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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개성역사지구 세계유산 등재

    北 개성역사지구 세계유산 등재

    북한의 개성 일대에 집중한 고려시대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23일 캄보디아 프놈펜 평화궁전에서 열린 제37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북한이 등재 신청한 개성역사유적지구를 심사한 결과 세계유산 등재를 확정했다. 북한 유적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2004년 ‘고구려 고분군’ 이후 두 번째다. 개성역사유적지구는 개성성벽 5개 구역, 만월대와 첨성대 유적, 개성 남대문, 고려 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와 표충사, 왕건릉 및 7개 왕릉과 명릉, 공민왕릉 등을 포함한다. 북한은 2007년 개성역사유적지구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으나 등재 보류 판정을 받았다가 지난해 재신청했다. 이로써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유산은 한국의 10건과 북한의 2건, 중국이 등재한 고구려 유적 1건 등 모두 13건이다. 우리가 흔히 개성역사유적지구라고 부르는 이 유산을 북한은 이번 등재 과정에서 ‘개성의 역사적 기념물과 유적’이라는 명칭으로 등재를 신청했다. 심사를 맡았던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권장한 명칭은 ‘개성의 기념물과 유적’(Monuments and Sites in Kaesong)이다. 앞서 실사 보고서에서 이코모스는 “개성역사유적지구는 고려 왕조의 지배 근거지를 대표하는 유산들로 구성됐다”면서 “유산은 통일된 고려왕조가 사상적으로 불교에서 유교로 넘어가는 시기의 정치·문화·사상·정신적인 가치를 내포하며 이는 도시의 풍수적 입지, 궁궐과 고분군, 성벽과 대문으로 구성된 도심 방어 시스템, 그리고 교육기관을 통해 볼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등재를 권고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朴대통령 訪中때 천년고도 시안 첫 방문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27일부터 나흘간 진행되는 중국 국빈 방문 기간에 3000년 역사를 지닌 서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을 방문한다. 시안을 찾는 것은 중국 지방정부와의 관계 강화 등을 고려한 지리적 다변화 차원이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은 중국의 지방도시 가운데 상하이를 네 차례,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와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를 각각 한 차례 방문했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은 27일부터 2박 3일의 일정으로 베이징을 국빈 방문하고, 이어 29일부터 지방도시인 시안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안 방문 배경에 대해서는 “3000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의 고도(古都)이고 서부 대개발의 거점이며 중국 3대 교육도시의 하나로 중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시안 방문 기간 중 산시성 고위 지도자를 접견하고 현지와의 협력방안을 논의하며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 시찰, 교민 간담회, 유적지 시찰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30일 오후 귀국한다. 박 대통령이 시안을 방문하는 것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도 연관이 있다.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勳·1913~2002) 전 부총리의 고향 푸핑(富平)이 지근거리인 데다 시 주석 본인도 문화대혁명 때 하방돼 산시성 옌안(延安)시 량자허(梁家河)에서 7년간 생활하며 정치적 토대를 닦은 곳이다. 박 대통령의 대구만큼이나 시 주석에게는 의미가 깊다. 삼성전자가 서부 내륙 개발에 대비해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시안에 총 70억 달러(약 7조 8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점도 고려된 듯하다. 삼성 이외에도 LG와 SK 등 다수의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중국 내부로 보면 시안은 청두, 충칭(重慶)과 함께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서부 대개발 전략의 3대 거점 도시이자 과거부터 실크로드의 기점으로 중국 서부와 동부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다. 3개 도시를 연결한 서삼각경제권은 38만㎢에 1억 3000만명의 소비 인구를 갖추고 있다. 시안은 고대 주(周) 문왕 시절부터 진(秦), 한(漢)을 거쳐 당(唐)에 이르기까지 13개 왕조가 도읍지로 삼았고 지난 1000여년간 역사적 고도인 장안(長安)으로 불렸다. 진시왕릉과 병마용갱 등 역사적 유물이 많다. 박 대통령의 시안 방문을 계기로 정부의 국정 기조인 경제부흥과 문화융성 측면에서 한·중 양국 간 경제협력을 더욱 확대하고, 문화교류를 촉진시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내실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이번에 내리실 역은 ‘힐링역’입니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힐링역’입니다

    집에만 있자니 답답하고, 멀리 가자니 교통체증이 우려돼 더 답답하다. 멀지 않은데다, 차량 정체 걱정 없는 여행지는 없을까. 있다. 자동차는 주차장에 두고, 전철에 올라 수도권 근교 여행지를 다녀오면 된다. 비용 걱정도 없고 환경까지 돌볼 수 있으니 더욱 좋다. 4호선 대야미역은 번잡한 경기 군포시 도심에서 불과 20여분 거리다. 하지만 내리자마자 한적한 시골 풍경과 마주할 수 있는 독특한 여행지다. 대야미역에서 납덕골까지 다녀오는 게 일반적인 여행 코스. 대야미역 2번 출구로 나온 뒤 둔대초등학교를 지나면 곧 갈치저수지다. 수리산을 담은 저수지 풍경이 제법 빼어나다. 한적한 저수지 길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을 30여분 걸으면 납덕골에 닿는다. 마을은 20년쯤 전에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이다.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낡은 외벽과 담장에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졌다. 대야미역에서 납덕골까지는 4㎞,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버스도 있다. 1-2번 마을버스가 대야미역 앞에서 매시 정각, 납덕골에서는 매시 30분에 각각 출발한다. 7호선 부천 삼산체육관역 5번 출구는 한국만화박물관과 이어진다. 100년을 헤아리는 한국만화 역사를 살필 수 있는 공간이다. 3층의 한국만화 역사관을 먼저 관람하는 게 순서다. 1980년대 한국만화의 르네상스기를 연 ‘공포의 외인구단’ 등 시대별 주요작품과 작가들을 소개한다. 4층 만화체험전시관에선 장르별 만화를 감상할 수 있다. 거대한 만화책 위에 앉아 하늘을 나는 ‘로봇 찌빠’ 등 입체 전시물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만화도서관에는 25만권에 달하는 국내외 만화도서와 자료를 소장해 뒀다. 인근의 부천 한옥 체험마을이나 부천자연생태공원 등을 함께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시흥시 월곶역은 옛 염전 터를 등지고 바다를 마주하고 있어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하다. 월곶역에서 월곶포구까지 거리는 왕복 1㎞가 채 안 된다. 하나뿐인 출구로 나와 5분 정도만 걸으면 월곶포구다. 짭조름한 갯내음을 맡으며 바닷가를 걷다 길게 늘어선 횟집이나 조개구이집에 들르면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상이 차려진다. 포구 오른편 도로에선 망둥이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인근 수산시장에서 해산물을 살 수도 있다. 되살아난 수인선도 볼거리다. 수원과 인천을 연결하는 협궤열차로 1995년 폐선됐다가 지난해 6월 송도~오이도 구간이 복선전철로 재개통됐다. 국철 1호선 망월사역은 짧은 트레킹을 즐기기에 좋다. 망월사역에서 원도봉 계곡과 망월사를 거쳐 원점회귀한다. 거리는 왕복 약 4㎞, 3시간 정도 걸린다. 망월사역 3번 출구를 나서면 곧 엄홍길 기념관이다. 기념관을 끼고 우회전해 600m정도 오르면 망월천교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 계곡 식당가를 따라 오르면 된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으로 올라도 쌍용산장 앞에서 만나게 된다. 쌍용산장을 지나 탐방지원센터에서 왼쪽으로 가면 망월사 가는 길이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에 산악인 엄홍길의 집터와 원도봉계곡의 명물 두꺼비 바위를 만날 수 있다. 3호선 원당역에선 서삼릉누리길과 만난다. 문화유산과 마을, 숲 등이 낮은 고갯길로 어우러져 아이들과 함께 걷기 좋은 길이다. 원당역에서 배다리술박물관, 원당허브랜드, 서삼릉, 원당경주마목장 등을 거쳐 삼송역까지 간다. 거리는 약 8.3㎞, 3시간이 채 안 걸린다. 원당역 6번 출구로 나와 200m 정도 직진하면 배다리술박물관이다. 이곳이 들머리다. 1번 출구로 나와 마을길을 돌아도 배다리술박물관에서 만난다. 서삼릉(조선왕릉)은 세계문화유산이고, 푸른 초원의 종마목장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많다. 서삼릉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30분까지 연다. 월요일은 쉰다.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종마목장은 수~일요일 오전 9시~오후 5시 개방한다. 무료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난중일기, 세계기록유산 등재

    난중일기, 세계기록유산 등재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이 18일 광주시 라마다호텔에서 개막한 ‘제11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의’(IAC)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확정됐다. IAC는 전 세계 54개국에서 신청한 84점의 기록유산들 가운데 난중일기 등을 세계기록유산에 선정했다고 밝혔다. 유네스코는 사무총장의 승인을 거쳐 2~3일 내에 홈페이지에 등재 여부를 게재한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7년간 전장에서 쓴 8권의 진중일기다. 어머니, 아들의 죽음 등 인간 이순신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IAC는 사전 심사에서 난중일기에 ‘예비 권고’를 내렸고, 14명의 전문위원이 참석한 회의에서도 큰 이견 없이 등재가 결정됐다. 김귀배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 임진왜란의 전황과 전술, 사회상 등을 직접 기록해 보존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번 등재로 한국은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실의궤, 해인사 대장경판과 제경판, 동의보감, 일성록,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 등 기존 9건을 포함해 모두 11건의 세계기록유산을 갖게 됐다. 세계기록유산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미국 영화인 ‘오즈의 마법사’(1939) 등 문서, 악보, 영화 필름, 오디오 레코딩 등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형태의 기록물들이다. 유엔 산하기구인 유네스코는 현재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의 세 가지 제도를 운영 중이다. 유네스코 유산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각국은 유네스코 유산 등재에 적극적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유산으로 석굴암·불국사 등 10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아리랑 등 15건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유네스코는 이번 주말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제3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민왕릉, 만월대, 선죽교 등이 있는 북한의 개성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강남 대모산서 조선초 왕릉 능침 추정지 발견

    강남 대모산서 조선초 왕릉 능침 추정지 발견

    서울 강남 대모산 기슭에서 조선 초기 왕릉의 원찰, 또는 능침으로 추정되는 조선 초기 건물터가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조사 기관인 한강문화재연구원은 서울 강남구 수서동 세곡2 보금자리주택지구 건설 예정지(5200㎡) 일대를 조사한 결과 15~16세기 무렵의 조선 초기 대형 축대시설을 발견했다고 11일 밝혔다. 대모산 서쪽 기슭에서 발견된 길이 68m 이상의 대형 석축에선 현재까지 건물터 6개동과 건물터 중앙을 차지한 납작한 돌, 마당과 아궁이, 배수로 시설 등이 발굴됐다. 인근에선 이들 건물에 사용한 기와를 생산하던 기와 가마터 4기도 함께 나왔다. 이번에 확인한 유적은 조선 전기 어느 왕의 능묘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세계문화유산 개성/서동철 논설위원

    고려의 수도 개성 일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확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역사상 어느 왕조의 수도보다도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도(古都)가 개성이다. 유네스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보고서를 보면 사실상 개성 시내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등재 대상이 되는 듯하다. ICOMOS가 권장한 명칭은 ‘개성의 기념물과 유적’이라고 한다. 북한의 문화유적으로는 2004년 고구려 고분군에 이은 두번째 등재가 된다.현재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은 ▲경주역사유적지구 ▲석굴암과 불국사 ▲조선왕릉 ▲종묘 ▲창덕궁 등 10곳이다. 삼국시대 이후 세계문화유산을 배출하지 못한 왕조는 백제와 발해만 남는다. 하지만 백제는 ‘공주·부여역사유적’으로, 발해의 상경성은 중국이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COMOS 보고서에 따르면 개성역사유적지구는 12개의 개별 유산으로 이루어졌다. 성곽을 제외하면 ▲만월대와 첨성대 ▲개성 남대문 ▲고려 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와 표충사 ▲왕건릉을 비롯한 7개 왕릉 ▲명릉과 공민왕릉이다. 만월대는 궁궐터, 첨성대는 천체관측시설이다. 잘 알려진 대로 선죽교는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참살당한 현장이며, 표충사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숭양서원 또한 정몽주의 충절과 서경덕의 덕행을 추모하는 시설이다. 5곳의 성곽 유적은 삼중으로 이루어진 고려의 방어체계를 보여준다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나성(城)과 발어참성(勃禦塹城), 내성(內城)이다. 발어참성은 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로 궁예의 휘하의 개성 호족이었던 왕륭이 쌓았다. 궁예는 성이 완성된 898년부터 7년 남짓 후삼국의 한 축이었던 태봉의 수도를 철원에서 발어참성으로 옮긴 적도 있다. 왕건이 새 왕조를 개창한 이후 개성은 줄곧 고려의 국도였다. 이후 현종은 거란의 위협에 맞서 1029년 발어참성 외곽에 나성을 쌓았고, 조선 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기 이전 발어참성 내부에 궁성을 보위하는 내성을 구축했다. 고려의 왕도로 강화도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고려는 몽고에 대항하고자 고종 19년(1232)부터 38년 동안 강화를 임시수도로 삼았다. 강화에는 궁궐터와 고종의 무덤인 홍릉을 비롯해 적지 않은 고려시대 유적이 남아 있다. 따라서 개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강화의 고려유적을 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개성과 강화도를 한데 묶은 ‘고려 왕도의 기념물과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남북한이 세계문화유산 공동 등재를 추진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北 개성 고려유적지, 새달 세계문화유산 된다

    北 개성 고려유적지, 새달 세계문화유산 된다

    북한 개성 일대 고려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확실시된다. 유네스코는 다음 달 16일부터 27일까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리는 제37차 세계유산위원회(WHC)를 앞두고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북한 개성역사유적지구를 실사한 뒤 ‘등재권고 판정’을 내린 보고서를 13일 공개했다. 이코모스는 이 실사 보고서에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개성 시내와 서쪽의 산자락까지 포함해 개성역사유적지구는 고려 왕조의 지배 근거지를 대표하는 유산들로 구성돼 있다”면서 “유산은 통일된 고려왕조가 사상적으로 불교에서 유교로 넘어가는 시기의 정치적, 문화적, 사상적, 정신적인 가치를 내포하며 이는 도시의 풍수적 입지, 궁궐과 고분군, 성벽과 대문으로 구성된 도심 방어 시스템, 그리고 교육기관을 통해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연속유산은 12개의 개별 유산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중 다섯 구역은 개성성곽을 구성하는 유산들로, 삼중으로 구성된 고려의 방어체계를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개성역사유적지구는 개성성벽 5개 구역, 만월대와 첨성대 유적, 개성 남대문, 고려 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와 표충사, 왕건릉과 7개 왕릉과 명릉, 공민왕릉을 포함한다. 이코모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실사를 담당하는 자문기구로서 개성역사유적지구에 대해 등재 권고 판정을 함에 따라 이변이 없는 한 개성역사유적지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 2004년 ‘고구려 고분군’을 처음으로 세계유산에 등재시킨 북한은 이번이 두 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된다. 한국이 등재시킨 조선왕릉과 종묘 등 10건을 합쳐 남북한은 12건에 이르는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강원 산골엔 304가지 맛·단종의 향기가 있다

    강원 산골엔 304가지 맛·단종의 향기가 있다

    봄바람을 타고 강원 산골마을이 들썩이고 있다. 정선 오지마을 주민들이 300가지가 넘는 산촌 토속음식을 테마로 축제를 마련하고 영월에서는 조선시대 비운의 임금 단종을 추모하는 단종문화제까지 다채롭게 펼쳐져 관광객을 맞는다. 꽃잎이 흐드러지게 핀 주말, 강원 산골마을로 훌쩍 추억의 여행길에 나서보자. 이름도 맛도 생소한 정선 산촌마을 토속음식 304가지가 한데 모여 도시인들을 유혹한다. 간이역으로 하루 두 차례 열차가 다니는 정선 북평면 나전역 앞 시골장터에서 26일 정선토속음식축제가 막이 올라 28일까지 열린다. 국제슬로시티 지정을 추진하는 북평면과 북평면체육축제위원회가 중심이 돼 두 번째로 열린다. 감자와 밀가루를 섞어 쪄내는 감자부생이밥, 쌉싸래한 살쿠리나물로 만든 살쿠리밥, 메밀칼국수를 굵게 썰어 내는 콧등치기국수와 느름국, 메밀이나 콩가루로 만든 칼국수 가수기, 옥수수 가루로 만드는 올창묵 등 이름은 생경하지만 산촌의 정과 맛이 듬뿍 묻어난다. 준비된 토속음식도 마을별로 각양각색이다. 북평3리는 산촌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름도 생소한 밥 29개 종류를 준비했다. 인근 숙암리는 가수기 등 12개 종류의 국수를 마련하는 등 14개 마을이 모두 다른 음식을 선보인다. 음식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관광객들이 고루 맛볼 수 있게 적은 양으로 1000~3000원씩에 팔기도 한다. 음식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장도 마련됐고 정선 산촌과 농경문화 체험행사도 다채롭게 펼쳐진다. 산간 오지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밭갈기와 달구지 타기 등 영농 무료체험과 산촌 생활 및 문화 전시, 산촌놀이 경연, 벚꽃길과 강변길에서 천천히 걷기, 무료 자전거 타기 등 관광객 참여 행사도 마련된다. 영동고속도로에서 북평면으로 이어지는 국도변에는 인공으로 만든 176m 높이의 백석폭포도 장관이다. 대한민국 대표 전통문화제인 제47회 단종문화제도 영월군 영월읍 장릉과 동강 둔치 등에서 28일까지 펼쳐진다. 올해는 ‘단종의 향기’를 주제로 단종 제향, 국장 재현, 정순왕후 선발대회, 칡 줄다리기 등 다양한 전통문화행사가 마련됐다. 첫날엔 학생백일장과 민속예술경연대회, 정순왕후 선발대회 등이 열렸다. 둘째 날인 27일에는 전국 유일하게 왕릉에 제향을 올리는 유서깊은 유교식 제례의식인 단종 제향이 봉행된다. 이날 밤에는 칡줄과 횃불의 화려한 행렬을 관광객이 감상할 수 있는 칡 줄다리기행사가 열린다. 조선 숙종 때부터 시작된 칡 줄다리기는 길이 35m, 무게 6t에 이르는 칡 줄을 200여명 장정이 동·서 양편으로 나눠 메고 영월역과 영월 문화예술회관에서 각각 출발해 동강 둔치에서 만나 승부를 가른다. 단종문화제의 가장 큰 볼거리인 조선시대 국장은 2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스포츠 파크에서 장릉까지 2㎞ 거리에서 재연된다. 조선의 임금 중 유일하게 장례를 치르지 못한 단종의 넋을 기리려고 2007년부터 시작돼 단종문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철저한 고증으로 재연된 국장행렬은 조선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현장감과 장엄함을 선사한다. 이와 함께 생육신인 관란 원호 선생이 편지, 곡식, 채소 등을 표주박에 담아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에게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표주박 통신체험’이 동강 둔치와 수주면 요선암 일대에서 마련된다. 박선규 영월군수는 “전통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단종문화제가 ‘국장 재연’을 브랜드로 세계화의 이목을 끌고 있다”면서 “온 가족이 함께 찾아 소중한 전통문화를 맘껏 느끼는 행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선·영월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나는 대가야 산성 지키는 장수!

    매년 4월이면 1500여년 전 백제와 신라의 강대국 사이에서 호령했던 대가야인들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옛 대가야의 수도인 경북 고령에서 펼쳐지는 ‘대가야 체험축제’ 장(場)이다. 올해 축제는 11~14일 고령읍 지산리 고분군 일대에서 ‘대가야의 산성’이란 주제로 다채롭게 열린다. 총 58개의 프로그램으로 꾸려졌다. 이 중 43개가 체험 위주다. 대가야를 주제로 한 유물 및 생활, 용사(勇士), 토기 체험 등이다. 부대 행사도 풍성하다. 대가야왕릉제, 가얏고음악제, 악성 우륵 추모제, 딸기 수확 체험 등이 선보인다. 대가야를 주제로 한 공연도 진행된다. 500여년 동안 고령 일대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가야국의 건국 신화를 주제로 한 ‘대가야의 산성을 지켜라’와 마당극 ‘풍동전’, 오는 9월 공연 예정인 실경 뮤지컬 ‘대가야 혼 가얏고’ 출연진의 갈라쇼 등은 축제의 흥미를 더하게 된다. 고령 여행에서 고분군 트레킹도 절대 놓칠 수 없다. 최초로 순장 풍습이 확인된 44호 고분 등 주산 능선을 따라 늘어선 고분 700여개를 둘러보는 데 2시간쯤 걸린다. 이 고분군은 경북도와 고령군에 의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록이 추진 중이어서 각계의 관심이 새롭게 모이고 있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경주서 통일신라 왕릉급 무덤 발견

    경주서 통일신라 왕릉급 무덤 발견

    경북 경주 외곽에서 왕 또는 최고 지배층에 속한 인물이 묻혔음이 확실한 통일신라시대 호석(護石)을 두른 석실분(石室墳)이 발견됐다. 왕릉급의 무덤이다. 무덤의 위치·구조·크기 등에서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에서 발굴된 통일신라 말 민애왕릉 추정 무덤과 여러모로 흡사하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계림문화재연구원은 공장 부지에 포함된 경북 경주시 천북면 신당리 산7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대형 봉토분을 확인했다고 3일 말했다. 원형 봉토분인 이 고분의 봉분 바깥에는 3단 석축으로 호석을 쌓아 돌리고, 일정한 구간마다 받침돌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무덤 주인공을 매장한 석실(石室)은 봉토 중앙에서 발견됐다. 호석 기준으로 고분은 지름 14.7m이며 둘레는 현재 4분의1 정도가 유실돼 35.5m가량 남았지만 원래는 46.3m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호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붙인 받침돌은 대체로 120~178㎝ 간격으로 모두 12개가 확인됐다. 받침돌은 길이 125㎝, 폭 35㎝가량이며 호석과 맞닿은 상부 부분에는 빗금을 치듯이 돌을 잘 가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단은 “세월이 흐르면서 고분이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라 받침돌이 원래 몇 개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 남아 있는 상태를 감안할 때 모두 24개를 안치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석실은 무덤 전면으로 통하는 통로를 별도로 마련한 횡혈식 석실분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최근 개최된 전문가 검토회의를 토대로 문화재청이 현장 보존을 결정한 상태에서 조사가 중단된 상태라 정확한 구조나 내부 유물 현황 등은 알 수 없다. 현재 상황으로 보아 석실 내부는 도굴당한 것으로 조사단은 판단했다. 무덤의 조성 시기는 “8세기 중반 무렵”이라고 추정했고 “왕릉이거나 그에 따르는 최고 신분층의 무덤임은 확실하다”고 조사단은 밝혔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말레이시아-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말레이시아-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평일 낮, 말라카 거리는 왁자지껄한 아이들 무리로 활기에 차 있다. 우리가 경주에 가서 역사를 배우듯,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말라카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 물론 수학여행 온 아이들에게는 수백년 전의 역사유적도 그저 오래된 놀이터일 뿐이지만 말이다. 말라카 강변에 펼쳐진 책 한 권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말라카에 도착한다. 지도상에서 이 도시는 말레이반도 왼편에서 인도양을 향하고 있다. 거대한 함선과 포탄을 앞세운 14세기 정복자들도 말라카를 거쳐,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섬 사이 좁은 물길을 지나야만 더 깊숙한 동쪽에 닿을 수 있었다. 말라카는 그들이 처음 발을 디딘 동양의 땅이었고 동양과 서양, 거대하고 상이한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과거 수백년간 말라카는 아시아에서 제일가는 무역항이었다. 무역량으로 따지면 수에즈 운하에 비견됐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수심이 너무 낮아져 항구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여행객들도 간척개발이 한창인 해변보다 오래된 가옥이 늘어선 말라카 강변의 분위기를 더 선호한다. 말라카강 리버크루즈는 40여 분 동안 9km에 이르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잘 꾸민 액세서리 상점, 한적한 노천 카페들 사이사이 중국풍 홍등을 매단 집들이 보이고 화려한 원색의 벽화가 펼쳐진다. 먹음직스런 열대 과일과 음식부터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인도, 중국, 아랍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까지, 움직이는 배 안에서 보면 그 자체가 한 권의 그림책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건 나무로 지은 붉은 지붕의 전통가옥촌 ‘캄풍모텐Kampung Morten’이다. 우리나라 한옥에 해당하는 것이 캄풍인데 바닥이 지상에서 1~2m 높이에 있고, 천장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하면 비가 많이 와도 물에 잠기지 않고, 통풍이 잘돼 위생적이라고 한다. 1922년 지은 빌라 센토사Villa Sentosa는 그중 가장 오래된 집인데 말레이시아 국기를 내걸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인 가옥이지만 집주인이 평생 동안 공들여 모은 골동품과 개인 소장품을 전시해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다. 저녁에는 불을 밝힌 노천 카페에서 분위기에 취해 보는 것도 좋겠다. 한차례 소나기 후, 불어난 강물이 일렁이는 모습도 여기선 한없이 매력적이다. 강변에는 맹그로브 나무가 울창하다. 운이 좋은 날에는 반딧불이나 월광욕을 하고 있는 도마뱀도 볼 수 있다. 강변의 카페와 연결되는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와 히런 스트리트Heeren Street는 꼭 들러 보길 권한다. 존커 스트리트에는 골동품점과 작은 미술관, 특색 있는 식당들이 많다. 매주 금토일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는 벼룩시장도 열린다. 존커 워크 스트리트 바로 옆 골목이 히런 스트리트다. 저렴한 호텔과 예쁜 네덜란드풍 건물이 많다. 네덜란드어로 ‘존커’는 하인을, ‘히런’은 주인을 뜻한다. 존커 거리는 히런 거리의 부자들을 위해 일하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메나라 타밍 사리 전망대에서 보는 말라카 해협의 모습. 시가지와 항구가 한눈에 보인다 2 존커 워크 스트리트는 골동품점, 기념품점, 카페와 술집이 늘어선 전형적인 여행자들의 거리다 3 말라카 리버크루즈 는 9km에 이르는 말라카 강줄기를 따라간다. 노천카페와 전통가옥, 벽화가 말라카의 분위기를 전한다 4 비오는 늦은 밤, 조명을 밝힌 말라카 강은 한없이 매력적이다 5 재즈가 흘러나오는 존커 워크 스트리트의 라이브 카 ▶travie info 말라카 리버크루즈Melaka River Cruise 매일 오전 9시부터 저녁 11시30분까지 운항한다. 어른 기준 15RM으로 저렴한 편이며, 왕복 40분 정도 소요된다. 크루즈 선상 공연이 포함된 티켓(Bot VIP/ 매주 일요일 오후 8시~오후 1시/어른 기준 30RM), 하루 동안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Ho-Ho Service/ 오전 9시~밤 11시30분/어른 기준 30RM)도 판매한다. 해양박물관 앞에서 승선하면 된다. www.ppspm.gov.my 메나라 타밍 사리Menara Taming Sari 전망대 80m 높이까지 올라가는 메나라 타밍 사리 전망대에서는 말라카 시가지와 항구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360도 회전식이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방의 정경을 볼 수 있다. 푸른 말라카강과 붉은 지붕 가옥, 세인트 폴 언덕의 옛 유적지들로 대표되는 육지 모습과 달리 바닷가는 부산하게 변화 중이다. 연륙도에는 마리나 리조트가 들어섰고, 갯벌에는 간척공사가 한창이다. 낮은 곳에선 볼 수 없던 말라카의 현재진행형 모습이다. 개장시간 오전 10시~밤 10시 입장료 어른 기준 RM20 홈페이지 www.menaratamingsari.com 1 15세기 말라카 왕궁의 모습. 바닥이 지면에서 1~2m 떨어져 있고, 나무로만 지어진 점이 전통적인 말레이시아 건축 구조를 보여 준다 2 도시 이름의 어원이 된 말라카 나무 3 네덜란드 통치 시기 공관으로 쓰였던 스태이더스 빌딩은 현재 말라카 민족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4, 5 포르투갈의 흔적은 볼 수 있는 세인트 폴 성당. 벽채만 남은 모습에서 역사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6 말라카는 한때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동서양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다. 당시 교역량은 수에즈 운하와 비견됐을 정도다 7 말라카에서 꼭 경험해 봐야 할 인력거 ‘트라이쇼’. 화려한 꽃과 음악으로 장식하는 게 특징이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있는 언덕 말라카는 아시아에서 가톨릭의 세례를 받은 첫번째 도시이며, 400년간의 식민 지배 속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생명력의 땅이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는 최초의 왕조가 탄생한 곳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말라카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말레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흔적이 한 덩어리를 이룬 도시는 전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여기에 이주 중국인들이 말레이 사람들과 결혼해 낳은 ‘페라나칸’의 문화까지 더해져 이색적이다. 본격적인 말라카 시간 여행은 독립기념관 앞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에서부터 시작된다. 수마트라섬 스리비자야 왕국에서 건너온 파라메시바라Paramesvara왕자가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이 나무 아래 서였다. 그는 이곳에서 궁지에 몰린 아기 사슴이 자신의 사냥개를 물리치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작은 힘으로도 용맹하게 맞서면 큰 힘을 이길 수 있다는 것. 나무의 이름을 딴 말라카왕국이 건국된 것이 1402년인데, 역사학자들은 이때를 말레이시아 역사의 시작점으로 본다. 독립기념관 앞 말라카 나무 주변에는 포르투갈의 요새와 15세기 말라카왕궁The Melaka Sultanate Palace이 있어 여러모로 역사 여행의 시작점이라 할 만하다. 파라메시바라 왕의 바람대로 작은 왕국 말라카는 전세계의 큰 도시들을 상대하며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말라카 사람들은 해상 교역 활동에 관련된 ‘말라카법’을 만들어 교역 기반을 다졌으며, 앞다퉈 이슬람교로 개종해 멀리서 온 아랍 상인들의 호감을 샀다. 하지만 말라카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건국 백여 년 만인 1511년 포르투갈에 의해 멸망했고 뒤이어 1641년 네덜란드, 1795년부터는 말라카를 포함한 말레이시아 전역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포르투갈은 당시 황금보다 더 귀했던 향료를 독점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왔는데,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발견한 지 겨우 9년 만의 일이다. 그들은 말라카를 시작으로 아시아 침략의 포문을 열었다. 말라카를 점령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처음 한 일은 안전한 거주지 겸 요새 ‘에이 파모사A’Famosa’를 짓는 것이었다. 원주민 노예를 동원해 술탄의 왕궁과 왕릉, 모스크를 철거하고, 성벽 두께가 3m나 되는 요새와 다양한 용도의 건물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형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뒤이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포화 속에 살아남은 것은 성문Porta de Santiago과 성당St.PaulChruch 한 채뿐이다. 성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언덕 위로 벽채만 남은 세인트폴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가톨릭을 처음 포교한 성 자비에르와 관련된 일화로 유명하다. 자비에르는 말레이반도와 일본, 중국을 오가며 가톨릭을 알리는 데 힘쓰다 1552년 중국 광저우에서 사망했다. 시신은 말라카에서 6개월간 안치된 후 그의 첫 해외 포교지였던 인도 고아로 가게 됐는데, 관을 열어 보니 전혀 썩지 않았다고 한다. 또 자비에르가 바다에 십자가를 던지자 사나운 풍랑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는 일화도 있다. 얼마 후 어부가 같은 자리에서 게를 건져올렸는데 신기하게도 자비에르의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말라카에서는 등에 십자 모양의 무늬가 있는 게는 성스럽게 여겨 잡지 않는다. 에이파모사 요새는 전체적으로 붉고, 거칠게 풍화된 듯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마치 녹이 슨 듯 보이는데, 철성분이 함유된 홍토 벽돌로 만들어서 그렇다. 이 벽돌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쓰인 것과 같은 종류로 수백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요새 아래쪽에는 멀리서도 붉은 벽이 눈에 띄는 스태이더스The Stadthuys 빌딩이 있다. 원래 네덜란드 총독의 공관이었는데, 현재는 말라카 민족박물관이자 랜드마크로 사랑받고 있다. 말라카 이전부터 식민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유물과 옷차림을 전시하고 있다. 네덜란드식 거실과 당시 사용했던 생활용품들도 볼 수 있다. 베이커리에서는 갈색빵을 파는데 네덜란드 점령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탄 빵을 나눠주었던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주말에는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다양한 군복 코스프레도 볼 수 있다. 스태이더스와 맞붙어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18세기에 세워졌다. 거대한 대들보와 시계탑에서 네덜란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travie info 트라이쇼Trishaw 스태이더스 앞에는 말레이시아와 페낭에서만 볼 수 있는 인력거 ‘트라이쇼’가 줄지어 서 있다. 평범한 인력거가 아니다. 오디오에서는 ‘강남스타일’을 비롯해 최신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지붕이며 좌석을 각종 꽃과 인형, 깃발로 치장하고 있다. 잘나가는 트라이쇼는 광고판까지 달고 성업 중이다. 트라이쇼를 타고 말라카의 골목골목을 돌아보다 보면, 아직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보석 같은 장소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트라이쇼┃이용요금 시간당 40RM(30분 25RM), 어른 2인까지 탑승 가능 에이파모사┃입장료 무료 말라카왕궁┃개장시간 오전 9시~오후 5시30분 입장료 어른 기준 2RM 스태이더스┃개장시간 오전 9시~ 오후 3시30분(금~일요일은 오후 9시까지) 입장료 어른 기준 5R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 나라가 사는 법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레이시아에서 진한 친근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나라에선 한국인의 영어가 유독 잘 통한다. 우리나라 콩글리시 버금가는 게 바로 말레이시아의 ‘맹글리쉬’.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말레이시아에서는 한 가지 언어로 이뤄지는 완벽한 의사소통보다 다양한 언어로 이뤄지는 유연한 의사소통이 더 일반적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한 가지를 고집하기보다 여러가지를 포용한다. 가장 전통적인 것을 가장 현대적인 것으로 재구성하고, 감추고 싶은 역사를 가장 매력적인 역사로 소개한다.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는 이슬람 사원의 첨탑을 본떴고, 쇼핑몰을 활보하는 여자들은 검정색 대신 온갖 화려한 색깔과 무늬로 치장한 차도르를 둘렀다. 이곳에서 이슬람 전통은 속박의 족쇄가 아니라,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된다.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이나 광장 이름에서 독립을 뜻하는 ‘메르데카’라는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는데 매년 8월31일 독립기념일에 성대한 축제를 치를 정도로 독립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반면 쿠알라룸푸르와 말라카 곳곳에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 통치 유적들이 버젓이 관광상품화 돼 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부러 이런 곳들을 찾기도 한다. 식민 역사에 대해 예민한 우리로서는 이런 모습이 양면적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 모습이 너무 양면적이지 않은지 묻자 나이 지긋한 관광가이드 노마가 적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용서에 관대한 편이예요. 아마 종교의 영향도 크겠죠. 무엇보다 우리는 이제 식민시대에 아무런 악감정도 없어요. 역사 그대로의 과거에 얽매어 있기보다 새롭게 보고, 발전시키는 게 중요한 거지요.” 오랫동안 하나의 영토를 다양한 무리의 사람들과 공유하며 살아온 역사 속에서,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포용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종교와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는 데 가장 뛰어난 국민이다. 그리고 그런 관용적인 태도 속에는 다양한 삶의 어떤 형태든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강인함이 있다. “나는 10년 동안 트라이쇼 운전을 해왔어요. 운전 기술로 치면 말라카에서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거 알아요? 말라카 최고의 직업이 바로 트라이쇼 운전사라는 거. 난 매일 ‘이녀석’과 함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새로운 곳에 대해 알아 가죠. 난 정말 이 일이 좋아요.” 적도 부근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매일 12시간씩 인력거 운전을 하는 만MAN 씨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말라카에서 트라이쇼를 타며 만씨와 함께한 시간은 유쾌함으로 가득했다. 처음 만나는 말라카의 신선한 풍경 때문이기도 했고, 비온 뒤 씻은 듯 갠 하늘 때문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많은 자전거 운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룩한 그의 배와 넉넉한 웃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화려하게 뽐낸 ‘이녀석’의 아늑한 품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전거와 만씨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베크만BECHMAN’. 그것은 어느새 만씨 자신이 돼 버린 녀석에게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도선미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말레이시아관광청 www.mtpb.co.kr ★MALAY FOOD & SWEET DESERT MALAY FOOD 말라카의 음식 계보는 복잡 다단하다. 인도, 포르투갈, 네덜란드, 중국의 조리법이 말레이시아 특유의 향신료와 만나 새로운 퓨전 요리로 탄생했다. 달콤한 ‘자연주의’ 디저트도 말라카에선 꼭 맛봐야 한다. 단맛을 내는 데 코코넛 우유와 팜나무 수액으로 만든 흑설탕 ‘굴라Gula’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인공적이지 않고 몸에 좋다. 입 안에 감도는 두 가지 맛 ‘뇨냐푸드NONYA FOOD’ 중국인과 말레이인이 결혼해서 낳은 2세를 남자는 바바, 여자는 뇨냐라고 한다. 뇨냐음식은 말레이시아와 중국음식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데, 아마 혼혈 가정 내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으리라. 주로 중국 조미료에 코코넛 우유, 말레이 향료를 함께 넣어 조리한다. 태생이 가정식 요리기 때문에 겉보기에 매우 단출하다. 레스토랑에서 먹더라도 휴대용 찬합에 담겨 나온다. 튀김요리인 바이띠Baidee, 중국식 야채볶음인 찹차이Chap Chye, 커리잎을 넣어 구운 치킨IncheKabin 등이 대표적이다. 뇨냐 음식은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말라카와 페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데, 말라카식은 코코넛 우유를 많이 사용해 달달한 반면, 페낭식은 태국의 영향으로 매운 고추가 사용되는 점이 다르다. 뇨냐 식당은 존커 스트리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향에서 맛보는 원조 ‘아쌈페다스ASAM PEDAS’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즐겨 먹는 아쌈페다스의 고향이다. 아쌈은 타마린드 열매즙을, 페다스는 ‘매운’을 뜻한다. 파인애플, 스타프루트 등 열대과일, 아쌈, 토마토, 절인 갓으로 만든 소스에 생선과 채소를 넣고 조리하는데, 겉보기엔 생선찌개에 가깝다. 맛은 전혀 비리지 않고 깔끔해 카레처럼 국물을 밥에 얹어 먹으면 맛있다. 아쌈페다스를 맛보고 싶다면 카페 루마말라카KafeRumah Melaka를 추천한다. 다양한 말레이, 말라카 전통 음식으로 유명하며, 20년 된 캄풍의 풍취도 느낄 수 있다. 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7시, 일요일 제외(영업시간 이후는 사전 예약 필수) 홈페이지 www.keferumahmelaka.com SWEET DESERT 코코넛밀크의 감미로운 맛 ‘사고Sago’ 바바 뇨냐들이 어렸을 때부터 즐겨먹는 간식이다. 사고팜 나무에서 나오는 전분을 하루동안 물에 담그면 젤리처럼 되는데, 이걸 동그랗게 뭉쳐서 은단만한 알갱이로 만들고, 코코넛 우유에 넣어 먹는다. 여기에 과일과 팜나무 설탕인 ‘굴라Gula’를 넣으면 매우 고소하고 달콤하다. 굴라는 메이플 시럽과 같은 방법으로 팜나무에서 추출한 설탕으로, 디저트에 주로 사용된다. 말레이시아식 팥빙수 ‘첸돌Cendol’ 첸돌은 말라카의 대표적인 디저트다. 얼음에 팥을 올리는 것이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팥빙수와 흡사하다. 다른 점은 연유 대신 코코넛 밀크를, 시럽 대신 굴라를 사용한 자연식이라는 것. 특히 향료의 하나인 판단잎 즙으로 만든 녹색 젤리를 짧게 채썰어서 넣는 게 특징이다. 이 젤리는 해독 성분이 있어 몸에도 좋다. 독특한 향을 지닌 두리안을 좋아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첸돌에 두리안을 토핑해서 먹기도 한다. 존커 스트리트 입구에 있는 ‘산슈공San Shu Gong’의 첸돌이 유명하다. ▶travie info 말라카 가는 방법 인천에서 말레이시아항공, 에어아시아항공, 싱가포르항공 등을 이용해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까지 이동한 후 현지에서 버스, 기차를 타면 편하다. 1 쿠알라룸푸르 버스터미널 TBSTerminal Bersepadu Selatan에서 말라카행 버스 이용. 1시간45분 소요되며 매일 7:00~23:00 사이 1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12.3RM. www.tbsbts.com.my 2 쿠알라룸푸르 기차역KL Central에서 싱가포르 우드랜드Woodland행 열차South Line를 이용하면 된다. 반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하루에 1대만 운행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다. 쿠알라룸푸르발 말라카행은 오전 9시 출발, 2시간 30분 소요, 23RM. 싱가포르발 말라카행은 오후 1시45분 출발, 4시간 소요, 38RM. www.ktmb.com.my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中 지안서 고구려 비석 발견

    中 지안서 고구려 비석 발견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마셴(麻線)향 마셴촌에서 기존에 알려진 광개토대왕 비문을 압축한 고구려 비석이 발견됐다. 광개토대왕비, 충주 고구려비에 이어 세 번째 고구려비로 등록된 이 금석문을 국내 학계는 “고고학적 대발견”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비석은 광개토대왕비처럼 고구려 역대 왕릉을 관리하기 위한 규정을 담은 이른바 수묘비(守墓碑)로 평가된다. 한국고대사 전공자인 여호규 한국외대 교수는 16일 “중국 국가문물국(문화재청에 해당)이 발행하는 ‘중국문물보’가 지난 4일자 기사에서 고구려 비석 발견 소식을 보도했다”면서 “한국고대사학계의 중요한 발견이지만 흐릿한 탁본만 확인됐고,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해 국내 학자들의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문물보’ 보도에 따르면 이 비석은 지안시 마셴향 마셴촌의 한 주민이 지난해 7월 29일 마셴강(河) 가에서 발견해 지안시 문물국에 신고한 것이다. 문물국은 현장에 조사팀을 파견해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정밀히 조사한 결과 고구려 비석임을 확인했다고 중국문물보는 전했다. 비석은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결실(缺失)된 상태로, 크기는 높이 1m 73㎝, 너비 60.6~66.5㎝, 두께 12.5~21㎝이다. 무게는 464.5㎏. 비석 정면에는 예서체로 총 218개 글자를 새겼다. 비석은 총 10행으로, 마지막 10행을 제외하고 행마다 22자를 적었다. 10행에는 가장 많은 20자가 확인된다. 218자 중 판독이 가능한 글자는 140자. 비문은 광개토대왕비 비문을 압축한 듯한 느낌을 준다. 첫머리에는 ‘시조 추모(주몽을 이름)왕이 나라를 창건하니라’(始祖鄒牟王之創基也) ‘하백의 손자’(河伯之孫), 그리고 그런 추모가 ‘나라를 일으켜 (왕위가) 후대로 전해졌다’는 구절 등이 보인다. 이어 ‘연호(烟戶)’를 배치해서 사시(四時)로 제사에 대비케 하고 ‘부유한 자들이 (묘를 관리하는 사람들인)수묘인(守墓人)들을 함부로 사고팔 수 없다’는 구절 등이 있다. 따라서 이번에 발견된 비석 또한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역대 고구려 왕가의 공동묘지인 지금의 지안시 우산하 고분군 앞에 광개토대왕비를 건립하면서, 또 다른 왕가의 공동묘지인 현재의 마선구 고분군 앞에 그 축소판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한파속 ‘창작의 꿈’ 펼치는 얼음조각 달인들

    한파속 ‘창작의 꿈’ 펼치는 얼음조각 달인들

    “한겨울에 야외에서 얼음을 깎는 작업이 굉장히 추울 거라 생각하죠. 하지만 조각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다 보면 추운 줄도 몰라요.” 얼음 조각가 김광성(38)씨의 말이다. 4일 오후 8시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로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은 대구 비슬산자연휴양림을 찾아 맹추위 속에 얼음과 씨름하고 있는 얼음 조각의 달인들을 만났다. 얼음 위에 올라가 조각을 하기 때문에 신발에 아이젠을 착용하는 것은 필수다. 얼음 조각가 하석구(38)씨는 “위험한 장비로 작업하기 때문에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며 “전기톱에 잘린 얼음 조각이 얼굴을 때리고 피부까지 상하게 하지만 이런 고된 과정을 거쳐 조각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환희를 느낀다”고 말했다. 높이 2m 정도인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4~5시간 정도 쉬지 않고 작업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얼음 조각가는 80여명 정도다. 각종 축하연에 얼음 조각이 빠질 수 없는 장식물로 인식되면서 점차 늘고 있는 추세지만 야외에서 ‘창작의 꿈’을 펼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조각가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밖에 ‘TV 쏙 서울신문’은 3일 경기 여주군 일대와 서울에서 열린 ‘한·아세안 청년 네트워크’를 찾아갔다. 한·아세안센터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한국을 비롯해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각국의 학생 70여명이 모였다. 세종대왕릉과 명성황후 생가를 방문하고 인삼과 김치 체험장에서 직접 음식을 맛보는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문화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장면들을 담았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일한 혈흔 형태 전문가 서영일(38) 연구사도 만났다. 범죄 현장에 떨어진 핏자국은 살인 등 유혈 범죄 수사에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혈흔의 모양이나 크기, 방향에는 범행 도구와 용의자의 움직임 등 다양한 정보가 들어 있다. 서 연구사는 “공판 중심주의 사법제도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혈흔의 형태는 기소 내용의 설득력을 높이고 진술의 진위 여부를 가려내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유품을 최초로 공개한 국립고궁박물관을 찾아가 덕혜옹주의 복식과 장신구, 혼수품 등 귀중한 기록물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 밖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타난 목소리를 통해 한 주일간의 뉴스 흐름을 짚어보는 ‘톡톡 SNS’에서는 새해 예산안 및 ‘택시법’ 통과 등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전한다. 박홍규 PD gophk@seoul.co.kr
  • 3~8세기 가야·신라·백제문화 日 전파 유적 확인

    3~8세기 가야·신라·백제문화 日 전파 유적 확인

    일본의 고대 국가형성사에서 도래인(到來人)과 도래 문화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도래인은 외부로부터 일본 열도로 유입된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그 대다수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다. 7세기 백제 멸망 이후 지배층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사례 말고도 3~4세기에도 한반도 국가들 사이에 힘의 균형이 깨지거나 전란이 일어나거나 하면 힘을 잃은 국가의 지배층들은 보따리를 싸서 일본으로 떠나갔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중국이 전란에 휩싸이거나 권력투쟁이 일어났을 때 패배한 중원의 세력들이 한반도로 유입된 것과 비슷하다. 한국 고대사에 ‘기자조선’이니 ‘위만조선’이니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일본의 도래인은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이라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는 정치적인 논리로 악용되기도 했다. 도래인과 도래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제공하기 위해 ‘일본 속의 고대 한민족 문화’ 조사연구사업에 착수한 동북아역사재단은 그 첫 성과물로 ‘일본 속 고대 한국문화’를 발간했다. 이 책은 최신 발굴 성과 등 고고학적 자료와 문헌 자료를 토대로 한반도 문화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긴키(近畿) 지방을 중심으로 3~8세기 고대 한반도 문화가 일본에 끼친 영향과 교류 과정을 살펴본다. 일본 역사로 보면 고분시대부터 아스카와 나라시대까지를 대상으로 했다. 박천수 경북대 교수가 집필했다. 박 교수는 1991년부터 5년간 오사카 대학에서 고대 일본 문화의 중심지인 긴키 지역을 돌아보았고, 2003년과 2007년 한·일국제교류기금이나 일본 국제교류기금의 초청으로 일본 고대 문명과 한반도와의 관계를 살펴봤다. 박 교수는 “신라 왕자인 아메노히보코(天日槍) 전승으로 유명한 다지마(但馬) 지역을 답사하면서 5세기 이후 신라 문화가 지속적으로 이입된 것을 확인한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나라문화재연구소 아스카자료관에서 소가(蘇我)씨가 봉헌한 신라산 유리구술과 금정(鋌)을 손에 접했을 때 감동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일본 각 지역의 한반도 관련 유적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각 지역 유적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분석해 고대 한반도 문화가 일본에 이입되어 가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한반도 고대국가의 문화는 일본에 골고루 전파됐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가야 문화가 일본에 유입됐음을 보여 주는 흔적들이 대거 발견됐다. 조사팀은 4세기에 철 단야(鍛冶·금속을 불에 달구어 벼림)와 같은 금관가야의 문화, 5세기 후반에는 금공(工·금속세공)과 마사(馬飼·말사육) 등 대가야 문화가 일본에 전파된 흔적을 찾아냈다. 장례 제도인 장제(葬制), 마사, 토목기술 등 백제 문화는 6세기 전반에 일본에 본격적으로 유입됐으며 승마, 금공, 철공 기술 등 신라 문화는 5세기 전반에 일찌감치 일본에 전파된 것으로 확인됐다. 불교, 화장, 왕릉의 풍수사상, 고대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인 정창원(正倉院)의 신라 유물 등 통일신라 문화가 일본에 미친 영향도 종합적으로 살펴봤다. 이 책은 특히 일본에 전해진 고대 한반도 문화를 단순히 중국 문화를 전달하는 매개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도래인의 활동과 역할, 고대 한반도 문화가 일본에 미친 역사적 의의를 집중 분석했다. 실제로 긴키 지방 전역에 한반도 도래인이 거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단순히 한반도 문화가 일본에 전해져 일본의 문명화가 이뤄진 게 아니며, 일본의 문명화에 도래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문명은 원래 서로 교류하고 섞이는 것이니, 이런 연구성과가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의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는 유물들을 구경한다는 생각으로 죽 훑어보면 재밌겠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2000년전 비단 국내생산 확인

    2000년전 비단 국내생산 확인

    광주 광산구 신창동 유적에서 기원전 1세기경 비단이 발견됐다. 이는 6세기 고분인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최초의 비단조각보다 700년이나 앞선 최고(最古)의 비단으로 2000년 전 한반도에서의 비단 생산을 입증하는 자료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신창동 유적에서 출토된 천조각을 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천조각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단인 곡(縠)임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조사는 신창동 발굴 2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특별전 준비과정에서 이뤄졌다. 조사된 천조각은 2점이며 직물1은 2㎝ x 3㎝, 직물2는 5㎝ x 6㎝ 정도이다. 직물1은 명주실로 짠 가볍고 얇은 견직물인 곡으로, 직물2는 마직물로 분석됐는데 견사(絹絲)와 마사(麻絲)를 합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번 확인으로 출토된 비단과 마직물은 한반도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빠른 것으로 판명됐다. 확인된 비단은 꼬임이 많은 강연사(强撚絲)를 사용하여 평직(平織)으로 직조한 뒤 후처리인 정련(精練)과정을 거쳐 직물의 표면을 미세하고 부드럽게 만든 것이다. 현재까지 이런 곡은 무령왕릉 출토품이 가장 빨랐다. 광주박물관 측은 “2000년 전 비단의 발견은 중국의 ‘후한서’와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삼한의 양잠과 비단 생산을 증명할 유물로 가치가 높다.”면서 “마직물을 사용하는 계층과 다른 신분층이 존재하는 것으로, 마한 사회의 신분변화를 추정할 만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경주 반하거나 미치거나

    경주 반하거나 미치거나

    후덕한 인상의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경주 반하거나 미치거나 반하다 [반ː하다] [동사] 어떤 사람이나 사물 따위에 마음이 홀린 것같이 쏠리다. 미치다 [동사] 「…에/에게」 어떤 일에 지나칠 정도로 열중하다. 불국사도 석굴암도 좋고, 수학여행의 추억마저 좋은 너와 나는 이래저래 경주를 좋아한다. 그 경주의 남산에는 유독 그 마음이 넘쳐난다. ‘반하거나 미치거나’ 하는 경주 남산의 매력은 가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반할 수밖에 없는 남산南山 경주 왕궁의 남쪽에 자리해 이름 지어진 남산. 신라 사람들은 진짜 부처님이 남산에 살아 계셔 백성이 원할 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믿었다. 신라의 임금마저도 남산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게 했던 굳건한 믿음은 남산을 경주에서 가장 많은 유물을 품은 곳으로 남게 했고 오늘날 사람들은 신라인들의 믿음의 흔적을 쫓아 남산에 오른다. 신라인들은 남산의 웬만한 돌 위마다 불상과 탑을 세웠다. 또한 반반한 절벽이라면 여지없이 부처님이 자리한다. 13기의 왕릉, 4개의 산성 터, 147개의 절터, 118체의 불상, 96기의 탑, 22기의 석등, 19점의 연화대 등 남산에서 발견된 문화유적은 672점에 이른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골짜기에 불상의 파편이 떠 내려오는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니 숨겨진 문화유적이 얼마나 더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수백년을 거쳐 쌓은 믿음의 세월은 이처럼 단단하고 거대해 하루 만에 쫓아 눈에 담기에 부족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남산에 오르는, 남산에 반쯤 미친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까닭도 이러하다. 하루 혹은 이틀, 짧은 시간을 남산에서 보내는 이들이라도 남산에 반하고 만다. ‘자연을 전혀 훼손하지 않고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조성된’ 신라인의 종교이자 믿음은 남산이라는 자연을 만나 자연스럽게 그 일부가 됐다. 경주 서남산의 문화유적 탐방 코스이자 산행 코스는 남산의 매력을 짧은 시간에 보여준다. 삼릉에서 시작해 삼릉골(냉골)과 금오산 정상을 거쳐 용장골에서 마감하는 이 코스는 3~4시간의 온전한 등산 시간을 요한다. 문화유산해설이 곁들여지면 6~7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서남산 삼릉-용장골 코스는 삼릉, 냉골 석조여래좌상, 마애관음보살입상, 선각육존불, 선각여래좌상, 경주 삼릉계석불좌상, 상선암마애대좌불, 금송정터와 바둑바위, 금오산 정상, 삼화령 대연화대, 용장사지 삼층석탑,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용장사지 삼륜대좌불, 용장사터, 탑재와 석등대석, 용장계 절골 석조약사여래좌상의 문화유적을 순서대로 쫓는다. 길은 때로는 평탄하고 때로는 가파르며 험난하다. 흙길은 돌길이 됐다가 바윗길이 되고 다시 돌길과 흙길로 바뀐다. 다만 길을 따라 불상과 탑이 이어지는 건 한결같다. 비와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된 유적들은 알면 보이고 모르면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이 길 위, 숲 속에 고이 앉은 경주 삼릉계석불좌상은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아름답다. 연화대좌에 앉은 이 좌상은 애초에 노천불이었다고 한다. 부처님이 비바람을 맞을지언정 자연과의 조화를 깨트릴 수 없었던 신라인들은 전각 대신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나무를 기둥으로 세웠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얻었다. 절벽 아래 중생을 굽어 살피는 상선암마애대좌불을 지나면 곧 금오산 정상이다. 서라벌 벌판과 북남산을 굽어보려면 정상 못 미처 자리한 금송정터와 바둑바위에 오르는 것이 좋다. 막상 정상에서는 별다른 전망을 볼 수 없다. 하산 길, 용장사지 동편 능선 위에는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자리했다. 어느새 뉘엿거리는 해에 삼층석탑이 불그스레하다. 용장사지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삼층석탑은 3층 옥개석까지의 높이가 4.5m다. 수많은 남산의 탑들처럼 기단은 따로 없다. 앞서 불상과 마찬가지로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한 신라인들은 자연의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탑을 조성했다. 사람의 손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200m 높이의 기단은 이렇게 탄생해 200m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을 완성했다. 서남산의 삼릉-용장골 코스에 비하면 동남산 기슭의 유적들은 찾기가 수월하다. 15분여 가파른 코스의 산행이 필요한 보리사 마애석불을 제외하면 산책 수준에 불과하다.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에서 시작해 남산 탑곡마애불상군,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보리사 마애석불, 헌강왕릉, 정강왕릉, 서출지, 남산리 사지 쌍탑 등지를 둘러보려면 4시간 가량이 걸린다. 중간중간 차로 이동해도, 걸어도 좋다.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부처골감실불상으로도 불린다. 절벽을 이룬 바위에 감실을 파고 부처를 새겨 놓았는데 후덕한 인상과 팔짱을 낀 손 모양 때문에 선덕여왕의 상이라는 설도 떠돈다. 바위에 올라 감실 내부를 자세히 보면 채색된 연꽃 그림도 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찾기는 조금 어렵다. 남산 탑곡마애불상군은 부처의 세계다. 높이 10m, 둘레 40m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의 사방에는 시대를 달리하는 불상과 탑이 새겨져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상의 선녀도 보인다. 경주 남산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전한 모습을 보이는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이 가까이 자리했다. 양피사지와 염불사지의 쌍탑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염불사지 두 기의 탑은 복원과 동시에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안치했다. 민간에서 추진한 일이라 자부심이 크다. 1 노천불인 경주 삼릉계석불좌상은 지나가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2 동남산 기슭에 자리한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다리품을 적게 팔고 만날 수 있는 신라의 아름다움이다 3 중생을 굽어 살피며 아래로 시선을 둔 상선암마애대좌불 4 동남산 가파른 산길을 350m 정도 오르면 만나게 되는 보리사 마애석불 상선암마애대좌불. 금방이라도 바위에서 튀어나올 듯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남산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걷는 남산은 더욱 풍성하다. 유적지의 안내판이 담아내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해설사를 통해 들을 수 있어 과거 신라의 풍경이 그림처럼 피어 오른다. (사)경주남산연구소에서는 주말과 공휴일에 남산유적답사를 무료로 진행한다. 삼릉 코스, 동남산 코스, 동남산 산책, 남남산 산책 등 4개의 산행 코스와 삼릉 가는 길(둘레길 걷기)을 포함한 5개의 정규 코스를 해당 일에 맞게 운영한다. 매월 보름 전후 토요일에는 남산달빛기행을 떠날 수 있다. 저녁 7시 혹은 7시30분에 출발해 밤 11시30분경에 내려오는 일정으로 이 또한 무료다. 문의 054-777-7142 www.kjnamsan.org ●미친 사람들 경주에는 무언가에 미친 사람들이 많다. 이번 여행에 남산 해설을 맡아 주신 (사)경주남산연구소의 김구석 소장도 그랬다. 신라의 흔적을 찾아 남산에만 3,000번 가량 올랐다는 그는 아예 남산 용장골에 집을 짓고 남산을 제 집 드나들 듯 하고 있다. 답사 여행객 맞이와 강의에 그는 늘 바빠 보였는데 실제 경주에서 만난 무언가에 ‘미친 사람’들은 늘 바빴다. 자연에서 얻어 살다 야선미술관 박정희 관장 “이 나물 이름이 뭐에요?” “어제 캔 나물.” 아침 밥상에 놓인 나물 이름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어제 캔 나물이라니. 하기는 자연이 기른 채소를 어제 캤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직접 가꾼 텃밭과 들과 산에서 채취한 싱싱한 채소들은 야선미술관 밥상의 선식으로 오른다. 덖은 무는 갈빛, 맨드라미는 선홍빛 선차가 된다. 건강한 재료로 만든 밥상과 찻상은 자연히 건강을 부른다. 야선미술관은 박정희 관장(사람들은 편하게 야선 선생님이라 부른다)의 호를 따 이름한 미술관이다. 경주 동남산 기슭에 3년여 동안 지은 네 채의 한옥은 작은 미술관이기도 하며 선식과 선차를 먹고 마시며 한옥에서 잠자리를 갖는 웰빙 체험 공간이기도 하다. 20대 젊은 시절,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야선 선생님은 대구의 서당에서 훈장을 했다. 십여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열심히 살았지만 이상하리만치 몸에 기운은 없었다. 우연히 들렀던 경주 남산에 터를 잡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15년. 건강한 몸의 야선 선생님은 경주 남산의 건강 전도사가 됐다. 가진 것이 많아 보인다는 누군가의 말에 야선 선생님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심지어는 빚마저도. 3년여 한옥을 지으며 앞을 향해 달리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잠자리와 먹을 것,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남았으니 확실히 가진 게 많아 보인다. 야선미술관의 익살맞은 작품 한옥과 넓은 마당이 있는 야선미술관의 모습. 선식과 선차는 사진 가운데에 있는 조그마한 한옥에서 맛볼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한옥 문화공간 진 한유진 대표 한옥을 허물고 집을 지을 때 주변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가족들도 환영하지 않았다. 마침 남편이 해외에 있어 때가 잘 맞았다 한다. 간절한 이야기에 웃음이 났다. 한유진 대표가 남 보기에 ‘미친 짓’에 매진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어린 시절, 한옥에 살던 추억이 그리워서였다. 경주도 그런 곳이었다.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경주는 늘 아련하고 그리운 고향이었다. ‘문화의 거리’라 불리는 경주 동성로의 한 켠에는 큰 대문을 지닌 기와집 한 채가 서 있다. 현대식 상가 가운데에 단아하게 자리해 저절로 눈이 가는 집이다. 집주인이자 집 한 켠을 빌어 ‘문화공간 진’을 운영하는 한유진 대표는 이 집의 대문에 먼저 반했다. 집 내부는 보지도 않고 ‘이 집이 내 집이 됐으면’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2009년, 그 바람은 현실이 됐다. 1942년 광산댁이 지은 한옥은 그런 바람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살릴 건 살리고 버릴 건 버려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 여름에만 사용 가능한 전이 공간이라 대부분 철거를 하는 마루는 살리고, 처음에는 없었지만 살며 넓힌 실내 공간은 과감히 버렸다. 수리를 하며 발견된 세월의 흔적은 작은 정겨움이자 추억이었다. 한유진 대표는 울산에서 플로리스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남편 직장도 울산이다. 한옥을 짓기 전까지만 해도 경주에서 완전히 살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는데 집을 짓고 보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짐 들어갈 공간이 부족한지라 침대와 식탁만 들고 이사를 감행했다. 살아 보니 그저 좋아 2년 넘게 살고 있다. 출퇴근 등 소소한 불편은 한옥의 매력을 이기지 못했다. 부채에 민화를 그리는 프로그램은 문화공간 진의 일일체험 중 하나다 한옥의 일부를 개인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travie info 현재 문화공간 진은 생활 꽃꽂이, 규방공예, 민화 그리기 등으로 한옥 공간의 일부를 경주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꽃꽂이와 민화 수업은 한유진 대표가 직접 진행한다. 2년 전부터 그리기 시작한 민화 실력은 서라벌예술대전에서 특선에 뽑힐 정도로 훌륭하다. 여행자들은 토, 일요일에 열리는 단시간 일일 체험(체험비 1만2,000원)이 가능하다. 몇시간 전에 예약을 해도 되고, 지나다 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가도 된다. 좋은 공간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한유진 대표의 마음이다. 010-2717-3474 ●미치게 하는 맛 ▼아사가 경주 ‘문화의 거리’에 자리한 전통 찻집이다. 큰길에서 보이는 입구는 갤러리로 다기 등 차 관련 용품이 전시돼 있다. 작은 마당을 지닌 초가 찻집은 입구 옆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작은 소품으로 가득한 찻집 마당이 볼 만하다. 판매하는 차의 종류는 다양하다. 찻집에서 추천하는 차는 대추차. 진하고 달콤하다. 주전부리로 좋은 가래떡 구이 등도 판매한다. 주소 경북 경주시 노서동 9-2 전화 054-771-7625 ▼아이차 분식 이름은 분식집이지만 추어탕만 파는 전문점이다. 경상도식 추어탕 중에서도 호박잎이 들어간 전통 방식의 경주식 추어탕을 맛볼 수 있다. 서울식이나 남원식 추어탕과는 크게 다르므로 경상도식 추어탕이 익숙하지 않다면 입맛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추어탕을 주문하면 생선구이가 따라 나오고 밑반찬도 꽤 많다. 점심시간이 다 돼 가는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2시 정도까지만 문을 연다.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아 줄을 서서 먹기 일쑤며, 한 솥만 끓여 팔고 문을 닫으므로 손님이 많은 날에는 오후 1시 가량에 문을 닫기도 한다. 일요일 휴무. 교동쌈밥 옆 골목이라 찾기가 어렵지 않다. 6,000원. 주소 경북 경주시 황남동 167-1 전화 054-741-5917 ▼고두반 농촌진흥청에서 지정한 농가 맛집이다.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70~80% 이상 사용하고, 장작 가마에서 구운 소금으로 간을 본다. 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경주 한우 전골이 주 요리인 고두반 밥상은 정선 큰집에서 보내 온 정선 더덕과 두부 샐러드, 콩전으로 시작해 곤드레, 민들레 김치, 비트 장아찌, 갓 김치, 감자 조림, 우엉 장아찌 등의 반찬을 낸다. 반찬은 아침마다 만든다. 1만3,000원. 다시마 가루를 넣은 두부와 가자미 식해, 돼지고기 수육이 함께 나오는 두부삼합도 맛있다. 2만5,000원. 쌀과 누룩으로만 빚은 막걸리가 요리에 잘 어울린다. 월요일은 쉰다. 주소 경북 경주시 도지동 156-2 전화 054-748-7489 홈페이지 www.고두반.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수리뫼 중요 무형 문화재인 고 황혜성 선생님에게 전수 받은 궁중 음식을 선보이는 곳이다. 깔끔하고 정갈한 메뉴에 눈이 먼저 즐겁다. 전채 요리로는 구절판과 죽이 나오고, 주 요리로는 연저육찜, 두부소박이, 더덕구이, 신선로 등이 계절에 따라 달리 나온다. 찹쌀로 빚은 왕주를 곁들여 천천히 코스를 즐기자. 용산서원과 더불어 자리해 분위기도 고즈넉하다. 수리뫼 코스 5만5,000원. 주소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657 전화 054-748-2507 홈페이지 www.surime.co.kr ▼교리 김밥 교리 김밥은 통영 김밥, 동대문 마약 김밥과 더불어 전국 3대 김밥으로 알려져 있다. 얇게 썬 지단을 듬뿍 넣은 형태라 특이하다. 맛은 평범한 편인데 묘하게도 뜬금없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두 줄에 3,400원으로 자리에 앉아 먹으려면 한 명이 두 줄 이상은 주문해야 한다. 경주 최부자집과 요석궁 사이 골목에 자리했다. 주소 경북 경주시 교동 96 전화 054-772-5130 ▼참가자미 횟집 경주에서 참가자미를 맛보지 않으면 섭섭하다. 고소한 참가자미를 각종 채소와 초고추장, 콩가루에 버무려 먹는 맛이 일품이다. 요즘 경주 사람들은 감포 중매인 참가자미 횟집(동천동 786, 054-773-3611)과 대풍(동천동 808-6, 054-771-4436)을 주로 찾는다고 한다. 경주 갈 일이 있을 때 간간히 들르는 대신 참가자미 횟집(용강동 1355-1, 054-774-6203)도 괜찮다. 참가자미 횟집은 시청 근처 시내에 몰려 있다. 첨성대, 대릉원 인근에서 택시를 타면 3,000~4,000원 정도 나온다. ▼삼미정 착한 가격과 착한 맛을 자랑하는 집이다. 각종 버섯과 손두부를 넣어 빨갛게 끓여내는 두부전골이 7,000원. 돼지고기 수육과 파전도 괜찮다. 서남산 삼릉 입구에 자리했다. 주소 경북 경주시 배동 391-7 전화 054-745-8761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이진경 사진 Photographer 김경현 취재협조 (사)경주남산연구소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4)경북 고령군 우륵로·정정골길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4)경북 고령군 우륵로·정정골길

    경북 고령군은 인구 3만 5000여명의 작은 고장이지만 대가야의 고대문화가 창달했고 가야금 문화를 꽃피웠던 역사적 가치를 지닌 지역이다. 고령 시가지와 가까운 대가야박물관과 왕릉전시관 등에서는 아직도 고분 발굴이 진행되고 있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전형적인 역사 유적지인 반면 가야금을 테마로 하는 우륵박물관과 가얏고마을 주변은 소박한 농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대 도읍지로서의 웅장함과 가야금 고향의 예술혼이 함께 내려오는 곳이 바로 고령이다. 도로명 주소 사업과 함께 새롭게 탄생한 길 이름들은 이러한 고령의 역사·문화적 유산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령 시가지를 지나 우륵박물관과 정정골, 가얏고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들은 ‘우륵로’와 ‘가야금길’ ‘정정골길’로 각각 명명되며 고령의 예술혼을 길 이름으로 승화하고 있다. ‘우륵로’는 이름 그대로 가야금을 창시한 고령 출신의 악사 우륵에서 유래했다. 기존 지번 주소로 고령군 고령읍 헌문리 229-2번지에서 시작해 고령읍 쾌빈리 488번지를 종점으로 하는 길이 848m의 거리다. 2009년 행정적으로 도로명이 고시되기 이전에도 지역 사람들은 이 거리를 ‘우륵로’라고 불렀다. 특별히 누가 정하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부르던 길 이름은 도로명 주소사업이 시작되며 공식적으로 이름을 갖게 됐다. 우륵로의 시작점은 고령군의 중심지이자 고령종합시장이 위치한 중앙공원 네거리다. 고령종합시장에서는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5일장이 열려 합천과 거창, 성주 등에 사는 시민들이 이곳을 찾아 장을 본다. 중앙공원에는 원래 조선시대에 쾌빈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경찰서가 들어서 있었다. 그만큼 이곳은 과거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중심지였다. 외부에서 온 손님에게 연회를 베풀었다는 의미의 쾌빈정은 ‘쾌빈리’라는 지역명으로 이어졌고, 우륵로 주변의 도로들에도 ‘쾌빈 1·2·3·4길’라는 이름이 각각 붙여졌다. 우륵로 종점 부근의 야트막한 동산에는 우륵의 영정각과 기념탑이 조성된 공원이 있다. 1977년 건립된 우륵기념탑은 높이 16m로 12현의 가야금을 형상화했다. 과거 고령 아이들은 공원을 놀이터 삼아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우륵기념탑의 철제 부분에 돌을 던지며 노는 것이 당시 아이들의 흔한 모습이었다. 돌을 맞은 기념탑은 마치 악기가 울리듯이 ‘웅~’ 소리를 냈는데 이 소리가 아이들에게는 재밌게 들렸나 보다. 우륵기념탑은 일종의 거대한 장난감이었던 것이다. 인구가 줄고, 젊은이들이 떠난 고령에서 누가 더 높이 돌을 던졌는지, 누가 던졌을 때 소리가 더 컸는지 내기를 하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우륵로를 자동차로 3분여 지나 우륵박물관 길목으로 들어가는 도로에는 ‘가야금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인근 대가야박물관과 연계돼 많은 사람들이 찾는 우륵박물관은 전국 유일의 가야금을 주제로 하는 박물관으로 장구, 아쟁 등 다양한 국악기 자료가 전시돼 있다. 이 때문에 교육적 가치가 높아 학생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 또 우륵국악연구원이라는 이름의 가야금 공방에는 가야금 연주와 제작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돼 인기가 높다. 이곳에는 가야금 장인 김동환(45) 악기장과 제자 2명이 숙식을 같이하며 명품 가야금을 제작하고 있다. 22가구가 사는 정정골마을을 지나는 ‘정정골길’은 가야금길과 바로 이어지는 길이 802m 의 도로다. 정정골마을도 가야금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우륵이 대가야 가실왕의 명을 받고 가야금을 창제한 곳으로, 그가 가야금을 연주할 때 산골 곳곳으로 ‘정정하게’ 소리가 울렸다는 의미에서 마을 이름이 ‘정정골’이 됐다. ‘하가라도’(下加羅都) ‘달기’(達己) 등 우륵이 작곡한 12곡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정정골에 조성된 가얏고마을은 2007년 행정안전부와 서울신문사가 주관한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공모사업을 통해 대상 지역으로 선정됐다. 인근 중화저수지에 자연생태학습장을 조성하고 가야금을 주제로 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쌀 생산에 머물던 소득원을 확장했다. 조성 초기에는 지자체의 전시성 사업이 되지 않겠느냐는 편견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농사 체험과 가야금 연주 체험 등을 즐기는 방문객은 1년에 1만여명이나 될 만큼 고령의 대표적인 소득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야금과 연관된 도로명은 아니지만 ‘쌍쌍로’라는 재미있는 길 이름도 고령을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쌍쌍로는 서로 마주하고 있는 고령 쌍림면과 합천 쌍책면의 경계 길 이름으로, 두 지역명에서 한 글자씩 따온 이름이다. 당초 고령은 ‘쌍림로’로, 합천은 ‘쌍책로’로 각각 이름을 짓겠다고 주장하다 결국 각자 한 글자씩 이름을 내놓기로 했고, 서로 똑같이 ‘쌍’ 자를 제시해 탄생한 도로명이다. 글 사진 고령 안석기자 ccto@seoul.co.kr
  • [공기업 미래경영]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공기업 미래경영]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의 첨단 관리시설이 르 클레지오, 월레 소잉카 등 해외 문인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미래형 첨단 방사성 폐기물 관리 시스템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일 소잉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비롯한 세계적 문인 150여명이 경북 경주시 양북면에 건설 중인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현장을 방문했다. 신라 문무대왕릉과 마주 보고 있는 방폐장은 원자력발전소나 병원, 산업체 등에서 발생한 방사선이 낮은 폐기물을 처분하는 곳으로, 214만㎡ 부지의 해수면 아래 130m까지 동굴을 뚫고 그 속에 높이 50m, 폭 25m, 두께 1~1.6m로 견고하게 만들어진다. 이를 동굴처분방식이라고 한다. 방폐장 1단계 시설의 현재 종합공정률은 88%로 2014년 6월 준공 예정이다. 방폐공단은 방사성폐기물 관리 사업이 국민 보건과 국토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친환경 사업임을 알리고 방폐장 안전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사가 차질 없는 선에서 방폐장 개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송명재 방폐공단 이사장은 “경주 방폐장은 준위(방사능 오염 정도)가 낮고 선진국에서 이미 40~50년 이상 안전성이 입증된 시설”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베트남 대표적 휴양지이자 숨겨진 보석 같은 곳 다낭

    베트남 대표적 휴양지이자 숨겨진 보석 같은 곳 다낭

    가을이 오고 있던 어느 날, 베트남을 만나러 갔습니다. 우리 아버지들의 청춘이 지나온 흔적을 되짚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하고 이런 단어들을 떠올렸습니다. 전쟁, 라이따이한, 베트콩, 자전거, 아오자이….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바람, 구름, 그리고 시간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의 중부도시 다낭은 느리게, 하지만 선명하게 시간을 선물하는 곳이었습니다. 일상에 젖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하루를 삽니다. 바람을 느끼고 구름을 올려다보고 시간에 머물러 보지 못했습니다. 여행을 통해 나를 만나고 내 시간을 선물 받고 있다는 행복, 아시아의 마지막 휴양지라는 베트남에서 느껴지더군요. 다낭은 베트남 제3의 도시로 대표적 휴양지다. 베트남 전쟁 당시엔 미군의 휴양지로 각광받았으나, 지금은 유럽인들에게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 됐다. 공항을 뒤로 한 지 20여분, 끝없이 펼쳐지는 백색 해안선이 다낭의 가치를 설명해주는 듯하다. 해안선 옆으로는 하얏트, 아나만다라 등 고급 호텔들이 이곳이 왜 ‘베트남 속 유럽’인지를 증명하려는 듯 늘어서 있다. 유명 골퍼 콜린 몽고메리의 이름을 딴 골프장 몽고메리 링크스 다낭 (18홀)도 전 세계 골퍼들을 유혹하고 있다. 사실 이곳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격전지였다. 지금의 국제공항은 미군의 고엽제 창고가 즐비한 곳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전쟁의 상흔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여행자를 위한 시간이 머물고 있을 뿐. 다낭은 새로운 문물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길목이기도 하다. 정보통신 등 베트남의 모든 국가적 정책들은 대부분 다낭에서 시험을 거친 뒤 호찌민이나 하노이 등으로 도입된다. 일종의 시범도시인 셈이다. ●다낭, 후에로 이어지는 베트남의 속살 호찌민, 하노이 등의 도시와 사뭇 다른 풍경과 인사하며 오행산(五行山)의 156개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섰다. 다낭 시내에서 20여분 거리의 오행산은 5개의 작은 산이 띄엄띄엄 솟아 있다. 산 전체가 대리석이다. 그래서 ‘마블 마운틴’이라고도 불린다. 조그만 사찰과 불상들을 지나니 발 아래로 펼쳐진 마을과 너른 바다가 가슴 한 켠을 열어준다.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있는 참 박물관에서는 참족(族)이 남긴 300여 점의 아름다운 조각품을 볼 수 있다. 보존도 복원도 제대로 된 유물은 없었지만, 참족의 예술적 감성만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미손 유적지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의 향기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유산들이 관광객이 함부로 만져볼 수 있는 상품으로 방치된 점은 참 씁쓸했다. 다낭에서 후에로 넘어가는 ‘하이번 고개’(1172m)는 ‘세계 8대 비경’으로 꼽힌다. 예전엔 군사적·지리적 거점이었다. 터널을 통해 7분이면 지날 곳을 고개 따라 구불구불 40분 동안 지나는 이유는, 그 이름처럼 바람과 구름이 쉬어가는 곳이기 때문인 듯하다. 훗날 프랑스인들이 고개 꼭대기에 만든 요새는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의 관측소, 엄폐호로 이용되기도 했다. ●왕들이 잠든 도시 후에 유네스코 관계자가 “건축학적으로 극찬해 마지않을 수 없는 한 편의 시”라고 칭송했다는 후에는 ‘베트남의 경주’라 할 수 있다. 약 150년간 베트남의 수도 역할을 했던 곳으로, 유럽의 고성을 연상케 하는 카이딘 왕릉이 볼거리다. 프랑스풍의 카이딘 왕릉은 고대와 현재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여행자들은 가파른 계단이 펼쳐진 입구에서부터 위용에 압도당한다. 프랑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도 화려한 자신의 왕릉을 짓기 위해 백성에게 고통을 안겼던 카이딘 황제. 그의 비석 뒤엔 후손들이 낙서와 욕을 써놓았다고 한다. 죽어서도 인기 없는 왕이 잠든 곳이 이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1등 관광상품’으로 부활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과거로의 시간여행 호이안 다낭에서 차로 40여분쯤 달리면 또 다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호이안 거리와 만난다. 호이안은 투본강 근처의 작은 도시로 15~19세기 유럽과 중국, 일본 상인들을 맞으며 동남아 최대 무역항으로 번성했다. 투본강 줄기를 가로지르는 내원교는 모양이 독특하다. 다리 위에 목조 지붕을 이고 있다.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일본인 마을과 중국인 마을이 마주보고 있다. 중국적 색채에 일본, 베트남 문화가 가미되고 서구의 문화까지 덧입혀진 독특한 분위기가 어둠이 지면 더욱 진하게 풍긴다. 여행객들을 위한 카페, 상점 등의 불빛이 과거 그대로의 마을과 어우러져 꿈을 꾸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180년 전 옛 모습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을 구석구석을 걷다보면 마치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하다. 글 다낭·후에 박은정기자 eunice@seoul.co.kr ■ 여행수첩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인천~다낭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소요시간은 4시간 30분. 하나투어는 ‘다낭~호이안~후에 5일 관광형’(79만 9000원부터)과 가족여행 등에 적합한 ‘다낭~호이안 6일 휴양형’(109만 9000원부터)상품을 출시했다. ▶화폐는 동(DONG)이다. 한국에서 달러로, 현지에서 다시 동으로 환전하면 된다. 1000동은 약 55원 정도.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늦다. ▶스콜과 햇빛을 막아줄 전통모자 농은 필수품이다. ▶베트남 특산물인 계피와 다람쥐똥 커피가 인기다.
  • [인사]

    ■고용노동부 ◇부이사관 승진 △기획재정담당관 김민석△외국인력정책과장 윤영순△고용서비스정책〃 노길준△산재보상정책〃 김경윤△중부지방고용노동청 강원지청장 김영수△부산지방고용노동청 울산지청장 최성준 ■문화재청 △국외문화재팀장 채수희△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장 홍형우△조선왕릉관리소장 나명하△국립무형유산원설립추진단장 이길배 ■특허청 △기획조정관 박성준△고객협력국장 이태근△특허심판원 심판장 안재현 최규완△특허심판원 심판관 박주익◇서기관 전보△상표디자인심사국 상표3심사팀 오상진△〃 서비스표심사과 양승현△전기전자심사국 특허심사정책과 황은택◇과장급 직위승진△특허심판원 심판관 임현석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담당관 윤수현 ■강원대 △과학영재교육원장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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