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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해리왕자, 우주인 되려 NASA 지원한다”

    영국 왕가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할까. 영국 왕위계승 서열 3위 해리 윈저(26)왕자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인 훈련 프로그램에 지원할 것이라는 영국 언론매체의 보도가 나왔다. 영국 대중지 더 선은 왕실 정보통의 말을 인용해 “해리왕자가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실시하고 있는 NASA 우주인 훈련프로그램에 정식 지원할 것이며, 합격하면 왕가 최초로 우주여행을 하게 될 것”이라고 6일(현지시간) 전했다. 2007년 아프간에 파병된 해리 왕자는 테스트를 거쳐 헬기 조종사 교육을 받았으며 지난 3월에는 영국 육군의 주력 공격헬기인 ‘AH-64D 아파치’(Apache)의 조종 자격을 취득했다. NASA 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선 1000시간 비행 경력이 있어야 한다. 해리왕자는 이미 최초의 민간 우주선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의 처녀비행에 초대된 바 있다. 측근은 “해리왕자가 민간 우주선 탑승에서 그치지 않고 정식으로 NASA에 지원해 왕가 최초의 우주인이 되길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리왕자가 NASA의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우주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수중 활동, 무중력 시뮬레이션 등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클래런스 하우스(영국 왕실의 저택) 측은 “해리 왕자의 구체적 행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대답했다. 한편 이에 앞선 지난 6월 영국 언론매체들은 내년 4월 초 해리 왕자와 소속 부대가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된다고 전한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국내 커피점 110년 역사

    국내 커피점 110년 역사

    1896년 아관파천 당시 커피를 처음 맛본 고종은 덕수궁으로 돌아온 뒤에 ‘정관헌’을 만들어 커피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왕실의 처음이자 마지막 다방이다. 당시 커피는 거무튀튀한 것이 한약 같다고 해서 서양에서 온 탕국이라는 ‘양탕(洋湯)국’, 영어 발음을 중국식으로 차용한 ‘가배’(??)라고 불렸다. 1888년에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인천 대불호텔에 근대식 다방이 문을 연 뒤에 독일 여인 손탁이 서울 정동에 지은 손탁호텔(1902년), 조선호텔(1914년) 등에 다방이 잇따라 들어섰다. 다방의 첫 전성기는 1920,30년대. 서양 문물을 받아 들인 모던보이나 모던걸들은 다방에서 자유연애를 꿈꿨고, 문화예술인들은 아지트로 삼았다. 영화감독 이경손이 서울 종로에 개업한 ‘카카듀’(1927년)가 한국인이 처음 세운 다방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이 특히 다방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건축가 이순석이 운영하던 ‘낙랑파라’(1931년)의 단골이면서 스스로 ‘제비’, ‘쯔루’, ‘무기’ 등의 옥호를 지닌 다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6·25 전쟁 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인스턴트 커피가 보급되고, 전화기가 한 구석을 차지하면서 다방 출입구는 다시 북적였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수입품인 커피를 자제하자.”고 호소하면서 다방은 된서리를 맞았다. 이때 돌파구가 됐던 것이 바로 달걀. 달걀 노른자와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아침밥 대용으로 판매한 ‘모닝커피’가 인기를 끌면서 다시 다방에는 손님이 모여들었다. 1970년대 직장이나 집에서 손쉽게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와 자판기가 등장하면서 또다시 다방은 생존의 위협을 받았다. 공략 계층에 따라 젊은층이 많이 찾는 음악다방과 일명 ‘레지’로 불리는 여성 종업원을 고용한 다방으로, 성격이 확실하게 양분됐다. 원두커피를 내세우며 1988년에 문을 연 ‘쟈뎅’도 초기 프랜차이즈로 각광받더니 원두 원산지와 가공법을 다채롭게 활용하는 커피 전문점에 자리를 내줬다. 그 시절 다방과 오늘의 커피전문점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커피뿐. 누군가를 기다리며 음악을 신청하거나 탁자 위 성냥으로 탑을 쌓는 모습은 간 데 없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거나 책장을 넘기며 뭔가를 끼적이는 모습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그렇게 110년이 커피향과 함께 흘렀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케이트 미들턴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

    케이트 미들턴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

    영국 윌리엄 왕자의 부인 케이트 미들턴(29)이 미국·프랑스의 ‘퍼스트 레이디’와 나란히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됐다. 미들턴은 미국 연예잡지 ‘배니티 페어’가 3일(현지시간) 발표한 베스트 드레서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이 잡지는 미들턴에 대해 “그녀의 올해 패션은 정신없는 성공의 연속”이라고 치켜세우며 특히 그녀가 고급 디자이너의 옷과 저렴한 청바지를 넘나들며 적절히 소화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미들턴은 2008년에도 이 잡지의 베스트 드레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까지 4년 연속 베스트 드레서에 뽑힌 미셸 오바마는 올해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과 함께 ‘커플 베스트 드레서’에 선정됐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도 4년 연속 옷 잘 입는 여성으로 뽑혔다. 전 세계 왕실 인사 중에서는 미들턴 외에도 최근 모나코의 국왕 알베르 공과 결혼한 샤를렌 왕비, 카타르의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왕비 등이 패셔니스타로 선정됐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 “北과 힘모아 日반출 고려석탑 환수운동”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 “北과 힘모아 日반출 고려석탑 환수운동”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은 4일 일본으로 반출된 고려시대 석탑을 돌려받고자 북한 불교계와 공조한 환수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반환 거부 땐 소송 불사” 혜문 스님은 조계종 중앙신도회관에서 “오는 10일 일본 오쿠라문화재단 측을 만나 이천 오층석탑과 평양 율리사지 석탑 반환 요청서를 전달할 것”이라며 “반환하지 못한다고 하면 즉시 도쿄 지방재판소에 반환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천 오층석탑은 1914∼1915년 무렵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오쿠라재단을 설립한 오쿠라토목조(현 다이세이건설)가 1918년 일본으로 반출했다. 현재 도쿄에 있는 미술관인 오쿠라슈코칸(大倉集古館) 정원 뒷길에 있다. 같은 고려시대 탑인 평양 율리사지 석탑도 일제 강점기에 반출됐다. 혜문 스님은 “오쿠라재단 측은 한국 정부가 요청하고 일본 정부가 허용하면 두 석탑을 돌려주겠다고 한 것으로 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 때문에 개인 사유물인 이천 석탑의 반환 작업에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결국 석탑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게 일본 측 속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평양 율리사지 석탑 환수와 관련해서는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으로부터 법률적 권리를 위임받았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어보 2점 국가에 반납해야” 또 혜문 스님은 고려대가 소장한 태종 비 원경왕후의 금보 1점, 현종 비 명성왕후의 옥보 1점인 어보(御寶) 2점이 미군에 의해 도난됐던 문화재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어보는 1950년대 한국 정부가 미 국무부에 분실물로 신고한 어보와 크기, 모양, 재질 등이 일치하며 미국 정부도 ‘조선왕실 인장’이 미군 병사에 의해 절도된 사실을 인정했다.”면서 “고려대는 ‘학문적 양심’에 입각해 자발적으로 어보를 국가에 반납해 주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한편 혜문 스님은 조선왕실의궤 환수 과정을 기록한 ‘되찾은 조선의 보물, 의궤’(동국대출판부)를 발간했다. 스님은 책에 조선왕실의궤 환수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항공모함’ 메이플라워호 우리 조상도 탔을까?

    ‘항공모함’ 메이플라워호 우리 조상도 탔을까?

    조선 최대의 베스트셀러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족보다. 발달하는 인쇄술이 가장 널리 적용된 곳이 서양에서는 ‘면죄부’였다면, 조선에서는 족보다. 면죄부가 남발됐듯 족보에도 늘 위조의 위험이 따라다녔다. 천한 신분이 아니라는 증명이기 때문이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는 족보 위조의 위험을 경고하는 논의가 종종 등장한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서양 족보 연구자들 사이에선 “메이플라워호는 항공모함이었다. 미국 건국사 연구는 선박 제조 기술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농담이 나돈다. 초기 미국 이주자들이 대부분 유럽의 중범죄자나 부랑인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외가 있다면 청교도 신앙에 충실한 메이플라워호 탑승자였다. 조상이 부랑자나 중범죄자였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터. 그러니 너도나도 조상을 메이플라워호에 ‘태웠다’. 그 많은 사람을 다 태우려면 결론적으로 메이플라워호는 항공모함이었음에 틀림없다는 게 서양 농담의 배경이다. 그렇다면 조선 족보도 그처럼 쉽게 위조될 수 있었을까. 최양규 한국계보학회 부설 한국계보인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족보발달사’(혜안 펴냄)를 통해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좀 서글프다. 족보가 등장한 것은 고려 시대. 왕건이 고려를 세운 뒤 지방 호족을 복잡한 혼맥 관계로 중앙정부에 묶어두기 위해 성과 본관을 하사하면서 족보가 시작됐다. 대개의 족보들이 시조를 고려 시대로 상정하거나, 그 이전에 시조가 있다 해도 고려나 조선 시대의 중흥조에서 서술을 시작하는 이유다. 이때까지만 해도 적서 차별, 남녀 차별, 친외손 차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강퍅해진 것은 조선 태종 들어서다. ‘왕자의 난’으로 왕위를 차지한 태종은 왕위 서열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우선 이원계·이화 등 태조의 이복 형제들과 정종의 형제들을 제거하기 위해 엄격한 적서 차별을 만들어냈다. 서자를 차별해야 이들이 자연스럽게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실족보는 ‘선원록’(직계만 기록), ‘종친록’(태조와 태종의 적자만 기록), ‘유부록’(본처 공주와 후처 소생들 기록) 3가지로 쪼개졌다. 왕실을 모방하는 사대부 가문들도 당연히 이런 차별을 받아들였다. 이후 18~19세기 들어 족보 편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최 연구원은 말한다. 하나는 양반들의 자기 존재 근거 마련이다. 이는 군역 회피와 연결된다. 군역 면제가 가진 자의 특권이기는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여서 번듯한 양반 가문임을 드러내는 족보가 필요해졌다. 이들은 그간 미처 정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족보를 다시 편찬한 뒤 관아에 탄원서를 내는 방식으로 군역을 면제받았다. 또 한 가지는 양민 증가다. 양반 특권 사회였던 조선은 양반에게 평등하게 군역을 부담시키기보다 군역을 부담할 수 있는 평민을 늘리는 정책을 썼다. 종에서 신분 상승이 이뤄진 양민들은 양반을 본떠 족보 만들기에 혈안이 됐다. ‘뼈대’를 더 굵게 하기 위해 족보 위조도 일부 시도됐다는 게 최 연구원의 분석이다. 그는 19세기 세도가였던 풍양조씨 족보를 그 예로 들었다. 최 연구원은 “한 권 가운데 일부에 불과했던 별보(別譜·한 집안이라는 근거가 확실치 않아 족보에 완전히 편입시키지 않은 상태의 기록)가 1826년에는 2권으로 늘어났다가 1890년에는 다시 1권으로 줄었다.”면서 “이는 세도가에 붙은 가문들이 크게 늘었다가 다시 구한말 사회 혼란기에 원보에 합쳐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조상을 미화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럼에도 족보 위조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고 최 연구원은 잘라 말한다. 그 이유로 ▲지역 유림사회가 워낙 강고해 족보 위조에 대한 상호 감시가 엄격했고 ▲문중에서 족보를 낼 때 계파 간 상호 견제가 치열했으며 ▲족보에 번호를 매겨 한정적으로 공급한 점을 든다. 이로 인해 유출이나 조작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연구원은 “따라서 왕조실록 같은 거대 사료뿐 아니라 족보 같은 개인 기록 연구를 통해서도 신분제 등 조선조 사회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디폴트가 기회”… 매력적 투자처로 ‘반사이익’

    최악의 상황에서도 남몰래 웃는 승자들은 있다. 미 경제전문지 포천은 미국 정부의 디폴트 선언 위기가 고조되면서 대체 안전자산 투자상품으로 금, 스위스 프랑화, 최우량기업 회사채, 국가신용등급 트리플A 국가들, 미 국채 등 5가지 대상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31일 보도했다.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종목은 역시 금이다. 유럽 재정위기로 이미 치솟은 국제 금 가격은 미국 부채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지난 2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온스당 1631.2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부채한도의 증액은 미 달러의 가치하락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금 선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치가 흔들리면서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인 스위스 프랑화로 갈아타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스위스 프랑화의 가치는 지난 28일 달러당 0.79스위스 프랑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1년간 스위스 프랑화는 유로화 대비 24%, 미 달러화 대비 12% 상승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존슨 앤드 존슨, 엑손모빌 등 소수의 트리플A 신용등급 보유 미국 회사들 또한 어부지리를 얻는 승자들이다.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더라도 이들 우량 기업의 회사채는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포천은 지적했다. 미 국가신용등급이 트리플 A에서 한단계 강등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영국 왕실 소유 자치령인 건지 아일랜드 등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트리플 A로 평가한 다른 국가들도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밖에 미 국채도 여전히 안전자산으로 인기를 누릴 것으로 포천은 내다봤다. 설령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더라도 그리스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열린세상] 의궤, 궁궐문화 콘텐츠화/이세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열린세상] 의궤, 궁궐문화 콘텐츠화/이세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청나라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왔으나 끝내 요절한 소현세자의 비장한 장례행렬, 66살 영조가 15세 소녀 정순왕후에게 새 장가 가는 혼례모습, 19세기 조선 조정의 실권자 조대비(신정왕후)의 팔순잔치, 현종의 비 명성왕후를 종묘에 부묘(?廟)하는 과정. 남인이었던 영의정 허적의 아들 허견이 인평대군의 세 아들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 등과 함께 꾀한 역모를 막아낸 신하들의 공을 치하한 내용을 한글로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17세기 한글의궤. 프랑스에서 145년 만에 돌아 온 외규장각 의궤가 국민환영대회를 거쳐 지난 19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전시되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가장 오래된 ‘풍정도감의궤’(豊呈都監儀軌)를 비롯해 외규장각 의궤 71점이 그 존재가 알려진 1975년부터 학수고대한 국민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의궤와 함께 당대 왕실의 삶과 문화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강화부 궁전도’ 등 관련 유물 94점까지 모두 165점이 입체적으로 전시되고 있다. 의궤는 당대 궁중기록문화의 꽃이다.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 과정과 의례절차, 내용 등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의례 또는 의식의 궤범이 되는 책이다. 왕비, 세자 등의 책봉(冊封)이나 책례(冊禮), 왕실 구성원의 결혼, 선대 인물의 지위를 높이는 추숭(追崇)이나 가상존호(加上尊號), 빈전(殯殿)이나 혼전(魂殿)의 마련에서 능원(園) 조성 및 이장에 이르는 각종 상례, 신주를 태모에 모시는 부묘(?廟) 등 여러 제례의 내용과 모습이 담겨 있다. 왕실의 관혼상제 외에 건축, 잔치, 편찬 등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국가의 행사를 준비과정과 업무의 분장, 동원된 인원, 물자 및 비품의 조달과 배정, 경비의 수입과 지출, 건물 및 비품의 설계와 제작, 담당관리와 동원 인물, 행사 유공자에 대한 포상까지 사실을 수록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의례를 기록했지만 의궤에는 보다 소상하고 방대한 내용을 천연색 그림까지 그려 기록해 놓았다. 이런 기록문화는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도 이 점을 인정해 조선왕조 의궤를 2007년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과 함께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의궤 속의 각종 행사, 의례의 재현이나 활용을 통하여 국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의궤에 나와 있는 각종 궁중생활상과 국가의례를 오늘날 전각만 남아 있는 궁궐에서 재현한다면 궁궐문화의 생명력을 회복시킴으로써 또 다른 문화적 가치나 자원을 재창조할 수 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참되게 전승했다고 말할 수 있고, 이 유산을 ‘밑천’ 삼아 당대의 또 하나의 유산을 창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지난 몇년간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 의궤에 기록된 의례 몇 가지를 고증을 거쳐 재현하여 관광자원화했던 경험이 있다. 2006년과 2008년에 영조대 대사례의(大射禮儀-조선시대 임금이 성균관(成均館)에 거둥하여 옛 성인에게 제향(祭享)하고 활을 쏘던 예)를 재현하여 내외국 관광객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숙종대 기로연(耆老宴, 조선시대에 70세 이상의 원로 문신들을 위로하고 예우하기 위해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국가에서 베푼 잔치)을 역시 왕조실록과 의궤를 고증해 2009년, 2010년에 선보여 경복궁을 찾은 내외국 관광객들에게 즐거운 볼거리와 함께 유교에 바탕을 둔 조선시대 왕실문화의 일각을 보여줬다. 이외에도 세종대왕 즉위식, 영조임금 생일잔치인 오순 어연례, 궁중조회인 상참의(常參儀)와 조참의(朝參儀),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會講·회강) 등을 재현하여 관광자원화했다. 외규장각 의궤 내용 중에는 당장 고궁에서 재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내용도 있지만, 조선왕조실록과 의궤에 기록된 국가 행사와 왕실의 생활상을 시기에 맞게 고증하고, 재구성하여 고궁에서 재현한다면 새로운 ‘궁궐문화 콘텐츠’가 계발되어 고궁에 생명력이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 루퍼트 머독 사망?…룰즈섹 해킹 망신살

    ‘해킹 스캔들’로 그동안의 명성이 한순간에 날아간 ‘미디어의 황제’ 루퍼트 머독이 이번엔 또다른 해킹으로 울었다. 유명 해킹그룹 룰즈섹(Lulz Security)이 18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유명 타블로이드 신문 ‘더 선’(The Sun)을 해킹하는데 성공, 머독의 가짜 부고기사를 올려 그를 조롱하고 나섰다. 이날 더 선 웹사이트 방문한 네티즌들은 루즈섹이 만든 사이트로 리다이렉트(redirect·자동재전달)돼 머독의 가짜 부고기사를 접했다.   이 가짜 기사에서 루즈섹은 “머독이 집 앞 정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며 “80세인 머독이 정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량의 팔라듐을 흡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또 룰즈섹은 이 기사와 함께 머독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사진도 함께 게재했다.  룰즈섹은 트위터를 통해 “머독 계열의 언론사를 공격하는 데 성공했다.” 며 “이번 작전명은 머독 멜트다운 먼데이(Murdock Meltdown Monday)였다.”고 밝혔다. 한편 머독은 영국 왕실, 유명 인사, 군인 유가족 등의 무차별 적인 전화 해킹스캔들로 그의 명성과 자산에 큰 타격을 입었다. 블룸버그통신은 19일 “전화해킹 사건으로 머독과 그의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뉴스코퍼레이션의 지분가치가 60억달러에서 49억6,000만달러로 폭락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지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 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러운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벨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 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 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은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 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 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 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힌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러운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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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규장각 의궤 공개] 구중심처 왕실의 삶… 빛난 위엄에 빠지다

    [외규장각 의궤 공개] 구중심처 왕실의 삶… 빛난 위엄에 빠지다

    프랑스국립도서관 수장고에 있다가 145년 만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가 드디어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19일부터 9월 18일까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145년 만의 귀환-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은 가장 오래된 의궤인 ‘풍정도감의궤’(豊呈都監儀軌) 등 71점의 외규장각 의궤를 비롯해 당시 왕실의 삶과 문화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강화부 궁전도’ 등 관련 유물 94점까지 모두 165점의 유물을 선보인다. 불과 100~200년 전만 해도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을, 구중심처 왕실의 삶과 문화를 낱낱이 볼 수 있는 기회다. 유일본, 어람용(御覽用) 등 대표의궤 8점을 모아 놓은 ‘하이라이트’와 신정왕후의 팔순 잔치 등과 숙종의 일생 등을 각각 따로 떼어 놓은 ‘테마전’을 빼고서도 모두 6개 부문으로 이뤄졌다. 특별전시실이 넓지 않다고 술렁술렁 봤다가는 자칫 알짜배기를 놓칠 수 있다. 우선 도입부에 놓인 효장세자책례도감의궤 등은 어람용과 분상용(分上用)이 어떻게 다른지 한 장의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선명한 색과 풍부한 인물 표정, 위엄 넘치는 글자체는 어람용 의궤임을 한눈에 알아보게 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의궤 71권 가운데 어람용은 69권이다. 1부 ‘왕권과 통치’를 지나 곧바로 시작되는 2부 ‘보사녹훈도감의궤’(保社勳都監儀軌)는 놓쳐서는 안 된다. 특별전 실무를 담당한 장성욱 학예연구사는 “의궤 중 한글로 설명한 것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19세기 안팎에서 보여진다.”면서 “17세기에 이미 한글로 상세한 설명(細註)을 달아놓은 의궤가 있다는 사실은 처음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는 숙종 때인 1682년에 만든 의궤로, 남인이었던 영의정 허적의 아들 허견이 인평대군의 세 아들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 등과 함께 꾀한 역모를 막아낸 신하들의 공을 치하한 내용을 담고 있다. 3등 공신이었던 정원로가 역모 공모자로 몰려 죽임을 당한 일에 대한 한글 설명이 담겨 있다. 장 학예사는 “6부에 있는 프랑스 잡지 ‘투르 뒤 몽드’와 1993년 297권 중 가장 먼저 돌아온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綏嬪徽慶園園所都監儀軌)도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오는 22일 오후에는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과 이성미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의궤 귀환의 의의 및 문화사적 의의에 대해 특별 강의를 펼친다. 특별전 기간 동안 오전 10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네 차례 설명회도 갖는다. 글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제이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런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밸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이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 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의 머릿 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 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혀진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런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 조선시대 외국어로 富·명예 거머쥔 사람들

    역관(譯官)이란 알다시피 통번역을 하는 벼슬이다. 이들은 주로 중국과 왜, 몽골, 여진 등과의 외교에서 통역 업무를 맡았다. 사신의 행차를 따라가 통역을 하거나 외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통역을 맡는 등 외교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또 밀무역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많은 이익을 남기기도 하면서 조선시대의 무역 활동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따라서 역관들은 기술과 행정 실무뿐만 아니라 지식과 경제력에서도 양반 계층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늘 중인으로 대우받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당시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교에서부터 무역까지 종횡무진 활약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중인 신분의 외국어 전문가이면서도, 양반 사회에서 신분차별의 설움을 견디며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인물들이기에 ‘조선 역관 열전’(이상각 지음·서해문집 펴냄)에 적잖이 눈길이 간다. 이 책의 특징은 인물을 크게 네 분야로 나눴다는 점이다. ‘차이나 드림을 꿈꾸다’, ‘일본과 통하다’에선 중국어와 일본어 역관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나머지는 조선시대 통역관의 면면을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관들은 외교 당사국의 이질적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장점을 받아들일 줄 알았던 외교관이자 뉴프런티어였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나라의 위급상황 시 활약했던 인물들을 흥미롭게 나열한다. 임진왜란 당시 홍순언은 종계변무(명나라 사서에 잘못 기록된 조선 왕실의 족보를 바로잡는 일)와 명나라가 참전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청나라 역관이 돼 조선을 골탕 먹인 정명수는 홍순언과는 반대되는 인물이라는 점을 대비시킨다. 그는 청나라 포로가 됐다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장수의 역관이 돼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는 데 앞잡이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최고의 역관 가문이 밀양 변씨와 인동 장씨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 두 가문의 대표적 역관으로 변승업과 장현 등을 열거하면서 특히 변승업의 할아버지는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장사 수완을 바탕으로 큰 재산을 모았고 ‘허생전’의 등장인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장희빈의 숙부이자 대부호인 장현도 역관 신분으로 중개무역을 통해 큰 부를 쌓으면서 조선시대 최고 역관 가문의 반열에 올랐다고 말한다. 19세기 중엽 중국어 역관으로 활약한 오경석의 집안은 아버지 오응현과 아들 오세창까지 이어지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역관 가문이다. 이러한 내력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오경석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침공에 대비한 대책을 세우는 등 대외 관계에서 많은 활약을 하면서도 역관으로 쌓은 지식과 부를 바탕으로 서화 수집과 예술활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대목에도 눈길이 간다. 1만 50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머독군단’ 경찰 매수 英왕실도 엿들었다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거느린 매체들의 추악한 이면은 휴대전화 도청이 전부가 아니었다. ●BBC “왕세자 등 메일 해킹 가능성” 11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최근 폐간된 뉴스오브더월드 내부에서 2007년 오고 간 메일들에는 한 기자가 영국 왕실 경찰에게 왕실 전화번호와 왕세자 부부의 여행 일정 등 기밀사항을 건네받는 대가로 지불한 1000파운드를 회사 측에 청구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언론그룹 뉴스코프의 영국 자회사이자 뉴스오브더월드의 모회사인 뉴스인터내셔널은 2007년 내부 조사에서 해당 메일들을 발견했지만 올해 6월까지 경찰에 넘기지 않고 은폐했다. 내부 인사를 매수, 왕실 기밀사항을 입수한 것만으로도 불법이지만 더 큰 문제는 전화번호 입수가 도청 및 보이스 메일 해킹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실제로 찰스 왕세자 부부를 포함, 최소 10명의 왕실 인사들이 경찰로부터 해킹 가능성을 경고받았다고 가디언이 왕실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뉴스코프의 표적은 왕실만이 아니었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무려 10년 넘게 계열 매체들의 ‘먹잇감’이 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오브더월드는 전화 해킹을 전문으로 하는 사설 탐정을 고용, 브라운 전 총리와 부인 세라의 정보를 캐냈다. 또 브라운 전 총리가 장관으로 있던 2001년 1월에는 뉴스코프 계열사 선데이타임스가 고용한 누군가가 브라운의 거래은행인 애비내셔널 은행 콜센터에 6차례 전화를 걸어 브라운을 사칭하며 그의 계좌정보를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가디언은 선데이타임스가 사칭을 통한 정보 입수에 능한 전직 배우 존 포드를 종종 고용해 왔다고 전했다. ●브라운 前총리 10년 넘게 ‘먹잇감’ 선데이타임스의 불법 취재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달 다른 기자는 브라운 전 총리의 법률 업무를 맞고 있는 로펌 앨런&오버리에 전화를 걸어, 한 기업의 회계 담당자이며 브라운 총리 소유의 아파트를 구입하고 싶다고 속인 뒤 개인 정보를 캐낸 바 있다. 해당 기자는 이후 사기 혐의로 철창 신세를 졌다. 또 선데이타임스는 브라운의 회계사 컴퓨터도 해킹했다. 영국 경찰청은 한 사설 탐정이 경찰을 매수, 경찰 전산망에 접속해 브라운 전 총리와 다른 의원들의 정보를 얻어낸 사실도 밝혀냈다. 다만 이 탐정이 뉴스인터내셔널 계열의 언론사에 고용된 인물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뉴스인터내셔널 산하 신문사가 실제로 경찰을 매수한 것으로 밝혀지고 미국에 있는 뉴스코프도 관여했다면 둘 다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설명했다.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은 정보 혹은 관계 유지를 목적으로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美뉴스코프 공무원 매수 처벌 가능성 머독 소유 언론사의 이 같은 취재 행태가 드러나면서 기존 보도들에 대한 의혹도 짙어지고 있다. 특히 2006년 10월 타블로이드지 ‘더 선’이 브라운 전 총리의 당시 네 살배기 아들이 선천성 유전병인 ‘낭포성 섬유증’을 앓고 있다고 보도한 것과 관련, 브라운 측은 더 선이 병원기록을 불법적으로 취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뉴스인터내셔널 측은 해당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운 전 총리의 대변인은 “브라운 일가는 충격을 받고 있다.”면서 “이 문제는 경찰의 손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조선왕실 재정, 왕의 사금고 아니었다

    조선왕실 재정, 왕의 사금고 아니었다

    조선시대 국가재정을 둘러싼 쟁점 가운데 하나는 왕실 재산이다. 이 부분이 격렬해지는 대목은 고종 황제 논쟁에서다. 당시 국가재정은 정부(탁지부)와 황실(내장원)로 이원화되어 있었는데, 비판적인 이들은 탁지부에 들어갈 돈이 내장원에 들어가 나랏돈이 결과적으로 황실 사치에 낭비됐다고 주장한다. 일군의 경제사학자들은 막스 베버의 가산제국가 개념까지 동원, 황실이 나라 재산을 쌈짓돈처럼 빼먹었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국가 경영 능력도, 자격도 없었다는 비판이다. 15일 성균관대600주년기념관에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주최로 열리는 ‘조선왕조의 재정운영-원리와 이념의 시선에서’ 학술대회는 이에 대한 반론의 단초를 마련하는 자리다. 징수액 증가, 제도 운영상의 폐단, 민(民)에 대한 국가의 수탈 등에 국한된 종래의 사회경제사 연구를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근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임연구원의 ‘영조대 균역법 시행과 공사(公私) 논의’, 송양섭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의 ‘정조의 왕실재정 개혁과 궁부일체론(宮府一體論)’ 발표는 지켜볼 만하다. 이 연구원과 송 교수는 조선 왕실의 재정을 단순히 왕실의 쌈짓돈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베버의 가산제국가론은 절대군주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조선 국왕은 유교이념의 견제를 받았기 때문에 일방적인 절대군주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학자는 숙종 때부터 시작돼 영조, 정조 때까지 왕실재정을 둘러싼 제도들이 어떻게 정비되어 가는지 조명한다. 송 교수는 “가령 왕실재정에 쓰이는 토지세를 왕실이 직접 거두다가 호조가 관할하게 한다든지, 쓸 때도 왕실 행사보다 국가의 진휼 사업에 중점적으로 쓰도록 하는 방식으로 왕실의 사(私)재정적 성격을 크게 희석시켰다.”면서 “때문에 조선 왕실의 재정은 온전히 사적인 돈이라기보다 공적인 관료체계 안에 묶여 있었고, 이 같은 경향은 정조 때 현저히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궁부’(宮府), 즉 궁궐과 관청이 하나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이 주장이 힘을 받기 위해서는 19세기가 규명되어야 한다. 과연 이런 틀이 계속 유지되어 갔는지 아니면 허물어졌는지, 유지됐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이유가 무엇인지, 허물어졌다면 어떤 부분이 왜 허물어졌는지 설명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후속 연구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권기중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아직 그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문제에 접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조선 후기 국가재정 문제를 단순히 포악한 지방 관리의 횡포 정도로 여기기보다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는 없었는지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자리”라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씨줄날줄] 선(選)파라치/주병철 논설위원

    유명인사의 뒤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언론사 등에 파는 프리랜서 사진기자를 일컫는 파파라치(paparazzi)는 1957년 모나코 캐롤라인 공주의 태생과 관련이 깊다. 당시 모나코 왕실에서는 공주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경매에 부쳤다. 이게 사진기자들의 구미를 자극해 유명인사들의 사생활만을 전문적으로 쫓는 사진기사들이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요즘 말로 몰래카메라쯤 된다. 파파라치라는 말의 어원은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가 만든 영화 ‘달콤한 생활’에 등장한 카메라맨에서 유래됐다는 게 정설이다. 극중에서 상류사회의 여인을 쫓아다니는 사진기자의 이름이 파파라초(paparazzo)였다고 한다. 파파라치는 파파라초의 복수명사이다. 펠리니 감독이 파파라초란 단어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귀찮게 달라붙는 ‘모기’를 의미하는 파파타치(papatacci)와 ‘번개’를 뜻하는 ‘라초’(razzo)의 합성어라는 해석이 있다. 파파라치들이 유명인사의 뒤를 캐며 보트, 헬기, 잠수함까지 동원해 찍은 사진값은 캐롤라인 공주가 무려 800만 파운드(약 136억원)나 됐고, 마돈나·마이클 잭슨·브루스 윌리스 등의 사진도 100만 프랑(약 12억원)을 웃돌았다고 한다. 끈질긴 스토커의 모험에 대한 수고비인 셈이다. 1997년 8월 31일 영국의 왕세자빈 다이애나가 자신의 뒤를 캐는 무리들을 따돌리려다가 교통사고로 죽게 된 것도 파파라치와 무관치 않다. 스토커는 상대방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반면, 파파라치는 돈벌이라는 본래 목적이 달성되면 이내 사라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3월 교통위반 신고보상제 도입(car+paparazzi) 이 파파라치의 시초다. 개인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외국과는 달리 일반인들의 범법행위 적발이 돈벌이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차별이 된다. 이후 쓰레기 불법투기를 단속하는 쓰파라치, 학원 불법영업을 노리는 학파라치 등 소재에 따라 변형된 합성어가 널리 유행했다. 2005년 국립국어원은 ‘몰래 제보꾼’이라는 순우리말로 명명했다.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을 노리는 ‘선(選)파라치’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꾼들이 고성능 비디오 카메라와 녹음기 등을 동원해 유력 후보들을 끈질기게 쫓고 있다는 것이다. 행여 우리나라에서도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라는 대목을 맞아 미국발(發) 선파라치에서 진화된 별종이 설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엿듣기’ 들통… 168년 된 황색저널 결국 폐간

    168년간 국민적 인기를 누려온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대중지)이 ‘황색저널리즘’(선정적 보도)의 유혹에 끌려다니다 끝내 문을 닫게 됐다. 일요 신문 ‘뉴스오브더월드’는 취재 과정에서 불법 전화 해킹을 벌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자 소유주인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이 신문의 전격 폐간을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비도덕성을 향한 성난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루퍼트 머독의 아들이자 뉴스오브더월드의 발행인인 제임스 머독은 7일(현지시간) 직원들에게 보낸 성명에서 “최근 제기된 (전화 해킹)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비인간적인 행위로 이 신문이 더 이상 설 곳은 없다.”며 폐간 배경을 밝혔다. 2007년 4월 뉴스오브더월드의 불법 취재 관행이 처음 드러난 뒤 4년여 만의 일이다. 신문사 측은 오는 10일 마지막 판을 찍을 예정이며 종간 일 광고면은 상업 광고 대신 자선단체 등에 내주겠다고 밝혔다. 1843년 창간된 뉴스오브더월드는 주로 왕실, 정치인, 배우 등의 사생활을 파헤치며 영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대중지로 자리 잡았다. 일요일마다 260만부가량을 발행해 하루 동안 벌어들이는 광고 수익만 66만 파운드(약 11억 1200만원)에 이른다. 뉴스오브더월드는 2007년 자사 소속 기자가 왕실 인사의 휴대전화 음성메시지를 해킹한 사실이 드러나 실형을 선고받은 뒤 줄곧 불법 취재 의혹에 휩싸여 왔다. 올 들어 유명 여배우 시에나 밀러 등 유명인사들이 신문사에 해킹당한 것으로 드러났고 전직 총리인 고든 브라운, 토니 블레어와 최근 결혼한 윌리엄 왕자의 아내 캐서린 등의 휴대전화도 해킹당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특히, 이 신문이 2002년 실종된 13세 소녀 밀리 다울러 등 범죄 피해자와 아프가니스탄전 전사자 유족의 전화까지 해킹했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자동차 회사인 포드사 등 놀란 광고주들마저 잇따라 광고 게재 중단을 선언하면서 신문사는 위기에 몰렸었다. 영국 언론들은 루퍼트 머독이 위기 때 담대한 승부수를 걸기로 유명하지만 이번 폐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머독이 이 타블로이드 신문에 느끼는 애정은 대단했다. 그가 1969년 영국 신문 가운데 처음으로 사들여 ‘언론 제국’을 일구는 기틀을 마련해준 매체가 이 신문이었다. 전문가들은 머독이 정치·경제적 후폭풍을 최소화하려고 잔혹한 ‘꼬리 자르기’를 감행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머독은 최근 영국 위성방송 스카이(BSkyB) 인수를 추진 중인 터라 모험을 통해 틀어진 민심을 다시 잡아보려는 조치인 듯하다. 하지만 영국의 정치권과 여론은 머독에게 여전히 싸늘해 당분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불법 취재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 리베카 브룩스(43·여)에게 해킹 사건 조사를 맡겨 비판이 커졌다. 머독의 언론그룹 뉴스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CEO)인 그는 다울러의 전화 해킹 사건이 벌어진 2002년 뉴스오브더월드의 편집장이었다. 머독은 이 회사의 비서로 입사해 11년 만에 편집장이 된 그를 딸처럼 아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거세지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의 진실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국정 조사에 착수하고 언론 윤리 등을 살펴볼 별도 조사도 벌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캐머런 총리의 공보 책임자였던 뉴스오브더월드의 전 편집장 앤디 쿨슨(43)이 체포되는 등 이번 사건이 현 정권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커졌다. 한편, 다울러 가족의 변호인인 마크 루이스는 머독이 위기 상황에서 골프를 치는 모습이 목격되자 “로마제국이 멸망 전 불탈 때 현악기를 켜던 네로를 보는 듯하다.”며 비꼬았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조선 로열패밀리’ 문헌 한데 모였네

    ‘조선 로열패밀리’ 문헌 한데 모였네

    “이거, 참 잘됐네.” 이항증(72) 선생은 꼼꼼했다. “이곳 전체가 오동나무입니다. 오동나무는 습할 때 물기를 머금고, 건조할 때 물기를 내뿜는 습성이 있습니다. 3층 전시장은 앞으로 더 많은 기증 기탁자료들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 천장 높이를 7.5m로 설계했습니다.” 앞서 가던 송순옥 국학자료팀장이 수장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 선생은 그 말 하나하나 다 확인해 보려는 듯 수장고 내부를 일일이 손으로 만져 봤다. 5일 경기 분당시 하오개로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에서 열린 장서각(藏書閣) 신축 개관식. 조선왕실의 모든 문헌이 집대성된 곳이다 보니 한중연은 또 한 가지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사대부 명문가의 문헌까지 모아 보자는 것. 왕실과 사대부를 합쳐 이른바 ‘조선의 로열 패밀리’를 집대성하겠다는 포부였다. 한중연은 이를 위해 227억원을 들여 장서각을 새로 지었다. 그러면서 고문헌을 기증한 43개 가문 가운데 8개 가문 대표들을 개관식에 초청했다. 이 선생은 이 가운데 한 명이다. 이 선생의 증조부는 석주 이상룡(1858~1932). 석주는 조선이 망하자 경북 안동에 있던 가산을 모두 정리하고 만주로 건너가 우당 이회영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상하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인물이다. 때문에 유학을 공부한 조선 선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무) 전형으로 꼽힌다. 이후 집안은 파란만장했다. 아들 이준형은 일제의 회유와 협박에 내몰리다 결국 1942년 자살했고, 손자 이병화는 친일파와 손잡은 이승만 정권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1952년 숨졌다. 이로 인해 이 선생은 어린 시절 한동안 고아원을 전전해야 했다. 이 선생은 개인적 고난보다 증조부의 유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더 컸다고 한다. “고문서를 많이 갖고 있는 분들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도난, 멸실 걱정이 제일 컸죠. 증조부가 남기신 소중한 자취를 내가 잘못 다루면 어쩌나 전전긍긍이었어요. 증조부가 가산을 정리해 고향을 떠난 뒤 안동 임청각에 제대로 된 주인이 살아본 적이 없어요. 눈에 띄는 대로 가져가면 그뿐이었죠. 그나마 다행인 건 1970년대 중반인가, 일부 유물을 정리해서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그게 언론에 보도되니 ‘이제 석주 집에는 더 볼 게 없다’며 도둑도 안 들어요. 그래서 한시름 놨죠. 하하하.” 그래도 결국 장서각 기탁을 결심했다. “솔직히 몇 년 동안 혼자 씨름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봤자 이걸 내가 지켜낼 방법이 없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기탁해버린 겁니다. 그 뒤 한중연에서 어떡하나 봤는데, 기록을 꼼꼼히 해제하더라고요. 동네 어르신이나 먼 친척분들이 그냥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던 것이 다 기록에 남아 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장서각이 재정비됨에 따라 한중연은 ‘21세기 장서각 연구사업’을 시작할 방침이다. 1년에 20억원씩, 5년간 100억원의 돈을 들여 보유하고 있는 왕실·사대부 문서를 전부 해제·정리하기로 한 것. 김학수 한중연 국학자료조사실장은 “새로 지은 장서각은 고문헌 보관에서부터 연구, 수리에 이르기까지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면서 “갈수록 고문헌 보존이 어려워지는 세상이니 장서각을 믿고 (고문헌을) 맡겨 달라.”고 당부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5일 신축 개관한 장서각 수장고에서 송순옥 국학자료팀장이 ‘조선 왕실 족보’ 선원록(璿源錄) 편찬과정을 기록한 선원록의궤의 보관상태를 설명하고 있다(왼쪽). 내부가 모두 오동나무로 꾸며진 장서각 수장고 안에서 문헌 기탁자들이 문서 보관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용어클릭] ●장서각 고종이 황제국을 선포한 뒤 황가의 문서를 한데 모으기 위해 1908년 설립했으나, 일제에 흡수되면서 유명무실해져 버린 기관이다. 요즘 떠들썩한 외규장각은 규장각의 일부이고, 규장각은 이 장서각의 일부이다.
  • 남편 사생아 ‘진실’알고 3차례나 도주 시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영선수 출신으로 모나코 왕비가 된 샤를렌 위트스톡(33)이 지난 2일(현지시간) 결혼식에서 눈물을 훔치자 호사가들은 남편의 문란한 사생활에 마음고생을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입방아를 찧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모나코 공국 국왕 알베르 2세(52)의 사생활과 관련된 가십성 기사가 흘러나오고, 샤를렌의 도피설이 나돌던 터여서 더욱 그랬다. 결혼식은 끝났지만, 바람둥이 남편과 눈물로 얼룩진 왕비는 여전히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공항서 여권 압수당하고 혼인 설득 가장 최신 소식은 샤를렌이 결혼식을 앞두고 3차례나 고향인 남아공으로 달아나려 했다는 내용이다. 프랑스와 영국 등의 외신들은 4일 “샤를렌이 지난 5월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기 위해 파리를 방문했을 때 현지에 있는 남아공 대사관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고, 5월 말 ‘F1 모나코 그랑프리’ 기간 중에도 역시 탈출을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샤를렌은 이어 지난달 21일 고향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다 프랑스 니스 공항에서 왕실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당시 모나코 왕실의 고위 관리는 샤를렌의 여권을 압수하고, 결혼식에 참석할 것을 설득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와 관련, 프랑스 주간 르 주르날 뒤 디망슈는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결혼식 이전에) 미래의 신랑과 신부 사이에 어떤 협의가 이뤄졌다.”고 전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현지 언론들은 “익명의 관리들이 두 사람의 불화설과 알베르 국왕의 친자확인 검사 수용에 대한 ‘진실’을 얘기했다.”는 정도로만 언급했다. 알베르 국왕은 혼외정사로 19세 딸 재스민과 6세 아들 알렉산더를 각각 두고 있으며, 이탈리아 여성 작가와의 사이에 낳은 18개월 된 아들을 포함해 2명의 사생아가 더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알렉산더를 낳은 전직 스튜어디스 니콜 코스테와의 사이에 두 번째 아이를 낳았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모나코 주민 왕실커플 지지 여전 온갖 풍문을 뒤로한 채 이들은 5일 남아공으로 신혼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조세피난처인 모나코 주민들은 왕실 커플을 지지하고 있으며, 국왕의 옛 애인들이 질투와 복수심으로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여긴다.”고 전했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한 왕실 관계자는 “소문으로 떠도는 사생아가 실제로 있다면 언제 태어났느냐가 핵심”이라면서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5년 동안 교제해 왔기 때문에 (어떤 사생아든) 5세 이상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탁신 아바타’ 이미지 벗고 반대세력 포용 과제

    사상 첫 여성 총리라는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태국의 잉락 친나왓은 ‘탁신-반(反)탁신’으로 찢긴 사회의 통합과 불안정 해소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잉락 당선자는 오빠인 탁신 전 총리의 ‘아바타’, ‘꼭두각시’라는 비난 속에서 왕실·군부·중산층으로 대변되는 반탁신 세력과의 타협과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4일 푸어타이당의 잉락 당선자는 찻 타이 파타나당과 찻 파나타 푸어판딘당, 팔랑촌당, 마하촌당 등 4개 군소 정당 지도자들과 만나 연립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이로써 의회 전체 의석 500석 가운데 60%에 이르는 299석을 확보, 안정적인 주도권을 쥐게 됐다. ●4개 군소정당과 연정… 299석 확보 이번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의 아피싯 웨차치와 전 총리와 제1야당인 푸어타이당의 잉락 모두 국가 통합을 선결과제로 내놓았다. ‘다행스럽게’ 5년 전 탁신을 쫓아내는 등 태국 정치에 개입해 온 군부가 또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는 어느 정도 완화됐다. 4일 프라윗 옹수완 국방장관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군부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면서 “국민들이 뜻을 확고히 했기 때문에 군대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쿠데타 가능성을 일축했다. 2006년 쿠데타를 주도했던 전직 육군 참모총장 손티 분야랏글린도 방콕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대중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쿠데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잉락 당선자가 오빠 탁신의 관심사를 공격적으로 요구하지만 않으면, 군대도 푸어타이당 정권과 공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고비는 탁신의 귀국 및 정계 복귀 문제다. 태국 엘리트층, 즉 반탁신 세력은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 망명 중인 탁신이 돌아올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엘리트층은 탁신을 포퓰리스트이자 부패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또 그가 입헌군주제를 공화정으로 전복시킬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가 귀국하거나 죄를 사면받으면 차기 정부와 군부와의 관계 단절은 물론 친탁신-반탁신 간 대결과 시위 촉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탁신 전 총리의 귀국이 국론 분열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탁신과 푸어타이당 측은 “쿠데타에 대해 보복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해 방콕을 봉쇄한 레드셔츠(친탁신 시위대)를 진압하면서 유혈 사태를 일으킨 군 장군 등에 대한 사법 절차 등은 여전히 가능성이 있어 군과 집권당 지도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이 같은 기득권 세력의 우려를 어떻게 다독일 것인지가 새 정부의 주요 과제다.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동남아 관계 개선에 주력하고 있는 미국은 일단 선거 결과를 존중하면서 군부의 자제를 주문하고 있다. 한편 푸어타이당의 압승에 이어 연정 구성 소식에 시장은 일단 반색했다. 4일 태국의 SET지수는 전날보다 4.7%가까이 급등한 1090.28로 장을 마감했다. 경제전문가들도 태국 경제의 중단기적인 ‘맑음’을 점쳤다. 푸어타이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일단 정치적인 불확실성과 불안정이 해소될 것으로 본 것이다. WSJ에 따르면 홍콩 크레디트 에그리콜 CIB의 프란시스 청은 “태국 국민의 다수를 대변하는 푸어타이당의 승리는 (시장의) 환영을 받고 있고, 떠났던 외국 투자자들이 이른 시일 내에 돌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국 증시가 하반기 들어 최대 19%가량 반등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증시 하반기 최대 19% 반등 전망 국내적으로도 총선 이후 새 정부가 공약 이행을 위해 지출을 늘리게 되고 시중에 돈이 돌아 증시도 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총선 이후 새 정부가 선심성 공약을 이행하면 태국 경제에 현금이 풍부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푸어타이당은 물론 집권 민주당도 총선을 앞두고 경제 성장을 위해 지출을 늘리겠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2002~2006년 탁신 집권 당시 연평균 5.7%의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가계부채는 급증하고 빈부 간 소득 격차도 제자리걸음에 그쳤음을 비춰볼 때 낙관은 금물이다. 일본 고쿠사이 자산운영의 다카히데 이리무라는 “푸어타이당의 승리가 정치 불안정을 완전히 씻어낸 것은 아니며 이 점을 투자자들은 잊지 않고 있다.”며 “향후 새 정부의 정치적 타협과 통합정책 여부가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석우·정서린기자 jun88@seoul.co.kr
  • 태국에 첫 여성총리 탄생…탁신 전 총리 여동생 잉락 친나왓 승리

    태국에 첫 여성총리 탄생…탁신 전 총리 여동생 잉락 친나왓 승리

     태국의 제1야당 푸어타이당이 3일 실시된 조기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획득, 푸어타이당의 총리 후보인 잉락 친나왓(44)이 태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 등극하게 됐다. 잉락은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뒤 해외로 도피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이다.  그녀는 정계에 입문한 지 불과 한 달 반만에 정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르며 총리직을 거머쥐었다. 푸어타이당은 해외도피 이후에도 도시 빈민층과 농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탁신 전 총리의 지지층의 흡수를 위해 잉락을 총리 후보로 내세웠다.  잉락은 태국 치앙마이 대학에서 정치·행정학부를 졸업, 미국 켄터키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탁신 일가와 연계된 기업에서 일해 왔다. 기업가인 아누손 아몬찻 사이에 아들 1명을 두고 있지만 혼인 신고는 하지는 않았다.  잉락은 모델 뺨치는 외모와 우아하고 겸손한 태도로 선거기간 내내 유권자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잉락은 ‘탁신 전 총리의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는 선거 기간에 탁신 전 총리 등 정치범을 사면하겠다고 밝혀 앞으로 군부와 왕실, 엘리트층 등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편 탁신 전 총리는 푸어타이당이 집권하면 오는 12월말쯤 딸 잉릭의 결혼식 참석하기 위해 귀국하겠다고 밝혔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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