 예정된 두 시간 간격에는 오히려 1∼2분 차이에 불과해 당시 자격루가 얼마만큼 정확했는지를 증명했다. 당시에는 현재처럼 시간을 검증하는 시스템조차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튿날에는 오전 9시,11시, 그리고 오후 1시,3시,5시 등 매 두 시간마다 불과 1∼3분 차이로 예정대로 시보를 알려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도 한국의 15세기 과학기술 수준에 매우 놀라워했다. 건국대 남문현(65·전기공학) 교수.23년 동안 자격루 원형복원에 헌신적으로 노력한 끝에 573년 전의 발명품을 우리곁에 끌어들인 주인공이다.‘세종실록’에 나와 있는 2000자짜리 문서를 근거로 자격루의 작동원리를 고스란히 밝혀냈다. 게다가 전공분야인 전기공학을 뛰어넘어 천문학, 과학사, 기술사까지 공부하면서 이룬 성과여서 더욱 값지게 여겨진다. 고궁박물관 재개관과 때를 맞춰 남 교수를 만났다. 그는 첫날 작동과 관련, “원래 물시계는 24시간 이상 돌아가야 정상으로 된다.15시간 동안 그대로 놔두었다가 박물관 개방에 맞춰 급히 물을 채우느라 당초 시보 예정보다 약간 빨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루 이틀 지난 지금은 아주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모 신문에서 ‘타격루’ 운운한 것은 조선시대 과학기술을 폄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아무튼 이번 자격루 복원으로 지하에 있는 세종대왕이 매우 기뻐하겠다고 하자 “세종은 비록 신분이 낮았지만 재능있는 장영실 같은 인물을 귀히 여겼기 때문에 해시계, 물시계, 별시계 등을 발명해 세계 기술사의 한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지 않았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어 자격루는 자동 물시계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기계라고 강조했다. “조선 초기에는 시간제도가 이원화돼 있어요. 지구가 한 바퀴를 돌면 24시간이잖아요. 그걸 12로 나누다 보니 12간지가 됐지요. 결국 물시계는 물의 흐름을 지구의 자전속도에 맞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생활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농업시간이죠. 해뜨면 성 밖으로 나와 일하고 해지면 성안으로 들어가는 생활말입니다. 여기에 쓰이는 시간이 경점(更點·1경 오후 7시,5경 오전 3시)입니다. 이때에는 북과 징으로 시간을 알렸지요. 이 역할을 한 것이 자격루입니다.” 예를 들어 성문 닫을 시간(1경3점)에는 북 한번과 징을 세번, 그리고 ‘새날이 밝았으니 문을 열어라.’ 해서(5경3점) 북 다섯번, 징 세번을 울렸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활동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였다. 세종실록(세종16년 7월1일자) 보루각기(報漏閣記)에 보면 자격루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시간을 측정하는 물시계와 종·북·징소리로 알리는 시보장치, 이를 접속하는 방목이라는 디지털신호장치 등으로 구성돼 있음을 기록했다. 또 시보장치 상단에는 시·경·점을 알리는 시보인형(로봇)이 각각 종·북·징을 들고 있으며 때마다 인형들의 팔뚝과 연결된 제어기구가 작동되면서 종·북·징을 울리도록 돼 있다. 이러한 장치는 동력공급, 논리·연산장치들에 의해 자동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남 교수의 설명이다. 아울러 자격루의 탄생으로 조선 고유의 치안 유지제도인 인정(人定)·파루(罷漏)가 비로소 시행될 수 있었으니 한마디로 디지털 기술의 개가였다고 강조했다. “어려움이야 많았지요. 임진왜란 때 설계도가 타버렸고, 또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들이 중종 때 다시 만든 그림을 태워버렸어요. 남아 있는 건 보루각기하고 국보 229호 유물인 물항아리 3개와 수수호(受水壺)인데 그걸 바탕으로 복원했지요. 또 자료에 보면 ‘(작은 구슬은)탄알만 하다’‘(큰 구슬은)달걀만 하다’고 했는데 토종닭 달걀을 수집하며 크기를 가늠하느라 애를 먹었지요. 고궁 박물관 서준 연구원의 도움도 컸습니다.” 남 교수가 자격루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1984년, 미국 버클리대 교수의 권유 때문이었다. 자동제어장치 전공자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제어장치에 관심 가질 만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고서였다. 이후 덕수궁에 있는 자격루(중종때 개량)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나마 1911년 일본인 학자들이 창경궁에 있던 것을 덕수궁으로 옮기면서 물통 등의 배열이 엉망이 됐음을 알게 됐다. 이것을 맞추는 데만 15년. 세월을 거꾸로 더듬어 올라가면서 옛날 방식의 기계 논리를 체득했다. 결국 지난 1997년이 돼서야 문화재청과 함께 본격적인 복원 설계 작업이 시작됐고 전통 단청장, 유기장, 옻칠장 등 무형문화재급 장인과 기계공학자 등 모두 32명이 참여하면서 결실을 보게 됐다. 그는 “물시계가 정확히 작동하려면 물 관리가 필수다. 조선시대에도 자격루 옆에 난방장치를 뒀을 정도로 항온 항습에 주의했다.”면서 “여러 기록을 검토해 보면 당시 우물의 온도는 섭씨 7도, 그리고 실내 온도는 섭씨 20도 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2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노학자에게 무슨 정년이 있겠느냐면서 “이번에 원형복원된 보루각 자격루 외에 장영실이 또 만든 흠경각 자격루를 복원해야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2년 경기 남양주 출생. ▲61년 국립교통고등학교 졸업. ▲70년 연세대 전기공학 학사. ▲75년 동대학 대학원 공학박사. ▲76∼현재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 ▲80∼81년 미 UC 버클리 전기컴퓨터과학과 초빙교수. ▲93∼2003년 한국기술사연구소장. ▲00∼01년 건국대박물관장. ▲03∼07년 문화재위원회 위원. ▲97∼05년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정회원 겸 이사. ▲04∼현재 사단법인 자격루연구회 이사장. ▲07년 현재 한국기술사료정립위원회 위원.
  • 국립고궁박물관 탄생교육실 탯줄의식 전시코너 새로 꾸며

    국립고궁박물관 탄생교육실 탯줄의식 전시코너 새로 꾸며

    조선 왕실의 가장 독특한 출산 문화는 탯줄을 갈무리하는 안태의례(安胎儀禮)라고 할 수 있다. 출산하면 탯줄이 남는데, 이 탯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태어난 왕손이 현명하고 강건한 군주가 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탯줄은 내·외 두 개의 태항아리에 넣은 뒤 길지(吉地)를 선정해 태실을 만들어 보관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28일 전관 개관하면서 1층의 ‘탄생교육실’에 조선 왕실의 안태의례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시 코너를 새로 꾸몄다. 조선 왕실의 태실은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에 집중분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을 전후하여 태실에서 태항아리들을 꺼내 이왕가 박물관으로 옮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왕가 박물관은 해방 이후 소장품을 국립고궁박물관의 전신인 궁중유물전시관에 넘겼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먼저 투박해 보이는 태조의 태항아리와 백자로 만들어진 세종의 태항아리가 보인다. 조선 초기의 태조, 정종, 태종의 태항아리는 왕이라고 할지라도 질그릇으로 만들었다. 문종 이후에도 한동안은 분청사기로 태항아리를 만들었는데, 세종의 태항아리가 백자인 것은 그의 백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성종과 성종비의 태항아리가 나란히 선을 보이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연산군의 생모인 성종비 윤씨의 내항아리가 있다는 것은 왕실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안태의례가 유행했음을 보여준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귀(1557∼1633)가 쓴 ‘묵재일기’에는 사대부 사이에 안태의례가 행해지고 있다는 내용이 있으나, 그 증거는 이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경기도 광주시 경안면 태전리에 있던 성종태실은 1928년 창경궁으로 옮겨졌다. 연산군의 원자 금돌이(金乭伊)의 태항아리는 왕실에 도자기를 공급하는 사옹원 분원이 생긴 이후 백자 태항아리가 정형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연산군의 원자가 어린 시절 금돌이라고 불리었음은 함께 전시되어 있는 태지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태지석은 주인공이 태어난 연·월·일 등을 기록한 뒤 묘지명처럼 백자로 구워 태실에 넣었다. 정조의 내항아리는 바닥에 개원통보(開元通寶) 한 개가 놓인 상태로 전시되어, 동전 위에 탯줄을 올려놓았던 안태 방식의 일단을 보여준다. 한편 전시실 끝에는 충남 서산에 있는 명종태실이 실제의 4분의3 크기로 재현되어 있다. 새롭게 고증하여 숙종 당시 수리되었을 때의 원형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한다. 박상규 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안태의례는 중국의 제도가 아닌 우리 고유의 풍속으로 조선 왕실에서 꽃을 피웠다.”면서 “왕조가 지속되려면 왕실이 번창해야 하고, 지혜로운 군주의 대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염원을 안태의례는 담고 있다.”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국립고궁박물관 전관 28일 개관

    국립고궁박물관 전관 28일 개관

    국립고궁박물관이 3개 층 12개 전시실로 전시공간을 늘려 28일 전관 개관한다. 앞서 고궁박물관은 광복 60주년을 맞은 2005년 8월15일 경복궁 남서쪽의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에서 1개 층 5개 전시실로 문을 열었다. 고궁박물관은 전관 개관으로 기존의 ▲제왕기록실 ▲국가의례실 ▲궁궐건축실 ▲과학문화실 ▲왕실생활실 말고도 ▲탄생교육실 ▲왕실문예실 ▲대한제국실 ▲어차(御車) ▲궁중회화실 ▲궁중음악실 ▲어가의장(御駕儀仗)실 ▲자격루실이 새롭게 선보이게 된다. 상설 전시품도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과 보물 7건을 포함해 기존의 500여점에서 900여점으로 크게 늘어난다. 전관 개관으로 조선 왕조의 역사와 조선 왕실의 예술과 문화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조선왕실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보물 23건 등 모두 31건 71점의 초상화와 관련 유물이 출품되는 ‘화폭에 담긴 영혼-초상’특별전도 갖는다. 영조의 세자 시절을 그린 보물 제1491호 연잉군 초상은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불에 탄 자국이 선명하다. 한편 고궁박물관은 전관 개관을 기념해 12월 말까지 무료로 개방하기로 했다. 매표소에서 무료입장권을 받으면 오전 9시와 11시, 오후 1시와 3시에 각각 1500명씩 4차례에 걸쳐 모두 6000명 한도에서 관람할 수 있다.(02)3701-7631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예술품의 허구’를 까발리다

    위작 파문으로 연일 미술계가 뒤숭숭하다. 무더기로 적발된 박수근·이중섭 화백의 위작들로 검찰이 전시회를 갖겠다고 벼르기까지 하는 상황은 웃지 못할 한편의 코믹 드라마다. 새책 행렬 속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책이 ‘라파엘로와 아름다운 은행가’(데이비드 브라운 등 지음, 김현경 옮김, 휴먼&북스 펴냄)인 것은 그런 세태 탓일까. 게다가 제목이 여간 수상하지가 않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와 은행가는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미술적 식견이 있다면 ‘빈도 알토비티 초상화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궁금증은 오히려 더할 듯하다. 장밋빛 입술에 청회색 눈동자의 청년이 묘하게 사선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 라파엘로의 걸작(초상화 ‘빈도 알토비티’)에서 화가의 어떤 이야기를 새삼 꺼내겠다는 말인가. 이 책은 그림의 가치가 어떤 요인들로 결정되는지를 신랄하게 까발린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단을 풍미한 천재작가의 작품 한점을 매개로, 집요할 만큼 일관되게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 라파엘로의 작품 ‘빈도 알토비티’의 유전(流轉)은 예술품 가치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결정적 단서가 될 만하다. 초상화의 주인공 청년 알토비티는 5세기 전 이탈리아 유력 은행가 집안의 상속자. 후대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불리게 된 라파엘로가 그를 화폭 앞에 앉혔다. 화가가 당대 최고 유력가 집안의 후계자를 묘사하는 데 얼마만큼 공을 들였을지는 그대로 그림이 말해준다.“모델의 외모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서 나아가, 라파엘로가 상상해낼 수 있는 가장 잘생긴 젊은이로 탄생시켰다.”는 해설을 통해 책은 예술품 탄생의 허구성을 슬몃 짚어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이 엉뚱하게 라파엘로의 자화상으로 둔갑돼 값이 치솟았던 사실에 주목한다.16세기 이탈리아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의 애매모호한 글귀에서 어처구니없는 오해가 비롯됐다는 것이다.“그가 젊었을 때 빈도 알토비티를 위해 그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그 그림이 가장 대단하게 여겨진다.” 바사리가 ‘예술가의 전기’에 묘사한 ‘그’가 라파엘로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통에 삽시간에 그림가치가 급등하는 해프닝이 이어졌다. 유력 화상들이 주목했음은 물론이다.1808년엔 바이에른 황태자 루트비히에게 라파엘로의 자화상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어 팔렸고, 루트비히는 또 얼마 뒤 뮌헨의 왕실 컬렉션에 작품을 기증했다. 인기가 치솟던 초상화는 그러나 다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일부 감식가들이 라파엘로의 제자가 그렸다는 주장을 내놓자 그림값은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진 것.1938년 뮌헨미술관은 문제의 그림을 방출했다.‘빈도 알토비티’의 인기는 결국 라파엘로의 ‘얼굴값’이었던 셈이다. 이후 ‘빈도 알토비티’는 밑그림이나 제작기법 등으로 보아 라파엘로가 그린 진품으로 다시 인정받았다. 현재 그림이 걸려 있는 곳은 워싱턴 DC의 미국국립미술관. 초상화 한 점의 궤적에서 미술품 가치의 진실을 넘겨다본 책의 저자는 그곳의 큐레이터다. 그는 “세월이 흐르며 그림의 궤적이 바뀌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림에 매혹된 관람자들이 그 흐름을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서양 근·현대미술사에 빛나는 다양한 초상화들을 감상하는 여유까지 만끽할 수 있는 책.2만 9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5) 상여 장식에 쓰였던 木人(목인)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5) 상여 장식에 쓰였던 木人(목인)

    사람은 영혼과 육신을 뜻하는 혼백(魂魄)으로 되어 있어, 죽으면 육신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저승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염라대왕의 명으로 달려온 저승사자는 쇠몽둥이로 등을 치고, 쇠사슬로 얽어매어 사람의 넋을 저승으로 떼어 간다는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이렇게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저승길의 난관을 헤쳐가면서 망자와 동행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면 가장 먼저 ‘사잣밥’을 차려서 저승사자의 마음을 달래고자 했지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시신을 운구할 때 썼던 충남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마을의 ‘남은들상여’(중요민속자료 제31호)에서도 용머리판 마룻대 중간에 동자 차림으로 팔장을 끼고 있는 저승사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상여 꼭대기에 버티고 서서 잡귀들에게 앞길을 막아서지 말고 썩 물러나라고 호령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상여에는 저승사자뿐 아니라, 갖가지 색깔로 치장된 다양한 목조각이 베풀어졌습니다. 가마는 임금이나 고관대작이 타는 것이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는 신분의 제약이 없었지요. 혼례식 하루 만큼은 신분이 낮은 신랑신부라도 사모관대와 족두리, 원삼 등 궁중예복을 허용한 것도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가마’라고 할 수 있는 상여의 목조각은 오히려 신분이 낮은 사람 것이 훨씬 화려해지기도 했습니다. 남연군 것을 비롯하여 남아 있는 조선시대 왕실종친의 상여가 단층인 데 비하여,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살던 만석꾼 최필주의 장사(1856) 때 사용한 ‘산청 전주 최씨 고령댁 상여’(중요민속자료 제23호)’는 4층의 누각식 건물 형태지요. 조각 장식은 살아 생전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주고, 저승사자처럼 망자에게 길동무도 해주겠다는 뜻입니다. 성리학이 국교인 조선시대에 장례절차는 당연히 유교관습을 따랐지만, 내심으로는 영혼불멸의 내세관을 그대로 갖고 있었음을 상여 장식은 보여줍니다. 이렇듯 나무로 만든 인형을 목인(木人)이나 목우(木偶), 목용(木俑)이라고 불렀습니다. 소박하고 순수한 모습에 원색의 화려함과 해학이 더해진 목인은 최근 수집가들 사이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지요. 특히 상여에 장식된 목인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입니다. 말이나 해태, 호랑이를 타고 있는 선인, 선비, 광대는 악귀로부터 망자를 보호합니다. 이 망자의 보호자는 일제강점기에는 칼을 든 순사, 해방 이후에는 철모를 쓴 국군의 모습으로 나타나 시대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봉황을 타고 있는 동자를 조각한 목인은 망자가 하늘로 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상여 장식에 광대와 재인, 악공이 보이는 것은 귀인의 행차를 의미합니다.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선비는 사흘동안 서울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세악수(細樂手)가 연주하는 가운데 광대가 춤추며 익살을 부렸고, 재인은 줄타기나 곤두박질로 흥을 돋우었다고 하지요.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동안 느낄 지루함이나 무서움을 덜어주었을 것입니다. 신랑신부도 등장합니다. 저승에 가서도 좋은 인연을 만나 백년해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그런데 신랑신부의 모습만 혼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호적을 들고 있는 여인도 결혼을 상징합니다.‘호적을 판다.’는 말은 여자가 호적을 남자에게 옮긴다는 뜻이지요. 상여 장식에서는 이승에서 호적을 파서 저승으로 가져간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울 인사동 골목에는 목인박물관이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수집한 3000점 남짓한 목인을 소장하고 있지요. 자칫 잊혀질 뻔했던 목인이 최근에는 민속학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민중예술의 한 장르로 미술사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이런 선구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여왕의 남편/함혜리 논설위원

    여왕의 남편을 뜻하는 국서(國壻)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있다. 하지만 생소하다. 신라시대 선덕·진덕·진성여왕 이후 여왕이 전무한 탓에 별로 쓸 일이 없어서일 것이다. 영어로 여왕의 남편은 프린스 콘서트(Prince Consort)라 하는데 여왕을 배석하는 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원래 빅토리아(재위 1837∼1901)여왕의 부군이었던 앨버트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여왕의 남편은 공식적으로 여왕에 이은 왕실 서열 2위로 대단한 지위를 누리고 수많은 공적 역할도 주어진다. 하지만 결국은 여왕의 신하 신세다. 남자라면 여왕의 남편으로 지내면서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덕 군자로 소문난 앨버트 공도 이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전해 오는 일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한 뒤 앨버트공이 화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 거실로 들어갔다. 여왕이 사과하기 위해 서재 문을 두드렸다.“누구요?”라는 퉁명스러운 질문에 “영국 여왕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여왕. 여왕이 아니라 아내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었던 앨버트공은 “당신의 아내입니다.”라는 답을 듣고서야 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과 남편 필립공이 19일 60년전 결혼식을 올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다이아몬드혼식을 치렀다.1947년 11월20일 결혼한 이들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나란히 들어섰다. 지난 60년 동안 함께 살면서 겪은 일들이 노부부의 기억 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즐겁고 행복한 기억도 많지만 왕실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온갖 고통과 스캔들도 겪었다. 하지만 함께 극복했다. 이들의 삶 이면에는 물론 남편과 아내라는 사적인 역할이 있다. 이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이 여왕이라는 지위의 부인을 가진 남편의 역할이다. 필립공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가장과 남편으로서 권위를 지켰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철저하게 한발 뒤로 물러서 여왕을 보필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 역사상 다이아몬드혼식을 갖는 첫번째 군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던 훌륭한 남편 덕분이 아니었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46) 自强論의 이상과 현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46) 自强論의 이상과 현실

    우여곡절 끝에 후금과 화친함으로써 정묘호란은 끝났다. 인조 정권은 어렵사리 종사(宗社)를 보전할 수 있었지만 남겨진 과제는 참으로 버거웠다. 먼저 후금군과 이렇다할 전투 한 번 변변히 치러보지 못하고 강화도로 피란했던 현실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반성론이 제기되었다. 병력을 뽑아 조련시키고, 조총을 비롯한 무기를 확보하며, 군량을 마련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바야흐로 조정에서는 자강(自强)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높아가고 있었다. ●“후금에 복수” 군비 강화론 급부상 1627년 4월 1일, 서울로 돌아오기 직전 인조는 신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내가 좋아서 오랑캐와 화친했겠는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화친한 것은 적의 기세를 늦춰 설욕하려는 것이니 그대들은 빨리 장수를 선발하여 병사들을 조련시켜라.” 화친한 것 때문에 척화파 신료들로부터 ‘항복한 임금’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던 인조는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려면 군대를 길러 적과 싸우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실제 정묘호란 직후 인조는 과거와 달리 부쩍 상무(尙武)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조는 ‘우리 장사들이 갑옷 착용을 기피한다.’고 비판하고 갑주(甲胄)를 제대로 마련하라고 유시했는가 하면,1628년 10월에는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여 무사들을 시험하고 기예가 뛰어난 자들을 시상하기도 했다. 인조의 지시를 계기로 호란 직후부터 후금에 복수하기 위해 필요한 군사적 방책들이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다. 1627년 4월, 병조판서 이정구는 전국의 모든 주(州)·부(府)·군(郡)·현(縣)에 지휘관을 파견하여 정예롭고 건장한 장정들을 뽑으면 최소 5만∼6만의 병력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지방의 병사(兵使)나 수령들에게 능력 있는 무신을 수시로 천거토록 하여 지휘관을 양성하고, 서울에 도체부군문(都體府軍門)을 설치하여 지휘관들을 집결시켰다가 유사시 지방으로 파견하여 현지의 병력을 지휘토록 하자는 방책을 제시했다. 부제학 정경세(鄭經世)를 비롯한 홍문관 관원들은 무기와 군량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을 제시했다. 그들은 기동력이 탁월한 후금군의 돌격을 막으려면 조총수(鳥銃手)의 확보가 절실하다고 지적하고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지에서 1만의 장정을 뽑아 조총을 교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습이 끝난 뒤에는 사격 시험을 치러 3발을 쏘아 2발 이상을 명중시킨 자를 선발하자고 했다. 또 성능이 뛰어난 일본산 조총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을 왜관(倭館)이나 대마도로 보내 수입해 오자고 건의했다. 비변사 또한 각 도에 비축된 군기(軍器)들을 점검하여 병사들의 수와 일치하는지를 조사하고, 감사와 병사들을 채근하여 수시로 점검토록 하자고 강조했다. 정경세 등은 군량과 군수 확보를 위한 방책도 제시했다. 그는 먼저 군량 마련과 관련하여 인조와 비변사가 제시한 대책들을 비판했다. 그는, 몇몇 하급 관리와 서리의 숫자를 줄이고 왕실의 제수(祭需)와 어공(御供)을 감축하여 절약된 비용으로 군량에 보태자는 논의는 명분만 그럴 듯 할 뿐 아무런 효용이 없다고 일축했다. ●군포 징수등 근본 대책 싸고 논란 정경세는 반정공신들이 거느리고 있는 군관(軍官)들을 아예 혁파하고, 왕자나 공주 등 궁가(宮家)에서 독점하고 있는 토지와 어장(漁場), 염전(鹽田) 등의 면세 특권을 없애고, 인조의 사금고나 마찬가지인 내수사(內需司)를 없애라고 요구했다. 정경세 등은 더 나아가 군사 재정 확보를 위해 근본적인 개혁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양반들에게도 군포(軍布)를 거두자는 주장이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물론, 여염의 품관(品官)이나 사대부들에 이르기까지 직접 군역을 지지 않는 양반들에게서 포를 징수하면 1년에 수십만 필을 거둘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재정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법제화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군사 재정이 어느 정도 확보될 때까지 한시적으로라도 실시하자고 촉구했다. 정경세 등은 그러면서 ‘전하께서 애절한 마음으로 솔선수범하려는 자세를 보이면 외방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명령을 따르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참으로 어려운 결단이 요구되는 주문이었다. 인조는 물론, 궁가들과 반정공신, 그리고 일반 양반들까지 지배층 전체가 기득권을 포기할 각오가 있어야만 실현될 수 있는 개혁안이었다. 인조는 궁가의 특권을 폐지하고 내수사를 없애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신료들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그가 내세운 명분은 ‘조종(祖宗)의 옛 관행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정경세 등은 ‘군사와 군량이 없어 나라가 보존되지 못하면 궁가의 재산도 결국 적의 소유가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인조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광해군 때 궁가들이 점유했다가 인조반정 이후 국가로 소유권을 넘긴 토지와 어장을 본래의 궁가들에게 반환하는 것을 묵인하기도 했다. 전쟁 때문에 빚어진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려면 개혁이 절실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막상 무엇부터 손을 대고, 어떤 특권부터 혁파해야 할지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이 정묘호란 이후 조선의 현실이었다. ●개혁 부진속 흔들리는 민심 1628년 8월, 광주(廣州)의 선비 이오(李晤)는 인조에게 상소를 올려 현실을 진단했다. 그는 당시를 ‘기강이 무너지고 탐풍(貪風)이 치성하여 염치가 사라지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 역모가 빈발하고, 오랑캐의 공갈 속에 인심이 흉흉한 상태’라고 표현했다. 그는 호패법(號牌法) 폐지 이후 도망자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장정들을 군적(軍籍)에 올리기 위해 친족과 이웃까지 닦달하면서 민심이 동요하고 있다고 했다. 나아가 ‘적이 물러간 지 1년이 지나자마자 비변사 신료들은 끽연과 우스갯소리나 일삼고, 지방의 지휘관들은 기생을 끼고 앉아 술타령을 벌이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상황이 정돈되지 않고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서 역모 사건이 빈발했다. 이인거(李仁居)가 일으키려 했던 반란의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은 1628년 1월, 유효립(柳孝立) 등이 모반을 기도한 사건이 발각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제천에 유배되어 있던 북인 잔당 유효립 등은 “반정공신들이 포학하여 백성들이 고통에 빠져 있다.”는 등의 명분을 내걸고 거사를 도모했다. 그들은 광해군을 복위시켜 상왕(上王)으로 모시고 인성군(仁城君,宣祖 7子)을 추대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공초(供招) 과정에서는 ‘환관을 시켜 인조를 시해하려 했다.’는 진술까지 흘러나왔다. 결국 수사 과정에서 관련자 50여 명이 자복(自服) 후에 처형되는 참극이 빚어졌다. 1628년 3월에는 유학(幼學) 임지후(任之後)의 고변(告變)이 이어졌다.“공신들을 모두 죽이고 광해군을 복위시킨 뒤 인성군에게 전위토록 한다.”는 내용으로 ‘유효립 사건’과 거의 같은 슬로건을 내걸고 있었다. 관련자 심길원(沈吉元)은 심지어 “반정 당시에도 200명으로 성공했는데 지금 무슨 어려움이 있을쏘냐?”고 진술하여 인조정권을 경악케 했다. 정묘호란 이후 인조정권은 분명 기로에 섰다. 전란으로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고 집권 이후 줄곧 내세웠던 명분을 실천하려면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하지만 ‘군비를 강화하여 후금에 복수하자.’고 외치면서도 정작 그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근본 대책은 마련하기 어려웠다.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조가 내수사를 움켜쥐고 궁가들의 특권을 비호하는 한 양반들에게 군포를 거두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실제 양반들에게 군포를 거두자는 논의(戶布論)는 이후 200년이 훨씬 더 지난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가서야 실현된다. 정묘호란 이후, 자강의 방책을 둘러싼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英여왕 결혼60주년 ‘궁정음악’ 음반 출시

    오는 20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남편 필립공의 결혼 60주년을 맞아 기념 음반이 소니BMG에서 출시된다.`로열 컬렉션-왕실의 행사´를 제목으로 한 이 음반은 엘리자베스의 대관식 때 사용된 윌튼의 `제국의 왕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 때 연주된 홀스트의 `나의 조국이여, 그대에게 맹세하노라´, 요한 스트라우스의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경의를 표하며´ 등 15곡을 담고 있다. 잉글리시체임버오케스트라, 웨스트민스터 성당합창단 등이 연주에 참여했다.
  • [강유정의 영화 in] 처녀왕 엘리자베스의 로맨스가 궁금하다면…

    [강유정의 영화 in] 처녀왕 엘리자베스의 로맨스가 궁금하다면…

    ‘골든 에이지’를 보기 전에 우선 한 가지 정보에 먼저 주목하자. 그것은 바로 이 영화가 영국의 제작사 ‘워킹타이틀’사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워킹타이틀 사는 어떤 회사인가? ‘오만과 편견’‘노팅힐’‘윔블던’‘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 21세기 로맨스의 원산지이자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워킹타이틀사이다. 워킹타이틀이라는 이름은 남녀 간의 연애에서 발생하는 심리를 품격있고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 제작사라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골든 에이지’ 역시 마찬가지다.700년 전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화려한 복색으로 치장한 로맨스 사극이다. 때는 1583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위에 즉위한 이후, 유럽의 정세가 구교와 신교 사이의 긴장 상태에 놓여 있던 시기이다. 당시 세계의 권력은 무적함대를 내세운 스페인 필리페 2세의 손에 넘어가 있는 듯 보이고 신교를 믿고 있는 영국은 가톨릭교를 믿는 스페인의 은밀한 적으로 인식된다. 언제라도 ‘성전’을 치르기 위해 엘리자베스를 노려보는 필리페 왕, 영국 내 잔존하고 있는 구교와 신교의 충돌 등의 문제가 이 젊은 여왕을 고뇌로 이끈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이 충돌 가운데 놓인 엘리자베스라기보다 자신의 여성성과 왕이라는 지위가 갖는 남성성을 두고 고민하는 인간 엘리자베스라는 사실이다. 밤새 쌓인 초겨울 첫눈처럼 달콤하고 순결한 엘리자베스, 그녀는 모든 남성들이 욕망하는 에로스의 대상이다.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있어 여성성은 거래의 대상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환심’을 사려 하지만 ‘진심’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환심을 향한 공작은 여왕의 처녀성에도 예외가 아니다. 주변국과 왕실의 각료들은 여왕의 처녀성을 활용해 정치적 게임에서 이익을 얻어내고자 한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거래이자 외교의 수단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왕좌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침실의 그녀가 자주 대조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왕좌에 앉은 그녀는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하고 사람들을 호령하고 있지만 치장을 벗고 드러낸 맨몸은 짧은 머리에 가냘픈 체중을 드러낸다. 왕좌와 왕위라는 복색이 그녀를 가두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처녀왕이었던 엘리자베스의 로맨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도 아마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욕망, 그것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가슴 속 싶은 곳에 놓인 생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여왕은 짜증내고 변덕부리다가 상상하고 기대한다. 케이트 블란쳇의 훌륭한 연기 덕분에 히스테리컬한 처녀왕 엘리자베스는 역사적 위인이라기보다 흥미로운 캐릭터로 기억될 듯 싶다. 대규모 전투신을 주목하라고들 말하지만 시선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라일리 경의 키스 장면에 머문다.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상상할 수 있는 것, 엘리자베스의 속깊은 사생활,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누릴 수 있을 오만한 사치가 아닐까? 영화평론가
  • 허브는 감기·비염에 특효약일까

    허브는 예로부터 아픈 기운을 물리친다고 해 이집트와 그리스 왕실의 사랑을 받아왔다. 또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400여종의 약초 치료법을 연구했는데, 그 중 하나인 허브 아로마 요법은 지금까지도 애용되고 있다. KBS 1TV ‘생로병사의 비밀’은 이같은 허브의 효능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한다.13일 오후 10시에 방송되는 ‘자연이 준 향기로운 선물-허브’에서 허브의 비밀을 과학적으로 알아보고 이를 이용한 건강법도 함께 살펴본다. ‘허브마니아’를 자칭하는 왕혜금(44)씨.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던 그녀는 5∼6년 전부터 집안 가득 허브를 키우면서 감기 걸리는 일이 없어졌다. 혜금씨는 허브 덕분에 건강체질이 됐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이비인후과 의사이자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이기도 한 김상현(46)씨. 그런데 그에게는 비염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특효약이 있다고 한다. 바로 허브 오일. 달콤한 허브향이 치료에 도움이 된단다. 허브에 어떤 능력이 숨겨져 있기에 이런 결과들이 가능할까. 제작진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팀과 함께 허브의 항바이러스 능력을 실험해본다. 종류마다 각기 다른 향을 풍기는 허브들은 사람에게 제각기 다른 효과를 준다. 교감 신경을 자극해 활기를 느끼게 하는가 하면, 부교감 신경을 자극해 진정 효과를 주기도 한다. 또 허브 아로마 요법은 스트레스나 우울증, 불면증 치료에 쓰이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효능을 지닌 허브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기도 한다. 고혈압이나 간질 같은 특정 질환을 앓는 사람과 영유아의 경우는 주의가 필요하다. 또 아로마 오일은 고농축액이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부작용이 일어난다.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지 두루 살펴본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왕흥사 목탑, 위덕왕이 세 왕자 위해 세운것”

    “왕흥사 목탑, 위덕왕이 세 왕자 위해 세운것”

    충남 부여 왕흥사터에서 최근 출토된 백제시대 사리장엄에 새겨진 명문에서 그동안 ‘망(亡)’자로 읽혀졌던 글자는 ‘삼(三)’자의 이체자(異體字)로 밝혀졌다. ‘망(亡)왕자’가 아니라 ‘삼(三)왕자’라면, 백제 위덕왕(554∼598)은 죽은 세 왕자를 위하여 577년 왕흥사에 목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한 것이 된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亡’자처럼 보이는 글자는 ‘三’의 이체자로 중국 제나라의 방주타 무덤에서도 ‘三’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31일 밝혔다. 이 교수는 “‘망왕자’로 판독하면 세상을 떠난 왕자가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면 ‘망왕자 누구누구’라는 식으로 이름을 쓰거나, 몇째 왕자로 언급했어야 했다.”면서 “문맥상으로도 ‘삼왕자’로 판독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이체자란 뜻과 음은 정자와 같으나 형태가 다른 글자를 말한다. 왕흥사 사리장엄의 동제 사리호에 새겨진 ‘삼’자는 정자 ‘三’의 중간획과 아래획의 왼쪽 상하로 획을 하나 더 파놓은 모습이다. 왕흥사 명문에는 三을 비롯해 立(입)·刹(찰)·本(본)·葬(장)·神(신) 등이 이체자이다. 이 교수는 “세 왕자가 모두 고인이 된 시대적 배경을 찾는 일이 긴요하다.”면서 “‘위덕왕 8년(561년) 백제가 신라의 변경을 침공했으나 패하여 1000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위덕왕 24년(577년)에는 신라 서변을 침공하다가 3700여명이 전사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백제와 신라의 577년 전투는 10월의 일로, 목탑이 건립된 577년 2월15일보다 오히려 늦지만, 신라측 사료에서 나온 기록인 만큼 신라 기년에 따르면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광개토왕릉비문’에서 확인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즉위년은 ‘삼국사기’ 기록보다 1년 앞선 391년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이렇듯 여러 차례의 전쟁에서 전몰한 왕자의 숫자가 3명에 이르렀던 것 같다.”면서 “위덕왕의 뒤를 아들이 아닌 아우인 혜왕이, 그것도 70세 안팎의 고령에 계승한 것은 아들들이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왕이 신라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아들인 위덕왕도 전쟁을 몸소 치렀듯이 왕실이 왕자들을 사령관으로 하는 전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왕자들이 잇따라 전사했고,‘亡’자와 닮은 이체자로 사망한 왕자들을 위해 목탑을 세운다는 의식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서기’에 기록된 아좌태자의 존재 또한 “당시는 왕의 동생도 왕자라고 표기한 만큼 위덕왕의 아들이기보다는 아우일 가능성도 열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교수는 “경주 ‘황룡사찰주본기’에 나오는 刹柱(찰주)가 ‘탑기둥’을 뜻하는 것 처럼, 왕흥사 명문에 나오는 立刹(입찰)도 ‘절을 세우다.’가 아니라 ‘탑을 세우다.’로 해석하는 것이 맞는다.”면서 “따라서 왕흥사는 ‘삼국사기’ 기록대로 600년(법왕 2년)에 축조되고,634년(무왕 35년) 낙성되었다는 데 아무런 변동이 없다.”고 덧붙였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日 왕실/ 황성기 논설위원

    일본 최고의 논픽션 작가로 꼽히는 오야 소이치는 일본 왕실을 메이지 시대까지 적나라하게 파헤친 ‘실록 천황기(天皇記)’란 명저를 남겼다. 그는 “왕실의 가장 큰 사명은 왕실 그 자체를 존속시키는 것. 천황(일왕)은 가미요(神代·천황의 전신)로부터 전해오는 ‘피’를 후세에 잇는 살아 있는 바통이자 성화이다. 이 불은 어떤 일이 있어도 꺼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이것이 왕실의 모든 조직, 제도, 시설 속에 일관한 사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왕실을 꿀벌 사회에 빗댔다. 꿀벌 사회를 존속시키는 정점인 여왕벌과 그의 ‘성적 예비군’인 수컷 일벌과의 관계를 왕과 왕의 피를 받는 궁내의 여성에 비유했다. 일본 왕실은 대대로 사명을 다해 다산이 이뤄지긴 했지만 성인이 되기 전 사망률이 80%에 달했다. 유아 사망률은 꽤나 높아서 메이지 일왕(1852∼1912)만 해도 왕비 외에 5명의 첩을 둬 15명의 자식을 봤으나 그중 10명이 성인이 되기 전에 죽었다. 오야는 왕실의 사망률이 높았던 이유의 하나를 조혼에서 찾았다.2차대전 패전과 함께 신의 자리에서 인간으로 내려온 일왕과 왕족들은 현대의 결혼제도인 일부일처제를 지키고 있는데 왕위를 이을 남자는 귀한 편이다. 뉴욕타임스에 “일본 왕실은 거대한 스트레스 덩어리이며 왕족은 일년 내내 먹고 자기를 반복한다.”고 고백한 도모히토(61) 친왕은 쇼와 일왕의 동생 다카히토의 장남이다. 왕위와 거리가 먼 그는 얌전한 왕족과 달리 튀는 언행으로 유명하다. 수염을 기르고 라디오 DJ까지 했던 그는 왕실의 금기인 병력 공개에 대해 “2세대에 걸쳐 6명이 암을 앓았다.”고 털어놨다. 왕실 관련 언급을 자제하는 사회적 검열의 총칭인 ‘국화 터부’가 철통 같은 일본에서 왕족인 그의 발언은 거침없다. 나루히토·마사코 왕세자 부부의 공주 출산을 계기로 ‘황실전범’을 고치자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여성도 왕위를 잇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도모히토는 “첩을 둬서라도 남자가 대를 잇자.”는 과격한 여왕 반대론자이다. 마이니치 신문의 지난해 9월 여론조사에서 여왕을 인정하자는 일본인이 72%나 됐다. 이쯤되면 여왕대세론이랄 수 있지만 ‘남성의 벽’을 넘기가 어려운 게 일본이기도 하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22일 TV 하이라이트]

    ●TV소설 ‘그대의 풍경’(KBS1 오전 7시50분) 하숙집에서 쫓겨난 혜린은 종구에 대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영옥은 국밥집에 와서도 어른들 눈치만 보는 보배 때문에 가슴 아파한다. 수련이 시댁에서 아무 일없이 지내는 것을 알게 된 윤주는 화가 나 검찰청을 찾아간다. 한편 종구와 혜린의 다정한 모습을 본 동혁은…. ●책 읽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EBS 밤 8시20분)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은 아지즈 네신의 단편들을 엮은 책이다. 독수리와 물고기, 참나무와 인형, 담쟁이 덩굴, 사랑을 찾아 일생을 건 남자. 주인공들은 닿을 수 없는 불가능한 사랑에 도전하며 사랑의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들이다. 사랑을 이루는 데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케냐는 자국의 영화산업을 ‘리버우드’라고 부른다. 리버우드 영화는 단순한 오락용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아니었으면 철저히 소외됐을 사회적 병폐를 드러낸다. 하지만 케냐의 영화 산업은 기지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 저가의 해적판 DVD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닥터스(MBC 오후 6시50분) 기차처럼 빠르게 뛰고 싶어 하는 31개월의 준두. 준두의 왼쪽 다리는 정상이지만 오른쪽 다리는 허벅지와 무릎이 연결되는 부분부터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쪽 종아리뼈는 2개가 있어야 하지만 1개밖에 없고 무릎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또 다리가 골프채 모양 같다고 해서 ‘클럽풋 증후군’이라고 불린다. ●왕과 나(SBS 밤 9시55분) 조치겸은 내시부는 왕실을 떠받드는 주춧돌이라며 내시부의 기강이 흔들리면 임금의 권위가 무너져 백성들이 도탄에 빠질 것이라며 다시금 임금과 왕실에 대한 충정을 다져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이어 정한수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내시부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는 일벌백계로 다스린다고 말한다. ●미녀들의 수다(KBS2 밤 11시05분) 크리스티나가 남자친구에게 예정에도 없던 깜짝 프러포즈를 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평소 사유리가 “크리스티나와 헤어지면 그 남자 내가 만나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던 사람이 그 프러포즈의 주인공. 크리스티나는 “밀라노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어 그를 따라 한국에 왔다.”라고 공개한다.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9) 불암산 학도암 마애관음보살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9) 불암산 학도암 마애관음보살

    마애불(磨崖佛)이란 벼랑바위에 새겨놓은 부처이지요.‘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마애삼존불처럼 바위 속에서 부처가 걸어나오고 있는 듯 높게 돋을새김해놓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통일신라 말기부터는 갈수록 평면화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아예 선각(線刻)에 가까워지지요. 이런 현상을 두고 조각기법이 퇴화한 결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대가 떨어지는 마애불은 이렇듯 세상의 평가가 후하지 않으니, 기대를 갖지 않게 마련이지만 뜻밖에 조선 후기 것이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이 그렇습니다. 학도암(鶴到庵)은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불암산(佛巖山) 남서쪽 기슭에 있는 작은 암자입니다. 관음보살상은 절 바로 뒤에 우뚝 솟은 높이 22m의 거대한 바위에 새겨졌지요. 학도암에 오르면 왼쪽으로는 멀리 삼성동 무역센터 너머로 청계산이 산세를 자랑하고, 가운데로 눈길을 옮기면 관악산과 남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산 아래 마들에서 시작된 건물 숲은 끝간 곳이 없는데, 군데군데 솟은 산은 회색 바다 위에 떠있는 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불경에 관음보살은 작고 흰꽃이 피어 있는 바닷가 봉우리에 살고 있다고 했으니, 이곳에 관음보살좌상을 새긴 사람도 분명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학도암 마애불은 1872년 명성황후의 시주로 조성된 것으로 사지(寺誌)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도암은 1624년(인조 2년) 창건된 이후 줄곧 작은 암자였다고 하지요. 절터가 가파른 경사지여서 앞으로도 큰 규모의 중창불사는 그리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곳에 왕실의 발원으로 거대한 마애불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관음보살의 상주처로 꼭 맞는 환경조건을 가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학도암 마애불이 예기치 않은 감동을 주는 것도 이처럼 현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상징성이 더해졌기 때문이겠지요. 높이가 13.4m에 이르는 학도암 관음보살은 일단 크기로 참배객을 압도합니다. 그러면서도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의 성격에 걸맞게 부드럽고 넉넉해 보이지요. 전체적으로는 조각이라기보다 그림처럼 느껴집니다.‘화폭’으로 쓰여진 바위는 자연석으로는 보기 드물게 희고 판판합니다. 좋은 ‘그림’의 바탕에 좋은 재료가 뒷받침되었습니다. 실제로 학도암 마애불은 화승이 그린 밑그림을 바탕으로 새긴 것입니다. 마애불에는 명문(銘文)도 남겨놓았는데, 화승을 뜻하는 금어(金魚) 장엽의 이름이 보입니다. 명문에는 또 김흥연 이운철 원승천 박천 황원석 등 석수(石手) 5명의 이름도 올려놓았지요. 마애불전문가인 이경화는 법명(法名)을 쓰지 않는 석수들을 1865년 시작되어 1872년 마무리된 경복궁 중건과 연결지었습니다. 선의 강약과 리듬을 살려내는 솜씨로 보면 궁중에서 실력을 쌓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장엽의 작품인 삼척 신흥사 아미후불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균형감각과 유려한 필선을 장기로 하는 그가 비계에 매달려 초본대로 바위 표면에 관음보살상을 그려놓으면 궁중 석수들이 선을 따라 새겨나갔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쯤되면 마애불 전통의 퇴화가 아닌 회화와 조각이 만나는 새로운 전통을 창조한 것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불암산이 뒷동산이나 다름없는 중계동 주민이라면 우리 동네에 정말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다는 자부심을 한껏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dcsuh@seoul.co.kr
  •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MTB 라이딩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MTB 라이딩

    언덕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힘들게 언덕을 오르고 나면 쭉 뻗은 내리막이 기다린다. 고개 넘으면 또 고개,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가 기다린다. 그래서 산악자전거(MTB. Mountain Bike) 라이딩을 인생에 비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부침이 심한 인생사와 닮은 꼴이기 때문. 가을이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하는 경북 울진의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를 ’울진 MTB동호회원’들과 함께 돌아 보았다. 길이 넓고 완만해 MTB 초보자도 도전해 볼 만 한데다,‘소나무 원시림의 원형’이라 할 정도로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는 지역이다. 글 사진 울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피톤치드를 마시며 달린다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로 서 있는 울진 소광리 금강송(金剛松) 숲. 붉은 빛이 감도는 피부를 가진 금강송은 금강산을 비롯한 태백산맥 일대에서 자란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색이 붉어 적송(赤松), 늘씬하게 뻗어 미인송(美人松), 봉화의 춘양역에서 운반됐다고 해 춘양목(春陽木), 왕실의 관곽재로 사용돼 황장목(黃腸木) 등으로도 불린다. 붉은 빛 표피는 시간이 흐를수록 딱딱해지며 둥치부터 회색으로 변한다. 나무의 껍질은 점차 육각형으로 갈라지다가 수백년이 지난 후엔 마침내 거북의 등딱지 모양이 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소나무들 중 유난히 곧고 길어 외래종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우리 땅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 호흡해온 토종 소나무다. 금강송 군락지로 들어설 때 왠지 이국의 산마루와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그런 까닭일 게다. 소광리 MTB 라이딩은 울진에서 영주로 향하는 36번 국도와 917번 지방도로가 만나는 곳을 들머리로 삼았다. 차를 가져왔을 경우 자수정영업소 입간판이 세워진 이곳과 금강송 소나무 군락지 입구에 주차하면 된다. 소광천 맑은 계곡물과 길동무하며 7㎞ 남짓 포장도로와 비포장 산길을 번갈아 지나면 삿갓봉으로 오르는 소광천 임도와 만난다.MTB 라이더와 등산객 외에는 입장이 통제된 길이다.20m는 족히 넘어 보이는 금강송과 낙엽송이 그야말로 울울창창한 곳. 험한 산길을 달려온 울진 MTB 동호회원들이 상기된 얼굴로 숨을 몰아쉰다. 그런데도 표정만은 하나같이 밝다. 좋아하는 자전거 타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위용을 뽐내는 숲길을 달리며 피톤치드를 실컷 마셨으니 그럴 법도 하다. ●굳고 곧은 금강송이 사는 숲 “MTB를 타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곳이 소광리 일대입니다. 전국에서 소나무 원시림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지요. 솔향기와 오염되지 않은 오지의 한적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백두대간의 한 줄기여서 산세가 웅장하고 MTB를 타기 적합한 임도도 잘 닦여져 있습니다.”동호회에서 온갖 궂은 일을 담당하고 있는 이엽(47)씨의 소광리 자랑이다. 이씨가 MTB 핸들을 잡게 된 것은 7년 전. 당뇨를 앓던 아내와 함께 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MTB를 꾸준히 탄 덕에 아내의 병세가 놀라울 만큼 호전된 것은 물론, 자신도 초기 1년 동안 몸무게를 무려 11㎏ 감량해 비만이었던 몸을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로 바꿀 수 있었다. 이씨가 추천하는 소광리 일대 코스는 두 곳. 금강송 군락지 초입의 550년 된 소나무에서 출발해 대광천∼삿갓재∼소광천∼금강송 군락지로 돌아오는 코스와 덕구온천 인근의 구수곡 휴양림을 출발해 두천리∼12령∼대광천∼솔평지 등을 거쳐 다시 구수곡 휴양림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소광천 임도와 금강송 군락지로 가는 길 오른편으로 나 있는 두천리 임도도 금강송의 아리따운 자태를 만끽할 수 있는 코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MTB코스로서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다. 면적만도 1610㏊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금강송 군락지. 출입금지된 지 47년만인 지난 해 7월 일반에 개방되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 숫자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200∼300년 된 미인송 8만여 그루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속담과 달리 팔등신 미녀의 늘씬한 각선미를 연상케 하는 소나무들이 지키고 선 숲이다. 속리산 정이품송처럼 넓게 팔을 벌린 소나무들에서 유장함과 넉넉함을 느낀다면, 금강송 숲에서는 더할 수 없이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동호회원 중엔 여성 MTB 마니아도 적지 않다.2년 경력의 도분녀(39)씨는 “뱃살은 물론, 팔과 허리, 등쪽의 살이 줄어 다이어트 효과를 톡톡히 봤다.”며 “힙-업이 되면서 ‘뒤태’가 살아 전체적으로 탄탄하고 균형잡힌 몸매를 갖게 됐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잠시 다리품을 쉰 다음 다시 MTB를 타고 산자락을 질주해 내려가는 도씨와 미인송의 늘씬한 자태가 잘 어울려 보였다. 울진MTB동호회 www.uljinmtb.com (054)782-5557. ●여행 정보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영주나들목→36번 국도→봉화→울진→금강송 군락지, 또는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7번 국도→울진→36번 국도→금강송 군락지. ▶통고산 연합 라이딩:울진MTB동호회는 20∼21일 통고산 일대에서 연합 라이딩 행사를 갖는다. 참가비 1만 5000원에 세 끼 식사가 제공된다. 이엽 011-538-4520. ▶맛집:울진 읍내 남양숯불갈비집에서는 싱싱한 송이요리를 맛볼 수 있다. 송이 시세에 따라 다르지만 전골에 넣어 먹을 경우 4명이 먹을 수 있는 500g에 5만원선. 특상품 송이를 회로 먹을 경우 30만원선. ▶주변관광지:근남면 행곡리 민물고기전시관은 물고기 표본과 살아 있는 민물고기 등을 전시하는 곳. 사라져가는 토착어종과 주요 관심어종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반드시 찾아봐야 할 곳. 어른 2000원, 중·고생 1500원, 초등학생 1000원.783-9413∼4. 불영계곡을 끼고 있는 불영사(783-5004)와 구수곡 자연휴양림(783-2241), 왕피천, 덕구온천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명소들. 울진군청 문화관광과 tour.uljin.go.kr 785-6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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