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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벽화」의 발굴(사설)

    바로 어제쯤 붓을 놓고 일어선 것처럼 빛깔이 선연하고 아름다운 무덤벽화가 발견되었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신비하기 그지없다. 26일 공개된 파주의 청주 한씨 문중 묘역의 고분벽화는 보는 이를 가슴 뛰게 한다. 주검을 뉘인 땅속의 작은 방벽에 이렇게 진지하고 정신성이 높은 벽화를 그려넣어 죽은이를 위로하고 기렸던 우리네 조상들의 문화적 특성이 존경스럽다. 지금까지의 추측으로는 고려벽화일 가능성이 높은 이 벽화는 지금까지 발견된 어떤 고려의 벽화보다 진귀하고 품격이 높은 것으로 보이고 있다. 벽에 회칠을 하여 희고 반들거리는 「캔버스」 상태를 만든 다음 그 위에 벽화를 그리는 수법을 쓰지 않고 벽에 직접 그린 솜씨가 우선 대담해 보인다. 붓이 힘차고 운필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면 하기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다. 파장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북벽의 당당한 문사를 수호하는 듯한 대종격의 세인물화도 매우 흥미롭다. 머리 위에 십이지상의 동물들을 그려넣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이 그림에 불어넣었던 근원,영생의 믿음같은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흔적들에서 우리는 옛사람들의 세계관과 만나고 철학과 만난다. 그들이 입었던 옷의 선을 짐작하게 하고 풍속을 추측할 수 있게 하고 미래관·해학·기품을 미루어 알게 하는 이런 고고학적 유산은 매우 소중한 자산들이다. 문화부가 풍문을 추적하여 이만한 고적의 발굴에 개가를 올린 것을 평가한다. 특히 중구난방으로 무성해지기 쉬운 화제와 관심의 피해에서 숨어가며 과학적이고 기능적인 발굴을 할 수 있었던 일은 잘된 일이다. 특히 이곳은 휴전선 비무장지대여서 사람들의 접근도 하기 힘든 곳인데 이미 도굴꾼에 의해 내부가 한차례 휘저어졌고 부장품들은 도굴이 된 뒤였던 것 같다. 전해지는 말로는 신비스런 석실 안에 도굴꾼들이 두고 달아난 듯한 리시버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 고분이 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그 선명한 벽화를 어제인양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밖의 공기기 들어가지 않아 화학작용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습기,같은 공기를 환경으로 밀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짓밟아 도굴을 하는 도둑들은 너무도 귀중한 민족문화의 유산을 없애버리는 무도한 인간들이다. 벽화를 이만큼이라도 훼손하지 않았던 것은 천행인듯 하다. 꼬챙이 하나로 왕릉이든 평민의 능이든 함부로 휘젓고 무엇이든 있을 성 싶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내는 그들 도굴꾼들은 폭력조직처럼 조직이 되어 일꾼에서 장물아비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관계분야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런 불법조직이 그 동안 저질러온 비행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제 이런 범죄조직도 본격적으로 소탕할 때가 되었다. 장물 유통의 길이 막히고 감시가 철저해지면 저절로 고사해가는 것이 이런 조직이다. 그러기 위해 문화재관계 제도의 정비도 따라야 할 것으로 안다. 이번 발굴을 맡았던 문화부 산하 박물관팀들은 명문 흑서 등 무덤의 역사적 자료들을 조금 더 조사한 뒤에는 훼손을 막기 위해 다시 영구 밀폐하리라고 한다. 빈틈없이 보존되어 후세에 길이 길이 전해지는 진귀한 보물이 되게 하기를 당부한다.
  • 금관가야 첫 왕릉 발굴/스키타이계 청동항아리등 출토

    ◎김해 대성동서 【부산】 금관가야가 국가를 형성하던 시기로 추정되는 3세기말엽의 왕묘가 국내에서 첫 발견돼 획기적인 고고학적 성과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 2차 발굴을 진행중인 경성대박물관 학술조사단(단장 김무조)은 이 고분군의 구릉부 최하단에 위치한 29호분에서 국내에서 첫 출토되는 스키타이계열의 청동제항아리(동복) 1점과 장방형으로 가지런하게 배열된 토기 50여점 관상쇠도끼를 포함한 무구류 등 모두 1백여점 이상의 유물을 수습하고 이곳이 왕묘임을 확인했다. 지난해 7월 1차 발굴때의 4세기대 왕묘보다 훨씬 앞서는 3세기말엽 금관가야 국가형성기의 첫 왕묘로 추정되는 김해대성동 29호분은 동서를 장축방향으로 하는 길이 8m 너비 6m의 초대형 목관분으로 피장자의 머리와 발부분에 각각 8×6(개) 3×4(개)의 토기로 정연하게 배열하고 있는데 이같은 부장풍습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확인된 것이다. 또 무덤속에서 형태가 불분명한 흑칠기와 함께 발견된 높이 25㎝ 너비 16㎝의 청동제 항아리는 한반도에서첫출토된 스키타이계열의 청동제품이란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발굴단조사위원 신경철교수(고고학)는 『무덤의 규모와 부장품의 성격으로 볼때 왕묘가 틀림없으며 무덤이 수장급 묘역이 형성되고 있는 구릉부의 최하단에 자리잡은데다 와질토기들의 연대가 3세기말엽의 형식으로 나타나 금관가야가 고대국가로 발돋움하는 시기의 최초의 왕묘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 경관복장 2인조/음식점 4곳 갈취/“망년회비 내라”

    30일 하오5시부터 하오6시50분사이에 서울 중랑구 묵1동 169의21 「경포대횟집」 등 근처 음식점 4곳에 경찰복을 입은 30대 남자 2명이 들어와 망년회 명목으로 현금 6만5천원을 뜯어 달아났다. 이들은 경찰정복에다 위에 계급장이 없는 경찰점퍼를 입고 경포대횟집에 들어와 수갑을 꺼내 보이며 『파출소에서 나왔는데 망년회를 가지려하니 협조해달라』고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하오6시쯤 이웃 묵1동 166 「왕릉족발집」에도 찾아가 같은 방법으로 현금 1만원을 뜯어낸뒤 이웃 「명동칼국수」와 「해운대갈비」 식당에서도 각각 5천원과 2만원을 뜯어갔다는 것이다.
  • 경관 셋,부녀자 희롱하다 가스총 오발/임신부ㆍ유아 한때 실신

    ◎신고 못하게 행패까지 【전주연합】 5일 하오7시쯤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1가 88의30 왕릉휴게소(주인 김병권ㆍ50)에서 전주 북부경찰서 팔복동파출소 소장 양종률경위(53) 등 경찰관 3명과 민간인 1명이 휴게소 여주인 김양임씨(36)를 희롱하는 등 행패를 부리다 가스총을 오발,임신 6개월인 김씨와 세살난 아들을 실신시키는 등 사고를 냈다. 김씨에 따르면 이들 경찰관이 C3순찰차를 타고와 술을 달라고 해 맥주 3병을 탁자에 올려놓자 자신의 엉덩이를 툭 치며 『의자에 앉아 술을 따르라』고 해 이를 거부하고 옆자리에 돌아와 남편 김씨와 함께 밥을 먹으려는 순간 가스총이 발사되면서 자신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아들 우형군은 가스에 질식돼 까무라치면서 음식물을 토해 냈다는 것이다. 김씨는 곧 정신을 차렸으나 이들이 남편과 자신을 붙들고 신고를 못하게 하며 다시 행패를 부려 간신히 빠져나와 뒷집에서 전주경찰서 덕진파출소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행패를 부린 파출소장 양경위는 『관내 모주유소 주인 임모씨(42)가 저녁식사를 하자고해 이곳에서 만난뒤 임씨가 최근 1백40만원을 주고 독일제 가스총을 샀다며 가스총을 꺼내 만지작거리다 오발사고를 일으켰지만 여주인을 희롱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 외언내언

    세계의 음식 먹는 법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유럽·미주쪽은 스푼·포크·나이프로 먹고 회교권등과 같이 손으로 먹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동양 3국의 경우 중국·일본이 주로 젓가락만 쓰는 데 비해 한국은 숟가락까지 함께 쓴다. ◆검지손가락을 식지라 하는 걸 보면 고대중국에서도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었던 듯하다. 또 실제로 「춘추좌씨전」 속에 나오는 「식지가 움직인다」고 하는 고사가 그를 말해준다. 정나라 영공에게 인격적 모욕을 받은 공자 송이 요리된 자라를 식지로 문질러 핥아먹는다고 하는 대목이 그것. 그 고사에서 「식지가 움직인다」고 하는 말은 식욕·물욕을 가리키게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알쏭달쏭한 대목도 있다. 그 시대보다 훨씬 전인 은나라 때에 젓가락이 있었다는 기록이 보이니 말이다. 현신이었던 기자는 주왕이 상아젓가락 만드는 걸 보고서 망국을 점쳤다지 않던가. 알쏭달쏭해지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 건국신화 속에 강물로 젓가락 떠내려오는 얘기가 나오는데 「삼국지·위서」 동이전은 『왜인은 굽 달린 그릇에 밥을 담아 손으로 집어먹는다』고 적고 있다. 우리의 경우 백제 무녕왕릉에서 청동제 숟가락·젓가락이 출토된 바 있다. ◆젓가락 쓰는 동양 3국중에서 나무 젓가락을 발달시킨 나라는 일본. 짜개서 쓰는 「와리바시」(할저)문화는 우리에게도 전달됐다.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와리바시」는 2백억∼2백20억개로 추산된다. 거기 쓰이는 목재의 분량도 엄청나다. 이를 두고 얼마 전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나무를 잠식하는 일본』이라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은 『쓸모없는 나무를 사용할 뿐』이라고 맞받는다. ◆우리의 경우 「와리바시」가 「소독저」란 이름으로 특히 음식업소에 정착한 지는 오래됐다. 그동안 국내조달되던 것이 이젠 대나무로 된 수입품으로 많이 갈음된 상태. 국내업체가 속속 도산해가자 산업피해 구제신청 공청회까지 열렸다. 상공부는 과연 어느 젓가락으로 장단을 칠 것인지.
  • 외언내언

    용케 도굴 안당했었구나 하는 생각부터 난다. 김해시 대성동의 고분군에서 금관가야 왕릉을 처음으로 발굴했다는 소식에 접하면서. 열을 올린 일제가 도굴에 성공했더라면 무슨 날조를 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광개토대왕비문등을 생각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일본의 일부 국수주의 사관이 주장하는 소위 임나 일본부설은 이제 허구라 함이 정설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임나는 지정학적으로 보아 대마도였다는 「탈출구」까지 마련해 준 우리 학자(부산대 이병선교수)가 있을 정도로. 그만큼 여러 증거가 이미 땅 속에서 많이 나왔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번 왕릉발굴은 결정적 쐐기로 된다. ◆설사 허구라 해도 자꾸 입에 올리면 진실과 격이 비등해진다. 「6·25 북침설」이란 것에서 우리는 그것을 느껴온다. 『북침설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 운운하는 말부터 우리로서는 우습기 그지없는 것. 논쟁할 가치가 없는 것을 두고 억지 논쟁을 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독도는 다케지마(죽도)』라고 하는 침략주의 망령 부활론도 그 유형. 유형이 같은 임나 일본부설도이젠 한때 지껄여 본 헛소리로 쳐버리는 게 옳다. ◆그동안 가야고분은 1백여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이 지하의 실증물들은 사료 결여로 못밝힌 가야문화의 실상을 그런대로 우리에게 알려주어 온다. 가까이는 지난 88년 발굴조사된 합천군 옥전마을의 고분이나 경산군 임당고분도 그것. 옥전고분은 일본의 고분과 똑같은 것임을 보여 준 바 있다. 임당고분의 경우 순장풍습의 변천을 알게 해 주기도 했고. 이번 「왕릉」에서는 국내 최초의 파형동기가 출토되어 주목을 끌게 한다. 유물은 말 없는 말로써 가야를 설명하지 않는가. ◆가야가 땅속에서 드러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저 중원의 발해. 중국에서 유적 발굴작업이 활발하다고 전해지긴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구려 유민아닌 말갈족의 나라라 해석하는 터. 우리 학계와 함께 조사 연구하게 될 날을 기다린다.
  • 금관가야 왕릉2기 첫 발굴/김해 대성동/파형동기등 유물 대량 출토

    ◎“「임나일본부설」 뒤엎는 사료”전문가 경남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에서 4세기에서 5세기초 금관가야시대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최초로 발견됐다. 지난 6월12일부터 대성동 고분군을 발굴해온 부산 경성대조사단(단장 김무조박물관장)은 고분군의 구릉정상부에서 길이 8m45㎝의 대형 목관묘를 발견,이곳에서 각종 무구와 토기 마구류 등 유물 3백여점을 수습해 금관가야시대의 지배층 묘임을 확인했다고 10일 발표했다. 조사단은 주곽과 부곽으로 구성된 이 목곽묘에서 국내 최초로 4세기말의 금속유물인 파형동기를 발굴한 것을 비롯,통형동기 2점,철제갑위 5점,대형철정 1백50점,청동제경판부재갈 등 마구류 4점 철검 등 무구류 92점 등 지배층의 묘임을 확인할 수 있는 다수의 부장품을 찾아냈다. 또 조사단은 주곽 전면에서 지배계급에 행해지는 벽사 의식인 붉은칠(주)이 칠해진 것을 확인하는 한편 부곽에서는 고령가야 토기의 조형인 원저장경호 30여점과 다수의 갑주류ㆍ마구류 등을 발견,고분축조연대를 4∼5세기초로 추정했다.
  • 중장비 동원,마구잡이 도로공사/신라 고분 파헤쳐 말썽

    ◎부산지방 국토관리청 【경주】 부산지방 국토관리청이 국도확ㆍ포장공사를 하면서 7세기경 신라시대 왕릉급 고분을 사전조사도 하지 않은 채 중장비로 파헤쳐 말썽이 되고 있다. 20일 국립경주박물관에 따르면 부산지방 국토관리청이 지난 12일 경북 영일군 신광면 냉수리에서 영일군 기계면까지 국도확ㆍ포장공사를 하면서 중장비를 동원,지름 25m,높이 10여m인 7세기경 신라시대 대형석실고분 동쪽부분을 파헤치는 바람에 고분봉분일부와 석실벽일부가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이 고분은 지난 85년 국립경주박물관이 고분외곽지에 대한 현지답사결과 신라시대 최초의 토용 24점과 청동기 12지상이 출토된 경주시 용강동 고분과 그 형태와 구조가 비슷한데다 석실내부벽에 회칠을 한 흔적이 발견되어 석실벽에 신라시대의 명문 또는 벽화가 새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은 왕릉급고분으로 추정돼 보존되어 왔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공사도중 문화재매장 가능지역에 대해서는 사전 발굴조사를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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