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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문화·자연유산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세계 문화·자연유산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한국관광공사가 9월에 가볼 만한 6곳을 선정, 발표했다. ‘세계유산 다시 즐기기’가 테마다. 하나같이 역사와 생태가 잘 보존돼 산책이나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손색없다. 조선 왕릉의 박물관 만나다 ●조선 왕릉 9기 온전하게 보존 - 경기 구리 동구릉 조선 왕릉은 조선왕조 500여년에 이르는 역사를 품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온전하게 보존된 문화유산이다. 특히 경기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은 조선 왕릉 가운데 가장 많은 9기가 모여 있어, ‘조선 왕릉 박물관’이라 불린다. 태조의 건원릉부터 가장 늦게 조성된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수릉까지 9기 17위를 모셨다. 동구릉을 대표하는 능은 태조가 잠든 건원릉이다. 고향을 그리워한 태조를 위해 태종이 함흥 땅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가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대장간마을과 아차산고구려유적전시관, 구리타워와 구리시곤충생태관, 구리한강시민공원 등을 묶어 돌아볼 만하다. 구리시 문화예술과 (031)550-8353. 백제인이 꿈꾸던 미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 전북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등 전북 익산의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문화적으로 융성한 백제 후기를 대표하는 유산이다. 공주와 부여에 가려져 있다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함께 등재됐다. 금마면 익산 미륵사지는 가람 배치가 독특한 백제 최대 사찰 터이고,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은 백제 무왕 때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국내 최대 석탑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복원 작업 중이며, 복원 과정을 참관할 수 있다. 왕궁면 왕궁리 유적은 백제의 궁궐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직사각형 왕궁 터에서 정원 유적, 금을 가공하던 공방 터 등이 발굴됐다. 이웃한 보석박물관, 두동교회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익산시 문화관광과 (063)859-5797. 고인돌에서 채석장까지 ●거석문화 진수 - 전남 화순고인돌 유적 고인돌은 선사시대 무덤이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 영국의 스톤헨지나 이스터 섬의 모아이상 등과 함께 세계 거석문화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남 화순은 강화, 고창과 함께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1995년 발견돼 가장 늦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산기슭에 분포해서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5㎞ 구간에 있어 탐방 동선도 편리하다. 도곡면 효산리에서 진입하는 게 수월하나, 춘양면 대신리 고인돌발굴지보호각을 먼저 들르면 고인돌 문화를 이해하기 쉽다. 운주사, 적벽투어 등과 연계한 돌 문화 여행도 좋다. 화순고인돌유적 대신리 발굴지 (061)379-3907. 정조의 효심이 낳은 성곽의 꽃 ●우리 건축역사 독보적 건축물 - 경기 수원 화성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건축된 경기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 독보적인 건축물로 꼽히며, ‘성곽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2016년은 ‘수원 화성 방문의 해’로 볼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하다.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이 운치 있고, 옛 성벽과 도심의 빌딩이 어우러진 경치도 볼 만하다. 정조가 화성 행차 중에 머문 화성행궁에서는 장용영 무사들이 날마다(월요일 제외) 무예24기 공연을 선보이며, 일요일에는 장용영 수위 의식이 진행된다. 수원화성박물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나혜석거리 등도 묶어서 돌아보면 좋다. 수원문화재단 (031)290-3600. 문무왕 만나러 가는 ‘왕의 길’ ●신라를 새롭게 만나는 길 - 경북 경주 신문왕 호국행차길 신문왕이 아버지가 잠든 경북 경주 대왕암(문무대왕릉)을 찾아간 ‘신문왕 호국행차길’ 걷기는 신라를 새롭게 만나는 방법이다. 통일신라 격동의 역사와 만파식적 신화가 담겨 있다. 신문왕 행차는 토함산과 함월산 사이 수렛재를 넘어 천년 고찰 기림사에 이른다. 수렛재는 울창한 활엽수림이 장관이고, 용연폭포는 용의 전설을 품고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걷기는 기림사에서 끝나지만, 문무왕이 용이 되어 드나들던 감은사지를 거쳐 이견대와 대왕암까지 둘러보자.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진 양동마을에선 조선시대의 풍경과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경주시 관광컨벤션과 (054)779-6077~9. 화산이 빚어낸 시간 속으로 ●성산·오조 지질트레일 7㎞ - 제주 세계자연유산 제주도의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등 12개 명소는 2010년 세계지질공원에 각각 등재됐다.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인 성산일출봉과 성산리, 오조리를 두루 지나는 도보 여행 코스다. 내수면을 따라 7㎞ 남짓 걷는다. 거문오름은 만장굴을 비롯해 여러 용암동굴을 만든 모체다. 예약자에 한해 탐방이 허용된다. 해설사와 함께 신비한 화산지형, 곶자왈 등을 돌아볼 수 있다. 용암동굴인 만장굴엔 용암 유선, 용암 선반, 7.6m짜리 용암 석주가 남아 있다. 제주관광공사 (064)740-6074,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1800-2002.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 日병원서 섬뜩한 눈빛… 덕혜옹주 ‘망국의 한’

    日병원서 섬뜩한 눈빛… 덕혜옹주 ‘망국의 한’

    강제 결혼 소식에 사흘 식음 전폐 저자 “무서워 조현병 앓았던 걸까”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1897~1970·이은)과 그의 하나뿐인 여동생 덕혜옹주(1912~1989)의 운명은 기구했다. “때가 오기까지는 모든 것을 꾹 참고 기다리라”는 아버지 고종(1852~1919)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긴 영친왕은 기쁠 때는 미소를 약간 짓는 데 그쳤고, 슬플 때는 억지로 참다가 밤중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울었다. 영친왕은 말년에 실어증을 앓았고, 조국에 돌아온 뒤로도 7년간 병상에 누워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 영면했다. 누이인 덕혜옹주 역시 원치 않은 결혼을 한 후에 조현병과 실어증을 앓으며 세상을 향한 말을 잊고 타계했다. 4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중인 영화 ‘덕혜옹주’에서 박해일이 연기한 김장한은 1950년 서울신문 도쿄특파원을 지낸 김을한(1905~1992) 기자를 모델로 했다. 영화 흥행 열기를 타고 김을한이 남긴 책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페이퍼로드)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 책은 1970년 한 일간지에 연재된 것을 묶어 이듬해 단행본으로 나왔다가 2010년 39년 만에 재출간됐고, 이번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이 책은 영친왕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와 인연을 맺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버지 고종과 형님 순종, 누이 덕혜옹주, 명성황후, 대비 윤씨, 의친왕과 이우 등 왕손들의 삶은 쓸쓸한 역사의 뒤안길을 보여 준다. 영친왕은 평생을 조국에 죄과를 씻는 심정으로 살았던 것 같다. 당시 제3대 국회가 ‘구황실 재산처리법’을 제정해 고궁과 왕릉 등 구황실의 모든 재산을 국유화하는 조치를 취하자 일본 측은 영친왕에게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부추긴다. “전하, 한국 정부가 전하의 재산을 다 빼앗고 생계비도 드리지 않는 것은 법률 위반이므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꼭 이깁니다.” 그러자 영친왕은 “이것은 우리나라 내부의 일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리고 나는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내 나라 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생각은 없소이다.”(234쪽) 김을한의 아들인 김수동 전 KBS 드라마국장은 책머리에서 고교 1학년 때 영친왕을 직접 만났던 일과 도쿄 인근의 마쓰자와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덕혜옹주를 문안한 뒷얘기를 전한다. 영친왕의 첫인상은 다부진 체격과 온화한 표정의 기품 있는 노신사였지만 정신병원에 있던 덕혜옹주의 말로는 참혹했다. 덕혜옹주는 1946년부터 1962년 1월 귀국할 때까지 마쓰자와 병원에서 지냈다. 김을한의 부인이자 덕혜옹주의 유치원 시절 동급생인 민덕임은 “중년 부인 한 분이 독방 한가운데 앉아 있다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쪽을 돌아보는데,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고 큰 눈에는 광기가 섬뜩할 정도였다”고 덕혜옹주의 모습을 전했다. 덕혜옹주는 퇴계로에 있던 일출 소학교 4학년 때 일본에 끌려간 후 19세가 되던 해 대마도 번주의 아들 소 다케유키 백작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덕혜옹주는 처음 그 말을 듣고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울었지만 일본인 궁녀들은 “정말 시집을 아니 갈 테야”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김을한은 “강제 결혼을 하게 되니 모든 것이 무섭고 구슬퍼서 필경 정신병 환자가 된 것이 아닐까”라고 썼다. 영화에서 덕혜옹주가 조선의 현실을 깨닫고 일제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건 감독이 덕혜옹주를 재창조한 것이자 명백한 허구다. 일본군 육군 중장을 지낸 영친왕이나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낸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에 기여한 기록은 전해지는 게 없다. 망국의 한만 전해져 올 뿐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이름이 뭐길래” 지자체 갈등 ‘봇물’

    “이름이 뭐길래” 지자체 갈등 ‘봇물’

    경기 지역 곳곳에서 공공시설물이나 지역 명칭을 둘러싼 갈등이 잇따른다. 11일 경기도에 따르면 여주시와 국토교통부는 다음달 개통하는 성남∼여주 간 복선전철 57㎞ 구간의 신설 역명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여주시는 여주 구간에 생기는 2개 역 중 능서역 명칭을 설문조사를 통해 세종대왕역으로 확정, 국토부 산하 철도시설공단에 제출했다. 하지만 ‘철도 노선 및 역의 명칭 관리지침’에서 규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러자 여주지역 31개 시민단체가 연합해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추진위는 최근 세종대왕릉 인근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세종대왕역명을 제정하지 않으면 복선전철 개통을 저지하겠다고 국토부에 경고했다. 또 역명 재심의 건의 시민 3만명 서명부를 국토부에 전달했다. 오는 11월 개통하는 제2영동고속도로(경기 광주∼강원 원주)의 여주시 구간 IC 명칭을 놓고 이웃한 흥천면과 금사면 주민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흥천 주민들은 나들목이 흥천면 계신리에 있어 당연히 ‘흥천 IC’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금사면에서는 역사성과 인지도가 높은 ‘이포 IC’를 내세운다. 경기도는 서울외곽순환도로 이름을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로 변경해줄 것을 국토부에 요구했다. 경기도가 서울의 외곽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이유에서다. 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도 건의안을 채택하며 압박했다. 안산시는 상록구 본오3동을 최용신동으로 바꾸려고 한다. 최용신(1909∼1935)은 1931년 안산시 본오동에 학원을 세우고 농촌계몽운동을 펼친 지역의 대표 역사 인물이다. 용인시는 지난해 기흥구 상갈동 경부고속도로 ‘수원IC’ 명칭을 ‘수원·신갈IC’로 변경한 데 이어 최근 기흥구 상하동에서 발원해 북서방향으로 흐르는 하천인 ‘수원천’ 명칭도 ‘상하천’으로 바꿨다. 정찬민 용인시장은 “하천명칭 변경은 취임 초에 고속도로 IC 명칭 변경에 이어 우리 시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잇따른 성과”라며 “앞으로 기흥구 신갈동을 관통하는 오산천도 경기도에 명칭 변경(신갈천이나 기흥천)을 적극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신라 최초의 사찰 ‘흥륜사’ 실제 위치는 아직도 미스터리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신라 최초의 사찰 ‘흥륜사’ 실제 위치는 아직도 미스터리

    국립경주박물관은 2009년 경주공업고등학교 마당에서 나온 유물을 세척하다가 ‘흥’(興) 자가 새겨진 신라시대 수키와 조각을 확인한다. 경주공고가 배수로 공사를 하겠다며 문화재 조사도 없이 파헤친 400상자 분량의 흙더미에서 나온 것이다. ‘사’(寺) 자만 남은 기와 조각도 출토됐다. 신라 최초의 사찰 흥륜사(興輪寺)터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2009년 경주공고 출토 기와에 ‘대왕흥륜사’ 추정 글자 ‘삼국유사’에는 진흥왕이 ‘이 절에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대목이 보인다. 발견된 기와의 아래로 내려쓴 ‘흥’(興) 자 위의 글자는 ‘ㅗ’ 모양만 남았지만 경주박물관은 ‘王’(왕) 자로 추정할 수 있다고 봤다. 흥 자도 오늘날 쓰는 글자와는 조금 다르지만 부여 왕흥사터 기와의 ‘興’ 자와 거의 같은 모습이다. 삼국시대에 쓰던 한자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대왕흥륜사’라고 새긴 기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흥륜사는 법흥왕이 즉위 22년(535) 천경림(天鏡林)의 나무를 베기 시작해 진흥왕이 즉위년(544) 완성했다. 신라 왕실이 중앙집권적 국가를 완성하고자 불교를 국교화하는 과정에서 귀족 세력과 갈등을 빚은 끝에 이차돈의 순교라는 혼란이 빚어진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 중심에 신라 귀족이 신봉하던 토착 신앙의 성지(聖地) 천경림이 있고, 그곳에 세운 대찰(大刹) 흥륜사가 있다. 신라는 불교를 공인하면서 ‘왕이 곧 부처’라는 개념을 체계화한다. 최초의 사찰을 ‘대왕흥륜사’라고 명명한 것부터가 그렇다. ‘흥륜’에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치세를 일으켜 세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전륜성왕은 부처의 법으로 세상을 이상적으로 다스리는 존재를 말한다. 이후 불교로 일사불란해진 신라의 의식 체계는 삼국통일의 기반이 되었으니 흥륜사가 갖는 역사적 의의는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1963년에 이미 사적으로 지정된 ‘경주 흥륜사터’ 경주공고와 흥륜사터의 관계에 다소 혼란스러운 독자도 없지 않을 것이다. ‘경주 흥륜사터’는 이미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보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흥륜사터는 경주공고에서 남동쪽으로 700~800m 떨어진 곳에 있다. 1980년대 흥륜사라는 이름의 새 절이 들어섰다. 아직도 규모 있는 절의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원본이 경주박물관에 있는 이차돈의 순교비를 마당에 복원해 놓았다. 흥륜사의 법등(法燈)을 잇고 있는 것으로 자처하고 있다는 뜻이다. ●1976년 ‘영묘사’ 이름 새겨진 기와 출토… 미궁으로 1910년대 일본인들은 경주지역 절터를 조사하면서 지금의 사적지를 흥륜사터로 추정했다. 당시에도 경주 사람들은 일대를 ‘흥륜원’이나 ‘흥륜들’로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1976년 영묘사(令妙寺)라는 절 이름이 새겨진 기와조각 5점이 출토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선덕여왕이 창건했다는 영묘사는 흥륜사와 더불어 전불시대(前佛時代) 칠처가람(七處伽藍)의 하나다. 철처가람은 신라가 불국토(佛國土)가 될 수밖에 없음을 상징하는 일곱 절을 뜻한다. 영묘사터 발견은 반가운 성과였지만 흥륜사터의 실제 위치는 미궁에 빠졌다. 학계는 이후 경주공고 자리를 유력한 흥륜사터로 보기 시작했다. 우선 ‘미추왕릉 서쪽이자 금교의 동쪽’이라는 ‘삼국유사’의 내용과 부합한다. 금교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경주공고 서쪽으로 형산강이 흐르니 다리가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 고려 충렬왕 33년(1307) 간행된 ‘호산록’의 ‘흥륜사대종명병서’(興輪寺大鐘銘幷序)에는 ‘1244년 이전 불타버린 절터에 다시 불전을 세우고 범종을 주조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경주공고에서는 신라시대 절터의 흔적과 함께 고려시대 유구도 노출됐다. ●‘칠처가람’의 하나인 영흥사터일 가능성도 여전 신라시대 지금의 형산강으로 가로막힌 서라벌의 서쪽지역은 수풀이 빽빽하게 들어찬 저습지였을 것이다. 천경림은 영묘사터와 경주공고를 모두 포괄할 만큼 범위가 넓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주박물관이 확인한 경주공고 출토 유물 가운데는 ‘寺’(사) 자 바로 앞 글자가 ‘興’(흥)일 가능성이 있는 암키와도 있었다. 경주공고 자리가 흥륜사일 수도 있지만, 역시 칠처가람의 하나인 영흥사(永興寺)터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뜻이다. 발굴 조사는 잊힌 역사를 재구성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는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dcsuh@seoul.co.kr
  •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1주년 백서 발간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1주년 백서 발간

    백제역사유적지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주년 백서가 발간됐다. 백제세계유산센터는 1일 ‘2015년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 전 인류의 유산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276쪽짜리 백서를 펴냈다고 밝혔다. 센터는 등재 과정과 노하우를 담아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 중인 다른 자치단체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발간했다고 했다. 백서는 세계유산의 이해, 잠정목록 등재와 추진단 활동, 등재신청서 작성과 제출, 등재 심사, 백제역사유적지구의 가치 등 8장으로 이뤄졌다. 센터 관계자는 “국내에서 12번째로 세계유산에 등재됐지만 이 과정을 백서로 발간한 것은 매우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세계유산 등재는 1994년 공주 무령왕릉(송산리고분군)이 잠정목록에 오르며 시작됐다. 2010년 충남 공주·부여와 전북 익산의 유적이 각각 잠정목록이 됐으나 이듬해 3개 시·군을 묶어 백제역사유적지구로 통합했다. 이어 2012년 백제세계유산센터가 출범했다. 3개 시·군과 충남·전북도 공무원 10명으로 구성된 센터가 설립되면서 지자체가 힘을 합쳐 주도적으로 등재를 추진했다. 세계유산 등재 후 8개 백제역사유적지구에는 방문객이 2배 넘게 늘었고, 전남 순천시(낙안읍성) 등이 준비과정을 배우려고 방문하기도 했다. 센터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전국의 지자체는 물론 중앙부처 등에도 백서를 배포해 백제를 적극 알릴 참이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청량하다, 고도에 부는 한옥 바람

    청량하다, 고도에 부는 한옥 바람

    지난 20일 충남 공주 송산마을. 한옥과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옛집이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곳곳에서 한옥 신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박연수 공주시 고도육성팀장은 “예전 이 마을은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는 죽은 곳이었는데, 한옥 지원 사업으로 생기를 되찾고 있다”고 했다. ●생기 되찾은 공주 송산마을… 에어컨 없어도 시원 송산마을은 무령왕릉을 비롯해 백제 웅진 도읍기의 왕실 무덤 7기가 모여 있는 ‘송산리 고분군’에 인접해 있어 40년 넘게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다. 집이 주변 도로보다 낮아 비만 오면 침수되기 일쑤였다.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펄펄 끓었다. 집이 허물어져도 고칠 수 없었고, 증개축을 하지 못해 겨울 추위와 여름 무더위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그랬던 마을이 최근 들어 확 바뀌기 시작했다. 완공돼 주민이 살고 있는 한 한옥으로 들어가 봤다. 푹푹 찌는 바깥과 달리 시원했다. 에어컨, 선풍기 같은 냉방 장치가 하나도 없는데도 청량한 기운이 감돌았다. 박대수(56)씨는 “정부에서 한옥과 담장 신축에 1억 2000만원을 지원해 준다고 해서 부모님 편하게 사시라고 대출을 조금 받아 지었다”며 “옛날엔 문화재 인근 마을이라 집을 고치지도 새로 짓지도 못했는데, 이젠 정부에서 집 지으라고 지원금까지 주니 주민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1억원 지원받은 공터, 고풍스런 체험형 숙소 변신 송산마을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떨어진 공산성 인근 지역도 한옥 건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곳은 식당과 숙박시설 밀집 지역이라 송산마을보다 규모가 큰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비용 관계로 신축을 하지 못한 식당이나 숙박업소는 정부로부터 3000만원을 지원받아 외관을 기와로 고풍스럽게 꾸몄다.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공터에 한옥 체험 게스트하우스를 지은 신영기(48)씨도 정부로부터 1억원을 지원받았다. 1층은 살림집, 2층은 숙박시설이다. 신씨는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살다 한옥 지원 사업 얘길 듣고 이곳으로 옮겨 왔다. 아이들이 전통을 체감하며 지낼 수 있어 좋다. 주말엔 관광객들로 2층 방이 꽉 찬다”고 했다. 송산마을과 공산성 인근에 한옥 7채를 짓고 있는 한옥전문업체 한옥애 공병곤(56) 대표는 “2018년까지 한옥 신축 신청이 꽉 차 있다. 다른 업체 3~4곳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하다. 지금은 한옥이 오밀조밀 모여 있지 않은데 2년 뒤쯤엔 자연스럽게 한옥마을이 조성될 것”이라고 했다. 경주·공주·부여·익산 등 신라와 백제의 고도(古都)가 옛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시작된 한옥 지원 사업이 올 들어 본궤도에 오르면서 죽은 마을들이 생명력을 되찾고 있다. ‘고도 보존’에서 ‘고도 보존 및 육성’으로 정책을 바꾼 점과 1억원 지원책이 주효했다. ●2018년까지 경주·공주·부여·익산 각 100채 신축 지난해 시작된 고도 한옥 지원은 2018년까지 4년간 479억원을 투입해 주거와 가로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고도별 한옥 100채씩을 짓는 게 목표다. 한옥 신축 1억원, 가로변 건축물 외관 개선 사업 3000만원, 담장 및 대문 2000만원, 간판 200만원 등을 보조한다. 지원 대상 지역은 경주 인왕동과 황남동(35만 7559㎡), 부여 쌍북1리(8만 1310㎡), 공주 송산리 고분군과 정지산 주변(26만 6863㎡), 익산 금마 고도지구 내 일원(37만 92㎡)으로, 문화재 보호 구역으로 지정돼 수십 년간 개발을 하지 못한 지역들이다. 김삼기 문화재청 고도보존육성과장은 “고도 주변 주민들 여론조사를 했는데 주거 환경 개선 의견이 제일 많았다”며 “2004년 3월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고도 주변 지역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이 가능해진 데 이어 지난해 예산이 마련되며 한옥 신축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민들 한옥 인식 긍정적으로 변화… 올 사업 늘어 4개 고도 한옥 신축은 지난해 30채에서 올 상반기에만 50채로 급증했다(표 참고). 공주의 한옥 신축이 가장 두드러진다. 지난해 16채로 4개 고도 중 가장 많은 데 이어 올 상반기에만 19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자체 공무원들의 노력 덕택이다. 담당 공무원들은 지난해 1월부터 고도 지역 내 전 가구를 방문하며 한옥 지원 사업을 홍보했다. 처음엔 주민들이 집을 짓는 데 정부에서 1억원을 지원해 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한옥은 살기 불편하다는 왜곡된 정보도 떠돌았다. 이정열 공주시 고도육성팀 주무관은 “수십 년간 규제만 해온 관에 대한 불신이 컸고, 그런 정부에서 큰 금액을 지원해 줄 리 없다는 생각이 팽배했다”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불신과 오해를 풀었다”고 했다. 이수정 문화재청 고도보존육성과 학예연구사는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은 기존 규제 중심 보존·관리에서 벗어나 문화재로 인한 직간접적인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획기적인 정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주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씨줄날줄] 조선통신사 배 복원/박홍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조선통신사 배 복원/박홍기 논설위원

    통신사(通信使)는 조선시대 왕이 일본에 파견한 공식 외교사절이다. ‘믿음으로 통한다’는 통신은 외교의 다른 말이다. 통신사가 처음 일본 교토에 있던 막부(幕府)에 갔다 온 것은 1429년 세종 11년의 일이다. 1590년 선조 23년 일본의 침략 의도를 살피려고 갔던 사절도 통신사다. 통신정사 황윤길은 “내침에 대비해야”, 부사 김성일은 “그런 정상은 발견하지 못해”라고 보고했다. 정반대다. 선조는 김성일의 견해를 채택했다. 그 결과 임진왜란(1592~1598)이라는 전란을 치렀다. 외교 단절은 쉽지 않다. 이해관계와 맞물려서다. 조선도 그랬다. 철천지원수 같은 일본과 모든 교류를 끊고 싶었지만 결코 단절이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본이 먼저 국교 회복을 요구했다. 임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가 죽자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가 체제 구축을 위해서다. 대륙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조선이 필요했다. 조선도 일본의 정세를 파악해야 했다. 국교 회복에는 대의명분이 있어야 했다. 사명대사가 적을 정탐하는 사절(探敵使)로 일본을 찾아 도쿠가와를 만났다. 전쟁을 다시 일으키지 않고 조선인을 돌려보내겠다는 뜻을 확인했다. 조선은 일본의 국서(國書)와 임란 때 왕릉을 파헤친 범인(犯陵賊)의 인도도 요구했다. 결국 국서가 진짜인지, 범릉적이 진범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지만 약속이 이행되자 교류 재개를 결단했다. 임란이 끝난 지 10년째 되던 1607년 선조 40년 통신사가 다시 일본 땅을 밟았다. 한·일 양국이 요즘 말하는 조선통신사의 시작이다. 이후 1811년 순조 11년까지 200년 남짓 12차례에 걸쳐 통신사절단이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은 조선에 일본 국왕사(國王使)라는 사절을 보냈다. 통신사절단은 초기에 국정 탐색에 역점을 두다 1636년 인조 14년부터는 막부 쇼군(將軍)의 즉위나 그의 후계자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선린 우호·문화 교류 사절단의 성격을 띠었다. 조선통신사는 한양에서 일본 수도 에도(현 도쿄)까지 왕복하는 데 1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규모는 대략 400~500명이었다. 부산에서 길이 34m, 너비 9.5m, 높이 3m에다 바닥이 평탄한 구조의 평저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 쓰시마(對馬)번에서는 1500명 정도가 호위에 나섰다. 내륙에 닿은 뒤 다시 배를 타거나 걸었다. 멀고 먼 여정이었다. 그러나 행렬은 장관이었다. 한·일 양국이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 통신사절단이 끊기고 100년이 지나 조선은 일본에 강제 병합됐다. 다시 105년이나 지난 현재도 일본의 그릇된 역사 인식 탓에 관계는 매끄럽지 못하다. 문화재청이 2018년까지 통신사절단이 탄 배를 원형대로 복원하기로 했다. 제작될 배가 한·일 양국의 얽힌 매듭을 푸는 매개체가 되길 기대한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열린세상] 광해군의 길, 인조의 길/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열린세상] 광해군의 길, 인조의 길/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광개토대왕비문’에서 고구려인들이 시조 추모왕을 천제지자(天帝之子), 즉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자국을 천하의 중심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수(隋)·당(唐)과 격렬하게 충돌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백제 역시 1971년 공주에서 발견된 무령왕릉 지석에 자국 임금의 죽음을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붕(崩)으로 표현했다. 이런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은 비단 이들 두 나라가 갖고 있던 광활한 대륙과 일본 열도라는 영토의 상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이 천하의 중심, 즉 주인이란 역사관까지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이후 들어선 여러 나라, 특히 조선은 북벌을 준비하던 정도전을 제거한 이후 명나라의 제후국을 자처했다. 내용상으로는 왕위 계승권이나 인사권, 군사권, 외교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독립국이었지만 형식상으로는 중국의 조공 체제에 들어가는 제후국이 된 것이다. 이는 중원의 통일제국과 직접 충돌을 막고 국체를 보존하려는 외교정책의 산물이었다. 중국과 조공 체제를 맺음으로써 밖으로는 국체를 보존하고 안으로는 왕권의 안정을 꾀하려는 것이었다. 문제는 중원의 주인이 교체되는 격변기였다. 북방 기마민족이 흥기할 경우 기존 제국과 신흥 강국 사이에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후금(청)이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임란 때의 동맹국 명(明)과 신흥 제국 청(淸) 중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했을까. 광해군이 선택한 것은 등거리 외교였다. 명나라가 이기면 기존 외교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청나라가 이기면 새로 형성되는 청나라 중심의 조공 체제에 들어가면 된다는 판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광해군 11년(1619) 명나라가 조선군 파병을 요구했다. 야당인 서인들은 물론 여당인 북인들까지 파병에 동의했다. 그러나 광해군의 생각은 달랐다. 광해군은 “급히 수천 군병을 뽑아 의주(義州) 등지에 대기시켜 놓고 기각(?角·협격)처럼 성원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에 적합할 듯하다”라고 주장했다. 군사를 압록강까지만 보내 파견하는 시늉을 하는 한편 혹시 모를 후금의 남하에도 대비하겠다는 양수겸장(兩手兼將)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 방안이 여야 모두에 의해 거부되자 광해군은 강홍립(姜弘立)에게 1만 3000여 군사를 주어 압록강을 건너게 했다. 강홍립은 무과(武科)가 아니라 문과(文科) 출신이었다. 게다가 어전통사(御前通事)를 겸할 정도로 중국어에 능했다. 광해군은 파병을 외교의 연장으로 보았던 것이다. 강홍립은 청나라 임금에게 조선의 현실을 설명했고, 청도 조선이 처한 현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광해군의 등거리 외교를 상국 명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지은 서인들이 인조반정이란 이름의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서인 쿠데타 정권은 광해군의 현실 위주 외교정책을 숭명반청(崇明反淸)이란 이념 문제로 변질시켰다. 광해군은 청나라에 쫓겨 조선으로 들어온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1567~1629)을 해도(海島)에 거처하게 해서 청나라의 반발을 누그러뜨렸다. 반면 인조는 즉위 직후 모문룡의 차관 응시태(應時泰)를 명정전(明政殿)에서 접견하고 군마와 식량을 대주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인조 5년(1627·정묘년) 청나라가 정묘호란을 일으킨 데는 인조 정권이 모문룡을 후원하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됐다. 이후에도 조선은 친명 일변도의 숭명반청이란 이념적 외교정책을 고수하다가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을 맞이했다. 정묘·병자호란은 외교 문제를 이념으로 변질시킨 서인 정권이 자초한 전란이자 광해군이 임금 자리에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불필요한 비극이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도 비슷하다. 미국이 명나라라면 중국은 청에 비유할 수도 있다. 미국이 명처럼 몰락하지는 않겠지만 과거 같은 팍스아메리카 체제는 더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조 정권이 외교 문제를 이념 문제로 변질시키는 바람에 발생했던 비극을 재연해서는 안 된다. 광해군의 길을 걸을 것인지, 인조의 길을 걸을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국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일왕 밤늦게 찾은 두 미소… 한·일 반가사유상 1400년 만에 조우

    일왕 밤늦게 찾은 두 미소… 한·일 반가사유상 1400년 만에 조우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특별 전시 중인 한·일 두 나라의 반가사유상 두 점을 보기 위해 4일 밤늦게 도쿄국립박물관을 찾았다. 아키히토 일왕 내외는 이날 일반 관람시간이 끝난 뒤 저녁 8시부터 미야타 료헤이 일본 문화청장, 도쿄국립박물관 관계자 등의 영접을 받으며 1층에 마련된 특별 전시실을 돌아봤다. ‘미소 짓는 부처님:두 반가사유상’이란 제목의 특별전에는 6세기 작품인 한국의 국보 제78호 금동 반가사유상과 7세기 작품으로 일본 국보인 나라(良)의 주구지 소장 목조 반가사유상이 서로 마주 보게 전시돼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50여분간 박물관에 머물면서 관계자들로부터 전시회 설명을 듣고 특별전 추진위원장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 주일 한국대사관 이희섭 대사대리 등과 환담을 했다. 특히 10여분 동안 두 불상을 자세히 살피고 비교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양국 수교 50주년을 기념한 불상 전시는 지난달 한국국립중앙박물관에서 먼저 열렸다. 이어 많은 일본인의 관심 속에서 지난달 21일부터 이곳에서 열린 전시회는 다음달 10일까지 계속된다. 일본 언론들은 ‘1400년 만의 조우’란 표현을 쓰면서 이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도쿄의 외교가에서는 일왕 부부의 특별전 행차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만 82세의 고령인 아키히토 일왕과 81세인 왕비가 밤늦게 일반 전시가 끝난 뒤 찾은 것에서 한국에 대한 우호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위안부 합의 전까지 최악의 상태로 흔들리던 두 나라 관계가 회복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평소 한국과의 친근감을 여러 차례 피력해 왔다. 지난달 이임 인사차 황거를 찾은 유흥수 당시 주일 한국대사에게 “내 몸에는 한반도의 혈통이 흐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아키히토 일왕은 2001년 12월 18일 기자회견에서는 “간무(桓武) 천황(제50대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다”며 “한국과의 깊은 연을 느낀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또 2004년 8월에는 당숙인 아사카노미야를 충남 공주의 무령왕릉에서 제사를 올리게 한 적도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인사]

    ■미래창조과학부 △융합신산업과장 이재형△정보화기획과장 최준호△정보보호지원과장 박준국△디지털방송정책과장 최승만△융합기술과장 최미정◇국립전파연구원△지원과장 최은호△전파환경안전과장 김신겸◇중앙전파관리소△지원과장 최현호△서울전파관리소 이용자보호과장 유성완△강릉전파관리소장 정규연△대구전파관리소장 이상철 ■국민권익위원회 △기획조정실장 권태성 ■원자력안전위원회 △생활방사선안전과장 배종근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기능식품정책과장 홍헌우△식품정책조정과장 한상배△식품관리총괄과장 김명호◇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연구기획조정과장 김미정△식품위해평가과장 구용의△첨가물포장과장 김미경△영양기능연구팀장 윤혜성△화장품심사과장 최보경△생물의약품연구과장 정자영△생약연구과장 이효민△독성연구과장 손수정△특수독성과장 이종권◇지방청△서울 수입관리과장 장경애△서울 유해물질분석과장 김도훈△부산 운영지원과장 최숙자△부산 식품안전관리과장 정의한△부산 수입관리과장 송성옥△부산 시험분석센터장 강태석△경인 식품안전관리과장 송인환△경인 의료제품안전과장 이윤제△경인 수입관리과장 홍영표△대구 운영지원과장 이제선 ■문화재청 △차장 박영근△기획조정관 이경훈△문화재정책국장 최종덕△운영지원과장 이종희△무형문화재과장 이길배△조선왕릉관리소장 권석주△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장 곽유석 ■농촌진흥청 ◇고위공무원 승진△기획조정관 박정승△국립농업과학원 농산물안전성부장 김욱한△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장 김행란△경기도농업기술원장 김순재◇과장급 <전보>△운영지원과장 전경성△기획재정담당관 이상호△국립농업과학원 운영지원과장 김종배△국립식량과학원 수확후이용과장 김선림<승진>△고객지원담당관 오관석△국립식량과학원 작물기초기반과장 박기도△국립원예특작과학원 기획조정과장 이용민◇서기관 승진△운영지원과 김상학△기획재정담당관실 심규선△역량개발과 이한범△국립축산과학원 가축개량평가과 김선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 전보△통일정책자문국장 김점준△기획조정관실 운영지원담당관 조희래 ■기초과학연구원(IBS) △순수물리이론연구단 공동연구단장 이수종△분자분광학 및 동력학연구단 부연구단장 최원식△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연구단 그룹리더 유종희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 정구봉△필드로봇연구본부장 최영호△경북의료서비스 로봇융합지원센터장 민정탁 ■한국재정정보원 △경영본부장 황순구△디브레인본부장 윤유석 ■에너지경제신문 ◇부국장급△경제산업부장 고현석 ■고려대 △공과대학장 겸 공학대학원장 겸 테크노콤플렉스원장 정진택△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겸 그린스쿨대학원장 이관영 ■DGIST △행정처장 한주탁△기획조정실장 한상철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폐센터장 윤호일△관절센터장 염진섭△소화기센터장 김나영△암센터장 김형호△내과장 이종석△외과장 이태승△흉부외과장 김관민△성형외과장 허찬영△소아청소년과장 최창원△피부과장 윤상웅△신경과장 겸 권역심뇌혈관센터장 배희준△가정의학과장 이기헌△수술부장 도상환△중환자진료부장 임청△특수검사부장 조구영△감염관리실장 겸 감염내과분과장 김의석△방사선안전관리실장 이원우△혈액종양내과분과장 이근욱△내분비내과분과장 임수△신장내과분과장 진호준 ■단국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 조종태△기획조정실장 이명용 ■ING생명 ◇부서장 승진△투자관리팀장(부장) 이애랑 ■메트라이프생명 ◇상무 선임△대표계리인 함승우◇상무 승진△커스터머 마케팅/경영전략 담당 한영호 ■KTB투자증권 △경영혁신실장 안태우△경영혁신실 전무 김정수△커뮤니케이션실장 장정욱 ■하나금융투자 △자본시장본부장 심재만 ■한화손해보험 △혁신사무국장 변동헌△신채널사업본부장 최기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컨슈머사업본부 부사장 정성미△서비스사업본부 전무 박동배△공공사업본부 상무 김현정
  • 95조 경제규모 울산·경주·포항 해오름 동맹 출범

    95조원 경제규모의 울산·경주·포항 도시공동체인 ‘해오름 동맹’이 출범했다. 3개 도시는 역사·공간적으로 밀접한데다 포항의 ‘소재’·경주의 ‘부품’·울산의 ‘최종재’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 앞으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이들 3개 도시는 울산~포항 고속도로 완전 개통을 맞아 30일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해오름 동맹 상생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30분대 생활권이 된 해오름 동맹은 인구 200만명, 경제규모 95조원의 환동해권 최대 도시연합이다. 울산의 자동차·조선·화학, 경주의 문화관광산업, 포항의 철강 등 우리나라 대표산업이 자리 잡아 국내총생산의 6.6%를 차지한다. 해오름 동맹은 앞으로 ▲산업, 연구·개발(R&D) ▲도시 인프라 ▲문화·교류사업 3대 분야 중심으로 다양한 공동사업을 추진한다. 우선 울산과학기술원과 포스텍, 울산·포항테크노파크, 창조경제센터를 연계한 기자재 공동활용·연구와 기술사업화 협력 방안 구체화, 경주 양성자가속기와 포항 방사광가속기 활용한 신소재 연구·개발, 소재산업 육성에 노력한다. 환동해권 교류 활성화를 위한 연계항만 네트워크와 첨단 항만 물류시스템 구축, 항만 연계 교통망 확충에도 협력한다. 또 울산 간절곶·포항 호미곶·경주 문무대왕릉 해돋이, 해양레포츠, 해파랑길, 영남알프스, 태화강, 형산강 등과 포항제철소, 울산 현대자동차·석유화학단지 등 산업을 관광 자원화한다. 울산 고래·장미축제와 포항 국제불빛축제, 경주 신라문화제 등 대표축제의 교류도 강화한다. 이와 함께 울산의 산재모병원 건립, 포항의 영일만대교 건설, 경주의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특별법 제정 등 지역 현안사업에도 힘을 보탠다. 이를 위해 다음 달 울산발전연구원과 대구·경북연구원에 ‘동해남부권 상생 발전전략 연구 용역’을 의뢰해 여건 분석과 부문별 발전전략을 마련한다. 한편 울산~경주~포항 53.7㎞를 연결하는 왕복 4차선의 울산~포항 고속도로가 이날 개통됐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北 “고려 9대·10대 왕릉 발굴”

    북한 개성에서 고려시대 왕릉 2기가 새로 발굴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리창진 박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리창진은 “왕릉들은 왕건 왕릉이 자리 잡은 개성시 해선리 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4㎞ 정도 떨어진 매봉 남쪽 경사면에 250m 간격을 두고 동서로 나란히 놓여 있다”며 “무덤들의 외부 건축 양식은 고려 태조 왕건 왕릉을 비롯한 고려 왕릉에서만 볼 수 있는 건축양식으로 되어 있다. 고고학적 발굴 자료와 ‘고려사’ 옛 문헌 기록에 기초해 새로 발굴한 ‘1릉’과 ‘2릉’을 각각 9대 왕 덕종과 10대 왕 정종이 묻힌 숙릉과 주릉으로 확증했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울시의회 이혜경의원 “한복 착용 장려-지원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

    서울시의회 이혜경의원 “한복 착용 장려-지원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

    서울시의회 이혜경 의원(새누리, 중구2)이 대표발의한 「서울특별시 한복착용 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6월 27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 조례안은 2013년부터 한복을 착용하면 서울 4대 고궁, 종묘, 조선왕릉 등에 무료입장이 가능해지면서 외국인들과 10대 · 20대 젊은 세대에게도 한복착용이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매김하였으나, 이러한 한복 열풍이 한복 구매로는 이어지지 않고 한복을 코스프레 정도로만 여기는 풍토를 안타까워하며 시 차원에서 한복착용을 적극 장려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해 한복의 생산 및 보급을 위한 산업을 육성하고 이에 노력하는 단체 등에 예산을 지원하는 등의 실질적인 지원을 하고자 발의했다. 이혜경의원은 “우리 전통문화의 중심인 한복이 고유성을 회복하고 현대사회의 시대적 요구와 흐름에 맞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도적 마련이 시급하며, 이 조례를 통해 더 이상 한복이 명절 및 예식에만 입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옷이라는 생각에서 탈피하여 자랑스러운 우리의 복식 문화로 거듭나고 주변에서 쉽게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현재 한복착용 관련 조례가 인천광역시, 전라북도, 경기도, 대구광역시, 서울 은평구에서 제정되어 있으나 조례 제정 후 사업계획이나 방침서도 없고 실질적인 한복착용을 장려하기 위한 노력은 아직 미비한 것으로 나타나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한복착용 장려 및 지원정책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화려한 왕릉, 소박한 부장품/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화려한 왕릉, 소박한 부장품/서동철 논설위원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무덤이 갖는 중요성은 독보적이다. 특히 시대가 올라갈수록 무덤의 존재는 더욱더 중요해진다. 갖가지 벽화를 남긴 고구려 고분이 없었다면 삼국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무령왕릉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백제사를 규명하는 작업도 지금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무덤이 중요한 것은 껴묻거리의 존재 때문이다. 전통 시대 가치관은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무덤을 넘보는 것은 벼락 맞을 일이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천년도 넘게 아무 일 없었던 무덤도 성치 않게 됐다. 부장품이 화려할수록 돈이 됐으니 도굴꾼도 들끓었다. 불행한 일이다. 무령왕릉이 중요한 것도 도굴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4600점에 이른다. 국립공주박물관이 새로 세워진 것도 무령왕릉 출토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서였다.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 주는 지석(誌石)과 신(神)에게 땅을 사들여 장사 지내는 것을 상징하는 양나라 동전 오수전(五銖錢), 그리고 무덤에 나쁜 기운이 침입하지 않도록 하는 석수(石獸)의 존재는 당시 장례 문화와 정신세계를 그대로 알 수 있게 했다. 고구려·백제와 비교해 신라 무덤에서 상대적으로 화려한 껴묻거리가 다량으로 출토된 것은 장례 문화가 달랐다기보다는 독특한 무덤 구조가 한몫했을 것이다. 신라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은 도굴이 쉽지 않았다. 무령왕릉은 1971년 배수로를 파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존재 자체를 몰라 도굴을 피한 것이다. 불교국가 고려는 내세(世)를 중요시하는 종교적 특성상 역시 불교국가였던 신라와 다름없이 부장품에 적지 않게 신경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껴묻거리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무덤일수록 도굴꾼의 기세도 드셌다. 오늘날 국보급 고려청자의 대부분은 사실상 고려왕릉의 부장품으로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이미 고려 후기부터 도굴이 횡행했다고 한다. 반면 조선시대 왕릉은 대부분 도굴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선왕실 무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대거 등재됐을 만큼 풍수지리적으로 의미 있는 곳에 아름답고 화려하게 조성됐다. 하지만 껴묻거리는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소박했기 때문이다. 성리학을 국시로 표방한 조선은 ‘주자가례’를 비롯한 유교 경전의 가르침을 성실하게 따랐다. 어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막한 ‘조선왕릉, 왕실의 영혼을 담다’ 특별전에서는 화려한 왕릉, 소박한 명기(明器)의 양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명기란 죽은 자가 사후 세계에서 쓸 생활용품을 무덤에 넣은 것이다. 조선 왕실의 장례 문화 전반과 함께 정조 초장지(初葬地)에서 나온 왕실 명기의 실체를 보는 재미가 크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한국의 문화유산’ 마지막 기념주화 공개

    ‘한국의 문화유산’ 마지막 기념주화 공개

    1970년부터 역사적 사건이나 국가적 행사 때마다 발행된 기념주화는 화폐 콜렉터 뿐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도 매번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 뱅킹, 가상캐쉬, 신용카드 사용의 급증으로 현금 사용은 점차 줄어들고 있으나 화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기념주화는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해를 더할수록 그 가치는 배가 된다. 국민들의 관심 속 한국조폐공사와 한국은행이 진행하고 있는 ‘문화유산’ 시리즈 기념주화 발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우리 문화유산을 주제로 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지난 6월 14일 7년 간 이어온 시리즈의 마지막 기념주화의 실물이 공개됐다. 인류의 세월을 반영하는 ‘고창·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과 500년 왕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조선왕릉’이 마지막 시리즈의 주제로 오는 8월 2일 발행을 앞두고 있으며, 예약접수는 오는 6월 27일까지 진행된다. 이번에 발행되는 기념화폐의 주인공인 ‘고창·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과 ‘조선왕릉’은 전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역사의 산물이다. 전 세계적으로 특별한 가치를 담고 있는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약 4만기 정도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많이 밀집·분포되어 있으며, 양식 또한 매우 다양해 인류의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왕릉의 경우 500년 왕조의 무덤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다른 나라와 달리 자연을 중시하던 조상들의 영향으로 자연과의 조화가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다. 이번 기념주화는 기존보다 발행량을 축소 발행해 구매자의 소장 가치를 높이고, 중량은 19g에서 21g으로 늘렸다. 은 99.9%의 무결점 주화인 프루프급을 사용하였으며, 단품은 6만원, 2종 세트의 경우 12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조폐공사 블로그 및 홈페이지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념주화의 발행 뿐 아니라 관련된 역사와 문화재를 알리기 위해 국립 고궁박물관에서는 왕실 부장품 전시 등 조선왕릉 특별전을 오는 6월 21일부터 8월 28일 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더불어 한국화폐공사와 문화재청은 블로그 코너 ‘아빠가 해설해주는 우리 문화재’를 공동 운영하며, 이를 통해 왕릉과 고인돌 유적을 여행하는 중 자녀에게 들려주면 유익할 역사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국민의 자긍심 고취와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선왕실 ‘재궁’·정조의 ‘명기’ 첫 공개

    조선왕실 ‘재궁’·정조의 ‘명기’ 첫 공개

    조선시대 왕의 시신을 안치하던 관인 재궁(梓宮)과 왕과 함께 묻힌 부장품인 명기(明器)가 최초로 공개된다. 21일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하는 특별전 ‘조선왕릉, 왕실의 영혼을 담다’를 통해서다.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릉관리소 등 문화재청 소속 3개 기관 공동 주최로 오는 8월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은 조선왕릉을 종합적·입체적으로 조망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는 4부로 구성되며 관련 유물 200여점이 선보인다. 1부 ‘조선왕릉, 세우다’에선 국장(國葬)에서 왕릉 건설까지의 과정을 의궤, 국장에 사용된 물품, 왕릉 터의 입지 여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산릉도(山陵圖), 왕릉 건설에 대한 내용이 담긴 산릉도감(山陵都監)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2부 ‘조선왕릉, 정하다’에선 왕릉의 내·외부를 구성하는 요소와 제도를 소개한다. 특히 정조 ‘구릉지 명기’(舊陵地 明器)와 조선왕실 재궁이 처음으로 전시된다. 3부 ‘조선왕릉, 모시다’에선 왕릉에서 행해진 제례뿐 아니라 왕릉으로 향하는 왕의 행차인 능행(陵幸), 사후 왕릉으로 모시는 의례인 봉릉(封陵), 왕릉을 옮기는 의례인 천릉(遷陵) 등 왕릉과 관련된 여러 의례를 유물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4부 ‘조선왕릉, 돌보다’에선 왕릉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록한 ‘왕릉지’(王陵誌) 등을 접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에선 조선왕릉, 조선왕실에 관한 각종 서적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조선왕실 아카이브 존’과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태조 건원릉을 볼 수 있는 ‘가상현실 체험 코너’도 설치된다. 조선왕릉은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가 묻힌 무덤으로 역사성과 문화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조선왕릉은 이전 왕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과 새 왕조의 철학을 결합해 독특하고도 새로운 양식의 왕릉 모습을 제도로 정착시켰다”며 “조선왕릉엔 500년 조선 역사의 건축, 조경, 예술, 제도, 의례 등 유·무형의 요소가 모두 어우러져 있다”고 설명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기념주화로 새긴 우리 문화유산

    기념주화로 새긴 우리 문화유산

    1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에서 열린 ‘한국의 문화유산’ 기념주화 2종 실물 공개 행사에서 모델들이 주화를 소개하고 있다. 오는 8월 2일 발행될 기념주화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 유적과 조선왕릉을 새겼다. 지름 33㎜, 중량 21g의 원형 은화로 액면가는 5만원이다. 연합뉴스
  • 첫 기념주화, 南北 자존심 싸움서 탄생했다

    첫 기념주화, 南北 자존심 싸움서 탄생했다

    서울 중구 소공동 서울중앙우체국과 한국은행 사이에는 ‘아날로그의 집결지’가 있다. 과거 화폐와 우표, LP음반, 골동품 등 옛것들의 수집상이 한데 모여 있는 회현지하상가다. 이곳이 얼마 전 반가운 소식에 들썩였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맞아 국내 최초의 ‘기념은행권’(기념지폐)이 나온다는 뉴스였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기념주화(동전)만 있었지 기념지폐는 발행된 적이 없었다. 기념지폐는 일러야 내년 말에나 볼 수 있지만 화폐 수집인들의 기대는 이미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기념화폐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봤다. 올해 발행 예정분을 포함해 한국은행이 그동안 선보인 기념주화는 총 50차례, 152종에 이른다. 최초는 1971년 3월 2일 발행된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다. 모두 12종인 이 기념주화는 앞면에 세종대왕, 선덕여왕, 이순신, 유관순 등 역사적 인물과 신라 금관, 남대문, 석굴암 보살입상, 고려청자 등 문화재가 새겨졌다. 첫 기념주화의 탄생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의 공이 컸다. 한은이 지난해 출간한 ‘우리나라의 화폐’는 기념주화 발행을 추진하게 된 계기에 대해 ‘북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기념주화를 발행한다는 정보가 입수되면서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호기롭게 첫 번째 기념주화 발행이 결정됐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기념주화 제조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최초의 기념주화 탄생지는 외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반만년역사’를 주조해 낸 곳은 이탈리아의 이탈캄비오라는 회사였다. 시중에 유통된 것이 아닌 데다 소량만 발행됐던 까닭에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는 현재 화폐 수집인 사이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 화폐 수집상 최명근(49)씨는 “기념주화의 가격은 무엇보다 희귀성에 좌우되는데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의 경우 대략 2년에 한번 판매자가 나올까 말까 하는 수준”이라며 “그나마 국내에는 거의 없고 해외에서나 매물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최씨도 독일에서 구입했는데, 세트에 3500만~4500만원을 호가한다. 이에 반해 ‘제24회 서울올림픽 기념주화’나 ‘대한민국 제5공화국 기념주화’ 등은 수집인들 사이에 인기가 없다. 서울올림픽 주화는 유치를 기념하기 위해 2차례(1982~1983년),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5차례(1987~1988년) 등 모두 7차례에 걸쳐 1152만개나 발행됐다. 제5공화국 주화는 700만 8000개가 찍혀 나왔다. 회현동의 한 화폐 수집상은 “서울올림픽 기념주화나 제5공화국 기념주화는 웬만한 가정에 하나씩 있을 정도여서 전문 수집가들은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발행 당시의 액면가격이나 현재 유통되는 가격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했다. 2006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기념주화’는 여러 면에서 최초의 시도가 많았던 주화다. 한글날 기념주화는 우리나라 최초로 중앙에 구멍이 뚫린 엽전 형태로 선보였다. 테두리에 문자(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모 28자)를 각인한 것도 최초였다. 한글날 기념주화는 주화제조 기술과 디자인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2008년 ‘제25차 세계주화 책임자회의’(MDC) 주화경연대회에서 ‘가장 기술적인 주화’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액면가가 2만원인 기념주화는 현재 화폐 수집시장에서 액면가의 6배인 12만원 정도에 거래된다. 2007년은 국내 기념주화의 흐름에 큰 변화가 있었던 해였다. 올림픽, 월드컵 등 국가적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주로 발행됐던 것과 달리 화폐에 문화적 가치가 높은 소재를 담아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연속 발행되는 ‘시리즈 기념주화’가 첫선을 보였다. 첫 시리즈의 주제는 전통 민속놀이였다. 2007년 ‘탈춤’을 시작으로 2008년과 2009년에는 ‘강강술래’, ‘영산줄다리기’가 각각 도안으로 선정됐다. 류한식 한국조폐공사 전략제품개발팀 과장은 “탈춤을 비롯한 3종의 전통 민속놀이 기념주화는 국내 최초로 12각형으로 제조됐는데 당시 이런 다각형 주화를 ‘프루프 주화’(특수가공한 최고 품위의 수집용 주화)로 제조하는 것은 외국에서는 잘 채택하지 않는 어려운 방식이었다”며 “지금은 공정이 개선돼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전통 민속놀이 시리즈 이후 2010년부터는 ‘한국의 문화유산 기념주화’ 시리즈를 시작했다. 종묘를 시작으로 지난해 경주·백제 역사유적지구까지 선보였던 문화유산 시리즈는 올 8월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조선왕릉’ 발행을 끝으로 종료된다. 한국은행은 2017년 이후 발행되는 차기 시리즈의 주제를 ‘한국의 국립공원’으로 정했다. 2017년은 우리나라의 첫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 50주년이 되는 해다. 국립공원마다 특징적인 명소나 동식물이 있어 다양한 기념주화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념주화는 한 가지 종을 발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종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경우도 있다. ‘2002 FIFA 월드컵 축구 기념주화’는 모두 14종이 나왔다. 1차 발행 때 금화는 3만원짜리와 2만원짜리 1종씩, 은화는 1만원짜리 4종, 금동화는 1000원짜리 1종이 각각 발행됐다. 2차 때도 1차와 같은 숫자로 나왔다. 지난해 발행한 ‘광복 70년 기념주화’는 모두 3종이었지만, 한 종으로 느껴지는 특이한 주화로 수집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각각 다른 3개의 주화를 옆으로 나란히 놓으면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 그림이 완성되는 최초의 파노라마 형태 기념주화였다. 한반도 지형이 강물 형태로 나타나고, 그 위에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광복 70년을 맞아 새로 시작하는 대한민국을 잘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통 기념주화는 이벤트가 있을 때에 맞춰 발행되지만 지각 발행으로 논란이 된 경우도 있었다. 2014년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기념주화’는 8월 교황이 방한하고 두 달여가 지난 10월에 발행이 됐다. 당시 한은은 “교황 방한이 확정된 때부터 발행 준비에 착수하다 보니 늦어졌다”고 해명했지만, 사실은 한은의 기념주화 발행 결정이 늦어졌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교황 방한 기념주화를 만들자고 4월부터 이야기를 했는데 내부적으로 종교 지도자가 올 때마다 기념주화를 만드는 게 관례가 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결국 교황 주화를 발행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지만 이미 조폐공사에서 인천 아시안게임 기념주화를 만들고 있어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은은 특정 인물을 소재로 기념주화를 만드는 데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 인물을 담은 기념주화가 외국에서 만들어져 역수입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주화는 노르웨이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 기념주화는 라이베리아에서, 김연아 선수의 기념주화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에서 만들어졌다. 기념주화는 희소성 때문에 화폐 수집 시장에서 액면가보다 비싸게 팔리는 게 보통이지만 화폐 본연의 기능으로는 딱 액면가만큼만 인정을 받는다. 아무리 오래돼도 심지어 금으로 만들어졌더라도 마찬가지다. 기념주화도 일상에서 쓰는 동전처럼 법정통화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은 발권국 관계자는 “기념주화는 단순한 투자 목적보다는 문화적인 가치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우리나라 주화 제조 기술의 발전을 알리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도 부각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념주화가 나올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그래픽 김예원 기자 yean811@seoul.co.kr
  • [서울 핫 플레이스] 왕도길 따라 걷다보면… ‘2000년 古都’ 백제와 마주한다

    [서울 핫 플레이스] 왕도길 따라 걷다보면… ‘2000년 古都’ 백제와 마주한다

    서울 송파구에 가면 2000년 전 백제 최고 전성기를 이끈 근초고왕의 숨결이 살아 있다. 10여㎞에 이르는 한성백제 왕도(王都)길은 왕이 살았던 풍납토성에서 시작해 ‘한국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석촌동 고분군까지 이어진다. 한성백제의 500년간 수도였던 송파구에서는 일본 고대문화의 지도자 역할을 한 백제인의 수준 높은 안목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올림픽공원의 낮은 언덕이 이어지는 산책로는 바로 백제 몽촌토성입니다.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져서 시원하고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한 겨울 설경도 일품이지요.” 박춘희 송파구청장은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한성백제 왕도길의 풍경 자랑에 여념이 없다. 왕도길은 지하철 5호선과 8호선이 만나는 천호(풍납토성)역에서 시작된다. ●풍납토성 ~ 석촌동 고분군 약 10㎞·3시간 도보 출발! 40년 전통시장인 풍납시장에서 어묵과 핫바를 한입 베어 물고 3시간 정도 걸리는 10㎞ 길이의 왕도길 여정을 떠나보자. 어묵 500원, 핫바 1000원의 저렴한 가격에서 도깨비시장으로 시작했던 풍납시장의 인심을 느낄 수 있다. 경당역사공원은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이 살았던 왕성이란 사실을 입증하는 곳이다. 백제인들은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과 천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 터가 바로 경당역사공원이다. 제사에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말머리뼈와 깨진 토기 등이 여기서 발견됐다. ●풍납토성 3만여점 백제 유물… 2000년 된 고도 입증 풍납토성은 수도 서울이 600년 역사의 도시가 아니라 2000년 된 고도임을 입증하는 핵심적인 곳이다. 1997년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쏟아져 나온 3만여점의 유물은 무려 2000년 전 한성백제 시대의 것들이었다. 한성백제는 백제가 건국돼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약 500년간 현재의 송파구에서 번성했다. 서울시는 ‘기약 없는 사업’으로만 여겨졌던 풍납토성 발굴에 2020년까지 5137억원의 예산을 집중 투입해 속도를 내고 있다. 2017년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2020년에는 백제유적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이 목표다. 예산은 주민보상에 우선 투입된다. 풍납토성은 둘레 3.5㎞, 너비 40m, 높이 10m의 국내 최대 토성이지만 현재는 빽빽한 아파트 숲을 둘러싼 언덕일 뿐이다. 풍납초등학교 옆의 왕궁 핵심지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단독주택을 사들여 본격적으로 발굴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아파트를 짓다 유물이 나오면 땅을 사들이는 방식으로는 언제 풍납토성을 복원할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몽촌토성 어디서 사진 찍어도 ‘인생샷’ 남길 명당 풍납토성에서 이어지는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 안에 있다. 올림픽공원은 파크텔 앞의 칠지도 조형물, 몽촌역사관, 움집터, 한성백제박물관 등 백제의 문화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올림픽공원의 나홀로나무는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출사’ 장소로 손꼽힌다. 1996년 드라마 ‘애인’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나홀로나무 뒤편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구릉도 바로 몽촌토성이다. 한성백제박물관은 토성과 한 몸이 된 모양과 흙을 켜켜이 쌓은 토성 건축 방식을 형상화한 외벽으로 눈길을 끈다. 흙을 층층이 쌓은 듯한 모습의 외벽은 한성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어머니 소서노의 고향 중국 이연에서 나오는 철평석이다. ●한성백제박물관·몽촌역사관에 모인 백제의 단면 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한성백제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한성백제박물관에 모여 있다. “충남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것과 같은 화려한 금관이라도 나와야 할 텐데….” 송파구에 묻힌 백제의 역사가 조명받길 바라는 송파구청 관계자의 아쉬움이다. 금관은 없지만 한성백제박물관에 전시된 금제귀걸이, 금동신발과 꾸미개 등이 화려한 백제문화의 단면을 전한다. 백제의 배를 복원한 박물관 디자인은 해상강국 백제의 풍모를 담고 있다. 박물관 로비에는 풍납토성 단면이 실사 크기로 재연되어 방문객을 압도한다. 성벽 단면과 흙으로 성을 쌓는 백제인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다. 몽촌역사관은 2012년 한성백제박물관이 건립되기 전까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백제 유물을 전시했던 곳이다. 현재는 어린이 체험박물관으로 백제인들은 무엇을 먹고 놀았는지, 화장실은 어땠는지 등 다양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역사교육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움집터 전시관은 몽촌토성에서 나온 12곳의 움집터 가운데 4곳을 재연했다. 전시관 자체가 거대한 움집 모양이다. 백제인들은 육각형 모양의 움집에 화덕을 설치해서 생활했다. 농사를 짓고 밥을 먹는 백제인의 모습이 마치 사극 드라마를 보듯 모형으로 생생하게 꾸며졌다. ●석촌동 고분군 ‘한국의 피라미드’ 돌무지무덤 백제인의 무덤인 방이동 고분군과 석촌동 고분군은 확연하게 대비되는 외양으로 눈길을 끈다. 방이동 고분군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언덕 모양의 무덤이라면,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 초기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인 돌무지무덤이다. 납작하고 네모난 모양의 돌을 계단 모양으로 층층이 쌓은 석촌동 고분군은 한 변의 길이가 약 50m에 달해 한반도 최대 크기를 자랑한다. 고구려 장군총보다 훨씬 커서 백제 최고 전성기를 이끈 근초고왕의 무덤이란 설이 있으며 ‘한국의 피라미드’가 별명이다. 현재는 3단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그 규모만으로 당시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4기의 고분이 발굴된 방이동 고분군도 한 고분의 지름이 10~19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 고분 가운데 하나는 석실까지 들어갈 수 있어 백제인이 어떻게 잠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는 한성백제박물관의 특별전시 ‘백제 신라, 무덤이야기’전에서 재연된 방이동 고분의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박 구청장은 “매년 10월에는 한성백제왕도길 걷기 행사와 한성백제문화축제가 열려 백제문화를 맛볼 수 있고, 올림픽공원은 산책하기만 해도 몽촌토성을 걸을 수 있다”며 “송파구에서는 2000년 전의 서울이 살아 있다”고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25억년을 견뎠다… 살아 있는 지질 박물관

    [명인·명물을 찾아서] 25억년을 견뎠다… 살아 있는 지질 박물관

    화석·특수지형 보존된 동해안 20곳 ‘여의도 780배’ 새 지질공원 인증 추진 25억년 전의 신비를 간직한 경북 동해안과 청송지역의 지질자원이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 우수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5일 경북도에 따르면 국가지질공원위원회는 지난 3일 서울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제13차 회의를 열고 경북 동해안 4개 시·군 지질명소 20곳(울진 4곳·영덕 7곳·포항 5곳·경주 4곳)을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하기 위한 단일 안건에 대한 심의를 벌였다. 인증 결정은 올해 3분기 중에 내려질 전망이다. 경북 동해안 일대는 세계적인 희귀암석, 화석산지, 신생대지층, 해안단구 등 보존 및 연구 가치가 높은 데다 관광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는 지질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질공원 인증 작업이 추진되는 면적은 서울 여의도 면적(2.9㎢)의 약 780배인 2261㎢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추진 중인 국가지질공원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다. 동해안이 지질공원으로 인정되면 경북은 기존 울릉도·독도와 청송에다 1곳이 더 늘어나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많은 3개의 지질공원을 보유하게 된다. 전국에는 현재 모두 7곳이 있다. 제주도(1864.4㎢)를 비롯해 부산 금정·영도 등 7개 자치구(296.98㎢), 강원(철원·화천·인제·양구·고성, 2067.07㎢), 무등산권(광주, 전남 화순·담양, 246.31㎢), 한탄·임진강(경기 연천·포천, 766.68㎢) 등이다. 이처럼 경북이 국가지질공원 최다 보유 지자체의 위상을 높이게 된 것은 2013년 7월 ‘경북도 지질공원 관리 및 운영 조례’를 제정하고 자연자원인 지질자원의 브랜드 가치 제고와 관광자원화를 위해 적극 노력한 덕분이다. 지질공원은 개별 국가가 인증하는 국가지질공원과 유네스코가 국가지질공원 가운데 인증한 세계지질공원으로 나뉜다. 세계지질공원은 유네스코가 인증하는 세계유산, 생물권보전지역과 함께 3대 자연환경 보존제도 가운데 하나다. 지질공원 인증제도는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우수한 지역으로, 이를 보전하고 교육 및 관광사업 등에 활용하기 위해 도입됐다. 우리나라는 2012년 1월 자연공원법을 개정하면서 들여왔다. 인증 조건으로는 공원 면적 100㎢, 지질명소 20곳 이상 보유 및 필수조건 25개를 이행해야 하며 인증기간은 고시일로부터 4년이다. 이후 4년마다 평가를 받아 재인증한다.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후보 지역별 명소는 ▲울진 성류굴·불영계곡·왕피천 계곡·덕구계곡(전체 면적 653.9㎢) ▲영덕 고래불 해안·철암산 화석산지·영해면 24억년 부정합·원생대 변성암·죽도산 육계도·경정리 백악기 퇴적암·해맞이 공원해안(439.7㎢) ▲포항 내연산 12폭포·호미곶 해안단구·구룡소·두호동 화석산지·달전리 주상절리(669.5㎢) ▲경주 양남 주상절리·남산·문무대왕릉·골굴암(497.9㎢) 등이다. 주요 명소별 특징으로 성류굴에는 살아 있는 화석으로 평가받는 프람보사이테르속 패충류가 서식하고, 칠보산은 세계적으로 희귀해 연구가치가 높은 연필구조 지질자원을 갖고 있다. 영덕의 부정합 지층은 무려 24억년의 차이를 극복한 부정합 단층으로 유명하다. 바위 한쪽은 25억년 전 원생대에 형성된 ‘녹니석편암’이고, 다른 한쪽은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된 ‘역암’으로 맞닿아 있다. 철암산에는 조개화석 8종이 분포한 화석층이, 경주 남산의 80여개 화강암 불상은 풍화작용과 관련해 연구가치가 높은 지질유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곳곳마다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경북도는 지질공원 승인을 앞두고 홍보 차원에서 다음달 4일부터 11일까지 8일간 ‘동해안 지질 대장정’에 들어간다. 행사에는 전국 지구과학 교사와 대학생 등 300여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울진~영덕~포항~경주~울릉도~독도 지역 지질자원을 직접 둘러보며 우수성 등을 확인하는 에듀테인먼트 생태체험관광을 하게 된다. 도는 청송 및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의 세계지질공원 등재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우선 지난해 말 유네스코 본부에 청송 세계지질공원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데 이어 다음달 말 예비심사를 앞두고 관련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이미 지질 탐방로, 탐방객 안내센터, 지질 학습관, 지질 명소 안내판 설치 등 기반 조성을 마무리했고 학술용역 및 연구활동도 지속하는 등 인증 요건을 다지고 있다. 청송 세계지질공원 등재 여부는 오는 9월 제7차 세계지질공원 총회에서 결정된다. 청송 국가지질공원은 군 지역 전체 845.7㎢에 달하는 면적에 얼음골, 주산지, 연화굴, 달기약수탕 등 24곳의 지질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고고학적·생태적·문화적·학술적 가치가 높아 세계지질공원 등재에도 손색이 없다는 게 국가지질공원 인증 당시 평가단의 종합적인 분석이었다. 청송에는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류부터 중생대 퇴적암과 화성암류, 신생대 화성암류 등 다양한 지질이 분포돼 있고, 이들 지질 간의 상호작용으로 보기 드문 특징들(단애, 구과상유문암, 페페라이트, 공룡발자국, 동굴, 폭포 등)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또 2012년 국내 처음으로 국가지질공원에 이름을 올린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의 세계지질공원 등재를 위해서도 운영 내실화, 인프라 구축, 국제총회에서의 홍보 등을 지속하고 있다.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은 일부 해역을 포함한 울릉군 전 지역 127.9㎢다. 140만∼1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울릉도와 신생대 제3기 말(460만∼210만년 전)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뒤 오랜 기간 파도에 의한 침식·퇴적 및 풍화작용 등을 거친 독도에는 삼형제굴바위와 울릉도 코끼리바위 등 지질명소가 23곳 있다. 경북도는 지역 지질자원의 국가 및 세계지질공원 인증으로 자연유산 보존은 물론 동해안 등지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고 생태 관광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육·관광 등을 연계한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한다. 특히 도는 청송군 청송읍 일원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센터를 유치해 지질 관련 교육연구시설 등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도는 이 시설이 유치될 경우 연인원 7000여명의 지질공원해설사 교육과 연간 30만명의 관광객 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세계지질공원 로고 사용이 가능해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할 수 있는 데다 ‘세계지질공원 네트워크’(GGN)에도 참여하면서 생태·지질 관광의 수준도 한층 더 높일 수 있다. 김정일 경북도 환경산림자원국장은 “경북이 전국 최대·최고의 지질 명소를 자랑하는 만큼 앞으로 지속적으로 국가 및 세계지질공원 인증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면서 “지질공원과 관련한 관광은 단순한 관광 차원을 넘어서 지질·생태·문화·체험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복합 관광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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