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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얄 살루트, 32년 유니온 오브 더 크

    로얄 살루트, 32년 유니온 오브 더 크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인 로얄 살루트가 새로운 제품을 내놨다. 로얄 살루트는 로얄 살루트 32년 유니온 오브 더 크라운즈(Union of the Crowns)를 9월 출시한다고 24일 밝혔다. 제품은 스코틀랜드 최고의 증류소에서 32년 이상 숙성한 위스키를 엄선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관계자는 “제품은 풍부한 과일향과 함께 카라멜 토피 사탕과 다크 초콜릿, 오렌지의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면세점에서만 구매 가능하며, 매가는 380달러(약 43만원)이다.
  • 로얄 살루트, 32년 유니온 오브 더 크라운즈 출시

    로얄 살루트, 32년 유니온 오브 더 크라운즈 출시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로얄 살루트가 로얄 살루트 32년 유니온 오브 더 크라운즈(Union of the Crowns)를 9월 출시한다고 24일 밝혔다. 영국 왕실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전 세계 면세점에서만 구매 가능한 이 술의 가격은 380달러(약 43만원)이다. 로얄 살루트 32년 유니온 오브 더 크라운즈는 1603년 제임스 6세가 강력한 힘으로 3개 왕국을 통합해 현대 영국 왕실을 탄생시킨 사건을 기리기 위해 싱글몰트와 위스키를 블렌딩해 만들었다. 회사 측은 “스코틀랜드 최고의 증류소에서 32년 이상 숙성한 위스키를 엄선했다”면서 “제품은 풍부한 과일향과 함께 카라멜 토피 사탕과 다크 초콜릿, 오렌지의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제품은 순수한 점토와 물,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우아한 도자기 병으로 진귀한 술임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노드잼 포우애드 페르노리카 아시아퍼시픽 면세점 마케팅 담당 이사는 “이번 제품에는 안목 있는 위스키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현대적 감각과 함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전통적 기술과 역사가 어우러져 있다”고 평가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네버엔딩 이메일’… 클린턴 또 ‘삐끗’

    ‘네버엔딩 이메일’… 클린턴 또 ‘삐끗’

    클린턴재단 고액 기부자 위해 국무장관과 비선접촉 시도 정황 내용 공개 땐 대선 차질 불가피 트럼프 “특검 임명해 수사해야” 힐러리 클리턴(68)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국무장관 재직 시절 주고받은 개인 이메일 1만 4900건이 추가로 발견됐다. 여기에는 ‘클린턴재단’이 재단 기부자를 위해 재단 측이 클린턴 등 국무부 관계자들과 비선으로 접촉하도록 도와준 것으로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70) 공화당 후보는 클린턴재단이 즉각 폐쇄돼야 한다고 공세를 펴면서 재단에 대한 특검도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2일(현지시간) 미 연방수사국(FBI)이 클린턴의 사설 이메일 서버에서 국무장관 재직 시절 주고받은 이메일 1만 4900건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미 연방법원은 국무부에 클린턴의 이메일을 검토해 정보공개법에 따라 이메일 공개소송을 제기한 보수시민단체인 ‘사법감시’(Judicial Watch)에 넘겨줄지를 결정하라고 명령했다. FBI가 이번에 발견한 이메일은 클린턴 측 변호사가 2014년 12월 업무와 연관됐다고 생각해 국무부에 제출한 3만건의 이메일과는 별도다. 클린턴 후보는 국무장관 시절 관용이 아닌 개인용 이메일 계정을 사용해 비밀정보를 포함한 공문서를 주고받았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법무부와 FBI는 지난달 클린턴 후보의 부적절한 이메일 사용과 관련해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서 처벌은 면했다. 그렇지만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이 클린턴 후보에 대해 기밀정보를 다루는 데 있어 “극히 부주의했다”며 완곡한 비판을 가해 논란이 일었다. 이런 상황에서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직 시절 클린턴재단과 국무부 사이에 특수관계를 보여주는 이메일이 공개돼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클린턴재단이 기부자를 위해 국무부와 비선으로 접촉을 시도했다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메일은 2009년 6월 재단의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이끌었던 더글러스 J 밴드가 클린턴의 핵심 측근인 후마 애버딘에게 “클린턴 장관과 살만 빈 하마드 알 칼리파 바레인 왕세자와의 면담을 잡아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바레인 왕실은 재단에 5만~10만 달러 사이의 돈을 기부했다. 애버딘은 “왕세자가 지난주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장관과 면담을 추진했었다”며 “클린턴 장관은 목, 금요일에는 아무 일정도 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 답했다. 앞서 밴드는 영국 축구리그 관계자가 미국 비자를 받도록 애버딘에게 도와달라는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클린턴재단’이 당장 문을 닫아야 한다면서 이 재단에 대한 특검수사도 이어져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그는 오하이오 애크런 유세에서 “클린턴 부부가 클린턴재단의 자선 활동을 돈 많은 후원자를 위한 활동으로 변질시켰다”면서 “법무부는 슬프게도 백악관의 정치 조직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클린턴재단은 정치 역사상 가장 부패한 사업이 분명하다”면서 “즉각 문을 닫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화당 역시 이번에 추가로 발견된 이메일이 대선 전에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원 과학·기술위원장인 공화당의 라마르 스미스 의원은 클린턴 사설 이메일 서버를 관리했던 회사 3곳에 소환장을 보냈다. 클린턴재단은 해외 및 기업 기부를 받지 않고 미국인과 자선단체 기부금만으로 재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클린턴재단과 이메일을 둘러싼 논란이 선거 때까지 클린턴을 괴롭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한국인 감독님, 감동이었어요

    한국인 감독님, 감동이었어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세계 각국으로 진출한 ‘한국인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때보다 많았다. 양궁과 사격, 태권도, 배드민턴 등에서 외국팀 감독을 맡은 한국인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그 나라 선수와 함께 땀을 흘리며 메달을 일궈냈다. 비록 우리나라가 딴 메달은 아니지만 우리가 딴 메달 못지않게 아름다운 감동을 전해줬다. 리우올림픽을 뜨겁게 달궜던 한국인 감독의 메달 스토리를 돌아봤다. 한국인 감독들의 해외 진출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단연 양궁이다. 여자 양궁 단체전이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시작해 8회 연속 금메달을 따는 등 세계 무대를 평정하면서 한국인 감독들을 찾는 수요 역시 끊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올림픽 양궁 경기장은 한국인 지도자들이 모이는 동문회장이 될 정도다. 리우올림픽에서도 양궁에 출전한 56개국 가운데 한국인 지도자들이 이끄는 나라는 한국 말고도 대만, 말라위, 말레이시아, 멕시코, 미국, 스페인, 이란, 일본 등 8개국이나 됐다. 남자 양궁에서 한국의 강력한 라이벌로 꼽혔던 미국 양궁을 10년째 이끄는 이기식(59) 감독이 대표적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호주에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안겼던 그는 2006년부터는 미국 대표팀을 맡아 미국 양궁을 세계 2위로 올려놓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단체전 4강에서는 한국을 꺾고 은메달을 목에 걸어 파란을 일으켰다. 리우올림픽에선 한국 벽에 막히긴 했지만 남자 개인 동메달을 따냈다. 지난 17일 리우올림픽 금메달 기대주였던 김태훈(22·동아대)이 첫 경기(16강전)에서 무명 선수인 타윈 한프랍(18·태국)에게 패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경기가 끝난 뒤 김태훈이 상대 코치석으로 가서 인사할 때 그를 맞은 건 최영석(42) 감독이었다. 2002년부터 태국 태권도 대표팀을 지도하는 최 감독은 타윈 한프랍을 결국 결승까지 진출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태국 남자 태권도 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었다. 한국인 지도자가 외국 대표팀을 지휘하며 국제대회에서 종주국인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부메랑 효과’를 이야기할 때 늘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최 감독이다. 최 감독은 태국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비롯해 3회 연속 올림픽 메달 등을 안겼다. 호랑이띠인 데다 선수들을 엄하게 지도해 태국 언론으로부터 ‘타이거 최’라는 애칭까지 얻은 최 감독은 2006년 태국체육기자협회에서 주는 최우수지도자상을 탔고 그해 말 왕실로부터 훈장도 받았다. 2013년부터는 ‘최영석컵 국제태권도 대회’가 매년 열린다.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수확한 일본 배드민턴에는 ‘배드민턴 전설’ 박주봉(52) 감독이 있다. 박 감독은 2004년 일본 대표팀 감독이 된 뒤 대표팀 전문 훈련시설과 전담 코치제도를 도입하고 실력이 약한 선수들을 큰 대회에 내보내 담력을 키우는 등 체질을 바꿨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13명 중 12명이 1회전에서 탈락했던 일본 배드민턴은 박 감독을 영입 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여자복식 은메달을 땄다. 일본 배드민턴 역사상 첫 메달이었다. 베트남은 리우올림픽에서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베트남 체육계로선 역사에 남을 만한 현장에는 박충건(50) 감독이 있었다. 2014년부터 베트남 사격 대표팀을 지휘한 박 감독은 국제대회에서 사용하는 전자표적이 없는 선수들을 이끌고 한국에서 훈련을 하며 실전감각을 키웠다. 대령급 직업군인인 호앙쑤안빈(42)은 박 감독을 한국말로 “감독님”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현했다. 사상 첫 금메달 소식이 전해지며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는 속에서 박 감독은 베트남 국민들에게 영웅으로 기억에 남게 됐다. 중국 유도대표팀을 조련한 정훈(47) 감독은 ‘중국 유도의 히딩크’로 불린다. 11일 열린 유도 남자 90㎏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했다. 중국 남자 유도가 올림픽에서 따낸 첫 번째 메달이다. 정 감독은 “체력 때문에 걱정했는데 선수가 잘 버텨줬다. 이번 올림픽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중국협회에서 잡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을 지휘했던 정 감독은 중국유도협회가 대한유도회를 통해 영입 제안을 하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게 됐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씨줄날줄] 임페리얼 칼리지/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임페리얼 칼리지/박홍환 논설위원

    임페리얼 칼리지는 영국 런던의 부촌으로 꼽히는 켄싱턴·첼시 지역의 사우스켄싱턴에 있다. 사실 영국의 명문 대학이라면 으레 영어권 대학 중 가장 오래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떠올리지만 런던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은 임페리얼 칼리지의 명성 또한 이에 못지않다. 특히 의학을 비롯해 수학·물리학 등 자연과학, 그리고 공학까지 이학 계통의 연구 중심 대학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각 평가기관의 세계 대학평가에서 매년 3~9위에 랭크될 정도다. 1907년 국왕 에드워드 7세에 의해 정식 설립된 임페리얼 칼리지는 애초 킹스 칼리지 런던, 런던정치경제대와 함께 런던대에 속한 일종의 단과대학이었지만 2007년 완전히 독립했다. 임페리얼 칼리지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 견줘 ‘영국의 MIT’로도 불린다. 뛰어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 14명, 필즈상(수학계 노벨상) 수상자 2명을 배출했다. 페니실린을 발견해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이 대학 출신이다. 영국 왕실로서는 이곳을 통해 대영제국의 부활과 영속을 꿈꾼 듯도 하다. “과학 기반의 지식은 제국을 영예롭게 하고 보호하리라”라는 대학의 좌우명에서도 그 기대감이 엿보인다. 제국을 지향하는 이름만큼이나 세계의 우수 인재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재학생 1만 4000여명의 60% 정도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125개국 출신이다. 지원자 합격률이 15%에 불과할 정도로 입학 심사는 까다롭다. 고등학교 최종 성적과 영국대입시험인 A레벨 점수 미달로 마지막에 고배를 마시는 지원자가 속출한다. 힘든 과정은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졸업식장은 ‘영국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는 로열 앨버트홀.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공을 기리기 위해 1871년 개관한 이곳에서는 비틀스를 비롯한 전설적인 밴드들의 공연과 세계 최고 수준의 클래식 공연이 연중 펼쳐지는데 임페리얼 칼리지 졸업 시즌에는 오직 ‘임페리얼 가족’에게만 개방된다. 졸업생의 평균 초봉도 영국 내 대학 중 최고 수준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이 대학을 방문해 연설하기도 했다. 이공계 출신인 두 정상은 그 명성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귀순한 런던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둘째 아들이 임페리얼 칼리지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수학 및 컴퓨터공학을 지원했는데 심사를 통과했고 곧 발표될 A레벨 점수만 충족되면 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합격했어도 걱정이었을 것 같다. 태 공사가 출근 때마다 교통혼잡 요금을 걱정했다는데 어떻게 연간 2만 6750파운드(약 3800만원)의 등록금을 부담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장학금도 거의 없는 대학이다. 귀순 동기 중 하나인 자녀의 장래 문제란 이런 게 아니었을까.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아베 4년째 가해책임 회피… 일왕은 2년째 ‘깊은 반성’

    아베 4년째 가해책임 회피… 일왕은 2년째 ‘깊은 반성’

    정부 “각료·의원 참배 강행 유감” 아키히토 일왕이 15일 일본 종전일(패전일) 희생자 추도식에서 2년 연속 ‘깊은 반성’을 표명했다. 그는 이날 도쿄 지요다구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메시지를 또박또박 낭독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또 “전화(戰禍)에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세계 평화와 우리나라가 한층 더 발전하길 기원한다”며 추도사를 마쳤다. 그가 지난 8일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힌 뒤 왕궁 이외에서 공무에 나선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고베여대 가와니시 히데야 교수는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서 일본의 가해 책임 등 과거를 잊으면 안 된다는 일왕의 생각을 느꼈다”며 “국민뿐 아니라 차세대 왕실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아베 신조 총리는 같은 추도식에서 “전쟁 참화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며 “역사를 겸허하게 마주해 세계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012년 말 취임 뒤 열린 네 차례 종전일 추도식에서 가해 책임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부전(不戰) 맹세’ 표현도 없었다. 그의 전임자들은 추도식에서 “일본이 아시아 국가에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며 가해 책임을 언급했다. 한편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과 마루카와 다마요 올림픽 담당상 등 아베 내각의 각료들이 이날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대리인 니시무라 야스토시 총재특별보좌를 통해 공물료를 납부했다. 니시무라 특보는 이날 “(총리로부터) 공물료를 내고 참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전사한 분들의 영령에 애도를 표하고 명복을 빌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직접 참배하지 않은 것은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70여명도 예년처럼 참배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일본 정부 및 의회의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침략전쟁 역사를 미화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또다시 공물료를 봉납하고 참배를 강행한 것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각주의 역사(앤서니 그래프턴 지음, 김지혜 옮김, 테오리아 펴냄) 오늘날 학술서와 논문에 필수적인 각주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연구자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데 각주를 활용하는 학계의 관행 등도 다룬다. 320쪽. 1만 5000원. 국립고궁박물관(최동군 지음, 담디 펴냄)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조선 왕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박물관 구석구석에서 새롭게 발견하고 알아 가는 재미를 준다. 319쪽. 1만 6000원. 고양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스베틀라나 페트로바 지음, 공경희 옮김, 세종서적 펴냄) 명화에 뚱보 고양이 자라투스트라를 결합해 디지털 시대의 예술과 세계 최고의 미술관으로 안내한다. 304쪽. 2만원. 버섯 도감(권혁도 외 그림, 석순자 그림, 보리 펴냄) 우리나라에서 나는 5000종이 넘는 버섯 중 125종을 뽑아 아름다운 세밀화로 버섯 역사부터 각 버섯의 정보를 담았다. 348쪽. 8만원. 여행을 믿는다(이재영 지음, 클 펴냄) ‘글쓰는 엄마’와 책을 읽기 좋아하는 딸이 함께 떠난 여행의 순간순간을 이야기하듯이 풀어낸 책이다. ‘엄마이자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다. 303쪽, 1만 3000원. 오! 나의 강아지(헬렌 피어스 글, 케이트 서튼 그림, 김진현 옮김, 보통의나날 펴냄) 어린이들에게 생명에 대한 의미, 반려견과 함께 살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반려견을 향한 배려와 책임감을 키울 수 있도록 안내한다. 48쪽. 1만 3000원.
  • 건강 탓 양위… 왕실 부패·스캔들도 ‘퇴위 카드’로 돌파

    건강 탓 양위… 왕실 부패·스캔들도 ‘퇴위 카드’로 돌파

    “신체 쇠약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처럼 몸과 마음을 다해 상징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8일 아키히토(83) 일왕이 건강 문제를 이유로 생전에 퇴위하겠다는 의사를 직접 밝히자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왕위를 지키고 있는 다른 군주들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속성에 따라 절대 왕정시대에는 생전 양위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군주의 권력이 헌법에 의해 제한을 받는 21세기 입헌 군주 국가에서는 왕들이 장기간 재위와 고령에 따른 피로감을 호소하는 한편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후계자에게 생전에 양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의 양위가 아베 신조 내각에 황실전범 개정이라는 숙제를 안겨 평화헌법 개정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정치적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일본과 달리 대다수 군주국가는 왕의 생전 선양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과 같은 군주제 국가는 29개국이며 영국 국왕을 형식적 국가 원수로 삼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일부 영연방 국가들까지 포함하면 44개국이다.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페인 등의 유럽 입헌군주는 상징적인 국가 원수의 지위만 유지하고 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나 오만,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권 국왕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로 분류된다. ●카를로스 前스페인왕 공주 부부 횡령 탓 퇴위 근래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난 대표적 인물로는 2014년 6월 재위 39년 만에 퇴위한 후안 카를로스(78) 스페인 국왕이 있다. 후안 카를로스는 1969년 군부 출신 독재자 프란시스 프랑코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됐고,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하자 즉위했다. 1978년 입헌 군주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1981년에는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무산시키는 등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08년 경제위기와 재정적자가 불거지면서 왕실의 사치스러운 행태가 도마에 올랐고 2011년 딸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의 공금 유용 혐의 등 부패 추문까지 이어져 왕실의 인기는 급락했다. 결국 재위 39년 만에 “새로운 세대가 주역이 돼야 한다”며 아들 펠리페 6세(48)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1831년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한 벨기에의 알베르 2세(82) 국왕도 2013년 7월 맏아들 필리프(55)에게 건강 문제를 이유로 왕위를 물려줬다. 알베르 2세의 경우 자식이 없는 형 보두앵 1세가 1993년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왕위를 이어받았다. 알베르 2세는 2000년 받은 심장 수술의 관리 문제를 양위 이유로 내세웠지만 본인이 혼외 자식을 낳았다는 추문에 끊임없이 휩싸였고, 2007년에는 둘째 아들 로랑 왕자의 공금 횡령 의혹이 겹쳐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도 퇴위 요인으로 꼽힌다. 벨기에의 이웃 국가인 네덜란드 왕실은 1890년 이후 123년에 걸쳐 잇달아 즉위한 여왕 3대가 모두 자식에게 생전 양위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1890년 만 1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빌헬미나(1880~1962) 여왕은 58년간 왕좌를 지키다가 1948년 외동딸 율리아나(1909~2004년)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율리아나 여왕도 아들이 없었던 탓으로 1980년 맏딸 베아트릭스(78)에게 양위했다. 베아트릭스 여왕은 그러나 맏아들인 빌럼 알렉산더르(49)에게 2013년 4월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들 세 명의 여왕은 재위 기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지방을 돌며 국민과 소통하는 서민 행보를 보이며 인기를 관리했다. 히말라야 산맥의 부탄에서는 절대군주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주도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즉위한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61) 국왕은 51세 때인 2006년 12월 아들 지크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36)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그는 2001년 국왕의 행정권을 각료위원회에 이양하는 등 재위 기간 말년에는 왕실의 권력을 축소하는 일에 전념한 계몽군주로 평가된다. 결국 부탄은 2008년 3월 첫 총선을 실시하며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이뤄냈고 부탄 왕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비슷한 시기 인접국가인 네팔 갸넨드라(69) 국왕이 입헌군주제를 전제군주제로 바꾸려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폐위됐고 2008년 공화정으로 바뀐 것과 대조적이다. ●英엘리자베스 2세, 90세 고령에도 왕위 지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대표적인 군주는 현재 유럽에서 재위 기간이 가장 긴 엘리자베스 2세(90) 영국 여왕이다. 1952년 26세의 나이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는 65년째 군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76) 여왕은 44년, 스웨덴의 칼 구스타브 16세(70)도 43년간 왕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에 못 미친다. 엘리자베스 2세 치세 기간 거쳐 간 총리도 윈스턴 처칠부터 테리사 메이까지 13명이다. 여왕의 남편 필립공도 95세의 고령이다.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찰스(68) 왕세자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 왕세자에 머물러 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모리가 올해 4월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영국인의 70%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계속 재임해야 한다고 답변해 양위해야 한다는 의견(21%)을 크게 앞섰다. 영국 왕실 전기작가인 로버트 잡슨은 지난 4월 이브닝 스탠더드 기고를 통해 “여왕의 인기는 본인과 왕실 가족들이 스캔들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라며 “여왕의 백부인 에드워드 7세가 1936년 갑자기 아버지 조지 6세에게 양위해 겪었던 혼란과 고통을 생각하면 여왕이 왕위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푸미폰 태국왕은 현존 최장 기간 70년 재위 현존하는 군주 가운데 재위 기간이 가장 긴 왕은 1946년 18세의 나이로 즉위한 태국의 푸미폰 아둔야뎃(88) 국왕이다. 불교 국가인 태국 국민은 국왕을 살아 있는 부처로 여기며 왕의 얼굴이 그려진 지폐가 땅에 떨어지면 함부로 밟지 못할 정도로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보낸다. 푸미폰 국왕은 재임 중 10차례나 군사 쿠데타를 겪었지만 태국에서 쿠데타가 성공하려면 국왕의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하다. 푸미폰 국왕은 올해 즉위 70주년을 병석에서 맞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대외 활동을 거의 중단한 상태다. 태국 왕실 사무국은 지난 6월 성명을 통해 푸미폰 국왕이 뇌에 뇌척수액이 고이는 뇌수종이 재발해 척수액 배출 시술을 받았다고 전했다. ●왕실 운영비 펑펑… 군주제에 반감 커져 군주들의 잇단 양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군주제의 입지는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경제난과 긴축 재정 속에서도 왕실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 왕실 운영비로 3610만 파운드(약 518억원)를 쓰는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후 찰스 왕세자가 그만큼 존경받을지도 미지수다. 네덜란드 왕실 예산도 2012년 3100만 파운드(약 445억원) 수준이었음이 가디언 보도로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덴마크 왕실은 지난 5월 정치권의 압박에 따라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직계 손주 8명 가운데 앞으로는 크리스티안 왕세손 1명에게만 연봉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영국 여왕이 형식적 국가원수로 남아 있는 영연방 국가들 내에서도 군주제에 대한 반대 기류가 거세다. 1999년 완전한 공화국으로의 전환 여부를 놓고 실시했던 국민투표가 부결됐던 호주에서도 개헌 논의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공화국 추진운동을 이끌었던 맬컴 턴불 호주 총리는 지난 1월 해럴드 선과의 인터뷰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통치가 끝나기 전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포스트 엘리자베스 2세’ 시대는 달라질 것임을 예고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태국 유명 관광지 등서 10차례 테러추정 폭발…4명 사망

    태국 유명 관광지 등서 10차례 테러추정 폭발…4명 사망

    태국 남서부지역에서 12시간여 사이에 유명 관광지와 경찰서 등을 겨냥한 10건의 테러추정 폭발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4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부상했다. 테러 배후 세력이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태국 경찰은 이번 연쇄 폭발에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국제 테러단체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분리독립을 주장해온 태국 남부 무슬림 무장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2일 현지언론과 경찰 등에 따르면 태국 남서부 프라추압 키리칸주(州)의 유명 관광지인 후아힌에서는 전날 밤과 이날 아침 2차례 연쇄 폭발이 발생했다. 전날 밤 10시께 관광객이 주로 찾는 시장에서 2개의 폭탄이 잇따라 터졌고, 이날 오전 또다시 연쇄 폭발이 있었다. 술집 앞 화분과 쓰레기통 등에 숨겨져 있던 폭탄이 터지면서 후아힌에서만 2명이 목숨을 잃었고 20여 명이 부상했다. 또 남서부의 유명 휴양지 푸껫의 빠똥 해변에서도 2차례 폭발이 있었으며, 남서부 수랏타니주와 트랑주에서도 경찰서 등을 겨냥해 이틀 새 각각 2차례 폭탄이 터지면서 2명의 사망자와 2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지금까지 연쇄 폭발로 집계된 사망자는 모두 4명이며 최소 40여명이 부상했다. 부상자 중에는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호주 등 국적의 외국인들도 다수 포함됐지만, 한국인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주태국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아직 테러가 발생한 유명 관광지 등에서 한국인 피해는 아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휴가철을 맞아 태국에 온 관광객과 교민은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푸껫에서는 폭발하지 않은 사제폭탄도 발견됐고, 인근 팡아 섬과 끄라비 등지에서는 폭발에 따른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도 잇따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아직 배후를 자처한 단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찰과 정부도 아직 배후세력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프라윳 찬-오차 총리는 최근 태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군부주도의 개헌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나라의 안정을 해치려는 자들의 소행일 것으로 추정했다. 프라윳 총리는 “폭탄 공격은 혼란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 나라가 안정과 경제발전을 향해 나아가려는 중차대한 시기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며 “누구의 소행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태국 경찰은 이번 테러가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국제 테러조직과 무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야판드 핑무앙 태국 경찰청 부청장은 “지금까지 수사결과 지역 조직이 벌인 것으로 추정되며 국제 테러조직과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폭발이 남서부지역에 집중된 점을 고려할 때, 그동안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유혈 테러를 일삼아온 이슬람 무장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지 테러 전문가인 폴 체임버스는 “범인은 대부분 남부지역에서 정부군과 싸우는 말레이계 무슬림들일 것”이라며 “왕가의 휴양지인 후아힌은 노린 것은 왕실을 직접적으로 모욕하기 위한 것이다. 폭발이 일어난 시점도 왕비의 생일이다”고 말했다. 동남아 테러 전문가인 자차리 아부잔은 “태국 남부의 테러 세력은 최근 몇년간 조직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런 일을 꾸민적이 없거나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누가 그랬든 이는 태국 군부정권의 취약점인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클라대학 빠따니 캠퍼스 ‘딥사우스와치’(DSW) 센터가 연초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에서 이슬람교도의 테러가 본격화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남부 지역에서 1만5천374건의 테러가 발생해 6천543명이 숨지고 1만1천919명이 다쳤다. 연간 3천만명의 외국인이 찾는 ‘관광대국’ 태국의 주요 관광지에서 폭발사건이 일어난 건 1년 만이다. 지난해 8월 17일에는 수도 방콕 도심에 있는 에라완 사원에서 폭탄이 터져 외국인 등 20명이 목숨을 잃고 125명이 다쳤다. 당시 테러 용의자는 중국 위구르족 출신들이었다. 태국은 당시 테러로 관광산업 등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영상=유튜브 연합뉴스
  • 태국 남서부 지역 ‘연쇄 폭발 테러’…1명→4명 사망·19명→40여명 부상

    태국 남서부 지역 ‘연쇄 폭발 테러’…1명→4명 사망·19명→40여명 부상

    태국 남서쪽 지역에서 유명 관광지와 경찰서 등을 겨냥한 10건의 폭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4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다쳤다. 태국 경찰은 이번 연쇄 폭발 사건을 테러 범죄로 추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분리독립을 주장해온 태국 남부 무슬림 무장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2일 태국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태국 남서부 프라추압 키리칸주(州)의 유명 관광지인 후아힌의 유흥가에 있는 술집 인근에서 전날 밤과 이날 아침 2차례 연쇄 폭발 사건이 터졌다. 전날 밤 10시쯤 관광객이 주로 찾는 시장에서 2개의 소형 폭탄이 잇따라 터졌고, 이날 오전 또다시 연쇄 폭발이 있었다. 술집 앞 화분과 쓰레기통 등에 숨겨져 있던 폭탄이 터지면서 후아힌에서만 2명이 목숨을 잃었고 20여명이 다쳤다. 또 남서부의 유명 휴양지 푸껫의 빠똥 해변에서도 2차례 폭발이 있었으며, 남서부 수랏타니주와 트랑주에서도 경찰서 등을 겨냥해 이틀 새 각각 2차례 폭탄이 터지면서 2명의 사망자와 2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지금까지 연쇄 폭발로 집계된 사망자는 모두 4명이며 최소 40여명이 다쳤다. 부상자 중에는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호주 등 국적의 외국인들도 다수 포함됐지만 한국인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또 푸껫에서는 폭발하지 않은 사제폭탄도 발견됐고, 인근 팡아 섬과 끄라비 등지에서는 폭발에 따른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도 잇따랐다. 이번 연쇄 폭발 사건과 관련해 배후를 자처한 단체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찰과 정부도 아직 배후세력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프라윳 찬-오차 총리는 최근 태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군부주도의 개헌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나라의 안정을 해치려는 자들의 소행일 것으로 추정했다. 프라윳 총리는 “폭탄 공격은 혼란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 나라가 안정과 경제발전을 향해 나아가려는 중차대한 시기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누구의 소행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태국 경찰은 이번 테러가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국제 테러조직과 무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야판드 핑무앙 태국 경찰청 부청장은 “지금까지 수사결과 지역 조직이 벌인 것으로 추정되며 국제 테러조직과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폭발이 남서부지역에 집중된 점을 고려할 때 그동안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유혈 테러를 일삼아온 이슬람 무장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지 테러 전문가인 폴 체임버스는 “범인은 대부분 남부지역에서 정부군과 싸우는 말레이계 무슬림들일 것”이라며 “왕가의 휴양지인 후아힌은 노린 것은 왕실을 직접적으로 모욕하기 위한 것이다. 폭발이 일어난 시점도 왕비의 생일(12일)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17일에는 수도 방콕 도심에 있는 에라완 사원에서 폭탄이 터져 외국인 등 20명이 목숨을 잃고 125명이 다쳤다. 당시 테러 용의자는 중국 위구르족 출신들이었다.태국은 당시 테러로 관광산업 등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국 유명 관광지 등서 10차례 테러추정 폭발…4명 사망(종합4보)

    태국 남서부지역에서 12시간여 사이에 유명 관광지와 경찰서 등을 겨냥한 10건의 테러추정 폭발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4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부상했다. 테러 배후 세력이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태국 경찰은 이번 연쇄 폭발에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국제 테러단체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분리독립을 주장해온 태국 남부 무슬림 무장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2일 현지언론과 경찰 등에 따르면 태국 남서부 프라추압 키리칸주(州)의 유명 관광지인 후아힌에서는 전날 밤과 이날 아침 2차례 연쇄 폭발이 발생했다. 전날 밤 10시께 관광객이 주로 찾는 시장에서 2개의 폭탄이 잇따라 터졌고, 이날 오전 또다시 연쇄 폭발이 있었다. 술집 앞 화분과 쓰레기통 등에 숨겨져 있던 폭탄이 터지면서 후아힌에서만 2명이 목숨을 잃었고 20여 명이 부상했다. 또 남서부의 유명 휴양지 푸껫의 빠똥 해변에서도 2차례 폭발이 있었으며, 남서부 수랏타니주와 트랑주에서도 경찰서 등을 겨냥해 이틀 새 각각 2차례 폭탄이 터지면서 2명의 사망자와 2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지금까지 연쇄 폭발로 집계된 사망자는 모두 4명이며 최소 40여명이 부상했다. 부상자 중에는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호주 등 국적의 외국인들도 다수 포함됐지만, 한국인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주태국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아직 테러가 발생한 유명 관광지 등에서 한국인 피해는 아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휴가철을 맞아 태국에 온 관광객과 교민은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푸껫에서는 폭발하지 않은 사제폭탄도 발견됐고, 인근 팡아 섬과 끄라비 등지에서는 폭발에 따른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도 잇따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아직 배후를 자처한 단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찰과 정부도 아직 배후세력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프라윳 찬-오차 총리는 최근 태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군부주도의 개헌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나라의 안정을 해치려는 자들의 소행일 것으로 추정했다. 프라윳 총리는 “폭탄 공격은 혼란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 나라가 안정과 경제발전을 향해 나아가려는 중차대한 시기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며 “누구의 소행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태국 경찰은 이번 테러가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국제 테러조직과 무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야판드 핑무앙 태국 경찰청 부청장은 “지금까지 수사결과 지역 조직이 벌인 것으로 추정되며 국제 테러조직과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폭발이 남서부지역에 집중된 점을 고려할 때, 그동안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유혈 테러를 일삼아온 이슬람 무장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지 테러 전문가인 폴 체임버스는 “범인은 대부분 남부지역에서 정부군과 싸우는 말레이계 무슬림들일 것”이라며 “왕가의 휴양지인 후아힌은 노린 것은 왕실을 직접적으로 모욕하기 위한 것이다. 폭발이 일어난 시점도 왕비의 생일이다”고 말했다. 동남아 테러 전문가인 자차리 아부잔은 “태국 남부의 테러 세력은 최근 몇년간 조직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런 일을 꾸민적이 없거나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누가 그랬든 이는 태국 군부정권의 취약점인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클라대학 빠따니 캠퍼스 ‘딥사우스와치’(DSW) 센터가 연초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에서 이슬람교도의 테러가 본격화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남부 지역에서 1만5천374건의 테러가 발생해 6천543명이 숨지고 1만1천919명이 다쳤다. 연간 3천만명의 외국인이 찾는 ‘관광대국’ 태국의 주요 관광지에서 폭발사건이 일어난 건 1년 만이다. 지난해 8월 17일에는 수도 방콕 도심에 있는 에라완 사원에서 폭탄이 터져 외국인 등 20명이 목숨을 잃고 125명이 다쳤다. 당시 테러 용의자는 중국 위구르족 출신들이었다. 태국은 당시 테러로 관광산업 등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meolakim@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 태국 유명 관광지서 2차례 폭탄 폭발…1명 사망, 최소 19명 부상

    태국 유명 관광지서 2차례 폭탄 폭발…1명 사망, 최소 19명 부상

    태국 남서쪽 해안 휴양지인 후아힌에서 11일(현지시간) 밤 폭탄이 잇따라 터져 태국인 여성 1명이 사망하고 외국인을 포함해 19명이 다쳤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께 태국 남서부 해변도시 후아힌의 유흥가에 있는 술집 인근에서 20분 간격으로 2차례 소형 폭발물이 터졌다.폭발이 일어난 지점 간 거리는 50m였다. 폭발이 일어난 장소는 관광객들이 야간에 주로 찾는 선술집과 음식점이 밀집한 시장이다. 폭발의 충격으로 태국인 여성 1명이 숨지고 외국인을 포함해 최소 19명이 다쳤다. 사망한 태국 여성은 ‘솜 땀’(파파야 샐러드)을 파는 노점상으로 첫 번째 폭발의 영향으로 숨졌다. 후아힌 경찰 책임자인 숫띠차이 스리소파차렌랏은 “맥주집 앞에서 노점을 하던 여성이 폭발의 충격으로 다쳐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끝내 숨졌다”며 “19명의 부상자 가운데 3명은 상태가 위중하다. 부상한 외국인은 모두 7명으로 여성이 4명, 남성이 3명”이라고 설명했다. 또 병원 관계자는 부상자 2명의 신원을 영국인이라고 확인했다. 주(住) 태국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폭발사건과 관련해 아직 한국인 사상자 신고는 없었다”며 “날이 밝는 대로 현지 경찰 당국 등을 대상으로 한국인 피해가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국 경찰은 폭발물의 종류와 동기 등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 태국에서 폭발물을 이용한 테러는 자주 발생하지만 외국인이 방문객이 많은 관광지에서 폭발이 일어난 건 1년 만이다. 지난해 8월 17일에는 방콕 도심에 있는 에라완 힌두 사원에서 폭탄이 터져 외국인 등 20명이 죽고 125명이 다쳤다. 폭발이 일어난 태국 수도 방콕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 떨어져 있다. 왕실의 휴양지인 이곳에는 고급 리조트가 밀집해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많다. 당시 테러 용의자는 중국 위구르족 출신들이다. 이번 폭탄 공격은 시키릿 왕비의 생일(12일) 연휴를 앞두고 발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국 유명 관광지서 2차례 폭발… 1명 사망, 19명 부상

    주태국 한국대사관 “한국인 피해 신고 아직 없어…추가 확인중” 태국 남서쪽 해안 휴양지인 후아 힌에서 11일(현지시간) 밤 폭탄이 잇따라 터져 1명이 죽고 외국인을 포함해 19명이 다쳤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께 태국 남서부 해변도시 후아힌의 유흥가에 있는 술집 인근에서 20분 간격으로 2차례 소형 폭발물이 터졌다. 폭발이 일어난 지점 간 거리는 50m였다. 폭발이 일어난 장소는 관광객들이 야간에 주로 찾는 선술집과 음식점이 밀집한 시장이다. 폭발의 충격으로 태국인 여성 1명이 숨지고 외국인을 포함해 19명이 부상했다. 사망한 태국 여성은 ‘솜 땀’(파파야 샐러드)을 파는 노점상으로 첫 번째 폭발의 영향으로 숨졌다. 후아힌 경찰 책임자인 숫띠차이 스리소파차렌랏은 “맥주집 앞에서 노점을 하던 여성이 폭발의 충격으로 다쳐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끝내 숨졌다”며 “19명의 부상자 가운데 3명은 상태가 위중하다. 부상한 외국인은 모두 7명으로 여성이 4명, 남성이 3명”이라고 설명했다. 또 병원 관계자는 부상자 2명의 신원을 영국인이라고 확인했다. 주태국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번 폭발사건과 관련해 아직 한국인 사상자 신고는 없었다”며 “날이 밝는 대로 현지 경찰 당국 등을 대상으로 한국인 피해가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국 경찰은 폭발물의 종류와 동기 등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 태국에서 폭발물을 이용한 테러는 자주 발생하지만, 외국인이 방문객이 많은 관광지에서 폭발이 일어난 건 1년 만이다. 지난해 8월 17일에는 방콕 도심에 있는 에라완 힌두 사원에서 폭탄이 터져 외국인 등 20명이 죽고 125명이 다쳤다. 폭발이 일어난 태국 수도 방콕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 떨어져 있다. 왕실의 휴양지인 이곳에는 고급 리조트가 밀집해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많다. 당시 테러 용의자는 중국 위구르족 출신들이다. 이번 폭탄 공격은 시키릿 왕비의 생일(12일) 연휴를 앞두고 발생했다. 연합뉴스
  • [씨줄날줄] 아키히토의 퇴위/박홍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아키히토의 퇴위/박홍기 논설위원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연호는 ‘헤이세이’(平成)이다. 중국의 사기와 서경에 나오는 ‘내평외성’(內平外成)에서 따왔다. 천지와 내외의 평화를 바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키히토는 연설 때마다 평화를 빠뜨리지 않는다. 지난해 8월 패전 70주년 추도식에서는 “세계의 평화와 앞으로의 발전”을, 지난해 1월 신년사에서는 “인류의 평화”를 기원했다. 일본의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책임도 잊지 않았다. 일왕은 헌법상 상징적 존재다. 헌법 제1조에 ‘국가와 국민 통합의 상징’, 제4조에 ‘헌법에 정해진 국사(國事)행위 이외 국정에 관한 주장과 행사는 불가’라고 지위와 역할이 규정돼 있다. 일왕과 왕족은 선거권과 피선거권도 갖고 있지 않다. 국사 행위는 반드시 내각의 조언과 승인이 필요하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서다. 제국주의 시절 제정된 구헌법은 전혀 달랐다.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단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는 혈통)의 천황이 통치하며’라고 명기돼 있었다. 일왕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기 전까지 일왕은 신(神)적인 존재였다. ‘모든 것’이었다. 젊은이들이 지는 벚꽃처럼 목숨을 버리면서 “천황 폐하”를 외쳤을 정도다. 아키히토의 부친 히로히토(裕仁·1929~89) 일왕이 1946년 1월 1일 “나는 신이 아니다”라며 ‘인간선언’을 할 때까지다. 그러나 일왕은 현재도 ‘상징’을 뛰어넘는 존재다. 해마다 1월 2일 일왕의 거처인 궁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일왕의 새해 축하 인사를 보기 위해서다. 올해 역시 궁 베란다에서 오전에 세 차례, 오후에 두 차례 손을 흔들며 편안을 기원했다. 일왕과 왕족의 일거수일투족은 커다란 관심거리 가운데 하나다. 특히 아키히토는 2001년 12월 18일 68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백제의 후손’임을 밝혔다.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桓武·재위 기간 781~806년)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기록돼 있어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반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일본 언론 매체들은 애초 이 발언을 뭉개다 한국 측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뒤늦게 다뤘다. 아키히토 일왕이 그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생전 퇴위 의향을 발표했다. 국민들은 충격 속에 “고생 많으셨다”며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아베 정권의 개헌론과 맞물려 적잖은 해석을 낳고 있다. 왕실의 제도와 구성 등을 정한 왕실전범(典範)에 생전 퇴위 규정이 없어서다. 아베 정권이 퇴위와 관련된 법 정비를 떠맡을 경우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의 개헌 논의는 상당 기간 지연이 불가피하다. 일본의 보수 우경화 흐름과는 거리가 멀었던 일왕의 개헌을 견제하기 위한 결단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아키히토 일왕의 의중이 진정 평화를 위함이길 바란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日, 여왕 허용할까

    日, 여왕 허용할까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퇴위 문제가 일본 사회의 최대 관심사로 부각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아베 신조 내각은 9일 일왕의 생전퇴위 후속조치 논의를 서두르며 정치권에 미칠 파장을 재고 있다. 일왕의 생전 퇴위 논의가 개헌 문제 등 자칫 정치권의 다른 이슈들을 빨아들일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베 정부는 다음달에 생전퇴위 문제를 논의할 전문가 협의체를 개설할 방침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호소다 히로유키 자민당 총무회장은 이날 “제도를 바꾸는 데 국민의 생각, 천황(일왕)의 생각을 어떻게 반영할지를 포함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나가사키시 평화기원식에 참석한 아베 총리도 “천황(일왕)의 연령과 공무 부담을 고려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민 10명 중 8명 “생전 퇴위 찬성” 일본 정부도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퇴위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시기와 형식, 내용 등을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민도 생전퇴위에 대해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6, 7일 벌인 여론조사에서 일왕의 생전퇴위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4%였다. 반대는 5%에 그쳤다. 같은 기간 산케이신문과 후지뉴스네트워크(FNN)의 공동 여론조사에서도 생전퇴위가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70.7%를 기록했다. 정치권이 어떤 생각을 하든 황실전범이나 특별법 제정 등에 대한 압박이 커지는 상황이다. ●승계 1순위 나루히토, 아이코 공주만 제도 변경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는 가운데 남성이 귀한 일본 왕실을 감안해 여성을 왕으로 인정하는 것도 도마에 올랐다. 왕위 계승을 규정한 법률인 황실전범(皇室典範)은 아버지로부터 왕실 혈통을 물려받은 남성인 ‘남계남자’(男系男子)만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규정했다. 현재 일본 왕실에 남성 수가 급감하면서 여성이나 여계(女系) 일왕을 인정하는 문제가 다시 관심사로 불거졌다. 아키히토 일왕의 직계 가운데 남성은 3명이다. 손자는 차남 후미히토의 아들 히사히토 왕자가 유일하다.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인 왕세자 나루히토에겐 아이코 공주뿐이다. 한편 아키히토 일왕은 중국을 포함해 50개국을 방문했지만, “인연을 느낀다”는 한국 땅에는 발을 내딛지 못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역사학 전공… 일왕처럼 평화주의자, 전쟁 범죄 등 과거사 메시지에 주목

    역사학 전공… 일왕처럼 평화주의자, 전쟁 범죄 등 과거사 메시지에 주목

    올해로 재위 28년째인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에 퇴위하면 후계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장남 나루히토(56) 왕세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개혁적이고 소탈한 데다 부왕 아키히토처럼 평화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아키히토 일왕을 대신해 왕실 업무도 상당 부분을 맡아 왔고, 외교 업무 등에도 경험이 많다. 아키히토 일왕의 재임 3년째인 1991년 2월 만 31세가 된 날에 왕세자로 책봉됐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할아버지인 쇼와 일왕의 재위 62년 되는 1987년부터 지금까지 22회에 걸쳐 일왕의 위임을 받는 국사를 대행했다. 지난 1월 28일에는 아키히토 일왕을 대신해 처음으로 각료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인증식을 갖기도 했다. 그는 왕족 및 귀족들이 다니는 가쿠슈인대에서 역사학(유통사)을 전공했다. 지금까지 왕족들이 생물학 등 자연과학을 전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1992년부터 가쿠슈인대 사료관 객원 연구원으로서 일본 중세사를 연구해 오고 있다. 유엔 ‘물과 위생에 관한 자문위원회’ 명예 총재로서도 활동했다. 일본 왕족이 유엔 등 상설 국제기관의 직책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왕위 계승 순서는 나루히토 왕세자, 나루히토 왕세자의 동생인 아키시노 노미야(후미히토·51) 왕자, 아키시노 노미야 왕자의 아들인 히사히토(10) 순이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지난해 2월 태평양전쟁 종전 70주년에 즈음해 “전쟁의 참혹함을 두 번 다시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과거의 역사를 깊이 인식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그가 일왕이 된 뒤 ‘일본의 상징’으로서 전쟁 범죄 및 식민지배 등 과거사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는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일왕, 200년 만에 생전퇴위… 아베의 개헌 추진력 힘 잃을 듯

    일왕, 200년 만에 생전퇴위… 아베의 개헌 추진력 힘 잃을 듯

    “전후 70년이라는 큰 고비 지나… 상징 끊임없이 이어가길 바래”아베 “표명 무겁게 받아들인다”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위 의향을 담은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일왕이 생전에 물러난 것은 에도시대 후반기인 1817년 고가쿠 일왕(재위 기간 1780∼1817년)이 마지막이었다. 아키히토 일왕이 양위하게 되면 200년 만에 생전 퇴위가 이뤄지게 된다. 아키히토 일왕은 8일 왕실업무를 전담하는 궁내청 웹사이트와 공영방송 NHK 등으로 동시에 공개된 영상에서 “점차 진행되는 신체 쇠약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처럼 몸과 마음을 다해 국가 상징으로서의 (일왕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며 생전 퇴위 의향을 우회적으로 전달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먼저 생전 퇴위를 꺼내면서, 일본 정부는 생전퇴위를 포함한 왕위 계승 문제 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게 됐다. 아베 신조 정부는 ‘일왕 퇴위 및 관련법 개정’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일부 보수층은 아베 정부가 밀어붙이는 헌법 개정 추진력이 자칫 왕위 계승 및 관련법 개정이란 이슈에 말려들어 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메시지에서 “전후 70년이라는 큰 고비를 지났다”며 말문을 열었고, 또 “상징 천왕의 임무가 끊임없이 안정적으로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끝을 맺었다. 이는 자민당이 마련한 개헌 초안에서 일왕의 지위를 ‘국가의 상징’에서 ‘국가의 원수’로 격상시키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왕족의 신분이나 왕위 계승을 규정한 법률인 ‘황실전범’(皇室典範)에는 일왕의 생전 양위를 규정한 절차가 없다. 왕위 계승은 일왕이 사망했을 경우로 한정돼 있다. 따라서 생전 퇴위와 승계를 위해서는 관련 입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아베 내각은 생전 양위 등의 입법을 위해서는 여론 수렴과 전문가 회의 등을 거쳐야 한다. 시간과 절차, 공이 꽤 들어가기에 개헌에 전념해야 할 아베 정권에는 예상치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일반 국민에게 관심이 큰 일왕의 거취 등 황실전범 개정 및 특별법 제정 논의가 개헌 논의를 압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아키히토 일왕의 영상 메시지가 공개 된 직후 “(일왕의) 국민을 향한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연령이나 공무의 부담 정도 등에 비춰 볼 때 정신적 피로감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며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해 확실하게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후속 조치를 마련해 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이날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 헌법이 규정한 ‘상징천황’으로서의 자신의 역할과 책무를 회고하면서 쇠약한 ‘고령 천황’의 문제를 꺼내며 미래를 대비하자는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아키히토 일왕은 그러나 이날 ‘퇴위’ 등의 직접적인 표현은 피했다. 일본 헌법에 따라 일왕은 정치에 관여할 수 없게 돼 있어 ‘황실전범’의 개정 등을 직접 촉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구나 발언은 피했다.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위’에 대한 희망은 법률(전범) 개정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회권한으로 국정 사항인 법률 개정의 문제로 직결돼 이를 직접 건드리는 것은 헌법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미우리신문 등은 앞서 7일 생전 퇴위를 다루기 위해 황실전범을 건드리기보다는 아키히토 왕에만 적용되는 생전 퇴위를 규정한 특별법을 만드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황실전범에 생전 퇴위를 규정할 경우 정치적 압력에 의한 생전 퇴위를 공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 이유다. 일본 정부와 정치권은 이미 지난달 13일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위하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혔다”는 보도를 계기로 왕위 계승 문제 및 관련법 개정 문제에 대해 사실상의 검토에 들어간 상황이다. 일왕의 퇴위 뒤 신분과 처우, 칭호 등을 어떻게 할지 등도 논의해 나가게 됐다. 일본의 상징적 신분에서 벗어나는 만큼 운신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 “간무천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거나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 한국 방문이 성사될지도 관심사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저무는 日 ‘헤이세이’ 시대… 왕위 계승까지 최소 6개월

    저무는 日 ‘헤이세이’ 시대… 왕위 계승까지 최소 6개월

    日정부, 조기 퇴위 특별법 착수 ‘장남’ 나루히토가 계승 1순위 ‘헤이세이(平成·아키히토 일왕의 연호) 시대’가 저물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이 8일 ‘생전 퇴위’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사전 녹화된 TV 영상 메시지 형태로 밝힌다.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일본 궁내청은 이날 오후 3시 아키히토 일왕이 일본 국민에게 보내는 녹화된 동영상 메시지를 공표하고 NHK 등은 이를 중계할 예정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를 통해 우회적인 방식으로 생전 퇴위를 원하는 의사를 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82세인 일왕은 “헌법에 정해진 (국가의) ‘상징’으로서의 의무를 충분히 감당할 사람이 덴노(天皇·일왕)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며 “연로한 자신이 공무를 대폭 줄이거나 대역을 세워 일왕 자리에 머무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왔다고 NHK 등은 7일 전했다. 이로써 지난달 중순 NHK를 통해 알려진 생전 퇴위 문제에 대한 일왕의 입장을 기정사실화하고 본격적인 후속 대응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도 아키히토 일왕의 조기 퇴위를 인정하도록 ‘황실전범’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만드는 방안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그동안 일왕의 조기 퇴위 의향에 관해 극도로 언급을 자제해 왔지만, 8일 메시지가 발표되면 이 문제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일왕의 퇴위 등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어 황실전범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실제로 퇴위가 실현되기에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걸리게 된다. 아키히토 일왕은 1989년 쇼와 일왕이 사망한 뒤 즉위해 연호 헤이세이 시대를 열었다. 쇼와 일왕의 장남으로 1933년 12월에 태어나 11세에 일본의 패전을 지켜본 뒤 전후 부흥기에 청춘시절을 보냈다. 25세 때인 1959년 미치코 왕비와 결혼해 세 자녀를 낳았고 전쟁 패전에 대한 반성 및 기억 등으로 강한 평화주의 신념을 갖고 실천해 왔다. 이 때문에 국수주의 세력들과의 물밑 갈등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계승 1순위는 장남이자 왕세자인 나루히토(56)다. 아키히토 일왕은 스트레스성 위염과 십이지장염에 이어 2003년 전립선암 수술, 2012년 2월 협심증 증세에 따른 관상동맥 우회 수술을 각각 받았지만 왕성한 활동을 해 왔다. 긴 시간 이야기도 잘하셨다”고 전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마사코 왕세자비와 딸인 아이코(15)를 두고 있는 등 아들이 없다는 약점이 있다. 일본 왕실법은 여성이 왕위를 계승할 수 없게 돼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커버스토리] ‘한정식=고위층 접대 음식’ 인식 아쉬워… 다같이 즐기는 전통 문화 됐으면

    [커버스토리] ‘한정식=고위층 접대 음식’ 인식 아쉬워… 다같이 즐기는 전통 문화 됐으면

    “연구만 해서는 학문에 불과합니다. 많은 사람이 즐겨야 문화가 되지요. 음식은 학문이 아니라 문화입니다. 흥망을 모두 겪으며 지화자가 그동안 명맥을 이어 온 이유입니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전통궁중요리 음식점 지화자의 이순화(58·여) 수석조리장은 “궁중음식에 담긴 철학에 반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이곳에 몸담은 지 벌써 25년이 됐다”고 말했다. 지화자는 궁중음식 인간문화재 고 황혜성 교수가 궁중음식문화를 대중에 알리기 위해 1991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궁중요리 음식점이다. 이 조리장은 “궁중음식은 왕실의 음식, 한정식은 반가의 음식이라 그 출발이 달랐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왕실에서 가신들에게 음식을 하사하기도 하고, 왕실과 양반가문 사이에 혼례 등으로 음식문화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그 경계가 모호해져 함께 발전해 왔다는 게 이 조리장의 설명이다. 또 궁중음식은 조리법이나 예법 등에서 반가의 한정식에 기준이 돼 주기도 했다. 지금의 궁중음식은 조선 말엽에 정리된 조선왕조의 음식, 그중에서도 일상식보다 연회에서의 상차림을 이어받은 것을 말한다. 그렇다 보니 한정식과 궁중음식은 첩 수부터 다르다. 보통 한국 음식은 ‘쟁첩’이라고 해서 찬 등을 담는 뚜껑이 딸린 그릇 수를 가지고 구성을 나눈다. 첩 수를 따질 때 김치, 젓갈, 장 등은 제외한다. 3·5·7·9첩 중에 9첩이 소위 ‘반가음식’이라고 해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먹던 음식을 말한다. 지금의 한정식의 모태가 됐다. 반면 궁중음식은 12첩이다. 이 조리장은 “12첩이라는 다양한 구성에 궁중음식 철학이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궁중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거나 사치를 부리기 위한 음식이 아니에요. 임금이 전국 각지의 제철 특산물로 만든 음식들을 맛보면서 풍흉을 가늠하고 백성들을 살피는 음식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찬의 종류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궁중음식은 굉장히 화려할 거라고 착각하지만, 찬의 가짓수는 많아도 소담하고 정갈한 게 한국 궁중음식의 특징입니다.” 이 조리장은 “드라마 ‘대장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2003~2004년이 궁중음식의 전성기였다”고 말했다. 많을 때는 분점이 4개나 늘었지만 지금은 다 정리하고 종로의 본점만 남았다. 이곳도 수익을 내기 위한 곳이라기보다 중요무형문화재 38호인 궁중음식의 명맥을 이어 가기 위해 지키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정조가 화성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 자리에 차려냈던 ‘진어별만찬’을 당시 기록된 조리법 그대로 차려내는 등 전통을 이어 나가는 데 초점을 둔다. 이 조리장은 “한정식·궁중음식이 소위 ‘고위층 접대 음식’으로 인식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근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단품 음식 위주인 서양식은 단가 조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겠지만 정해진 구성을 갖춰야 하는 한정식은 가격 조정이 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이 조리장은 희망을 본다고 했다. “당장 어려움은 있겠지만 이번을 계기로 ‘접대음식’이 아니라 전통 음식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더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한국 전통 음식문화의 정수를 알린다는 자부심으로 이어왔으니까요.”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신라 최초의 사찰 ‘흥륜사’ 실제 위치는 아직도 미스터리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신라 최초의 사찰 ‘흥륜사’ 실제 위치는 아직도 미스터리

    국립경주박물관은 2009년 경주공업고등학교 마당에서 나온 유물을 세척하다가 ‘흥’(興) 자가 새겨진 신라시대 수키와 조각을 확인한다. 경주공고가 배수로 공사를 하겠다며 문화재 조사도 없이 파헤친 400상자 분량의 흙더미에서 나온 것이다. ‘사’(寺) 자만 남은 기와 조각도 출토됐다. 신라 최초의 사찰 흥륜사(興輪寺)터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2009년 경주공고 출토 기와에 ‘대왕흥륜사’ 추정 글자 ‘삼국유사’에는 진흥왕이 ‘이 절에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대목이 보인다. 발견된 기와의 아래로 내려쓴 ‘흥’(興) 자 위의 글자는 ‘ㅗ’ 모양만 남았지만 경주박물관은 ‘王’(왕) 자로 추정할 수 있다고 봤다. 흥 자도 오늘날 쓰는 글자와는 조금 다르지만 부여 왕흥사터 기와의 ‘興’ 자와 거의 같은 모습이다. 삼국시대에 쓰던 한자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대왕흥륜사’라고 새긴 기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흥륜사는 법흥왕이 즉위 22년(535) 천경림(天鏡林)의 나무를 베기 시작해 진흥왕이 즉위년(544) 완성했다. 신라 왕실이 중앙집권적 국가를 완성하고자 불교를 국교화하는 과정에서 귀족 세력과 갈등을 빚은 끝에 이차돈의 순교라는 혼란이 빚어진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 중심에 신라 귀족이 신봉하던 토착 신앙의 성지(聖地) 천경림이 있고, 그곳에 세운 대찰(大刹) 흥륜사가 있다. 신라는 불교를 공인하면서 ‘왕이 곧 부처’라는 개념을 체계화한다. 최초의 사찰을 ‘대왕흥륜사’라고 명명한 것부터가 그렇다. ‘흥륜’에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치세를 일으켜 세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전륜성왕은 부처의 법으로 세상을 이상적으로 다스리는 존재를 말한다. 이후 불교로 일사불란해진 신라의 의식 체계는 삼국통일의 기반이 되었으니 흥륜사가 갖는 역사적 의의는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1963년에 이미 사적으로 지정된 ‘경주 흥륜사터’ 경주공고와 흥륜사터의 관계에 다소 혼란스러운 독자도 없지 않을 것이다. ‘경주 흥륜사터’는 이미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보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흥륜사터는 경주공고에서 남동쪽으로 700~800m 떨어진 곳에 있다. 1980년대 흥륜사라는 이름의 새 절이 들어섰다. 아직도 규모 있는 절의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원본이 경주박물관에 있는 이차돈의 순교비를 마당에 복원해 놓았다. 흥륜사의 법등(法燈)을 잇고 있는 것으로 자처하고 있다는 뜻이다. ●1976년 ‘영묘사’ 이름 새겨진 기와 출토… 미궁으로 1910년대 일본인들은 경주지역 절터를 조사하면서 지금의 사적지를 흥륜사터로 추정했다. 당시에도 경주 사람들은 일대를 ‘흥륜원’이나 ‘흥륜들’로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1976년 영묘사(令妙寺)라는 절 이름이 새겨진 기와조각 5점이 출토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선덕여왕이 창건했다는 영묘사는 흥륜사와 더불어 전불시대(前佛時代) 칠처가람(七處伽藍)의 하나다. 철처가람은 신라가 불국토(佛國土)가 될 수밖에 없음을 상징하는 일곱 절을 뜻한다. 영묘사터 발견은 반가운 성과였지만 흥륜사터의 실제 위치는 미궁에 빠졌다. 학계는 이후 경주공고 자리를 유력한 흥륜사터로 보기 시작했다. 우선 ‘미추왕릉 서쪽이자 금교의 동쪽’이라는 ‘삼국유사’의 내용과 부합한다. 금교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경주공고 서쪽으로 형산강이 흐르니 다리가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 고려 충렬왕 33년(1307) 간행된 ‘호산록’의 ‘흥륜사대종명병서’(興輪寺大鐘銘幷序)에는 ‘1244년 이전 불타버린 절터에 다시 불전을 세우고 범종을 주조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경주공고에서는 신라시대 절터의 흔적과 함께 고려시대 유구도 노출됐다. ●‘칠처가람’의 하나인 영흥사터일 가능성도 여전 신라시대 지금의 형산강으로 가로막힌 서라벌의 서쪽지역은 수풀이 빽빽하게 들어찬 저습지였을 것이다. 천경림은 영묘사터와 경주공고를 모두 포괄할 만큼 범위가 넓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주박물관이 확인한 경주공고 출토 유물 가운데는 ‘寺’(사) 자 바로 앞 글자가 ‘興’(흥)일 가능성이 있는 암키와도 있었다. 경주공고 자리가 흥륜사일 수도 있지만, 역시 칠처가람의 하나인 영흥사(永興寺)터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뜻이다. 발굴 조사는 잊힌 역사를 재구성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는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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