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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들 “우리 문화재 지킴이로”

    기업들 “우리 문화재 지킴이로”

    기업들이 전통문화 지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종의 사회공헌 활동이며,‘문화재 지킴이’를 자처한 것이다. 시혜적·자선적으로 펴던 그동안의 기부활동에서 한 차원 높아진 사회기여 활동이다. 30일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태평양은 26일 문화재청과 함께 ‘1문화재 1지킴이’ 협약식을 갖고 다산초당·일지암·추사적거지 등에 대한 정화 및 지원활동에 들어갔다. 이로써 지난해 시작된 문화재청의 문화재 지킴이 운동에 참여한 기업은 9개사로 늘어났다. 강임산 문화재청 전문위원은 “공연·전시 등을 지원하는 메세나운동이 일회적이라면 문화재는 후손에게까지 전해진다.”면서 “외국계 기업들까지 참여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설록차로 녹차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태평양은 조선시대에 차를 통해 우리의 정신 문화를 선도해온 일지암(초의선사), 다산초당(정약용), 추사적거지(김정희)의 정화와 홍보 등을 지원한다. 또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인 소반장(小盤匠·부엌가구 소반을 만드는 장인) 기능보유자 이인세(78)옹의 지원을 통해 전통의 맥이 이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서경배 태평양 사장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문화재와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 되고자 하는 차원에서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9월 문화재 지킴이 운동에 뛰어든 포스코의 경우 민간의 전문 기술을 문화재 관리에 접목한 대표적인 사례다. 철 보존처리와 조사·분석기술이 세계적인 포스코는 철불·철당간·철종·동종 등 국가지정 금속문화재 69점에 대한 조사·분석을 통해 데이터 베이스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문화재청을 비롯한 학계의 숙원 사업이었지만 전문 인력과 기술, 그리고 예산 부족으로 그동안 난항을 겪어왔던 분야이다. 포스코는 나아가 조사·분석된 금속문화재에 대해 부식의 진행 정도 등을 전문가 모니터링 등을 통해 주기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또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DMZ안에 있는 ‘경의선 증기기관차 화통’(등록문화재 제78호)의 영구보존 처리작업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기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문화재 지킴이 운동에 나선 한화리조트는 전국의 콘도미니엄과 골프장 관리 기술을 문화재 관리 보호에 접목하고 있다. 골프장 관리기술의 핵심인 잔디관리 기술을 왕릉의 잔디에 적용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잔디관리는 문화재보호법상 ‘경미한 수리행위’에 해당돼 문화재청의 전문성이 부족했던 분야로, 한화리조트가 나섬으로써 잔디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관리가 가능하게 됐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8월 가스관련 업종의 특성을 살려 화재와 폭발 등에 취약한 전국의 민속마을과 문화재 자료 등을 관리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사람이 살면서 LP가스를 사용하는 문화재들을 대상으로 가스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오는 4월 조흥은행과 합병하는 신한은행 역시 전국 1000여 지점에서 문화재청의 소식지를 비치함으로써 금융고객을 문화재청의 정책 고객화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본점과 가까이 있는 국보 1호 숭례문을 지킴이 대상으로 삼고 박석(薄石) 기증을 약속했다. 이밖에 삼성화재 콜센터가 경복궁을, 현대건설이 창덕궁을, 한국관광공사가 청계천을 지킴이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한국이 도우미로 나섰다

    한국이 도우미로 나섰다

    개성·평양 등을 유네스코 ‘역사도시’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에 우리 당국이 노하우 전수 등을 통해 돕고 있는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북한이 개성의 문화유산 지역을 묶어 유네스코 역사도시 등록을 추진한 것은 2002년부터. 남한이 2000년 경주 역사유적지 6곳을 묶어 유네스코 ‘역사지구’로 등록시키자 북한도 관심을 갖게 됐고, 남북한이 학술·문화교류를 통해 개성부터 공동추진하게 됐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북한은 선죽교·공민왕릉 등을 묶어 개성의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등록마감인 오는 2월1일까지 북한이 등재 신청을 할지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네스코는 매년 2월까지 등록 신청을 받으면 이듬해 6월 총회에서 등록 가부를 결정한다. 이 관계자는 “2004년 7월 총회에서 평양에 있는 고구려 고분군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평양을 역사도시로 등록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서울을 역사도시로 등재하려는 한국이 지난해 10월 유네스코 총회에서 이사국으로 뽑힘에 따라 남북 세계유산 등록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관계자는 “통일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서울과 개성, 평양 등에 대한 등록을 함께 추진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앞으로도 남북 세계유산 등록을 위한 공동작업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에 등록되는 ‘역사도시’는 개별 유적이나 기념물이 아닌, 문화유산이 밀집한 지역을 묶어 등재하는 것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문화유산’에 포함된다. 현재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137개국에서 총 812건을 등록했다. 이 중 ‘문화유산´은 628건이며 ‘역사도시´는 135건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경주로 놀러갈 맛 나겠네”

    경북 경주시는 23일 일부 사적지에 대해 시범적으로 무료 개방하는 등 관광객과 시민들의 관람편의를 확충키로 했다. 시는 8개 사적지구 중 신라 원성왕 무덤인 외동읍 괘릉(사적 제26호)과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 탄생설화가 깃들인 동부사적지내 계림숲을 시범적으로 무료 개방했다. 오는 9월1일부터 민간위탁 관리가 끝나는 전(傳)김유신장군 묘와 태종무열 왕릉, 경주남산 입구 삼불사 등의 유료주차장 3곳을 무료운영키로 했다. 시는 올해 이들 사적지 등에 대한 무료개방이 성공적으로 운영될 경우 내년부터 확대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이는 종전 8개 사적지구 및 주차장 등을 찾는 관람객(경주시민 제외)들에게 관람료(500∼1500원)와 주차료(소형 1000원, 대형 2000원)를 물려온데 따른 불편 해소와 우수한 사적지 등을 널리 알리기 위한 조치이다. 경주시는 올해 총사업비 15억원을 들여 경주남산(사적 제311호)의 폐탑과 불상 등 산재한 불교 문화유적과 탐방로, 이정표 등을 새롭게 정비하기로 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경기 서북부 관광벨트 만든다

    경기도는 17일 수도권지역의 급증하는 관광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양시 장항·대화동 일대에 조성되는 한류우드와 파주 영어마을 등을 포함한 서북부 지역을 관광코스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는 이를 위해 올해부터 매주 ‘평화와 통일의 현장속으로’라는 주제로 고양국제전시장(KINTEX)∼파주 장단콩마을∼제3땅굴∼도라산전망대를 연결하는 코스와 ‘호수공원과 선인장’이라는 주제로 킨텍스∼중남미문화원∼선인장연구소∼호수공원을 잇는 관광코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또 고양 주주동물원, 민들레 체험장, 허브랜드, 자운서원, 고려 공양왕릉, 원당 종마공원 등을 테마별 관광상품으로 개발키로 했다. 도는 이와 함께 헤이리 예술마을, 파주 출판단지, 파주 LG 필립스 공장, 파주 축구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 등도 가족단위 체험관광코스에 포함시킨다는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주5일 근무의 확산에 따라 수도권 지역 관광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파주·고양 지역은 서울과의 접근성과 프로그램면에서 높은 상품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혼잡 피해 미리 성묘를”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장묘문화센터는 설 연휴인 28∼30일 경기 파주시 용미리묘지 등 시립묘지 5곳에 성묘객 9만 5000여명, 차량 2만 6000여대가 몰려 혼잡이 예상된다고 8일 밝혔다. 묘역별로는 용리미1묘지에 차량 1만 5000여대, 용미리2묘지에 6300여대, 경기 고양시 승화원에 1900여대, 경기 파주시 벽제리 묘지에 750여대, 서울 망우·내곡리 묘지에 980여대가 각각 찾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설 연휴 자동차를 이용해 이들 묘역으로 성묘를 가기 위해서는 평소의 10배 안팎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센터 관계자는 “용미리묘지의 경우 평소 구파발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이 기간에는 4∼6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혼잡을 피하려면 미리 성묘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을 권유했다. 센터는 성묘객 편의를 위해 이 기간에 오전 7시30분∼오후 6시 용미리1묘지 옥미교∼왕릉식 추모의 집과 용미리2묘지 혜음령식당∼용미리 추모의 집 구간을 오가는 무료 순환버스를 각 2대씩 운행한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조선왕릉등 53기 세계유산 등재 신청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최근 조선시대의 왕릉과 원 53기를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해 달라고 유네스코에 신청했다고 4일 밝혔다. 조선의 왕실과 관련된 무덤은 ‘능’(陵)과 ‘원’(園)으로 구분되는데 왕릉으로 불리는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등의 무덤이다. 이런 왕릉과 원들은 강원도 영월의 장릉, 경기도 여주의 영릉과 녕릉 3곳 외에는 모두 서울(옛 한양)에서 40㎞ 이내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왕릉 40기, 원 13기가 남아 있다.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인 유교에 근거해 조성된 왕릉과 원은 시대변화에 따라 능원 공간의 조영(造營) 형식도 함께 변모하는 등 시대정신의 변화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왕과 왕비 등에 대한 제례인 산릉제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청정한 사찰서 해돋이 볼까

    ‘템플스테이’로 새해를 맞아볼까?연말연시는 항상 붐비기 마련이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 청정한 산사에서 하루쯤 쉬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좋겠다. 전국 사찰들이 마련한 새해맞이 ‘템플스테이’는 해맞이·타종행사를 비롯, 명상·등산·음악회·청소년 기공수련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병술년(2006년) 새해맞이 템플스테이가 31일부터 내년 1월1일까지 전국 20여 사찰에서 열린다. 전남 해남 땅끝마을 미황사는 내외국인 100명을 대상으로 ‘해넘이 해맞이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영화상영과 제야의 타종, 달마산 등반, 떡국잔치 등으로 구성된다. 경북 경주 골굴사는 불교의 대표적인 무예수련인 선무도(禪武道)와 기공수련, 동해안 문무대왕릉 해맞이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충남 공주 마곡사는 아침예불, 태화산 정상 신년법회 등 새해맞이 행사를 마련한다. 공주 갑사 템플스테이는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포살법회와 새해 서원 촛불기도, 단체 투호놀이, 신년 축하 박 터트리기, 새해 소원 성취 철야정진기도 등으로 진행된다. 충남 예산 수덕사도 탑돌이·온천체험·산행 등을 제공한다. 이밖에 나주 불회사의 ‘아니짜 명상체험’, 동해 삼화사 ‘일출과 함께하는 겨울여행’, 안동 봉정사 ‘가족 해맞이 산행’, 서산 부석사 ‘서산 철새 탐조’, 공주 영평사 ‘국악한마당’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참가는 템플스테이 홈페이지(www.templestay.com)나 사무국(02-732-9925∼7)으로 문의, 신청하면 된다. 참가비는 1박2일 기준 2만∼5만원 수준이며, 세면도구·운동화 등은 필수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이슈로 본 2005 문화계](3)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성적표

    [이슈로 본 2005 문화계](3)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성적표

    “그가 아니면 누가 문화재에 관심이나 가졌겠어요?”“너무 마이크를 자주 들고 ‘오버’하는 거 아닙니까?” 취임 1년3개월째를 맞이한 문화재청 유홍준 청장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다. 민간인 출신의 문화재청장으로,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을 벌여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만큼 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동안 소외된 문화재와 문화재청의 존재를 외부에 알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취임 이후 ‘문화유산이 국민에게 힘과 꿈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유 청장의 노력을 짚어보고, 바라는 점도 들어봤다. ●문화재정책 혁신에 큰 역할 유 청장이 문화재청에 입성하면서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문화재행정의 개혁이다. 문화재를 ‘골동품’으로 다루는 고리타분한 접근에서 벗어나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문화재정책을 수립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문화재 1지킴이 운동’. 일반기업들이 주변 문화재를 보호하고 가꾸는 기회를 제공, 문화재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5월 한화종합개발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신한은행·현대건설·포스코 등 8개 업체가 1지킴이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참여 기업들이 지속적인 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문화재청이 교육·지원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 숙제로 남아있다. 독도 입도 완화를 비롯, 경회루 누마루 등 궁궐내 주요 전각 개방, 조선왕릉 능침 및 산책로 개방 확대, 문화재 발굴·보수현장 공개, 궁·능·유적관리소 관리요금 현실화 등 각종 규제 완화·개선조치도 국민들이 문화재를 더욱 가까이서 보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유 청장의 아이디어였다. 또 지난해 9월 취임과 함께 공표했던 ‘문화재종합병원 설립’도 200억원의 예산을 따냄으로써 가시화하고 있으며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절차 단순화, 문화재 국외반출 허가제도 및 동산문화재 지정절차 개선, 중요문형문화재 명예보유자 인정제도 실효화 등도 문화재정책 혁신의 본보기가 된다는 평가다. ●‘마이크’활동, 도마에 올라 ‘걸어다니는 문화재청 홍보맨’,‘마이크청장’ 등 그에게 붙은 수식어는 다양하다. 대부분 정책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직접 나서 기자들이나 관계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생긴 별명이다. 대전 시민을 위한 ‘문화유산강좌’를 비롯, 국립고궁박물관 투어 등을 직접 가이드하면서 현장행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왕성한 활동만큼 구설수도 많았다. 지난해 말 익산 미륵사지 동탑이 최악의 문화유산 복원사례라며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버리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언급, 주위를 놀라게 했다. 올해 초 광화문 현판 교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충사는 박정희 기념관 같은 곳”이라고 발언, 각계의 비난을 받자 사과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정부대표단으로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북한영화 주제곡을 불러 국민의 정서에 반했다는 질책을 받는 등 ‘혼자 너무 튄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8월에는 통영 해저도로를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통영태합굴’이라는 친일 명칭을 써 논란을 빚자 사과문을 내고 명칭을 바꾸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최근 불거졌던 ‘국보1호’ 교체와 관련,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에 앞서 “1호를 바꿀 수도 있다.”는 성급한 발언을 해 정책 추진에 있어서 ‘엇박자’모습을 보였다. ●“다양한 의견 더 수렴해야” 유 청장의 화려한 공적만큼이나 그에 대한 평가와 기대도 많은 것이 사실. 그와 오래 알고 지냈다는 문화재위원회 한 위원은 “유 청장이 여러가지 일들로 도마에 올랐지만 미술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출신으로서 문화유산 마케팅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가 진정한 ‘문화재 가이드’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관계자는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획기적으로 바꿨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면서 “그러나 ‘나홀로 개혁’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온고지신’을 새겨 원로급과 중진급, 신흥 인적자원의 네트워크를 골고루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문화재청 조직의 변화와 문화유산 대중화 등은 인정받을 만하나 여론수렴 과정이 지나치게 편중된 것이 사실”이라면서 “미술사만이 아니라 건축사·고고학 등에서도 내실을 다지려면 ‘단독 플레이’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수렴, 신중한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정부 기록사진집’ 9권 발간

    ‘정부 기록사진집’ 9권 발간

    국정홍보처는 5일,1971∼1972년 정부 활동상을 담은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제9권 1500부를 발간, 중앙·지방행정기관, 국·공립도서관, 박물관, 언론사 등에 배포했다. 사진집에는 국정홍보처와 국가기록원이 보관해 오던 정부의 주요행사 사진 가운데 엄선된 368장이 수록됐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동정을 비롯, 새마을운동, 서울지하철 1호선 기공식, 백제 무령왕릉 발굴 공개,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 비상 계엄하의 서울시가 표정 등이 담겼다. 국정홍보처는 1999년 5월 첫 권을 발간한 뒤 해마다 1∼2권씩 정부 기록사진집을 발간해 오고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실크로드 동쪽 끝은 한반도”

    “실크로드 동쪽 끝은 한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한국을 보면 동쪽 끝에 외따로 박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래서인지 한국 하면 조용히 숨어있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서구중심적인 사고에 지나지 않을 뿐, 한국은 이미 오래전 세계화된 국가였다는 주장이 있다. 바로 실크로드를 통해서다. 이 문제를 짚기 위해 중앙아시아학회(회장 김호동 서울대 교수)는 4∼5일 이틀간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단순히 ‘비단 상인들의 길’이 아니라 ‘문명의 흐름’으로서 실크로드를 재조명해 보자는 것이다. 미리 배포된 발제문에서 고려대 정수일 초빙교수는 실크로드의 확대를 제안했다. 실크로드가 처음 드러난 것은 중국~인도간 교역로로서다.19세기말 탐험가들이 발견했다. 그 뒤 발굴과 탐험이 잇따랐고 이 길은 중국 시안에서 시리아의 팔미라에 이르는 기다란 길로 다시 태어났다. 이 길은 점처럼 흩어져 있는 오아시스를 잇는다 해서 흔히 ‘오아시스로’라고 불린다. 우리가 흔히 실크로드 하면 떠올리는, 모래바람부는 사막을 걸어가는 기다란 상인들의 행렬과 같은 이미지는 바로 이 오아시스로에서 온 것이다. 그러다 연구가 더 깊어지자 다시 북방초원지대를 통하는 ‘초원로’와 지중해에서 중국 동남해안에 이르는 ‘해로’ 개념도 등장했다. 이외에도 숱한 교역로가 확인되면서 이제 실크로드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 숱한 길들이 됐다. 정 초빙교수는 여기에다 아예 전세계를 뒤덮는 길로 실크로드를 재조명하자고 제안했다. 실크로드는 아시아와 유럽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대륙까지 연결됐다는 것이다. 그는 16세기 ‘대범선 무역’을 그 증거로 삼았다. 필리핀을 기점으로 중남미의 백은과 중국의 비단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정 초빙교수는 실크로드의 동쪽 끝을 중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조선과 고구려, 신라의 중국과의 교류를 보면 오아시스로와 잇대어 있다는 것이다. 해로 역시 유물로 증명된다. 백제왕릉에서는 동남아 특산 유리구슬이 나오고 중세 아랍문헌에서는 신라의 수출품목들이 나열되어 있을 정도다. 초원로는 아직 관련 연구가 부실해 명확한 증거만 없다뿐이지 활발하게 이용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 교수는 이런 증거들을 모아 실크로드가 한국까지 이어졌고 이것이 ‘세계 속의 한국’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소그드족을 가리키는 단어,胡 중국 왕조 가운데 국제적 교류가 가장 많았던 당나라에는 유독 ‘호(胡)’자가 들어간 것들이 많다. 호복(胡服)·호식(胡食)·호악(胡樂)·호선무(胡旋舞)·호희(胡姬)….‘오랑캐’라는 뜻에서 짐작할 수 있듯 중국이 북방 이민족을 부를 때 흔히 쓰이는 단어다. 그런데 일본 오사카대학 모리야스 다카오 교수는 당나라 때는 이 ‘호’가 바로 중국 서쪽에 있던 소그드족을 가리키는 단어였다고 주장한다. 소그드족은 중앙아시아 상인들로,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을 주도한 사람들이다. 다카오 교수가 보기에 실크로드에 대한 당나라의 입장은 들쭉날쭉하지만 그래도 일관되게 소그드족을 가리키는 단어로 ‘호’를 썼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바로 개국 초기 쇄국하고 있던 당나라가 시야를 넓혀 가고 있었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이외에도 이주형 서울대 교수, 우지용 신간문물고고연구소 연구원, 밸러리 핸슨 예일대 교수 등이 실크로드와 불교미술·복식·역사를 다룬 주제들을 발표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아기 고향 평양 자주 갔으면… ”

    “아기 고향 평양 자주 갔으면… ”

    만약 당신이 북한 여행 중 아기를 낳았다면 이름을 뭐라고 지을 것인가. 지난 10일 평양관광차 방북 중 딸을 낳았던 황선(32)씨의 시아버지 윤범노씨는 25일 손녀 이름으로 “‘겨레’나 ‘동명’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윤씨는 이날 남쪽으로 귀환한 며느리를 마중 나간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동명’은 황씨가 동명왕릉 참관 중 진통이 시작된 데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황씨는 이날 오전 9시 평양산원에서 퇴원한 뒤 육로를 이용해 낮 12시10분 아기를 안고 판문점을 통과했다. 황씨는 판문점까지 따라온 북측 간호사로부터 꽃다발을 받으며 작별인사를 나눈 뒤 마중 나온 첫째딸 윤민(1)양,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등과 재회했다. 이어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입국 수속을 밟았다. 황씨는 평양산원이 발급한 ‘해산통지서’를 제시하고 검역과 출입국심사, 세관심사를 거친 뒤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이 보낸 축하 화환을 받았다. 해산통지서에는 황씨의 인적사항과 딸의 출생 일시(10월10일 오후 10시), 예방접종 사항, 출산 당시 수술기록 등이 적혀 있었다. 태어난 지 16일째인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밝은 표정의 황씨는 “아기가 고향인 평양에 자주 놀러갈 수 있도록 남북관계가 발전되기를 희망한다.”며 “내년 첫돌엔 아빠(수배중인 남편 윤기진씨)와 함께 평양관광을 갔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딸의 작명에 대해서는 “뜻깊게 지어야 하기에 고민이 많이 된다.”며 “가족끼리 모여 회의를 해봐야겠지만 평양에서 난 첫 아이인 만큼 민족의 소망을 담을 수 있는 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이어 임진각으로 이동, 통일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마련한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황씨는 “2주간 세수 한번 못할 정도로 엄격한 산후 관리로 행복한 감금생활이었다. 밤에 간호사가 침대 옆에서 함께 잘 정도로 정성을 다해 준 평양산원 의료진에게 감사한다.”며 “오늘 아침 떠날 때도 간호사들이 눈물 바다를 이룰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황씨는 북에서 받은 선물 박스 2개를 가져왔는데, 아기용 이불·베개와 꿀, 경옥고,‘고려장수보약’ 등 보약, 그리고 만수대창작사에서 그려준 황씨 모녀의 초상화가 들어 있었다. 황씨는 1998년 평양에서 열린 8·15 통일대축전에 한총련 대표로 방북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으며, 현재 민간단체인 통일연대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사막에서 길을 묻다

    사막에서 길을 묻다

    우리는 달렸다. 타클라마칸, 그 죽음의 사막을 향해. 자갈길을 가로지르고 강을 건너 5000여 ㎞를 내달렸다.‘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살고 싶지 않은 자와 미친 자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는 그 사막을 향해. 그러나 15박16일을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려 간 그 사막 입구에는 ‘황량한 사막은 있어도 황량한 인생은 없다’, 그렇게 씌어 있었다. 붉은 글씨로. 아, 아 그렇지! 황, 량, 한 인생, 은 없지…. 마치 달려오던 가속도를 어쩌지 못해서인 듯, 온 몸이 앞으로 울컥 쏠렸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섰다. 등골에서 짜르르 전류가 흐르는 듯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가 홀린 듯 이 먼 길을 내달아 온 것은 이런 글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막을 꿈꿔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삶의 고비마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낯익은 영상이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햇살이 온 몸에 쏟아진다. 마른 먼지가 콧속을 파고들며 숨을 막고, 입안에선 으적으적 모래가 씹힌다. 갈증은 이미 오래전에 통증으로 바뀌었고, 모래밭은 펄보다 더 힘겹다.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나름대로 비장하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에서 한껏 더 상상력을 부풀려 본다. 마침내는 햇살에 바래고 모래먼지에 찌든 내 신발 코 끝에, 죽은 자의 늑골이 아른아른 겹쳐 보일 때까지. 그런 극한점에 맞서보고 싶었다. 이 여행에 대한 제의를 받은 건 7월 초였다.8박9일 일정의 실크로드 패키지 여행을 준비하던 내게, 여행자들이 한국에서 가져간 지프를 직접 몰아 중국 대륙을 횡단한다는 프로그램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사막에서의 야영이라니! 앞뒤 생각 없이 큰소리로 “네!”해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처음부터 28일 전 일정을 참가해야 한다고 했다면 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사나흘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열흘도 아니고. 난 그렇게 오랫동안 내가 없는 우리 집을, 학교를, 나를 둘러 싼 크고 작은 일상들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전 일정은 한 달쯤 되나 봐요. 하지만 그걸 다 따라 다닐 수 있으시겠어요. 앞 뒤 자르고 한 8박9일 정도면 어떠세요?” 그렇게 시작했지만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일정은 길어졌다. “근데 한 보름은 되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으시겠어요?” “보름이나 이십일이나…. 근데 이런 여행 쉽지 않거든요.” “따로 돌아오실 비행기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네요.” “29일 날 도착한다고 각오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 난 이미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주사를 맞았고, 짧은 반바지에서 겨울 점퍼까지를 꾸려 짐을 싸둔 다음이었다. 가슴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었다. 심호흡을 한 뒤 대답했다. “좋아요.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엄살기 가득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행은 톈진항에서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현장법사가 불전을 구하기 위해 간 길, 바리데기 공주가 죽은 자를 살릴 샘물을 구하기 위해 지나간 길, 고선지 장군이 서역 정벌을 위해 나선 길, 실크로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건,‘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지나간 길, 실크를 비롯한 동서양의 온갖 것들이 교류한 이 길…. 이 길을 다섯 대의 지프가 달린다는 것이다. 오프로드를 포함해서 하루 몇백㎞를 달리고 또 달리다가,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서, 바다만큼 큰 호수를 만나면 호숫가에서 야영을 한다는 것이다. 멋지다. 하룻밤을 배에서 자면서 톈진에 도착한 다음, 베이징, 타이위안, 시안, 란저우, 우웨이, 금창, 바단지린 사막, 가우대, 청수, 주취안, 둔황, 하미, 투르판, 우루무치, 쿠얼러를 빠르게 지나쳐 마침내 타클라마칸 사막에 닿았다. 인천항을 떠난 지 열엿새 만이었다. 그러나 타클라마칸은 예전의 타클라마칸이 아니었다. 사막 한가운데로 잘 닦인 아스팔트가 서늘할 만큼 시원스레 뚫려 있고, 몇㎞ 간격으로 물탱크를 포함한 대피소가 줄지어 있었다. 그 옛날, 나는 새도 통과하지 못한다는 그 타클라마칸은 이미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녹록지 않은 타클라마칸은 카라부란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 옛날 죽음의 모래바람이라 불리던 카라부란이다. 타클라마칸에 진입했다는 흥분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사막 깊숙이 자리를 잡고 서둘러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모래 바람이 일었다. 처음엔 코펠이 뚜르르 굴렀다. 뒤이어 텐트가 뿌리 뽑힌 풀단처럼 힘없이 날아가 버렸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흙탕물에 빠진 것처럼 시야가 흐려졌다. 서둘러 지프에 달려 올라가 문을 닫았다. 설마 지프는 안 날아가겠지.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나는 눈을 감았다. 솩, 쉬르르 차창에 부딪치는 모래바람의 소리가 여전했다. 대개 중국쪽 실크로드의 시작을 서안이라고 본다.1000여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던 도시. 장안이라는 옛 이름을 가진 이 도시는, 농사짓는 것보다 농사짓다 발견한 유물을 내다 파는 것이 더 낫다는 고도이다. 서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죽은 진시왕의 잔영이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13세의 어린 나이에 진왕에 즉위하였으며 39세에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통일 국가를 세운 사람.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스스로를 ‘태황의 황과 오제 제’를 따서 황제라고 칭하고, 자신을 시황제라 부르게 명 한 사람. 그는 선남선녀를 골라 불로장생할 선약을 구해오라는 전대미문의 특명을 내리고, 또 한편으로는 즉위하자마자 죽을 때까지, 자신의 묘가 될 지하궁전을 팠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 무덤은 ‘관은 동으로 주조했고 무덤 내부에는 각종 보석으로 궁전과 누각의 모형을 세웠다. 수은으로 바다와 강을 흐르게 했고 천장에는 진주를 아로 새긴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어 달았다.’고 전해진다.30만명이 석 달 동안 왕릉에 보물을 실어 날랐다 한다. 그는 또 죽은 다음에 자신을 지킬 군사들을 만들어 도열시켰다. 보병, 전차대, 포대로 이루어진 신장 180m안팎의 실물크기 흙 인형 수천명으로 지하군단을 만들어 자신의 능에서 1.5㎞ 떨어진 거리에 배치해 두었다.1호 갱에 약 6000명,2호 갱에 약2000면 3호 갱에 68명의 테라코타 병사가 사열해 있다. 결국 그는 여러 형태의 ‘영생’을 준비한 것이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그 넓은 대륙을 통일한 젊은 왕에게 아쉽고 그리운 것이 그 영화를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생뿐, 더 무엇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들을 만든 진시황의 백성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나라는 3대 15년 만에(항우에게)멸망하였다. 문자, 도량형, 화폐를 통일하고, 그 시절에 전국적인 도로망을 거미줄처럼 짜고, 운하를 파고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을 짓는 등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 이 황제와 관련된 유적은 그러나 아직 다 발굴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가이드는 그때와 공기가 달라 유물이 상할 염려가 있고, 무덤 안에 함정이 많고 엄청난 양의 수은이 있어 위험하며, 후손들이 먹고 살 관광 자원을 남겨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고, 한쪽으로는 기술이 부족해서 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미확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예전에, 중국을 방문한 일본 총리가 그 유적 발굴을 제안했다 한다. 일본의 기술력을 제공할 테니 발굴한 보물의 3분의1을 달라고. 주석이 껄껄 웃으며 ‘이 안에 든 보물이면 네 나라 전부를 살 수도 있을 거다.’고 대답했단다. 그 조상에 그 후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벌컥, 차문이 열리면서 남대장이 소리쳤다. “바람 없어졌어요. 나오세요!” 어느새 눈앞에는 사막의 밤이 펼쳐져 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별이 튕겨져 나올 듯 반짝였다.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어디 타클라마칸뿐일까. 때때로 살고 싶지 않고 미칠 듯한 기분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사막에 발을 내디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량한 인생은 없다.’는 믿음으로. 죽음의 카라부란은 멈췄고, 모래는 아직 따뜻했다. 그리고 사막의 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웠다. ●글쓴이 이윤희 교수는 동화작가, 문학박사,‘아침햇살’발행인. 인천재능대 아동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작품집으로는 ‘네가 하늘이다’‘꿈꾸는 호랑이 우화’를 비롯한 철학동화시리즈 18권 등이 있다. ■ 무선통신, 날아오다 2004년8월2일 11시, 인천항 실크로드 오버랜드 원정대는 8월2일 오전 11시에 인천항 제2부두에 집결했다. 출발 인원은 총 12명, 한국인 10명과 터키인 2명이었으며, 중국에서 터키인 1명과 중국인 5명이 합류할 예정이다. 거추장스럽고 부피스러운 짐은 이미 지프에 실어 앞서 보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순조로운 출항이다. 8월3일 13시. 천톈항 서둘러 천톈항 출구에 섰다. 까마득한 멀리에는 인천을, 가까이에는 25시간 동안 우리를 싣고 온 여객선 진천 페리를 등 뒤에 둔 채다. “와!” 거기, 중화인민공화국 천진항 광장에, 먼저 도착한 차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5대였다.4+4 SILKROAD EXPEDITION.TRANS TACLAMAKAN.ROK 스티커 글씨가 도드라졌다. 눈이 부셨다. 그리고 비로소 가슴이 뛰었다. ‘아아, 드디어 시작이다! 이동거리 1만㎞를 훌쩍 넘는 28일간의 여행. 우리차로 실크로드를 달린다! 중국을 횡단한다!’ 나는 사뭇 뛰었다. 지프를 향해. ★중국의 4대미인은 누구?(답? 곳곳에 숨어있어요^^) 8월3일 15시, 베이징을 향해 우리차가 달린다. 중국 고속도로를 시속 100㎞로. 창문을 모두 열어 젖혔다. 나,58년 개띠. 오프로드 여행 경험 전혀 없음. 대학교수. 유부녀…. 그러나 그 순간 이 모든 것을 잊었다.‘우리는 간다, 하늘도 부른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은 유리처럼 투명했고, 살짝 따가웠다. 승차 배치도 진행차:다이장(중국측 여행사 사장), 도용(현지 가이드). 살인미소(중국인 정비사). 여성스태프 1호차: 남대장(38·오버랜드 대표), 나(유니), 비니(34·스태프, 통역). 진피디(29·스태프, 영상담당)·2호차:한·최 안젤라 부부(47,45·사업가)·3호차:최 노익장(67·독일 국적의 CEO), 김원장(50·복지시설 운영)·4호차:임 흑기사 부자(51,29·사업가, 대학생)·5호차:하칸(29·터키인 사업가)등 터키인 일행 ●답(1) 그녀의 자태에 꽃이 부끄러워 스스로 잎을 말아 올렸다는 양귀비(수화·羞花) 8월4일 14시, 베이징 베이징에서 합류하기로 한 터키인 일행 하나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는 사이, 캔맥주가 돌았다. 남대장:수도자가 고행을 하는 마음으로 이런 여행을 합니다. 일종의 종교 의식이지요. 한·최 안젤라 부부:모험이잖아요. 꿈꾸는 듯한. 임 흑기사 부자: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최 노익장:중국을 횡단이라, 정말 멋지잖습니까? 더구나 내 차로 직접 운전을 하는데! 김원장:새로운 패턴의 여행이라서요. 하칸:어린 시절부터 실크로드를 꿈꿔 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그 꿈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가슴이 뜁니다. 그들의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이 캔 맥주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맥주를 홀짝거리며 서유기를 생각했다. 불전을 구하러, 혹은 죽은 자를 살릴 생명수를 구하러 이 길을 지났을 삼장법사와 바리데기 공주를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상인과 기술자와 병사와 예술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빌었다. 그들의 꿈과 사랑이 먼먼 후손인 내게도 자지러지도록 생생하게 전해지기를. 그리하여 그로인해 내 삶이 얼마간 풍요롭고 따스해지기를. 브라보! 우리는 다시한번 맥주 캔을 맞부딪쳤다. ●답(2) 그녀가 강변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니 그 아름다움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서시(침어·沈魚) 8월5일 14시, 시안 가는 길 그러나 정말 쉽지 않았다. 온갖 것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느닷없이 나타나는 ‘공사중’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렇다 칠 일이 아니다.‘공사중’이 너무 많았다. 아니 중국 전역이 ‘공사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더구나 그들은 지나는 차량에 대해서는 아무 배려가 없었다. 아무런 안내나 대안 제시도 없이 길 전체를 막아버린 곳도 몇 군데 있었다.‘우리는 지금 공사를 하고 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가라’는 식이었다.)곳곳에서 만나는 비포장도로도 또 그렇다 치자.(왜냐하면 땅이 너무 넓어서 포장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데 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그러나 포장도로도 비포장 못지않게 차를 널뛰기하게 만든다는 것은 좀 그랬다. 자세히 보니 아스팔트가 바퀴 자국을 따라 깊게 패었다. 과적 차량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과적을 하지 않은 트럭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물동량이 움직이고 있었다!(하긴 우리 팀도 과적을 했다. 우리는 짐에 치여 쪼그리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28일간의 긴 여행’,‘사막에서의 야영’이라는 점에 모두들 긴장한 탓이었다.) 먼지와 매연도 문제였다. 그리고 따끔거릴 만큼 지독한 햇살과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높은 온도, 장거리 주행 등이 엔진을 과열시켰다. 우리는 심통 난 아이 달래듯 차를 달래가며 몰았다. 그래도 어떤 차는 가끔씩 푸쿠쿡, 키다닥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속력을 떨어뜨렸다. 아슬아슬했다. 8월6일 15시, 화청지 마침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온갖 사치를 즐기며 장안과 화청지를 오가며 세월을 보내곤 했다는 설명을 듣고 있는데, 터키인 일행의 사고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 이틀 다른 곳을 들렀다가 합류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교통사고. 정비 불량과 과속으로 인한 전복 사고란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일행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막 본격적인 시작인데…. 게다가 그중에는 터키의 ‘정주영’이 섞여 있단다. 선박회사를 17개인가 갖고 있고, 보험회사를 또 몇 개 갖고 있고 그리고…. 그런 사람이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려다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웠다. 터키엔 여행사가 없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중국 서쪽, 우리가 흔히 ‘서역’이라고 부르는 그곳이 터키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와 연변 조선족과의 관계와 비슷한. 그래서 터키인들은 그쪽 지방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터키인들이 그들, 소수민족을 부추겨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예를 들자면 독립운동 같은,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동의할 수 없는)을 할까봐 여행을 허가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들 틈에 슬쩍 끼어서 그곳을 가려 했는데 그만 사고가 난 것이었다. 첫 번째 대형 사고였다. 8월7일 10시 40분, 란저우 가는 길 막히는 길을 가까스로 통과해 주유소에 도착했다.“날씨까지 꾀죄죄하네요.”기름을 넣고 있는 차들 뒤에서 고개 돌리기를 하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데, 아들 흑기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랬다. 하늘빛은 칙칙하고 우리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이심전심일까?안젤라의 남편 한씨가 장난기를 발동시켰다. 기름을 넣고 있는 자기 차 보닛에 검은 색 보드마커로 ‘갑시다, 실크로드!’라고 휘갈겨 썼다. 그러고는 부인 안젤라에게 펜대를 넘겼다. 안젤라는 ‘타클라마칸을 향해서!’ 썼다. 모두 신났다. 최 노익장은 당신 차 이마에 해골표시를 그려 넣었다. 남대장은 인천에서 출발하여, 다시 인천까지 오는 전 일정을 차에 뺑뺑 돌아가며 써 넣었다. 나는 자꾸만 꾸르륵거리는 차 콧잔등에 ‘잘 달려라, 착하지. 말썽피지 말고!’라고 썼다. 그리고 슬그머니 쓰다듬어 주었다. 8월9일 12시, 무위 ●답(3) 그녀가 비파를 연주하니 기러기가 그 용모를 보느라 날갯짓하는 것도 잊고 땅에 떨어져 버렸다는 왕소군(낙안·落雁) 8월9일 12시, 무위 그러나 차는 여전히 불안 불안했다. 한 팀은 차를 정비하고, 나머지 한 팀은 장을 본 후 점심을 먹었다. 양갈비찜이 나왔다. 찌그러진 넓적한 양은그릇에 큼지막한 살덩이가 붙은 양 갈비 한 개가 담겨있는 것이, 꼭 개밥 같았다. 저녁에 있을 사막에서의 야영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8월10일 12시30분, 바단지린 사막 야영을 잘 끝내고 사막을 빠져나오려는데, 갑자기 2호차 꽁무니에서 검은 연기가 쿨룩쿨룩 쏟아졌다. 또 다른 대형 사고였다. 엔진은 정지했고,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고장난 차는 1호차가 견인해서 정비소로 가고, 나머지는 사막에서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늘 한점 없는 땡볕아래 햇살은 점점 강해지고, 끼니때가 되었는데도 식당은 멀디 멀었다. 우리는 임시 휴게소를 만들었다. 남은 차 둘을 나란히 대고 , 그 위에 텐트를 덮어 그늘을 만들어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라면을 끓이고 커피를 탔다. “죽인다, 커피향!” 우리는 애써 큰소리로 웃어댔다. ●답(4) 그녀의 미모가 너무 아름다워 달도 구름 뒤에 숨었다는 초선(폐월·閉月) 8월11일 20시, 가욕관에서 둔황으로 결국 그들 차 두 대는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차 3대에 짐을 포개고 또 포갠 뒤, 그 사이에 끼어 앉았다. 그리고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2m앞이 안 보이는 먼지 길 양옆에 아스라한 낭떠러지가 이어져도, 문을 꼭 닫은 차안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기침이 컥컥 나올 만큼 독한 ‘원조황사’가 길을 막아도, 그대로 뚫고 달렸다. 생명 보험을 하나 더 들어놓고 올걸! 나는 콩 튀듯 탕탕 거리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해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가는 길, 해는 지지도 못하고 저녁 8시가 넘는 시각에도 낮처럼 환하다. 8월12일 17시, 명사산 아름답다. 달밤이면 모래가 우는 소리를 낸다는 산. 해질녘, 그 산을 낙타를 타고 오른다. 출렁출렁, 낙타의 발걸음에 따라 내 몸이 흔들린다. 방울소리도 흔들린다. 8월13일 18시, 하미 주위에 있는 산들이 온통 시커멓다. 철성분이 많아 그렇단다. 그 산 사이에 난 협곡을 달리고 달려 신장 자치주에 닿았다. 무섭게 바람이 불었다. 이 근처는 사철 그렇게 바람이 많은 곳이라고.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투르판은 ‘불의 땅’ 외에도 ‘바람의 창고’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20시에 하미과로 유명한 하미에 도착해 저녁 대신 과일로 허기를 채웠다. 배가 봉긋해졌다. 8월14일 18시, 투르판 위구르족 민속쇼를 관람했다. 남대장이 모종의 작업을 한 덕분에 나도 위구르족 아가씨로 분장하고 공연에 잠깐 끼어들었다. 위구르의 전통 악기 소리는 맑고 탱글탱글했다. 우거진 포도 넝쿨 아래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면서, 나는 잠시 먼 이국의 여인이 되는 꿈을 꾸었다. 한여름, 축제의 밤은 열기를 더해갔다. 8월15일 11시, 우루무치 포도 농원에 갔다. 위구르 말로 ‘아름다운 목장’ 이라는 뜻을 가진 우루무치는 커다란 오아시스 도시다. 야자수가 두어 그루 있는, 우리가 오아시스라고 하면 흔히 머리에 떠올리는 그런 고즈넉한 풍경이 아니라 포도나무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20∼30종은 넘어 보이는 건포도가 신기했다. 노랑색, 황금색 외에도 송이째 말린 건포도, 씨가 씹히는 건포도, 달콤한 것, 약간 시큼한 것…. 나는 번개처럼 건포도를 한 짐 싸서 챙겼다.‘아줌마’라 흉을 봐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독하게 맘을 먹었다. 맛보여주고 싶은 고국의 ‘동포’들이 목에 걸리고 눈에 밟혀 어쩔 수 없었다. ■ 지프로 오지를 달리고 싶다면 챌린지 전문탐험 기획사인 ㈜오버랜드 엔터테이먼트(www.overland.co.kr)는 자신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실크로드 등 세계 오지를 탐험하는 이색적인 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오버랜드를 운영하는 남기환(38)대표는 1999년 런던∼서울 단독횡단과 2002년 유라시아 횡단팀을 이끈 오지탐험 전문가. 그는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지프를 타고 황량한 들판과 거친 사막, 별이 쏟아지는 초원에서 야영을 즐기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개척하고 있다. 주요 상품은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까지 이어지는 ‘트랜스 타클라마칸’,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끼고 도는 ‘트랜스 히말라야’, 중국 성도에서 티벳까지 찝차을 이용 ‘천장공로 하늘여행’ 등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오지 캠핑 상품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국내 산간벽지를 찾아 다니며 캠핑과 야영을 즐기는 1박 2일,2박 3일 오지여행도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비용은 일정에 따라 다른 만큼 오버랜드(02-522-0228)에 직접 문의하면 된다.
  • 신라문화제 9일까지

    찬란했던 신라문화를 재현하고 전통문화를 전승·보전하기 위한 ‘제 32회 신라문화제’가 막을 올렸다.신라문화제는 7일부터 3일간의 일정으로 7개 부문 21개 종목으로 나눠 황성공원 등 경북 경주시 일원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일정별 주요 행사로는 ▲8일=연극 ‘아비’ 공연(안압지 특설무대),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인 김대균의 줄타기(노서고분군), 전통 신라복을 개량한 신라패션 ▲9일=국악관현악 및 교향악 공연(노서고분군), 원효예불제(분황사), 새벌향연(내물왕릉) 등이 마련됐다.경주 김상화기자shkim@seoul.co.kr
  • [발언대] 그릇된 묘지문화 바꿔야/이달종 전 서울산업대 교수·명예논설위원

    우리나라의 제사문화와 묘지문화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 그 근원지가 되는 중국에서는 이러한 문화에 대한 큰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물론 완전한 대중화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변화에 대해 일부 반대 의견이 없지도 않다. 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이런 혁신의 물결은 거세지고 있다. 과거 중국 지도자들의 모범적인 선례가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대부분 사망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베이징 교외의 팔보(八寶)산 묘지에 있는 납골당 특별실에 영구 안치되어 있지만 예외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오른팔로 평생동안 2인자로 활동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유언으로 자기의 유골을 항공기에서 중국 전역에 걸쳐 흩뿌리게 했다. 저우 총리는 팔보산 납골당에 서로 들어가려는 고관대작들의 추한 모습을 국민들이 달갑게 보지 않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는 논자배배(論資排輩·계급서열)로 납골당에 묻히기보다는 조국산천에 뿌려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경우 화장을 한 유골을 공중에서 바다로 뿌려진 사실에 대해 그의 딸이 아버지의 유언이라고 밝혔다. 이런 사실이 중국 TV매체를 통해 전국에 방영되자 그 영향이 확대되어 현재에는 전국의 화장률이 약 40%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세 번째는 마오쩌둥에 의해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문화혁명 때 갖은 고생을 받고 풀려난 류사오치(劉少奇)국가주석이다. 나중에 명예가 회복되어 팔보산에서 국장을 치렀지만 이미 그의 유골은 칭다오(靑島) 앞바다에 뿌려졌다. 요즘 중국에서는 해장(海葬)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상하이시는 토지부족현상으로 인해 새로운 묘지 허가는 일체 없고,1991년도부터 해장업무를 수행하는 국유기업체를 설립하고 양쯔강 입구에서 바다에 뼛가루를 뿌리고 난 후, 해안가에 세워둔 비석에 고인의 이름을 새겨준다고 한다. 중국 이외에도 선진국 독일의 경우, 제한된 토지문제와 함께 환경파괴 문제가 대두되어 약 40% 정도가 유골이 나무에 뿌려지는 수장(樹葬)형식으로 행해진다고 보도되고 있다. 또 아랍문화권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왕족이나 귀족, 부자이거나 일반 서민들까지도 장례식은 아예 없고 관도 없이 수의만 걸친 채 공동묘지에 묻힌다고 한다. 와하비즘(Wahhabism)이란 특정 종교의 이념으로 인해 행해진다고 하지만 근본 취지는 만인평등과 검소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겉치레가 너무 심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지방으로 여행이나 출장갈 경우, 경주나 서울 근교에서 볼 수 있는 왕릉 또는 그 이상으로 화려하게 조성해 놓은 묘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더구나 그 숫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물론 ‘내가 내 돈 가지고 우리 조상님들께 효도(?)하려는데’라고 생각할진 모르지만, 그런 큰 산소를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산소 주인에 대해 속으로는 욕을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다. 단순히 묘소가 크고 화려하다는 겉모습만 보고 후손의 효심이 크다고 생각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조상이 훌륭하면 자기나 자기 자손도 훌륭해진다는 착각이 우리의 장묘문화에 작용한다. 큰 묘소를 장만하고 우쭐대는 이들, 또 장차 이런 묘소를 지으려는 그릇된 효심을 갖고 있는 겉치레 추종자들은 앞서 언급한 중국지도자들의 사례를 조금이나마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달종 전 서울산업대 교수·명예논설위원
  • 남북 고구려미술품 獨서 ‘랑데부’

    남북 고구려미술품 獨서 ‘랑데부’

    고구려고분 출토 유물과 벽화, 고분모형 등 고구려 미술품들이 독일에서 전시된다. 대규모 고구려 유물전이 해외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국립중앙박물관, 서울대학교박물관 등과 공동으로 오는 23일부터 11월20일까지 독일 베를린 동아시아미술관에서 고구려 미술품 50여점을 한자리에 선보이는 ‘고구려 미술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고구려 역사 지키기´ 남북이 힘모아 이번 특별전은 한국이 초점국가(Focus Country)로 참가하는 ‘베를린 아·태 주간’ 행사중 하나로, 국립중앙박물관·서울대박물관 소장품과 함께 북한이 소장하고 있는 고구려 미술이 소개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별전에는 20세기 전반에 평양, 지안(集安) 등지의 고구려유적 발굴 당시 그려진 쌍영총, 수렵총, 진파리 1호분, 개마총 등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 32점과 서울의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사이(四耳)장경옹, 아차산에서 발굴된 장동호, 구형호, 명문접시, 평양지역에서 발굴된 와당 등 현존하는 고구려 유물 중 최고 수준의 토기 21점이 전시된다. 이와 함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지난 2002년 매입, 소장하고 있는 북한 덕흥리 고분의 실물크기 모형 및 광개토왕릉비 모형과 영강7년 명금동광배, 해뚫음무늬 금동장식품, 불꽃뚫음무늬 금동광배 등 고구려 유물 복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재단 관계자는 “민화협을 통해 북한 미술품을 함께 소개하게 돼 고구려 역사를 지키기 위한 남북한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고구려 미술전 개최와 더불어 전시 유물에 대한 사진과 설명을 붙인 240쪽의 도록을 발간할 계획이다. 고구려 관련 출판물로는 처음으로 영어와 독일어로 출판된다. ●새달 21~23일엔 6개국 학자 심포지엄 특별전과 함께 다음달 21∼23일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한국, 독일, 일본, 중국, 미국 등 6개국 19명의 학자들이 참가하는 ‘고구려 고분벽화 국제 심포지엄’도 갖는다. 국제교류재단 권인혁 이사장은 “재단의 고구려 관련 행사들이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 시도에 맞서 해외에서 한국의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파주 장릉 35년만에 개방

    조선조 16대 인조대왕과 원비 인열왕후 한씨의 묘인 파주 장릉이 35년만에 일반에게 개방된다. 파주시는 유화선 파주시장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최근 장릉(長陵)을 조만간 개방하기로 합의해 개방시기와 관리방식, 부대시설 설치 등 개방전 실무절차 협의에 착수했다고 20일 밝혔다.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에 위치한 장릉은 지난 1970년 5월26일 국가사적 제 203호로 지정된 이후 비공개 상태로 관리돼 왔고, 파주시는 지난 95년부터 문화재청에 개방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장릉은 묘역면적 34만 5000여㎡로 광해군 때 인조반정(1623년)으로 등극, 이괄의 난(1624),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을 겪고 삼전도 항복의 치욕을 겪은 인조(재위 1623∼1649)와 인열왕후(1594∼1635)의 합장묘다. 인조의 능은 원래 문산읍 운천리에 있었으나 능앞의 석물들 틈에 뱀과 전갈들이 집을 짓고 살아 영조 7년(173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원형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는 장릉은 전통적인 십이지신상이나 구름무늬가 아닌 모란과 연꽃무늬가 새겨진 병풍석이 무덤을 두르고 있고, 돌로 만든 등(燈)인 장명등에도 모란과 연꽃을 새겨 17세기 석물문양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봉분 정면 양쪽에 문인석과 무인석이 세워져 있고, 태조의 건원릉 석물양식에 따라 봉분주위에 돌로 만든 말과 양, 호랑이를 각각 2필씩 배치했다. 조선조 왕릉 중엔 파주 장릉외에 6대 단종의 영월 장릉(莊陵·국가사적 제196호), 인조에 의해 왕으로 추존된 인조의 친아버지 원종(선조의 5남 정원군)과 인현왕후의 경기도 김포 장릉(章陵·제202호) 등 장릉이 2곳 더 있다.파주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공주 금정농원 밤줍기 체험 속으로…

    공주 금정농원 밤줍기 체험 속으로…

    토실토실한 알밤에 눈이 팔려 건성으로 성묘를 하다 아버지에게 ‘꿀밤’을 맞던 어린 시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추억의 한 장면이 눈물나도록 그립습니다. 황금빛 들녘에 오곡백과가 알알이 영글어 가는 이 때, 성묘를 마치고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아이들과 함께 밤줍기 체험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요. 한가위의 밤농장 나들이는 아이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글·사진 공주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밤을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건 삼정승이 나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밤은 세알이 한 밤송이가 된다. 가운데 있는 밤은 ‘영의정´ 오른쪽에 있는 밤은 ‘우의정´ 좌측에 있는 밤은 ‘좌의정´ 이라는 의미가 되며 밤송이에는 각기 특유의 기질을 가지는 오기(五氣)가 들어 있으며 바로 그 오기는 인간의 성질을 나타낸다. 첫째, 가시는 내유 외강의 성질 둘째, 껍질은 단단하고 강한 기질 셋째, 껍질 속의 털은 포근함을 의미한다. 넷째, 속 껍질의 떫은 맛은 인생살이의 떫은 맛 다섯째, 속알의 고소한 맛은 깨달음의 참 맛이다. 올 추석 밤을 깨물며 인생을 반추한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알밤의 가을 추억을 주우며 “와∼, 밤송이가 입을 활짝 벌렸네….” 충남 공주시 정안면 무성산 자락에 위치한 금정농원(041-858-6763). 하늘을 향해 툭터진 탐스러운 밤송이 사이로 아이들의 즐거운 함성이 메아리친다. 푸른 하늘을 향해 장대를 휘두르며 밤을 따는 어른들과 나무 아래에서 햇밤을 줍느라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흥겨운 모습을 연출한다. 밤나무 아래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모두 동심의 세계에 빠졌다. “밤송이 떨어진다. 조심해!” 밤나무 위에서 갑자기 밤송이가 떨어지자 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가족들이 머리를 감싼다.30분 남짓밖에 안지났는데 농원에서 나눠준 3㎏짜리 밤봉투가 알밤으로 가득하다. 밤나무 아래에서는 누가 큰 알밤을 주웠나 알밤을 서로 대보고, 밤가시를 피해 나뭇가지로 알밤을 빼내느라 진땀을 흘리지만 곳곳에서는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아들과 조카를 데리고 밤줍기에 온 김재남(32)씨는 “아이들과 함께 직접 탐스러운 알밤을 줍고, 주운 햇밤을 맛볼 수 있어서 좋다.”면서 “어린시절 밤을 따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고 즐거워했다. 지난 1일부터 밤줍기 체험이 시작된 4만여평의 금정농원에는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밤줍기에 여념없다. 매년 밤이 열리는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주말에는 하루 200여명의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몰린다. 34년째 금정농원을 운영하는 김재환씨는 “정암면은 우리나라 밤 생산의 10%가량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밤 산지로, 밤이 자라기에 가장 적합한 토질과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어 공주 정안밤은 전국에서 가장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고 자랑했다. 밤줍기 체험은 별다른 장비가 필요없다. 농장 입구에서 입장료 1만원을 내고 3㎏를 담을 수 있는 자루를 받은 뒤 야트막한 산에 올라가 밤을 주워 담으면 된다. 아울러 이 곳에서는 시중보다 싼 값에 밤을 구입할 수 있다. 밤중에 가장 맛있다는 옥광밤이 1㎏당에 5000∼6000원. 조생종 밤인 단택과 추파, 자봉 등은 1㎏당 3000∼4000원이다. 그러나 밤줍기 체험은 밤가시가 날카로운 만큼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밤을 줍기 위해서는 두꺼운 면장갑을 챙겨야 하며, 챙이 있는 모자와 긴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나눠준 자루 외에 주머니에 밤을 넣어오는 것은 밤줍기 체험의 금기 사항. 가을 햇살 속에서 토실토실 여물어가는 밤을 줍는 것은 자연학습을 겸한 최고의 가족나들이. 수도권 인근에서 밤줍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떠나기전 예약은 필수. ●용인 서전농원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서전농원(cafe.daum.net/yonginbam)은 5만여평의 산자락에 1만여그루의 밤나무가 있다.10월말까지 다양한 품종의 밤줍기를 즐길 수있다. 농원에 사슴, 토끼 등을 길러 아이들의 자연 학습장으로도 좋으며,10만여평에 이르는 인근 숲에서 산책하기에도 좋다. 영동고속도로 양지 IC에서 4㎞ 직진한 뒤 자황리에서 500m 정도 들어가면 된다. 체험료는 어른 1만 3000원, 어린이 8000원.(031)332-8037. ●천안 유성농장 천안시 위례산 기슭에 자리한 유성농장(www.welcomefarm.co.kr)은 25만평의 야산에 2만여그루의 밤나무가 있다. 시설관리비(어른 6000원, 어린이 4000원)를 내면 주차와 원두막,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취사도구 등을 빌려준다. 약수터와 놀이터, 휴게소 등 편의시설이 있어 편안하게 쉴 수 있다. 밤줍기 체험료 1만원을 내면 4㎏짜리 자루를 나눠 준다. 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 목천IC에서 나와 병천 방면으로 2㎞를 간 뒤 연충교 쌍다리를 건너기 전에 좌회전해서 개울따라 북면 11㎞ 직진하면 농장이 보인다.(041)553-3120. ●영흥도 해오름빌리지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해오름빌리지(www.sunrisevillage.co.kr)는 한적한 가을 바다의 정취를 즐기며 밤줍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전원 휴양지.9평짜리 콘도식 방갈로 6동이 전원속에 묻혀 있다.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따라 800여평의 밤나무 군락이 형성돼 있는데 거의 토종밤이다. 숙박객들에게는 무료로 개방된다. 펜션 앞에 배나무 밭이 있어 배따기 체험은 물론 인근 장경리해수욕장에서 갯벌 체험, 망둥어 낚시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월곳 IC에서 빠져나와 안산 시화방조제를 건너 303지방도를 타고 대부도, 선재도를 거쳐 영흥도로 들어가면 된다.(032)886-3381. ●가평 건영농원 경기 가평군 가평읍 두밀리 마을의 건영농원(gpminbak.co.kr/geon)에서는 20일부터 10월5일까지 6000여평 야산에서 밤줍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농원에는 100여명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원두막이 있어 야외에서 식사도 즐길 수 있다. 입장료는 2.4㎏ 1자루에 성인 1만 5000원, 어린이 1만원이다. 노지에서 재배되는 표고버섯도 살 수 있다. 생표고는 2㎏에 2만원. 경춘국도에서 가평·청평 방향으로 가다 청평검문소를 지나 가평읍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평농협 파머스 마켓 인근 SK주유소에서 좌회전해 두밀리 버스종점방향으로 6㎞가량 가면 보인다.(031)582-4057. ●길가에 늘어선 예쁜 허수아비 밤줍기 체험을 마친 뒤 인근 마곡사를 둘러보면 좋다. 농원에서 마곡사로 가는 길목 곳곳에서는 추수를 앞둔 논 사이로 예쁜 허수아비들을 자주 만난다. 지난달 정안면 문천리에서 열린 ‘허수아비 만들기 축제’에서 관광객들이 만들었던 허수아비 수백여점이 9월 한달간 마곡사 가는 길 옆 8㎞구간의 들녘에 전시된다. 논둑에 세워진 예쁜 허수아비들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으면 좋은 추억거리가 된다. 가을의 푸르름을 만끽하며 10여분쯤 달리면 태화산 기슭 맑은 계곡을 끼고 있는 천년 고찰인 마곡사에 이른다. 백제 의자왕 3년(643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주차비 2000원, 입장료 2000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800m쯤 걸어올라가는 길이 아름답다. 사찰 입구에는 산채비빔밥, 더덕구이, 해물파전, 도토리묵 등을 파는 집들이 즐비하다. 예스러운 토담집으로 지어진 ‘추억의 삼학’(041-841-8023)은 산채정식 1만원, 산채비빔밥 6000원이다. 마곡사 인근의 마곡온천(041-841-6201)에 가면 밤줍기로 쌓인 땀과 피로를 풀 수 있다. 온천수로 만든 25m 6레인의 실내 수영장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어 휴식을 취하기 좋다. 성인 5000원, 어린이 3000원. 이 밖에 백제의 고도 공주에서는 무령왕릉과 공산성, 국립공주박물관 등 다양한 백제 문화 유적을 둘러볼 수 있다. ●여행 정보 천안∼논산고속도로 정안IC에서 공주방면 23번 국도를 타고 7㎞쯤 달리면 길가에 정안농협이 나오고, 여기에서 조금더 가면 오른편에 금정농원으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마을 입구에 300여대의 차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있으며, 여기에 차를 세운 뒤 농원까지 100m를 걸어가면 된다. 여행 상품으로는 우리테마에서 추석인 17일과 18일,25일 3차례 당일일정으로 금정농원 밤줍기 체험 여행을 떠난다. 오전 7시 서울 덕수궁을 출발해 돌아오는 길에 고창 선운사도 함께 돌아본다. 참가비는 성인 4만 5000원.(02)733-0882.
  • MBC 드라마 60부작 ‘신돈’ 중국 촬영현장 르포

    MBC 드라마 60부작 ‘신돈’ 중국 촬영현장 르포

    |베이징 김미경특파원| “저는 하루종일 걸어다녀서 얼굴이 까맣게 탔는데 공민왕(정보석 분)은 점잖게 말 타고 다녀서 덜 탔죠.” 중국 베이징 북서쪽으로 80여㎞ 떨어진 허베이(河北)성 강시초원의 티엔모(天漠) 세트장. 넓은 초원이 펼쳐지는 가운데 반경 2㎞ 정도만 사막으로 이뤄진 관광명소다. 벌써 몇시간째 사막을 걸으며 촬영 중인 MBC 새 특별기획 주말드라마 ‘신돈’(정하연 극본·김진민 연출)의 제작팀 사이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새까맣게 그을린 손창민의 얼굴이 보인다. 고려시대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승려 신돈 역을 맡은 그의 중국 촬영신은 동료 승려들과 함께 티베트 고행길을 떠나는 것. 지난달 25일부터 2일까지 이뤄지는 중국 로케이션은 오는 29일 첫 방송되는 드라마 60회 가운데 4∼10회에 등장한다. 중국 촬영에는 신돈의 고행을 비롯, 드라마의 다른 주인공인 공민왕과 노국공주(서지혜 분)의 만남 등이 카메라에 담긴다. ●극한 더위 속 리얼리티 긴 승려복에 머리에 두건을 둘러 겨우 눈만 내놓은 손창민은 “중국에서의 촬영 자체가 고행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만리장성에서의 촬영에 이어 그늘도 없는 뙤약볕 사막 고행길까지 30㎞ 이상 걸었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길이기 때문에 힘들지만은 않다는 것. 지난달 2일 고창 선운사에서의 첫 촬영 이후 출연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더위와 싸워 왔다. 공민왕 역의 정보석도 두꺼운 옷에다 가발을 써 무더위와 싸워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 그는 “말타는 장면이 많아 안장에 닿는 부위의 피부가 다 벗겨졌다.”면서 “중국 말은 야생마 수준이라서 길들여지지 않아 촬영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공민왕과 결혼해 고려를 이끄는 원나라 노국공주 역의 신인 서지혜도 공주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 치렁치렁한 가발과 여러겹의 옷으로 몸을 감쌌다. SBS 드라마 ‘불량주부’의 후속작품으로 사극을 선택한 손창민은 오랜 연기 경력에도 본격적인 사극 출연은 처음이란다. 그는 “지금까지 사극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의 권유도 있었고,40대에 접어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최근 보여준 코믹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신돈화(化)’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조계사에서 승려 교육을 비롯,108배를 하며 자신을 수련했다. 하늘을 나는 장면 등을 위해 무술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반면 그동안 사극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정보석은 4년전부터 정하연 작가로부터 제의받은 공민왕 역을 맡아 들뜬 모습이었다. 그는 “공민왕은 국부를 꾀하고 직접 행동으로 실천한 역동적인 왕으로, 오래전부터 선망해 오던 인물”이라면서 “기회가 되면 개성의 공민왕릉에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재해석되는 신돈과 공민왕 신돈이 국내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재탄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낱 천민 출신의 ‘요승’으로 알려진 신돈이 공민왕을 도와 개혁에 성공하지만 결국 공민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시대적 한계를 보여 주는 인물로 그려진다. 신돈과 공민왕, 노국공주가 펼치는 성공과 실패, 우정, 사랑, 배신 등을 통해 당시 역사를 배우고 우리 시대에 접목시킬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것. 기획을 맡은 정운현 CP는 “큰 작품 스케일에 못지 않게 신돈과 공민왕, 노국공주의 다뤄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해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3∼4개월 전 신돈 역 제의를 받은 손창민은 “신돈에 대한 자료를 조사한 결과, 타락한 요승이라기보다는 공민왕을 도와 개혁을 일으킨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권력을 초월한 시대적 인물이 펼치는 정치·제도개혁에 초점을 맞춰 연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민 PD는 “정형화된 사극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해석되는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재미있게 그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chaplin7@seoul.co.kr
  • 당일치기 가을 개성관광

    당일치기 가을 개성관광

    고려 500년 도읍지였던 개성은 그리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까탈스럽고 번거로운 CIQ(출입관리시설) 검문을 거쳐야 하고, 때로는 이미 짜여진 일정에 따라 북측의 통제를 받으며 여행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여행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여정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분단 55년 만에 문을 연 개성 관광길. 금강산에 이어 두번째 북한 관광길이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마치 꿈을 꾸는 듯 손내밀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개성 시민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다소 낡아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는 화분으로 한껏 멋을 냈고, 그 사이로 시민들이 어디론가 발길을 재촉한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 교복 입은 아이들, 한복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가는 여인들…. 풍경 하나하나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사진촬영을 통제해 가슴에만 담아온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개성. 하루로는 진정 아쉬움이 컸던 개성 당일관광으로 안내한다. 개성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이것은 조심하세요 개성 관광은 북측 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만큼 지켜야 할 주의사항들이 적지 않다. 어길 경우 위반금을 물어야 하며, 심할 경우 북측에 억류돼 조사를 받아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마찬가지로 버스로 이동할 때와 북측 CIQ 및 군사시설에 대한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북측의 정치, 경제, 사상 등 서로 자극할 수 있는 대화는 자제하고, 검문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소지물품을 간편하게 하는 것이 좋다. 신분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하고, 개성관광증은 남과 북이 합의한 개성출입 여권 및 비자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낙서를 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휴대품에는 제한 규정이 있는데 ▲10배율 이상의 쌍안경 및 망원경 ▲초점거리가 160㎜ 이상인 카메라 렌즈나 이를 탑재한 카메라 ▲광학 24배줌 이상 캠코더 ▲휴대전화(PDA포함) 등 통신기기 ▲휴대용 TV와 라디오,MP3, 기타 남측 신문 및 인쇄물 등 관광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물품 등을 휴대해서는 안 된다. 휴대전화는 안내 직원에게 맡긴 뒤 남측 귀환시 반환받을 수 있다. 관광 중에 통용되는 화폐는 미국 달러이며, 기념품은 1인당 300달러까지만 면세가 적용된다. 북측 의약품과 뱀술, 영정술, 우황청심환과 북한 사상 관련 각종 출판물은 남측 반입이 되지 않는다. 북측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 북한군들은 남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손총질’이라 해서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관광지 내에서는 되도록 흡연을 삼가고, 관광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정해진 경계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 개성 37mile 당일치기 여행 벽은 무너지고… ‘개성 시내의 모습은 어떨까. 선죽교, 박연폭포의 경치가 아름답다던데’ 설렘 속에 시범관광단을 실은 버스가 서울 경복궁을 출발했다. 개성까지의 거리는 약 50㎞. 승용차로 달리면 1시간 남짓한 거리다. 개성은 38선 이남에 있는 북한 땅으로 한국전쟁 전까지 남한에 속했던 지역이다. 자유로를 따라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줄인 곳은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통일대교. 민족의 통일 염원을 담은 다리지만 차량 통제를 위해 겹겹이 막아놓은 바리케이드가 먼저 분단 현실을 실감케 한다. ‘남북왕래차량외 진입금지’라고 쓰인 표지판이 가로막힌 도라산역 남측 CIQ(출입관리시설). 버스에서 내려 CIQ에서 간단한 짐검사와 법무부 출입국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출경수속을 마쳤다. 출경 수속은 일찍 끝났지만 정해진 시간에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8시 정각에 버스가 다시 남측 CIQ를 출발했다. 군사분계선 주변은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어 평온해 보였지만 도로를 제외한 주변 모두가 지뢰밭이라고 한다. 도로는 왕복 4차선. 도로를 따라 철길이 나란히 달린다. 오른쪽 창밖으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널리 알려진 낡은 열차가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마침내 북한땅. 군사분계선 북측지역으로 넘어가자 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버스를 응시하는 북한 군인의 모습에 마른 침이 절로 넘어간다. 군복을 차려입은 인민군 장교가 버스에 올라 눈으로 인원체크를 하는 것으로 북측 CIQ 입경 수속이 시작됐다. 버스 앞에서 눈으로 인원을 세는 사이 버스에는 잠시 적막감이 흐른다. 그 시선은 마치 이곳부터는 ‘북한’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 이어 인민군 장교가 ‘개성 관광증’에 찍힌 일련 번호에 따라 호명하는 순으로 버스에서 내린 뒤 몸검사와 짐검사가 시작됐다. 인민군과 세관, 개성총국에서 함께 관리하는 CIQ에서는 가방을 열어 일일이 모든 것을 체크한다.CIQ 멀리 평화롭게 보이는 기정동 마을이 한적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카메라는 몇 ㎜입네까?”라며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리 위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여행의 재미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CIQ 뒤편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평양 아리랑 총회사 소속 직원들이 술과 기념품을 판매한다. 판매원 김윤화(21)씨는 “시내에 들어가면 술 한병에 여기보다 다섯달라(5달러) 이상 비싸요.”라며 권한다. 실제 개성인삼주가 이곳에서는 8달러지만 박연폭포 앞에서는 14달러를 줘야 한다. 1시간이면 달려올 거리를 3시간 만에 버스가 개성 시내로 향한다. 버스에는 20대 후반의 문광철(관광총회사 소속)씨와 조성(개성시 소속)씨 등 2명의 안내원이 동승했다. 이동중에 시내나 북한 주민 등의 사진 촬영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일행 중 한명이 “시내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요.”라고 묻자 문씨는 “그러면 아주 불쾌한 관광이 됩네다.”라며 농담으로 응수한다. 개성으로 가는 길은 정비가 끝나지 않아 덜컹거린다. 개성공업지구를 지나 드디어 개성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중심가에는 20층은 족히 돼 보이는 아파트가 종종 눈에 들어온다. 건물은 낡았지만 베란다는 갖가지 화분들로 한껏 멋을 내고 있다. 주민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제갈길을 재촉했다. 아파트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지만 멀리 아파트 창문으로는 빠꼼히 버스 행렬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버스에서 내려 시내를 걸어보고픈 충동이 밀려 왔다. 언젠가는 마음놓고 걸어볼 날이 오겠지…. 버스는 고려 박물관(고려 성균관)에 도착했다.992년 창설된 최고의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후신으로 1308년 성균관으로 개칭됐으며, 조선시대 설립된 성균관과 구분하기 위해 고려 성균관으로 불린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1610년 재건한 것으로 입구에 있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박물관은 4개의 전시관과 야외전시관이 있는데 고려청자와 금속활자 등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유물과 현화사 7층탑, 현화사비 흥국사 석탑 등 북측의 국보급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입구에는 북측 화가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고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안내원들의 맛깔스러운 설명이 이어진다.“고려 유물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많이 약탈했습네다. 이제 북·남이 힘을 합쳐 다시 찾아와야지요.” 송도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는 이옥한(40) 해설원은 유물 설명중 ‘개성 깍쟁이’의 유래에 대해 “‘깍쟁이’라는 말은 ‘가게 쟁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셈이 밝아서 그런 게 아니라 상업이 번창해 가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려 박물관에서 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선죽교에 도착했다.919년 고려 태조가 개성내 하천축조의 일환으로 건립한 돌다리지만 고려 충신 정몽주가 피살당한 곳으로 더 유명하다. 다리의 길이는 6.67m, 너비는 2.54m. 원래는 난간이 없었으나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난간을 둘러 보호하고 옆에다 돌다리도 하나 더 놓았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로 화려함은 없지만 정갈한 느낌이다. 안내원 한명이 다리 한편에 있는 옅은 붉은색 얼룩을 가리켰다. 그는 “이게 정몽주 선생의 피”라며 “그래서 선지교였던 이곳이 선죽교라 불리게 됐다.”는 재미있는 설명을 곁들였다. 선죽교 옆에는 정몽주를 기리는 사당과 비석이 여러개 서 있다. 당초 일정이 개성민속여관에서 정몽주 생가인 ‘숭양서원’으로 바뀌었다. 개성민속여관은 조선시대 전통가옥을 여관으로 꾸민 것으로 현재 외국인 관광객들이 묵고 있어 관람이 어렵다는 것.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7월11일 붉은기, 선죽동, 제2인민반’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북측 안내원에게 “학교 간판이냐.”고 묻자 “번지인데 이 집은 특별한 날을 기리기 위해 날짜를 적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몽주 영정 등이 모셔져 있는 사원에서는 개성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사원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사원 앞에 있는 간이 상점에 들르자 북한 음료가 눈에 띈다. 코카콜라와 비슷한 검은색 음료는 ‘코코아 탄산단물’이며, 환타와 같은 음료는 ‘모란봉 레몬 탄산 단물’이란다. 가격은 1달러. 냉장고에서 꺼낸 코코아 탄산단물은 달착지근한 맛이 그런대로 갈증을 풀어준다. 숭양서원을 나와 개성백화점, 김일성 동상 등을 지나 개성 남대문 로터리를 돌아 다시 선죽교 인근에 있는 자남산 여관에 마련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또다른 식사 장소로는 통일관과 영통식당, 민속여관내 식당 등이 있다.2층 식당에서는 한상 가득 개성식 식사가 차려져 나왔다. 반찬으로는 개성 약밥과 떡합석, 삼색나물, 닭고기 장과, 돼지고기 편찜, 오이소박이 등이 맛깔스럽게 차려졌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우메기’. 종업원 김영실씨는 “찹쌀 70%에 멥쌀 30%로 만들었는데 기름에 튀긴 뒤 떡 위에 우묵우묵 칼자국을 내서 ‘우메기’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김치는 왜 안 나오느냐고 묻자 “개성은 보쌈김치가 유명한데 그건 겨울에 오셔야 합네다.”라고 덧붙인다. 식사는 대부분의 식당들이 비슷하지만 11첩 반상기와 단고기(개고기) 정식 등이 나오기도 한다. 개성에서 북쪽으로 26㎞ 떨어진 박연폭포로 가는 길은 제주도 오름을 연상시킬 만큼 널찍한 초원이 반긴다.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주변은 나무가 많지 않은 구릉들로, 푸른 초원이 덮여 있어 절로 감탄을 쏟아내게 한다. 1992년 김일성 80회 생일에 완공된 이 고속도로는 북한 최초의 아스팔트 4차선 도로다. 평양까지는 160㎞로 승용차로 1시간30분 걸린다고 한다. 도로 주변에서는 옥수수 밭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농부들이 노란 옥수수를 수확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지만 (감시원이 있어) 멋진 경치를 눈으로만 담아와야 했다. 200m 남짓한 숲길을 오르자 박연폭포가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 붓는다.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이 북쪽 계곡을 따라 흐르다 못을 만들고 그 아래 37m 높이의 폭포를 이루고 있다. 폭포 위에는 박연이라는 연못이 있고, 폭포 아래 직경 40m의 고모담이란 바위 연못이 있다. 박연폭포는 화강암벽의 순수 자연폭포로 금강산의 구룡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한반도의 ‘3대 폭포’로 꼽힌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와 함께 인근 소나무, 화강암벽이 자연스레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폭포수 아래 동쪽 언덕에는 법사정이라는 정자가, 서쪽에는 용바위라는 둥근 바위가 각각 절묘한 미색을 자랑한다. 자남산 여관 서점에서 산 ‘개성관광안내 책자’에 따르면 ‘옛날 퉁소를 잘부는 박진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곳 물가에서 퉁소를 부는 그에게 끌리어 물 밖에 나온 용왕의 딸이 박진사를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같이 살았다고 하여 ‘박연’이라고 한다. 그 아래 고모담은 박진사의 어미가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안고 통곡하다가 물에 떨어져 ‘어미담’ 또는 ‘고모담’이라고 불렀다.’고 적혀 있다. 박연폭포 위 대흥산성에 오르면 위에서 박연폭포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흙길이지만 진흙과 모래가 섞여 있는 마사토로 질지 않다. 1시간 남짓 박연폭포를 돌아본 뒤 짧은 개성 관광이 마무리됐다. 버스에 오르라는 안내원들의 재촉에 “여행이 수박 겉핥기 식이다. 너무 짧다.”며 곳곳에서는 아쉬움 섞인 푸념들이 들려 왔다. 박연폭포에서 내려가는 길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왔다. 반세기 만에 찾은 남측 손님들의 아쉬움을 아는지 하늘에서는 간간이 빗줄기가 쏟아졌다. ■ 꼭보자 베스트3 개성은 한민족 최초의 통일 국가인 고려의 500년 도읍지였던 만큼 고려 건국시조인 왕건왕릉과 고려 31대 공민왕릉, 고려민속박물관, 선죽교, 영통사 등 고려 유적지가 주류를 이룬다. - 왕건왕릉(북한 사적 제53호) 개성에서 북서쪽으로 6㎞ 떨어진 해선리의 만수산 자락에 있는 왕건왕릉과 신혜왕후 무덤은 왕건의 뜻에 따라 검소하게 만들어졌다. 왕릉은 1994년 새롭게 단장됐다. 3단 축조의 웅장한 무덤과 그 앞에 문무관의 석인상, 호랑이와 양을 비롯한 석조군상으로 위용을 자랑하며 능문과 제당도 갖춰져 있다. 무덤안을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돼 있으며, 능앞에 넓은 공원이 조성돼 있다. 최근 왕릉에서 청동의 왕건조각상이 출토돼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등신대의 인물조각상으로 연구가치가 높다. - 공민왕릉(북한 국보급문화재 제39호) 개성에서 서쪽으로 9.8㎞ 떨어진 개풍군 해선리 봉명산 문선봉 아래에 있는 무덤은 쌍분으로 왼편이 고려 31대 공민왕의 현릉이고, 오른편이 부인 노국공주의 정릉이다. 이 무덤은 남한에서 주로 보는 왕릉과 달리 3개의 층단으로 구성돼 있는 점이 특이하다. 봉분의 높이는 6.5m. 각 봉분에는 12각의 병풍석을 돌리고 12지신상과 연꽃무늬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공민왕은 1365년 왕비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죽자 애통한 나머지 9년 동안 자신이 직접 주관, 방대한 조영사업을 벌였다. 이 왕릉에는 고려시대 수학, 천문, 지리, 건축, 예술 등 총체적인 역량이 집대성돼 있다. - 영통사(북한 보물급 문화재 35~38호) 1027년(현종 18년) 창건되었다. 고려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어 인종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자주 행차해 분향하였으며, 인연이 있는 왕들의 진영(眞影)을 모시는 진영각이 있었다. 대각국사 의천도 이곳에서 교관을 배웠으며, 입적한 후에는 그의 비가 이곳에 건립되었다. 언제 폐사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문화재로는 북한의 보물급 문화재 제36호인 영통사대각국사비, 제37호인 영통사 당간지주, 제35호인 영통사동삼층석탑, 제38호인 영통사서삼층석탑, 국보급문화재 제37호인 영통사오층탑이 있고 보광원, 중각원 등이 있다. ■ 3가지 코스 중 고르세요 개성관광은 ‘고려반’‘박연반’‘왕릉반’ 등 3개의 코스로 구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1개 코스를 택하게 돼 있다. 고려반은 오전 개성시내관광(고려박물관, 선죽교, 개성민속여관), 오후 박연폭포를 참관하는 코스이며, 박연반은 오전 박연폭포, 오후 개성시내 관광을 하는 것. 왕릉반은 공민왕릉과 왕건릉을 참관한 뒤 오후에 개성시내관광을 하는 것이다. 관광은 대략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쯤 모두 끝나게 되며, 돌아오는 길에 개성공단 시범단지를 견학한다. 관광 중 세부적인 해설은 북측의 전문 해설원들이 맡게 되며, 점심식사는 개성시내에 있는 자남산호텔식당이나 영통식당, 통일관, 민속여관내 민속식당 등에서 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아산에 따르면 본 관광 시기와 요금은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다.3차례 실시된 시범관광의 경우 관광요금 17만 4000원과 식대 2만 1000원을 포함해 19만 5000원인데 본 관광 요금이 이보다는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대아산측의 설명이다. 개성관광에 대한 문의 및 예약은 현대아산 (02) 3669-3000.
  • “선죽교 55년전 그대론데… ” 실향민 탄식

    금강산에 이어 개성 관광시대가 본격 개막됐다. 개성, 개풍, 장단 출신 실향민 250여명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 김종민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 관계자, 내외신 기자 70여명 등 500명으로 구성된 1차 개성시범관광단이 26일 당일일정으로 개성을 관광하고 돌아왔다. 개성시범관광단은 26일 오전 6시 버스 15대에 나눠타고 서울 경복궁 주차장을 출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로 이동해 수속을 마친뒤 8시쯤 군사분계선을 통과했다. ●주택·아파트 창가마다 꽃병 내걸어 북측 출입절차를 마치고 개성땅에 발을 내디딘 시간은 서울을 출발한지 3시간만인 오전 9시였다. 버스에서 내려 거리를 걸어보지는 못했지만 눈앞에서 개성시민들이 사는 모습을 보게 된 실향민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기와를 얹은 ‘땅집(단층집)’이나 20층짜리 아파트까지 남루한 행색이었지만 창문마다 꽃병을 내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범관광단은 고려박물관, 성균관, 선죽교, 숭양서원, 개성에서 북으로 약 24㎞ 떨어진 박연폭포 등 유적지와 개성공업지구를 둘러봤다. 공민왕릉, 왕건왕릉, 영통사 등 다른 유적지는 2,3차 관광단에 공개될 예정이다. 100세를 눈앞에 두고도 고향이 개성시 운학동 473번지라고 또렷하게 기억하는 송한덕(97)옹은 “이렇게 가까운 고향을 여태 다녀오지 못한게 안타깝기만 하다.”면서 “죽기전에 고향을 땅을 밟게 돼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라며 기뻐했다. 정몽주의 충절이 스며있는 선죽교에서는 윤정덕(71)씨가 빛바랜 사진으로 추억을 더듬었다.1950년 3월1일 선배, 친구와 선죽교에 놀러와서 찍은 사진속의 선죽교는 55년이 지나도록 그대로였다. 윤씨는 “서울과 미국에 살고 있는 사진속의 선배, 친구와 함께 다시 선죽교를 와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남산여관, 민속여관, 통일관, 영통식당 등 현지식당의 점심 메뉴는 녹두지짐, 두부전, 깻잎조림, 계란 스크램블, 오이소박이, 닭고기조림, 단고기찜, 잡채 등 갖가지 반찬에 콩나물국이 곁들여졌다. 개성약밥과 우메기(찹쌀떡의 일종), 각종 송편도 즐길 수 있었다. 관광객들은 “50년전 개성음식 맛이 많이 남아있다.”며 만족해했다. ●박연폭포 창 한바탕에 현회장 ‘덩실´ ‘송도삼절’로 유명한 박연폭포는 마침 전날 내린 비로 37m높이에서 장쾌한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홍성덕(60·여) 광주시립국극단장이 황진이가 지은 ‘박연폭포’를 한바탕 불러제치자 현정은 회장이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등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다. 꿈같은 개성관광은 오후 4시쯤 끝났다. 관광단이 오후 5시30분 군사분계선을 넘어 입경수속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20분. 개성에 여동생이 살고 있다는 김영두(81)·영휘(76)씨 형제는 “관광도 좋지만 바로앞에 동생을 두고도 수소문도 못해보고 돌아가 너무 아쉽다.”며 자꾸 뒤를 돌아봤다. 갑자기 무릎이 아파 휠체어를 타고 개성관광을 ‘강행’한 임환기(78)씨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개성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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