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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구리에선] ‘고구려 프로젝트’ 재점화…中 동북공정 맞선다

    [지금 구리에선] ‘고구려 프로젝트’ 재점화…中 동북공정 맞선다

    ‘고구려 프로젝트로 동북공정(東北工程) 파고를 넘는다.’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좁은 땅(33.3㎢), 주민 19만여명에 불과한 경기도 구리시가 동북아의 대제국이던 ‘고구려의 기상’을 테마로 대규모 역사복원과 개발계획을 동시에 추진중이어서 주목된다.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55호)인 관내 아차산 보루군(堡壘群) 정비·복원과 20만평에 이를 역사테마 유적공원인 ‘고구려 역사도시’ 조성계획이 그 핵심사업이다. 구리시의 ‘고구려 프로젝트’는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우리의 고대사를 삼키려 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선다는 명분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생산시설도, 가용할 땅도 거의 없는 구리시에 연간 수백억원의 재정수입을 가져올 실익도 기대하고 있다. ●토기등 1500여점의 유물 출토 구리시는 지난 7월 문화재청이 승인한 ‘아차산일대 보루군 종합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내년부터 114억원을 들여 관내 아차산 1∼5보루와 시루봉·망우산1·용마산5보루 등 8개 보루의 정비와 복원사업을 편다. 아차산 일원엔 서울 관내에 용마산 6곳, 홍련봉 2곳, 망우산 3곳의 보루가 더 있다. 아차산은 지난 1994∼95년 역사문화유산 지표조사가 실시돼 구전으로 내려온 고구려 보루유적의 존재가 공식 확인됐다. 서울대박물관이 2000년까지 발굴작업을 벌여 보루의 성벽유적 등과 함께 총 1500여점에 이르는 철제·토기로 된 항아리·접시·무기·마구와 농기계·생활용품 등을 찾아냈다. 발굴 유물의 규모는 그때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고구려 유적·유물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시내 곳곳에 고구려 정취 지난 94∼95년 관선시장을 거쳐 98년 민선시장에 당선된 현 박영순 시장은 구리시를 ‘고구려 역사의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일련의 캠페인과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2000년 밀레니엄 행사에 맞춰 시청 정문앞에 대형 북을 만들어 고구려 고각(鼓閣)을 세웠고, 시의 관문인 토평대교에 고구려 투구 모양의 대형 아치조형물을 설치했다. 교문2동 장자대로 변에는 광개토대왕 대형동상을 세웠고, 아파트 외벽을 중국 지린성(吉林省)과 평양 고구려 고분의 ‘수렵도’ 그림 등으로 장식하는 사업도 폈다. 시 청사엔 현재도 ‘고구려의 기상, 대한민국 구리시’란 캐치프레이즈가 걸려 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과 아차산에서 숨진 온달장군을 추모하는 이벤트도 연례적으로 열었다. 지난 2000년 10월엔 한·중·일 학자를 초빙, 구리·고구려 국제학술회의도 열어 아차산 유물의 중요성을 검증받았다. 2002년 구리시는 아차산 기슭 아천동 151번지 일원 10만평에 고구려박물관이 포함된 유적공원을 세우기로 하고 관련 TF팀을 구성했다. 당시 용역결과에 따르면 사업비는 1500억원, 연간 관람료 수입 등으로 얻게 될 수입은 4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이 계획은 미국과 일본 투자전문회사로부터 투자의향서도 받았으나 박 시장이 지방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후임 이무성 시장은 예산문제와 감사원의 ‘규모과다’ 지적 등을 이유로 고구려 유적공원 계획을 백지화하고 아차산 일원 8200여평에 600억원을 들여 ‘국립 고구려박물관’을 건립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전국에 산재한 국립박물관의 지자체 이양 방침에 어긋난다는 이유 등으로 난색을 표했다. ●역사박물관 국민 모금운동 검토 박영순 시장이 재선출되자 다시 TF팀을 구성,‘국립 고구려박물관’을 ‘고구려 역사박물관’으로 바꾸고 박물관과 역사교육장 및 촬영세트장 등이 들어서는 20만평의 유적공원을 오는 2010년까지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유적공원엔 복원된 고구려 보루와 함께 광개토대왕비·장수왕릉·안학궁과 고분벽화 등 북한과 중국내의 대표적 고구려 유물·유적이 재현될 예정이다. 유스호스텔과 오락·유희시설, 저잣거리 등 고구려 생활체험촌도 조성된다. 공원이 들어설 곳은 서울과 인접하고, 서울외곽순환도로 및 중부고속도로의 토평IC와 연계돼 뛰어난 접근성을 갖췄다. 이용객은 2010년에 740여만명, 매출액은 2300억여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사업비는 총 4000억원 규모로 일부 기반시설비를 제외하고 민자를 통해 유치한다는 복안이다. 1단계 사업이 될 고구려 역사박물관 건립사업은 천안 독립기념관을 전례삼아 범국민 모금운동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공중파 TV방송이 앞다퉈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연속극을 방영중이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어이없어하는 국민적 정서가 팽배한 만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구리시는 유적공원을 중국과 북한에 주로 있는 고구려의 역사적 실체를 확인시키는 교육의 장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재현될 유적유물은 중국이 광개토대왕비의 본래 비각(碑閣)을 철거하고 중국식 비각으로 대체한 사례에서 보듯, 왜곡된 부분은 고증을 통해 원형대로 살려낼 예정이다. ●그린벨트 규제완화가 관건 구리시 고구려 유적공원 사업엔 현행법의 보완 등이 선결돼야 한다. 공원 예정부지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인 탓에 박물관 시설은 가능하나, 재현 유적·유물의 설치가 곤란하다. 구리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교통부에 그린벨트 관련규제 완화를 요청중이다. 박영순 시장은 “동북공정으로 ‘역사지키기’에 대한 국민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고, 여·야가 준비중인 ‘고구려 사적 복원 및 지원사업에 관한 법률’이 조만간 마련되면 사업이 급속도로 탄력을 받는다.”고 기대했다. 구리시와 국회 고구려포럼은 지난 6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박영순 시장과 구리 출신 열린우리당 윤호중 의원, 서영수(단국대), 윤명철(동국대), 임효재(서울대)교수와 건교부 이재홍 기획관이 참가해 고구려 역사유적 공원조성과 관련한 토론회를 열었다.7∼9일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구려 역사복원을 위한 예술제도 열렸다. 구리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박영순 구리시장 “동북공정으로 중국의 고구려 유적이 마구 변형되는 와중에 원형모델을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박영순 구리시장은 지난 94년 관선시장 때부터 서울의 특색없는 위성도시에 불과했던 구리시의 발전 테마를 내심 ‘고구려’로 정했다. 최근 4년 동안의 야인시절에 그가 쓴 에세이집 ‘가슴으로 부르는 구리사랑 노래’엔 고구려 관련 부분이 전문사학가 수준 못지않은 지식을 바탕으로 광범위하게 기술돼 있다. “1500년 전 고구려의 모습을 재현하자는 것이 고구려 유적공원 사업의 핵심입니다. 유적공원이 조성되면 구리시는 중국의 지안(集安), 북한의 평양과 함께 3대 고구려 유적도시로 대내외에 확실히 자리매김할 겁니다.” 외교관 출신의 박 시장은 “중국의 동북공정은 한반도 통일 이후 만주를 둘러싼 영토분쟁 발생에 대비하려는 중국의 속셈 때문이라고 본다.”고 진단했다.“고구려사를 우리 민족사로 인정받으려면 중국이나 평양에 가지 않고도 고구려 역사·문화를 체험할 장소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박 시장은 고구려 유적공원 조성을 공약사항으로 내걸고 출마, 수도권에서 열린우리당 후보의 유일한 단체장 당선자가 됐다. 박 시장은 장차 고구려 유적공원을 아차산과 장자못, 한강변 토평 꽃단지 등과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의 구심점이 될 관광벨트로 묶는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구리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이이화 서원대 교수 “아차산 출토 고구려 유물이 10년째 마땅한 장소가 없어 서울대박물관에 방치상태로 임시 보관중입니다.” 역사학자 이이화(서원대 석좌교수·69)씨는 12일 “국민의 역사의식을 높이고, 사학계의 고구려사 심층연구를 위해서도 자료관 형식의 현장박물관 건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차산 유적지를 공유하고 있는 서울 광진구도 유적공원 건립을 구상했던 것으로 아나, 지역적 여건으로 보아 구리시에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시리즈로 출판된 ‘한국사 이야기’의 저자이자 고구려역사문화보존회 이사장인 이씨는 25년째 아차산 가슭에 살며 아차산과 고구려의 관계를 현장에서 연구해 왔다. “한강변 아차산은 삼국시대 신라·백제·고구려 삼국의 접경지로서, 고구려가 장수왕시대에 백제를 침공해 개로왕을 참수하고 한강 진출을 이룬 곳입니다.100년 가까이 이 지역을 지배했고 온달 장군이 전사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추가 발굴도 시행돼야 합니다.” 이 이사장은 “동북공정의 와중에 ‘고구려 역사지키기’는 범국민적 관심사이고, 책으로만 고구려를 배우기보다는 재현된 유적·유물을 통해서라도 실물을 접하는 것이 당연히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차산 고구려 유적도 복원·보존하고 ‘역사교육의 장’이 되도록 그린벨트 관련규정 등 법률적 장애를 조속히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리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46) 神道碑(신도비)

    儒林 723에는 ‘神道碑’(귀신 신/길 도/비 비)가 나오는데,‘임금이나 二品(이품) 이상 官僚(관료)의 墓地(묘지) 남동쪽 큰길가에 세운 石碑(석비)’를 말한다. ‘神’은 원래 번개가 번쩍이는 모양을 본뜬 ‘申’(신)이었는데 후에 ‘제사’와 관련된 뜻을 나타내기 위해 ‘示’(시)를 붙였다. 본 뜻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게 ‘電’(전)이다. ‘道’는 원래 길과,梟首(효수)된 사람의 머리 상형인 ‘首’(머리 수)를 합해 國法(국법)의 준엄함을 의미하는 글자였다. 그 뜻이 ‘거리’나 ‘길’로 확장되었고, 사람이 지키고 실천해야 할 ‘도리’,‘조리있게 말하다’의 의미도 派生(파생)하였다. ‘碑’는 意符(의부)인 ‘石’(석)과 聲符(성부)인 ‘卑’(비)가 합쳐진 會意字(회의자).‘石’자는 甲骨文(갑골문)의 발견으로 손아귀에 잡을 수 있는 크기의 날이 있는 돌의 상형임이 밝혀졌다.‘卑’의 윗부분은 儀式(의식)에 쓰이는 일종의 儀仗(의장)이며, 아랫부분은 오른손의 상형인 ‘又’(우)의 변형이다. 의식 행위에서 의장을 들고 도열하는 사람들은 신분이 낮았다는 데서 ‘낮다’‘천하다’의 뜻으로 쓰였다. 碑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내용에 따라 墓碑(묘비),塔碑(탑비),神道碑(신도비),事蹟碑(사적비),遺墟碑(유허비),記功碑(기공비),頌德碑(송덕비),旌閭碑(정려비) 등으로 부른다.碑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臺座(대좌)와 碑身(비신)과 蓋石(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다.臺座는 碑身을 받치는 받침대로 네모 형태와 거북 모양이 주류를 이룬다. 비신은 직육면체로 앞면을 碑陽(비양), 뒷면을 碑陰(비음)이라 한다. 비의 상단부나 개석에는 題額(제액)을 새긴다. 일반적으로 篆書(전서)로 쓰기 때문에 篆額(전액)이라고도 한다.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을 총칭하여 墓碑(묘비)라 하는데,神道碑(신도비),碑(비),碣(갈),表石(표석) 등이 있다.碑에는 故人(고인)의 성명, 본관, 원적, 행적, 경력 등의 事蹟(사적)을 기록한다. ‘神道碑’는 원래 중국 漢(한)나라에서 종2품 이상의 官僚(관료)들에 한하여 세웠다. 우리나라에서는 東文選(동문선)등의 문헌으로 보아 高麗(고려)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王陵(왕릉)에도 신도비를 건립하였으나 文宗(문종)이 법으로 금하였다.2품 이상의 관원에게만 허용되었기 때문에 신도비는 집안의 位相(위상)과도 관련이 있었다.功臣(공신)이나 碩學(석학) 등에게는 왕이 직접 건립을 명하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碑와 碣(갈)이 통용되었으나, 후대로 오면서 벼슬 등급에 따라 명칭을 달리하였고, 형태도 달라졌다.碑는 長方形(장방형)으로 지붕 모양의 蓋石을 얹는다. 반면 碣은 덮개 없이 碑身(비신)의 상단부를 둥그스름하게 만들고, 비에 비해 규모도 작다.3품 이하 관원의 무덤에는 墓碣(묘갈)을 세운다. 墓에 대한 分辨(분변)장치는 碑나 碣(갈)에 그치지 않는다. 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인멸에 대비하여 墓誌(묘지), 혹은 誌石(지석)을 설치한다. 금속판이나 돌,陶板(도판)에 죽은 사람의 原籍(원적)과 성명, 생년월일, 행적, 묘의 위치 등을 새겨 무덤 앞에 묻는 것을 말한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백제를 세계로”

    “백제를 세계로”

    충남도는 17일 공주와 부여의 백제시대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도는 “등재 대상은 공주 송산리 고분군과 부여 능산리 고분군”이라며 올해까지 기본계획 수립과 보존가치 및 대상구역을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도는 문화재청을 통해 내년 12월까지 유네스코에 잠정등록 신청서를 제출하고 2009년 초 외교통상부를 통해 최종 등재신청서를 낼 계획이다. 송산리 고분군에는 무령왕릉이 있고,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가 출토돼 국내외 관심이 집중됐다. 국내에서는 종묘, 해인사 팔만대장경, 불국사·석굴암, 창덕궁, 수원 화성, 고창·강화·화순 고인돌유적, 경주 역사유적지구 등 7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백제시대 유적은 전혀 없는 상태다. 도는 기본계획수립 용역비를 추경에 반영한 데 이어 내년 본예산에 3억원을 책정, 유네스코 제출 영문판 보고서 작성 등에 사용키로 했다. 도 관계자는 “문화재청에서도 백제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면서 “공주시와 부여군이 매년 번갈아 여는 백제문화제를 두 지역에서 동시에 열고 2010년 완공되는 부여 백제역사재현단지 등을 활성화, 백제유적지를 세계적인 유적지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조선왕릉에 얽힌 이야기속으로

    왕릉으로 소풍을 갔던 기억이나, 서울 지하철역에 선릉·공릉·태릉 등이 있는 것을 보면 조선왕릉의 존재는 친숙한 편이다. 그러나 내년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조선왕릉에 담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현직 기자이자 왕릉 문화관광해설자인 한성희씨가 쓴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의 비밀’(2권, 솔지미디어 펴냄)은 남북한에 있는 42개 조선왕릉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조선왕릉은 단순히 왕과 왕비의 무덤만은 아니다. 풍수지리학·조경학·건축학·석조미술학에다가 역사·정치·경제행정은 물론, 복식·음식문화·제기·의전 등 조선사의 거대한 종합 박물관이다. 저자는 당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치적 사건부터 풀리지 않는 역사적 미스터리, 왕릉 주변의 자그마한 호기심까지 세심하게 소개한다. 군사정권에 짓밟힌 희릉과 효릉, 예릉, 의릉, 서삼릉 등에서 벌어진 수난사를 들여다보면서 문화재 훼손에 대한 따끔한 경고도 던진다. 또 세종대왕을 황제로 추숭하는 등 왕릉 성역화 작업이 이뤄졌던 것에 대해 비판하고, 많은 사료를 뒤져 ‘연산군이 독살당했다.’는 증거를 당당히 제시한다. 이와 함께 왕릉을 산책하며 발견한 아름다운 사계절의 생명력을 경쾌하게 전달함과 동시에 ‘왜 왕릉 근처에는 숯불갈비집이 많을까.’라는 사소한 호기심까지 충족시켜 준다. 권 1만 5000원.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궁궐 문화재 안내판 ‘180도 변신’

    궁궐 문화재 안내판 ‘180도 변신’

    경복궁·창덕궁 등 관람객들의 발길이 잦은 조선시대 궁궐 내 문화재 안내판이 확 바뀐다. 문화재청은 유적지 풍경을 해치거나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5대 궁궐 안의 안내판을 모두 바꾸기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다음달 말부터 경복궁과 창덕궁의 안내판이 교체돼 새롭게 정비된 40여개의 안내판을 볼 수 있게 됐다. ●제 역할 못한 안내판 퇴출 그동안 안내판이 제 구실을 못하고 찬밥 신세가 된 것은 궁궐 안 곳곳에 세워져 있어 관람 분위기를 깨뜨리고, 내용의 신뢰도가 떨어지거나 전문 용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궁궐 내 건물 하나하나에 안내판이 세워져 관람 동선과 관람객 시선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 관람객은 “궁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데 안내판이 방해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안내판과 안내책자(브로슈어), 안내서(리플릿), 음성안내, 안내 도우미 설명 등의 내용이 중복돼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례도 많다. ●권역별 안내판으로 단순화해 새로 탄생하는 안내판은 건물별이 아니라 여러 권역별로 묶어 단순화하고 꼭 필요한 정보만 추려 쉽고 간결하게 담았다. 특히 권역별 입체 지도를 곁들여 관련 문화재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돕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기존 스테인리스스틸·페인트 재질에서 알루미늄·물감 재질로 바꿔 궁궐 분위기에 맞춘다. 또 안내매체별 역할을 분담, 상호 연계되도록 안내판은 문화재의 명칭과 연혁을 담고 리플릿은 문화재 배치와 관람안내를, 책자는 개별 문화재의 상세한 설명을, 해설사는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와 야사를 들려주는 방법을 적용한다. 궁궐별 책자와 리플릿도 다시 제작된다. ●궁능에서 사적으로까지 확대 문화재청은 우선 다음달 말부터 경복궁·창덕궁 안내판을 교체한 뒤 내년 상반기까지 창경궁·덕수궁·종묘 등으로 확대키로 했다. 현재 60∼140개인 궁궐의 안내판이 새롭게 정비되면 20∼45개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문화재활용과 하선웅 사무관은 “형태와 내용이 제각각이었던 문화재 안내판을 체계적으로 개선,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 데 의의가 있다.”면서 “궁궐에 이어 내년 말까지 왕릉의 안내판도 정비하고, 지방의 절·향교 등 사적지들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파주시립묘지에 무료 순환버스

    파주시립묘지에 무료 순환버스

    서울시설관리공단은 추석 연휴인 5∼7일 경기 파주시 시립묘지와 정류장 사이에 순환버스를 무료로 운행한다고 4일 밝혔다. 순환버스는 옥미교∼왕릉식 추모의 집(1구간), 혜음령 식당∼용미리 추모의 집(2구간) 사이를 운행한다. 각 구간에 버스 2대씩이 투입돼 오전 7시3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운행될 예정이다.
  • 차례 지내고 고궁·박물관으로

    추석을 맞아 30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경복궁·현충사 등 고궁과 능원, 유적관리소 등이 전통문화행사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했다. 특히 이 기간 중 한복을 입고 고궁 및 왕릉을 찾는 관람객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경복궁에서는 조선시대 과거제와 훈민정음 반포 재현, 궁성문 개폐, 수문장 교대의식 등을 볼 수 있다. 창경궁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와 궁중무악인 무고, 향발무, 포구락, 처용무, 수제천, 여민락 등을 선보인다. 덕수궁에서는 평택농악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생활다례 체험, 전통 탈모형 목걸이 만들기 등을 통해 우리 민속의 멋과 흥을 즐길 수 있다. 또 정릉·서오릉·융건릉 등 13개 능원 및 현충사, 세종대왕유적관리소, 칠백의총관리소 등에서는 세시 민속놀이인 널뛰기, 제기차기, 윷놀이, 팽이치기 등을 직접 즐길 수 있다. 이와 함께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집’에서는 부채춤, 남도민요, 농악 공연을 볼 수 있으며, 전통음식 전시·시식도 제공된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음달 5∼7일 널뛰기·목판 인쇄 등 전통놀이·문화 체험과 함께 판줄·북청사자놀음 등 민속공연 한마당을 선보인다. 특히 극장 ‘용’에서는 고구려 춤극 ‘THE HAN-무천’을 볼 수 있다. 민속박물관은 다음달 1∼8일 택견과 퓨전국악, 황해도굿, 서울풍물굿 등을 공연하며,3∼8일에는 전통탈 만들기 등 다양한 민속문화 체험마당을 진행한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Local] 경주 관광 부담·불편

    경북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는 곳마다 주차료와 입장료를 내야 하는 부담과 함께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8일 경주지역 관광업계에 따르면 경주시가 추천하는 1일 관광코스로 승용차를 이용해 여행할 경우 성인 1명이 부담하는 주차료와 입장료는 2만 6600원에 달한다. 1일 관광코스에는 분황사, 불국사, 석굴암, 통일전, 박물관, 안압지, 첨성대, 천마총, 포석정, 오릉 등이 포함된다. 사적지별 주차료의 경우 적게는 1000원부터 많게는 3000원까지 다양하다. 입장료도 성인 1인의 경우 불국사와 석굴암이 4000원이며 나머지의 경우는 500원에서 2500원까지. 이 때문에 경주 관광객 대부분은 사적지를 둘러볼 때마다 주차료와 입장료를 내는 데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처럼 관광객들의 불만이 커지자 경주시는 지난 1일부터 무열왕릉, 장군묘, 안압지, 삼불사 주차장 무료개방에 들어갔다.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장군총 붕괴 위험

    장군총 붕괴 위험

    |지안(중국) 이재훈특파원|고구려 20대 장수왕의 능으로 알려진 장군총(將軍塚)이 붕괴 위험 속에 방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신문 취재진이 최근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 위치한 장군총을 찾아 확인한 결과, 장군총은 전체 구조물을 떠받치고 있는 기단석(基壇石)들이 크게 어긋난 채 바깥으로 밀려나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장군총은 화강암을 깎아 만든 1100여개의 기단석을 7층으로 쌓아 한 변 길이 33m, 높이 13.1m 규모로 만들어진 고구려 때 대표적인 석실묘로 ‘동방의 피라미드’로 불린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도 가치를 인정해 2004년 8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붕괴의 첫째 요인은 사면을 나눠 받치고 있는 기댐돌인 호석(護石)이 유실됐기 때문이다. 장군총에는 원래 15∼20t 무게의 2∼3m가량 되는 호석이 한 면에 3개씩 모두 12개가 배치돼 기단석을 떠받치며 붕괴를 방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뒷면(북동쪽)의 가운데 호석이 이미 수십년 전 유실됐다. 고구려역사문화유적가이드 최영관(47)씨는 “장군총 주변에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집을 짓고 살던 시절, 누군가 호석을 빼가 집 짓는 재료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왼쪽(서북쪽) 맨 뒤쪽에 위치한 호석 아래 굄돌이 밑으로 가라앉은 것도 붕괴 위험을 더욱 높이고 있다. 특히 200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이후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급증한 방문객들이 장군총을 마구 밟고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군총에는 최근 한달에 3000명 이상이 찾고 있다. 재작년 1만 5000여명이던 관광객이 지난해에는 두 배인 3만여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1989년부터 2004년까지 다섯 차례 장군총을 답사한 단국대 역사학과 서영수 교수는 “2년 전 지안시를 방문하고 문화재청에 광개토왕릉비와 장군총 훼손 문제를 지적했지만 이제까지 대책회의 한번 열리지 않았다. 훼손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중국 정부와 공동협의기구를 만들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nomad@seoul.co.kr
  • [지금 금산에서는] ‘고려인삼’ 국제 경쟁력 키운다

    [지금 금산에서는] ‘고려인삼’ 국제 경쟁력 키운다

    #상황1 한국산 인삼 수출액이 1990년 1억 6400만달러에서 지난해 8300만달러로 떨어졌다. #상황2 중국은 최근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 기슭에서 대대적으로 ‘백두산 인삼’을 재배해 저가격·고품질의 전략으로 한국 및 해외시장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산 ‘고려인삼’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해외에서의 실적은 갈수록 초라해지고 있다. 웰빙식품의 하나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인삼이 그 어느 때보다 위기를 맞고 있다. ‘금산 세계인삼엑스포’가 탄생한 것도 이런 위기의식이 한몫을 했다. 충남도는 다음달 22일부터 10월15일까지 국내 인삼의 80%가 유통되는 인삼의 본고장 금산군 금산읍 일대에서 24일간 엑스포를 연다. 인삼 엑스포로는 세계에서 처음이다.‘생명의 뿌리, 인삼’이란 주제로 펼쳐진다. 개막식은 하루전인 9월21일 열려 분위기를 미리 달군다. ●엑스포장 완공 눈앞 엑스포 개장을 한달 앞둔 22일 금산읍 신대리 엑스포장 건립공사 현장. 주 행사장인 주제관의 외부공사는 완공을 앞두고 있으며 지금은 내부 전시공간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엑스포장 조성공사 공정률은 현재 90%쯤 가까이 이르고 있고 이달 말이면 공사가 끝난다. 이후 개막까진 계속 전시연출 연습이 있을 예정이다. 행사장 면적은 모두 12만 9000평. 주제관과 기존의 인삼종합관이 주된 전시관이다. 이곳에는 모두 6개의 전시관이 운영된다. 공터에는 인삼음식관과 휴게시설, 일반식당 및 판매시설 등이 들어선다. 현 금산국제인삼센터는 행사기간에 인삼판매 및 교역상담 장소로 쓰인다. 공사장에는 직접비 130억원과 간접비 271억원 등 총 401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세계 15개국 참가 인삼 엑스포에는 미국·중국·홍콩 등 해외 15개국 80여개 업체가 참가한다.100여명의 해외 바이어도 참여한다. 이들은 인삼교역 활동을 벌이고 각종 인삼관련 학술회의에 참가할 예정이다. 인삼 엑스포조직위원회는 66만명의 관람객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보식 조직위원장은 “2002년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에 비해 예산 규모나 관람객은 적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상품인 인삼을 세계에 알리는 유일한 행사여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안면도 꽃박람회는 당초 관람객 72만명을 예상했었으나 2배를 크게 웃도는 164만여명이 몰리며 대성공을 거뒀다. 인삼 엑스포조직위도 이같은 성공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조직위는 이를 위해 입장권을 구입하는 관람객에게 칠백의총, 부여 부소산, 공주 무령왕릉 등 주변 관광지를 무료 입장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한다. 충남지역 음식점과 숙박시설을 10∼20%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계획이다. 엑스포장 입장료는 어른 1만원, 어린이 5000원. 또 엑스포장은 구절초 등 가을을 한껏 느낄 수 있도록 50여종의 꽃으로 완전히 뒤덮어 분위기를 돋군다. ●교통 괜찮지만 숙박 불편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다 금산IC에서 빠져 채 5분도 달리지 않아 인삼 엑스포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금산IC∼중도4거리간 3.8㎞의 지방도 4차선 확장공사는 끝났고 행사장 외각도로 1.4㎞도 완공 단계다. 주차장도 2만 5000평 규모로 만들어져 9600대가 동시에 주차할 수 있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숙박시설은 여관과 민박을 포함,1550실에 불과하다. 조직위는 대전 유성에 외국인들을 숙박시키고 내국인은 논산과 부여, 충북 옥천 등 인근 지역의 숙박시설을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이 위원장은 “이번 인삼엑스포가 한국산 인삼의 우수성을 해외에 널리 알리고 브랜드 가치를 높여 중국산 등 저가 인삼의 거센 공략에도 맞설 수 있는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인삼이 별미네” 엑스포에서는 각종 진귀한 인삼요리를 구경하고 맛도 볼 수 있다. 엑스포 기간에 선보이는 인삼관련 요리는 모두 125종에 이른다. 전통식 63종, 서양식과 결합한 퓨전식 32종, 선물하기 좋은 인삼가공 포장음식 30종이다. 전통식으로는 생선·닭살과 수삼을 한데 쪄 겨자에 찍어 먹는 수삼선과 간장소스에 다진 고기와 대추·수삼을 넣어 졸여 먹는 수삼장산적 등이 있다. 수삼 잔뿌리를 넣어 만드는 수삼 간장게장과 인삼이 섞인 잡채 등도 선을 보인다. 인삼은 비린내를 없애 준다. 퓨전식에는 완두인삼수프와 인삼유산슬이 있다. 수프는 완두·양파·수삼을 볶은 뒤 수삼을 달인 물을 넣어서 만들고, 유산슬은 해삼과 돼지고기 등 기존재료에 인삼을 추가한 중국요리다. 돼지고기와 인삼에 바비큐 소스와 고추장을 발라 구운 요리와 수삼으로 만든 샐러드, 수삼을 넣은 햄버그스테이크 등 인삼요리도 군침을 돋게 한다. 포장음식은 찹쌀을 묻혀 말린 수삼부각, 오이 대신 수삼을 넣은 수삼피클, 인삼장아찌, 인삼쿠키, 인삼영양갱 등 우리와 친숙한 먹을거리에 인삼을 활용해서 만든 음식들도 전시될 예정이다. 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인삼의 모든 것’ 한눈에 “인삼의 모든 것을 보여드립니다.” 금산 인삼엑스포장에 입장해 주 전시관인 주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 엑스포장 3만 3000여평에는 울타리가 쳐지고 출입문 2개가 설치돼 있다. ‘생명의 뿌리 인삼관’이란 이름의 주제관에 들어서자 발 밑으로 빨간 딸(열매)이 주렁주렁 매달린 인삼이 8m쯤 도열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폭 4m의 통로 양옆에 딸을 맺은 인삼을 통과하면서 특수자재인 하프미러를 통해 광활하게 펼쳐진 인삼밭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를 위해 조직위는 딸이 떨어지는 것을 억제하려고 인삼을 지연 재배 중이다. 딸이 떨어지는 시기는 7∼8월. 행사기간에 이를 활용하기 위해 792뿌리를 15도의 저온창고에서 신주 모시듯 정성을 들여 기르고 있다. 거대한 인체모형으로 들어가자 모형이 꿈틀거린다. 인삼이 간과 폐 등 인체에 미치는 변화를 보여줘 인삼의 효능을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불로장생의 꿈’이란 코너에서는 중국 진시황의 불로초 얘기를 인삼과 연계시킨 ‘진시황의 불로초 원정대’란 영화가 상영돼 관람객들은 백두산에 이를 찾으러 가는 환상에 빠져 든다. 주제관의 마지막 코스는 휴식을 취하면서 남녀가 포옹하거나 뜀박질하는 모습 등 갖가지 진기한 모습으로 자라난 인삼을 모아놓은 장면을 볼 수 있다. 주제관을 나와 인삼산업관으로 들어서면 국내외 8개 업체가 설치한 103개 부스가 가득 들어차 있다. 이곳에서는 독일·일본·캐나다 등에서 생산된 인삼을 비교 전시, 흥미를 돋운다. 이어 인삼종합관에 가면 금산의 인삼재배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인삼을 재배하고 수확할 때 쓰는 각종 도구들도 전시된다. ‘상도관’이란 코너에는 금산에서 있었던 인삼무역의 역사가 밀랍인형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 인삼음식관에 잠깐 들러 각종 인삼음식을 시식한 뒤 인삼종합유통센터를 통과하면 호박터널이 맞이한다. 녹색과 노란색이 한데 어우러진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린 터널이 색다른 맛을 제공한다. 지난 4월 충남 예산에서 열렸던 벤처농업박람회 때도 인기가 높았다. 이곳을 지나면 인삼재배기술관이 있다. 연작장애경감과 수경재배 등 각종 재배기술이 선보이며,113평의 밭에 인삼과 장뇌삼, 산양삼 등이 심어져 있어 비교해 보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옆에 있는 건강체험관은 관람객의 인기가 대단할 것으로 보인다. 무료로 건강상담을 해주고 인삼마사지도 받을 수 있다. 족욕과 발 마사지도 가능하다. 주 행사장 옆에 위치한 약초시장에서는 같은 기간 ‘금산인삼축제’가 열린다. 올해 26회째로 축제 때면 으레 벌어지는 인기가수 공연과 연극 등을 구경할 수 있다.‘인삼캐기’와 ‘인삼주 담그기’ 등 인삼체험도 즐길 수 있다. 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한국인인 나는…태극이요… 무궁화요… DMZ이다

    ● 고종이 태극 고안…본지 특종 세계 모든 나라가 자국을 상징하는 국기를 갖고 있으나, 우리나라처럼 그 상징에 우주만물과 철학을 담고 있는 예는 찾기 힘들다. 바로 태극(太極)과 괘(卦)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홍으로 이루어진 태극은 음(청색)과 양(홍색)의 상호 작용에 우주만물이 생성·발전하는 대자연의 영원한 진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창조와 발전을 의미한다. 태극은 우주자연의 생성근본원리이며, 창조적 우주관을 담고 있다. 이러한 태극기는 1882년 8월9일 박영효(朴泳孝)가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배 위에서 만들었고, 이를 8월14일 고베의 숙소 니시무라야에 게양한 것이 효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97년 10월9일 서울신문사에서 발행한 ‘뉴스피플’ 제288호에 실린 특종 기사에 따르면, 태극기를 직접 도안하고 색깔까지 지정한 인물은 고종(高宗) 임금이라고 한다. 박영효는 고종의 지시에 따라 일본으로 가면서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태극 문양을 사용한 연원은 매우 오래 되었다. 우선 선사시대 때의 고령과 울산 암각화에서도 발견되며, 고구려의 고분벽화 사신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682년(신라 신문왕 2년) 경주 감포에 세운 감은사의 기단석에도 태극 문양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태극 문양은 종묘와 궁궐 및 왕릉, 사찰 등 도처에서 다양하게 발견된다. 특히 서울대 규장각도서관에 소장된 어기(御旗) 채색도를 보면, 중앙에 4개의 동심원을 수직으로 나눈 태극과 그 주위에 8괘를 배치한 그림을 조선시대의 임금을 표상하는 깃발로 사용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굳이 의미를 달자면 태극기의 시조쯤 되지 않나 생각된다. 2002년에도 그랬지만, 석 달 전 밤잠을 설치게 했던 2006년 월드컵 때에도 변함없이 태극 문양은 붉은색과 함께 하나의 패션이 되었다. 상하와 좌우가 융합하지 못하고 커다란 장막에 꽉 막힌 듯한 세상, 태극 창제의 정신으로 극복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여겨진다. ● 산해경에도 ‘훈화초가 아침에 피고… ’ 기록 애국가를 보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후렴의 첫 구절을 장식하고 있다. 매사 따지기를 좋아하는 혹자는 이 구절이 잘못됐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노랫말처럼 무궁화가 우리 강산 삼천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지 못한 까닭이겠다. 그런데 옛 기록들을 보면 한반도가 무궁화 자생지였고, 한반도의 특징으로 인식될 만큼 도처에 만발했음을 알려준다. 무궁화가 한반도와 관련된 사실을 알려주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이다. 이 책의 ‘해외동경’편에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훈화초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는 시든다.”고 하였다. 북방에 있는 군자의 나라는 한반도이며, 훈화초(薰花草)는 무궁화를 일컫는 중국의 옛 명칭이라 한다. 또한 신라의 효공왕이 897년 7월 당나라의 광종에게 국서를 보낸 일이 있는데 그 국서 가운데 신라를 자칭하여 근화향(槿花鄕)이라고 한 사실도 확인된다.‘근화’ 또한 무궁화의 또다른 이름이다. ● 한국인 뿌리 밝혀주는 단서 역사상징 가운데 선사시대의 것은 빗살무늬토기와 고인돌을 우리의 민족문화상징으로 삼기에 가장 적합할 듯하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출토·발굴된 수많은 선사 유물과 유적 중 이들만큼은 한반도가 주인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우리나라 전역에서 만들어 쓴 토기에 대한 통칭으로, 한국인의 뿌리를 밝혀주는 단서가 된다는 데서 그 중요성을 더한다. 빗살무늬토기 발견 분포도를 보면, 바이칼호 일대가 빗살무늬토기 문화의 중심지이며 빗살무늬토기는 여기로부터 동으로는 만주를 거쳐 한반도까지, 서로는 볼가강 유역을 거쳐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반도까지 전해졌다는 것이 세계 고대사 학계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고대 문명의 발상지를 바이칼호 일대로 보는 근거가 된다. 발굴 현장에서 깨진 토기 조각들이 출토되고, 그 파편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맞추어 원래의 형체를 되살린 빗살무늬토기가 이처럼 장구한 민족의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가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파편 어느 것 하나조차 조상의 신주 모시듯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민족상징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사회구조와 문화를 단적으로 대변해 주는 거석(巨石) 문화유산이다. 한자로 지석묘(支石墓:일본), 석붕(石棚:중국)으로 표현되는 고인돌은 아시아를 비롯하여 유럽·아프리카 등에서 약 5만 5000여 기가 확인되는데, 그 중 약 3만여 기가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어 우리나라가 전세계 고인돌의 중심국가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한반도에 그 분포가 집중되어 있는 고인돌의 기원에 관해서는 동남아시아 또는 중국 동북부지역에서 바다를 통해 전해졌다는 전파설과 함께, 주변지역과 관련 없이 자체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자생설이 맞서고 있다. 자생설은 한반도가 동남아시아나 중국 동북부지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고인돌이 많다는 점, 그리고 축조 연대가 이들 지역의 것보다 앞선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고인돌은 선돌(立石)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석문화의 요체이며, 조상들의 정신세계가 구현된 귀중한 민족상징이다. 이에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언스에서 열린 제2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우리나라의 고창·화순·강화 등 3개 지역의 고인돌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 민족의 상처…지금은 희귀동물 서식지로 비무장지대(DMZ)와 길거리응원은 어찌 보면 우리 민족의 상처와 냄비 기질을, 또 어찌 보면 우리민족의 기회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 마치 야누스와 같다고 하겠다. 비무장지대는 민족의 아픔인 ‘한국전쟁’에 직접 참여한 유엔군과 북한·중공군이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에 합의하면서 한반도 중앙의 동서 248㎞ 길이를 군사분계선으로 삼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만 본다면 비무장지대는 우리 민족이 입은 커다란 상처덩어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자유로운 출입이 막힌 결과 비무장지대는 희귀동식물들의 주요서식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생태를 조사하기 위한 남북학술조사단의 구성과 활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비무장지대는 민족분단의 아픔은 물론, 자연 생태의 보고(寶庫)와 민족화합, 평화공존의 현장성을 함께 간직하고 있는 주요 문화상징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 문화국민으로서 성숙된 질서의식 표출 2002년뿐 아니라 2006년에도 세계를 놀라게 한 길거리응원은 남녀노소가 너나할 것 없이 공간과 시간에서 동질화되고 균일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문화행위였다. 서울 광화문과 시청을 비롯하여, 부산·대구·광주·인천·대전·울산·전주·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적게는 수만명에서 많게는 수십만명이 ‘애국’으로 하나 되어 우리 축구대표팀을 함성과 율동으로 응원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길거리응원은 오직 신기록 수립과 문화국민으로서의 성숙된 질서의식만이 관심사였지 이를 가능케 한 ‘변화’에 대한 인식은 가려져 있었던 듯하다. 예전 같으면 수십만명이 한 곳에 모이는 사건(?)이 어찌 가능했을까. 우리의 기억에는 ‘집시법’이라는 반(反)민주적 잣대를 들이댄 강제해산만이 남아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보다 더 큰 변화는 아마도 찾기 힘들지 않나 생각된다. 길거리응원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또 내후년, 또 그 다음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이에 더해 자부심을 갖게 되는 점은 이번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나타났듯이 우리의 길거리응원이 세계 각지에서 벤치마킹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책꽂이]

    ●가출 아빠의 사랑 스케치(박광무 지음, 지식더미 펴냄) 미국 미주리 주립대학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한 저자(국립중앙박물관 기획운영단장)의 미국생활 체험기. 컬럼비아 공공도서관 ‘커뮤니티 서클’의 시민 자율토론회 모습을 인상 깊게 소개한다. 서클 코드(circle code)에 따라 토의를 진행하는 진행자의 역할, 민주적 토의를 하되 주장을 하지 않는 원칙 등을 들려준다. 컬럼비아 동남쪽 작은 농촌도시 허먼의 포도밭 순례기도 눈길을 끈다. 아내를 한국에 두고 아이들과 미국에서 생활한 저자는 자신을 ‘역기러기아빠’라고 부른다.1만 3000원.●가난한 리처드의 달력(벤저민 프랭클린 지음, 조민호 옮김, 휴먼하우스 펴냄) ‘가장 지혜로운 미국인’으로 불리는 저자가 25년간 발행한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에 실린 인생의 금언들을 소개. 저자는 “못 하나를 소홀히 하면 편자를 잃게 되고, 편자를 소홀히 하면 말을 잃게 되고, 말을 잃게 되면 기마병을 잃게 된다.”며 ‘편자의 못 하나’와 같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소홀히 하면 큰 화를 당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술을 쏟은 사람은 술만 잃지만, 술을 마신 사람은 술과 함께 자기 자신도 잃는다.”는 절제있는 생활을 강조한 말도 새겨둘 만하다.1만 1000원.●경주왕릉(이종호·윤영수 지음, 열린박물관 펴냄) 신라는 ‘황금의 나라’였다. 금귀고리만 하더라도 백제는 40여점, 고구려는 20여점 발굴됐지만 신라는 700여점이 발굴됐다. 신라의 황금 유물 가운데 최고는 역시 금관이다.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금관은 모두 10개. 그 중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이 8개나 된다. 신라 왕릉 중에서 가장 큰 황남대총에서는 무려 7만점이 넘는 유물이 나왔다. 기원전 1세기부터 935년 멸망할 때까지 천년의 역사를 이어 온 고대문명국 신라의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경주 왕릉을 살핀다.9500원.●유쾌한 팝콘 경쟁학(김광희 지음, 국일증권경제연구소 펴냄) 메이지유신 시기 일본을 대표하는 계몽사상가이자 교육자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당시 서양에서 건너온 영어 ‘competition’을 어떤 일본말(한자)로 바꿔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다 마침내 ‘경쟁’이란 조어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영역없는 경쟁(cross competition)’의 시대. 사회 트렌드와 문화의 급속한 변화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상과의 경쟁도 당연시하게 만들었다.‘비선형을 수긍하라’는 등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는 법칙을 소개.1만 1000원.
  • 백제문화엑스포 2010년 부여·공주 개최

    ‘백제문화엑스포’가 오는 2010년 충남 부여와 공주에서 열린다. 충남도는 25일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알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백제문화권개발사업이 마무리되는 2010년 9월 말부터 40∼50일간 백제의 고도(古都)에서 이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는 다음달 말 백제문화엑스포 기본계획 연구용역결과가 나오면 올해말까지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내년 초 엑스포재단과 엑스포조직위원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나설 계획이다. 도는 부여 백제역사재현단지, 공주 무령왕릉을 주 행사장으로 해 삼국관, 국내관, 국제관, 세계고대국가관, 국제교류관 등의 전시관을 운영하기로 했다. 또 국제학술회의와 백제문화 체험행사를 열어 내국인 180만명, 외국인 20만명 등 모두 200만명의 관광객을 행사기간에 유치한다는 구상이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이길로 가면…여름잊고 심신 살찌우고

    이길로 가면…여름잊고 심신 살찌우고

    서울 근교 산으로 숲속여행을 떠나보자. 싱그러운 나무 향기에 취해 야생화와 곤충, 새들을 관찰하다 보면 아이들은 금세 숲속을 탐험하는 재미에 빠져든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매주 일요일에 자연탐방 프로그램 ‘숲속 여행’을 서울 근교 산 17곳에서 운영한다. 탐방코스에는 전문 숲 해설가가 동행한다. 코스가 완만해 가족 나들이에 제격이다. 참가비는 없지만 인기가 많아 인터넷 예약(san.seoul.go.kr)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주 강남지역의 산에 이어 이번 주에는 앵봉산, 안산, 인왕산, 남산, 개운산, 오패산, 초안산, 아차산, 봉화산, 수락산 등 강북지역 10곳을 소개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앵봉산 꾀꼬리가 많아 앵봉(鶯峯)이란 이름을 얻었다. 해발 230m로 높지 않지만 정상 인근은 경사가 급한 편이다. 온대림 숲의 마지막 천이단계에서 나타나는 서어나무를 비롯한 100여종의 수종과 각종 초본류, 지의류, 버섯 같은 균류가 살고 있다. 다양한 식물 덕에 곤충과 조류, 다람쥐, 청설모 등 야생동물이 터전을 잡았다. 특히 천연기념물 제323호인 황조롱과 맹금류인 말똥가리도 관찰되고 있다. ●탐방코스 3호선 구파발역 4번출구에서 만나 출발한다.7단계로 나뉘어 국수나무, 도토리, 아까시나무, 진달래, 소나무, 팥배나무, 서어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만난다. 정상에 자리한 서어나무 군락지에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서어나무와 작살나무, 담쟁이덩굴, 물갬나무, 다릅나무 등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넷째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1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서오릉은 사적 제198호로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다. 창릉 익릉 명릉 홍릉으로 구성돼 있는데 구리시의 공구릉 다음가는 조선왕실의 왕릉이다. 주변에는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통일로변에 위치한 구파발 인공폭포는 통일로의 이정표로 상징적인 공간이라 유명하다. ●가는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내려 4번출구로 나오면 집결지가 보인다. 버스는 7023,7723,7724,7731∼5,9703,9709,9710∼2번 등이 오간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강동구청 공원녹지과(350-1395). ■ 안산 무악(毋岳)이라고도 부른다. 산의 모양이 말안장, 즉 길마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에 있는 현저동에서 홍제동을 넘는 고개를 길마재, 즉 안현이라고 했다. 안산은 인왕산에서 서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무악재를 이루고 솟은 산이다. 해발 295.9m.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무악은 궁궐의 주산으로 주목받았다. ●탐방코스 서대문구청에서 출발한 탐방팀은 연흥약수터에서 안산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받는다. 조선시대 기록인 ‘용재총화’에는 무악재 주변에 밤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1960년대에 난립한 무허가 집을 철거하고,1970년대부터 인공 수림을 조성하여 지금은 메타세쿼이어, 왕벚나무, 산수유, 모감주나무, 소나무, 당단풍나무, 잣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연림으로 보존된 북쪽 비탈에는 진달래, 물오리나무, 노린재나무, 산초나무, 산벚나무 등이 드문드문 자리잡았다. 꿩, 메추라기, 박새, 딱따구리 등도 자주 눈에 띈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 넷째 일요일에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안산 정상의 무악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 13호)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육로 봉화를 남산봉수대로 최종 보고하던 곳이다. 연희동에 있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2003년 7월에 개원했다.1층은 인간과 자연관,2층은 생명진화관,3층은 지구환경관으로 구성돼 있다. 서대문형무소도 독특한 볼거리다.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이후 우리의 항일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이다.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홍제역 3번출구에서 7713,7738,7739번 버스를 타고 서대문구청 앞에 도착. 탐방신청 및 문의는 서대문구청 공원녹지과(330-1395) ■ 인왕산 해발 338.2m. 화강암으로 이뤄져 암반이 유난히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북악산이나 남산보다 산세가 웅장하고 풍치가 아름답다. 광복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산이었는데, 서울이 팽창하면서 중심부로 들어왔다. 인왕산에는 실제 사물과 닮은 기묘한 괴석들이 많다. 둥근 모자 모양의 모자바위, 돼지가 코를 들고 있는 듯한 돼지 바위 등이 유명하다. 산을 오르며 바위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탐방코스 사직공원에서 출발해 단군성전, 황학정, 쉼터, 약수터를 돌아온다. 바위산이라 중턱 이상에는 수목이 별로 없지만, 산등성이에는 때죽나무, 국수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등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다. 쉼터에 앉아 각종 나무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야생 조수와 계곡생태계 등을 배운다. 코스는 총연장 2㎞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 넷째주 일요일에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국사당(서울시 중요민속자료 제28호)은 서울을 수호하는 신당으로 무학동 인왕산 기슭에 있다. 원래는 남산 정상에 있다가 1925년 현 위치로 이전됐다.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신사인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당했다. 선바위(서울시 중요민속자료 제4호)는 인왕산 서쪽 기슭에 있는 두 개의 거석이다.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다고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거나,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이 있다. 자식 없는 사람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사직공원까지 도보로 5분 걸린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종로구청 공원녹지관(731-1459). ■ 남산 해발 265m로 서울의 중심부에 자리한 서울의 상징이다.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조선왕조 태조가 1394년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뒤 궁궐 남쪽에 있다고 해 자연스럽게 남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풍수지리상 남주작, 안산에 해당하는 중요한 산으로 태조는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지금의 팔각정 자리에 국사당을 세웠다. 서울시가 1991년부터 ‘남산 제모습 가꾸기’사업을 실시하여 훼손된 시설물을 철거한 후 야외식물원, 한옥마을 등을 조성했다. ●탐방코스 남산전시관에서 출발하는 탐방코스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양생화단지, 팔도소나무림, 야외식물원, 숲속길, 서울성곽, 봉수대 등 숲속여행의 총 결정판이라 부를 만한다. 애국가 2절에 나오는 것처럼 ‘철갑을 두른 듯’ 소나무가 울창했던 곳이지만, 일제 시대와 광복 이후 크게 훼손돼 지금은 아까시나무와 신갈나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행히도 소나무 탐방로가 있어 아쉬움을 달랜다. 코스는 총 연장 4㎞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첫째 셋째 일요일, 둘째 넷째 토요일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1975년에 설치된 서울 N타워(옛 남산타워)는 방송송신탑이다. 최근 리모델링을 끝내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품과 유물이 전시된 안중근의사기념관(771-4195)과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몸으로 막은 충신들을 기리는 장충단비가 놓인 장충공원도 구경할 만하다.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물이 흐르는 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전통한옥 5채를 옮겨 놓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는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4호선 서울역·회현역에서 15분 걸어가면 전시관 뒤편 맨발보드 앞에 야외식물원이 나온다. 이곳이 집결지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남산공원관리사무소(753-7060∼2). ■ 개운산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을 담은 개운사라는 절이 있는 곳이어서 개운산이라고 부른다. 동쪽으로는 정릉천과 월곡산이, 서쪽으로는 성북천과 북악산이 뻗어 있다. 두 물줄기는 용두동에서 만나 청계천에 합류한다. 성북구 중심에 위치한 자연산지형 공원이어서 쾌적한 주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탐방코스 “대화 없이 힘들게 하는 산행은 어린 두 딸에게 무리지만, 숲 해설가 선생님과 더불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산책을 하듯 탐방을 마쳤습니다. 집에서 가까워 탐방 후에는 개운산을 둘러보며 휴일 오후를 보냈습니다.” 개운산을 다녀온 정옥씨 가족이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도심에 있어 수목이 울창하지 않지만, 산책로와 자연생태학습장이 잘 조성돼 있어 가족나들이에 제격이다. 때죽나무, 산딸나무, 국수나무 등 수목과 복수초, 비비추, 옥잠화 등 초화류를 자연학습장에 심어 놓았다. 산책로 주변에는 활엽수림과 침엽수림이 자리하고, 민들레, 제비꽃, 복수초 등이 자란다. 코스는 총 연장 1.5㎞로 약 3시간 소요된다. 첫째, 셋째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석축 성곽. 높이 40척(12m)의 돌로 쌓았고 둘레가 5만 9500척으로 서울 장안을 지키던 울타리다. 돌 틈에 노송이 뿌리를 내리고, 이끼와 넝쿨이 뒤덮여 있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성락원(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78호)은 조선 말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던 것을 의친왕 이강이 별궁으로 사용하다가 그의 아들 이건이 살았다고 한다.6만여 평의 저택에는 소나무·참나무·다래나무·등나무 등 우리 고유의 조경수가 연못가와 산비탈에 우거져 있고 암벽과 폭포, 수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는 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2번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걸으면 집결지인 개운초등학교를 만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성북구청 공원녹지과 920-3395∼7. ■ 초안산 도봉구 창동, 노원구 월계동에 자리한다. 해발 114.1m로 아담하다. 이곳에는 1000여기에 달하는 조선시대 무덤이 밀집해 있다. 흔히 ‘내시묘’라 부르는데 실제로는 내시의 무덤와 더불어 단장이 잘된 이름 있는 문중의 선산도 있다. 조선시대 ‘공동묘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전쟁 때 국군이 이곳에 ‘청동 저지선’을 치고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여 지금도 당시의 방공호가 곳곳에 남아 있다. ●탐방코스 창골어린이공원에서 출발해 초안산 정상에 도착한 뒤 궁인 분묘군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주요 수종은 참나무류이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식생으로 보이지만 노박덩굴, 노린재, 누리장, 물푸레, 참싸리, 굴참, 산사, 산초, 오리, 단풍, 소나무, 상수리 등 다양한 수종이 자라고 있다. 생태육교에선 생태계의 파괴와 복원에 관한 설명이 이어져 자연보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소요시간은 약 2시간. 둘째·넷째주 일요일에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초안산은 생태육교와 약수터 4곳, 배드민턴장 3곳, 인조잔디 축구장 1곳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방학사거리에 있는 방학사계광장에는 환경조형물과 분수 등 수경시설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조선시대 제10대 임금인 연산군(1476∼1506)과 왕비였던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가 주변에 있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녹천역 2번 출구로 나와 주공 4단지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창골어린이공원, 만남의 광장을 찾을 수 있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도봉구청 공원녹지과 2289-1396. ■ 아차산 해발 300m로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그러나 산 위에 서면 서울시를 둘러싼 모든 산과 시가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굽이치는 한강의 푸른 물과 강변의 풍광이 장관이다. 삼국시대 전략 요충지로, 특히 고구려 온달장군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학문적 고증과 상관없이 주민들은 온달장군이 신라에 빼앗긴 한강유역을 되찾고자 이곳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믿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차산에는 ‘온달샘’이란 약수터와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고 전해지는 지름 3m의 거대한 공기돌 바위가 있다. ●탐방코스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해 생태공원, 소나무숲, 목본·초본식물 관찰대를 거쳐 아차산성에 도착하는 코스다. 총 연장 2㎞로 약 3시간 걸린다. 아차산은 화강암으로 이뤄져 주요 수종은 소나무다. 동부와 북부 산지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지만, 산의 높이가 낮아 다양한 나무의 경관보다는 아까시나무·물오리나무 등 인공림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멧비둘기·박새·붉은머리오목눈이·뻐꾸기 등이 관찰되고 천연기념물인 새매와 소쩍새도 볼 수 있다. 한여름 숲속에선 참매미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첫째·셋째주 일요일 오전 10시 집결지에서 탐방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주변 볼거리 워커힐 호텔 뒤편에 자리한 아차산성(사적 제234호)은 백제의 유산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책계왕(286년) 때 쌓은 성으로 삼국시대에는 중요한 요새였다. 용마폭포공원에 자리한 용마폭포는 청룡폭과 백마폭포 등 세 갈래 폭포줄기로 구분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가는 길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1번출구로 나와 광장중학교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만남의 광장과 만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광진구청 공원녹지과(450-1395). ■ 봉화산 중랑구 상봉동, 중화동, 묵동, 신내동에 접해 있으며 일명 ‘봉우재’라고 불린다.1963년에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서울시에 편입됐다. 봉화산이란 이름만으로도 봉화와 관련이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북쪽의 한이산(汗伊山)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남산으로 전달하는 아차산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봉수대 모형은 1994년 11월7일에 설치됐다. 해발 160m로 평지에 돌출된 독립구릉지역이다. 동쪽에 아차산 주능선을 제외하고는 북쪽으로 불암산과 도봉산, 양주 일대까지 조망할 수 있다. 서쪽과 남쪽으로도 높은 산이 없어 한강 이남까지 보인다. ●탐방코스 중랑구청에서 출발해 소나무 숲을 지나 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15호)에 오른다. 중랑구 전경을 조망한 뒤 참나무숲을 거쳐 초본류 관찰대로 돌아오는 코스다. 총연장 1.5㎞로 길이가 짧고 산이 높지 않아 산책로로 그만이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지만, 태릉중학교로 내려가는 길에는 잣나무 군락이 조성돼 있다. 팥배나무, 국수나무 관찰대가 있고, 박새, 직바구리, 어치 등 텃새가 서식한다. 첫째·셋째주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아차산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15호)는 조선시대 통신 시설이면서 군사 시설이다. 평시에는 횃불 한 번, 적이 나타나면 횃불 두 번, 적이 가까이 오면 횃불 세 번, 지경을 침범하면 횃불 네 번, 적과 접전하면 다섯 번의 횃불을 올렸다.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올린다. 정상에서 약간 남쪽에 봉화산 도당인 산신각이 있다. 이곳은 400년 전에 주민들이 도당굿과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34호로 주민의 안녕과 결속을 위하고 대동의식을 고취시킨 마을 굿이다. 지금도 매년 음력 3월3일(삼월 삼짇날) 도당제를 지낸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신이문역이나 지하철 6호선 봉화산역에서 내려 지선버스 1223,2216번을 타고 중량구청 앞에 내린다. 구청 뒤 공원이 집결지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중랑구청 공원녹지과(490-3395). ■ 오패산 강북구 미아동과 번동, 성북구 장위동, 월곡동에 위치해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자연이 잘 보존된 편이다. 일명 빡빡산·벽오산·매봉짜 등으로 불린다. 남북으로 뻗어 동쪽으로 속칭 공주릉과 드림랜드를, 남쪽으로 동덕여대를 품고 있다. 해발 123m 오패산과 115m 봉우리,135m 벽오산 봉우리로 이루어져 나지막한 구릉지 형태다. 산기슭에는 예부터 자두나무가 많이 자생해 봄이 되면 수려한 꽃이 만발한다. 특히 수정 등 보석이 많이 나오고, 맞은편 초안산은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고려의 중신들이 자주 다녀갔단다. ●탐방코스 강북구민운동장을 출발해 제1코스,2코스로 나뉜다.1코스는 벌리약수터, 대왕참나무숲, 복자기나무길, 꽃샘길, 참나무숲을 거쳐 정자와 율곡놀이터로 이어진다.2코스는 벌리약수터에서 군수나무 군락지, 야생화단지, 기념식수지, 소나무숲을 거쳐 정자에 닿는다. 아까시나무, 소나무, 참나무류, 팥배나무, 산벚나무 등 중부지방 자연상태의 수림에다 자작나무, 잣나무, 산딸나무 등을 꾸준히 식재해 숲이 울창하다. 산이 낮아 계곡은 없지만, 약수터가 있어 탐방객들이 즐겨 이용한다. 첫째·셋째주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주변 볼거리 1987년에 개장한 드림랜드는 수영장, 골프연습장과 같은 운동시설과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민운동장은 각종 체육·문화행사를 개최하는 장소. 지난 4월 조깅트랙을 설치했다. 강북문화정보센터는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로 2001년 5월에 문을 열었다. 열람실, 정보실, 시청각실, 문화교실 등을 개방한다. ●가는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9번이나 11번을 타고 10분 정도 가다 집결지인 강북구민운동장에 내린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강북구청 공원녹지과(901-2386). ■ 수락산 북쪽으로 불암산과 연결되고, 노원구 상계동과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637m로 높은 편이다. 수락산 능선의 암봉이 서울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 태조 이성계는 서울의 수호산이라 불렀다. ●탐방코스 임간휴게소에서 출발해 냇가와 향토꽃 전시장, 아까시나무숲, 명상의 숲, 숲속 길을 거쳐 바위 밑 샘터에 도착한다. 총 연장 3㎞로 다소 길다. 소요시간은 약 3시간. 향토꽃 전시장에서 야생화를 관찰하고, 꽃과 곤충의 관계를 살펴본다. 아까시나무 숲에선 흙 나무냄새 산림욕 보물찾기 등 숲속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숲속길이 나오면 청진기로 나무 소리를 듣고, 샘터에선 약수를 마신다. 대부분 돌산으로 화강암 암벽이 노출돼 있지만, 산세가 험하지 않다. 수락계곡과 노원골 일대 11㎞ 산책로는 산림욕하기에 좋은 곳이다. 둘째·넷째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수락산 유원지는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에 있는 계곡 일대로 웅장한 석벽과 기암괴석이 많고 계곡이 수려하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았다. 노원구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덕릉고개에는 경기도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된 선조의 생부 덕흥부원군의 묘, 일명 덕릉이 자리한다. 수락산 중턱 남쪽 기슭에는 박세당이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한 석림사가 있다. 그 옆에는 박세당의 묘소와 영정각이 있다. 김시습은 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수락산에 숨어들었다. 박세당은 숙종 때 정쟁에 혐오를 느껴 관직을 포기하고 이곳에 은둔해 농사를 지으며 제자를 길렀다. ●가는길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2번출구로 나와 도보로 10분 걸어 집결지인 수락산 입구에 도착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노원구청 공원녹지과(950-3896).
  • [열린세상] 부여톨게이트와 백제길 경전철의 꿈/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구석기 시대부터 우리 민족이 기대고 살아온 젖줄, 백강은 충효의(忠孝義)를 생명처럼 여기는 충청인의 말씨처럼 유유자적 흐른다. 깊은 물속에서 몸을 숨기고 승천을 기다리는 잠룡처럼 백강은 산기슭을 휘감아 돈다. 희고 고운 모래톱과 실개천 사이에는 사람이 흩어지고 만나는 삶의 이야기가 묻어난다. 백강은 부여의 부소산을 휘돌아 흐르는 금강을 가리킨다. 옛사람들은 백촌강, 백강, 사비수, 사자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전설이라지만 나당연합군이 침공할 때 흰 말을 미끼로 백강의 용을 잡았다는 데서 백마강이라고도 한다. 부소산은 100m 남짓한 언덕에 불과하지만 부여의 진산이고 사비성을 위호(衛護)하는 현무(玄武)이다. 그야말로 웅혼한 역사를 안고 있는 장엄의 산이다. 그래서였을까. 일본제국은 1945년 부소산에 신사를 세우려다 패전으로 중단하였다. 바로 그 신사 터에 삼충사(三忠祠)가 있다. 이 곳은 의자왕의 마음을 돌리려고 단식하다 숨진 성충 좌평과 귀양지에서도 간언을 아끼지 않았던 흥수 좌평, 그리고 처자를 벤 후 임전무퇴의 배수진을 친 계백 장군의 영정을 모신 역사의 기념비이다. 굽이마다 역사이고, 골골이 문화가 자리잡은 곳이 공주와 부여이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사비성을 둘러싼 나성 바깥쪽과 왕릉을 잇는 구간이자 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능산리의 사찰 이름을 우리는 모른다. 게다가 중국 육조시대의 박산향로와 한나라, 당나라의 죽절대향로 등을 예술적으로 뛰어넘는 세계적 명품이라 할 금동대향로가 발견된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무슨 까닭으로 ‘창왕13년(567년)’ 명문의 사리감은 능산리 목탑자리의 심초석에 묻혀 있었을까. 사비성 바깥 20여리에서 물을 끌어들여 만든 궁성 남쪽 연못의 정체는 무엇인가? 못가에 버드나무를 심고 섬 가운데 만든 방장선산(方丈仙山)은 과연 무엇일까. 지레 짐작하듯 궁남지라 불리는 그곳이 과연 무왕이 배를 띄워 흥취를 즐기던 위락처였을까. 모를 일이다. 어쩌면 도교, 불교와 같은 사상이 응축된 제사터이며, 백제인의 성지는 아닐까. 이렇듯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보물급 유물이 산재한 곳이 공주와 부여이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역사 교과서나 관광지도에만 있을 뿐 실제 한국인의 문화생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관광의 조건 중 해운항만, 공항철도, 고속도로에서 고립된 지역은 잊혀지기 일쑤다. 천안·논산 고속도로와 근접해 있지만 부여의 심장과 직접 만나는 톨게이트는 없다. 그만큼 먼 거리를 돌아 애써 찾아야 하는 곳이다. 어디 이뿐인가. 천안, 대전에서 공주·부여를 연결하는 문화 삼각지점을 이어야 할 초고속 경전철은 꿈도 못 꾸고 있다. 굴뚝 없는 천혜의 역사관광지를 교통 접근성의 사각지대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정말 건설교통부는 청맹과니처럼 예산타령만 할 일인가. 부디 일본의 오사카, 교토, 나라를 잇는 황금 트라이앵글처럼 역사문화 도시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갖기 바란다. 노무현 정부는 황해권 지역의 경제·무역 해운의 중심축 건설과 국토균형발전의 핵심인 중부와 서남해안을 잇는 행정수도를 충청도에 건설하고 있다.1300년 전 중국 낙양을 벤치마킹한 고도 부여가 행정수도에 철학과 감성, 비전을 제공하는 문화의 수원이 되기를 갈망한다. 백강이 도도히 흐르는 부여와 공주의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어두운 새벽을 밝힐 태양과 절망을 걷어낼 꿈과 희망이 있는 탓이다. 샘이 깊은 역사 문화의 수맥으로서 백제 문화의 여명과 동북아 문화 중심으로서 부여와 공주를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황해와 동해를 잇는 동·서 고속화도로가 가까운 미래에 건설되어야 한다. 그 첫번째로 경부선 대전 순환선 천안·논산 고속도로에서 20분 이내 직선 톨게이트가 부여에 연결되어 백강과 함께 흐르는 문화강이 출렁이기를 학수고대한다. 언제까지 우리는 꿈만 꾸어야 하는 걸까? 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 ‘물폭탄’ 고양시 지하철 등 정상화

    400㎜의 집중폭우로 물난리를 겪은 고양시에선 13일 새벽 지하철이 다시 운행을 시작한 가운데 날이 밝으면서 복구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철도공사는 오전 5시14분 대화발 수서행 전동차를 시작으로 평소와 같은 출근시간대 4∼5분, 나머지 시간대 5∼10분 간격으로 지하철 일산선 운행을 재개했다. 일산신도시 간선인 중앙로의 물도 빠져 평소와 다름없는 교통흐름이 이어져 출근길 교통에 큰 불편은 없었다. 버스도 행주4거리·수색로 등 평소 상습정체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원활한 소통을 보였다. 고양시는 공무원과 자원봉사자 등 300여명과 덤프트럭 등 장비를 동원해 둑이 유실된 벌미천·선유소천·왕릉골천 등 소하천 10곳을 응급 복구했다. 경기도 제2청도 침수피해 지역에 이동진료반을 투입, 수인성·식품매개 전염병과 피부병 등에 대한 방역활동에 들어갔다. 제2청도 경기북부 수해지역 복구에 3700여명의 인력과 굴삭기 등 장비 200여대를 동원했다.고양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연산군묘 11일부터 시범 개방

    관람 편의시설 등을 갖추지 못해 시민의 출입이 제한됐던 연산군묘가 11일부터 일반에 개방된다.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소재한 연산군과 그의 부인 거창신씨(居昌愼氏)묘(사적 제362호)를 11일부터 일반에 개방한다고 6일 밝혔다. 연산군묘는 장소가 좁고 주차장·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없어 그동안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없었다.문화재청 관계자는 “최근 연산군묘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고 개인적인 관람을 원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어 두달간 무료로 시범개방키로 했다.”고 말했다.시범개방 이후 입장료 징수 등이 검토될 예정이다. 조선 10대 임금인 연산군은 11년 재위 후 중종반정으로 물러나 ‘연산군’으로 강등됐다. 강화도로 귀양가 사망했으며 묘소도 왕릉의 예에 따르지 않고 왕자의 묘제에 따라 조성됐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7) 불상없는 ‘寂滅宮’ 효시 통도사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7) 불상없는 ‘寂滅宮’ 효시 통도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신라 진골 출신 김무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출가해 당나라에 유학한 뒤 선덕여왕의 요청에 따라 귀국한 자장 율사가 계율의 근본도량을 삼겠다는 원을 세워 건립한 1300년 역사의 신라고찰이다. 자장 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어 삼보사찰 중 하나인 불보사찰로 통하는 사찰. 선원, 율원, 강원의 삼원을 갖춘 사찰에만 격이 주어지는 국내 5대 총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신라 최대의 거찰 황룡사와는 형제사찰로 여겨졌을 만큼 사세가 컸던 도량. 다른 사찰의 가람 배치와는 크게 다른 파격에 더해 다양한 전각과 불상으로 인해 불교는 물론 한국건축 양식의 총집합처로 여겨지는 독특한 사찰이다. 해발 1050m 영축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봉우리들이 한군데로 모아지는 금강계단은 통도사의 핵. 통도사의 근본정신이 집결된 곳이자 한국불교 최상의 성지이기도 하다. 산문을 들어선 뒤 조금 걷다가 일주문과 천왕문, 불이문을 차례로 지나다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범상치 않은 전각들. 신라기에 세워진 대부분의 사찰이 남북 일직선상에 금당과 탑이 놓여진데 비해 통도사는 전각들이 남북 축을 유지하면서 동서로 길게 배열된 파격을 보여준다. 냇물을 끼고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등 3개의 권역으로 나뉘어 늘어선 크고 작은 건물만도 50여개. 상로전에는 금강계단과 대웅전이, 불이문부터 세존비각까지의 공간인 중로전에는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이,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의 영역인 하로전에는 영산전 극락보전 약사전 만세루가 들어서 있다. 각 구역의 전각들이 하나의 중심축에 일열로 배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건물 사이의 공간 크기와 모양이 보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게 독특하다. 이 가운데 금강계단과 대웅전 대광명전 영산전만 창건 초기에 건립되었고 나머지 것들은 대부분 고려 이후 세워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통도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삼국유사’등의 기록을 볼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던 자장 율사가 귀국한 643년부터 선덕여왕 재위 말년인 646년 사이로 추정되며 지금은 646년이란 게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 통도사란 사명이 붙은 것에도 여러 설이 통한다. 첫째는 출가한 모든 스님들이 이곳의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고 득도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 또 하나는 통도사가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님이 설법하던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것이다. 자장 율사는 중국에서 부처님 정골(頂骨)과 손가락뼈, 치아사리 등 사리 100과, 부처님이 입었던 금란가사, 대장경 400권을 갖고 돌아왔는데 이 가운데 정골과 손가락뼈, 치아사리, 금란가사, 대장경이 통도사에 봉안되었다. 나머지 사리는 경주 황룡사탑과 울산 태화사탑에 나누어 봉안한 것으로 전해진다(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조). 통도사는 불상 없이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는 ‘적멸궁’의 원조이자 모든 사찰의 근본도량이었던 셈이다. 그 때문에 통도사에는 범상치 않은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난 1956년 한밤중에 대웅전에서 화엄산림법회가 열릴 때 갑자기 금강계단 사리탑에서 빛줄기가 뻗어올라 대낮같이 밝아져 양산 주민들이 통도사에 화재가 발생했다며 놀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새벽 예불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한 스님들이 종종 금강계단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와 종소리를 듣곤 놀라서 깨어나기도 한단다. 이런 통도사의 핵심이자 요체는 단연 금강계단과 대웅전. 이 가운데서도 금강계단은 부처님 사리가 봉안된 통도사의 적멸궁이다. 창건 때부터 사리를 친견하려는 참배객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고려 왕실과 사신들은 물론 몽골 황실에서도 참배했다고 한다. 고려말∼조선시대엔 사리를 약탈하려는 왜구들을 피해 스님들이 개성 송림사, 서울 흥천사, 금강산 등지로 옮겨다니며 사리를 구했다.“몸과 마음이 부정한 사람이 사내에 들어오면 고약한 냄새가 나 곧 사람이 광란하여 땅에 쓰러져 미치게 된다.”“금강계단 위로는 일체 날짐승이 날지 않고 그 위에 오줌과 똥을 누지 않는다.”는 ‘통도사 사적기’의 사리 부분 기록도 흥미롭다. 창건 때의 모습은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조의 “2층으로, 위층 가운데에 마치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과 같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계단은 2중 사각기단 위에 종 모양의 부도(浮屠)가 놓인 석조로 계단 사방에는 고려∼조선시대에 새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불좌상(佛坐像)과 천인상, 신장상 등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금강계단 남쪽에 맞닿아 있는 정면 3칸, 측면 5칸의 대웅전은 금강계단과 함께 축조된 통도사의 중심건물. 대웅전 바로 뒤편 금강계단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때문에 커다란 불단만 있을 뿐 불상이 없는 게 특징이다. 불단 북쪽 벽에 큰 창을 내어 금강계단을 향해 참배하도록 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1664년(인조22년) 중건했는데 건물 4면에 각기 다른 편액이 걸린 게 독특하다.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 남쪽은 ‘금강계단’, 북쪽은 ‘적멸보궁’이라 쓰여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바라보이는 대웅전의 서쪽 벽은 측면이지만 마치 정면처럼 보이듯 모든 방향에서 볼 때 정면으로 느껴지며 지붕도 팔작지붕의 복합형인 정(丁)자형을 띠고 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신용철 학예연구실장은 “통도사 대웅전의 정(丁)자 건축은 여주 영릉 등 왕릉 사당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형태로 보통의 왕릉 사당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면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신성한 공간의 의미에 더해 두 개의 건물이 한 건축안에 혼재된 유일한 사찰 건물로 목조건축의 백미”라고 평가했다. kimus@seoul.co.kr ■ 자장율사와 구룡지 통도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장 율사와 구룡지(九龍池)에 얽힌 이야기이다.‘삼국유사’‘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 등 기록에 따르면 통도사가 창건되기 전 이곳에는 큰 연못이 있었다. 여기에는 아홉 마리의 큰 용이 살고 있었는데 자장 율사가 용들을 제압해 그 곳에 세운 가람이 통도사라고 한다.“자장 율사의 항복을 받은 아홉 마리의 용 가운데 다섯은 오룡동(五龍洞), 셋은 삼동곡(三洞谷)으로 가고 한 마리가 이곳에 남아 절을 수호할 서원을 세우자 자장 율사가 그 용을 머무르게 한 뒤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는 게 바로 지금 대웅전 서편의 구룡지. 구룡지는 불과 4∼5평 남짓한 크기에 수심도 한 길이 채 안 되는 타원형의 작은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수량이 전혀 줄어들지 않아 통도사 스님들 사이에서는 ‘구룡신지(九龍神池)’라고 불리기도 한다. 민간에 전하는 다양한 전설에서도 구룡지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자장 스님이 중국 종남산 운제사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할 때 승려로 현신한 문수보살이 부처님 진신사리와 불경, 가사 등을 주면서 “그대의 나라 남쪽 영축산 기슭에 나쁜 용이 거처하는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에 금강계단을 쌓고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재앙을 면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귀국한 자장 스님이 선덕여왕과 함께 영축산 연못을 찾아 나쁜 용들을 위해 설법한 뒤 못을 메우고 그 위에 금강계단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자장 율사와 구룡지의 관계를 다르게 해석한다. 자장 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할 당시 양산 지방에는 경주의 왕권에 버금가는 세력집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따라서 자장 율사가 백성들을 괴롭히는 연못의 나쁜 용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통도사 금강계단을 설치했다는 설화는 중앙정부에 대항하는 양산 지방의 정치집단을 제압하기 위해 통도사를 세웠다는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는 것이다. 즉 불교와 중앙왕권이 제휴했다는 풀이인 셈이다.
  • [서울의 문화재] (12) 의릉

    [서울의 문화재] (12) 의릉

    ‘이보다 더한 슬픈 운명이 있을까.’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사적 204호)을 바라보면 가슴이 시리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편치 않은 의릉의 주인, 경종(1688∼1724)과 선의왕후 어씨(1705∼1730) 때문이다. ●자식도 없이 떠나다 조선 제 20대 임금 경종은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원자가 된 그는 세살 때 세자로 책봉된다. 그러나 비운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왔다. 어머니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 민씨를 저주하려고 차려놓은 신당이 발각되어 사사되는 사건을 14세 때 지켜본다. 게다가 희빈 장씨는 마지막으로 아들을 만나면서 하초를 잡아당겨 그를 기절시켰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경종은 평생 병약한 몸으로 살았다.1720년 왕위를 계승했지만 재위 4년 만인 37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자식 하나 남기지 못했다. 선의왕후는 1718년 세자빈이 되었고, 경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1730년에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26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왕과 왕비는 천정산 끝자락에 함께 묻혔다. 봉분을 한 언덕에 앞뒤로 나란히 배치한 동원(同原)상하봉(上下封)이다. 조선시대에 왕릉 가운데 흔치 않은 구조다. 안치한 주검이 왕성한 생기가 흐르는 정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풍수지리에 따라 설계한 것이다. 그러나 사후까지 비운의 수레는 이어졌다. ●중앙정보부가 들어서다 1962년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이 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의릉은 수난 시대를 맞는다.33년간 ‘접근 금지’구역으로 갇힌 왕릉은 크게 훼손됐다. 정자각 앞에 땅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외래수종을 가득 심었다. 중정 직원들이 운동장으로 활용하도록 잔디구장이 들어섰다.‘접근 금지’구역에서 일어난 일이라 누가, 어떻게 훼손했는지 파악할 수 없다.1995년 9월 안전기획부(현 국정원)가 이전하면서 수난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의릉 관리사무소는 2003년 12월부터 연못을 메우고 잔디구장에 소나무를 심어 왕릉의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전기설비나 하수도관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보여주는 설계도면조차 없어 공사하는 데 애를 먹었단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경종과 선의왕후는 이제라도 편히 쉬고 있을까. 20일 찾은 의릉에선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소풍 나온 초등학교 1∼2학년생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왕과 왕비는 자식을 남기지 못했지만, 해맑은 손자, 손녀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난해 5월,43년 만에 개방된 천장산 산책로로 발길을 돌렸다. 오른쪽 길이 수월하다고 직원이 설명했다. 왼쪽 길에는 ‘108계단’이 놓여 올라가기가 힘겹단다. 울퉁불퉁한 흙길이라 휠체어가 다니기는 어려워 보였다. 오른쪽에 내달 개방할 신축 화장실이 보였다. 벽을 회색으로 칠하고 천장을 투명하게 만든 독특한 구조다. 길은 금세 산속으로 이어졌다. 나무 사이로 새가 지저귄다.15분밖에 걷지 않았는데 도심을 벗어난 듯싶다. 정상에 이르자 전망대가 나왔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시야가 탁 트였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이 한눈에 들어왔다.‘접근 금지’시절 이곳이 고도 제한지역으로 묶였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길, 의릉 입구가 가까워 지면서 낡은 건물이 눈에 띈다. 중앙정보부의 강당이다.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던 장소라 등록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됐다. 산책 시간은 1시간 남짓. ●개방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 휴무. ●입장료 어른 1000원, 학생 500원. 글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신라 왕경숲’ 조성 공사 착착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원이 신라왕들이 거닐던 ‘신라 왕경(王京) 숲’으로 변신하고 있다. 왕경 숲은 엑스포 공원내 5만 5000평 부지에 조성되고 있으며 현재 공정률은 45%이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측은 21일 신라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역사유적지구에 점차 사라져 가는 옛 숲을 복원하고 재현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신라 왕경숲’ 조성사업을 착공했다고 밝혔다. 공사비는 모두 78억원이 투입되며 올 연말 완공예정이다. 왕경 숲은 ▲왕릉을 형상화한 봉분과 소나무로 어우러진 왕릉림 ▲야생화와 숲이 조화를 이룬 기파랑의 숲 ▲민속공예 전시와 이벤트 연출이 가능한 숲으로 구성된다. 숲 이외에도 ▲야외공연이 펼쳐질 화랑마당 ▲어린이 놀이시설과 분수대를 갖춘 곡수원 ▲화려한 야경을 연출할 안압지 형상 연못 ▲시간의 길 ▲피크닉을 겸할 수 있는 생태주차장 등 부대시설도 마련된다. 도는 역사학자와 조경전문가 등으로 ‘왕경숲 자문위원회’(위원장 이상희 전 내무부장관)를 구성하고 숲 조성 과정에서 도움을 얻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관계자는 “신라왕경숲은 어디에나 있는 숲이 아닌 천년 고도 서라벌의 숲을 1500년 만에 재현하는 것”이라며 “신라 왕경숲 조성으로 2007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자연과 역사문화, 최첨단 콘텐츠가 공존하는 문화엑스포로 기획해 문화축제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경주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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