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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년의 예술, 백개의 걸작’ 다미아니 주얼리 전시회 [여니의 시선]

    ‘백년의 예술, 백개의 걸작’ 다미아니 주얼리 전시회 [여니의 시선]

    이탈리아 주얼리 브랜드 ‘다미아니(Damiani) 100주년 기념 하이주얼리 전시회’가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익선동 누디트 익선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회는 다미아니의 10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마련된 행사로 다미아니 브랜드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다미아니는 1924년 창립 이래로 섬세한 장인 정신과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전 세계의 주얼리 애호가들에게 사랑받아 왔다.전시장은 마치 보석 상자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조명과 디스플레이 방식이 매우 세심하게 설계되어 각 작품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되었다. 특히 다미아니의 시그니처 컬렉션인 벨에포크(Belle Époque)와 미모사(Mimosa) 시리즈는 많은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벨에포크 컬렉션은 영화 같은 로맨틱한 느낌을 주었고, 미모사 시리즈는 꽃잎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냈다.다미아니의 작품들은 단순히 화려함을 넘어서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마르게리타(Margherita) 컬렉션은 이탈리아 왕실의 마르게리타 여왕에게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으로 왕실의 우아함과 권위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이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는 ‘마르게리타 데저튼 가든’ 네크리스로, 자연의 황홀한 아름다움과 사막의 신비로움을 주얼리에 담아낸 작품이다.전시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다미아니의 특별한 장인 기술을 직접 볼 수 있는 코너였다. 한쪽에서는 실제 세공사가 주얼리를 세공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관람객들은 다미아니의 장인들이 어떻게 보석을 세팅하고, 금속을 조각하며, 디자인을 완성해 나가는지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전시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다미아니가 왜 세계적인 주얼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들의 작품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다미아니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다미아니가 만들어갈 다음 100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 ‘6월의 고지도’에 영국 탐험가 더들리의 ‘아시아 해도’ 선정

    ‘6월의 고지도’에 영국 탐험가 더들리의 ‘아시아 해도’ 선정

    동북아역사재단이 ‘6월의 고지도’로 영구 탐험가이자 지도제작자인 로버트 더들리(1574~1649)의 ‘아시아 해도’를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아시아 해도는 더들리가 1606년부터 1636년까지 30년 동안 제작하고, 1646~1647년에 출간한 최초의 세계 해도첩 ‘바다의 비밀’에 포함돼 있다. 아시아 해도에서 조선의 모습은 중국 파견 예수회 선교사들이 수집한 정보와 지도 제작자들의 상상이 결합해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한반도는 긴 타원형으로 그려져 있고 ‘조선왕국 그리고 반도’라고 표기돼 있다. 또 동해를 ‘한국해’(MARE DI CORAI)로 표기했다. 실제 한반도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지만 당시 유럽 사회에서는 조선을 반도로 인지하고 동해를 ‘한국해’라고 부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이후 서양에서 제작한 지도에서 한반도가 실제와 가깝게 그려진 것은 18세기에 들어서다. 1735년 프랑스 왕실 지리학자이자 지도제작자인 장 밥티스트 부르기뇽 당빌이 제작한 ‘조선왕국도’가 처음이다. 당빌은 중국에서 만든 ‘황여전람도’에 실린 조선의 지도를 모본으로 ‘조선왕국도’를 제작하고, 여기에는 조선의 주요 지방의 행정 중심지와 제주도, 울릉도, 독도까지 표시했다. ‘6월의 고지도’ 더들리의 ‘아시아 해도’는 오는 30일까지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있는 ‘독도체험관’에서 볼 수 있다.
  • 태국 왕궁 앞에서 어린 딸 노상 방뇨시킨 중국인 부부에 맹비난[여기는 동남아]

    태국 왕궁 앞에서 어린 딸 노상 방뇨시킨 중국인 부부에 맹비난[여기는 동남아]

    태국에서 신성시되는 왕궁 근처에서 어린 딸을 소변보게 한 중국인 부부에게 태국인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최근 중국인으로 보이는 부부가 태국 방콕의 관광 명소인 차크리 마하 프라삿 왕궁 앞에서 소변을 보는 딸을 기다리는 모습의 사진이 각종 소셜미디어(SNS)에 공유되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사진에는 4~5살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원피스를 들치고 소변을 보고 있고, 부모가 바로 뒤에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다. 아빠로 추정되는 남성은 중국 브랜드 샤오미 로고가 새겨진 배낭을 메고 있다. 태국 모닝뉴스 TV3에 따르면 사진을 찍은 관광객은 사진 속 가족이 중국인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태국의 세르삭 퐁파닛 관광스포츠부 장관이 직접 나서 “관광객들의 행동이 부적절하다”면서 “관련 기관에 조사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수도 방콕의 중심부에 위치한 차크리 마하 프라삿 왕궁은 태국과 태국 왕실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과거 태국 왕실의 거주지였으며, 현재는 왕실 행사를 거행하거나 국왕의 손님, 국빈, 해외 고위급 인사들을 맞이하는 장소로 사용된다. 태국의 누리꾼들은 “중국인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태국의 문화를 무시했다”, “그들은 군주제를 모욕한 혐의로 처벌받아야 한다”면서 강한 불쾌감을 표했다. 태국 왕실은 태국 국민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고 있으며, 왕실을 모욕한 경우 징역 3년~15년형에 처한다. 지난해에는 태국 왕궁 앞 광장에서 비키니 차림의 외국 여성 두 명이 일광욕하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태국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일부 중국 관광객들은 해외에서 종종 무례한 행동을 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3월 중순에는 영국의 대영박물관 기념품점에서 제품 상자 안에서 중국어가 적힌 먹다 남은 물병이 나왔다. 상자 안 제품을 먹다 남은 물병과 바꿔치기 한 것이다. 지난 2015년 태국 관광 명소에서는 종소리를 듣기 위해 고대 종을 걷어찬 중국인이 기소됐다. 중국 외교부는 자국민에게 해외여행 시 매너에 주의할 것을 당부하는 안내문을 수시로 발표하고 있다. 이종실 동남아 통신원 litta74.lee@gmail.com
  • “배낭여행 온 줄”…2만원 니트에 ‘민폐’ 소리들은 日공주

    “배낭여행 온 줄”…2만원 니트에 ‘민폐’ 소리들은 日공주

    나루히토 일왕의 조카 가코 공주가 그리스 공식 방문 중 착용한 의상에 대해 일본 네티즌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일본 왕실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공식 행사에서 저렴한 평상복을 선택한 점은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란 의견이다. 30일(한국시간) 산케이신문 등 일본 현지 매체에 따르면 가코 공주는 지난 26일 일본과 그리스의 외교 수립 125주년을 기념해 그리스를 방문했다. 이날 가코 공주는 수도 아테네에 도착해 다음달 1일까지 공식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다. 일본-그리스 외교관계 수립 125주년 기념식 참석을 비롯해, 파르테논 신전, 케르키라섬 등을 둘러보고 청각장애인 시설과 보육원 방문도 예정돼있다. 가코 공주는 방문 첫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둘러봤다. 이 때 가코 공주는 짙은 푸른색 반소매 니트에 하얀 와이드 팬츠 등을 착용했는데 그리스 국기를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나왔다.온라인에선 가코 공주의 패션에 대한 정보도 빠르게 공유됐다. 일본의 온라인 판매 한정 브랜드 ‘피에로트’의 상품으로 추정되는 이 니트는 2990엔(약 2만 6000원)이다. 가코 공주는 평소에도 이 브랜드의 제품을 즐겨 착용한다고 한다. 공주가 착용한 해당 니트는 온라인 매장에서 큰 인기를 끌며 일부 제품은 품절되기 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이 니트의 가격이 알려지면서 뜻밖의 논란이 일었다. 일부 네티즌은 “가코 공주는 일본 대표로 그리스를 방문한 것이다. 2만원대 니트는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 “가격보다는 TPO에 맞아야 한다”, “일본인의 품위를 떨어뜨려선 안 된다”, “배낭여행 온 줄” 등 반응을 보였다. 일본 매체는 가코 공주의 해외 공식 일정 패션을 소개하는 관련 기사에서 “해외 방문 시 야외 시찰 등으로 국내 공식 행사에서는 볼 수 없는 캐주얼 복장을 선보일 기회가 있다”며 “가코 공주가 페루의 유적지 마추픽추를 방문한 당시에도 베이지색 자켓을 입었다”고 전했다.
  • 태국 왕궁 유적지서 딸 소변보게 한 부모…“징역 가능성”

    태국 왕궁 유적지서 딸 소변보게 한 부모…“징역 가능성”

    태국 왕궁 유적지에서 아이에게 소변을 누인 부모가 공분을 사고 있다. 2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틱톡의 중국 버전 더우인(抖音)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4∼5세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소변을 보는 사진이 올라왔다. 장소는 태국 방콕 관광 명소인 차크리 마하 프라삿으로, 과거 태국 왕실의 거주지이자 현재는 각종 행사와 국가 이벤트 용도로 자주 쓰이는 방콕 왕궁의 일부다. 아이 부모는 소변을 보는 아이 뒤에 있었는데, 아빠는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 샤오미 로고가 붙은 백팩을 메고 있었다. 태국 현지 매체 모닝뉴스TV3는 “이 가족이 중국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한 네티즌은 태국법에는 왕실을 모욕하면 징역 3∼15년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이들 가족의 중형 가능성을 거론했고, 태국 관광체육부 장관도 “매우 부적절하다”라며 이 가족을 비판했다. 일부 중국인 관광객들은 해외에서 무례한 행동으로 악명이 높다. 이 때문에 중국 외교부는 자국민에게 해외여행 시 매너에 주의할 것을 당부하는 안내문을 수시로 발표하고 있다.
  • [씨줄날줄] 국가유산청

    [씨줄날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이 오늘 출범했다. 문화유산 전담 정부 조직이 처음 생긴 것은 1961년이다. 문화재관리국이 문교부의 외국(外局)으로 출범했다. 구황실재산사무총국과 문교부 문화보존과 기능을 합친 것이다. 외국은 중앙행정기관 소속이나 독립 업무를 하는 기관이다. 문화재관리국은 1968년 문화공보부의 외국, 1989년에는 다시 문화부 외국이 됐다가 1999년 문화재청으로 승격했다. 광복 이후 오랫동안 정부는 문화유산 조직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앞서 미군정청은 1945년 11월 2일 군정법령 21호로 ‘일제강점기 법령이 계속 유효하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법령은 물론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맡고 있던 문화유산 관리 조직도 그대로 물려받았다. 미군정청은 1946년 중앙행정기구를 개편하면서 학무국을 문교부로 승격시킨다. 이때 문화유산 사무를 맡던 교화과도 교화국으로 개편하고 문화시설과를 두었다. 명승, 고적, 보물, 천연기념물 등 문화유산 조사 및 보존에 종교와 서원, 박물관과 도서관, 동물원과 식물원, 음악·미술·영화·무용·미술·공예를 아울렀으니 관장하는 분야는 넓기만 했다. 정부는 1955년 문교부 문화국에 문화보존과를 신설해 문화시설과 기능을 넘겼다. 국가유산청 역사의 한 축인 이왕직(李王職)은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고 조선왕실을 계승한다며 설치한 기구다. 미군정청은 전국 능·원·묘의 관리 주체였던 이왕직을 1945년 구왕궁으로, 이듬해는 구왕궁사무청으로 개편한다. 정부는 1955년 구왕궁사무국을 구황실재산사무총국으로 바꾸었으니 오늘날의 궁능유적본부 기능과 큰 차이가 없다. 조선시대 장악원 전통을 이어받는 이왕직아악부는 국립국악원으로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을 두고 있는 한국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문화국가 지향적인 정부 조직을 갖고 있다. 그럴수록 두 조직이 ‘과거 문화’와 ‘미래 문화’를 각각 ‘남의 일’로 치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국가유산청이 특수 기능의 문체부 외청(外廳)에 머무르는 한 이런 현상은 피하기 어렵다. 이제 문화유산은 단순 활용을 넘은 미래지향적 문화산업화가 불가피하다. 국가유산부 승격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 “지옥에 빠졌나”…불타는 초상화 본 찰스 3세 반응은

    “지옥에 빠졌나”…불타는 초상화 본 찰스 3세 반응은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 이후 처음으로 그려진 공식 초상화가 버킹엄궁에서 공개됐다. 영국 BBC는 14일(현지시간) “생생한 빨간색 그림은 조너선 여의 작품”이라며 “찰스 3세도 처음에는 강렬한 색감에 약간 놀랐지만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 것 같았다”고 보도했다. 같은 소식을 다룬 뉴욕타임스(NYT)도 “왕이 작품을 덮은 천에 부착된 리본을 잡아당기면서 놀라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여의 그림은 전통적인 왕실 초상화와는 결을 달리한다. 그는 왕실 초상화 전통 중 일부인 군복과 검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마치 불타는 듯한 짙은 색채와 어깨 주변의 나비로 포인트를 줘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여는 “미술사에서 나비는 변신과 재탄생을 상징한다”면서 “그림이 독특하면서 과거와 단절되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과거였다면 작가의 개성을 중시하다가 왕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 여도 “만약 이 그림이 반역으로 여겨진다면 나는 말 그대로 내 머리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초상화 화가가 죽는 것, 즉 머리를 제거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일 것”이라고 농담했다. BBC는 “현대에 군주의 초상화가 안 좋게 받아들여졌다는 이유로 사형이 집행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월 영국 왕실은 찰스 3세가 암 치료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여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왕의 병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그림을 위해 찰스 3세는 1970년대 웨일스 근위대로 복무할 당시 복장을 하고 한 번에 한 시간씩 총 네 번 작가 앞에 앉았다. 대화 내용을 밝히지 않는다면서도 여는 찰스 3세에 대해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매우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여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이미 존재감과 위상이 높아지고 있었고 왕이 됐을 때 다시 한 단계 올라갔다”며 찰스 3세에게서 변화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왕을 그리는 일이 이전에 다른 초상화를 그릴 때와는 달랐으며 “의도적으로 시각적 산만함을 최소화해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 초상화는 16일부터 6월 14일까지 런던의 필립 몰드 갤러리에서 공개 전시될 예정이다. 이후 8월 말부터 드레이퍼스홀로 옮겨 전시된다.
  • 김동연, 캐나다 BC주 방문 ‘에너지, 청정기술, 기후변화’ 협력 논의

    김동연, 캐나다 BC주 방문 ‘에너지, 청정기술, 기후변화’ 협력 논의

    2008년 5월 자매결연 체결 후 미디어, IT 등 정책교류 진행 중 영국 왕실에만 공개하는 BC주 총독 관저 공개 국제교류협력 강화와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미국과 캐나다를 방문 중인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경기도와 자매결연 관계인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이하 BC)주를 방문, 두 지역 교류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김 지사의 BC주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동연 지사는 현지 시각 13일 오전 캐나다 BC주 총독 관저와 주의회를 방문해 재넷 오스틴(Janet Austin) 주총독, 데이비드 이비(David Eby) 주수상 등과 조찬을 함께 하며 양 지역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양측은 2008년 5월 자매결연 관계를 맺은 이후 미디어 콘텐츠, IT산업, 재난안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육, 노동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경기도에서 기후위기 대응 분야를 추가한 4차 실행계획을 체결한 바 있다. 지난 3월에는 경기도 교통국과 BC주 교통, 인프라부 간 교통협력의향서를 체결했으며 4월에는 도 평생교육국과 BC주 국제교육위원회 간 간담회를 열고 아태지역 대학교류 위원회(UMAP.University Mobility in AsiaPacific) 사업의 경기도 대학 참여, ‘경기 청소년 사다리’ 사업 협력 같은 교육 프로그램 관련 정책교류를 진행했다. 재넷 오스틴(Janet Austin) 주총독은 “BC주와 경기도는 첨단기술, 문화,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를 강화해 왔다. 앞으로는 에너지 분야, 청정기술, 기후변화 대응 등에서 훨씬 더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늘과 같은 고위급 인적 교류와 우정이 양국 간 협력에도 양 지역 간의 협력에도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전날 BC주 포트 넬슨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산불로 뒤늦게 행사에 참석한 데이비드 이비 수상은 “오늘 (산불로)늦은 것은 BC주가 기후변화로 인한 타격을 많이 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경기도와의 기후변화, 기술 분야 파트너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상기시켜 주는 상황이기도 하다”면서 “캐나다와 한국, BC주와 경기도의 협력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웠던 전쟁의 역사 때부터 시작해 지금의 강화된 협력 관계까지 성장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지사는 “지난해 경기-BC 실행계획 체결 이후 교통, 교육, 재난대응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왔다. 한국경제의 중심지와 캐나다 대한무역의 최대 관문 사이에 앞으로 더 큰 파트너십을 가꾸어 나가리라 믿는다”면서 “서로에 대한 의지도 더블, 협력도 더블로 해 나간다면 경기도와 BC주는 우리만의 더블더블(캐나다의 유명한 커피 이름을 활용한 중의적 표현)을 만들어 나가며 더 달콤한 성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캐다나 BC주 총독은 영국 왕이 임명하는 상징적 지위로 BC주 의전 서열로는 찰스 3세 영국 왕에 이어 두 번째다. 재넷 오스틴(Janet Austin) 주총독은 영국 왕실에만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총독 관저(Government House)에 김 지사를 초대하는 등 국빈급에 준하는 이례적 환대를 베풀었다. 총독 관저 조찬에 이어 김 지사는 BC주 의회 1층 수상실에서 행정 수반인 데이비드 이비(David Eby) 주수상과 양 지역의 협력 방안 강화를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김 지사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쿼터 정원이 기존 4천 명에서 1만 2천 명으로 늘었다”면서 “경기도에서 시행 중인 청년인턴 등 여러 청년 지원 사업이 있는데 이를 워킹홀리데이와 연계해서 우리 사업 선발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등 협력 방법을 찾아봤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경기도는 김 지사의 이번 BC주 방문으로 제4차 실행계획에 대한 차질 없는 실천 등 양 지역 교류협력 관계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지사는 이날 주의회 방명록에 “BC주의 저물지 않는 찬란함을 이미 맛보았던 제가, 이번 방문을 통해 상호 번영의 연대를 강화할 수 있어 기쁩니다”라고 적었다.
  • R&A 한국 7번째 정회원 탄생…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

    R&A 한국 7번째 정회원 탄생…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이 한국인으로는 7번째로 세계 골프의 본산 격인 R&A골프클럽 정회원이 됐다. 1754년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창설된 R&A골프클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클럽으로, 1834년 영국 왕실에서 ‘Royal & Ancient’(R&A) 칭호를 받았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뒤를 이어 R&A 골프클럽의 공식 후원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R&A 골프클럽은 미국골프협회(USGA)와 함께 골프용품의 세계 공인 규격과 규칙, 에티켓 등을 정기 개정 관리하는 한편, 남녀 메이저 골프 대회인 디 오픈 챔피언십과 AIG 위민스 오픈 등을 열어왔으나 2004년 ‘R&A’가 계열 분리하며 골프 규칙과 에티켓, 용품의 공인 규격 관리를, 골프클럽은 대회 개최를 맡게 됐다. 골프 스포츠 산업 육성 및 발전에 기여가 큰 명망 있는 인물을 대상으로 엄격한 자격 심사를 거쳐 뽑는 R&A 골프클럽 정회원은 전 세계 2500여명에 달한다. 홍 부회장은 한국 골프계의 대부이자 삼성물산과 삼양통상의 창업주인 고 허정구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박지원 두산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을 지낸 구자용 E1 회장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7번째 정회원이 됐다. 중앙그룹 JTBC골프가 2010년부터 현재까지 디 오픈 등을 중계방송하고 있다.
  • [포토] 머리카락 엮은 미투리까지…신발의 역사

    [포토] 머리카락 엮은 미투리까지…신발의 역사

    백제 왕비의 무덤에서 나온 금동 신발, 혼롓날 신었던 화려한 꽃신, 큰 스님과 함께한 검정 고무신…. 땅을 딛거나 설 때, 걷거나 뛸 때 늘 함께하는 신발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거에는 신분에 따라 다른 신발을 신었고, 오늘날에는 패션의 한 부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낡고 닳은 신발에서는 누군가의 삶이 오롯이 반영돼 있다. 두 발로 선 인류와 함께해 온 신발을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부터 오늘날 다양한 종류의 신발까지 우리 신발의 역사·문화를 조명한 첫 전시다. 국립대구박물관은 이달 14일부터 기획전시실에서 박물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 ‘한국의 신발, 발과 신’을 선보인다고 13일 밝혔다. 총 316건 531점의 유물을 아우르는 전시는 말 그대로 신발의 역사다. 짚신과 나막신, 가죽신, 금동신발, 왕실에서 신은 신발, 신발이 있는 풍속화·초상화 등 다채로운 자료를 한자리에 모았다. 보물 23점과 국가민속문화재 12점도 포함돼 눈길을 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짚으로 만든 짚신과 마로 만든 미투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엮은 이 신발들은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널리 신었다. 1998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미투리는 머리카락으로 삼을 꼬아 만든 신발로 주목받은 바 있다. 남편을 향한 애절한 마음이 담긴 ‘원이 엄마’의 흔적이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권력을 나타냈던 다양한 신발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의례용 신발인 석(舃)은 왕이 입던 구장복(九章服)과 함께 전시했고, 신하가 신던 발목 높은 가죽신 화(靴)는 보물 ‘남구만 초상’·‘이하응 초상’ 등과 함께 둬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화가 포함된 보물 ‘안동 태사묘 삼공신 유물 일괄’은 보존 처리를 마친 뒤 처음 공개한다. 꽃무늬를 수 놓은 비단, 허리띠, 검은색 관모 등 총 12종 22점의 유물을 볼 수 있다. 망자를 떠나보내며 무덤에 둔 각종 신발도 시선을 끈다.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에서 출토됐다고 전하는 고구려 금동신발과 백제 무령왕비의 금동신발, 전북 고창 봉덕리 1호 무덤 출토 금동신발, 경주 식리총 금동 신발 등을 선보인다. 박물관 관계자는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금동신발 유물을 통해 당대 금속 공예 기술과 죽은 이에 대한 추모, 내세관 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 인사들의 신발을 직접 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禪僧) 성철 스님(1912∼1993)의 고무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천m 고봉 16좌를 등정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등산화 등이 공개된다. 이 밖에 비 오는 날 신었던 나막신, 돌이 많고 비가 많이 오는 제주에서 신은 11자 형 나막신, 기름을 먹인 가죽신인 징신, 눈 오는 날 신는 설피 등 다양한 신발이 흥미를 더한다.
  • 우리에게는 명품 초콜릿, 그들에게는 애민의 역사…벨기에 고디바(GODIVA) [한ZOOM]

    우리에게는 명품 초콜릿, 그들에게는 애민의 역사…벨기에 고디바(GODIVA) [한ZOOM]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그랑플러스 골목 안에는 세계적인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GODIVA) 본점이 있다. 매장은 유명세에 비해 크지 않았다. 매장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고디바 매장 고객이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오줌싸개 소년’을 보기 위해 서있는 사람들이었다.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본부 건물에서 나왔다. 가을이었지만 햇살은 따뜻했다. 이 햇살 때문인지 유럽의 가을은 언제나 서늘함보다는 따스함을 주는 것 같다. 유럽연합 본부에서 브뤼셀의 상징 그랑플라스까지는 약 2㎞정도이다. 따스한 가을 햇살을 느끼며 걷기에 너무도 좋은 거리였다. 브뤼셀 공원을 지나 사람구경을 하다가 길을 잃었지만 조급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면 그 끝에는 그랑플라스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골목골목을 따라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을 함께 했다. 그리고 저 멀리 고디바 간판이 걸린 작은 가게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레이디 고디바‘(Lady Godiva)의 전설 ‘GODIVA’는 프랑스어로는 ‘고디바’, 영어로는 ‘고다이버’라고 읽는다. 고디바의 전설이 영국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문헌자료에서는 고디바보다 고다이버가 더 많이 등장한다. 여기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고디바를 사용하고자 한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Coventry) 지방의 영주 리어프릭(Leofric) 백작에게는 젊고 예쁜 아내가 있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백작의 나이는 60대, 아내의 나이는 10대 후반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고디바였다. 백작은 잔인하고 흉악한 사람이었다. 특히 혹독한 세금으로 백성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었다. 백성들의 고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고디바 부인이 백작을 찾아가 간절히 부탁했다. “제발 지나치게 무거운 세금을 내려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백작은 고디바 부인의 간청을 가볍게 생각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부인이 만약 옷을 하나도 입지 않은 채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세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소” 백작은 10대 후반의 아내가 부끄러움 때문에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감히 귀족부인이 백성들 앞에서 옷을 벗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디바 부인에게는 자신의 부끄러움 보다 백성들의 고통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며칠 후 고디바 부인은 옷을 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돌았다. 그러나 고디바 부인이 자신들을 위해 옷을 벗고 마을을 돌아다닐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던 백성들은 모두 집과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문과 창문을 걸어 잠그고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한편 고디바 부인의 전설은 브리티시 록(British Rock)을 대표하는 밴드 퀸(Queen)의 노래 ‘Don’t Stop me now’에도 등장한다. “I’m a racing car passing by like lady godiva” 고디바 초콜릿의 탄생 1926년 피에르 드랍스(Pierre Draps)가 브뤼셀에서 그의 세 아들들과 함께 과자사업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고디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945년 고디바 부인 전설에 감명받은 창업자 가족들이 회사 이름을 고디바로 바꾸었다. 1968년 고디바는 벨기에 왕실 공식 초콜릿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프리미엄 초콜릿 브랜드로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고디바 초콜릿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에서 특히 프리미엄 초콜릿으로 인기가 높다. 반면 본국인 벨기에에서는 그 정도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고디바 초콜릿의 명성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와 제품들이 있지만 ‘익숙함’ 때문에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고디바 초콜릿 역시 약 100년의 기간 동안 벨기에 사람들에게는 생활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무기가 되는 스토리 비즈니스를 배우는 학생이거나, 비즈니스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스토리가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절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고디바 초콜릿은 바다 건너 영국에서 전해진 고디바 부인의 애민정신(愛民精神) 스토리를 자신들이 만든 제품의 스토리로 가져오면서 자신들이 만든 초콜릿을 찾는 사람들에게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구매의 명분까지 만든 것이다. 고디바가 비록 자국 내에서는 글로벌 시장 만큼 인지도를 누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혹은 적어도 동양에서 만큼은 고디바 스토리를 바탕으로 가공할만한 브랜드가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고디바 초콜릿의 맛이 내 취향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 한지의 본향 전주에 ‘K 한지마을’ 들어선다

    전북 전주시가 ‘한지의 본향’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K 한지마을’을 조성한다. ‘한지 제작의 전통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이 유네스코에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 신청돼 전주한지가 다시 한번 부흥기를 맞게 된 데 따른 것이다. 전주시는 한지문화산업의 인적·물적 자원을 집적화한 K 한지마을 조성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관련 용역을 발주했다고 9일 밝혔다. 투자계획은 국비 65억원, 지방비 75억원, 민자 등 190억원 규모다. 주요 사업은 닥나무경관림, 한지문화예술촌, 숙박·연수원, 한지역사기록관 조성 등이다. 예정지는 서서학동 일원 흑석골이 꼽힌다. 한지 제조시설을 보유한 전주천년한지관과 가까워 한지문화 홍보와 체험 등이 쉬운 이점이 있다. 지역주민과 한지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전통문화 예술촌이 조성되면 전주한지의 고유한 문화자산을 보전하고 산업화를 촉진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전주시는 그동안 한지를 친환경 건축부재, 각종 생활용품, 섬유, 예술 활동에 두루 쓰이도록 활용의 폭을 넓혀왔다. 전통한지의 명맥을 잇기 위해 4명의 ‘전주한지장’을 선정하고 향토문화유산으로 육성하고 있다. 강갑석(전주전통한지원), 김인수(용인한지), 김천종(천일한지), 최성일(성일한지) 한지장 4명은 30년 이상 한지 제조와 전수에 힘쓴다. 전주한지는 왕실의 진상물로 오랜 기간 높이 평가됐다. 고려시대부터 외교문서와 임금에게 올리는 문서 대부분이 전주한지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국 한지 생산의 70%가량을 점유한다. 전주한지는 지질이 매우 부드럽고 빛깔이 은은하면서도 고와 물감이나 무늬를 그려 넣기에도 좋다. 서예지, 공예지, 창호지, 장판지, 영구보전지 등 다양하게 쓰인다.
  • 英남성 전용 클럽, 193년 만에 ‘금녀의 벽’ 깬 이유?

    英남성 전용 클럽, 193년 만에 ‘금녀의 벽’ 깬 이유?

    영국 찰스 3세 국왕까지 회원으로 두면서 최고의 명문 남성 클럽이라는 지위를 누린 개릭클럽이 193년 동안 유지해 온 금녀의 벽을 깼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7일(현지시간) 50세 이상의 백인 남성이 1500여명 회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릭클럽이 투표를 거쳐 여성 회원에게 문을 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클럽은 나폴레옹 전쟁 영웅인 앤드루 버나드 경, 극작가 새뮤얼 제임스 아널드, 건축가 새뮤얼 비즐리 등 당대 영국 사회를 대표하던 인물들이 사교모임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해 1831년 설립됐다. 지인들을 원년 멤버로 영입하고 자연스럽게 명망가들이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명문 클럽으로 자리잡았다. 새로운 회원은 기존 회원들의 비밀투표로 선정하는데 왕실 가족이나 정계와 재계, 법조계, 학계, 언론과 예술 분야 등에서 영향력을 갖춰야 투표를 통과할 수 있었다. 회원 자격이 ‘남성’이라는 점에서 1980년대부터 여성 가입 여부를 두고 열띤 논쟁이 일었고, 여성 회원 추천도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이번 투표에서 여성 가입에 대해 찬성이 562명으로, 반대(반대 375명)를 크게 앞서 통과됐다. 이번에 전향적인 투표 결과가 나온 것은 가디언이 회원 명단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리처드 무어 비밀정보국(M16)의 수장과 사이먼 케이스 내각부 장관은 이름이 거론된 뒤 탈퇴 압박을 받고는 결국 클럽에서 나왔다. 가수 스팅이나 마크 노플러 등 유명인들도 여성 동료와의 관계가 위기에 처했다며 탈퇴 의사를 밝혀 여성 회원 가입의 길을 넓혔다. 주드 켈리 세계여성재단 설립자는 “개릭클럽은 최상위층의 남성 권력을 지탱하는 장소로 남성 전용 크리켓 클럽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 “서울·두바이 첨단기술 교류”… 스타트업 중동 진출 교두보

    “서울·두바이 첨단기술 교류”… 스타트업 중동 진출 교두보

    “서울과 두바이의 스타트업 기업들이 가진 첨단 기술을 활용해 서로 시장을 확대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서울 세일즈’를 위해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7일(현지 시간) 두바이 미래재단을 방문해 압둘아지즈 알 자지리 부대표를 만나 양 도시의 첨단기술 교류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두바이 미래재단은 두바이 왕실이 두바이를 세계 최고의 미래 도시로 만들기 위해 2016년 설립한 기관으로 로봇과 인공지능(AI) 등 두바이 미래 핵심 프로젝트를 계획·실행하는 곳이다. 서울시는 두바이 미래재단과 스타트업 상호진출과 교류프로그램 발굴을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이번 MOU를 통해 서울의 스타트업 기업은 두바이 미래재단 시설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과 서비스를 실증해 볼 수 있게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스타트업들이 중동에 진출하는 데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AI와 바이오,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들은 두바이 미래재단이 운영하는 투자·육성 프로그램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오 시장은 “두 도시가 혁신기술 분야 전문지식과 인재를 교류해 서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양 도시의 국제행사 활성화를 위한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MOU를 마치고 ‘두바이 미래박물관’과 ‘두바이 퓨처랩’을 방문했다. 2020년 문을 연 퓨처랩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등의 기관과 함께 미래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로봇 연구를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곳이다. 한편 서울시는 이날 두바이 도로교통청과 미래 모빌리티 중심의 상호 협력체계 구축에 대한 MOU도 체결했다. 이번 MOU에서 서울시와 두바이는 ▲자율주행·도심항공교통(UAM) 실증 사업 성과 공유 및 기술·인력 교류 ▲자율주행·UAM 공동 연구과제 협력 ▲미래 모빌리티 활성화를 위한 양 도시 주관 행사 참여 등을 약속했다.
  • “양잠 신이시여, 풍년 들게 해주소서”… 경북, 상주서 올 한 해 농가 안녕 기원

    “양잠 신이시여, 풍년 들게 해주소서”… 경북, 상주서 올 한 해 농가 안녕 기원

    ‘대한민국 양잠 1번지’인 경북도는 7일 상주시 함창읍 경북잠사곤충사업장에서 누에·양잠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2024 풍잠기원제’를 열었다. 기원제에는 전국 잠업 관련 기관·단체장과 도내 시군 담당 관계자, 양잠협동조합장, 농업인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풍잠기원제는 조선시대 왕실 의례 중 하나인 선잠제(先蠶祭)로부터 유래됐다. 선잠제는 해마다 양잠의 신인 서릉씨를 모시고 누에치기의 풍요와 한 해의 안정을 기원하던 제사다. 종묘대제와 사직대제 다음의 규모로 행해진 국가 제례였다. 이날 행사는 상주 함창향교의 집전으로 김주령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의 강신(신을 맞이하는 예절)과 초헌례(첫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 채현식 함창향교 전교의 아헌례(두 번째 잔), 오홍섭 명주잠업 영농조합 법인대표의 종헌례(세 번째 잔), 누에 첫 밥 주기 시연회 순으로 진행됐다. 경북은 2022년 기준 누에사육농가 261호, 뽕밭면적 128㏊로 전국 1위 최대 양잠산물 생산지이다. 도는 양잠 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해 ▲우량 누에씨 생산 ▲동충하초 종균 농가 공급 ▲누에고치 추출 실크단백질을 활용한 연구 등 양잠산업 기반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김 국장은 “곤충과 양잠 분야가 최근 첨단 생명 소재산업으로 육성되는 등 미래가치가 무궁무진하다”면서 “이번 풍잠기원제를 통해 양잠산업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양잠 농가에 실질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이끌어 가겠다”고 말했다.
  • “잠령(蠶靈)이시여! 올해도 누에 농사 잘 되게 하소서”…경북도 풍잠기원제

    “잠령(蠶靈)이시여! 올해도 누에 농사 잘 되게 하소서”…경북도 풍잠기원제

    ‘대한민국 양잠 1번지’인 경북도는 7일 상주시 함창읍 경북잠사곤충사업장에서 누에·양잠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2024 풍잠기원제’를 열었다. 기원제에는 전국 잠업 관련 기관·단체장과 도내 시군 담당 관계자, 양잠협동조합장, 농업인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풍잠기원제는 조선시대 왕실 의례 중 하나인 선잠제(先蠶祭)로부터 유래됐다. 선잠제는 해마다 양잠의 신인 서릉씨를 모시고 누에 치기의 풍요와 한 해의 안정을 기원하던 제사다. 종묘대제와 사직대제 다음의 규모로 행해진 국가 제례였다. 이날 행사는 상주 함창향교의 집전으로 김주령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의 강신(신을 맞이하는 예절)과 초헌례(첫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 채현식 함창향교 전교의 아헌례(두 번째 잔), 오홍섭 명주잠업 영농조합 법인대표의 종헌례(세번째 잔),, 누에 첫 밥 주기 시연회 순으로 진행됐다. 경북은 2022년 기준 누에사육농가 261호, 뽕밭면적 128ha로 전국 1위 최대 양잠산물 생산지이다. 도는 양잠 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해 ▲우량 누에씨 생산 ▲동충하초 종균 농가 공급 ▲누에고치 추출 실크단백질을 활용한 연구 등 양잠산업 기반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김 국장은 “곤충과 양잠 분야가 최근 첨단 생명 소재산업으로 육성되는 등 미래가치가 무궁무진하다”면서 “이번 풍잠기원제를 통해 양잠산업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양잠 농가에 실질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이끌어 가겠다”고 말했다.
  • 동아시아 해상 주도권을 잃어버린 해신 장보고의 죽음과 완도 청해진의 몰락 [한ZOOM]

    동아시아 해상 주도권을 잃어버린 해신 장보고의 죽음과 완도 청해진의 몰락 [한ZOOM]

    완도는 전남의 가장 남쪽에 있으며, 내륙에서는 제주도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완도 바닷가에서 만난 어르신 이야기에 따르면 예전에는 날씨가 맑은 날에는 저 멀리 제주도가 보였다고 한다. 완도에서 제주도까지 직선거리가 약 100㎞에 달해 인간의 시력으로는 보기 쉽지 않다. 아마도 그 만큼 완도와 제주도가 가깝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 아닐까 생각된다. 완도를 대표하는 특산물은 전복이다. 국내생산 전복의 약 70% 이상이 완도산이라고 한다. 전복은 맑은 물에서 미역,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를 먹기 때문에 완도 바다에는 해조류도 많이 살고 있다. 덕분에 미역, 다시마, 김 등도 완도의 특산물로 유명해졌다. 완도 어시장에서 구입한 곱창김을 씹으며 목적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곱창김에도 곱창은 들어있지 않다. 곱창김을 파는 아주머니에 따르면 김을 만드는 원초가 마치 곱창처럼 꾸불꾸불하게 생겨서 곱창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어느 덧 차창 밖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동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비게이션도 곧 목적지인 완도 청해진 유적지에 도착한다는 알림을 들려주었다.바다의 왕자, 이야기의 서막 장보고(張保皐·미상~846)는 섬 출신의 평민이었다. 그래서 정확한 탄생연도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지만 않다. 대략 780년대 후반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장보고의 본명은 활 궁(弓)에 복 복(福)자를 쓴 ‘궁복’(弓福)이었다. 평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성(姓)은 없었다. 궁복이라는 이름은 어릴 적부터 무예에 뛰어났고, 특히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청년이 된 장보고는 바다 건너 당나라로 가면 무인(武人)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나라로 떠난 그는 이름 궁(弓)에 대장 장(長)을 합친 대장 장(張)을 성(姓)으로 삼고, 복(福)의 음을 늘려 ‘보고’로 바꾸어 장보고(張保皐)라는 이름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뛰어난 무예실력에 피나는 노력을 더해 짧은 시간에 당나라 군대에서 간부의 위치에 올라섰다.바다의 왕자, 해신이 되다 당나라 군대 간부가 된 장보고는 2년 후인 821년 군대를 떠났다. 그의 눈에는 군인으로서 성공이 아닌 새로운 기회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당나라는 실크로드와 바닷길을 통해 외국과 활발한 교역을 진행하고 있었다. 장보고는 해상무역을 통한 성공의 기회를 보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신라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산둥반도로 갔다. 그리고 신라 출신 무역상인들을 모아 조합을 만들고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쏟아 부어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이라는 사찰을 세웠다. 신라 출신 무역상인들은 이 곳에서 법회에 참여했고, 머나먼 타국에서 서로 의지하고 정보와 인맥을 공유했다. 장보고는 적산법화원을 해상무역의 거점으로서 만들면서 해상무역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7년 후 828년 장보고는 모국인 신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해상무역으로 성공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해적들의 약탈로 인해 피해는 점점 커져만 갔고, 특히 해적들이 동포인 신라 사람들을 납치해서 노예로 팔아 넘기는 것까지 본 이상 장보고는 해적들의 악행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라로 돌아간 장보고는 흥덕왕을 만나 청해진 설치와 해적 소탕을 건의했다. 흥덕왕은 당나라 군대에서 명성을 쌓은 장보고에게 ‘청해진 대사’라는 전에 없는 직위를 내렸다.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1만 군사로 해적들을 소탕했다. 그리고 해상무역을 통해 쌓은 인맥을 활용해 청해진을 무역기지로 만들었다. 청해진은 당나라-신라-일본의 삼각무역의 중심지로 떠올랐다.해신의 억울한 죽음 837년 장보고에게 누군가 찾아왔다. 그는 흥덕왕 재위 당시 시중이었던 김우징(金祐徵∙미상~839)이었다. 시중은 지금으로 보면 국무총리와 같은 고위관직이었다. 후손이 없던 흥덕왕이 세상을 떠난 후 신라왕실에는 피바람이 불었고 유력한 후계자였던 김우징은 암살의 위협을 느껴 장보고를 찾아왔던 것이었다. 장보고는 김우징을 돕기로 결정했다. 고마움을 느낀 김우징도 거사에 성공하면 자신의 아들을 장보고의 딸과 결혼시키겠다는 약속을 했다. 장보고의 도움으로 경주로 돌아간 김우징은 신라 제45대 왕 신무왕(神武王)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준 장보고에게 군 최고 사령관에 임명했다. 하지만 평민 출신의 장보고가 높은 자리에 오르자 신라 중앙귀족들이 장보고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파악한 장보고는 해상무역에 집중하기 위해 다시 청해진으로 돌아갔다.6개월 후 신무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문성왕(文聖王∙미상~857)이 즉위했다. 문성왕은 아버지 신무왕이 장보고와 한 약속대로 장보고의 딸과 결혼하려고 했다. 하지만 신라 중앙귀족들은 평민 출신인 장보고의 딸이 왕비가 되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어느 날 선대왕 신무왕의 심복이자 장보고의 부하장수이기도 했던 염장(閻長)이 장보고를 찾아왔다. 염장은 자신은 장보고의 딸이 왕비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지금 왕의 눈 밖에 났기 때문에 이 곳 청해진에서 지내려고 한다고 했다. 장보고는 염장을 환영하는 술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염장은 술에 취해 방심한 틈을 타 장보고가 차고 있던 검으로 그의 목을 베었다.해신이 죽음 이후 장보고의 죽음 이후 장보고를 죽인 염장이 청해진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염장을 인정할 수 없었던 청해진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 곳을 떠나 당나라와 일본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결국 청해진은 폐쇄되고 말았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장보고가 제패한 동아시아 해상권이 후대에 이어졌다면 통일신라는 더욱 강한 나라가 되었거나, 고려가 강한 해군력으로 몽골의 침략을 물리쳤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암 투병·왕실 불화에도… 희망 보인 찰스 3세의 1년

    암 투병·왕실 불화에도… 희망 보인 찰스 3세의 1년

    “찰스 3세의 대관식 이후 첫해는 영국 왕실 역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자신과 며느리인 케이트 미들턴의 암 투병, 왕실 가족 토머스 킹스턴의 죽음, 차남 해리 왕자의 가족사 폭로 등과 내내 씨름해야 했다.” 6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찰스 3세의 대관식 1주년을 이렇게 평가했다. 오랜 왕세자 수업으로 얻은 경륜을 통해 성공적으로 왕위에 안착했지만 내부적인 갈등과 불화 또한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70년 넘게 왕세자로 지내던 찰스 3세는 2022년 9월 8일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하면서 영국 역사상 최고령인 73세에 왕위에 올랐고, 지난해 5월 6일 대관식을 가졌다. 그해 9월에는 프랑스를 찾아 양국 협력관계를 강조하는 연설을 해 인기를 입증했다. 11월에는 70년 만에 ‘킹스 스피치’(국왕의 의회 연설)에도 나섰다. 12월에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도 참석해 기후 대응 중요성을 설파했다. 왕실 안팎에서 어려운 일도 많았다. 차남 해리 왕자가 왕실 불화를 폭로했고, 올해 들어서는 암 진단을 받아 충격을 줬다. 비슷한 시기에 맏며느리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도 항암 치료를 시작했고, 동생인 앤드루 왕자가 성추문으로 왕실 공무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찰스 3세는 오랜 왕실 전통을 깨고 자신의 투병 사실을 대중에 공개하고 암과 싸우는 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항암 치료에 대한 그의 낙관적 태도가 인간미를 보여 주고 왕실과 국민 사이 거리를 좁히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더타임스는 “찰스 3세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암을 극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면서 그의 편지를 받은 친구를 인용해 보도했다. 친구는 “찰스 3세는 희망을 표현할 때 느낌표가 많이 들어 있다”면서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전속력으로 (건강한 때로) 돌아가겠다는 열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AP는 “암 투병 중인 찰스 3세를 대신해 커밀라 왕비가 대외 업무를 대폭 늘렸다”면서 “한때 왕실의 골칫거리였던 커밀라 왕비가 이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부부가 함께 영국 군주제를 안정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에선 군주제 폐지론도 만만치 않다. 대관식 1주년을 하루 앞둔 5일에도 군주제 반대 단체 회원들이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서 “(찰스 3세는) 내 왕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 [씨줄날줄] 소현세자 무덤

    [씨줄날줄] 소현세자 무덤

    조선 왕실에는 일반적으로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陵)과 함께 원(園)이라는 독특한 무덤 제도가 있었다. 그런데 원이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가 부모 무덤의 격을 높이고자 창안한 것이 원이다. 인조는 아버지 정원대원군의 양주 무덤을 흥경원으로, 어머니 연주부부인 구씨의 김포 무덤을 육경원으로 높였다. 인조는 1627년 두 무덤을 김포에 합장하고, 1632년 정원대원군을 원종으로 추존했으니 흥경원은 자연스럽게 장릉으로 격상됐다. 얼마 전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가 시야를 가로막아 물의를 빚었던 그 무덤이다. 인조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무덤을 지키는 직책은 수원관(守園官)에서 수묘관(守墓官)으로, 장례 기관도 원소도감(園所都監)에서 묘소도감(墓所都監)으로 낮추었다. 소현세자의 아들인 원손이 아닌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은 인조의 감정을 보여 준다는 시각이 없지 않다. ‘소현세자 독살설’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세월이 흘러 원이라는 제도는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를 낳은 숙빈 최씨의 파주 무덤을 소령원으로 올리면서 부활한다. 이후 선조의 후궁으로 원종(인조의 친부)의 생모인 인빈 김씨의 남양주 순강원을 비롯해 왕의 생모를 높이는 수단이 된다. 그러다 고종이 왕세자와 왕세손의 내외까지 일반 왕족의 무덤인 묘(墓)보다 위계가 높은 원으로 격상시켰다. 소현세자의 무덤인 고양 소현묘가 소경원으로 추봉된 것도 이때다.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8년 동안이나 고초를 겪고 귀국하자마자 30대 초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1645년 2월 17일 벽제에 도착한 이튿날에도 감기로 종묘 배례를 미루었던 소현세자는 4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한의학계는 사인이 폐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문화재위원회가 경기 고양 서삼릉에 있는 소경원의 정자각(丁字閣)을 복원 정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제사를 지내는 ‘정’(丁) 자 모양의 무덤 부속 건물이다. 소경원은 그동안 주변에 군부대가 주둔해 있어서 접근이 자유롭지 못했다. 정자각 복원 정비와 함께 누구나 출입할 수 있도록 활짝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 [황성기 칼럼] 고려 불상을 그냥 보낼 순 없다

    [황성기 칼럼] 고려 불상을 그냥 보낼 순 없다

    이제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돌려줘야 하지 싶다. 2012년 10월 도굴꾼들이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의 절 간논지에서 훔쳐 온 고려시대 불상이다. 불상 제작의 역사적 사실을 들어 충남 서산 부석사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1심 승리, 2심 패배에 대법원까지 갔다. 부석사의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고 ‘장물’로 확정됐다. 불상은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보관 중이다. 최종심 판결이 지난해 10월이었으니 반 년이 흘렀다. 진작에 장물을 소유주에게 돌려주는 ‘환부’를 했어야 했다. 사법부의 오락가락 판결로 10년 이상 끌었다. 선거를 앞두고 또 환부가 미뤄졌다. 이제라도 외교 당국 간 협의를 거쳐 불상 환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오랜 세월 일본에 있었던 우리 불상의 절도에 의한 ‘귀환’과 11년간 제 땅에 잠시 머물다 돌아가야 할 불상의 행로에 마음이 복잡하다.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도난 전까지 관리인이 없는 무인 절에 쓸쓸히 있었다. 부석사는 원고 승소가 확정되면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좌상을 맞이할 계획이었다. 불상이 한일 어느 쪽에 있는 게 더 행복한지 혜량할 길이 없다. 불상이 어디 있건 부처님으로 계시면 된다고 교리를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1965년 국교를 정상화한 한일은 일제가 불법으로 수집·반출한 우리 문화재의 반환도 다뤘다.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을 기초로 역대 정부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3200점의 반환을 요구해 왔다. 한일 회담 중 106점을 포함해 협정 이후 1400여점이 돌아왔다. 2005년 북관대첩비, 2010년 조선왕실 의궤 81종 168책이 최근 돌아온 문화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탈된 문화재 반환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문화재 원산국인 피침략국은 반환을 요구한다. 침략국은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며 문화재를 잘 보존해 온 나라가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로 선뜻 내주지 않는다. 한일 간에도 식민지배국과 피식민지배국 구도에 갇혀 우리 땅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문화재들이 적지 않다. 오구라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절도나 불법 거래를 해서라도 우리 문화재를 제자리에 둬야 한다는 환수론자들이 있다. 도굴꾼이 훔쳐 온 문화재를 비싼 값에 사들여 혼자서 즐기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일본 효고현의 가쿠린지에서 도난당한 아미타삼존도가 그렇다. 범인은 잡혔으나 아미타삼존도는 몇 차례 지하의 유통 단계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돈 많은 사람들의 개인 소장품이 된 것을 “제자리를 찾았다” 할 수는 없다. 불상 도난 사건 이후 소유권 다툼에서 1심 재판부가 원고 손을 들어 주자 전에 없던 일이 생겼다. 우리 문화재를 빌려 와 전시하는 교류전조차 일본에서 손사래를 친다. 한번 바다 건너간 문화재는 다시는 못 돌아온다는 트라우마가 일본에서 생겨났다.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꽁꽁 숨어 버렸다. 2019년 국내 대기업이 일본 시장에 나온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를 25억원에 구입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은 극히 드문 사례다. 고려 불상의 일본 환부를 섭섭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소탐대실할 건 없다. 그렇다고 정부마저 장물은 돌려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걱정이다. 일본도 돌아올 게 돌아온다고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가장 관계가 좋다는 한일에 불상 환부 이벤트는 더 없는 기회다. 5월 말 한일중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불상은 조속히 돌려주자. 대신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오구라 컬렉션 일부를 들고 서울에 오면 어떤가. 불상을 보내는 부석사와 한국 국민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겠는가. 사인(私人)이 국가에 기증한 문화재이니 일본 정부 내 컨센서스만 만들면 될 것이다. 이번이 너무 촉박하면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도 좋은 계기라고 본다. 황성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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